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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hétérotopie
영어: heterotopia
헤테로토피아는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가 고안한 개념으로, 특히 1966년의 저작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같은 해의 논문 「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적 몸」, 1967년의 논문 「다른 공간들」에 등장한다. 한편 1982년의 대담 「공간, 지식, 권력」에도 이에 대한 간략한 논의가 등장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단적으로 ‘주어진 사회 공간에서 발견되지만 다른 공간들과는 그 기능이 상이하거나 심지어 정반대인 단독적 공간’이다(푸코, 2014:87). 헤테로토피아는 무엇보다 유토피아(utopie)에 대비되는 개념인데, 유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인 반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현실적인 동시에 신화적인’ 공간들, ‘위치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자기 이외의 모든 장소들에 맞서서, 어떤 의미로는 그것들을 지우고 중화시키고 혹은 정화시키기 위해 마련된 장소들’은 ‘일종의 반(反)공간’(contre-espace)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에 신화적이고 실제적인 이의제기(contestations)를 수행하는 이 다른 공간들, 다른 장소들’,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들’ 곧 헤테로토피아를 연구하는 과학(science)이 헤테로토폴로지(hétérotopologie, 이질적 위상학)이며, 이는 이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시간에 대한 과학인 헤테로크로니(hétérochronie, 이질적 연대기)와 짝을 이룬다(푸코, 2014:13~15). 이에 대해 우리는, 푸코가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원적으로 각기 헤테로토피아, 헤테로크로니에 대립되는 호모토피아(homotopie, 동질적 공간), 호모크로니(homochronie, 동질적 연대기)를 상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결국 푸코의 세계에는 일상적이고 동질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정상적인’ 현실적인 공간인 호모토피아,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꿈꾸는 ‘완벽한 비실재적ㆍ비현실적 공간’인 유토피아, 여타의 공간들과는 ‘절대적으로 다른’ 헤테로토피아라는 세 개의 공간이 존재한다. 헤테로토피아는 ‘아이들은 이미 완벽하게 알고 있는’ 것으로, 푸코에 의해 다음처럼 묘사된다. “그것은 당연히 정원의 깊숙한 곳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락방이고, 더 그럴듯하게는 다락방 한가운데 세워진 인디언 텐트이며, 아니면 –목요일 오후- 부모의 커다란 침대이다. 바로 이 커다란 침대에서 아이들은 대양을 발견한다. 거기서 침대보 사이로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커다란 침대는 하늘이기도 하다. 스프링 위에서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숲이다. 거기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밤이다. 거기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유령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침내 쾌락이다. 부모가 들어오면 혼날 것이기 때문이다. / 사실 이 반공간은 아이들만의 발명품이 아니다. [...] 어른의 사회는 아이들보다 훨씬 먼저 자기만의 반공간, 자리 매겨진 유토피아, 모든 장소 바깥의 실제 장소들을 스스로 조직했다. 예를 들면, 정원이 있고 묘지가 있고 감호소가 있고 사창가가 있고 감옥이 있고 클럽 메드의 휴양촌이 있고, 그밖에도 많다.”(푸코, 2014:13~14)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의 특성 혹은 규칙ㆍ원칙을 다음처럼 정리한다. 첫째, 매우 다양한 변양을 갖기는 하지만 자신만의 헤테로토피아가 없는 인간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헤테로토피아는 하나의 주어진 사회 안에서 명확히 규정된 자신만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는 때로 이 기능을 변형시키거나 혹은 일정수의 헤테로토피아들을 폐기시키기도 한다. 셋째, 헤테로토피아는 하나의 현실적 장소 안에 그 자체로는 보통 양립 불가능한 복수의 공간들 혹은 영역들을 병렬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넷째, 헤테로토피아는 매우 자주 특정한 방식의 시간적 분할과 연결되는데, 우리는 이를 ‘헤테로크로니’라 부를 수 있다. 서구 문명에서 공간과 시간에 관한 헤테로토피아와 헤테로크로니는 상대적으로 복합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 경향이 있다. 다섯 째, 헤테로토피아는 항상 구성원들을 격리하고 받아들이는 자신만의 ‘개폐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여섯 째, ‘순수하고 단순한 개방적 체계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기묘한 배제의 체계를 갖는’ 헤테로토피아가 있다. 일곱 째, 헤테로토피아는 ‘나머지 공간들과는 다른, 일정한 기능’을 갖는다. 이는 두 가지 상반된 방식으로 가능한데, 우선 모든 여타의 현실을 훨씬 더 환상적인 것으로서 격하시키며 하나의 환상을 창조하는 방식, 그리고 지상에 위치하는 하나의 현실적 장소를 자신만의 상상 혹은 환상에 입각해 완벽히 새롭게 구성ㆍ창조하는 방식이 있다. 우리가 첫 번째 방식을 ‘상상’에 입각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면, 두 번째 방식은 환상이 아닌 ‘보상’에 입각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푸코는 이 두 방식의 예로 사창가와 식민지를 들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헤테로토피아가 가질 수 있는 두 극한을 보여준다. 한편 우리는 여덟 번째로, 이에 더하여, 일단 출항하면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한 자율권을 행사하며 바다 위에 떠있는 선박, 곧 ‘모든 곳에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선박을 들 수 있다(푸코, 2014:15~26, 45~58).
