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8.

gouvernementalité + biopolitique

* Judith Revel, Le vocabulaire de Foucault, ellipses, 2002.
 
 
 
 
 

 

 
 
생명관리정치 biopolitique
 
 
* ‘생명관리정치’라는 용어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사이에, 권력이, 일정한 수의 규율화 절차를 가로질러 개인들을 통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인구를 구성하는 생명체의 집합 전체를 통치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형시키고자 했던 방식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양한 국지적 생명관리권력을 가로지르는 생명관리정치는 따라서 정치적 관건으로 설정되는 한에서의 출생, 섹슈얼리티[성현상], 영양, 위생, 건강의 관리 등을 다루게 된다.
 
 
** 생명관리정치의 관념은 자신을 낳은 정치적 합리성의 틀, 곧 자유주의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함축한다. 자유주의라는 말은, 단순히 산업 생산의 모델에 기반해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으려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늘 지나치게 통치할 위험성이 있음을 확언하는 하나의 통치의 수행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국가이성’이 ‘국가’의 성장 과정을 일관하여 자신의 권력을 증대시키려고 노력했던 반면, “자유주의적 고찰은 국가의 존재로부터 출발해서 국가를 위한 국가라는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을 통치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관련해 내부성 및 외부성의 복합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회로부터 출발한다.”(『생명관리정치의 탄생』, 「강의요지」, 437-438) 법적 분석으로도 경제적 분석으로도 환원 불가능한 (물론 양자는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이 새로운 유형의 통치성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새로운 대상, 곧 ‘인구’를 탄생시키는 권력의 테크놀로지로서 드러난다. 인구는 특수한 병리학적 생물학적 특성을 보이는 살아있는 존재들 및 공존 존재들의 집합이며, 따라서 그 생명 자체가 노동력의 보다 나은 관리를 위해 통제되어야 할 것으로서 가정된다. “길들일 수 있는 신체 및 개인의 발견과 동시적인 인구의 발견은 그것의 주위에서 ‘서양’의 정치적 절차가 변형되었던 기술적인 또 다른 거대한 핵심이다. 사람들이 - [방금 언급했던] 해부정치(anatomo-politique)와 상반되는 의미에서 - 내가 ‘생명관리정치’라 부르고자 하는 것을 발명해낸 것이 바로 이때이다.”(「권력의 그물망」, 1976/1981) 규율이 스스로를 신체의 해부정치학으로서 규정하면서 본질적으로 개인에 적용되는 것임에 반해, 생명관리정치는 생명의 통치를 목적으로 인구에 적용되는 이 거대한 ‘사회 의학’을 대변한다.
 
*** 생명관리정치의 관념은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 번째는 푸코 자신에게서 발견되는 하나의 모순에 연관된다. 생명관리정치라는 용어가 나타난 최초의 텍스트들에서, 이 관념은 독일인들이 18세기에 ‘내치학’(Polizeiwissenchaft)이라 불렀던 것, 곧 ‘국가’의 성장 과정을 일관하는 규율 및 질서의 유지에 연관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후의 텍스트들에서는, 생명관리정치는 정반대로, 전통적인 ‘국가’/사회의 이분법이 무너지면서 생명 일반의 정치적 체계가 부상하는 어떤 순간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이 두 번째 정식화로부터 생겨난다. 권력이 생명에 투자했다는 말을 생명이 하나의 권력이라는 말로 이해하는 한에서, 생명관리정치를 생명관리권력의 집합체로 간주해야 하는가? 우리는, 생명 자체 안에서, 곧 신체와 노동 안에서는 물론 감정과 욕망, 섹슈얼리티 안에서도, 탈예속화(désassujettissement)의 계기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주체성 생산의 장소, 대항권력(contre-pouvoir) 출현의 장소를 확정할 수 있는가? 이 경우, 생명관리정치라는 주제는 근본적으로 푸코의 마지막 분석을 특징짓는 권력과 윤리 사이의 관계에 관련되는 재형식화를 위한 것이 될 것이고, 더하여, 생명관리정치는 정치로부터 윤리로 옮겨가는 이행의 순간을 정확히 표상하게 될 것이다. 1982년 푸코가 인정했듯이, “권력관계와 자유의 자동사성(intransitivité) 사이의 관계에서 보이는 ‘반목’ 및 권력관계의 재문제화, 세련화, 분석은 부단한 정치적 과업이며, 심지어는 모든 사회적 존재에 불가분한 정치적 과업 자체이다.”(「주체와 권력」)
 
통치성 統治性 gouvernementalité
 
* 푸코는 1978년 이후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에서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사이에 일어났던 단절을 분석한다. 이 단절은 그 원리가 전통적인 도덕적 덕목들(지혜, 정의, 신에 대한 존경) 및 절도(節度)의 이상(신중, 성찰)을 다시금 취하고 있는 중세 이래의 전승된 통치 기술로부터, 그 합리성이 ‘국가’ 기능을 자신의 원리 및 적용 영역으로 삼는 통치 기술, 곧 ‘국가’의 합리적 ‘통치성’으로의 이행을 지시한다. 이 ‘국가 이성’(raison d'Etat)은 기존하는 규칙들에 대한 강제적 정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마찬가지로 어떤 정의로운 주권자 혹은 ‘군주’에 대한 마키아벨리적 모델과도 무관한, 합리성의 새로운 모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 “이 ‘통치성’이라는 단어로서 나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말하고 합니다. 나는 통치성이라는 용어를 인구를 주요 목표로 삼고 정치경제학을 앎의 주된 형식으로 삼으며 안전장치를 본질적인 기술적 도구로 삼는, 복합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매우 특수한 이런 권력 형식의 수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도, 절차, 분석과 반성, 계산과 전략으로 구성된 집합으로 이해합니다. 두 번째로, 나는 통치성이라는 말을, 서양 전체에 걸쳐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 주권, 규율처럼 - 다른 모든 타인들에 대한 ‘통치’라 부를 수 있을 무엇에로 이끌어가는 경향, 힘의 선(線)으로 이해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통치라는 말을 통해, 제 생각에는 아마도 그것을 통해 15, 16세기에는 행정국가가 되었던 중세의 정의 ‘국가’가 조금씩 조금씩 ‘통치화’(콜레주 드 프랑스 1977-1978년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 중 1978년 2월 1일, 제4강) 되어 갔던 과정, 혹은 차라리, 과정의 결과들을 읽어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국가’ 이성이라는 새로운 통치성은 정치적-군사적 테크놀로지 및 ‘내치’(內治, police)라는 두 개의 거대한 정치적 테크놀로지 및 지식의 집합 위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두 테크놀로지의 교차점에서 우리는 통화의 국제적 순환과 상업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상업을 통한 풍요로움에서 인구, 노동력, 생산 및 수출의 증대, 강하고 많은 군사를 보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대합니다. 중상주의와 관방학의 시기에, 인구-부(population-richesse)의 쌍은 새로운 통치 이성의 특권적 대상이었습니다.”(콜레주 드 프랑스 78년, 사유체계의 역사, 1977-1978년 강의요지 「안전, 영토, 인구」) 이 쌍은 ‘정치경제학’ 형성의 기초 자체에 존재합니다.
 
