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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14.

hiener goebbels


만프레드 아이허의 ecm 2 - 현대음악
 
 
 
현대음악 레이블 ecm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만프레드 아이허는 1980년대 이후 기본적으로 재즈 위주로 운영되는 레이블 활동에서 무언가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아이허가 선택한 ‘돌파구’는 현대음악과 월드뮤직이었다. 아이허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베를린 필의 더블베이스 주자로 일했던 정통 클래식 연주자였으며, 더구나 이씨엠(ecm)이라는 명칭 자체가 ‘현대 혹은 동시대 음악 선집 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의 약자였으므로, 이러한 선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이른바 ‘월드 뮤직’의 경우에도, 이씨엠 본사가 위치한 뮌헨이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곳이며 ‘아프리카와 미국의 만남’이라는 재즈의 기원이 바로 그러하듯이 재즈와 ‘월드 뮤직’은 늘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음을 생각해볼 때 이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물론 ‘월드 뮤직’이라는 명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런 면에서 아이허는 이른바 ‘월드 뮤직을 세계화한’ 선구자들 중의 하나라는 호칭을 부여받을 만하나, 이에 대해서 다음 편인 월드 뮤직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이씨엠의 현대음악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앞서 말한 현대음악에 대한 아이허의 새로운 관심은 1984년 이씨엠 내의 현대음악 혹은 ‘유럽 클래식 음악’ 전문레이블인 ‘이씨엠 뉴 시리즈’(ecm new series)의 창설로 이어진다. 이씨엠 재즈 레이블의 발매 음반들이 평균적으로 이틀의 녹음 과정과 하루의 믹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등 기본적으로 연주의 즉흥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에 반해, ‘이씨엠 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미리 작곡된 곡의 연주를 담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자신의 작품이 발매된 작곡가들은 오늘날까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로부터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 존 애덤스(john adams),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 및 중세 12-13세기의 프랑스 작곡가로 추정되는 페로틴(pérotin) 등 수십 명에 이른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음반은 아마도 얀 가바렉(jan garbarek)과 힐리어드 앙상블(hilliard ensemble)이 크리스토발 데 모랄레스(cristóbal de morales), 페로틴 등의 곡을 연주한 베스트 셀러 <Officium>(1994) 혹은 한국의 서정적 정서에 잘 맞는 아르보 페르트의 음반들일 것이나, 국내에 조금은 덜 알려진 앨범들을 먼저 소개한다는 이번 글의 취지에 맞게 - 사실은 2007년의 국내공연, 2011년의 통영 국제음악제 공연을 통해 이전에 비해 이제 조금은 알려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 아래에서는 하이너 괴벨스로부터 시작해보자.


 
 
하이너 괴벨스 heiner goebbels

 
1952년에 태어난 하이너 괴벨스는 가히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스타 현대음악 작곡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이너 괴벨스는 올해 62세로 독일 기센주(州)의 유스투스 리비크 대학, 유로피언 그래쥬에잇 스쿨, 응용연극연구소의 교수로 재직하는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이너 괴벨스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에서 사회학과 음악학을 전공했고, 초기에는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을 위한 ‘전통적’ 현대음악 작품들을 작곡했지만, 1976년에는 SLB(Sogenanntes Linksradikales Blasorchester, 좌익 급진 취주악단)을, 1982년에는 알프레드 하르트(alfred harth),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 등과 아방가르드 록그룹 캐시버(cassiber)를 결성하여 1992년 공식 해산하기까지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하이너 괴벨스는 대략 1990년 이후로 자신만의 ‘음악극’(劇, music theater)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데, 이 ‘하이너 괴벨스 표 음악극’ 작품들이 발매된 레이블이 이씨엠이다. 이처럼 하이너 괴벨스가 현대음악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이 이씨엠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앨범을 발표하면서부터라는 점에서, 하이너 괴벨스는 ‘이씨엠 현대음악의 팻 메스니’라고 볼 수 있다.
 
 
하이너 괴벨스 위키피디어
 
 
 
 
우선 하이너 괴벨스의 주요 앨범들을 살펴보자. 하이너 괴벨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참여 앨범은 캐시버와 독집 등을 포함하여 모두 수십 여 장에 이른다.
 
 
 
이들 중 이씨엠에서 발매된 앨범은 2014년 현재 모두 9장인데, 현대음악 베스트 모음집인 selected signs iii, iv에도 하이너 괴벨스의 곡들이 실려 있어 모두 10장이 된다(iv에 실려 있는 곡들은 한스 아이슬러의 곡들을 하이너 괴벨스가 새롭게 편곡하여 앨범으로 발매된 것이다). 다음은 ecm 홈페이지의 하이너 괴벨스 앨범 전체 디스코그래피이다.
 
 
 
다음에도 하이너 괴벨스의 이씨엠 앨범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를 차례대로 살펴보자. 앨범 아래의 주소는 이씨엠 홈페이지의 해당앨범 주소이다.
 
 
 
1988. Heiner Goebbels / Heiner Müller - Der Mann im Fahrstuhl / The Man In The Elevator
 
 
 
 
이 앨번에는 아르토 린제이(arto lindsay)가 보컬 및 기타, 돈 체리(don cherry)가 보컬, 트럼펫을, 프레드 프리스(fred frith)가 기타와 베이스를 연주했으며, 하이너 괴벨스는 피아노, 신디사이저, 베이스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오늘날의 회고적 시선으로 볼 때, 이 앨범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하이너 괴벨스만의 ‘음악극’이 갖는 기본적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극이란 물론 (아마도 바그너와 브레히트의 전통을 잇는) 하이너 괴벨스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 형식으로 ‘연극과 오페라 사이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이다.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당시 동독의 작가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의 글에 곡을 붙인 것들이며, 하이너 괴벨스와 하이너 뮐러 사이의 협업은 이후로도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물론 언어와 음악, 그리고 공연이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특별한 효과를 산출하는 이러한 음악극의 시도는 그 언어, 이 경우에는 독일어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 무대에 올린 공연의 녹음이라는 점에서 공연의 영상을 보지 못하고 음악만을 듣게 되는 경우, 오히려 작품의 본령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공연의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기의 하이너 괴벨스 홈페이지 디스코그래피 부분을 보면 현재까지 8개의 디브이디 타이틀이 발매되어 있다. 여하튼 이제는 거의 전설이 된 이 전혀 새로운 양식의 43분여에 이르는 ‘하이너 괴벨스 표 현대 음악극’은 1987년 프랑크푸르트 아트록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앨범에 수록된 음원은 1988년 3월에 녹음된 것으로, 실상 캐시버 시기의 아방가르드, 재즈, 브라스, 신디사이저 음악에 현대음악적 터치와 하이네 뮐러의 시가 뒤섞인 곡이다.
 
 
 
 
 
1990. Heiner Goebbels - Hörstücke
 
 
 
 
 
역시 하이네 뮐러의 텍스트에 기반하여 작곡된 곡들로 앨범에 수록된 음원은 1984-1990년 사이의 것들이다. 역시 만족스러운 유튜브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직접 앨범을 구입하여 들어보기 바란다.
 
 
 
 
 
1991. Heiner Goebbels - SHADOW / Landscape with Argonauts
 
 
 
 
이 앨범은 ‘그림자 - 아르고선(船)의 풍경’이라는 제명을 갖고 있는데, 이전처럼 하이네 뮐러의 글,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우의 글에 곡을 붙인 작품들이 실려 있다. 1990년 2, 9, 10월에 녹음된 음원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상의 초기 앨범의 곡들을 들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유튜브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다른 앨범의 곡들을 들어보고, 그 후에 원한다면, 직접 앨범을 구입하여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아무리 음악극이라고 해도, 음악이란 백견(百見)이 불여일문(不如一聞)! 이렇게 설명만 들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유튜브를 뒤지다 적합한 소개용 동영상을 하나 찾아냈다. 오슬로 국립극장이 주관 인터내셔널 입센 상의 2012년 수상자가 다름 아닌 하이너 괴벨스인데, 오슬로 국립극장에서 올린 8분 40여초의 소개 동영상에는 하이너 괴벨스 최근 대표작들의 공연 동영상과 간단한 인터뷰가 영어 자막과 함께 담겨있다!
 
