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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8.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초고]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 미셸 푸코(1926-1984)의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





‘성의 역사’ 시리즈는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으나 푸코의 사망으로 3권까지만 출간되었다. 1976년 출간된 성의 역사 시리즈 1권 『앎의 의지』의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나머지 다섯 권의 리스트가 실려 있다. 2권 『살과 육체』, 3권 『어린이 십자군』, 4권 『여자, 어머니, 히스테리 환자』, 5권 『성도착자』, 6권 『인구와 인종』. 그리고 『앎의 의지』의 본문에서 푸코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위해 『진리의 권력』이라는 책을 내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발간된 것은 푸코가 사망하던 해인 1984년 발간된 2, 3권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뿐이며, 이마저도 원래의 예고와는 전혀 다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기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1권과 2, 3권의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적 격차가 있으며, 이 시기 동안 성의 역사 시리즈는 물론 어떤 책도 발간되지 않았다. 이 8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의 역사’에 관련된 몇 가지 논점들




우선 몇 가지 기초적 사실의 확인과, 그에 이어지는, 기본적 논점의 확립을 통해, 부정적으로는 대중의 오해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 긍정적으로 논의의 초점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연구자들 사이에는 푸코의 이 ‘침묵’이 단절인가 연속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하지만 이 8년이라는 ‘침묵’의 시기 동안 푸코는 단지 저서를 내놓지 않았을 뿐, 각종 논문, 강연, 세미나 그리고 콜레주 프랑스 강의 등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더 활발히 글들을 발표했다. 두 번째로, 실제로 발간된 ‘성의 역사’ 1~3권 중 1976년에 발표된 1권과 1984년 발간된 2, 3권의 관계설정이라는 문제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연구자들 사이에 크게 보아 단절을 강조하는 학자들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학자들로 나뉘어져 왔으나,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단절도 연속도 아닌 ‘포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간단히 논의하도록 하자.



 
 
 
 
앎의 의지 - 섹슈얼리티라는 권력 장치
 
 
 
다음으로 푸코의 사유 내에서 『앎의 의지』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이 있다. 동성애자였던 푸코는 대략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이후 자신이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고자 시도한다. 1980년 이후의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신의 사유를 지식, 권력, 윤리라는 세 가지 영역을 고고학과 계보학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으로 조명한 것으로 요약한다. 이는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시기를 낳는다. 우선 1960년대에 걸쳐있는 ‘지식의 고고학’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의 대표작들은 『말과 사물』(1966)과 『지식의 고고학』(1969)이다. 1970년 초에 시작되는 ‘권력의 계보학’의 시기는 『담론의 질서』(1970), 『감시와 처벌』(1975)로 대표된다. 마지막 ‘윤리의 계보학’의 시기에는 1976~1984년에 이르는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이 포함된다.
 
 
 
푸코가 말년에 개진한 회고적 분류에 따르면, ‘성의 역사’ 시리즈는 모두 ‘윤리의 계보학’에 속하나, 실상 1976년에 발간된 『앎의 의지』는 오히려 ‘권력-지식’, 곧 권력의 계보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바라본 작품이다. 푸코는 자신의 질문이 ‘왜 우리가 억압받고 있는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이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동시대의 지배적 관점, 곧 빌헬름 라이히로 대변되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이다. 푸코에 따르면,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공히 ‘억압’된 진실과 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억압-해방’의 담론에 기초하고 있다. 푸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 혹은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섹스의 억압은 정말로 자명한 사실일까?’라는 역사적 질문. 둘째, ‘권력의 메커니즘은 실제로 억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라는 역사-이론적 질문. 셋째, ‘억압의 시대와 억압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시대 사이에는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할까?’라는 역사-정치적 질문.
 
 
 
이 질문들이 잘 알려주듯이, 『앎의 의지』는 기본적으로 그 전 해에 발간된 『감시와 처벌』의 ‘권력 계보학’을 이어받아 그 논의를 심화시키고 난점을 보완하면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책이다. 푸코는 앞서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출한다. 첫째, 실제의 서구 근대의 역사는 오히려 성에 관한 담론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이는 성이 억압된 적이 ‘없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둘째, 억압, 금지 등 권력의 부정적 기능을 통해서만 권력을 바라보는 것은 권력이 갖고 있는 생산적 기능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셋째, 억압에 대해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해방을 외치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메커니즘, 장치로서 기능한다. 푸코에 따르면, 결국 우리는, 첫째, 성이 억압되었다는 ‘담론’과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에로 논의의 방향을 전환해야 하며, 둘째, 억압-해방 담론의 기반을 이루는 기존의 실체적인 거시적 권력 개념 자체를 파기해야 하며, 셋째, 이른바 ‘억압’과 ‘억압-해방 담론’이 동일한 인식론적 층위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는 등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제 이른바 생물학적 ‘자연적 성’(le sexe)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인위적 구성물’로서의 구체적 인식들, 실천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성과 관련된 서구 근대의 제반 인식ㆍ실천은 ‘섹슈얼리티 장치’(le dispositif de sexualité)를 통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른바 성적 억압이라는 ‘현실’은 물론 이에 대한 각종의 저항-해방 ‘담론’을 포함하는 섹슈얼리티 장치가 분석의 주된 대상으로 드러난다. 『앎의 의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섹슈얼리티 장치의 아이러니는 우리 자신의 ‘해방’이 섹슈얼리티 장치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점이다.”
 
 



 
 
 
 
 
주체화 - 진리, 권력, 윤리를 감싸는 문제화



잘 알려진 대로, 『앎의 의지』 출간 이후 1977-1978년의 시기 동안 푸코는 ‘통치성’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윤리의 계보학으로 자신의 관심을 이동하게 된다. 통치성 혹은 생명관리정치의 문제의식은 이 시기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특히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 잘 드러나 있다. 통치성의 문제의식으로 근대권력의 탄생 및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조명한 이 시기의 강의록들은 이후 시간이 가면서 점차로 푸코의 주저에 못지않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 『감시와 처벌』과 『앎의 의지』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푸코는 부정적 효과에 집중하는 기존의 권력관을 다시금 사고하면서, 권력의 생산적 기능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지배와 자기에 대한 지배를 연결하는 통치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고, 이는 다시 1980년대 초 이후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설정, 곧 주체화에 집중하는 윤리의 계보학에 천착하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성의 역사 2, 3권인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인데, 2권은 고대 그리스에서 한 시민이 자신의 쾌락을 다루는 방식과 동일한 개인이 사회적 곧 폴리스적 자아로서 형성되는 방식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며, 3권은 그리스도교 이전 고대 초기 로마에서 있어서의 자기 배려, 곧 자기 형성의 논리가 보여주는 특징에 집중한다.
 
 
유의할 것은 이러한 ‘윤리의 계보학’에서 나타나는 ‘윤리’(éthique)가, 용어의 그리스어 어원 êthos[성격, 품성]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자기와 자기의 관계, 곧 자기 인식, 자기 지배, 자기 배려를 모두 함축하는 용어이다. 이는 푸코는 서양인으로서 자기 문화의 기원을 이루는 고대 문화에 집중한 것으로 특히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서양인의 자기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푸코에 따르면, 서양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여타의 영역과는 다른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며, 이는 다음과 같은 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너의 성적 정체성을 말해다오,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마.” 푸코는 이처럼 섹슈얼리티를 진리, 권력, 윤리가 만나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 영역으로 바라본다. 한편 유의할 것은 이때의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영역-방법론’이 시기적으로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부정하고 다음 단계로 이행해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며 상호보완적인’ 세 개의 영역들로 설정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의 영역은 이전의 영역(들)을 감싸 안고 넘어가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윤리의 계보학은 ‘윤리와 계보학’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식-권력-윤리의 고고학-계보학’이다. 푸코의 ‘윤리’는 진리와 관계하면서 철저히 정치적인 윤리 곧, 자기도야와 자기 생산의 논리이며,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의 자기 형성을 통해 자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얻게 된다.
 
 
문제화 -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는가?




이는 푸코가 전통적인 주체, 대상, 인식이라는 세 개의 개별적 실체를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라는 상관적ㆍ동시적으로 형성되는 세 개의 연관관계로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푸코는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를 통칭하여 문제화ㆍ문제설정(problématisation)이라 부르는데, 푸코는 평생에 걸친 자신의 작업이 바로 이 ‘문제화’에 대한 탐구였다고 말한다. 말년의 푸코가 이를 지칭하여 부르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ㆍ비판적 존재론’에 대한 탐구란 지식, 권력, 윤리의 영역에서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를 고고학적ㆍ계보학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탐구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결국 ‘성의 역사’ 시리즈는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라는 역사적 과정, 문제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오늘 우리 자신의 변형(transformation)을 가능케 해줄 제반 조건들에 대한 탐구’를 수행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14.06.08.


 
 
 
 
 
 

2014. 5. 22.

기자가 싫은 4가지 이유



멱살 잡힌 채 쫓겨나고 막말 듣는 기자들…
자성의 목소리 높지만 전에 없는 냉소만 가득
 

    지난 5월15일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정부합동분향소.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생존한 학생의 부모들이 선생님 영전 앞에 빨간 카네이션 바구니를 놓았다. “우리 애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어요.” 학생 유가족과 선생님 유가족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해졌다. 취재수첩을 든 기자들도 대화를 들으려고 한 발짝 다가갔다.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유가족이 말했다. 조금 뒤로 물러나는 듯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기자들은 다시 유가족에게 모여들었다.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메아리가 퍼져나갔다.
 
 

기념행사가 끝난 뒤 유가족 대기실 천막 앞에 서서 기다렸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대책위의 협조를 받아 몇몇 유가족을 인터뷰할 참이었다. 주변에 벤치도 있었지만 왠지 앉아서 기다리기가 죄스러웠다. “여기 서 있으면 안 됩니다.”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대기실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다 들리지 않습니까.” 그의 시선은 내 취재수첩을 향해 있었다. 몰래 취재하는 중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나는 유가족이 싫어하는 기자가 어쨌든 맞으니까.
 
 
 
한국 언론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고들 한다. 멱살이 잡힌 채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고 카메라가 내동댕이쳐진다. “개새끼야, 그게 기사야”라는 욕설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아냥도 듣고 있다. 부끄럽고 참담하다. 어쩌다가 언론이,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한겨레21>은 세월호 피해 가족과 자원봉사자, 언론학자, 시민활동가 등에게 ‘우리가 기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두루 물었다.

 
 
 
1. 빠른 뉴스, 막말 뉴스

 
 
 
4월16일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오보가 나왔다. 특히 MBC 기자들은 “최악의 오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지만 MBC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목포MBC 기자들은 사고 당일 오전 11시쯤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해경 경비정과 헬기, 어선들은 잠긴 선체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전혀 손쓰지 못했고 잠수요원도 볼 수 없었다. 현장 기자는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구조자가 160여 명”이라는 말을 들었고, 서울MBC 전국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MBC는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학생 전원 구조”라고 보도했다. 전국MBC기자회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낸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오보’”라고 고백했다.

 
 
언론의 오보로 유가족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고 방심한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단원고 학부모들은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아들·딸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선체가 전복될 때까지 경찰 간부후보생 졸업식 행사에 참석했다. 그가 진도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난 오후 1시10분쯤이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세월호 사건처럼 오보가 많았던 참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재난 보도는 정확성이 생명이라 언론에 대한 신뢰가 그냥 무너졌다. 처음 한 번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더라도 오보가 되면 그다음부터는 반성하고 더 신중하게 보도해야 했다. 하지만 속보 경쟁에 매달려 계속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난 7년간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가 지속됐다. 그사이에 기자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취재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본다.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문제를 볼 수 없는데 기자들이 그렇게 돼버렸다. ‘부정적으로 보도하면 문제가 된다’라는 기득권자의 관점이 언론사 내부까지 뿌리내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2. 윗물이 썩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교통사고 사망자 비유(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전언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나 박상후 MBC 전국부장의 발언(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성명서 “그런 ×들 (조문)해줄 필요 없어”)은 사회적 비난을 불렀다.



