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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8.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초고]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 미셸 푸코(1926-1984)의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





‘성의 역사’ 시리즈는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으나 푸코의 사망으로 3권까지만 출간되었다. 1976년 출간된 성의 역사 시리즈 1권 『앎의 의지』의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나머지 다섯 권의 리스트가 실려 있다. 2권 『살과 육체』, 3권 『어린이 십자군』, 4권 『여자, 어머니, 히스테리 환자』, 5권 『성도착자』, 6권 『인구와 인종』. 그리고 『앎의 의지』의 본문에서 푸코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위해 『진리의 권력』이라는 책을 내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발간된 것은 푸코가 사망하던 해인 1984년 발간된 2, 3권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뿐이며, 이마저도 원래의 예고와는 전혀 다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기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1권과 2, 3권의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적 격차가 있으며, 이 시기 동안 성의 역사 시리즈는 물론 어떤 책도 발간되지 않았다. 이 8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의 역사’에 관련된 몇 가지 논점들




우선 몇 가지 기초적 사실의 확인과, 그에 이어지는, 기본적 논점의 확립을 통해, 부정적으로는 대중의 오해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 긍정적으로 논의의 초점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연구자들 사이에는 푸코의 이 ‘침묵’이 단절인가 연속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하지만 이 8년이라는 ‘침묵’의 시기 동안 푸코는 단지 저서를 내놓지 않았을 뿐, 각종 논문, 강연, 세미나 그리고 콜레주 프랑스 강의 등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더 활발히 글들을 발표했다. 두 번째로, 실제로 발간된 ‘성의 역사’ 1~3권 중 1976년에 발표된 1권과 1984년 발간된 2, 3권의 관계설정이라는 문제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연구자들 사이에 크게 보아 단절을 강조하는 학자들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학자들로 나뉘어져 왔으나,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단절도 연속도 아닌 ‘포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간단히 논의하도록 하자.



 
 
 
 
앎의 의지 - 섹슈얼리티라는 권력 장치
 
 
 
다음으로 푸코의 사유 내에서 『앎의 의지』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이 있다. 동성애자였던 푸코는 대략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이후 자신이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고자 시도한다. 1980년 이후의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신의 사유를 지식, 권력, 윤리라는 세 가지 영역을 고고학과 계보학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으로 조명한 것으로 요약한다. 이는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시기를 낳는다. 우선 1960년대에 걸쳐있는 ‘지식의 고고학’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의 대표작들은 『말과 사물』(1966)과 『지식의 고고학』(1969)이다. 1970년 초에 시작되는 ‘권력의 계보학’의 시기는 『담론의 질서』(1970), 『감시와 처벌』(1975)로 대표된다. 마지막 ‘윤리의 계보학’의 시기에는 1976~1984년에 이르는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이 포함된다.
 
 
 
푸코가 말년에 개진한 회고적 분류에 따르면, ‘성의 역사’ 시리즈는 모두 ‘윤리의 계보학’에 속하나, 실상 1976년에 발간된 『앎의 의지』는 오히려 ‘권력-지식’, 곧 권력의 계보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바라본 작품이다. 푸코는 자신의 질문이 ‘왜 우리가 억압받고 있는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이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동시대의 지배적 관점, 곧 빌헬름 라이히로 대변되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이다. 푸코에 따르면,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공히 ‘억압’된 진실과 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억압-해방’의 담론에 기초하고 있다. 푸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 혹은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섹스의 억압은 정말로 자명한 사실일까?’라는 역사적 질문. 둘째, ‘권력의 메커니즘은 실제로 억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라는 역사-이론적 질문. 셋째, ‘억압의 시대와 억압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시대 사이에는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할까?’라는 역사-정치적 질문.
 
 
 
이 질문들이 잘 알려주듯이, 『앎의 의지』는 기본적으로 그 전 해에 발간된 『감시와 처벌』의 ‘권력 계보학’을 이어받아 그 논의를 심화시키고 난점을 보완하면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책이다. 푸코는 앞서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출한다. 첫째, 실제의 서구 근대의 역사는 오히려 성에 관한 담론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이는 성이 억압된 적이 ‘없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둘째, 억압, 금지 등 권력의 부정적 기능을 통해서만 권력을 바라보는 것은 권력이 갖고 있는 생산적 기능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셋째, 억압에 대해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해방을 외치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메커니즘, 장치로서 기능한다. 푸코에 따르면, 결국 우리는, 첫째, 성이 억압되었다는 ‘담론’과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에로 논의의 방향을 전환해야 하며, 둘째, 억압-해방 담론의 기반을 이루는 기존의 실체적인 거시적 권력 개념 자체를 파기해야 하며, 셋째, 이른바 ‘억압’과 ‘억압-해방 담론’이 동일한 인식론적 층위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는 등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제 이른바 생물학적 ‘자연적 성’(le sexe)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인위적 구성물’로서의 구체적 인식들, 실천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성과 관련된 서구 근대의 제반 인식ㆍ실천은 ‘섹슈얼리티 장치’(le dispositif de sexualité)를 통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른바 성적 억압이라는 ‘현실’은 물론 이에 대한 각종의 저항-해방 ‘담론’을 포함하는 섹슈얼리티 장치가 분석의 주된 대상으로 드러난다. 『앎의 의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섹슈얼리티 장치의 아이러니는 우리 자신의 ‘해방’이 섹슈얼리티 장치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점이다.”
 