 
 
 
 
1993. Heiner Goebbels - La Jalousie, Red Run, Herakles 2, Befreiung [with Ensemble Modern, Peter Rundel]
 
 
 
 
유럽 최고의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라 할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과 함께 한 이 앨범의 음원은 1992년 5월에 녹음된 것으로, 이전 캐시버에서 같이 활동했던 크리스토프 안더스(christoph anders)가 나레이터로 참여했다. 아래 동영상은 수록곡 중 'red run(nine songs for eleven instruments)'으로 2013년 현대음악, 특히 이른바 ‘포스트미니멀리스’ 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크래쉬 앙상블(crash ensemble)의 더블린 공연 실황이다.
 
 
 
 
 
 
 
1994. Heiner Goebbels - Ou bien le débarquement désastreux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하이네 뮐러(Heiner Müller)와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의 텍스트에 하이너 괴벨스와 코라(kora) 연주자인 부바카르 제바테(boubakar djebate)가 곡을 붙인 음악극 ‘Ou bien le débarquement désastreux - Oder die glücklose Landung’는 1994년 녹음된 것이다. 참여 아티스트의 반은 서구의 아티스트들이지만, 나머지 반은 아프리카의 아티스트들이다. 하이너 괴벨스로서는 이른바 ‘월드 뮤직’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실험해본 작품이다. 아래는 수록곡 중 아름다운 코라 소리와 나레이션이 어우러지는 ‘il comprit’이다. 하이너 괴벨스가 이 앨범 이후 다시금 이씨엠에서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6년이 지난 2000년이다.
 
 
 
 
 
 
2000. Heiner Goebbels - Surrogate Cities
 
 
 
 
6년의 공백 후 발표된 이 앨범은 다음 해인 2001년 그래미상 후보로 선정되었고, 하이너 괴벨스의 작업이 이미 하나의 분명한 ‘일가’(一家)를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이 앨범은 하이너 괴벨스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며, 자신만의 분명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70분이 조금 넘는 앨범은 프랑크푸르트 시 탄생 1,200주년 및 청년독일 필하모니(Junge Deutsche Philharmonie) 창립 20주년을 맞아 작곡된 것이다. 폴 오스터(paul auster), 아일랜드의 작가 휴고 해밀턴(hugo hamilton) 그리고 하이네 밀러의 텍스트가 사용되었다. 2008년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하모니 영상으로, 원 앨범에 참여한 메조 소프라노 조슬린 b. 스미스(jocelyn b. smith)와 댄스 컴퍼니가 협연한 짧은 동영상이나 그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다음의 베를린 필하모니 홈페이지에서 등록하면, 같은 공연의 전체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아래의 동영상은 2005년 베니스에서 연주된 공연의 전체 동영상으로 1-3부 나누어져 있고, 인터뷰도 들어있으나 아쉽게도 독일어이고 자막이 없다.
 
 
 
한편 아래 하이너 괴벨스 홈페이지의 리뷰(reviews)를 클릭하면 영문으로 된 비평들을 읽을 수 있다.
 
 
 
 
 
 
 
2002. Heiner Goebbels - Eislermaterial
 
 
하이너 괴벨스의 진보적 정치 지향은 유명한데, 하이네 뮐러는 물론 베르톨트 브레히트나 이 자리에 소개되는 한스 아이슬러에게 그가 바치는 존경이 좋은 예이다.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 1898~1962)는 반파시스트 운동을 펼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브레히트의 시와 희곡에 곡을 붙인 바 있다. 구(舊)동독의 국가를 작곡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스 아이슬러 위키피디어
 
 
 
 
한스 아이슬러의 앨범들
 
 
 
 
하이너 뮐러 위키피디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위키피디어
 
 
 
 
 
전작 <surrogate cities>가 1996, 1999년에 녹음되어 2000년에 발매된 반면, 이 앨범은 1998년 10월에 녹음되어 2002년에 발매되었으므로, 사실상 두 작품은 앨범의 발매 시기만 다를 뿐 동일한 패러다임에 속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앨범은 하이너 괴벨스가 편곡한 한스 아이슬러의 곡들을 앙상블 모데른의 연주와 독일의 영화배우 요제프 비어비흘러(Josef Bierbichler)의 노래로 녹음한 것이다. 앨범에는 그 외에도 아이슬러의 목소리 샘플링, 아이슬러 실내악곡의 새로운 편곡 발췌, 미출간된 아이슬러의 현악 사중주의 일부, 최근 발견된 솔로 클라리넷을 위한 곡에 더하여, 아이슬러에 영감을 받아 자유롭게 펼쳐지는 즉흥곡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앨범의 가장 유명한 곡들은 아무래도 베르톨트 브레히트와의 협동 작업들인데,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속기(俗氣)없이 편곡ㆍ연주ㆍ녹음되어 아이슬러 음악의 정수를 성공적으로 재현한 최상의 연주라 아니 할 수 없다. 브레히트의 시에 곡을 붙인 Vier Wiegenlieder für Arbeitermütter[노동자어머니를 위한 네 개의 자장가] I-IV부만 들어보아도 앨범의 즐거운 깊이와 격조를 느낄 수 있다.
 
 
 
 
 
 
2009. Heiner Goebbels - Landschaft mit entfernten Verwandten
 
 
 
 
앨범에는 독일어 Landschaft mit entfernten Verwandten, 영어 Landscape with Distant Relatives, 프랑스어 Paysages avec parents éloignés 등으로 앨범명이 적혀있는데, 이는 ‘먼 친척과 함께 하는 풍경’ 정도로 번역 가능할 것이다. 작품은, 하이너 괴벨스에 따르면, 완전한 의미에서의 한 편의 ‘오페라’인데, 정식 명칭은 ‘솔로, 코러스, 앙상블을 위한 오페라’이다. 사용된 텍스트의 주인공들은 실로 다양하여 거트루드 슈타인, 지오르다노 브루노, 앙리 미쇼, T. S. 엘리엇,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니콜라 푸생에 이른다. 2부로 구성된 공연의 음원은 2004년 파리 가을축제 공연실황이다. 유튜브에서 2003년 파리 공연 중 29분여를 볼 수 있다.
 
 
 
한편 화질이 약간 떨어지지만 2005년 바르샤바에서 공연한 앙상블 모데른의 1시간 25분에 이르는 동영상도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12. Heiner Goebbels - Stifters Dinge [stifter's things]
 
 
 
 
2012년 작으로 상당히 최근작이다. 이 ‘음악 설치’(music installation) 작업은 전형적인 ‘하이너 괴벨스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소개를 위해 이씨엠 홈페이지의 해당 앨범 소개를 옮겨본다. “하이너 괴벨스의 가장 탁월한 작품들 중 하나. 소리, 음색, 노이즈, 목소리와 텍스트의 융합. 이 작품은 하나의 작곡, 환경, 설치 혹은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소리의 조각품일까? 작곡가는 언젠가 이 작품을해 피아니스트 없는 다섯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 배우 없는 연극, 퍼포머가 없는 퍼포먼스, 누군가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쇼’(no-man show)라고 말할 것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바흐에서, 뉴기니 원주민들의 노래, 그리스의 민속음악, 더하여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윌리엄 버로스, 그리고 맬컴 엑스 등에 이르는 다양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하나의 작품이다. 작품은 자연의 소리와 기호를 정밀히 묘사했던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낭만주의 작가 아달베르트 슈티프터(Adalbert Stifter, 1805-1868)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위키피디어
 
 
 
 
개인적으로는, 유럽에 머무를 때 타악기 그룹 페르퀴시옹 드 스트라스부르가 연주하는 하이너 괴벨스 작품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명성만큼이나 페르퀴시옹 드 스트라스부르의 연주 자체도 좋았지만, 54분에 이르는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존 케이지로부터 슈톡하우젠,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까지 수많은 현대음악 공연을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관객들이 좋아하고 흥분한 공연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일단 하이너 괴벨스의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 자체도 이미 ‘고급한’ 관객일 수밖에 없다. 거의 대부분, 음악 관계자, 특히 음대교수, 그 외 음대 대학원생들, 작가, 철학자, 연극 관계자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이런 ‘고급한’ 관객들은 일반적으로 박수에 사실은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공연 후 하이너 괴벨스가 등장하여 인사를 하는데 거의 10-20분 동안 기립 박수와 환호가 멈추질 않았다. 이런 장면은 현대음악 공연에서는, 적어도 나로서는, 처음 보는 장면이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작곡, 공연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생각이 나는 김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 공연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2000년 9월 28일 저녁에 진행된 ‘똑 같은 저녁’(Même soir)이라는 작품이었다.
 
