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13.

푸른 바늘



푸른 바늘
 
“‘노래와 춤이 시작될 때, 아이들은 집에서 바늘을 가지고 논다, 바늘과 핀을.’ 이현은 이제 법당에 홀로 앉아 방금 읽은 시구(詩句)를 나직이 읊조려 본다. 짧은 한숨을 내쉰 이현은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이현은 고개를 들어 허공에 떠있는 푸른 바늘을 말없이 쳐다본다. 이현은 눈을 감고 손을 뻗어 조심스레 바늘을 돌린다. 잠시 후 이현은 살며시 눈을 떠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다. 바늘 끝은 이현이 앉아 있는 맞은편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잠시 말없이 허공의 바늘을 바라보던 이현은 이윽고 손가락을 뻗어 바늘 끝이 자신을 가리키도록 조금 아래쪽으로 돌려놓는다. 푸른 바늘과 바늘집을 챙겨 법당 앞 나무 그늘에 앉은 이현은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이 부처인 줄 모르는 부처이다. 모든 것이 조용하다. 오직 법당 뜰 앞의 잣나무만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 이결, 『고려초 高麗抄』, 생각길, 2017, 1쪽.


0. 나는 구글 동영상 검색창에 씨피카(cifika)를 쳐 넣는다, 오른손 검지를 이용하여. 검지(指), 또는 집게손가락(index)은 잡는 손가락이자,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집게손가락은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 사이의 둘째손가락이다. 오른손으로 쳤으므로 검지는 오른쪽으로부터 네 번째, 왼쪽으로부터 두 번째이다. 나는 이 사실을 방금 알았다. 다섯 번째 곡이 ‘ooh-ah-ooh’이다. 나는, 여전히 가리키는 손가락으로, 노래를 가리켜 클릭한다.
 
1. 당신은 이 책을 든 이래로, 실은 책을 집어 들기 전부터, 여하튼 이 글은 핑거프린트의 끝부분에 실리게 될 터이므로, 나는 당신이 아마 한참 전부터 머릿속에 바늘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 그 바늘은, 가령 당신의 어머니가 쓰시던 초록 뜨개바늘과 같은, 특정 바늘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어떤 특정 바늘이 아닌 그냥 바늘 ‘일반’의 이미지와도 같은 어떤 바늘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당신게 질문을 던진다. 그 바늘은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지? 당신이 바늘을 마음속에 그리고 있다면 그 바늘이 지금 사방팔방 온갖 방향으로 뱅뱅 돌고 있지 않은 이상 그 바늘은 분명히 어떤 특정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위, 아래? 왼쪽, 오른쪽? 이쪽, 저쪽?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어떤 바늘도 아닌 바늘 그 자체의 이미지에 다른 방향이 아닌 하필 그 방향을 부여하게 됐을까?
 
0. 좀 더 생각해보면, 생각 속의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바늘이든 실제의 바늘이든 그것이 바늘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그 바늘은 어떤 특정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혹은 때로, 관념 속의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바늘은 어떤 방향을 막연히 가리키지 않고 그냥 바늘로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나, 사실은 대부분의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것이다, 혹은 여러 방향을 가리키며 뱅글뱅글 돌고 있을 것이다. 여하튼 바늘의 형상을 하고 있는 한!). 피와 살을 가진 모든 실제 바늘은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수밖에 없다.
 
1. 이는 바늘이 바로 그렇게 생긴 사물을 지칭하는 이름이기 때문에 그렇다. 바늘은 일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물건에 붙은 이름이다. 바늘의 기능은 찌른다, 꿰뚫는다, 꿰맨다, 낚는다, 치료한다, 아프게 한다, 함께 묶는다, 엮는다, 붙인다, 잇는다, 가리킨다, 홈을 따라 지나간다 등등이다. ‘가리킨다’는 찌른다, 꿰뚫는다, 이어 붙인다 등의 초기 기능에 비해서는 상당히 후대에 파생된 기능이었을 것이다. 가리킨다와 관련된 사물의 형상은 무엇보다도 ‘뾰족함’이다. 그런데 한 사물이 여러 방향으로 다 뾰족하면 이는 한 방향을 가리키기에 적당한 모양이 아니므로, 이 물건은 한 방향으로만 뾰족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처음부터 잘 가리키기 위해 고안된 이 물건은 한쪽으로 뾰족한 물건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둥글고 한쪽으로 뾰족한 물건 역시 가리킨다는 기능을 수행하기에 불편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이 있으므로 바늘이라 불리는 이 물건은 간소화 작업을 거쳐 길고 가느다랗고 한쪽으로 뾰족한 물건이 되었을 것이다. 이 바늘은 나침반처럼 양쪽이 다 뾰족할 수도 있고, 시계바늘처럼 한쪽만 뾰족할 수도 있다. 여하튼 이제 바늘은 길고(1) 한쪽 혹은 양쪽이 뾰족한 물건을 지칭한다. 바느질할 때의 바늘은 실을 꿰어넣어야 했으므로 길고 한쪽이 뾰족하고(반대편은 굳이 뾰족할 필요가 없다) 반대쪽의 끄트머리에 구멍(0)이 있어야 한다(이런 면에서, 바늘의 생김새는 그 자체로 주역(周易, the book of change in zhou dynasty, 주나라 때 만들어진 변화에 관한 책)의 언어, 음양(陰陽, 그림자와 빛)의 언어, 컴퓨터 연산의 디지털(digital, digitus, digitalis, finger, 손가락) 언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모두 이항대립(二項對立, opposition binaire)의 언어들이다).
 
0. 시계, 적어도 해시계가 발명된 이래, 그리고 수천수만 년이 흐른 후대에 우리가 아는 시침, 분침, 초침을 가진 시계가 발명되고,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나침반이 발명되고 시계와 나침반에 바늘들이 특정한 시각 혹은 지점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게 되었다(나침반은 받침 위의 약속된 특정 방향 곧 공간을 가리킴으로써 공간을 가리키나, 시계는 특정 방향 곧 공간을 가리킴으로써 시간을 가리킨다. 시간의 공간화, 실로 놀라운 발상이다!).
 
1. 그런데, 과연 그럴까? 가령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모두 어떤 방향인가를 가리키고 있다. 이는 피와 살을 지닌 이 세상의 모든 실제 바늘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왼손 새끼손가락이 반드시 어떤 방향인가를 가리키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과 꼭 같은 이치이다. 당신의 몸은 늘 특정 시간, 특정 장소에 위치해 있을 수밖에 없고, 당신의 머리가, 손이, 발 역시 늘 특정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수밖에 없다. 관념 속 이미지의 바늘이 아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실제의 바늘은 특정 시간과 장소 속에 존재한다. 우리는 원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바늘들이 위치하는 장소의 위도와 경도로 이루어진 좌표를 추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존재한다, 일어난다는 말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 중에 take place라는 말이 있다. 불어로는 같은 뜻의 avoir lieu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의 영어로 옮긴다면 have place의 뜻이다. 관념 속에 존재하는 사건은 실은 일어난 적이 없다. 따라서 일어난 장소가 없다, 장소를 갖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의 바늘이 그것이 존재하는 실제의 특정 시공간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은, 당신의 탄생 사건처럼, 1993년 7월 21일 아침 9시 반, 대구 약전거리에서처럼, 특정 시공간 속에서 일어난 일일 수밖에 없다.
 
0. 이처럼 당신 책상 위의 파란 색 볼펜, 당신의 오른발 네 번째 발가락, 핸드폰의 스케줄러, 부엌 선반 위의 과도, 나아가 당신의 시선, 관심은 반드시 어딘가, 언젠가를,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향하고’ 있다(指/志向性, intentionality). 그런데 꼭 이렇게 생각해야만 하는 걸까? 그런데, 보다 근본적으로, 바늘이 어떤 방향을 ‘가리키기는’ 하는 걸까? 가령 침팬치에게 화살표를 보여주면 침팬지들은 이 화살표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걸 알까? 신라인에게 시계를 보여주면 이것이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 장치라는 걸 알까? 침팬치에게 시계를 보여주면 이것이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듯이, 신라인 역시 이 물건이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라는 것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말일까? 우리가 시계라고 인식하는 벽에 걸린 동그란 저 물건은 시계이므로 우리가 시계라고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미 시간이라는 관념과 숫자, 12진법, 60진법, 시침, 분침, 초침 등의 기호를 읽는 관념과 개념, 방법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고, 이를 시간을 가리키는 알려주는 기계, 곧 시계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시간을 가리킨다, 알려준다, 읽는다, 라는 관념 자체가 본질적으로 비시각적ㆍ비공간적 시간의 시각화ㆍ공간화 작업, 기호학적 형상화 작업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 뱀발 하나. 칸트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인식에 앞서 감성 형식으로서의 시공간과 지성 형식으로서의 범주가 미리 주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인식했다는 것은 결코 있는 그대로의 무엇인가(물物 자체)를 인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감성/지성 형식이라는 근본적 ‘필터’를 통해서만 그렇게 인식할 수 있다. 칸트의 작업은 시공과 범주에 의존하지 않는 ‘보편적 필터’를 찾으려는 자기 모순적 작업이었고, 이를 니체가 통렬히 비판한다. “자기 이론에 대해서 자신만을 예외로 놓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그 해결책은 자기 이론도 다른 이론들과 똑 같은 다만 하나의 이론으로 상대화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게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은 나지, 신이 아니다. 신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줄 신이 인간들 중에 없다, 있는 것은 인간들뿐이다. 이게 ‘신은 죽었다’는 말의 의미이다. 결국, 절대적ㆍ보편적인 신은 없고, 있는 것은 각자가 믿는 신들뿐이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신이고 옳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기준은 누가 정하나? 바로 내가! 그러므로 신이 죽었다는 말은 결국 각자가 누가 신인지를 결정하는 존재라는 말이 되고, 이는 결국 각자가 신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신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어떤 존재가 신인지 아닌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인간은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신이다! 
 