 
재난방송을 이끌어야 할 공영방송은 오히려 믿음을 주지 못했다. 지난 5월7일 방송된 MBC 박상후 전국부장의 리포트는 구조에 참여한 민간 잠수부의 죽음을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 탓으로 돌려 시청자의 원성을 샀다.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유가족들은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 5월8일 임창건 보도본부장과 이준안 취재주간 등 KBS 임직원이 합동분향소를 찾아왔지만 김시곤 국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유가족의 말이다. “오후 5시쯤 김시곤 국장이 사과하러 온다고 해서 기다렸다. 7시가 넘었는데도 오지 않더라. 우리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8시30분까지 오지 않으면 우리가 찾아가겠다고 했다. 결국 아빠들이 아이들 영정을 눈물로 떼어내 서울행 버스를 탔다. KBS 앞에 갔는데도 보도국장은 나타나지 않고 (길환영) 사장은 면담을 거부하더라. 사과를 더는 구걸하기 싫어서 청와대로 향했다.”

 
 
김시곤 국장은 이튿날 보도국장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발언에 대한 반성이나, 유가족에 대한 사과의 뜻이 아니었다.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혼심의 힘을 기울였으나 보도의 독립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진”다고 했다.

 
 
박상후 MBC 부장도 막말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MBC의 세월호 보도를 총괄한 그는 민간 잠수부의 사망 원인을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 탓으로 돌린 ‘데스크리포트-분노와 슬픔을 넘어서’(5월7일)를 보도해 MBC 내·외부에서 비판을 받았다.

 
 
2012년 MBC 노조 파업 때 홍보국장을 한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이 사람들(김시곤·박상후)은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곤 국장이 물러나면서 길환영 사장보고 나가라고 했는데 ‘너나 나나 똑같은데 내가 왜 희생양이 되어야 하냐’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다. 반성하기보다는 재수가 없었다고 인식한다. 유가족을 비난하는 뉴스를 내보내는 것도 일반인과 완전히 동떨어진 수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와대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이 정권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관점에서 세월호 사건을 바라본다.”(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에서)


 
 
3. 권력 눈치를 본다
 
 
 

“사고 당일에 아빠 10명이 6만원씩을 걷어 낚싯배를 빌려 나갔다. 해경은 부직포만 깔고 있더라, 기름이 유출될까봐서. 세월호 50m 앞까지 가는데 제재도 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고 기름만 걷고 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나는 권한이 없다’고 정부 상황실 관계자가 말했다. 정부가 구조해주지 않아 이튿날 비가 오는데 엄마들이 팽목항에서 무릎 꿇고 1시간 동안 빌었다. ‘제발 아이들 좀 살려달라’고. 그 모습을 수십 개의 카메라가 다 찍어놓고는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방송했으면 아이들을 구해내라고 국민이 같이 나서줬을 텐데…. 언론은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한다’고 써댔다.”(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엄마)

 
 
황필규 변호사는 당시 진도의 구조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진도 팽목항. 이미 사고 후 사흘하고도 몇 시간 지난 시간, ‘UDT 요원 ○○명, 조명탄 ○○발…. 숫자들만 나열된 보도자료를 배포한 해경 국장을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상황실에서 끌고 나옵니다.

 
 
가족들: 가라앉은 배가 옆으로 기울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왜 이 중요한 사실이 보도자료에 없나요? 언제 보고받았나요?

 
 
해경 국장: 네, 알고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보고받은 적은 없습니다….

 
 
가족들: 첫날부터 바지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왜 이제야 바지선 투입을 결정했나요?

 
 
해경 국장: 처음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 왜 이렇게 인력을 적게 투입하나요?
 
 
 
해경 국장: 오늘부터는 날씨와 무관하게 전원 투입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수십 개의 언론사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 장면을 찍었고, 한두 언론은 생방송을 한다고 소리쳤지만, 이 장면이 제대로 보도된 언론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서)
 
 
 
 
언론은 초기에 정부의 엉터리 구조 작업을 비판하지 않았다. 선장과 승무원의 태도, 청해진해운 등 사고 원인과 책임자 처벌로 순식간에 취재 초점을 넘겼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청와대와 정부를 감싸기 위해서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진단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방송사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뉴스를 정권에 헌정하려는 태도를 가졌다고 보인다.”(김언경 사무처장) 정연우 세명대 교수(언론학)는 “명절 때 고속도로 상황을 중계한다고 헬기를 띄우는 언론이 세월호 사건 때 헬기도 안 띄웠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사고 현장 방문 보도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불안과 분노로 격앙돼 거친 항의와 불만의 목소리를 냈지만 KBS와 MBC는 이러한 분위기를 지워버렸다. KBS 기자는 이를 ‘날조’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의 발언 뒤 박수갈채는 연단 위 대통령과 땅바닥의 실종자 가족들을 벽처럼 갈라놓은 공무원과 경호원의 것이었다. 기묘한 편집술 덕에 공무원의 반응이 마치 가족의 반응인 것처럼 둔갑했다.”

 
 
 
4. 뻔뻔하다
 
 
 
 

언론을 향해 표출하는 분노와 불신은 달라진 언론 환경과도 닿아 있다.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기록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에서 기자가 독점적으로 누려온 지위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까닭이다. 현장을 전하는 신속성과 생생함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미 기존 언론을 무릎 꿇렸다. ‘현장의 목격자 모두가 기자’인 시대에 기자가 전하는 정보 자체보다 기자가 정보를 전하는 태도가 중요한 덕목이 됐다. 그래서 취재 업무만을 앞세우는 기자들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진다.

 
 
“사고 당일 구조자가 나오는데 기자들이 몰려가 질문을 쏟아냈다. 서둘러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인데 기자한테는 그냥 취재 대상일 뿐이었다. 천불이 나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또 누군가 필요할 때는 들어주지 않다가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물불 안 가리고 덤빈다. 아주 질렸다.”(자원봉사자 이석준·24·가명)

 
 
“5월8일께 진도체육관에서 피해 가족들이 식사하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언론사가 카메라로 그 모습을 몰래 찍다가 걸렸다. 가족들이 화내고 자원봉사자들이 말리고 경찰이 오고…. 최소한의 배려도 없다. 게다가 취재 과열이나 경쟁으로 언론사가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도는 나가지 않는다. 제 살 깎아먹기이지만 보도하지 않으면 자정 기능을 상실하지 않나.”(자원봉사자 박수동·27)

 
 
 
4월24일 사고 9일 만에 등교를 재개한 안산 단원고 3학년 한 여학생이 언론인의 꿈을 포기하며 쓴 글(‘대한민국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분들께’)엔 무례한 기자들을 향한 실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저의 꿈이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신념을 뒤로한 채, 가만히 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업적을 쌓아 공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에 반발하며 청소년들에게 침묵행진을 제안하는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던 고등학생 양지혜양도 말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무조건 마이크를 갖다대고 있는 기자들과 그 상황을 강제하는 취재 시스템에 화가 났다. 장래에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기자들을 보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책무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죽음의 공포에 내던져진 가족들과 만나는 기자들은 인간적으로도 미성숙했다. 자원봉사자 박수동씨의 경험담이다. “진도체육관 2층에서 한 남자 기자가 게임을 하고 있더라. 게임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은 했는지 눈치를 계속 보면서 말이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걸 보며 ‘저 사람들은 그냥 최소한의 공감도 안 되나보다’ 생각했다. 기자들은 가족에게 주는 고급 도시락이나 햄버거, 이런 것도 아주 잘 챙겨 먹더라. 어떤 자원봉사자는 기자들이 많은 모텔에 묵었는데 방 앞에 술병, 치킨 상자 같은 게 쌓여 있어서 황당했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비극의 현장’인데 그들에겐 ‘일터’구나 싶었다.”
 
 
 
 
 
욕먹는 동안 주목받은 언론인

 
 
 
피해 가족들의 편에서 눈물 흘리는 언론인에게 열광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의자에 앉아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 그보다 나이가 많은 손석희 JTBC 사장은 진도 팽목항에서 비를 맞으며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기레기’라고 욕먹는 동안 일부 언론인들은 오히려 주목받았다. 기자가 무조건 싫다기보다 그만큼 진짜 기자를 절실히 원한다는 뜻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 대학원생의 말이다.
 
 
 
세월호 보도에서 JTBC가 처음부터 피해 가족과 시청자의 마음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탑승자와 구조자의 집계 오류를 받아썼고, 사고 첫날 <뉴스특보>에선 앵커가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의 사망 소식을 아는지 물었다. 여론은 싸늘했다. 하지만 그날 손석희 앵커는 깊은 반성을 담은 사과를 거듭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행했다. 앵커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되느냐”고 묻자 전문가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답했다. 이때 손석희 앵커는 10초간 침묵하며 비통한 마음을 드러냈다. 다른 언론사가 희생자 가족의 오열이나 안타까운 사연에 매달릴 때도 JTBC는 부진한 구조 작업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4월25일부터 5일간 같은 옷을 입고 진도 팽목항에서 생중계한 뒤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분들이 아직 많이 계셔서 발길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현장 진행은 마무리하지만 이곳을 향한 시선을 멈추거나 돌리지 않겠다. 약속한다.” JTBC는 5월16일까지 31일째 세월호 사건을 톱뉴스로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KBS와 MBC 기자들의 자기반성도 잇따라 나왔다. 특히 KBS는 5월15일 세월호 사건 한 달 특집 방송으로 진행된 <뉴스9>에서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구조 작업에 대한 문제제기나 유가족들의 항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점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보도했으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가족 기자회견은 보도하지 않은 점 △사고 당일 정부가 발표한 투입 구조 인력을 받아쓴 점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길환영 사장의 ‘보도 개입’을 폭로한 것을 다루지 않은 점 등이다. 다음날인 5월16일에는 KBS 보도본부의 보직 부장 18명 전원이 보직을 사퇴하고 “길환영 사장 사퇴”를 요구했다.


 
 
어차피 기대할 것 없는 ‘기자 사회’


 
 
같은 날 <중앙일보>는 ‘세월호 부정확한 보도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2면 전면에 싣었다. △탑승·실종자 수를 정확히 보도하지 못한 점 △초기 구조 현황에 대한 정부 발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점 △가족들에게 상처 준 보험금 보도 △구조된 아이 얼굴을 그대로 내보낸 점을 반성했다. <중앙일보>는 세월호 참사 1년 뒤인 2015년 4월16일 달라진 재난 안전 체계를 치밀하게 검증하고 고발하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 검증보고서’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레기’라는 전 사회적 비난 앞에서야 들리기 시작한 언론인들의 자성 목소리도 전에 없는 냉소 앞에 직면해 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민의 눈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집단으로서 ‘기자 사회’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아예 없다. 어차피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는데 기자들이 스스로 성찰한다고 하는 모습이 피해 가족과 국민의 마음엔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안산=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 
 
 
 
 
 



2014. 5. 19.