*** 근대적 통치성은 처음으로 ‘인구’에 대한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 곧 근대적 통치성은 어떤 영토 위에 존재하는 신민들의 총체, 혹은 ‘인류’라는 일반적 범주 혹은 법적 주체의 집합이 아닌, 개인들의 삶에 대한 전반적이고 정치적인 관리에 의해 구성되는 대상(생명관리정치)으로서의 인구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생명관리정치는 단순한 인구의 조절을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기 자신들 및 타인들과 맺는 전략에 대한 통제를 함축한다. 통치 테크놀로지는 따라서 개인의 교육과 변형의 통치[관리]는 물론, 가족 관계 및 제도에 대한 통치에도 역시 관련된다. 푸코가 타인들에 대한 통치성의 분석을 자기 자신에 대한 통치성의 분석으로 확장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나는 타인들에 대해 수행되는 지배의 테크닉, 그리고 자기의 테크닉, 이 양자의 만남을 ‘통치성’이라고 부릅니다.”(「자기의 테크놀로지」,『자기의 테크놀로지』, 1982년 미국 버몬트대학교 세미나) [38-40]
 
 
 
 
 
 
 
 
 
1977-1978년. 안전, 영토, 인구
 
강의요지
 
이 강의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인구 개념과 그 조정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집중하는 정치적 지식의 생성이다. 이것은 ‘영토국가’로부터 ‘인구국가’로의 이행인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구국가가 영토국가를 대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역점의 이동, 새로운 목표가 등장했다는 것, 따라서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기술이 출현한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생성을 추적하기 위해서 실마리로 삼은 것이 ‘통치’ 개념이다.
 
 
1. 통치라는 개념의 역사뿐만 아니라 주어진 사회에서 ‘인간의 통치’를 확보하기 위해 사용된 절차와 수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탐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차적 접근에서 보자면, 그리스와 로마 사회에서는 정치적 권력의 행사가 ‘통치’의 권리 및 가능성을 함의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통치’란 어떤 지도자가 개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나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그 지도자의 권위 아래 개인들을 두는,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일생 전반에 걸쳐 그들을 인도하려는 활동을 의미한다. 폴 벤느의 지적에 의하면 목자로서의 주권자, 인간 무리의 목자로서의 왕-행정관이라는 관념은 고전기 이전 그리스의 텍스트나 제정기의 극소수 저자들의 텍스트를 빼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교육자, 의사 혹은 체육교사 등의 활동을 특징지을 때는 양들을 지키는 목자라는 은유를 수용하고 있다. 『정치가』의 분석은 이 가설을 확증해주는 듯하다.
 
사목(司牧)권력이라는 주제가 충분히 확대되는 것은 동방, 특히 히브리 사회에서이다. 이 주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첫 번째로 목자의 권력은 정해진 영토에 대해서라기보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에 대해 행사된다. 두 번째로 그의 역할은 무리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것, 무리를 매일 지키는 것, 무리의 구제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사목권력이 개인화시키는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권력은 개인화시킬 때 본질적인 역설에 의해서 무리 전체와 단 한 마리의 양에게 같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교가 서구에 도입했고, 교회 사목에서 제도화된 형태를 취한 그와 같은 유형의 권력이다.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영혼의 통치는 만인의 구제에 있어서, 또한 각 사람의 구제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중심적이며 교묘한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15세기와 16세기가 되면 사목의 전반적 위기가 시작되고 전개된다. 그것은 단지 사목적 제도의 폐기라는 형태가 아니라 보다 더 복잡한 형태로 이뤄진다. 요컨대 이제까지와는 다른 정신지도의 양상, 목자와 무리 사이의 새로운 유형의 관계, 그렇다고 꼭 이제까지보다 덜 엄격한 것은 아닌 형태의 관계가 추구된다는 것이다. 또한 아동, 가족, 영지, 공국을 ‘통치하는’ 방식에 관한 탐구도 이뤄지게 됐다. 통치라든지 자기통치의 방식, 인도나 자기인도의 방식에 대해서 행해지는 이와 같은 전반적인 물음은, 봉건제가 끝나갈 즈음에 경제, 사회적인 관계의 새로운 형식, 새로운 정치적 구조화와 함께 이뤄지고 있었다.
 
2. 이어서 정치적 ‘통치성’의 형성, 다시 말해서 개인들로 이뤄진 총체의 품행이 주권적 권력의 행사 내에 점차적으로 명확하게 함의되어가는 방식을 몇 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다. 이 중요한 변형은 16세기 말~17세기 초에 쓰인 여러 가지 ‘통치술’에서도 나타난다. 이 변형은 아마도 ‘국가이성’의 출현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그 이전까지 통치술의 원칙은 전통적인 덕(지혜, 정의 , 자유, 신의 법이나 인간 관습의 존중)으로부터, 혹은 공통의 정교함(신중함, 신중하게 내려진 결정, 가장 뛰어난 고문을 주변에 두려는 배려)로부터 차용됐으나 이런 통치술로부터 다른 통치술, 즉 합리성이 그 고유의 원칙을 갖고 국가를 그 특수한 적용영역으로 하는 통치술로의 이행이 이뤄졌다. ‘국가이성’이란 그 이름으로 다른 모든 규칙을 전복시킬 수 있는 명령도 아니고, 다른 모든 규칙을 전복시켜야 하는 명령도 아니다. 그것은 군주가 인간들을 통치하면서 주권을 행사해야 할 때에 수반되는 새로운 합리성의 모형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의라고 하는 주권자의 덕으로부터도,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영웅의 덕으로부터도 요원한 상태에 있다.
 
