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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5.

‘새로움’과 ‘근대성’의 고고학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55196



‘새로움’과 ‘근대성’의 고고학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단테, 『새로운 인생』
1 새로움, 근대성
 
‘새로움’이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 온 하나의 보편적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말, 단어는 자신만의 역사를 갖는다. 역사적으로 오늘 우리가 현대 한국어로 새로움이라 일컫는 바의 개념이 이른바 ‘근대성’의 개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근대성이라 부르는 것과 새로움이라 부르는 것 양자 모두는 ‘특정한 시대적・지역적 기원을 갖는’ 하나의 고유명사적 측면을 갖는다. 이 글은 이렇게 오늘 우리의 일상과 엄밀한 학문적 담론에서 사용되는 ‘새로움’이라는 개념의 의미를 코젤렉・야우스의 개념사 및 푸코의 고고학・계보학 등을 방법론으로 하여 서양 사유 체계의 역사 안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이다.
 
 
현대 한국어에서 보통 근대성, 현대성, 모더니티, 때로는 모데르니테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되는(사실은 여러 일본어 번역어들을 단순히 우리말 음가로 읽은) 이들 용어는 - 영어의 경우 - ‘modernity’를 옮긴 말이다. 이는 물론 형용사 modern의 명사형으로, 영어 형용사 modern은 라틴어 modernus에서, 명사 modernity는 modernitas에서 왔다. 현존하는 기록에 따르면, 대략 4~5세기경 라틴어 형용사 modernus가 처음 등장한 후 무려 천여 년의 시간이 지난 13세기에야 명사형 modernitas가 나타난다. 이러한 격차는 이 용어가 생성된 이래 그다지 큰 중요성을 갖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한편 라틴어 형용사 modernus는 어원학적으로 ‘곧’, ‘방금’ 등의 의미를 갖는 부사 modo에서 온 것이다. modernu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4~5세기의 로마인들에게 이 용어는 ‘가까운’ ‘최근’ 시기, 곧 그리스도교 공인・국교화 이전의 ‘이교도적’이 아닌 ‘그리스도교적 최근’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후 1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와 토스카나를 중심으로 나타난, 그리고 이후에 프랑스인들에 의해 ‘르네상스’(Renaissance, 新生, 復活)라 불린 용어의 의미는 다름 아닌 ‘다시 태어나는 것’ 곧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 주체는 우선 이탈리아인, 그리고 이후의 프랑스인 혹은 ‘유럽인’이었으며, 그리스・로마의 휴머니즘을 새롭게 오늘 되살리는 것, 그리하여 ‘새롭게 태어난’ 이탈리아, 곧 넓게 말하면 1453년 오스만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이후 새롭게 대두된 ‘유럽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르네상스적 새로움이란 새로운 ‘유럽’의 (재)탄생 혹은 ‘발명’이다. 이후 일본인들이 ‘신구(新舊)논쟁’이라 번역한 17세기 말 프랑스의 ‘고대인들과 근대인들의 논쟁’(Querel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새롭게 독해되어야 한다. 이른바 ‘신구논쟁’의 대표자는 구파의 라브뤼예르와 부알로, 그리고 신파의 페로와 퐁트넬이다. 이들은 각기 당시 ‘고전주의적’ 이상의 두 측면, 곧 ‘정신을 과거의 모방으로 몰아대는 아름다움에 대한 기호’와 ‘정신을 미래로 이끌고 가는 이성에 대한 기호’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들 중 구파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범이 되는 고대인들을 능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신파는 현대인들은 고대 이래 모든 인류의 지적 유산을 이어받은 존재들이므로, 결국 고대인들보다 더 멀리 볼 수 있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러한 신파의 주장은 『고대인과 근대인의 평행선』(Parallèle des Anciens et des Modernes, 1688~1692)을 쓴 신파의 대표자 페로(Charles Perrault, 1628~1703)가 1687년 1월 26일 프랑스의 아카데미 회원들 앞에서 낭송한 다음과 같은 시 안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 고대인을 바라본다.” 신구논쟁의 승리자는 신파 곧 근대파였다. 그리고 이들 신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정신은 다름 아닌 ‘인간 정신의 진보라는 법칙’이다. “과학에 있어서 우리는 고대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근대인이 고대인보다 더 멀리 보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궁극적 이유는 인간 정신의 진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18세기는 다름 아닌 계몽주의와 진보의 시대이며, 이런 면에서 신구논쟁은 ‘18세기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2 근대 —‘새로운 시대’와 ‘진보’
 
“옛것들은 폐기되었다.
새로운 것들이 나타나 더 새로운 것과 경쟁한다.”
—로렌츠 폰 슈타인, 『프랑스의 도시 체제』


‘가까운 시대’를 뜻하는 근대(modern)라는 말은 상대적 개념이다. 곧 보는 자의 위치에 따라 원근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서력 51세기인들은 ‘우리’처럼 가령 18~19세기를 근대로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49~50세기 혹은 45~50세기를 ‘근대’로 규정할 것이며, 여하튼 확실한 것은 그들에게 ‘우리의 근대’인 17~18세기는 더 이상 근대가 아닌 ‘중세’ 정도로 규정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가령 15세기인들은 자신들이 중세의 말기 혹은 르네상스 초기를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러한 시대 규정은 모두 사후적(事後的)인 역사 기술적(歷史記述的, historiographic) 개념이다. 이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이른바 ‘우리의’ 근대는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그리고 그들에게 ‘근대’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 어떤 특징을 갖는 것이었을까? 이를 위해서는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근대 곧 ‘가까운 시대’라는 용어・개념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앞에서 잠시 살펴본 것처럼, 개념사적 혹은 실제적인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근대는 단적으로 ‘유럽의’ 근대이다. 그렇다면 유럽에서 근대라는 용어가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바로 그런 뜻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언제 누구에 의해서일까? 가령 우리가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책에는 라틴어든 프랑스어든 ‘근대’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19세기 일본인들에 의해 ‘신구논쟁’으로 번역된 논쟁의 신파 곧 ‘근대인들’(les Modernes)이 기원한 용어 moderne은 프랑스어의 경우 1361년부터 사용되지만, 명사형 modernité는 1823년에야 나타난다. 이는 근대와 근대성이라는 용어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사상적 중요성을 부여받은 것이 이른바 ‘근대’의 일임을 말해 준다. ‘계몽주의의 완성자’이자 ‘근대 철학을 종합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저술에도 modern이라는 독일어는 등장하지 않으며, 다만 이에 상응하는 하나의 새로운 개념 곧 ‘새로운 시대’(neue Zeit)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그리고 하버마스가 코젤렉을 인용하며 말하고 있듯이, 이 “새로운 시대가 근대이다.”
 
 
칸트는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에 관한 저술 「헤르더의 인류 역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들」(1785)에서 이 ‘새로운 시대’의 이념을 ‘끊임없는 진보’(Fortschritts)로 규정하면서, 이를 인류의 목적이자 역사의 필연이라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헤르더와 칸트의 ‘진보’는 단순한 ‘새로움’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이상의 것이다. 옛것과 새것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이 새로운 ‘새로움’은 단지 새로울 뿐만 아니라 ‘더 나은 것’, ‘더 좋은 것’이다. 누구에게 더 좋은가? 이 새로움은 ‘인류에게’ 더 좋은 것이다. 이렇게 칸트는 데카르트의 무시간적(사실은 가톨릭적)이고 개별적인 ‘나’를 시간적・역사적(개신교적)인 인류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 인류의 진보는 우연한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일종의 섭리 곧 역사적 필연으로 이해된다. “인류 일반의 목적은 끊임없는 진보이며, 이 목적의 완성은 간단하지만 모든 면에서 유용한—우리가 섭리의 목적에 맞게 우리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목표에 관한 이념이다.” 이러한 역사적 필연의 관념은 인간 정신의 법칙이며, 기본적으로 그 근거를 과학의 진보에서 찾는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진보의 관념은 서구 18세기 계몽주의의 근본적 사상이었다.
 