페르퀴시옹 드 스트라스부르의 하이너 괴벨스 공연
 
 
 
 
여하튼 앨범의 분위기는 내가 본 이 공연의 분위기와, 내가 본 공연에는 연주자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거의 일치하는 전형적인 하이너 괴벨스의 작품이다. 이 곡은 2007년 스위스 로잔에서 초연되었으며, 앨범의 음원 역시 2007년 10월에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이다. 최근작인 만큼 만족스러운 동영상들을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일단 아래의 트레일러는 공연과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다음도 같은 공연의 다른 트레일러이다.
 
 
 
 
다음으로, 우선 앨범의 The Thing & The Rain을 들어보자.
 
 
 
아래에서는 화질이 좀 떨어지지만 2013년 두이스부르크 공연 실황 동영상을 30분가량 감상할 수 있다.
 
 
 
 
 
 
2014. Selected Signs III
 
 
 
 
유럽의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 중 하나인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는 2012년 겨울 이씨엠을 기리는 전시회 ‘ECM - 문화적 고고학’(ECM – A Cultural Archaeology)을 개최했는데, 이를 위해 이씨엠은 6장으로 구성되어 7시간에 이르는 플레이 타임을 갖는 이 컴파일레이션 박스세트를 통해 이씨엠 역사의 전체적 조망을 보여준다. 박스세트의 디자인 측면에서나 음악적 측면에서나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이씨엠에서 나온 앨범들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마치면서, 하이너 괴벨스와 관련된 몇 가지 자료와 쟁점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선 하이너 괴벨스의 좌파적 정치적 지향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독일어를 알 수 없는 한국의 청자들에게는 생소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이너 괴벨스의 작품에는 늘 동시대의 정치적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하이너 괴벨스가 여전히 68혁명의 자장권에 속해 있었던 70년대에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음악과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사실과도 분명한 연관관계를 갖는다. 1970년대의 프랑크푸르트대학은 68혁명 이후 기세가 한풀 꺽이긴 했어도 여전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강력한 정신적 영향 아래 위르겐 하버마스, 오토 아펠, 악셀 호네트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자들이 재직하던 시기이다. 하이너 괴벨스가 처음으로 조직했던 밴드의 이름은 ‘좌익 급진 취주악단’이었으며, 이는 각종 시위와 집회에서의 공연ㆍ연주를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목적은 ‘다양한 형식의 영역과 장르에서 일하는 다수의 참여와 협업을 통해’ 대중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음악을 알리는 동시에 음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실천적 실험이었으며, 이러한 ‘공동작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하이너 괴벨스의 작업 방식들 중 하나가 되었다.
 
 
 
아래에서는 우선 하이너 괴벨스가 실험 색소폰주자인 알프레트 23 하르트 등과 만들었고 1976-1981년 동안 활발히 활동했던 좌익 급진 취주악단의 곡을 들어보자. 1977년의 Ich bin halt die Kotze aus deiner Glotze, 그리고 1980년의 Trotz alledem이다.
 
 
 
 
 
 
하이너 괴벨스의 또 다른 음악적ㆍ정치적 자원은 한스 아이슬러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한 사람의 작품에서 수학에서 정치, 철학, 예술, 역사에 이르는 다양한 관심을 찾을 수 있다는 접근 방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이너 괴벨스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 프로파간다라는 기만적 형식 아래 모든 것의 위에서부터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 ‘예술작품 안으로 통합된 정치적인 것에 관련된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드러내줄 수 있는 표현 형식의 탐구’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이너 괴벨스의 작품은 주어진 특정 상황, 주제 혹은 배치에 대한 응답이다. 가령, 그의 Surrogate Cities는 프랑크푸르트 탄생 120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오케스트라 및 무용단과의 협연을 목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작곡 프로젝트였는데, 모든 좋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하이너 괴벨스는 이를 자신의 작업에 주어진 한계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건으로 간주하여 집단작업이라는 자신의 예술적 영역과 방법론을 확장ㆍ심화하는 연속적 실험의 한 과정으로 삼았다.
 
 
이쯤해서, 하이너 괴벨스가 좌익 급진 취주악단 이후 결성한 또 하나의 예술적ㆍ정치적 급진주의 아방가르드 록 그룹 캐시버의 음악을 들어보자. 캐시버는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고, 헨리 카우와 아트 베어스 출신의 크리스 커틀러는 물론, 좌익 급진 취주악단 시절부터 같이 해온 - 사실은 한국인 아내와 함께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한! - 알프레트 23 하르트는 이미 프로그레스브 아방가르드 팬들에게는 유명 인사이므로, 1983년의 데뷔 앨범 <man or monkey?> 발표 직전 1982년 프랑크푸르트 독일재즈페스티벌에서의 라이브를 한 곡만 들어보자. 드럼에 크리스 커틀러, 색소폰에 알레트 23 하르트, 기타에 크리스토프 안더스, 그리고 건반에 하이너 괴벨스이다.
 
 
 
 
 
 
캐시버 위키피디어
 
 
 
 
그러나 이 모든 가사와 정치적인 이야기는 당시 유럽의 상황도 프랑크푸르트학파도 앨범의 영어와 독일어 가사도 모르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당시 상황과 사상이야 당장 알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번역된 우리말 가사의 부재가 인식의 부재를 낳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나 자신이 강력히 주장해온 바로서, 현대음악에서 클래식, 록과 팝 음악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출반되는 음반의 모든 가사를 - 일본의 경우처럼 - 의무적으로 번역하여 싣는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 하이너 괴벨스와 한스 아이슬러의 음악을 오로지 음악으로 듣고, 클래시와 섹스 피스톨스의 음악을 오로지 ‘필’과 ‘감’으로 듣는다는 것은 - 그 나름의 분명한 장점마저도 넘어서는 - 심각한 무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실상 그레고리우스 성가와 베토벤, 존 케이지 혹은 비틀스와 퀸, 로리 앤더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어떤 미국인이 흥부가, 목포의 눈물, 아침이슬, 반전반핵가를, 혹은 이미자, 김광석, 서태지, 안치환의 노래 가사를 모른 채 ‘오로지 감으로, 오로지 음악적으로만’ 좋아서 듣고 또 듣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쉽게 이해가 되듯이 -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지라도 -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이 한계란 가장 중요하게는 원곡을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고 듣는 사람들이 가졌던 삶과의 밀착,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전혀 보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각자 해석해서 보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국내의 음반 수입ㆍ제작사에서 음반을 발매할 때 적절한 번역자를 찾아 번역을 하면 될 것을, 굳이 음반을 사는 고등학생, 주부들에게 슈베르트의 독일어 리트를 각자 해석하고 미스터 벙글의 영어 가사를 각자 해석하고 드뷔시 성악곡의 프랑스어 가사를 각자 해석하라는 것은 실상 그냥 음악만 듣거나, 혹은 현실적으로 네 마음대로 (엉터리로) 오해하며 들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가령 적어도 1990년대 정도부터라도 이러한 조항을 의무화하여 우리나라에 출반되는 모든 국내 라이선스 음반들에 이렇게 한글 가사가 있었다면 - 주관적인 수준 이하의 엉터리 감상문, 혹은 주례사 혹은 연애편지라고나 해야 할 사랑고백이 상당수인 음반 해설지의 폐해를 넘어 - 작가와 독자 사이의 건강한 상호작용이 일어나 듣는 청자의 오늘 음악을 대하는 태도, 따라서 청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을 것이고, 그 결과 오늘 대한민국의 음악적 풍경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국내 라이선스 음반에는 차라리 해설은 없더라도 가사를 반드시 완역하여 싣는 의무적 법규가 생기기를 바란다. 이는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오늘이라도 몇몇 국회의원의 발의를 통한 법규 혹은 조례의 제정 혹은 개정만으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 글을 읽는 뜻있는 분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 이상의 내용은 유로피언 그래듀에잇 스쿨의 하이너 괴벨스 소개를 참조했다.
 
