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앞글
문학의 고고학
– 끊임없이 제 자신 위로 겹쳐지며 스스로를 벗어나는 말들
0. 대학 1학년 시절. 나는 흰 목련이 핀 봄날의 민주광장을 가로질러 강의가 있는 문과대학 건물로 들어섰다. 내가 듣던 강의명은 아마도 ‘문학의 이해’ 정도 되는 이름을 가졌던 것 같은데, 국문과 교수님이시던 작가 송하춘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강의로, 나는 이 수업에서 고등학교 시절 이래 어렴풋한 환상만을 갖고 접하던 ‘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를 처음으로 접했다. 강의는 나로 하여금 문학이란 무엇이며, 소설이란 어떠해야 하고, 또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알려주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수업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강의를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강의로 기억하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이 수업의 백미는 교수님의 자상하고도 담담한, 생각할수록 ‘훌륭했다’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강의뿐만이 아니라, 수업의 교재 자체가 보여주는 탁월성이었다.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당시의 교재 『文學의 地平』(고려대학교 출판부, 1984)은 김우창, 김흥규 선생님이 함께 편찬하신 것으로 문학에 관한 여러 저자의 다양한 논문 혹은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책에 실려 있던 김소월의 「산유화」, 이육사의 「광야」, 서정주의 「추천사」, 이상의 「아침」, 송욱의 「서방님께」, 이동주의 「강강술래」, 그리고 로버트 프로스트와 T. S. 엘리엇의 작품들에 대한 분석, 최인훈의 『광장』으로부터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에 이르는 소설의 분석을 읽고 들으며 그 아름다움과 정치함에 나는 얼마나 감탄을 금치 못했던지! 나는 이 책과 수업을 통해 아마도 오늘날까지도 내가 여전히 유지하고 있을 문학적 감수성과 문학의 정의에 대한 여러 가지 기본적인 ‘관념’을 습득했던 듯싶다. 문학의 정의에 관한 다양한 관점들로부터,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이 어떻게 나누어지는지를 거쳐, 좋은 문학과 나쁜 문학을 가르는 실로 무한한 기준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더하여, 물론 나도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학교 안에서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나 홀로 혹은 누군가의 추천을 받아 이런 저런 책을 읽고 문학에 대한 나의 관념을 형성해왔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나를 가르치고 길러준 이 문학 교육, 보다 구체적으로는 내가 설렘으로 기다리던 ‘문학의 이해’라는 강의는 실상 이러한 형성 과정의 제도적 정점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다양한 제도 내적, 외적인 과정들을 가로질러 ‘문학’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생각을 키워왔다. 그리하여, 나는 ‘문학’ 그 자체가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오늘 내가 문학에 대해 품고 있는 이 생각들이, 결코 문학 자체의 보편적 정의가 아닌, 단지 내가 하나의 숙주가 되어 키워낸 문학에 대한 무수히 많은 관념들 중의 하나에 불과함을 안다.
1.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는 1961년 자신의 박사학위 주 논문 『광기와 비이성.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를 출간한다(1972년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로 개명). 이 책은 스스로의 평가대로 ‘탐구의 영역과 방법론 모두에서 아직 명확한 방향을 잡지 못했던’ 청년기의 저작이다. 책에는 향후 전면에 드러나게 될 칸트 및 니체 그리고 ‘구조주의’의 싹과 곧 사라지게 될 현상학과 실존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의 관점들이 복잡한 방식으로 착종되며 나타난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서로 겹쳐지며 스스로를 드러냈던 두 관심 영역, 과학적 의학과 서정적 문학을 1963년 두 권의 책, 곧 의학의 영역을 다룬 『임상의학의 탄생』(Naissance de la clinique)과 프랑스의 소설가 레몽 루셀을 다룬 문학비평서 『레몽 루셀』(Raymond Roussel)을 출간한다. 푸코가 출간일자마저도 같은 날로 조정하고자 했던(실제로는 전자가 4월, 후자가 5월에 발간된다) 이 두 권의 ‘쌍둥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이중-분신(double)의 사유이다. 이중(二重) 혹은 분신(分身)의 사유란 ‘언어의 이중적 존재론’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하나의 언어가 언어로서 기능할 수 있는 조건(condition)이란 언어의 메타적(meta) 기능, 곧 논리적 현실적으로 스스로에 대하여 스스로를 지칭ㆍ지시하는 기능(fonction)으로서, 이는 내재적인 동시에 메타적인 것이고, 내적인 동시에 외적인 것이자, 돌아옴인 동시에 떠남이며, 안인 동시에 밖이 된다(그럼에도 일정한 강조점은 늘 후자 쪽에 놓여 있다). 그리하여, 가장 먼 것은 가장 가까운 것은 만나게 된다. 이는 언어를 어떤 본성(nature) 혹은 본질(essence)을 갖는 하나의 고정된 실체(substance)가 아닌 ‘늘 작용하며 작동하는 하나의 기능’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언어의 기능은 스스로에 대해 이중화되면서 스스로부터 달라지는 것, 곧 자기와의, 자기로부터의 차이화 작용(différenciation)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놀이는 동일자(le Même)가 아닌 타자성(l’Autre)에, 동일성(identité)이 아닌 차이(différence)에 기반한 것이다.
