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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8.

푸코 - 고고학과 계보학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 Judith Revel, Le Vocabulaire de Foucault, Ellipses, 2002.
    
 
* 고고학(考古學, Archéologie)
 
 
1. ‘고고학이라는 용어는 푸코 저작의 제명에 세 번 등장한다. 1963년의 임상의학의 탄생. 의학적 시선에 대한 하나의 고고학, 1966년의 말과 사물. 인간과학들에 대한 하나의 고고학, 1969년의 지식의 고고학이 그것들로서, 이 용어는 1970년대 초까지 철학 연구의 방법론을 특징짓는다. 하나의 고고학은, 어떤 역사적 장의 재구축이 문제일 경우, 푸코가 주어진 특정 시대의 일반적 지식 담론의 출현 조건을 얻기 위해 (철학적, 경제적, 과학적, 정치적 등) 다양한 차원을 실제로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어떤 역사’(histoire)가 아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관념의 역사를 연구하는 대신, 따라서 푸코는 어떤 특정 시기에 출현한 새로운 대상의 구성으로부터 다양한 국지적 지식들이 결정되는 방식, 나아가 이러한 지식들이 자신들 사이에 대응되고 또 수평적인 방식으로 하나의 정합적인 인식론적 배치를 그려내는 방식을 기술하기 위해 정확한 역사적 절단들(découpages), 특히 고전주의와 19세기 초 사이의 절단에 집중한다.
 
 
2. 고고학이라는 용어가, 그것이 다양한 지식들이 단순히 그 변양들로 간주되는 어떤 진실한 인식론적 구조를 작동시켰다는 점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푸코와 구조주의적 경향 사이의 동일시를 초래했다면, 이 용어에 대한 푸코의 해석은 사실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말과 사물의 부제가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관건은 인간과학에 대한 고고학 자체가 아닌 하나의 고고학을 수행하는 것이다. 고고학의 관건은 다양한 담론적 사건들 곧 국지적 지식들을 권력에 연결시키는 메커니즘에 대한 (일반적인 계열적 기술이라기보다는) 수평적 단절에 관련된다. 이러한 연결은 물론 전적으로 역사적인 것으로, 특정한 탄생일을 갖는다. 또한 이 경우 목표는 전적으로 바닷가에 그려진 모래 얼굴처럼”(말과 사물) 그 사라짐의 조건에로 겨냥되어 있다.
    
 
3. ‘고고학’(archéologie)라는 말에서 우리는 동시에 아르케(archè), 곧 시작, 원리, 인식대상의 출현이라는 관념 및 아카이브(archive) 곧 이러한 대상의 기록이라는 관념을 다시 발견한다. 그러나 아카이브가 과거의 죽어버린 흔적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고고학이 실제로 겨냥하는 것은 현재이다. “만약 내가 이런 일을 한다면, 이는 오늘의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목적에서입니다.”(권력에 대한 대화(1978)) 지식의 대상들이 갖는 역사성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실은 주어진 특정 담론성(discursivité)의 체제 그리고 특정 권력의 배치에 대한 우리 자신의 동시적 귀속을 문제 삼는 작업이다. 1970년대 초에 있었던 계보학개념에 의한 고고학이라는 용어의 포기는 우리 자신의 담론 체제가 갖는 역사적 결정 작용에 대한 (현재를 향해 있는) 수직적(verticale) 분석에 의해 담론성의 수평적’(horizontale) 독해를 이중화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 르네상스 이후 현재(1966?)까지의 서구 앎의 인식론적 단절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
현대?
16세기
~17세기중반
17세기 중반
~18세기말
18세기말/
19세기 초부터~
니체? 프로이트?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푸코?
유사성 類似性
ressemblance/
resemblance
재현작용 再現
(=표상작용 表象)
représentation/
representation
역사 歷史
(=인간人間
=경험적초월적
이중체)
histoire/history
언어 작용?
langage/
language
-
존 레이(John Ray, 1627-1705)
자연/
博物學(=自然史)
histoire naturelle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1769-1832)
생명/
生物學
biologie
다윈/프로이트?
심리학정신의학?
psychologie
psychanalyse
-
윌리엄 페티 (Sir William Petty, 1623-1687)
/
分析
analyse de la richesse
중농주의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
노동/
政治經濟學
économie politique
마르크스/뒤르켐?
사회학?
sociologie
-
 
클로드 랑슬로
(Claude Lancelot, 16151695)
낱말/一般文法
grammaire
générale
포르루아얄
 
프란츠 보프(Franz Bopp, 17911867)
언어/文獻學
philologie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문학과 신화분석?
    