1. 그런데 바늘의 가리킨다는 속성과 시계, 나침반 바늘의 가리킨다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올바른 논증일까? 이는 이 글을 외국어로 번역해보면 우리는 이러한 관념의 연결이 적합한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의 시계바늘은 영어로 hand, 독일어로 Zeiger, 프랑스어로 aiguille, 스페인어로 aguja, 일본어ㆍ중국어로 時針ㆍ时针이다. 보시다시피, 영어는 손, 그 외의 언어는 글자 그대로 바늘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둥그런 판이 있고 숫자가 있는 시계보다는 나침반이 훨씬 먼저 발명되었는데, 나침반(羅針盤, 바늘을 놓은 쟁반)은 나반(羅盤, 펼친 쟁반), 침반(針盤, 바늘쟁반) 등으로도 불렸다(나침반은 원래 중국에서 발명된 것이지만 유럽으로 수출되었다가 근대에 중국으로 역수입된 물건이다. 이 과정에서 나침반이라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시계바늘은 시침(時針)ㆍ분침(分針)ㆍ초침(秒針)에서 보이는 것처럼, 앞의 서양어를 중국어 혹은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영어를 제외한 서구어의 대세를 이루는 ‘바늘’(針)을 그대로 번역한 말일 것이다. 이미 서구어의 경우에도 나침반과 시계의 바늘은 실제의 바늘이 아니라, 뾰족한 무엇인가가 ‘가리키는’ 기능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된 비유였다. 바늘은 가리킨다, 곧 가리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0. 그런데 어떤 것이 어딘가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쉽게 말해서 가리키는 바늘과 가리켜지는 방향이다. 그러나 칸트의 예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동서남북을 모르는 자가 나침반을 볼 수는 없다. 12진법을 모르는 자가 오늘날의 시계를 읽을 수는 없다. 곧 나침반과 시계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이미 그것을 가능케 하는 인식의 틀이 선행하고 있어야 한다. 가령 동서남북을 정하기 위해서는 방위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1. 기준. 동서남북(東西南北)이라는 설정과 명명(命名)에는 자연과 당연에 입각한 어떤 필연적인 기준이 존재하는가? 왜 동남서북이 아닌가(시계 방향), 왜 동북서남은 아닌가(고돌이 방향)? 그런데 보통 시계나 나침반은 위쪽이 기준이 아닌가? 왜 북동남서, 또는 북서남동이 아닐까? 지금 현대 한국어는 ‘동서남북’이다. 그렇다면 왜 동서북남, 또는 서동남북은 아닌가? 일본과 중국은 공히 동서남북을 사용한다. 일본과 중국이 만든 서구어가 들어오기 이전인 조선 초기 수도를 중심으로 사면(四面)의 방위(防衛)를 맡은 관청명은 ‘동서남북도감’(東西南北都監)이었는데(현대의 ‘수도방위사령부(首都防衛司令部) 느낌), 이는 적어도 고려 문종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면도감’(四面都監)을 이어받은 명칭이다. 이는 당대의 제국을 구축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당시 동아시아 문화권의 ‘보편적’ 기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4방인가? 3방, 5방, 6방, 7방, 8방은 안 되는가? 그리고 동서남북은 왜 +자 형으로 이름을 붙였나? ×자 모양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이 모든 것은 누가 정한 것일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언제 누구에 의해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0. 어떤 지도를 한 장 떠올려보라. 당신은 관념 속에만 존재하는 지도 자체를 떠올릴 수도 있고, 어떤 특정 지역을 담은 구체적인 지도 한 장을 떠올릴 수도 있다. 지도 자체를 떠올린다는 것은 가능할까? 지도 일반, 지도 자체의 관념, 개념이 떠올려주는 이미지를. 또는, 언어를, 인간을, 사랑을 떠올려보라. 언어, 인간, 사랑 그 자체를. 가능한가? 당신은 언어 자체가 아닌, 오직 어떤 특정 언어들, 영어, 라틴어, 중국어, 한국어만을 떠올릴 수 있다. 당신은 인간 자체가 아닌, 오직 어떤 특정 인간들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일단 그 인간은 성별을 가질 것이다. 당신은 사랑 그 자체가 아닌, 오직 어떤 특정한 사랑의 사례들만을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랑은 적어도 둘 이상의 주인공들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어 자체, 인간 자체, 사랑 자체를 이야기한다. 이것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불가능한가?
 
* 뱀발 둘. 가능하다고 믿는 입장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플라톤이 기술한 이데아(idea)론이다. 플라톤의 철학(philosophia)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실제 사물들이 아니라, 그것들을 가능케 한 근원이자 본질로서의, 원본(paradigma)으로서의 이데아를 추구하는 활동이다. 플라톤은 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 지도가 이데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그와는 반대로 우리가 실재(reality)라고 믿는 이 세계가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 곧 가짜라고 말한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이 세계가 가짜 복사본, 그것도 불완전한 지도이고, 그 지도가 베끼고자 했던 진짜가 이데아의 세계이다. 진짜 현실은 저 세계, 곧 이데아의 세계이고,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이 세계가 가짜이다(니체가 ‘대중들을 위한 플라톤주의’라고 불렀던 그리스도교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된다.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교에서는 이승보다 다가올 내세, 영생(永生)이 훨씬 더 중요하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고 헛된’ 이승은 오직 영생을 위한 준비와 수행의 과정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플라톤주의의 기준은 이승이 아니라 내세, 곧 영생이다.


0. 하나의 바늘이 어딘가를,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바늘과 방위와 이 방위를 구성하는 관념과 개념, 곧 인식의 체계가 선행해야만 한다. 일단 바늘을 고정시켜야 한다. 실은 경계가 없는 지구를 균등히 분할하여 위도와 경도로 나누어야 한다. 지구가 거대한 하나의 자석인 듯이, 자전축을 따라 각각 북쪽과 남쪽의 끝, 극단이라 불리는 북극(北極, arctic)과 남극(南極, antarctic)을 설정해 위도(latitude, 緯度, 가로ㆍ동서로 놓인 줄)를 만든다(영어의 명명은 북극을 기준으로 하여, 그 맞은편을 남극이라 불렀다). 양 극단의 정중앙을 지나는 선이 적도(equator, 赤道, 양극단의 균형을 잡아주는 상상의 길, 한자 ‘붉은 길’은 고대 중국의 천문학에서 태양이 바로 위를 통과하는 지점을 천구도(天球圖)에서 붉은 선으로 표시한 것에서 왔다. 태양이 지나는 황도(黃道), 달이 지나는 백도(白道)와 같은 유래를 갖는다)이다. 이제 경도(longitude, 經度, 세로ㆍ남북으로 놓인 줄)를 만들기 위해서도 어떤 기준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구는 둥글고 지구상의 어떤 지점도 그 자체로 우월한 ‘자연적’ 기준을 제공할 수 없으므로, 1884년 26개국이 참여한 워싱턴국제회의에서 파리와 뉴욕을 물리치고 투표를 통해 이른바 ‘본초자오선’(本初子午線, greenwich meridian)의 지위를 획득했다(1차 투표에서 탈락한 미국이 같은 영어권의 영국을 밀어주어 영국 그리니치로 자오선이 확정되자 자존심이 상한 프랑스는 자신들의 기준인 ‘파리 자오선’(méridien de paris)을 1911년까지 계속 사용한다).
 
