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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5. 5.

김용옥 -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

 


[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동영상]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2014. 1. 6.

logique de la sensation

 
 

 
 
 


  

 
 
 
 
 
 
"과거 회화에서보다 구상을 포기하기가 유희로서의 현대 회화에서 훨씬 쉽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현대 회화는 화가가 그의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화폭 위에 자리 잡아 버리는 사진들과 이미 고정된 것들에 의해 침범당하고 포위되어 있다. 사실 화가가 순백의 처녀지 위에서 작업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표면은 화가가 단절해야 할 온갖 종류의 이미 고정적인 것들에 의해 미리 완전히 잠재적으로 덮여 있다."(21)
 
 
 
 
 
 
 

2013. 12. 24.

polizeiwissenschaft


 
 
 
 
* 미셸 푸코, 『안전, 영토, 인구.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 1977-78년』, 오트르망 옮김, 난장, 2011.

 
9강. 1978년 3월 8일


정치가(les politiques): 16-17세기의 서구에 등장. ‘이단’의 냄새를 풍기며, ‘이단’에 가까이 있는 종파에 속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늘 ‘부정적’으로 사용되었던 용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부를 어떤 형식의 합리성에 의거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일정한 생각을 통해서 서로 뭉치는 사람들”, “주권의 기초라는 사법적ㆍ신학적 문제에 반대해서, 통치합리성의 형태 자체를 독자적으로 사유하려한 자들”(343).


17세기 중반 이후. * 샤틀레 후작, “정치란 국가의 통치술”(marquis du Chastelet, Traitté de la politique de France, 1669). * 보쉬에, “성서에서 이끌어낸 정치”(Jacques-Bénigne Bossuet, Politique tirée des propres paroles de l'Ecriture sainte, 1709). “하나의 영역, 목적/의도의 집합, 권력조직의 특정한 유형”. 프랑스가 제안한 교황권 제한주의(gallicanisme), 즉 국가이성이 교회에 대항하여 작동할 수 있다는 주장의 정당화. 국가이성에 의해 지휘되는 정치. 정치는 더 이상 ‘이단’이 아니며, 제국은 죽어버렸다(344).


국가(l'Etat): 국가가 숙고된 인간의 인식에 들어온 것은 1580-1650년 사이의 일. “제가 보여드리려고 했던 것은 국가가 근본적인 정치적 목표로서 출현했다는 사실을 통치의 역사라는 더욱더 일반적인 역사의 한 부분, 그도 아니라면 권력의 실천 영역에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였습니다. 권력을 논한다면 권력에 대한 내적ㆍ순환적 존재론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렵니다. 국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국가의 역사와 발달을 얘기하는 사람들, 국가의 자부심을 얘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역사를 통해 어떤 실체를 만들어내고, 국가라고 하는 이것의 존재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국가라는 것이 일종의 통치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국가라는 것이 통치성의 유형 중 하나일 뿐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층적이고 다양한 절차에 입각해 차츰차츰 형성되어가고, 마찬가지로 차츰차츰 응결되어 특정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이 모든 권력관계, 이 통치의 실천에 입각해 국가가 구축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346)


10강. 1978년 3월 15일


조반니 팔라초(Giovanni Antonio Palazzo, Discorso del governo e della ragion vera di Stato, 1604). 이성의 두 의미: ‘사물 자체의 본질’, ‘사물의 이치에 대한 인식’이며 [의지로 하여금] 이 사물의 이치 자체에 따르도록 해주고, 어느 정도까지는 의무적으로 따르게 만드는 그런 종류의 힘.


Etat(國家): ① 영역(dominium), ② 관할권(juridiction), ③ 삶의 조건, ④ 운동과 대립하는 사물의 본질.


république(共和國): ① 영역/영토, ② 사법의 공간이자 법, 규칙, 관습의 총체, ③신분들의 총체, ④ 영역, 관할권, 제도 혹은 개인들이 갖는 신분의 일정한 안정성.


raison d'état(國家理性): 이 네 가지 의미에서 ‘국가’가 자신의 온전함을 철저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충분한 것. 팔라초, “국가이성이란 국가의 모든 기술과 직무에 관련해 필요한 모든 사물의 본질 전체이다”, “국가이성이란 장인에 의해 정해진 목표를 획득하기에 적절한 수단을 가르치고 관찰하는 어떤 규칙이나 기술”, “국가의 온전성, 평온함, 평화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규칙이나 기술”이다(349-351).


켐니츠(Bogislaw Philipp von Chemnitz)의 1647년 텍스트, “국가이성이란 모든 공적인 일, 모든 조언과 계획에서 사람들이 갖춰야만 하는 정치적 견지이다. 이 정치적 견지는 오로지 국가의 보존, 증강, 지복만을 지향해야 한다.”(351)


당시의 국가이성은: 자신의 정의와 관련하여 국가이성 자체 이외에는 아무 것도 참조하지 않는다, 국가의 본질이자 인식, 보존적ㆍ보수적, 국가 자체가 목적으로 설정된 무엇(353). 이러한 논의의 관심은, 기원ㆍ토대ㆍ정당성ㆍ왕조가 아닌,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통치이다. 기원이 없듯이, 종착점ㆍ목적도 오직 국가 자체이다. 최후의 궁극적 제국과도 같은 외적 목표가 사라지고, 다수 국가들 사이의 균형을 통해서만 가능한 항구적인 세계평화가 관건이며, 이후 이는 인간 행복에 있어서의 진보의 관념으로 수정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구(人口, population)의 관념이 있다.


coup d'état(쿠데타): 17세기 초의 쿠데타는 (국가를 그 소유자로부터 압수하거나 몰수한다는 의미가 아닌) 보편법을 뛰어넘는 행위, 국가로부터 법이나 합법성을 빼앗고 중단시키는 행위를 의미한다.


* 가브리엘 노데(Gabriel Naudé, 1600-1653)의 『쿠데타에 관한 정치적 고찰』(Considérations politiques sur les coups d'Etat, 1639), 보편법의 초월(Excessus iuris). 보테로의 ‘공공선을 위해 행해지는 보편법의 초과’(excessum juris communis propter bonum commune). 보편법에 반하는 특별한 행동, 어떤 질서나 어떤 사법 형식도 지키지 않는 행동. * 켐니츠, “국가를 구제하는 것이 문제일 때, 국가 이성은 공법, 특수한 법, 근본적인 법과 그 외 어떤 종류의 법도 과감하게 위반할 수 있다”, “법에 따라서가 아니라, 법에 대해서 명령해야 한다. 국가가 법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국가의 현상에 적응해야 한다.” 국가 자체의 필요성, 긴급성, 구제의 필요는 자연법적인 법의 작용을 배제한다. 결국, 쿠데타는 국가 자체의 자기 현시, 국가 이성의 단언. 정치는 이처럼 필요성에 관련된 어떤 것. 17세기 초반의 정치문헌들에는 필요성에 대한 일대 철학, 일대 찬사, 예찬이 발견된다. 통치는 합법성(혹은 정당성)이 아니라, 필요성과 관련해 존재한다(357-361).


violence(폭력): 쿠데타는 본성상 폭력적. 국가에 관해서는 폭력과 이성 사이에 어떤 이율배반도 없다. 국가의 폭력은 소위 국가 이성 자체의 난입적 표명. * 샤를마뉴 대제의 ‘판관’ = ‘색슨인들이 있는 곳에 자기가 죽이고 싶은 상대를 죽이고 싶은 방식대로 죽이고 싶은 때에 이유도 말하지 않고 죽이는 암살자를 두었다.’ 국가범죄. 익명의 저자, “폭력은 개인의 변덕으로 이루어질 경우에는 흉폭성(brutalité)이지만, 현자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질 때는 쿠데타이다.”(1652년) 쿠데타는 주권자에 대한 국가이성의 난입, 적법성에 대한 국가이성의 우월성을 보여준다. 이는 동시에 정치에서의, 국가이성의 연극적 실천과도 연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17세기 초. 「소요와 폭동에 관한 시론」(Of seditions and troubles, 1625). 소요는 공적인 것(res publica), 즉 국가생명에 있어 완전히 통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일종의 내적 현상. 소요의 징후학ㆍ기호학. 소요와 폭동의 원인은 배와 머리, 빈곤과 불만, 배고픔과 여론. 진정한 위험은 인민과 귀족이 결합되는 경우.


* 마키아벨리와 베이컨 통치성의 비교. ① 문제: 마키아벨리는 위협받고 있는 군주, 베이컨은 위험에 처한 국가 ② 통치의 대상: 마키아벨리는 귀족, 베이컨은 인민. ③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자질에 대한 사람들의 품평, 베이컨은 경제와 여론. 베이컨에게는 경제학자와 여론관리자(publicists)의 탄생(375-378).


국가이성과 진리의 문제. 국가 이성 곧 통치술에 있어서의 내속(內屬)적 합리성은 일정한 종류의 진실을 생산한다. 17세기 초까지, 통치자에게 중요한 것은 법을 이해하는 현명함, 법을 언제 적용해야 하는가에 관련된 진중함이다. 17세기 이후, ‘사물’(les choses)에 관한 인식. 통치자는 국가가 다른 국가에 의해 지배된다거나 국력을 상대적으로 잃음으로써 존재감을 잃지 않도록 국가의 유지, 국력의 유지, 국력에 필요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요소를 알아야 한다(378-379).


Statistik: 주권자가 알아야만 하는 사물, 국가의 현실 그 자체인 그 사물은 이 시기에 statistique, Statistik[統計學, 國家學]이라 불린 것. 어원학적으로 통계학은 국가에 관한 지식. 일정한 시기에 국가를 특징짓는 힘과 자원에 관한 인식. 인구의 인식, 인구 수의 계량, 사망률ㆍ출생률의 계량, 국내에 존재하는 여러 범주의 개인들에 대한 산정, 그들의 부의 산정, 국가가 사용할 수 있는 잠재적 부, 즉 광산, 산림 등의 산정, 생산된 부의 산정, 순환하는 부의 산정, 무역수지의 산정, 세금 및 조세 효과의 측정, 그 밖의 모든 소여가 이제 주권자의 앎의 본질적 부분이 된다. 요컨대 이제는 법의 사료나 이를 적시에 적용하는 기교가 아니라, 국가 자체의 현실을 특징짓는 기술적 인식의 총체가 주권자의 앎이 된다.


- 1691년 윌리엄 페티(William Petty, 1623-1687)의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k). 아일랜드 정부의 전속 의사로 활동하던 페티는 알일랜드 대장 작성에 종사한 이후, 가톨릭으로부터 몰수한 토지를 영국군과 그 출자자들에게 배분하는에 1652-1659년에 관여했다. 이로부터 나온 것이 1652-1659년까지 집필된 『아일랜드의 정치해부학』(The Political Anatomy of Ireland, 1691).


- 1730년 헤르만 콘링(Hermann Conring, 1606-1681)의 ‘공적인 것’(rerum publicarum)에 대한 논문.


- 1749년 고트프리트 아켄발(Gottfried Achenwall, 1719-1772)이 통계학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379-381).


푸코가 연구하려 한 것은 국가의 역사가 아니라, 국가를 인식의 의식적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국가에 대한) 성찰적 프리즘의 역사(383-384). 국가는 실천이며, 이 총체적 실천이 통치의 방식, 행동의 방식, 통치와 관계 맺는 방식으로 국가를 만든 것입니다(384). 그러나 이 시기 국가이성의 분석에 여전히 결여되어 있는 것, 조만간 나타날 것은 인구(population)이다. 중상주의에 있어서도 여전히 부유해져야 하는 주체 혹은 대상은 - 인구가 아니라 - 국가 자체이다. 17세기 이래의 국가 이성은 통치성을 잘 정의했지만, 그 정의 안에 인구에 대한 참조는 함축적인 상태로 남아 있을 뿐 아직 성찰적 프리즘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중반에 걸쳐[=고전주의] 일어나게 되는 일련의 변형에 의해, 또한 그 변형을 통해 18세기 이래의 정치 생활이나 정치에 관한 모든 고찰 및 정치학에서 이 중심적인 요소인 인구 개념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인구 개념은 국가 이성을 작동시키기 위해 설치된 장치, 곧 내치(內治, la police)를 통해 만들어지게 됩니다. 국가이성에 관한, 소위 절대주의적인 그 일반이론에서 이 새로운 주체[인구]를 출현시키는 것은 내치라고 불리게 될 새로운 실천영역의 개입입니다(385-386).