 
 
 
* 독일어로 되어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하이너 괴벨스를 다룬 다음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아래는 이씨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음반이 출반된 대표적 공연(+동영상)들이다.
 
 
 
 
1998년. Max Black [texts by Paul Valery and others] 공연실황의 발췌
 
 
 
 
 
 
 
 
 
 
 
 
2000년. Scutigera [with Piano Circus and composer Richard Harris], Hashirigaki [texts by Gertrude Stein]. 특히 <하시리가키(はしりがき[走り書(き), 휘갈겨 쓴 것])>는 2007년 우리나라의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도 공연되었다. 기사, 음악, 공연 동영상.

 
 
 
 
 
 
 
 
 
2004년. Eraritjaritjaka [texts by Elias Canetti], 트레일러.

 
 
 
 
 
 
2007년. Songs of Wars I have seen [texts by Gertrude Stein - a commission by the London Sinfonietta and the Orchestra in the Age of Enlightenment] 연주실황

 
 
 
 
 
2008년. 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texts by Maurice Blanchot, Samuel Beckett, Franz Kafka and T. S. Elliot, with the Hilliard Ensemble] 힐러드 앙상블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스테이지 공연이다. 이 작품은 아시아 초연으로 2011년 통영음악제에서 공연되었고, 서울의 엘지아트센터에서도 공연되었다.
 
 
 

괴벨스는 내한 기간 중 ‘부재의 미학’이라는 강연도 했는데, 같은 강의의 영어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연극평론가 김형기의 공연리뷰

 
 
 
 
 
2012년. When the Mountain changed its clothing [with the Choir Carmina Slovenica], 보컬 오케스트라, 공연 동영상 발췌.

 
 
 
 
 
 
 
Europeras 1&2 [John Cage] 인터뷰, 영어자막.

 
 
 
 
 
 
2013년. Delusion of the Fury. The Harry Partch Project [The Ruhrtriennale International Festival of the Arts] 공연 발췌 + 인터뷰.

 
 
 

2014. 8. 7.

djivan gasparyan & michael brook

 
Black Rock
 
black rock, 1998
 
 
 
 
 
1. to the river
 
 
 
 
 
2. fallen star
 
 
 
3. take my heart
 
 
 
4. together forever
 
 
 
 
5. freedom
 
 
 
 
 
6. forbidden love
 
7. immigrant's song
 
 
 
 
8. dark souls
 
 
 
 
 
+
 
 
 
 
 
 
 


2014. 3. 23.

상품의 노래 - 수요와 공급



dagmar krause

http://cafe.naver.com/booheong/79659



Song of Commodity / Supply and Demand

Rice can be had down the river.
People in the remoter provinces need their rice.
If we can keep that rice off the market
Rice is bound to get dearer.
Then the men who pull the barges must go short of rice
And I shall get my rice for even less.
By the way, what is rice?


Don’t ask me what rice is.
Don’t ask me my advice.
I’ve no idea what rice is:
All I have learned is its price.


In winter time the coolies need warm clothing.
Then you must buy cotton so that
You can keep cotton off the market.
When a cold spell comes, then clothes get more expensive.
Our cotton spinning mills pay too high wages.
And cotton’s too plentiful in any case.
By the way, what is cotton?


Don’t ask me what cotton is.
Don’t ask me my advice.
I’ve no idea what cotton is:
All I have learned is its price.


Working men need too much feeding
And this makes a man’s work dearer.
To provide for his feeding you need women.
Our cooks can make a meal cheaper but look at
Those eaters making it dearer.
And we could use more men here in any case.
By the way, what is a man?


Don’t ask me what a man is.
Don’t ask me my advice.
I’ve no idea what a man is:
All I have learned is his price.


2014. 3. 4.

georges brassens


 
 
* georges brassens, 1921-1981
 

 
 
 
korea fan page -> 가나다
 
 
 
 
 
 
 
 
La mauvaise réputation
나쁜 평판 (1집-01,1952)
 

 
이곳 한적한 마을에서
난 평판이 나쁘지.
설치든, 조용히 있든
난 뭐라 말할 수 없는 그런놈이라지.
근다고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
내 꼬마의 길을 따르며 말야.
하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
자기들과 다른 길 가는 사람 말야.
아니,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
자기들과 다른 길 가는 사람 말야.
모두들 다 날 헐뜯지.
물론 벙어리는 빼고.

7월 14일에
난 포근한 침대에 누워있어.
발맞춰 행진하는 음악은
내가 알 바 아니야.
근다고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
울리는 나팔을 안듣지만 말야.
하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
자기들과 딴 길 가는 사람 말야.
아니,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
자기들과 다른 길 가는 사람 말이야.
모두 다 내게 손가락질하지.
물론 팔병신은 빼고

농부에게 쫓기는
운 나쁜 좀도둑을 지나칠 때
슬쩍 발을 걸지.
농부는 땅바닥에 넘어져 뭘찾는 꼴이야.
근다고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
사과도둑이 도망치게 내버려두며 말야.
하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
자기들과 다른 길 가는 사람 말야.
아니, 사람들은 안 좋아하지.
자기들과 다른 길 가는 사람 말야.
모두 다 내게 발길질하지.
물론 앉은뱅이는 빼고.

내게 뭔일이 닥치게 될지 점치려고
예레미야가 될 필요는 없어.
그들 입맛에 맞는 줄 찾게 되면
내 목에 걸거야.
근다고 누구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
로마로 가는 길을 안 따르며 말이야.
하나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
자기들과 다른 길 가는 사람을 말이야.
아니,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지.
자기들과 다른 길 가는 사람을 말이야.
모두 다 내가 목매이는 걸 볼거야.
물론 장님들은 빼고.

 
 
 
 
 
Le gorille  고릴라 (1-03,1952)
 
 
          


 

  
C'est à travers de larges grilles,
Que les femelles du canton,
Contemplaient un puissant gorille,
Sans souci du qu'en-dira-t-on.
Avec impudeur, ces commères
Lorgnaient même un endroit précis
Que, rigoureusement ma mère
M'a défendu de nommer ici...
Gare au gorille !...


 
수많은 고릴라 가운데서
마을 아줌마들이 별나게 바라보는 놈
,말 안 해도 알만한
우람한 고릴라 한 마리
.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수다쟁이들은 바로 '거시길' 정확히 훔쳐보고 있었다네.어머니께서 이런 자리에선 말 못하게 하시는 그것 말야.

고릴라 조심!
Un jour la porte de la prison bien close
Où vivait le bel animal
S'ouvre, on n'sait pourquoi. Je suppose
Qu'on avait du la fermer mal.
Le singe, en sortant de sa cage
Dit "C'est aujourd'hui que j'le perds !"
Il parlait de son pucelage,
Vous aviez deviné, j'espère !
Gare au gorille !..