1. 세계지도를 한 장 떠올려보라. 그리니치 자오선은 당신 마음속 지도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 당신이 영국인 혹은 미국인 혹은 프랑스이라면 자오선은 분명이 당신이 어릴 적부터 보아온 세계지도의 정중앙, 곧 영국과 대서양을 지날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당신이 본 유일한 세계지도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일본인이나 중국인 혹은 한국인이라면 당신의 세계지도에는 자오선이 왼쪽 끝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도의 한 가운데에는 태평양과 하와이가 있을 것이다. 자, 이 두 지도 중 어떤 지도가 먼저 그려진 지도일까? 물론 정답은 대서양이 가운데 그려진 지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태평양이 가운데 그려진 지도를 보고 자란 것일까? 앞의 지도를 누가 뒤의 지도로 바꾼 것일까? 확실한 것은 그것이 한국인이 아니며, 중국인, 혹은 아마도 일본인이리라는 사실이다. 이 ‘주체적’ 변경의 주체가, 중국인도 아니고, 일본인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일중한(日中韓) 삼국 중 하필이면 일본이, 라는 생각, 혹은 왜 명명의 순서가 한중일(韓中日)이 아니라, 혹은 심지어는 중한일(中韓日), 혹은 그것도 아니라면 일한중(日韓中)도 아니고, 하필이면 일중한이야, 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차라리 이 생각을 품은 주체가 암암리에 품고 있는 자연(自然)과 당연(當然)의 구조, 곧 무의식의 구조를 드러내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0. 이제 지도의 좌우가 아닌 위아래를 보자. 당신이 상상한 마음속의 지도에는 어떤 대륙이 가장 위쪽에 그려져 있는가?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일 리는 만무하다. 그것은 아마도 남극이 아닌, 북극일 것이다. 북쪽이 위쪽인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것이 자연의 위아래(上下)가 아닌가? 그런데 자석(磁石, 끌어당기는 돌)은 왜 지북철(指北鐵)이 아니라 지남철(指南鐵)일까? 서울에서 대구로 여수로 광주로 내려가는가? 서울로 올라가는가? 우주와 지구에 위아래가 있을까? 그리니치를 자오선으로 정한 것이 서구인들일 수밖에 없듯이, 서울을 수도로 정한 것은 서울사람들이고, 서울말을 표준말로 대구말과 여수말 광주말을 사투리로 규정한 것이 서울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지도가 발생시키는 담론효과이다. 권력 정당화의 궁극적 형식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사실, is)에 대한 해석의 지배와 이를 통한 ‘마땅히 그래야 할’ 당연(가치, should)에 대한 해석의 지배이다. 자연과 당연에 대한 해석의 지배를 위한 기준, ‘표준’을 제공하는 것이 보편성이다. 보편성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으며, 오로지 정치적이다. 보편성이야말로 이 세계의 본질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통해 세계의 기존 지배 시스템을 유지하는 핵심적 장치이다. 자연(nature)에 대한 해석, 곧 시간과 공간의 해석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인간을 지배한다. 그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nature)에 대한 해석을 홀로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 뱀발 셋.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 출신의 스튜어트 맥아더는 12세이던 1970년 학교에 남반구를 위쪽에 두는 지도를 과제로 제출했다. 지리 선생님은 숙제를 다시 해오라고 시켰다. 21세가 되던 해 그는 이 작업을 다시 시도했다. 그리고 『맥아더 개정 범세계 지도』(McArthur's Universal Corrective Map of the World, Artarom, 1979)는 35만부 이상 팔렸다. 이 지도의 원본에는 다음과 같은 항의의 글이 적혀 있다. “마침내 최초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영광스러우나 무시되었던 우리나라[오스트레일리아]를 세계 권력투쟁의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끌어내 정당한 위치로 올려놓기 위해 오래전부터 무르익은 성전(聖戰)이 첫발을 내딛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가 북반구의 이웃 국가들 위로 우뚝 솟아 우주의 지배적인 위치에 당당히 군림하는 것이다.” 물론 마지막 부분의 제국주의적 함축(?)은 배제하더라도 맥아더의 지도는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당연’과 ‘정상’ 혹은 ‘자연스러움’이 사실은 역사적ㆍ정치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는 즐거운 철학적 깨달음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당ㅅ긴이 이 지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이 지도의 모든 대륙들이 ‘거꾸로’ 그려진 것 같고 자꾸만 ‘원래’ 방향대로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면, 이는 당신이 지금 얼마나 세계를 지배하는 보편성, 곧 ‘서양적 보편성’에 의해 가히 완벽히 조건화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1. 무엇인가가 무엇인가를 ‘가리키기’ 위해서는 기준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연에는 기준점이 없다. 따라서 이른바 스스로를 보편적인 ‘자연적’ 기준, 당연, 필연으로 가정하는 모든 기준은 실은 ‘인위적’ 기준이다. 이 인위적 기준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기준은 보편이고, 보편은 통일을 낳고, 보편적 통일은 제국을 낳는다. 기준은 하나로 모든 것을 통합하는 것이다. 무한 가지의 보편성 중에 이 보편성, 곧 나의, 우리의 보편성만이 진짜 유일한 자연적 절대적 객관적 있는 그대로의 과학적 중립적 보편성이라는 말은 차라리 하나의 농담이다. 보편성은 실체가 아니라, 도구이다. 방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나침반이 필요하고, 나침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방위가 필요하다. 방위와 나침반 모두의 기준점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자연에는 방위가 없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선을 그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나침반과 시계가 잘 보여주듯이, 바늘이 어떤 특정 방향 혹은 시각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바늘이 고정되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바늘을 위한 ‘고정점’(point de capiton)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자연에는 고정점이 없다. 따라서 경쟁하는 고정점들이 생겨난다. 고정점의 목적은 잘 기능하는 것, 곧 방위와 시각을 (여타의 경쟁 고정점, 체계보다) 좀 더 잘 가리키는 것이다. 라캉이 말하는 고정점은 전통철학에 의해 ‘보편성’이라 불려온 것이다. 이는 이른바 ‘진리’를 실체가 아닌 관계 속의 유용한 도구, 장치로 바라보는 것이다. 도구란 그 자체가 절대적이거나 목적이 아니므로 불편하거나 더 유용한 도구가 나오면 버리는 것이고, 더 편리한 도구가 나오기 전까지 지금 우리가 편의상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 혹은 보편성과 마찬가지로, 오직 파괴하고 버리기 위해서 오늘의 기준, 보편성, 진리를 습득한다.
 
* 뱀발 넷. 일본인들의 번역에 의하면, the 정관사(定冠詞, definite article)로, a나 an과 같은 용어는 부정관사(不定冠詞, indefinite article)로 번역되었다. 번역은 원래의 서구어 형식에 따라 부정관사를 정관사의 부정으로 간주했다. 정관사는 ‘정해진’ 관사이고, 부정관사는 ‘그렇지 못한 곧 정해지지 않은’ 관사이다. 관사란 ‘얹음씨’라는 순우리말 번역이 잘 보여주듯, 사모관대(紗帽冠帶)할 때의 그 관, 곧 ‘얹는’ 관(冠)이다. 따라서 관사란 ‘얹어서 사용하는’ 품사이다. 곧 명사 앞에 ‘얹어 놓아’ 가볍게 제한 곧 한정(限定)하는 말이다. 일허게 보면, 특수한 개별적 사물 한 개를 지칭하는 a와 an은 정관사로, 특정되지 않은 일반적인 사물 전체을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the는 부정관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일본어 번역뿐만 아니라, 원어인 서구어 역시 반대로 되어 있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우선 the는 이런 보편적 지칭 이외에도, 우리가 잘 알다시피 ‘앞서 나왔던 바로 그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한정해주는’ 관사, 곧 정관사라 불린다. 마찬가지로, a, an 역시 앞서 말한 것과 같은 특정 사물 한 개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특정하지 않은 사물 일반을 지칭하는 ‘부정관사’로 사용된다(부정관사는 사실상 비(非)-정관사 혹은 미(未)-정관사로 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상 오늘날의 느낌으로는 the와 a, an을 순서대로 특정(特定)관사, 비특정(非特定)관사 정도로 번역해보면 더 쉽게 이해된다).
 
0. ‘가리킨다’는 말은 그에 앞서는 ‘앎’, 곧 인식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한 말이다. 누가 내게 동화사 가는 길이 어디인가를 묻는다면, 내가 절이란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동화사라는 절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 때, 혹은 동화사 가는 길을 모를 때, 나는 그 사람에게 동화사 가는 길을 가리켜 줄 수도, 알려줄 수도 없다. 가리킴은 늘 그에 앞서는 앎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앎은 늘 ‘특정’ 시대와 공간의 ‘특정’ 방식을 따라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 ‘다른 방식이 아닌 바로 그 방식으로’ 인식된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지도와 달력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지도도 달력도, 곧 자신이 탄생한 구체적인 특정 장소와 시간을 갖지 않는 인식이란 이 세상에 없다. 당신 앞에 놓인 바늘의 방향이 이미 항상 어떤 특정 관심과 가치의 반영이듯이, 당신의 삶 앞에 놓인 모든 인생의 방향과 지침(指針) 역시 이미 항상 어떤 특정 관심과 가치의 반영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앎은 결코 ‘일반적인’ 앎 자체일 수 없으며, 오직 특정인들의 특정 관심에 의해 특정 방식으로 구성된 ‘특정’ 인식일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나는 다른 모든 이들과 모든 면에서 다르므로, 어느 누구도 내 삶의 가이드, 나침반이 되어 줄 수가 없다. 내 삶의 나침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이란 오직 나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이었을 뿐이다. “이 하늘 위, 이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오직 법당 뜰 앞 잣나무만이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모든 것이 조용하다. 인간은 자신이 부처인 줄 모르는 부처이다. 푸른 바늘과 바늘집을 챙겨 법당 앞 나무 그늘에 앉은 이현은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잠시 말없이 허공의 바늘을 바라보던 이현은 이윽고 손가락을 뻗어 바늘 끝이 자신을 가리키도록 조금 아래쪽으로 돌려놓는다. 바늘 끝은 이현이 앉아 있는 맞은편 허공을 가리키고 있다. 잠시 후 이현은 살며시 눈을 떠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본다. 이현은 눈을 감고 손을 뻗어 조심스레 바늘을 돌린다. 이현은 고개를 들어 허공에 떠있는 바늘을 말없이 쳐다본다. 짧은 한숨을 내쉰 이현은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이현은 이제 법당에 홀로 앉아 방금 읽은 시구(詩句)를 나직이 읊조려 본다. ‘노래와 춤이 시작될 때, 아이들은 집에서 바늘을 가지고 논다, 바늘과 핀을.’”
- 이결, 『고려초 高麗抄』, 생각길, 2017, 108쪽.