11강. 1978년 3월 22일


서구에서 자기 안에 고유한 이성과 합리성ratio을 가지고 있던 통치술의 탄생이라는 사건은 이와 정확히 동시대, 그러니까 16세기 말-17세기에 요하네스 케플러, 갈릴레오 갈릴레이, 르네 데카르트 등과 관련해 일어난 사건들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건. 거기에서 서구 이성이 대단히 복잡하게 변형되는 현상이 발생. 이 통치이성의 출현이 어떻게 해서 사유ㆍ추론ㆍ계측의 일정한 형식을 발생시켰는가? 이런 사유ㆍ추론ㆍ계측 방식은 당대에 정치라고 불렸습니다. 정치는 우선 이단적인 사유로 지각되고 인정되어 즉각적으로 동시대인들의 우려를 발생시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정치와 통치술의 관계는 동시대에 보편수학과 자연과학이 맺었던 관계와 다소 비슷했습니다(387-388).


통치이성의 원칙이자 목표가 다름 아닌 국가(status, état, Staat, state)이다. 국가란 인식가능성의 원칙이자 전략적 도식. 국가란 통치이성의 규제적 이념. 국가란 현실적인 것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원칙, 이미 주어져 있는 요소와 제도의 고유한 본성, 연결, 관계 등을 사유하는 방식. 국가는 이미 주어져 있는 왕, 주권자, 행정관, 행정기관, 법, 영토, 영토의 주민, 군주의 부, 주권자의 부 등 요소의 성격이나 관계를 구상하고 분석하고 정의하는 어떤 방식. 이 모든 것은 이제 국가의 구성 요소로서 인식된다. 국가란 이미 확정된 제도들로 이루어진 총체, 이미 주어진 현실들로 이루어진 총체에 관한 인식 가능성의 도식. 이런 정치적 이성 안에서 국가는 일종의 목적이며, 이런 이성, 합리성의 활동적 개입이 낳은 최종적 결과물이 국가이다. 따라서 국가는 통치술의 합리화 과정 끝에 있어야 한다. 결국, 국가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우선적으로 우리가 정치라고 부르는 이 새로운 사유형태, 반성형태, 계산형태, 개입형태의 규율적 이념. 보편수학으로서의 정치, 통치술의 합리적 형식으로서의 정치. 통치이성은 국가를 현실[성]의 해석원칙이자 목적, 당위로 제시한다. 국가는 통치이성을 지휘하는 그 무엇. 국가란 필요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통치하게 만드는 그 무엇. 국가가 있기 때문에, 국가가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통치한다(389-390).


- 팔라초의 『국가의 참다운 이성 및 통치에 관한 담론』(1606): “국가이성은 평화의 본질 자체, 평화롭게 살게 만드는 규칙, 사물들의 완성”. 국가이성은 국가의 현실을 국가의 영원한 본질 혹은 국가의 부동하는 본질에 맞추는 것, 국가를 국가로서 유지하게 해주는 것. 팔라초는 ‘국가’라는 의미와 사물의 부동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status라는 용어를 사용.


- 보테로: 국가이성이란 “국가가 스스로를 형성하고 유지하고 강화하고 증강하는 수단에 고나한 완벽한 인식”이다.


- 켐니츠: 국가이성이란 국가의 확립ㆍ보수ㆍ증강을 가능하게 하는 것.


이러한 국가의 보존ㆍ유지(manutention)를 위해서는 회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피한, 어쨌든 항상 위협이 되는 과정, 국가를 역사의 정점에 다다르게 한 뒤에 쇠퇴로 몰아넣거나 소멸시키는 과정, 바빌론 왕국, 로마제국, 샤를르마뉴 대제의 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보테로와 팔라초에 의하면, 바로 역사상의 모든 국가가 겪은 이런 탄생, 증강, 완성, 쇠퇴라는 주기(週期, cylce)에서야말로, 또한 그것을 위해서야말로 국가이성은 기능한다. 당시의 어휘에서는 이 주기를 혁명(révolution)이라 부른다. 이런 혁명, 혁명들이야말로 국가를 빛이나 충일로 이르게 한 뒤에 소멸시키는 주기로 들어가게 하는, 마치 자연과도 같은, 그도 아니라면 절반은 자연적이고 절반은 역사적인 현상. 보테로나 팔라초가 국가이성이라고 부른 것은 본질적으로 국가를 혁명에 맞서 유지하는 것(391-392).


이런 형식의 국가이성을 통해 소묘되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안에 법과 목적을 갖는 복수의 국가들이 영원히 필연적이자 운명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세계. 정치적으로 열린 시간, 국가적으로 다수의 다양한 공간. 1648년의 베스트팔렌조약. 유일한 보편적 제국으로서의 로마의 종말을 확인. 종교개혁으로 교회가 분리되고 제도화되고 인식되었다. 국가들이 이미 각자의 정책ㆍ선택ㆍ동맹에 있어서 종교적 귀속관계에 의해 단합하기를 그만두었다. 유럽은 다수 국가들 사이의 균형과 경쟁, 각국의 국부를 강화하는 체계를 의미. 이 경쟁의 공간이야말로 국가이성의 지도원칙이자 지도노선인 국가의 증강에 의미를 부여(394-397).


국가이성 분석의 특권적 대상, 사례였던 스페인이 획득하지는 못했을지언정 꿈꾸었고 일시적이나마 성취했던 지배력과 준독점적 입지의 행사는 그것을 가능케 한 동일한 무엇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았다. 이를테면 부유함 때문에 빈곤에 처하게 된다거나 국력의 과도함 때문에 쇠약해지는 것. 이것이 혁명[=주기]인데, 이때의 혁명은 ‘일국의 국력과 확보해주었던 바로 그것이 오히려 힘의 상실이나 감퇴를 야기하게 되는 실제적 메커니즘의 총체’를 의미. 이는 현실의 혁명, 곧 ‘국가들에게 부와 힘을 보장해주는 메커니즘의 수준 자체에서의 혁명을 이끌어내어지는 경쟁이라는 현상에 의해 열리고 횡단되는’ 새로운 시간관념이 탄생한다. 이처럼 국가들이 경쟁관계라는 형식 아래 존재하는 국가로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은 16-17세기 이래의 일.


이러한 인식은 ① 군주의 부에서 국가 자체의 부로의 이행 ② 군주의 소유물로부터 힘을 산정하는 것으로부터 국가를 특징짓는 훨씬 더 견고하고 비밀스러운 힘, 가령 국가에 내재하는 부, 국가가 처분할 수 있는 자원, 천연자원, 상업의 가능성, 무역수지 등에 대한 연구로의 이행 ③ 군주들 혹은 군주가 속한 가문들 사이의 대립으로부터 국가들 사이의 경쟁관계라는 대립구조로의 이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16세기 말 17세기 초, 특히 30년 전쟁(1618-1648)을 둘러싸고 형성된 정식화에 입각해서 보면, 이에는 힘, 국력, 역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적 층위가 발견된다(397-401).


정치사상의 수준에서(force)이라는 근본적 범주의 출현. 정치사상에서의 역학(la dynamique)과 자연과학, 본질적으로는 물리학으로서의 역학은 동시대적.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7)는 역사적 정치적 관점에서 힘의 일반이론가이자, 물리학의 관점에서 힘의 일반이론가. 모나드라는 실체라는 단위가 지니는 물리적 표출로서의 힘. 앙드레 로비네, “유럽이 균형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들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물리학이다. [...] 유럽의 균형이란 정역학(靜力學, statique)의 문제가 아니라 동역학(動力學, dynamique)의 문제이다.”(401-402)


이 새로운 통치성, 곧 국가이성의 진정한 문제는 그러므로 - 일반적 차원에서의 국가의 유지라기보다는 - 여러 가지 힘의 역학의 보존과 유지 및 발전이다. 사구 혹은 서구사회는 이 본질적으로 여러 가지 힘의 역학에 입각해 정의되는 정치적 이성의 작동을 위해 ① ‘외교-군사적 장치’와 ② ‘내치’라는 두 개의 커다란 집합을 설치한다. 이 두 집합의 기능은 힘 관계의 유지를 확보하고, 전체와 단절됨 없이 각각의 힘들의 증강을 확보하는 것. 이 양자의 ‘결합’이 후에 안전메커니즘(mécanisme de sécurité)이라 불리게 된다(403).


1) 안전메커니즘의 첫 번째 장치 - 외교ㆍ군사적 유형의 새로운 기술.


30년 전쟁의 종말(1648)이란 제국의 꿈과 교회 보편주의의 소멸을 명백하고 결정적으로 이끌어낸 저 1백년에 걸친 종교적 정치적 투쟁의 종말.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1555)로부터 이어지는 시기를 고려하면 거의 1백년이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는 신앙고백한 종교(가톨릭이나 루터파)를 실천할 권리를 신성로마제국 내의 모든 국가에게 인정했다. 이 원칙은 훗날 ‘군림하는 자, 그의 종교[한 나라의 종교는 그 군주의 종교를 따른다]’(cujus regio, ejus religio)라고 불렸다. 아우크스부르크 평화회의에 의해 이 원칙이 확립되고 있었기 때문에, 베스트팔렌 조약(1648)에 이르러 중세적인 가톨릭 중심의 신성로마제국이 종말을 맞게 된다. 베스트팔렌 조약은 가톨릭과 루터파에 이어 칼뱅파를 신성로마제국의 세 번째 합법적 종교로 사실상 인정하게 된다. 30년 전쟁 말에 설립된 이 체제는 결국 유럽의 평형을 목표로 한다(403-404).


유럽이란 무엇인가? 17세기 초나 전반기까지만 해도 유럽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새로운 것. 유럽이란 그리스도교가 지녔던 보편주의적 소명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하나의 단위. 쉴리(duc de Sully, 1560–1641)가 앙리 4세의 ‘웅장한 계획’이라 부른 유럽은 제한되고 보편성이 없는 지리상의 분할된 절편, 근본적으로 복수적. 강력한 15개국 사이의 평형, 특히 영국,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페인. 소국과 대국의 수준 차이는 있는 여타 세계와의 이용ㆍ식민지화ㆍ지배라는 관계를 맺고 있는 지리상의 지역으로서의 유럽. 유럽의 균형 혹은 천칭(trutina sive bilanx Europae). 교회의 보편주의가 아니라, 경쟁하는 국가들 사이의 안전 확보가 균형(405-410).


안전 확보를 위한 도구. ① 전쟁. 중세의 전쟁은 ‘특정 무리(가령 떠돌이 용병)의 계절적 모험, 약탈행위, 전리품 수확행위’로서의 게르(guerre)와 ‘신명재판’(神命裁判)으로서의 바타유(bataille). ‘신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목적을 선언하고 확증하며, 모두를 위해 논쟁의 여지없는 맹백한 방식으로 어느 진영이 진정 정의로운지를 드러내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조르주 뒤비, 『부빈의 일요일』(Le dimanche de Bouvine, 1973; 동문선, 166-167쪽) 16-17세기 이래의 전쟁은 정당성 혹은 법권리의 전쟁이 아닌, 국가 혹은 국가이성의 전쟁. 약 2세기 후 클라우제비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 프랑스왕들의 대포, ‘왕들의 궁극적 이성’(ultima ratio regum) ② 다자간 조약과 같은 외교적 수단. 주권자들의 권리가 아닌, 국가들의 물리학. 상주 대사의 원형이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확립. 진정한 국제연맹. 이로부터 탄생하는 것이 만민법(萬民法, jus gentium). 장자크 뷔를라마키(Jean-Jacques Burlamaqui, 1694-1748), 『자연법 및 만민법의 원칙』(Principes du droit de la nature et des gens, 1766-1768): “근대 유럽은 공통의 이익에 의해 연결된 독립적인 구성원들이 질서와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모여 있는 일종의 국가 같은 것이 된다.” ③ 상시적인 군사장치의 설치, 군사적인 것의 제도화. 군인의 직업화, 상시적인 군 구조 확립, 요새와 수송 장비, 그리고 지식, 전술적 고찰, 작전, 공격 및 방어의 도식들. 유럽의 평형 구축을 위한 정치적ㆍ군사적 복합체의 확립. ④ 정보장치. 자국(및 타국)의 힘을 알고 또 감추는 것, 더하여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


12강. 1978년 3월 29일


2) 안전메커니즘의 두 번째 장치 - 내치.