 
코젤렉은 개념사의 기념비적 명저 『지나간 미래』에서 현대 한국어・일본어로 ‘역사(歷史)’라고 번역되는 독일어 Historie가 Geschichte로 변화하는 과정을 상세히 그려 준 바 있다. 전자는 그리스어의 어원 그대로 ‘이야기’의 뉘앙스가 강하며, 후자는 헤겔적 의미로 이해된,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자신이 실현하는 역사철학의 대상으로서의 역사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대략 1750년 이래 150여 년 동안 일어난 이중적 과정, 곧 한편으로는 neue Zeit[새로운 시대]라는 두 단어가 결합되면서 하나의 복합개념으로 변화한 Neuzeit[근대] 혹은 그 형용사형 neuzeitlich[근대적]로 변화하는 과정,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적으로 당시까지 복수로 사용되던 Geschichten이 대표단수화된 형태인 Geschichte로 대체되는 과정과 대체적으로 일치한다. 이 진보의 “역사철학이야말로 근대 초기를 과거로부터 단절시키면서 새로운 미래와 더불어 우리의 근대를 열었던 장본인이다.” 코젤렉의 표현대로 “근대는 과거 전체에 세계사적 질을 준다. 그와 함께 그때그때의 역사의 새로움은 새로운 것으로 성찰되면서 진보적으로 전체역사를 요구했다. 역사를 세계사로 다시 써야 한다는 것은 당연했다. (……) 시대의 특성은 바로 진보의 지평에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졌고, 새로운 시대의 진단과 지나간 시대의 분석이 서로 연결되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한다는 과업을 완수한 것이 헤겔(G. W. F. Hegel, 1770~1831)이다. “현대[근대]의 개념을 발전시킨 최초의 철학자는 바로 헤겔이었다. 그러므로 막스 베버에 이르기까지는 자명한 것이었지만 오늘날 문제시되고 있는 현대성[근대성]과 합리성 사이의 내면적 관계가 무엇의 의미하는지를 우리가 이해하고자 한다면, 헤겔에게로 되돌아가야 한다.” 헤겔은 1807년 『정신현상학』에서 ‘우리의 시대’를 이렇게 기술한다. “어쨌든 우리의 시대가 탄생의 시대이며 새로운 시기를 향한 여명기임을 알아차리기란 어렵지 않다. 정신은 지금까지의 일상세계나 관념세계에 결별을 고하고 이를 과거의 품속에 묻어 버린 채 바야흐로 변혁을 이룩할 찰나에 이르러 있다. 정신은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는 전진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나 마치 오랫동안 조용히 자양분을 섭취하며 차츰 성장을 거듭해온 태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려는 최초의 숨결로 질적 도약을 이루어 신생아가 태어나듯이, 자기도야를 지속해온 정신도 또한 천천히 그리고 소리 없이 새로운 형태를 무르익게 하면서 앞서간 지금까지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던 개개의 부분들을 순차적으로 허물어 버리는 바, 이렇게 동요하는 조짐은 다만 간간히 엿보이는 징후 정도로 내비쳐질 뿐이다. (……) 점진적 와해작용이 한순간에 새로운 양상을 드러내면서 번갯불처럼 새로운 세계의 상(像)을 단숨에 추어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시대에 맞추어 새로운 역사적 전망을 기술한다.’라는 독일적인 철학적 근대성[현대성]의 기획은 역사철학적 보편사(普遍史, allgemeine Geschichte)에 대한 요구로 수렵되었다.
 
3 근・현대 예술 —‘새로움의 전통’
 
“보들레르의 근대적 인간이란
자기 자신을 발명하려는 사람이다.”
—푸코, 「계몽이란 무엇인가?」


예술사가 곰브리치에 따르면 18세기 말 19세기 초 화가들은 ‘개인적・서정적 환상’의 세계 안으로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그리고 이는 예술, 특히 회화의 영역에 나타난 참으로 ‘근대적인’ 과거와의 단절인데, 이는 “이것이야말로 전통과의 단절이 가져온 가장 뚜렷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미술가들은 오직 시인들만이 누렸던 개인적 환상의 세계를 종이 위에 펼쳐 놓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었다.” 곰브리치는 그 시초로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인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그림 「태고적부터 계신 이(The Ancient of Days, 1794)」를 들면서 다음처럼 말한다. “블레이크는 환상에 깊이 빠진 나머지 현실 세계를 그리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 내면의 눈에만 의지했다. (……) 이렇게 그는 르네상스 이래로 공인된 전통의 규범을 의식적으로 포기한 최초의 화가였다.” 전통과의 단절이 블레이크로 하여금 객관적・물질적・외적 세계 바깥의 개인적・심리적・내적 세계의 묘사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예술관이 의식적으로 프랑스적인 미학적 근대성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1863년 발표한 「근대적 삶의 화가(Le Peintre de la Vie Moderne)」에 이르러서다.
 
 
‘근대적 화가의 삶’을 다룬 이 에세이에서 보들레르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다음처럼 두 가지로 나눈다. 근대성[현대성]이란 “일시적인 것, 순간적인 것, 우연한 것으로 예술의 반을 이루고, 나머지 반을 이루는 것은 영원한 것, 불변의 것이다.”(35쪽) 이는 각기 ‘영원하고 불변적인 요소’와 ‘상대적이고 상황적인 요소’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성이란 ‘역사적인 것 안에서 유행이 포함할 수 있는 시적인 것을 유행으로부터 끌어내는 것,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끌어내는 것’이다.(34~35쪽) 이런 ‘근대적 삶의 화가’ 혹은 ‘근대성의 화가’는 ‘우연성이 함축하고 있는 영원성을 암시하는 모든 것의 화가’이다.(26쪽) 또한 이 화가는 어린아이처럼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사람이다. 그의 호기심 어린 시선은 새로운 어떤 것에 직면한 어린아이들의 고정되고 동물같이 황홀경에 빠진 시선이다.(30쪽) 우연성과 찰나, 유행, 그리고 현재의 화가는 오늘을 그린다. 그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영원성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연성과 찰나, 유행과 현재에서 찾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우연성의 화가’는 ‘댄디’이자 ‘세계인’이며, 무엇보다도 하나의 ‘예술가’이다.(28~29쪽) 이 예술가의 댄디즘은 하나의 정열이다. 이 정열은 무엇보다도 ‘관습이라는 외적 한계 안에 억눌려 있는 자신으로부터 하나의 독창성(originalité)을 만들어 내려는 모든 열정적인 욕구’이자, ‘정신주의’와 ‘금욕주의’를 통한 일종의 자기숭배(culte de soi-même), 자기 수련, 자기도야, 곧 하나의 영웅주의이다.(51~55쪽) 보들레르의 댄디는 예술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매일매일 새롭게 발명해 내는 자이다.
 
 
20세기에 들어서자, 이제 철학적・미적 근대성은 전통과의 단절, 새로운 것의 숭배라는 관념 자체를 자신의 주된 이념으로 삼게 된다. 그 이념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새로운 것은 인류와 예술이 진보하거나 인간의 복지・행복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이런 새로운 것 자체에 대한 숭배는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전통’을 창조했다. 새로운 것은 전통과 단절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새로운 것에 대한 선호’라는 서구 근대 이래의 역사, 이미 보들레르 이후로도 150년이 지난 역사는 이러한 태도 자체를 ‘또 하나의’ 전통으로 확립시켰다. 로젠버그는 이미 1959년에 이 새로운 것 자체에 대한 숭배의 태도가 이미 새로움의 전통(tradition of the new)을 구성했다고 보았다. 로젠버그는 유구한 역사를 갖는 새로움에 대한 서구의 철학적・미학적・정치적 전통은 단순한 미학적・정치적 제도만이 아닌, 인간 자체의 전면적 혁신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누구든 (예술을) 창조하려는 자는 곧 자신이 스스로를 창조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회화, 정신의학, 정치적 행동을 막론하고, 자기 변형(self-transformation) 및 타인의 변형은 우리 세기의 가장 급진적 관심을 구성해 왔다.”
 
4 나가면서 —‘새로움의 추구’라는 자기의 테크놀로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오르한 파묵, 『검은 책』


보들레르의 근대성 혹은 새로움에 대한 규정이 보여 주는 특징들 중 하나는 그것이 더 이상 인식되는 대상에 한정된 것이 아닌, 인식하는 자 자신, 곧 주체에 관련되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형성, 곧 주체의 자기 형성에 관련되는 제반 규정들을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규제적(prescriptive)’ 원칙들이라 불렀다. 이 규제적 원칙들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 부과하는 원칙들로서, 그 목적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일정한 규칙 혹은 금기, 제한을 가함으로써 주체가 스스로를 지금의 자기와는 다른 존재로 변형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의 자기 변형을 위한 규제적 테크닉은 푸코에 의해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 주체화 양식의 일종으로 간주된다. 자기의 테크놀로지(technologie de soi)는 글자 그대로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기 위한 테크놀로지, 방법론을 지칭하는 것이며, 주체화(subjectivation)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주체가 아니라, 주체가 끊임없이 변형되면서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위에서 우리가 극히 간략한 형태로 일별해 온 새로움에 관한 ‘서양’의 관념들은 특히 르네상스 및 ‘근대’ 이래 탄생한 하나의 특수한 역사적・문화적 강조점을 갖는 일련의 담론들로
구성된다. 르네상스와 근대 초기에, 새로움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속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이후 점차로 인간 사회의 보편적 역사라는 ‘진보적’ 관점에 의해 수렴되는 동시에, 그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존재이자 그러한 진보를 위해 행동하는 주체에 대한 인식으로 확장된다. 헤겔과, 특히 보들레르 이후로 새로움은 사회와 주체 자신의 발명이라는 이중적 작업에 연관된다. 이와 동일한 정신 안에서 탄생한 이른바 서양의 ‘근현대’ 예술은 작품의 창조인 동시에 그러한 작품을 창조하는 주체 자신의 창조를 지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새로움에 대한 추구는 자기 심화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것 자체에 대한 추구로 변형된다. 로젠버그는 이를 새로움의 전통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새로움의 전통에서 모든 창조 작업은 창조하는 자 자신의 발명을 포괄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헤겔과 보들레르 이래의 모든 서양 근현대 예술 혹은 사유는 자신의 발명을 포함하는 행위가 된다. 이는 정확한 의미에서 푸코가 말하는 자기의 테크놀로지, 혹은 주체화에 해당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주체화 과정은 하나의 진리 놀이로서, 이 놀이 안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창조의 대상, 곧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새로움의 전통을 포함하여, 이러한 모든 전통을 아는 오늘의 우리는 한 사회 안에 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또다시 우리만의 주체화를 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주체화의 양식은 또 다른 질문의 양식으로 우리 자신에게 되물어질 수밖에 없다.
 
