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9.

영화 <변호인>과 부림사건의 모든 것

 
 
 
 
나도 그랬고 늘 그럴 수밖에 없지만,
한 시대의 새로운 세대는 그 이전의 시대를 알 수가 없다.
 
역사란 찾아서 공부할 필요가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사이트는 참으로 유용한 우리 시대의
교육적 효과를 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3. 12. 27.

le visible et l'invisible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964, 동문선), 중 「작업 노트」
 
 
 
- 초월적 장이란 여러 초월성의 장이다. 초월론적인 것은 정신 즉 영혼과 심리학적인 확고히 넘어서는 것이므로 반(反)-초월성과 내재성이라는 의미에서 주관성의 넘어섬이다(252).
 
 
 
- 중요한 일은 현재 작용하는 잠재적 역사성으로서의 생활세계에 의해 부름을 받아 생성된 창조이다. 역사성을 계승 연장하고 역사성을 증언하는 창조이다(255).
 
 
 
- 현재와 과거 이상의 것을, 즉 생활세계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 한 문화의 현존재(présence)를 복원하는 것이 문제이다(257).
 
 
 
- 결국 아생적 존재들의 층이 존재할 것이다. [.] 수차례 자기 이입, 코기토를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 예를 들어 나는 신체의 수준에서 앎 이전의 앎(pré-savoir); 의미 이전의 의미(pré-sens), 침묵의 앎을 기술할 것이다.
 
 
 
- 철학자가 찾는 내면성은 또한 상호주관성이고, ‘체험된 것’의 저 너머에 있는 원공동성(原共同性)의 창설(創設, Urgemein Stiftung)이다 - 체험된 것들(Erlebnisse)에 대항하는 자성(自省, Besinnung). [...] 세계에 관한 ‘야생적’ 조망의 탐구는 결코 전(前)이해나 선(先)과학에의 회귀로 그치지 않는다. ‘원시주의’는 과학주의의 상대항에 불과하고 또한 그 역시 과학주의이다. 현상학자들(셸러, 하이데거)이 이 귀납성에 선행하는 이 전(前)이해를 지적한 것은 옳다. 대-상(Gegen-stand)의 존재론적 가치를 문제 삼는 것은 바로 전이해이다. 그러나 선과학으로의 회귀는 목표가 아니다. 생활세계를 되찾는다 함은 하나의 차원을 되찾는 것이다. 요컨대 과학의 객관화들이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를 지니며, 진실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하나의 차원을 되찾는 것이다(하이데거 자신이 그 점을 말하고 있다. 모든 존재의 숙명(Seinsgeschick)은 진실한 것이며, 존재역사(Seinsgeschichte)의 일부다). 선과학적인 것은 메타과학적인 것을 이해하라는 초대일 뿐이다. 그리고 메타과학적인 것은 비과학이 아니다. 메타과학적인 것은 과학을 구성하는 과정들에 의해 밝혀지기도 하는데, 다만 과정들을 재활성화하여 이 과정들이 자신들에게 남겨놓은 상태로 은폐(verdecken)하고 있음을 꿰뚫어보는 조건에서이다. 예를 들어, 구조주의적 태도=발언행위가 이루어질 때마다 매번 우리 눈앞에서 완전히 재창조되는 것으로서의 언어사슬, 언어활동. 요컨대 말하는 행위를 이 행위가 일어나는 현장에서 포착하려는 방침, 그것은 원초적인 원천(Ursprung)으로 회귀하자는 방침이요 - 사실적ㆍ공시적 규정성 속에서 머무르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 공시적ㆍ통시적 전체의 맥락을 말 속에서 포착하려는 방침이다. 과학을 구성하는 작용의 양의성: 언어사슬에 서로 얽혀있는 음운적인 것과 의미론적인 것에만 전적으로 주의를 기울임. 그것은 1) 원천을 파악하고자 하는 요구, 원천을 발견(Entdeckung)하고자 하는 요구이며, 2) 대상(Gegenstand)에의 환원, 즉 원천의 은폐이다(266-267).
 
 
 
- 후설 그리고 우리가 향해 열리는 생활 세계의 길을 따라 야생의 혹은 본연의 존재를 밝히기. 철학이란 무엇인가? 은폐되어 있는 것(Verborgen)의 영역(ρ[철학]과 신비학) [...] 우리 ‘문화’에서 우리 ‘과학’의 여러 힌트(Winke)에서 출발해서 퓌시스(physis)를, 그리고 다음으로 로고스와 수직적 역사를 재발견한다. 나의 제1부는 후설의 『위기』처럼 매우 직접적이고 현재적인 방식으로 구상되어야 함; 우리 시대의 비철학을 보여줄 것, 그 다음 그 기원을 역사적인 어떤 자각(Selbstbesinnung) 안에서, 그리고 과학인, 우리 문화에 대한 자각 가운데서 찾을 것. 그 속에서 여러 힌트를 탐구하게 될 것(268).
 
 
 
- 칸트나 데카르트의 분석: 세계는 유한하지도 무한하지도 않다. 세계는 무한정이다. - 다시 말해 세계는 인간의 경험처럼, - 무한한 존재에 직면하고 있는 유한한 오성의(또는 카늩에 의하면: 인간적 사유의 심연의) 경험처럼 생각되어야 한다. / 후설의 개방성이나 하이데거의 피은폐성(verborgenheit)이 의미하는 것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요컨대 존재론의 환경(milieu)은 즉자의 질서와 대조를 이루는 ‘인간적 표상’의 질서처럼 생각되고 있지 않다. - 진리 자체는 초월의 관계 밖에서는, 지평을 향한 등반 밖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는 것, ‘주관성’과 ‘객관성’은 불가분한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 주관적 ‘체험들’은 세계의 계산에 들어오며 ‘정신’의 세계성의 일부를 이루고 존재라는 ‘장부’에 기재된다는 것, 대상은 이 윤곽(Abschattungen)의 뭉치일 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자 한다 ... 지각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사물이 저기서 자신을 지각하는 것이다. - 말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진리가 말의 저변에서 자신을 말하는 것이다. - 자신이 인간화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인 인간이 자연화하는 것 - 세계는 들판이다. 세계는 이러한 명목에서 언제나 열려 있다(271).
 
 
- 철학을 하나의 지각으로 만들고, 철학의 역사를 역사의 지각으로 만드는데 성공한다면 이상의 것은 분명해질 것이다 - 결국 모든 것은 지각과 이해에 관한 이론 수립의 필요성에 귀착한다(275).
 
 
- 말하는 것이 내가 아니듯 지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 언어활동이 나를 소유하듯이 지각이 나를 소유하는 것이다(277).
 
 
- 후설이 시간을 구성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고, 시간이 스스로 자기를 구성하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옳은 말이다(277-278).

phenomenologie de la perception

 
 
 
 
 
*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철학에 대하여 - 류의근, 『지각의 현상학』(문학과지성사, 2002) 중 ‘역자해설’
 
 
① 현상학적 시기 - 『지각의 현상학』(1945)은 후설의 『유럽 학문의 위기와 초월적 현상학』의 현상학, 생활세계의 현상학을 이어받아 발전시킨다. ② 사회 및 정치철학적 시기 ③ 탈현상학적 혹은 형이상학적 시기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을 실존화한다. 현상학은 사유 방식 또는 양식이므로 실천하는 대로 존재한다. 따라서 현상학이 갖는 다양성의 참된 의미는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된다. 현상학은 ‘우리에 대한 현상학’이다. 후설의 ‘사태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 auf die Sachen selbst, 『이념들 Ⅰ』, 35): “사태에 대해 이성적이거나 학문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 언설이나 의견을 버리고 사태 자체로 되돌아가, 그 자체로 주어져 있는 그대로의 사태를 캐묻고, 사태와 무관계한 선입견을 모두 배제하는 것이다.”(『현상학사전』, 도서출판 b, 2011) 메를로퐁티는 사태 그 자체에로 되돌아감은 “의식에로의 관념론적 복귀와 전적으로 다르다. 세계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분석 이전에 있는 것이다. 실재는 기술해야 하는 것이지, 구성하거나 구축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사태 그 자체로 돌아간다는 것은 인식 이전의 세계, 즉 의식의 구성적 작용 이전에 주어져 있는 현상 세계로 복귀한다는 뜻이다. 초월적 주관성은 더 이상 세계의 중심이 아니며, 이런 ‘현상학적 장’이 탐구의 대상이 된다. 후설의 ‘너 자신 속으로 들어가라.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거주한다’에 반대하여, ‘인간의 내면 같은 것은 없으며, 인간은 세계-에로-존재(être-au-monde)이고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세계 내에서이다.’고 말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복귀할 때 내적 진리의 근원, 인식의 궁극 토대, 즉 초월적 주관성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운명지어진 주관성’을 발견한다(698-699).
 
 
 
현상학적 환원. 후설은 세계의 실재성에 가담하지 말고 세계를 바라만 보며 괄호칠 것을 반복한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친밀성을 끊고, 환원하고 또 환원해야 한다. 환원이란 초월적 인식으로 복귀하는 것이며, 세계는 그 앞에서 절대적 투명성으로 나타난다. 이와 달리,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적 환원은 관념론의 공식이 아니라 오히려 실존철학의 공식이며, 하이데거의 세계-내-존재 역시 현상학적 환원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환원의 위대한 가르침은 완전한 환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순수한 자기 의식, 절대적 의식으로 규정할 수 없다. 후설의 지향성은 의식의 근본구조로서 작용적 지향성, 구성적 현상학의 지향성이나, 메를로퐁티의 지향성은 발생적 현상학의 지향성이다. 곧 절대적 주체성의 작용적 지향성의 근저에는 우리의 삶과 세계의 선(先)술어적 통일성을 구성하는, 주관과 객관의 통일을 ‘미리 구성하는 익명적인 침묵’이 있다. (실재에 대한 모든 판단을 정립하고 명시화하는 의식의 지향성보다) ‘더 심층적인 지향성’이 있고, (구성적 사유 주체의 의미 부여에 의존하기 것이라기보다) 신체-주체에 의존하는 선(先)이론적 구성이 있다. 이러한 지향성에는 시간과 역사의 차원이 있고 어떤 사실성, 세계성이 있다(699-701).
 
