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스테리 환자가 상징화를 통해 감정이 강하게 얽혀 있는 관념에 대한 신체적인 표현을 만들어낼 때, 여기에 개인적 요소나 자의적인 요소가 좌우하는 부분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다. 그녀가 언어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처 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을 에인다’거나 ‘얼굴을 한 방 맞은 것 같은’ 감각을 정말로 느낄 때에는, 히스테리 환자가 기지에 넘치는 언어를 정확히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표현에 기반이 되는 감각을 새롭게 소생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러한 언어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그 모욕을 실제로 심장부의 감각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혹은 그러한 감각과 동일시될 수 없다면, 어째서 모욕 받은 사람을 두고 ‘그것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라고 말하겠는가? 굴욕을 감수하는 태도를 묘사하는 ‘무엇을 눌러 삼킨다’라는 표현도, 아무 말도 못하고 모욕에 대해 억눌린 감정을 풀지 못했을 때 목구멍에 생기는 신경 감각에서 실제로 꾹 눌러 참는 현상이 생겨난다는 것은 정말로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이러한 감각과 신경의 지배는 전부 ‘감정의 표현’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은 다윈의 이론대로, 기원적으로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현재는 이것이 너무 많이 약화되어 이러한 언어적인 표현이 우리에게는 단지 비유적인 전달로만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 예전에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히스테리의 강렬한 신경 지배를 묘사할 때 언어의 근원적 의미로 복귀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히스테리가 상징화에 의해 그 같은 감각을 만들어 낸다는 표현은 어쩌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히스테리가 그러한 용법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히스테리와 언어용법이 똑 같은 근원에서 자신들의 소재를 끌어낸 것이리라.”(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례연구: 엘리자베트 폰 R. 양(프로이트)」, 『히스테리 연구(1895)』, 김미리혜 옮김, 열린책들, 1997[초판]/2003[재간], 244~245쪽)
* Sigmund Freud(1856~1939), Zur Psychopathologie des Alltagslebens. Über Versprechen, Vergessen, Vergreifen, Aberglaube und Irrtum, 1901; The Psychopathology of Everyday Life, 1904; 지그문트 프로이트,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망각, 잘못 말하기, 잘못 잡기, 미신과 착오)』, 이한우 옮김, 열린책들, 1997[초판].
1. 고유 명사의 망각
이름의 일시적 망각이 보이는 일정한 특징들. 이런 경우들에서는 이름이 ‘망각’될 뿐만 아니라 ‘잘못 기억’되기도 한다.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이름을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면 다른 이름들-대체 이름들Ersatzname-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때 우리는 그 이름들이 우리가 기억해내려고 하는 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즉각 알아차린다. 그러나 대체 이름들은 대단히 집요하게 계속 바뀌어 가며 우리에게 강박적으로 작용한다. 기억해내려고 하는 이름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은 말하자면 ‘위치가 잘못되어’ 있고, 그래서 엉뚱한 대체물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전제하려 한다. 즉 이처럼 위치가 잘못되는 것은 정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길들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대체 이름이 기억해 내려고 하는 이름과 일정한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그 연결방식이 무엇인지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12).
2. 외국어 단어의 망각
다만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떤 특정한 의도 없이 망각한 단어에 주의를 집중할 경우 당신의 정신 속에 떠오르는 것은 모두 다 ‘솔직하게’ 그리고 ‘무비판적으로’ 나에게 말해주세요(23).
3. 이름과 단어군의 망각
전위(轉位, Verschiebung, displacement, déplacement)(51).
4. 어린 시절의 기억과 은폐 기억들
우리의 기억 작용이 예기치 못한 목적성을 갖는다. 어린 시절의 사소한 기억들은 전위의 과정을 통해 생겨난다. 그 기억들은 기억 재생 과정에서 정말로 중요한 다른 인상들을 대체한 것이다. 이 중요한 인상들에 대한 기억은 심리 분석을 통해 별로 중요치 않은 인상들에서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인상들은 저항Widerstand으로 인해 직접 재생되지 않는다. 사소한 기억들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내용이 다른 억압된 내용과 맺고 있는 연상관계에 의해 보존되기 때문에 내가 그것들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용어인 ‘은폐기억Deckerinnerung’이라고 불릴 나름의 이유를 갖게 된다(69~70).
