- <램>에 실린 피터 게이브리얼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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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 - 아래는 제너시스의 <The Lambs Lies Down On Broadway>(1974) 앨범에 실려 있는 피터 게이브리얼의 소설 전문 번역이다. 이 소설은 원문 자체가 초현실주의 소설인 점, 영미권의 당시 독자들만이 알 수 있는 고유 명사의 나열, 결정적으로 영어 사용자만이 그 묘미를 알 수 있는 각운․댓구․펀(pun) 등의 빈번한 사용은 사실상 번역 행위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또한 옮긴이가 때로 그 뜻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여 글자 그대로 직역한 부분도 있다. 따라서 아래의 번역본조차도 상당히 난해하고 무의미하게 보이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대체적인 의미는 통할 것으로 본다. 더욱이, 무의미가 없이는 의미도 없다(There is no sense without nonsense). 아마도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답고 중요한 상징적 노래는 역시 ‘it.’이다. ‘그것’의 가사는 우리말 번역 행위를 전혀 불가능하게, 혹은 전혀 무의미하게 만든다. 이에 번역문 아래에 영어 원문을 싣는다. 원문을 보면 독자들도 그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직접 앨범을 걸어놓고 가사를 음미해 보시기 바란다. 번역문 안에 해당 곡명이 나올 경우, 소설의 내용과 진행에 맞추어 해당 부분에 괄호를 만들어 이탤릭체로 영어 곡명을 적어 넣었다.
내 눈에서 손 좀 치워봐.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온 벽 가득히 붙어있는 유리 나비를 가끔 바라보고 싶다. 기억 속의 사람들이란 보통 사건 속에 붙박혀 있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이지만, 여하튼 나는 그가 또 다른 종류의 생명체를 파괴하고 분해하며 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을 관찰하는 중이다. 문제의 인물은 물론 미생물에 의해 완전 분해 가능한 물질로서, “라엘”(Rael)이라 명명되어 있다. 라엘은 나를 싫어하지만, 나는 라엘을 좋아한다 - 그렇다. 타조도 감정이란 게 있는 법이며, 우리의 관계도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그런 종류의 관계인 것이다. 라엘이 좋아하는 것은 좋은 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은 좋은 각운이다. 여하튼 라엘은 내가 주변에 얼쩡거리는 걸 싫어하니까 당신이 이제 날 직접 보긴 더 이상 어려울 것이다. 여하튼 만약 라엘의 얘기가 이해가 안되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다, 이런 말이다. 이해가 되나? - 즉 각운이 있단 말이다, 멍청이들아!
반짝이던 바늘이 돌연 빨간 색으로 변한다. 뉴욕이 침대에서 기어 나온다. 다른 사람들이 여전히 꿈속에 빠져 있는 이 영화를 보면서 잠깐씩 졸던 피곤한 사람들은 이제 심야 영화관의 온기를 떠나야 한다. 무보수의 엑스트라들이 ‘잠에 빠진 브로드웨이’의 숙면을 방해한다. 왼쪽으로는 ‘보행’(WALK), 오른쪽으로는 ‘정지’(DON'T WALK): 브로드웨이의 방향 표지판들은 그리 밝지 않다. 자동 기계 유령들이 기사 아저씨들의 이른 자동차 경주에 발맞추어 걷고 있다.
이 얘긴 이만 하면 됐고 - 우리의 영웅이 지하철 계단을 따라 올라갈 때 날이 밝아온다. 방금 지하철 계단을 따라 커다란 대문자로 R-A-E-L이란 메시지를 남긴 스프레이는 그의 가죽 재킷 안으로 사라진다. 당신한테는 이게 별 의미가 없겠지만, 라엘한테는 “자기 이름 만들기” 과정의 일부가 된다. 당신이 설령 순수한 푸에르토-리코 혈통이 아니라 해도,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이다.
