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8. 6.

내가 상상한 대로의 여수


내가 상상한 대로의 여수
my own private yeosu
 
 
 
0. 들어가면서 wind on water, fripp & eno
 
나는 지난 2년 동안 여수충무고등학교에서 강의를 다녔다. 처음에는 인문학ㆍ철학 입문이라는 형식의 1회 특강이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반응이 있어 각각 ‘노래하는 아인슈타인’과 ‘노래하는 소크라테스’라는 제목으로 각기 8회의 연속강의를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올해에는 여수여고에서도 말하자면 ‘인문학 - 글쓰기, 논술 그리고 토론’을 주제로 10회의 강의를 했는데, 고생해주신 충무고의 서미화, 박은경 선생님, 여수여고의 이현주 선생님께는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 많았는데도, 늘 웃음으로, 즐겁게 일해 주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의를 경청해준 우리 사랑스러운 학생들에게는, 덕분에 너무 즐겁고 행복했고,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이렇게 2년 동안 아마도 스무 번 정도 여수를 오가며 내가 혼자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점들을 적었다. 이 글은, 그러니까, 바로 나의 경청해주었던 학생들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이다.
 
0. 망각 oblivion, gidon kremer
 
나는 이 강의를 오기 전에 여수에 두 번 와보았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대학교 때 후배와 한번 왔고, 대학원 말쯤 땅끝을 지나 한 번 더 들렀다. 당시 향일암에 갔을 때 암자 건물과 경치가 아름다워 놀랐던 기억이 나고, 당시에는 몇 곳 없던 바닷가 포장마차에서 꽁치회를 신기해하며 먹었던 생각이 난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예나지금이나, 혼자서 여행하기를 크게 꺼려하지 않는 나는 이후로도 많은 곳을 다녔다. 그러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여수는 이후로, 내게 잊혀졌다.
 
1. 麗水/旅愁 heru mertar, world sinfonia
 
여수는 려수(麗水)이니 아름다운 물, 바다이다. 이미 『천자문』(千字文)에도 금생여수(金生麗水)라는 말이 나오지만, 여수라는 말이 이 지역을 가리킨 것은 영조 때부터이다. 원래 말은 무엇이었을까? 봄내가 춘천(春川)이 되고, 한밭이 대전(大田)이 되고, 달구벌이 대구(大邱)가 되었듯이, 무엇이 여수가 되었을까? 통일신라 때 여수는 해읍현(海邑縣)이라 불렸는데, 해읍은 바닷가 마을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이므로, 원래의 이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게는 여수가 글자 그대로 아름다운 물, 아름다운 바다이다. 여수는 아름다웠다.
 
 
수업을 마치고 나면 나는 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고 어느 누구도 만난 적이 없으므로(버스를 타고 가다 글쓰기, 논술 특강을 한 학생을 창밖에서 본 적은 있다), 여수에 다녀온 스무 번에 가까운 시간은 내게 온전히 나를 대면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여수에 가서는 게스트하우스 같은, 사람들이 많은 곳, 허름한 곳을 골라서 자곤 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혼자 다니는 여행만큼은 가급적 이러한 선택을 하곤 하는데, 이런 나의 습관은 대학교 때 이래 정처 없이 홀로 다니던 여행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들고,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을 배낭에 넣고 다니던 기차 여행은 내게 외로움의 공장,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병원, 형도 누나도 없는 내 삶의 학교, 부모님께 고통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다 커버린 어린 나의 집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영혼의 프롤레타리아이자 구제불능의 나르시시스트이며 절망적인 병적 센티멘탈리스트인 나는 밤기차 차창밖에 비치며 점멸하는 불빛들을 보면, 이 대한민국, 이 우주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이 외롭고 고독하며 쓸쓸한 정신병적 세계는 고향 없는 나의 고향, 집 없는 나의 집 같은 것이라, 불안이 아니라면 나는 어떤 것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여수는 이런 나의 불안하고도 편안한, 초조하면서도 안락한, 쓸쓸하면서도 충만한 여행에 적격이었다. 여수는 내게 아름답고 따뜻한 곳, 충만한 쓸쓸함이 있는 곳이다. 쓸쓸하니, 좋았다. 여수는 내게, 그러므로, 여수(旅愁, nostalgia)이기도 했다.
 