 
 
후설은 주체를 능동적 종합, 지적 종합의 주체로만, 또는 그 자체로 조직되어 있는 세계의 수용체로만 볼 수 없는 어떤 지각적 경험이 있다고 본다. 후설이 말하는 ‘수동적 종합’. 수동적 종합이란 말은 (칸트적 의미에서) 종합이 이미 늘 구성적인 것, 곧 능동적인 것이므로 하나의 형용모순이다. 이를 해명하기 위해 후설의 선험적 의식으로부터 신체에로 이행하는 것이 『지각의 현상학』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메를로퐁티는 초월적 자아에서 신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서 초월적 의식을 역구성하는 데서 성립한다. 초월적 자아의 삶이 육화된 삶이다. 지각과 인식의 주체는 신체이고, 개개의 감각기관은 모종의 종합의 대행자이다. 신체가 하는 종합은 고유한 신체의 지향적 구조에 의해 해명된다(701-702).
 
 
 
『지각의 현상학』의 논의틀은 주지주의와 경험주의, 실재론과 관념론, 주관주의와 객관주의 사이의 대립구도 안에서 수행된다.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주지주의는 데카르트에서 칸트로 이어지는 관념론, 비판철학적 성향, 그리고 브룬슈빅의의 신칸트주의를 가리킨다. 때로는 후설의 초월적 관념론, 사르트르도 포함된다. 주지주의는 물질에 대한 의식의 우위를 주장하고 인간을 세계와 자신의 신체로부터 격리시킨다. 데카르트의 관념론 이래 주지주의적 전통은 인간을 순수 의식의 세계, 순수 지적 작용의 세계 안에 가두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의식의 대상으로 축소시켜 놓았으며 주객의 이분법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험주의는 로크에서 흄으로 이어지는 고전적 경험론의 정신을 계승하는 원자주의적 실증주의적 과학주의적 행동주의적 사고 성향, 그리고 각종의 실증주의적 사회과학을 일컫는다. 이는 인간을 외적 원인과 자극의 결과로 환원시키고 의식의 발심적 창조적 역할과 인간 행동의 통합적 특성을 외면하며, 인간의 경험을 조각으로 나누어 인위적으로 분해한다. 모든 사건은 객관세계에서 일어나고 그 때문에 지각하는 주체가 망각된다(702-703).
 
 
 
후설이 자연주의의 위협에 대한 응전으로 현상학을 창시한 것처럼, 메를로퐁티는 경험주의 철학과 주지주의 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신체(corps)의 현상학을 내놓았다. 주지주의는 감각적 한계를 무시하고, 경험주의는 지적 추상 작용을 무시한다. 양자는 마음과 세계를 서로에 대해 외적인 것으로 보는 무비판적 자연주의적 태도를 구현하며, 이런 의미에서 양자 모두 자연주의적 태도를 전제하는 객관주의 철학이다. 자연주의적 태도는 체험되지 않은 세계, 즉 객관적 세계만을 설명할 뿐이고 우리가 비(非)반성적으로 참여하는 많은 일상적 활동, 가령 산보를 하고 버스를 타고 식사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텔레비전을 보는 등의 선(先)반성적 수준을 설명할 수가 없다. 객관주의 철학은 발생하고 태동하는 초기화 단계의 지각적 경험의 본성을 규명할 수가 없고, 우리와 세계를 통합시키기보다는 분리ㆍ고립시키며, 실재론과 관념론의 공통지반을 망각한다(703-704).
 
 
 
고유한 신체 혹은 체험된 신체의 현상학은 ‘지각적 경험에서 신체가 수행하는 역할과 의미’를 탐구한다. [* 體驗, le vécu, the lived, Erlebnis * 經驗, Erfahrung] 그것은 신체를 우리와 세계와의 살아있는 ‘유대’로서, 우리를 세계에 소속시키는 ‘탯줄’로서 이해한다. 그것은 인간 경험의 ‘뿌리’가 신체에 있음을 캐낸다. 그것은 세계가 아직 객관적 세계로 되기 이전의 현상적 장을 기술한다. 이러한 ‘선(先)객관적ㆍ선(先)의식적 세계’에서 보면, 신체를 구성된 대상세계에 배치시키는 것은 오류이다. 마음도 신체도 아닌 어떤 존재가 있는데, 바꾸어 말하면 신체의 마음이 있고 마음의 신체가 있다. 따라서 의식은 육화된 의식이고, 신체는 의식하는 신체이다. 인간은 육화된 정신이다. 육화된 의식은 메를로퐁티 신체현상학의 기본적 진리이고 정신과 신체 이원론의 극복이며 관념론과 실재론의 공통 근원이다(705).
 
 
 
이러한 존재 영역을 근본적으로 특징짓는 것이 신체가 세계를 지향할 수 있게 되는 운동적 지향성이다. 이것은 물론 지적ㆍ반성적 의식의 지향성이 아니라 기능적 지향성, 육화된 지향성이다. 이러한 지향성은 우리가 시선을 보낼 때, 손을 내뻗칠 때, 걸을 때, 대상을 지각하면서 감각들이 상호 협동할 때, 신체가 방향을 잡을 때 우리가 느끼고 발견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체의 자연적 지향성이 존재가 세계에 현상하는 근원적인 조건이다. 따라서 신체의 현상학은 존재가 의식에 도래하는 과정, 또는 세계가 형(形)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연구하는 ‘존재의 계보학’이다. 그것은 의식이 의존하는 토대를 벗겨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주체의 고고학’이며, 마음이 신체에 두고 있는 그 뿌리를 파헤치고 캐내는 ‘마음의 고고학’일 뿐만 아니라, 신체를 자연적 주체성으로 발견하는 ‘신체의 고고학’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고에서 사고되지 않은 것을 사고하는 ‘사고의 고고학’이다(705).
 
 
후설에게 신체의 운동 기도는 의식적 주체의 몫이지 신체의 것이 아니다. 후설에게는 의식이 신체의 기능에 끼어드는데 반해, 메를로퐁티에게는 신체가 의식의 삶에 끼어든다. 메를로퐁티에게는 인간이 하는 사고와 반성 및 그 대상성 속에 신체가 이미 예기(豫期)되어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 현상학의 근본주제는 존재의 의미이다. 인간은 존재를 가장 탁월하게 이해하고 있는 존재자이다. 하이데거는 이어한 존재자를 존재의 장소라는 의미에서 현존재(現存在, Dasein)라고 부른다. 현존재는 개방되어 있는 존재자요, 그 개방성은 처지 또는 기분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하이데거의 현존재 분석 곧 기초존재론은 신체적인 것이 존재에로 개방되어 있는 통로이자 장소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존재의 수준 혹은 차원은 신체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신체적인 것이 존재의 차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신체는 존재자와의 접면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신체는 가끔 한 자리에 모여 있는 타인들과 일체임을 느낀다. 역으로, 타인의 몸짓과 동작에서 나의 경직된 몸이 풀리기도 한다. 무용수의 춤에서 우리는 존재의 현전(現前)을 본다. 나는 세계와 존재로 개방되기 위해서 그때그때마다 어떤 처지에 있거나 어떻게 느끼고 있다. 신체는 존재의 구조에 대한 자연적 이해를 소유하고 있다. 하이데거의 기분(氣分, Stimmung) 개념은 메를로퐁티가 ‘자신을 상황 속에 밀어 넣는 신체의 일반 능력’이라 부르는 것이며, 따라서 신체는 현존재 탈자성(脫自性)의 토대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신체적 내력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존재의 지각적ㆍ감각적, 곧 신체적 토대를 언급할 수 없었다. 사르트르의 신체는 경험하는 신체가 아니다. 타인의 신체를 대상화하는 데서 나는 나 자신의 주체성을 의식하고 내가 타인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 내가 그에게 대상의 하나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나의 신체는 나로부터 소외된다. 경험하는 주체를 사르트르처럼 대자존재 즉 의식에서 찾을 때, 우리의 경험에서 신체가 분명히 기능하고 있다 해도 의식은 그 점을 쉽게 놓칠 것이다. 사르트르는 신체의 기능적 지향성을 확립하지 못했으며, 대자와 즉자의 대립과 분리를 극복하는 중도론을 세우지 못했다. 사르트르에게는 의식이 신체의 기술보다 먼저이지만, 메를로퐁티에게는 신체와 세계가 동시적으로 출현한다(706-707).
 
 
 
메를로퐁티의 신체 현상학은 학(學) 이전의 것을 연구하는 학이며, ‘현상학의 현상학’을 제시하고 있다(707). 이것이 그의 현상학적 실증주의, ‘살’(chair, flesh)의 존재론이다(696-697).
 
 
‘세계-에로-존재’(l'être-au-monde). 삶의 자리, 현장, 혹은 대지로부터 찰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우주가 인간에게 분수하는 몫, 즉 운명의 신이다. 메를로퐁티는 최종적으로 신을 모독하고 대지를 사랑하라는 니체의 운명애(運命愛, amor fati)에 공명한다.
 
 

edmund husserl


* 쿠르트 프리틀라인, 『서양철학사』, 서광사, 1985.

 
제10절 현상학: 후설


1. 머리말: 개별 과학이 없는 철학


* 현상학(現象學): 형상학(形相學, Eidologie)이라 불리는 본질 직관(Wesensschau)에 관한 철학적 이론. 의식 주관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본질에 관한 이론이 아니다. 현상학의 목표는 ‘보편인식’(mathesis universalis) 곧 ‘체계적 학문성 일반에 관한 이론’의 기획으로, 개별 과학은 이 인식 안에서 자신의 척도를 발견한다.


19세기에 철학과 사실 간의 관계에는 점증적으로 개별과학이 첨가되었다. 그리하여 철학은 다소 이들 개별 과학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다. 철학적으로 다시금 학문적으로 편견을 가지지 않은 사실에 대한 직접적 통로를 획득하려는 노력이 이 같은 점에 대하여 점차로 스스로를 방어하게 되었다. 삶의 철학(니체 이래로)과 아울러 정신과학적 철학(딜타이 이래로)은 계속하여 이러한 동기를 갖는다. 이러한 사조에서는 학문성의 상실은 아닐지언정 일정한 엄밀성의 상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결국 1900년 경 후설은 모든 개별 과학의 감독(수학의 감독을 포함하여)이 없이 그가 현상학이라 부르는 ‘현상에 대한 본질 직관의 이론’에서 직접적으로 사실에서 그리고 동시에 엄밀하게 학문적으로 철학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한다.


