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2.

잠언 15






1. 글쓰기는 평생을 바쳐야 하는 과업이다.


2. 타인들과 잘 지내는 방법, 실은 무엇보다도 내가 내 삶을 잘 사는 방법들 증 하나는 혼자 있을 때 남들에게 의존하거나 무엇인가를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내 시간을 즐겁게 잘 보내는 기술을 터득하는 일이다.


3. 항상성(homeostasis) - 철학 혹은 공부란 내 마음과 몸의 컨디션을 편안하게 유지하는 기술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4. 삶이 어려울 때 못난 생각을 품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위대한 가능성은 그러한 현상 자체에 함몰되지 않고 그러한 현실을 낳은 자신과 세계의 조건 자체를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생각을 하고 책을 읽고 대화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의지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적절한 방향을 잡아주기 위해서이다. 결국 나의 모든 성심성의와 노력은 '나'를 위한 것이다. 적절한 인식 없는 적절한 행동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5. 세계가 인식을 바꾸듯 인식이 세계를 바꾼다. 실로 세계에 대한 인식 자체가 세계를 변경시킨다. 헤겔의 놀라운 점은 세계와 인식이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할 뿐만아니라 세계와 인식 사이의 괴리 곧 소외가 나쁜 것도 아니라는 통찰에 도달한 것이다. 소외는 차라리 세계와 인식의 존립 조건 자체이다. 이러한 소외를 도덕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려는 관점 자체가 하나의 소외된 현상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오직 충만히 소외된 자만이 소외를 극복할 수 있다는 놀라운 선언이다. 가령 이러한 인식 자체가 인식하는 자의 자기 인식을 변경시킨다. 이러한 인식 안에서 이제 소외는 차라리 하나의 축복이다.


6. 네 광기와 환상 곧 신화를 억압하지 마라. 신화라는 일본어는 이야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mythos의 번역어이다. 이야기란 이때 내러티브 곧 요소들의 배치를 통해 맥락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야기, 내러티브, 맥락이 없다면 개별 요소들의 특성 곧 의미가 발생되지 않는다. 너의 광기와 환상은 온전히 너의 일부분이다. 실상 로고스가 하나의 미토스이다. 이성과 현실, 로고스는 놓아두고 광기와 환상, 미토스만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좋은 바이러스와 좋은 콜레스테롤만을 남긴 채 나쁜 바이러스와 나쁜 콜레스테롤만을 제거하려는 시도와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한 시도 자체는 무익한 일이 아니나 그러한 시도가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끔찍한 것일 수밖에 없다. 불행과 행복의 조건은 다른 것이 아니므로 양자를 모두 감싸안고 나아가야 한다. 비극이 없는 완전한 세계가 아니라 비극마저도 받아들이는 불완전한 세계를 살고자, 다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7. 싼초가 말했다. "나리, 참으로 용감한 심장을 가진 자들은 번영할 때 즐거워할 줄 알 듯이 불행해지면 아픔을 느낄 줄 알지요. 이건 제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한 겁니다요."

"대단한 철학자가 되었네그려, 싼초." 돈 끼호떼가 대답했다. "아주 사려 깊은 말이야. 누가 자네에게 그런 걸 가르쳐주는지 모르겠구먼. 내가 자네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운수나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는 걸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특별히 하늘의 명이나 운명의 섭리로 오는 것들은 없다는 게야. 여기에서 우리가 늘 하는 말의 진실이 나오지, 사람은 누구나 자기 운명의 창조자라고, 내가 내 운명을 만든 사람이지."

- 세르반떼스, <기발한 기사 라 만차의 돈 끼호떼 2>, 민용태 옮김, 창비, 2012, 776~777쪽.



8. 일어난 불행한 일 자체보다 더 큰 '진짜 불행'은 현실의 불행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부정하는 두려움, 실은 무능력이다. 이 모든 것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삶의 조건 그 자체인 불행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인데 불행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가령 훌륭한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교통사고를 안 당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불행해야 할 때 불행하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는 불행마저도 은총이라고 말하는 경우조차 있다. 불행은 은총이 아니라 그저 불행이다. 불행을 받아들여라.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불행과 고통을 부정하고 싶어하는 이유  역시 이와 같은 것이다. 불행과 고통을 받아들이고 힘들면 되는데 말이다! 이제 당신은 묻고 싶을 것이다. 과연 이 글을 쓰는 너는 삶의 진정한 고통과 불행을 피하지 않고 겪어보았는가?


9. 누가 내게 인생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최대의 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안이함이라고 대답하겠다.