2.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언어의 이중적 존재론은 고대 그리스 파르메니데스 이래의 ‘존재와 사유(언어)의 일치’라는 서양의 주도적 언어관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언어의 이중적 존재론은 실제로는 언어의 이중적 ‘존재론’이 아니라 언어의 이중적 ‘차이(화)론’ 혹은 ‘결여론’이라고 불러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은 물론 ‘광의의 구조주의적 사유’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후대의 연구자들은 이를 ‘포스트구조주의’라 부르게 될 것이나, 당시에 이런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러나 (포스트)구조주의가 무엇인가, 당시 푸코 사유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가에 따라, 더하여 푸코 스스로가 자신이 (포스트)구조주의자라는 주장에 대해 강력히 반발했다는 사실 때문에, 매우 복잡한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하는 주제이나, 이 자리에서는 다만 ‘1960년 대 푸코의 사유가 구조주의의 강력한 자장 아래 놓여 있었다’는 정도로만 정리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푸코 사유에 미치는 구조주의의 영향력, 곧 이중의 사유가 그 정점에 도달한 책이 1966년 발간된 『말과 사물. 인간과학에 대한 하나의 고고학』(Les Mots et les Chose,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이다. 물론 『말과 사물』은 랑그/파롤, 시니피앙/시니피에 등 이항(二項) 대립적 사유를 특징으로 하는 구조주의와 달리, 복수(複數)의 요소들이 이루어내는 배치(configuration), 또는 주어진 사회와 시대에 있어서의 인식론적 장(champ épistémologique), 곧 에피스테메(épistémè)가 주어진 특정 시대ㆍ공간의 구체적 인식을 가능케 한다고 보는 면에서 전통적ㆍ정통적 의미의 구조주의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말과 사물』은 기본적으로 역사적ㆍ통시적 관점을 거부하고 공간적ㆍ공시적 관점에 집중한다는 점, 무엇보다도 책의 핵심적 시기라 할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서양 ‘근대’ 시기의 에피스테메로 제시된 ‘역사’ 혹은 초월적-경험적 이중체(doublet empirico-transcendental)로서의 ‘인간’이라는 관념이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이중/분신의 사유에 입각해 있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의 강력한 영향 아래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이중/분신의 사유는 에피스테메의 관념과 함께 푸코 ‘구조주의적’ 사유의 정점을 이룬다). 이중/분신에 관한 관심이 빛을 바래기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1969년에 발간된 『지식의 고고학』(L’Archéologie du savoir) 이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지식의 고고학』은 여전히 언어학적ㆍ구조주의적 용어인 언표(言表, énoncé)의 개념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향후 전면에 등장하게 될 니체주의적 힘-관계(relations de forces)의 개념에 입각하여 정의하고자 노력하는 작품으로, 실상 ‘망설임과 반복, 중단과 재개’라는 이행기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3. 김현은 문학에 관한 푸코의 논문들을 묶어 옮긴 자신의 연구서에서 ‘구조주의적’ 방법론에 강력히 영향 받은 이 1960년대의 시기를 푸코 사유에 있어서의 ‘문학 시기’로 불렀다(김현 편,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 문학과지성사, 1989). 나의 관점으로, 이 문학 시기는 실상 미술에 대한 관심과도 겹치게 되므로 이 시기를 ‘문학/미술의 시기’라 불러도 무방하다. 그리고 ‘문학과 미술이 상대에로 환원될 수도 없지만 서로서로를 향해 되 겹쳐지는’ 이러한 규정은 1963년의 쌍둥이 저작 『임상의학의 탄생』/『레몽 루셀』 이후 두드러지는 언표 가능성/가시성(énonçabilité/visibilité) 혹은 텍스트/이미지(texte/image) 사이의 이중적 관계라는 푸코 자신의 구분에 따르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은 상기의 저작들로부터 시작되어 쌍둥이, 거울, 시뮬라크르 등 수많은 비유와 관련 용어를 낳으며, 1966년의 『말과 사물』에서 정점에 달했다가, 1969년의 『지식의 고고학』 이래 비판적 조명을 받게 되면서 푸코의 사유에서 점차로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중/분신에 기초한 사유의 퇴조는 푸코에 있어서의 문학과 미술에 대한 관심의 퇴조와 시기적으로 정확히 일치한다. 대략 1970년 이후 푸코의 사유는 ‘정치적인 것’(le politique)에로 관심의 초점이 옮겨 갔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와 동시에 문학과 미술에 대한 푸코의 관심은 글자 그대로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1970년 이후 문학과 미술에 대한 푸코의 글은 우선 그 양의 측면에서도 현격한 감소를 보이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푸코가 사망하는 1984년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대략 1969년~1970년경 이루어진 이중적 사유의 퇴조 이후, 푸코는 결코 이전처럼 문학과 미술을 그 자체로 다루지 않는다. 이상의 논의를 간단히 정리하면, 1960년 대 푸코의 문학/미술 시기는 - 비록 푸코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 광의의 ‘구조주의적’ 이론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구조주의적’ 영향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이 이중/분신의 관념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그런데 푸코는 이른바 문학/미술 시기 곧 1960년대에 엄청난 양의 문학과 미술에 대한 글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1963년의 문학비평서 『레몽 루셀』, 그리고 이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일곱 번째 천사에 대한 일곱 개의 말』 등 파타 모르가나(Fata Morgana) 출판사에서 소량으로 찍은 몇 권의 소책자들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생전에 이들을 모은 저작 출판을 허락하지 않는다. 푸코의 미술과 문학에 관한 글들을 따로 모은 책은 프랑스어로는 존재하지 않으며(이런 면에서 김현의 편역서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1989)과 연구서 『시칠리아의 암소』(1990)는 가히 선구적인 작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책들은 대부분 사후적으로 연구자들이 취합한 글들이다. 따라서 문학과 미술의 시기, ‘구조주의’의 시기, ‘지식의 고고학’의 시기로 알려진 이 1960년대의 시기는 자신의 이름에 합당한 푸코 자신의 문학ㆍ미술에 관련된 저술이 부재하는 상태였다. 결국 문학과 미술에 관한 푸코의 사유는 수많은 잡지와 논문에 파편적인 형태로 흩어져 있어 극소소의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그 전모를 파악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는 어떤 특정 작가, 작품 혹은 시대에 관한 저술이 아닌, 푸코 자신의 ‘문학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저술이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잘 알려진 대로, 푸코는 1984년 사망하면서 자신의 나머지 저술들에 대한 ‘사후 출판’을 금지하는 유언을 남긴다. 실제로 『문학의 고고학』에 실린 글의 대부분은 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그 방송 혹은 강연 사실이 알려져 있었을 뿐, 그 녹음 혹은 원고가 남아 있는지의 여부조차 불투명했던 글들이 다수이다. 이 책은 1963~1964년에 이르는 시기 동안 푸코가 문학에 대해 쓴 글들, 보다 정확히는 강연의 수고(手稿)들, 녹음테이프의 전사(轉寫)본들 중 몇몇을 모은 것이다. 이는 마치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의 모든 유고들을 불태우라는 카프카의 유언을 지키지 않은 친구 막스 브로트의 선택과도 같은 것이라 말해야 할 것이다.