알라딘 서양철학 로드맵 - 미셸 푸코 [초고]






* 알라딘 서양철학로드맵 <철학, 책> e-book 무료 다운받는 곳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common.aspx?pn=2014_philosophia_sub&AuthorId=15143


* 푸코

http://en.wikipedia.org/wiki/Michel_Foucault




I. 저자 이력 간략 정리
 
 
미셸 푸코는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태어났다. 1946년 명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철학과 심리학 학사를 취득하고, 이후 장 이폴리트의 지도로 헤겔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한다. 1950년 경 알튀세르의 영향 아래 공산당에 입당하나 2-3년 후 스탈린주의에 대한 환멸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당의 태도에 실망해 탈당한다. 1955년 이후 스웨덴 웁살라, 당시 서독 함부르크, 폴란드 바르샤바 등지의 프랑스문화원장 등으로 재직하다. 프랑스로 돌아와 1961년 소르본에서 주논문으로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를, 부논문으로 칸트의 『인간학』을 번역ㆍ주해한 텍스트를 제출하다. 1963년 『임상의학의 탄생』과 『레몽 루셀』, 1966년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1969년 『지식의 고고학』을 출간하고 이 시기를 ‘지식의 고고학’ 시기로 지칭하다.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최연소 교수로 임명, 취임강연 ‘담론의 질서’를 행하다. 1971년 질 들뢰즈 등과 ‘감옥에 관한 정보그룹’(G.I.P.)을 만들어 활동하다. 1975년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을 발표하고, 이 시기를 ‘권력의 계보학’ 시기라 지칭하다. 1976년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 연작 ‘성의 역사’ 시리즈의 1권 『앎의 의지』를 출간하다.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던 시리즈는 중도에 계획이 바뀌어 푸코가 사망하는 1984년 2, 3권에 해당하는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만이 출간된다. 이 시기를 ‘윤리의 계보학’이라 부르다. 같은 해 자신의 ‘지적 유언장’이라 할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하다. 푸코는 1984년 6월 25일 파리에서 에이즈로 사망한다. 그 외 푸코의 생애와 저작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리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올라 있는 4편의 글 ‘푸코의 활동’을 참고하면 되는데, 이는 푸코 선집 『말과 글』(1994)의 「연보」를 완역한 것이다.

http://www.greenbee.co.kr/blog/1685
 
 
 
II. 저자 사상 간략 정리
 
 
푸코 작업의 핵심은 한 마디로 모든 ‘보편’의 관념에 대립하는 것이다. 서양철학사에서 보편이란 필연적인 것, 본질적인 것, 불변의 것, 곧 ‘바꿀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의 작업은 이런 면에서 우리가 보편적이며 필연적이며 본질적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따라서 변화가능한 것, 바꿀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런 면에서 첫 번째 대표작이라 할 『광기의 역사』는 우리가 자연적인 것, 따라서 역사와 문화에 무관한 것으로 믿는 ‘광기’의 관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를 밝히려는 작업이다. 푸코는 우리가 이러한 관념의 최종근거로 삼는 모든 ‘자연적인 것’, 곧 생명, 생물, 의학, 정신, 육체, 광기 등의 관념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자연적인 것’으로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역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른바 인문과학 혹은 인간과학의 대표적 분과들이 노동, 생명, 언어의 분야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은 니체적 계보학의 입장에서 감시와 처벌 혹은 죄책감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사회화, 제도화되면서 근대사회 구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는가를 밝힌다. 『성의 역사』 연작 역시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이러저러한 성의 주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서구의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앞서 말한 필연과 보편의 관념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이처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자유와 변화의 지점을 찾을 수 있는가’를 밝히려는 궁극적 관심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 중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III. STEP 1 - 『미셸 푸코 1926-1984』, 『정신병과 심리학』,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푸코의 책은 매우 전문적인 논의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저작들을 시대 순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꼼꼼히 공부하는 것이나, 모든 이들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푸코 사유에 대한 가장 정평 있는 입문서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이다. 이 책은 푸코의 삶과 사유, 저작들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을 뿐 아니라, 니체, 하이데거로, 레비스트로스 등 푸코가 영향 받은 사유들, 사회ㆍ문화ㆍ정치적인 다양한 동시대적 상황들을 정리해 놓은 최적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국내 학자에 의한 간명한 입문적 소개로는 『처음 읽는 프랑스현대철학』(동녘)의 ‘푸코’ 부분이 무난하다. 고급한 입문서로는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산책자)와 질 들뢰즈의『푸코』(동문선ㆍ그린비)가 탁월하다.



다음으로는 어렵더라도 푸코 자신의 책을 시대 순으로 얇고 가벼운 것부터 찬찬히 정성스럽게 읽어보기를 권하는데, 우선 1962년의 『정신병과 심리학』(문학동네)을 권한다. 특히 이 책의 2부는 전 해인 1961년에 나온 푸코의 방대한 학위논문 『광기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요약ㆍ심화로 간주된다. 이후에는 물론 이러한 책들을 곁에 두고 『광기의 역사』(나남)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다음으로는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앨피)를 권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을 이어주는 책으로, 19세기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존속살해 사건의 기록을 푸코가 발굴해 자신의 연구ㆍ분석과 함께 출간한 것이다.
 
 
IV. STEP 2 - 『헤테로토피아』,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저술 순으로 따라 읽자면 다음 책으로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을 읽어야 하지만, 이 책들은 너무나도 고도의 전문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는 책이므로, 가급적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다만 『말과 사물』의 맨 처음 수록된 「시녀들」은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동명의 작품에 대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품격 있는 비평이므로 이 단계에서 읽어도 좋다). 이처럼 1960년대를 가로지르는 지식 고고학 시기의 대표작은 『말과 사물』이지만, 오히려 1960년대 푸코의 사유를 공간과 건축의 측면에서 잘 드러내주는 『헤테로토피아』(문학과지성사)를 권한다.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말과 사물』의 연장선상에서 고안된 것이며, ‘타자가 동일자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근본 조건’이라는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들 중 하나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말과 사물』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주장은 각각의 시대마다 이전 혹은 이후의 시대와는 공유될 수 없는 독자적ㆍ독립적인 ‘에피스테메’가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지식 고고학적’ 관점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이후의 ‘권력 계보학’으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가장 좋은 책은 1971년 네덜란드 텔레비전에서 이루어진 촘스키와 푸코의 대담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시대의 창)이다. 마냥 쉬운 책은 아니지만 대담의 기록이므로 대화체로 이루어져 읽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무엇보다도 - 하나의 주장이 합리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 오히려 “(하나의 주장을 정당화해주는) 합리성의 선택 자체가 니체적인 ‘힘 관계’의 반영”이라는 푸코의 핵심적 주장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논문 「진리와 권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 - 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은 푸코 ‘권력 계보학’의 대강을 보여주는 글로 추천할 만하다. 이 모두는 향후 『감시와 처벌』을 읽기 위한 준비의 과정으로 보면 된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은 물론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인 『담론의 질서』(중원문화)이며, 이 책은 우리가 오늘 아는 ‘담론’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기념비적인 명저이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면 『감시와 처벌』(나남)에 도전해볼 차례이다. 푸코의 가장 중요한 책이자 가장 논쟁적인 책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상대적으로는 푸코의 책들 중 매우 쉬운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읽어서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니다. 특히 처음 읽는 사람으로서는 행간에 깔린 중층적 의미를 다 소화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정독해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책이다. 모든 책을 다 정독하고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해야 다음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삶이란 몇 권의 중요한 책을 읽기에도 너무 짧다. 대강의 요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체크해두고 앞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이 유용하다.
 
 
V. STEP 3 - 『말과 사물』, 『성의 역사』, 『생명관리 정치의 탄생』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면 1960년대 지식 고고학 시기의 주저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을 읽을 차례이다. 우선 이해되지 않아도 가볍게 장 별로 한 번 읽고, 추후에 찬찬히 오랜 시간을 들여 정독하는 것이 좋다.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은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인식이란 없으며 오직 각각의 시대마다 새로운 인식이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 동시대의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구조주의적 관심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푸코는 16세기 이래 서양의 에피스테메 혹은 인식론적 장에는 단 2번의 단절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두 번의 단절로 이루어지는 세 개의 시기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이나, 푸코의 궁극적 주장은 이 두 번의 단절에 이어지는 세 번째 단절, 곧 네 번째 시기가 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각 시대마다 푸코가 긍정 혹은 부정하는 개념의 계열을 찾으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가령 책의 9-10장에서 칸트에 의해 성립된 근대 ‘인간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며, 근대 이후의 시대에 ‘언어’가 하게 될 역할은 긍정적 뉘앙스를 갖는다.
 
 
다음으로 『성의 역사』를 읽는다. 성의 역사는 1, 2, 3권에 해당하는 『앎의 의지』, 『쾌락의 활용』, 『자기 배려』가 있는데, 물론 순서대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이들 3권, 곧 1976년의 1권과 1984년의 2, 3권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일정한 단절이 존재한다. 『앎의 의지』는 그 전 해에 출간된 『감시와 처벌』 곧 권력 계보학의 논지를 대상의 측면에서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감시와 처벌』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다. 『앎의 의지』가 공격하는 핵심적 대상은 당시 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이다. 이 두 이론은 공히 성이 억압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이 해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푸코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성에 관한 기존 지배 시스템을 유지하는 장치의 일종으로 기능한다고 본다. 『앎의 의지』에서 보이는 푸코의 관심은 ‘왜 우리[서구인]는 성이 억압되어 있다고 이토록 강력히 말하게 되었는가?’라는 담론 체제에 관련된 문제이다. 2, 3권은 ‘윤리의 계보학’으로 이행한 이후의 저작들로, 『쾌락의 활용』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성인 남성이 진리의 문제, 양생술, 소년-성인 간의 동성애 등 섹슈얼리티에 연관된 여러 문제 상황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섹슈얼리티와 관련하여 어떤 주체로 만들어 갔는가를 분석한다. 주의할 점은 이때의 ‘윤리’가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덕’의 의미보다는 - ‘자기함양ㆍ자기도야’라는 그리스어의 어원적 의미에 가까우며, 따라서 진리와 정치가 이미 함축된 그러한 자기 형성의 ‘윤리’라는 점이다. 『‘자기 배려』는 그리스도교 국교화 이전의 고대 로마시기를 다루는데, 푸코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이 시기의 핵심적 문제제기를 자기 통치, 자기 배려로 설정한다. 통치성의 개념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푸코의 사유에서 이 개념이 타인의 통치로부터 자기의 통치에로 나아가는 연결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윤리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윤리의 계보학’ 시기는 주체화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로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1982년 미국 버몬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세미나 『자기의 테크놀로지』(동문선)을 참조하면 좋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푸코의 전공자로서 시간이 갈수록 확신하게 되는 하나의 사실은 푸코는 물론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감시와 처벌』 같은 저술을 통해서도 역사에 남게 되겠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ㆍ역사적 공헌은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록 시리즈에서 개진하고 있는 통치성의 관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푸코는 1970년에 취임한 이래 1976-1977년의 안식년을 제외하고 1984년까지 매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해왔다.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프랑스에서 2014년 현재에도 출간 중인 강의록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는 푸코 전공자로서 정확하고도 유려한 좋은 번역을 보여주는 심세광의 주도로 난장출판사에서 전권 번역되고 있다. 국역된 몇 권의 강의록 중 특히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는 통치성의 관념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잘 드러나는 필독서이다. 특히 이 책은 지난해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다루어진 16-17세기 이래 유럽 근대의 ‘정치학자’ 및 ‘경제학자’의 탄생,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분석을 잇는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분석에 책의 대부분이 할애되고 있어 특별한 시의성을 갖는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초래된 최근 유럽의 상황을 푸코 통치성의 관점에에서 분석한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같은 책도 참조하면 좋다.
 
 


 

2014. 5. 5.

김용옥 -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

 


[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동영상]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2014. 4. 29.

"당신이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 - 박성미





 
 
 
[펌 -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광장 자유게시판]

"당신이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

박성미 조회수 102610 공감수 11356




원 글쓴이입니다. 페친 중 어느 분이 답답한 마음에 대통령 보라고 이 글을 청와대 게시판으로 가져오신 듯 싶습니다. 덕분에 널리 읽힐 수 있게 되어 고마운 마음입니다. 글은 제가 썼으나 용기는 그분이 내어주신 셈입니다. 부담스러우셨는지 그분이 자진 삭제를 하셨고 청와대에서 글이 삭제된 데 대해 다른 의도나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글을 다시 올립니다. 달아주신 답글들 중 주옥같은 글들이 많아 함께 올립니다. - 박성미





 * 원문



숱한 사회 운동을 지지했으나 솔직히, 대통령을 비판해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처음으로 이번만큼은 분명히 그 잘못을 요목 조목 따져 묻겠다.
지금 대통령이 더 이상 대통령이어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를.

대통령이란 직책, 어려운 거 안다. 아무나 대통령 하라 그러면 쉽게 못 한다. 그래서 대통령을 쉬이 비판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 물러나라 라는 구호는 너무 쉽고, 공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아무리 무능해도 시민들이 정신만 차리면 그 사회를 바꿔 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임무를 수행 해야할 아주 중요한 몇 가지를 놓쳤다.

첫째, 대통령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지도 몰랐다.