 
 
계보학(系譜學, généalogie)
 
 
1. 1966말과 사물의 출간 직후부터, 푸코는 인간과학의 고고학이라는 자신의 기획을 하나의 구조주의적 작품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니체적 계보학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푸코는 니체에 관한 자신의 텍스트에서 계보학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다. 계보학은 무한한 목적론 및 관념적 의미화 작용의 초역사적 전개’, 역사적 이야기의 단일성, 기원에 대한 연구에 대립되는 하나의 역사적 탐사이다. 계보학은 반대로 모든 단조로운 목적론의 바깥에 존재하는 사건의 일회성(singularité des événements)’을 추구한다. 따라서 계보학은 다양성과 분산 작용, 사건과과 시작이라는 우연으로부터 작업한다. 어떤 경우에도 계보학은 역사의 연속성을 재확립하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하지 않으며, 반대로 각각의 고유성 속에 나타나는 사건들을 복원하고자 노력한다.
    
 
2. 계보학적 접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단순한 경험주의가 아니다. “그것[계보학]은 또한 평범한 의미의 어떤 실증주의가 아니다. 실제로 계보학은 국지적이고 단절되어 있고 자격을 박탈당했으며 정당화되지 못한 지식을 작동시킨다. 계보학은 이러한 지식을 검열하고 위계를 설정하며 참다운 인식의 이름으로 질서 지워준다고 말하는 단일한 이론적 심급에 반대한다. [...] 따라서 계보학은 보다 주의 깊은 혹은 보다 정확한 과학의 특정 형식에 대한 실증주의적 호소가 아니다. 계보학은 매우 정확한 의미에서 ()과학(antisciences)이다.”(콜레주 드 프랑스 197617일 강의) 계보학적 방법론은 따라서 역사적 지식을 탈주체화하려는, 다시 말해 역사적 지식에 담론의 질서에 반하는 투쟁과 반대의 능력을 부여하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이는 계보학의 임무가 단순히 과거 안에서 고유한 사건의 흔적들을 추적하는데 그치지 않으며, 나아가 오늘 사건의 가능성이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임을 의미한다. “그것[계보학]은 우리를 오늘의 우리로 만든 우발성(偶發性, contingence)으로부터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 더 이상 이전과 같이 존재하고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추출해낸다.”(계몽이란 무엇인가?)
    
 
3. 계보학은 (계보학이라는 용어가 채택되기 이전의) 최초의 텍스트들로부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푸코 작업의 일관된 방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푸코는 실상 계보학의 세 가지 가능한 영역을 지적한 바 있다. 우리 자신을 인식의 주체로 구성하게 해주는 진리와 우리의 관계, 우리 자신을 타인들에 대하여 행동하는 주체로 구성하게 해주는 권력과 우리의 관계, 우리 자신을 윤리적 행위의 주체로 구성하게 해주는 도덕과 우리의 관계라는 세 영역으로 구성된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론(ontologie historique de nous-mêmes). “이 세 영역 모두는, 조금은 혼돈된 방식이긴 했지만, 광기의 역사에도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진리의 축을 임상의학의 탄생지식의 고고학에서 연구했습니다. 나는 감시와 처벌에서는 권력의 축을, 성의 역사에서는 도덕의 축을 발전시켜 보았습니다.”(윤리의 계보학에 관하여. 진행 중인 작업의 개관)
 
 

2012. 8. 2.

니체, 계보학, 역사





"Nietzsche, la généalogie, l'histoire"(1971), DEQ I, pp. 1004-1024.
<니이체, 계보학, 역사>, 이광래 옮김, <<미셸 푸코>>, 민음사, 1989.



 
“이로부터 계보학의 필요불가결한 신중함이 생겨난다. 계보학은, 모든 단조로운 목적론의 외부에서, 사건들의 특이성을 지적해내야 한다. 계보학은 감정ㆍ사랑ㆍ양심ㆍ본능처럼 아무도 역사를 기대하지 않는 영역들에서 사건들을 기다려야 한다. 계보학은 사건들의 회귀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는 결코 어떤 진화의 완만한 곡선을 추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건들이 다른 역할을 수행했던 다른 장면들을 다시금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계보학은 심지어 사건들이 누락된 지점,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았던 지점들을 정의해야만 한다(시라큐즈의 플라톤은 마호메트가 되지 않았다...).”(1004; 330)



 
“계보학은 철학자의 도도하고도 심오한 견해가 현자의 두더지 같은 시선에 대립되듯이 역사에 대립되지 않는다. 반대로 계보학은 관념적 의미작용들 그리고 무한한 목적론들의 메타 역사적 전개에 대립된다. 계보학은 ‘기원’(l'origine)의 추구에 대립된다.”(1004-1005; 330)