2. 후설의 본질직관의 철학


1) 수학으로부터 본질론으로


후설은 철학과 개별 과학의 위치를 교환한다. 개별과학은 19세기 말 상호관계에서 그리고 자신의 내용으로 철학을 소유하였다. 더 이상 개별 과학은 철학이 개별과학의 결과에 집착하도록 철학의 내용을 미리 가다듬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개별 과학은 철학을 모든 사태 영역의 원칙적인 사전 검토를 위한 심급으로 명한다. 이러한 관계에서 철학은 후설이 라이프니츠를 따라 보편인식ㆍ보편수학(mathesis universalis)이라 일컬은 ‘체계적 학문 일반에 관한 이론’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후설의 생애와 저술


(메렌의) 프로스니츠 출신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은 1902년 이래 괴팅겐 대학, 1916-1927년 프라이부르크 대학 교수였다. 저술: 『논리적 탐구』(Logische Untersuchungen, 전2권, 1900), 『순수 현상학 및 현상학적 철학에 대한 이념』(Ideen zu einer Phänomenologie und phänomenologischen Philosophie. I. Einführung in die reine Phänomenologie, 1913).


3) 사실과 본질


* 의식의 지향성(志向性, Intentionalität). 만일 의식이 대상적인 내용을 암시한다면 그것은 지향적이다. 이 경우 그것은 ‘어떤 것에 관한 의식’(Bewußtsein von etwas, consciousness of something)이다. 여기에서 의식 자체는 실재적이지만, 대상이 되는 어떤 것은 지향적, 비실재적이다. 이러한 지향적 대상에서 사실적인 것은 본질과 결합된 것으로서 존재한다. 이때의 본질(Wesen)이란 ‘개별적인 대상 자체의 고유한 존재에서 자신의 무엇으로서(als sein Was) 현존하는 것’이다. 즉 사실로부터 (인식에 이르는) 길은 본질에 이를 수 있지만, 본질로부터는 어느 누구도 사실에 도달할 수 없다. 말하자면 본질 지식은 현실성에 관하여 아무 것도 언명하지 않는다.


* 더 이상 사실적인 것이 아닌 오로지 본질적인 것만을 나타내는 의식이 순수의식(das reine Bebußtsein)이다. 이 순수의식은 후설이 말하는 이른바 현상학적 판단중지(Phänomenologische Epoche, epoché), 곧 차단, 괄호 안에 넣기를 통해서 성립한다. 여기에서 의식은 일상성, 논리학, 수학, 심리학, 자연과학과 정신과학, 그리고 신학의 관점을 배제한다. 이러한 순수의식의 비지향적 완성의 총체를 질료라 부르고, 이에 대응하는 지향적 완성 곧 활동ㆍ작용을 노에시스(das Noësis)라 부르고, 지향적 대상을 노에마(das Noëma)라 부른다. 형상(Eidos)이란 다름 아닌 이러한 노에마 혹은 노에마 집합의 핵심이다.


대상의 세계는 의식에 주어져 있다. 그러한 한에 있어서 의식은 대부분 ‘어떤 것에 관한 의식’이며, 또한 ‘지향적(志向的) 의식’이라 일컬어진다. 그러한 의식은 실재하며, 그것의 개별적 실행(활동)이 이루어진다. 그러한 실재적인 실행(활동)의 지향적 대상 자체는 실재적이지 않고 실재를 통하여 의도된 지향적인 것이며, 따라서 비실재적이다.


의식의 지향적 대상에서 후설은 ‘사실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을 구분한다. 여기서 본질은 ‘개별적 대상에 고유한 존재에서 그것의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모든 사실로부터 그것의 본질에 이르는 길이 있다면, 반대로 그러한 본질로부터 사실에 이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한 한에 있어서 현상학은 어떠한 존재론도 아닐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도 아니다.


현상학은 지향적 객관으로서 어떠한 사실에 더 이상 직면하지 않고 단지 그러한 객관의 본질(形相, das Eidos)에 직면하는 그와 같은 의식의 종류를 발견하려는 과제를 던진다. 여기에서 후설은 순수의식을 언급한다.


현상학적 판단중지에 의해 자연적 일상성, 논리학과 수학, 심리학, 자연과학과 정신과학, 신학의 관점이 차단된 이후, 그리고 동시에, 무엇보다 먼저 그것들에 의해 야기된 의식의 피안, 곧 초월적인 것에 관한 언명조차 차단된 이후, 남는 것은 오직 순수의식, 곧 잔재(Residuum)이다.


4) 질료-의식작용-의식대상-대상


오로지 ‘순수의식’의 기초 위에서만 본질에 관한 ‘근본적으로 부여하는 직관’이 가능하다. 본질직관(Wesensschau)이 실제로 성립할 경우, 본질 직관은 본질 지향(본질을 직관적으로 향함)과 함께 시작되며, 자신에게 속하는 본질 지향의 충족과 아울러 끝난다. 그러나 후설에 의하면, 언제나 예외 없이 모든 경우가 그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본질을 근본적으로 부여하는 직관의 모든 가능성 자체가 결코 본질 내용의 전체적인 충만함을 다시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순수의식에도 역시 비지향적 상태가 존재한다. 후설은 그것을 질료(Hyle) 혹은 질료적인 것(das Hyletische)이라 불렀다. 후설은 순수의식의 지향적 실행을 노에시스(das Noësis. 의미로 충만한 의식 작용)라고 부르고, 이 노에시스의 지향적 대상 내지 내용을 노에마(das Noëma. 의미로 충만한 활동의 대상)라 부른다. 결국 해당되는 노에마의 ‘대상적 핵심’으로서 대상 자체가 (그것의 본질에 따라) 노에마의 집단에 속한다.


생활세계 Lebenswelt, 삶의 형식 Lebensform

 

le rideau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4137





"불행은 젊은이들의 실제 모습이다. 젊은이들은 편협한 교리를 주창하고 실행하며, 피와 비명과 소요와 잔인성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젊었던 시절에는 전 유럽이 젊음을 믿었고 전 유럽이 젊음을 몰아붙여 정치와 국가적 사안에 관여하게 했다."(시오랑의 말, 203)


"내게 부족했던 것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지식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지식이 , 플로베르가 말했을 법한, 인류의 내용을 파악하는, 역사적 상황의 '혼'으로 파고드는 지식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한 소설을 통해서, 위대한 한 소설을 통해서 그 당시 체코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결정을 감내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소설 한 권이 쓰인 적 없다. 바로 이것이, 그 어떤 것도 위대한 소설의 부재를 메워 줄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경우 중 하나이다."(226)


"온통 들썩이게 만들었던 것은 바로 젊은 [에메] 세제르의 한 편의 시 <귀향 수첩>(1939)이다. 검둥이들이 사는 서인도제도의 한 섬으로 검둥이 하나가 귀환한다.(세제르는 흑인이라고 하지 않고 일부러 검둥이라고 말한다.) 어떤 낭만도 없이, 어떤 이상도 없이, 이 시는 거칠게 '우리는 누구인가?'라고 자문한다. 아, 그렇다. 정말 서인도제도에 사는 흑인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17세기에 아프리카에서 그곳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디에서 온 걸까? 그들은 어떤 부족에 속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어떤 것이었을까? 과거는 잊혀 버리고 말았다. 처형되었다. 배의 화물칸에 몸을 싣고 떠난 긴긴 여정에 의해, 시체, 비명, 눈물, 피, 자살, 암살 사이에서 처형된 것이다. 지공을 통과한 이 여정 이후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망각만이, 본질적이고 토대가 되는 망각만이 남았을 뿐.

망각의 잊을 수 없는 충격은 노예의 섬을 꿈의 극장으로 변모시켰다. 실제로 마르티니크인들이 그들 고유 삶을 상상하고, 그들의 존재론적 기억을 창조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꿈에 의해서였으니까. 망각의 잊을 수 없는 충격은 민담 작가들을 정체성을 탐구하는 시인들의 반열로 끌어올렸으며, 나중에 그들의 환상과 광기와 더불어 숭고한 구전 유산을 소설가들에게 물려줬다. 이 소설가들을, 나는 좋아했다."(228-229)


 



 

2013. 12. 24.

igno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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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1960년대에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망명객들은 프랑스에서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그 당시 프랑스인들은 파시즘을 단 하나의 진정한 악으로 간주했다.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의 스페인, 라틴아메리카의 독재. 그들은 점차적으로, 즉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가 되어서야 공산주의를 한 단계 밑의 악, 제2의 악으로나마 간주하기 시작했다. 이레나와 그의 남편이 프랑스로 망명한 것은 바로 이 시기, 즉 1969년이었다. 제1의 악과 비교해 볼 때 자신들의 나라에 닥친 불행은 그들의 친구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줄 만큼 처참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재빨리 알아차렸다."(16)


프랑스에 가서 살아보면 이 프랑스라는 나라가 얼마나 끔찍한 과거를 가졌는가, 그리고 그것을 의식으로는 비판한다 하면서도 얼마나 그에 대한 끔찍할 만큼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절감을 하게 된다. 내가 유학하던 21세기 초반이나, 오늘이나,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은 프랑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어이 없는 '표상의 정치학'에 고개를 흔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대책없고 무지막지한 프랑스인들의 '무지'(ignorance)는 도대체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리고 이 무지막지하고 폭력적인 프랑스인들의 무지, 제국주의적으로 재구성된 한국에 대한 그들의 지식 혹은 무지는 아예 무지한 이른바 '민중' 계급보다, 이른바 <르 몽드>나 좀 보는 인텔리겐차 계급에서 그 정점에 달한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이 읽는 정보가 처음부터 차별적 편견과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무장한 특파원과 데스크의 관점에 의해 선택되고 구성된 것임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 무지임에 대한, 아니 오히려 무지보다 못한 최악의 지식임에 대한 자각이 없는 것이다. 자기 지식의 확실성에 대한 추호의 의심도 없다. 스스로의 무지를 모르는 무지만큼 끔찍한 것도 드물다. 그런 면에서, 그 자신도 오로지 서구중심주의자라는 면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지만, 프랑스의 제국주의와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쿤데라의 정곡을 찌르는 한 마디. 프랑스인들이 지금도 종종 되뇌는 '프랑스적 예외'(exception francaise)라는 황당한 자기중심적 언사가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프랑스는 유럽의 일본이다. 역사적으로 명백히 가해자에 더 가까우나, 스스로를 오로지 희생자로 바라보는 것이다. 일본의 원자탄이 프랑스의 히틀러인 것이다. 프랑스에 대한 우리나라의 이른바 좌파적 환상은 어이 없는 것이다.

polizeiwissenschaft


 
 
 
 
*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1977-78년』,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9강. 1978년 3월 8일


정치가(les politiques): 16-17세기의 서구에 등장. ‘이단’의 냄새를 풍기며, ‘이단’에 가까이 있는 종파에 속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늘 ‘부정적’으로 사용되었던 용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부를 어떤 형식의 합리성에 의거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일정한 생각을 통해서 서로 뭉치는 사람들”, “주권의 기초라는 사법적ㆍ신학적 문제에 반대해서, 통치합리성의 형태 자체를 독자적으로 사유하려한 자들”(343).