5. 이처럼 『문학의 고고학』이 갖는 최대의 가치는 그것이 푸코 사유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드러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라는 점이다. 이를 위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을 간단히 살펴보면, 우선 번역의 저본이 된 프랑스판은 2013년에 발간되었다. 이 프랑스판은 맨 앞에 프랑스판 편집자들의 ‘서문’이 실려 있으나 지나치게 전문적인 논의를 담고 있어 우리말 번역본에서는 이를 책의 맨 뒤로 옮겨 싣고 대신 그 자리에 ‘우리말 옮긴이의 글’을 넣었다. 프랑스판의 편자들은 책을 주제에 따라 I~III부로 나누어 각기 ‘광기의 언어’, ‘문학과 언어’, ‘사드에 대한 강의’라는 제명을 붙이고 각 부마다 두 편의 글을 싣고 있다. I부 ‘광기의 언어’는 1963년 1~2월에 걸쳐 국립 RTF 프랑스 III 라디오에서 행해진 동명의 5회 강연 중 각기 2회 및 5회에 해당하는 ‘광인들의 침묵’, ‘광기의 언어’이다. II부 ‘문학과 언어’는 1964년 12월 벨기에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의 컨퍼런스에서 이틀에 걸쳐 발표된 푸코의 강연이다. III부 ‘사드에 대한 강의’는 1970년 3월 미국 버팔로의 뉴욕주립대학교 프랑스학과에서 행해진 사드에 관한 2회의 강연이다. 이 책에 실린 총 6편의 글은 푸코 문학시기의 시작점이라 할 1963년~1964년(I, II부) 및 마지막 시기인 1970년(III부)의 것들이다. 그러나 『문학의 고고학』의 백미는, 물론 자신만만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아름답고도 정교한 문체로 젊은 거장의 도래를 알리는 I부, 정치하고도 탄탄한 논리적 구조로 독자를 승복시키며 사드의 문학적 의의를 다루는 III부도 중요하지만, 푸코가 ‘문학’에 대한 관념을 단 한 번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스스로의 문학에 대한 ‘전복적ㆍ위반적’ 정의를 제출하고 있는 II부라 해야 할 것이다. 『문학의 고고학』은 II부를 이루는 두 편의 ‘문학에 대한 강의’만으로도 출판될 가치가 충분하다. 아래에서는 각 부분의 내용과 의의를 간단히 짚어보기로 하자.
6. 『문학의 고고학』을 여는 I부 ‘광기의 언어’는 1963년 1~2월에 방송된 두 편의 라디오 방송이다. 방송은 먼저 제작을 맡은 장 도아트가 푸코를 소개하면서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이어서 푸코가 강연을 진행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라디오 방송의 이점을 십분 살려 강연의 중간중간에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1735년 아르스날 수용소의 감금일지, 디드로의 『라모의 조카』, 사드와 관련하여 샤랑통 수용소의 의사가 보낸 편지, 아르토와 그의 편집자인 리비에르 사이의 편지 등 푸코가 직접 고른 텍스트들이 성우들에 의해 낭독된다. 첫 방송 ‘광인들의 침묵’은 1961년의 저작 『광기의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정신분석은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이라는 근본적 관점을 따른다. 광기가 비정상적 병리상태로 인식된 것은 광기가 자연적이고 생물학적인 것으로 가정되는 자연과학적ㆍ의학적 이상(異常) 현상이기 때문이 아니라, 18세기 말 이후 이루어진 광기에 대한 대상화 과정의 결과이다. 이러한 대상화 과정, 곧 광기를 ‘비정상적’ 병리현상으로 설정하는 과정은 동시에 이성이 스스로를 ‘정상적인’ 것으로서 정립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광기와 이성은 서로서로에 대한 여집합으로서 규정되는데, 이러한 광기와 이성의 배타적인 상호 실체화 과정이 오늘날 서구 근대 이후의 특징적 현상인 광기와 이성의 분할을 낳았다. 특히 등장하는 텍스트들 중에서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은 특권적 지위를 갖는데, 이는 이 작품이 오늘날에는 사라진 하나의 현상, 곧 ‘광인 스스로가 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광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자이며,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하는 자, 누군가가 그의 말을 해독해주어야 하는 자, 결코 스스로는 온전히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도 자신의 뜻을 펴지도 못하는 자로서 이해된다. 물론 이는 단적으로 이성에 의한 광기의 식민지화이며, 이를 식민주의자에 의한 원주민의 지배,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 어른에 의한 아이의 지배, 곧 지배자에 의한 피지배자의 지배로 읽으면, 오늘날 광기의 모습이 결코 자연적인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의학이라는 역사적ㆍ학문적 장치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정치적ㆍ사회적 현상, 곧 권력 현상임을 이해할 수 있다. 『광기의 역사』가 말하는 대로, 광인의 광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의학에 의한 광기의 도덕화, 광기와 죄책감의 상호 결부 작용과 더불어 이루어진 사회적ㆍ정치적 절차가 만들어낸 하나의 효과이며, 이는 18세기 말 이래 ‘정신의학’의 학문으로서의 설립과정과 다른 것이 아니다.
7. I부의 두 번째 강연 ‘광기 안의 언어’ 역시 『광기의 역사』의 근본 주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강연에서는 미셸 레리스의 『지우기』와 『식물의 정사』, 18세기의 시적 알파벳 놀이, 장피에르 브리세의 『신의 학문 또는 인간의 창조』, 장 타르디외의 「하나의 말을 또 다른 말로」, 앙토냉 아르토의 인용 등이 등장한다. 첫 번째 방송이 광기와 의학 그리고 문학의 관계를 다루었다면, 두 번째 방송은 광기와 언어 그리고 문학의 관계를 다룬다. 푸코가 인용한 텍스트들은 예외 없이 ‘말놀이’(jeu de mots, word play) 규칙에 대한 형식적 변형을 통한 문학적 작품들이다(이런 종류의 작품들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부분의 번역은 옮긴이로서는 실로 곤혹스러운 일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이 두 번째 방송은 ‘모든 언어 문화권에는 말하자면 문학적 내용에 집중하는 작가들과 문학적 언어 곧 형식 자체에 집중하는 작가들이 있으며, 나는 늘 후자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졌다’는 푸코 자신의 말을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이는 물론 언어의 내용과 형식이 따로 있으며 자신의 관심이 형식 쪽으로 기울어졌다는 말이 아니라, 언어의 형식적 구조 자체가 곧 문학의 실내용을 구성한다는 이른바 ‘형식주의적’ 문학관에 가깝다(물론 이는 푸코가 고전적 의미의 ‘형식주의자’라는 말이 아니라, 문학에 관한 1960년대 푸코의 사유에 광의의 형식주의에 포함될 수 있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1963년은 오랜 기간에 걸친 언어학, 구조주의, 기호학, 형식주의에 대한 푸코의 독서가 빚어낸 영향이 겉으로 드러나는 시기이며, 이러한 ‘푸코적 형식주의’는 문학을 ‘스스로를 벗어나는 방식으로만 스스로의 형식을 구축하게 되는 언어의 작용이 빚어내는 일련의 효과’로 바라본다. 