무심히 비에 젖은 거리를 바라보던 라엘은 혹 뭔가 방해가 될까 싶어 수증기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해 본다.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라엘은 보도를 어슬렁거린다. 라엘은 치약 광고 소녀의 미소가 잘 보이도록 철제 안전 장치가 치워져 있는 약국 앞을 지나, 밤의 아가씨들을 지나서, 가발 가게 문 앞에 서있는 경찰 프랭크 레오노비치(48세, 기혼, 자녀 둘) 앞을 지난다. 레오노비치는 꼭 다른 경찰들이 라엘을 쳐다보듯 라엘을 쳐다보고, 라엘 또한 마치 뭔가를 숨기듯 자기를 숨긴다. 그러는 동안 수증기로부터 한 마리의 어린 양이 나타난다(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어린 양은 라엘은 물론, 다른 양들과도 어떤 관계도 없다 - 그것은 그저 브로드웨이에 나타난 것이다.
하늘이 흐려지고 라엘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두운 구름 하나가 마치 풍선처럼 타임 스퀘어위로 내려온다. 구름은 땅위에 내려앉아 평평한 기하학적 도형으로 바뀐다. 구름은 고체로 변해가면서 47번가를 동서로 꽉 채우고 이윽고 어두운 하늘까지 뻗쳐 나간다. 이 구름의 벽이 점차로 팽팽해지면서 조금 전 맞은 편 삼차원 공간에 존재했던 것들을 비추어주는 스크린이 된다. 마치 색칠한 진흙처럼 이미지들이 명멸하고, 벽은 자신을 막아서는 모든 것을 삼키며 조용히 앞으로 나아간다. 무심한 뉴욕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분명 아무 것도 모른다.
라엘이 콜럼부스 로터리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그가 쳐다 볼 때마다 벽은 이미 다른 블록으로 옮겨가 있다. 그가 벽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세차게 불어온 바람과 추위 때문에 그의 속도가 떨어진다. 바람은 점점 더 세차게 불어 젖은 거리를 말리며 길거리의 먼지를 들어올려 라엘의 얼굴에 퍼붓는다. 점점 더 많은 먼지가 날아와 라엘의 피부와 옷에 달라붙고, 이윽고 라엘은 겹겹의 먼지가 달라붙어 딱딱해 진 코트 때문에 겁에 질려 멈추어 선다. 한 마리의 앉아 있는 오리(Fly On A Windshield).
돌연 거대한 굉음과 함께 충격의 순간이 침묵을 깬다. 결정적 순간이 마치 브로드웨이의 모든 콘크리트와 진흙들이 자신의 과거를 되살리듯 메아리의 세계 속으로 들어온다. 최후의 대행진이 지나간다. 피곤에 찌든 취재 기자는 마치 관객과 사건이 하나로 묶여버린 것 같다고 불평한다. 빙 크로스비가 “블루스 노랠 부르기 위해 아파할 필요는 없어요, 소리칠 필요도 없어요 - 돈도 물론 필요 없죠”라고 응얼거리고, 마틴 루터 킹이 “모두 노래합시다”라고 외치며 유구한 역사를 가진 거대한 자유의 종을 울린다. 감방 생활에 질린 리어리(Leary)는 천국에서 지옥까지 종횡 무진 떠벌이고 있다. J.F.K.는 오렌지 율리우스와 레몬 브루투스를 홀짝거리며 우리를 쏘라고 O.K. 사인을 보내고, 베어(Bare)는 3회 연속 챔피언 카우보이 두 팀에 용감히 맞선다. 프레드 아스테어(Fred Astaire)와 진저 로저스(Ginger Rogers)가 바람을 가르며 춤을 추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의료 보험과 35 프로 일률 과세 요금이 필요하겠는가? 밴드는 전형적 ‘브로드웨이 멜로디’ 타입의 곡을 끝내고(Broadway Melody Of 1974) 다시금 ‘성조기’를 연주하고 방금까지 불법 증류통에서 알콜을 뽑아내던 밀주업자는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린다. 전당포 업자는 쩔렁거리는 돈 궤짝을 닦으며 행운의 달러 지폐를 움켜쥔다. 그리고는 암전(暗轉).