국가 이성의 발달은 제국이라는 주제의 소멸과 상관관계에 있다. 마침내 로마가 소멸한다. 새로운 역사적 지각이 형성된다. 그 지각은 이미 시대의 끝이라든지, 개별적인 모든 주권국이 최후의 나날에 제국으로 통일되는 것에 집중되지는 않는다. 그 지각은 모든 국가가 각각의 삶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투쟁해야만 하는 한없는 시간으로 열리게 된다. 영토에 대해 주권자가 갖는 정당성에 관한 물음보다도 중요한 것으로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국력의 인식과 발전이다. 국가들 간의 경합 공간, 유럽적이기도 하면서 세계적이기도 한 이 공간은 일찍이 왕조들 간의 적대관계가 서로 대결하고 있었던 공간과는 매우 다른 곳이다. 이 [새로운] 공간에서 중요한 문제는 힘의 역학의 문제, 그도 아니라면 힘이 힘의 역학에 개입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합리적 기술의 문제이다.
 
따라서 국가이성을 정식화, 정당화한 이론들을 제외하면 국가이성은 정치적 지식과 테크놀로지의 두 거대한 집합체 내에서 형성된다. 하나는 외교적이며 군사적인 기술이다. 이것은 동맹체계와 군사장치의 조직을 통해 국력을 확보하고 발전시킨다. 베스트팔렌 조약의 지도적 원칙 가운데 하나였던 유럽의 균형은 이 정치적 테크놀로지의 결과이다. 다른 하나는 ‘내치police’에 의해 구성된다. 당시 이 단어에 부여됐던 의미에서, 그러니까 국력을 내부로부터 증강하는 데 필요한 수단의 총체라는 의미에서의 내치에 의해 말이다. 이 중대한 두 테크놀로지의 교차점에 공통의 도구로서의 통상과 국제적인 통화 순환을 놓아야 한다. 인구, 노동자, 생산, 수출을 증가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강력한 다수의 군대를 갖출 수 있는 가능성이 기대되는 것은 통상에 의해 부가 증대됨에 따라서이다. 인구-부라고 하는 조합은 중상주의와 관방학의 시대에는 새로운 통치이성의 특권적 대상이었다.
 
3. 이 인구-부라는 문제의 정립이 정치경제학을 형성시킨 조건들 가운데 하나였다(이 문제의 정립은 세제, 식량난, 인구감소, 무위-결식-부랑 등의 여러 가지 구체적 측면에서 이뤄졌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자원을 증대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통제적, 강제적인 체계로 인구를 증가시키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이런 체계로는 자원-인구라는 관계를 더 이상 관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정치경제학이 발전한 것이다. 중농주의자들은 이전 시대의 중상주의자들과 대립하는 반인구주의자가 아니다. 중농주의자들은 인구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제기한다. 중농주의자들에게 인구란 영토에 사는 신민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다. 또한 아이를 갖고자 하는 각 사람들의 의지, 혹은 아이의 탄생을 권장하거나 권장하지 않는 입법 등이 낳은 결과의 총합도 아니다. 중농주의자들에게 인구는 그 모두가 적절하고 자연적인 것은 아닌 몇 가지 요인에 의존하는 변수이다(조세체계, 순환활동, 이윤의 배분은 인구비율의 본질적인 규정요인이다). 그러나 이런 의존[관계]는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결과, 인구는 인공적으로 변경을 가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에 ‘자연적으로’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내치’ 테크놀로지로부터 파생한 것, 또한 경제적 고찰의 탄생과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서 인구라는 정치적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인구는 법권리의 주체를 단순히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노동을 해야만 하는 일손의 총체로 구상된 것도 아니다. 인구는 한편으로는 살아 있는 존재의 일반적 체제와 연결되어 있고(여기서 인구는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 당시에는 새로웠던 이 개념은 ‘인류’와 구별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신중하게 고려된 개입(법, 혹은 어떤 ‘캠페인’에 의해 획득할 수 있는 태도나 몸짓, 그도 아니라면 삶의 방식을 변경하는 것을 매개로 해서 행해지는 개입)에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여러 요소의 집합으로서 분석된다.
 
세미나
 
이번 세미나에서는 독일인들이 18세기에 ‘내치학Polizeiwissenschaft’이라고 부른 것의 몇 가지 측면을 분명히 하는 것이 목표였다. 요컨대 “국력을 견고히 하고 증강하는 것에 관여하고, 국력의 선용에 힘쓰며, 신민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려고 하는” 모든 것, 주로 “그들 삶의 편의를 꾀하고 생존에 필요한 것을 조달하려는 질서, 규율의 유지와 통제”에 관한 이론과 분석인 내치학의 몇 가지 측면에 관해서 말이다.
 
나는 이 ‘내치’가 어떤 문제에 답하는 것이었는지 보여주려고 했다. 내치에 할당된 역할이 훗날 경찰제도에 속하게 된 역할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 국가 증강을 확보하기 위해 사람들이 내치에 기대한 효과는 어떤 것이었는지 말이다. 국가 증강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유럽 국가들 간의 적대관계와 경쟁관계 속에서 자국의 지위를 명확히 하고 향상시킨다는 목표였고, 다른 하나는 개인들의 ‘안녕’을 통해 국내질서를 확보한다는 목표였다. 경합국가, 즉 경제적, 군사적 국가의 발전과 복지(부-평온-행복)국가의 발전. 이 두 가지 원칙이야말로 합리적 통치술로서의 ‘내치’가 조정할 수 있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 것이다. 당시 내치는 일종의 ‘국력의 테크놀로지’로서 구상된 셈이다.
 
