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14.

hiener goebbels


만프레드 아이허의 ecm 2 - 현대음악
 
 
 
현대음악 레이블 ecm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만프레드 아이허는 1980년대 이후 기본적으로 재즈 위주로 운영되는 레이블 활동에서 무언가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아이허가 선택한 ‘돌파구’는 현대음악과 월드뮤직이었다. 아이허가 베를린 음악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베를린 필의 더블베이스 주자로 일했던 정통 클래식 연주자였으며, 더구나 이씨엠(ecm)이라는 명칭 자체가 ‘현대 혹은 동시대 음악 선집 edition of contemporary music’의 약자였으므로, 이러한 선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이른바 ‘월드 뮤직’의 경우에도, 이씨엠 본사가 위치한 뮌헨이 전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곳이며 ‘아프리카와 미국의 만남’이라는 재즈의 기원이 바로 그러하듯이 재즈와 ‘월드 뮤직’은 늘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음을 생각해볼 때 이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물론 ‘월드 뮤직’이라는 명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런 면에서 아이허는 이른바 ‘월드 뮤직을 세계화한’ 선구자들 중의 하나라는 호칭을 부여받을 만하나, 이에 대해서 다음 편인 월드 뮤직 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오늘은 이씨엠의 현대음악을 소개해보기로 한다.
 
 
앞서 말한 현대음악에 대한 아이허의 새로운 관심은 1984년 이씨엠 내의 현대음악 혹은 ‘유럽 클래식 음악’ 전문레이블인 ‘이씨엠 뉴 시리즈’(ecm new series)의 창설로 이어진다. 이씨엠 재즈 레이블의 발매 음반들이 평균적으로 이틀의 녹음 과정과 하루의 믹싱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등 기본적으로 연주의 즉흥성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에 반해, ‘이씨엠 뉴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미리 작곡된 곡의 연주를 담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자신의 작품이 발매된 작곡가들은 오늘날까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로부터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 존 애덤스(john adams), 메레디스 몽크(meredith monk),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 및 중세 12-13세기의 프랑스 작곡가로 추정되는 페로틴(pérotin) 등 수십 명에 이른다.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음반은 아마도 얀 가바렉(jan garbarek)과 힐리어드 앙상블(hilliard ensemble)이 크리스토발 데 모랄레스(cristóbal de morales), 페로틴 등의 곡을 연주한 베스트 셀러 <Officium>(1994) 혹은 한국의 서정적 정서에 잘 맞는 아르보 페르트의 음반들일 것이나, 국내에 조금은 덜 알려진 앨범들을 먼저 소개한다는 이번 글의 취지에 맞게 - 사실은 2007년의 국내공연, 2011년의 통영 국제음악제 공연을 통해 이전에 비해 이제 조금은 알려졌다고 말할 수 있지만 - 아래에서는 하이너 괴벨스로부터 시작해보자.


 
 
하이너 괴벨스 heiner goebbels

 
1952년에 태어난 하이너 괴벨스는 가히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스타 현대음악 작곡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이너 괴벨스는 올해 62세로 독일 기센주(州)의 유스투스 리비크 대학, 유로피언 그래쥬에잇 스쿨, 응용연극연구소의 교수로 재직하는 등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이너 괴벨스는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에서 사회학과 음악학을 전공했고, 초기에는 오케스트라와 연주자들을 위한 ‘전통적’ 현대음악 작품들을 작곡했지만, 1976년에는 SLB(Sogenanntes Linksradikales Blasorchester, 좌익 급진 취주악단)을, 1982년에는 알프레드 하르트(alfred harth),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 등과 아방가르드 록그룹 캐시버(cassiber)를 결성하여 1992년 공식 해산하기까지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하이너 괴벨스는 대략 1990년 이후로 자신만의 ‘음악극’(劇, music theater)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데, 이 ‘하이너 괴벨스 표 음악극’ 작품들이 발매된 레이블이 이씨엠이다. 이처럼 하이너 괴벨스가 현대음악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것이 이씨엠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앨범을 발표하면서부터라는 점에서, 하이너 괴벨스는 ‘이씨엠 현대음악의 팻 메스니’라고 볼 수 있다.
 
 
하이너 괴벨스 위키피디어
 
 
 
 
우선 하이너 괴벨스의 주요 앨범들을 살펴보자. 하이너 괴벨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참여 앨범은 캐시버와 독집 등을 포함하여 모두 수십 여 장에 이른다.
 
