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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28.

올림피아드, 이교도의 축제

 







<고대올림픽> - 양병우

       
올림픽 경기는 기원전 776년에 창설되어 기원후 393년에 종말을 고하기까지 1168년의 역사를 겪었다(147).



* 에필로그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오랜 박해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아니 그 최후의 승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10년 뒤 로마 제국의 단독 지배를 건 결전에서 리키니우스는 고대의 신들에게 의지하고,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의 머리 글자를 그린 깃발 아래 싸웠다. 그 승리는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것이었다.


신들이 죽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짧은 치세(361-363년) 동안에 '신들의 부흥'을 기도한 율리아누스 황제의 노력도 헛된 것이었다. 그가 죽게 되자 "갈리리 사람아, 당신이 이겼다"고 말했다지만, 실은 "태양신이여, 당신은 나를 버리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대의 신은 그를 도울 힘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379년 황제로 추대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최후의 일격이 가해졌다. 카톨릭의 세례를 받은 그는 381년에 신들에게 희생을 바치거나 그것으로 점치는 것을 금지하였다. 신전에 참배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그때부터 신전의 파괴와 약탈이 시작되었다. 기본은 <<로마제국쇠망사>>에 "로마의 모든 속주에서 광신자의 무리들이 제멋대로 마구 평화로운 주민들을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고대의 가장 아름다운 건조물들의 폐허가 아직도 야만인들이 파괴한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야만인들만이 그와 같이 힘든 파괴를 할 시간과 성미를 가진다"고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제 293회 경기가 열린 393년에 테오도시우스는 올림피아의 제전을 금하였다. 그리고 426년에는 동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모든 신전의 파괴를 명령하고, 올림피아에도 파괴와 약탈의 손이 미쳤다. 그리하여 페이디아스의 걸작인 제우스 신상의 머리를 멀리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천 년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올림픽 경기가 그냥 사라지고 만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라질 리가 없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다시 금령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5세기 중엽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래 농민의 제식에서 나온 그 경기는 그때 다시 그들의 제식으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소원인 풍작을 위해 끈질기게 지속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177~179


***


1988년 지식산업사(발행인 김경희)에서 나온 정가 2500원의 이 책을 몇 년 전에던가 1500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첫장을 넘기니 내가 살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다음과 같은 헌사가 실려 있었다 ...

"박세직 위원장 혜감 - 김경희 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