17세기 중반 이후. * 샤틀레 후작, “정치란 국가의 통치술”(marquis du Chastelet, Traitté de la politique de France, 1669). * 보쉬에, “성서에서 이끌어낸 정치”(Jacques-Bénigne Bossuet, Politique tirée des propres paroles de l'Ecriture sainte, 1709). “하나의 영역, 목적/의도의 집합, 권력조직의 특정한 유형”. 프랑스가 제안한 교황권 제한주의(gallicanisme), 즉 국가이성이 교회에 대항하여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의 정당화. 국가이성에 의해 지휘되는 정치. 정치는 더 이상 ‘이단’이 아니며, 제국은 죽어버렸다(344).


국가(l'Etat): 국가가 숙고된 인간의 인식에 들어온 것은 1580-1650년 사이의 일. “제가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은 국가가 근본적인 정치적 목표로서 출현했다는 사실을 통치의 역사라는 더욱더 일반적인 역사의 한 부분, 그도 아니라면 권력의 실천 영역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권력을 논한다면 권력에 대한 내적ㆍ순환적 존재론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국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국가의 역사와 발달을 얘기하는 사람들, 국가의 자부심을 얘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역사를 통해 어떤 실체를 만들어내고, 국가라고 하는 이것의 존재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국가라는 것이 일종의 통치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국가라는 것이 통치성의 유형 중 하나일 뿐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층적이고 다양한 절차에 입각해 차츰차츰 형성되어가고, 마찬가지로 차츰차츰 응결되어 특정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 모든 권력관계, 이 통치의 실천에 입각해 국가가 구축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346)


10강. 1978년 3월 15일


조반니 팔라초(Giovanni Antonio Palazzo, Discorso del governo e della ragion vera di Stato, 1604). 이성의 두 의미: ‘사물 자체의 본질’, ‘사물의 이치에 대한 인식’이며 [의지로 하여금] 이 사물의 이치 자체에 따르도록 해주고, 어느 정도까지는 의무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힘.


Etat(國家): ① 영역(dominium), ② 관할권(juridiction), ③ 삶의 조건, ④ 운동과 대립하는 사물의 본질.


république(共和國): ① 영역/영토, ② 사법의 공간이자 법, 규칙, 관습의 총체, ③신분들의 총체, ④ 영역, 관할권, 제도 혹은 개인들이 갖는 신분의 일정한 안정성.


raison d'état(國家理性): 이 네 가지 의미에서 ‘국가’가 자신의 온전함을 철저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충분한 것. 팔라초, “국가이성이란 국가의 모든 기술과 직무에 관련해 필요한 모든 사물의 본질 전체이다”, “국가이성이란 장인에 의해 정해진 목표를 획득하기에 적절한 수단을 가르치고 관찰하는 어떤 규칙이나 기술”, “국가의 온전성, 평온함, 평화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규칙이나 기술”이다(349-351).


켐니츠(Bogislaw Philipp von Chemnitz)의 1647년 텍스트, “국가이성이란 모든 공적인 일, 모든 조언과 계획에서 사람들이 갖춰야만 하는 정치적 견지이다. 이 정치적 견지는 오로지 국가의 보존, 증강, 지복만을 지향해야 한다.”(351)


당시의 국가이성은: 자신의 정의와 관련하여 국가이성 자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참조하지 않는다, 국가의 본질이자 인식, 보존적ㆍ보수적, 국가 자체가 목적으로 설정된 무엇(353). 이러한 논의의 관심은, 기원ㆍ토대ㆍ정당성ㆍ왕조가 아닌,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통치이다. 기원이 없듯이, 종착점ㆍ목적도 오직 국가 자체이다. 최후의 궁극적 제국과도 같은 외적 목표가 사라지고, 다수 국가들 사이의 균형을 통해서만 가능한 항구적인 세계평화가 관건이며, 이후 이는 인간 행복에 있어서의 진보의 관념으로 수정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구(人口, population)의 관념이 있다.


coup d'état(쿠데타): 17세기 초의 쿠데타는 (국가를 그 소유자로부터 압수하거나 몰수한다는 의미가 아닌) 보편법을 뛰어넘는 행위, 국가로부터 법이나 합법성을 빼앗고 중단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 가브리엘 노데(Gabriel Naudé, 1600-1653)의 『쿠데타에 관한 정치적 고찰』(Considérations politiques sur les coups d'Etat, 1639), 보편법의 초월(Excessus iuris). 보테로의 ‘공공선을 위해 행해지는 보편법의 초과’(excessum juris communis propter bonum commune). 보편법에 반하는 특별한 행동, 어떤 질서나 어떤 사법 형식도 지키지 않는 행동. * 켐니츠, “국가를 구제하는 것이 문제일 때, 국가 이성은 공법, 특수한 법, 근본적인 법과 그 외 어떤 종류의 법도 과감하게 위반할 수 있다”, “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법에 대해서 명령해야 한다. 국가가 법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국가의 현상에 적응해야 한다.” 국가 자체의 필요성, 긴급성, 구제의 필요는 자연법적인 법의 작용을 배제한다. 결국, 쿠데타는 국가 자체의 자기 현시, 국가 이성의 단언. 정치는 이처럼 필요성에 관련된 어떤 것. 17세기 초반의 정치문헌들에는 필요성에 대한 일대 철학, 일대 찬사, 예찬이 발견된다. 통치는 합법성(혹은 정당성)이 아니라, 필요성과 관련해 존재한다(357-361).


violence(폭력): 쿠데타는 본성상 폭력적. 국가에 관해서는 폭력과 이성 사이에 어떤 이율배반도 없다. 국가의 폭력은 소위 국가 이성 자체의 난입적 표명. * 샤를마뉴 대제의 ‘판관’ = ‘색슨인들이 있는 곳에 자기가 죽이고 싶은 상대를 죽이고 싶은 방식대로 죽이고 싶은 때에 이유도 말하지 않고 죽이는 암살자를 두었다.’ 국가범죄. 익명의 저자, “폭력은 개인의 변덕으로 이루어질 경우에는 흉폭성(brutalité)이지만, 현자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질 때는 쿠데타이다.”(1652년) 쿠데타는 주권자에 대한 국가이성의 난입, 적법성에 대한 국가이성의 우월성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정치에서의, 국가이성의 연극적 실천과도 연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17세기 초. 「소요와 폭동에 관한 시론」(Of seditions and troubles, 1625). 소요는 공적인 것(res publica), 즉 국가생명에 있어 완전히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일종의 내적 현상. 소요의 징후학ㆍ기호학. 소요와 폭동의 원인은 배와 머리, 빈곤과 불만, 배고픔과 여론. 진정한 위험은 인민과 귀족이 결합되는 경우.


* 마키아벨리와 베이컨 통치성의 비교. ① 문제: 마키아벨리는 위협받고 있는 군주, 베이컨은 위험에 처한 국가 ② 통치의 대상: 마키아벨리는 귀족, 베이컨은 인민. ③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자질에 대한 사람들의 품평, 베이컨은 경제와 여론. 베이컨에게는 경제학자와 여론관리자(publicists)의 탄생(375-378).


국가이성과 진리의 문제. 국가 이성 곧 통치술에 있어서의 내속(內屬)적 합리성은 일정한 종류의 진실을 생산한다. 17세기 초까지, 통치자에게 중요한 것은 법을 이해하는 현명함, 법을 언제 적용해야 하는가에 관련된 진중함이다. 17세기 이후, ‘사물’(les choses)에 관한 인식. 통치자는 국가가 다른 국가에 의해 지배된다거나 국력을 상대적으로 잃음으로써 존재감을 잃지 않도록 국가의 유지, 국력의 유지, 국력에 필요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알아야 한다(378-379).


Statistik: 주권자가 알아야만 하는 사물, 국가의 현실 그 자체인 그 사물은 이 시기에 statistique, Statistik[統計學, 國家學]이라 불린 것. 어원학적으로 통계학은 국가에 관한 지식. 일정한 시기에 국가를 특징짓는 힘과 자원에 관한 인식. 인구의 인식, 인구 수의 계량, 사망률ㆍ출생률의 계량, 국내에 존재하는 여러 범주의 개인들에 대한 산정, 그들의 부의 산정,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잠재적 부, 즉 광산, 산림 등의 산정, 생산된 부의 산정, 순환하는 부의 산정, 무역수지의 산정, 세금 및 조세 효과의 측정, 그 밖의 모든 소여가 이제 주권자의 앎의 본질적 부분이 된다. 요컨대 이제는 법의 사료나 이를 적시에 적용하는 기교가 아니라, 국가 자체의 현실을 특징짓는 기술적 인식의 총체가 주권자의 앎이 된다.


- 1691년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1623-1687)의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k). 아일랜드 정부의 전속 의사로 활동하던 페티는 알일랜드 대장 작성에 종사한 이후, 가톨릭으로부터 몰수한 토지를 영국군과 그 출자자들에게 배분하는에 1652-1659년에 관여했다. 이로부터 나온 것이 1652-1659년까지 집필된 『아일랜드의 정치해부학』(The Political Anatomy of Ireland, 1691).


- 1730년 헤르만 콘링(Hermann Conring, 1606-1681)의 ‘공적인 것’(rerum publicarum)에 대한 논문.