라엘은 사향 냄새의 어슴푸레한 빛에 의식을 되찾는다. 그는 일종의 고치 안에 따뜻하게 싸여있다. 그에게 들리는 것은 희미한 빛이 보이는 듯한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물 떨어지는 소리뿐이다. 그는 자신이 분명 자궁에 달라붙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알 껍질, 혹은 괴(怪) 무덤, 혹은 지하 묘지 - 혹은 어떤 새장 속에 들어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뭐든지 간에, 그는 마치 자기 따뜻한 물이 가득 찬 뱃속에 잘 담겨진 인형처럼 편안하고 아주 깨끗하고 만족스럽다 - 그러니 그게 뭐든 무슨 걱정이겠는가? 이 미지의 것에 자신을 내맡기고 그는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Cuckoo Cocoon).
그는 토하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끼며 식은 땀에 젖어 일어난다. 고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주위의 동굴 벽만이 보인다. 천장에서 반짝이며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그의 주변에서 수많은 종유석과 석순들이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두려움과 충격이 거세지자 그는 안정을 되찾기 위해 셀프 콘트롤을 시도해보지만, 이내 종유석과 석순들이 다가오면서 자라나 그를 가두는 창살이 되면서 굳어져 버리는 것을 보고 곧 이 생각을 포기한다. 한 순간 불빛이 번쩍이면서 그는 로프 같은 것으로 함께 매달려 있는 무수한 새장들의 무리를 본다. 종유석과 석순들이 그의 몸을 죄여올 때 그는 바깥에서 그를 들여다보고 있는 자신의 형, 존(John)을 본다. 그의 살려달라는 비명에도 불구하고 존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그러나 존의 무심한 눈동자 위로 한 방울의 피 눈물이 생겨나 그의 뺨을 흘러내린다. 그리고 존은 이제 고통이 엄습하기 시작하는 라엘을 남겨두고 떠나 버린다. 그러나 존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자 바위들이 녹아 버리면서 내팽겨쳐진 라엘은 팽이처럼 제자리를 돌고 있다(In The Cage).
간신히 돌기를 멈춘 라엘은 잘 닦여진 마루바닥에 주저앉아 현기증이 사라지길 기다린다. 그것은 현대적 양식의 빈 복도로 안내대에는 아기들이 안고 자는 인형을 파는 아가씨가 앉아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녀는 말을 내뱉기 시작한다: “이 곳은 ‘무생명 포장들의 대행진’(The Grand Parade of Lifeless Packaging)입니다. 앞으로 보시게 될 것들은 두 번째 전시장의 몇몇 신상품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매되는 것들입니다. 이 곳에는 현재 저희 기업에서 생산되는 모든 상품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 담당자마다 각기 다른 품목들이 배당되어 있고, 따라서 여러분들은 다양한 상품들을 구경하실 수 있습니다. 상품들은 고가격의 풍부한 영양을 공급받은 품목에서 가장 합리적인 가격의 영양 실조 품목까지 다양합니다. 이 곳은 모든 사람의 표정이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저희는 일부 저가격의 영양 실조 품목들을 제외하고 모든 제품들의 안전한 출산과 질병 없는 유년기를 보장합니다. 하지만 물론 상품 선택에 약간의 변수는 있습니다 - 평균 미분치와 대략 비슷하지요. 보시는 것처럼 어떤 포장들의 행동 반경도 지붕에 의해 미리 엄격히 제한되어 있지만, 단 개체들의 충돌에 의해 균형이 파괴되는 경우 종종 행렬 밖으로 튀어나가기도 하지요.”
라엘은 포장들의 행렬을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그 중 몇몇 얼굴들이 눈에 익은 것은 발견한다. 라엘은 행렬에서 몇몇 옛 친구들의 얼굴을 발견하고, 이윽고 자신의 안전을 걱정하기 시작한다. 공장을 가로질러 밖으로 달려나가던 라엘은 이마에 9라는 숫자가 찍혀진 형 존을 발견한다.
충분히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한 라엘은 오랜만에 본 옛 친구들의 얼굴에 상기되어 먼 옛날 - 지상에서의 - 자신의 일들을 되살리기 시작한다.