4. 어머니/바다 la mer, charles trenet
 
 
가난과 바다와 태양을 이야기하던 카뮈를 읽던 스무 살의 나는, 내가, 나의 모든 것이, 부끄러웠다. 스무 살의 나는 나의 모든 것이 위선이고 거짓말이라는 생각, 나 자신은 쓰레기라는 생각, 그래서 이 부도덕한 나는 죽어야 한다는 살인적 강박관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가난한 적이 없던 현실의 부르주아였던 나는 굶주리고 말라비틀어진 영혼의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실은 영혼만이 아니라 육체에도 큰 병이 있어 몹시도 오래 심하게 앓던 나는 대학교 4학년 여름에도 정처 없이 여행을 다니다 당시 마산 시내의 진주여인숙에 묵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나는 단아한 할머님이 홀로 운영하시는 여인숙 방에 홀로 엎드려 역시 스무 살 무렵 카뮈의 『편지들』을 읽고 있었다. 날은 덥고 창호지는 얇아 옆방과 마루의 소리가 다 들려왔다. 12시 가량 되었을까 오지 않는 잠을 기다리며 책장을 넘기던 나는 카뮈가 옮겨 놓은 친구의 말에 눈길이 멎었다. “모욕이 준비되었을 때 인생이 시작된다.” 이 말은 맞는 말일까? 오늘날까지도 때로 생각나는 이 말은 묘한 구석이 있다(오늘부터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모욕이 준비되었을 때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시작된다…. 이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입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술 취한, 아마도 서른 가량의 젊은 남자 목소리였다. 그리고 주인할머님의 목소리. 마당이 조용하니 그때 여인숙에 투숙한 사람들은 다 그 대화를 들었을 것이다. 혼자 책을 읽던 나는 실은 듣지 않을 수 없던 그 대화를 옆방 사람들과 함께 조용히 홀로 들었다. 그것은 술 취한 할머님의 아들이 돈을 달라며 화를 내는 내용이었다. 술을 마시려는 것 같았는데 할머니께서 돈을 주시지 않자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더니 무엇인가를 던지며 쌍욕을 하고 아들은 나가버렸다. 이 장면을 귀 기울여 다 들어버린 나는 아무 것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혹여 할머니가 우시기라도 할까봐, 우시는데 방해가 될까봐, 나는 이제 여인숙 한 켠에 놓인 라디오를 작게 틀고 카뮈의 편지와 일기를 읽으며 옆방 아저씨와 아가씨의 무덤덤한 대화를 듣다말다 그저 잠이 들었다.
 
 
5. 안/겉 lachrimae antiquae, jordi savall
 
나는 인류가 우주에 생겨나 어느 누구의 어떤 보살핌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오늘 이만큼의 문명을 이루어낸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대견하고 미안하고 고맙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술을 끊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이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책을 보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새로운 인생은 이제 더 이상 책을 보지 않는 것이다. 대학시절 나는 공책에 이렇게 적었다. “잘 알지 못하는 도시의 여관방은 몹시 쓸쓸하다.” 뒤돌아 생각하면, 이는 그저 나의 못 말리는 센티멘털리즘의 발현, 병이었다. 이렇게 말하자면, 이제 나의 새로운 인생이란 더 이상 회한에 젖지 않는 날, 더 이상 나르시시즘에 빠지지 않는 날, 그러니까 더 이상 싸구려 호텔에 묵지 않는 날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런 날이 오면 무척 좋겠지만 결국 오지 않아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내가 카뮈에게 배운 것은 행복과 불행이, 건강과 병이, 희망과 절망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서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제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6. 여수에서 대구 가는 꽃길 cover me with flowers, david sylvian
 
나는 지난 5년 전부터 격주로 대구의 수성아트피아에서 인문학 강의를 하는데, 여수 강의가 불규칙한 수요일이라 종종은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여수에서 바로 대구를 가야 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런데 기차를 좋아하는 나는 가급적 기차를 타려고 시간을 알아보니 여수도 아닌 순천에서 저녁 6시에 끊긴다. 버스는 차편이 너무 없고 너무 돌아가고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린다. 우선은 아마도 모두 서울만 쳐다보고 있으니 그럴 것이다. 여수는 서울역에서 케이티엑스로 3시간 조금 더 걸리는데 내가 사는 일산에서 출발하여 강의실까지는 편도 4시간 반쯤 걸린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해서 당일로 몇 번 다녀왔는데 왕복 9시간에, 실은 가서도 서서 2시간 정도 강의를 하니 매번 다녀와 약한 몸살이 걸릴 정도로 피곤하여 몇 번 다녀온 후론 무조건 1박 2일로 갔다. 내가 여수를 ‘알게’ 된 것은 이렇게 자고 오기로 결정한 이후이니, 쌀독에서 인심이 나듯이, 여유에서 생각이 생긴다. 더구나 1년쯤 후에는 비행기를 타고 다녔는데, 실제로 미리만 사면 케이티엑스보다 싸다. 김포-여수의 실제 비행시간은 40분이니 떴다 하면 내려가는 수준이라 말할 수 있다. 당시 일정과 감상을 적어놓은 글이 있는데, 대충 이러하다.
 