일반원리. 기억 재생 기능이 실패하거나 방향을 상실할 경우, 그런 일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빈번하게 의도적인 요인, 즉 어떤 기억은 촉진하면서 다른 기억은 재생을 억제하려는 목적을 갖는 교란을 통해 일어난다(72). 성인의 기억이 대체로 어린 시절의 정신적 과정 중 극히 일부만을 보존해 왔다는 사실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특히 이 어린 시절의 체험들은 흔히 생각하듯이 인격 발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후 그의 인생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행사해 왔다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런 독특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그 체험들은 망각되어 버린 것이다! 이는 아주 특별한 종류의 상기(想起)-의식적 재생이라는 의미에서이다-의 조건들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조건들을 인정하기를 꺼려 왔다. 말할 것도 없이 어린 시절의 망각은 우리에게-아주 최근 정신분석의 성과에 따르면-모든 신경증의 증상을 형상하는 기초에 놓여 있는 그런 종류의 망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할 수 있다(73). [...] 어떤 사람이 성인이 될 때까지 보존한 기억들을 분석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들의 정확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것들의 기억 상(像) 중 일부는 시간이나 장소가 잘못되거나 불완전하거나 전위된 것들이다. 자신의 최초 회상은 두 살 무렵의 것이라고 하는 분석 대상자의 진술은 분명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경험의 왜곡과 전위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이런 잘못된 회상들이 단순히 기억의 부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동기들은 금방 찾을 수 있다. 성인기의 강력한 힘들이 어린 시절의 체험들을 회상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74). 소위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들에서 우리는 진정한 기억의 흔적들Erinnerungspur이 아니라, 이후에 수정된 기억을 갖게 된다. 결국 이런 수정된 기억이란 그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개개인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일반적으로 ‘은폐기억’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며, 나아가 한 민족이 전설과 신화들 속에 보존하고 있는 초창기 기억들과 상당히 유사성을 보이게 된다(75).
5. 잘못 말하기
메링어와 마이어(R. Meringer und C. Mayer), 『잘못 말하기와 잘못 읽기, 심리학적-언어학적 연구 Versprechen und Verlesen, eine psychologisch-linguistische Studie』, 1895. 단어나 문자의 음들이 대단히 고유한 방식으로 연결되는 일정한 심리적 메커니즘의 발견이 목표(82). 오스트리아 하원 의장이 개회를 선언하면서 “여러분, 정족수가 이루어졌으므로 폐회를 선언합니다.”(89)
자신의 숙모에 대해 말을 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것을 깨닫지 못하고 ‘나의 어머니’라고 말하는 환자도 있는가 하면, 또 자기 남편을 ‘오빠’라고 말하는 환자도 있다. 이렇게 말을 잘못하는 것으로 환자가 이들 두 사람을 ‘동일시’(同一視)하고 있으며, 그 환자의 감정생활에서 이들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을 대신하고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19).
여기서 덧붙여 말하면,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의 이름을 틀리게 말하는 사람들은 귀족 계급에 많다. 이런 사실을 통해 그들이 의사에 대해 약간은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만, 내심으로는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124, 1906년에 추가한 원주 69).
6. 잘못 읽기와 잘못 쓰기
7. 인상의 망각과 의도의 망각
‘모든 경우에 망각은 불쾌의 동기에 그 근거가 있음이 입증된다.’(195)
물건을 ‘잘못 놓는 것’은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가를 망각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문자와 책을 다루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나는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찾는 것을 한 번에 들어 올릴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무질서로 보이는 것이 나에게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이다(199).
우리 중 한 명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며 ‘cui prodest 누가 이익을 얻게 되는가?’라는 격언에 비춰 본다면 그것은 나일 가능성이 높았다(205).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니체가 자신의 잠언집 『선악의 피안』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적나라하게 그 현상과 그것의 심리적 기초를 제시한 적이 없다. “나의 기억은 말한다. ‘내가 이것을 했다.’ 나의 자부심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의기양양해 한다. ‘나는 이것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기억이 항복한다.”(208~209, 1910년에 추가된 원주 15) * 68. 내 기억은 이것을 “내가 했다”고 말한다. 내가 그러한 것을 했을 리가 없다고 내 자부심은 말하며 냉정해진다. 결국 – 기억이 양보한다(프리드리히 니체, 제4장 잠언과 간주곡, 「선악의 저편」, 『선악의 저편(1886)ㆍ도덕의 계보(1887)』, 니체 전집 14, 책세상, 2002, 108쪽).