이 기술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겨진 주요 대상들 가운데 인구가 있다. 중상주의자들은 인구가 나라를 부유하게 만들어주는 첫 번째 원칙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에는 누구나 국력의 본질적 부분으로 여기게 됐다. 이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보건정책이 필요하다. 유아의 사망률을 저하시키고, 전염병을 예방하며, 풍토병의 발생률을 낮추고, 생활조건에 개입한 결과로 생활조건을 변경시키고 이에 규범을 부과해(식량, 주거, 도시정비 등과 관련해) 충분한 의학설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보건정책 말이다. 의학적 내치Medizinische Polizei, 공중위생, 사회의학이라고 불리는 것이 18세기 말부터 발전했다는 것은 ‘생명관리 정치’의 일반적 틀 안에 새롭게 기입되어야 한다. 생명관리정치가 다루려고 하는 인구는 살아서 공존하는 존재의 집합이다. 이 집합은 개개의 생물학적, 병리학적 특징을 갖는 집합, 따라서 특유의 지식과 기술에 속하는 집합이다. 이런 ‘생명관리정치’ 자체는 17세기부터 발전한 국력의 관리라고 하는 주제를 출발점으로 해서 이해되어야 한다.
 
발표된 것은 내치학에 관한 것(파스콸레 파스퀴노), 18세기의 천연두 접종 캠페인에 관한 것(안느-마리 물랭), 1832년 파레에서의 콜레라 전염에 관한 것(프랑수아 들라포르트), 19세기의 산업재해에 관한 입법과 보험의 발달에 관한 것(프랑수아 에발드)이 있다. [485-490]
 
주요개념들
 
1. 통치
 
통치술이라는 문제계는 1975년 강의 『비정상인들』에서 처음 소묘됐다. 푸코는 나병환자의 배제라는 모델을 페스트 환자의 내포라는 모델과 대치시킨 뒤 고전주의 시대에는 다양한 수준(국가장치, 제도, 가족)에 적용 가능한 실정적 권력 테크놀로지가 발명됐다고 밝히고 있다.
 
“고전주의 시대는 이른바 ‘통치술’을 고안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동의 ‘통치’, 광인의 ‘통치’, 빈민의 ‘통치’, 그리고 곧 노동자의 ‘통치’로 이해되고 있었는데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통치술’이 고안됐죠.”
 
푸코가 명시한 바에 따르면 ‘통치’는 세 가지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첫 번째로는 전이에 기초한 권력의 새로운 사고방식, 개인들이 지닌 의지의 소외 혹은 표상이다. 두 번째로는 18세기에 설치되는 국가장치이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표상에 관한 법적이고 정치적인 구조의 이면, 이 장치들의 기능의 조건”을 이루는 “인간들의 일반적인 통치기술”이다. 그리고 이 기술의 “전형을 이루는 장치”는 전년도[1974년]에 묘사된 규율의 조직이었다.
 
『비정상인들』에서 이뤄진 ‘통치’분석은 규율에 그친 것이 아니라 회개의 의례를 둘러싸고 교회에 의해 주조된 영혼의 통치기술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신체의 규율과 영혼의 통치는 동일한 정상화 과정의 상보적 양면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국가가 신체에 대해서 행사해야 할 권력에 관한 기술상의 문제를 스스로 제기하고 있던 때….. 교회는 그 옆에서 사목제도라고 하는 영혼의 통치기술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이 사목제도는 트렌토 공의회에서 정의됐고, 이어서는 카를로 보로메오가 이를 취해 발전시켰다.”
 
 
『안전, 영토, 인구』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이 통치술과 사목제도라는 이 두 가닥의 실인데, 그래도 몇몇 의미심장한 차이가 발견된다. 먼저 연대기적 범위가 매우 확장된다는 것이다. 사목제도는 이제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서 16세기에 구성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초기 수세기에 걸쳐 이미 구성된 것으로 간주된다. 영혼의 통치는 교부들에 의해서 ‘기술 중의 기술,’ 혹은 ‘지식 중의 지식’으로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즉 푸코는 트렌토 공의회가 정한 사목제도를 그리스도교의 사목의 오랜 지속 내에 새롭게 기입하고 있다. 그리고 나서 행해진 것은 통치술의 중심을 국가의 기능 자체를 위해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었다.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통치는 이제 권력이 개인들에게 스스로를 접속하기 위한 기술들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정치적 주권의 행사 자체를 지시한다. 이 새로운 ‘관점’이 어떤 방법론상의 목적에 대응하고 있었는지는 이미 살펴본 바이다. 이어서 볼 수 있는 것은 권력의 실제적 메커니즘 분석으로부터 ‘통치의 자기의식’으로의 이동이다. 그렇지만 이런 제스쳐는 이전 연구에서 이뤄진 ‘미시물리적’ 시도와 단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의 서두에서 푸코 자신이 설명하듯이,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여러 실천을 연구하는 것보다도 거기에 내재하는 프로그램적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어서 그런 연구에 입각해 거기서 유래하는 ‘객관화의 절차’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통치성은 전략적이고 프로그램적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결코 쉽게 작동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든 내가 분석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조직의 효과들이 아니라, 객관화나 진리화의 효과들이다. 그것도 인간과학들에 있어서 말이다. -> 광기ㆍ형벌. 그것 자체에 대해서, 또한 그것이 고찰되는 한에 있어서. -> 통치성(국가/시민사회).
 
 
통치성이라는 유형의 실천에 물음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인간들을 주체로서 구성하는 것이고, 인간들 자신에 관해서 객관화, 진리화의 효과들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통치성
 
 
1) ‘통치성’의 개념은 『안전, 영토, 인구』의 4강에서 처음 정식화됐다. 원래 이것은 역사적으로 규정된 명확한 의미를 갖고 있었지만, 점차 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4강에서 이 개념은 18세기에 정비된 권력의 체제, 즉 인구를 핵심 표적으로 삼고, 정치경제학을 앎의 주요 형식으로 삼고, 안전장치를 기본적인 기술적 도구로 삼는 권력의 체제, 그리고 ‘통치’라고 부를 수 있는 권력 유형을 주권이나 규율 등 다른 모든 권력 유형보다 끊임없이 우월한 상태로 이끌어간 과정을 명명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이 개념은 서구의 역사에 특수한 생성, 분절화를 갖는 요소들로 이뤄진 총체를 지시하고 있다.
 
‘통치성’은 역사적이며 특이한 차원으로 인해 사건이라는 특징을 갖는데, 더 나아가 적용영역의 한계가 부가된다. 통치성도 모든 권력관계를 정의할 수는 없다. 통치성이 정의하는 것은, 근대 국가의 형성을 하부에서 지탱하는 통치기술이다. 사실 국가에서 통치성이란 이런 것이다.
 
“정신의학에서의 격리기술, 형벌체계에서의 규율기술, 의학제도에서의 생명관리정치[와 같은 것이다].”
 