 
잘 닫혀져 있던 우리가,그 잘생긴 동물이 살고 있던 우리가 갑자기 열리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네.
(
누가 지쳐 놓은 모양이야
)

그 고릴라는 뛰어 나오며 말했다네.
"
오늘이 바로 내가 그것을 잃는 날이야
!"

그가 말한 건 당신들도 눈치챘겠지만,그의 총각딱지!

고릴라 조심!
L'patron de la ménagerie
Criait, éperdu : "Nom de nom !
C'est assommant car le gorille
N'a jamais connu de guenon !"
Dès que la féminine engeance
Sut que le singe était puceau,
Au lieu de profiter de la chance,
Elle fit feu des deux fuseaux !
Gare au gorille !...



 
동물원 주인은 제 정신을 잃고 소리를 내질렀다네
 "아이고,큰일났네. 쟤는 아직 암컷을 모르는데."
여인네들은 고릴라가
숫총각이란 걸 알자마자,
그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네.


고릴라 조심!
Celles là même qui, naguère,
Le couvaient d'un œil décidé,
Fuirent, prouvant qu'elles n'avaient guère
De la suite dans les idées ;
D'autant plus vaine était leur crainte,
Que le gorille est un luron
Supérieur à l'homme dans l'étreinte,
Bien des femmes vous le diront !
Gare au gorille !.



 
좀 전에 대담한 눈길로
지긋이 바라보던 바로 그 여자들이 달아났다네.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말야.
그들의 걱정은 부질 없는 것이었다네:
고릴라는 포옹하는 데선
많은 여자들이 말하듯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놈이기 때문이라네
.


고릴라 조심!
Tout le monde se précipite
Hors d'atteinte du singe en rut,
Sauf une vielle décrépite
Et un jeune juge en bois brut;
Voyant que toutes se dérobent,
Le quadrumane accéléra
Son dandinement vers les robes
De la vieille et du magistrat !
Gare au gorille !...



 
모두들 발정한 고릴라한테
붙잡힐까 도망치고 쭈글쭈글한 백살 먹은 할머니와 신참내기 판사님만 남았다네
.

모두 빠져나간 걸 보고
네 손 달린 놈은 뒤뚱뒤뚱
할머니와 판사님의 옷자락을 향해 곧장 뛰어갔다네
.


고릴라 조심!
"Bah ! soupirait la centenaire,
Qu'on puisse encore me désirer,
Ce serait extraordinaire,
Et, pour tout dire, inespéré !" ;
Le juge pensait, impassible,
"Qu'on me prenne pour une guenon,
C'est complètement impossible..."
La suite lui prouva que non !
Gare au gorille !...



 
할머니는 한숨지으며 말했다네.
"
아이고, 나하고 하고 싶어하는 놈이 있네
! 별일 다 보겠네. 진짜 놀랠 '노'자네!"

판사님은 차분하게 생각했다네.
"
저 털보가 날 암컷으로 볼 리는 없지
..."

이게 아니란 걸 보게 될 거야.

고릴라 조심!
Supposez que l'un de vous puisse être,
Comme le singe, obligé de
Violer un juge ou une ancêtre,
Lequel choisirait-il des deux ?
Qu'une alternative pareille,
Un de ces quatres jours, m'échoie,
C'est, j'en suis convaincu, la vieille
Qui sera l'objet de mon choix !
Gare au gorille !...



 
생각해 보시오. 여러분들이
고릴라처럼 판사님과 할머니 중 하나를 덮친다면
누굴 고르겠소
?

내가 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당장에 골라야 한다면 나의 선택대상은
확신컨대 할머니겠소
!


고릴라 조심!
Mais, par malheur, si le gorille
Aux jeux de l'amour vaut son prix,
On sait qu'en revanche il ne brille
Ni par le goût, ni par l'esprit.
Lors, au lieu d'opter pour la vieille,
Comme l'aurait fait n'importe qui,
Il saisit le juge à l'oreille
Et l'entraîna dans un maquis !
Gare au gorille !...



 
하지만 불행하게도 고릴라는
사랑의 유희에 할만큼 하는 녀석이지만
,취향이나 생각에선 별볼일 없는 놈이라오. 고릴라가귀를 잡고 숲속으로 끌고 간 거은 할머니가 아니라, 우리의 판사님! 사실은 누구라도 누구라도 그렇게 하겠지만!


고릴라 조심!
La suite serait délectable,
Malheureusement, je ne peux
Pas la dire, et c'est regrettable,
Ça nous aurait fait rire un peu ;
Car le juge, au moment suprême,
Criait : "Maman !", pleurait beaucoup,
Comme l'homme auquel, le jour même,
Il avait fait trancher le cou.
Gare au gorille !...
그 다음에 즐거운 일이 벌어졌겠지만,불행하게도, 난 말할 수 없네유감천만!
분명 우리는 크게 소리 내어 웃었을 거네.
판사님이 절정에 이르러서는
"엄마!" 소리를 지르며 펑펑 울었거든! 바로 그 판사님이
오늘 아침에 교수형에 처한
그 사람처럼
.


고릴라 조심!
 


 
* 프랑스에서는 사형제도가 1981년 가을, 의회의 결정으로 폐지되었다.
 
 
 
 
 
 

 

 

 


옛 시절의 귀부인들을 위한 발라드

 Ballade des dames du temps jadis

1952
 
François Villon
1431-1463
 

      

Dictes moy où, n’en quel pays,Est Flora, la belle Romaine ;
Archipiada, ne Thaïs,
Qui fut sa cousine germaine ;
Echo, parlant quand bruyt on maine
Dessus rivière ou sus estan,
Qui beauté eut trop plus qu’humaine ?
Mais où sont les neiges d’antan !

말해다오, 지금 어디 갔을까?로마의 미녀 플로라,
알키피아데스, 그녀만큼 아름다웠던 타이스,
강물 위나 연못 위로 부를 때마다 언제나 대답하는,
인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지닌 에코는?
그런데 지난 해 내린 눈은 어디로 갔을까?



La royne Blanche comme ung lys,
Qui chantoit à voix de sereine ;
Berthe au grand pied, Bietris, Allys ;
Harembourges, qui tint le Mayne,
Et Jehanne, la bonne Lorraine,
Qu’Anglois bruslèrent à Rouen ;
Où sont-ilz, Vierge souveraine ?
Mais où sont les neiges d’antan !

어디 갔을까, 저 슬기롭던 엘로이즈는?
그녀 때문에 피에르 아벨라르는 거세되었고
후에 생 드니의 수도승이 되었네.
이 불행은 사랑 때문이니.
그래, 어디 갔을까?
뷔리당을 자루에 넣어 센 강에 던지도록 했던 그 여왕은?
그런데 지난 해 내린 눈은 어디로 갔을까?

인어의 목소리로 노래하던
백합처럼 희었던 왕후 블랑슈,
발이 큰 베르트 왕비, 베아트리스, 아엘리스,
멘을 다스렸던 에람베,
그리고 영국인이 루앙에서 화형시킨
로렌의 처녀 잔 다르크,
그녀들은 어디 갔을까? 성모 마리아여.
그런데 지난 해 내린 눈은 어디로 갔을까?
 
 
Prince, n’enquerrez de sepmaine
Où elles sont, ne de cest an,
Qu’à ce refrain ne vous remaine :
Mais où sont les neiges d’antan ?
님이여, 이 주에도, 이 해에도,
그녀들이 어디로 갔는지 물으신다면,
이 몸은 이 후렴을 되풀이할 뿐이외다.
그런데 지난 해 내린 눈은 어디로 갔을까?
 