18세기 이래 경찰police이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17-18세기 말의 police는 훨씬 폭넓은 의미의 내치를 의미.


폴리스의 전통적 의미. 1) 15-16세기에 빈번히 발견되는 이 단어의 의미는 ‘공적 권위에 의해 지배되는 공동체나 단체의 형식’을 의미. 17세기 초까지도 이런 의미로 사용. 2) 역시 15-16세기의 용법. 공적 권위 아래 그런 공동체를 지배하는 어려 행위의 총체. 폴리스 에 레지망 police et régiment. 레지망=폴리스에 관련된 지배와 통치의 방식. 3) 적절한 통치의 결과, 실정적이고 평가의 대상이 되는 결과.


17세기 이래 폴리스의 새로운 의미. ‘적절한 국가질서를 유지하면서 국력을 증강할 수 있는 수단들의 총체’, ‘국내질서와 국력증강 사이의 동적이지만 안정적이고 제어가능한 관계를 확립할 수 있게 해주는 계산과 기술’, 결국 ‘질서, 유도된 부의 증대, 건강 ‘일반’ 유지의 조건들, 이상과 같은 것을 확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진 총체.’(421-413)


- 루이 튀르케 드 마이에르느(Louis Turquet de Mayerne, 1550-1618), 『귀족 민주주의적 군주제』(La monarchie aristodemocratique, 1611): “국가에 장식, 형식, 장려함(splendeur)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내치라는 이름 속에 포함되어야 하며, 사실 그것은 거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의 질서를 가리킨다.”


- 호헨탈(Peter Karl Wilhelm Graf von Hohenthal-Königsbrück, 1754-1825), 『』(Liber de politia, 1776): “내치란 국가 전체의 장려함을 위하는 동시에 각 시민의 지복을 위한 수단이다.”


- 요하네스 폰 유스티(Johann Heinrich Gottlob von Justi, 1717-1771), 『내치학의 원칙』(Grundsätze der Polizeywissenschaft, 1756): “넓은 의미에서의 내치에는 국내에 관한 모든 장치가 포함된다. 그것은 보다 지속적으로 국력을 견고하게 하고 증강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것을 통해 국력이 선용되고 신민의 행복이 갖추어진다. 즉 그것들의 관리방식에 의해 국가의 행복이 결정되는 한에서 통상과 학문, 도시경제, 그리고 농업경제, 공업관리, 삼림 등이 내치에 포함된다.”(424-425)


유럽의 평형과 내치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의 도구, 통계학. 통계학은 내치 때문에 필요한 것이 되고, 내치에 의해 가능한 것이 됩니다. 내치와 통계학은 서로를 조건화합니다. 통계학은 국가에 관한 국가의 지식인데, 그것은 자국 자체에 관한 지식이기도 하고, 다른 국가들에 관한 지식이기도 한 것(427-428). 내치국가(Polizeistaat).


이탈리아는 우선적으로 외교우선주의이며, 따라서 내치는 나중에 발전한다. 독일은, 봉건과 근대의 중간에서, 프랑스적 중앙집권 체제, 곧 행정관이 없었으므로, 이를 수행할 대체 기관을 대학에서 발견한다. 내치학은 독일의 대학에서 결정적인 형태로 발전하고, 이는 17세기 말 18세기 말 전 유럽에 걸쳐 위세를 떨치게 된다. 내치이론, 내치에 관한 책, 행정관을 위한 교재. 프랑스는 행정실천 내에서 이론ㆍ체계ㆍ개념 없이 실무진에 의해 주도되어, 조치ㆍ행정명령ㆍ칙령집 등을 통해 제도화.


튀르케 드 마이에르느: “내치는 국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질서.” 통치술과 내치의 행사는 동일한 것. 4대 업무를 담당하는 4대 장관: ① 기존의 사법을 담당하는 대법관, ② 군대를 담당하는 총사령관, ③ 재정을 담당하는 재무장관, 그리고 ④ 탁월하게 행정적 근대성을 갖는 내치의 보수장관ㆍ개혁장관. 내치의 보수장관은 각 지방에 각기 4개의 사무국을 갖는다. ① 내치 사무국. 청소년과 아동. ② 빈민을 담당하는 자선사무국. 직업ㆍ노동 배분, 전염병과 공중위생 관리, 금전 대출. ③ 상인들을 관장하는 업무. 시장의 제반 요소 관리. ④ 영토사무국. 부동산. 이에 더하여, 내치의 개혁장관은 시민의 충성ㆍ겸양 등 도덕적인 기능을 담당. 부와 검약을 담당. ☞ 도덕성과 노동의 혼합.


내치사무국은 개인들의 교육과 직업[화]을 담당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인간들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통제ㆍ구속ㆍ결정의 총체. 곧 신분적 의미의 인간이 아닌, 직업적 의미에서의 인간을 다룬다. 곧 무엇인가를 한다는 의미에서의 인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인간, 일생에 결처 무엇인가를 하려 한다는 의미에서의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다. 이렇게 인간은 ‘참된 시민’으로 만드는 것, ‘인간을 확실히 하나의 활동을 갖고 있고, 또 이 활동이 그의 덕의 완성을 특징지어야 하고, 그 결과 국가의 덕의 완성도 가능케 되어야 하는 것’, ‘스스로 전념하는 어떤 것을 갖고 있는 참된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내치. 내치의 대상은 ‘국가와 관련이 있는 한도 내에서의 인간의 활동, 국력을 구성하는 요소인 인간의 활동’. 내치, 인간의 활동으로부터 시작하고 그것을 통해 국가의 유용성을 창출하는 것, 직업, 활동, 인간의 행위를 시작으로 공공의 유용성을 창출하는 것(-439).


내치의 대상. ① 인간들의 수. 시민의 수(copia civium). 인구가 점유하고 있는 영토가 갖는 자원과 능력 대비 인구의 양적 발전 ② 생활필수품. 물품의 상품화, 순환, 식량난에 대비한 비축 등의 정확한 제어. 특히 곡물의 내치. ③ 독기(毒氣)의 이론과 연관되는 보건의 문제. 이는 새로운 설비, 새로운 도시공간을 수반하는 일대 정책을 야기. ④ 인간의 행동에 유의. 직업에 대한 통제, 관리. ⑤ 생산물과 상품의 순환. 물질적 순환을 위한, 도로와 그 상태 및 발전, 하천과 운하의 운항가능성을 관장. 순환의 공간.


요약하면, 내치는 인간들 상호 간의 공존 형식 전체를 관장. 모든 종류의 사회성(socialité). 내치가 담당하는 것은 사회. 17-18세기 내치학자들이 말하는 내치 제도의 포괄 영역은 인간들의 공존과 상호소통. 살게 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살게 하는 것 이상의 것까지 포괄. 사는 것만이 아니라, 단지 사는 것보다는 조금 낫게 산다는 문제. 내치는 생활하기, 생활하는 것 이상의 것을 행하기, 공존하기가 국력의 구축과 증강에 실제적으로 유익할 수 있도록 확보하는 개입과 수단의 총체. 내치는 국력과 개인들의 복락을 연결시킨다. 개인들의 생명 이상의 것인 이 복락은 말하자면 추출되어 국가의 유용성으로 구성되어야 한다(-446).


- 니콜라 들라마르(Nicolas de La Mare, 1639-1723), 『내치론』(Traité de la police, 1705): 내치의 유일한 대상은 “인간을 자신이 평생 누릴 수 있는 가운데 가장 완벽한 복락으로 이끄는 것.”


- 호헨탈: “국가의 장려함과 개인들 각자의 외적 복락을 확보해주는 수단의 총체.”


- 폰 유스티: 내치는 “국가 내부와 관련되고 국력을 강고하게 증강시키며 국력의 선용을 행하는 데 관련된 법과 통제의 총체”이며, “그 법과 통제는 신민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경향을 갖는다.”


- 몽크레티앙(Antoine Monchrestien de Watteville, 1575-1621)의 『정치경제학 논설』(Traité d’économie politique, 1615/1616): “요컨대 자연은 우리에게 존재l'être를 부여했다. 그러나 우리는 규율과 예술로부터 안락le bien-être을 이끌어낸다.” 존재를 넘어 안락을 산출하는 것, 그래서 개인들의 행복이 국력이 되게 하는 것.


13강. 1978년 4월 5일


니콜라 들라마르가 말하는 내치의 13개 영역. 종교, 풍속, 건강, 식량, 공공의 안녕, 건축물ㆍ광장ㆍ도로의 관리, 과학들과 자유7과학, 통상, 수공업과 공예, 하인과 노동자, 연극과 유희, 마지막으로 ‘공동선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빈민에 대한 배려와 규율. 삶의 보존, 양호, 편의, 쾌적. 이상의 대상은 근본적으로 도시 문제, 곧 도시에 관한 행정명령. 시장 문제, 근위기병대, 도로망, 영토의 도시화. 내치화하다policier = 도시화하다 urbaniser. 내치, 도시화, 중상주의(重商主義, mercantilisme)의 관계. 중상주의: 경쟁관계에 있는 유럽의 국가들이 통상, 통상의 발전, 통상관계에 부여된 새로운 활력을 통해 국력을 증강하고자 할 때 사용한 기술과 계산(유럽의 평형과 경쟁의 맥락). 중상주의의 도구가 바로 통화 유입기술로서의 통상의 전략. 내치와 통상(-457).


내치의 통치성 안에서 존재와 안녕의 연결이 이루어진다. 내치는 사법이 아니며, 주권자가 주권자로서 행하는 직접적 통치성, 내치는 국가의 고유한 합리성이라는 원칙 아래 수행되는 항구적 쿠데타. 내치는 끊임없이 세부적인 것에 관여한다(459). 내치에는 법보다 통제(règlement)가 필요하다. 무제한적, 항구적, 끊임없이 갱신되는, 점차로 상세해져가는 통제. 내치는 통제의 세계, 규율의 세계. 도시를 일종의 준수도원으로 여기고, 왕국을 일종의 준도시로 여기는 것, 이것이 내치의 배경에 있는 그런 종류의 거대한 규율적 꿈. 통상, 도시, 통제화, 규율이 17-18세기 전반에 걸쳐 이해되고 있던 내치 실천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461).


이후의 중농주의자(physiocratie) 혹은 ‘경제학자’(économiste): 1) 이러한 도시중심적 세계에 대지를 고려에 넣는 통치성, 중상주의에 가해진 균열. 도시가 아닌 대지, 순환이 아닌 생산, 매도ㆍ매각 이익이 아닌 반환의 문제. 탈도시화. 2) 내치적 통제화의 공준에 대한 의심. 중농주의자들, ‘자연지배주의자’들은, 첫째, 사물의 흐름은 수정될 수 없으며, 수정하려고 하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통제화(règlementation)는 무용할뿐더러, 해롭다. 통제화가 아니라, 조절(régulation), 사건 자체의 흐름에서 출발해서 그 흐름에 따라 이루어지는 조절이 중요. 3) 인구가 그 자체로 부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내치의 주체는 통제에 따라야 하는 신민들. 주어진 영토에 따라 그 안에 존재하는 자원에 따라 행해지는 자연히 인구의 자동적 조절(-468). 4) 국가 사이의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정치가’의 시대가 사라지고, ‘경제학자’의 시대가 도래한다. 경제학자는 국가이성을 둘러싸고 정돈된 사유에 대한 이단, 국가와 관련한 이단, 내치 국가와 관련한 이단. 정치가들의 통치성이 우리에게 내치를 가져다주었다면, 경제학자들의 통치성은 우리를 근대적이고 현대적인 통치성의 몇 가지 기본노선으로 안내한다.


1) 정치가들이 도입한 통치성, 국가이성의 통치성은 국가가 갖는 비자연성, 절대적인 인공성. 중세적인 우주론적 신학으로부터의 단절, 무신론. 경제학자들은 이 인공성에 메커니즘의 자연성, 자연주의를 도입한다. 사회적 자연성. 인간의 공통된 실존 특유의 자연성인 사회, 곧 시민사회가 국가에 대항하여 출현한다. 국가가 담당하게 된 것은 사회, 시민사회이며, 이는 신민의 집합에만 관여하는 국가이성 혹은 내치적 합리성과 질적으로 다른 합리성.