요컨대 ‘통치성’은 이 단계의 푸코의 고찰에서는 국가에 관한 문제와 연관시켜 권력관계의 특수한 영역을 절취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의 두 가지 특징(사건적이며 지역적인 것)은 이듬해 이후의 강의에서 점차로 사라져간다. 1979년에 이 용어는 이미 특정한 권력체제(내치국가이건 자유주의적인 최소의 통치이건)를 구성하는 통치적 실천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품행을 인도하는 방식”을 나타내는 것이 되어 있다. 그에 의해 이 단어는 “ 권력관계 일반에 대한 분석 격자”로서 사용된다. 이 격자는 역시 국가에 관한 문제 안에서 작동하고 있긴 하지만 이듬해가 되면 이 격자는 그 틀을 벗어나 ‘통치’가 갖는 의미와 동일한 외연을 갖게 된다.
 
“이 개념은 인간들의 품행을 이끌어야 할, 정해진 기술이나 절차라고 하는 넓은 의미에서 이해된다 …… 아동의 통치, 영혼이나 양심의 통치, 집, 국가, 자기 자신의 통치라는 것이다.”
 
따라서 ‘통치성’과 ‘통치’가 혼동되는 듯하다. 그러나 푸코는 이 두 개념을 구별하려고 애썼다. 그것에 의하면 ‘통치성’은 “권력관계가 갖는 유동성, 변형·역전의 가능성 내에서 권력관계의 전략적 장”을 가리킨다. 여기서 확정되는 것이 품행의 유형 혹은 ‘품행의 품행’이며, 이것이 ‘통치를 특징짓는다고 여겨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왜냐하면 전략적 영역이란 여러 가지 권력관계가 서로에게 행하는 작동에 다름 아니기 때문에) 이 전략적 영역은 양자가 어떻게 서로를 함의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소위 통치성은 어떤 종류의 구조, 즉 “몇 가지 변수 …… 간의 관계적 정수”가 아닌 “특이한 일반성”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며, 그 변수는 우연의 상호작용 내에서 여러 상황에 대응한다.
 
요컨대 통치성이란 고려된 분석 수준이 어떤 것이건(부모/자식, 개인/공적인 힘, 인구/의학 등의 관계) 간에 미시권력에 내재하는 합리성을 일컫는다. 통치성은 ‘일종의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일지라도 통치성은 더 이상 『안전, 영토, 인구』에서처럼 역사적으로 규정된 일련의 흐름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권력관계가 전략적 분석을 부추긴다는 그런 의미에서만 일종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특이한 일반성. 그 현실태는 오로지 사건적événementielle일 뿐이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어야만 전략적 논리를 활용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푸코의 사유에서 다음과 같은 유형의 사건성을 연결시켜주는 관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서구 사회 고유의 특정한 역사적 과정에 기입되어 있는 사건성, ‘통치’라는 면에서 권력에 대한 일반적 정의의 이론적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건성.
 
2) 푸코에게 통치성의 유형을 분석하는 것은 그 유형에 맞서는 저항(혹은 ‘대항품행’)의 형태를 분석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안전, 영토, 인구』의 8강(1978년 3월 1일)에서 푸코는 사목에 대해서 중세에 발달한 대항품행의 주요 형식의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수덕주의, 공동체, 신비주의, 성서, 종말론적 신앙). 또한 푸코는 그 해의 강의 마지막에 국가이성의 원칙을 향해서 정리되고 있는 근대적 통치성의 분석으로부터 시민사회·인구·국민의 이름 아래에서 이뤄지는 특수한 대항품행의 중심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 대행품행들은 각각의 시대에서 ‘통치성의 위기’의 징후로 여겨지고 있다. 거기서 투쟁이나 저항의 새로운 양상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위기에서 대항품행이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는지를 자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푸코에 의해서 제안되고 있는 자유주의의 독해는 이 문제를 배경으로 해서만 이해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푸코가 통치성을 ‘특이한 일반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강의원고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거기에는 푸코에게 정치가 얼마나 권력에 대한 저항의 형식이라는 관점에 입각해 구상되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참고로 푸코가 칼 슈미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는 한 이 텍스트뿐이다.
 
“특이한 일반성으로서의 통치성을 분석한다는 것은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tout est politique라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 표현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 정치적인 것은 국가개입의 권력 전체에 의해 정의된다. ……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어느 곳에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정치적인 것은 서로 대적하는 두 사람 사이의 투쟁이 편재하고 있다는 것에 의해 정의된다. …… 이쪽은 [칼] 슈미트의 정의이다.
 
 
동지[동료/아군]의 이론. […]
 
요컨대 두 가지 정식화가 있다. 사물의 분석 때문에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대적자의 존재 때문에 모든 것은 정치적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정치화가 가능하다. 모든 것은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정치란, 통치성에 대한 저항, 즉 최초의 봉기 혹은 최초의 대립과 함께 탄생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523-531]
 
 
 
 
 


 