* <핑거프린트> 2호

길들, 길들임 - 사물의 질서








“클라라의 집은 놀랄 만한 이야기들과 차분한 침묵의 세계였다. 그곳에서 시간은 시계나 달력으로 표시되지 않았고, 물체들은 스스로의 생명력을 갖고 있었으며, 혼령들은 식탁에 앉아 인간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과거와 미래는 서로 다를 것 없는 단일체를 이루었으며, 현재라는 현실은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 뒤죽박죽된 갖가지 거울들의 만화경이었다.” 이자벨 아옌데, 『영혼의 집(La Casa de los Espiritus, 1982)』 1권, 권미선 옮김, 민음사, 2003, 149쪽.



사물이란 무엇일까?
 
사물이란 무엇일까? 당신에게 사물은 무엇인가? 아니, 당신에게 이 사물, 저 사물은 무엇인가? 가령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책, 당신이 쓰고 있는 이 안경, 당신 곁에 놓여 있는 이 펜은 어떻게 해서 오늘 당신에게 바로 그런 의미를 갖는 그런 사물이 되었을까? 그래, 이 펜, 이 바늘, 이 시계는 그저 거기에 말없이 놓여 있는 사물일 뿐, 사물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 내 주변에 있는 것들, 내가 쓰는 것들, 도구, 한 마디로 그저 사물이 아닐까?
 
느낌(感)과 정(情)
 


사물을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요 뜻풀이가 나온다.



사물事物
 
명사
1. 일과 물건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물질세계에 있는 모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존재를 통틀어 이르는 말.
 
1번은 사(事)와 물(物)을 병렬된 두 개의 낱말로 각기 따로 새긴 것이고, 2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용법은 2번에 더 가깝다. 정확한 어원을 알 수는 없지만, 현재 한국어에서 사용되는 한자어의 80% 이상이 19세기 중후반 메이지(明治) 시대에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번역어임을 생각해볼 때, 사물이란 용어도 그럴 확률이 상당히 높다. 물론 일본어에서 우리말의 사물에 해당하는 용어는 모노(物) 혹은 모노고토(物事)가 일반적이고 사물은 한문투의 고답적인 문어체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사물(事物)이라는 용어가 메이지 시대 일본인들의 번역이라면 이는 다음과 같은 계열을 따라 번역되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동아시아 한자 문명권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物)로 지칭되었다. ‘물’이라는 일반적 범주 아래 다양한 종류의 ‘것(物)들’이 있게 되는데, 우선 살아있는 것은 생물(生物),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은 무생물(無生物), 움직이는 것은 동물(動物), 심어져 있는 것은 식물(植物), 사람을 지칭하는 것은 인물(人物), (실제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쇠로 된 것은 광물(鑛物), 조용히 놓여 있는 것은 정물(靜物), 실어 날라야 할 재화는 화물(貨物), 괴이한 것은 괴물(怪物) 등이 그것이다. 물론 사물의 가장 기본적인 뜻은 이상의 모든 ‘것들’을 지칭하는 일반 명사이지만, 앞에 놓이는 사(事)를 이런 식으로 뒤에 오는 물(物)을 꾸미는 것으로 보면 사물의 또 다른 가능한 뜻은 ‘일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오늘날 되돌아보면 지나치게 인간중심주의적인 세계관이지만, 하이데거의 ‘손-안에-있는 것’(Zuhanddenheit)이란 바로 이런 현상을 지칭하기 위한 것임이 틀림없다. 한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 곧 사물이므로, 넓은 뜻의 사물에는 단지 내가 보는 이 ‘책’만이 아니라 이 책을 보는 ‘나’도 또한 포함된다. 그리고 한자 문명권의 사람들은 물과 물이 만나면 느낌 곧 감(感), 나아가 정(情)이 생기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나와 네가 오래 만나면 우리 사이에는 느낌, 감정(感情) 혹은 미운 정, 고운 정과 같은 정감(情感)이 생긴다. 그리고 물과 물 사이의 정감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작년부터 내가 사용하는, 내가 아끼는 이 펜에 정이 들었다.
 
사물의 대체 불가능성
 
어떤 특정한 사물 혹은 물건에 ‘정이 든다’라는 말은 달리 말하자면 그것이 ‘대체 불가능한 것’이 되어 간다는 말이다. 이 펜은 내가 다 쓰면 혹은 질리면, 버리고 똑같은 혹은 비슷한 종류의 ‘새것’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애정하는 곧 ‘아끼는 정’(愛情)을 품고 써오던 이 펜을 누가 빌려 갔다가 잃어버리고 내게 똑같은 것을 사준다고 해도 이 새 펜에 대한 나의 마음은 예전의 그 펜에 대한 그 마음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더구나 만약 그 펜이 돌아가신 어머님이 내 졸업 선물로 사주신 펜이라면 그 펜은 이 세상의 어떤 다른 펜과도 바꿀 수 없는 펜, 어떤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것,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물건이 된다. 그 펜은 내게 문구점에 진열되어 있는 어떤 값비싼 펜도 갖지 못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서로를 길들이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새침한 장미에 곤혹스러움을 느끼는 우리의 주인공 어린 왕자는 여우에게 묻는다. “이 세상에 장미들이 많은데 내가 왜 다른 장미 말고 이 장미만을 사랑해야 하는 거야?” 작품속의 현자, 간달프, 요다인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너와 장미가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이야.” 불어 원문에서 사용된 ‘서로를 길들이다’는 s'apprivoiser 동사이다. 상호성을 의미하는 앞부분의 s'(se)를 제외하면 불어 apprivoiser는 13세기부터 사용된 용어로서 원래 ‘동물을 순하게 만들다’, ‘길들이다’, 곧 ‘나의 것으로 사유화하여(priver) 소유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집’을 의미하는 domus에서 파생되어 ‘가축(家畜)’ㆍ‘식솔(食率)’을 의미하는 라틴어 domesticus가 불어의 domestique가 되는 것과 동일한 과정). priver는 ‘고유한, 개별적인, 개인적인, 사적인’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 privatus에서 나온 말로, 다시 이로부터 ‘분리되다, 떨어져나가다’라는 뜻이 파생된다. 결국 이 용어는 너무도 평범하여 굳이 의식도 되지 않던 무엇인가가 일정한 과정을 거쳐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나만의 것이 된다’, 곧 ‘내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친해진다’(privauté), ‘길들여진다’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익숙해지고 친해지고 길들여지는 과정은 어떤 경우에도 일방적일 수 없으며, 늘 상호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길들여짐의 과정은 인간들 혹은 생명체들 사이에 한정되지 않고 더 멀리 뻗어나간다. 우리집 강아지 쿠키와 나는 서로를 길들인다. 당신집 고양이 에로스와 당신은 서로 길들인다. 새로 이사 온 이 집에 나는 이제 길들여졌다.
 
길들이다
 


당신과 나도 이제 서로를 길들이게 될 것이다. 길들인다. 우리말,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내버리거나 내놓는 것이 아니라, 들여놓는다, 들인다. 다른 무엇이 아니라 길을. (마음에 든다, 곧 마음에 들이듯이) 길을 (내 마음에, 내 몸에) 들인다. 당신의 발과 새로 산 신발이 서로를 길들인다. 당신과 내가 서로를 길들인다. ‘길들인다’의 ‘길’은 길(道)일까? 도, 곧 길이란 이 세상이 움직이는 바 그대로의 길(the way things are)이다. 이를 고대 그리스인들은 디케(dikē)라는 신으로 불렀고, 이는 라틴어 justitia를 거쳐 현대 유럽어 justice가 되고, 이를 일본인들이 정의(正義)라고 번역했다(내가 말하는 ‘동아시아 학문의 메이지 효과’). 이 세상의 모든 산길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라, 산과 동물 혹은 때로는 인간이 만나서 다니면서 생겨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와 당신의 만남 곧 길들여짐은 미리 정해진 다른 어떤 방식이 아니라, 우리 둘이 만들어가는 대로, 우리 둘 ‘사이’에서, 나중에, 생겨날 것이다. 길은 우리 앞에 미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산이, 나와 당신이 만났을 때, 나와 산, 그리고 나와 당신 ‘사이’에서 나중에 생겨날 것이다. 나와 당신이 사랑을 한다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누군가의 이상적인 모델과 모범을 따라 우리의 사랑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 세상에는 아직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랑의 방식을 우리들 ‘사이’에서 발명해내는 일이다. 내가 나의 삶을 산다는 것은 (앞서 걸은 다른 사람들의 길들을 잘 살펴보고 참조하되) 결국 내가 존재하고 살아가고 죽어가는 나만의 방식을 발명해내는 일이다.
 