 

 



벤치의 연인들
(2,1953)

Les gens qui voient de travers
Pensent que les bancs verts
Qu'on voit sur les trottoirs
Sont faits pour les impotents ou les ventripotents
Mais c'est une absurdité
Car à la vérité
Ils sont là c'est notoire
Pour accueillir quelque temps les amours débutants


















곁눈으로 흘겨보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길가에 있는
푸른색의 벤치가 불구자나
배뚱뚱이를 위한 거라고 말야
.그건 말도 안돼.사실은, 그건 누구나 다 알다시피,이제 막 연인이 된 이들을 맞기 위한 거야.


 
[Refrain]
Les amoureux qui s'bécott'nt sur les bancs publics
Bancs publics, bancs publics
En s'fouttant pas mal du regard oblique
Des passants honnêtes
Les amoureux qui s'bécott'nt sur les bancs publics
Bancs publics, bancs publics
En s'disant des "Je t'aime" pathétiques
Ont des p'tit's gueul' bien sympatiques
[후렴]
벤치에서 키스하는 연인들은
벤치의, 벤치의 연인들은
존경하는 통행인들의
곁눈질엔 아랑곳 하지 않는다네
.벤치에서 키스하는 연인들은
벤치의, 벤치의 연인들은
정열적으로 "사랑해"를 연발한다네
.정말 호감이 가는 작은 입들을 가지고 있다네!


 
Ils se tiennent par la main
Parlent du lendemain
Du papier bleu d'azur
Que revêtiront les murs de leur chambre à coucher
Ils se voient déjà doucement
Ell' cousant, lui fumant
Dans un bien-être sûr
Et choisissent les prénoms de leur premier bébé
연인들은 서로 손을 맞잡고,장래를 이야기 하지.침실의 벽을 장식할
쪽빛의 벽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
...벌써부터 느긋하게 그려본다네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바느질하고 담배 피는 모습을 말야
.그리곤 첫 아기의 이름을 지어 본다네...


 
Quand la saint' famill' machin
Croise sur son chemin
Deux de ces malappris
Ell' leur décoche hardiment des propos venimeux
N'empêch' que tout' la famille
Le pèr', la mèr', la fille
Le fils, le Saint Esprit
Voudrait bien de temps en temps pouvoir s'conduir' comme eux
성 가족 거시기는
산책 길에 이 버르장머리 없는
연놈들을 마주쳐 지나가며
,대놓고 신랄한 말투로 쏘아 붙인다네
...그래도 온 가족은
(엄마, 아빠, , 아들, 성령은
...)이따금 이 연인들처럼 한번
해봤으면 하고 바란다네
.



 

Quand les mois auront passé
Quand seront apaisés
Leurs beaux rêves flambants
Quand leur ciel se couvrira de gros nuages lourds
Ils s'apercevront émus
Qu' c'est au hasard des rues
Sur un d'ces fameux bancs
Qu'ils ont vécu le meilleur morceau de leur amour

여러 달이 지나고,이들의 불타는, 아름다운 꿈들이
누그러뜨려질 때면
,하늘에 묵직한 먹구름이 덮힐 때면,이들은 감격하며 깨닫게 될 거네.
오가는 길가의
이 이름난 벤치에서
자신들의 가장 멋진 사랑을 체험했다는 걸 말야
...
 


 



Il n'y a pas d'amour heureux
- Louis Aragon
1953   

행복한 사랑은 없다
- 루이 아라공

 

            
   Rien n'est jamais acquis à l'homme Ni sa force
Ni sa faiblesse ni son coeur Et quand il croit
Ouvrir ses bras son ombre est celle d'une croix
Et quand il croit serrer son bonheur il le broie
Sa vie est un étrange et douloureux divorce
Il n'y a pas d'amour heureux

인간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힘도 그의 허약함도 그의 마음까지도
그는 두 팔을 벌린다고 하는데

그 그림자는 십자가의 모습이다
행복을 꽉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행복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기이하고 고통스런 투쟁이다
행복한 사랑은 없다 

Sa vie Elle ressemble à ces soldats sans armes
Qu'on avait habillés pour un autre destin
A quoi peut leur servir de se lever matin
Eux qu'on retrouve au soir désoeuvrés incertains
Dites ces mots Ma vie Et retenez vos larmes
Il n'y a pas d'amour heureux 
 
인간의 삶,

그것은 무장 해제된 병사들과 흡사하다
또 다른 운명을 위해 군복을 입은 병사들
그들이 아침에 일어난들 무슨 소용인가
저녁이면 할 일도 확신도 없는 그 모습

다시 보게 될 것인데
<내 삶이여>,

이렇게 읊조리며 눈물을 삼켜라
행복한 사랑은 없다
 

Mon bel amour mon cher amour ma déchirure
Je te porte dans moi comme un oiseau blessé
Et ceux-là sans savoir nous regardent passer
Répétant après moi les mots que j'ai tressés
Et qui pour tes grands yeux tout aussitôt moururent
Il n'y a pas d'amour heureux


내 아름다운 사랑이여

내 소중한 사랑이여

내 찢어진 상처여
나는 너를 상처 입은 새처럼 보듬어 안는다
사람들은 별 생각 없이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엮은 말들을 따라한다
너의 그 커다란 두 눈 앞에서는

즉시 무의미하게 되어버릴 그 말들을
행복한 사랑은 없다 
  


Le temps d'apprendre à vivre il est déjà trop tard
Que pleurent dans la nuit nos coeurs à l'unisson
Ce qu'il faut de malheur pour la moindre chanson
Ce qu'il faut de regrets pour payer un frisson
Ce qu'il faut de sanglots pour un air de guitare
Il n'y a pas d'amour heureux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
하나 된 우리의 마음은 어둠 속에서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하는가
가장 작은 노래 하나를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불행이 필요한 것인가
한 순간의 전율을 얻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회한이 필요한 것인가
하나의 기타 선율을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흐느낌이 필요한 것인가
행복한 사랑은 없다

  
Il n'y a pas d'amour qui ne soit à douleur
Il n'y a pas d'amour dont on ne soit meurtri
Il n'y a pas d'amour dont on ne soit flétri
Et pas plus que de toi l'amour de la patrie
Il n'y a pas d'amour qui ne vive de pleurs
Il n'y a pas d'amour heureux
Mais c'est notre amour à tous les deux
     

 

고통스럽지 않은 사랑은 없다
상처받지 않는 사랑은 없다
시들지 않는 사랑은 없다
너에 대한 사랑이든

조국에 대한 사랑이든
눈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랑은 없다
행복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둘의 사랑이다 

 
 

 


 

La mauvaise herbe
잡초
1954
    
 Chanson pour l'Auvergnat
오베르뉴 사람에게 바치는 노래

1954
 
 

        
Elle est à toi cette chanson
Toi l'Auvergnat qui sans façon
M'as donné quatre bouts de bois
Quand dans ma vie il faisait froid
Toi qui m'as donné du feu quand
Les croquantes et les croquants
Tous les gens bien intentionnés
M'avaient fermé la porte au nez
Ce n'était rien qu'un feu de bois
Mais il m'avait chauffé le corps
Et dans mon âme il brûle encore
A la manièr' d'un feu de joie.


이 노래는 당신께 바치는 노래입니다
내가 추위에 떨고 있을 때
오베르뉴 사람, 당신은 아무런 격식 없이
나에게 장작 몇 개를 주었지요
농부들과 배려심 많다는 모든 사람들이
내 코 앞에서 문을 닫아버렸을 때
당신은 나에게 불을 건네준 것이지요
그것은 단지 작은 장작불에 불과하지만
그것은 내 몸을 덥혀주었죠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는 지금도 그것은
기쁨의 불이 되어 여전히 타오르고 있지요

  


Toi l'Auvergnat quand tu mourras
Quand le croqu'mort t'emportera
Qu'il te conduise à travers ciel
Au père éternel

 
오베르뉴 사람, 당신, 당신이 죽어
장의사가 당신을 데려갈 때
하늘 저 넘어 영원한 아버지에게
당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Elle est à toi cette chanson
Toi l'hôtesse qui sans façon
M'as donné quatre bouts de pain
Quand dans ma vie il faisait faim
Toi qui m'ouvris ta huche quand
Les croquantes et les croquants
Tous les gens bien intentionnés
S'amusaient à me voir jeûner
Ce n'était rien qu'un peu de pain
Mais il m'avait chauffé le corps
Et dans mon âme il brûle encore
A la manièr' d'un grand festin.