- 1749년 고트프리트 아켄발(Gottfried Achenwall, 1719-1772)이 통계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379-381).


푸코가 연구하려 한 것은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국가를 인식의 의식적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국가에 대한) 성찰적 프리즘의 역사(383-384). 국가는 실천이며, 이 총체적 실천이 통치의 방식, 행동의 방식, 통치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국가를 만든 것입니다(384). 그러나 이 시기 국가이성의 분석에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 조만간 나타날 것은 인구(population)이다. 중상주의에 있어서도 여전히 부유해져야 하는 주체 혹은 대상은 - 인구가 아니라 - 국가 자체이다. 17세기 이래의 국가 이성은 통치성을 잘 정의했지만, 그 정의 안에 인구에 대한 참조는 함축적인 상태로 남아 있을 뿐 아직 성찰적 프리즘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고전주의] 일어나게 되는 일련의 변형에 의해, 또한 그 변형을 통해 18세기 이래의 정치 생활이나 정치에 관한 모든 고찰 및 정치학에서 이 중심적인 요소인 인구 개념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인구 개념은 국가 이성을 작동시키기 위해 설치된 장치, 곧 내치(內治, la police)를 통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국가이성에 관한, 소위 절대주의적인 그 일반이론에서 이 새로운 주체[인구]를 출현시키는 것은 내치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실천영역의 개입입니다(385-386).


11강. 1978년 3월 22일


서구에서 자기 안에 고유한 이성과 합리성ratio을 가지고 있던 통치술의 탄생이라는 사건은 이와 정확히 동시대, 그러니까 16세기 말-17세기에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르네 데카르트 등과 관련해 일어난 사건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건. 거기에서 서구 이성이 대단히 복잡하게 변형되는 현상이 발생. 이 통치이성의 출현이 어떻게 해서 사유ㆍ추론ㆍ계측의 일정한 형식을 발생시켰는가? 이런 사유ㆍ추론ㆍ계측 방식은 당대에 정치라고 불렸습니다. 정치는 우선 이단적인 사유로 지각되고 인정되어 즉각적으로 동시대인들의 우려를 발생시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와 통치술의 관계는 동시대에 보편수학과 자연과학이 맺었던 관계와 다소 비슷했습니다(387-388).


통치이성의 원칙이자 목표가 다름 아닌 국가(status, état, Staat, state)이다. 국가란 인식가능성의 원칙이자 전략적 도식. 국가란 통치이성의 규제적 이념. 국가란 현실적인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원칙, 이미 주어져 있는 요소와 제도의 고유한 본성, 연결, 관계 등을 사유하는 방식. 국가는 이미 주어져 있는 왕, 주권자, 행정관, 행정기관, 법, 영토, 영토의 주민, 군주의 부, 주권자의 부 등 요소의 성격이나 관계를 구상하고 분석하고 정의하는 어떤 방식. 이 모든 것은 이제 국가의 구성 요소로서 인식된다. 국가란 이미 확정된 제도들로 이루어진 총체, 이미 주어진 현실들로 이루어진 총체에 관한 인식 가능성의 도식. 이런 정치적 이성 안에서 국가는 일종의 목적이며, 이런 이성, 합리성의 활동적 개입이 낳은 최종적 결과물이 국가이다. 따라서 국가는 통치술의 합리화 과정 끝에 있어야 한다. 결국, 국가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우리가 정치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사유형태, 반성형태, 계산형태, 개입형태의 규율적 이념. 보편수학으로서의 정치, 통치술의 합리적 형식으로서의 정치. 통치이성은 국가를 현실[성]의 해석원칙이자 목적, 당위로 제시한다. 국가는 통치이성을 지휘하는 그 무엇. 국가란 필요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통치하게 만드는 그 무엇. 국가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통치한다(389-390).


- 팔라초의 『국가의 참다운 이성 및 통치에 관한 담론』(1606): “국가이성은 평화의 본질 자체, 평화롭게 살게 만드는 규칙, 사물들의 완성”. 국가이성은 국가의 현실을 국가의 영원한 본질 혹은 국가의 부동하는 본질에 맞추는 것, 국가를 국가로서 유지하게 해주는 것. 팔라초는 ‘국가’라는 의미와 사물의 부동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status라는 용어를 사용.


- 보테로: 국가이성이란 “국가가 스스로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강화하고 증강하는 수단에 고나한 완벽한 인식”이다.


- 켐니츠: 국가이성이란 국가의 확립ㆍ보수ㆍ증강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러한 국가의 보존ㆍ유지(manutention)를 위해서는 회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피한, 어쨌든 항상 위협이 되는 과정, 국가를 역사의 정점에 다다르게 한 뒤에 쇠퇴로 몰아넣거나 소멸시키는 과정, 바빌론 왕국, 로마제국, 샤를르마뉴 대제의 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테로와 팔라초에 의하면, 바로 역사상의 모든 국가가 겪은 이런 탄생, 증강, 완성, 쇠퇴라는 주기(週期, cylce)에서야말로, 또한 그것을 위해서야말로 국가이성은 기능한다. 당시의 어휘에서는 이 주기를 혁명(révolution)이라 부른다. 이런 혁명, 혁명들이야말로 국가를 빛이나 충일로 이르게 한 뒤에 소멸시키는 주기로 들어가게 하는, 마치 자연과도 같은, 그도 아니라면 절반은 자연적이고 절반은 역사적인 현상. 보테로나 팔라초가 국가이성이라고 부른 것은 본질적으로 국가를 혁명에 맞서 유지하는 것(391-392).


이런 형식의 국가이성을 통해 소묘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안에 법과 목적을 갖는 복수의 국가들이 영원히 필연적이자 운명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세계. 정치적으로 열린 시간, 국가적으로 다수의 다양한 공간.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 유일한 보편적 제국으로서의 로마의 종말을 확인.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분리되고 제도화되고 인식되었다. 국가들이 이미 각자의 정책ㆍ선택ㆍ동맹에 있어서 종교적 귀속관계에 의해 단합하기를 그만두었다. 유럽은 다수 국가들 사이의 균형과 경쟁, 각국의 국부를 강화하는 체계를 의미. 이 경쟁의 공간이야말로 국가이성의 지도원칙이자 지도노선인 국가의 증강에 의미를 부여(394-397).


국가이성 분석의 특권적 대상, 사례였던 스페인이 획득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꿈꾸었고 일시적이나마 성취했던 지배력과 준독점적 입지의 행사는 그것을 가능케 한 동일한 무엇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았다. 이를테면 부유함 때문에 빈곤에 처하게 된다거나 국력의 과도함 때문에 쇠약해지는 것. 이것이 혁명[=주기]인데, 이때의 혁명은 ‘일국의 국력과 확보해주었던 바로 그것이 오히려 힘의 상실이나 감퇴를 야기하게 되는 실제적 메커니즘의 총체’를 의미. 이는 현실의 혁명, 곧 ‘국가들에게 부와 힘을 보장해주는 메커니즘의 수준 자체에서의 혁명을 이끌어내어지는 경쟁이라는 현상에 의해 열리고 횡단되는’ 새로운 시간관념이 탄생한다. 이처럼 국가들이 경쟁관계라는 형식 아래 존재하는 국가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16-17세기 이래의 일.


이러한 인식은 ① 군주의 부에서 국가 자체의 부로의 이행 ② 군주의 소유물로부터 힘을 산정하는 것으로부터 국가를 특징짓는 훨씬 더 견고하고 비밀스러운 힘, 가령 국가에 내재하는 부, 국가가 처분할 수 있는 자원, 천연자원, 상업의 가능성, 무역수지 등에 대한 연구로의 이행 ③ 군주들 혹은 군주가 속한 가문들 사이의 대립으로부터 국가들 사이의 경쟁관계라는 대립구조로의 이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16세기 말 17세기 초, 특히 30년 전쟁(1618-1648)을 둘러싸고 형성된 정식화에 입각해서 보면, 이에는 힘, 국력, 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층위가 발견된다(397-401).


정치사상의 수준에서(force)이라는 근본적 범주의 출현. 정치사상에서의 역학(la dynamique)과 자연과학, 본질적으로는 물리학으로서의 역학은 동시대적.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7)는 역사적 정치적 관점에서 힘의 일반이론가이자, 물리학의 관점에서 힘의 일반이론가. 모나드라는 실체라는 단위가 지니는 물리적 표출로서의 힘. 앙드레 로비네, “유럽이 균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들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물리학이다. [...] 유럽의 균형이란 정역학(靜力學, statique)의 문제가 아니라 동역학(動力學, dynamique)의 문제이다.”(401-402)


이 새로운 통치성, 곧 국가이성의 진정한 문제는 그러므로 - 일반적 차원에서의 국가의 유지라기보다는 - 여러 가지 힘의 역학의 보존과 유지 및 발전이다. 사구 혹은 서구사회는 이 본질적으로 여러 가지 힘의 역학에 입각해 정의되는 정치적 이성의 작동을 위해 ① ‘외교-군사적 장치’와 ② ‘내치’라는 두 개의 커다란 집합을 설치한다. 이 두 집합의 기능은 힘 관계의 유지를 확보하고, 전체와 단절됨 없이 각각의 힘들의 증강을 확보하는 것. 이 양자의 ‘결합’이 후에 안전메커니즘(mécanisme de sécurité)이라 불리게 된다(403).


1) 안전메커니즘의 첫 번째 장치 - 외교ㆍ군사적 유형의 새로운 기술.


30년 전쟁의 종말(1648)이란 제국의 꿈과 교회 보편주의의 소멸을 명백하고 결정적으로 이끌어낸 저 1백년에 걸친 종교적 정치적 투쟁의 종말.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1555)로부터 이어지는 시기를 고려하면 거의 1백년이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는 신앙고백한 종교(가톨릭이나 루터파)를 실천할 권리를 신성로마제국 내의 모든 국가에게 인정했다. 이 원칙은 훗날 ‘군림하는 자, 그의 종교[한 나라의 종교는 그 군주의 종교를 따른다]’(cujus regio, ejus religio)라고 불렸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에 의해 이 원칙이 확립되고 있었기 때문에, 베스트팔렌 조약(1648)에 이르러 중세적인 가톨릭 중심의 신성로마제국이 종말을 맞게 된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가톨릭과 루터파에 이어 칼뱅파를 신성로마제국의 세 번째 합법적 종교로 사실상 인정하게 된다. 30년 전쟁 말에 설립된 이 체제는 결국 유럽의 평형을 목표로 한다(403-404).