 
예술가를 포함한 모든 인간은 결국 전통과 놀이하는 자다. 로젠버그의 지적처럼, 오늘 새로움 자체의 추구는 이미 그 자체로 새로움의 전통이 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우리는 새로움의 전통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하여 우리의 그러한 행위마저도 미래에는 또 다른 새로움의 전통이 되어, 또다시 새로운 것에 의해 폐기처분되고 또다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하는 운명인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오늘 우리가 행하는 새로움의 추구가 인간의 보편적 성향임과 동시에 하나의 문화적, 곧 서양적 전통임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가 서양화된 만큼 이 새로움의 전통이라는 서양의 전통을 따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서, 이러한 새로움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다름 아닌 나의 서양화를 유지하고 가속화하는 행동이 아닐까? 우리는 새로움의 추구에 의해 조건화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인간의 보편성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서양의 것이라고 해서 굳이 따르지 않을 필요가 있을까?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우리가 자연을 바라보는 서양의 방식이 자연 그 자체를 인식하는 방법이라고 믿는 것처럼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새로움을 바라보는 방식이 인간이 새로움을 바라보는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방식이라 믿는 것 역시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새로움은 하나의 보편적 범주일 수 있으나, 새로움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구체적 방식이란 늘 역사적이고 문화적이며 궁극적으로 정치적이다. 오늘 우리가 새로움을 바라보는 일반적 방식은 근대 이래 서양의 지배적 관점, 곧 새로움 자체의 영원한 추구이다. 그리고 오늘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또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새로움만을 강박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이 게임의 규칙은 누가 정한 것일까? 인간은 전통과 놀이하는 자다. 그리고 이 놀이는 늘 질문의 형식으로 그에게 되돌아와, 그에게 다른 생각을 낳고,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움의 전통이라는 전통과도 놀이해야 한다. 나는 내 삶 안에서 새로움(의 전통)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이는 자기와 자기의 관계를 문제 삼는 주체화의 진리 놀이, 자기를 발명하고자 하는, 더 나아가 이제까지의 자기와는 다른 자기를 상상하고, 자기로부터의 일탈을 꿈꾸며, 새로운 놀이의 규칙을 발명하려는 자기의 테크놀로지라는 놀이이다.
 
 
“하나의 놀이가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그것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알지 못하는 한도에서이다.”(푸코)
 
 
 
 

2013. 4. 6.

황상익, 근대 의료의 풍경

















나는 딱 한 마디만 하겠다.

참다운 우리나라 학문(國學), 참다운 보편사는
바로 이런 책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나도 바로 이런 작업을 지난 이십여년 간 해오고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고독한 작업에 매달리신
황상익 교수님의 혜안에 존경의 념을 품는다.







2012. 12. 14.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헤겔, <정신현상학1>(1807), 임석진 옮김, 한길사, 2005.
 
 
 
 

 
 
 
IV. 자기 확신의 진리
 
 
1. 자기의식의 자립성과 비자립성: 지배와 예속
  
자기의식은 또 하나의 자기의식에 대하여 융통자재(融通自在)하는 가운데 바로 이를 통하여 상생상승(相生相勝)한다. 즉 자기의식이란 오직 인정된 것(ein Anerkanntes)으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중화한 의식이 통일된다는, 자기의식 속에 실현되어 있는 무한성의 개념은 다면적이고 다의적으로 착종되어 있어서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요소를 정확하게 식별하여 구별된 가운데서도 동시에 구별되지 않는 것, 또는 구별된 것과는 정반대되는 의미를 잡아내서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구별된 것이 이중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자기의식의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니, 즉 자기의식이란 스스로 무한한 운동을 펴나가는 가운데 일단 정립되고 난 성질과 정반대의 것으로 즉각 전화(轉化)한다. 이렇듯 이중화한 자기의식의 정신적 통일이란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주는 것이 ‘인정’의 운동이다.
  
자기의식에 또 하나의 자기의식이 대치될 때 자기의식은 자기의 밖에 벗어나 있다. 여기에는 이중의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자기의식이 자기를 상실하여 타자를 두고 자기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를 참다운 자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본다는 식으로 타자를 지양한다는 의미이다.
 
 
이제 자기의식은 자기를 타자로 보는 그런 일은 지양해야만 한다. 이는 지금 얘기된 이중의 의미를 지양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되면서 여기에는 또 다른 이중의 의미가 발생한다. 하나는 자기의식이 자기 이외의 다른 자립적 존재를 지양하고 이로써 자기야말로 본질적인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이 타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므로 이제는 자기 자신을 지양하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중의 의미를 지닌 타자의, 이중적인 의미에서의 지양은 동시에 이중의 의미에서 자체 내로의 복귀(eine doppelsinnige Rückkehr in sich)이다. 왜냐하면 첫째로 자기가 타자라고 하는 상태를 벗어나 자기와 일체화된 자기의식은 자기를 되돌려왔기 때문이며, 둘째로 자기의식은 타자 속에 있던 자기의 존재를 지양하는 방식으로 타자를 완전히 방임함으로써 여기에 다시금 또 하나의 자기의식이 이쪽 편에 대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자기의식과 다른 자기의식과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이러한 운동이 여기서는 한쪽 편의 행위로만 표상되어 있지만, 한쪽의 행위라는 것은 이미 한쪽 당사자의 행위인 동시에 또 다른 쪽에서의 행위이기도 하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타자도 역시 자립적인 완연한 존재이므로, 그 자신 속에 있는 것은 모두가 그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초의 자기의식도 단지 욕망(Begierde)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 그러한 생명체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립자존하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므로 무엇을 하려 하건 간에 상대 쪽에서도 자기가 그에게 행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해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실현될 수가 없다.
 
 
따라서 운동은 어김없이 두 개의 자기의식이 행하는 이중의 운동으로서, 양쪽 모두가 상대방이 자기와 동일한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 된다. 양쪽 모두가 자기가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것을 스스로 행하고 상대방이 그와 동일한 것을 행하는 한에서만 자기도 또한 동일한 것을 해하게 되므로 한쪽에서만의 행위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고, 정말로 실현되어야 하는 것은 오직 쌍방의 행위를 통하여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행위는 일차적으로 자기에 대한 행위인 것 못지않게 타자에 대한 행위라는 점에서 이중의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서로가 불가분 한쪽의 행위인 것 못지않게 또한 다른 쪽의 행위라는 점에서도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운동 속에서 우리는 일찍이 힘의 유희로 표현되던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다만 여기서는 그것이 의식 내부에서 행해지고 있다. 힘의 유희에서는 방관자인 우리에게만 보여졌던 것을 여기서는 양극에 위치한 두 개의 자기의식이 바라보고 있다. 이 양쪽 중심에 있는 것도 자기의식으로서, 이것이 양극으로 분열되면서 두 개의 극이 서로의 역할을 교환해가며 저마다 반대의 역할로 무한히 이행한다.
 
 
물론 이것은 의식의 운동인 이상 자기의 밖으로 벗어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자기의 밖으로 나가는 것이 동시에 자체로 되돌아와 자기를 고수하는 것이어서 결국 자기가 자기의 밖으로 벗어나 있다는 것이 명확히 의식되어 있다. 자기가 직접 타자의 의식이면서 또한 타자의 의식은 아니라는 것이 자각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또 타자가 독자적 존재가 되는 데서도 스스로 독자적 존재임을 포기하여 타자의 독자성 속에서 스스로를 자각하는 상태가 이루어져야 한다.
 
 
각자마다가 상대방에 대하여 중간 위치를 차지하고, 이렇듯 중간항을 이루는 상호적인 타자를 매개로 하여 각기 저마다가 자기와의 매개 아래 자기와 합일된다. 결국 각자마다가 자기와 타자에 대하여 직접 독자적인 위치에 있는 존재로 나타나긴 하지만 이러한 독자성은 동시에 타자를 매개로 하여 비로소 얻어진다. 두 개의 자기의식은 교호적인 인정 상태에 있는 의식으로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두 개의, 이중화한 자기의식이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 인정의 순수한 개념으로서, 이제 이 인정의 과정이 자기의식에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고찰해야만 하겠다. 우선 처음에 타나나는 것은 두 개의 자기의식이 서로 부등한 위치에 있는 경우인데, 여기서는 매개체로서의 중간항이 양극으로 갈라져 대립하는 가운데 한쪽은 인정될 뿐이고 다른 한쪽은 인정하기만 하는 관계가 이루어진다.
 
