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4.
슬픔을 바로 느끼지 못할 권리
심리학의 연구들, 그리고 실은 나의 경험에 비추어 말해본다면, 인간은 그녀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조차 거의 대부분 그 즉시 슬픔 혹은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한 참다운 장례식, 곧 기억의 장례, 혹은 슬픔의 장례식은 한참을 지나서야 사실상 보통은 매우 오래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에게로 어느 순간 불현듯 찾아온다. 그런데 이 모든 말들의 뒤에는 하나의 철학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어떠한 '생각을 해야 한다'고가 아니라, 어떠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혹은 '느끼지 않았다'고 비난하거나, 혹은 느껴야만 한다'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일까?
감정은 생각이 아니며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감정은 수동적인 '정열' - 가령 영어로는 passive passion인데, passive와 passion, 이 두 단어의 어원은 같은 것으로, 바로 '당한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과 같은 용법에 여전히 살아있다 - 이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의 pathos가 갖는 의미이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선택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가, 혹은 질 수 있는가, 아니,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없다. 그러한 비난과 힐난의 심정은 이해하되, 그러한 심정에 합리성을 양보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것에 대해 슬픔을 느꼈다고 칭찬을 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인 것처럼, 아무도 누군가가 어느 순간에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고 그녀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처럼 철학은 당신의 죄책감 혹은 가장 깊숙한 영혼에 관여하는 그 무엇이다.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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