 



 
 
 
 
 
주체화 - 진리, 권력, 윤리를 감싸는 문제화



잘 알려진 대로, 『앎의 의지』 출간 이후 1977-1978년의 시기 동안 푸코는 ‘통치성’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윤리의 계보학으로 자신의 관심을 이동하게 된다. 통치성 혹은 생명관리정치의 문제의식은 이 시기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특히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 잘 드러나 있다. 통치성의 문제의식으로 근대권력의 탄생 및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조명한 이 시기의 강의록들은 이후 시간이 가면서 점차로 푸코의 주저에 못지않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 『감시와 처벌』과 『앎의 의지』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푸코는 부정적 효과에 집중하는 기존의 권력관을 다시금 사고하면서, 권력의 생산적 기능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지배와 자기에 대한 지배를 연결하는 통치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고, 이는 다시 1980년대 초 이후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설정, 곧 주체화에 집중하는 윤리의 계보학에 천착하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성의 역사 2, 3권인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인데, 2권은 고대 그리스에서 한 시민이 자신의 쾌락을 다루는 방식과 동일한 개인이 사회적 곧 폴리스적 자아로서 형성되는 방식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며, 3권은 그리스도교 이전 고대 초기 로마에서 있어서의 자기 배려, 곧 자기 형성의 논리가 보여주는 특징에 집중한다.
 
 
유의할 것은 이러한 ‘윤리의 계보학’에서 나타나는 ‘윤리’(éthique)가, 용어의 그리스어 어원 êthos[성격, 품성]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자기와 자기의 관계, 곧 자기 인식, 자기 지배, 자기 배려를 모두 함축하는 용어이다. 이는 푸코는 서양인으로서 자기 문화의 기원을 이루는 고대 문화에 집중한 것으로 특히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서양인의 자기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푸코에 따르면, 서양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여타의 영역과는 다른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며, 이는 다음과 같은 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너의 성적 정체성을 말해다오,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마.” 푸코는 이처럼 섹슈얼리티를 진리, 권력, 윤리가 만나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 영역으로 바라본다. 한편 유의할 것은 이때의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영역-방법론’이 시기적으로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부정하고 다음 단계로 이행해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며 상호보완적인’ 세 개의 영역들로 설정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의 영역은 이전의 영역(들)을 감싸 안고 넘어가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윤리의 계보학은 ‘윤리와 계보학’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식-권력-윤리의 고고학-계보학’이다. 푸코의 ‘윤리’는 진리와 관계하면서 철저히 정치적인 윤리 곧, 자기도야와 자기 생산의 논리이며,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의 자기 형성을 통해 자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얻게 된다.
 
 
문제화 -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는가?




이는 푸코가 전통적인 주체, 대상, 인식이라는 세 개의 개별적 실체를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라는 상관적ㆍ동시적으로 형성되는 세 개의 연관관계로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푸코는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를 통칭하여 문제화ㆍ문제설정(problématisation)이라 부르는데, 푸코는 평생에 걸친 자신의 작업이 바로 이 ‘문제화’에 대한 탐구였다고 말한다. 말년의 푸코가 이를 지칭하여 부르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ㆍ비판적 존재론’에 대한 탐구란 지식, 권력, 윤리의 영역에서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를 고고학적ㆍ계보학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탐구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결국 ‘성의 역사’ 시리즈는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라는 역사적 과정, 문제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오늘 우리 자신의 변형(transformation)을 가능케 해줄 제반 조건들에 대한 탐구’를 수행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14.06.08.


 
 
 
 
 
 

2012. 9. 30.

정치적인 퀴어, 연대의 가능성



"올 초까지만 해도 '당연하다' 내지 '필연적이다'와 같은 단어들을 남발하곤 했었다. 하지만 철학을 접한 이후(비록 전공기초 하나 수강했을 뿐이지만) 절대, 필연, 당연, 보편 같은 단어를 쉽사리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은 절대적으로 옳은 답이 존재하고 있음을 함축하고 있는 폭력적인 단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연대가 당연하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연대를 선호하고, 연대함의 의미를 '강요'하지는 않더라도 '설득'하고픈 정도의 욕심은 있다.(이러게 내 안의 파쇼를 조금씩 죽여나가고 있다.)


내게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과정은 다분히 정치적이다. 그래서 더더욱 퀴어문화축제가 그들만의, 혹은 우리만의 폐쇄적인 문화로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체화의 과정이 충분히 정치적이었으면 하고 퀴어 퍼레이드는 더욱 정치적인 무브먼트로 해석되길 바란다. 청계천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걷는 것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퀴어함이 더욱 더 뻗어나가를 기대한다. 그들만의 소수자성이 아닌 우리 모두의 소수자성이길, 이를 위해 퀴어들이 우리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소수자성을 들춰내고 이를 사회 전반 퍼뜨려주길. 그리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함께 손잡아주자. 내년 퍼레이드에서 함께, 너와 나의 소수자성을 흩뿌릴 수 있길 바라며."


- 황달(황지윤), <4인 4색. Queer Parade - 정치적인 퀴어, 연대의 가능성>, <연세>, 2012년 가을, 93호, 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