이런 면에서 당시 푸코의 문학관은, 이 시기 푸코의 두 주요한 참조대상들로서, 바깥(dehors)의 사유를 말하는 블랑쇼와 위반(transgression)의 글쓰기를 말하는 바타유의 사유에 강력히 영향 받은 것이다. 한계경험(expérience-limite)으로 대표되는 위반과 바깥의 사유는 기존의 안에 대한 바깥, 타부의 위반으로 이해되면서 사유하는 주체의 탈주체화(désubjectivation)라는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윤리를 이끌어낸다. 문학이란 바로 이러한 기존의 언어놀이에 대한 위반과 바깥의 한계경험이 발생시키는 효과이자, 탈주체화, 탈이성화된 주체, 곧 광기와의 협업이다. 바슐라르에 대한 푸코 자신의 말대로, 작가는 ‘게임의 규칙을 어김으로써 자신의 문화를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기 푸코의 문학관은 기존의 지배적 언어 놀이에 대한 ‘형식주의적’ 혹은 - 훗날 ‘(포스트)구조주의적’이라 불리게 될 - 하나의 실험, 곧 일탈을 통해 펼쳐지는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문학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8. II부는 1964년 12월 벨기에 브뤼셀의 생루이대학교에서 이루어진 두 편의 강연으로 ‘문학과 언어’라는 제명을 달고 있다. 이 부분을 중심으로 『문학이 고고학』은 서로를 향해 되 접히는데, 이런 면에서 이 부분은 의심의 여지없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자신의 관심에 따라 I부를 건너뛰고 II부로부터 책을 읽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II부를 이루는 두 편의 강연은 1960년대 푸코의 문학관, 곧 ‘결코 상대에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되풀이와 되풂의 방식으로, 서로의 위로 겹쳐지는 동시에 어긋나면서, 서로를 벗어나는 동시에 서로에게로 되돌아 오고야마는’ 이중/분신의 사유 또는 작용(fonction)에 입각한 푸코의 문학관을 명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유일한 텍스트이다. 우선, 위반과 바깥, 혹은 바타유와 블랑쇼의 영향이 여전히 두드러지는 첫 번째 강연은 사드, 세르반테스, 조이스, 그리고 프루스트, 샤토브리앙, 라신, 코르네유 등이 인용하면서, 언어-작품-문학 사이의 ‘기묘한 삼각형’을 그려낸다. 푸코에 의해 18세기 말 이래 탄생한 것으로 그려지는 근대 ‘문학’의 탄생이라는 경험은 ‘언어의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 자신의 위에서의 진동 운동’으로 규정되고, 작품은 바로 이러한 ‘자기 진동 운동에 대한 위반이자 결정화’로서 제시된다. 우선 언어(langage)는 ‘이야기 속에 축적된 파롤의 모든 사실’인 동시에 ‘랑그의 체계 자체’이다. 다음으로 작품(œuvres)은 ‘언어의 내부에 존재하는 언어의 특정한 배치’이다. 마지막으로 문학(littérature)은 ‘언어에서 작품으로, 작품에서 언어로의 관계가 통과하는 삼각형의 정상(頂上)’이다. 그리고, 푸코에 따르면, 문학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서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18세기 말 혹은 19세기 초 이후에 발생한 것이다. 단적으로, 이 시기 이후의 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행위를 그 자체 안에 포함하는 것이며, 따라서 이제 스스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이렇게 시작된 자기의식, 자기에 의한, 자기에 대한, 자기 질문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관념이 결정적으로 완성된 형식을 갖게 되는 것은 19세기 말의 말라르메에서이다. 푸코에 따르면,
“문학은 언어와도 다르고 작품과도 다른 세 번째 꼭짓점, 이들이 만들어내는 직선의 외부에 존재하며 이를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태어나는 하나의 본질적인 흰빛(白色), 이 질문 자체인 하나의 흰빛, 하나의 빈 공간을 그려내는 세 번째 꼭짓점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어떤 보충적인 비판 의식에 의해 문학에 덧붙여지는 것이 아니며, 이제 오히려 이 질문이야말로 문학의, 본래적으로 분열되고 파열된, 존재 자체가 됩니다.”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의 ‘근대’ 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메타적 행위, 기존의 문학을 부정하는 행위, 기존의 문학에 대한 위반, 문학의 죽음이다. 문학은, 바타유를 따르자면, 문학으로부터 버림받은 것, 저주의 몫(la part maudite)이자, 블랑쇼를 따르자면, 문학의 바깥, 바깥의 사유(la pensée du dehors)이다. 문학은 이렇게 자기 자신에 대해 물음으로써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위반하면서 스스로의 위로 겹쳐지는, 스스로의 결여이자 스스로에 대한 거리(distance), 간극(interstice), 틈으로서 존재하는, 행위이다. 문학은 이런 면에서 스스로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스스로로 되돌아오고야 마는 행위, 스스로로 되돌아옴으로써 스스로로부터 벗어나는 행위, 안으로부터 밖으로 그리고 밖으로부터 안으로 되돌아오는, 되풀이/되풂 작용(répétition)이다. 그리고 이는 다름 아닌 앞서 말한 이중(二重, double)의 사유이며, 이는 다시 분신(分身, doublure), 이중체(二重體, doublet), 중복(重複, redoublement), 양분(兩分, dédoublement)으로부터 거울, 쌍둥이, 시뮬라크르에 이르는 다양한 상징을 낳는다. 이는 인식이 이미 (재)인식(reconnaissance)이라는 플라톤 이래 상기설(想起說, ἀνάμνησις, anamnesis)의 근대 문학적 변양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프랑스판의 편집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푸코의 이런 관심은 스스로의 담론에 대한 중복의 참다운 사례가 될 것이다. 이는 주어진 한 시점에서 세계의 질서와 그것에 대한 재현이며(이는 푸코의 연구에서는 ‘사유 체계’에 대한 고고학적 기술이라 불린다), 또한 역설적으로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결국 과잉의 차원, 넘침, 바깥을 재현하고야 마는 무엇인가를 동시에 말하는 중복, 또는 차라리 영원한, 곧 극단에까지 이끌린 유혹하는 분신이다.”