 
 
이들 중 이씨엠에서 발매된 앨범은 2014년 현재 모두 9장인데, 현대음악 베스트 모음집인 selected signs iii, iv에도 하이너 괴벨스의 곡들이 실려 있어 모두 10장이 된다(iv에 실려 있는 곡들은 한스 아이슬러의 곡들을 하이너 괴벨스가 새롭게 편곡하여 앨범으로 발매된 것이다). 다음은 ecm 홈페이지의 하이너 괴벨스 앨범 전체 디스코그래피이다.
 
 
 
다음에도 하이너 괴벨스의 이씨엠 앨범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이를 차례대로 살펴보자. 앨범 아래의 주소는 이씨엠 홈페이지의 해당앨범 주소이다.
 
 
 
1988. Heiner Goebbels / Heiner Müller - Der Mann im Fahrstuhl / The Man In The Elevator
 
 
 
 
이 앨번에는 아르토 린제이(arto lindsay)가 보컬 및 기타, 돈 체리(don cherry)가 보컬, 트럼펫을, 프레드 프리스(fred frith)가 기타와 베이스를 연주했으며, 하이너 괴벨스는 피아노, 신디사이저, 베이스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오늘날의 회고적 시선으로 볼 때, 이 앨범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하이너 괴벨스만의 ‘음악극’이 갖는 기본적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음악극이란 물론 (아마도 바그너와 브레히트의 전통을 잇는) 하이너 괴벨스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 형식으로 ‘연극과 오페라 사이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이다. 앨범에 실린 곡들은 모두 당시 동독의 작가 하이너 뮐러(heiner müller)의 글에 곡을 붙인 것들이며, 하이너 괴벨스와 하이너 뮐러 사이의 협업은 이후로도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물론 언어와 음악, 그리고 공연이 유기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특별한 효과를 산출하는 이러한 음악극의 시도는 그 언어, 이 경우에는 독일어를 모르는 관객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 무대에 올린 공연의 녹음이라는 점에서 공연의 영상을 보지 못하고 음악만을 듣게 되는 경우, 오히려 작품의 본령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결과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공연의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기의 하이너 괴벨스 홈페이지 디스코그래피 부분을 보면 현재까지 8개의 디브이디 타이틀이 발매되어 있다. 여하튼 이제는 거의 전설이 된 이 전혀 새로운 양식의 43분여에 이르는 ‘하이너 괴벨스 표 현대 음악극’은 1987년 프랑크푸르트 아트록 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다. 앨범에 수록된 음원은 1988년 3월에 녹음된 것으로, 실상 캐시버 시기의 아방가르드, 재즈, 브라스, 신디사이저 음악에 현대음악적 터치와 하이네 뮐러의 시가 뒤섞인 곡이다.
 
 
 
 
 
1990. Heiner Goebbels - Hörstücke
 
 
 
 
 
역시 하이네 뮐러의 텍스트에 기반하여 작곡된 곡들로 앨범에 수록된 음원은 1984-1990년 사이의 것들이다. 역시 만족스러운 유튜브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직접 앨범을 구입하여 들어보기 바란다.
 
 
 
 
 
1991. Heiner Goebbels - SHADOW / Landscape with Argonauts
 
 
 
 
이 앨범은 ‘그림자 - 아르고선(船)의 풍경’이라는 제명을 갖고 있는데, 이전처럼 하이네 뮐러의 글,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우의 글에 곡을 붙인 작품들이 실려 있다. 1990년 2, 9, 10월에 녹음된 음원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상의 초기 앨범의 곡들을 들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유튜브 동영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다른 앨범의 곡들을 들어보고, 그 후에 원한다면, 직접 앨범을 구입하여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아무리 음악극이라고 해도, 음악이란 백견(百見)이 불여일문(不如一聞)! 이렇게 설명만 들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유튜브를 뒤지다 적합한 소개용 동영상을 하나 찾아냈다. 오슬로 국립극장이 주관 인터내셔널 입센 상의 2012년 수상자가 다름 아닌 하이너 괴벨스인데, 오슬로 국립극장에서 올린 8분 40여초의 소개 동영상에는 하이너 괴벨스 최근 대표작들의 공연 동영상과 간단한 인터뷰가 영어 자막과 함께 담겨있다!
 
 
 
 
 
1993. Heiner Goebbels - La Jalousie, Red Run, Herakles 2, Befreiung [with Ensemble Modern, Peter Rundel]
 
 
 
 
유럽 최고의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라 할 앙상블 모데른(ensemble modern)과 함께 한 이 앨범의 음원은 1992년 5월에 녹음된 것으로, 이전 캐시버에서 같이 활동했던 크리스토프 안더스(christoph anders)가 나레이터로 참여했다. 아래 동영상은 수록곡 중 'red run(nine songs for eleven instruments)'으로 2013년 현대음악, 특히 이른바 ‘포스트미니멀리스’ 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크래쉬 앙상블(crash ensemble)의 더블린 공연 실황이다.
 