유럽이란 무엇인가? 17세기 초나 전반기까지만 해도 유럽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것. 유럽이란 그리스도교가 지녔던 보편주의적 소명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하나의 단위. 쉴리(duc de Sully, 1560–1641)가 앙리 4세의 ‘웅장한 계획’이라 부른 유럽은 제한되고 보편성이 없는 지리상의 분할된 절편, 근본적으로 복수적. 강력한 15개국 사이의 평형, 특히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소국과 대국의 수준 차이는 있는 여타 세계와의 이용ㆍ식민지화ㆍ지배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지리상의 지역으로서의 유럽. 유럽의 균형 혹은 천칭(trutina sive bilanx Europae). 교회의 보편주의가 아니라, 경쟁하는 국가들 사이의 안전 확보가 균형(405-410).


안전 확보를 위한 도구. ① 전쟁. 중세의 전쟁은 ‘특정 무리(가령 떠돌이 용병)의 계절적 모험, 약탈행위, 전리품 수확행위’로서의 게르(guerre)와 ‘신명재판’(神命裁判)으로서의 바타유(bataille). ‘신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목적을 선언하고 확증하며, 모두를 위해 논쟁의 여지없는 맹백한 방식으로 어느 진영이 진정 정의로운지를 드러내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조르주 뒤비, 『부빈의 일요일』(Le dimanche de Bouvine, 1973; 동문선, 166-167쪽) 16-17세기 이래의 전쟁은 정당성 혹은 법권리의 전쟁이 아닌, 국가 혹은 국가이성의 전쟁. 약 2세기 후 클라우제비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 프랑스왕들의 대포, ‘왕들의 궁극적 이성’(ultima ratio regum) ② 다자간 조약과 같은 외교적 수단. 주권자들의 권리가 아닌, 국가들의 물리학. 상주 대사의 원형이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확립. 진정한 국제연맹. 이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만민법(萬民法, jus gentium). 장자크 뷔를라마키(Jean-Jacques Burlamaqui, 1694-1748), 『자연법 및 만민법의 원칙』(Principes du droit de la nature et des gens, 1766-1768): “근대 유럽은 공통의 이익에 의해 연결된 독립적인 구성원들이 질서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모여 있는 일종의 국가 같은 것이 된다.” ③ 상시적인 군사장치의 설치, 군사적인 것의 제도화. 군인의 직업화, 상시적인 군 구조 확립, 요새와 수송 장비, 그리고 지식, 전술적 고찰, 작전, 공격 및 방어의 도식들. 유럽의 평형 구축을 위한 정치적ㆍ군사적 복합체의 확립. ④ 정보장치. 자국(및 타국)의 힘을 알고 또 감추는 것, 더하여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


12강. 1978년 3월 29일


2) 안전메커니즘의 두 번째 장치 - 내치.


18세기 이래 경찰police이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17-18세기 말의 police는 훨씬 폭넓은 의미의 내치를 의미.


폴리스의 전통적 의미. 1) 15-16세기에 빈번히 발견되는 이 단어의 의미는 ‘공적 권위에 의해 지배되는 공동체나 단체의 형식’을 의미. 17세기 초까지도 이런 의미로 사용. 2) 역시 15-16세기의 용법. 공적 권위 아래 그런 공동체를 지배하는 어려 행위의 총체. 폴리스 에 레지망 police et régiment. 레지망=폴리스에 관련된 지배와 통치의 방식. 3) 적절한 통치의 결과, 실정적이고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결과.


17세기 이래 폴리스의 새로운 의미. ‘적절한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증강할 수 있는 수단들의 총체’, ‘국내질서와 국력증강 사이의 동적이지만 안정적이고 제어가능한 관계를 확립할 수 있게 해주는 계산과 기술’, 결국 ‘질서, 유도된 부의 증대, 건강 ‘일반’ 유지의 조건들, 이상과 같은 것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 총체.’(421-413)


- 루이 튀르케 드 마이에르느(Louis Turquet de Mayerne, 1550-1618), 『귀족 민주주의적 군주제』(La monarchie aristodemocratique, 1611): “국가에 장식, 형식, 장려함(splendeur)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내치라는 이름 속에 포함되어야 하며, 사실 그것은 거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의 질서를 가리킨다.”


- 호헨탈(Peter Karl Wilhelm Graf von Hohenthal-Königsbrück, 1754-1825), 『』(Liber de politia, 1776): “내치란 국가 전체의 장려함을 위하는 동시에 각 시민의 지복을 위한 수단이다.”


- 요하네스 폰 유스티(Johann Heinrich Gottlob von Justi, 1717-1771), 『내치학의 원칙』(Grundsätze der Polizeywissenschaft, 1756): “넓은 의미에서의 내치에는 국내에 관한 모든 장치가 포함된다. 그것은 보다 지속적으로 국력을 견고하게 하고 증강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것을 통해 국력이 선용되고 신민의 행복이 갖추어진다. 즉 그것들의 관리방식에 의해 국가의 행복이 결정되는 한에서 통상과 학문, 도시경제, 그리고 농업경제, 공업관리, 삼림 등이 내치에 포함된다.”(424-425)


유럽의 평형과 내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의 도구, 통계학. 통계학은 내치 때문에 필요한 것이 되고, 내치에 의해 가능한 것이 됩니다. 내치와 통계학은 서로를 조건화합니다. 통계학은 국가에 관한 국가의 지식인데, 그것은 자국 자체에 관한 지식이기도 하고, 다른 국가들에 관한 지식이기도 한 것(427-428). 내치국가(Polizeistaat).


이탈리아는 우선적으로 외교우선주의이며, 따라서 내치는 나중에 발전한다. 독일은, 봉건과 근대의 중간에서, 프랑스적 중앙집권 체제, 곧 행정관이 없었으므로, 이를 수행할 대체 기관을 대학에서 발견한다. 내치학은 독일의 대학에서 결정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이는 17세기 말 18세기 말 전 유럽에 걸쳐 위세를 떨치게 된다. 내치이론, 내치에 관한 책, 행정관을 위한 교재. 프랑스는 행정실천 내에서 이론ㆍ체계ㆍ개념 없이 실무진에 의해 주도되어, 조치ㆍ행정명령ㆍ칙령집 등을 통해 제도화.


튀르케 드 마이에르느: “내치는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질서.” 통치술과 내치의 행사는 동일한 것. 4대 업무를 담당하는 4대 장관: ① 기존의 사법을 담당하는 대법관, ② 군대를 담당하는 총사령관, ③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장관, 그리고 ④ 탁월하게 행정적 근대성을 갖는 내치의 보수장관ㆍ개혁장관. 내치의 보수장관은 각 지방에 각기 4개의 사무국을 갖는다. ① 내치 사무국. 청소년과 아동. ② 빈민을 담당하는 자선사무국. 직업ㆍ노동 배분, 전염병과 공중위생 관리, 금전 대출. ③ 상인들을 관장하는 업무. 시장의 제반 요소 관리. ④ 영토사무국. 부동산. 이에 더하여, 내치의 개혁장관은 시민의 충성ㆍ겸양 등 도덕적인 기능을 담당. 부와 검약을 담당. ☞ 도덕성과 노동의 혼합.


내치사무국은 개인들의 교육과 직업[화]을 담당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간들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통제ㆍ구속ㆍ결정의 총체. 곧 신분적 의미의 인간이 아닌, 직업적 의미에서의 인간을 다룬다. 곧 무엇인가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인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인간, 일생에 결처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는 의미에서의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인간은 ‘참된 시민’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확실히 하나의 활동을 갖고 있고, 또 이 활동이 그의 덕의 완성을 특징지어야 하고, 그 결과 국가의 덕의 완성도 가능케 되어야 하는 것’, ‘스스로 전념하는 어떤 것을 갖고 있는 참된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내치. 내치의 대상은 ‘국가와 관련이 있는 한도 내에서의 인간의 활동, 국력을 구성하는 요소인 인간의 활동’. 내치,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의 유용성을 창출하는 것, 직업, 활동, 인간의 행위를 시작으로 공공의 유용성을 창출하는 것(-439).


내치의 대상. ① 인간들의 수. 시민의 수(copia civium). 인구가 점유하고 있는 영토가 갖는 자원과 능력 대비 인구의 양적 발전 ② 생활필수품. 물품의 상품화, 순환, 식량난에 대비한 비축 등의 정확한 제어. 특히 곡물의 내치. ③ 독기(毒氣)의 이론과 연관되는 보건의 문제. 이는 새로운 설비, 새로운 도시공간을 수반하는 일대 정책을 야기. ④ 인간의 행동에 유의. 직업에 대한 통제, 관리. ⑤ 생산물과 상품의 순환. 물질적 순환을 위한, 도로와 그 상태 및 발전, 하천과 운하의 운항가능성을 관장. 순환의 공간.


요약하면, 내치는 인간들 상호 간의 공존 형식 전체를 관장. 모든 종류의 사회성(socialité). 내치가 담당하는 것은 사회. 17-18세기 내치학자들이 말하는 내치 제도의 포괄 영역은 인간들의 공존과 상호소통. 살게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살게 하는 것 이상의 것까지 포괄. 사는 것만이 아니라, 단지 사는 것보다는 조금 낫게 산다는 문제. 내치는 생활하기, 생활하는 것 이상의 것을 행하기, 공존하기가 국력의 구축과 증강에 실제적으로 유익할 수 있도록 확보하는 개입과 수단의 총체. 내치는 국력과 개인들의 복락을 연결시킨다. 개인들의 생명 이상의 것인 이 복락은 말하자면 추출되어 국가의 유용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446).


- 니콜라 들라마르(Nicolas de La Mare, 1639-1723), 『내치론』(Traité de la police, 1705): 내치의 유일한 대상은 “인간을 자신이 평생 누릴 수 있는 가운데 가장 완벽한 복락으로 이끄는 것.”


- 호헨탈: “국가의 장려함과 개인들 각자의 외적 복락을 확보해주는 수단의 총체.”


- 폰 유스티: 내치는 “국가 내부와 관련되고 국력을 강고하게 증강시키며 국력의 선용을 행하는 데 관련된 법과 통제의 총체”이며, “그 법과 통제는 신민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경향을 갖는다.”