2) 과학적 인식, 합리성에의 요구는 18세기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장된다. 바로 이 인식이 정치경제학이다. 정치경제학은 - 국가를 부유하게 만드는 수순이 아니라 - 여러 가지 부나 인구를 생산ㆍ순환ㆍ소비라는 세 개의 축으로 엮어내는 과정에 관한 인식이다. 권력과 지식의 관계, 통치와 과학의 관계.


3) 인구의 문제. 인구는 자신의 고유한 변화와 이동의 법칙이 있다. 인구의 자연성. 그리고 이는 개인들 사이에 일련의 자발적인 상호작용, 순환작용, 전파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인구 내부에서의 이익 구성의 법칙. 인구학(人口學, demography)은 사회의학, 당시 용어로는 ‘공중위생’의 관념과 연관. 신민의 집합으로서의 인구는, 이제, 자연적 현상의 집합으로서의 인구로 이어진다.


4) 이 새로운 통치성은 규제가 아니라 조절을 목표로 한다. 경제적 절차나 인구에 내재하는 과정인 자연적 현상의 안전을 확보를 본질적 기능으로 하는 국가의 개입, 즉 안전메커니즘의 확보를 목표로 한다(-478). 5) 자유의 기입.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법과 관련해 권리를 남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제대로 통치할 줄을 모른다는 의미.


이상과 같은 과정을 거쳐 거대하고 과잉적인 내치가 해체된다. 1) 경제 혹은 인구처럼, 현상들을 부추기고 조절하는 거대한 메커니즘이 생성된다. 2) 단순히 부정적인 기능, 곧 ‘무질서의 소거’를 목적으로 하는 근대적 경찰 제도가 확립(-479).


새로운 통치성은 경제적 실천, 인구관리, 자유와 여러 자유의 존중과 관련해 분절화되는 공법, 억제적 기능을 갖는 경찰을 갖는다. 이러한 품행(品行, conduite, conduct)에 대한 대항품행(對抗品行, contre-conduite, counter-conduct)은 (국가에 대항하는) 시민사회, (오류ㆍ몰이해ㆍ맹목과 관련해 세워지는) 경제적 진실, (개인의 이익에 대립하는) 만인의 이익, (자연적으로 살아있는 현실로서의) 인구의 절대적 가치, (불안전과 위험과 관련해 확정되는) 안전, (통제화에 대립하는) 자유와 같은 요소들(481). 이런 의미에서 국가이성의 역사, 통치이성의 역사, 통치이성과 그에 대립하는 대항품행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483).


“이상입니다. 올해 하고 싶었던 것은 모두 사목을 특징으로 하는 그런 형식들의 권력에 대한 상대적으로 국소적이고 미시적인 분석을 출발점으로 해서 국가라는 일반적 문제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그것도 역설이나 모순 없이 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상의 작은 실천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조건은 바로 국가를, 역사가 그 자체를 출발점으로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초월적 현실로 격상시켜 버리지 않는다는 한에서인 것입니다. 국가의 역사는 인간들의 실천 자체를 출발점으로 하고, 인간들의 행위나 사고방식을 출발점으로 해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행동방식으로서의 국가, 사고방식으로서의 국가, 이것은 명백하게 국가의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분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무튼 충분히 풍부한 가능성 중 하나이긴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풍부함은 미시권력의 수준과 거대 권력의 수준 사이에는 절단과 같은 것이 없다는 것, 한 쪽에 대해 말할 때 다른 쪽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배제되지 않는다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미시권력에 대한 분석은 통치나 국가와 같은 문제에 대한 분석과 아무 어려움 없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484)

 



 



 
 

2013. 12. 20.

maurice merleau-ponty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년 3월 14일~1961년 5월 4일)
 
 


Original French
English Translation
국역
1942
La Structure du comportement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42)
The Structure of Behavior, trans. Alden Fisher, (Boston: Beacon Press, 1963; London: Methuen, 1965).
『행동의 구조』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8
1945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Paris: Gallimard, 1945)
Phenomenology of Perception, trans. Colin Smith (New York: Humanities Press, and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62);
trans. revised by Forrest Williams (1981; reprinted, 2002);
new trans. Donald A. Landes (New York: Routledge, 2012).
『지각의 현상학』
류의근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1947
Humanisme et terreur, essai sur le problème communiste
(Paris: Gallimard, 1947)
Humanism and Terror: An Essay on the Communist Problem trans. John O'Neill, (Boston: Beacon Press, 1969)
『휴머니즘과 폭력. 공산주의 문제에 대한 에세이』
박현모ㆍ유영산ㆍ이병택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1948
Sens et non-sens (Paris: Nagel, 1948, 1966)
Sense and Non-Sense trans. Hubert and Patricia Allen Dreyfus,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64).
『의미와 무의미』
권혁면 옮김
서광사
1990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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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
Conscience et l'acquisition du langage (Paris: Bulletin de psychologie, 236, vol. XVIII, 3–6, Nov. 1964)
Consciousness and the Acquisition of Language, trans. Hugh J. Silverman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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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
1952
Merleau-Ponty à la Sorbonne: résumé de cours, 1949-1952
(Grenoble: Cynara, 1988)
Child Psychology and Pedagogy: The Sorbonne Lectures 1949-1952, trans. Talia Welsh (Evanston, Ill.: Northwestern Univ. Pr., 2010)
-
1951
Les Relations avec autrui chez l’enfant
(Paris: Centre de Documentation Universitaire, 1951, 1975)
The Child’s Relations with Others, trans. William Cobb, in The Primacy of Perception ed. James Edie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64), 96-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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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Éloge de la Philosophie, Lecon inaugurale faite au Collége de France, Le jeudi 15 janvier 1953
(Paris: Gallimard, 1953)
In Praise of Philosophy trans. John Wild and James M. Edie,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63)
-
1955
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Paris: Gallimard, 1955)
Adventures of the Dialectic trans. by Joseph Bien,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73; London: Heinemann,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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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
Les Sciences de l’homme et la phénoménologie
(Paris: Centre de Documentation Universitaire, 1958, 1975)
Phenomenology and the Sciences of Man, trans. by John Wild in The Primacy of Perception ed. by James Edie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64), 4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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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Éloge de la Philosophie et autres essais (Paris: Gallimard,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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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Signes
(Paris: Gallimard, 1960)
Signs trans. Richard McCleary,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64).
[부분번역]
『간접적인 언어와 침묵의 목소리』
김화자 옮김
책세상, 2005
1961
L’Œil et l’esprit
(Paris: Gallimard, 1961)
Eye and Mind trans. by Carleton Dallery in The Primacy of Perception ed. by James Edie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64), 159-190. Revised translation by Michael Smith in The Merleau-Ponty Aesthetics Reader
(1993), 121-149.
『눈과 마음. 메를로-퐁티의 회화론』
김정아 옮김
마음산책
2008

1964
Le Visible et l’invisible, suivi de notes de travail
Edited by Claude Lefort
(Paris: Gallimard, 1964)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Followed by Working Notes, trans. Alphonso Lingis,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68).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남수인ㆍ최의영 옮김
동문선
2004
1968
Résumés de cours, Collège de France 1952-1960
(Paris: Gallimard, 1968)
Themes from the Lectures at the Collège de France, 1952-1960
trans. John O’Neill,
(Evanston: Northwestern Univ. Pr.,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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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
La Prose du monde
(Paris: Gallimard, 1969)
The Prose of the World, trans. John O’Neill, Evanston:
Northwestern University Pr., 1973; London: Heinemann, 19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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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편역본]
『현상학과 예술』
오병남 옮김
서광사, 1989


* 메를로-퐁티: 몸의 현상학자 - 서동욱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실체란 무엇인가? 바로 이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다. 생각하는 실체가 육체로부터 들끓어 오르는, 우리 영혼의 판단을 흐리는 ‘정념’을 통제해야 한다. 또 이런 문제도 생각해 보라. 우리 인간은 생각하는 실체인데, 저 바깥에 걸어 다니는 개와 고양이 같은 짐승들은 무엇인가? 그들에게도 영혼불멸을 보증해줄 생각하는 실체 같은 것이 있는가? 천만에! 저것들은 모두 동물기계들이다……. 이것이 데카르트가 만들어놓은 근대적 세계관이다. 여기서는 명석판명한 정신이 떠받들어 올려지고, 몸이란 이 정신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거추장스러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다. 몸이 없었다면 보다 잘 인식하고 보다 자유로웠을 텐데! 플라톤에서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 대부분의 구간에서 이런 한탄이 메아리친다. 메를로-퐁티는 바로 이러한 세계관에 맞서서 ‘몸’의 불가결한 근본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철학자다.

 
프랑스 현상학의 대표자 - 사르트르와의 엇갈린 길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는 누구인가? 그의 주저의 명칭 [지각의 현상학](1945)이 알려주는 것처럼, 그는 ‘현상학자’라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의 친구로서 같이 유명한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를 창간했고, 또 냉전 시대의 정치적 문제로 갈라서기도 했으며, 세잔(Paul Cézanne)에 대한 매력적인 그림론을 남기기도 했고 현대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마지막 주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1968)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는, 그의 인생의 중요한 여러 굴곡들보다도 저 ‘현상학’이라는 명칭이 더 우리를 매혹시킨다. 거기 메를로-퐁티 철학의 진수가 들어있을 것만 같으니까. 사르트르는 메를로-퐁티에 대한 추도사 [길목에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동등했고 친구였지만 동류(同類)는 아니었다.” 이 말은 정치적인 문제에서만 진실인 것이 아니라, 후설(Edmund Husserl)로부터 발원하여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거쳐 이 두 사람이 계승하고자 했던 현상학에 대한 입장 차이에 대해서도 진실이다. 그렇다면 얼마간 사르트르와의 비교를 통해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의 정체를 드러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후설의 발견 - 의식의 지향성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도대체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사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으라면 의식의 ‘지향성(Intentionalität)’이라는 개념이다. 종래에 의식은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것(res cogitans)’이라는 개념에서 보듯 일종의 고립된 사물처럼 다루어져 왔다(저 표현에서 res란 라틴어로 사물(thing)을 뜻한다). 그러나 의식은 고립되어 있지 않고 늘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다. 여러분도 한번 실험해 보라. 눈을 감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함으로써 여러분의 의식이 가 닿는 각종 대상, 상념, 수학적 개념, 물리학적 이론, 기억 등등으로부터 의식을 고립시키려고 해보라.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의식은 잠을 잠으로써 의식 없음(무의식)에 도달할 수는 있을지언정, 깨어있는 의식은 늘 무엇에 대한 의식,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있는 의식이지 그 자체만으로 모든 것과 무관하게는 존재할 수는 없다. 이것이 의식의 지향성이다.
 
현상학이란 무엇인가? - 대상은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대로 존재한다

 
의식이 늘 어떤 대상에 대한 의식이라는 것은, 대상은 항상 의식에 주어지는 대상으로서만 존재하지, 의식 바깥의 대상일 수는 없다는 것을 뜻한다. 다르게 얘기하면, 대상의 존재 양식이 별도로 있고, 그것이 의식에 주어지는 형태가 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대상은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대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때 의식에게 존재하는 그 자체의 모습대로 자신을 내주는 대상을 ‘현상(Phänomen)’이라고 부른다. 왜 굳이 여기에 ‘현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가? 이 말의 어원을 조사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그리스적 어원을 가지는 이 현상이라는 단어, 즉 파이노메논(ϕαινμενον)은, ‘자신을 그 자체로 내보여준다’를 의미하는 동사 파이네스타이(ϕανεσϑαι)에서 나왔다. 스스로 존재하는 모습대로 나타나는 것이 그리스인들이 애초에 부여했던 ‘현상’의 의미인 것이다. 이 '현상에 대해 말하는(논하는) 일'이 바로, ‘현상(Phänomen)’과 ‘말함(logos)’이 결합된 단어인 ‘현상학(Phänomeno-logie)’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사르트르 식의 현상학 - 자유와 선택을 가능케 하는 텅 빈 의식

 
현상, 즉 의식에 주어진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은 곧 그 대상의 존재 방식을 기술하는 일과 동일하다. 앞서 말했듯 대상은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대로 존재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현상을 제대로 기술한다면, 우리는 대상의 참다운 존재 양식을 가능케 하는 대상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대상들이 저 마다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이 다르다면, 이 다양한 방식을 기술하는 현상학의 작업은 무궁무진할 것이다. 이런 방법론으로서 현상학이 가지는 강력한 힘이 지난 세기 현상학을 사회학, 정치학, 미학 등등 여러 학문에 그토록 널리 파급되도록 했다.

