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5.

‘새로움’과 ‘근대성’의 고고학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55196



‘새로움’과 ‘근대성’의 고고학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단테, 『새로운 인생』
1 새로움, 근대성
 
‘새로움’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 온 하나의 보편적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말, 단어는 자신만의 역사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오늘 우리가 현대 한국어로 새로움이라 일컫는 바의 개념이 이른바 ‘근대성’의 개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근대성이라 부르는 것과 새로움이라 부르는 것 양자 모두는 ‘특정한 시대적・지역적 기원을 갖는’ 하나의 고유명사적 측면을 갖는다. 이 글은 이렇게 오늘 우리의 일상과 엄밀한 학문적 담론에서 사용되는 ‘새로움’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코젤렉・야우스의 개념사 및 푸코의 고고학・계보학 등을 방법론으로 하여 서양 사유 체계의 역사 안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현대 한국어에서 보통 근대성, 현대성, 모더니티, 때로는 모데르니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사실은 여러 일본어 번역어들을 단순히 우리말 음가로 읽은) 이들 용어는 - 영어의 경우 - ‘modernity’를 옮긴 말이다. 이는 물론 형용사 modern의 명사형으로, 영어 형용사 modern은 라틴어 modernus에서, 명사 modernity는 modernitas에서 왔다. 현존하는 기록에 따르면, 대략 4~5세기경 라틴어 형용사 modernus가 처음 등장한 후 무려 천여 년의 시간이 지난 13세기에야 명사형 modernitas가 나타난다. 이러한 격차는 이 용어가 생성된 이래 그다지 큰 중요성을 갖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한편 라틴어 형용사 modernus는 어원학적으로 ‘곧’, ‘방금’ 등의 의미를 갖는 부사 modo에서 온 것이다. modernu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4~5세기의 로마인들에게 이 용어는 ‘가까운’ ‘최근’ 시기, 곧 그리스도교 공인・국교화 이전의 ‘이교도적’이 아닌 ‘그리스도교적 최근’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후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와 토스카나를 중심으로 나타난, 그리고 이후에 프랑스인들에 의해 ‘르네상스’(Renaissance, 新生, 復活)라 불린 용어의 의미는 다름 아닌 ‘다시 태어나는 것’ 곧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 주체는 우선 이탈리아인, 그리고 이후의 프랑스인 혹은 ‘유럽인’이었으며, 그리스・로마의 휴머니즘을 새롭게 오늘 되살리는 것, 그리하여 ‘새롭게 태어난’ 이탈리아, 곧 넓게 말하면 1453년 오스만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이후 새롭게 대두된 ‘유럽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적 새로움이란 새로운 ‘유럽’의 (재)탄생 혹은 ‘발명’이다. 이후 일본인들이 ‘신구(新舊)논쟁’이라 번역한 17세기 말 프랑스의 ‘고대인들과 근대인들의 논쟁’(Querel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독해되어야 한다. 이른바 ‘신구논쟁’의 대표자는 구파의 라브뤼예르와 부알로, 그리고 신파의 페로와 퐁트넬이다. 이들은 각기 당시 ‘고전주의적’ 이상의 두 측면, 곧 ‘정신을 과거의 모방으로 몰아대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호’와 ‘정신을 미래로 이끌고 가는 이성에 대한 기호’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들 중 구파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범이 되는 고대인들을 능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신파는 현대인들은 고대 이래 모든 인류의 지적 유산을 이어받은 존재들이므로, 결국 고대인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신파의 주장은 『고대인과 근대인의 평행선』(Parallè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 1688~1692)을 쓴 신파의 대표자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가 1687년 1월 26일 프랑스의 아카데미 회원들 앞에서 낭송한 다음과 같은 시 안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 고대인을 바라본다.” 신구논쟁의 승리자는 신파 곧 근대파였다. 그리고 이들 신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은 다름 아닌 ‘인간 정신의 진보라는 법칙’이다. “과학에 있어서 우리는 고대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근대인이 고대인보다 더 멀리 보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궁극적 이유는 인간 정신의 진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18세기는 다름 아닌 계몽주의와 진보의 시대이며, 이런 면에서 신구논쟁은 ‘18세기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2 근대 —‘새로운 시대’와 ‘진보’
 