- 몽크레티앙(Antoine Monchrestien de Watteville, 1575-1621)의 『정치경제학 논설』(Traité d’économie politique, 1615/1616): “요컨대 자연은 우리에게 존재l'être를 부여했다. 그러나 우리는 규율과 예술로부터 안락le bien-être을 이끌어낸다.” 존재를 넘어 안락을 산출하는 것, 그래서 개인들의 행복이 국력이 되게 하는 것.


13강. 1978년 4월 5일


니콜라 들라마르가 말하는 내치의 13개 영역. 종교, 풍속, 건강, 식량, 공공의 안녕, 건축물ㆍ광장ㆍ도로의 관리, 과학들과 자유7과학, 통상, 수공업과 공예, 하인과 노동자, 연극과 유희, 마지막으로 ‘공동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빈민에 대한 배려와 규율. 삶의 보존, 양호, 편의, 쾌적. 이상의 대상은 근본적으로 도시 문제, 곧 도시에 관한 행정명령. 시장 문제, 근위기병대, 도로망, 영토의 도시화. 내치화하다policier = 도시화하다 urbaniser. 내치, 도시화,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e)의 관계. 중상주의: 경쟁관계에 있는 유럽의 국가들이 통상, 통상의 발전, 통상관계에 부여된 새로운 활력을 통해 국력을 증강하고자 할 때 사용한 기술과 계산(유럽의 평형과 경쟁의 맥락). 중상주의의 도구가 바로 통화 유입기술로서의 통상의 전략. 내치와 통상(-457).


내치의 통치성 안에서 존재와 안녕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내치는 사법이 아니며, 주권자가 주권자로서 행하는 직접적 통치성, 내치는 국가의 고유한 합리성이라는 원칙 아래 수행되는 항구적 쿠데타. 내치는 끊임없이 세부적인 것에 관여한다(459). 내치에는 법보다 통제(règlement)가 필요하다. 무제한적, 항구적, 끊임없이 갱신되는, 점차로 상세해져가는 통제. 내치는 통제의 세계, 규율의 세계. 도시를 일종의 준수도원으로 여기고, 왕국을 일종의 준도시로 여기는 것, 이것이 내치의 배경에 있는 그런 종류의 거대한 규율적 꿈. 통상, 도시, 통제화, 규율이 17-18세기 전반에 걸쳐 이해되고 있던 내치 실천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461).


이후의 중농주의자(physiocratie) 혹은 ‘경제학자’(économiste): 1) 이러한 도시중심적 세계에 대지를 고려에 넣는 통치성, 중상주의에 가해진 균열. 도시가 아닌 대지, 순환이 아닌 생산, 매도ㆍ매각 이익이 아닌 반환의 문제. 탈도시화. 2) 내치적 통제화의 공준에 대한 의심. 중농주의자들, ‘자연지배주의자’들은, 첫째, 사물의 흐름은 수정될 수 없으며, 수정하려고 하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통제화(règlementation)는 무용할뿐더러, 해롭다. 통제화가 아니라, 조절(régulation), 사건 자체의 흐름에서 출발해서 그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조절이 중요. 3) 인구가 그 자체로 부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내치의 주체는 통제에 따라야 하는 신민들. 주어진 영토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자원에 따라 행해지는 자연히 인구의 자동적 조절(-468). 4) 국가 사이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정치가’의 시대가 사라지고, ‘경제학자’의 시대가 도래한다. 경제학자는 국가이성을 둘러싸고 정돈된 사유에 대한 이단, 국가와 관련한 이단, 내치 국가와 관련한 이단. 정치가들의 통치성이 우리에게 내치를 가져다주었다면, 경제학자들의 통치성은 우리를 근대적이고 현대적인 통치성의 몇 가지 기본노선으로 안내한다.


1) 정치가들이 도입한 통치성, 국가이성의 통치성은 국가가 갖는 비자연성, 절대적인 인공성. 중세적인 우주론적 신학으로부터의 단절, 무신론. 경제학자들은 이 인공성에 메커니즘의 자연성, 자연주의를 도입한다. 사회적 자연성. 인간의 공통된 실존 특유의 자연성인 사회, 곧 시민사회가 국가에 대항하여 출현한다. 국가가 담당하게 된 것은 사회, 시민사회이며, 이는 신민의 집합에만 관여하는 국가이성 혹은 내치적 합리성과 질적으로 다른 합리성.


2) 과학적 인식, 합리성에의 요구는 18세기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장된다. 바로 이 인식이 정치경제학이다. 정치경제학은 -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수순이 아니라 - 여러 가지 부나 인구를 생산ㆍ순환ㆍ소비라는 세 개의 축으로 엮어내는 과정에 관한 인식이다. 권력과 지식의 관계, 통치와 과학의 관계.


3) 인구의 문제. 인구는 자신의 고유한 변화와 이동의 법칙이 있다. 인구의 자연성. 그리고 이는 개인들 사이에 일련의 자발적인 상호작용, 순환작용, 전파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인구 내부에서의 이익 구성의 법칙. 인구학(人口學, demography)은 사회의학, 당시 용어로는 ‘공중위생’의 관념과 연관. 신민의 집합으로서의 인구는, 이제, 자연적 현상의 집합으로서의 인구로 이어진다.


4) 이 새로운 통치성은 규제가 아니라 조절을 목표로 한다. 경제적 절차나 인구에 내재하는 과정인 자연적 현상의 안전을 확보를 본질적 기능으로 하는 국가의 개입, 즉 안전메커니즘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478). 5) 자유의 기입.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법과 관련해 권리를 남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통치할 줄을 모른다는 의미.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거대하고 과잉적인 내치가 해체된다. 1) 경제 혹은 인구처럼, 현상들을 부추기고 조절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이 생성된다. 2) 단순히 부정적인 기능, 곧 ‘무질서의 소거’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적 경찰 제도가 확립(-479).


새로운 통치성은 경제적 실천, 인구관리, 자유와 여러 자유의 존중과 관련해 분절화되는 공법, 억제적 기능을 갖는 경찰을 갖는다. 이러한 품행(品行, conduite, conduct)에 대한 대항품행(對抗品行, contre-conduite, counter-conduct)은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사회, (오류ㆍ몰이해ㆍ맹목과 관련해 세워지는) 경제적 진실, (개인의 이익에 대립하는) 만인의 이익, (자연적으로 살아있는 현실로서의) 인구의 절대적 가치, (불안전과 위험과 관련해 확정되는) 안전, (통제화에 대립하는) 자유와 같은 요소들(481). 이런 의미에서 국가이성의 역사, 통치이성의 역사, 통치이성과 그에 대립하는 대항품행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483).


“이상입니다. 올해 하고 싶었던 것은 모두 사목을 특징으로 하는 그런 형식들의 권력에 대한 상대적으로 국소적이고 미시적인 분석을 출발점으로 해서 국가라는 일반적 문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역설이나 모순 없이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상의 작은 실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바로 국가를, 역사가 그 자체를 출발점으로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초월적 현실로 격상시켜 버리지 않는다는 한에서인 것입니다. 국가의 역사는 인간들의 실천 자체를 출발점으로 하고, 인간들의 행위나 사고방식을 출발점으로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행동방식으로서의 국가, 사고방식으로서의 국가, 이것은 명백하게 국가의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분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충분히 풍부한 가능성 중 하나이긴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풍부함은 미시권력의 수준과 거대 권력의 수준 사이에는 절단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 한 쪽에 대해 말할 때 다른 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시권력에 대한 분석은 통치나 국가와 같은 문제에 대한 분석과 아무 어려움 없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484)

 



 



 
 

2013. 12. 20.

maurice merleau-ponty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년 3월 14일~1961년 5월 4일)
 
 


Original French
English Translation
국역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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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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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enomenology of Perception, trans. Colin Smith (New York: Humanities Press, and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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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의 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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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sme et terreur, essai sur le problème communiste
(Paris: Gallimard, 1947)
Humanism and Terror: An Essay on the Communist Problem trans. John O'Neill, (Boston: Beacon Press, 1969)
『휴머니즘과 폭력. 공산주의 문제에 대한 에세이』
박현모ㆍ유영산ㆍ이병택 옮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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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와 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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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leau-Ponty à la Sorbonne: résumé de cours, 1949-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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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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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is: Gallimard,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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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마음. 메를로-퐁티의 회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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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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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Visible et l’invisible, suivi de notes de travail
Edited by Claude Lefort
(Paris: Gallimard, 1964)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Followed by Working Notes, trans. Alphonso Ling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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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남수인ㆍ최의영 옮김
동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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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Résumés de cours, Collège de France 1952-1960
(Paris: Gallimard, 1968)
Themes from the Lectures at the Collège de France, 1952-1960
trans. John O’Neill,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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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La Prose du monde
(Paris: Gallimard, 1969)
The Prose of the World, trans. John O’Neill, 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 1973; London: Heinemann,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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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편역본]
『현상학과 예술』
오병남 옮김
서광사, 1989


* 메를로-퐁티: 몸의 현상학자 - 서동욱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실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다. 생각하는 실체가 육체로부터 들끓어 오르는, 우리 영혼의 판단을 흐리는 ‘정념’을 통제해야 한다. 또 이런 문제도 생각해 보라. 우리 인간은 생각하는 실체인데, 저 바깥에 걸어 다니는 개와 고양이 같은 짐승들은 무엇인가? 그들에게도 영혼불멸을 보증해줄 생각하는 실체 같은 것이 있는가? 천만에! 저것들은 모두 동물기계들이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만들어놓은 근대적 세계관이다. 여기서는 명석판명한 정신이 떠받들어 올려지고, 몸이란 이 정신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몸이 없었다면 보다 잘 인식하고 보다 자유로웠을 텐데! 플라톤에서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 대부분의 구간에서 이런 한탄이 메아리친다. 메를로-퐁티는 바로 이러한 세계관에 맞서서 ‘몸’의 불가결한 근본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철학자다.