 
이름, 말과 사물
 
‘길들이다’라는 말은 결국 하나의 사물인 ‘나’와 나 아닌 다른 ‘사물들’ 사이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길은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개의 길들이다. 길들이는 일은 길들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길들이는 일, 길들을 만들어내는 일은 사물들 사이에 길을 내는 일,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 곧 사물들 사이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이다. 이름이 없으면 그 사물은 인식될 수 없다(無名無物). 이름은 무엇인가를 인식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자 그것을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러한 것’으로서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름은 ‘의미’를 주는 것이자, 그 의미를 가능케 하는 ‘인식론적 장’이다. 인간은 의미론적 동물, 기호를 사용하는 동물이다(Homo Semioticus). 산골소녀 미자가 자신의 친구인 옥자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거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길들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자에게 옥자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이라는 거대기업이 부여한 숫자, 일련번호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존재, 나의 세계에 들어온 존재, 나와 서로를 길들인 존재, 곧 옥자이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이 부여한 익명의 번호는 ‘호칭’일지언정 서로를 길들이고 서로를 만들어가는 ‘이름’일 수 없다. 당신이 들고 있는 이 책, 당신이 쓰고 있는 이 안경, 당신 곁에 말없이 놓여 있는 이 펜에 이름을 붙여주어라. 내가 들고 있는 이 펜, 내 서랍에 들어있는 이 바늘, 내가 쳐다보는 이 시계는, 마치 내 왼손 새끼손가락의 지문처럼, 오직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펜, 나의 바늘, 나의 시계이다. 내가 이름을 가지듯, 내 강아지가 이름을 가지듯, 나의 펜도 이름을 가질 권리가 있다.
 
길들, 길들임
 
그리고 이 사물들의 세계가 나의 세계를 만든다, 나의 세계이다. 나라는 사물과 이 사물들은 서로를 길들인다. 그리고 나는,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이라는 사물과, 서로를 길들인다. ‘나’란 내가 나 자신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과 서로를 길들인 결과물(효과, effect)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를 길들이는 방식에는 하나의 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길들이 있다. 이제 나는 이제까지의 내 길과는 달리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곧 나를, 당신을, 세계를 길들일 수 있다. 나의 세계는 내가 길든 세계, 내가 길들인 세계, 내가 길들이는 세계이다. 나의 오늘을 낳은 것이 내가 길든 이 세계라면, 나의 내일을 낳는 것은 내가 지금 길들이는 이 세계이다. 나는 내가 길들이는 길들이다.

 
 
2017. 8. 9.



* 잡지 <핑거프린트> 창간호 2017년 9월호(격월간)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0406294&start=slayer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통치』 - 소개의 글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통치』는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잇는 책이다. 니체는 무엇을 말했는가? 니체는 중세의 하느님에 대한 죄(부채)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사회에 대한 죄(부채)가 되었다가, 오늘날 은행에 대한 부채(죄)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중세의 인간은 하느님의 은혜로 태어나서 살다가 ‘어리석게도’ 죄를 짓는다. 죄를 지었으니 갚아야 한다. 그것이 벌이다. 그는 생전 지상의 온갖 불행과 사후의 지옥을 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없는 근대의 인간은 사회의 은혜로 태어나 살다가 ‘악하게도’ 죄를 짓는다. 모두가 다 같이 잘 살고자 만들어놓은 사회의 규칙을 어떤 개인이 어기는 죄를 범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자기만 잘 살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으려는 이기심에서 나온 것이니 악한 것이다. 따라서 악한 인간은 공공의 적이다. 공공의 적은 사회 외부의 적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파괴하고 공격하는 자이다. 우리가 사회 외부의 적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듯이 우리는 사회 내부의 적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 사회 내부의 적인 악한 개인들은 모두가 합의한 사회계약의 위반이라는 가장 큰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는 감옥에 가게 되거나 또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중세의 신과 근대의 사회계약을 모두 부정한 니체 이후, 오늘날 사람들이 죄(부채)를 짓는 대상, 따라서 죄(부채)를 갚아야 할 은행이다. 오늘날 죄를 지은 자들, 곧 부채를 가진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이자, 악한 인간이자, 그 무엇보다도 ‘한심한’ 인간이다. 한심한 인간인 오늘의 개인 곧 채무자는 은행 곧 채권자에 대해 자신의 죗값, 곧 빚을 갚아야 하는 한심한 인간이다. 그가 한심한 이유는 오늘날 현대세계의 은행이 가정하는 인간, 곧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 달리 말해 스스로와 타인, 그리고 세계를 관리하는 인간, 합리적 인간이 되지 못한 죄를 지었다. 부채를 진 자, 곧 채무자는 경제적 인간, 곧 관리하는 인간이자 합리적 인간이어야만 할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자이다.
 
이제 빚을 진 자에게는 온갖 종류의 비난이 쏟아진다. 자기 돈, 자기 씀씀이도 관리하지 못한 자, 자기 관리도 못하면서 그저 자기 욕망의 즉물적 충족에 눈이 먼 자, 욕망의 노예, 아직 정신 못 차린 자, 현실을 모르는 자, 따라서 그는 어리석은 자이자, 부도덕한 자, 한 마디로, 여러 모로 한심한 놈이다.


그러나 니체를 따라 이렇게 생각해보자. 아니, 이런 질문을 스스로, 그러니까 나의 힘으로, 던져보자. 나는 신의 자식인가, 나를 신이 창조한 것이 맞나? 신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제 계급의 장치라면? 나는 나를 착취하는 자들의 신을 믿고 그들에 의해 원죄를 지었다고 심판받고 결국은 그들의 신 앞에서 벌까지 받아야 하는 것일까? 내가 원죄를 짓긴 지었나? 나는 따라서 벌을 받아야 하나? 아니 하느님이란 게 확실히 있긴 있나? 이렇게 말하는 자는 사회의 평범한 정상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근대의 사회계약론에서도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시험을 보는 고3처럼 질문을 던져 보자. 내가 계약을 한 적이 있나? 그 계약은 누가 했나? 내가 북한에 태어났으면 나는 그 사회의 계약을 믿고 준수하고 따라야만 하는가? 질문을 던지면 왜 안 되나? 그러나 여기는 남한이니 그렇게 세뇌된 조작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고 민주적으로 합의한 것이므로 경우가 다른가? 그런데, 그건 누가 정했나?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정해진 걸까? 실은 사회계약이 신 없는 사회의 자기 정당화 장치가 아닐까? 진실과 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의 독점, 자연과 당연에 대한 해석의 독점이야말로 민주주의적이지도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은 방식으로 이미 정해져 내게 부과되는 것이 아닐까? 민주주의에 대하여 나와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으면 민주주의자가 아닐까?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면 사랑하는 게 아닐까? 민주주의와 사랑에 대하여, 자유와 정의와 평등에 대하여, 너는 나와 다른 정의를 가지면 안 되는 것일까?
 
오늘날 은행에 대하여 부채를 진 자들은 어떨까? 상환능력이 한 달에 500만원인 사람에게 1000만원의 한도를 갖는 카드를 발급해주고 1년 후 결국 이 사람이 카드 값을 내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은 그가 경제적 인간, 합리적 인간이 못되어서만 그런 것일까? 또는 이 사람이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에 장기 대출, 카드론 대출을 받아 일단 위기를 넘기고 향후 상당기간 동안, 오로지, 엄청난 이자가 붙는 이 카드론 대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온전히 이 사람만의 책임일까? 또는, 그 결과를 정확히 모른 채, 이 사람이 자기 아파트를 사기 위해, 또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다니기 위해, 졸업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받아 졸업을 하고 10년 동안 그 빚을 갚는 것은 남의 돈을 썼으니 갚아야 하는 것, 그러니까 당연한 일일까? 혹은 이 똑 같은 사람이 부모님과 자식이 아프고 정말 급한 돈이 당장 필요하여 다급한 심정, 그러니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아 평생을 그늘에서 살며 주민등록이 말소되어 조폭들에게 쫓기며 산다면, ‘주제 파악도 못하고’ 대학을 간 이 사람, ‘자기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고’ 미리미리 충분한 저축을 못해 놓은 이 사람은 다만 어리석고 한심한 판단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까?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확장 버전이다. 신자유주의는 삶의 일부인 경제적 부분의 가치를 삶의 여타 영역 모두에 대한 전면적인 평가 기준으로 격상시킨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성립한다. 오늘 네가 경제적 안정을 갖지 못했다면, 너는 비합리적인 삶을 살아왔다. 또는 너는 비합리적 인간이다. 경제적 합리성이 없다는 것은 현실 감각이 없다는 것이고, 현실감각의 결여는 이 경우 경제적 합리성, 나아가 합리성 자체의 결여와 같은 말이다. 너는 비합리적이다. 그러므로 너는 할 말이 없다. 네 죄는 네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므로 온전히 네가 갚아야 한다. 아무도 너에게 그런 일을 강요하지 않았다. 네가 한 일은 온전히 네가 한 일이다. 소비도 네가 한 것이고, 대출도 네가 받은 것이다. 너는 자유고 네가 한 모든 일은 너의 책임이다. 그러니 네게 일어난 모든 일, 너의 현실은 온전히 오롯이 너의 책임, 너만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런 논리에 무슨 문제라도 있다는 말인가? 조금 야박하기는 하지만, 그럼 자기가 자기 소비 규모를 관리를 못하는 자, 자기 수입 이상의 돈을 쓴 자, 갚을 수 있는 능력 이상의 돈을 먼저 빌려 써놓고 갚지 못하는 자를 어쩌란 말인가? 그것이 신의 책임인가, 국가와 사회의 책임인가, 그것도 아니면 은행의 책임인가? 결국 당사자의 책임이 아닌가? 이러한 합리적 질문에 대해 라자랏또는 이렇게 말한다. 좋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신용불량자가 한 사회의 1% 또는 5%가 아니라, 20%, 30%, 50%, 나아가 대다수라면, 그래도 이것이 오직 개인의 문제인가? 가난한 가족은 일을 안 하고 놀기만 해서 가난한가? 가난한 나라는 일을 열심히 안 하고 놀아서 못 사는가? 이미 수십,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동안 쌓여 온 사회와 국가 내부의, 또는 국가들 사이의 구조적 문제는 아닌가?
 
