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4.

자기 분석의 테크닉 2

행복을 상상하지조차 못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불행이다. 이는 마치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이 세상의 모든 가정이 원래 다 불행할 거라고, 가정 자체가 다 불행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 똑 같은 일이다.

그런데 내가 깨달은 것은 그러한 내게는 '당연'한 것으로, 심지어는 '자연'적인 것, '필연'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이 느낌이 만들어진 것, 구성된 것이며, 그리하여 적절한 치료, 치유 행위를 통해 사라질 수 있다는 위대한 심리학적 사실이었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 신화를 만들어 그 안에서 실제로 살고 있으며, 외적인 삶은 차라리 우연적이며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C. G. 융의 말은 만고의 명언이다.
나는 언제나 홀로 달 위 사는데, 핵심은 지구는 밝고 따뜻하고 사랑에 넘치며, 달에는 나밖에 없고 나는 외로움과 고통에 몸부림친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신화다.
그리고 그 신화를 정확히 알수록 사람은 자신의 신화를 새로 쓸 수가 있다. 나는 내가 나의 신화 안에서 불행하기 때문에 실제로 불행하며, 나의 신화가 신화임을 몰랐고, 심지어는 내가 그 안에서 나의 삶의 대부분 혹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나는 오늘 내가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그렇지 않은 상태에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는 그렇게 확실하고, 자연적이며, 필연적이고, 변경 불가능한 것, 바꿀 수 없는 것, 이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느껴오던 감정이나 이미지가 치료를 통해 실제로 사라져 버리는, 그리하여 다시는 돌아오지도, 생각조차도 나지 않게 되는 경험을 함으로써 그러한 사고가 '변경 가능한 것'임을 알았다.
나는 나를 더 정확히 알고, 나를 더 이해하면,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 배려, 그리고 삶에 대한 사랑과 살고자 하는 의지가 저절로 생겨나는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나를 더 알고자 한다.


나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멋으로 폼으로 혹은 치기어린 진지함을로 읽던 어린 시절의 그 불건강한 책들을 요즘 다시 본다. 아무리 늦었다라도 인간은 자신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다시 살 수 있다는 말은 정말 천하의 명언이다. 나는 그 당시 겉멋에 혹은 나름의 진지함으로 인상주의 시들, 이상, 전혜린, 니체, 카뮈, 지드, 콜리지, 워즈워드, 같은 사람들의 책들을 지금 생각하면 '병적인 방식으로' 읽었다.
당시 내가 읽은 니체와 카뮈는 오늘날 보면 완전한 오독이며 어이 없는 독서이다.
멋 있어지고 싶다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젊은이들 마음의 병에 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멋있어지고 싶다는 것, 아니 멋있게 보이고, 그것을 보아주는 자가 심지어 자기 자신일지라도, 싶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 묻는다.


정말 멋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내가 반농담 삼아하는 말이 하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하나다. 몸의, 그리고 특히 마음의, 건강이다.
남에게와 꼭 마찬가지로, 너 자신을 잘 알지 못하고 너에게 잘 해줄 도리는 없는 것이다. 너를 네가 모른다면, 너는 너도 남도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다. 너는 네가 행복한 만큼만 남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가 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우스개 말일 터인, '소크라베이컨'의 말 "너 자신을 아는 것이 힘이다"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란 사람의 내가 좋아하는 말 하나를 적으며 글을 마쳐본다.


"나는 자기에 대한 배려가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존재론적으로(=본질적으로) 우선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배려가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 윤리적으로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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