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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8.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초고]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 미셸 푸코(1926-1984)의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





‘성의 역사’ 시리즈는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으나 푸코의 사망으로 3권까지만 출간되었다. 1976년 출간된 성의 역사 시리즈 1권 『앎의 의지』의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나머지 다섯 권의 리스트가 실려 있다. 2권 『살과 육체』, 3권 『어린이 십자군』, 4권 『여자, 어머니, 히스테리 환자』, 5권 『성도착자』, 6권 『인구와 인종』. 그리고 『앎의 의지』의 본문에서 푸코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위해 『진리의 권력』이라는 책을 내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발간된 것은 푸코가 사망하던 해인 1984년 발간된 2, 3권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뿐이며, 이마저도 원래의 예고와는 전혀 다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기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1권과 2, 3권의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적 격차가 있으며, 이 시기 동안 성의 역사 시리즈는 물론 어떤 책도 발간되지 않았다. 이 8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의 역사’에 관련된 몇 가지 논점들




우선 몇 가지 기초적 사실의 확인과, 그에 이어지는, 기본적 논점의 확립을 통해, 부정적으로는 대중의 오해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 긍정적으로 논의의 초점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연구자들 사이에는 푸코의 이 ‘침묵’이 단절인가 연속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하지만 이 8년이라는 ‘침묵’의 시기 동안 푸코는 단지 저서를 내놓지 않았을 뿐, 각종 논문, 강연, 세미나 그리고 콜레주 프랑스 강의 등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더 활발히 글들을 발표했다. 두 번째로, 실제로 발간된 ‘성의 역사’ 1~3권 중 1976년에 발표된 1권과 1984년 발간된 2, 3권의 관계설정이라는 문제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연구자들 사이에 크게 보아 단절을 강조하는 학자들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학자들로 나뉘어져 왔으나,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단절도 연속도 아닌 ‘포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간단히 논의하도록 하자.



 
 
 
 
앎의 의지 - 섹슈얼리티라는 권력 장치
 
 
 
다음으로 푸코의 사유 내에서 『앎의 의지』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이 있다. 동성애자였던 푸코는 대략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이후 자신이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고자 시도한다. 1980년 이후의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신의 사유를 지식, 권력, 윤리라는 세 가지 영역을 고고학과 계보학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으로 조명한 것으로 요약한다. 이는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시기를 낳는다. 우선 1960년대에 걸쳐있는 ‘지식의 고고학’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의 대표작들은 『말과 사물』(1966)과 『지식의 고고학』(1969)이다. 1970년 초에 시작되는 ‘권력의 계보학’의 시기는 『담론의 질서』(1970), 『감시와 처벌』(1975)로 대표된다. 마지막 ‘윤리의 계보학’의 시기에는 1976~1984년에 이르는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이 포함된다.
 
 
 
푸코가 말년에 개진한 회고적 분류에 따르면, ‘성의 역사’ 시리즈는 모두 ‘윤리의 계보학’에 속하나, 실상 1976년에 발간된 『앎의 의지』는 오히려 ‘권력-지식’, 곧 권력의 계보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바라본 작품이다. 푸코는 자신의 질문이 ‘왜 우리가 억압받고 있는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이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동시대의 지배적 관점, 곧 빌헬름 라이히로 대변되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이다. 푸코에 따르면,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공히 ‘억압’된 진실과 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억압-해방’의 담론에 기초하고 있다. 푸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 혹은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섹스의 억압은 정말로 자명한 사실일까?’라는 역사적 질문. 둘째, ‘권력의 메커니즘은 실제로 억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라는 역사-이론적 질문. 셋째, ‘억압의 시대와 억압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시대 사이에는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할까?’라는 역사-정치적 질문.
 
 
 
이 질문들이 잘 알려주듯이, 『앎의 의지』는 기본적으로 그 전 해에 발간된 『감시와 처벌』의 ‘권력 계보학’을 이어받아 그 논의를 심화시키고 난점을 보완하면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책이다. 푸코는 앞서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출한다. 첫째, 실제의 서구 근대의 역사는 오히려 성에 관한 담론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이는 성이 억압된 적이 ‘없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둘째, 억압, 금지 등 권력의 부정적 기능을 통해서만 권력을 바라보는 것은 권력이 갖고 있는 생산적 기능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셋째, 억압에 대해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해방을 외치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메커니즘, 장치로서 기능한다. 푸코에 따르면, 결국 우리는, 첫째, 성이 억압되었다는 ‘담론’과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에로 논의의 방향을 전환해야 하며, 둘째, 억압-해방 담론의 기반을 이루는 기존의 실체적인 거시적 권력 개념 자체를 파기해야 하며, 셋째, 이른바 ‘억압’과 ‘억압-해방 담론’이 동일한 인식론적 층위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는 등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제 이른바 생물학적 ‘자연적 성’(le sexe)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인위적 구성물’로서의 구체적 인식들, 실천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성과 관련된 서구 근대의 제반 인식ㆍ실천은 ‘섹슈얼리티 장치’(le dispositif de sexualité)를 통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른바 성적 억압이라는 ‘현실’은 물론 이에 대한 각종의 저항-해방 ‘담론’을 포함하는 섹슈얼리티 장치가 분석의 주된 대상으로 드러난다. 『앎의 의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섹슈얼리티 장치의 아이러니는 우리 자신의 ‘해방’이 섹슈얼리티 장치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점이다.”
 
 



 
 
 
 
 
주체화 - 진리, 권력, 윤리를 감싸는 문제화



잘 알려진 대로, 『앎의 의지』 출간 이후 1977-1978년의 시기 동안 푸코는 ‘통치성’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윤리의 계보학으로 자신의 관심을 이동하게 된다. 통치성 혹은 생명관리정치의 문제의식은 이 시기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특히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 잘 드러나 있다. 통치성의 문제의식으로 근대권력의 탄생 및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조명한 이 시기의 강의록들은 이후 시간이 가면서 점차로 푸코의 주저에 못지않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 『감시와 처벌』과 『앎의 의지』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푸코는 부정적 효과에 집중하는 기존의 권력관을 다시금 사고하면서, 권력의 생산적 기능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지배와 자기에 대한 지배를 연결하는 통치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고, 이는 다시 1980년대 초 이후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설정, 곧 주체화에 집중하는 윤리의 계보학에 천착하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성의 역사 2, 3권인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인데, 2권은 고대 그리스에서 한 시민이 자신의 쾌락을 다루는 방식과 동일한 개인이 사회적 곧 폴리스적 자아로서 형성되는 방식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며, 3권은 그리스도교 이전 고대 초기 로마에서 있어서의 자기 배려, 곧 자기 형성의 논리가 보여주는 특징에 집중한다.
 
 
유의할 것은 이러한 ‘윤리의 계보학’에서 나타나는 ‘윤리’(éthique)가, 용어의 그리스어 어원 êthos[성격, 품성]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자기와 자기의 관계, 곧 자기 인식, 자기 지배, 자기 배려를 모두 함축하는 용어이다. 이는 푸코는 서양인으로서 자기 문화의 기원을 이루는 고대 문화에 집중한 것으로 특히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서양인의 자기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푸코에 따르면, 서양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여타의 영역과는 다른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며, 이는 다음과 같은 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너의 성적 정체성을 말해다오,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마.” 푸코는 이처럼 섹슈얼리티를 진리, 권력, 윤리가 만나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 영역으로 바라본다. 한편 유의할 것은 이때의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영역-방법론’이 시기적으로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부정하고 다음 단계로 이행해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며 상호보완적인’ 세 개의 영역들로 설정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의 영역은 이전의 영역(들)을 감싸 안고 넘어가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윤리의 계보학은 ‘윤리와 계보학’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식-권력-윤리의 고고학-계보학’이다. 푸코의 ‘윤리’는 진리와 관계하면서 철저히 정치적인 윤리 곧, 자기도야와 자기 생산의 논리이며,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의 자기 형성을 통해 자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얻게 된다.
 
 
문제화 -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는가?




이는 푸코가 전통적인 주체, 대상, 인식이라는 세 개의 개별적 실체를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라는 상관적ㆍ동시적으로 형성되는 세 개의 연관관계로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푸코는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를 통칭하여 문제화ㆍ문제설정(problématisation)이라 부르는데, 푸코는 평생에 걸친 자신의 작업이 바로 이 ‘문제화’에 대한 탐구였다고 말한다. 말년의 푸코가 이를 지칭하여 부르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ㆍ비판적 존재론’에 대한 탐구란 지식, 권력, 윤리의 영역에서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를 고고학적ㆍ계보학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탐구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결국 ‘성의 역사’ 시리즈는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라는 역사적 과정, 문제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오늘 우리 자신의 변형(transformation)을 가능케 해줄 제반 조건들에 대한 탐구’를 수행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14.06.08.


 
 
 
 
 
 

2014. 5. 19.

알라딘 서양철학 로드맵 - 미셸 푸코 [초고]






* 알라딘 서양철학로드맵 <철학, 책> e-book 무료 다운받는 곳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common.aspx?pn=2014_philosophia_sub&AuthorId=15143


* 푸코

http://en.wikipedia.org/wiki/Michel_Foucault




I. 저자 이력 간략 정리
 
 
미셸 푸코는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태어났다. 1946년 명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철학과 심리학 학사를 취득하고, 이후 장 이폴리트의 지도로 헤겔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한다. 1950년 경 알튀세르의 영향 아래 공산당에 입당하나 2-3년 후 스탈린주의에 대한 환멸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당의 태도에 실망해 탈당한다. 1955년 이후 스웨덴 웁살라, 당시 서독 함부르크, 폴란드 바르샤바 등지의 프랑스문화원장 등으로 재직하다. 프랑스로 돌아와 1961년 소르본에서 주논문으로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를, 부논문으로 칸트의 『인간학』을 번역ㆍ주해한 텍스트를 제출하다. 1963년 『임상의학의 탄생』과 『레몽 루셀』, 1966년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1969년 『지식의 고고학』을 출간하고 이 시기를 ‘지식의 고고학’ 시기로 지칭하다.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최연소 교수로 임명, 취임강연 ‘담론의 질서’를 행하다. 1971년 질 들뢰즈 등과 ‘감옥에 관한 정보그룹’(G.I.P.)을 만들어 활동하다. 1975년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을 발표하고, 이 시기를 ‘권력의 계보학’ 시기라 지칭하다. 1976년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 연작 ‘성의 역사’ 시리즈의 1권 『앎의 의지』를 출간하다.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던 시리즈는 중도에 계획이 바뀌어 푸코가 사망하는 1984년 2, 3권에 해당하는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만이 출간된다. 이 시기를 ‘윤리의 계보학’이라 부르다. 같은 해 자신의 ‘지적 유언장’이라 할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하다. 푸코는 1984년 6월 25일 파리에서 에이즈로 사망한다. 그 외 푸코의 생애와 저작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리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올라 있는 4편의 글 ‘푸코의 활동’을 참고하면 되는데, 이는 푸코 선집 『말과 글』(1994)의 「연보」를 완역한 것이다.

http://www.greenbee.co.kr/blog/1685
 
 
 
II. 저자 사상 간략 정리
 
 
푸코 작업의 핵심은 한 마디로 모든 ‘보편’의 관념에 대립하는 것이다. 서양철학사에서 보편이란 필연적인 것, 본질적인 것, 불변의 것, 곧 ‘바꿀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의 작업은 이런 면에서 우리가 보편적이며 필연적이며 본질적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따라서 변화가능한 것, 바꿀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런 면에서 첫 번째 대표작이라 할 『광기의 역사』는 우리가 자연적인 것, 따라서 역사와 문화에 무관한 것으로 믿는 ‘광기’의 관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를 밝히려는 작업이다. 푸코는 우리가 이러한 관념의 최종근거로 삼는 모든 ‘자연적인 것’, 곧 생명, 생물, 의학, 정신, 육체, 광기 등의 관념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자연적인 것’으로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역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른바 인문과학 혹은 인간과학의 대표적 분과들이 노동, 생명, 언어의 분야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은 니체적 계보학의 입장에서 감시와 처벌 혹은 죄책감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사회화, 제도화되면서 근대사회 구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는가를 밝힌다. 『성의 역사』 연작 역시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이러저러한 성의 주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서구의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앞서 말한 필연과 보편의 관념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이처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자유와 변화의 지점을 찾을 수 있는가’를 밝히려는 궁극적 관심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 중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III. STEP 1 - 『미셸 푸코 1926-1984』, 『정신병과 심리학』,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푸코의 책은 매우 전문적인 논의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저작들을 시대 순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꼼꼼히 공부하는 것이나, 모든 이들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푸코 사유에 대한 가장 정평 있는 입문서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이다. 이 책은 푸코의 삶과 사유, 저작들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을 뿐 아니라, 니체, 하이데거로, 레비스트로스 등 푸코가 영향 받은 사유들, 사회ㆍ문화ㆍ정치적인 다양한 동시대적 상황들을 정리해 놓은 최적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국내 학자에 의한 간명한 입문적 소개로는 『처음 읽는 프랑스현대철학』(동녘)의 ‘푸코’ 부분이 무난하다. 고급한 입문서로는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산책자)와 질 들뢰즈의『푸코』(동문선ㆍ그린비)가 탁월하다.



다음으로는 어렵더라도 푸코 자신의 책을 시대 순으로 얇고 가벼운 것부터 찬찬히 정성스럽게 읽어보기를 권하는데, 우선 1962년의 『정신병과 심리학』(문학동네)을 권한다. 특히 이 책의 2부는 전 해인 1961년에 나온 푸코의 방대한 학위논문 『광기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요약ㆍ심화로 간주된다. 이후에는 물론 이러한 책들을 곁에 두고 『광기의 역사』(나남)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다음으로는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앨피)를 권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을 이어주는 책으로, 19세기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존속살해 사건의 기록을 푸코가 발굴해 자신의 연구ㆍ분석과 함께 출간한 것이다.
 
 
IV. STEP 2 - 『헤테로토피아』,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저술 순으로 따라 읽자면 다음 책으로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을 읽어야 하지만, 이 책들은 너무나도 고도의 전문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는 책이므로, 가급적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다만 『말과 사물』의 맨 처음 수록된 「시녀들」은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동명의 작품에 대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품격 있는 비평이므로 이 단계에서 읽어도 좋다). 이처럼 1960년대를 가로지르는 지식 고고학 시기의 대표작은 『말과 사물』이지만, 오히려 1960년대 푸코의 사유를 공간과 건축의 측면에서 잘 드러내주는 『헤테로토피아』(문학과지성사)를 권한다.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말과 사물』의 연장선상에서 고안된 것이며, ‘타자가 동일자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근본 조건’이라는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들 중 하나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말과 사물』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주장은 각각의 시대마다 이전 혹은 이후의 시대와는 공유될 수 없는 독자적ㆍ독립적인 ‘에피스테메’가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지식 고고학적’ 관점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이후의 ‘권력 계보학’으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가장 좋은 책은 1971년 네덜란드 텔레비전에서 이루어진 촘스키와 푸코의 대담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시대의 창)이다. 마냥 쉬운 책은 아니지만 대담의 기록이므로 대화체로 이루어져 읽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무엇보다도 - 하나의 주장이 합리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 오히려 “(하나의 주장을 정당화해주는) 합리성의 선택 자체가 니체적인 ‘힘 관계’의 반영”이라는 푸코의 핵심적 주장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논문 「진리와 권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 - 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은 푸코 ‘권력 계보학’의 대강을 보여주는 글로 추천할 만하다. 이 모두는 향후 『감시와 처벌』을 읽기 위한 준비의 과정으로 보면 된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은 물론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인 『담론의 질서』(중원문화)이며, 이 책은 우리가 오늘 아는 ‘담론’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기념비적인 명저이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면 『감시와 처벌』(나남)에 도전해볼 차례이다. 푸코의 가장 중요한 책이자 가장 논쟁적인 책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상대적으로는 푸코의 책들 중 매우 쉬운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읽어서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니다. 특히 처음 읽는 사람으로서는 행간에 깔린 중층적 의미를 다 소화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정독해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책이다. 모든 책을 다 정독하고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해야 다음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삶이란 몇 권의 중요한 책을 읽기에도 너무 짧다. 대강의 요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체크해두고 앞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이 유용하다.
 