“김포공항에서 수요일 2일 12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13시 15분에 여수공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바로 충무고로 가서 강의, 강의가 끝나고 바로 택시를 타고 여수여고에 도착한 것은 15시 58분, 18시에 강의를 마치고 바로 여수엑스포역으로 가서 인근 순천역에 내린 것이 19시 2분이었다. 역 앞에 숙소를 잡아놓아 간만에 순대국으로 저녁을 먹고 티비를 켜니 (희한하게도) 여러 개의 수학, 과학 다큐와 대담, 특강을 하여 이것들을 보고 새벽 1시쯤 잠이 들었다. 8시쯤 일어나 된장찌개를 먹고 순천역에서 진주로 가는 9시 20분 기차를 타고 10시 18분에 내렸다. 12시 50분 동대구행 케이티엑스 기차를 타고 14시 34분에 동대구에 내렸다. 15~18시까지 소설읽기 수업을 진행했다. 내일은 수성아트피아에서 11시에 ‘프랑스철학으로 읽는 노자’ 강의를 하고, 14시부터는 소설읽기 금요일 수업이 있다. 카페를 막 나오면서 잠시지만 수강생분들과 수업과도 관련이 있지만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내가 느낀 점 또는 궁금한 점을 함께 나누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이른바 남도 사이의 동서 교류, 곧 ‘호영남’ 교류가 현격히 적다. 나의 경험상 아마도 통행량이 가장 적은 고속도로는 동서를 잇는 88 고속도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광주 혹은 목포에서 출발하여 부산 인근의 부전역으로 가는 우리나라 유일의 동서횡단 열차는 현재 무궁화호로 하루에 3~4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다. 내가 아침에 순천-진주 구간을 타고 온 9시 20분 열차가 바로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열차가 가는 길은 기차를 좋아하여 그렇게 많은 기차를 타본 나조차도 드물게 보는 꽃길이다. 기차는 거의 예외 없이 몇 시간에 걸쳐 영호남의 곡창지대 곧 평지를 따라 달린다. 봄과 가을에는 꽃과 단풍, 여름과 겨울에는 신록과 눈으로 뒤덮인 길이다. 기차는 예전의 비둘기호를 대체한 무궁화호라 중간의 역들을 다 선다(내가 무궁화호를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역마다 장 나가시는 할머님, 할아버님부터 학교 가는 학생들까지 끊임없이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내가 무궁화호를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 그리고 혼자 타지 않는 이상 이 분들은 자리를 찾아 앉으시며 말을 하는데 기차가 여수에서 광양을 거쳐 진주, 마산을 거치는 동안 타는 분들의 말투는 확연히 달라진다. 곧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쓴다면 ‘사투리’가 확연히 바뀐다. 곧 이른바 전라도 사투리에서 경상도 사투리로(서울말이 ‘표준어’이고 다른 곳의 말은 ‘사투리’라는 인식은 검토되지 않은 잘못된 정치적인 규정이다. ‘서울’은 지방이 아니고 ‘서울이 아닌 곳’은 지방이라는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이 ‘지방’이고 서울말 역시 ‘서울 사투리’이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지만, 서울에서 여수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며 서울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장난삼아 나는 이를 ‘서울제국주의’라고 부른다. 나는 그냥 여수와 대구를 ‘갈’ 뿐이고, 서울로 ‘돌아올’ 뿐이다. 요즘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남의 것을 폄하하지 않으면서, 나의 것, 우리 것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생각과 태도’이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런 것이다. 언어는 수천 년, 또는 적어도 수백 년 동안 형성되며 변천되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형성 이후에 국가와 지역의 (행정적, 문화적) 경계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각각 해당 언어의 사용자들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기능을 수행하여 거꾸로 그들의 현실적 언어사용 방식을 변화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인위적 사회적 정치적 변화 이전에 존재하는 자연적 경계는 거대한 산, 바다 혹은 적어도 큰 강줄기가 두 지역을 가로막고 있을 때 생긴다. 그런데 이 기차가 달리는 길은 바닷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내륙의 곡창지대 곧 평지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원래는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조금씩 변하여 서로 섞이는 지점, 곧 서울에서 자란 내가 듣기에 그 ‘중간’처럼, 달리말해 두 사투리가 ‘섞인’ 것처럼 들리는(실은 ‘섞인’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 그렇게 하는 말’이지만) 어떤 말이 들리는 지점(들의 연속)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호남말과 영남말이 ‘섞인 사투리’를 티브이에서도 기차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실제로 없는 것일까, 다만 내가 이곳에 살지 않아 모르는 것일까?
 