 
자기의식은 우선 단일한 독자존재로서, 일체의 타자를 배제하는 자기동일성을 지닌다. 이때 자기의식의 본질이며 절대적 대상이 되는 것은 ‘자아’로서, 자기의식은 직접 이 ‘자아’와 어우러진 가운데 ‘자아’라는 독자적 개별자로서 존재한다. 이 개별자는 타자와 맞서 있는데, 이때 타자는 부정되어야 하는 것으로 성격지어진 비본질적인 대상이다. 그러나 이 타자 역시 자기의식인 까닭에 여기에는 개인과 개인의 대립이 형성된다.
 
 
그러나 갓 출현했을 때의 이들 개인은 서로가 마주치는 대상일 뿐이어서, 비록 독립된 형태를 띠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의식은 생명(Leben)이라는 존재-여기서는 생명과 대상이 같은 존재이다-속에 매몰되어 있다. 따라서 이 두 개의 의식은 서로가 직접적인 자기존재를 송두리째 말소해 자기동일적 의식을 지닌 순수한 부정적 존재로서 감당해야 할 절대적인 추상화운동을 행하는 데에는 아직 이르지 못하고 있어서, 서로가 순수한 독자존재 또는 자기의식으로 대치하고 있지는 않다.
 
 
결국 이들은 저마다 자기존재를 확신하고는 있으면서도 타자의 존재를 확신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아직 스스로에 대한 자기확신이 진리가 되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진리일 수 있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독자존재가 자신에게 자립적 대상으로서, 다시 말해서 순수한 자기확신으로서 나타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가 인정 개념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타자가 자기에 대해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타자에 대해서 있고, 또 각기 서로가 자기 자신의 행위와 마찬가지로 타자의 행위를 통해서도 저마다 독자존재일 수 있는 순수 추상화운동(diese reine Abstraktion des Fürsichseins)을 펼쳐나가야만 한다.
 
 
그런데 자기의식의 순수한 추상운동으로서 상호간의 행위가 나타날 때, 이들은 각기 자기의 대상적인 양식을 순수하게 부정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어떤 특정한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일반적인 개별 사안이나 심지어 생명에도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는 이중의 행위로서, 즉 타자의 행위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이 타자의 행위인 한은 각자가 서로 타자의 죽음을 겨냥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둘째로 또한 자기의 행위도 포함되어 있으니, 타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은 곧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개의 자기의식의 관계는 생사를 건 투쟁을 통해 각자마다 서로의 존재를 실증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쌍방이 이러한 투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가 독자적인 존재라고 하는 자기확신을 쌍방 모두가 진리로까지 고양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유를 확증하는 데는 오직 생명을 걸고 나서는 길만이 있을 수 있으니, 자기의식에게는 단지 주어진 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삶의 나날 속에서 덧없는 세월을 보내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무상함을 되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결코 놓칠 수 없는 순수한 독자성(reine Fürsichseins)을 확보하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라는 것마저도 생명을 걸고 나서지 않고서는 확증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생명을 걸고 나서야 할 처지에 있어보지 않은 개인도 인격으로서 인정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개인은 자립적 자기의식으로 인정받는 참다운 인정상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때 각자는 자기의 생명을 내걸 뿐만 아니라 타인을 죽음으로 내몰아야만 한다. 타인은 추호도 자기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그의 본질을 자기 안에 지니지 않고 자기의 밖으로 벗어나 있으니, 밖으로 벗어나 있는 존재는 지양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타자는 다양한 일상사에 매여 있는 그런 의식이지만, 자기의식이 스스로의 타자로서 맞서려고 하는 것은 순수한 독자존재 또는 절대적 부정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타자인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의한 이러한 확증을 필경 이로부터 발현되어야 할 진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확신마저도 전적으로 무산시켜버린다. 왜냐하면 생명이란 의식을 떠받쳐주는 자연적인 기점(基點)이며 절대적 부정성까지는 갖추지 않은 자립적인 힘으로서, 그의 자연적인 부정 상태로서의 죽음은 아무런 자립성도 없는 부정성을 뜻한다는 점에서 여기서 요구되는 바와 같은 인정의 의의를 담보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죽음을 통하여 두 개의 자기의식이 서로 목숨을 걸고 상대방의 생명을 업신여기는 것은 확증되지만, 이러한 확증은 싸움을 견뎌낸 당사자에게 안겨지지는 않는다. 죽음을 걸고 맞서 있는 두 당사자는 자연적 존재라는 생소한 토대에 뿌리내리고 있는 의식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파기하고 자립성을 고수하려는 양극에 자리한 자기의식으로서 서로가 맞서는 경우라고는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개의 자기의식은 교호적인 관계 속에 양극으로 대립해 있다는 본질적인 게기는 상실한 채 다만 죽은 통일체라고나 할 중간 지점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니, 이렇게 죽음의 궁지로 내몰린 상태에서는 이 중간 지점도 역시 대립 없는 양극에 묻혀버리게 된다. 양극이 더 이상 의식적으로 대응하면서 서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물체가 아무런 관련도 맺지 않은 채 거기에 내던져져 있을 뿐이다. 생사를 건 투쟁은 무의미한 부정으로서, 이는 상대를 타파하면서도 또한 그것을 보존하고 유지함으로써 파국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의식의 부정과는 다른 것이다.
 
 
이 경험의 와중에서 생명이 순수한 자기의식과 마찬가지로 자기에게 본질적이라는 것이 자기의식에게 깨우쳐진다. 간신히 자기를 의식하기에 이른 의식에게는 단순한 ‘자아’가 절대적 대상이지만 이 대상은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매개를 거쳐 나타난 것으로서, 자립적 생명을 본질적인 요소로 하고 있다. ‘자아’라는 단순한 통일체는 최초의 경험의 결과로서 와해되고 만다.
 
 
이로 인하여 여기에 순수한 자기의식과 순수히 자립적이 아닌, 타자와 관계하는 의식, 즉 사물의 형태를 띠고 존재하는 의식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은 의식에게는 모두가 본질적이다. 그러나 일단 이 양자는 서로 부등한 상태에서 대립해 있는 가운데 서로가 통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잡이는 아직 나타나 있지 않으므로 서로 대립하는 두 개의 의식형태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쪽이 독자성을 본질로 하는 자립적 의식이고 다른 한쪽은 생명, 즉 타자에 대한 존재를 본질로 하는 비자립적인 의식이다. 여기서 전자가 ‘주인’(der Herr)이고 후자가 ‘노예’(der Knecht)이다.
 
 
주인은 자주ㆍ자립적인 의식으로서, 단지 개념상으로만 그런 존재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형태를 띤 자립적인 존재와 함께 묶여 있는 타자의 의식과 매개된 가운데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의식이다. 주인은 욕망의 대상인 사물 그 자체와 물성을 본질적으로 여기는 의식이라는 두 개의 요소와 관계한다. 이때 주인으로서의 자기의식은 ① 독자적으로 직접 상대방과 관계하는 측면과 ② 타자를 통하여 비로소 자립적일 수 있는 매개의 측면을 지니는 것과 함께, ① 위의 두 측면과 직접 관계하는 경우와 ② 어느 한쪽을 매개로 하여 타자와 관계하는 경우가 있다.
 
 
우선 주인은 사물이라는 자립적인 존재를 매개로 하여 노예와 관계한다. 노예는 바로 사물에 속박되어 있다. 노예는 생사를 건 싸움에서 사물에 의한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물성(物性)을 띠지 않고는 자립할 수 없는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반하여 주인은 싸움을 치르는 가운데 사물의 존재란 소극적인 의미밖에 지니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사물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하였다. 주인의 지배 아래 있는 사물은 주인에 대치하는 노예를 지배하는 힘을 지니는 까닭에 이 지배적인 힘의 사슬 속에서 주인은 노예를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주인은 노예를 매개로 하여 사물과 관계한다. 노예로서도 자기의식은 갖고 있으므로 사물에 부정적인 힘을 가하여 사물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사물은 노예에 대하여 자립적인 존재이므로 노예는 부정의 힘을 가한다 해도 사물을 아예 폐기해버릴 수는 없고 사물을 가공하는 데 그친다. 이에 반하여 노예를 통하여 사물과 관계하는 주인은 사물을 여지없이 부정할 수 있으므로 주인은 마음껏 사물을 향유한다.
 
 
이로써 욕망의 의식으로서는 이루지 못했던 것, 즉 사물을 마음 내키는 대로 처리하고 소비하는 가운데 만족을 누리는 일을 주인은 해낼 수 있게 된다. 결국 사물의 자립성으로 인하여 욕망의 의식에게 그러한 결과가 성취되지 못하던 참에 주인은 사물과 자기 사이에 노예를 개재시킴으로써 사물의 자립성을 미끼로 하여 사물을 고스란히 향유한다. 이때 사물의 자립성이라는 측면은 노예에게 위임되고 노예는 이를 가공하는 것이다.
 