 
V. STEP 3 - 『말과 사물』, 『성의 역사』, 『생명관리 정치의 탄생』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면 1960년대 지식 고고학 시기의 주저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을 읽을 차례이다. 우선 이해되지 않아도 가볍게 장 별로 한 번 읽고, 추후에 찬찬히 오랜 시간을 들여 정독하는 것이 좋다.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은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인식이란 없으며 오직 각각의 시대마다 새로운 인식이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 동시대의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구조주의적 관심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푸코는 16세기 이래 서양의 에피스테메 혹은 인식론적 장에는 단 2번의 단절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두 번의 단절로 이루어지는 세 개의 시기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이나, 푸코의 궁극적 주장은 이 두 번의 단절에 이어지는 세 번째 단절, 곧 네 번째 시기가 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각 시대마다 푸코가 긍정 혹은 부정하는 개념의 계열을 찾으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가령 책의 9-10장에서 칸트에 의해 성립된 근대 ‘인간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며, 근대 이후의 시대에 ‘언어’가 하게 될 역할은 긍정적 뉘앙스를 갖는다.
 
 
다음으로 『성의 역사』를 읽는다. 성의 역사는 1, 2, 3권에 해당하는 『앎의 의지』, 『쾌락의 활용』, 『자기 배려』가 있는데, 물론 순서대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이들 3권, 곧 1976년의 1권과 1984년의 2, 3권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일정한 단절이 존재한다. 『앎의 의지』는 그 전 해에 출간된 『감시와 처벌』 곧 권력 계보학의 논지를 대상의 측면에서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감시와 처벌』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다. 『앎의 의지』가 공격하는 핵심적 대상은 당시 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이다. 이 두 이론은 공히 성이 억압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이 해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푸코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성에 관한 기존 지배 시스템을 유지하는 장치의 일종으로 기능한다고 본다. 『앎의 의지』에서 보이는 푸코의 관심은 ‘왜 우리[서구인]는 성이 억압되어 있다고 이토록 강력히 말하게 되었는가?’라는 담론 체제에 관련된 문제이다. 2, 3권은 ‘윤리의 계보학’으로 이행한 이후의 저작들로, 『쾌락의 활용』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성인 남성이 진리의 문제, 양생술, 소년-성인 간의 동성애 등 섹슈얼리티에 연관된 여러 문제 상황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섹슈얼리티와 관련하여 어떤 주체로 만들어 갔는가를 분석한다. 주의할 점은 이때의 ‘윤리’가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덕’의 의미보다는 - ‘자기함양ㆍ자기도야’라는 그리스어의 어원적 의미에 가까우며, 따라서 진리와 정치가 이미 함축된 그러한 자기 형성의 ‘윤리’라는 점이다. 『‘자기 배려』는 그리스도교 국교화 이전의 고대 로마시기를 다루는데, 푸코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이 시기의 핵심적 문제제기를 자기 통치, 자기 배려로 설정한다. 통치성의 개념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푸코의 사유에서 이 개념이 타인의 통치로부터 자기의 통치에로 나아가는 연결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윤리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윤리의 계보학’ 시기는 주체화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로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1982년 미국 버몬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세미나 『자기의 테크놀로지』(동문선)을 참조하면 좋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푸코의 전공자로서 시간이 갈수록 확신하게 되는 하나의 사실은 푸코는 물론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감시와 처벌』 같은 저술을 통해서도 역사에 남게 되겠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ㆍ역사적 공헌은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록 시리즈에서 개진하고 있는 통치성의 관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푸코는 1970년에 취임한 이래 1976-1977년의 안식년을 제외하고 1984년까지 매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해왔다.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프랑스에서 2014년 현재에도 출간 중인 강의록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는 푸코 전공자로서 정확하고도 유려한 좋은 번역을 보여주는 심세광의 주도로 난장출판사에서 전권 번역되고 있다. 국역된 몇 권의 강의록 중 특히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는 통치성의 관념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잘 드러나는 필독서이다. 특히 이 책은 지난해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다루어진 16-17세기 이래 유럽 근대의 ‘정치학자’ 및 ‘경제학자’의 탄생,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분석을 잇는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분석에 책의 대부분이 할애되고 있어 특별한 시의성을 갖는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초래된 최근 유럽의 상황을 푸코 통치성의 관점에에서 분석한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같은 책도 참조하면 좋다.
 
 


 

2013. 12. 24.

polizeiwissenschaft


 
 
 
 
*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1977-78년』,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9강. 1978년 3월 8일


정치가(les politiques): 16-17세기의 서구에 등장. ‘이단’의 냄새를 풍기며, ‘이단’에 가까이 있는 종파에 속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늘 ‘부정적’으로 사용되었던 용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부를 어떤 형식의 합리성에 의거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일정한 생각을 통해서 서로 뭉치는 사람들”, “주권의 기초라는 사법적ㆍ신학적 문제에 반대해서, 통치합리성의 형태 자체를 독자적으로 사유하려한 자들”(343).


17세기 중반 이후. * 샤틀레 후작, “정치란 국가의 통치술”(marquis du Chastelet, Traitté de la politique de France, 1669). * 보쉬에, “성서에서 이끌어낸 정치”(Jacques-Bénigne Bossuet, Politique tirée des propres paroles de l'Ecriture sainte, 1709). “하나의 영역, 목적/의도의 집합, 권력조직의 특정한 유형”. 프랑스가 제안한 교황권 제한주의(gallicanisme), 즉 국가이성이 교회에 대항하여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의 정당화. 국가이성에 의해 지휘되는 정치. 정치는 더 이상 ‘이단’이 아니며, 제국은 죽어버렸다(344).


국가(l'Etat): 국가가 숙고된 인간의 인식에 들어온 것은 1580-1650년 사이의 일. “제가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은 국가가 근본적인 정치적 목표로서 출현했다는 사실을 통치의 역사라는 더욱더 일반적인 역사의 한 부분, 그도 아니라면 권력의 실천 영역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권력을 논한다면 권력에 대한 내적ㆍ순환적 존재론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국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국가의 역사와 발달을 얘기하는 사람들, 국가의 자부심을 얘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역사를 통해 어떤 실체를 만들어내고, 국가라고 하는 이것의 존재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국가라는 것이 일종의 통치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국가라는 것이 통치성의 유형 중 하나일 뿐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층적이고 다양한 절차에 입각해 차츰차츰 형성되어가고, 마찬가지로 차츰차츰 응결되어 특정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 모든 권력관계, 이 통치의 실천에 입각해 국가가 구축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346)


10강. 1978년 3월 15일


조반니 팔라초(Giovanni Antonio Palazzo, Discorso del governo e della ragion vera di Stato, 1604). 이성의 두 의미: ‘사물 자체의 본질’, ‘사물의 이치에 대한 인식’이며 [의지로 하여금] 이 사물의 이치 자체에 따르도록 해주고, 어느 정도까지는 의무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힘.


Etat(國家): ① 영역(dominium), ② 관할권(juridiction), ③ 삶의 조건, ④ 운동과 대립하는 사물의 본질.


république(共和國): ① 영역/영토, ② 사법의 공간이자 법, 규칙, 관습의 총체, ③신분들의 총체, ④ 영역, 관할권, 제도 혹은 개인들이 갖는 신분의 일정한 안정성.


raison d'état(國家理性): 이 네 가지 의미에서 ‘국가’가 자신의 온전함을 철저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충분한 것. 팔라초, “국가이성이란 국가의 모든 기술과 직무에 관련해 필요한 모든 사물의 본질 전체이다”, “국가이성이란 장인에 의해 정해진 목표를 획득하기에 적절한 수단을 가르치고 관찰하는 어떤 규칙이나 기술”, “국가의 온전성, 평온함, 평화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규칙이나 기술”이다(349-351).


켐니츠(Bogislaw Philipp von Chemnitz)의 1647년 텍스트, “국가이성이란 모든 공적인 일, 모든 조언과 계획에서 사람들이 갖춰야만 하는 정치적 견지이다. 이 정치적 견지는 오로지 국가의 보존, 증강, 지복만을 지향해야 한다.”(351)


당시의 국가이성은: 자신의 정의와 관련하여 국가이성 자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참조하지 않는다, 국가의 본질이자 인식, 보존적ㆍ보수적, 국가 자체가 목적으로 설정된 무엇(353). 이러한 논의의 관심은, 기원ㆍ토대ㆍ정당성ㆍ왕조가 아닌,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통치이다. 기원이 없듯이, 종착점ㆍ목적도 오직 국가 자체이다. 최후의 궁극적 제국과도 같은 외적 목표가 사라지고, 다수 국가들 사이의 균형을 통해서만 가능한 항구적인 세계평화가 관건이며, 이후 이는 인간 행복에 있어서의 진보의 관념으로 수정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구(人口, population)의 관념이 있다.


coup d'état(쿠데타): 17세기 초의 쿠데타는 (국가를 그 소유자로부터 압수하거나 몰수한다는 의미가 아닌) 보편법을 뛰어넘는 행위, 국가로부터 법이나 합법성을 빼앗고 중단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 가브리엘 노데(Gabriel Naudé, 1600-1653)의 『쿠데타에 관한 정치적 고찰』(Considérations politiques sur les coups d'Etat, 1639), 보편법의 초월(Excessus iuris). 보테로의 ‘공공선을 위해 행해지는 보편법의 초과’(excessum juris communis propter bonum commune). 보편법에 반하는 특별한 행동, 어떤 질서나 어떤 사법 형식도 지키지 않는 행동. * 켐니츠, “국가를 구제하는 것이 문제일 때, 국가 이성은 공법, 특수한 법, 근본적인 법과 그 외 어떤 종류의 법도 과감하게 위반할 수 있다”, “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법에 대해서 명령해야 한다. 국가가 법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국가의 현상에 적응해야 한다.” 국가 자체의 필요성, 긴급성, 구제의 필요는 자연법적인 법의 작용을 배제한다. 결국, 쿠데타는 국가 자체의 자기 현시, 국가 이성의 단언. 정치는 이처럼 필요성에 관련된 어떤 것. 17세기 초반의 정치문헌들에는 필요성에 대한 일대 철학, 일대 찬사, 예찬이 발견된다. 통치는 합법성(혹은 정당성)이 아니라, 필요성과 관련해 존재한다(357-361).


violence(폭력): 쿠데타는 본성상 폭력적. 국가에 관해서는 폭력과 이성 사이에 어떤 이율배반도 없다. 국가의 폭력은 소위 국가 이성 자체의 난입적 표명. * 샤를마뉴 대제의 ‘판관’ = ‘색슨인들이 있는 곳에 자기가 죽이고 싶은 상대를 죽이고 싶은 방식대로 죽이고 싶은 때에 이유도 말하지 않고 죽이는 암살자를 두었다.’ 국가범죄. 익명의 저자, “폭력은 개인의 변덕으로 이루어질 경우에는 흉폭성(brutalité)이지만, 현자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질 때는 쿠데타이다.”(1652년) 쿠데타는 주권자에 대한 국가이성의 난입, 적법성에 대한 국가이성의 우월성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정치에서의, 국가이성의 연극적 실천과도 연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17세기 초. 「소요와 폭동에 관한 시론」(Of seditions and troubles, 1625). 소요는 공적인 것(res publica), 즉 국가생명에 있어 완전히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일종의 내적 현상. 소요의 징후학ㆍ기호학. 소요와 폭동의 원인은 배와 머리, 빈곤과 불만, 배고픔과 여론. 진정한 위험은 인민과 귀족이 결합되는 경우.


* 마키아벨리와 베이컨 통치성의 비교. ① 문제: 마키아벨리는 위협받고 있는 군주, 베이컨은 위험에 처한 국가 ② 통치의 대상: 마키아벨리는 귀족, 베이컨은 인민. ③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자질에 대한 사람들의 품평, 베이컨은 경제와 여론. 베이컨에게는 경제학자와 여론관리자(publicists)의 탄생(375-378).


국가이성과 진리의 문제. 국가 이성 곧 통치술에 있어서의 내속(內屬)적 합리성은 일정한 종류의 진실을 생산한다. 17세기 초까지, 통치자에게 중요한 것은 법을 이해하는 현명함, 법을 언제 적용해야 하는가에 관련된 진중함이다. 17세기 이후, ‘사물’(les choses)에 관한 인식. 통치자는 국가가 다른 국가에 의해 지배된다거나 국력을 상대적으로 잃음으로써 존재감을 잃지 않도록 국가의 유지, 국력의 유지, 국력에 필요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알아야 한다(378-379).


Statistik: 주권자가 알아야만 하는 사물, 국가의 현실 그 자체인 그 사물은 이 시기에 statistique, Statistik[統計學, 國家學]이라 불린 것. 어원학적으로 통계학은 국가에 관한 지식. 일정한 시기에 국가를 특징짓는 힘과 자원에 관한 인식. 인구의 인식, 인구 수의 계량, 사망률ㆍ출생률의 계량, 국내에 존재하는 여러 범주의 개인들에 대한 산정, 그들의 부의 산정,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잠재적 부, 즉 광산, 산림 등의 산정, 생산된 부의 산정, 순환하는 부의 산정, 무역수지의 산정, 세금 및 조세 효과의 측정, 그 밖의 모든 소여가 이제 주권자의 앎의 본질적 부분이 된다. 요컨대 이제는 법의 사료나 이를 적시에 적용하는 기교가 아니라, 국가 자체의 현실을 특징짓는 기술적 인식의 총체가 주권자의 앎이 된다.


- 1691년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1623-1687)의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k). 아일랜드 정부의 전속 의사로 활동하던 페티는 알일랜드 대장 작성에 종사한 이후, 가톨릭으로부터 몰수한 토지를 영국군과 그 출자자들에게 배분하는에 1652-1659년에 관여했다. 이로부터 나온 것이 1652-1659년까지 집필된 『아일랜드의 정치해부학』(The Political Anatomy of Ireland, 1691).


- 1730년 헤르만 콘링(Hermann Conring, 1606-1681)의 ‘공적인 것’(rerum publicarum)에 대한 논문.


- 1749년 고트프리트 아켄발(Gottfried Achenwall, 1719-1772)이 통계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379-381).


푸코가 연구하려 한 것은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국가를 인식의 의식적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국가에 대한) 성찰적 프리즘의 역사(383-384). 국가는 실천이며, 이 총체적 실천이 통치의 방식, 행동의 방식, 통치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국가를 만든 것입니다(384). 그러나 이 시기 국가이성의 분석에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 조만간 나타날 것은 인구(population)이다. 중상주의에 있어서도 여전히 부유해져야 하는 주체 혹은 대상은 - 인구가 아니라 - 국가 자체이다. 17세기 이래의 국가 이성은 통치성을 잘 정의했지만, 그 정의 안에 인구에 대한 참조는 함축적인 상태로 남아 있을 뿐 아직 성찰적 프리즘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고전주의] 일어나게 되는 일련의 변형에 의해, 또한 그 변형을 통해 18세기 이래의 정치 생활이나 정치에 관한 모든 고찰 및 정치학에서 이 중심적인 요소인 인구 개념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인구 개념은 국가 이성을 작동시키기 위해 설치된 장치, 곧 내치(內治, la police)를 통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국가이성에 관한, 소위 절대주의적인 그 일반이론에서 이 새로운 주체[인구]를 출현시키는 것은 내치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실천영역의 개입입니다(385-386).


11강. 1978년 3월 22일


서구에서 자기 안에 고유한 이성과 합리성ratio을 가지고 있던 통치술의 탄생이라는 사건은 이와 정확히 동시대, 그러니까 16세기 말-17세기에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르네 데카르트 등과 관련해 일어난 사건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건. 거기에서 서구 이성이 대단히 복잡하게 변형되는 현상이 발생. 이 통치이성의 출현이 어떻게 해서 사유ㆍ추론ㆍ계측의 일정한 형식을 발생시켰는가? 이런 사유ㆍ추론ㆍ계측 방식은 당대에 정치라고 불렸습니다. 정치는 우선 이단적인 사유로 지각되고 인정되어 즉각적으로 동시대인들의 우려를 발생시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와 통치술의 관계는 동시대에 보편수학과 자연과학이 맺었던 관계와 다소 비슷했습니다(387-388).