이 노래는 당신께 바치는 노래입니다
내가 굶주림에 허기져 있을 때
주막집 여인 당신은 아무런 격식 없이
나에게 빵 몇 조각을 주었지요
농부들과 배려심 많다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굶어 죽는 것을 보며 즐거워 할 때
나에게 빵 상자를 열어 주었지요
그것은 약간의 빵일 뿐이지만
그것은 내 몸을 덥혀주었죠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는 지금도 그것은
거대한 진수성찬으로 여전히 타오르고 있지요

  
Toi l'hôtesse quand tu mourras
Quand le croqu'mort t'emportera
Qu'il te conduise à travers ciel
Au père éternel

오베르뉴 사람, 당신, 당신이 죽어
장의사가 당신을 데려갈 때
하늘 저 넘어 영원한 아버지께
당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Elle est à toi cette chanson
Toi l'étranger qui sans façon
D'un air malheureux m'as souri
Lorsque les gendarmes m'ont pris
Toi qui n'as pas applaudi quand
Les croquantes et les croquants
Tous les gens bien intentionnés
Riaient de me voir emmener
Ce n'était rien qu'un peu de miel
Mais il m'avait chauffé le corps
Et dans mon âme il brûle encore
A la manièr' d'un grand soleil
이 노래는 당신께 바치는 노래입니다
경찰들이 나를 체포해 갈 때
농부들과 배려심 많다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잡혀가는 것을 보며 웃고 있는데
이방인인 당신은 아무런 격식 없이
딱하다는 모습으로 나에게 미소를 보내 주었죠
그것은 약간의 꿀처럼 달콤한 것에 불과지만
그것은 내 몸을 덥혀주었죠
그리고 내 마음 속에서는 지금도 그것은
거대한 태양처럼 여전히 타오르고 있지요  


Toi l'étranger quand tu mourras
Quand le croqu'mort t'emportera
Qu'il te conduise à travers ciel
Au père éternel
 
이방인인 당신, 당신이 죽어
장의사가 당신을 데려갈 때
하늘 저 넘어 영원한 아버지에게
당신을 인도해 주시기를
 








빅토르 위고, 수녀의 전설
georges brassens 1956
barbara 1960
https://blog.naver.com/3504kim/220781434553 

poeme 1828
https://fr.wikisource.org/wiki/Odes_et_Ballades/La_L%C3%A9gende_de_la_nonne

 


 
Le Verger du roi Louis
루이왕의 정원
1960




 친구들 먼저
Les Copains d'abord
1964







 Vénus callipyge
엉덩이가 아름다운 비너스 1964
 
 
 
 
 
 
 Supplique pour être enterré à la plage de Sète
 세뜨 해변에 묻어다오
(9-01,1966)
 
 
 


 

 

La Camarde qui ne m'a jamais pardonné,
D'avoir semé des fleurs dans les trous de son nez,
Me poursuit d'un zèle imbécile.
Alors cerné de près par les enterrements,
J'ai cru bon de remettre à jour mon testament,
De me payer un codicille.



Trempe dans l'encre bleue du Golfe du Lion,
Trempe, trempe ta plume, ô mon vieux tabellion,
Et de ta plus belle écriture,
Note ce qu'il faudra qu'il advint de mon corps,
Lorsque mon âme et lui ne seront plus d'accord,
Que sur un seul point : la rupture.





Quand mon âme aura pris son vol à l'horizon,
Vers celle de Gavroche et de Mimi Pinson,
Celles des titis, des grisettes.
Que vers le sol natal mon corps soit ramené,
Dans un sleeping du Paris-Méditerranée,
Terminus en gare de Sète.







Mon caveau de famille, hélas ! n'est pas tout neuf,
Vulgairement parlant, il est plein comme un œuf,
Et d'ici que quelqu'un n'en sorte,
Il risque de se faire tard et je ne peux,
Dire à ces braves gens : poussez-vous donc un peu,
Place aux jeunes en quelque sorte.






Juste au bord de la mer à deux pas des flots bleus,
Creusez si c'est possible un petit trou moelleux,
Une bonne petite niche.
Auprès de mes amis d'enfance, les dauphins,
Le long de cette grève où le sable est si fin,
Sur la plage de la corniche.




C'est une plage où même à ses moments furieux,
Neptune ne se prend jamais trop au sérieux,
Où quand un bateau fait naufrage,
Le capitaine crie : "Je suis le maître à bord !
Sauve qui peut, le vin et le pastis d'abord,
Chacun sa bonbonne et courage".




Et c'est là que jadis à quinze ans révolus,
A l'âge où s'amuser tout seul ne suffit plus,
Je connu la prime amourette.
Auprès d'une sirène, une femme-poisson,
Je reçu de l'amour la première leçon,
Avalai la première arête.




Déférence gardée envers Paul Valéry,
Moi l'humble troubadour sur lui je renchéris,
Le bon maître me le pardonne.
Et qu'au moins si ses vers valent mieux que les miens,
Mon cimetière soit plus marin que le sien,
Et n'en déplaise aux autochtones.




Cette tombe en sandwich entre le ciel et l'eau,
Ne donnera pas une ombre triste au tableau,
Mais un charme indéfinissable.
Les baigneuses s'en serviront de paravent,
Pour changer de tenue et les petits enfants,
Diront : chouette, un château de sable !




Est-ce trop demander :

sur mon petit lopin,
Planter, je vous en prie une espèce de pin,
Pin parasol de préférence.
Qui saura prémunir contre l'insolation,
Les bons amis venus faire sur ma concession,
D'affectueuses révérences.






Tantôt venant d'Espagne et tantôt d'Italie,
Tous chargés de parfums, de musiques jolies,
Le Mistral et la Tramontane,
Sur mon dernier sommeil verseront les échos,
De villanelle, un jour, un jour de fandango,
De tarentelle, de sardane.








Et quand prenant ma butte en guise d'oreiller,
Une ondine viendra gentiment sommeiller,
Avec rien que moins de costume,
J'en demande pardon par avance à Jésus,
Si l'ombre de sa croix s'y couche un peu dessus,
Pour un petit bonheur posthume.






Pauvres rois pharaons, pauvre Napoléon,
Pauvres grands disparus gisant au Panthéon,
Pauvres cendres de conséquence,
Vous envierez un peu l'éternel estivant,
Qui fait du pédalo sur la plage en rêvant,
Qui passe sa mort en vacances.








자신의 콧구멍에 꽃씨 뿌린 날
용서치 않았던 내 친구, 죽음이
나를 어리석은 열성으로 쫓네
.

이제, 무덤으로 완전히
에워 싸였나니,
내 유언장을 빛을 보게 하고
추가로 몇 마디 적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네
.








적셔라, 리용 만()의 푸른 잉크에
적셔라, 너의 깃털을, 나의 늙은 공증인이여
.그리고 가장 멋진 필체로,내 혼과 몸이 단 한 가지,

단절이라는 것말고는
더 이상 공통점이 없어질 때,
내 육신이 사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적어 두기를.  







슈와 미미 팡송의 수평선으로
거리 소년과 소녀들의 수평선으로
내 혼이 날아갈 때
자연의 태양을 향해 내 몸이
파리-지중해간 침대차에 실려
종착지 세뜨 역으로

되돌아가게 하라.






내 가족 지하 매장터는
아쉽게도 전혀 새 것이  아니네.
속되게 말해,
그건 콩나물 시루처럼 가득 찼네.
하여 여기서 누구 하나
일어나지 않으면
너무 늦을지도 모르지만
,

이 사람들에게 난
"거기 날 위해 한 자리
만들어주오"
라고 말할 수 없네.