10. 그러나 실패와 불행, 비극에 매혹된 인간들이 또한 존재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 비극의 주인공이 자신이 아니라면 이 비극에 결코 매혹되지 않았을 것이다.


11. 비극과 마찬가지로 자기 혐오와 자기 연민은 실로 삶을 미학화하는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연극화 작업이다.



12. 삶을 망치는 세 가지 기술 - 비교, 희생 그리고 자기 연민.


13. 은총 효과 - 은총이 발생시키는 효과. 은총의 발명. 은총은 어떤 세계, 어떤 개인을 만들어내는가? 은총의 기능.


14. 한 사회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 혹은 달리 말해 다른 사람들과 달리 느끼는 사람은 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너는 우리와 다르다'는 끊임없는 지적을 받는다. 그리하여 이러한 생각이 골수에 사무쳐 그녀가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을 잃는 것을 넘어 스스로를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녀는 한 가지를 잃게 된다. 삶의 안정성. 이제 그녀는 이후에 자신에게 일어날 여러가지 사건에 의해 흔들리게 되고 때로는 무너지겠지만, 이 모든 것은 실로 그녀가 온생애 동안 쉼없이 맞아온 가랑비의 축적이 낳은 최종적 결과에 불과하다.


15. "어떤 텍스트가 희생양 효과에 대해 덜 언급할수록 또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구조를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수록, 그것은 희생양 효과에 더 지배받고 있는 것이다."(197)

"인간에게는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없는 법이다. 어린아이들은 무엇을 욕망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남들이 그것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216)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행동하면서 십자가에 못질을 하는 것이다."(256)

"어떤 사람에 대한 심리학을 수행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조서(調書)를 꾸미는 일이다."(256)

"자신이 해방자라고 믿었던서구는 오늘날에 와서 자신이 박해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333)

- 르네 지라르, <희생양>, 민음사, 1998/2007.



16. 사랑을 하면, 네가 늘 품고 있던 그러나 한번도 알지 못했던 온갖 무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것은 사랑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사랑인 것도 아니다. 어떤 경우이든, 너는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


17.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 사랑을 너무 오래 못받은 사람들, 한번도 혹은 너무 적게 사랑을 받았던 사람들은 실제로 사랑을 받게 되면 두려움에 떤다. 사랑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랑을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이 두려움은 사랑하는 자를 시험에 빠뜨린다. 길고도 안정적인 사랑은 이 두려움에 굴하지 않는 용기있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이자 보상이다. 용기있는 이들만이 아름다움을 얻는다(only the brave takes the beauty)는 말은 실로 옳은 말이다.


18. 라 로쉬푸코적 잠언 - 여성의 허영과 남성의 허세에 대한 치유책으로서의 소박함과 진실함.


19. 믿음을 얻으면 마음도 얻는다.


20. 충고는 백해무익이다. 스스로 망하게 내버려두어라.


21. 너를 받아줄 그릇이 안 되는 사람, 조직에 정성과 충성을 바치지마라.


22. 가장 매력없는 인간 유형들 중 하나는 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에서 그치며 '어떻게' 하자는 방법론도, 하려는 의지도 결여된 사람들이다. 실은 인식의 결여.


23.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


24. 더 젊었을 때 더 많은 보르헤스가 번역되지 않았던 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다행스럽게도 나는 보르헤스가 아니다.


25.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의무는 단 하나이다. 그것은 부모의 말을 잘 듣거나, 부모를 존경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유일한 의무는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26. 더 젊은 시절에 보르헤스를 더 많이 읽을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불운이었다!



27. 나는 전화받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정말 예외적인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전화를 하는 것이나 받는 것이나 무척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불가피한 공무가 아니라면 늘 문자를 한다. 수신벨은 늘 무음으로 해놓고, 전화 통화도 어림잡아 모두 합해서 한달에 열 통화도 되지 않을 것이다. 편집자들부터 친구들까지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이런 내 습벽을 알아서 아무도 내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 생각에 메일이나 문자로 해도 될 일을 한국은 보통 전화로 한다. 물론 그것은 자기 선택이지만, 이 글을 보는 분들께 내게만은 문자로 해주길 부탁한다. 이유는 알고 싶지도 말해주고 싶지도 않다(여러분도 이런 자신만의 '비사회적인' 습벽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길 바라본다). 그런데 이런 나의 습벽은 괴상한 것일까?


28.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곧 상상도 하지 못한다.


29. 너그러움은 능력이다.


30.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 가령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 모든 일들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2015.9.29.-20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