“옛것들은 폐기되었다.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더 새로운 것과 경쟁한다.”
—로렌츠 폰 슈타인, 『프랑스의 도시 체제』


‘가까운 시대’를 뜻하는 근대(modern)라는 말은 상대적 개념이다. 곧 보는 자의 위치에 따라 원근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서력 51세기인들은 ‘우리’처럼 가령 18~19세기를 근대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49~50세기 혹은 45~50세기를 ‘근대’로 규정할 것이며, 여하튼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우리의 근대’인 17~18세기는 더 이상 근대가 아닌 ‘중세’ 정도로 규정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가령 15세기인들은 자신들이 중세의 말기 혹은 르네상스 초기를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러한 시대 규정은 모두 사후적(事後的)인 역사 기술적(歷史記述的, historiographic) 개념이다. 이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이른바 ‘우리의’ 근대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그리고 그들에게 ‘근대’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 어떤 특징을 갖는 것이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근대 곧 ‘가까운 시대’라는 용어・개념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개념사적 혹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근대는 단적으로 ‘유럽의’ 근대이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근대라는 용어가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바로 그런 뜻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일까? 가령 우리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책에는 라틴어든 프랑스어든 ‘근대’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19세기 일본인들에 의해 ‘신구논쟁’으로 번역된 논쟁의 신파 곧 ‘근대인들’(les Modernes)이 기원한 용어 moderne은 프랑스어의 경우 1361년부터 사용되지만, 명사형 modernité는 1823년에야 나타난다. 이는 근대와 근대성이라는 용어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사상적 중요성을 부여받은 것이 이른바 ‘근대’의 일임을 말해 준다. ‘계몽주의의 완성자’이자 ‘근대 철학을 종합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저술에도 modern이라는 독일어는 등장하지 않으며, 다만 이에 상응하는 하나의 새로운 개념 곧 ‘새로운 시대’(neue Zeit)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하버마스가 코젤렉을 인용하며 말하고 있듯이, 이 “새로운 시대가 근대이다.”
 
 
칸트는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에 관한 저술 「헤르더의 인류 역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들」(1785)에서 이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끊임없는 진보’(Fortschritts)로 규정하면서, 이를 인류의 목적이자 역사의 필연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헤르더와 칸트의 ‘진보’는 단순한 ‘새로움’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이상의 것이다. 옛것과 새것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 새로운 ‘새로움’은 단지 새로울 뿐만 아니라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이다. 누구에게 더 좋은가? 이 새로움은 ‘인류에게’ 더 좋은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데카르트의 무시간적(사실은 가톨릭적)이고 개별적인 ‘나’를 시간적・역사적(개신교적)인 인류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 인류의 진보는 우연한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섭리 곧 역사적 필연으로 이해된다. “인류 일반의 목적은 끊임없는 진보이며, 이 목적의 완성은 간단하지만 모든 면에서 유용한—우리가 섭리의 목적에 맞게 우리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목표에 관한 이념이다.” 이러한 역사적 필연의 관념은 인간 정신의 법칙이며, 기본적으로 그 근거를 과학의 진보에서 찾는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진보의 관념은 서구 18세기 계몽주의의 근본적 사상이었다.
 