 
바꾸어 말해본다면, 신라와 백제 이래, 혹은 고려 태조 이래, 혹은 보다 결정적으로 망국적 지역감정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대통령 당선을 이끌어낸 1971년 박정희 이래(이것이 박정희의 둘째 가라면 서러울 최대의 죄악이다) 인위적으로 구성된 정치적 의식이 적어도 수천 년은 쌓였을 이들의 자연적 언어습관을 몇 십년만에 거의 완벽히 변화시킨 것일까? 그런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간 집단의 언어습관은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장기지속의 영역에 속한다. 평야가 아닌 지역에서 쉽게 관찰되는 영호남의 언어 사용상 차이는 가령 지리산의 존재가 잘 설명해준다. 거꾸로, 동일한 이유로, 행정구역상으로는 이미 천년 이상을 ‘강원도’라는 명칭 아래 함께 묶여 있지만 태백산맥 동편의 (우리 외갓집이 있고 내가 태어난 곳인) 강릉 말씨는 산맥 건너 서편의 춘천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지는 모래사장과 바닷길로 이어져 있는 함경도와 경상도 말씨와 훨씬 더 닮아 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이는 우리가 부여한 ‘정체성’이 실은 자연적인 것(불변의 필연)이 아니라 정치적인 규정(변경 가능한 그저 약속)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이 수천수만 년 동안 말하고 노래하고 밥 먹고 살아 왔고, 거기에 인위적으로 정체성을 부여한 것은 그로부터 수천 년 후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정체성 부여 행위, 곧 명명 행위는 이제 거꾸로 당사자의 의식을 규정한다. 나는 부산 사람이니 롯데를 응원한다, 나는 한국인이니 일본이 싫다, 나이도 먹었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지, 와 같은 말은 바로 이렇게 형성되고 작동한다. 주체는, 개인은, 나는, 이렇게 불리어, ‘호명’되어, ‘제조’되는 것이다. 실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
 
소설읽기 수업을 마치고는 황금역 인근 숙소로 돌아와 지하의 홈플러스에서 신라면과 야채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티브이를 보며 글을 쓰는 현재 시각은 23시가 조금 넘었다. 여러 모로 즐겁고 유익한 하루였다. 이렇게 쓰는 현재 시간은 이미 4일 금요일 0시 21분이 되었다.”
 