 
위의 두 관계 속에서 주인은 노예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다. 두 관계 가운데 어느 경우도 노예는 비본질적인 존재로서, 한편으로는 사물을 가공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한 물건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노예로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사물을 지배하고 사물을 절대적으로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주인 쪽에서 보면 노예라는 타자의 의식이 스스로의 자립성을 포기하고 주인인 자기가 상대방인 노예에게 할 일을 노예 자신이 행한다는 의미에서 인정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노예가 행하는 것은 본래는 주인이 행해야 하는 것이므로 노예의 행위는 곧 주인 그 자신의 행위라는 의미에서도 인정관계가 성립되어 있다.
 
 
어디까지나 독자성을 지닌 본질적 존재로서의 주인은 사물을 홀대하는 순수한 부정의 힘을 행사함으로써 이 관계 속에서 순수한 본질적 행위자에 해당되는 데 반하여 노예는 자기를 관철시키지 못하는 비본질적인 행위자이다. 그러나 노예에 의한 주인의 인정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주인이 상대에 대해서 행하는 것을 주인 그 자신에 대해서도 행하고, 또 노예가 그 자신에 대해서 행하는 것을 역시 그의 상대인 주인에 대해서도 행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여기에 조성되어 있는 상태는 일방적인, 부등한 인정의 관계이다.
 
 
이렇게 해서 비본질적 의식이야말로 주인에게 있어서의 대상이며 또한 주인의 자기확신을 객관적으로 드러내주는 진리라고 해야만 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대상은 본질적인 의미의 자기의식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주인의 자기실현으로 여겨지는 이 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은 자립적인 의식과는 전혀 별개의 비자립적인 의식이다. 따라서 주인은 의식의 독립성을 객관적 진리로서 확신하는 것은 아니며 거기에 객관적 진리로서 있는 것은 비본질적 의식과 이 의식에 의한 비본질적인 행위이다.
 
 
이렇게 되면 자립적 의식의 진리는 노예의 의식에 있는 것이 된다. 물론 노예의 의식은 일단 자기를 상실한 상태에서 자기의식의 진리를 체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배의 과정에서 바로 이 지배의 본질이 스스로를 지향했던 것과는 반대의 것으로 전도되었듯이 예속의 본질도 역시 그것이 관계가 실현되는 가운데 직접 드러나 보이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으로 전도된다. 노예의 의식은 자체 내로 떠밀려 들어가서 자기복귀할 때 참다운 자립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은 지배와의 관계 속에서 예속은 어떤 위상을 지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속되는 것도 자기의식이므로 이런 점에서 예속이 의미하는 그의 전체적인 실상이 고찰되어야만 하겠다. 우선 예속된 의식에서는 주인이 본질적인 존재이므로 주인 쪽의 자립 자존하는 의식이 예속된 의식에서 객관적 진리를 이루지만 아직도 이 진리는 예속된 의식에서 실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가운데 실은 예속된 의식이야말로 스스로가 부정성을 지닌 독자존재라는 진리를 사무치게 깨우친다고 하겠으니, 노예는 주인의 존재를 몸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예속된 의식이 안고 있는 불안은 단지 우발적으로 나타난 어떤 것에 고나한 불안도 그리고 특정 순간에 닥치는 불안도 아닌, 그야말로 자기의 존재에 흠뻑 닥쳐오는 불안으로서 이것이 무한정한 힘을 지닌 주인에게서 닥쳐오는 죽음의 공포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포 속에서 내면으로부터의 파멸에 직면한 노예는 걷잡을 수 없는 전율을 느끼면서 그를 지탱해왔던 모든 것이 동요를 일으킨다. 도처에 생겨나는 이 순수한 운동, 즉 존립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인 유동화는 자기의식의 단순한 본질인 절대적 부정성의 발로로서, 자기의식의 순수한 자립성이 이러한 모습으로 노예의 의식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주인에게 갖추어져 있는 순수한 독자적 요소도 그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에 노예는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도 자립성을 감지하기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다. 이것은 노예의 의식에 단지 막연한 심정상(心情上)의 자괴감으로만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노예노동 속에서 현실적인 붕괴에 직면하게 한다. 이렇듯 노동을 수행하는 매순간마다 노예는 자기에게 가해진 물리적 속박으로부터 탈피하려는 뜻에서 사물을 가공하고 변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감정상으로나 공포 속에서 행해지는 개별적인 노예노동에서도 감지되는 주인의 절대권력은 붕괴를 예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바, 비록 주인에 대한 공포가 지혜의 실마리를 이룬다고는 하지만 의식은 여전히 대상에 얽매인 채 독자성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결국 의식이 자기에게로 되돌아오는 데는 노동이 개재해야만 하는 것이다(Durch die Arbeit kommt es aber zu sich sewlbst).
 
 
주인의 의식에서 욕망에 해당하는 것이 노예의 의식에서는 노동이 되는 셈인데, 어쨌든 노동에서 사물의 자립성이 유지되는 이상 노예는 사물에 대하여 종속적인 위치에 있는 듯이 보인다. 욕망이라는 것은 대상을 전적으로 부정하며, 그럼으로써 티 없는 자기 감정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니만큼 또 거기서 얻어지는 만족감은 그대로 소멸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때 욕망에는 대상의 존립이라는 측면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하여 노동의 경우는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사물이 탕진되고 소멸되는 데까지 밀어붙이지 않고 사물의 형성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대상에 대한 부정적인 관계란 대상의 형식을 다듬어가며 그의 존재를 보존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노동하는 노예에게 대상은 어디까지나 자립성을 띤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을 부정하는 가운데 형식을 다듬어가는 행위라는 이 매개적인 중심은 동시에 의식의 개별성 또는 순수한 독자성이 발현되는 장(場)이기도 한데, 결국 의식은 노동하는 가운데 자기 외부에 있는 지속적인 터전(die Element des Bleibens)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노동하는 의식은 사물의 자립성을 곧 자기의 자립성으로 직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사물의 형성은 봉사하는 의식의 순수한 독자성이 존재하는 모습을 띤다는 긍정적인 의의를 지닐 뿐만 아니라 공포라고 하는 첫째가는 요소를 불식시키는 부정적인 작용도 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봉사하는 의식이 사물을 형성하는 데 따른 그의 자립적 부정성은 당면해 있는 사물의 형식을 타파하는 과정을 거쳐서 대상화되지만, 이 부정되는 대상이야말로 노예로 하여금 공포에 떨게 했던 그 낯선 외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이제야 노예는 이 낯선 부정적인 힘을 파괴하여 스스로가 부정의 힘을 지닌 것으로서 지속적인 터전에 자리를 차지하여 독자존재로서의 자각을 지닌다. 주인에게 봉사할 때 독자적인 존재는 타자로서 자기와 맞서 있다. 말하자면 주인에 대한 공포 속에서 스스로 독자적인 조재임이 몸소 깨우쳐지는 것이다. 사물을 형성하는 가운데 스스로가 도자적인 존재라는 것을 깨우치면서 마침내 그는 완전무결한 독자존재임을 의식하기에 이른다. 사물의 형식은 외면에 자리 잡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의식과 별개의 것은 아니며, 오직 형식만이 봉사하는 의식의 순수한 독자성을 갖춘 진리의 모습이다. 그리하여 의식은 타율적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는 노동 속에서 오히려 자력으로 자기를 재발견하는 주체적인 의미(eigner Sinn)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봉사하는 의식이 이렇듯 반성적인 자기복귀를 이루는 데에는 공포와 봉사라는 두 요소와 함께 사물의 형성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필요하며 더욱이 이들 요소가 노예생활 전반을 뒤덮고 있어야만 한다. 봉사와 복종의 기강이 잡히지 않고서는 공포는 형식적인 데 그칠 뿐, 현실생활에 의식적으로 퍼져나가지는 않는다. 또한 사물의 형성이 없이는 공포는 내면에 잠겨있을 뿐이어서 의식이 이를 명확하게 의식할 리가 없다. 더욱이 최초의 절대적인 공포를 느끼지 않은 채 의식이 사물을 형성하게 된다면 의식은 다만 자기의 허영심을 채우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형식에 나타난 의식의 부정성이 역시 자기마저도 부정하난 힘이었다고 느껴지지 않으며, 따라서 사물을 형성하더라도 이것이 본질적인 자기실현이라고는 의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이 절대적인 공포를 실감하지 않은 채 다만 어쩌다 불안감에 젖어들 뿐이라면 자기를 부정하는 힘은 자기 밖을 맴도는 데 그치며, 자기의 심혼마저도 뒤흔들어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기의 일상적인 의식이 안주해 있던 스스로의 지반이 여지없이 동요하는 데까지 내몰리지 않는 한 어딘가에 기댈 만한 언덕이 남아 있겠지만, 그런 상태에서 자기존립을 지탱할 수 있다고 지레짐작한다는 것은 속절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으며, 그의 자유라는 것도 예속된 상태의 자유에 그칠 뿐이다. 사물의 순수한 형태가 그대로 자기의 본질로 화하지 않는 한, 개개의 사물에 각인된 모습이 의식 전체를 감싸 안는 절대적 개념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것은 이러저러한 사물을 잔재주를 통하여 가공하는 손놀림에 그칠 뿐, 보편적인 자연력이나 대상 세계 전체를 압도하는 것과 같은 그런 힘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 220~234쪽
 


 

2012. 9. 24.

martin heidegger







 


 
 
1889-1976
 
 
 
 
 
 
 
Heidegger Speaks. Part 1.
 