7. 이러한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0년대 시기 푸코 사유의 대강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 구분이다. 푸코는 1961년 출간된 『광기의 역사』에서 그 대강이 그려진 이후, 1963년의 『임상의학의 탄생』을 거쳐, 1966년의 『말과 사물』에서 결정적인 형태로 제시되는 일정한 시대 구분 방식을 자신의 말년까지도 큰 변화 없이 유지한다. ‘지도도 달력도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말처럼, 평생에 걸친 푸코의 작업은 이른바 ‘시공을 넘어선 초월적인 보편적 필연으로서의 진리’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는 긴 여정이었다. 이를 위한 두 가지 방법론이 고고학과 계보학으로, 1960년대는 물론 푸코 자신에 의해 ‘지식의 고고학’의 이름 아래 규정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사유는 『말과 사물』에 가장 완정한 형태로 제시되어 있으므로 아래에서는 이를 간단히 요약해보자. 지도와 달력을 갖는 진리는 자신의 탄생 장소와 시대를 갖는다. 따라서 연구자는 문화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문학’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특정 문화, 특정 시기의 특정 문학, 곧 ‘이 문학’ 혹은 ‘저 문학’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문학에 대한 지식 고고학 실천은 가령 ‘문학’을 보편타당한 것으로 가정하는 어떤 사유를 접할 경우, 그 ‘보편타당성’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행위이다. “어떤 시대의 어떤 사람들이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자신의 특수한 문학관을 문학 자체에 대한 관념이라고 여기게 되었는가?” 이는 문학에 관련된 기존의 지배 관념에 대한 이의제기로서의 문제화(problématisation comme contestation)이며, 이러한 문제화의 두 가지 방법론이 고고학과 계보학이다. 두 방법론의 경계선은 대략 1970년경을 기점으로 나뉘는데, 이것이 지식ㆍ권력ㆍ윤리라는 세 가지 영역과 만나면, 1960년대의 지식의 고고학, 1970년~1975년에 이르는 권력의 계보학, 1976년 이래 푸코가 사망하는 1984년에 이르는 윤리의 계보학이 설정된다. 1960년대 지식의 고고학은 1966년의 『말과 사물』에서 정제된 형식으로 나타나는데, 주어진 특정 시대와 사회의 모든 지식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식론적 배치, 틀, 장(場) 곧 에피스테메(épistémè)를 따른다. 따라서 연구의 시공간적 한계를 ‘16세기 이래의 (서)유럽’으로 한정하는 『말과 사물』은 ‘매 시기마다 오직 하나만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된’ 각 시대마다의 에피스테메를 탐구한다. 푸코는 16세기 초에서 17세기 중반에 이르는 ‘르네상스’의 에피스테메를 닮음(ressemblance)으로, 17세기 중반에서 18세기에 이르는 ‘고전주의’의 에피스테메를 표상작용(représentation)으로, 19세기 이래 『말과 사물』이 발간되던 1966년 당시까지를 지칭하는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역사(histoire) 혹은 초월적 경험적 이중체로서의 인간(l’homme comme doublet empirico-transcendantal)으로 규정한다(물론 『말과 사물』에 나타난 푸코의 궁극적 주장은 이렇게 ‘역사’ 혹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의 에피스테메가 물러가고 이 자리를 언어의 분산에 기초한 새로운 시대가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이러한 지식 고고학의 논의에 따르면 가령 ‘18세기 말 19세기 초’ 곧 푸코가 말하는 ‘근대’에 탄생한 ‘문학’의 역사(이런 의미에서 ‘근대 문학’이란 용어는 정확히 동어반복이다)를 근대 이전으로 소급하여 기술하려는 시도는 단순히 시대착오적이다. 그러한 시도를 행하는 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의 역사를 쓰고자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역사적인 그리고 문화적으로 제약된 특정 문학을 하나의 불편부당한 실체로 보고 그것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적 역사, 혹은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문학의 지역적 전개를 기술하려는 자는 ‘문학’이 특정 지역, 특정시대의 고유명사임을 알지 못하는 자이다. 이 알지 못하는 자는 그러나 ‘인간의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푸코는 이 자에게 되물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인간’과 ‘보편성’이라는 특정한 관념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 실체인 것으로 가정하고 그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가? 『말과 사물』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서 식상해져 버린 구절처럼, 인간이 ‘극히 최근의 발명품’인 것과 동일한 이유로, 보편성과 문학도 역시 그러하다. 지식의 고고학에 의해 분석된 세계는 오직 고유명사들로만 이루어진 세계이며, 이러한 고유명사의 지배는 완전하며 전적이다. 모든 것이 역사적으로 형성된 고유명사라는 지식 고고학의 주장은 특칭명제가 아닌 전칭 명제인 것이다. 이 고유명사의 세계에 예외란 전혀 없으며, 모든 것은 고유명사이다. 그리고 - 가령 문학, 인간, 진리, 아름다움, 본질, 역사, 광기, 섹슈얼리티, 근대(성) 등의 관념처럼 - ‘우리에게 역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밝히는 것이 고고학이자 계보학이다(이런 관점에서 푸코는 ‘철학’을 진리의 정치적 역사로 정의한다). 그리고 1964년 12월 벨기에 브뤼셀의 강연에서 푸코가 수행하는 바는 이러한 지식 고고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문학’의 관념이 형성된 ‘근대’라는 지식고고학적 지층을 섬세히 분석하는 것이다.
5. 이러한 분석의 결론이 ‘이중과 분신의 놀이’로서의 근대 문학이며, 이제 근대 문학은 ‘스스로의 위로 겹쳐지고 되풀이되며 되풀려나감으로써 그 자신에로 되돌아가는 언어의 한 형상, 배치’로 제시된다. 근대 문학은 ‘위반의 언어이자, 죽을 수밖에 없는, 되풀이하는, 다시금 이중화되는 하나의 언어, 곧 책 자체의 언어’이다. 이러한 문학에는 이제 오직 ‘하나의 말하는 주체’만이 존재하는데, 이 말하는 하나는 바로 말라르메적 의미의 ‘책’이다. 강연의 두 번째 부분은 바로 이 ‘책’이라는 부정(否定)의 존재,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존재에 대한 것이다. 이는 시간적ㆍ역사적 축을 대변하는 기존의 ‘창조’ 담론과 연관되는 ‘비판/비평’(critique)의 관념 자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거쳐 ‘언어의 존재론’에 이르게 된다. 문학작품의 분석은 이제 ‘이중/분신들의 담론, 곧 그 안에서 언어의 정체성이 서로 분할되는 차이와 거리에 대한 분석’이 된다. 문학 작품은 ‘오직 언어를 통해서, 따라서, 기호 체계를 통해서 만들어’졌고, 이 기호 체계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많은 다른 기호들로 이루어진 그물망의 일부’이므로, 이제 문학적 분석이란 ‘주어진 사회 안에서 순환하는 기호들, 단지 언어학적 기호들이 아닌, 경제학적, 재정적, 종교적, 사회적 등등일 수 있는 기호들’에 대한 분석이 된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의 문화 속에 존재하는 역사 속의 한 시점을 연구하고자 선택할 때마다, 우리는 그에 상응하는 기호의 특정한 상태, 기호 일반의 일반적 상태를 얻게’ 된다. 이제 독자들은 1964년 12월에 이루어진 이 브뤼셀의 강연이 1966년 발간될 『말과 사물』에서 간헐적으로만 드러날 뿐 결코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어떤 영역, 곧 문학에 대한 고고학적 분석의 원칙들을 담고 있는 문헌임을 이해할 것이다. 푸코의 브뤼셀 강연은 문학의 고고학에 대한 강연이다. 문학은 언어학적 혹은 이른바 ‘문학적’ 기호의 분석으로만 드러나지 않는다. 문학은 ‘문학이 아닌 것과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는’ 하나의 복합적인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인 현상이다(이러한 입장이 정치와 권력의 관념 자체에 대한 새로운 비판적 규정을 수반하는 정치적 관점 아래 포괄되는 것은 1970년 이후의 일이다). 문학의 고고학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작품 일반의 공간성을 연구하지 않으며, ‘주어진 작품 안에 존재하는 언어 자체의 공간성’을 탐구한다. ‘문학’은 ‘이제 이백 년 남짓 된, 최근의 발명품이며, 근본적으로 지금 구성되고 있는 관계, 언어와 공간의, 이제야 어렴풋이 가시적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사유할 수는 없는 하나의 관계’이다. 문학은, 문학의 고고학은, 문화의 공간 혹은 작품의 공간이 아닌, 언어 자체의 공간을 탐구한다. 스스로를 벗어남으로써만 스스로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언어, 하나의 빔으로서 작용하는 공간, 그것이 말라르메적 의미의 ‘책’이라는 공간이다. ‘책’으로 상징되는 이 언어는 부정의 언어, 시뮬라크르의 언어, 백색의 언어, 비어있는(비워가는) 언어, 곧 분산(分散, dispersion)의 언어이다.