 
“그런데, 만일 그 계보학자가 형이상학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지속시키기보다는 역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면, 그는 무엇을 배우는가? 그는 모든 사물의 배후에는 ‘전혀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 사물의 초시간적이며 본질적인 비밀이 아니라, 사물은 본질이 없다는 비밀, 사물들의 본질은 그에게는 낯선 형상들로부터 한 조각 한 조각 구성된 것이라는 비밀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은 어떠한가? 하지만 이성 역시 전적으로 ‘이성적인’(raisonnable) 방식, 즉 우연에 의해 탄생한 것이다. [...] 하지만 자유는, 인간의 근원에서, 존재와 진리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자유는, 사실상, ‘지배계급의 발명품’이다. 우리가 사물의 역사적 시작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 기원으로부터 보존되어온 동질성이 아니라, 다른 사물들의 불화(不和), 부조화이다.”(1006; 333)
 



“계보학자는 역사로 하여금 기원이라는 환상을 반박할 것을 요청한다.”(1008; 336)




 
“결국 내력(provenance)은 신체에 속한다.”(1010; 339)




 
“규칙들의 세계는 폭력을 순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 규칙이란 증오의 계산된 쾌락이며 약속된 유혈극이다. 규칙은 끊임없이 지배의 놀이를 다시금 시작하며, 섬세히 반복된 폭력을 무대 위로 불러온다. [...] 인류는 전투에 전투를 거듭하며 규칙이 전쟁을 영원히 대치하는 보편적 상호성에 도달할 때까지 천천히 진보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는 각기 자신의 폭력들을 규칙들의 체계 안으로 정착시키면서 지배에서 지배에로 나아가는 것이다.”(1013; 343)



 
“니체는 계보학을 ‘진정한 역사’(wirkliche Historie)로서 묘사된다. 니체는 반복해서 계보학을 ‘역사적 감각’(sens historique) 혹은 ‘정신’(esprit)으로서 규정짓는다. [...] 니체가 ‘진정한 역사’, 역사적 감각을 실천할 때, 그는 우리가 인간에게 있어 불멸이라 믿었던 것을 생성(devenir) 안으로 다시금 집어넣는다. [...] 실제적(effective) 역사는 어떤 상수(常數, constance)에도 의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가들의 역사와 구분된다. [...] 이는 지식이 이해가 아닌 절단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1014-1016; 344-347)
 




“우리는 사건을 어떤 결단, 계약, 통치 혹은 전투가 아니라, 서로 역전되는 힘들의 관계, 탈취된 권력, 그 사용자들에 반해 다시금 포착되고 되돌려진 단어들, 스스로 약화되고 완화되며 손상되는 지배, 가면을 쓴 채로 들어오는 타자로서 이해해야만 한다. [...] 실제적 역사는 어떤 섭리도 최후의 원인도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우연의 주사위를 흔드는 철의 손’만이 존재하는 하나의 왕국을 알뿐이다.”(10106; 347)




 
“이러한 실제적 역사의 마지막 특성은 그것이 관점적(perspective) 지식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사가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자신들의 지식에서 자신들의 열정이 갖는 필요불가결함을 해칠 수도 있는 것, 즉 그곳으로부터 자신들이 사물을 응시하는 장소, 그들이 존재하는 순간, 그들이 취하는 입장을 가능한 한 삭제해 버리고자 노력한다. 니체가 이해하는 역사적 감각은 자신이 관점적임을 알고 있으며, 자기 자신의 부당한 체계를 거부하지 않는다.”(1018; 349-350)




 
“역사가가 취하는 담론은 선동가의 그것과 매우 닮아있다. [...] 역사가의 친족도는 소크라테스에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그러나 이러한 선동은 위선적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선동은 보편이라는 가면 밑에 자신의 고유한 앙심(rancune)을 숨긴다. 선동가가 진리, 본질의 법칙 및 영원한 필연성에 대해 말하는 것과 꼭 같이, 역사가는 객관성, 사실의 엄밀성, 변경 불가능한 과거에 대해 말한다. [...] 역사가는 자신의 관점을 뒤흔들기 위해 그것을 허구적인 보편 기하학으로 대치한다.”(1018; 352)




 
“실제적 역사는 역사철학 위에 기초 지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자신의 생산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역사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것으로부터 계보학적 사용, 즉 철저히 반(反) 플라톤적인 사용을 이끌어내야만 한다. 이렇게 해서 실제적 역사는 초역사적인 역사(histoire supra-historique)를 넘어설 수 있다.”(1020; 353-354)




 
“인류를 가로지르는 이 거대한 앎에의 의지[원한으로서의 지식](vouloir-savoir)에 대한 분석은 따라서 부정의에 기초하지 않은 지식은 없다(따라서 인식 자체 안에는 진리에의 권리 혹은 참된 것의 기초는 없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인식 본능은 악하다(그 안에는 살인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하며, 또 그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무엇을 행할 수도, 행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야만 한다.”(1023; 357)




 
“이제 19세기 이래 철학적 사유를 양분했던 두 문제(진리와 자유의 상호적 기초, 절대적 지식의 가능성), 즉 피히테와 헤겔에 의해 반복되어왔던 이 거대한 두 개의 주제를 ‘절대적 인식의 포기가 존재 기초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라는 주제로 대치할 시간이 되었다.”(1024; 358)






 

2012. 7. 28.

