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rson welles, the tragedy of othello: the moor of venice, 1952.
총체적으로 오해받고 있을 때 곧 규정당하고 있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이 어떤 행동과 말을 하건, 혹은 심지어는 아무 것도 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의도'는 동일한 대전제 아래에서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델로 효과. 그런데, 아는가? 사실은 오델로는 어느 16세기의 영국인이 고안한 베니스의 한 가상적 무어인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적 작품인 동시에, 인간 인식의 근본적 조건에 대한 작품임을. 하나의 대전제에 의해 하나의 세계만을 보는 존재. 이것이 바로 대전제를 넘나드는 철학 행위가 필요한 이유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오델로이다. 그것이, 마크 트웨인의 말대로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가진 같은 날 태어나 같은 날 죽은 다른 사람이든 혹은 베이컨이든, 셰익스피어라는 인간의 위대함이다.
* abbas kiarostami, nema-ye nazdik [close-up], 1990.
알랭 르네의 <나의 어머니, 나의 누이 그리고 나의 남동생을 살해한 나, 피에르 리비에르> 이후 정말 특이한 법정 영화. 실제 주인공들이 실제로 다시 나와 페이크 다큐멘터리 식으로 다시 찍은 것이 놀랍다. 특히 문제의 피고인은 영화에 관한 정말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키아로스타미가 <내 친구 집은 어디인가?>(1987) 이후 찍은 작품. 영화와 영화인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키아로스타미만이 만들 수 있었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