4. 마지막 III부를 이루는 사드에 관한 강연은 1970년 3월 미국 버팔로 뉴욕주립대학교의 프랑스문학과에서 행한 두 편의 강연이다. 강연의 중요성과 의미는 상기의 지식 고고학적 시대 구분에서 사드가 차지하는 위치에 입각해있다. 소설가로서의 사드가 활동했던 시기는 정확히 푸코가 말하는 ‘근대’의 시작점, 곧 ‘18세기 말 19세기 초’와 겹친다. 첫 번째 강연은 진실과 욕망의 문제를, 두 번째 강연은 같은 해 말 푸코가 ‘담론의 질서’라는 이름 아래 정돈하게 될 영역을 다룬다. 첫 번째 강연을 통해, 푸코는 사드가 말하는 진실이란 결코 이른바 ‘있었던 그대로의 진실’에 관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드에게 있어서의 진실을 말하기란 ‘욕망, 환상, 상상력을 진실과의 어떤 관계 안에 확립하는 것’임을 밝힌다. 욕망은 이제, 글쓰기의 덕분으로, ‘어떤 외부로부터의 반박도 불가능한, 무한정하고도 절대적인 전체로서의 진리의 세계 안으로 진입’한다. 사드의 글쓰기는 이제 ‘어떤 한계도 없는 지점에 결국 도달하고야만 욕망’이자, ‘진실이 되어버린 욕망, 욕망의 형식을 지닌 진실’이다. 글쓰기는 ‘되풀이되는 욕망, 한정이 없는 욕망, 어떤 금지의 법도 갖지 않는 욕망, 어떤 억제도 모르는 욕망, 외부가 없는 욕망이라는 형식을 갖는 진실’이다. 사드의 글쓰기는 단적으로 욕망과 관련된 외부적 제한의 상상적 철폐를 실현해주는 하나의 문학적이고도 정치적인 장치이다. 이러한 해석은 의심의 여지없이 푸코에 대한 라캉과 바타유의 영향을 입증하는 것이다(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이, 프랑스판 편집자들은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1970년 3월에 발표된 이 강연의 원고가 실제로는 정확히 언제 작성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 물론, 단적으로, 사드에 대한 이 강연은 앞선 시기 푸코의 언어에 관한 고고학적 관심과 향후 나타날 니체적 권력 계보학적 관심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는 이행기의 텍스트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한 해석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사드의 글쓰기가 라캉적 의미의 상상계와 상징계를 이어주는 것, 나아가 실재계를 가능케 하는 것, 곧 하나의 장치(dispositif)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이런 해석은 푸코가 바타유적 의미의 위반의 논리를 사드의 문학적 글쓰기에 적용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서 정작 돋보이는 점은 푸코가 사드의 글쓰기를 프로이트-라캉적 의미의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 나아가 푸코가 사드에 대한 자신의 해석, 곧 ‘진리-담론-욕망’이라는 삼각형에 입각하여 라캉과 바타유의 사유를 근본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푸코는 사드를 프로이트적으로, 곧 ‘욕망’의 관점에 입각해 읽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프로이트를 사드적으로, 곧 ‘늘 자신의 위로 겹쳐지면서, 스스로로부터 벗어나며 또 바로 그러한 방식에 의해서만 스스로가 되는, 무한히 되풀이되는 글쓰기의 실천’으로서 다시금 읽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제 차라리, 프로이트에게는, ‘이 모든 환상이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가 물질성을 부여받고, 글쓰기가 견고함을 부여받는 글쓰기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한다. 이는 이후, 특히 1976년의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에서 결정화되어 나타나는 것처럼, 프로이트-라캉적 ‘욕망’(désir)에 대립되는 니체-푸코적 ‘쾌락’(plaisir) 관념의 설정으로 구체화된다.
3. 두 번째 강연은 사드 작품에 나타나는 글쓰기의 두 가지 특성, 곧 파트너들의 성관계 부분에 대한 묘사를 담은 ‘장면’과 그에 대한 이론적 설명의 부분인 ‘담론’에 대한 구분으로부터 시작된다. 푸코에 따르면, 사드의 ‘담론’은 기이하게도 욕망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 영혼, 범죄, 자연(본성)이라는 네 가지 ‘실체’의 부정, 곧 부재에 대해 말하는 진리의 담론, 논증적 담론이다. 푸코는 이 네 가지 부재의 테마를 ‘규칙을 벗어난 실존’, 이를 수행하는 자를 ‘규칙을 벗어난 개인’이라 부르는데, 규칙을 벗어난 실존은 ‘상궤를 벗어난 실존’, 곧 ‘비정상적 실존’에 다름 아니다. 규칙을 벗어난 개인은 자신의 위에 어떤 절대권도, 규범도, 한계도, 구속도 인정하지 않는 개인, 어떠한 거세의 논리도 인정하지 않는 개인, 곧 한계의 탈(脫)한계화를 행하는 개인이다. 이 부분에서도 푸코는, 첫 강연과 마찬가지로, 사드를 프로이트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에 대한 사드적 혹은 니체-바타유적 독해를 시도한다. 이런 니체-바타유-푸코적 독해의 논점은, 담론이 욕망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담론-욕망-진실이 서로서로 얽혀있으며 또 오직 그렇게만 작동하고 기능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의 회고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같은 해인 1970년 12월의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인 ‘담론의 질서’에서 처음으로 정식화되고, 나아가 1975년의 『감시와 처벌』에서 완성된 형태로 제시되는 권력-지식 혹은 욕망-진리의 상호 형성(formation réciproque du pouvoir-savoir ou désir-vérité)에 관한 주장을 선취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철학사적 관점에서 보면, 푸코는 실체(substance)로부터 관계(relations)로, 동일성(identité)으로부터 차이(différence)로 이행하는 현대 사유의 기본적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 이 ‘규칙을 벗어난 실존’이 바로 사드의 리베르티나주(libertinage)이며, ‘규칙을 벗어난 개인’이 리베르탱(libértin)이다. 리베르티나주와 리베르탱에 대해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설명은 사드의 『규방철학』 (도서출판 b, 이충훈 옮김, 2005) 중 「옮긴이의 말」에 실려 있다.