언제나 남아도는 시간이 지겨웠기 때문에 라엘은 무슨 일이든 좀 빨리 해치우곤 했다. 라엘은 머리가 둔하다기보다는 아주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그의 엄마, 아빠가 그를 등쳐먹고 있었기 때문에 라엘은 눈치볼 것 없이 깡패들의 무리에 가입했다. 그러나 라엘이 깡패들 사이에서 인정받게 된 것은 폰티액 소년원에 들어간 이후의 일이었다. 그 때 소년원을 출소해서 집으로 돌아가던 라엘의 손에는 잠자는 고슴도치(porcupine)가 꼭 안겨 있었다(Back In N.Y.C.).
어느 날 밤 그는 아주 낭만적인 음악에 맞추어 자신의 털투성이 심장이 어떤 스테인레스 쇠로 된 면도기로 말끔히 깎여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Hairless Heart). 두근거리던 체리 빛깔의 붉은 오르간이 제자리로 돌아갔다가는 - 시간을 재고 있는(Counting Out Time) - 우리의 영웅이 낭만적인 첫 만남을 시작하자 다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라엘은 자신의 혼란된 기억으로부터 원래 그가 있던 장면으로 돌아온다. 이제 그는 긴 카페트가 깔려있는 회랑을 발견한다. 벽은 붉은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고, 어떤 것들은 황소의 눈처럼, 어떤 것들은 새나 보우트의 눈처럼 보이는 이상한 훈장 모양이 새겨져 있다. 회랑 저 쪽 아래에서 라엘은 무릎을 꿇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본다. 괴로움에 찬 신음과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그들은 반대편 끝의 목재 문을 향해 절망적으로 천천히 기어가고 있다. 무감각한 ‘무생명 포장들의 대행진’만을 본 라엘은 그들에게 달려가 묻는다.
“왜 이러고 있어요?” 라엘이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신부에게 외치자 그는 하품을 참으며 대답한다: “아직 새벽까지는 한참 남았어.” 옆을 기어가던 스핑크스처럼 생긴 한 사람이 라엘의 이름을 부르며 “그 사람한테 물어볼 필요 없어요. 술을 너무 마셨거든. 우린 지금 밖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는 저 계단 꼭대기로 기어가고 있는 중이요.” 이 말에 고무된 우리의 영웅은 문으로 용감하게 돌진한다. 음식이 놓여있는 테이블 뒤에 천장으로 올라가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다(Carpet Crawlers).
계단 꼭대기에는 방이 하나 있다. 거의 반원 모양으로 된 방안에는 벽을 따라 수많은 문들이 있다. 방안에는 이미 다양한 그룹을 이룬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서로 외치는 소리에서 라엘은 방안에는 모두 32개의 문이 있으며, 그 중의 단 하나만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임을 알게 된다(The Chamber Of 32 Doors).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커져서 급기야는 라엘이 “그만!”이라고 외칠 때까지 계속된다. 잠시의 순간적 정적이 있은 후, 갑자기 사람들은 이 신참자를 향해 온갖 충고와 명령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쓰레기와 잿더미 위에서 자라난 우리의 주인공은 재빨리 움직이며 주위를 둘러본다. 드디어 라엘은 조용한 구석을 발견하고 그리로 뛰어간다. 라엘은 나직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창백한 얼굴의 중년 여성 옆에 선다. 라엘은 그녀가 맹인이며 안내자를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라엘은 묻기를, “출구가 없는데 안내자가 뭐하러 필요해요?” 그녀가 답하기를, “출구가 있어요, 이 시끄러운 데를 벗어나면, 내가 알 수 있어요. 난 이 동굴을 잘 알아요. 바람 부는 곳을 따라가면 돼요.”
두 사람은 그들의 시도를 비웃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를 떠난다. 문을 통과하자 그녀는 라엘을 터널 아래로 이끈다. 방의 불빛이 완전히 사라졌어도 그녀는 여전히 흔들림 없이 걷고 있지만, 라엘은 어둠 속에서 몇 번이나 나뒹군다(Lilywhite Lilith).
