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 (1885년 가을-1887년 가을)>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이진우
5[10]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뭔가 낯선 것을 알려진 것, 익숙한 것으로 환원하는 것. 첫 번째 기본 원칙 : 우리가 익숙해진 것은 우리에게 더 이상 수수께끼,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새로운 것, 낯설게 만드는 것에 대한 감정의 둔화 : 규칙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에게 더 이상 의심스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 탐색은 인식하는 사람의 제일 본능이다 : 물론 규칙의 확인으로써 ‘인식된’ 것은 전혀 없다! - 그렇기 때문에 물리학자들의 미신 : 그들이 고수할 수 있는 곳, 즉 현상들의 규칙성이 단축시키는 정식들의 적용을 허용하는 곳에서 그들은 무엇인가가 인식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안정성’을 느낀다. 그러나 지적 안정성의 배후에는 두려움의 진정(鎭靜)이 있다 : 그들은 규칙을 원하는데, 그것은 규칙이 세계에서 두려움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학문의 배후 본능이다. / 규칙성은 묻는(즉, 두려워하는) 본능을 잠들게 한다. “설명한다”는 사건의 규칙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법칙’에 대한 믿음은 자의적인 것의 위험성에 대한 믿음이다. 법칙을 믿으려는 선한 의지는 학문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특히 민주 시대에)
7[3] <제3장. 진리에의 의지> [...] C. 새로운 것은 공포를 일으킨다 : 다른 한편, 새로운 것을 새롭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포가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 경악은 약화된 공포다. / 낯익은 것은 신뢰를 불러 일으킨다 / ‘진실한’ 것은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 관성은 외부의 어떤 인상에도 우선 동일화를 시도한다 : 다시 말해서 인상과 기억을 동일한 것으로 만든다. 그것은 반복을 원한다. / 공포는 구분, 비교를 가르친다. / 판단 속에는 의지(그것은 그러그러해야 한다)가 일부 남아 있고 쾌락의 감정이 일부 남아있다(긍정의 즐거움 :) / 주의. 비교는 원래 활동이 아니라 동일하게 취급하기다! 판단은 원래 어떤 것이 이러이러하다는 믿음이 아니라, 어떤 것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의지다. / 주의. 고통은 가장 거친 형태의 판단(부정하는). / 쾌락은 긍정 / ‘원인과 결과’의 심리학적 발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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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본질은 공포와 불안의 해소라는 이 말.
내가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공포를 주며 나의 정체성과 안전을 위협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모르는 것,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미 내가 아는 것, 이해하는 것, 곧 위험하지 않은 것, 안전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고자 하는 인간의 활동이 앎과 지식, 진리와 학문의 본질적 동기라는 니체의 이 말.
앎, 인식이란 내가 아닌 것, 나와 다른 것, 내가 알지 못하고 사실은 알 수 없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라는 도식 속에 집어넣어 너를 잡아 먹어버리는 행위, 동일자에 의한 타자의 복속이라는 이 말.
니체의 이 말은 읽을 때마다 무릎을 치게 만든다!
레비나스의 "윤리는 타자로부터 온다."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로 읽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