“원래 이 말은 라틴어 libertinus에서 온 것인데 ‘해방된 자’라는 뜻이다. 이들은 로마 시대에 원래 자유민이었던 ingenuus와 법적으로 구분되었다. 이 말이 16세기에 프랑스어로 들어올 때 경멸적 의미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리베르탱이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로, ‘새롭게 얻은 자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줄 모르고, 타인의 눈으로 보면 원래 가졌던 흠을 못 버리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732년판 트레부 사전(제3판)에서 이 말을 정의하면서 퓌르티에르 사전의 정의를 가져오는데, 여기에 ‘지나친 자유를 취하고 마련하는 사람으로서’라는 말을 덧붙인다. 개인에게 주어진 법적, 도덕적 자유의 한계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는 라틴어 어원을 고려하면서 신학적인 입장을 부가하려는 뜻으로 생각할 수 있다. 또한 [1528년경 나타난] 네덜란드의 리베르탱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트레부 사전은 이들을 비판하는 글을 썼던 칼뱅을 함께 비난한다. ‘왜냐하면 칼뱅의 개혁원리들은 이들 ‘리베르탱들’의 원리와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이다. 칼뱅이 그러하였듯이 우리가 교회의 구속에서 벗어났을 때 항상 동일한 원리를 따라서 더욱 멀리 나아가는 일은 쉬운 일이다.’ 이 예를 사람들은 성경에서 찾았는데, 사도행전 6장 9절을 보면 ‘synagoga libertinorum’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이들을 스테반이 시기하여 논쟁을 벌였으나 당해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된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였는데, 16세기 프랑스어 성경에서 이들을 ‘리베르탱’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결국 이 말은 반체제 지식 분파 내지는 신앙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이르는 말로 간주되었다. 칼뱅은 이들을 ‘에피쿠로스 또는 루키아누스주의적 무신론자들’이라고 불렀다. [...] 17세기에 이르러 가톨릭은 절대왕정과 결합하면서 국가가 비준한 종교적 원리에 어긋나는 모든 분파들과 개인적인 신념과 저작들을 ‘리베르탱’이라는 이름으로 단죄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분명히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영향을 받았고, 유물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들은 영혼의 불멸성을 부정했고,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기존의 교리와 신념으로부터 ‘해방된 자’로서 리베르탱은 구원(救援) 대신 세속적인 즉각적 쾌락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 18세기에 들어서 ‘리베르탱’은 ‘자유사상가’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들이 ‘철학자들’이 될 것이다. 레이몽 트루송은 루이 14세가 죽은 후 섭정기의 리베르탱들은 이론 이상으로 실천에 몰두하면서 비판의 철학적 태도보다는 방종에 이르는 경향이 있었다고 말한다. 1732년의 트레부 사전의 리베르티나주 항목을 보면 ‘풍속에 있어서 방탕, 방종, 무질서, 리베르탱의 행실’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백과전서』의 정의는 보다 구체적이다. 리베르티나주란, ‘감각의 쾌락에 이르게 하는 본능에 굴복하는 습관’이며, ‘풍속을 존중하지 않으나, 이에 맞서는 것도 아니다. 섬세함도 없고, 선택을 할 때는 일관성이 없다. 향락과 방종의 중간쯤에 머문다.’”(15-17쪽, 옮긴이 강조. 원문에는 리베르땡으로 되어 있으나, 이 글에서는 리베르탱으로 옮겼다)
1. 푸코에 따르면, 우리가 사드를 독해할 때 피해야만 할 두 가지 잘못된 방식은 프로이트적 독해, 그리고 마르쿠제적 독해이다. ‘진리의 욕망하는 본성을 복원하려 한’ 사드의 사유는 ‘진리에 맞추어 욕망을 다시금 정돈하려는’ 프로이트적 사유의 대척점에 위치하는 것이다. 니체의 길을 따라, ‘욕망으로부터 초연한, 혹은 권력과 무관한’ 플라톤적 진리관을 논파하려는 푸코는 욕망, 권력과 상관적으로 형성되는 지식, 진리(진실)이라는 권력-지식의 관점에서 사드를 읽고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s)’이라는 철학(philosophia)의 관념 자체가 이미 사랑, 곧 욕망의 담론을 담고 있지 않은가? 반면, 이렇게 ‘욕망과 진리의 무한한 얽힘, 상호 생성을 말하는’ 사드의 담론은 ‘이제까지 내가 죄책감을 갖고 해왔던 것을 이제 나는 어떤 죄의식도 없이 행복하게 행한다’라는 형식을 갖는 마르쿠제의 담론과도 다르다. 사드에 있어서의 욕망과 진리의 관계는 ‘연이어 일어나는 범죄와 영원한 무질서 안에서만’ 실현된다. 푸코에 따르면, 사드는 ‘서구 문명에서 욕망이 늘 사로잡혀 있던 진리에의 종속으로부터 욕망을 실제로 해방시킨 인물’, ‘욕망을 진리의 절대권 아래 정돈시켰던 플라톤적 구축물을 욕망과 진리가 동일한 나선의 내부에 함께 속해 있어 서로 맞부딪히고 서로에게 맞서는 하나의 놀이로 대체한 인물’이다. 이러한 해석은 푸코가 더 이상 블랑쇼의 바깥도, 바타유의 위반도, 구조주의의 그물망도 아닌, 니체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진리와 욕망의 담론, 권력-지식의 계보학, 자기의 테크놀로지, 자기와 자기의 관계를 의미하는 ‘윤리’의 계보학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푸코의 평생에 걸친 작업이 - 실제로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 『감시와 처벌』이 이미 바로 그러했던 것처럼 - 자신의 사회 곧 서구문명이 그것에 입각해 작동하고 있는 문화인류학적 코드의 분석 작업이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문학과 과학과 철학,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영역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된 경계선은 무너지게 되고, 이제 관건은 이들이 서로서로를 형성하며 제어하고 상호작용하며 이루어가고 있는 이 복합적 그물망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작동하고 있는가를 아는 일이다.