단적으로, 헤테로토피아는 ‘단독성(singularité)을 자신의 특성으로 갖는 공간들’이라 말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헤테로토피아는 한 사회 내의 여타 공간들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구분되는 ‘절대적으로 다른’ 공간, 복수적ㆍ다수적ㆍ분산적 곧 이질적 공간이다. 이때의 이질성이란 헤테로토피아가 - 그것의 실내용이 무엇이든, 혹은 어떤 기준에 의해 구분되든 - 결국 한 사회가 ‘일상적인 것’ 혹은 때로는 ‘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한 한계의 바깥에 위치하는 무엇인가에 관련되는 공간임을 의미한다. 헤테로토피아는 한 사회의 동질적 기능 작용에 균열을 내는 이질화, 복수화, 다수화의 기능을 수행한다. 따라서 헤테로토피아의 기능은 공간과 관련된 한 사회의 정상적 기능 작용에 균열을 내는 이의제기 작용, 곧 기존의 ‘당연’에 대한 문제화(problématisation)를 수행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크게 보아, 헤테로토피아에 관련된 푸코의 논의는 기존의 뉴턴-데카르트-칸트적으로 이해된 실체적 ‘공간’을 ‘차이’(différence) 및 ‘타자성’(l’Autre)의 개념 아래 심미적ㆍ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새로이 포섭하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1960년대 말 이후 푸코가 점차로 이른바 ‘(포스트)구조주의적’ 방법론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면서 ‘단독성’(singularité), ‘사건’(événement) 및 ‘계열’(série)의 개념에 입각한 니체주의적 힘-관계(relations de forces)의 계보학적 논리로 옮겨감에 따라, 헤테로토피아 개념이 퇴색되어 간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실상 푸코는 1966~1967년의 짧은 시기 이후,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단순히 ‘동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한 사회에서 공간 설립자의 원래 의도와 무관하게 혹은 반하여 한 공간을 이질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거나 한 공간이 이질적인 방식으로 기능하는 경우’로 한정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한 가지 난점을 불러일으킨다. 만약 우리가 헤테로토피아를 단지 ‘지배적인 동질적 호모토피아 내부에(혹은 ‘내부의 외부’로서의 내부의 일부에) 존재하는 이질적 장소’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때 헤테로토피아는 주어진 지배적 호모토피아에 대해서는 이질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그 자체의 내부에서는 동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또 하나의 작은 호모토피아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헤테로토피아를 지배적 호모토피아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작은 호모토피아로 이해하는 것으로, 푸코의 일반적 사유경향인 비실체적인 분산 및 차이화의 사유와는 완전히 어긋나는 논의이다. 비록 푸코가 이러한 논의를 스스로 발전시킨 적은 없지만, 이를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은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을 ‘거시적인 공간은 미시적 공간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가장 가시적인 효과에 불과하다’는 푸코 자신의 미시적 공간론에 입각하여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일견 잘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배적 호모토피아 자체를 ‘실상 때로는 잘 기능하고 때로는 잘 기능하지 않는 하나의 헤테로토피아, 곧 다수의 헤테로토피아들이 만들어내는 효과’로 간주하는 것이다. 어떤 호모토피아도 실상 늘 잘 기능하지는 않는다. 