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드리히 헤겔, 『역사 속의 이성』, 임석진 옮김, 지식산업사, 1992.
“철학적 고찰은 우연적인 것을 떨쳐 버리는 것(das zufällige zu entfernen) 이외의 다른 어떤 의도도 갖고 있지 않다. 우연성이란 외적 필연성, 즉 그 자체가 한낱 외적 사정에 지나지 않는 원인에 귀착되는 필연성이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의 보편적 목적, 즉 세계의 궁극목적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지, 결코 주관적 정신이나 심정이 지닌 어떤 특수목적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도 이때 우리는 그 궁극목적을 이성을 통하여(durch die Vernunft), 즉 그 어떤 특수한 한정된 목적이 아닌 오직 절대적 목적에만 스스로의 관심을 두고 있는 이성을 통하여 포착해야만 한다. 이 절대적 궁극목적은 자기 자신에 관한 증거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이를 자체 내에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이 자기의 관심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그 속에서 스스로의 지주(支柱)를 마련하고 있는 그러한 내용이다. 이성적인 것은 즉자 대자적 존재자로서 모든 것은 이것을 통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지닌다. 이성적인 것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지만, 그러나 실로 정신 자체가 흔히 국민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형태 속에서 개진(開陳)되고 현현(顯現)되는 데서처럼 이성의 명백한 목적이 드러나는 경우는 없다. 이제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의욕의 세계(die Welt des Wollens)는 결코 우연에 내맡겨져 있지 않다는 믿음과 사상을 안겨주어야만 한다. 모든 국민이 겪어나가는 사건 속에서는 궁극목적이 지배적인 것이며, 또한 이성이 세계사 속에 있다는 것(Vernunft in der Weltgeschichte ist)-그러나 어떤 특수한 주관의 이성이 아닌 신적이며 절대적인 이성(die göttliche, absolute Vernunft)-이 우리가 전제로 하는 진리이거니와 이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 곧 세계사 자체의 논구이며, 다시 이 논구야말로 이성의 상(像)이며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본래적 증명은 바로 이성 그 자체의 인식(Erkenntnis der Vernunft selber) 속에 깃들어 있거니와, 이 이성은 오직 세계사 속에서 입증될 뿐이다(in der Weltgeschichte erweist sie sich nur). 세계사란 오직 이와 같은 성질의 이성이 현상화된 것이며, 또한 그 속에서 이성이 현현되는 특수한 형상 가운데 하나일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모든 국민이라고 하는 특수한 요소 속에서 표현되는 원형(原型)의 모상(模像)이다.”(5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