대통령이 구조방법 고민 할 필요 없다.
리더의 역할은 적절한 곳에 책임을 분배하고, 밑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고, 밑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을 지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아래 사람들끼리 서로 조율이 안 되고 우왕좌왕한다면 무엇보다 무슨 수를 쓰든 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행부 책임 하에서 잘못을 했다면 안행부가 책임지면 된다. 해수부가 잘못했으면 해수부가 책임지면 된다. 그런데 각 행정부처, 군, 경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가 책임소관을 따지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면, 그건 리더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거다. 나는 군 최고 통수권자이자 모든 행정부를 통솔할 권한이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딱 한 명 밖에 모른다.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했어야 할 일은 현장에 달려가 상처 받은 생존자를 위로한답시고 만나고 그런 일이 아니다. 그런 건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구조 왜 못하냐, 최선을 다해 구조해라’ 그런 말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잘 못하면 책임자 엄벌에 처한다’ 그런 호통은 누구나 칠 수 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게 아니다.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왜 쇼핑을 못 한답니까?’ 그런 말 하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공인인증서 폐기하라고, 현장에 씨씨티비 설치하라고, 그러라고 있는 자리 아니다.
일반인들이 하지 못하는 막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대통령에 책임이 있는 거다. 대통령? 세세한 거 할 필요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일이 안 되는 핵심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는 일, 뭐가 필요하냐 묻는 일. 그냥 해도 될 일과 최선을 다할 일을 구분하고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포기할 일과 안 돼도 되게 해야 할 일을 구분해주고, 최우선 의제를 설정하고 밑의 사람들이 다른 데 에너지를 쏟지 않을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주는 일, 비용 걱정 하지 않도록 제반 책임을 맡아 주는 일
영화 현장의 스탭들은 감독이나 피디의 분명한 요청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 돼는 일도 되게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어려운 일을 되게 하려면 당연히 비용이 오버 된다. 이 오버된 제반 비용에 대한 책임. 그것만 누군가 책임을 져 주면, 스탭들은, 한다.

리더라면 어떤 어려운 일이
‘안 돼도 되게 하려면’
밑의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것쯤은 안다.
그것이 구조 작업이던 뭐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면 무조건 돈이 든다. 엄청난 돈이.
만약 사람들이 비용 때문에 망설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면’
그건 대통령이 정말로 누군가의 말단 직원인 적도 없었고 비용 때문에 고민해 본 적도 없다는 얘기다.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도 다 아는 사실이다.
만약 리더가 너 이거 죽을 각오로 해라. 해내지 못하면 엄벌에 처하겠다 라고 협박만 하고 비용도 책임져주지도 않고, 안 될 경우 자신은 책임을 피한다면, 그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을 구하는데 돈이 문제냐 하지만, 실제 그 행동자가 되면 달라진다. 유속의 흐름을 늦추게 유조선을 데려온다? 하고 싶어도 일개 관리자가 그 비용을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러나 누군가 그런 문제들을 책임져주면 달라진다
“비용 문제는 추후에 생각한다. 만약 정 비용이 많이 발생하면 내가 책임진다.”
그건 어떤 민간인도 관리자도 국무총리도 쉬이 할 수 없는 일이다.

힘 없는 시민들조차 죄책감을 느꼈다. 할 수 있었으나 하지 못한 일, 그리고 전혀 남 일인 것 같은 사람들조차 작게나마 뭘 할 수 있었을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을 지휘하고 이끌 수 있었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접 시정할 수 있었던, 해외 원조 요청을 하건 인력을 모으건 해양관련 재벌 회장들에게 뭐든 요청하건, 일반인들은 할 수 없는, 그 많은 걸 할 수 있었던 대통령은 구조를 위해 무슨 일을 고민했는가?

둘째,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정부는 필요 없다

대통령은 분명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왜 지휘자들은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안았을까?
그것이 한 두 번의 명령으로 될까?

날씨 좋던 첫째날 가이드라인 세 개밖에 설치를 못했다면, 이러면 애들 다 죽는다. 절대 못 구한다 판단하고 밤새 과감히 방법을 바꾸는 걸 고민하는 사람이 이 리더 밑에는 왜 한 사람도 없었는가? 목숨걸고 물 속에서 작업했던 잠수사들, 직접 뛰어든 말단 해경들 외에, 이 지휘부에는 왜 구조에 그토록 적극적인 사람이 없었는가?

밑의 사람들은 평소에 리더가 가진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급한 상황에서는 평소에 리더가 원하던 성향에 따라 행동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평소 리더가 어떨 때 칭찬했고 어떨 때 호통쳤으며, 어떨 때 심기가 불편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리더가 평소에 사람과 생명을 최우선 가치로 두었던 사람이라면
밑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던 말 하지 않아도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행동한다.

쌍용차 사태의 희생자들이 분향소를 차렸을 때
박근혜에게 충성하겠다 한 중구청장은 그들을 싹 쫓아냈고
대학생들이 등록금 때문에 죽어가도 아무도 그걸, 긴급하게 여긴 적이 없고
모두 살기보다 일부만 사는 게 효율에서 좋고.
자살자가 늘어나도 복지는 포퓰리즘일 뿐이고.
세 모녀의 죽음을 부른 제도를 폐지하는 데에 아직도 대통령이 이끄는 당은 그토록 망설인다.
죽음을 겪은 사람들을 ‘징징대는’ 정도로 취급하고
죽겠다 함께 살자는 사람들에게 물대포를 뿌렸다.
이곳에선 한번도 사람이, 사람의 생명이 우선이었던 적은 없었다.
아직도 이들에겐 사람이 죽는 것보다 중요한 게 많고, 대의가 더 많다.
‘사람은 함부로 해도 된다’ 는 이 시스템의 암묵적 의제였다.

평소의 시스템의 방향이 이렇게 움직이고 있던 상황에서
이럴 때 대통령이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라고 지시를 하면,
밑의 사람들은 대통령이
진심으로 아이들의 생명이 걱정되어서 그런 지시를 내린 건지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국민들에게 보여줘라 라는 뜻인지,
정부의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구조를 하라는 건지,
여론이 나빠지지 않게 잘 구조를 하라는 얘긴지,
헷갈리게 된다.
대책본부실에서 누가 장관에게 전했다.
“대통령께서 심히 염려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이 말이 ‘아이들의 안위와 유가족들의 아픔을 염려하고 있다는’ 건지
‘민심이 많이 나빠지고 있어 자리가 위태로워질 걸 염려한다는’ 건지
밑의 사람들은 헷갈린다.

대신 지시가 없어도 척척 움직인 건
구조 활동을 멈추고 의전에 최선을 다한 사람들
재빨리 대통령이 아이를 위로하는 장면을 세팅한 사람들
대통령은 잘했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다 라고 사설을 쓸 줄 알았던 사람들.
재빨리 불리한 소식들을 유언비어라 통제할 줄 알았던 사람들.
구조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애를 쓴 사람들.
선장과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방향으로 여론몰이를 한 사람들과
순식간에 부르자마자 행진을 가로막고 쫙 깔린 진압 경찰들이다.

이것은 이들의 평소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평소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느라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내가 선거 때 박근혜를 뽑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가 친일파라서도 보수당이어서도 독재자의 딸이어서도 아니었다.
그녀가 남일당 사태 때 보여준 반응, 자신의 부친 때문에 8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거기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안타까움도 갖지 않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에 대해 그토록 가벼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대통령으로 뽑아선 안 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리더의 잘못을 여기에 있다.
밑의 사람들에게
평소 사람의 생명이 최우선이 아니라는
잘못된 의제를 설정한 책임.

셋째, 책임을 지지 않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책임이 무겁기 때문이다. 막대한 권한과 비싼 월급, 고급 식사와 자가 비행기와 경호원과 그 모든 대우는 그것이 [책임에 대한 대가] 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에선 어떤 일도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리더가 책임지지 않는 곳에서 누가 어떻게 책임지는 법을 알겠는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일일이 알려줘야 하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사람을 살리는 데 아무짝에 쓸모 없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결정적으로,
책임을 질 줄 모르는 대통령은 필요 없다.

덧붙임.
세월호 선장들과 선원들이 갖고 있다던 종교의 특징은
단 한 번의 회개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아무리 잘못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이라 한다.
이거,
굉장히 위험한 거다.

죄책감을 느끼지도 못하는 대통령,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사람에 대해 아파할 줄도 모르는 대통령은 더더욱 필요 없다.

진심으로 대통령의 하야를 원한다.


* 댓글은 아래의 청와대 홈페이지를 보시면 됩니다.

http://www1.president.go.kr/community/sympathy/free_board.php?srh%5Bsearch_key%5D=memb_nm&srh%5Bsearch_value%5D=%B9%DA%BC%BA%B9%CC&srh%5Bview_mode%5D=detail&srh%5Bseq%5D=577537&srh%5Bdetail_no%5D=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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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떠난 후 조화는 합동분향소 밖으로 내보내 졌다. (사진=노컷TV 민구홍PD)

http://www.nocutnews.co.kr/news/4015852








2013. 12. 29.

영화 <변호인>과 부림사건의 모든 것

 
 
 
 
나도 그랬고 늘 그럴 수밖에 없지만,
한 시대의 새로운 세대는 그 이전의 시대를 알 수가 없다.
 
역사란 찾아서 공부할 필요가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사이트는 참으로 유용한 우리 시대의
교육적 효과를 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3. 12. 24.

ignorance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4102



"1950년대, 1960년대에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망명객들은 프랑스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그 당시 프랑스인들은 파시즘을 단 하나의 진정한 악으로 간주했다.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의 스페인, 라틴아메리카의 독재. 그들은 점차적으로, 즉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가 되어서야 공산주의를 한 단계 밑의 악, 제2의 악으로나마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레나와 그의 남편이 프랑스로 망명한 것은 바로 이 시기, 즉 1969년이었다. 제1의 악과 비교해 볼 때 자신들의 나라에 닥친 불행은 그들의 친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줄 만큼 처참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재빨리 알아차렸다."(16)


프랑스에 가서 살아보면 이 프랑스라는 나라가 얼마나 끔찍한 과거를 가졌는가, 그리고 그것을 의식으로는 비판한다 하면서도 얼마나 그에 대한 끔찍할 만큼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절감을 하게 된다. 내가 유학하던 21세기 초반이나, 오늘이나,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어이 없는 '표상의 정치학'에 고개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책없고 무지막지한 프랑스인들의 '무지'(ignorance)는 도대체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이 무지막지하고 폭력적인 프랑스인들의 무지, 제국주의적으로 재구성된 한국에 대한 그들의 지식 혹은 무지는 아예 무지한 이른바 '민중' 계급보다, 이른바 <르 몽드>나 좀 보는 인텔리겐차 계급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읽는 정보가 처음부터 차별적 편견과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무장한 특파원과 데스크의 관점에 의해 선택되고 구성된 것임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 무지임에 대한, 아니 오히려 무지보다 못한 최악의 지식임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이다. 자기 지식의 확실성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없다. 스스로의 무지를 모르는 무지만큼 끔찍한 것도 드물다. 그런 면에서, 그 자신도 오로지 서구중심주의자라는 면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지만, 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쿤데라의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 프랑스인들이 지금도 종종 되뇌는 '프랑스적 예외'(exception francaise)라는 황당한 자기중심적 언사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프랑스는 유럽의 일본이다. 역사적으로 명백히 가해자에 더 가까우나, 스스로를 오로지 희생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일본의 원자탄이 프랑스의 히틀러인 것이다. 프랑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이른바 좌파적 환상은 어이 없는 것이다.

2013. 11. 7.