 
현상학의 저 파급력에 감염된 사람 가운데 하나가 사르트르다. 그는 의식에 주어지는 대상을 기술하는 후설의 현상학을 '자아(ego)'의 문제 쪽으로 가져갔다. 의식에 주어지는 대상으로서 자아의 성격이 무엇이냐가 사르트르의 흥미를 끌었던 것이다.

 
흔히 우리는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도대체 이 ‘나’란 뭘까? 이것은 의식의 주인인가? ‘태권브이’를 타고 있는 훈이처럼 자아는 의식 안에 거주지를 가지는가? 사실 책을 읽고 있을 때 책의 내용을 지향하는 의식은 있고, 떠나는 버스를 잡으려고 뛰어갈 때 버스를 지향하는 의식은 있지만, 이 의식 안에 ‘자아’가 들어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대상(책, 버스 등)을 지향하는 익명적 의식이 있을 뿐이다. 자아 역시 다른 실재적 대상이나 관념적 대상처럼 의식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에 주어지는, 의식 바깥의 대상일 뿐이다. 즉 텅 빈 내용 없는 익명적 의식이, 어떤 내용을 지닌 자아, 기질과 역사와 개인적 관계 등등의 내용을 지닌 자아를 ‘대상으로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은 그 안에 자아라는 내용물을 가지지 않는 완전히 텅 빈 의식이다. 그리고 지향적 광선을 외부로 쏘아대고 있는 의식의 이 텅 비어 있음이 바로 사르트르의 실존적 ‘자유’를 이룬다. 이 의식은 준수해야 할 어떤 내용(개인의 성격, 창조주의 작품, 어머니의 기대를 받는 아들 등등)을 가지는 인격적 자아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텅 비어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우며, 이 자유에 입각한 ‘선택’만이 이 의식이 살아가는 방식이 된다.
 
메를로-퐁티는 반대 길로 가다 - 우리는 텅 비지 않고 늘 충만해 있다

 
메를로-퐁티는 이런 철학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간다. 지각의 현상학에 나오는 구절을 보자. “우리는 결코 무(無) 속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충만 속에, 존재 속에 있다. 마치 얼굴이 쉬고 있을 때나 심지어 사망해 있을 때도 늘 무엇인가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게끔 되어 있는 것처럼.” 사르트르에게 의식은 아무런 내용도 가지지 않는 텅 빈 ‘무’였다. 나의 자아나 신체를 비롯해 내용을 지니는 것들은 이 텅 빈 의식이 바라보는 외적 대상들일 뿐이었다. 메를로-퐁티는 반대로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사르트르가 말하는, 아무런 내용으로도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텅 빈 의식 같은 데서 출발하지 않는다. 애초에 우리는 피할 수 없이 충만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의식이 빠져나간 죽은 얼굴조차 늘 충만한 내용(표정)을 지니지 않는가? 외부의 세계는 바로 프리즘으로 들어오는 빛이 굴절되어 들어오듯 이 충만한 내용과 뒤섞이며 우리 의식에게 주어진다. 외부 대상이 우리에게 의식되는데 불가결하게 개입하는 조건인 이 충만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이다.

 
몸은 의식 외부의 대상이 아니다 - 몸을 통해서 비로소 외부 대상은 주어진다
 
“우리를 세계에 연결하는 지향적 단서”는 무엇인가? 여느 현상학자들처럼 메를로-퐁티는 [지각의 현상학]에서 이런 물음과 더불어 사색을 시작한다. 혹시 우리는 ‘과학’을 통해서 세계와 관계를 가지는가? 즉 과학과 철학의 이론에 의해 구성된 세계가 우리의 근본적 지각인가? 오히려 과학의 이론적 그물망은 그 그물코가 너무 커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지각은 모두 그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비판적 질문에 답해나가는 가운데 메를로-퐁티는 몸을 우리의 원초적 지각의 ‘선험적 근거’로서 발견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라는 하나의 간격’을 통해서만 세계에 연결된다. “우리는 세계를 그리는 데 있어 우리 자신인 그러한 빈틈, 세계가 어떤 사람에 대하여 존재하게 되는 그러한 빈틈을 지울 수 없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은 바로 세계에 대한 이러한 간격을 통해서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각 그 자체가 “거대한 다이아몬드의 흠집” 같은 이 간격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간격의 정체는 바로 우리의 ‘몸’이다.

 
지금껏 철학은 고작해야 몸을 인식 주관이 대면하는 여타의 다른 대상과 다를 것이 없는 시공을 채우고 있는 연장(延長)으로 보았다. 몸을 인식 주관의 개념적 틀이 파악하는 대상으로만 보았지, 그것이 모든 인식이 가능하기 위한 선험적 조건이라는 점은 모르고 있었다. 즉 “규정된 대상의 총합으로서가 아니라 규정된 모든 사고에 앞서 스스로 우리의 경험에 끊임없이 현존하는 잠재적 지평으로서의 몸”을 발견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몸은 의식이 지각하는 대상이기 이전에, 몸 때문에 바로 외부 대상들이 우리에게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더 이상 세상 바깥에 있는 비신체적인 “고공비행을 하며 내려다보는 주체”는 없으며, 세계 안의 몸과 뒤섞여 있는 의식이 주체가 된다. 피부의 조직끼리 갈라낼 수 없이 얽혀 있듯 의식은 “세계의 조직(tissu du monde)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림이 알려주는 것들 - 화가의 시선은 신체와 얽혀 있다

 
세계가 비신체적인 명증한 의식(데카르트의 코기토, 사르트르의 익명적 의식)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신체 자체를 통해 굴절되는 모습이 세계에 대한 근본적인 지각 자체라는 점은 무엇보다도 ‘그림의 영역’을 통해 잘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메를로-퐁티가 말년의 『눈과 정신』(1964)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까닭이다. 메를로-퐁티는 세계 바깥의 명증한 의식에 비견되는 르네상스 시대의 허구적인 원근법을 이렇게 비판한다.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들은, 그때까지의 회화의 탐구와 역사를 마감하고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정확한 회화의 기초를 확립한 척 한에 있어서 거짓된 것들이었다. 반면 화가들은 어떤 원근법의 기술도 정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요컨대 원근법은 실재의 본 모습을 드러내 주기보다는 작위적으로 구성된 비전(vision)을 보여주는 허구적인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안의 존재인 몸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듯 세계 바깥에 위치하는 의식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세계에 대해 작위적으로 설정된 허구적인 지점이다.



File:Loreto Fresko.jpg


http://it.wikipedia.org/wiki/Melozzo_da_Forl%C3%AC

 
화가의 시선이란 신체와 떨어져 “고공비행을 하며 내려다보는 주체”가 아니라 ‘눈’이라는 신체와 얽혀 있으며 이 눈이라는 신체는 세계 안의 다른 대상들 사이에 있다. “인간이 자기 집에 살고 있듯이 화가의 눈은 존재의 조직 속에 살고 있다.” 따라서 세계의 비전을 절대적으로 보여줄 세계 바깥의 절대적인 한 지점에서 시작되는 원근법이란 없고, 존재의 조직 안에 들어있는 눈의 관점에 따라 그때그때 나타나는 비전만이 있다. 그렇기에 세계가 가시적이 되는 방식은 무궁한 것이고 이에 따라 그림 역시 무한하게 생산된다.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역시 마찬가지다. 대상이 의식에 주어지는 방식에 대한 기술 역시 세계 안에서 몸이 사는 방식이 무한한 만큼 종결 지어 질 수 없는 무한한 내용을 가질 것이다.
    
이처럼 메를로-퐁티를 통해, 의식이 바라보던 외부 대상에 불과하던 신체가, 우리 의식적 활동 자체를 가능케 하는 근본적 권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2013. 9. 20.

[대담] 철학과 인문학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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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는 한 대학 철학과 학술지에 싣기 위해 한 두 달(?) 전에 행한 인터뷰다.
사실 인터뷰 전체는 현재의 2-3배 분량인데, 녹취록 정리가 어려워
일단 이번에는 앞부분만 학회지에 싣기로 했다. 
 
 
 
 




 
















 

 
 

2013. 9. 1.

미셸 푸코의 생명관리정치


미셸 푸코의 생명관리정치
 
1. 푸코와 권력의 문제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대략 1970년을 전후로 이전의 이른바 자신의 ‘구조주의적’ 혹은 광의의 언어학적 시기를 마감하고, 니체적 의미로 이해되어야만 하는 ‘권력의 시기’로 접어든다. 물론 푸코 스스로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과연 그 이전 시기의 푸코가 과연 구조주의자였는가의 여부는 이 자리에서 다루지 않기로 한다. 여하튼 푸코는 1970년을 전후로 변화 혹은 변혁의 이유와 동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공시적인 혹은 이른바 ‘정태적인’ 구조주의적 함축을 지양하고, 권력의 문제에 집중한다. 푸코의 권력에 대한 이러한 천착은 대략 1970년 말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되는 이후의 이른바 ‘주체 혹은 윤리의 시기’가 시작되는 1980년의 인터뷰에서조차 스스로 “근본적으로 나는 오직 권력의 역사만을 다루었을 뿐입니다.”라는 발언을 가능케 할 만큼 푸코 사유의 근본적 지향점들 중 하나였다. 푸코는 1976년 언어학으로부터 권력에로의 이러한 전환을 ‘의미 관계들이 아니라, 권력 관계들’(Relations de pouvoir, non relations de sens)이라는 말로써 정리한 바 있다. 물론 이 권력의 시기를 대표하는 동시에 그의 대표적인 주저로 보아야만 할 1975년의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Surveiller et punir. La naissance de la prison)이 바로 그러한 것처럼, 권력의 문제는 푸코의 사상 중 가장 독창적인 동시에 논쟁적인 주제임에 틀림없다. 이 시기 푸코 권력관은 단적으로 1970년대 초 이래 푸코가 사용하기 시작하는 권력-지식(le pouvoir-savoir) 및 그 기초로서의 권력 관계들(les relations de pouvoir)이라는 용어로서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속하는 푸코의 이른바 생명정치(le bio-pouvoir) 개념은 바로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만 올바로 이해될 수 있는 개념이다.
 
2. 전통적 권력관(觀) 비판
 
 
 
푸코는『감시와 처벌』을 통해 권력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다. 이 때 푸코가 말하는 권력의 ‘기존’ 관념들이란 단적으로 플라톤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정치사상이라는 세 가지 권력관을 일컫는다. 우선 플라톤주의는 진리와 권력의 관계를 대립적인 것으로 본다. 곧 권력은 본성적으로 권력이 진리를 굴복시키려하는 억압적 측면을 가지고 있고, 진리는 그것에 굴종, 중립, 거부 혹은 초연하는 등의 다양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 물론 플라톤의 ‘해답’은 진리를 이해하는 자들이 정치적 권력을 쥐어야만 한다는 이른바 철인정치론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은 단적으로 지배계급이 어떻게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진리에 복종할 수 있는가를 다룬 이론이다. 다음으로 근대의 자유주의적 권력관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기초적 배경 위에 상행위 및 시민적 자유를 첨가한다. 물론 이에는 사목적 권력(le pouvoir pastoral) 및 공안(公安, la police)의 개념을 포함한 다양한 근대의 통치 기술들이 포함된다. 이에 더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늦었지만 당시 1970년대의 유럽, 좁게는 프랑스 사회 안에 사는 푸코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권력관은 물론 사회주의의 권력관이다. 사회주의적 권력관 역시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위험한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관계로 본다. 곧 사회주의의 권력관은 단적으로 그것이 표방하는 ‘진리-이데올로기’ 사이 대립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진리는 과학성을 담보한 세계에 대한 올바른 반영으로서의 인식이며, 그것이 계급적 이해관계 곧 허위의식에 의해 가려진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물론 푸코는 이러한 세 가지 기존 관념들을 모두 논파하고자 하지만, 우선 스스로 이 모든 것의 중핵에 위치한다고 보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공격한다. 1973년 푸코는 브라질의 한 세미나에서 발표한 일련의 논문들을 모은 「진리와 사법적 형식들」(La vérité et les formes juridiques)을 통해 플라톤주의의 진리-권력관을 비판하며 자신의 권력-지식론의 단초를 내비친다. “[플라톤 이래] 서양은 진리가 결코 정치적 권력에 속하지 않으며, 정치적 권력은 눈먼 것이라는 거대한 신화에 의해 지배되게 된다. [...] 플라톤과 함께 서양의 거대한 신화 하나가 시작되는데, 지식과 권력 사이에는 이율배반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권력을 포기해야만 한다. 지식과 학문이 자신의 순수한 진리를 찾는 곳에는 더 이상 정치적 권력이 존재할 수 없다. / 이 거대한 신화는 이제 청산되어야 한다. 모든 지식, 모든 인식의 뒤에서 참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의 권력 투쟁이라는 점을 보임으로써 니체가 파괴하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이 신화이다. 정치적 권력은 지식의 결여가 아니며, 지식과 함께 짜여 지는 것이다.”
 