한 참을 걷고 나서 두 사람이 - 라엘의 생각에 - 커다란 둥근 동굴 같은 장소에 도착하자, 그녀는 짧게 라엘에게 앉으라고 말한다. 바닥은 마치 차가운 돌로 된 왕좌 같다.
“라엘, 여기 앉아요. 그들이 곧 올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더 이상의 설명도 없이 걸어가 버린다. 라엘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두려움과 직면한다(The Waiting Man).
그의 왼쪽 터널이 밝아지자 라엘은 떨기 시작한다. 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라엘은 비-금속성의 무엇인가가 회전하는 소리를 듣는다. 빛이 점점 고통스러우리 만치 밝아지면서 - 마치 너무도 흰 눈을 볼 때처럼 - 라엘의 눈이 보이지 않게 될 정도까지 벽을 밝게 비춘다. 라엘은 공포에 사로잡힌 채, 주변의 돌을 집어들어 빛의 중심부를 향해 던진다.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동굴 벽을 울린다.
시력이 회복되면서 라엘은 직경 1 피트 가량의 황금 장갑 두 개가 터널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장갑이 사라지자 갑자기 지붕에서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지붕이 라엘을 향해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의 영웅은 다시 한 번 갇힌 것이다.
떨어진 바위들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라엘은 생각한다: “바로 이거야.” 그가 ‘저승’(Sheol)의 문을 지나갈 때 이 지하 세계의 이방인이 볼 것이라곤 별로 없었다. “차라리 수 천 조각으로 허공에 던져지거나, 헬륨 가스로 가득 채워져서 무덤 위를 떠다니는 게 낫겠다. 지하 세계의 향수병을 고치는 회비로는 아주 빵점이야. 여하튼(Anyway) 난 내 입안에 솜을 처넣으며 내 외모가 어떠해야 한다느니 떠벌이던 변태 미이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긴 했군.”
이런 저런 추측들로 지쳐버린 우리의 영웅은 일생 처음으로 자신의 영웅, ‘죽음’(Death)을 만난다. ‘죽음’은 옅은 분장을 하고 자기 옷을 차려입었다. 그는 그것을 “초자연적 마취”(Supernatural Anaesthetist)라 부른다. ‘죽음’은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고 여행하길 좋아한다. ‘죽음’은 특별히 제작된 자신의 상자를 들고 라엘에게 다가와 그것을 한 번 훅 불고는 만족스러워 하며 벽 속으로 걸어 들어가 버린다(Here Comes The Supernatural Anaesthetist).
라엘은 자기가 아직도 살아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기 얼굴을 만진다. 그는 마치 환상처럼 ‘죽음’이라고 써보지만, 곧 강렬한 사향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오는 것을 알아차린다. 향기가 가장 강하게 풍겨 나오는 구석으로 다가간 라엘은 바위에 나있는 하나의 틈새를 발견한다. 그 곳을 통해 향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바위를 힘들여 치우기 시작한 라엘은 이윽고 그가 기어나갈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구멍 하나를 만들어 낸다. 바깥쪽으로 나오자 향기는 훨씬 강해졌고 그는 다시금 힘을 내 그것이 흘러나오는 곳을 찾기 시작한다.
라엘은 드디어 핑크 빛 물이 가득 찬 아주 화려한 풀을 하나 발견한다. 풀은 황금 장식들로 아낌없이 치장되어 있다. 풀장 주변의 벽은 밤색 벨벳으로 덮여 있으며 인동나무 넝쿨이 자라고 있다. 물위에 떠있는 안개 사이로 물방울들이 피어오른다. 뱀처럼 생긴 세 마리의 파충류 같은 동물들이 라엘을 향해 헤엄쳐 온다. 이것들 각각은 작은 머리와 아름다운 여성의 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초록 눈이 환영의 눈길을 보내자 라엘의 공포는 점차 흥미로 바뀌어 간다. 이들 레이미어(The Lamia)가 달콤한 물을 맛보길 권하자 라엘은 금새 풀장 안으로 뛰어든다. 라엘이 액체를 조금 마시자마자 그의 피부에서 희미한 푸른색의 빛나는 액체가 떨어진다. 레이미어들이 그 액체를 핥는다. 그런데 그 혀가 너무도 부드러웠기 때문에, 레이미어들이 핥을 때마다 라엘은 액체를 점점 더 주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레이미어들은 거의 그의 뼈가 녹을 때까지 라엘의 살을 애무한다. 라엘이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느끼는 순간 레이미어들이 그의 살을 뜯어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피를 한 방울 들이마시자, 그들의 눈은 검은빛으로 변하고 그들의 몸은 떨리기 시작한다. 라엘은 무력한 심정에 사로잡힌 채 자신의 연인이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본다(Silent Sorrow In Empty Boat). 남아있는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못이긴 라엘은 그들의 잔해를 집어들고 그것을 먹기 시작한다. 이제 라엘은 자기 연인의 둥지를 떠나려고 발버둥친다.