은행이 가장 좋아하는 고객은 돈을 빌리지 않는 고객이 아니라, 돈을 많이 빌리고 (원금은 물론이고, 특히, 이자를, 이자까지) 착실히 갚는 고객이다. 그러나 실은 갚지 못하더라도 좋다. 가령 단기 대출, 현금 서비스를 갚지 못하는 고객은 돈을 갚지 않을 수 없으므로, 다른 데서 체면을 구겨가며 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카드에서 고리의 장기대출, 카드론 대출을 받아 단기 대출 현금서비스를 갚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은행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국가 간의 경우에도 마차가지다. 독일 은행에 대한 빚을 갚아주기 위해 스페인과 그리스가 국가부도 사태를 맞는다. 그리스와 스페인의 국민들은 독일 국민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데도, 그들이 버는 돈은 자신들의 복지가 아니라 독일의 은행 부채를 갚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당연한가? 그런데, 사실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왜 열심히 일하는 자가 덜 일하는 자보다 여유롭고 풍족하게 사는가? 어떻게 해서 덜 일하는 자,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잘 사는 집안, 잘사는 나라에 태어난 자, 한 마디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자가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자, 더 열심히 일하는 자보다 더 여유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가? 대안도 없으면서 이런 책을 쓰는 저자는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은 이 세계의 변화 불가능한 ‘필연적’ 운행법칙, 또는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본의 운동법칙인가?
 
그렇다. 정말 ‘대안’은 없는 것일까? 원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없는 것일까? 마우리치오 랏자라또의 『부채통치』는 그 대안이 ‘원래’ 있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아직’ 없을 뿐이라고 말하는 책이다. 이 책은 그 대안을 사유하려는 책, 세계의 지금과는 다른 운동법칙을 사유하려는 책,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未-來)를 사유하려는 책이다.
 
 

 


2017. 8. 6.

내가 상상한 대로의 여수


내가 상상한 대로의 여수
my own private yeosu
 
 
 
0. 들어가면서 wind on water, fripp & eno
 
나는 지난 2년 동안 여수충무고등학교에서 강의를 다녔다. 처음에는 인문학ㆍ철학 입문이라는 형식의 1회 특강이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반응이 있어 각각 ‘노래하는 아인슈타인’과 ‘노래하는 소크라테스’라는 제목으로 각기 8회의 연속강의를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올해에는 여수여고에서도 말하자면 ‘인문학 - 글쓰기, 논술 그리고 토론’을 주제로 10회의 강의를 했는데, 고생해주신 충무고의 서미화, 박은경 선생님, 여수여고의 이현주 선생님께는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 많았는데도, 늘 웃음으로, 즐겁게 일해 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의를 경청해준 우리 사랑스러운 학생들에게는, 덕분에 너무 즐겁고 행복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렇게 2년 동안 아마도 스무 번 정도 여수를 오가며 내가 혼자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적었다. 이 글은, 그러니까, 바로 나의 경청해주었던 학생들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이다.
 
0. 망각 oblivion, gidon kremer
 
나는 이 강의를 오기 전에 여수에 두 번 와보았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대학교 때 후배와 한번 왔고, 대학원 말쯤 땅끝을 지나 한 번 더 들렀다. 당시 향일암에 갔을 때 암자 건물과 경치가 아름다워 놀랐던 기억이 나고, 당시에는 몇 곳 없던 바닷가 포장마차에서 꽁치회를 신기해하며 먹었던 생각이 난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예나지금이나, 혼자서 여행하기를 크게 꺼려하지 않는 나는 이후로도 많은 곳을 다녔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여수는 이후로, 내게 잊혀졌다.
 
1. 麗水/旅愁 heru mertar, world sinfonia
 
여수는 려수(麗水)이니 아름다운 물, 바다이다. 이미 『천자문』(千字文)에도 금생여수(金生麗水)라는 말이 나오지만, 여수라는 말이 이 지역을 가리킨 것은 영조 때부터이다. 원래 말은 무엇이었을까? 봄내가 춘천(春川)이 되고, 한밭이 대전(大田)이 되고, 달구벌이 대구(大邱)가 되었듯이, 무엇이 여수가 되었을까? 통일신라 때 여수는 해읍현(海邑縣)이라 불렸는데, 해읍은 바닷가 마을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므로, 원래의 이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게는 여수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물, 아름다운 바다이다. 여수는 아름다웠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나는 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고 어느 누구도 만난 적이 없으므로(버스를 타고 가다 글쓰기, 논술 특강을 한 학생을 창밖에서 본 적은 있다), 여수에 다녀온 스무 번에 가까운 시간은 내게 온전히 나를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여수에 가서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사람들이 많은 곳, 허름한 곳을 골라서 자곤 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다니는 여행만큼은 가급적 이러한 선택을 하곤 하는데, 이런 나의 습관은 대학교 때 이래 정처 없이 홀로 다니던 여행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들고,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배낭에 넣고 다니던 기차 여행은 내게 외로움의 공장,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병원, 형도 누나도 없는 내 삶의 학교, 부모님께 고통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다 커버린 어린 나의 집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영혼의 프롤레타리아이자 구제불능의 나르시시스트이며 절망적인 병적 센티멘탈리스트인 나는 밤기차 차창밖에 비치며 점멸하는 불빛들을 보면, 이 대한민국, 이 우주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이 외롭고 고독하며 쓸쓸한 정신병적 세계는 고향 없는 나의 고향, 집 없는 나의 집 같은 것이라, 불안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것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여수는 이런 나의 불안하고도 편안한, 초조하면서도 안락한, 쓸쓸하면서도 충만한 여행에 적격이었다. 여수는 내게 아름답고 따뜻한 곳, 충만한 쓸쓸함이 있는 곳이다. 쓸쓸하니, 좋았다. 여수는 내게, 그러므로, 여수(旅愁, nostalgia)이기도 했다.
 
4. 어머니/바다 la mer, charles trenet
 
 
가난과 바다와 태양을 이야기하던 카뮈를 읽던 스무 살의 나는, 내가, 나의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스무 살의 나는 나의 모든 것이 위선이고 거짓말이라는 생각, 나 자신은 쓰레기라는 생각, 그래서 이 부도덕한 나는 죽어야 한다는 살인적 강박관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가난한 적이 없던 현실의 부르주아였던 나는 굶주리고 말라비틀어진 영혼의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실은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에도 큰 병이 있어 몹시도 오래 심하게 앓던 나는 대학교 4학년 여름에도 정처 없이 여행을 다니다 당시 마산 시내의 진주여인숙에 묵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나는 단아한 할머님이 홀로 운영하시는 여인숙 방에 홀로 엎드려 역시 스무 살 무렵 카뮈의 『편지들』을 읽고 있었다. 날은 덥고 창호지는 얇아 옆방과 마루의 소리가 다 들려왔다. 12시 가량 되었을까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던 나는 카뮈가 옮겨 놓은 친구의 말에 눈길이 멎었다. “모욕이 준비되었을 때 인생이 시작된다.” 이 말은 맞는 말일까? 오늘날까지도 때로 생각나는 이 말은 묘한 구석이 있다(오늘부터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모욕이 준비되었을 때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시작된다….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입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술 취한, 아마도 서른 가량의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그리고 주인할머님의 목소리. 마당이 조용하니 그때 여인숙에 투숙한 사람들은 다 그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 혼자 책을 읽던 나는 실은 듣지 않을 수 없던 그 대화를 옆방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홀로 들었다. 그것은 술 취한 할머님의 아들이 돈을 달라며 화를 내는 내용이었다. 술을 마시려는 것 같았는데 할머니께서 돈을 주시지 않자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더니 무엇인가를 던지며 쌍욕을 하고 아들은 나가버렸다. 이 장면을 귀 기울여 다 들어버린 나는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혹여 할머니가 우시기라도 할까봐, 우시는데 방해가 될까봐, 나는 이제 여인숙 한 켠에 놓인 라디오를 작게 틀고 카뮈의 편지와 일기를 읽으며 옆방 아저씨와 아가씨의 무덤덤한 대화를 듣다말다 그저 잠이 들었다.
 