 
이제 푸코는 플라톤주의의 권력관을 근원적으로 부정하고 두 가지 근대적 권력관으로서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권력관을 고찰한다. 한편 푸코에 따르면, ‘우리 시대’에 이렇게 권력의 문제가 전면에 부각된 것은 ‘우리의’ 현실이자 과거인 파시즘스탈린주의의 존재이다. 푸코는 이들을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 혹은 두 가지 병리학적 형태라 부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20세기 권력의 두 가지 커다란 질병이 칸트로부터 시작되는 주된 철학적 자원들 중 하나로부터 기원하는 ‘우리 정치적 합리성’의 관념 및 절차를 이용해 왔다는 점이다. “칸트 이래로, 철학의 역할은 이성으로 하여금 경험 내에 주어진 것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이 시대 이후, 즉 근대 국가 및 사회의 정치적 관리의 발전 이후, 철학은 또한 정치적 합리성의 과잉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이 ‘질병들’ 아래에 놓여있는 것은 합리성 혹은 정치적 합리성 자체의 문제이다. 이 ‘질병들’은 칸트 이래의 국가 이론 내에 존재하는 근대적 정치적 합리성에 관련된다는 의미에서 고유하게 근대적인 문제들이다. 따라서 확립되어야 할 것은 근대 정치적 합리성의 기제를 분석할 수 있는 권력 관계의 새로운 경제이다. 오늘날 권력은 다름 아닌 합리성 곧 진리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질병들’에 관련된 오늘날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다름 아닌 적절한 분석 도구의 결여이다. 권력에 고유한 관계 양식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분석의 도구를 발견하기 위한 첫 작업으로서 푸코는 기존의 권력 개념들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다. 아래에서 나는 푸코의 이러한 탐구를 사법적 유형, 선험적 주체의 유형, 이데올로기적 유형, 경제적 유형 및 총체성의 유형이라는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하여 푸코는 기존의 플라톤주의ㆍ자유주의ㆍ사회주의의 권력관 일반을 관통하는 지점들을 포착ㆍ비판한다.
 
1) 첫째, 권력에 대한 사법적(juridique ou juriste) 관념이 있다. 이러한 관념은 권력을 순수히 그리고 배타적으로 부정적이며 억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사법적 권력은 “권력의 시니피에, 중심점, 권력을 구성시키는 핵심을 여전히 금지, 법률, 안 된다고 말한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한 번 “너는 해서는 안 된다”(tu ne dois pas)는 형식, 공식에 둔다.” 권력 심급의 이러한 금지 법률에로의, 혹은 “주인 형상”에로의 환원은 다시 세 가지 주요한 역할을 갖는다. 이 환원은 권력이 가족, 국가 및 교육·생산 관계 등 우리가 위치해 있는 몇몇 수준들에 동질적이라는 권력 도식을 유효한 것으로 만든다. 그 결과로 권력은 순수히 배타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서 인식된다. 억압, 거부, 한정, 장벽, 검열, 금지. 간단히 말해, 이러한 환원 안에서 권력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법에로의 환원”은 “권력의 근본적 작용을 법의 언표, 금지의 담론 등과 같은 하나의 발화 행위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권력의 행사는 ‘너는 해서는 안 된다’는 순수한 형식을 꿈꾼다.” 권력의 사법적 관념은 권력의 순수히 부정적 관념인 억압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에 대한 억압적 관념은 권력의 긍정적 측면을 포착하게에는 전적으로 부족하며 불충분한 것이다. 따라서 권력을 “억압을 그 기능으로 하는 하나의 부정적 심급”으로서보다는 “모든 사회적 신체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생산적 그물망”처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새로운 틀을 찾아내야만 한다.
 
더욱이 권력의 사법적 관념 안에는 항상 군주(souverain)와 신민(sujet)이라는 두 개의 주체가 존재한다. 사법적 권력 모델의 본질적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권력을 합법화 시켜주는 것은 무엇인가?” 권력에 대한 사법적 관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라는 수단을 통한 권력의 합법화ㆍ정당화ㆍ합리화의 문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법의 형식은 하나의 권력 표상 체계이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권력을 금지의 심급으로 만듦으로써 우리는 일종의 이중적 주체화를 행하게 된다. “그것이 수행되는 측면에서, 권력은 마치 아버지, 군주, 일반의지의 절대권(souveraineté)처럼 금지를 말하는 일종의 - 현실적, 상상적 혹은 여하튼 순수하게 사법적인 - 절대적 주체로서 이해된다. 권력에 복종하는 측면에서, 우리는 마찬가지로 금지의 승인이 이루어지는 지점, 우리가 권력에 대해 ‘예’ 혹은 ‘아니오’라 말하는 지점을 결정함으로써 권력을 ‘주체화’(subjectiviser)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절대권의 수행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자연법의 포기, 혹은 사회 계약, 혹은 주인의 사랑을 전제하는 것이다.” 사법적 권력 개념에서 관계의 두 당사자인 군주와 신민은 각기 하나의 선험적 주체 혹은 실체로서 이해되어 있다. 이를 푸코는 다음처럼 요약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권, 즉 법, 금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구성되지 않은 정치 철학입니다. 왕의 머리를 잘라야 하며, 우리는 아직 정치학 이론에서 이 일을 수행하지 못 했습니다.” 결국, 푸코에 따르면, 부르주아의 흥기 이후, “서양은 사법적 체계, 법적 형식이외의 어떤 권력 분석·형성·표상의 체계도 갖지 못했다.” 한편 부르주아지야말로 근대의 대표적 계급이라는 점에서 권력의 사법적 형식은 근대에 고유한 권력 형식이자, 이 시기의 대표적 권력 형식이다.
 
2) 이러한 사법적 권력 개념으로부터 권력에 대한 두 번째 전통적 형식이 탄생한다. 이는 선험적 주체의 관념에 기반한 권력 형식이다. 이는 고전 철학의 전통적 주체 개념을 전제하는 것으로 오늘날에는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의해 대표된다. 예를 들면, 이러한 이론들에서 우리는, 주체의 요청으로부터 출발하여, 어떤 형식의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다. 푸코는 실체로서의 주체로서 간주되는 개인을 전제하는 이런 선험적 주체의 아 프리오리한 이론을 거부한다. 그런데 이 개인은, 그것에 대해 권력이 행사되고 달려드는 어떤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특성, 정체성, 자기에로 향하는 주형작업과 함께 신체, 복수성, 운동, 욕망, 힘들 위로 행사되는 권력 관계의 생산물”이다. 푸코에게 있어서의 주체는 단지 복수적이며 복합적인 권력 관계들에 의해 구성된 하나의 효과, 생산물에 불과하다. 간단히 말해, 권력에 유용한 혹은 저항하는 하나의 지식을 생산하는 것은 인식 주체의 행위가 아니다. 주체는 하나의 목표에 관련되어 스스로를 구성한다. 더욱이 주체-지식-대상(sujet-connaissance-objet)의 삼중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작용은 본질적으로 상호적 과정이다. “인식하는 주체, 인식되어야 할 대상 및 인식의 양태들 역시 권력-지식 및 그것의 역사적 변형이라는 이 근본적 함축의 효과들이다.” 우리는 따라서 자유롭거나 혹은 그렇지 않은 하나의 주체로부터 권력을 분석할 수 없다. 푸코에 따르면, 우리는 인식 및 주체의 우위라는 관념에 기초한 권력의 옛 개념을 포기해야만 한다.
 
3) 권력에 대한 세 번째 전통적 견해는 이른바 진리와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립에 기초해 있다. 물론 이러한 관념은 마르크스주의의 주된 주장들 중 하나이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푸코는 마르크스주의가 반성되지 않은 근대적 곧 19세기적 국가 철학의 관념을 담지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은, “순진하게도”, “고전 철학을 모델로 삼고 있으며 권력이 탈취하고자 하는 의식을 부여받은” 하나의 인간 주체를 전제하고 있다. 1976년의 한 대담에서 푸코는 이데올로기 개념과 관련된 난점들을 다음처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나에게 이데올로기라는 관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로 사용하기 곤란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이 관념이 이른바 진리라는 어떤 것과의 잠재적인 대립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제 생각에 문제는 하나의 담론 안에서 과학성, 진리에 속하는 것과 다른 것 사이의 구분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어떻게 그 자체로는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하나의 담론 내부에서 진리 효과가 생산되었는가를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적절치 못한 점은 그것이 내 생각에는 필연적으로 주체와 같은 무엇인가를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물질적 결정요소 혹은 하부구조로서 기능하는 무엇인가에 대해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유들로 말미암아, 이른바 진리-이데올로기의 대립 쌍은 푸코에 의해 ‘현재의’ 정치 현상을 분석하기에 무능력한 것, 부적절한 것으로 판정된다. 진정한 정치적 질문의 대상은 이데올로기, 소외된 의식, 환상, 오류와 같은 것이 아니라, 합리성진리 그 자체이다. 이렇게 해서, 지식인에 있어서의 정치적 문제는 더 이상 “과학에 연관되어 있는 이데올로기적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진리의 정치학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한가를 알아내는” 것이며, “진리 생산의 제도적, 경제적, 정치적 체제를 분석하는” 것이다.
 
4) 권력에 대한 네 번째 전통적 관념은 경제주의(l'économisme)이다. 1976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푸코는 “정치적 권력의 사법적자유주의적 개념, 즉 18세기 사상가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하는 개념,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개념 혹은 여하튼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이라 할 만한 현재의 일정한 개념 사이의 일정한 공통점”에 대해 언급한다. 경제주의는 자유주의 및 마르크스주의 권력 개념의 공통요소이다. 18세기 혹은 보다 정확히는 계몽에 대한 언급을 통해 푸코는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양자가 모두 근대 계몽주의 경제사상의 아들들임을 명확히 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주의는 근대 권력 이론의 대표적 양식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제주의는 역사적으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우선 자유주의적 경제주의는 근본적으로 권력에 대한 사법적이며 계약론적인(contractuelle) 개념이라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경제주의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소유물, 재산으로 간주된다. “권력에 대한 고전주의의 사법적 개념에서 권력은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하나의 권리, 소유 가능한 하나의 재산, 그리하여 우리가 계약 혹은 양도 명령에 해당하는 어떤 사법적 행위 혹은 입법 행위에 의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이전되거나 박탈당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서 간주된다. 권력은 구체적인 것, 모든 개인이 하나의 정치적 주권을 구성하기 위해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보유하거나 양도할 수 있는 무엇이다. 따라서 이 모든 이론 전체에 걸쳐 드러나고 통용되는 권력과 재산, 권력과 (富)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유비가 있다.” 하나의 소유하거나 박탈당할 수 있는 권리 혹은 재산으로서의 권력. 경제주의는 본질적으로 계약 및 교환의 질서라는 사법적 작동의 모델 위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이 경우 정치권력은 근본적으로 교환 및 재산·재화 순환의 경제학 안에서 자신의 전범을 발견하게 된다.
 