 
코젤렉은 개념사의 기념비적 명저 『지나간 미래』에서 현대 한국어・일본어로 ‘역사(歷史)’라고 번역되는 독일어 Historie가 Geschichte로 변화하는 과정을 상세히 그려 준 바 있다. 전자는 그리스어의 어원 그대로 ‘이야기’의 뉘앙스가 강하며, 후자는 헤겔적 의미로 이해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자신이 실현하는 역사철학의 대상으로서의 역사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대략 1750년 이래 150여 년 동안 일어난 이중적 과정, 곧 한편으로는 neue Zeit[새로운 시대]라는 두 단어가 결합되면서 하나의 복합개념으로 변화한 Neuzeit[근대] 혹은 그 형용사형 neuzeitlich[근대적]로 변화하는 과정,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당시까지 복수로 사용되던 Geschichten이 대표단수화된 형태인 Geschichte로 대체되는 과정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이 진보의 “역사철학이야말로 근대 초기를 과거로부터 단절시키면서 새로운 미래와 더불어 우리의 근대를 열었던 장본인이다.” 코젤렉의 표현대로 “근대는 과거 전체에 세계사적 질을 준다. 그와 함께 그때그때의 역사의 새로움은 새로운 것으로 성찰되면서 진보적으로 전체역사를 요구했다. 역사를 세계사로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당연했다. (……) 시대의 특성은 바로 진보의 지평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시대의 진단과 지나간 시대의 분석이 서로 연결되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과업을 완수한 것이 헤겔(G. W. F. Hegel, 1770~1831)이다. “현대[근대]의 개념을 발전시킨 최초의 철학자는 바로 헤겔이었다. 그러므로 막스 베버에 이르기까지는 자명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문제시되고 있는 현대성[근대성]과 합리성 사이의 내면적 관계가 무엇의 의미하는지를 우리가 이해하고자 한다면, 헤겔에게로 되돌아가야 한다.” 헤겔은 1807년 『정신현상학』에서 ‘우리의 시대’를 이렇게 기술한다. “어쨌든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이며 새로운 시기를 향한 여명기임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정신은 지금까지의 일상세계나 관념세계에 결별을 고하고 이를 과거의 품속에 묻어 버린 채 바야흐로 변혁을 이룩할 찰나에 이르러 있다. 정신은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는 전진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마치 오랫동안 조용히 자양분을 섭취하며 차츰 성장을 거듭해온 태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는 최초의 숨결로 질적 도약을 이루어 신생아가 태어나듯이, 자기도야를 지속해온 정신도 또한 천천히 그리고 소리 없이 새로운 형태를 무르익게 하면서 앞서간 지금까지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개개의 부분들을 순차적으로 허물어 버리는 바, 이렇게 동요하는 조짐은 다만 간간히 엿보이는 징후 정도로 내비쳐질 뿐이다. (……) 점진적 와해작용이 한순간에 새로운 양상을 드러내면서 번갯불처럼 새로운 세계의 상(像)을 단숨에 추어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역사적 전망을 기술한다.’라는 독일적인 철학적 근대성[현대성]의 기획은 역사철학적 보편사(普遍史, allgemeine Geschichte)에 대한 요구로 수렵되었다.
 
3 근・현대 예술 —‘새로움의 전통’
 
“보들레르의 근대적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발명하려는 사람이다.”
—푸코, 「계몽이란 무엇인가?」


예술사가 곰브리치에 따르면 18세기 말 19세기 초 화가들은 ‘개인적・서정적 환상’의 세계 안으로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그리고 이는 예술, 특히 회화의 영역에 나타난 참으로 ‘근대적인’ 과거와의 단절인데, 이는 “이것이야말로 전통과의 단절이 가져온 가장 뚜렷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미술가들은 오직 시인들만이 누렸던 개인적 환상의 세계를 종이 위에 펼쳐 놓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었다.” 곰브리치는 그 시초로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그림 「태고적부터 계신 이(The Ancient of Days, 1794)」를 들면서 다음처럼 말한다. “블레이크는 환상에 깊이 빠진 나머지 현실 세계를 그리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내면의 눈에만 의지했다. (……) 이렇게 그는 르네상스 이래로 공인된 전통의 규범을 의식적으로 포기한 최초의 화가였다.” 전통과의 단절이 블레이크로 하여금 객관적・물질적・외적 세계 바깥의 개인적・심리적・내적 세계의 묘사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예술관이 의식적으로 프랑스적인 미학적 근대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1863년 발표한 「근대적 삶의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에 이르러서다.
 