위대한 과학자 다윈은 망각의 동기로 불쾌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통찰에 바탕을 두고서 과학자들의 ‘황금률’을 제시했다(210). 어네스트 존스는 「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에서 다윈의 자서전에 나오는 다음 구절에 주목했다. 그 구절은 학문적 정직성과 심리학적 예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수년 동안 나의 일반적인 관찰 결과들과 상충되는 출판물이나 새로운 관찰, 혹은 사상이 나오면 언제든지 그것을 즉각 기록한다는 황금률을 준수했다. 왜냐하면 나는 경험을 통해 그런 사실들과 사상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비해 훨씬 멀리 내 기억에서 떨어져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같은 쪽, 1912년에 추가된 원주 18)
문외한들조차 망각은-그것이 의도의 망각인 한-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요소적 현상일 수 없으며,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공인받지 못한 동기들이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는 생활 속의 두 가지 상황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연애와 군기(軍紀)이다. [...] “1년 전이었다면 잊지 않았겠죠. 분명 당신은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거예요.” “전에는 일이 그만큼 안 바빴나요.”(216~217)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관찰을 통해 망각의 결과로 뭔가 빼먹은 사례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설명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나는 그것들이 미지의 공인되지 않은 동기들-우리는 그것을 ‘반대의지Gegenwille’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에 의한 교란 작용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218).
관례적인 의무와 우리가 개인적으로 채택한 공인되지 않은 견해 사이의 충돌은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선의로 하겠다고 약속한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망각해버린 사실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 망각이 변명으로서 효력을 갖는다고 믿는 사람은 그로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뿐이다. 선의를 요청하는 사람은 올바른 대답을 알고 있다. ‘그는 그 문제에 관심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것을 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220)
일반적으로 뭘 잘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있다. [...] 그런데 그들은 우리가 이런 사소한 잘못들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요구한다. 즉 그들이 불성실해서가 아니라 타고난 특이체질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비유에 기초해, 이런 경우에 그 동기는 그 자체의 목적을 위해서 선천적인 요인을 사용하는 다른 인간들에 대한 대단한 경멸의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갖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220~221).
나로서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의 결정체인 지혜가 왜 과학의 성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다. 과학적 탐구의 본질적인 성격은 연구 대상의 특수한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을 정립하는 엄밀한 방법과 얼핏 상관없어 보이지만 탐구를 통해 연관이 드러나는 그런 상호관계의 탐색에 있다(223).
우리는 놀이를 하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속담의 진실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223, 원주 30).
의도의 망각은 우연이 아니라는 일반적 생각을 보여주는 격언이 하나 있다. ‘일단 뭔가 할 일을 잊어버리면 그는 계속해서 그 일을 잊어버릴 것이다.’(225~226)
8. 잘못 잡기
하인들이 깨지기 쉬운 물건을 떨어뜨려 부순다면, 여기에 음험한 동기가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먼저 심리학적 설명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과 예술작품에 대한 존중만큼 교양 없는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없다. 그런 작품에 대한 무감각한 적의가 우리 민중을 지배하고 있다(241).
가족의 한 사람이 혀를 깨물었다거나 손가락을 찧었다는 것과 같은 하소연을 한다면, 나는 그가 기대하는 동정심 대신에 ‘그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라고 묻는다. [...] 비록 서툰 표현이지만 반(半) 의도적인 자해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은 의식적으로 의도한 자살 이외에 반(半) 의도적인 자멸도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자멸은 사람의 위협을 교묘히 이용하여 그것을 우연적 재앙으로 가장할 줄 안다(249).