다음으로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주의가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경제주의는 푸코가 권력의 경제적 기능 작용이라 부르는 것 안에 속하는데, 이는 “생산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생산력 전유의 발전 및 고유한 양식을 가능케 하는 계급 지배를 연장시키는” 것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개념이다. 정치권력은 경제 안에서 자신의 구체적 형식 및 현재적 기능의 원칙 그리고 자신의 역사적 존재이유를 발견한다. 간단히 말해, 마르크스주의에는 상부구조로서 간주되는 정치권력에 대한 하부구조로서의 경제의 우위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권력 개념 양자에는 공히 일종의 경제주의 혹은 경제적 환원주의가 존재한다.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막론하고, 이 경제적 환원주의를 제거하기 위해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의 다음의 것이다. “권력 분석은, 어떤 방식으로든, 항상 경제로부터 추론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푸코의 대답은 물론 부정적이다. 푸코는 경제주의와 연관된 제 문제점을 일련의 질문들로 요약한다. “첫째, 권력은 경제에 비해 언제나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는가? 권력은 본질적으로 그 목적과 존재 이유에 있어 경제에 봉사해야 하는가? 권력은 경제를 움직이게 하고 이 경제에 특징적이며 그 기능에 본질적인 관계들을 견고하게 만들고 유지시키며 연장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가? 두 번째 질문 : 권력은 상품의 모델을 따라 형성되어야 하는가? 권력은 소유되고 획득되며 계약 혹은 힘에 의해 양도되고 포기되며 회수되고 순환되며, 어떤 지역에는 공급되고 또 어떤 곳에는 회피되어야 하는 어떤 것인가? 혹은 비록 권력 관계들이 경제적 관계들 안에서 혹은 그러한 관계들과 함께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해도, 또 비록 사실상 권력 관계들이 언제나 경제 관계들과 함께 일종의 결합 혹은 고리를 구성한다 해도, 이 경우, 경제와 정치적인 것 사이의 분리 불가능성은, 기능적인 종속의 질서 혹은 형식적 동형성의 질서가 아니라, 정확히 서로 분리되어야만 할 또 다른 하나의 질서가 아닐까?”
 
요약하면, 권력의 ‘권력 아닌 것’, 즉 이 경우에는 ‘경제’로부터의 자율성독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 이는 결국 권력의 비(非) 경제중심주의적 분석의 가능성을 묻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경제에 기초하지 않은 권력의 새로운 관념을 수립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는 푸코에게 있어 니체에 의해 처음으로 설정되었던 새로운 권력 개념에 기초한 새로운 권력 분석의 방법론을 제시하는 일이다. 이러한 방법론 안에서 권력의 형성 구성, 기능, 이른바 권력의 ‘본성’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설정될 것이다.
 
5) 권력에 대한 다섯 번째 전통적 관념은 권력에 대한 총체성(la totalité) 혹은 총체화(la totalisation)의 관념이다. 권력에 대한 이러한 유형의 고찰은 언제나 전체주의적 이론에 고유한 억제 효과라 부를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된다. 즉 이러한 이론들에서 권력은 언제나 포괄하며 포섭하는 것으로서 바라본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 및 마르크스주의는 집중화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집중화되어 있는 이론들이다. 스스로를 권력 이론의 전위로서 선언하는 이러한 총체성의 담론들은 언제나 한편으로는 모든 권력 관계에 선행하며 하나의 주어진 실체로서 이해되는 아 프리오리한 주체 혹은 개인을, 또 한편으로는 억압을 그 본질로 하는 또 하나의 절대적 실체로서의 국가 기구(appareil d'Etat)를 전제한다. 이렇게 해서 총체성의 담론은 자신의 분석을 사실상 권력의 거시적(macro) 즉 국가적 차원에로 한정한다. 이를 푸코는 정치 분석에 있어서의 국가 기구의 우위라 부르는데, 이러한 우위 혹은 한정의 결과는 본질적으로 하나의 사법적 상부구조로서 이해되는 권력의 보존과 재생산이다. 따라서 이러한 총체화 담론은 권력의 미시적 수준, 즉 “일련의 점점 더 미묘해지는 미시적 권력들”로서의 미시 권력(le micro-pouvoir) 혹은 하부 권력(le sous-pouvoir)을 구분해 낼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푸코가, 들뢰즈의 표현처럼, “우리가 ‘미시적’이라는 말을 가시적인 혹은 언표 가능한 힘들의 단순한 미니어처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또 다른 영역, 하나의 새로운 관계 유형, 지식에로 환원할 수 없는 사유의 차원”, 즉 “항상 움직이고 있으며 고정시킬 수 없는 관계들”로서 이해한다는 조건 하에, 권력이 하나의 미시물리학으로 되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그리고 이 권력의 미시물리학(la microphysique du pouvoir) 안에 “부차적인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분석은 권력의 국지적(locale)이고 지역적(régionale)이며 특수한(spécifique) 분석 위에 새로이 기초 지어져야 한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권력에 대한 푸코의 이러한 미시 분석이 그것의 거시적 차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권력의 거시적 측면을 미시 권력의 ‘보다 가시적이지만, 사실상은 더 부차적인’ 하나의 파생적 측면으로서 바라본다. “국가는 그것의 사법적, 군사적 및 여타의 거대 기구들과 함께 오직 주된 길과는 다른 운하를 통과하는 권력의 모든 그물망에 대한 뼈대, 보증을 표상할 뿐이다. [...] [국가는] 물론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만, 우월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국가적 단위는 근본적으로는 “우월적 지위를 차지하는 이 지역적이고 특수한 권력들에 대해 부차적”이다. 간단히 말해, 푸코는 “국가가 전혀 다른 차원 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자체로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구성하는 무수한 톱니바퀴 및 초점들에 의해 생겨나는 어떤 다수성의 결과 혹은 하나의 전체적 효과처럼” 보이게 되는 새로운 그림을 우리 앞에 펼쳐 놓는다. 마치 물리학 이론에서 상대성 이론이 전통적인 뉴턴 물리학의 모든 측면을 하나의 특수한 경우로서 포괄하는 것처럼, 미시 권력 역시 거시 권력의 모든 측면들을 자신의 특수한 하나의 경우로서 포괄한다. 우리는 이를 거시 권력에 대한 미시 권력의 우위라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이 미시 권력의 관점을 권력 관계들에 기초한 권력-지식이라는 새로운 권력의 작용 체계에 대한 정합적이고도 완전한 설명을 1975년의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다.
 
3. 권력 관계들, 권력-지식
 
푸코의 주된 철학적 기획들 중 하나는 주체·대상·인식·신체·영혼·지식·국가 등 전통적으로 실체(substance)로서 간주되었던 일련의 사물 혹은 현상들을 문제화하는 것이다. 『감시와 처벌』과 관련하여 이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전통적인’ 실체로서의 권력 개념이다. 권력은 역사적으로 생성되고 구성된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하는데, 이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권력 분석 작업에로 귀결된다. 실체가 아닌 이 새로운 권력은 고립적인 것이 아니며 다른 요소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국지적·지역적·관계적이고, 유일성이 아닌 다수성ㆍ복수성을 그 성질로 가지며, 동질적이지 않고 이질적이다. 푸코는 이러한 비실체적이며 언제나 다수적·복수적인 권력을 권력 관계들(les relations ou rapports de pouvoir) 혹은 힘 관계들(les rapports de forces)이라 부른다. 아래에서는 이 권력 관계(들)의 몇 가지 특징들을 알아보자.
 
1) 우선, 권력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며, 차라리 하나의 관계 혹은 일련의 관계들이다. 푸코는 자신의 새로운 권력론의 철학적 기초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권력은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대문자로 시작되는 이른바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권력, “그것은 행사되는 것이며, [...] 오직 행위 안에서만 존재한다.” 권력 혹은 권력 관계는 “다른 것들에 대해 직접적 혹은 즉각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작용하는 하나의 행동 양식”(un mode d'action qui n'agit pas directement et immédiatement sur les autres, mais qui agit sur leur action propre) 혹은 “행동에 대한, 실제적 또는 현실적인, 미래의, 현재의 행동들에 대한 하나의 행동”(une action sur l'action, sur des actions éventuelles, ou actuelles, futures ou présentes)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2) 따라서 권력은 단수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다수·복수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주어진 특정 시간, 특정 공간 내에 존재하는 각각의 권력은 자신만의 특수한 규칙들을 갖는다. 간단히 말해, “어떻게 그것[권력]이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탄생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문제이다. 따라서, 사회가 상이한 권력들이 이루어내는 하나의 군도(群島)인 한, “권력에 대해 말하고자” 그리고 “그것들[권력들]을 각자의 역사적 지역적 특수성 안에서 국지화시키려” 노력해야 한다.
 
3) 권력의 이러한 복수적ㆍ다수적인 동시에 특수하고 지역적인 특성은 권력의 이질성( l'hétérogénéité)이라는 권력 관계의 또 다른 특성을 드러낸다. 전통적 권력 개념 안에서 권력은 본질적으로 동질적인 어떤 것, 즉 거시권력으로서의 국가적인 것, 국가에 귀속되는 것으로서 이해되었다. 권력 관계 안에는 다만 다양한 수준의, 혹은 무한한 수의, 이질적이고 상이한 미시권력들, 작은 권력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권력 관계들은 서로서로에 대해 이질적이다. 따라서, 예를 들면 마르크스주의의 경제적 심급과 같은, 어떤 유일한 최종적 심급에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이질적 장들의 집합이 존재한다.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서 감옥, 광기, 안전, 보건, 위생, 성, 의학, 인구 등의 생명 정치적 테크놀로지들은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그러한 것들의 존재 혹은 중요성이 마르크스주의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이 푸코 이론이 오늘날 그토록 ‘각광받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권력에 대한 하향적이 아닌 상향적 분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들뢰즈가 권력이란 “오직 자기 회랑의 망, 다수의 자기 땅굴만을 알아보는 두더지”이며, 이 두더지는 ”무수한 지점으로부터 움직이면서”, “밑으로부터 온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4) 권력 관계들은 소유물이 아니라 효과이다. “이 권력은 소유된다기보다는 행사되는(s'exerce) 것이라는 것, 그것이 지배 계급에 의해 획득 혹은 보존되는 ‘특권’이 아니라, 그 전략적 위치들의 집합이 갖는 효과(l'effet d'ensemble de ses positions stratégiques), 지배받는 자들의 위치에 의해 드러나며 때로 동반되는 효과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통적 의미의 ‘권력’이 사실은 언제나 권력-지식의 효과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효과로서의 권력은 전통적 개념 안에서 권력의 행위자 혹은 후견인 또는 보증인의 역할을 수행했던 실체적 혹은 선험적 주체, 혹은 개인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국가 및 권력과 마찬가지로, 개인 역시 실체가 아니며, 다만 그것을 생산하는 권력 관계의 가시적인 그러나 부차적인 하나의 효과일 따름이다. 이제 권력에 대한 전통적 삼위일체-, 권력을 행사하고 권력 행사의 대상이 되는 개인, 실체로서의 권력, 권력이 행사되는 장소로서의 국가-는 파괴되고, 개인화(정상화)-권력 관계들-국가화(l'individualisation(normalisation)-des relations de pouvoir-l'étatisation)라는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다. 이러한 ‘전략적 위치들의 집합이 발생시키는 효과’로서의 권력 관계에 대한 빼어난 사례는 벤담(J. Bentham, 1748-1832)이 고안한 판옵티콘(le panoptique)이다. 판옵티콘 혹은 일망감시체제(一望監視體制)에서, 우위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은 다름 아닌 요소들의 위치들 혹은 배치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판옵티콘 안에는 어떤 절대적 지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권력이 “언제나 이미 그곳에”(toujours déjà là) 있기 때문이며, 우리가 결코 “바깥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5) 이러한 절대적 지점의 부재로부터 주어진 권력 관계들 안에서의 전략적·전술적 위치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위상학이 탄생한다. “권력 관계들”이란 표현은 사실상 “우리가 언제나 서로서로에 대해 전략적인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푸코는 이런 의미에서 전략을 “권력 관계들 안에서 작동하는 기제들”이라 정의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략에는 소유자 혹은 행위자가 없으며, 각각의 우선적 목적들이 갖는 상이한 효과 및 그 효과의 유용성으로부터 탄생하는 일정한 수의 전략들이 존재할 뿐이다. 서로서로를 구성하고 작동시키며 변형시키는 것은 언제나 주어진 특수한 상황 내에서의 전략적 배치들이다.
 