“교육은 교정이 아니다” -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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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57년, 다미앙의 처형


1757년 2월 3일, 국왕살해미수범 다미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다음으로 “앞의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 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암스테르담>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드디어 그는 네 갈래로 찢겨졌다. 이 마지막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냐하면, 동원된 말이 그러한 견인 작업에 익숙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마리 대신에 여섯 마리의 말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불충분해서 죄수의 넓적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근육을 자르고 관절을 여러 토막으로 절단해야 했다 ... 평소에는 지독한 저주의 말을 퍼붓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는 어떤 모욕적인 말도 전혀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만 극도의 고통 때문에 그는 무서운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이따금 ‘하느님, 제발 자비를, 예수님 살려주십시오’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사형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약간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던 생 폴 주임 사제의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2. 1838년, 파리 소년감화원을 위한 규칙


1838년 역시 프랑스의 레옹 포쉐가 작성한 ‘파리 소년감화원을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제17조. 제소자의 일과는 겨울에는 오전 6시, 여름에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노동시간은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9시간으로 한다. 하루 중 2시간은 교육에 충당한다. 노동과 일과는 겨울에는 오후 9시, 여름에는 오후 8시에 끝내도록 한다. 제18조. 기상.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조용히 기상하여 옷을 입고 간수는 독방의 문을 연다.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침상에서 내려와 침구를 정돈한다. 세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아침기도를 하는 성당에 가도록 정렬한다. 각 신호는 5분 간격으로 한다. 제19조. 아침기도는 감화원 소속신부가 주재하고, 기도 후에 도덕이나 종교에 관한 독송을 한다. 이 일은 30분 이내에 마치도록 한다. 제20조. 노동. 여름에는 5시 45분, 겨울에는 6시 45분에 재소자는 마당으로 나와 손과 얼굴을 씻고 제1회의 빵을 배급받는다. 뒤이어 즉시 작업장별로 정렬하여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여름에는 6시, 겨울에는 7시에 시작해야 한다. 제21조. 식사. 10시에 재소자는 노동을 중단하고 마당에서 손을 씨소 반별로 정렬하여 식당으로 간다. 점심식사 후 10시 40분까지를 휴식시간으로 한다. 제22조. 학습. 10시 40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정렬하여 반별로 교실로 들어간다. 읽기, 쓰기, 그림 그리기, 계산하기의 순서대로 한다. 제23조. 12시 40분에 재소자는 반별로 교실에서 나와 마당에서 휴식을 취한다. 12시 55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작업장별로 다시 정렬한다. 제24조. 1시에 재소자는 작업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노동은 4시까지 계속한다. 제25조. 4시에 작업장을 나와 안마당으로 가서, 손을 씻고 식당에 가기 위해 반별로 정렬한다. 제26조. 저녁식사 및 휴식시간은 5시까지로 하고, 재소자는 다시 작업장에 들어가야 한다. 제27조. 여름에는 7시, 겨울에는 8시에 작업을 종료하고, 작업장에서 하루의 마지막 빵을 배급받는다. 교훈적인 뜻이나 감화적인 내용을 담은 15분간의 독송을 재소자 1인 혹은 감시자 1인이 하고, 이어서 저녁기도에 들어간다. 제28조. 여름에는 7시 반, 겨울에는 8시 반에 재소자는 마당에서 손을 씻고 복장 검사를 받은 뒤 독방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옷을 벗고,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릴 때 침상에 들어가야 한다. 각 방의 문을 잠근 후 간수들은 질서와 침묵을 확인하기 위해 복도를 순회한다.”
 

3. 감시와 처벌, 모두가 모두를!

 
이 두 가지 너무나도 대조적인 기록은 공히 프랑스에서 각기 1757년과 1838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다. 두 기록이 사이는 정확히 81년인데,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점은 신체형의 소멸이다. 이제 국가 혹은 행형기관은 더 이상 범죄자에게 육체적 고문을 포함한 어떠한 직접적 육체적 고통도 가하지 않으며, 다만 도덕과 종교적 목적을 갖고 재소자의 영혼과 정신에 작용하는 교화, 감화, 교정적 재교육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변화를 법학자와 행형학자들은 이제까지 18세기의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에 입각한 잔인성의 배제, 형벌의 인간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이제는 고전이 된 1975년 저서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이러한 시각을 전적으로 뒤집는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 신체형의 소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범죄자를 사악한 선천적 악마가 아닌, 부조리한 사회적 모순구조의 희생자로 보는 것일까? 그것은 범죄자를 더 이상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교화하려는 인도주의적 행동일까? 푸코의 대답은 명쾌하다. 그것은 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으로 잘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이전과 같은 공개적 장소에서 범죄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일벌백계식의 처벌 방식은 민중들의 인식이 올라가면서 그리 잘 먹히지도 않고, 오히려 반발심만 키운다. 육체적 고통을 주는 방식은 이제 효용성도 떨어지지만, 처벌의 장소가 예상치 못한 폭동의 장소로 변하는 등 정치적 부담도 크다. 따라서 이제 처벌의 대상은 더 이상 육체가 아니라, 당신의 정신, 영혼이며, 그 수단은 도덕, 양심이자, 철학과 종교, 윤리이다. 이러한 영혼과 정신의 통제 관리를 통한 통제에 집중하는 권력을 푸코는 규율 권력이라 부른다.


4. ‘양심의 가책’이 병이다
 

근대 규율 권력은 당신의 영혼, 정신, 내면을 감시하고 처벌한다. 규율 권력은 더 이상 육체에 대한 폭력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그렇다고 육체적 폭력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근대 규율 권력은 영혼과 정신을 철학적,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으로 통제, 관리한다. 푸코가 말하는 규율 권력은 외적 강제의 내면화를 통해 정신과 영혼에 직접 작용한다. 이 외적 강제의 내면화란 이른바 양심의 가책이란 이름 아래 작동하는 죄책감, 자책감이다. 이는 저 유명한 19세기 말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주장으로, 니체는 인간은 자신의 분노를 외부의 정당한 대상에게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없을 때, 이 부정적 에너지, 분노의 투사 방향을 안쪽으로 돌려 자기 자신을 탓하고 괴롭힌다고 말한다(이것이 『도덕의 계보』(1888)의 내용이다). 이는 일단 개인의 내면에 죄책감이 심어지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알아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가령, 미국 인구 중 흑인의 비율은 대략 10% 정도인데, 실제 범죄자, 사형수,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 중 흑인의 비율은 10%를 훨씬 상회하여 20-30%에 이른다. 이러한 통계 결과를 보고, 가령 어느 백인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마도 이를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말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일까? 오히려 그것은 미국의 백인 중심 사회가 얼마나 흑인을 차별하고 범죄와 죽음으로 몰고 가는가, 백인 중심 사회의 지배 권력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제시대 자살과 범죄, 사형수들 중 조선인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아마 조선인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을까? 이는 조선인들의 인종적 열등성을 나타내는 지표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5. ‘내 탓이오!’ 혹은 도덕주의 - 사회적 모순의 개인화ㆍ파편화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미국의 흑인들, 일제하 조선인들 중 거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러한 일의 이유를 자신의 개인적 과오와 부족함, 도덕적 성실성의 결여에서 찾을 확률이 대단히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죄책감, 자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이 사회적 모순을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로 잘못 환원할 위험성을 갖는다는 점이다(이러한 관점은 물론 이들 개인 각각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거나, 그들에게 개인적 도덕적 잘못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분명히 개인적 결함과 도덕적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한 집단에서, 가령 100명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10-20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가령 80-90명이 유사한 현상을 보인다고 할 때, 이는 이미 어떤 개인의 도덕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문제이다. 결국 잘못의 개인적 부분을 강조하는 도덕주의는 사회적 모순을 가리고, 문제의 초점을 잘못된 방향, 즉 오로지 ‘개인적 도덕성과 성실성’의 문제로 몰고 간다. 네게 일어난 문제의 근원을 밖에서 찾지 말고, 네 안에서 찾아라!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무조건 안에서, 내 안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안에서 찾을 것은 안에서, 밖에서 찾을 것은 밖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모든 것에 대해 늘 항상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분노할 것은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무조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 것은 긍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볼 것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눈 감은 맹목(盲目)이 아니라, 눈 뜨고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6. 감시와 처벌, 내가 나를!

 
감시와 처벌이 지배하는 푸코적 규율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히 누군가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 사회는 모두가 모두를, 항시적으로 늘, 전혀 예외 없이, 감시하는 완전 통제 사회이다. 규율 사회는 사소한 것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사회이다. 규율사회는 이른바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고, 정상이 아닌 것 곧 비정상적인 모든 것을 너와 내게서 무한히 제거하는 사회이다. ‘정상화하는 규율’이 무서운 점은 그 사회가 어떤 하나의 보편적 정상을 정해놓고, 그것과는 다른 모든 것을 틀린 것, 잘못된 것, 비정상적인 것, 따라서 교정되어야 할 것,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너와 나 자신을 포함한 이 사회의 모든 것, 모든 사람이 감시와 처벌 그리고 교정의 대상이다! 그 시선,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너다, 네가 문제야!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 네가 뭐가 부족하니! 네가 지금 행복한 줄을 모르는구나! 감사할 줄을 모르고! 감히 네가, 나에게! 눈 부릅뜨지 마!” 그리고 이 비난과 힐난, 결국은 교정의 대상은 일상의 모든 것, 사소한 모든 것에 이른다. “너 신발이 그게 뭐니! 머리 스타일이 그게 뭐니! 누가 그런 옷 입으래! 귀걸이는 또 뭐고, 네가 학생이니! 다리 떨지 마라, 체신 없다! 남들이 흉본다, 똑바로 해라!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고, 눈길을 공손하고 가지런히! 걸음걸이도 복장도 단정하게! 밥 먹을 때 티비 보지 말고, 책 좀 봐라, 대답 잘하고, 핸드폰 좀 놔라, 방 청소 좀 하고, 공부 좀 해라, 대답 좀 잘 하고! 말투 봐라, 자세 좀 봐라!” 우리는 이렇게 일생 동안 혼나고, 감시받고 처벌 받고, 교정당한다.
 

7. “다르게 살자!” - 정상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 규율 사회의 정말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이른바 ‘억압-해방의 도식’을 따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즉, 가령 이전의 마르크스주의가 본 것처럼, 이러한 규율 권력이 감시, 처벌, 교정하는 대상이 피억압자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른바 ‘억압자’ 자신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친구를 비난하고 힐난하는 그 목소리, 그 시선이 바로 나 자신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그 목소리, 그 시선이다. ‘넌 도대체 왜 그러니’는 곧 ‘난 왜 이럴까, 난 왜 이것밖에 안 될까’로 변하고, 더 나아가 ‘아무도 내 연극을 못 알아차리는구나’에서 ‘난 역시 안 돼’를 거쳐, ‘난 왜 이렇지, 난 이것밖에 안 돼, 내가 싫다, 난 정말 혐오스러운 괴물이야, 아무도 내 진짜 본 모습을 몰라, 내 연극은 정말 완벽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아무도 내 가면 뒤에 숨겨진 나의 이 추악한 얼굴을 몰라, 하지만 내 가면 뒤의 본 모습을 보면 그들은 날 버릴 거야’로 나아가기 십상이다. 이 모든 자동적인 정신 과정, ‘바른 행동’을 낳는 정상화 메커니즘에 대항하여 푸코는 ‘다른 행동’을 낳는 문제화의 실천, 곧 대항품행을 제안한다. 문제화의 실천은 이토록 정상적인 그 모든 것을 문제의 대상으로 만드는 실천이다. 어떤 것을 우리가 문제로 삼기 이전에 그것은 당연한 것, 곧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왜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하는지 문제로 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유일한 당연, 보편적 필연이 아니라, 논쟁해볼만한 것, 문제의 대상, 문제인 것이 된다. 그것은 도대체 누가 그렇게 정한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당연한 것이 된 걸까? 이 모든 당연한 것들, 정상적인 것들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토록 당연한 것이 된 걸까?
 
 
 
"교육은 교정이 아니다."
 
 
 
2013.11.18.
 
 

2013. 11. 5.

