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가지고 있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의 드뷔시 <이마주> 연주 앨범은 1971년 것이다. 나는 원래 고등학교 이래로 드뷔시와 라벨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라벨을 좀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이 앨범 덕분에 아마도 드뷔시를 더 좋아하는 듯도 하다. 아니, 드뷔시의 매력에 드디어 제대로 빠졌다고 할까.
여하튼 나는 고등학교 시절 미켈란젤리의 드뷔시 앨범을 엘피로 가지고 있었는데, 대학교 졸업 하고서던가 앨범들을 시디로 바꾸며 엘피는 누군가 주었던지 팔아버리고, 시디로 구입했다. 당시 서독 앨범으로 구입했는데 이게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나온 1971년 엘피의 시디 버전이다.
http://www.amazon.com/Debussy-Images-II-Childrens-Corner/dp/B000001G6F/ref=sr_1_1?ie=UTF8&qid=1338185072&sr=8-1
그리고 나는 이 앨범 커버나 음악이 이상하게 매우 좋았다. 그리고 나는 예나 지금이나 늘 음악을 들으며 일을 하는데, 이 앨범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발견하였다. 특히 이 <이마주>의 1-2번 곡 <라모에게 바침> 이후의 곡들이 너무 좋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혹시 살면서 기분이 그냥 그렇거나 안 좋다가도 이 일만 하면 다시금 기분이 좋아지는 어떤 일이 있는가?를 물었는데, 그때 나는 잠시 생각해본 후 그야말로 아무 망설임 없이 음악 듣기를 꼽았다. 나는 거의 무슨 기분이든 언제든 - 물론 글자 그대로 '언제든'일 수는 없지만 -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들으면 그 자리에서 거의 바로 즉시 행복해진다.
최근의 나는 누군가의 눈으로 본다면, 아마도 늘 행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이고, 혹 어떤 이의 눈에 나의 최근의 삶은 아마도 불행해야 마땅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인간이니만큼 늘 행복하거나 늘 불행하지는 않고, 그렇다고 마찬가지로 늘 즐겁지도 늘 고통스럽지도 않다. 삶의 고통과 행복은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그러나 요즘이라면 나는 어느 때건 홀로 방 안에 누워 책을 읽으며 이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가 연주하는 드뷔시의 이마주 1-2번 곡을 들으면 그 순간만큼은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해진다...
<올드 보이>에 나오는대로, 어떤 인간도 살 권리는 있듯이, 어떤 인간이라도 그의 작은 구석에서 행복할 권리는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위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 이 지구 저편의 누군가가 드뷔시의 곡들을 내가 머리속에서 상상한 그대로의 이미지를 따와 아주 담담하고 이쁜 흑백의 글자로 음악과 함께 올려주었는데 누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에게 깊고 따뜻한 고마움의 마음을 느낀다.
2.
라벨의 저 음악은 내게 마음의 사연이 많은 앨범이다. 이것도 엘피로 고등학교 때 샀는데, 마르타 아르게리히가 전면에 나온 라벨 소나티네 앨범, 그리고 초록색이 들어간 라벨 사진이 담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과 피아노 협주곡 G장조가 같이 들어있는 앨범이다.
지금 인터넷에서 한 번 찾아본다, 엘피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는데 시디로 다시 구해서 듣고 싶다.
http://www.amazon.com/Martha-Argerich-Ravel-Gaspard-Nuit/dp/B000RBIFU4/ref=sr_1_18?ie=UTF8&qid=1338415998&sr=8-18
그 표지로 찾았는데 옛날 엘피는 중고인데 50달러! 물론 미국반 기준이겠지만, 여하튼 이제는 귀한 판이 되었구나. 물론 커버가 바뀌어서 이 앨범은 여러번 새로 나왔다.
http://www.amazon.com/s/ref=nb_sb_ss_i_0_8?url=search-alias%3Daps&field-keywords=martha+argerich&sprefix=martha+a%2Caps%2C172#/ref=sr_pg_1?rh=i%3Aaps%2Ck%3Amartha+argerich+ravel+sonatine&keywords=martha+argerich+ravel+sonatine&ie=UTF8&qid=1338416156
재발매를 할 때 예사날 커버 그대로 하면 좋을텐데 보통은 달리 하면서 망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커버도 앨범의 일부인데, 저작권이 걸려 있는지, 굳이 커버를 바꾸는 걸 좀 이해못하겠다....
여하튼 지금 보니 피아노 독집인데, 라벨이 프랑스인이니 제목들이 당연히 불어였구나! 이제는 이해가 되네, 하하! ㅋ
여하튼 나는 예나 지금이나 도이치 그라모톤의 톤이 마음에 든다(위의 드뷔시 앨범도 도이치 그라모폰이다). 역시 독일 레이블인 ecm이 마음에 드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까?