통치이성의 원칙이자 목표가 다름 아닌 국가(status, état, Staat, state)이다. 국가란 인식가능성의 원칙이자 전략적 도식. 국가란 통치이성의 규제적 이념. 국가란 현실적인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원칙, 이미 주어져 있는 요소와 제도의 고유한 본성, 연결, 관계 등을 사유하는 방식. 국가는 이미 주어져 있는 왕, 주권자, 행정관, 행정기관, 법, 영토, 영토의 주민, 군주의 부, 주권자의 부 등 요소의 성격이나 관계를 구상하고 분석하고 정의하는 어떤 방식. 이 모든 것은 이제 국가의 구성 요소로서 인식된다. 국가란 이미 확정된 제도들로 이루어진 총체, 이미 주어진 현실들로 이루어진 총체에 관한 인식 가능성의 도식. 이런 정치적 이성 안에서 국가는 일종의 목적이며, 이런 이성, 합리성의 활동적 개입이 낳은 최종적 결과물이 국가이다. 따라서 국가는 통치술의 합리화 과정 끝에 있어야 한다. 결국, 국가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우리가 정치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사유형태, 반성형태, 계산형태, 개입형태의 규율적 이념. 보편수학으로서의 정치, 통치술의 합리적 형식으로서의 정치. 통치이성은 국가를 현실[성]의 해석원칙이자 목적, 당위로 제시한다. 국가는 통치이성을 지휘하는 그 무엇. 국가란 필요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통치하게 만드는 그 무엇. 국가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통치한다(389-390).


- 팔라초의 『국가의 참다운 이성 및 통치에 관한 담론』(1606): “국가이성은 평화의 본질 자체, 평화롭게 살게 만드는 규칙, 사물들의 완성”. 국가이성은 국가의 현실을 국가의 영원한 본질 혹은 국가의 부동하는 본질에 맞추는 것, 국가를 국가로서 유지하게 해주는 것. 팔라초는 ‘국가’라는 의미와 사물의 부동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status라는 용어를 사용.


- 보테로: 국가이성이란 “국가가 스스로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강화하고 증강하는 수단에 고나한 완벽한 인식”이다.


- 켐니츠: 국가이성이란 국가의 확립ㆍ보수ㆍ증강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러한 국가의 보존ㆍ유지(manutention)를 위해서는 회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피한, 어쨌든 항상 위협이 되는 과정, 국가를 역사의 정점에 다다르게 한 뒤에 쇠퇴로 몰아넣거나 소멸시키는 과정, 바빌론 왕국, 로마제국, 샤를르마뉴 대제의 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테로와 팔라초에 의하면, 바로 역사상의 모든 국가가 겪은 이런 탄생, 증강, 완성, 쇠퇴라는 주기(週期, cylce)에서야말로, 또한 그것을 위해서야말로 국가이성은 기능한다. 당시의 어휘에서는 이 주기를 혁명(révolution)이라 부른다. 이런 혁명, 혁명들이야말로 국가를 빛이나 충일로 이르게 한 뒤에 소멸시키는 주기로 들어가게 하는, 마치 자연과도 같은, 그도 아니라면 절반은 자연적이고 절반은 역사적인 현상. 보테로나 팔라초가 국가이성이라고 부른 것은 본질적으로 국가를 혁명에 맞서 유지하는 것(391-392).


이런 형식의 국가이성을 통해 소묘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안에 법과 목적을 갖는 복수의 국가들이 영원히 필연적이자 운명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세계. 정치적으로 열린 시간, 국가적으로 다수의 다양한 공간.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 유일한 보편적 제국으로서의 로마의 종말을 확인.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분리되고 제도화되고 인식되었다. 국가들이 이미 각자의 정책ㆍ선택ㆍ동맹에 있어서 종교적 귀속관계에 의해 단합하기를 그만두었다. 유럽은 다수 국가들 사이의 균형과 경쟁, 각국의 국부를 강화하는 체계를 의미. 이 경쟁의 공간이야말로 국가이성의 지도원칙이자 지도노선인 국가의 증강에 의미를 부여(394-397).


국가이성 분석의 특권적 대상, 사례였던 스페인이 획득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꿈꾸었고 일시적이나마 성취했던 지배력과 준독점적 입지의 행사는 그것을 가능케 한 동일한 무엇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았다. 이를테면 부유함 때문에 빈곤에 처하게 된다거나 국력의 과도함 때문에 쇠약해지는 것. 이것이 혁명[=주기]인데, 이때의 혁명은 ‘일국의 국력과 확보해주었던 바로 그것이 오히려 힘의 상실이나 감퇴를 야기하게 되는 실제적 메커니즘의 총체’를 의미. 이는 현실의 혁명, 곧 ‘국가들에게 부와 힘을 보장해주는 메커니즘의 수준 자체에서의 혁명을 이끌어내어지는 경쟁이라는 현상에 의해 열리고 횡단되는’ 새로운 시간관념이 탄생한다. 이처럼 국가들이 경쟁관계라는 형식 아래 존재하는 국가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16-17세기 이래의 일.


이러한 인식은 ① 군주의 부에서 국가 자체의 부로의 이행 ② 군주의 소유물로부터 힘을 산정하는 것으로부터 국가를 특징짓는 훨씬 더 견고하고 비밀스러운 힘, 가령 국가에 내재하는 부, 국가가 처분할 수 있는 자원, 천연자원, 상업의 가능성, 무역수지 등에 대한 연구로의 이행 ③ 군주들 혹은 군주가 속한 가문들 사이의 대립으로부터 국가들 사이의 경쟁관계라는 대립구조로의 이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16세기 말 17세기 초, 특히 30년 전쟁(1618-1648)을 둘러싸고 형성된 정식화에 입각해서 보면, 이에는 힘, 국력, 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층위가 발견된다(397-401).


정치사상의 수준에서(force)이라는 근본적 범주의 출현. 정치사상에서의 역학(la dynamique)과 자연과학, 본질적으로는 물리학으로서의 역학은 동시대적.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7)는 역사적 정치적 관점에서 힘의 일반이론가이자, 물리학의 관점에서 힘의 일반이론가. 모나드라는 실체라는 단위가 지니는 물리적 표출로서의 힘. 앙드레 로비네, “유럽이 균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들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물리학이다. [...] 유럽의 균형이란 정역학(靜力學, statique)의 문제가 아니라 동역학(動力學, dynamique)의 문제이다.”(401-402)


이 새로운 통치성, 곧 국가이성의 진정한 문제는 그러므로 - 일반적 차원에서의 국가의 유지라기보다는 - 여러 가지 힘의 역학의 보존과 유지 및 발전이다. 사구 혹은 서구사회는 이 본질적으로 여러 가지 힘의 역학에 입각해 정의되는 정치적 이성의 작동을 위해 ① ‘외교-군사적 장치’와 ② ‘내치’라는 두 개의 커다란 집합을 설치한다. 이 두 집합의 기능은 힘 관계의 유지를 확보하고, 전체와 단절됨 없이 각각의 힘들의 증강을 확보하는 것. 이 양자의 ‘결합’이 후에 안전메커니즘(mécanisme de sécurité)이라 불리게 된다(403).


1) 안전메커니즘의 첫 번째 장치 - 외교ㆍ군사적 유형의 새로운 기술.


30년 전쟁의 종말(1648)이란 제국의 꿈과 교회 보편주의의 소멸을 명백하고 결정적으로 이끌어낸 저 1백년에 걸친 종교적 정치적 투쟁의 종말.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1555)로부터 이어지는 시기를 고려하면 거의 1백년이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는 신앙고백한 종교(가톨릭이나 루터파)를 실천할 권리를 신성로마제국 내의 모든 국가에게 인정했다. 이 원칙은 훗날 ‘군림하는 자, 그의 종교[한 나라의 종교는 그 군주의 종교를 따른다]’(cujus regio, ejus religio)라고 불렸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에 의해 이 원칙이 확립되고 있었기 때문에, 베스트팔렌 조약(1648)에 이르러 중세적인 가톨릭 중심의 신성로마제국이 종말을 맞게 된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가톨릭과 루터파에 이어 칼뱅파를 신성로마제국의 세 번째 합법적 종교로 사실상 인정하게 된다. 30년 전쟁 말에 설립된 이 체제는 결국 유럽의 평형을 목표로 한다(403-404).


유럽이란 무엇인가? 17세기 초나 전반기까지만 해도 유럽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것. 유럽이란 그리스도교가 지녔던 보편주의적 소명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하나의 단위. 쉴리(duc de Sully, 1560–1641)가 앙리 4세의 ‘웅장한 계획’이라 부른 유럽은 제한되고 보편성이 없는 지리상의 분할된 절편, 근본적으로 복수적. 강력한 15개국 사이의 평형, 특히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소국과 대국의 수준 차이는 있는 여타 세계와의 이용ㆍ식민지화ㆍ지배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지리상의 지역으로서의 유럽. 유럽의 균형 혹은 천칭(trutina sive bilanx Europae). 교회의 보편주의가 아니라, 경쟁하는 국가들 사이의 안전 확보가 균형(405-410).


안전 확보를 위한 도구. ① 전쟁. 중세의 전쟁은 ‘특정 무리(가령 떠돌이 용병)의 계절적 모험, 약탈행위, 전리품 수확행위’로서의 게르(guerre)와 ‘신명재판’(神命裁判)으로서의 바타유(bataille). ‘신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목적을 선언하고 확증하며, 모두를 위해 논쟁의 여지없는 맹백한 방식으로 어느 진영이 진정 정의로운지를 드러내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조르주 뒤비, 『부빈의 일요일』(Le dimanche de Bouvine, 1973; 동문선, 166-167쪽) 16-17세기 이래의 전쟁은 정당성 혹은 법권리의 전쟁이 아닌, 국가 혹은 국가이성의 전쟁. 약 2세기 후 클라우제비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 프랑스왕들의 대포, ‘왕들의 궁극적 이성’(ultima ratio regum) ② 다자간 조약과 같은 외교적 수단. 주권자들의 권리가 아닌, 국가들의 물리학. 상주 대사의 원형이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확립. 진정한 국제연맹. 이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만민법(萬民法, jus gentium). 장자크 뷔를라마키(Jean-Jacques Burlamaqui, 1694-1748), 『자연법 및 만민법의 원칙』(Principes du droit de la nature et des gens, 1766-1768): “근대 유럽은 공통의 이익에 의해 연결된 독립적인 구성원들이 질서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모여 있는 일종의 국가 같은 것이 된다.” ③ 상시적인 군사장치의 설치, 군사적인 것의 제도화. 군인의 직업화, 상시적인 군 구조 확립, 요새와 수송 장비, 그리고 지식, 전술적 고찰, 작전, 공격 및 방어의 도식들. 유럽의 평형 구축을 위한 정치적ㆍ군사적 복합체의 확립. ④ 정보장치. 자국(및 타국)의 힘을 알고 또 감추는 것, 더하여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


12강. 1978년 3월 29일


2) 안전메커니즘의 두 번째 장치 - 내치.


18세기 이래 경찰police이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17-18세기 말의 police는 훨씬 폭넓은 의미의 내치를 의미.


폴리스의 전통적 의미. 1) 15-16세기에 빈번히 발견되는 이 단어의 의미는 ‘공적 권위에 의해 지배되는 공동체나 단체의 형식’을 의미. 17세기 초까지도 이런 의미로 사용. 2) 역시 15-16세기의 용법. 공적 권위 아래 그런 공동체를 지배하는 어려 행위의 총체. 폴리스 에 레지망 police et régiment. 레지망=폴리스에 관련된 지배와 통치의 방식. 3) 적절한 통치의 결과, 실정적이고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결과.


17세기 이래 폴리스의 새로운 의미. ‘적절한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증강할 수 있는 수단들의 총체’, ‘국내질서와 국력증강 사이의 동적이지만 안정적이고 제어가능한 관계를 확립할 수 있게 해주는 계산과 기술’, 결국 ‘질서, 유도된 부의 증대, 건강 ‘일반’ 유지의 조건들, 이상과 같은 것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 총체.’(421-413)


- 루이 튀르케 드 마이에르느(Louis Turquet de Mayerne, 1550-1618), 『귀족 민주주의적 군주제』(La monarchie aristodemocratique, 1611): “국가에 장식, 형식, 장려함(splendeur)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내치라는 이름 속에 포함되어야 하며, 사실 그것은 거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의 질서를 가리킨다.”


- 호헨탈(Peter Karl Wilhelm Graf von Hohenthal-Königsbrück, 1754-1825), 『』(Liber de politia, 1776): “내치란 국가 전체의 장려함을 위하는 동시에 각 시민의 지복을 위한 수단이다.”


- 요하네스 폰 유스티(Johann Heinrich Gottlob von Justi, 1717-1771), 『내치학의 원칙』(Grundsätze der Polizeywissenschaft, 1756): “넓은 의미에서의 내치에는 국내에 관한 모든 장치가 포함된다. 그것은 보다 지속적으로 국력을 견고하게 하고 증강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것을 통해 국력이 선용되고 신민의 행복이 갖추어진다. 즉 그것들의 관리방식에 의해 국가의 행복이 결정되는 한에서 통상과 학문, 도시경제, 그리고 농업경제, 공업관리, 삼림 등이 내치에 포함된다.”(424-425)


유럽의 평형과 내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의 도구, 통계학. 통계학은 내치 때문에 필요한 것이 되고, 내치에 의해 가능한 것이 됩니다. 내치와 통계학은 서로를 조건화합니다. 통계학은 국가에 관한 국가의 지식인데, 그것은 자국 자체에 관한 지식이기도 하고, 다른 국가들에 관한 지식이기도 한 것(427-428). 내치국가(Polizeistaat).


이탈리아는 우선적으로 외교우선주의이며, 따라서 내치는 나중에 발전한다. 독일은, 봉건과 근대의 중간에서, 프랑스적 중앙집권 체제, 곧 행정관이 없었으므로, 이를 수행할 대체 기관을 대학에서 발견한다. 내치학은 독일의 대학에서 결정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이는 17세기 말 18세기 말 전 유럽에 걸쳐 위세를 떨치게 된다. 내치이론, 내치에 관한 책, 행정관을 위한 교재. 프랑스는 행정실천 내에서 이론ㆍ체계ㆍ개념 없이 실무진에 의해 주도되어, 조치ㆍ행정명령ㆍ칙령집 등을 통해 제도화.


튀르케 드 마이에르느: “내치는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질서.” 통치술과 내치의 행사는 동일한 것. 4대 업무를 담당하는 4대 장관: ① 기존의 사법을 담당하는 대법관, ② 군대를 담당하는 총사령관, ③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장관, 그리고 ④ 탁월하게 행정적 근대성을 갖는 내치의 보수장관ㆍ개혁장관. 내치의 보수장관은 각 지방에 각기 4개의 사무국을 갖는다. ① 내치 사무국. 청소년과 아동. ② 빈민을 담당하는 자선사무국. 직업ㆍ노동 배분, 전염병과 공중위생 관리, 금전 대출. ③ 상인들을 관장하는 업무. 시장의 제반 요소 관리. ④ 영토사무국. 부동산. 이에 더하여, 내치의 개혁장관은 시민의 충성ㆍ겸양 등 도덕적인 기능을 담당. 부와 검약을 담당. ☞ 도덕성과 노동의 혼합.