“그래요. 그것은 아마도 ‘벌’이었을 거예요.” [...] “나는 자주 ‘너는 네 자식을 죽였어’라고 나 자신을 비난했어요. 나는 이런 벌을 받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을 가졌어요. 이제 선생님이 눈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확인해주니까 안심이 되네요. 어쨌거나 나는 이제 ‘충분히 벌을 받았어요.’” 결국 이 사고는 한편으로 그녀의 범행에 대한 자기 징벌이자, 다른 한편으로 한 달 내내 그녀가 두려워했던 아마도 미지의 더 큰 벌을 벗어나기 위한 자기 처벌이었다(254). 실수 행위에 의한 자기 처벌(255, 1920년에 추가한 원주 27). 이처럼 사고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과 같은 수많은 경우들에서 그런 설명은 여전히 의문을 남긴다. 외부인은 그 사고에서 우연에 의한 발생 이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반면 희생자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그런 사고의 배후에 있을 지도 모를 무의식적 의도를 의심할만한 이유를 갖고 있다. [...] “만일 솔직한 나[현재의 약혼자]의 견해를 표명해야 한다면, 나는 그 재앙을 우연한 사고나 우울한 의식의 결과가 아니라 무의식적 목적에 따라 수행되고 우연한 사고를 가장한 의도적인 자기 파괴라고 보고 싶습니다.”(256~267)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이 작은 존재가 죽는다면, 나는 자유로울 것이고 아내와 이혼할 수 있을 것이다.”(259)
9. 증상 행위와 우연 행위
나는 그런 우연행위들을 ‘증상행위 Symptomhandlung’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우연행위들은 행위 주체 자신이 전혀 의심하지 않은 것, 따라서 대체로 그가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고 오로지 자신만이 간직하고자 하는 그 무엇을 표현하는 행위들이다(264). 알퐁스 매더, “어느 한 여자가 최근에 들려준 얘기로, 그녀는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일을 잊고 있다가 결혼 전날 밤 8시에 그 사실이 생각났다는 것이다. 드레스를 만든 사람은 고객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다 그냥 포기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는 일을 그리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아마 그녀로서는 그 고통스러운 행사를 잊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 ... 그녀는 이혼했다.”(282~283)
* 이말을 듣고 내가 아는 한 분이 내게 결혼식 전날 반지를 잃어버린 신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중에 헤어지게 된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신부는 결혼 이전부터 구타를 당하던 여성이었다. 그녀의 무의식은 그녀의 의식과 달리 이 결혼이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결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토 랑크는 제법 긴 어느 글에서 그런 행위, ‘물건을 잃어버리는 분실 행위’의 기저에 뭔가를 제물로 바치고 싶은 분위기가 있음을 밝히고 또 그 심오한 동기를 찾아내기 위해 꿈-분석을 이용한 적이 있다. 그의 글이 흥미를 끌게 된 것은 몇 년 후 그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것을 ‘되찾는’ 행위 또한 (심리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을 때였다(289~290).
일반적으로 우리는 어떤 단어든 자유롭게 선택하여 우리의 생각을 포장하고, 어떤 이미지든 자유롭게 끌어내 우리의 생각을 위장시킨다. 그런데 조금만 더 면밀히 관찰해보면, 그와 같은 자유로운 선택을 결정하는 또 다른 요인들이 있으며, 우리의 생각을 표현하는 형식 그 이면에 행위의 주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더욱 깊은 의미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하고자 할 때는 그 사람이 특징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나 단어들을 분명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그 밖의 다른 의미나 단어들은 말을 할 당시에는 이면에 감춰진, 그러나 분명 화자(話者)에게 강하는 영향을 미치고 있는 어떤 주제를 넌지시 암시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301).
10. 착오
사람들은 아마도 진실하려고 하는 인간의 성향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놀랄지도 모른다(309).
11. 복합적 실수 행위
12. 결정론, 우연에 대한 믿음과 미신 – 관점들
일반적인 결론. 정신 활동의 불완전함과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일정한 행위들을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것들이 의식의 범위를 벗어나 있는 이유들에 의해 생겨나고 결정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 잘못된 어떤 행위는 위와 같은 설명이 가능한 여러 행위들 중의 하나일 텐데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 (a) 이 행위는 우리의 판단이 정하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정상적인 상태’라고 하는 한계를 넘어서는 안 된다. (b) 이 행위는 또한 잠시 동안만 지속되는 잠정적 혼란만을 나타내야 한다. 즉, 이 행위는 우리가 이전에는 정확하게 실행했던 행위였고, 앞으로도 정확하게 실행할 수 있는 행위여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와 같은 행위를 했을 때 누군가가 지적을 해준다면 이 지적이 정확하다는 것과 우리의 정신적 움직임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c) 잘못된 행위를 했거나 혹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조차도 이 행위의 동기가 의식되지 않아야 하고 그 원인을 ‘우연’이나 ‘부주의’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무지의 결과가 아닌) 망각, 착오, 잘못 말하기, 잘못 읽기, 잘못 쓰기, 잘못 잡기 등 우연한 행위들을 모두 잘못된 행위의 범주에 속한다. / 독일어의 경우 잘못된 행위를 지칭하는 단어들은 모두 ver라는 음절로 시작되는데 이는 모든 잘못된 행위들 사이에 내적인 동일성이 있음을 알려준다고 볼 수 있다[잘못 말하기 Ver-sprechen, 잘못 읽기 Ver-lesen, 잘못 쓰기 Ver-schreiben, 잘못 잡기 Ver-greifen](333~334).