 
‘근대적 화가의 삶’을 다룬 이 에세이에서 보들레르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다음처럼 두 가지로 나눈다. 근대성[현대성]이란 “일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 우연한 것으로 예술의 반을 이루고, 나머지 반을 이루는 것은 영원한 것, 불변의 것이다.”(35쪽) 이는 각기 ‘영원하고 불변적인 요소’와 ‘상대적이고 상황적인 요소’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성이란 ‘역사적인 것 안에서 유행이 포함할 수 있는 시적인 것을 유행으로부터 끌어내는 것,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34~35쪽) 이런 ‘근대적 삶의 화가’ 혹은 ‘근대성의 화가’는 ‘우연성이 함축하고 있는 영원성을 암시하는 모든 것의 화가’이다.(26쪽) 또한 이 화가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사람이다. 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새로운 어떤 것에 직면한 어린아이들의 고정되고 동물같이 황홀경에 빠진 시선이다.(30쪽) 우연성과 찰나, 유행, 그리고 현재의 화가는 오늘을 그린다. 그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영원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연성과 찰나, 유행과 현재에서 찾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우연성의 화가’는 ‘댄디’이자 ‘세계인’이며, 무엇보다도 하나의 ‘예술가’이다.(28~29쪽) 이 예술가의 댄디즘은 하나의 정열이다. 이 정열은 무엇보다도 ‘관습이라는 외적 한계 안에 억눌려 있는 자신으로부터 하나의 독창성(originalité)을 만들어 내려는 모든 열정적인 욕구’이자, ‘정신주의’와 ‘금욕주의’를 통한 일종의 자기숭배(culte de soi-même), 자기 수련, 자기도야, 곧 하나의 영웅주의이다.(51~55쪽) 보들레르의 댄디는 예술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매일매일 새롭게 발명해 내는 자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이제 철학적・미적 근대성은 전통과의 단절, 새로운 것의 숭배라는 관념 자체를 자신의 주된 이념으로 삼게 된다. 그 이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것은 인류와 예술이 진보하거나 인간의 복지・행복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이런 새로운 것 자체에 대한 숭배는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전통’을 창조했다. 새로운 것은 전통과 단절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것에 대한 선호’라는 서구 근대 이래의 역사, 이미 보들레르 이후로도 150년이 지난 역사는 이러한 태도 자체를 ‘또 하나의’ 전통으로 확립시켰다. 로젠버그는 이미 1959년에 이 새로운 것 자체에 대한 숭배의 태도가 이미 새로움의 전통(tradition of the new)을 구성했다고 보았다. 로젠버그는 유구한 역사를 갖는 새로움에 대한 서구의 철학적・미학적・정치적 전통은 단순한 미학적・정치적 제도만이 아닌, 인간 자체의 전면적 혁신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누구든 (예술을) 창조하려는 자는 곧 자신이 스스로를 창조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회화, 정신의학, 정치적 행동을 막론하고, 자기 변형(self-transformation) 및 타인의 변형은 우리 세기의 가장 급진적 관심을 구성해 왔다.”
 
4 나가면서 —‘새로움의 추구’라는 자기의 테크놀로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오르한 파묵, 『검은 책』