내치사무국은 개인들의 교육과 직업[화]을 담당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간들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통제ㆍ구속ㆍ결정의 총체. 곧 신분적 의미의 인간이 아닌, 직업적 의미에서의 인간을 다룬다. 곧 무엇인가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인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인간, 일생에 결처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는 의미에서의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인간은 ‘참된 시민’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확실히 하나의 활동을 갖고 있고, 또 이 활동이 그의 덕의 완성을 특징지어야 하고, 그 결과 국가의 덕의 완성도 가능케 되어야 하는 것’, ‘스스로 전념하는 어떤 것을 갖고 있는 참된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내치. 내치의 대상은 ‘국가와 관련이 있는 한도 내에서의 인간의 활동, 국력을 구성하는 요소인 인간의 활동’. 내치,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의 유용성을 창출하는 것, 직업, 활동, 인간의 행위를 시작으로 공공의 유용성을 창출하는 것(-439).


내치의 대상. ① 인간들의 수. 시민의 수(copia civium). 인구가 점유하고 있는 영토가 갖는 자원과 능력 대비 인구의 양적 발전 ② 생활필수품. 물품의 상품화, 순환, 식량난에 대비한 비축 등의 정확한 제어. 특히 곡물의 내치. ③ 독기(毒氣)의 이론과 연관되는 보건의 문제. 이는 새로운 설비, 새로운 도시공간을 수반하는 일대 정책을 야기. ④ 인간의 행동에 유의. 직업에 대한 통제, 관리. ⑤ 생산물과 상품의 순환. 물질적 순환을 위한, 도로와 그 상태 및 발전, 하천과 운하의 운항가능성을 관장. 순환의 공간.


요약하면, 내치는 인간들 상호 간의 공존 형식 전체를 관장. 모든 종류의 사회성(socialité). 내치가 담당하는 것은 사회. 17-18세기 내치학자들이 말하는 내치 제도의 포괄 영역은 인간들의 공존과 상호소통. 살게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살게 하는 것 이상의 것까지 포괄. 사는 것만이 아니라, 단지 사는 것보다는 조금 낫게 산다는 문제. 내치는 생활하기, 생활하는 것 이상의 것을 행하기, 공존하기가 국력의 구축과 증강에 실제적으로 유익할 수 있도록 확보하는 개입과 수단의 총체. 내치는 국력과 개인들의 복락을 연결시킨다. 개인들의 생명 이상의 것인 이 복락은 말하자면 추출되어 국가의 유용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446).


- 니콜라 들라마르(Nicolas de La Mare, 1639-1723), 『내치론』(Traité de la police, 1705): 내치의 유일한 대상은 “인간을 자신이 평생 누릴 수 있는 가운데 가장 완벽한 복락으로 이끄는 것.”


- 호헨탈: “국가의 장려함과 개인들 각자의 외적 복락을 확보해주는 수단의 총체.”


- 폰 유스티: 내치는 “국가 내부와 관련되고 국력을 강고하게 증강시키며 국력의 선용을 행하는 데 관련된 법과 통제의 총체”이며, “그 법과 통제는 신민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경향을 갖는다.”


- 몽크레티앙(Antoine Monchrestien de Watteville, 1575-1621)의 『정치경제학 논설』(Traité d’économie politique, 1615/1616): “요컨대 자연은 우리에게 존재l'être를 부여했다. 그러나 우리는 규율과 예술로부터 안락le bien-être을 이끌어낸다.” 존재를 넘어 안락을 산출하는 것, 그래서 개인들의 행복이 국력이 되게 하는 것.


13강. 1978년 4월 5일


니콜라 들라마르가 말하는 내치의 13개 영역. 종교, 풍속, 건강, 식량, 공공의 안녕, 건축물ㆍ광장ㆍ도로의 관리, 과학들과 자유7과학, 통상, 수공업과 공예, 하인과 노동자, 연극과 유희, 마지막으로 ‘공동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빈민에 대한 배려와 규율. 삶의 보존, 양호, 편의, 쾌적. 이상의 대상은 근본적으로 도시 문제, 곧 도시에 관한 행정명령. 시장 문제, 근위기병대, 도로망, 영토의 도시화. 내치화하다policier = 도시화하다 urbaniser. 내치, 도시화,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e)의 관계. 중상주의: 경쟁관계에 있는 유럽의 국가들이 통상, 통상의 발전, 통상관계에 부여된 새로운 활력을 통해 국력을 증강하고자 할 때 사용한 기술과 계산(유럽의 평형과 경쟁의 맥락). 중상주의의 도구가 바로 통화 유입기술로서의 통상의 전략. 내치와 통상(-457).


내치의 통치성 안에서 존재와 안녕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내치는 사법이 아니며, 주권자가 주권자로서 행하는 직접적 통치성, 내치는 국가의 고유한 합리성이라는 원칙 아래 수행되는 항구적 쿠데타. 내치는 끊임없이 세부적인 것에 관여한다(459). 내치에는 법보다 통제(règlement)가 필요하다. 무제한적, 항구적, 끊임없이 갱신되는, 점차로 상세해져가는 통제. 내치는 통제의 세계, 규율의 세계. 도시를 일종의 준수도원으로 여기고, 왕국을 일종의 준도시로 여기는 것, 이것이 내치의 배경에 있는 그런 종류의 거대한 규율적 꿈. 통상, 도시, 통제화, 규율이 17-18세기 전반에 걸쳐 이해되고 있던 내치 실천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461).


이후의 중농주의자(physiocratie) 혹은 ‘경제학자’(économiste): 1) 이러한 도시중심적 세계에 대지를 고려에 넣는 통치성, 중상주의에 가해진 균열. 도시가 아닌 대지, 순환이 아닌 생산, 매도ㆍ매각 이익이 아닌 반환의 문제. 탈도시화. 2) 내치적 통제화의 공준에 대한 의심. 중농주의자들, ‘자연지배주의자’들은, 첫째, 사물의 흐름은 수정될 수 없으며, 수정하려고 하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통제화(règlementation)는 무용할뿐더러, 해롭다. 통제화가 아니라, 조절(régulation), 사건 자체의 흐름에서 출발해서 그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조절이 중요. 3) 인구가 그 자체로 부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내치의 주체는 통제에 따라야 하는 신민들. 주어진 영토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자원에 따라 행해지는 자연히 인구의 자동적 조절(-468). 4) 국가 사이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정치가’의 시대가 사라지고, ‘경제학자’의 시대가 도래한다. 경제학자는 국가이성을 둘러싸고 정돈된 사유에 대한 이단, 국가와 관련한 이단, 내치 국가와 관련한 이단. 정치가들의 통치성이 우리에게 내치를 가져다주었다면, 경제학자들의 통치성은 우리를 근대적이고 현대적인 통치성의 몇 가지 기본노선으로 안내한다.


1) 정치가들이 도입한 통치성, 국가이성의 통치성은 국가가 갖는 비자연성, 절대적인 인공성. 중세적인 우주론적 신학으로부터의 단절, 무신론. 경제학자들은 이 인공성에 메커니즘의 자연성, 자연주의를 도입한다. 사회적 자연성. 인간의 공통된 실존 특유의 자연성인 사회, 곧 시민사회가 국가에 대항하여 출현한다. 국가가 담당하게 된 것은 사회, 시민사회이며, 이는 신민의 집합에만 관여하는 국가이성 혹은 내치적 합리성과 질적으로 다른 합리성.


2) 과학적 인식, 합리성에의 요구는 18세기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장된다. 바로 이 인식이 정치경제학이다. 정치경제학은 -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수순이 아니라 - 여러 가지 부나 인구를 생산ㆍ순환ㆍ소비라는 세 개의 축으로 엮어내는 과정에 관한 인식이다. 권력과 지식의 관계, 통치와 과학의 관계.


3) 인구의 문제. 인구는 자신의 고유한 변화와 이동의 법칙이 있다. 인구의 자연성. 그리고 이는 개인들 사이에 일련의 자발적인 상호작용, 순환작용, 전파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인구 내부에서의 이익 구성의 법칙. 인구학(人口學, demography)은 사회의학, 당시 용어로는 ‘공중위생’의 관념과 연관. 신민의 집합으로서의 인구는, 이제, 자연적 현상의 집합으로서의 인구로 이어진다.


4) 이 새로운 통치성은 규제가 아니라 조절을 목표로 한다. 경제적 절차나 인구에 내재하는 과정인 자연적 현상의 안전을 확보를 본질적 기능으로 하는 국가의 개입, 즉 안전메커니즘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478). 5) 자유의 기입.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법과 관련해 권리를 남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통치할 줄을 모른다는 의미.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거대하고 과잉적인 내치가 해체된다. 1) 경제 혹은 인구처럼, 현상들을 부추기고 조절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이 생성된다. 2) 단순히 부정적인 기능, 곧 ‘무질서의 소거’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적 경찰 제도가 확립(-479).


새로운 통치성은 경제적 실천, 인구관리, 자유와 여러 자유의 존중과 관련해 분절화되는 공법, 억제적 기능을 갖는 경찰을 갖는다. 이러한 품행(品行, conduite, conduct)에 대한 대항품행(對抗品行, contre-conduite, counter-conduct)은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사회, (오류ㆍ몰이해ㆍ맹목과 관련해 세워지는) 경제적 진실, (개인의 이익에 대립하는) 만인의 이익, (자연적으로 살아있는 현실로서의) 인구의 절대적 가치, (불안전과 위험과 관련해 확정되는) 안전, (통제화에 대립하는) 자유와 같은 요소들(481). 이런 의미에서 국가이성의 역사, 통치이성의 역사, 통치이성과 그에 대립하는 대항품행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483).


“이상입니다. 올해 하고 싶었던 것은 모두 사목을 특징으로 하는 그런 형식들의 권력에 대한 상대적으로 국소적이고 미시적인 분석을 출발점으로 해서 국가라는 일반적 문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역설이나 모순 없이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상의 작은 실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바로 국가를, 역사가 그 자체를 출발점으로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초월적 현실로 격상시켜 버리지 않는다는 한에서인 것입니다. 국가의 역사는 인간들의 실천 자체를 출발점으로 하고, 인간들의 행위나 사고방식을 출발점으로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행동방식으로서의 국가, 사고방식으로서의 국가, 이것은 명백하게 국가의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분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충분히 풍부한 가능성 중 하나이긴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풍부함은 미시권력의 수준과 거대 권력의 수준 사이에는 절단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 한 쪽에 대해 말할 때 다른 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시권력에 대한 분석은 통치나 국가와 같은 문제에 대한 분석과 아무 어려움 없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484)

 



 



 
 

2013. 11. 8.

gouvernementalité + biopolitique

* Judith Revel, Le vocabulaire de Foucault, ellipses, 2002.
 
 
 
 
 

 

 
 
생명관리정치 biopolitique
 
 
* ‘생명관리정치’라는 용어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사이에, 권력이, 일정한 수의 규율화 절차를 가로질러 개인들을 통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인구를 구성하는 생명체의 집합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형시키고자 했던 방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양한 국지적 생명관리권력을 가로지르는 생명관리정치는 따라서 정치적 관건으로 설정되는 한에서의 출생, 섹슈얼리티[성현상], 영양, 위생, 건강의 관리 등을 다루게 된다.
 
 
** 생명관리정치의 관념은 자신을 낳은 정치적 합리성의 틀, 곧 자유주의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함축한다. 자유주의라는 말은, 단순히 산업 생산의 모델에 기반해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으려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늘 지나치게 통치할 위험성이 있음을 확언하는 하나의 통치의 수행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국가이성’이 ‘국가’의 성장 과정을 일관하여 자신의 권력을 증대시키려고 노력했던 반면, “자유주의적 고찰은 국가의 존재로부터 출발해서 국가를 위한 국가라는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통치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관련해 내부성 및 외부성의 복합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로부터 출발한다.”(『생명관리정치의 탄생』, 「강의요지」, 437-438) 법적 분석으로도 경제적 분석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물론 양자는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 새로운 유형의 통치성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대상, 곧 ‘인구’를 탄생시키는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서 드러난다. 인구는 특수한 병리학적 생물학적 특성을 보이는 살아있는 존재들 및 공존 존재들의 집합이며, 따라서 그 생명 자체가 노동력의 보다 나은 관리를 위해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서 가정된다. “길들일 수 있는 신체 및 개인의 발견과 동시적인 인구의 발견은 그것의 주위에서 ‘서양’의 정치적 절차가 변형되었던 기술적인 또 다른 거대한 핵심이다. 사람들이 - [방금 언급했던] 해부정치(anatomo-politique)와 상반되는 의미에서 - 내가 ‘생명관리정치’라 부르고자 하는 것을 발명해낸 것이 바로 이때이다.”(「권력의 그물망」, 1976/1981) 규율이 스스로를 신체의 해부정치학으로서 규정하면서 본질적으로 개인에 적용되는 것임에 반해, 생명관리정치는 생명의 통치를 목적으로 인구에 적용되는 이 거대한 ‘사회 의학’을 대변한다.
 
*** 생명관리정치의 관념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 번째는 푸코 자신에게서 발견되는 하나의 모순에 연관된다. 생명관리정치라는 용어가 나타난 최초의 텍스트들에서, 이 관념은 독일인들이 18세기에 ‘내치학’(Polizeiwissenchaft)이라 불렀던 것, 곧 ‘국가’의 성장 과정을 일관하는 규율 및 질서의 유지에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후의 텍스트들에서는, 생명관리정치는 정반대로, 전통적인 ‘국가’/사회의 이분법이 무너지면서 생명 일반의 정치적 체계가 부상하는 어떤 순간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이 두 번째 정식화로부터 생겨난다. 권력이 생명에 투자했다는 말을 생명이 하나의 권력이라는 말로 이해하는 한에서, 생명관리정치를 생명관리권력의 집합체로 간주해야 하는가? 우리는, 생명 자체 안에서, 곧 신체와 노동 안에서는 물론 감정과 욕망, 섹슈얼리티 안에서도, 탈예속화(désassujettissement)의 계기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주체성 생산의 장소, 대항권력(contre-pouvoir) 출현의 장소를 확정할 수 있는가? 이 경우, 생명관리정치라는 주제는 근본적으로 푸코의 마지막 분석을 특징짓는 권력과 윤리 사이의 관계에 관련되는 재형식화를 위한 것이 될 것이고, 더하여, 생명관리정치는 정치로부터 윤리로 옮겨가는 이행의 순간을 정확히 표상하게 될 것이다. 1982년 푸코가 인정했듯이, “권력관계와 자유의 자동사성(intransitivité) 사이의 관계에서 보이는 ‘반목’ 및 권력관계의 재문제화, 세련화, 분석은 부단한 정치적 과업이며, 심지어는 모든 사회적 존재에 불가분한 정치적 과업 자체이다.”(「주체와 권력」)
 
통치성 統治性 gouvernementalité
 
* 푸코는 1978년 이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사이에 일어났던 단절을 분석한다. 이 단절은 그 원리가 전통적인 도덕적 덕목들(지혜, 정의, 신에 대한 존경) 및 절도(節度)의 이상(신중, 성찰)을 다시금 취하고 있는 중세 이래의 전승된 통치 기술로부터, 그 합리성이 ‘국가’ 기능을 자신의 원리 및 적용 영역으로 삼는 통치 기술, 곧 ‘국가’의 합리적 ‘통치성’으로의 이행을 지시한다. 이 ‘국가 이성’(raison d'Etat)은 기존하는 규칙들에 대한 강제적 정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마찬가지로 어떤 정의로운 주권자 혹은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적 모델과도 무관한, 합리성의 새로운 모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 “이 ‘통치성’이라는 단어로서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말하고 합니다. 나는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인구를 주요 목표로 삼고 정치경제학을 앎의 주된 형식으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본질적인 기술적 도구로 삼는, 복합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매우 특수한 이런 권력 형식의 수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도, 절차, 분석과 반성, 계산과 전략으로 구성된 집합으로 이해합니다. 두 번째로, 나는 통치성이라는 말을, 서양 전체에 걸쳐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 주권, 규율처럼 - 다른 모든 타인들에 대한 ‘통치’라 부를 수 있을 무엇에로 이끌어가는 경향, 힘의 선(線)으로 이해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통치라는 말을 통해, 제 생각에는 아마도 그것을 통해 15, 16세기에는 행정국가가 되었던 중세의 정의 ‘국가’가 조금씩 조금씩 ‘통치화’(콜레주 드 프랑스 1977-1978년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 중 1978년 2월 1일, 제4강) 되어 갔던 과정, 혹은 차라리, 과정의 결과들을 읽어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국가’ 이성이라는 새로운 통치성은 정치적-군사적 테크놀로지 및 ‘내치’(內治, police)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정치적 테크놀로지 및 지식의 집합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두 테크놀로지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통화의 국제적 순환과 상업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상업을 통한 풍요로움에서 인구, 노동력, 생산 및 수출의 증대, 강하고 많은 군사를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합니다. 중상주의와 관방학의 시기에, 인구-부(population-richesse)의 쌍은 새로운 통치 이성의 특권적 대상이었습니다.”(콜레주 드 프랑스 78년, 사유체계의 역사, 1977-1978년 강의요지 「안전, 영토, 인구」) 이 쌍은 ‘정치경제학’ 형성의 기초 자체에 존재합니다.
 