 
프랑스 현상학의 대표자 - 사르트르와의 엇갈린 길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누구인가? 그의 주저의 명칭 [지각의 현상학](1945)이 알려주는 것처럼, 그는 ‘현상학자’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의 친구로서 같이 유명한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창간했고, 또 냉전 시대의 정치적 문제로 갈라서기도 했으며, 세잔(Paul Cézanne)에 대한 매력적인 그림론을 남기기도 했고 현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지막 주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968)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그의 인생의 중요한 여러 굴곡들보다도 저 ‘현상학’이라는 명칭이 더 우리를 매혹시킨다. 거기 메를로-퐁티 철학의 진수가 들어있을 것만 같으니까.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에 대한 추도사 [길목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동등했고 친구였지만 동류(同類)는 아니었다.” 이 말은 정치적인 문제에서만 진실인 것이 아니라, 후설(Edmund Husserl)로부터 발원하여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거쳐 이 두 사람이 계승하고자 했던 현상학에 대한 입장 차이에 대해서도 진실이다. 그렇다면 얼마간 사르트르와의 비교를 통해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의 정체를 드러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후설의 발견 - 의식의 지향성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도대체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ät)’이라는 개념이다. 종래에 의식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라는 개념에서 보듯 일종의 고립된 사물처럼 다루어져 왔다(저 표현에서 res란 라틴어로 사물(thing)을 뜻한다). 그러나 의식은 고립되어 있지 않고 늘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다. 여러분도 한번 실험해 보라.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여러분의 의식이 가 닿는 각종 대상, 상념, 수학적 개념, 물리학적 이론, 기억 등등으로부터 의식을 고립시키려고 해보라.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의식은 잠을 잠으로써 의식 없음(무의식)에 도달할 수는 있을지언정, 깨어있는 의식은 늘 무엇에 대한 의식,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있는 의식이지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과 무관하게는 존재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의식의 지향성이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대상은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대로 존재한다

 
의식이 늘 어떤 대상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은, 대상은 항상 의식에 주어지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하지, 의식 바깥의 대상일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르게 얘기하면, 대상의 존재 양식이 별도로 있고, 그것이 의식에 주어지는 형태가 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은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때 의식에게 존재하는 그 자체의 모습대로 자신을 내주는 대상을 ‘현상(Phänomen)’이라고 부른다. 왜 굳이 여기에 ‘현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가? 이 말의 어원을 조사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그리스적 어원을 가지는 이 현상이라는 단어, 즉 파이노메논(ϕαινμενον)은, ‘자신을 그 자체로 내보여준다’를 의미하는 동사 파이네스타이(ϕανεσϑαι)에서 나왔다. 스스로 존재하는 모습대로 나타나는 것이 그리스인들이 애초에 부여했던 ‘현상’의 의미인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 말하는(논하는) 일'이 바로, ‘현상(Phänomen)’과 ‘말함(logos)’이 결합된 단어인 ‘현상학(Phänomeno-logie)’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사르트르 식의 현상학 - 자유와 선택을 가능케 하는 텅 빈 의식

 
현상, 즉 의식에 주어진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그 대상의 존재 방식을 기술하는 일과 동일하다. 앞서 말했듯 대상은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대로 존재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현상을 제대로 기술한다면, 우리는 대상의 참다운 존재 양식을 가능케 하는 대상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대상들이 저 마다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이 다르다면, 이 다양한 방식을 기술하는 현상학의 작업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런 방법론으로서 현상학이 가지는 강력한 힘이 지난 세기 현상학을 사회학, 정치학, 미학 등등 여러 학문에 그토록 널리 파급되도록 했다.

 
현상학의 저 파급력에 감염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사르트르다. 그는 의식에 주어지는 대상을 기술하는 후설의 현상학을 '자아(ego)'의 문제 쪽으로 가져갔다. 의식에 주어지는 대상으로서 자아의 성격이 무엇이냐가 사르트르의 흥미를 끌었던 것이다.

 
흔히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나’란 뭘까? 이것은 의식의 주인인가? ‘태권브이’를 타고 있는 훈이처럼 자아는 의식 안에 거주지를 가지는가? 사실 책을 읽고 있을 때 책의 내용을 지향하는 의식은 있고, 떠나는 버스를 잡으려고 뛰어갈 때 버스를 지향하는 의식은 있지만, 이 의식 안에 ‘자아’가 들어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대상(책, 버스 등)을 지향하는 익명적 의식이 있을 뿐이다. 자아 역시 다른 실재적 대상이나 관념적 대상처럼 의식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주어지는, 의식 바깥의 대상일 뿐이다. 즉 텅 빈 내용 없는 익명적 의식이, 어떤 내용을 지닌 자아, 기질과 역사와 개인적 관계 등등의 내용을 지닌 자아를 ‘대상으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은 그 안에 자아라는 내용물을 가지지 않는 완전히 텅 빈 의식이다. 그리고 지향적 광선을 외부로 쏘아대고 있는 의식의 이 텅 비어 있음이 바로 사르트르의 실존적 ‘자유’를 이룬다. 이 의식은 준수해야 할 어떤 내용(개인의 성격, 창조주의 작품, 어머니의 기대를 받는 아들 등등)을 가지는 인격적 자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텅 비어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우며, 이 자유에 입각한 ‘선택’만이 이 의식이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메를로-퐁티는 반대 길로 가다 - 우리는 텅 비지 않고 늘 충만해 있다

 
메를로-퐁티는 이런 철학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지각의 현상학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우리는 결코 무(無)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마치 얼굴이 쉬고 있을 때나 심지어 사망해 있을 때도 늘 무엇인가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처럼.” 사르트르에게 의식은 아무런 내용도 가지지 않는 텅 빈 ‘무’였다. 나의 자아나 신체를 비롯해 내용을 지니는 것들은 이 텅 빈 의식이 바라보는 외적 대상들일 뿐이었다. 메를로-퐁티는 반대로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사르트르가 말하는, 아무런 내용으로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텅 빈 의식 같은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피할 수 없이 충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의식이 빠져나간 죽은 얼굴조차 늘 충만한 내용(표정)을 지니지 않는가? 외부의 세계는 바로 프리즘으로 들어오는 빛이 굴절되어 들어오듯 이 충만한 내용과 뒤섞이며 우리 의식에게 주어진다. 외부 대상이 우리에게 의식되는데 불가결하게 개입하는 조건인 이 충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몸은 의식 외부의 대상이 아니다 - 몸을 통해서 비로소 외부 대상은 주어진다
 
“우리를 세계에 연결하는 지향적 단서”는 무엇인가? 여느 현상학자들처럼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이런 물음과 더불어 사색을 시작한다. 혹시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세계와 관계를 가지는가? 즉 과학과 철학의 이론에 의해 구성된 세계가 우리의 근본적 지각인가? 오히려 과학의 이론적 그물망은 그 그물코가 너무 커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지각은 모두 그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비판적 질문에 답해나가는 가운데 메를로-퐁티는 몸을 우리의 원초적 지각의 ‘선험적 근거’로서 발견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라는 하나의 간격’을 통해서만 세계에 연결된다. “우리는 세계를 그리는 데 있어 우리 자신인 그러한 빈틈, 세계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존재하게 되는 그러한 빈틈을 지울 수 없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바로 세계에 대한 이러한 간격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각 그 자체가 “거대한 다이아몬드의 흠집” 같은 이 간격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간격의 정체는 바로 우리의 ‘몸’이다.

 
지금껏 철학은 고작해야 몸을 인식 주관이 대면하는 여타의 다른 대상과 다를 것이 없는 시공을 채우고 있는 연장(延長)으로 보았다. 몸을 인식 주관의 개념적 틀이 파악하는 대상으로만 보았지, 그것이 모든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선험적 조건이라는 점은 모르고 있었다. 즉 “규정된 대상의 총합으로서가 아니라 규정된 모든 사고에 앞서 스스로 우리의 경험에 끊임없이 현존하는 잠재적 지평으로서의 몸”을 발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몸은 의식이 지각하는 대상이기 이전에, 몸 때문에 바로 외부 대상들이 우리에게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세상 바깥에 있는 비신체적인 “고공비행을 하며 내려다보는 주체”는 없으며, 세계 안의 몸과 뒤섞여 있는 의식이 주체가 된다. 피부의 조직끼리 갈라낼 수 없이 얽혀 있듯 의식은 “세계의 조직(tissu du monde)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알려주는 것들 - 화가의 시선은 신체와 얽혀 있다

 
세계가 비신체적인 명증한 의식(데카르트의 코기토, 사르트르의 익명적 의식)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체 자체를 통해 굴절되는 모습이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지각 자체라는 점은 무엇보다도 ‘그림의 영역’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메를로-퐁티가 말년의 『눈과 정신』(1964)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까닭이다. 메를로-퐁티는 세계 바깥의 명증한 의식에 비견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허구적인 원근법을 이렇게 비판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들은, 그때까지의 회화의 탐구와 역사를 마감하고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정확한 회화의 기초를 확립한 척 한에 있어서 거짓된 것들이었다. 반면 화가들은 어떤 원근법의 기술도 정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요컨대 원근법은 실재의 본 모습을 드러내 주기보다는 작위적으로 구성된 비전(vision)을 보여주는 허구적인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안의 존재인 몸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듯 세계 바깥에 위치하는 의식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세계에 대해 작위적으로 설정된 허구적인 지점이다.



File:Loreto Fresko.jpg


http://it.wikipedia.org/wiki/Melozzo_da_Forl%C3%AC

 
화가의 시선이란 신체와 떨어져 “고공비행을 하며 내려다보는 주체”가 아니라 ‘눈’이라는 신체와 얽혀 있으며 이 눈이라는 신체는 세계 안의 다른 대상들 사이에 있다. “인간이 자기 집에 살고 있듯이 화가의 눈은 존재의 조직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비전을 절대적으로 보여줄 세계 바깥의 절대적인 한 지점에서 시작되는 원근법이란 없고, 존재의 조직 안에 들어있는 눈의 관점에 따라 그때그때 나타나는 비전만이 있다. 그렇기에 세계가 가시적이 되는 방식은 무궁한 것이고 이에 따라 그림 역시 무한하게 생산된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역시 마찬가지다. 대상이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에 대한 기술 역시 세계 안에서 몸이 사는 방식이 무한한 만큼 종결 지어 질 수 없는 무한한 내용을 가질 것이다.
    
이처럼 메를로-퐁티를 통해, 의식이 바라보던 외부 대상에 불과하던 신체가, 우리 의식적 활동 자체를 가능케 하는 근본적 권좌를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