 
 
 
 
 
 
1994. Heiner Goebbels - Ou bien le débarquement désastreux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하이네 뮐러(Heiner Müller)와 프랑시스 퐁주(Francis Ponge)의 텍스트에 하이너 괴벨스와 코라(kora) 연주자인 부바카르 제바테(boubakar djebate)가 곡을 붙인 음악극 ‘Ou bien le débarquement désastreux - Oder die glücklose Landung’는 1994년 녹음된 것이다. 참여 아티스트의 반은 서구의 아티스트들이지만, 나머지 반은 아프리카의 아티스트들이다. 하이너 괴벨스로서는 이른바 ‘월드 뮤직’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실험해본 작품이다. 아래는 수록곡 중 아름다운 코라 소리와 나레이션이 어우러지는 ‘il comprit’이다. 하이너 괴벨스가 이 앨범 이후 다시금 이씨엠에서 앨범을 발표하는 것은 6년이 지난 2000년이다.
 
 
 
 
 
 
2000. Heiner Goebbels - Surrogate Cities
 
 
 
 
6년의 공백 후 발표된 이 앨범은 다음 해인 2001년 그래미상 후보로 선정되었고, 하이너 괴벨스의 작업이 이미 하나의 분명한 ‘일가’(一家)를 이루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이 앨범은 하이너 괴벨스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며, 자신만의 분명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70분이 조금 넘는 앨범은 프랑크푸르트 시 탄생 1,200주년 및 청년독일 필하모니(Junge Deutsche Philharmonie) 창립 20주년을 맞아 작곡된 것이다. 폴 오스터(paul auster), 아일랜드의 작가 휴고 해밀턴(hugo hamilton) 그리고 하이네 밀러의 텍스트가 사용되었다. 2008년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 필하모니 영상으로, 원 앨범에 참여한 메조 소프라노 조슬린 b. 스미스(jocelyn b. smith)와 댄스 컴퍼니가 협연한 짧은 동영상이나 그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다음의 베를린 필하모니 홈페이지에서 등록하면, 같은 공연의 전체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한편 아래의 동영상은 2005년 베니스에서 연주된 공연의 전체 동영상으로 1-3부 나누어져 있고, 인터뷰도 들어있으나 아쉽게도 독일어이고 자막이 없다.
 
 
 
한편 아래 하이너 괴벨스 홈페이지의 리뷰(reviews)를 클릭하면 영문으로 된 비평들을 읽을 수 있다.
 
 
 
 
 
 
 
2002. Heiner Goebbels - Eislermaterial
 
 
하이너 괴벨스의 진보적 정치 지향은 유명한데, 하이네 뮐러는 물론 베르톨트 브레히트나 이 자리에 소개되는 한스 아이슬러에게 그가 바치는 존경이 좋은 예이다.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 1898~1962)는 반파시스트 운동을 펼친 오스트리아의 작곡가로 브레히트의 시와 희곡에 곡을 붙인 바 있다. 구(舊)동독의 국가를 작곡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스 아이슬러 위키피디어
 
 
 
 
한스 아이슬러의 앨범들
 
 
 
 
하이너 뮐러 위키피디어
 
 
 
 
베르톨트 브레히트 위키피디어
 
 
 
 
 
전작 <surrogate cities>가 1996, 1999년에 녹음되어 2000년에 발매된 반면, 이 앨범은 1998년 10월에 녹음되어 2002년에 발매되었으므로, 사실상 두 작품은 앨범의 발매 시기만 다를 뿐 동일한 패러다임에 속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 앨범은 하이너 괴벨스가 편곡한 한스 아이슬러의 곡들을 앙상블 모데른의 연주와 독일의 영화배우 요제프 비어비흘러(Josef Bierbichler)의 노래로 녹음한 것이다. 앨범에는 그 외에도 아이슬러의 목소리 샘플링, 아이슬러 실내악곡의 새로운 편곡 발췌, 미출간된 아이슬러의 현악 사중주의 일부, 최근 발견된 솔로 클라리넷을 위한 곡에 더하여, 아이슬러에 영감을 받아 자유롭게 펼쳐지는 즉흥곡들이 담겨있다. 하지만 앨범의 가장 유명한 곡들은 아무래도 베르톨트 브레히트와의 협동 작업들인데, 군더더기 없이 심플하고 속기(俗氣)없이 편곡ㆍ연주ㆍ녹음되어 아이슬러 음악의 정수를 성공적으로 재현한 최상의 연주라 아니 할 수 없다. 브레히트의 시에 곡을 붙인 Vier Wiegenlieder für Arbeitermütter[노동자어머니를 위한 네 개의 자장가] I-IV부만 들어보아도 앨범의 즐거운 깊이와 격조를 느낄 수 있다.
 