나머지 라벨 피아노 협주곡 G 장조는 찾아보니, 이거다. 이건 연주자도 몰랐다. 사실 그리 좋은 연주는 아닌지도 모르는데, 이 2악장 아다지오가 어린 마음에 그렇게 감상주의적이고 병약하게 좋았다. 그리고 이 당시에 실제로 조금 아팠다.
http://www.audiophileusa.com/item.cfm?record=82913
어, 지금 찾아보니, 글자의 타이포그래피도 다르고, 연주자도 무려 베르너 하스! 여하튼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지금도 별로고, 피아노 협주곡 G장조 2악장이 그렇게 좋았다.
그런데 이 좋았다는 말은 단순히 그냥 좋았다가 아니라, 나를 키운 것의 팔할이 음악이라면, 이 라벨 피아노 협주곡 G 장조 2악장은 어린 고등학생이던 내가 대낮에도 커튼을 쳐놓은 채 형광등 아래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약간의 실제 병과 약간의 꾀병이 겹친 고등학교 2학년 남자 휴학생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아마도 루카치의 말대로 '미학적으로 아름다우나 도덕적으로 퇴폐적인 모더니즘'이라는 형용에 딱 들어맞는 예라고나 할까, 이 음악을 들으며 나는 병약한 나 자신과 (아름다움과 정신병의 세계를 왔다갔다 하는) 미학적 세계와 구원의 여신상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었다. alas!
지금 보니 푸코가 말하는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 그리하여 문제화 혹은 자기의 테크놀로지가 완벽히 적용된 사례이다. 여하튼 오늘은 이 음악이 너무 감상(感傷)적이라 너무 부담스럽고 지겨운데, 음악 자체는 아주 좋다.
+
위에 걸어놓은 그리모와 아르게리히 연주 모두 좋다. 그리모는 아르게리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피아니스트이지만, 이 곡만큼은 그리모도 나쁘지 않다. 니체의 말대로, 자기의 (가히 생리학적) 기질에 맞는 연기가 있다고 했는데, 이 곡은 그리모의 기질에 잘 맞는 듯하다.
3.
인터넷에 백건우의 드뷔시 연주가 하나밖에 안 올라와있어 하나만 올려서 아쉽다. 백건우는, 내가 이런 말을 할 필요도 없지만, 아주 좋은 훌륭한 피아니스트다.
기억나는 것은 내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학하던 시절 프낙 백화점 서점 코너에서 독자를 위한 연주회를 했는데, 시끄러워서 중간에 연주를 중단했던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는 물론 좋았고, 공연장에서라면 몇 십만원을 내야 할만큼 아주 가까이서 직접 본 기억이 난다.
이 앨범인데 역시 재발매 음반 커버가 영 엉망이다... 여하튼 이게 1991년 버진에서 나온 원래 커버...
http://www.amazon.com/Clair-Lune-Debussy/dp/B00004VG0J/ref=sr_1_1?s=music&ie=UTF8&qid=1338417335&sr=1-1
그리고 이게 재발매라고 나온 음반의 커버란다...
http://www.amazon.com/Clair-Lune-French-Piano-Music/dp/B001AVZO7W/ref=sr_1_9?s=music&ie=UTF8&qid=1338417335&sr=1-9
이 훌륭한 음반의 표지가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 물론 음악을 듣는 것이지만, 그래도 커버의 격조라는 것이 있는데, 이건 정말 재앙 수준이다 ... 무슨 레스토랑 백그라운드 경음악도 아니고 ...
4.
그리고 마지막은 예나 지금이나 나의 최고의 그룹, 아마도 니체적으로 말해서, 나와 기질이 가장 맞는 아티스트일 킹 크림슨의 기타리스트 로버트 프립 님의 작품이다. 물론 키스 티펫과 함께.
내가 위에 올려 놓은 것은 1970년 원본인데
http://www.amazon.com/Lizard-King-Crimson/dp/B000003S0D/ref=sr_1_5?s=music&ie=UTF8&qid=1338417578&sr=1-5
정작 내가 좋아하는 버전은 1991년에 나온 킹 크림슨 4장 짜리 시디 박스세트 <에센셜 킹 크림슨>에 실린 새로운 리마스터 버전이다. 그냥 리마스터가 아니라 곡이 조금 다른데, 특히 베이스를 토니 레빈이 다시 쳤다. 그런데 원래 베이시스트인 고든 해스켈한테는 미안하지만, 훨씬 좋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다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달라진 마지막 부분이다 ... 킹 크림슨의 팬이라면 알겠지만, '아일랜드'의 마지막이 이 곡의 마지막으로 붙어왔다. 그리고 키스 티펫의 피아노 연주는 언제 들어도 아주 좋다, 내 취향이다.
http://www.amazon.com/The-Essential-King-Crimson-Frame/dp/B000000HSG/ref=sr_1_1?s=music&ie=UTF8&qid=1338417661&sr=1-1
아주 아름다운 곡이다. 위 박스세트의 디자인도 1980년대 이후 늘 그렇듯이 빌 스미스 스튜디오에서 한 것인데 아주 마음에 든다. 위에 걸어놓은 아마존 사이트에는 크게 보기 사진이 다섯 장 올라와 있는데, 클릭해보시기 바란다( 이 동영상 파트 본문에도 사진을 가져다 붙일 수 있으면 좋을텐데... ㅠ).
아 죽여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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