0. 오늘도 내가 다녔던 대학의 교정에는 목련꽃이 피고, 문과대학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님의 문학 강의를 경청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여전히 문학 작품들, 또는 문학에 관한 텍스트들이 들려 있을 것이며, 그들은 여전히 오늘도 문학을 읽고 느끼고 말하고 배우고 또 논할 것이다. 그리고 문학을 읽고 알고자 하며 문학을 배우고 문학을 규정하고자 하는 그들의 바로 그러한 행위와 의도가 그들 자신을, 나아가 그들의 문학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점이 오늘 우리가 여전히 푸코를 읽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우리가 서양화된 만큼 서양인인 푸코의 주장은 우리에게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독서와 사유 그리고 실천의 과정을 통해, 이 책에서 푸코로 대변되는 서양의 담론은 ‘우리’를 만들고, 또 우리의 ‘문학’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바로 이러한 ‘우리’의 정립 과정, ‘우리 문학’의 정립 과정이 그 상관자로서 ‘서양’의 정립, ‘서양 문학’의 정립 과정과 맞물려 서로서로를 동시적ㆍ상관적으로 형성하게 될 것이다(극단적으로 말해본다면, 내가 푸코를 읽지 않는다면, 서양 문학을 읽지 않는다면, 나는 푸코와 달리, 서양문학과 달리, 나를, 나의 문학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의 긍정적 가치, 또 위험성은 앞 문장의 문학을 과학 또는 철학으로 대치하여 읽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대학교 신입생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30년이 지난 오늘도 푸코의 책을 읽고 번역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반추하며 ‘나’와 ‘나의 문학관’을 형성하고 있을 것이다. 인식의 틀이 없는 인식은 불가능하듯이, 나는 나의 인식틀로 나와 나 이외의 모든 것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이 책을 읽을 거의 모든 (그런 것이 있다면) ‘한국 사람들’이 느낄 것처럼, 내게는 푸코의 이 책이 ‘문학’의 정의를 시대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너무도 좁게, 너무도 서양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나, 또 다시 되돌아 앉아, 푸코에게로, 그리하여 나에게로, 그리고 내가 대학 시절 읽은 『문학의 지평』으로, 그리고 그것을 읽었고 푸코를 번역하며 ‘문학’을 생각하는 지금의 나에게 되돌아가는 나, 그리하여 푸코와 『문학의 지평』 이 문학에 대하여 내리는 특수하고도 보편적인 두 가지 방식의 정의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어린 시절의 생각과는 달리, 양자 모두가 보편적인 ‘문학’ 자체에 대한 정의가 아님을 깨닫고 놀라곤 한다. 문학은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다. 문학 또는 문학의 고고학이란 문학을 넘어서는 것, 문학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다. 문학이란 문학을 버리는 것이며, 문학을 죽이는 일이다. 이는, 마치 미술의 영역에서 뒤샹이 행했던 바와 같이, 문학이 기존의 문학관에 대한 이의제기, 문제화 작업에 다름 아니라는 선언이다. 문학은, ‘문학’이 아니라, ‘이 문학’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묻는 일이며, 이 문학과 다른 ‘또 다른 하나의 문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자신의 글쓰기 행위를 통해 실현하고 드러내는 일이다.
2015년 6월 19일
일산 노루목길에서
* 일러두기 - 이 책은 다음의 완역이다. Michel Foucault, La Grande étrangere. A propos de littérature, collection audiographie, editions EHESS, 2013. 먼저 번역서의 제명에 대해 말해두어야 하겠다. 푸코의 강연을 모은 프랑스어 원서의 제목은 물론 프랑스어판 편집자들이 택한 것으로 푸코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제목은 우리말로 번역하기에 매우 곤란한 제명이다. 우선 그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정도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데, ‘거대한 낯섦’ 또는 ‘위대한 외국문학’이 그것이다(부제는 ‘문학에 대하여’이다). 물론 프랑스어의 편집자들은 의도적으로 이 용어들 이 갖는 중의적 또는 다의적 의미를 취한 것으로, 이러한 의미를 모두 담을 수 있는 우리말 번역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번역을 진행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광화문의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번역 중이던 본서의 초고를 강독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몇 달에 걸쳐 번역의 초고를 한 줄씩 모두 읽어 내려가는 방식으로 강독을 진행하던 중, 나는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강연 내용을 전체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제명을 고심 끝에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제명인 ‘문학의 고고학’이다. 이 강연들은 모두 지식 고고학의 방법론을 통해 ‘문학’의 관념에 대한 비판적 분석 및 새로운 규정을 제시하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내게는 이 제목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적절한 제명으로 생각된다. 이는 강독을 들어주신 분들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깨달음으로 이 자리를 빌려 강독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다음으로, 문체, 정확히는 문장부호 쉼표 사용의 문제가 있다. 푸코의 문체는 프랑스어를 이해하는 자들에게는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탁월한 문체로 정평이 나있다. 프랑스어가 가지는 섬세한 뉘앙스와 ‘말놀이’를 살리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고심을 거듭한 결과, 프랑스어 원문의 쉼표를 가급적 살리는 방향으로 번역을 진행했다. 현대 한국어는 가급적 쉼표를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이 가독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독자들께서 1960년대 문학 시기 푸코의 문체와 말투를 오늘의 한국어로 되살리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적어두고 싶은 것은, 인간사랑 출판사의 출간목록에는 이 『문학의 고고학』 이전에 옮긴이의 이름으로 출간된 번역서가 두 권이 있다. 스튜어트 슈나이더맨의 『쟈크 라캉. 지적 영웅의 죽음』(1997)과 자크 랑시에르의 『민주주의는 왜 증오의 대상인가』(2011)이 그 두 권인데, 전자는 내가 번역한 것이지만, 후자는, 놀랍게도,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분, 곧 동명이인(同名異人)이신 다른 분이 번역하신 것이다(프랑수아 줄리앙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를 옮긴 바로 그분이다). 이제 또 다시 같은 출판사에서 같은 이름으로 세 번째 번역이 나오게 되었으므로, 이를 여기 적어 독자들의 혼동을 덜어드리고자 한다(아마도 이 이야기는 ‘이중/분신에 대한 책’에 믿을 수 없을 만큼 꼭 들어맞는 하나의 일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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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
문학의 고고학 - 옮긴이 앞글 [수정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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