보들레르의 근대성 혹은 새로움에 대한 규정이 보여 주는 특징들 중 하나는 그것이 더 이상 인식되는 대상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인식하는 자 자신, 곧 주체에 관련되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형성, 곧 주체의 자기 형성에 관련되는 제반 규정들을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규제적(prescriptive)’ 원칙들이라 불렀다. 이 규제적 원칙들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 부과하는 원칙들로서, 그 목적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일정한 규칙 혹은 금기, 제한을 가함으로써 주체가 스스로를 지금의 자기와는 다른 존재로 변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의 자기 변형을 위한 규제적 테크닉은 푸코에 의해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 주체화 양식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자기의 테크놀로지(technologie de soi)는 글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한 테크놀로지, 방법론을 지칭하는 것이며, 주체화(subjectivation)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주체가 끊임없이 변형되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위에서 우리가 극히 간략한 형태로 일별해 온 새로움에 관한 ‘서양’의 관념들은 특히 르네상스 및 ‘근대’ 이래 탄생한 하나의 특수한 역사적・문화적 강조점을 갖는 일련의 담론들로
구성된다. 르네상스와 근대 초기에, 새로움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점차로 인간 사회의 보편적 역사라는 ‘진보적’ 관점에 의해 수렴되는 동시에, 그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존재이자 그러한 진보를 위해 행동하는 주체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헤겔과, 특히 보들레르 이후로 새로움은 사회와 주체 자신의 발명이라는 이중적 작업에 연관된다. 이와 동일한 정신 안에서 탄생한 이른바 서양의 ‘근현대’ 예술은 작품의 창조인 동시에 그러한 작품을 창조하는 주체 자신의 창조를 지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새로움에 대한 추구는 자기 심화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것 자체에 대한 추구로 변형된다. 로젠버그는 이를 새로움의 전통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새로움의 전통에서 모든 창조 작업은 창조하는 자 자신의 발명을 포괄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헤겔과 보들레르 이래의 모든 서양 근현대 예술 혹은 사유는 자신의 발명을 포함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정확한 의미에서 푸코가 말하는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 주체화에 해당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주체화 과정은 하나의 진리 놀이로서, 이 놀이 안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창조의 대상, 곧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새로움의 전통을 포함하여, 이러한 모든 전통을 아는 오늘의 우리는 한 사회 안에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또다시 우리만의 주체화를 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주체화의 양식은 또 다른 질문의 양식으로 우리 자신에게 되물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결국 전통과 놀이하는 자다. 로젠버그의 지적처럼, 오늘 새로움 자체의 추구는 이미 그 자체로 새로움의 전통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움의 전통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하여 우리의 그러한 행위마저도 미래에는 또 다른 새로움의 전통이 되어, 또다시 새로운 것에 의해 폐기처분되고 또다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운명인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오늘 우리가 행하는 새로움의 추구가 인간의 보편적 성향임과 동시에 하나의 문화적, 곧 서양적 전통임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서양화된 만큼 이 새로움의 전통이라는 서양의 전통을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서, 이러한 새로움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다름 아닌 나의 서양화를 유지하고 가속화하는 행동이 아닐까? 우리는 새로움의 추구에 의해 조건화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의 보편성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서양의 것이라고 해서 굳이 따르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서양의 방식이 자연 그 자체를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처럼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새로움을 바라보는 방식이 인간이 새로움을 바라보는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방식이라 믿는 것 역시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새로움은 하나의 보편적 범주일 수 있으나, 새로움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구체적 방식이란 늘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궁극적으로 정치적이다. 오늘 우리가 새로움을 바라보는 일반적 방식은 근대 이래 서양의 지배적 관점, 곧 새로움 자체의 영원한 추구이다. 그리고 오늘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또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새로움만을 강박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이 게임의 규칙은 누가 정한 것일까? 인간은 전통과 놀이하는 자다. 그리고 이 놀이는 늘 질문의 형식으로 그에게 되돌아와, 그에게 다른 생각을 낳고,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움의 전통이라는 전통과도 놀이해야 한다. 나는 내 삶 안에서 새로움(의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이는 자기와 자기의 관계를 문제 삼는 주체화의 진리 놀이, 자기를 발명하고자 하는, 더 나아가 이제까지의 자기와는 다른 자기를 상상하고, 자기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며, 새로운 놀이의 규칙을 발명하려는 자기의 테크놀로지라는 놀이이다.
 
 
“하나의 놀이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그것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한도에서이다.”(푸코)
 
 
 
 

댓글 1개:

  1. 이 글도 이제는 구하기 어렵다(심지어 나도 없다). 고칠 것이 좀 있지만, 그래도 자료 삼아 일단 올려본다(다만 올리는 과정에서 각주가 모두 사라졌다. 이하 다른 글도 마찬가지이다). 조만간 책으로 묶어내려 하는데, 그때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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