 
1978-1979년.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다른 한 측면에 대해 논의한 다음 올해의 강의를 끝내고자 합니다. 물론 그 다른 측면이란 시민사회라는 이 관념을 통해, 제가 이미 작년에 말씀드리려 했던 통치이성의 재분배 혹은 통치이성의 일종의 재중심화와 탈중심화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다시 한 번 일반적 문제를 다뤄보죠. 16세기 이래로, 게다가 중세에 이미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된 것 같습니다. 통치하는 자의 권력 행사를 어떻게 규칙화하고 측정할 수 있을까? 인간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혹은 이따금씩 밖에는 벗어날 수 없는 매우 특이한 실천으로서의 권력 행사, 법학자와 역사학자에게 일련의 물음을 제기하는 특이한 절차이자 개별적 내지 집단적 행위인 권력 행사, 이런 것으로서의 통치자의 권력 행사를 어떻게 규칙화하고 측정해야 좋을까? 매우 일반적이며 포괄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오랫동안 권력의 무제한적 행사를 규칙화하고 측정함으로써 제한한다는 생각을, 우리는 통치하는 자의 현명함 쪽에서 찾아왔습니다. 현명함, 이것은 고릿적부터의 답이었습니다. 현명하다는 것은 사물의 질서에 따라 통치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신의 법을 인식해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이 명한 것에 따라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과 인간에 관련된 사물의 일반적 질서가 우리에게 명령하는 바에 따라 통치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주권자는 어떤 점에서 현명해야 하는지, 주권자의 현명함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알고자 해서 시도된 것은, 결국 통치를 진리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적 텍스트의 진리, 계시의 진리, 세계질서의 진리. 이것이 권력의 행사를 규제하기 위한 원리, 아니 오히려 규칙화하기 위한 원리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작년에 제가 보여드리려 했듯이, 이에 비해 16~17세기 이래로는 권력의 행사가 현명함이 아니라 계산에 따라 규칙화된다고 여겨졌습니다. 힘의 계산, 관계의 계산, 부의 계산, 지배력이라는 요소들의 계산에 따라 권력의 행사가 규칙화된다는 것, 즉 이제 진리가 아니라 합리성에 기초해 통치를 규칙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통치를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 이것이 통치테크놀로지의 근대적 형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합리성에 기초하는 규칙화는, 여기서도 저는 크게 도식화하고 있지만, 순서대로 두 형태를 취했습니다. 우선 권력을 규칙화하기 위한 그런 합리성에서 주권적 개인성으로서의 국가의 합리성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컨대 이때 통치합리성은 국가이성의 시대에 주권자 자신의 합리성,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자의 합리성입니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일련의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우선 이 ‘나’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통치합리성을 자신의 지배력을 최대화하려 하는 자신의 주권자적 합리성에 준거시키는 것으로서의 이 ‘나’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계약에 관한 법적문제가 있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사실상의 문제도 있습니다. 요컨대 시장에서, 혹은 더 일반적으로 경제절차에서 합리성은 통일적 형식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적 형식과 굽어보는 시선을 모두 절대적으로 배제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문제시될 경우 ‘나’라고 칭하는 주권자의 합리성은 어떻게 행사될 수 있을까요? 여기서부터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통치를 규칙화하기 위한 새로운 합리성의 형태로의 이행이 이뤄집니다. 이제 문제는 통치를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주권자적 개인의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받는 자들의 합리성에 기초해 규칙화하는 것입니다. 경제 주체로서 통치되고 있는 자들, 더 일반적으로는 이해관계라는 말이 갖는 가장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해관계의 주체로서 통치되고 있는 자들의 합리성에 기초해 통치를 규칙화하는 것, 이해관계라는 말이 갖는 가장 일반적 의미에서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기 위해 몇몇 수단을 자신이 바라는 대로 사용하는 자인 그런 개인들의 합리성[에 기초해] 통치를 규칙화하는 것, 즉 피통치자들의 합리성이 곧 통치합리성에서 규칙화의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유주의적 합리성의 특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즉 통치받고 있는 사람들의 합리적 행동양식에 기초해 통치 내지는 통치술을 규칙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통치술의 합리화 원리를 그 위에 [기초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의 문제 말입니다.
 
바로 여기에 제가 자리매김하려던 분기 지점, 중요한 변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짐이 곧 국가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개인-국가 내지 주권자-개인의 합리성이 사장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요컨대 모든 국민주의적 정치, 모든 국가주의적 정치는 그 합리성의 원리가 주권적 개인의 합리성과 연동되어 있고, 또 주권적 개인성을 구성하고 있는 한에서의 국가의 합리성과 연동되어 있는 정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해서 그것들은 주권적 개인이나 주권적 국가의 이해관계 및 그 이해관계의 전략과 연동된 정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진실에 기초해 규칙화된 통치도 역시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맑스주의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합리성에 기초한 일정 유형의 통치성에 관한 탐구, 하지만 개인적 이해관계의 합리성으로서보다는 오히려 진리로서 조금씩 표명되는 역사의 합리성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하게 되는 합리성에 기초한 일정 유형의 통치성에 관한 탐구가 아니라면 맑스주의가 달리 무엇이겠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근대 세계, 우리가 19세기 이래로 알고 있는 이 세계에서 일련의 통치합리성들이 서로 중첩되기도 하고, 서로를 지지하기도 하며, 서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서로 각축을 벌이기도 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실에 기초한 통치술, 주권국가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경제 주체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더 일반적으로는 피통치자 자신의 합리성에 기초한 통치술 등. 이처럼 상이한 모든 통치술들, 통치술을 계산하고 합리화하며 규칙화하는 상이한 유형의 모든 방식들이 서로 겹쳐지면서 19세기 이래로 정치적 논의의 대상이 구성되어온 것입니다. 결국 정치란 무엇일까요? 상이한 통치술들의 상이한 연동을 수반하는 작용인 동시에 그런 상이한 통치술들이 불러일으키는 논쟁이 아니라면 정치가 달리 무엇이겠느냐는 말입니다. 정치는 바로 여기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31-433]
 
 
 

2013. 11. 7.

“교육은 교정이 아니다” -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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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57년, 다미앙의 처형


1757년 2월 3일, 국왕살해미수범 다미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손에 2파운드 무게의 뜨거운 밀랍으로 만든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에 사형수 호송차로 실려 와, 공개적으로 사죄를 할 것.” 다음으로 “앞의 호송차로 그레브 광장에 옮겨간 다음, 그곳에 설치될 처형대 위에서 가슴, 넓적다리, 장딴지를 뜨겁게 달군 쇠집게로 고문을 가하고, 그 오른 손은 국왕을 살해하려 했을 때의 단도를 잡게 한 채, 유황불로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쇠집게로 지진 곳에 불로 녹인 납, 펄펄 끓는 기름, 지글지글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의 용해물을 붓고, 몸은 네 마리의 말이 잡아끌어 사지를 절단하게 한 뒤, 손발과 몸은 불태워 없애고 그 재는 바람에 날려버린다.” <암스테르담>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드디어 그는 네 갈래로 찢겨졌다. 이 마지막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왜냐하면, 동원된 말이 그러한 견인 작업에 익숙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마리 대신에 여섯 마리의 말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불충분해서 죄수의 넓적다리를 잘라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근육을 자르고 관절을 여러 토막으로 절단해야 했다 ... 평소에는 지독한 저주의 말을 퍼붓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에서는 어떤 모욕적인 말도 전혀 흘러나오지 않았다. 다만 극도의 고통 때문에 그는 무서운 비명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이따금 ‘하느님, 제발 자비를, 예수님 살려주십시오’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사형수를 위로해 주기 위해 약간의 시간도 낭비하지 않았던 생 폴 주임 사제의 정성을 다하는 태도는 구경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2. 1838년, 파리 소년감화원을 위한 규칙