*** 근대적 통치성은 처음으로 ‘인구’에 대한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 곧 근대적 통치성은 어떤 영토 위에 존재하는 신민들의 총체, 혹은 ‘인류’라는 일반적 범주 혹은 법적 주체의 집합이 아닌, 개인들의 삶에 대한 전반적이고 정치적인 관리에 의해 구성되는 대상(생명관리정치)으로서의 인구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명관리정치는 단순한 인구의 조절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기 자신들 및 타인들과 맺는 전략에 대한 통제를 함축한다. 통치 테크놀로지는 따라서 개인의 교육과 변형의 통치[관리]는 물론, 가족 관계 및 제도에 대한 통치에도 역시 관련된다. 푸코가 타인들에 대한 통치성의 분석을 자기 자신에 대한 통치성의 분석으로 확장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나는 타인들에 대해 수행되는 지배의 테크닉, 그리고 자기의 테크닉, 이 양자의 만남을 ‘통치성’이라고 부릅니다.”(「자기의 테크놀로지」,『자기의 테크놀로지』, 1982년 미국 버몬트대학교 세미나) [38-40]
 
 
 
 
 
 
 
 
 
1977-1978년. 안전, 영토, 인구
 
강의요지
 
이 강의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인구 개념과 그 조정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집중하는 정치적 지식의 생성이다. 이것은 ‘영토국가’로부터 ‘인구국가’로의 이행인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구국가가 영토국가를 대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역점의 이동, 새로운 목표가 등장했다는 것, 따라서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기술이 출현한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생성을 추적하기 위해서 실마리로 삼은 것이 ‘통치’ 개념이다.
 
 
1. 통치라는 개념의 역사뿐만 아니라 주어진 사회에서 ‘인간의 통치’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 절차와 수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탐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차적 접근에서 보자면,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는 정치적 권력의 행사가 ‘통치’의 권리 및 가능성을 함의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통치’란 어떤 지도자가 개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그 지도자의 권위 아래 개인들을 두는,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일생 전반에 걸쳐 그들을 인도하려는 활동을 의미한다. 폴 벤느의 지적에 의하면 목자로서의 주권자, 인간 무리의 목자로서의 왕-행정관이라는 관념은 고전기 이전 그리스의 텍스트나 제정기의 극소수 저자들의 텍스트를 빼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교육자, 의사 혹은 체육교사 등의 활동을 특징지을 때는 양들을 지키는 목자라는 은유를 수용하고 있다. 『정치가』의 분석은 이 가설을 확증해주는 듯하다.
 
사목(司牧)권력이라는 주제가 충분히 확대되는 것은 동방, 특히 히브리 사회에서이다. 이 주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로 목자의 권력은 정해진 영토에 대해서라기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대해 행사된다. 두 번째로 그의 역할은 무리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 무리를 매일 지키는 것, 무리의 구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사목권력이 개인화시키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권력은 개인화시킬 때 본질적인 역설에 의해서 무리 전체와 단 한 마리의 양에게 같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서구에 도입했고, 교회 사목에서 제도화된 형태를 취한 그와 같은 유형의 권력이다.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영혼의 통치는 만인의 구제에 있어서, 또한 각 사람의 구제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중심적이며 교묘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15세기와 16세기가 되면 사목의 전반적 위기가 시작되고 전개된다. 그것은 단지 사목적 제도의 폐기라는 형태가 아니라 보다 더 복잡한 형태로 이뤄진다. 요컨대 이제까지와는 다른 정신지도의 양상, 목자와 무리 사이의 새로운 유형의 관계, 그렇다고 꼭 이제까지보다 덜 엄격한 것은 아닌 형태의 관계가 추구된다는 것이다. 또한 아동, 가족, 영지, 공국을 ‘통치하는’ 방식에 관한 탐구도 이뤄지게 됐다. 통치라든지 자기통치의 방식, 인도나 자기인도의 방식에 대해서 행해지는 이와 같은 전반적인 물음은, 봉건제가 끝나갈 즈음에 경제, 사회적인 관계의 새로운 형식, 새로운 정치적 구조화와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2. 이어서 정치적 ‘통치성’의 형성, 다시 말해서 개인들로 이뤄진 총체의 품행이 주권적 권력의 행사 내에 점차적으로 명확하게 함의되어가는 방식을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이 중요한 변형은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쓰인 여러 가지 ‘통치술’에서도 나타난다. 이 변형은 아마도 ‘국가이성’의 출현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이전까지 통치술의 원칙은 전통적인 덕(지혜, 정의 , 자유, 신의 법이나 인간 관습의 존중)으로부터, 혹은 공통의 정교함(신중함, 신중하게 내려진 결정, 가장 뛰어난 고문을 주변에 두려는 배려)로부터 차용됐으나 이런 통치술로부터 다른 통치술, 즉 합리성이 그 고유의 원칙을 갖고 국가를 그 특수한 적용영역으로 하는 통치술로의 이행이 이뤄졌다. ‘국가이성’이란 그 이름으로 다른 모든 규칙을 전복시킬 수 있는 명령도 아니고, 다른 모든 규칙을 전복시켜야 하는 명령도 아니다. 그것은 군주가 인간들을 통치하면서 주권을 행사해야 할 때에 수반되는 새로운 합리성의 모형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의라고 하는 주권자의 덕으로부터도,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영웅의 덕으로부터도 요원한 상태에 있다.
 
국가 이성의 발달은 제국이라는 주제의 소멸과 상관관계에 있다. 마침내 로마가 소멸한다. 새로운 역사적 지각이 형성된다. 그 지각은 이미 시대의 끝이라든지, 개별적인 모든 주권국이 최후의 나날에 제국으로 통일되는 것에 집중되지는 않는다. 그 지각은 모든 국가가 각각의 삶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투쟁해야만 하는 한없는 시간으로 열리게 된다. 영토에 대해 주권자가 갖는 정당성에 관한 물음보다도 중요한 것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국력의 인식과 발전이다. 국가들 간의 경합 공간, 유럽적이기도 하면서 세계적이기도 한 이 공간은 일찍이 왕조들 간의 적대관계가 서로 대결하고 있었던 공간과는 매우 다른 곳이다. 이 [새로운] 공간에서 중요한 문제는 힘의 역학의 문제, 그도 아니라면 힘이 힘의 역학에 개입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합리적 기술의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이성을 정식화, 정당화한 이론들을 제외하면 국가이성은 정치적 지식과 테크놀로지의 두 거대한 집합체 내에서 형성된다. 하나는 외교적이며 군사적인 기술이다. 이것은 동맹체계와 군사장치의 조직을 통해 국력을 확보하고 발전시킨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지도적 원칙 가운데 하나였던 유럽의 균형은 이 정치적 테크놀로지의 결과이다. 다른 하나는 ‘내치police’에 의해 구성된다. 당시 이 단어에 부여됐던 의미에서, 그러니까 국력을 내부로부터 증강하는 데 필요한 수단의 총체라는 의미에서의 내치에 의해 말이다. 이 중대한 두 테크놀로지의 교차점에 공통의 도구로서의 통상과 국제적인 통화 순환을 놓아야 한다. 인구, 노동자, 생산, 수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강력한 다수의 군대를 갖출 수 있는 가능성이 기대되는 것은 통상에 의해 부가 증대됨에 따라서이다. 인구-부라고 하는 조합은 중상주의와 관방학의 시대에는 새로운 통치이성의 특권적 대상이었다.
 
3. 이 인구-부라는 문제의 정립이 정치경제학을 형성시킨 조건들 가운데 하나였다(이 문제의 정립은 세제, 식량난, 인구감소, 무위-결식-부랑 등의 여러 가지 구체적 측면에서 이뤄졌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자원을 증대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통제적, 강제적인 체계로 인구를 증가시키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이런 체계로는 자원-인구라는 관계를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정치경제학이 발전한 것이다. 중농주의자들은 이전 시대의 중상주의자들과 대립하는 반인구주의자가 아니다. 중농주의자들은 인구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제기한다. 중농주의자들에게 인구란 영토에 사는 신민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또한 아이를 갖고자 하는 각 사람들의 의지, 혹은 아이의 탄생을 권장하거나 권장하지 않는 입법 등이 낳은 결과의 총합도 아니다. 중농주의자들에게 인구는 그 모두가 적절하고 자연적인 것은 아닌 몇 가지 요인에 의존하는 변수이다(조세체계, 순환활동, 이윤의 배분은 인구비율의 본질적인 규정요인이다). 그러나 이런 의존[관계]는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결과, 인구는 인공적으로 변경을 가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에 ‘자연적으로’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내치’ 테크놀로지로부터 파생한 것, 또한 경제적 고찰의 탄생과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서 인구라는 정치적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인구는 법권리의 주체를 단순히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일손의 총체로 구상된 것도 아니다. 인구는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존재의 일반적 체제와 연결되어 있고(여기서 인구는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 당시에는 새로웠던 이 개념은 ‘인류’와 구별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중하게 고려된 개입(법, 혹은 어떤 ‘캠페인’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태도나 몸짓, 그도 아니라면 삶의 방식을 변경하는 것을 매개로 해서 행해지는 개입)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여러 요소의 집합으로서 분석된다.
 
세미나
 
이번 세미나에서는 독일인들이 18세기에 ‘내치학Polizeiwissenschaft’이라고 부른 것의 몇 가지 측면을 분명히 하는 것이 목표였다. 요컨대 “국력을 견고히 하고 증강하는 것에 관여하고, 국력의 선용에 힘쓰며, 신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려고 하는” 모든 것, 주로 “그들 삶의 편의를 꾀하고 생존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려는 질서, 규율의 유지와 통제”에 관한 이론과 분석인 내치학의 몇 가지 측면에 관해서 말이다.
 
나는 이 ‘내치’가 어떤 문제에 답하는 것이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내치에 할당된 역할이 훗날 경찰제도에 속하게 된 역할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국가 증강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이 내치에 기대한 효과는 어떤 것이었는지 말이다. 국가 증강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유럽 국가들 간의 적대관계와 경쟁관계 속에서 자국의 지위를 명확히 하고 향상시킨다는 목표였고,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안녕’을 통해 국내질서를 확보한다는 목표였다. 경합국가, 즉 경제적, 군사적 국가의 발전과 복지(부-평온-행복)국가의 발전. 이 두 가지 원칙이야말로 합리적 통치술로서의 ‘내치’가 조정할 수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 것이다. 당시 내치는 일종의 ‘국력의 테크놀로지’로서 구상된 셈이다.
 
이 기술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겨진 주요 대상들 가운데 인구가 있다. 중상주의자들은 인구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첫 번째 원칙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에는 누구나 국력의 본질적 부분으로 여기게 됐다. 이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건정책이 필요하다. 유아의 사망률을 저하시키고, 전염병을 예방하며, 풍토병의 발생률을 낮추고, 생활조건에 개입한 결과로 생활조건을 변경시키고 이에 규범을 부과해(식량, 주거, 도시정비 등과 관련해) 충분한 의학설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보건정책 말이다. 의학적 내치Medizinische Polizei, 공중위생, 사회의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18세기 말부터 발전했다는 것은 ‘생명관리 정치’의 일반적 틀 안에 새롭게 기입되어야 한다. 생명관리정치가 다루려고 하는 인구는 살아서 공존하는 존재의 집합이다. 이 집합은 개개의 생물학적, 병리학적 특징을 갖는 집합, 따라서 특유의 지식과 기술에 속하는 집합이다. 이런 ‘생명관리정치’ 자체는 17세기부터 발전한 국력의 관리라고 하는 주제를 출발점으로 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발표된 것은 내치학에 관한 것(파스콸레 파스퀴노), 18세기의 천연두 접종 캠페인에 관한 것(안느-마리 물랭), 1832년 파레에서의 콜레라 전염에 관한 것(프랑수아 들라포르트), 19세기의 산업재해에 관한 입법과 보험의 발달에 관한 것(프랑수아 에발드)이 있다. [485-490]
 
주요개념들
 
1. 통치
 
통치술이라는 문제계는 1975년 강의 『비정상인들』에서 처음 소묘됐다. 푸코는 나병환자의 배제라는 모델을 페스트 환자의 내포라는 모델과 대치시킨 뒤 고전주의 시대에는 다양한 수준(국가장치, 제도, 가족)에 적용 가능한 실정적 권력 테크놀로지가 발명됐다고 밝히고 있다.
 
“고전주의 시대는 이른바 ‘통치술’을 고안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동의 ‘통치’, 광인의 ‘통치’, 빈민의 ‘통치’, 그리고 곧 노동자의 ‘통치’로 이해되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통치술’이 고안됐죠.”
 
푸코가 명시한 바에 따르면 ‘통치’는 세 가지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로는 전이에 기초한 권력의 새로운 사고방식, 개인들이 지닌 의지의 소외 혹은 표상이다. 두 번째로는 18세기에 설치되는 국가장치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표상에 관한 법적이고 정치적인 구조의 이면, 이 장치들의 기능의 조건”을 이루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통치기술”이다. 그리고 이 기술의 “전형을 이루는 장치”는 전년도[1974년]에 묘사된 규율의 조직이었다.
 
『비정상인들』에서 이뤄진 ‘통치’분석은 규율에 그친 것이 아니라 회개의 의례를 둘러싸고 교회에 의해 주조된 영혼의 통치기술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신체의 규율과 영혼의 통치는 동일한 정상화 과정의 상보적 양면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가 신체에 대해서 행사해야 할 권력에 관한 기술상의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고 있던 때….. 교회는 그 옆에서 사목제도라고 하는 영혼의 통치기술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이 사목제도는 트렌토 공의회에서 정의됐고, 이어서는 카를로 보로메오가 이를 취해 발전시켰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이 통치술과 사목제도라는 이 두 가닥의 실인데, 그래도 몇몇 의미심장한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연대기적 범위가 매우 확장된다는 것이다. 사목제도는 이제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서 16세기에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초기 수세기에 걸쳐 이미 구성된 것으로 간주된다. 영혼의 통치는 교부들에 의해서 ‘기술 중의 기술,’ 혹은 ‘지식 중의 지식’으로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즉 푸코는 트렌토 공의회가 정한 사목제도를 그리스도교의 사목의 오랜 지속 내에 새롭게 기입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행해진 것은 통치술의 중심을 국가의 기능 자체를 위해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었다.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통치는 이제 권력이 개인들에게 스스로를 접속하기 위한 기술들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정치적 주권의 행사 자체를 지시한다. 이 새로운 ‘관점’이 어떤 방법론상의 목적에 대응하고 있었는지는 이미 살펴본 바이다. 이어서 볼 수 있는 것은 권력의 실제적 메커니즘 분석으로부터 ‘통치의 자기의식’으로의 이동이다. 그렇지만 이런 제스쳐는 이전 연구에서 이뤄진 ‘미시물리적’ 시도와 단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의 서두에서 푸코 자신이 설명하듯이,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실천을 연구하는 것보다도 거기에 내재하는 프로그램적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어서 그런 연구에 입각해 거기서 유래하는 ‘객관화의 절차’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통치성은 전략적이고 프로그램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쉽게 작동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분석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조직의 효과들이 아니라, 객관화나 진리화의 효과들이다. 그것도 인간과학들에 있어서 말이다. -> 광기ㆍ형벌. 그것 자체에 대해서, 또한 그것이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 -> 통치성(국가/시민사회).
 