[정신] 분석적으로 검토를 해보면, 놀랍게도 단지 숫자만이 아니라 동일한 조건 속에서 주어진 그 어떤 단어들 역시 완벽하게 결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350~351).
편집증 환자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그들은 타인들의 행동 속에서 일반적으로 보통사람들이 지나쳐버리곤 하는 아무런 의미 없는 사소한 점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그들은 사소한 것들을 해석하여 엄청난 의미를 지닌 것들을 끌어낸다. 예를 들어, 내가 최근에 관찰한 한 환자는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유인즉 그가 역을 떠날 때 사람들이 어떤 손동작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른 환자는 사람들이 길을 가면서 지팡이를 휘두르는 방식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도 했다(원주 25. 무의미하고 우연에 지나지 않는 모습들에 대한 이러한 해석들을, 다른 관점에 근거하여 ‘관계망상’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 편집증 환자들은 어떤 이유로 사물을 이렇게 보게 된 것일까? 다른 유사한 경우들처럼 이 경우에도, 환자는 자신의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타인들의 정신적 삶 속에 투사(投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그러나 오직 자신에게만 사실인 것을 타인들에게도 사실인 것으로 확장시켜 보기 때문에, 편집증 환자의 앎은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355~356).
나는 외부에서 일어나는 (실제의) 우연은 믿지만, 내부의 (정신적인) 우연은 믿지 않는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우연이란 없다. 미신을 믿는 자들은 그 반대다. [...] 실제로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가장 현대적인 종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세계에 대한 신화적 관념이 ‘외부 세계에 투사된 하나의 심리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 ‘초감각적 현실’은 과학을 통해 ‘무의식의 심리학’으로 변형된다. 이러한 관점에 서게 되면, 천국, 원죄, 하느님, 나아가서는 선과 악이나 영생 등에 관련된 신화들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고, ‘형이상학’을 ‘초심리학’으로 번역할 수도 있게 된다. [...] 사고를 시작했을 때 인간들은 신인동형론(神人同形論)적 사고를 함으로써 이 세계가 자신들의 모습을 닮은 수많은 인격체들로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 하지만 미신은 과학이 도래하기 이전의 시대에는 정당한 것이었다. 미신은 과학 이전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하나의 논리적 보완물이었던 것이다(358~361).
미신이 억압된 어떤 적대적 충동이나 잔혹한 충동에서 파생된 것이라는 사실은 강박적 사고나 강박적 충동에 빠져 있는 신경증 환자-그들은 대체로 지능이 높은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들에게서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대개 미신은 문제꺼리가 발생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사악한 소망을 품고는 있지만 착한 사람이 되라는 도덕 교육을 많이 받아 자신의 그 사악한 소망을 무의식 속에 억압하고 있는 사람은 외부에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어떤 위협적인 문제꺼리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사악함을 징벌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이다(362~363).
데자뷔(旣視感, déjà vu, already seen). 내가 보기에 어떤 일을 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는 느낌을 환각이나 착각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오히려 그런 순간에는 과거에 경험했던 무엇인가가 정말 다시 떠오른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의식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없을 뿐이다. 간단히 말하면, ‘기시체험’의 느낌은 어떤 무의식적 환상을 다시 떠올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370).
전환단어. 언어의 다리. 연상의 다리(382).
‘억압된’ 기억의 경우, 그 기억의 흔적은 아무리 장기간의 시간이 흐른다 하더라도 아무런 변화를 겪지 않는다. 무의식은 무시간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리적인 고착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면서 또한 가장 낯선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모든 인상이라는 것이 처음에 지각된 형태 그대로 보존될 뿐만 아니라 나중에 더 발달된 형태 속에서도 그대로 보존된다는 사실이다(383).
만일 우리가 그런 행위들[실수와 꿈-작업]을 정신신경증의 결과나 신경증 증상과 비교한다면 종종 반복되어 나타날 두 가지 진술, 즉 신경증과 관련해서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게 되고, 우리 모두는 약간씩 신경증의 증세를 지니고 있다는 진술이 의미 있는 것으로 와 닿으면서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 가장 심각한 경우든 가장 가벼운 경우든 모든 사례들이 다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실수나 우연 행위 속에서 똑 같이 발견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 현상들의 근원을 따지면 모두가 불완전하게 억압된 심리 재료에 기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 불완전하게 억압된 심리 재료는 의식에 의해 거부되긴 했어도 그 표출 능력을 완전히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387~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