1838년 역시 프랑스의 레옹 포쉐가 작성한 ‘파리 소년감화원을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제17조. 제소자의 일과는 겨울에는 오전 6시, 여름에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노동시간은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9시간으로 한다. 하루 중 2시간은 교육에 충당한다. 노동과 일과는 겨울에는 오후 9시, 여름에는 오후 8시에 끝내도록 한다. 제18조. 기상.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조용히 기상하여 옷을 입고 간수는 독방의 문을 연다.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침상에서 내려와 침구를 정돈한다. 세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아침기도를 하는 성당에 가도록 정렬한다. 각 신호는 5분 간격으로 한다. 제19조. 아침기도는 감화원 소속신부가 주재하고, 기도 후에 도덕이나 종교에 관한 독송을 한다. 이 일은 30분 이내에 마치도록 한다. 제20조. 노동. 여름에는 5시 45분, 겨울에는 6시 45분에 재소자는 마당으로 나와 손과 얼굴을 씻고 제1회의 빵을 배급받는다. 뒤이어 즉시 작업장별로 정렬하여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여름에는 6시, 겨울에는 7시에 시작해야 한다. 제21조. 식사. 10시에 재소자는 노동을 중단하고 마당에서 손을 씨소 반별로 정렬하여 식당으로 간다. 점심식사 후 10시 40분까지를 휴식시간으로 한다. 제22조. 학습. 10시 40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정렬하여 반별로 교실로 들어간다. 읽기, 쓰기, 그림 그리기, 계산하기의 순서대로 한다. 제23조. 12시 40분에 재소자는 반별로 교실에서 나와 마당에서 휴식을 취한다. 12시 55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작업장별로 다시 정렬한다. 제24조. 1시에 재소자는 작업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노동은 4시까지 계속한다. 제25조. 4시에 작업장을 나와 안마당으로 가서, 손을 씻고 식당에 가기 위해 반별로 정렬한다. 제26조. 저녁식사 및 휴식시간은 5시까지로 하고, 재소자는 다시 작업장에 들어가야 한다. 제27조. 여름에는 7시, 겨울에는 8시에 작업을 종료하고, 작업장에서 하루의 마지막 빵을 배급받는다. 교훈적인 뜻이나 감화적인 내용을 담은 15분간의 독송을 재소자 1인 혹은 감시자 1인이 하고, 이어서 저녁기도에 들어간다. 제28조. 여름에는 7시 반, 겨울에는 8시 반에 재소자는 마당에서 손을 씻고 복장 검사를 받은 뒤 독방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옷을 벗고,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릴 때 침상에 들어가야 한다. 각 방의 문을 잠근 후 간수들은 질서와 침묵을 확인하기 위해 복도를 순회한다.”
 

3. 감시와 처벌, 모두가 모두를!

 
이 두 가지 너무나도 대조적인 기록은 공히 프랑스에서 각기 1757년과 1838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다. 두 기록이 사이는 정확히 81년인데, 무엇보다도 두드러지는 점은 신체형의 소멸이다. 이제 국가 혹은 행형기관은 더 이상 범죄자에게 육체적 고문을 포함한 어떠한 직접적 육체적 고통도 가하지 않으며, 다만 도덕과 종교적 목적을 갖고 재소자의 영혼과 정신에 작용하는 교화, 감화, 교정적 재교육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변화를 법학자와 행형학자들은 이제까지 18세기의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에 입각한 잔인성의 배제, 형벌의 인간화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이제는 고전이 된 1975년 저서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이러한 시각을 전적으로 뒤집는다. 이러한 육체적 고통, 신체형의 소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범죄자를 사악한 선천적 악마가 아닌, 부조리한 사회적 모순구조의 희생자로 보는 것일까? 그것은 범죄자를 더 이상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교화하려는 인도주의적 행동일까? 푸코의 대답은 명쾌하다. 그것은 덜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효과적으로 잘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이전과 같은 공개적 장소에서 범죄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일벌백계식의 처벌 방식은 민중들의 인식이 올라가면서 그리 잘 먹히지도 않고, 오히려 반발심만 키운다. 육체적 고통을 주는 방식은 이제 효용성도 떨어지지만, 처벌의 장소가 예상치 못한 폭동의 장소로 변하는 등 정치적 부담도 크다. 따라서 이제 처벌의 대상은 더 이상 육체가 아니라, 당신의 정신, 영혼이며, 그 수단은 도덕, 양심이자, 철학과 종교, 윤리이다. 이러한 영혼과 정신의 통제 관리를 통한 통제에 집중하는 권력을 푸코는 규율 권력이라 부른다.


4. ‘양심의 가책’이 병이다
 

근대 규율 권력은 당신의 영혼, 정신, 내면을 감시하고 처벌한다. 규율 권력은 더 이상 육체에 대한 폭력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그렇다고 육체적 폭력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다). 근대 규율 권력은 영혼과 정신을 철학적,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으로 통제, 관리한다. 푸코가 말하는 규율 권력은 외적 강제의 내면화를 통해 정신과 영혼에 직접 작용한다. 이 외적 강제의 내면화란 이른바 양심의 가책이란 이름 아래 작동하는 죄책감, 자책감이다. 이는 저 유명한 19세기 말의 철학자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의 주장으로, 니체는 인간은 자신의 분노를 외부의 정당한 대상에게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없을 때, 이 부정적 에너지, 분노의 투사 방향을 안쪽으로 돌려 자기 자신을 탓하고 괴롭힌다고 말한다(이것이 『도덕의 계보』(1888)의 내용이다). 이는 일단 개인의 내면에 죄책감이 심어지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알아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가령, 미국 인구 중 흑인의 비율은 대략 10% 정도인데, 실제 범죄자, 사형수, 그리고 자살하는 사람들 중 흑인의 비율은 10%를 훨씬 상회하여 20-30%에 이른다. 이러한 통계 결과를 보고, 가령 어느 백인 우월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마도 이를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말 흑인의 인종적 열등성,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일까? 오히려 그것은 미국의 백인 중심 사회가 얼마나 흑인을 차별하고 범죄와 죽음으로 몰고 가는가, 백인 중심 사회의 지배 권력이 얼마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일제시대 자살과 범죄, 사형수들 중 조선인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아마 조선인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지 않을까? 이는 조선인들의 인종적 열등성을 나타내는 지표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5. ‘내 탓이오!’ 혹은 도덕주의 - 사회적 모순의 개인화ㆍ파편화