 
통치성이라는 유형의 실천에 물음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인간들을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이고, 인간들 자신에 관해서 객관화, 진리화의 효과들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통치성
 
 
1) ‘통치성’의 개념은 『안전, 영토, 인구』의 4강에서 처음 정식화됐다. 원래 이것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명확한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점차 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4강에서 이 개념은 18세기에 정비된 권력의 체제, 즉 인구를 핵심 표적으로 삼고, 정치경제학을 앎의 주요 형식으로 삼고, 안전장치를 기본적인 기술적 도구로 삼는 권력의 체제, 그리고 ‘통치’라고 부를 수 있는 권력 유형을 주권이나 규율 등 다른 모든 권력 유형보다 끊임없이 우월한 상태로 이끌어간 과정을 명명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이 개념은 서구의 역사에 특수한 생성, 분절화를 갖는 요소들로 이뤄진 총체를 지시하고 있다.
 
‘통치성’은 역사적이며 특이한 차원으로 인해 사건이라는 특징을 갖는데, 더 나아가 적용영역의 한계가 부가된다. 통치성도 모든 권력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다. 통치성이 정의하는 것은, 근대 국가의 형성을 하부에서 지탱하는 통치기술이다. 사실 국가에서 통치성이란 이런 것이다.
 
“정신의학에서의 격리기술, 형벌체계에서의 규율기술, 의학제도에서의 생명관리정치[와 같은 것이다].”
 
요컨대 ‘통치성’은 이 단계의 푸코의 고찰에서는 국가에 관한 문제와 연관시켜 권력관계의 특수한 영역을 절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두 가지 특징(사건적이며 지역적인 것)은 이듬해 이후의 강의에서 점차로 사라져간다. 1979년에 이 용어는 이미 특정한 권력체제(내치국가이건 자유주의적인 최소의 통치이건)를 구성하는 통치적 실천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품행을 인도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 있다. 그에 의해 이 단어는 “ 권력관계 일반에 대한 분석 격자”로서 사용된다. 이 격자는 역시 국가에 관한 문제 안에서 작동하고 있긴 하지만 이듬해가 되면 이 격자는 그 틀을 벗어나 ‘통치’가 갖는 의미와 동일한 외연을 갖게 된다.
 
“이 개념은 인간들의 품행을 이끌어야 할, 정해진 기술이나 절차라고 하는 넓은 의미에서 이해된다 …… 아동의 통치, 영혼이나 양심의 통치, 집, 국가, 자기 자신의 통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통치성’과 ‘통치’가 혼동되는 듯하다. 그러나 푸코는 이 두 개념을 구별하려고 애썼다. 그것에 의하면 ‘통치성’은 “권력관계가 갖는 유동성, 변형·역전의 가능성 내에서 권력관계의 전략적 장”을 가리킨다. 여기서 확정되는 것이 품행의 유형 혹은 ‘품행의 품행’이며, 이것이 ‘통치를 특징짓는다고 여겨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왜냐하면 전략적 영역이란 여러 가지 권력관계가 서로에게 행하는 작동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이 전략적 영역은 양자가 어떻게 서로를 함의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소위 통치성은 어떤 종류의 구조, 즉 “몇 가지 변수 …… 간의 관계적 정수”가 아닌 “특이한 일반성”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며, 그 변수는 우연의 상호작용 내에서 여러 상황에 대응한다.
 
요컨대 통치성이란 고려된 분석 수준이 어떤 것이건(부모/자식, 개인/공적인 힘, 인구/의학 등의 관계) 간에 미시권력에 내재하는 합리성을 일컫는다. 통치성은 ‘일종의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일지라도 통치성은 더 이상 『안전, 영토, 인구』에서처럼 역사적으로 규정된 일련의 흐름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권력관계가 전략적 분석을 부추긴다는 그런 의미에서만 일종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일반성. 그 현실태는 오로지 사건적événementielle일 뿐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전략적 논리를 활용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푸코의 사유에서 다음과 같은 유형의 사건성을 연결시켜주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서구 사회 고유의 특정한 역사적 과정에 기입되어 있는 사건성, ‘통치’라는 면에서 권력에 대한 일반적 정의의 이론적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건성.
 
2) 푸코에게 통치성의 유형을 분석하는 것은 그 유형에 맞서는 저항(혹은 ‘대항품행’)의 형태를 분석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안전, 영토, 인구』의 8강(1978년 3월 1일)에서 푸코는 사목에 대해서 중세에 발달한 대항품행의 주요 형식의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수덕주의, 공동체, 신비주의, 성서, 종말론적 신앙). 또한 푸코는 그 해의 강의 마지막에 국가이성의 원칙을 향해서 정리되고 있는 근대적 통치성의 분석으로부터 시민사회·인구·국민의 이름 아래에서 이뤄지는 특수한 대항품행의 중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 대행품행들은 각각의 시대에서 ‘통치성의 위기’의 징후로 여겨지고 있다. 거기서 투쟁이나 저항의 새로운 양상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위기에서 대항품행이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는지를 자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푸코에 의해서 제안되고 있는 자유주의의 독해는 이 문제를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푸코가 통치성을 ‘특이한 일반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강의원고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거기에는 푸코에게 정치가 얼마나 권력에 대한 저항의 형식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구상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참고로 푸코가 칼 슈미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는 한 이 텍스트뿐이다.
 
“특이한 일반성으로서의 통치성을 분석한다는 것은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tout est politique라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표현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 정치적인 것은 국가개입의 권력 전체에 의해 정의된다. ……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느 곳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정치적인 것은 서로 대적하는 두 사람 사이의 투쟁이 편재하고 있다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 이쪽은 [칼] 슈미트의 정의이다.
 
 
동지[동료/아군]의 이론. […]
 
요컨대 두 가지 정식화가 있다. 사물의 분석 때문에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대적자의 존재 때문에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정치화가 가능하다. 모든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즉 최초의 봉기 혹은 최초의 대립과 함께 탄생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523-531]
 
 
 
 
 


 

 
1978-1979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다른 한 측면에 대해 논의한 다음 올해의 강의를 끝내고자 합니다. 물론 그 다른 측면이란 시민사회라는 이 관념을 통해, 제가 이미 작년에 말씀드리려 했던 통치이성의 재분배 혹은 통치이성의 일종의 재중심화와 탈중심화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다시 한 번 일반적 문제를 다뤄보죠. 16세기 이래로, 게다가 중세에 이미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된 것 같습니다. 통치하는 자의 권력 행사를 어떻게 규칙화하고 측정할 수 있을까?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혹은 이따금씩 밖에는 벗어날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실천으로서의 권력 행사, 법학자와 역사학자에게 일련의 물음을 제기하는 특이한 절차이자 개별적 내지 집단적 행위인 권력 행사, 이런 것으로서의 통치자의 권력 행사를 어떻게 규칙화하고 측정해야 좋을까? 매우 일반적이며 포괄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오랫동안 권력의 무제한적 행사를 규칙화하고 측정함으로써 제한한다는 생각을, 우리는 통치하는 자의 현명함 쪽에서 찾아왔습니다. 현명함, 이것은 고릿적부터의 답이었습니다. 현명하다는 것은 사물의 질서에 따라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신의 법을 인식해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이 명한 것에 따라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에 관련된 사물의 일반적 질서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바에 따라 통치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주권자는 어떤 점에서 현명해야 하는지, 주권자의 현명함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알고자 해서 시도된 것은, 결국 통치를 진리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적 텍스트의 진리, 계시의 진리, 세계질서의 진리. 이것이 권력의 행사를 규제하기 위한 원리, 아니 오히려 규칙화하기 위한 원리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작년에 제가 보여드리려 했듯이, 이에 비해 16~17세기 이래로는 권력의 행사가 현명함이 아니라 계산에 따라 규칙화된다고 여겨졌습니다. 힘의 계산, 관계의 계산, 부의 계산, 지배력이라는 요소들의 계산에 따라 권력의 행사가 규칙화된다는 것, 즉 이제 진리가 아니라 합리성에 기초해 통치를 규칙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치를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 이것이 통치테크놀로지의 근대적 형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합리성에 기초하는 규칙화는, 여기서도 저는 크게 도식화하고 있지만, 순서대로 두 형태를 취했습니다. 우선 권력을 규칙화하기 위한 그런 합리성에서 주권적 개인성으로서의 국가의 합리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컨대 이때 통치합리성은 국가이성의 시대에 주권자 자신의 합리성,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의 합리성입니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일련의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우선 이 ‘나’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통치합리성을 자신의 지배력을 최대화하려 하는 자신의 주권자적 합리성에 준거시키는 것으로서의 이 ‘나’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계약에 관한 법적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사실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요컨대 시장에서, 혹은 더 일반적으로 경제절차에서 합리성은 통일적 형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적 형식과 굽어보는 시선을 모두 절대적으로 배제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시될 경우 ‘나’라고 칭하는 주권자의 합리성은 어떻게 행사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부터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통치를 규칙화하기 위한 새로운 합리성의 형태로의 이행이 이뤄집니다. 이제 문제는 통치를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주권자적 개인의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받는 자들의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입니다. 경제 주체로서 통치되고 있는 자들, 더 일반적으로는 이해관계라는 말이 갖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관계의 주체로서 통치되고 있는 자들의 합리성에 기초해 통치를 규칙화하는 것, 이해관계라는 말이 갖는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기 위해 몇몇 수단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사용하는 자인 그런 개인들의 합리성[에 기초해] 통치를 규칙화하는 것, 즉 피통치자들의 합리성이 곧 통치합리성에서 규칙화의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합리성의 특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통치받고 있는 사람들의 합리적 행동양식에 기초해 통치 내지는 통치술을 규칙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통치술의 합리화 원리를 그 위에 [기초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의 문제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 제가 자리매김하려던 분기 지점, 중요한 변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개인-국가 내지 주권자-개인의 합리성이 사장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요컨대 모든 국민주의적 정치, 모든 국가주의적 정치는 그 합리성의 원리가 주권적 개인의 합리성과 연동되어 있고, 또 주권적 개인성을 구성하고 있는 한에서의 국가의 합리성과 연동되어 있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그것들은 주권적 개인이나 주권적 국가의 이해관계 및 그 이해관계의 전략과 연동된 정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실에 기초해 규칙화된 통치도 역시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맑스주의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합리성에 기초한 일정 유형의 통치성에 관한 탐구, 하지만 개인적 이해관계의 합리성으로서보다는 오히려 진리로서 조금씩 표명되는 역사의 합리성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하게 되는 합리성에 기초한 일정 유형의 통치성에 관한 탐구가 아니라면 맑스주의가 달리 무엇이겠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근대 세계, 우리가 19세기 이래로 알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일련의 통치합리성들이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서로를 지지하기도 하며, 서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서로 각축을 벌이기도 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실에 기초한 통치술, 주권국가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경제 주체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더 일반적으로는 피통치자 자신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등. 이처럼 상이한 모든 통치술들, 통치술을 계산하고 합리화하며 규칙화하는 상이한 유형의 모든 방식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19세기 이래로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구성되어온 것입니다. 결국 정치란 무엇일까요? 상이한 통치술들의 상이한 연동을 수반하는 작용인 동시에 그런 상이한 통치술들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이 아니라면 정치가 달리 무엇이겠느냐는 말입니다. 정치는 바로 여기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31-433]
 
 
 

2013. 11. 5.

미셸 푸코의 생명 정치


 
1. 푸코와 권력의 문제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대략 1970년을 전후로 이전의 이른바 자신의 ‘구조주의적’ 혹은 광의의 언어학적 시기를 마감하고, 니체적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권력의 시기’로 접어든다. 물론 푸코 스스로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 이전 시기의 푸코가 과연 구조주의자였는가의 여부는 이 자리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여하튼 푸코는 1970년을 전후로 변화 혹은 변혁의 이유와 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공시적인 혹은 이른바 ‘정태적인’ 구조주의적 함축을 지양하고, 권력의 문제에 집중한다. 푸코의 권력에 대한 이러한 천착은 대략 1970년 말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되는 이후의 이른바 ‘주체 혹은 윤리의 시기’가 시작되는 1980년의 인터뷰에서조차 스스로 “근본적으로 나는 오직 권력의 역사만을 다루었을 뿐입니다.”라는 발언을 가능케 할 만큼 푸코 사유의 근본적 지향점들 중 하나였다. 푸코는 1976년 언어학으로부터 권력에로의 이러한 전환을 ‘의미 관계들이 아니라, 권력 관계들’(Relations de pouvoir, non relations de sens)이라는 말로써 정리한 바 있다. 물론 이 권력의 시기를 대표하는 동시에 그의 대표적인 주저로 보아야만 할 1975년의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Surveiller et punir. La naissance de la prison)이 바로 그러한 것처럼, 권력의 문제는 푸코의 사상 중 가장 독창적인 동시에 논쟁적인 주제임에 틀림없다. 이 시기 푸코 권력관은 단적으로 1970년대 초 이래 푸코가 사용하기 시작하는 권력-지식(le pouvoir-savoir) 및 그 기초로서의 권력 관계들(les relations de pouvoir)이라는 용어로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속하는 푸코의 이른바 생명정치(le bio-pouvoir) 개념은 바로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다.
 
2. 전통적 권력관(觀) 비판


푸코는『감시와 처벌』을 통해 권력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다. 이 때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기존’ 관념들이란 단적으로 플라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정치사상이라는 세 가지 권력관을 일컫는다. 우선 플라톤주의는 진리와 권력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본다. 곧 권력은 본성적으로 권력이 진리를 굴복시키려하는 억압적 측면을 가지고 있고, 진리는 그것에 굴종, 중립, 거부 혹은 초연하는 등의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의 ‘해답’은 진리를 이해하는 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쥐어야만 한다는 이른바 철인정치론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단적으로 지배계급이 어떻게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리에 복종할 수 있는가를 다룬 이론이다. 다음으로 근대의 자유주의적 권력관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기초적 배경 위에 상행위 및 시민적 자유를 첨가한다. 물론 이에는 사목적 권력(le pouvoir pastoral) 및 공안(公安, la police)의 개념을 포함한 다양한 근대의 통치 기술들이 포함된다. 이에 더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늦었지만 당시 1970년대의 유럽, 좁게는 프랑스 사회 안에 사는 푸코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권력관은 물론 사회주의의 권력관이다. 사회주의적 권력관 역시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위험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관계로 본다. 곧 사회주의의 권력관은 단적으로 그것이 표방하는 ‘진리-이데올로기’ 사이 대립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진리는 과학성을 담보한 세계에 대한 올바른 반영으로서의 인식이며, 그것이 계급적 이해관계 곧 허위의식에 의해 가려진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물론 푸코는 이러한 세 가지 기존 관념들을 모두 논파하고자 하지만, 우선 스스로 이 모든 것의 중핵에 위치한다고 보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공격한다. 1973년 푸코는 브라질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일련의 논문들을 모은 「진리와 사법적 형식들」(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을 통해 플라톤주의의 진리-권력관을 비판하며 자신의 권력-지식론의 단초를 내비친다. “[플라톤 이래] 서양은 진리가 결코 정치적 권력에 속하지 않으며, 정치적 권력은 눈먼 것이라는 거대한 신화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 플라톤과 함께 서양의 거대한 신화 하나가 시작되는데, 지식과 권력 사이에는 이율배반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을 포기해야만 한다. 지식과 학문이 자신의 순수한 진리를 찾는 곳에는 더 이상 정치적 권력이 존재할 수 없다. / 이 거대한 신화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모든 지식, 모든 인식의 뒤에서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권력 투쟁이라는 점을 보임으로써 니체가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신화이다. 정치적 권력은 지식의 결여가 아니며, 지식과 함께 짜여 지는 것이다.”
 