 
 
 
 
 
The End of Philosophy and The Task of Thinking (English Subtitles)
 
 
 
 
 
Heidegger - life and Philosophy
 
 
 
2
 
 
 
3
 
 
 
4
 
 
 
5
 
 
 
6
 
 
 
 
 
 
Martin Heidegger Biography
Thinking The Unthinkable (BBC)
 
 
 
 
 
Martin Heidegger and Nazism,
"Only A God Can Save Us"
by Jeffrey van Davis
Terrance Edward Davis Producer

An investigation of Heidegger's socalled "flirtation" with Nazism
and his support of Hitler and the National Revolution.
 
 



2012. 9. 19.

불공정은 불가피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니체전집 7)>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미기




6. [...] 너는 모든 가치 평가에서 관점주의적인 것을 터득해야만 했다 - 지평의 이동, 왜곡 그리고 표면상의 목적론과 관점주의적인 것에 속하는 모든 것 그리고 대립된 가치들과 관계하는 약간의 우둔함, 찬성과 반대와 함께 항상 지불되는 지적 희생도 터득해야만 했다. 모든 찬성과 반대 속에 포함된 필연적인 불공정[불공평]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그 불공정은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삶 자체를 관점주의적인 것과 그 불공정에 의해 제약되는 것으로 터득해야 했던 것이다.
- 18쪽


31. 비논리적인 것은 불가피하다 - 비논리적인 것이 인간세계에 필요하며 비논리적인 것에서 좋은 것이 많이 생겨난다는 인식은 사상가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는 것 중에 하나다. 비논리적인 것은 정열, 언어, 예술, 종교 등에 그리고 대체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에 상당히 깊이 파고 들어가 있어서, 이들 아름다운 것들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주지 않고는 비논리적인 것을 퇴치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순수하게 논리적인 본성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주 소박한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이 목표에 접근하는 단계라는 것이 있다면,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은 상실될 것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가장 이성적인 인간도 때로는 다시 본성을, 즉 만물에 대한 자신의 비논리적 기본 입장을 필요로 한다.

32. 불공정함은 불가피하다 - 삶의 가치에 관한 모든 판단은 비논리적으로 발전해온 것이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판단의 순수하지 못함은, 첫째 재료가 나타나는 양식에, 즉 극히 불완전한 점에 있으며, 둘째 재료에서 총계가 구성되는 양식에 있으며, 셋째는 재료의 모든 개별 부분이 순수하지 못한 인식의 결과이며, 더욱이 이런 순수하지 못한 인식의 결과가 다시 필연적이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겪은 경험의 총체적 평가를 위한 논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만큼 완전할 수는 없다; 모든 평가는 성급하며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재는 척도, 즉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은 결코 불변의 크기를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위기와 동요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 대한 어떤 사항의 관계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확실한 척도라고 믿어야만 한다. 아마 이상의 모든 면에서 본다면 사람은 전혀 판단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가하지 않고, 혐오와 애착 없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왜냐하면 모든 혐오는 애착과 마찬가지로 역시 평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유익한 것을 얻고자 원하고 유해한 것을 회피하는 감정 없이 그 무엇을 하고자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충동 그리고 목표의 가치에 대한 인식적인 평가가 없는 충동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비논리적인, 따라서 불공정한 존재이며,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현존재의 가장 크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부조화 중의 하나이다.
- 54-56쪽





<미셸푸코> - 이광래

       
"Le sens historique, tel que Nietzsche l'entend, se sait perspective, et ne refuse pas le systeme de sa propre injustice."

"니체가 이해한 바의 역사적 감각은 자신이 관점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불공정한 체계를 거부하지 않는다."

- "Nietzsche, la Généalogie, l'Histoire", Dits et ecrits I, p.1018; 미셸 푸코, 「니체, 계보학, 역사」, 이광래 옮김, 이광래 지음, <<미셸 푸코: ‘狂氣의 역사’에서 ‘性의 역사’까지>>, 민음사, 1989, 350쪽.




***



이 세계의 다양한 관점들을 가로지르는 '절대 관점, 보편 관점이 없는' 혹은 달리 말해 '신이 죽은' 이 세계 안에서, 이른바 모든 '포스트주의'의 도덕성은 어떤 관점의 우월적 지위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자, 바로 그 정신에 입각하여 자신의 이론마저도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며 따라서 부당하고 불공정한 체계임을 받아들인다는 점에 있다.
이제까지 스스로를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해왔던 모든 이론들은 사실상 그렇게 스스로를 믿고 주장할 뿐인 무수한 가능한 관점들 중 단 하나인데, 그들은 이렇게 보통 말한다.
"다른 모든 이론들은 단지 관점에 불과하다. 진리인 내 이론만 빼고!"
이른바 '포스트주의들'은 바로 이 점에 대해 스스로를 배제시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단연 탁월한 도덕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렇게 '하나의 논리가 자신의 주장을 - 사실은 모든 이론이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성실히 적용시키는 행위'를 '논리의 윤리성'이라 부른다.

2012. 9. 2.

도덕성의 최근 형식













<유고 (1885년 가을-1887년 가을)>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이진우



2[191] 나의 주장 : 도덕적 가치 평가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 도덕적 감정-충동을 “왜?”라고 물음으로써 저지해야 한다는 것. “왜?”와 도덕 비판에 대한 이 열망은 바로 정직의 고상한 감각으로서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도덕성의 형식 자체라는 것. 우리의 정직, 즉 우리를 기만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스스로 그렇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 : “왜 안 되지?” -어떤 법정 앞에서?- 기만당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정복과 착취에 대한 주의, 삶의 정당 방어 본능. // 이것이 너희에 대한 나의 요구다 - 그 요구들은 너희 귀에 들리지 않을 수도 있다 - : 너희가 도덕적 평가 자체를 비판해야 한다는 것. 너희가 여기서 비판이 아닌 예속을 요구하는 도덕적 감정-충동을 “왜 예속을?”이라는 질문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것. 너희가 “왜?”와 도덕 비판에 대한 이러한 열망을 지금 너희가 갖고 있는 도덕성의 형식 자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 너희가 너희 시대를 명예롭게 만드는 가장 고상한 정직의 형식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



***



내가 생각하기에, '네게 주어진 도덕적 명령, 명제 혹은 네가 느끼는 도덕 감정을 지금 현재의 네가 능동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그 행위야말로 도덕성의 형식 자체'라는 이 문장이야말로 공자, 소크라테스 이래 인류 윤리학 3000년 역사에 던져진 진정한 혁명이다.



2012. 7. 28.

푸코와 역사, 그리스





 <그리스 문명 (살림지식총서 115)> - 최혜영
       
푸코 역시 부르주아 사회의 생명은 합리성, 효율성, 기술성, 생산성이라고 말하며, 이의 대안으로 고대 그리스 사회를 제시한다. 실제와 환상, 역사와 신화, 자연과 인간의 구분이 있기 이전, 이성과 몰이성, 로고스와 미토스가 의좋게 짝지었던 시대로의 복귀를 주장한 것이다 -13쪽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이영남


객관적 선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푸코는 내면의 무의식 세계로 파고들어가지 않고 역사적이고 외재적인 조건, 객관적인 조건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로 표현했다. - 200쪽


일체의 편견에 대한 배격을 포기하고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지를 분명히 한다면, 보편성에 대한 전망을 견지한다면, 나아가 충돌하고 대립하는 가치를 변증법적 긴장에 넣어 포기하지 않는다면 역사적 사유가 가능할 것이다. 푸코의 역사 서술이 갖는 매력은 이런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 240~241쪽


 

***




두 권의 책 모두, 역사학적 저작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푸코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푸코가 고대 그리스에로의 '복귀'를 주장했다고 말한다거나, 푸코를 '객관적 선험 철학자'로 본다거나, 혹은 푸코를 말하면서 '보편성'에 대한 전망을 견지한다거나 '변증법적' 긴장을 언급한다거나, 하는 말들은 모두 그저 단순히 잘못된 이해이다.
그들은 현대 한국어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근대 메이지 일본의 신한어 '역사'가 Historia, Historie, Geschichte, 歷史, 역사로 변천해온 하나의 '고유명사'임을 아는 것일까?








2012. 7. 27.

헤겔 - 역사철학강의


       



* 프리드리히 헤겔, 『역사철학 강의』, 김종호 옮김, 삼성출판사, 1990.