미셸 푸코의 생명 정치


 
1. 푸코와 권력의 문제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대략 1970년을 전후로 이전의 이른바 자신의 ‘구조주의적’ 혹은 광의의 언어학적 시기를 마감하고, 니체적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권력의 시기’로 접어든다. 물론 푸코 스스로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 이전 시기의 푸코가 과연 구조주의자였는가의 여부는 이 자리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여하튼 푸코는 1970년을 전후로 변화 혹은 변혁의 이유와 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공시적인 혹은 이른바 ‘정태적인’ 구조주의적 함축을 지양하고, 권력의 문제에 집중한다. 푸코의 권력에 대한 이러한 천착은 대략 1970년 말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되는 이후의 이른바 ‘주체 혹은 윤리의 시기’가 시작되는 1980년의 인터뷰에서조차 스스로 “근본적으로 나는 오직 권력의 역사만을 다루었을 뿐입니다.”라는 발언을 가능케 할 만큼 푸코 사유의 근본적 지향점들 중 하나였다. 푸코는 1976년 언어학으로부터 권력에로의 이러한 전환을 ‘의미 관계들이 아니라, 권력 관계들’(Relations de pouvoir, non relations de sens)이라는 말로써 정리한 바 있다. 물론 이 권력의 시기를 대표하는 동시에 그의 대표적인 주저로 보아야만 할 1975년의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Surveiller et punir. La naissance de la prison)이 바로 그러한 것처럼, 권력의 문제는 푸코의 사상 중 가장 독창적인 동시에 논쟁적인 주제임에 틀림없다. 이 시기 푸코 권력관은 단적으로 1970년대 초 이래 푸코가 사용하기 시작하는 권력-지식(le pouvoir-savoir) 및 그 기초로서의 권력 관계들(les relations de pouvoir)이라는 용어로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속하는 푸코의 이른바 생명정치(le bio-pouvoir) 개념은 바로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다.
 
2. 전통적 권력관(觀) 비판


푸코는『감시와 처벌』을 통해 권력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다. 이 때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기존’ 관념들이란 단적으로 플라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정치사상이라는 세 가지 권력관을 일컫는다. 우선 플라톤주의는 진리와 권력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본다. 곧 권력은 본성적으로 권력이 진리를 굴복시키려하는 억압적 측면을 가지고 있고, 진리는 그것에 굴종, 중립, 거부 혹은 초연하는 등의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의 ‘해답’은 진리를 이해하는 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쥐어야만 한다는 이른바 철인정치론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단적으로 지배계급이 어떻게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리에 복종할 수 있는가를 다룬 이론이다. 다음으로 근대의 자유주의적 권력관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기초적 배경 위에 상행위 및 시민적 자유를 첨가한다. 물론 이에는 사목적 권력(le pouvoir pastoral) 및 공안(公安, la police)의 개념을 포함한 다양한 근대의 통치 기술들이 포함된다. 이에 더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늦었지만 당시 1970년대의 유럽, 좁게는 프랑스 사회 안에 사는 푸코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권력관은 물론 사회주의의 권력관이다. 사회주의적 권력관 역시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위험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관계로 본다. 곧 사회주의의 권력관은 단적으로 그것이 표방하는 ‘진리-이데올로기’ 사이 대립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진리는 과학성을 담보한 세계에 대한 올바른 반영으로서의 인식이며, 그것이 계급적 이해관계 곧 허위의식에 의해 가려진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물론 푸코는 이러한 세 가지 기존 관념들을 모두 논파하고자 하지만, 우선 스스로 이 모든 것의 중핵에 위치한다고 보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공격한다. 1973년 푸코는 브라질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일련의 논문들을 모은 「진리와 사법적 형식들」(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을 통해 플라톤주의의 진리-권력관을 비판하며 자신의 권력-지식론의 단초를 내비친다. “[플라톤 이래] 서양은 진리가 결코 정치적 권력에 속하지 않으며, 정치적 권력은 눈먼 것이라는 거대한 신화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 플라톤과 함께 서양의 거대한 신화 하나가 시작되는데, 지식과 권력 사이에는 이율배반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을 포기해야만 한다. 지식과 학문이 자신의 순수한 진리를 찾는 곳에는 더 이상 정치적 권력이 존재할 수 없다. / 이 거대한 신화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모든 지식, 모든 인식의 뒤에서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권력 투쟁이라는 점을 보임으로써 니체가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신화이다. 정치적 권력은 지식의 결여가 아니며, 지식과 함께 짜여 지는 것이다.”
 
이제 푸코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두 가지 근대적 권력관으로서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권력관을 고찰한다. 한편 푸코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이렇게 권력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것은 ‘우리의’ 현실이자 과거인 파시즘스탈린주의의 존재이다. 푸코는 이들을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 혹은 두 가지 병리학적 형태라 부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이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주된 철학적 자원들 중 하나로부터 기원하는 ‘우리 정치적 합리성’의 관념 및 절차를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 “칸트 이래로, 철학의 역할은 이성으로 하여금 경험 내에 주어진 것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시대 이후, 즉 근대 국가 및 사회의 정치적 관리의 발전 이후, 철학은 또한 정치적 합리성의 과잉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이 ‘질병들’ 아래에 놓여있는 것은 합리성 혹은 정치적 합리성 자체의 문제이다. 이 ‘질병들’은 칸트 이래의 국가 이론 내에 존재하는 근대적 정치적 합리성에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고유하게 근대적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확립되어야 할 것은 근대 정치적 합리성의 기제를 분석할 수 있는 권력 관계의 새로운 경제이다. 오늘날 권력은 다름 아닌 합리성 곧 진리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질병들’에 관련된 오늘날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다름 아닌 적절한 분석 도구의 결여이다. 권력에 고유한 관계 양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분석의 도구를 발견하기 위한 첫 작업으로서 푸코는 기존의 권력 개념들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아래에서 나는 푸코의 이러한 탐구를 사법적 유형, 선험적 주체의 유형, 이데올로기적 유형, 경제적 유형 및 총체성의 유형이라는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푸코는 기존의 플라톤주의ㆍ자유주의ㆍ사회주의의 권력관 일반을 관통하는 지점들을 포착ㆍ비판한다.
 
1) 첫째, 권력에 대한 사법적(juridique ou juriste) 관념이 있다. 이러한 관념은 권력을 순수히 그리고 배타적으로 부정적이며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사법적 권력은 “권력의 시니피에, 중심점, 권력을 구성시키는 핵심을 여전히 금지, 법률, 안 된다고 말한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한 번 “너는 해서는 안 된다”(tu ne dois pas)는 형식, 공식에 둔다.” 권력 심급의 이러한 금지 법률에로의, 혹은 “주인 형상”에로의 환원은 다시 세 가지 주요한 역할을 갖는다. 이 환원은 권력이 가족, 국가 및 교육·생산 관계 등 우리가 위치해 있는 몇몇 수준들에 동질적이라는 권력 도식을 유효한 것으로 만든다. 그 결과로 권력은 순수히 배타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서 인식된다. 억압, 거부, 한정, 장벽, 검열, 금지. 간단히 말해, 이러한 환원 안에서 권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법에로의 환원”은 “권력의 근본적 작용을 법의 언표, 금지의 담론 등과 같은 하나의 발화 행위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권력의 행사는 ‘너는 해서는 안 된다’는 순수한 형식을 꿈꾼다.” 권력의 사법적 관념은 권력의 순수히 부정적 관념인 억압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에 대한 억압적 관념은 권력의 긍정적 측면을 포착하게에는 전적으로 부족하며 불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억압을 그 기능으로 하는 하나의 부정적 심급”으로서보다는 “모든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생산적 그물망”처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틀을 찾아내야만 한다.
 
더욱이 권력의 사법적 관념 안에는 항상 군주(souverain)와 신민(sujet)이라는 두 개의 주체가 존재한다. 사법적 권력 모델의 본질적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권력을 합법화 시켜주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사법적 관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라는 수단을 통한 권력의 합법화ㆍ정당화ㆍ합리화의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의 형식은 하나의 권력 표상 체계이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권력을 금지의 심급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는 일종의 이중적 주체화를 행하게 된다. “그것이 수행되는 측면에서, 권력은 마치 아버지, 군주, 일반의지의 절대권(souveraineté)처럼 금지를 말하는 일종의 - 현실적, 상상적 혹은 여하튼 순수하게 사법적인 - 절대적 주체로서 이해된다. 권력에 복종하는 측면에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금지의 승인이 이루어지는 지점, 우리가 권력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라 말하는 지점을 결정함으로써 권력을 ‘주체화’(subjectiviser)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절대권의 수행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자연법의 포기, 혹은 사회 계약, 혹은 주인의 사랑을 전제하는 것이다.” 사법적 권력 개념에서 관계의 두 당사자인 군주와 신민은 각기 하나의 선험적 주체 혹은 실체로서 이해되어 있다. 이를 푸코는 다음처럼 요약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권, 즉 법, 금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은 정치 철학입니다. 왕의 머리를 잘라야 하며, 우리는 아직 정치학 이론에서 이 일을 수행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푸코에 따르면, 부르주아의 흥기 이후, “서양은 사법적 체계, 법적 형식이외의 어떤 권력 분석·형성·표상의 체계도 갖지 못했다.” 한편 부르주아지야말로 근대의 대표적 계급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사법적 형식은 근대에 고유한 권력 형식이자, 이 시기의 대표적 권력 형식이다.
 
2) 이러한 사법적 권력 개념으로부터 권력에 대한 두 번째 전통적 형식이 탄생한다. 이는 선험적 주체의 관념에 기반한 권력 형식이다. 이는 고전 철학의 전통적 주체 개념을 전제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의해 대표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이론들에서 우리는, 주체의 요청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형식의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다. 푸코는 실체로서의 주체로서 간주되는 개인을 전제하는 이런 선험적 주체의 아 프리오리한 이론을 거부한다. 그런데 이 개인은, 그것에 대해 권력이 행사되고 달려드는 어떤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특성, 정체성, 자기에로 향하는 주형작업과 함께 신체, 복수성, 운동, 욕망, 힘들 위로 행사되는 권력 관계의 생산물”이다. 푸코에게 있어서의 주체는 단지 복수적이며 복합적인 권력 관계들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효과, 생산물에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 권력에 유용한 혹은 저항하는 하나의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인식 주체의 행위가 아니다. 주체는 하나의 목표에 관련되어 스스로를 구성한다. 더욱이 주체-지식-대상(sujet-connaissance-objet)의 삼중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용은 본질적으로 상호적 과정이다. “인식하는 주체, 인식되어야 할 대상 및 인식의 양태들 역시 권력-지식 및 그것의 역사적 변형이라는 이 근본적 함축의 효과들이다.” 우리는 따라서 자유롭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하나의 주체로부터 권력을 분석할 수 없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는 인식 및 주체의 우위라는 관념에 기초한 권력의 옛 개념을 포기해야만 한다.


3) 권력에 대한 세 번째 전통적 견해는 이른바 진리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립에 기초해 있다. 물론 이러한 관념은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주장들 중 하나이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푸코는 마르크스주의가 반성되지 않은 근대적 곧 19세기적 국가 철학의 관념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은, “순진하게도”, “고전 철학을 모델로 삼고 있으며 권력이 탈취하고자 하는 의식을 부여받은” 하나의 인간 주체를 전제하고 있다. 1976년의 한 대담에서 푸코는 이데올로기 개념과 관련된 난점들을 다음처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나에게 이데올로기라는 관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사용하기 곤란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관념이 이른바 진리라는 어떤 것과의 잠재적인 대립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제 생각에 문제는 하나의 담론 안에서 과학성, 진리에 속하는 것과 다른 것 사이의 구분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떻게 그 자체로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하나의 담론 내부에서 진리 효과가 생산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적절치 못한 점은 그것이 내 생각에는 필연적으로 주체와 같은 무엇인가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물질적 결정요소 혹은 하부구조로서 기능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말미암아, 이른바 진리-이데올로기의 대립 쌍은 푸코에 의해 ‘현재의’ 정치 현상을 분석하기에 무능력한 것, 부적절한 것으로 판정된다. 진정한 정치적 질문의 대상은 이데올로기, 소외된 의식, 환상, 오류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합리성진리 그 자체이다. 이렇게 해서, 지식인에 있어서의 정치적 문제는 더 이상 “과학에 연관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진리의 정치학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알아내는” 것이며, “진리 생산의 제도적, 경제적, 정치적 체제를 분석하는” 것이다.
 