7. 이해/폭력 cendre, fennesz & sakamoto
 
나는 여수를 알까? 내가 아는 여수는 뭘까? 아니, 대구는? 아니, 평생을 살아온 서울은? 아니, 9년을 유학한 프랑스는? 나는 무엇을 알까? 아니, 앎,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언제 나는 내가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자신이 무엇을 안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이 정말 그것을 알고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일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앎, 인식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을 인식론이라고 부르는데,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현재 서양중심주의에서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사회를 연구할 때는 사회학이라 부르고, 비서구사회를 부를 때 (문화)인류학이라 부른다. 서울사람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은 지방이 아니라 서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꼭 같이, 서양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지역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단순히 지도와 지리만이 아니라, 달력과 문화, 실은 수학과 물리학,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 그 자체, 의학, 철학과 같은 학문, 그리고 심지어는 문학과 예술 역시 오늘날 세계의 모든 것은 서양을 중심으로 돈다. 이는 보편/특수의 문제이기도 한데, 서울과 서양이 보편이고, 지방과 그 나머지 세계가 특수이다. 곧, 서울/지방, 서양/그 나머지이다. 이는 표준어/사투리, 남성/여성, 신/인간, 어른/아이, 건강/병, 이성애/동성애, 궁극적으로는 정상인/비정상인 모두에 해당되는 도식적 틀이다. 가령 페미니즘의 문제는 이제까지 수천 년을 내려온 남성중심주의를 여남평등(남녀평등이란 말 자체가 여남차별이다)의 세상으로 바꾸어가려는 운동인데, 그 핵심적 문제는 남성적 보편성이 인간의 보편성 그 자체인 것처럼 되어 있는 현실을 혁파하려는 것이다. 인간은 남성과 여성으로 되어 있는데, 여성적 보편성이 보편성 그 자체이고, 남성들은 여성적 기준에서 보면 열등한 존재라고 말한다면, 남성들이 이를 받아들이겠는가? 이처럼 보편성은 기준의 문제이고, 기준의 문제란 그 자체로 이미 정치적 문제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처음에는 서구 제국주의에 기원을 두고 있고 그에 봉사하기 위해 탄생한 문화인류학이 보편성 관념이 갖는 서구중심주의와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방향으로 실제 역사가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서구를 기준으로 설정된 보편성은 비서구를 서구에 비하여 열등한 것으로 설정하게 된다. 중국이 자신을 중심으로 타민족들을 오랑캐라 부를 때 어이없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서구가 자신을 기준으로, 또 서울이 자신을 기준으로, 남성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이성애자들이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며, 그것만이 유일한 영원불변의 보편성이자 정상이고, 유일한 학문이며 진리라고 말할 때, 똑같이 어이없음을 느껴야 할 것이다(아니란 말인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보자.
 
“노련한 인류학자라면 ‘새로운’ 원시 사회를 처음 방문하여 유능한 통역자의 도움을 얻어서 단 며칠 안에라도 그의 마음속에 그 사회의 제도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하나의 모델을 구상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령 6개월쯤 그 사회에 머물면서 그 사회의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처음의 ‘모델’은 그 형체가 별로 남지 않게 될 것이다. 6개월이 지난 후에 그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일은, 처음 사나흘에 느꼈던 것보다는 훨씬 어려운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에드먼드 리치, 『레비스트로스』, 이종인 옮김, 시공사, 1998, 40쪽.
 
 
이것은, 내 경험상, 정말 옳은 말이다. 한국에 와있는 외국인들은 몸은 한국에 있지만 실은 여전히 원래 자신의 나라에서 과거에 형성된 인식의 스펙트럼으로 오늘의 한국을 본다. 외국인들이 한국인들은 오히려 거의 가지 않는 판문점을 가고, 인사동을 가는 것은 이미 그들이 평생 동안 보아온 티브이와 책들에,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그들이 들고 온 자기나라말로 된 여행안내서에 그것을 가보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파리 사람들은 에펠탑을 가지 않고, 서울 사람들은 인사동을 가지 않으며, 여수 사람들은 오동도를 가지 않고, 대구 사람들은 팔공산을 가지 않는다. 적어도 자주는!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생각 없는 관광객들이나 다니는’ 이런 곳을 가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므로 이미 우리가 아는 과거의 것, 나의 것으로 바꿔치기를 한다, 곧 불안한 무지의 상태를 우리는 그냥 둘 수 없으므로 우리에게 이미 도식화되고 유형화된 편안한 인식으로 바꿔치기를 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는 ‘인식’, 나아가 ‘이해’라 부른다(따라서 이해란 이미 ‘내 식 대로 너를 이해하는’ 권력이고 폭력이다). 그리고 나만은 이로부터 벗어난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신은 죽었다(당신이 신이 안 죽었다고 생각할 때, 그렇게 결정하는 사람은 신이 아니라 당신이다. 그것이 신의 의지이며 은총이라고 믿는 것은 신이 아니라 역시 다시금 당신이다. 이것이 신이 되면 일단 그리스도교의 은총설에도 맞지도 않지만 결정적으로는 당신 행동의 책임이 신에게 돌아가게 되므로 신이 당신을 사후에 심판할 수 없게 된다. 차라리, 인간은 자신이 신인 줄 모르는 신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불교이다). 인간들 중에는 신이 없고 나의 모든 인식과 이해는 자기중심적이다. 이러한 도식화ㆍ유형화의 기본 형식이 바로 언어이다. 언어는, 무의식처럼, 시간을 모른다. 언어의 무시간성이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보편성을 말한다. 따라서 보편성, 보다 정확히는 보편성/특수성을 쌍을 파괴하지 않고는, 모든 것이 곤란하다. 내가 전공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도도 달력도 갖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언어는 지도와 달력을 모르는 도식화ㆍ유형화의 결정체이므로,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은 도식화ㆍ유형화의 폭력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나는 어제 본 어머니를 지금의 어머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어머니가 맞지만, 어머니가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내가 사랑하고 증오하는 사람들을, 당신을, 나를, 늘 이렇게 보아왔고 보고 있으며 또 볼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이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사실을 아는 이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다.
 