호모토피아의 동질성 논리에서 보면 헤테로토피아는 부차적 기능을 수행하는 변방적ㆍ부차적 존재이나, 헤테로토피아의 이질성 논리에서 보면 호모토피아는 실제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라 할 생성하는 무수한 헤테로토피아들의 배치와 분산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허상,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나 가장 가시적으로 두드러져 보이는 표면, 변방적ㆍ부차적 존재, 곧 허깨비가 된다. 이렇게 해석된 헤테로토피아론은 언어의 한계와 조건화에 관련된 철학적 논의의 일부로서, 학문 연구 방법론상의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푸코가, 기존의 시간이 아닌, 헤테로토피아로 대표되는 공간의 분석에 집중하는 이유를 정리해보면 다음이다. 첫째, 푸코에 따르면, 시간적 분석이 개인적 의식을 가정하는 주체의 철학에로 우리를 이끌어갔던 반면, 공간의 분석이 담론의 형성과 변형을 가능케 하는 전략적이고도 위상학적 분석에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는 푸코의 공간 분석이 시간과 연관된 개인적 의식 곧 주체를 전제하는 근대 주체 철학 전체에 대한 비판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주체가 아니라, 주체 형성의 인식론적 조건을 탐구하는 공간 분석에서 주체는 이제 각각의 요소들이 점유한 위치와 공간의 배치를 통해 구성되는 하나의 효과로 간주된다. 둘째, 헤테로토피아론은 이후 1970년대 중반, 보다 정확히는 1975년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의 시기에 이르러, 권력-지식(le pouvoir-savoir)론과 맞물리면서 공간의 배치와 분배의 논리가 어떻게 근대 이래의 정상화 권력(le pouvoir normalisateur)과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셋째, 나아가 푸코의 공간 분석은 동시대의 지배적 사조였던 베르크손주의, 현상학, 실존주의, 마르크스주의 및 자유주의 모두에 비판적이다. 이는 당시의 자본주의 혹은 자유주의 비판을 넘어, 푸코 동시대의 마르크스주의적 제 경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데, 푸코는 공간의 분석을 통해 자신이 해결하고자 했던 하나의 문제 상황 곧 ‘어떻게 더 이상 전통적 자유주의도 아니면서 또한 정통적 마르크스주의도 아닌 분석의 새로운 (좌파적) 방법론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하나의 돌파구를 찾게 된다. 오늘날의 철학이 갖는 위상과 기능을 다룬 1978년의 한 대담에서 푸코가 ‘공간의 문제’야말로 바로 모든 분석의 ‘열쇠’라고 말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참고문헌: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icences Humaines, Paris: Gallimard, 1966(미셸 푸코, 『말과 사물』, 이규현 옮김, 민음사, 2012).
Michel Foucault, Le corps utopique suivie de Les hétérotopies, Nouvelles Editions Lignes, 2009(「헤테로토피아」, 「유토피아적인 몸」,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Michel Foucault, ““Des autres espaces”, in Dits et Ecrits, Paris: Gallimard, 2001(「다른 공간들」, 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Michel Foucault with P. Rabinow, “Space, Knowledge and Power”, in Skyline, n. 5, March 1982; “Espace, savoir et pouvoir”, trad. F. Durand-Bogaert, in Dits et Ecrits, Paris: Gallimard, 2001(미셸 푸코, 「공간, 지식, 권력」,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Jeremy W. Crampton and Stuart Elden ed., Space Knowledge and Power. Foucault and Geography, Ashgate Publishing Company, 2007.
허경,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 초기 공간 개념에 대한 비판적 검토」, 홍준기 엮음, 『현대사상과 도시』, 라움, 2012; 허경, 『미셸 푸코. 개념의 고고학』, 그린비, 2014(근간).
-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가 발간할 <도시인문학 용어사전> 을 위해 작성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