“철학은 역사를 하나의 재료로서 다루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고 그 사상에 적용시켜, 따라서 이른바 선천적으로(a priori) 역사를 구성하는 것으로 될 것이다.”(68)

“이 형식적인 절대적 진리와 더불어 우리들은 역사의 최후 단계에, 우리들의 [게르만] 세계에, 우리들의 시대에 도달한다.”(477)

“세계사는 자유 개념의 전개 외에 다른 아무 것도 아니다. [...] 철학은 다만 세계사 안에 반영되는 이념의 광휘만을 문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철학은 현실계 안의 직접적인, 미숙한 정열의 움직임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그것을 고찰하는 것이다. 철학의 관심은 ‘자기를 실현하는 이념의 전개과정’, 그것도 자유의 의식이라는 형태에서만 나타나는 자유 이념의 전개과정을 인식하는데 있다.”(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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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강의> - G. W. F. 헤겔 / 권기철

<역사철학강의(세계사상전집 20)> - 헤겔 / 김종호

<역사철학강의(삼성세계사상 15)> - 헤겔 / 김종호

<헤겔의 역사 철학> - B.T.윌킨스 / 최병환

<헤겔 역사철학 강의> - 심옥숙

칸트 - 역사철학





<칸트의 역사철학> - 칸트 / 이한구



       
* 임마누엘 칸트,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역사는 이러한 현상들[인간 행위]을 설명하는 것이며, 그러한 현상들의 원인이 아무리 깊숙이 감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역사에서 인간 의지의 자유가 발휘되는 과정을 긴 안목으로 고찰해 본다면 우리는 그 속에 어떤 규칙적인 진행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21~22)

제1명제. 생명체의 모든 자연적 소질은 언젠가는 완전하게, 그리고 목적에 맞게 발현되도록 결정되어 있다.”(25)

제9명제. 인류의 완전한 시민적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연의 계획에 따라서 보편적 세계사를 편찬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가능한 것으로서, 또 이런 자연의 의도에 공헌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야만 한다.”(40)

* 임마누엘 칸트, 「헤르더의 인류 역사의 철학에 대한 이념들」,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인류 일반의 목적은 끊임없는 진보이며, 이 목적의 완성은 간단하지만 모든 면에서 유용한 - 우리가 섭리의 목적에 맞게 우리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 목표에 관한 이념이다.”(73)

* 임마누엘 칸트, 「추측해 본 인류 역사의 기원」,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완전성을 향한 진보로서의 인류의 운명”(83)

“우리는 중국의 경우만을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중국은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해 - 적어도 몇 번 예측하지 못한 외침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되었지만 - 강력한 적대국을 갖지 않았으므로 모든 자유를 상실해 버렸던 것이다. 인류가 현재 누리고 있는 수준의 문화에서도 전쟁은 그 인류 문화를 계속 진보하게 하기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다.”(92)


* 임마누엘 칸트, 「만물의 종말」,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원주 2) 항상 반계몽주의적 현인들(혹은 철학자들)은 선을 지향하는 인간성의 자연적 경향에 주의를 기울이는 일 없이 인류가 사는 이 세계를 완전히 경멸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적대적이고 부분적으로 혐오스러운 비유에 몰두해왔다. (1) 이 세상은 어떤 수도승이 바라보듯이, 여관(여인숙)이다. 그곳에서 인생이란 여행 동안에 그 곳에 머물렀던 모든 사람들은 다음 사람에 의해 곧 대체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 이 세상은 교도소[감옥]이다. 이 견해는 바라문교, 티베트인 및 다른 동양의 현자들(심지어 플라톤까지도)이 강한 애착을 느꼈던 견해인데, 천상의 세계에서 추방되어 지금은 인간의 영혼이나 동물의 영혼이 타락한 정신의 징벌과 정화를 위한 장소가 곧 이 세상이라는 것이다. (3) 이 세상은 정신 병원이다. 이 곳에서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목적을 스스로 파괴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온갖 종류의 깊은 슬픔을 야기시키며, 무엇보다 그의 기술과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생각한다. (4) 마지막으로, 이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오물이 집결하는 똥구덩이이다. 이 마지막 평가가 어떤 의미에서는 원초적이다.”(100~101)

신비주의. [...] 이로 인해 최고선이란 허무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즉 신성과의 융합을 통해, 따라서 자신의 개성을 파괴시킴에 의해 신성의 심연으로 몰입됨을 느끼는 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노자(老子)의 괴이한 교의가 나타난다. 이러한 상태를 예감하기 위해 중국의 철학자들은 어두운 방에서 눈을 감고 허무를 명상하려고 한다. 이것으로부터 범신교(티베트와 동방의 여러 민족의)가 나타나고, 이 범신교의 승화에서 스피노자주의가 그 후에 나타난다. 이것들 모두는 인간의 영혼은 신성으로부터 나왔다는 (그리고 끝내는 신성 안으로 다시 함몰된다는) 고대의 유출설(Emanationssystem)과 자매 관계에 있다. 이것들 모두는 사람들이 결국 영원한 휴식-만물의 축복된 종말이라고 그들이 믿는-을 향유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 이런 관념이야말로 사실 사람들의 오성이 해체되고 모든 사유 자체가 종말을 고하는 관념인 것이다.”(106~107)

* 임마누엘 칸트, 「다시 제기된 문제: 인류는 더 나은 상태를 향해 계속해서 진보하고 있는가?」(칸트, 『학부간의 논쟁』 중 제2부 ‘철학부와 법률학부 간의 논쟁’), 이한구 편역, 『칸트의 역사철학』, 서광사, 1992.

인류가 (전체적으로) 더 나은 것을 향하여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는가라고 질문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에 관한 자연사(앞으로 새로운 인간 종족이 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가 아니라 도덕사(Sittengeschichte)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인류라는 개념은 유개념(singulorum)에 따른 인류가 아니라, 지상에서 사회를 이루고 민족으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는 인간 전체(universorum)로서의 인류를 의미한다.”(113~114)

“3. 우리가 미래에 관해서 미리 알고자 하는 것에 관한 개념의 분류

세 가지 경우를 우리는 예측할 수 있다. 즉 인류가 사악한 상태로 계속 퇴보하고 있거나, 도덕적 성향에 있어서 더 나은 상태로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거나, 혹은 피조물들 가운데에서 현재의 도덕적 단계에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정지 상태는 동일한 점의 주위를 궤도로 하여 영원한 회전 운동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 우리는 첫 번째 주장을 도덕적 공포주의로, 두 번째 주장을 행복주의로 부를 수 있다. (이 두 번째 주장은 또한 진보의 목표를 멀리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경우 천년기설(Chiliasmus)이라 할 수 잇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 번째 주장은 기계주의[아브라데주의]라 할 수 있다.”(116)

“인류는 항상 더 나은 것으로의 진보 과정에 있어왔으며 또 앞으로도 계속 진보해 나갈 것이다.”(126)


미학이론 - 아도르노





<미학이론(우리시대의고전 2)> - T.W.아도르노 / 홍승용

       

"역사는 그것을 부인하는 작품들까지도 지배한다."(51)



"현대성은, 오늘날에도 이미 그러하지만, 그때그때의 지배적인 사회 시대 정신에 반대하게 될 것이다."(64) 



"비록 수준상으로는 비교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보들레르는 유겐트식을 유발하였다. 유겐트식의 허위는 삶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화해시켜 놓는다는 점이다."(397)







1930년대 노랫가락 담긴 음반을 보고 듣다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12/05/01/0901000000AKR20120501063400005.HTML


* 국립민속박물관 홈페이지
http://www.nfm.go.kr/index.nfm
<일상생활과 근대음성매체: 유성기 라디오> -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
<한국 유성기음반 세트> -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단
<한국유성기음반총목록색인> - 송방송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속의 대중희극> - 최동현 외
<유성기음반 가사집. 1> - 이보형

서유견문 - 유길준의 목소리





유길준, <서유견문(조선 지식인 유길준, 서양을 번역하다)
- (오래된 책방08)



       

"우리나라의 글자는 우리 선왕[세종]께서 창조하신 글자요, 한자는 중국과 함께 쓰는 글자이니, 나는 오히려 우리 글자만을 순수하게 쓰지 못한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다."

- 유길준, <서문>, 26쪽.



"유길준이 1895년에 간행한 '서유견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한문혼용체 저서이자 최초의 서양 문물 계몽서라고 예전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다. 그 뒤에도 책을 읽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책 이름만 보고는 세계 일주 기행문 정도로만 생각하였다. 1993년 보스턴에서 안식년을 지내는 동안 '서유견문' 출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유길준이 머물렀던 집과 유학하였던 학교를 찾아다니다가, 국한문혼용 저술이니 한문으로 된 저술보다 쉬울 거라는 생각에서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책은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이 한문으로 된 책보다 갑절은 더 힘들었다.


이 책을 처음 번역할 때 한문을 번역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이유는 문법이 다르다는 점에과 일본식 외래어가 많다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 당시의 독자들에게는 일본식 한자어 자체가 새롭고 낯설었겠지만, 일본식 한자어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우리 세대 독자들에겐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일본식 한자어가 어느새 우리말이 된 셈이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문체가 당대 지식인들에게서 부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예측하고도 이 책을 국한문혼용체로 썼다. 한문을 모르는 국민들까지 읽게 하려면 국한문혼용체가 낫다고 여긴 것이다. '한글'을 '우리 글자'라고 한 것에서부터 사상의 전환을 엿볼 수 있다. 국한문혼용체는 에전에도 일부 시행되었지만, 그가 이 책을 국한문혼용체로 쓴 까닭은 나라마다 말과 글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문법 교재와 정치학 교재를 함께 썼던 학자는 우리 역사에서 유길준밖에 없다. 계몽기라는 시대 상황 속에서 유길준은 이 두 가지 교재를 자신이 함께 써야겠다고 생각했으며, 국한문혼용체라는 문체를 시도하여 그러한 생각을 실천하였다. 국한문혼용이라는 국어 의식과 '득중 得中'이라는 정치 노선은 그에게 하나였기에 그러한 인식에서 '서유견문'을 읽어야 하겠다."