 
5. 안/겉 lachrimae antiquae, jordi savall
 
나는 인류가 우주에 생겨나 어느 누구의 어떤 보살핌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늘 이만큼의 문명을 이루어낸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대견하고 미안하고 고맙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술을 끊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이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책을 보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이제 더 이상 책을 보지 않는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공책에 이렇게 적었다.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의 여관방은 몹시 쓸쓸하다.” 뒤돌아 생각하면, 이는 그저 나의 못 말리는 센티멘털리즘의 발현, 병이었다. 이렇게 말하자면, 이제 나의 새로운 인생이란 더 이상 회한에 젖지 않는 날, 더 이상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는 날, 그러니까 더 이상 싸구려 호텔에 묵지 않는 날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런 날이 오면 무척 좋겠지만 결국 오지 않아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내가 카뮈에게 배운 것은 행복과 불행이, 건강과 병이, 희망과 절망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서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6. 여수에서 대구 가는 꽃길 cover me with flowers, david sylvian
 
나는 지난 5년 전부터 격주로 대구의 수성아트피아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는데, 여수 강의가 불규칙한 수요일이라 종종은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여수에서 바로 대구를 가야 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기차를 좋아하는 나는 가급적 기차를 타려고 시간을 알아보니 여수도 아닌 순천에서 저녁 6시에 끊긴다. 버스는 차편이 너무 없고 너무 돌아가고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선은 아마도 모두 서울만 쳐다보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여수는 서울역에서 케이티엑스로 3시간 조금 더 걸리는데 내가 사는 일산에서 출발하여 강의실까지는 편도 4시간 반쯤 걸린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당일로 몇 번 다녀왔는데 왕복 9시간에, 실은 가서도 서서 2시간 정도 강의를 하니 매번 다녀와 약한 몸살이 걸릴 정도로 피곤하여 몇 번 다녀온 후론 무조건 1박 2일로 갔다. 내가 여수를 ‘알게’ 된 것은 이렇게 자고 오기로 결정한 이후이니, 쌀독에서 인심이 나듯이, 여유에서 생각이 생긴다. 더구나 1년쯤 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녔는데, 실제로 미리만 사면 케이티엑스보다 싸다. 김포-여수의 실제 비행시간은 40분이니 떴다 하면 내려가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당시 일정과 감상을 적어놓은 글이 있는데, 대충 이러하다.
 
“김포공항에서 수요일 2일 12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13시 15분에 여수공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바로 충무고로 가서 강의, 강의가 끝나고 바로 택시를 타고 여수여고에 도착한 것은 15시 58분, 18시에 강의를 마치고 바로 여수엑스포역으로 가서 인근 순천역에 내린 것이 19시 2분이었다. 역 앞에 숙소를 잡아놓아 간만에 순대국으로 저녁을 먹고 티비를 켜니 (희한하게도) 여러 개의 수학, 과학 다큐와 대담, 특강을 하여 이것들을 보고 새벽 1시쯤 잠이 들었다. 8시쯤 일어나 된장찌개를 먹고 순천역에서 진주로 가는 9시 20분 기차를 타고 10시 18분에 내렸다. 12시 50분 동대구행 케이티엑스 기차를 타고 14시 34분에 동대구에 내렸다. 15~18시까지 소설읽기 수업을 진행했다. 내일은 수성아트피아에서 11시에 ‘프랑스철학으로 읽는 노자’ 강의를 하고, 14시부터는 소설읽기 금요일 수업이 있다. 카페를 막 나오면서 잠시지만 수강생분들과 수업과도 관련이 있지만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내가 느낀 점 또는 궁금한 점을 함께 나누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이른바 남도 사이의 동서 교류, 곧 ‘호영남’ 교류가 현격히 적다. 나의 경험상 아마도 통행량이 가장 적은 고속도로는 동서를 잇는 88 고속도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광주 혹은 목포에서 출발하여 부산 인근의 부전역으로 가는 우리나라 유일의 동서횡단 열차는 현재 무궁화호로 하루에 3~4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다. 내가 아침에 순천-진주 구간을 타고 온 9시 20분 열차가 바로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열차가 가는 길은 기차를 좋아하여 그렇게 많은 기차를 타본 나조차도 드물게 보는 꽃길이다. 기차는 거의 예외 없이 몇 시간에 걸쳐 영호남의 곡창지대 곧 평지를 따라 달린다. 봄과 가을에는 꽃과 단풍, 여름과 겨울에는 신록과 눈으로 뒤덮인 길이다. 기차는 예전의 비둘기호를 대체한 무궁화호라 중간의 역들을 다 선다(내가 무궁화호를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역마다 장 나가시는 할머님, 할아버님부터 학교 가는 학생들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내가 무궁화호를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 그리고 혼자 타지 않는 이상 이 분들은 자리를 찾아 앉으시며 말을 하는데 기차가 여수에서 광양을 거쳐 진주, 마산을 거치는 동안 타는 분들의 말투는 확연히 달라진다. 곧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쓴다면 ‘사투리’가 확연히 바뀐다. 곧 이른바 전라도 사투리에서 경상도 사투리로(서울말이 ‘표준어’이고 다른 곳의 말은 ‘사투리’라는 인식은 검토되지 않은 잘못된 정치적인 규정이다. ‘서울’은 지방이 아니고 ‘서울이 아닌 곳’은 지방이라는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이 ‘지방’이고 서울말 역시 ‘서울 사투리’이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지만, 서울에서 여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며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장난삼아 나는 이를 ‘서울제국주의’라고 부른다. 나는 그냥 여수와 대구를 ‘갈’ 뿐이고, 서울로 ‘돌아올’ 뿐이다. 요즘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남의 것을 폄하하지 않으면서, 나의 것, 우리 것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과 태도’이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것이다. 언어는 수천 년, 또는 적어도 수백 년 동안 형성되며 변천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형성 이후에 국가와 지역의 (행정적, 문화적) 경계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각각 해당 언어의 사용자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거꾸로 그들의 현실적 언어사용 방식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적 경계는 거대한 산, 바다 혹은 적어도 큰 강줄기가 두 지역을 가로막고 있을 때 생긴다. 그런데 이 기차가 달리는 길은 바닷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륙의 곡창지대 곧 평지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원래는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씩 변하여 서로 섞이는 지점, 곧 서울에서 자란 내가 듣기에 그 ‘중간’처럼, 달리말해 두 사투리가 ‘섞인’ 것처럼 들리는(실은 ‘섞인’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 그렇게 하는 말’이지만) 어떤 말이 들리는 지점(들의 연속)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호남말과 영남말이 ‘섞인 사투리’를 티브이에서도 기차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로 없는 것일까, 다만 내가 이곳에 살지 않아 모르는 것일까?
 
 
바꾸어 말해본다면, 신라와 백제 이래, 혹은 고려 태조 이래, 혹은 보다 결정적으로 망국적 지역감정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이끌어낸 1971년 박정희 이래(이것이 박정희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최대의 죄악이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정치적 의식이 적어도 수천 년은 쌓였을 이들의 자연적 언어습관을 몇 십년만에 거의 완벽히 변화시킨 것일까?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간 집단의 언어습관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장기지속의 영역에 속한다. 평야가 아닌 지역에서 쉽게 관찰되는 영호남의 언어 사용상 차이는 가령 지리산의 존재가 잘 설명해준다. 거꾸로, 동일한 이유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이미 천년 이상을 ‘강원도’라는 명칭 아래 함께 묶여 있지만 태백산맥 동편의 (우리 외갓집이 있고 내가 태어난 곳인) 강릉 말씨는 산맥 건너 서편의 춘천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장과 바닷길로 이어져 있는 함경도와 경상도 말씨와 훨씬 더 닮아 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부여한 ‘정체성’이 실은 자연적인 것(불변의 필연)이 아니라 정치적인 규정(변경 가능한 그저 약속)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이 수천수만 년 동안 말하고 노래하고 밥 먹고 살아 왔고, 거기에 인위적으로 정체성을 부여한 것은 그로부터 수천 년 후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정체성 부여 행위, 곧 명명 행위는 이제 거꾸로 당사자의 의식을 규정한다. 나는 부산 사람이니 롯데를 응원한다, 나는 한국인이니 일본이 싫다, 나이도 먹었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지, 와 같은 말은 바로 이렇게 형성되고 작동한다. 주체는, 개인은, 나는, 이렇게 불리어, ‘호명’되어, ‘제조’되는 것이다. 실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소설읽기 수업을 마치고는 황금역 인근 숙소로 돌아와 지하의 홈플러스에서 신라면과 야채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티브이를 보며 글을 쓰는 현재 시각은 23시가 조금 넘었다. 여러 모로 즐겁고 유익한 하루였다. 이렇게 쓰는 현재 시간은 이미 4일 금요일 0시 21분이 되었다.”
 