4) 권력에 대한 네 번째 전통적 관념은 경제주의(l'économisme)이다. 1976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푸코는 “정치적 권력의 사법적자유주의적 개념, 즉 18세기 사상가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개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개념 혹은 여하튼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이라 할 만한 현재의 일정한 개념 사이의 일정한 공통점”에 대해 언급한다. 경제주의는 자유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권력 개념의 공통요소이다. 18세기 혹은 보다 정확히는 계몽에 대한 언급을 통해 푸코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가 모두 근대 계몽주의 경제사상의 아들들임을 명확히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주의는 근대 권력 이론의 대표적 양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제주의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우선 자유주의적 경제주의는 근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사법적이며 계약론적인(contractuelle)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경제주의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소유물, 재산으로 간주된다. “권력에 대한 고전주의의 사법적 개념에서 권력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권리, 소유 가능한 하나의 재산, 그리하여 우리가 계약 혹은 양도 명령에 해당하는 어떤 사법적 행위 혹은 입법 행위에 의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이전되거나 박탈당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간주된다. 권력은 구체적인 것, 모든 개인이 하나의 정치적 주권을 구성하기 위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보유하거나 양도할 수 있는 무엇이다. 따라서 이 모든 이론 전체에 걸쳐 드러나고 통용되는 권력과 재산, 권력과 (富)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유비가 있다.” 하나의 소유하거나 박탈당할 수 있는 권리 혹은 재산으로서의 권력. 경제주의는 본질적으로 계약 및 교환의 질서라는 사법적 작동의 모델 위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정치권력은 근본적으로 교환 및 재산·재화 순환의 경제학 안에서 자신의 전범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으로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주의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주의는 푸코가 권력의 경제적 기능 작용이라 부르는 것 안에 속하는데, 이는 “생산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생산력 전유의 발전 및 고유한 양식을 가능케 하는 계급 지배를 연장시키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개념이다. 정치권력은 경제 안에서 자신의 구체적 형식 및 현재적 기능의 원칙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존재이유를 발견한다. 간단히 말해, 마르크스주의에는 상부구조로서 간주되는 정치권력에 대한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의 우위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권력 개념 양자에는 공히 일종의 경제주의 혹은 경제적 환원주의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막론하고, 이 경제적 환원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의 다음의 것이다. “권력 분석은,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경제로부터 추론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푸코의 대답은 물론 부정적이다. 푸코는 경제주의와 연관된 제 문제점을 일련의 질문들로 요약한다. “첫째, 권력은 경제에 비해 언제나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가? 권력은 본질적으로 그 목적과 존재 이유에 있어 경제에 봉사해야 하는가? 권력은 경제를 움직이게 하고 이 경제에 특징적이며 그 기능에 본질적인 관계들을 견고하게 만들고 유지시키며 연장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가? 두 번째 질문 : 권력은 상품의 모델을 따라 형성되어야 하는가? 권력은 소유되고 획득되며 계약 혹은 힘에 의해 양도되고 포기되며 회수되고 순환되며, 어떤 지역에는 공급되고 또 어떤 곳에는 회피되어야 하는 어떤 것인가? 혹은 비록 권력 관계들이 경제적 관계들 안에서 혹은 그러한 관계들과 함께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해도, 또 비록 사실상 권력 관계들이 언제나 경제 관계들과 함께 일종의 결합 혹은 고리를 구성한다 해도, 이 경우, 경제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분리 불가능성은, 기능적인 종속의 질서 혹은 형식적 동형성의 질서가 아니라, 정확히 서로 분리되어야만 할 또 다른 하나의 질서가 아닐까?”
 
요약하면, 권력의 ‘권력 아닌 것’, 즉 이 경우에는 ‘경제’로부터의 자율성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 이는 결국 권력의 비(非) 경제중심주의적 분석의 가능성을 묻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새로운 관념을 수립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푸코에게 있어 니체에 의해 처음으로 설정되었던 새로운 권력 개념에 기초한 새로운 권력 분석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론 안에서 권력의 형성 구성, 기능, 이른바 권력의 ‘본성’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설정될 것이다.
 
5) 권력에 대한 다섯 번째 전통적 관념은 권력에 대한 총체성(la totalité) 혹은 총체화(la totalisation)의 관념이다. 권력에 대한 이러한 유형의 고찰은 언제나 전체주의적 이론에 고유한 억제 효과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된다. 즉 이러한 이론들에서 권력은 언제나 포괄하며 포섭하는 것으로서 바라본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 및 마르크스주의는 집중화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집중화되어 있는 이론들이다. 스스로를 권력 이론의 전위로서 선언하는 이러한 총체성의 담론들은 언제나 한편으로는 모든 권력 관계에 선행하며 하나의 주어진 실체로서 이해되는 아 프리오리한 주체 혹은 개인을, 또 한편으로는 억압을 그 본질로 하는 또 하나의 절대적 실체로서의 국가 기구(appareil d'Etat)를 전제한다. 이렇게 해서 총체성의 담론은 자신의 분석을 사실상 권력의 거시적(macro) 즉 국가적 차원에로 한정한다. 이를 푸코는 정치 분석에 있어서의 국가 기구의 우위라 부르는데, 이러한 우위 혹은 한정의 결과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사법적 상부구조로서 이해되는 권력의 보존과 재생산이다. 따라서 이러한 총체화 담론은 권력의 미시적 수준, 즉 “일련의 점점 더 미묘해지는 미시적 권력들”로서의 미시 권력(le micro-pouvoir) 혹은 하부 권력(le sous-pouvoir)을 구분해 낼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푸코가, 들뢰즈의 표현처럼, “우리가 ‘미시적’이라는 말을 가시적인 혹은 언표 가능한 힘들의 단순한 미니어처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영역, 하나의 새로운 관계 유형, 지식에로 환원할 수 없는 사유의 차원”, 즉 “항상 움직이고 있으며 고정시킬 수 없는 관계들”로서 이해한다는 조건 하에, 권력이 하나의 미시물리학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이 권력의 미시물리학(la microphysique du pouvoir) 안에 “부차적인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분석은 권력의 국지적(locale)이고 지역적(régionale)이며 특수한(spécifique) 분석 위에 새로이 기초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권력에 대한 푸코의 이러한 미시 분석이 그것의 거시적 차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권력의 거시적 측면을 미시 권력의 ‘보다 가시적이지만, 사실상은 더 부차적인’ 하나의 파생적 측면으로서 바라본다. “국가는 그것의 사법적, 군사적 및 여타의 거대 기구들과 함께 오직 주된 길과는 다른 운하를 통과하는 권력의 모든 그물망에 대한 뼈대, 보증을 표상할 뿐이다. [...] [국가는] 물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적 단위는 근본적으로는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이 지역적이고 특수한 권력들에 대해 부차적”이다. 간단히 말해, 푸코는 “국가가 전혀 다른 차원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구성하는 무수한 톱니바퀴 및 초점들에 의해 생겨나는 어떤 다수성의 결과 혹은 하나의 전체적 효과처럼” 보이게 되는 새로운 그림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마치 물리학 이론에서 상대성 이론이 전통적인 뉴턴 물리학의 모든 측면을 하나의 특수한 경우로서 포괄하는 것처럼, 미시 권력 역시 거시 권력의 모든 측면들을 자신의 특수한 하나의 경우로서 포괄한다. 우리는 이를 거시 권력에 대한 미시 권력의 우위라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이 미시 권력의 관점을 권력 관계들에 기초한 권력-지식이라는 새로운 권력의 작용 체계에 대한 정합적이고도 완전한 설명을 1975년의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다.
 
3. 권력 관계들, 권력-지식
 
푸코의 주된 철학적 기획들 중 하나는 주체·대상·인식·신체·영혼·지식·국가 등 전통적으로 실체(substance)로서 간주되었던 일련의 사물 혹은 현상들을 문제화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과 관련하여 이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전통적인’ 실체로서의 권력 개념이다. 권력은 역사적으로 생성되고 구성된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권력 분석 작업에로 귀결된다. 실체가 아닌 이 새로운 권력은 고립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요소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국지적·지역적·관계적이고, 유일성이 아닌 다수성ㆍ복수성을 그 성질로 가지며, 동질적이지 않고 이질적이다. 푸코는 이러한 비실체적이며 언제나 다수적·복수적인 권력을 권력 관계들(les relations ou rapports de pouvoir) 혹은 힘 관계들(les rapports de forces)이라 부른다. 아래에서는 이 권력 관계(들)의 몇 가지 특징들을 알아보자.
 
1) 우선, 권력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며, 차라리 하나의 관계 혹은 일련의 관계들이다. 푸코는 자신의 새로운 권력론의 철학적 기초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권력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대문자로 시작되는 이른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권력, “그것은 행사되는 것이며, [...] 오직 행위 안에서만 존재한다.” 권력 혹은 권력 관계는 “다른 것들에 대해 직접적 혹은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작용하는 하나의 행동 양식”(un mode d'action qui n'agit pas directement et immédiatement sur les autres, mais qui agit sur leur action propre) 혹은 “행동에 대한, 실제적 또는 현실적인, 미래의, 현재의 행동들에 대한 하나의 행동”(une action sur l'action, sur des actions éventuelles, ou actuelles, futures ou présentes)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2) 따라서 권력은 단수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다수·복수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주어진 특정 시간, 특정 공간 내에 존재하는 각각의 권력은 자신만의 특수한 규칙들을 갖는다. 간단히 말해, “어떻게 그것[권력]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탄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가 상이한 권력들이 이루어내는 하나의 군도(群島)인 한, “권력에 대해 말하고자” 그리고 “그것들[권력들]을 각자의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 안에서 국지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3) 권력의 이러한 복수적ㆍ다수적인 동시에 특수하고 지역적인 특성은 권력의 이질성( l'hétérogénéité)이라는 권력 관계의 또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전통적 권력 개념 안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동질적인 어떤 것, 즉 거시권력으로서의 국가적인 것, 국가에 귀속되는 것으로서 이해되었다. 권력 관계 안에는 다만 다양한 수준의, 혹은 무한한 수의, 이질적이고 상이한 미시권력들, 작은 권력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권력 관계들은 서로서로에 대해 이질적이다. 따라서,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심급과 같은, 어떤 유일한 최종적 심급에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이질적 장들의 집합이 존재한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감옥, 광기, 안전, 보건, 위생, 성, 의학, 인구 등의 생명 정치적 테크놀로지들은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그러한 것들의 존재 혹은 중요성이 마르크스주의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이 푸코 이론이 오늘날 그토록 ‘각광받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권력에 대한 하향적이 아닌 상향적 분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들뢰즈가 권력이란 “오직 자기 회랑의 망, 다수의 자기 땅굴만을 알아보는 두더지”이며, 이 두더지는 ”무수한 지점으로부터 움직이면서”, “밑으로부터 온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4) 권력 관계들은 소유물이 아니라 효과이다. “이 권력은 소유된다기보다는 행사되는(s'exerce) 것이라는 것, 그것이 지배 계급에 의해 획득 혹은 보존되는 ‘특권’이 아니라, 그 전략적 위치들의 집합이 갖는 효과(l'effet d'ensemble de ses positions stratégiques), 지배받는 자들의 위치에 의해 드러나며 때로 동반되는 효과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통적 의미의 ‘권력’이 사실은 언제나 권력-지식의 효과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효과로서의 권력은 전통적 개념 안에서 권력의 행위자 혹은 후견인 또는 보증인의 역할을 수행했던 실체적 혹은 선험적 주체, 혹은 개인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가 및 권력과 마찬가지로, 개인 역시 실체가 아니며, 다만 그것을 생산하는 권력 관계의 가시적인 그러나 부차적인 하나의 효과일 따름이다. 이제 권력에 대한 전통적 삼위일체-,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개인, 실체로서의 권력, 권력이 행사되는 장소로서의 국가-는 파괴되고, 개인화(정상화)-권력 관계들-국가화(l'individualisation(normalisation)-des relations de pouvoir-l'étatisation)라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이러한 ‘전략적 위치들의 집합이 발생시키는 효과’로서의 권력 관계에 대한 빼어난 사례는 벤담(J. Bentham, 1748-1832)이 고안한 판옵티콘(le panoptique)이다. 판옵티콘 혹은 일망감시체제(一望監視體制)에서, 우위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요소들의 위치들 혹은 배치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판옵티콘 안에는 어떤 절대적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권력이 “언제나 이미 그곳에”(toujours déjà l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결코 “바깥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5) 이러한 절대적 지점의 부재로부터 주어진 권력 관계들 안에서의 전략적·전술적 위치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위상학이 탄생한다. “권력 관계들”이란 표현은 사실상 “우리가 언제나 서로서로에 대해 전략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푸코는 이런 의미에서 전략을 “권력 관계들 안에서 작동하는 기제들”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에는 소유자 혹은 행위자가 없으며, 각각의 우선적 목적들이 갖는 상이한 효과 및 그 효과의 유용성으로부터 탄생하는 일정한 수의 전략들이 존재할 뿐이다. 서로서로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며 변형시키는 것은 언제나 주어진 특수한 상황 내에서의 전략적 배치들이다.
 