그러나,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렇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미국의 흑인들, 일제하 조선인들 중 거의 대부분은 자신에게 벌어지는 이러한 일의 이유를 자신의 개인적 과오와 부족함, 도덕적 성실성의 결여에서 찾을 확률이 대단히 높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죄책감, 자책감, 혹은 양심의 가책이 사회적 모순을 개인적 도덕성의 문제로 잘못 환원할 위험성을 갖는다는 점이다(이러한 관점은 물론 이들 개인 각각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거나, 그들에게 개인적 도덕적 잘못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분명히 개인적 결함과 도덕적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한 집단에서, 가령 100명으로 구성된 집단에서 10-20명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 가령 80-90명이 유사한 현상을 보인다고 할 때, 이는 이미 어떤 개인의 도덕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라는 문제이다. 결국 잘못의 개인적 부분을 강조하는 도덕주의는 사회적 모순을 가리고, 문제의 초점을 잘못된 방향, 즉 오로지 ‘개인적 도덕성과 성실성’의 문제로 몰고 간다. 네게 일어난 문제의 근원을 밖에서 찾지 말고, 네 안에서 찾아라! 물론 옳은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무조건 안에서, 내 안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안에서 찾을 것은 안에서, 밖에서 찾을 것은 밖에서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모든 것에 대해 늘 항상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것은 감사하고, 분노할 것은 분노해야 하지 않을까? 무조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볼 것은 긍정적으로 보고, 부정적으로 볼 것은 부정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눈 감은 맹목(盲目)이 아니라, 눈 뜨고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6. 감시와 처벌, 내가 나를!

 
감시와 처벌이 지배하는 푸코적 규율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히 누군가가 누군가를 처벌하는 사회가 아니다. 이 사회는 모두가 모두를, 항시적으로 늘, 전혀 예외 없이, 감시하는 완전 통제 사회이다. 규율 사회는 사소한 것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사회이다. 규율사회는 이른바 정상/비정상을 구분하고, 정상이 아닌 것 곧 비정상적인 모든 것을 너와 내게서 무한히 제거하는 사회이다. ‘정상화하는 규율’이 무서운 점은 그 사회가 어떤 하나의 보편적 정상을 정해놓고, 그것과는 다른 모든 것을 틀린 것, 잘못된 것, 비정상적인 것, 따라서 교정되어야 할 것, 감시하고 처벌해야 할 대상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너와 나 자신을 포함한 이 사회의 모든 것, 모든 사람이 감시와 처벌 그리고 교정의 대상이다! 그 시선,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한다. “문제는 너다, 네가 문제야! 너는 도대체 왜 그러니! 네가 뭐가 부족하니! 네가 지금 행복한 줄을 모르는구나! 감사할 줄을 모르고! 감히 네가, 나에게! 눈 부릅뜨지 마!” 그리고 이 비난과 힐난, 결국은 교정의 대상은 일상의 모든 것, 사소한 모든 것에 이른다. “너 신발이 그게 뭐니! 머리 스타일이 그게 뭐니! 누가 그런 옷 입으래! 귀걸이는 또 뭐고, 네가 학생이니! 다리 떨지 마라, 체신 없다! 남들이 흉본다, 똑바로 해라! 고개를 들고, 허리를 펴고, 눈길을 공손하고 가지런히! 걸음걸이도 복장도 단정하게! 밥 먹을 때 티비 보지 말고, 책 좀 봐라, 대답 잘하고, 핸드폰 좀 놔라, 방 청소 좀 하고, 공부 좀 해라, 대답 좀 잘 하고! 말투 봐라, 자세 좀 봐라!” 우리는 이렇게 일생 동안 혼나고, 감시받고 처벌 받고, 교정당한다.
 

7. “다르게 살자!” - 정상이란 무엇인가?

 
그러나 이 규율 사회의 정말 놀라운 점은 그것이 이른바 ‘억압-해방의 도식’을 따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즉, 가령 이전의 마르크스주의가 본 것처럼, 이러한 규율 권력이 감시, 처벌, 교정하는 대상이 피억압자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른바 ‘억압자’ 자신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친구를 비난하고 힐난하는 그 목소리, 그 시선이 바로 나 자신을 비난하고 힐난하는 그 목소리, 그 시선이다. ‘넌 도대체 왜 그러니’는 곧 ‘난 왜 이럴까, 난 왜 이것밖에 안 될까’로 변하고, 더 나아가 ‘아무도 내 연극을 못 알아차리는구나’에서 ‘난 역시 안 돼’를 거쳐, ‘난 왜 이렇지, 난 이것밖에 안 돼, 내가 싫다, 난 정말 혐오스러운 괴물이야, 아무도 내 진짜 본 모습을 몰라, 내 연극은 정말 완벽해,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아무도 내 가면 뒤에 숨겨진 나의 이 추악한 얼굴을 몰라, 하지만 내 가면 뒤의 본 모습을 보면 그들은 날 버릴 거야’로 나아가기 십상이다. 이 모든 자동적인 정신 과정, ‘바른 행동’을 낳는 정상화 메커니즘에 대항하여 푸코는 ‘다른 행동’을 낳는 문제화의 실천, 곧 대항품행을 제안한다. 문제화의 실천은 이토록 정상적인 그 모든 것을 문제의 대상으로 만드는 실천이다. 어떤 것을 우리가 문제로 삼기 이전에 그것은 당연한 것, 곧 정상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도대체 왜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하는지 문제로 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인간 세상의 유일한 당연, 보편적 필연이 아니라, 논쟁해볼만한 것, 문제의 대상, 문제인 것이 된다. 그것은 도대체 누가 그렇게 정한 것일까? 그것은 어떻게 당연한 것이 된 걸까? 이 모든 당연한 것들, 정상적인 것들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이토록 당연한 것이 된 걸까?
 
 
 
"교육은 교정이 아니다."
 
 
 
2013.11.18.
 
 

2013. 11. 5.

ecm 1 - ja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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