7. 이해/폭력 cendre, fennesz & sakamoto
 
나는 여수를 알까? 내가 아는 여수는 뭘까? 아니, 대구는? 아니, 평생을 살아온 서울은? 아니, 9년을 유학한 프랑스는? 나는 무엇을 알까? 아니, 앎,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자신이 무엇을 안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이 정말 그것을 알고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앎, 인식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을 인식론이라고 부르는데,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현재 서양중심주의에서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연구할 때는 사회학이라 부르고, 비서구사회를 부를 때 (문화)인류학이라 부른다. 서울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은 지방이 아니라 서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꼭 같이,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지역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지도와 지리만이 아니라, 달력과 문화, 실은 수학과 물리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 그 자체, 의학, 철학과 같은 학문, 그리고 심지어는 문학과 예술 역시 오늘날 세계의 모든 것은 서양을 중심으로 돈다. 이는 보편/특수의 문제이기도 한데, 서울과 서양이 보편이고, 지방과 그 나머지 세계가 특수이다. 곧, 서울/지방, 서양/그 나머지이다. 이는 표준어/사투리, 남성/여성, 신/인간, 어른/아이, 건강/병, 이성애/동성애, 궁극적으로는 정상인/비정상인 모두에 해당되는 도식적 틀이다. 가령 페미니즘의 문제는 이제까지 수천 년을 내려온 남성중심주의를 여남평등(남녀평등이란 말 자체가 여남차별이다)의 세상으로 바꾸어가려는 운동인데, 그 핵심적 문제는 남성적 보편성이 인간의 보편성 그 자체인 것처럼 되어 있는 현실을 혁파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되어 있는데, 여성적 보편성이 보편성 그 자체이고, 남성들은 여성적 기준에서 보면 열등한 존재라고 말한다면, 남성들이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이처럼 보편성은 기준의 문제이고, 기준의 문제란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 문제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서구 제국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고 그에 봉사하기 위해 탄생한 문화인류학이 보편성 관념이 갖는 서구중심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실제 역사가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서구를 기준으로 설정된 보편성은 비서구를 서구에 비하여 열등한 것으로 설정하게 된다. 중국이 자신을 중심으로 타민족들을 오랑캐라 부를 때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서구가 자신을 기준으로, 또 서울이 자신을 기준으로, 남성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이성애자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며, 그것만이 유일한 영원불변의 보편성이자 정상이고, 유일한 학문이며 진리라고 말할 때, 똑같이 어이없음을 느껴야 할 것이다(아니란 말인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자.
 
“노련한 인류학자라면 ‘새로운’ 원시 사회를 처음 방문하여 유능한 통역자의 도움을 얻어서 단 며칠 안에라도 그의 마음속에 그 사회의 제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하나의 모델을 구상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령 6개월쯤 그 사회에 머물면서 그 사회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처음의 ‘모델’은 그 형체가 별로 남지 않게 될 것이다. 6개월이 지난 후에 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일은, 처음 사나흘에 느꼈던 것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에드먼드 리치, 『레비스트로스』, 이종인 옮김, 시공사, 1998, 40쪽.
 
 
이것은, 내 경험상, 정말 옳은 말이다.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들은 몸은 한국에 있지만 실은 여전히 원래 자신의 나라에서 과거에 형성된 인식의 스펙트럼으로 오늘의 한국을 본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은 오히려 거의 가지 않는 판문점을 가고, 인사동을 가는 것은 이미 그들이 평생 동안 보아온 티브이와 책들에,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그들이 들고 온 자기나라말로 된 여행안내서에 그것을 가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파리 사람들은 에펠탑을 가지 않고, 서울 사람들은 인사동을 가지 않으며, 여수 사람들은 오동도를 가지 않고, 대구 사람들은 팔공산을 가지 않는다. 적어도 자주는!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각 없는 관광객들이나 다니는’ 이런 곳을 가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이미 우리가 아는 과거의 것, 나의 것으로 바꿔치기를 한다, 곧 불안한 무지의 상태를 우리는 그냥 둘 수 없으므로 우리에게 이미 도식화되고 유형화된 편안한 인식으로 바꿔치기를 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는 ‘인식’, 나아가 ‘이해’라 부른다(따라서 이해란 이미 ‘내 식 대로 너를 이해하는’ 권력이고 폭력이다). 그리고 나만은 이로부터 벗어난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죽었다(당신이 신이 안 죽었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결정하는 사람은 신이 아니라 당신이다. 그것이 신의 의지이며 은총이라고 믿는 것은 신이 아니라 역시 다시금 당신이다. 이것이 신이 되면 일단 그리스도교의 은총설에도 맞지도 않지만 결정적으로는 당신 행동의 책임이 신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신이 당신을 사후에 심판할 수 없게 된다. 차라리, 인간은 자신이 신인 줄 모르는 신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불교이다). 인간들 중에는 신이 없고 나의 모든 인식과 이해는 자기중심적이다. 이러한 도식화ㆍ유형화의 기본 형식이 바로 언어이다. 언어는, 무의식처럼, 시간을 모른다. 언어의 무시간성이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성을 말한다. 따라서 보편성, 보다 정확히는 보편성/특수성을 쌍을 파괴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곤란하다. 내가 전공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도도 달력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지도와 달력을 모르는 도식화ㆍ유형화의 결정체이므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도식화ㆍ유형화의 폭력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어제 본 어머니를 지금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어머니가 맞지만, 어머니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내가 사랑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을, 당신을, 나를, 늘 이렇게 보아왔고 보고 있으며 또 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8. 꿈/현실 all i have to do is dream, everly brothers
 
대학교 1학년은 대부분 몸은 대학에 와 있되 여전히 실은 고등학교 4학년이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말을 한다 해도 여전히 자신들의 모국에 산다. 하물며 언어를 모른다면! 결혼을 해도 여전히 총각ㆍ처녀로 산다. 나이는 60이로되 여전히 17살이다. 무의식은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민전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복역한,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신, 김남주 시인의 옥중 서한들을 보면 감옥에 들어가도 처음엔 감옥 바깥 꿈을 꾼다고 한다. 그리고 시일이 지나면 꿈도 감옥 안이 되는데, 신기한 것은 혹은 당연한 것은, 출소를 해도 상당한 기간 동안 꿈이 여전히 감옥 안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적이 없고, 늘 이루어진다. 당신의 오늘 현실이 당신이 늘 꿈꾸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dreams were, are and will be come true, always and always). 역시 인간은 자신이 부처(佛, 覺者)인 줄 모르는 부처이다(당신 생각대로, 각장의 소제목 뒤에 붙은 영어들은 유튜브의 노래 제목들이다).
 
9.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y one and only love, sarah vaughan
 
 
그런데, 이것은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당신은 어떤 과거, 어떤 기억, 어떤 이미지 안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가? 그러한 사실을 아는가? 우리는 과거의, 무의식의, 이미지의 노예이다. 내가 김남주이고, 당신이 허경이다. 나, 불문과 학부를 나오고 대학원에서 프랑스철학을 전공한 나, 프랑스에 유학 가서 9년을 공부한 나 역시 젊은 시절 프랑스에 대해 가졌던 표상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는 프랑스가 예술과 패션과 문화의 나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거지도, 아이도, 불어를 한다. 불어는 아름답되 우리말도 그만큼 아름답다. 도대체 언어에는 우열이란 것이 없는 것이다. 프랑스하면 당신에게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루브르가, 에펠탑이? 센강이, 노트르담이? 프랑스인들은 한국하면 무엇이 떠올까? 정답을 알고 싶다면, 호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에티오피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알제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태국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서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혹은 여수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모두 과거 수십 혹은 수백, 수천 년을 거쳐 형성된 인상들의 집합체, 곧 앎과 선(先)-이해이다. 이러한 인식의 형성에는 처음 가본 이들, 먼저 가본 이들, 혹은 영향력 있는 이들의 인상과 기록이 결정적이다(『동방견문록』과 『서유견문』, 혹은 『하멜 표류기』를 생각하면 된다. 가령, 여수를 못 가본 이들에게는 지금 나의 이 글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에 형성된 도식화된 유형 인식으로 현재의 세계와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악한 자들이 아니라, 바로 나, 우리들이다. 이것은 어떤 인간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인식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로 현재를 바라본다는 사실, 내 식대로 인식한 너를 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부인하는 이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이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살게 될 것이다.
 
10. 내가 상상한 대로의 여수 asleep, astor piazzolla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블랑쇼는 미셸 푸코를 만나고 난 후에 「내가 상상한 대로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tel que je l'imagine)라는 글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여수를 만나고 돌아와 이 글을 적는다. 그러므로, 마치 당신의 여수처럼, 이 여수는 내가 상상한, 나만의 사적인, 그러니까, 나의 여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