푸코와 역사, 그리스





 <그리스 문명 (살림지식총서 115)> - 최혜영
       
푸코 역시 부르주아 사회의 생명은 합리성, 효율성, 기술성, 생산성이라고 말하며, 이의 대안으로 고대 그리스 사회를 제시한다. 실제와 환상, 역사와 신화, 자연과 인간의 구분이 있기 이전, 이성과 몰이성, 로고스와 미토스가 의좋게 짝지었던 시대로의 복귀를 주장한 것이다 -13쪽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 이영남


객관적 선험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푸코는 내면의 무의식 세계로 파고들어가지 않고 역사적이고 외재적인 조건, 객관적인 조건을 탐구했다. 그리고 그것을 역사로 표현했다. - 200쪽


일체의 편견에 대한 배격을 포기하고 자신이 어떤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지를 분명히 한다면, 보편성에 대한 전망을 견지한다면, 나아가 충돌하고 대립하는 가치를 변증법적 긴장에 넣어 포기하지 않는다면 역사적 사유가 가능할 것이다. 푸코의 역사 서술이 갖는 매력은 이런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준다는 점이다. - 240~241쪽


 

***




두 권의 책 모두, 역사학적 저작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기본적으로 푸코에 대한 무지와 오해에 기반하고 있다.
 
 
푸코가 고대 그리스에로의 '복귀'를 주장했다고 말한다거나, 푸코를 '객관적 선험 철학자'로 본다거나, 혹은 푸코를 말하면서 '보편성'에 대한 전망을 견지한다거나 '변증법적' 긴장을 언급한다거나, 하는 말들은 모두 그저 단순히 잘못된 이해이다.
그들은 현대 한국어로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 근대 메이지 일본의 신한어 '역사'가 Historia, Historie, Geschichte, 歷史, 역사로 변천해온 하나의 '고유명사'임을 아는 것일까?








2012. 7. 23.

근세조선정감 上








 
박제형 / 이익성


"정감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 책은 철종이 즉위하던 때부터 시작되었고 중점은 대원군의 인물됨과 그의 시정에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수정의 서문을 보면 "일본인 궁천씨가 나에게 조선정감 두 권을 보이면서 서문을 청하는데, 곧 이순이 짓고 배차산이 평한 것이었다."고 한 것을 보면 정감은 원래 상하 두 권으로 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하권은 국내에서는 볼 수 없고, 역자의 과문인지는 모르나 일본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므로 정감 저자가 기록한 연대는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알 수가 없다."

- 이익성의 <역자해제>, 4쪽

"조선 근대사에 대한 서적을 얻어 읽을 수가 없다."(朝鮮近代之史 不可得而讀, 119쪽)

- 배차산의 <근세조선정감 서>의 첫문장(11쪽)



***


내가 조사한 바로는 이 책은 '근세'와 '근대'라는 말이 사용된 최초의 국내 문헌이다.

modern의 일어 번역 '신한어'인 '근세'라는 말은 니시 아마네의 1784년 저작 <<백일신론>>에 처음 보이고, 역시 같은 용어를 번역한 '근대'는 오히려 그보다 1년 빠른 1873년 아리마사학교에서 나온 영일사전 <<영화장중자전>>에 처음 나온다.

우선, '근세'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최초의 우리나라 문헌으로은 - 물론 다른 글에서도 앞으로 더 나올 수도 있지만 - 1886년 발간된 이 책이 최초로 보인다.

더욱이 이 글이 발간될 당시 함께 수록된 배차산의 <서문>에는 '근대'라는 말조차 나온다! - 우리말 번역본에 부록으로 실린 원문 119쪽에 나온다.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여 인터넷에서 찾으니 모두 절판인데 오직 교보에만 아직도 있었다. 당장 주문하여 읽는 중인데 이런 뜻밖의 큰 수확을 얻었다.

이런 때 나는 - 가령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아무도 지나지 않는 어느 시골의 낡은 무덤 안 창고에서 사라진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희극편> 양피지를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러한 작업에 바보같은 그러나 행복한 스릴과 보람을 느낀다.

물론 이보다 이른 근세 혹은 근대의 용례가 박영효 등이 1884년 경부터 적은 국한문 혼용체 혹은 한글일기, 김옥균 혹은 서광범, 박영교 등의 글에 등장할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이런 조사 작업은 국내에서는 이전에 - 글자 그대로 - 아무도 수행한 적이 없는 작업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용례가 등장할 수 있고, 그러한 용례가 보여주는 의미상의 차이에 따라 moderne의 일어 번역어인 근대와 근세의 국내 수용사가 달리 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