4. 생명정치와 공안
 
규율적 권력은 “외부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규범화 혹은 정상화하는 권력이며, 전방위적인 규율적 사회 관리 체계이다. 정상화(normalisation)란 단적으로 푸코가 말하는 권력 테크놀로지의 모든 부정적 효과들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로서, 규범화ㆍ규격화ㆍ표준화ㆍ획일화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우리 사회에서, “규범성 혹은 정상성의 심판관은 [...]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교수-심판관, 의사-심판관, 교육자-심판관, ‘사회 노동자-심판관’, 이들 모두는 규범적인 것 혹은 정상적인 것의 보편적 지배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각자는 자신의 신체, 태도, 행위, 행동 양식, 재능, 성과를 이에 복종시키는 지점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감시받고 처벌하며, 감시하고 처벌한다. 누가 누구를? 우리가 우리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이렇게 규율적인 동시에 공안적인 일망감시적 근대사회는 타인과 자신을 ‘정상화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서로서로 닮도록 하라.” 그리고 이러한 근대적 정상화의 테크놀로지는 역사 속에서 근대 자유주의(liébralisme) 및 푸코가 말하는 생명 정치의 관념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푸코는 생명 정치를 다음처럼 정의한다. “건강, 위생, 출생, 장수, 인종 등과 같이 18세기 이래 우리가 인구(population) 안에서 구성되는 생명체들 전체에 고유한 현상들에 의해 나타나는 통치적 실천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식들.” 이는 다시 16-17세기 이래 유럽에 나타난 통치 기술로서 ‘한 영토 안에 존재하는 인구 전체의 복지’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려는 공안(公安, la police)의 관념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 la police라는 용어는 오늘날 일어로서 우리가 이해하는 경찰 혹은 그러한 제도라는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인구의 총체적 복지’를 책임지는 공안학(Polizeiwissenschaft)은 결혼ㆍ출산ㆍ생존을 총괄하여 관리하는 의학적ㆍ행정적 국가적 관리 시스템의 탄생을 가져온다. 정신의학과 우생학이라는 기획은 19세기 후반 이 분야의 두 가지 중요한 혁신이다. 이것이 푸코가 말하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서양을 지배해온 생명 권력의 실체이다. 생명 권력이란 이렇게 18세기 말 이래 유럽에서 발달한 자신의 영토 안에 속하는 모든 인민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인구, 생명, 건강, 안전을 총괄 관리하는 국가 관리 시스템, 곧 공안 정책을 일컫는다. 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현대의 복지 국가의 이론적 시초이며, 동시에 부정적으로 국가에 의한 인민의 전면적 관리 통제 사회의 시초로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푸코의 생명 권력에 대한 이해는 권력-지식론에 입각한 것으로 그 부정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 권력은 생명에 대한 곧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le pouvoir sur la vie)이다.
 
5. 생명 권력 -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
 
푸코에 따르면, 군주권의 특징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생명과 죽음의 권리(droit de vie et de mort)이며, 이는 사실상 “죽게 만들거나, 살도록 내버려두는 권리”(droit de faire mourir ou de laisser vivre)이다. 이는 ‘칼’로써 상징되는 권리로서, 이때의 권력은 주로 징수의 수단, 갈취의 기제, 일부분의 부를 전유할 권리, 피지배자들로부터 생산물, 재산, 봉사, 노동, 그들의 피를 강제로 빼앗는 역사적 관행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권력은 무엇보다도 물건, 시간, 육체,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로서 특히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서 그 절정에 달하는 권리이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 이후, 징수는 더 이상 권력의 주된 기제가 아니며 다만 피지배자들에 대한 선동, 강화, 통제, 감시 그리고 그들의 생명 및 물자의 최대한의 활용 및 조직화 기능을 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경향이 보인다.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기 이후 서양에서는 여러 세력들을 가로막고 축소시키고 파괴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것들을 낳고 키우며 조직하는데 더 몰두하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 강조점은 죽음의 권리에서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의 요청에 상응하는 혹은 적어도 상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권리에로 이동한다. 죽음의 권리는 이제 “생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다시 말해 생명을 관리하고 최대한으로 생명을 이용하여 확장하고, 생명에 대한 정확한 통제와 전체적 조절을 행사하고자 하는 권력” 곧 생명 (관리ㆍ통제) 권력, 곧 생명과 생존, 육체와 종족의 관리자로서의 권력의 한갓 보조물로서 이해된다. 이러한 논리 아래에서는 사형제도조차 어떤 인권 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의 잔악성, 교정 불가능성 그리고 사회의 안녕과 안전을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이해된다. ‘죽게 만들던가 살게 내버려두는’ 이전의 권력은 이제 개인을 ‘살게 만들던가 죽음 속으로 추방하는’ 권력(un pouvoir de laisser vivre ou de rejeter dans la mort)이 된다. 마찬가지 논리에 의해, 자살조차도 근본적으로 군주와 그를 보증하는 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이전 시대의 논리를 뚫고 생명에 행사되는 권력의 경계와 틈새를 비집고 나타난 개인적이고 사적인 권리의 일부로서 이해된다. 사형제도와 자살은 이처럼 근대 생명 권력이 가능케 했던 하나의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인 현상이다.
 
푸코에 따르면 17세기 이래 두 가지 주요한 형식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하나는 기계로서의 육체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서 이는 “육체의 조련, 육체적 특성에 대한 최대한의 활용, 체력의 착취, 육체의 유용성과 순응성의 동시적 증대, 육체의 효률적이고도 경제적인 통제 체제로의 통합 및 이 모든 것의 규율을 특징짓는 권력의 절차” 곧 인체의 해부정치학(anatomo-politique du corps humain)이며, 또 다른 하나는 종(種)-육체(le corps-espèce) 곧 생명의 역학이 스며들고 생물학적 과정의 전반을 통해 주축의 역할을 하는 육체를 중심으로 하는 인구의 생명 정치학이다. 이러한 육체의 규율인구의 조절, 혹은 육체의 조절생명의 계산적 통제라는 양대 원리는 서로서로를 형성하며 서로에 대해 상보적인 두 형식으로 생명 권력, 생명 정치학, 해부 정치학 생명 정치학(anatomo-politique et bio-politique)의 탄생을 가능케 한 두 결정적 요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성의 역사 혹은 섹슈얼리티의 역사는 하나의 생명 역사(bio-histoire) 곧 생명을 관리하고 통제해온 담론의 역사이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생명 역사 혹은 생명 권력은 정상화라는 하나의 중심을 돈다. “정상화하는 사회는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한 권력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효과이다.” 정상화 과정에서 정치적 쟁점으로서의 성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본질적으로 정상화하는 권력’이라는 배경 곧 생명을 중심으로 한 육체에 대한 미시권력(micro-pouvoir sur le corps)이라는 관점 아래에서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육체와 인구의 접합 지점에서 (le sexe)은 죽음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관리를 둘러싸고 조직되는 권력의 중심점이 된다.” 이처럼 성은 18세기에 들어 공안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성의 공안(police du sexe)으로부터 ‘금지의 엄격함이 아니라 유용하고 공적인 담론에 의해 성을 규제할 필요’가 나타난다. 이러한 기본적 관심에 의해 이제 인구가 당대의 중요한 정치경제적 문제로서 부각되며, “인구라는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의 핵심에는 성이 있다.”
 
6. 욕망의 억압에서 쾌락의 활용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생명정치의 조절 메커니즘 속에서 무력하게 관리되는 존재로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푸코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근본적으로 억압-해방의 가설에 입각해 있는 ‘욕망’ 개념의 폐기 및 ‘쾌락의 활용’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가령, 하나의 실체로서의 성이 존재하며,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실체로서의 권력과 조우하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 권력과 성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서로 결합되거나 혹은 거부되는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은 “권력이 육체 및 그것의 물질성, 힘, 에너지, 감각, 쾌락을 포착하는 가운데 권력이 구성하는 섹슈얼리티 장치 안에서도 가장 내적이고 가장 관념적이며 가장 사변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섹슈얼리티 장치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그 지점은 이른바 ‘생물학적 혹은 자연적이고도 본래적인’ 과 그것의 욕망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으로 구성된 결과물로서의 육체와 그것의 쾌락을 분석해야 한다. 따라서 “섹슈얼리티 장치에 대한 반격의 거점은 ‘성-욕망’(le sexe-désir)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le corps e les plaisirs)이어야 한다.”
 
이미 1976년에 발간된 『앎의 의지』에 등장하는 이 마지막 문장 안에는 이미 8년 후인 1984년 『쾌락의 활용』의 테제들이 배태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쾌락의 활용』에서 푸코는 『앎의 의지』와 달리 진리의 정치적 역사(histoire politique de la vérité)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제 욕망인의 해석학, 욕망인의 분석학, 욕망인의 계보학에 집중한다. 푸코의 입장에서 ‘욕망’이란 단어는 정신분석에서 그 단어가 여전히 주요한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사실에서 잘 보이는 것처럼 여전히 근본적으로 푸코가 비판하는 프로이트의 억압-해방 가설에 입각해 있는 것, ‘성-욕망’의 담론에 기초한 것이다. 자연적 생물학적 성과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육체와 쾌락이 문제이다. 욕망이 아니라 쾌락이다. 쾌락은 주어진 한 사회와 시기에서 일정한 진리놀이들과 함께 개인이 스스로를 주체로 구성하는 주체화 과정의 주요 요소인 동시에,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푸코는 이를 다시 타인에 대한 지배 및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의 관념과 연결시키면서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의 문제와 연관시킨다. 통치성은 이후 푸코의 사유를 자기와 자기 자신의 관계(rapport de soi à soi)를 의미하는 ‘윤리’라는 새로운 영역에로 이끌게 되는 개념이다. “자기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도 지배할 수 없다.” 이것이 푸코의 지식의 영역, 권력의 영역을 잇는 제3의 영역 곧 윤리(l'éthique)의 영역이다. 쾌락의 활용(usage des plaisirs, chrēsis aphrodision)이란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보이는 개념으로서, 푸코는 이를 육체에 대한 관계, 아내에 대한 관계, 소년들에 대한 관계 및 진리에 대한 관계라는 네 가지 영역을 통해 분석한다. 이는 다시 고대 그리스어에서 ‘성적 쾌락’을 의미하는 단어였던 ta aphrodisia 개념에 대한 분석과 겹치면서 “아프로디지아가 어떻게 도덕적 배려의 영역으로서 구성되었는가?”를 탐구한다. 푸코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도덕적 체험의 변형들을 이해한다면, 성적 엄격함은 법전(code)의 역사보다 더욱 더 결정적인 하나의 역사, 곧 개인을 도덕적 행동의 주체로서 성립시키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양식의 완성으로서 이해되는 윤리의 역사에 속한다.”
 
생명 정치는 다름 아닌 이러한 윤리의 역사라는 새로운 관점에 의하여 분석되고 조망되어야 한다. 이는 곧 한 사회가 스스로를, 한 개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인식과 윤리, 권력은 이렇게 서로 분리 불가능한 방식으로 얽혀있는 복합적인 그물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