4. 생명관리정치와 내치
규율적 권력은 “외부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규범화 혹은 정상화하는 권력이며, 전방위적인 규율적 사회 관리 체계이다. 정상화(normalisation)란 단적으로 푸코가 말하는 권력 테크놀로지의 모든 부정적 효과들을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로서, 규범화ㆍ규격화ㆍ표준화ㆍ획일화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된다. 우리 사회에서, “규범성 혹은 정상성의 심판관은 [...] 모든 곳에 존재한다. 우리는 교수-심판관, 의사-심판관, 교육자-심판관, ‘사회 노동자-심판관’, 이들 모두는 규범적인 것 혹은 정상적인 것의 보편적 지배를 가능케 한다. 그리고 각자는 자신의 신체, 태도, 행위, 행동 양식, 재능, 성과를 이에 복종시키는 지점에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감시받고 처벌하며, 감시하고 처벌한다. 누가 누구를? 우리가 우리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을. 이렇게 규율적인 동시에 공안적인 일망감시적 근대사회는 타인과 자신을 ‘정상화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의 슬로건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서로서로 닮도록 하라.” 그리고 이러한 근대적 정상화의 테크놀로지는 역사 속에서 근대 자유주의(liébralisme) 및 푸코가 말하는 생명 정치의 관념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우선 푸코는 생명 정치를 다음처럼 정의한다. “건강, 위생, 출생, 장수, 인종 등과 같이 18세기 이래 우리가 인구(population) 안에서 구성되는 생명체들 전체에 고유한 현상들에 의해 나타나는 통치적 실천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들을 합리화하기 위한 방식들.” 이는 다시 16-17세기 이래 유럽에 나타난 통치 기술로서 ‘한 영토 안에 존재하는 인구 전체의 복지’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려는 내치(內治, 公安, la police)의 관념에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 la police라는 용어는 오늘날 일어로서 우리가 이해하는 경찰 혹은 그러한 제도라는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인구의 총체적 복지’를 책임지는 내치학(Polizeiwissenschaft)은 결혼ㆍ출산ㆍ생존을 총괄하여 관리하는 의학적ㆍ행정적 국가적 관리 시스템의 탄생을 가져온다. 정신의학과 우생학이라는 기획은 19세기 후반 이 분야의 두 가지 중요한 혁신이다. 이것이 푸코가 말하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서양을 지배해온 생명 권력의 실체이다. 생명 권력이란 이렇게 18세기 말 이래 유럽에서 발달한 자신의 영토 안에 속하는 모든 인민을 대상으로 하여 그 인구, 생명, 건강, 안전을 총괄 관리하는 국가 관리 시스템, 곧 공안 정책을 일컫는다. 이는 긍정적인 의미에서 현대의 복지 국가의 이론적 시초이며, 동시에 부정적으로 국가에 의한 인민의 전면적 관리 통제 사회의 시초로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푸코의 생명 권력에 대한 이해는 권력-지식론에 입각한 것으로 그 부정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 권력은 생명에 대한 곧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le pouvoir sur la vie)이다.
 
 
5. 생명 권력 - 죽음의 권리와 생명에 대한 권력
 
 
푸코에 따르면, 군주권의 특징은 서양에서 오랫동안 생명과 죽음의 권리(droit de vie et de mort)이며, 이는 사실상 “죽게 만들거나, 살도록 내버려두는 권리”(droit de faire mourir ou de laisser vivre)이다. 이는 ‘칼’로써 상징되는 권리로서, 이때의 권력은 주로 징수의 수단, 갈취의 기제, 일부분의 부를 전유할 권리, 피지배자들로부터 생산물, 재산, 봉사, 노동, 그들의 피를 강제로 빼앗는 역사적 관행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권력은 무엇보다도 물건, 시간, 육체,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권리로서 특히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서 그 절정에 달하는 권리이다. 그러나 고전주의 시대 이후, 징수는 더 이상 권력의 주된 기제가 아니며 다만 피지배자들에 대한 선동, 강화, 통제, 감시 그리고 그들의 생명 및 물자의 최대한의 활용 및 조직화 기능을 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경향이 보인다. 다시 말해 고전주의 시기 이후 서양에서는 여러 세력들을 가로막고 축소시키고 파괴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그것들을 낳고 키우며 조직하는데 더 몰두하는 새로운 유형의 권력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 강조점은 죽음의 권리에서 생명을 관리하는 권력의 요청에 상응하는 혹은 적어도 상응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권리에로 이동한다. 죽음의 권리는 이제 “생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다시 말해 생명을 관리하고 최대한으로 생명을 이용하여 확장하고, 생명에 대한 정확한 통제와 전체적 조절을 행사하고자 하는 권력” 곧 생명 (관리ㆍ통제) 권력, 곧 생명과 생존, 육체와 종족의 관리자로서의 권력의 한갓 보조물로서 이해된다. 이러한 논리 아래에서는 사형제도조차 어떤 인권 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죄인의 잔악성, 교정 불가능성 그리고 사회의 안녕과 안전을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선택으로서 이해된다. ‘죽게 만들던가 살게 내버려두는’ 이전의 권력은 이제 개인을 ‘살게 만들던가 죽음 속으로 추방하는’ 권력(un pouvoir de laisser vivre ou de rejeter dans la mort)이 된다. 마찬가지 논리에 의해, 자살조차도 근본적으로 군주와 그를 보증하는 신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이전 시대의 논리를 뚫고 생명에 행사되는 권력의 경계와 틈새를 비집고 나타난 개인적이고 사적인 권리의 일부로서 이해된다. 사형제도와 자살은 이처럼 근대 생명 권력이 가능케 했던 하나의 사회적이고도 정치적인 현상이다.
 
푸코에 따르면 17세기 이래 두 가지 주요한 형식으로 전개되어 왔는데, 하나는 기계로서의 육체에 관심을 두는 것으로서 이는 “육체의 조련, 육체적 특성에 대한 최대한의 활용, 체력의 착취, 육체의 유용성과 순응성의 동시적 증대, 육체의 효률적이고도 경제적인 통제 체제로의 통합 및 이 모든 것의 규율을 특징짓는 권력의 절차” 곧 인체의 해부정치학(anatomo-politique du corps humain)이며, 또 다른 하나는 종(種)-육체(le corps-espèce) 곧 생명의 역학이 스며들고 생물학적 과정의 전반을 통해 주축의 역할을 하는 육체를 중심으로 하는 인구의 생명 정치학이다. 이러한 육체의 규율인구의 조절, 혹은 육체의 조절생명의 계산적 통제라는 양대 원리는 서로서로를 형성하며 서로에 대해 상보적인 두 형식으로 생명 권력, 생명 정치학, 해부 정치학 생명 정치학(anatomo-politique et bio-politique)의 탄생을 가능케 한 두 결정적 요소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실상 성의 역사 혹은 섹슈얼리티의 역사는 하나의 생명 역사(bio-histoire) 곧 생명을 관리하고 통제해온 담론의 역사이다.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생명 역사 혹은 생명 권력은 정상화라는 하나의 중심을 돈다. “정상화하는 사회는 생명을 중심으로 하는 특정한 권력 테크놀로지의 역사적 효과이다.” 정상화 과정에서 정치적 쟁점으로서의 성이 갖는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본질적으로 정상화하는 권력’이라는 배경 곧 생명을 중심으로 한 육체에 대한 미시권력(micro-pouvoir sur le corps)이라는 관점 아래에서이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육체와 인구의 접합 지점에서 (le sexe)은 죽음의 위협보다는 오히려 생명의 관리를 둘러싸고 조직되는 권력의 중심점이 된다.” 이처럼 성은 18세기에 들어 공안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성의 공안(police du sexe)으로부터 ‘금지의 엄격함이 아니라 유용하고 공적인 담론에 의해 성을 규제할 필요’가 나타난다. 이러한 기본적 관심에 의해 이제 인구가 당대의 중요한 정치경제적 문제로서 부각되며, “인구라는 이러한 경제적 정치적 문제의 핵심에는 성이 있다.”
 
 
6. 욕망의 억압에서 쾌락의 활용으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러한 생명정치의 조절 메커니즘 속에서 무력하게 관리되는 존재로서 살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푸코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서 근본적으로 억압-해방의 가설에 입각해 있는 ‘욕망’ 개념의 폐기 및 ‘쾌락의 활용’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가령, 하나의 실체로서의 성이 존재하며, 그것이 또 다른 하나의 실체로서의 권력과 조우하고, 그러한 만남을 통해 권력과 성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며 서로 결합되거나 혹은 거부되는 것이라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은 “권력이 육체 및 그것의 물질성, 힘, 에너지, 감각, 쾌락을 포착하는 가운데 권력이 구성하는 섹슈얼리티 장치 안에서도 가장 내적이고 가장 관념적이며 가장 사변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를 지배하는 섹슈얼리티 장치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그 지점은 이른바 ‘생물학적 혹은 자연적이고도 본래적인’ 과 그것의 욕망이 아니라, 역사적 정치적으로 구성된 결과물로서의 육체와 그것의 쾌락을 분석해야 한다. 따라서 “섹슈얼리티 장치에 대한 반격의 거점은 ‘성-욕망’(le sexe-désir)이 아니라 육체와 쾌락(le corps e les plaisirs)이어야 한다.”
 
이미 1976년에 발간된 『앎의 의지』에 등장하는 이 마지막 문장 안에는 이미 8년 후인 1984년 『쾌락의 활용』의 테제들이 배태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쾌락의 활용』에서 푸코는 『앎의 의지』와 달리 진리의 정치적 역사(histoire politique de la vérité)를 전면에 내세우고, 이제 욕망인의 해석학, 욕망인의 분석학, 욕망인의 계보학에 집중한다. 푸코의 입장에서 ‘욕망’이란 단어는 정신분석에서 그 단어가 여전히 주요한 개념으로서 사용되고 있는 사실에서 잘 보이는 것처럼 여전히 근본적으로 푸코가 비판하는 프로이트의 억압-해방 가설에 입각해 있는 것, ‘성-욕망’의 담론에 기초한 것이다. 자연적 생물학적 성과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육체와 쾌락이 문제이다. 욕망이 아니라 쾌락이다. 쾌락은 주어진 한 사회와 시기에서 일정한 진리놀이들과 함께 개인이 스스로를 주체로 구성하는 주체화 과정의 주요 요소인 동시에, 자기의 테크놀로지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이다. 푸코는 이를 다시 타인에 대한 지배 및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의 관념과 연결시키면서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의 문제와 연관시킨다. 통치성은 이후 푸코의 사유를 자기와 자기 자신의 관계(rapport de soi à soi)를 의미하는 ‘윤리’라는 새로운 영역에로 이끌게 되는 개념이다. “자기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자는 다른 사람도 지배할 수 없다.” 이것이 푸코의 지식의 영역, 권력의 영역을 잇는 제3의 영역 곧 윤리(l'éthique)의 영역이다. 쾌락의 활용(usage des plaisirs, chrēsis aphrodision)이란 고대 그리스 사상에서 보이는 개념으로서, 푸코는 이를 육체에 대한 관계, 아내에 대한 관계, 소년들에 대한 관계 및 진리에 대한 관계라는 네 가지 영역을 통해 분석한다. 이는 다시 고대 그리스어에서 ‘성적 쾌락’을 의미하는 단어였던 ta aphrodisia 개념에 대한 분석과 겹치면서 “아프로디지아가 어떻게 도덕적 배려의 영역으로서 구성되었는가?”를 탐구한다. 푸코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도덕적 체험의 변형들을 이해한다면, 성적 엄격함은 법전(code)의 역사보다 더욱 더 결정적인 하나의 역사, 곧 개인을 도덕적 행동의 주체로서 성립시키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양식의 완성으로서 이해되는 윤리의 역사에 속한다.”
 
 
생명 정치는 다름 아닌 이러한 윤리의 역사라는 새로운 관점에 의하여 분석되고 조망되어야 한다. 이는 곧 한 사회가 스스로를, 한 개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는 문제와 결합되어 있다. 인식과 윤리, 권력은 이렇게 서로 분리 불가능한 방식으로 얽혀있는 복합적인 그물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