자신이 들어왔던 바로 그 문으로 나온 라엘은 반대편에서 ‘괴물들의 게토’ 비슷한 곳을 발견한다(The Colony Of Slippermen). 온 거리에 가득 찬 뒤틀린 괴물들은 라엘을 보자 돌연 웃음을 터뜨린다. 집단 중 하나가 라엘에게 다가온다. 그는 온갖 추한 덩어리와 토막들로 이루어진 정말 이상한 모습의 괴물이다(The Arrival).
그는 환영의 미소와 함께 미끌미끌한 손으로 악수를 청하면서 자신의 입술로 그의 뺨을 핥는다. 이 슬리퍼맨(Slipperman)이 라엘에게 이 곳의 슬리퍼맨들 또한 모두 라엘처럼 조금 전의 그 세 레이미어와 함께 황홀한 낭만적 비극을 경험했으며, 이제 라엘 또한 그들과 같은 신체의 모습과 허망한 운명을 나누게 되었음을 알려주자, 라엘은 심한 구토를 느낀다.
라엘은 슬리퍼맨들의 뒤틀린 얼굴들 중에서 그의 형 존의 모습이 남아있는 얼굴 하나를 발견한다. 존과 라엘은 서로 부둥켜안는다. 라엘은 존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절망적 설명을 듣게 된다: 슬리퍼맨들의 일생은 오직 - 그들이 레이미어로부터 물려받은 - 감각의 끝없는 굶주림을 충족시키기 위해 바쳐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 그것은 악명 높은 ‘독터 다이퍼’(Doktor Dyper)를 찾아가 문제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 좀 더 덜 교양 있게 말하자면, 거세(castrate)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오랫동안 무익한 탈출 논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 ‘독터’를 찾아가기로 결정한다(A Visit To The Doktor). 그들은 가혹한 시련을 거쳤고, 이윽고 황금 줄이 달린 딱딱한 노란 플래스틱 튜브 안에 든 공격 무기를 소개받았다. 무기를 건네주며 ‘독터’는 “사람들은 보통 그걸 목에다 걸죠”라고 말한다. “수술이 필연적으로 불편을 가져다주는 건 아녜요, 물론 뭐 두 분이 그걸 원하실 때 적절한 시기에 미리 저희한테 반드시 알려야죠.” 두 형제가 이 새로운 곤경에 대해 한 참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갑자기 커다란 검은 까마귀(Raven)가 동굴 안에 나타나 라엘을 갑자기 덮쳐서는 그의 손에서 튜브를 빼앗아 부리에 물고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라엘이 존에게 같이 잡으러 가자고 외친다.
그러나 존은 “난 검은 까마귀는 안 좇아간다. 우린 운명을 믿고 또 복종해야 돼. 까마귀가 나는 곳에는 재앙이 있다.” 이렇게 해서 존은 자신의 형제를 다시 한 번 저버린다.
라엘은 새를 따라 좁은 터널의 아래쪽으로 다가간다. 까마귀는 마치 라엘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천천히 난다. 그러나 라엘이 까마귀를 거의 다 따라 잡았다고 생각한 순간, 터널이 끝나고 아래에 거대한 지하 협곡(Ravine)이 펼쳐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까마귀는 라엘의 귀중한 물건을 바닥에 흐르는 물위로 떨어뜨린다. 이는 우리의 불쌍한 소년을 미쳐 날뛰게 만들기에 충분한 일이다.