- 허경진, <글을 시작하기 전에>, 5~6쪽.


"일본사람 가운데 견문이 많고 학식이 넓은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그들의 의견을 듣고 새로 나온 기이한 책들을 보며 거듭 생각하는 동안, 그 사정을 살펴보고 실제 모습을 들여다보며 진상을 파헤쳐보니, 그들의 제도나 법규 가운데 서양[泰西]의 풍을 모방한 것이 십중팔구나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17)



*** 




서유견문은 내가 상상하던 바와 전혀 다른 책이었다.

유길준은 1881년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서양문물을 접한 최초의 일본 유학생이자, 1882년 미국에 외교 사절로 가서 유학생으로 남아 서양문물을 공부한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다.

유길준은 1885년 유럽을 거쳐 귀국하면서 '서유견문'을 쓰기 시작하여 1890년 완성, 임오군란 등으로 출간하지 못하다가, 1884년 갑오경장을 거쳐 일본에 망명 그곳에서 다름 아닌 후쿠자와 유키치의 교순사에서 이 책을 간행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본격적인 국한문 혼용체로 적어내려간 이 탁월한 책은 그후 대한제국의 역사를 생각해볼 때 불행한 책이었다.

한글을 우리 글자(我文)라 칭하고, 진서를 한자(漢字)라 칭하는 이 민족주의의 선구적 저작은 당시인들에게는 오히려 읽기 어려웠을 일본식 조어인 신한어로 쓰여 있지만, 역설적으로 완벽히(자기가 그런 줄조차 모를만큼) '메이지화된' 오늘 우리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쉽게 읽힌다.

유길준의 글은 요즘에도 보기 드문 상식의 목소리, 건강한 시민의 양식을 가진 것이었다. 허경진의 번역 덕도 있겠지만, 원래 문체 자체가 좋았다.

일제병탄을 반대하고 작위와 은사금을 거부한 양심적 지식인이었지만, 그렇다고 독립운동에 나선 것도 아닌, 이 '개화기'의 지식인에게서 오늘 우리는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 것일까?




감정교육, 현대





<감정교육. 2> - 귀스타브 플로베르 / 김윤진



"현대는 역겹다."(222)






저자의 죽음








<새로운 인생(세계문학전집 134)> - 오르한 파묵



       
"나린 박사는 책의 저자가 살해된 것에 대해 전혀 유감스럽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181)

"순수한 것에, 변하지 않는 것에, 진실한 것에 이르고 싶은 거지? 그렇지만 그런 근원이나 시작은 없어. 우리 모두가 모방하고 있는 어떤 진실, 어떤 열쇠, 어떤 말, 어떤 기원을 찾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303)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내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누군가가, 어쩌면 천사가 항상 냐게 도움을 준다."(33)


"책들이 내게 대화를 하고 싶게 자극을 불러 일으켰지만, 나는 이를 주로 머릿속에서 책들끼리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때로, 계속해서 여러 권을 읽으면 그 책들끼리 속삭이는 게 들렸고, 이렇게 해서 내 머릿 속이, 모든 구석에서 각각의 다른 악기가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내 머릿속의 이 음악 때문에 내가 인생을 견디며 산다고 인식했다.


예를 들면, 어느 밤 아내와 딸이 잠든 후에 시작되는 그 매력적이지만 고통스러운 고요 속에서, 자난을, 나를 그녀와 만나게 해주었던 책을, 그러니까 인생을, 천사를, 사고를, 시간을, 텔레비전의 만화경 같은 색깔들을 감탄하며 바라보면서 생각할 때, 이 음악이 사랑에 대해 내게 속삭인 것들로 시선집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내 인생은 사랑으로 인해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보시는 바와 같이 독자 여러분, 책을 탓하지 않을 정도로 저는 멀쩡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신문이며 책이며 잡지며 라디오며 텔레비전에서 칼럼니스트며 여론 분석가며 소설가 들이 말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323~324)


"보시는 바와 같이 나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얘기하지 않았나! 이제는 그것이 새롭다거나 새롭지 않다거나 하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일련의 바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한두 단어라도 말하는 것이 침묵보다는 낫다. 비정함으로 천천히 전진하는 기차처럼, 인생이 우리의 영혼과 몸을 소멸시키며 지나갈 때 침묵하면, 입을 닫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325)

"독자의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빼앗을 수 있을 것인가?"(396)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나는 나 자신을 좌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내가 알고 있는 좌익주의란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좌익주의는 모든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397)

- 옮긴이 해제에 인용된 오르한 파묵의 말



2012. 7. 26.

검은 책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야 한다.”
- 오르한 파묵 ,『검은 책 2』, 이난아 옮김, 민음사, 2007, 19쪽.

커피의 해악과 효능



 

<내 이름은 빨강 1>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자기 얘기에 도취된 후스렛 호자는 더욱 흥분해서 입에 거품을 문 채 계속 열변을 토했습니다.

<오, 나의 헌신적인 신도들이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죄악입니다. 우리 위대한 예언자 무함마드께서는 커피를 들지 않으셨소. 커피가 이성을 마비시키고 위궤양과 허리 디스크와 불임의 원인이 되는 사탄의 음료임을 아셨기 때문이지요. 또한 커피숍은 쾌락을 탐닉하는 돈 많은 한량들이 무릎을 맞대고 앉아 온갖 부도덕한 일을 저지르는 장소요. 그러므로 수도원보다 먼저 커피숍을 폐쇄해야만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커피 마실 돈이 어디 있겠소? 그런데 그들은 커피숍에서 커피를 잔뜩 마시고 정신이 몽롱해져서 그곳의 천한 잡종견들이 떠드는 이야기에 잔뜩 귀를 기울이고 심지어 그들이 하는 말을 진짜로 믿습니다. 나와 우리 종교를 비방하는, 바로 이런 자들이야말로 진짜 똥개들입니다!>"(32)



<내 이름은 빨강 2>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그들은 커피의 해악, 즉 눈과 위를 나쁘게 만들고 머리를 몽롱하게 하여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게 한다는 걸 강조하고, 유럽인들의 독(毒)인 커피를 아름다운 여자을 한 악마가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주었다가 거절당했다는 에피소드도 얘기해 줬어요. 마치 밤의 여흥으로 교양을 배우는 것 같았죠. 집에 돌아가면 남편에게 <독을 많이 마시면 안 되요.>라고 잔소리를 할 생각도 했답니다."(240)




<광기의역사> - 미셸 푸코 / 이규현

"(2) 정화.

내장의 협착, 들끓는 잘못된 생각, 술렁이는 독기와 격한 감정, 체액과 정기의 부패 ... 광기는 동일한 정화 작업에 결부될 수 있는 일련의 치료법 전체를 불러들인다. [...]

그러나 주된 작업은 몸 속에 형성되어 광기를 결정적으로 유발한 모든 동요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것으로는 우선 쓴 맛의 액체가 있다. 쓴 맛은 바닷물의 매서운 힘을 모두 지니고 있고, 정화 작용을 하며, 병으로 인해 육체나 영혼에 쌓인 무익하고 해로운 모든 불순물을 부식시킨다. 쓰고 강한 맛의 커피는 <뚱뚱한 사람, 그래서 진한 체액이 가까스로 순환하는 사람>에게 유익하고, 위험한 열기 없이도 필요 이상의 습기를 없애주는 것이 이러한 종류의 물질에 고유한 속성이므로, 태우지 않으면서 건조시키고, 불꽃 없는 물과 같은 것으로서, 태우지 않고 정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불순물을 줄여준다.

<커피를 오랫동안 마셔온 사람은 커피가 위장병을 고친다는 것, 커피가 위장의 과도한 습기를 빨아들인다는 것, 커피가 장 속의 가스를 없애주고 장의 점액을 녹여 부드럽게 청소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느끼고, 특히 주목할 만한 것으로, 커피가 머리로 올라오는 술기운을 막고, 따라서 흔히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바늘에 찔리는 듯한 고통을 완화시키며, 요컨대 생명의 정기에 힘과 활기를 주고, 생명의 정기를 청결히 유지시키면서도, 커피를 습관적으로 마시는 사람에게조차 상당한 열기의 느낌을 전혀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1763년 퐁타무송에서 제출된 티리옹의 박사학위 논문 <커피의 사용과 남용에 대하여>, Thirion, De l'usage et l'abus du cafe, these soutenue a Pont-a-Mousson, 1763(Gazette salutaire, n. 37, 1763년 9월 15일 서평 참조))"

(498~5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