8. 꿈/현실 all i have to do is dream, everly brothers
 
대학교 1학년은 대부분 몸은 대학에 와 있되 여전히 실은 고등학교 4학년이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한국말을 한다 해도 여전히 자신들의 모국에 산다. 하물며 언어를 모른다면! 결혼을 해도 여전히 총각ㆍ처녀로 산다. 나이는 60이로되 여전히 17살이다. 무의식은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남민전 사건 등으로 여러 차례 복역한, 안타깝게도 이미 돌아가신, 김남주 시인의 옥중 서한들을 보면 감옥에 들어가도 처음엔 감옥 바깥 꿈을 꾼다고 한다. 그리고 시일이 지나면 꿈도 감옥 안이 되는데, 신기한 것은 혹은 당연한 것은, 출소를 해도 상당한 기간 동안 꿈이 여전히 감옥 안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 적이 없고, 늘 이루어진다. 당신의 오늘 현실이 당신이 늘 꿈꾸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dreams were, are and will be come true, always and always). 역시 인간은 자신이 부처(佛, 覺者)인 줄 모르는 부처이다(당신 생각대로, 각장의 소제목 뒤에 붙은 영어들은 유튜브의 노래 제목들이다).
 
9.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my one and only love, sarah vaughan
 
 
그런데, 이것은 남 이야기가 아니라, 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당신은 어떤 과거, 어떤 기억, 어떤 이미지 안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가? 그러한 사실을 아는가? 우리는 과거의, 무의식의, 이미지의 노예이다. 내가 김남주이고, 당신이 허경이다. 나, 불문과 학부를 나오고 대학원에서 프랑스철학을 전공한 나, 프랑스에 유학 가서 9년을 공부한 나 역시 젊은 시절 프랑스에 대해 가졌던 표상은 다른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나는 프랑스가 예술과 패션과 문화의 나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거지도, 아이도, 불어를 한다. 불어는 아름답되 우리말도 그만큼 아름답다. 도대체 언어에는 우열이란 것이 없는 것이다. 프랑스하면 당신에게는 무엇이 떠오르는가? 루브르가, 에펠탑이? 센강이, 노트르담이? 프랑스인들은 한국하면 무엇이 떠올까? 정답을 알고 싶다면, 호주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에티오피아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알제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태국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생각해보면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서울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혹은 여수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모두 과거 수십 혹은 수백, 수천 년을 거쳐 형성된 인상들의 집합체, 곧 앎과 선(先)-이해이다. 이러한 인식의 형성에는 처음 가본 이들, 먼저 가본 이들, 혹은 영향력 있는 이들의 인상과 기록이 결정적이다(『동방견문록』과 『서유견문』, 혹은 『하멜 표류기』를 생각하면 된다. 가령, 여수를 못 가본 이들에게는 지금 나의 이 글이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과거에 형성된 도식화된 유형 인식으로 현재의 세계와 타인을 바라보는 것은 악한 자들이 아니라, 바로 나, 우리들이다. 이것은 어떤 인간도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인식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내가 과거로 현재를 바라본다는 사실, 내 식대로 인식한 너를 너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부인하는 이는 괴물이 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인정하는 이는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살게 될 것이다.
 
10. 내가 상상한 대로의 여수 asleep, astor piazzolla
 
프랑스의 작가 모리스 블랑쇼는 미셸 푸코를 만나고 난 후에 「내가 상상한 대로의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tel que je l'imagine)라는 글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여수를 만나고 돌아와 이 글을 적는다. 그러므로, 마치 당신의 여수처럼, 이 여수는 내가 상상한, 나만의 사적인, 그러니까, 나의 여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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