이제 푸코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두 가지 근대적 권력관으로서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권력관을 고찰한다. 한편 푸코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이렇게 권력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것은 ‘우리의’ 현실이자 과거인 파시즘스탈린주의의 존재이다. 푸코는 이들을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 혹은 두 가지 병리학적 형태라 부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이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주된 철학적 자원들 중 하나로부터 기원하는 ‘우리 정치적 합리성’의 관념 및 절차를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 “칸트 이래로, 철학의 역할은 이성으로 하여금 경험 내에 주어진 것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시대 이후, 즉 근대 국가 및 사회의 정치적 관리의 발전 이후, 철학은 또한 정치적 합리성의 과잉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이 ‘질병들’ 아래에 놓여있는 것은 합리성 혹은 정치적 합리성 자체의 문제이다. 이 ‘질병들’은 칸트 이래의 국가 이론 내에 존재하는 근대적 정치적 합리성에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고유하게 근대적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확립되어야 할 것은 근대 정치적 합리성의 기제를 분석할 수 있는 권력 관계의 새로운 경제이다. 오늘날 권력은 다름 아닌 합리성 곧 진리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질병들’에 관련된 오늘날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다름 아닌 적절한 분석 도구의 결여이다. 권력에 고유한 관계 양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분석의 도구를 발견하기 위한 첫 작업으로서 푸코는 기존의 권력 개념들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아래에서 나는 푸코의 이러한 탐구를 사법적 유형, 선험적 주체의 유형, 이데올로기적 유형, 경제적 유형 및 총체성의 유형이라는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푸코는 기존의 플라톤주의ㆍ자유주의ㆍ사회주의의 권력관 일반을 관통하는 지점들을 포착ㆍ비판한다.
 
1) 첫째, 권력에 대한 사법적(juridique ou juriste) 관념이 있다. 이러한 관념은 권력을 순수히 그리고 배타적으로 부정적이며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사법적 권력은 “권력의 시니피에, 중심점, 권력을 구성시키는 핵심을 여전히 금지, 법률, 안 된다고 말한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한 번 “너는 해서는 안 된다”(tu ne dois pas)는 형식, 공식에 둔다.” 권력 심급의 이러한 금지 법률에로의, 혹은 “주인 형상”에로의 환원은 다시 세 가지 주요한 역할을 갖는다. 이 환원은 권력이 가족, 국가 및 교육·생산 관계 등 우리가 위치해 있는 몇몇 수준들에 동질적이라는 권력 도식을 유효한 것으로 만든다. 그 결과로 권력은 순수히 배타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서 인식된다. 억압, 거부, 한정, 장벽, 검열, 금지. 간단히 말해, 이러한 환원 안에서 권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법에로의 환원”은 “권력의 근본적 작용을 법의 언표, 금지의 담론 등과 같은 하나의 발화 행위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권력의 행사는 ‘너는 해서는 안 된다’는 순수한 형식을 꿈꾼다.” 권력의 사법적 관념은 권력의 순수히 부정적 관념인 억압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에 대한 억압적 관념은 권력의 긍정적 측면을 포착하게에는 전적으로 부족하며 불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억압을 그 기능으로 하는 하나의 부정적 심급”으로서보다는 “모든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생산적 그물망”처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틀을 찾아내야만 한다.
 
더욱이 권력의 사법적 관념 안에는 항상 군주(souverain)와 신민(sujet)이라는 두 개의 주체가 존재한다. 사법적 권력 모델의 본질적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권력을 합법화 시켜주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사법적 관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라는 수단을 통한 권력의 합법화ㆍ정당화ㆍ합리화의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의 형식은 하나의 권력 표상 체계이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권력을 금지의 심급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는 일종의 이중적 주체화를 행하게 된다. “그것이 수행되는 측면에서, 권력은 마치 아버지, 군주, 일반의지의 절대권(souveraineté)처럼 금지를 말하는 일종의 - 현실적, 상상적 혹은 여하튼 순수하게 사법적인 - 절대적 주체로서 이해된다. 권력에 복종하는 측면에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금지의 승인이 이루어지는 지점, 우리가 권력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라 말하는 지점을 결정함으로써 권력을 ‘주체화’(subjectiviser)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절대권의 수행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자연법의 포기, 혹은 사회 계약, 혹은 주인의 사랑을 전제하는 것이다.” 사법적 권력 개념에서 관계의 두 당사자인 군주와 신민은 각기 하나의 선험적 주체 혹은 실체로서 이해되어 있다. 이를 푸코는 다음처럼 요약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권, 즉 법, 금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은 정치 철학입니다. 왕의 머리를 잘라야 하며, 우리는 아직 정치학 이론에서 이 일을 수행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푸코에 따르면, 부르주아의 흥기 이후, “서양은 사법적 체계, 법적 형식이외의 어떤 권력 분석·형성·표상의 체계도 갖지 못했다.” 한편 부르주아지야말로 근대의 대표적 계급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사법적 형식은 근대에 고유한 권력 형식이자, 이 시기의 대표적 권력 형식이다.
 
2) 이러한 사법적 권력 개념으로부터 권력에 대한 두 번째 전통적 형식이 탄생한다. 이는 선험적 주체의 관념에 기반한 권력 형식이다. 이는 고전 철학의 전통적 주체 개념을 전제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의해 대표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이론들에서 우리는, 주체의 요청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형식의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다. 푸코는 실체로서의 주체로서 간주되는 개인을 전제하는 이런 선험적 주체의 아 프리오리한 이론을 거부한다. 그런데 이 개인은, 그것에 대해 권력이 행사되고 달려드는 어떤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특성, 정체성, 자기에로 향하는 주형작업과 함께 신체, 복수성, 운동, 욕망, 힘들 위로 행사되는 권력 관계의 생산물”이다. 푸코에게 있어서의 주체는 단지 복수적이며 복합적인 권력 관계들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효과, 생산물에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 권력에 유용한 혹은 저항하는 하나의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인식 주체의 행위가 아니다. 주체는 하나의 목표에 관련되어 스스로를 구성한다. 더욱이 주체-지식-대상(sujet-connaissance-objet)의 삼중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용은 본질적으로 상호적 과정이다. “인식하는 주체, 인식되어야 할 대상 및 인식의 양태들 역시 권력-지식 및 그것의 역사적 변형이라는 이 근본적 함축의 효과들이다.” 우리는 따라서 자유롭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하나의 주체로부터 권력을 분석할 수 없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는 인식 및 주체의 우위라는 관념에 기초한 권력의 옛 개념을 포기해야만 한다.


3) 권력에 대한 세 번째 전통적 견해는 이른바 진리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립에 기초해 있다. 물론 이러한 관념은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주장들 중 하나이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푸코는 마르크스주의가 반성되지 않은 근대적 곧 19세기적 국가 철학의 관념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은, “순진하게도”, “고전 철학을 모델로 삼고 있으며 권력이 탈취하고자 하는 의식을 부여받은” 하나의 인간 주체를 전제하고 있다. 1976년의 한 대담에서 푸코는 이데올로기 개념과 관련된 난점들을 다음처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나에게 이데올로기라는 관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사용하기 곤란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관념이 이른바 진리라는 어떤 것과의 잠재적인 대립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제 생각에 문제는 하나의 담론 안에서 과학성, 진리에 속하는 것과 다른 것 사이의 구분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떻게 그 자체로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하나의 담론 내부에서 진리 효과가 생산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적절치 못한 점은 그것이 내 생각에는 필연적으로 주체와 같은 무엇인가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물질적 결정요소 혹은 하부구조로서 기능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말미암아, 이른바 진리-이데올로기의 대립 쌍은 푸코에 의해 ‘현재의’ 정치 현상을 분석하기에 무능력한 것, 부적절한 것으로 판정된다. 진정한 정치적 질문의 대상은 이데올로기, 소외된 의식, 환상, 오류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합리성진리 그 자체이다. 이렇게 해서, 지식인에 있어서의 정치적 문제는 더 이상 “과학에 연관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진리의 정치학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알아내는” 것이며, “진리 생산의 제도적, 경제적, 정치적 체제를 분석하는” 것이다.
 
4) 권력에 대한 네 번째 전통적 관념은 경제주의(l'économisme)이다. 1976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푸코는 “정치적 권력의 사법적자유주의적 개념, 즉 18세기 사상가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개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개념 혹은 여하튼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이라 할 만한 현재의 일정한 개념 사이의 일정한 공통점”에 대해 언급한다. 경제주의는 자유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권력 개념의 공통요소이다. 18세기 혹은 보다 정확히는 계몽에 대한 언급을 통해 푸코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가 모두 근대 계몽주의 경제사상의 아들들임을 명확히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주의는 근대 권력 이론의 대표적 양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제주의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우선 자유주의적 경제주의는 근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사법적이며 계약론적인(contractuelle)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경제주의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소유물, 재산으로 간주된다. “권력에 대한 고전주의의 사법적 개념에서 권력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권리, 소유 가능한 하나의 재산, 그리하여 우리가 계약 혹은 양도 명령에 해당하는 어떤 사법적 행위 혹은 입법 행위에 의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이전되거나 박탈당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간주된다. 권력은 구체적인 것, 모든 개인이 하나의 정치적 주권을 구성하기 위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보유하거나 양도할 수 있는 무엇이다. 따라서 이 모든 이론 전체에 걸쳐 드러나고 통용되는 권력과 재산, 권력과 (富)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유비가 있다.” 하나의 소유하거나 박탈당할 수 있는 권리 혹은 재산으로서의 권력. 경제주의는 본질적으로 계약 및 교환의 질서라는 사법적 작동의 모델 위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정치권력은 근본적으로 교환 및 재산·재화 순환의 경제학 안에서 자신의 전범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으로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주의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주의는 푸코가 권력의 경제적 기능 작용이라 부르는 것 안에 속하는데, 이는 “생산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생산력 전유의 발전 및 고유한 양식을 가능케 하는 계급 지배를 연장시키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개념이다. 정치권력은 경제 안에서 자신의 구체적 형식 및 현재적 기능의 원칙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존재이유를 발견한다. 간단히 말해, 마르크스주의에는 상부구조로서 간주되는 정치권력에 대한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의 우위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권력 개념 양자에는 공히 일종의 경제주의 혹은 경제적 환원주의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막론하고, 이 경제적 환원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의 다음의 것이다. “권력 분석은,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경제로부터 추론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푸코의 대답은 물론 부정적이다. 푸코는 경제주의와 연관된 제 문제점을 일련의 질문들로 요약한다. “첫째, 권력은 경제에 비해 언제나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가? 권력은 본질적으로 그 목적과 존재 이유에 있어 경제에 봉사해야 하는가? 권력은 경제를 움직이게 하고 이 경제에 특징적이며 그 기능에 본질적인 관계들을 견고하게 만들고 유지시키며 연장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가? 두 번째 질문 : 권력은 상품의 모델을 따라 형성되어야 하는가? 권력은 소유되고 획득되며 계약 혹은 힘에 의해 양도되고 포기되며 회수되고 순환되며, 어떤 지역에는 공급되고 또 어떤 곳에는 회피되어야 하는 어떤 것인가? 혹은 비록 권력 관계들이 경제적 관계들 안에서 혹은 그러한 관계들과 함께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해도, 또 비록 사실상 권력 관계들이 언제나 경제 관계들과 함께 일종의 결합 혹은 고리를 구성한다 해도, 이 경우, 경제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분리 불가능성은, 기능적인 종속의 질서 혹은 형식적 동형성의 질서가 아니라, 정확히 서로 분리되어야만 할 또 다른 하나의 질서가 아닐까?”
 
요약하면, 권력의 ‘권력 아닌 것’, 즉 이 경우에는 ‘경제’로부터의 자율성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 이는 결국 권력의 비(非) 경제중심주의적 분석의 가능성을 묻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새로운 관념을 수립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푸코에게 있어 니체에 의해 처음으로 설정되었던 새로운 권력 개념에 기초한 새로운 권력 분석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론 안에서 권력의 형성 구성, 기능, 이른바 권력의 ‘본성’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설정될 것이다.
 
5) 권력에 대한 다섯 번째 전통적 관념은 권력에 대한 총체성(la totalité) 혹은 총체화(la totalisation)의 관념이다. 권력에 대한 이러한 유형의 고찰은 언제나 전체주의적 이론에 고유한 억제 효과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된다. 즉 이러한 이론들에서 권력은 언제나 포괄하며 포섭하는 것으로서 바라본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 및 마르크스주의는 집중화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집중화되어 있는 이론들이다. 스스로를 권력 이론의 전위로서 선언하는 이러한 총체성의 담론들은 언제나 한편으로는 모든 권력 관계에 선행하며 하나의 주어진 실체로서 이해되는 아 프리오리한 주체 혹은 개인을, 또 한편으로는 억압을 그 본질로 하는 또 하나의 절대적 실체로서의 국가 기구(appareil d'Etat)를 전제한다. 이렇게 해서 총체성의 담론은 자신의 분석을 사실상 권력의 거시적(macro) 즉 국가적 차원에로 한정한다. 이를 푸코는 정치 분석에 있어서의 국가 기구의 우위라 부르는데, 이러한 우위 혹은 한정의 결과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사법적 상부구조로서 이해되는 권력의 보존과 재생산이다. 따라서 이러한 총체화 담론은 권력의 미시적 수준, 즉 “일련의 점점 더 미묘해지는 미시적 권력들”로서의 미시 권력(le micro-pouvoir) 혹은 하부 권력(le sous-pouvoir)을 구분해 낼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푸코가, 들뢰즈의 표현처럼, “우리가 ‘미시적’이라는 말을 가시적인 혹은 언표 가능한 힘들의 단순한 미니어처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영역, 하나의 새로운 관계 유형, 지식에로 환원할 수 없는 사유의 차원”, 즉 “항상 움직이고 있으며 고정시킬 수 없는 관계들”로서 이해한다는 조건 하에, 권력이 하나의 미시물리학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이 권력의 미시물리학(la microphysique du pouvoir) 안에 “부차적인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분석은 권력의 국지적(locale)이고 지역적(régionale)이며 특수한(spécifique) 분석 위에 새로이 기초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권력에 대한 푸코의 이러한 미시 분석이 그것의 거시적 차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권력의 거시적 측면을 미시 권력의 ‘보다 가시적이지만, 사실상은 더 부차적인’ 하나의 파생적 측면으로서 바라본다. “국가는 그것의 사법적, 군사적 및 여타의 거대 기구들과 함께 오직 주된 길과는 다른 운하를 통과하는 권력의 모든 그물망에 대한 뼈대, 보증을 표상할 뿐이다. [...] [국가는] 물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적 단위는 근본적으로는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이 지역적이고 특수한 권력들에 대해 부차적”이다. 간단히 말해, 푸코는 “국가가 전혀 다른 차원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구성하는 무수한 톱니바퀴 및 초점들에 의해 생겨나는 어떤 다수성의 결과 혹은 하나의 전체적 효과처럼” 보이게 되는 새로운 그림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마치 물리학 이론에서 상대성 이론이 전통적인 뉴턴 물리학의 모든 측면을 하나의 특수한 경우로서 포괄하는 것처럼, 미시 권력 역시 거시 권력의 모든 측면들을 자신의 특수한 하나의 경우로서 포괄한다. 우리는 이를 거시 권력에 대한 미시 권력의 우위라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이 미시 권력의 관점을 권력 관계들에 기초한 권력-지식이라는 새로운 권력의 작용 체계에 대한 정합적이고도 완전한 설명을 1975년의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다.
 
3. 권력 관계들, 권력-지식
 
푸코의 주된 철학적 기획들 중 하나는 주체·대상·인식·신체·영혼·지식·국가 등 전통적으로 실체(substance)로서 간주되었던 일련의 사물 혹은 현상들을 문제화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과 관련하여 이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전통적인’ 실체로서의 권력 개념이다. 권력은 역사적으로 생성되고 구성된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권력 분석 작업에로 귀결된다. 실체가 아닌 이 새로운 권력은 고립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요소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국지적·지역적·관계적이고, 유일성이 아닌 다수성ㆍ복수성을 그 성질로 가지며, 동질적이지 않고 이질적이다. 푸코는 이러한 비실체적이며 언제나 다수적·복수적인 권력을 권력 관계들(les relations ou rapports de pouvoir) 혹은 힘 관계들(les rapports de forces)이라 부른다. 아래에서는 이 권력 관계(들)의 몇 가지 특징들을 알아보자.
 