바닷가에 바로,
푸른 파도가 두 걸음 떨어진 곳에
되도록 이면 푹신한 구덩이를
,

아담하고 예쁜 벽감을 파다오.
어린 시절 내 친구였던
돌고래 곁에
고운 모래가 길게 늘어진

펼쳐진 곳에






꼬르니슈의 해변에.
화를 내는 순간에조차
포세이돈이 너무 건방지게 
 굴지 않는 바닷가에,
배가 가라 앉아도 선장이
"선장이다. 자기 목숨 각자 알아서! 포도주와 파스티스를 먼저!
각자 큰 술병 들고 용기를 내!"
라고 외치는 곳에.







옛날 그곳에서 15살 때,
혼자 노는데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한 난 처음으로 첫사랑을 알았지.
바다의 요정, 인어 곁에서
난 연애 수업을 처음 받았고
처음으로 생선가시를 삼켰지
.






폴 발레리에게 경의를,
보잘 것 없는 음유 시인인 내가
한술 더 떠도,
마음 좋은 거장은
날 용서하겠지.
그의 시가 내 것보다
더 나을지라도
내 무덤만은 그의 무덤보다

더 바다에 가까이 있을 거라네.
이곳 토박이들에겐
실례가 되겠지만.




하늘과 물 사이에 낀
이 무덤은
좋은 경치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을 것이네.
말할 수 없는 매력이 될 것이네.
해수욕객들은
병풍 삼아
이곳에서 옷을 갈아 입을 것이고, 아이들은
"여기 봐라! 모래성이다!"

고 외칠 것이네.




과분한 요구는 아니겠지!
내 조그만 봉분 위에,
부탁컨대,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이왕이면 땡볕을 막아주는
소나무를 심어,
이 나무가
내 묘를 찾아와
다정히 인사를 건네는
옛 친구들이
그을리지 않게 하게 하라
.





더러는 스페인에서,
더러는 이탈리아에서 불어오는,
향기를, 즐거운 음악을 싣고 오는,뒤바람과 산바람이
내 마지막 단잠에
하루는 목가를,

하루는 판당고를,
하루는 타란텔라를,
하루는 사르단을
울려 쏟아낼 것이네.






그리고 물의 요정이
내 언덕을 베개 삼아
거의 벗다시피 한 채
귀엽게 잠에 들 때
,

내 십자가의 그림자가
잠시 그 위로 누워
죽은 뒤에 조그만 기쁨을 
 누릴지라도
예수가 너그러이

봐주길 바라네.







가련한 파라오 왕들!
가련한 나폴레옹!
판테옹에 매장된 채 사라진 
가련한 위인들!
이름난 인물들의 가련한 유골들!
그대들은
파도에 실려 꿈꾸며
페달로 보트 타는,
죽음을 휴가처럼 보내는,
영원한 피서객을
조금은 부러워 하리라.






 
 
 
 
 
 
 


 Fernande 페르낭드

11집, 1972

 
 
 


나이먹은 소년의 기벽처럼
내게, 나에게 쓸쓸함을 달래는
버릇이 있었지. 이 같은
노래 가락에 맞춰 말야:

* 페르낭드를 생각하면
불끈 서지, 불끈 서지.
펠리시를 생각해도
마찬가지로 서지.
레오노르를 생각해도,
어쩌나, 또 서지.
하지만 룰루를 생각하면,
그땐 더 이상 서지 않아.
불끈 서지 못하는 걸,
아빠, 어찌 할 수 없어요.


이 가락은 남아를 위한 소악장.
씩씩한 교송성가처럼
꿋꿋한 보초병의 초소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되지:


울적함을 달래려고,
덜 생기 없는 삶을 보려고,
탐조탑위에서 경계를 서며,
등대지기처럼 노래를 부르지:


저녁 기도를 마치고,
어딘가 우울해지면,
신학도처럼 노래 부르지.
무릎 꿇고 간이제단 앞에서 말야:


언젠가, 에뜨왈으로 난
불길을 살리려 간 적이 있지.
눈물이 나도록 감동된 채,
난 낯선 병사의 소를를 들었지:


몸에 좋은 이 노래에
한 마디 덧붙여 마무리 짓자면,
독신자들이여, 이 노래를
애국가로 만들지어다.




Mourir pour des idées
이념을 위해 죽는 것
(11집, 1972)  
 
 
 

 

이념을 위해 죽는 것,
생각은 대단한 거지.
, 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죽음 면했네.
그걸 가졌던 사람들은,
짓누르는 듯한 무리들은
모두 죽음을 울부짖으며

내 위로 쓰러졌네.
그래 그들은 날 설득했고,
내 무례했던 뮤즈는
제 과오를 버리고

그들의 믿음에 가담했네.


그렇지만 조그만 단서를 하나만 달자.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천천히,좋아,
하지만 천천히."
머무적거리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또 가는 길에 빈둥거리며, 저 세상으로 가자.
너무 속력을 내다보면,
이튿날엔 안 통하는 이념을 위해
죽게 되는 경우가 있거든.


그래 쓰라린, 가슴 아픈 일이 있다면,
신에게 혼을 되돌려준 뒤라도
길을 잘못 들었다고,
잘못된 이념에 빠졌다고 인정하는 게 좋아.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천천히,좋아,
하지만 천천히.
순교를 설파하는,
황금 빛 입*'성스러운 사람들'
더구나 대개는 이곳 낮은 데에서 꾸물거리지
.



이념을 위해 죽는 것
-다시 한번 말해 두는데-
그건 그들 삶의 이유야.
그들은 그걸 포기하지 않지.
그래 거의 모든 종파에서
곧 므두셀라보다
더 오래 살게 될 사람을 우리는 보게 되지
.

난 그들이 나직이
다음처럼 말해야 한다고 결론짓지:
 

"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천천히, 좋아,
하지만 천천히."

유명한 희생을 요구하는 이념을,
온갖 종류의 종파들은 줄줄이 내놓지.


그럼 풋내기 희생자는 묻게 되지:
이념을 위해 죽는 건 정말 좋은 일인데,
어떤 이념?
그리고 모두들 서로 비슷해서,
그들이 큰 깃발을 들고 오는 걸 보면,
분별 있는 사람은 멈칫하며, 무덤을 돌아갈 거야.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천천히,
좋아, 하지만 천천히.
황소 백 마리의 산 제물로 몇 번 충분하여,
결국 모든 게 바뀌고, 모든 게 정돈된다면야!


그 많은 <위대한 전야>,
그 많은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면,
우린 벌써 지상 낙원에 살고 있어야 하는데.
하지만 황금 시대는 끊임없이 무기한 미뤄지고,
신들은 늘 목 말라 하고, 물릴 줄 모른다네.
그리고 늘 다시 시작하는 건 죽음이야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천천히,
좋아, 하지만 천천히.

선동자들이여,
잘난 전도자들이여,그대들 먼저 가오,
우리가 그대들에게 양보하리라.


하지만
 부디 딴 사람들은 살게 내버려 두오!
목숨은 이들이 이 땅에서 가진 하나뿐인 사치라오.
나중에 저승사자가 몸소 알아서 신경 쓸 테니
사람들이 일부러 낫을 쥘 필요 없는 것이오
.

단두대 주변의 죽음의 춤이 더 이상 없길!


이념을 위해 죽자, 좋아,
하지만 천천히, 좋아, 하지만 천천히.
 
 
 
 
 
 

*
황금 빛 입 = 황금 입의 성스러운 쟝 ,

Saint Johnnes Chrysotomos,

그리스 정교,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334/54-407), 
 설교가 뛰어나 황금 입이란 별명이 붙음.
불관용(처녀성유지, 재혼금지,syneisaktentum의 불인 등)으로 유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