가파른 절벽의 위험성을 인식한 우리의 용감한 영웅은 무력하게 서서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있다. 라엘은 계곡의 정상을 따라 난 작은 길을 따라가며 급류 속에 잠겼다 나왔다하며 흘러가는 튜브를 바라본다. 그러나 모퉁이는 돌아서는 순간 라엘은 둑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본다. 그는 그 사이로 고향의 푸른 잔디를 본다, 뭐 꼭 그런 건 아니고, 보이는 것은 브로드웨이다(The Light Dies Down On Broadway). 이제 털이 곤두선 그의 심장은 기쁨으로 요동치고, 그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 라엘의 귀는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누군가가 저 아래 급류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쓰고 있다. 그것은 존이다. 라엘은 잠시 멈춰 서서 그의 형이 어떻게 그를 버렸던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창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 행동해야 할 시간이다.
그는 계곡으로 달려가 바위를 기어 내려간다(Riding The Scree). 라엘이 급류의 흐름에 맞추어 가며, 아래쪽 물가까지 도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라엘이 물가에 다가가면서, 그는 점차로 존의 힘이 빠져 가는 것을 본다. 그는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든다. 먼저 라엘은 급류에(In The Rapids) 휘말려 바위에 충돌했다가 다시 물결에 휩쓸려 존의 바로 뒤를 지나 깊은 물 속 아래로 빠져 버린다. 라엘은 간신히 바위를 움켜잡고 물 밖으로 나와서는 숨을 몰아쉰다. 잇달아 존이 떠내려오는 것을 본 라엘은 다시 한 번 물 속에 뛰어들어 존의 손을 움켜잡는다. 라엘은 존을 때려 기절시킨 후 자신의 손으로 단단히 껴안고 급류를 벗어난 완만한 흐름의 물가 쪽으로 나와 안전하게 수영을 한다.
그리고 라엘은 형의 축 늘어진 몸을 둑 위로 끌어당겨 눕히고는 초조한 눈빛으로 형의 눈동자에서 생명의 신호를 찾아본다. 눈을 크게 뜨고 존을 바라보던 라엘은 갑자기 깜짝 놀라 비틀거리며 뒷걸음친다, 그것은 존의 얼굴이 아니다 - 그것은 자신의 얼굴이다.
라엘은 바로 자신의 이미지에 매혹되어서는 그 눈동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짧은 한 순간, 라엘의 의식은 한 얼굴에서 다른 얼굴로 휙 날아갔다가는 다시 돌아온다, 그의 존재가 더 이상 그 중 하나 혹은 다른 쪽에 단단히 담겨지기 전까지.
이런 유동적 상태에서 그는 두 몸의 가장자리가 노란빛으로 바뀌면서 주변 광경이 보라빛 안개 속에 녹아 들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갑자기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지면서 두 척추, 두 몸은 급기야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 모든 것들은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단 하나의 꽃잎, 단 한 번의 종소리, 단 한 번의 석양도 없이 생겨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it.)은 도취적이고 신비스러운 자신의 존재로 모든 것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것’이 당신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1974년 피터 게이브리얼.
it.
When it's cold, it comes slow
it is warm, just watch it grow
- all around me
it is here. it is now.
just a little bit of it can bring you up or down.
Like the supper it is cooking in your hometown.
it is chicken, it is eggs,
it is in between your legs.
it is walking on the moon,
leaving your cocoon.
it is jigsaw. it is purple haze.
it never stays in one place, but it's not a passing phase
it is in the single bar, in the distance of the face
it is in between the cages, it is always in a space
it is here. it is now.
Any rock can be made to roll
If you've enough of it to pay the toll
it has no home in words or gold
Not even in your favorite hole
it is hope for the dope
it rides your horse without a hoof
it is shaken not stirred;
Cocktails on the roof.
When you eat thru' it you see everything alive
it is inside the spirit, with enough grit to survive
If you think that it's pretentious, you've been taken for a ride.