1) 우선, 권력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며, 차라리 하나의 관계 혹은 일련의 관계들이다. 푸코는 자신의 새로운 권력론의 철학적 기초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권력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대문자로 시작되는 이른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권력, “그것은 행사되는 것이며, [...] 오직 행위 안에서만 존재한다.” 권력 혹은 권력 관계는 “다른 것들에 대해 직접적 혹은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작용하는 하나의 행동 양식”(un mode d'action qui n'agit pas directement et immédiatement sur les autres, mais qui agit sur leur action propre) 혹은 “행동에 대한, 실제적 또는 현실적인, 미래의, 현재의 행동들에 대한 하나의 행동”(une action sur l'action, sur des actions éventuelles, ou actuelles, futures ou présentes)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2) 따라서 권력은 단수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다수·복수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주어진 특정 시간, 특정 공간 내에 존재하는 각각의 권력은 자신만의 특수한 규칙들을 갖는다. 간단히 말해, “어떻게 그것[권력]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탄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가 상이한 권력들이 이루어내는 하나의 군도(群島)인 한, “권력에 대해 말하고자” 그리고 “그것들[권력들]을 각자의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 안에서 국지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3) 권력의 이러한 복수적ㆍ다수적인 동시에 특수하고 지역적인 특성은 권력의 이질성( l'hétérogénéité)이라는 권력 관계의 또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전통적 권력 개념 안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동질적인 어떤 것, 즉 거시권력으로서의 국가적인 것, 국가에 귀속되는 것으로서 이해되었다. 권력 관계 안에는 다만 다양한 수준의, 혹은 무한한 수의, 이질적이고 상이한 미시권력들, 작은 권력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권력 관계들은 서로서로에 대해 이질적이다. 따라서,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심급과 같은, 어떤 유일한 최종적 심급에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이질적 장들의 집합이 존재한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감옥, 광기, 안전, 보건, 위생, 성, 의학, 인구 등의 생명 정치적 테크놀로지들은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그러한 것들의 존재 혹은 중요성이 마르크스주의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이 푸코 이론이 오늘날 그토록 ‘각광받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권력에 대한 하향적이 아닌 상향적 분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들뢰즈가 권력이란 “오직 자기 회랑의 망, 다수의 자기 땅굴만을 알아보는 두더지”이며, 이 두더지는 ”무수한 지점으로부터 움직이면서”, “밑으로부터 온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4) 권력 관계들은 소유물이 아니라 효과이다. “이 권력은 소유된다기보다는 행사되는(s'exerce) 것이라는 것, 그것이 지배 계급에 의해 획득 혹은 보존되는 ‘특권’이 아니라, 그 전략적 위치들의 집합이 갖는 효과(l'effet d'ensemble de ses positions stratégiques), 지배받는 자들의 위치에 의해 드러나며 때로 동반되는 효과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통적 의미의 ‘권력’이 사실은 언제나 권력-지식의 효과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효과로서의 권력은 전통적 개념 안에서 권력의 행위자 혹은 후견인 또는 보증인의 역할을 수행했던 실체적 혹은 선험적 주체, 혹은 개인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가 및 권력과 마찬가지로, 개인 역시 실체가 아니며, 다만 그것을 생산하는 권력 관계의 가시적인 그러나 부차적인 하나의 효과일 따름이다. 이제 권력에 대한 전통적 삼위일체-,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개인, 실체로서의 권력, 권력이 행사되는 장소로서의 국가-는 파괴되고, 개인화(정상화)-권력 관계들-국가화(l'individualisation(normalisation)-des relations de pouvoir-l'étatisation)라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이러한 ‘전략적 위치들의 집합이 발생시키는 효과’로서의 권력 관계에 대한 빼어난 사례는 벤담(J. Bentham, 1748-1832)이 고안한 판옵티콘(le panoptique)이다. 판옵티콘 혹은 일망감시체제(一望監視體制)에서, 우위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요소들의 위치들 혹은 배치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판옵티콘 안에는 어떤 절대적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권력이 “언제나 이미 그곳에”(toujours déjà l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결코 “바깥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5) 이러한 절대적 지점의 부재로부터 주어진 권력 관계들 안에서의 전략적·전술적 위치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위상학이 탄생한다. “권력 관계들”이란 표현은 사실상 “우리가 언제나 서로서로에 대해 전략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푸코는 이런 의미에서 전략을 “권력 관계들 안에서 작동하는 기제들”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에는 소유자 혹은 행위자가 없으며, 각각의 우선적 목적들이 갖는 상이한 효과 및 그 효과의 유용성으로부터 탄생하는 일정한 수의 전략들이 존재할 뿐이다. 서로서로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며 변형시키는 것은 언제나 주어진 특수한 상황 내에서의 전략적 배치들이다.
 
4. 생명정치와 공안
 
규율적 권력은 “외부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규범화 혹은 정상화하는 권력이며, 전방위적인 규율적 사회 관리 체계이다. 정상화(normalisation)란 단적으로 푸코가 말하는 권력 테크놀로지의 모든 부정적 효과들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로서, 규범화ㆍ규격화ㆍ표준화ㆍ획일화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우리 사회에서, “규범성 혹은 정상성의 심판관은 [...]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교수-심판관, 의사-심판관, 교육자-심판관, ‘사회 노동자-심판관’, 이들 모두는 규범적인 것 혹은 정상적인 것의 보편적 지배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각자는 자신의 신체, 태도, 행위, 행동 양식, 재능, 성과를 이에 복종시키는 지점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감시받고 처벌하며, 감시하고 처벌한다. 누가 누구를? 우리가 우리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이렇게 규율적인 동시에 공안적인 일망감시적 근대사회는 타인과 자신을 ‘정상화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서로서로 닮도록 하라.” 그리고 이러한 근대적 정상화의 테크놀로지는 역사 속에서 근대 자유주의(liébralisme) 및 푸코가 말하는 생명 정치의 관념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푸코는 생명 정치를 다음처럼 정의한다. “건강, 위생, 출생, 장수, 인종 등과 같이 18세기 이래 우리가 인구(population) 안에서 구성되는 생명체들 전체에 고유한 현상들에 의해 나타나는 통치적 실천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식들.” 이는 다시 16-17세기 이래 유럽에 나타난 통치 기술로서 ‘한 영토 안에 존재하는 인구 전체의 복지’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려는 공안(公安, la police)의 관념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 la police라는 용어는 오늘날 일어로서 우리가 이해하는 경찰 혹은 그러한 제도라는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인구의 총체적 복지’를 책임지는 공안학(Polizeiwissenschaft)은 결혼ㆍ출산ㆍ생존을 총괄하여 관리하는 의학적ㆍ행정적 국가적 관리 시스템의 탄생을 가져온다. 정신의학과 우생학이라는 기획은 19세기 후반 이 분야의 두 가지 중요한 혁신이다. 이것이 푸코가 말하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서양을 지배해온 생명 권력의 실체이다. 생명 권력이란 이렇게 18세기 말 이래 유럽에서 발달한 자신의 영토 안에 속하는 모든 인민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인구, 생명, 건강, 안전을 총괄 관리하는 국가 관리 시스템, 곧 공안 정책을 일컫는다. 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현대의 복지 국가의 이론적 시초이며, 동시에 부정적으로 국가에 의한 인민의 전면적 관리 통제 사회의 시초로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푸코의 생명 권력에 대한 이해는 권력-지식론에 입각한 것으로 그 부정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 권력은 생명에 대한 곧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le pouvoir sur la vie)이다.
 
5. 생명 권력 -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
 
푸코에 따르면, 군주권의 특징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생명과 죽음의 권리(droit de vie et de mort)이며, 이는 사실상 “죽게 만들거나, 살도록 내버려두는 권리”(droit de faire mourir ou de laisser vivre)이다. 이는 ‘칼’로써 상징되는 권리로서, 이때의 권력은 주로 징수의 수단, 갈취의 기제, 일부분의 부를 전유할 권리, 피지배자들로부터 생산물, 재산, 봉사, 노동, 그들의 피를 강제로 빼앗는 역사적 관행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권력은 무엇보다도 물건, 시간, 육체,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로서 특히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서 그 절정에 달하는 권리이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 이후, 징수는 더 이상 권력의 주된 기제가 아니며 다만 피지배자들에 대한 선동, 강화, 통제, 감시 그리고 그들의 생명 및 물자의 최대한의 활용 및 조직화 기능을 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경향이 보인다.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기 이후 서양에서는 여러 세력들을 가로막고 축소시키고 파괴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것들을 낳고 키우며 조직하는데 더 몰두하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 강조점은 죽음의 권리에서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의 요청에 상응하는 혹은 적어도 상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권리에로 이동한다. 죽음의 권리는 이제 “생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다시 말해 생명을 관리하고 최대한으로 생명을 이용하여 확장하고, 생명에 대한 정확한 통제와 전체적 조절을 행사하고자 하는 권력” 곧 생명 (관리ㆍ통제) 권력, 곧 생명과 생존, 육체와 종족의 관리자로서의 권력의 한갓 보조물로서 이해된다. 이러한 논리 아래에서는 사형제도조차 어떤 인권 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의 잔악성, 교정 불가능성 그리고 사회의 안녕과 안전을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이해된다. ‘죽게 만들던가 살게 내버려두는’ 이전의 권력은 이제 개인을 ‘살게 만들던가 죽음 속으로 추방하는’ 권력(un pouvoir de laisser vivre ou de rejeter dans la mort)이 된다. 마찬가지 논리에 의해, 자살조차도 근본적으로 군주와 그를 보증하는 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이전 시대의 논리를 뚫고 생명에 행사되는 권력의 경계와 틈새를 비집고 나타난 개인적이고 사적인 권리의 일부로서 이해된다. 사형제도와 자살은 이처럼 근대 생명 권력이 가능케 했던 하나의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인 현상이다.
 
푸코에 따르면 17세기 이래 두 가지 주요한 형식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하나는 기계로서의 육체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서 이는 “육체의 조련, 육체적 특성에 대한 최대한의 활용, 체력의 착취, 육체의 유용성과 순응성의 동시적 증대, 육체의 효률적이고도 경제적인 통제 체제로의 통합 및 이 모든 것의 규율을 특징짓는 권력의 절차” 곧 인체의 해부정치학(anatomo-politique du corps humain)이며, 또 다른 하나는 종(種)-육체(le corps-espèce) 곧 생명의 역학이 스며들고 생물학적 과정의 전반을 통해 주축의 역할을 하는 육체를 중심으로 하는 인구의 생명 정치학이다. 이러한 육체의 규율인구의 조절, 혹은 육체의 조절생명의 계산적 통제라는 양대 원리는 서로서로를 형성하며 서로에 대해 상보적인 두 형식으로 생명 권력, 생명 정치학, 해부 정치학 생명 정치학(anatomo-politique et bio-politique)의 탄생을 가능케 한 두 결정적 요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성의 역사 혹은 섹슈얼리티의 역사는 하나의 생명 역사(bio-histoire) 곧 생명을 관리하고 통제해온 담론의 역사이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생명 역사 혹은 생명 권력은 정상화라는 하나의 중심을 돈다. “정상화하는 사회는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한 권력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효과이다.” 정상화 과정에서 정치적 쟁점으로서의 성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본질적으로 정상화하는 권력’이라는 배경 곧 생명을 중심으로 한 육체에 대한 미시권력(micro-pouvoir sur le corps)이라는 관점 아래에서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육체와 인구의 접합 지점에서 (le sexe)은 죽음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관리를 둘러싸고 조직되는 권력의 중심점이 된다.” 이처럼 성은 18세기에 들어 공안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성의 공안(police du sexe)으로부터 ‘금지의 엄격함이 아니라 유용하고 공적인 담론에 의해 성을 규제할 필요’가 나타난다. 이러한 기본적 관심에 의해 이제 인구가 당대의 중요한 정치경제적 문제로서 부각되며, “인구라는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의 핵심에는 성이 있다.”
 
6. 욕망의 억압에서 쾌락의 활용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생명정치의 조절 메커니즘 속에서 무력하게 관리되는 존재로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푸코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근본적으로 억압-해방의 가설에 입각해 있는 ‘욕망’ 개념의 폐기 및 ‘쾌락의 활용’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가령, 하나의 실체로서의 성이 존재하며,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실체로서의 권력과 조우하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 권력과 성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서로 결합되거나 혹은 거부되는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은 “권력이 육체 및 그것의 물질성, 힘, 에너지, 감각, 쾌락을 포착하는 가운데 권력이 구성하는 섹슈얼리티 장치 안에서도 가장 내적이고 가장 관념적이며 가장 사변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섹슈얼리티 장치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그 지점은 이른바 ‘생물학적 혹은 자연적이고도 본래적인’ 과 그것의 욕망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으로 구성된 결과물로서의 육체와 그것의 쾌락을 분석해야 한다. 따라서 “섹슈얼리티 장치에 대한 반격의 거점은 ‘성-욕망’(le sexe-désir)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le corps e les plaisirs)이어야 한다.”
 
이미 1976년에 발간된 『앎의 의지』에 등장하는 이 마지막 문장 안에는 이미 8년 후인 1984년 『쾌락의 활용』의 테제들이 배태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쾌락의 활용』에서 푸코는 『앎의 의지』와 달리 진리의 정치적 역사(histoire politique de la vérité)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제 욕망인의 해석학, 욕망인의 분석학, 욕망인의 계보학에 집중한다. 푸코의 입장에서 ‘욕망’이란 단어는 정신분석에서 그 단어가 여전히 주요한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사실에서 잘 보이는 것처럼 여전히 근본적으로 푸코가 비판하는 프로이트의 억압-해방 가설에 입각해 있는 것, ‘성-욕망’의 담론에 기초한 것이다. 자연적 생물학적 성과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육체와 쾌락이 문제이다. 욕망이 아니라 쾌락이다. 쾌락은 주어진 한 사회와 시기에서 일정한 진리놀이들과 함께 개인이 스스로를 주체로 구성하는 주체화 과정의 주요 요소인 동시에,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푸코는 이를 다시 타인에 대한 지배 및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의 관념과 연결시키면서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의 문제와 연관시킨다. 통치성은 이후 푸코의 사유를 자기와 자기 자신의 관계(rapport de soi à soi)를 의미하는 ‘윤리’라는 새로운 영역에로 이끌게 되는 개념이다. “자기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도 지배할 수 없다.” 이것이 푸코의 지식의 영역, 권력의 영역을 잇는 제3의 영역 곧 윤리(l'éthique)의 영역이다. 쾌락의 활용(usage des plaisirs, chrēsis aphrodision)이란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보이는 개념으로서, 푸코는 이를 육체에 대한 관계, 아내에 대한 관계, 소년들에 대한 관계 및 진리에 대한 관계라는 네 가지 영역을 통해 분석한다. 이는 다시 고대 그리스어에서 ‘성적 쾌락’을 의미하는 단어였던 ta aphrodisia 개념에 대한 분석과 겹치면서 “아프로디지아가 어떻게 도덕적 배려의 영역으로서 구성되었는가?”를 탐구한다. 푸코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도덕적 체험의 변형들을 이해한다면, 성적 엄격함은 법전(code)의 역사보다 더욱 더 결정적인 하나의 역사, 곧 개인을 도덕적 행동의 주체로서 성립시키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양식의 완성으로서 이해되는 윤리의 역사에 속한다.”
 
생명 정치는 다름 아닌 이러한 윤리의 역사라는 새로운 관점에 의하여 분석되고 조망되어야 한다. 이는 곧 한 사회가 스스로를, 한 개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인식과 윤리, 권력은 이렇게 서로 분리 불가능한 방식으로 얽혀있는 복합적인 그물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