Look across the mirror sonny, before you choose, decide
it is here. it is now
it is Real. it is Rael
'Cos it's only knock and knowall, but I like it.
Yes it's only knock and knowall, but I like it.
Yes it's only knock and knowall, but I like it, I like it ...
genesis, it, 1974
▶ 앨범 리뷰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1974.
Charisma CAS 101, November 1974
실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자유연상 등의 방법론은 현대의 예술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프로이트적으로 말해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에 - 자신이 알든 모르든 - 자신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평생을) 연기하는 자기만의 ‘극장’을 가지고 있다면, 본 작은 바로 게이브리얼의 심리적 환상/현실 세계가 ‘라엘’(Rael)이라는 대리인을 통하여 드러난 자기 반영의 산물에 다름 아니다. 이는 이미 그가 도입한 ‘연극성’이라는 - ‘연극’ 자체가 아니다 - 개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지만, 본 작은 그러한 기존의 시도에 실험성과 현대성이 더해진다. 실로 세계는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이 세계가 무대이며 우리 모두가 배우에 불과’하거나(이 때 모든 것은 ‘연극’이다), 혹은 ‘연극이란 아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극을 행하고 바라보는 그 공간은 언제나 연극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 환상(Rael)은 참으로 현실(Real)이다! 앨범은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있음에 분명한 우리의 게이브리얼이 내놓은 현대의 초현실주의적 신화이다. ‘어린양이 브로드웨이에 눕는다’라는 이름을 가진 이 현대의 신화는 안/밖, 여기/저기, 너/나, 우리/그들, 의식/무의식, 라엘/존, 환상(Rael)/현실(Real)을 넘나드는 주인공 게이브리얼/라엘의 ‘그것’(it)을 찾아 떠나는 환상 세계 여행이다. ‘그것’은 당신의 두 다리 사이에 있는 것이며, 또한 여기이며, 지금이다 - 프로이트는 자신의 <정신분석입문>에서 ‘무의식’을 니체를 인용했던 그로덱의 예를 따라 ‘그것’(Es, it)이라 부르겠다고 말했으며, 다시 이를 따라 라캉은 - ‘내’가 아니라 - ‘그것이 말한다’(ça parle, it talks)고 말했다. ‘그것’은 모든 것이며 아무 것도 아닌 동시에, 모든 곳 모든 때에 있으며 또한 어느 곳 어느 시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이브리얼은 ‘오직 네가 그것을 파악할 때에만 너는 이 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노래하지만 그것은 ‘파악될 수 없는’ 것이다. 이제 ‘Carpet Crawlers’에서 노래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남겨진 유일한 길은 ‘그것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그것 안으로 들어가는 것’(We gotta get in to get out)이다. 마지막 곡 ‘it’ 등 앨범의 총체적 상징성은 이 컨셉트 앨범에 대한 평가를 한껏 고양시키지만, 다만 앨범의 뒤로 갈수록 음악적 텐션이 떨어지는 것만이 이 걸작의 유일한 ‘옥의 티’이다. ★★★★
Michael Rutherford: b, 12 string g
Phil Collins: per, vibing, vo
Steve Hackett: g
Tony Banks: key
Peter Gabriel: vo, flt
Produced by John Burns & Genesis
Engineered by David Hutchins
Enossification: Eno
Disc 1
1.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2. Fly On A Windshield
3. Broadway Melody Of 1974
4. Cuckoo Cocoon
5. In The Cage
6. The Grand Parade Of Lifeless Packaging
7. Back In N.Y.C.
8. Hairless Heart
9. Counting Out Time
10. Carpet Crawlers
11. The Chamber Of 32 Doors
Disc 2
1. Liliwhite Lilith
2. The Waiting Room
3. Anyway
4. Here Comes The Supernatural Anaesthetist
5. The Lamia
6. Silent Sorrow In An Empty Boats
7. The Colony Of Slipperman (The Arrival․A Visit To The Doktor․Raven)
8. Ravine
9. The Light Dies Down On Broadway
10. Riding The Scree
11. In The Rapids
12.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