 
 
 
 
 
2009. Heiner Goebbels - Landschaft mit entfernten Verwandten
 
 
 
 
앨범에는 독일어 Landschaft mit entfernten Verwandten, 영어 Landscape with Distant Relatives, 프랑스어 Paysages avec parents éloignés 등으로 앨범명이 적혀있는데, 이는 ‘먼 친척과 함께 하는 풍경’ 정도로 번역 가능할 것이다. 작품은, 하이너 괴벨스에 따르면, 완전한 의미에서의 한 편의 ‘오페라’인데, 정식 명칭은 ‘솔로, 코러스, 앙상블을 위한 오페라’이다. 사용된 텍스트의 주인공들은 실로 다양하여 거트루드 슈타인, 지오르다노 브루노, 앙리 미쇼, T. S. 엘리엇,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니콜라 푸생에 이른다. 2부로 구성된 공연의 음원은 2004년 파리 가을축제 공연실황이다. 유튜브에서 2003년 파리 공연 중 29분여를 볼 수 있다.
 
 
 
한편 화질이 약간 떨어지지만 2005년 바르샤바에서 공연한 앙상블 모데른의 1시간 25분에 이르는 동영상도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2012. Heiner Goebbels - Stifters Dinge [stifter's things]
 
 
 
 
2012년 작으로 상당히 최근작이다. 이 ‘음악 설치’(music installation) 작업은 전형적인 ‘하이너 괴벨스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소개를 위해 이씨엠 홈페이지의 해당 앨범 소개를 옮겨본다. “하이너 괴벨스의 가장 탁월한 작품들 중 하나. 소리, 음색, 노이즈, 목소리와 텍스트의 융합. 이 작품은 하나의 작곡, 환경, 설치 혹은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지는 소리의 조각품일까? 작곡가는 언젠가 이 작품을해 피아니스트 없는 다섯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 배우 없는 연극, 퍼포머가 없는 퍼포먼스, 누군가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쇼’(no-man show)라고 말할 것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바흐에서, 뉴기니 원주민들의 노래, 그리스의 민속음악, 더하여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윌리엄 버로스, 그리고 맬컴 엑스 등에 이르는 다양한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는 하나의 작품이다. 작품은 자연의 소리와 기호를 정밀히 묘사했던 19세기 오스트리아의 낭만주의 작가 아달베르트 슈티프터(Adalbert Stifter, 1805-1868)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위키피디어
 
 
 
 
개인적으로는, 유럽에 머무를 때 타악기 그룹 페르퀴시옹 드 스트라스부르가 연주하는 하이너 괴벨스 작품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명성만큼이나 페르퀴시옹 드 스트라스부르의 연주 자체도 좋았지만, 54분에 이르는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훌륭한’ 공연이었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내가 존 케이지로부터 슈톡하우젠,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까지 수많은 현대음악 공연을 보았지만, 이렇게까지 관객들이 좋아하고 흥분한 공연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일단 하이너 괴벨스의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 자체도 이미 ‘고급한’ 관객일 수밖에 없다. 거의 대부분, 음악 관계자, 특히 음대교수, 그 외 음대 대학원생들, 작가, 철학자, 연극 관계자 등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이런 ‘고급한’ 관객들은 일반적으로 박수에 사실은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공연 후 하이너 괴벨스가 등장하여 인사를 하는데 거의 10-20분 동안 기립 박수와 환호가 멈추질 않았다. 이런 장면은 현대음악 공연에서는, 적어도 나로서는, 처음 보는 장면이었는데, 개인적으로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작곡, 공연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생각이 나는 김에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니, 이 공연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2000년 9월 28일 저녁에 진행된 ‘똑 같은 저녁’(Même soir)이라는 작품이었다.
 
페르퀴시옹 드 스트라스부르의 하이너 괴벨스 공연
 
 
 
 
여하튼 앨범의 분위기는 내가 본 이 공연의 분위기와, 내가 본 공연에는 연주자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거의 일치하는 전형적인 하이너 괴벨스의 작품이다. 이 곡은 2007년 스위스 로잔에서 초연되었으며, 앨범의 음원 역시 2007년 10월에 스튜디오에서 녹음된 것이다. 최근작인 만큼 만족스러운 동영상들을 유튜브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일단 아래의 트레일러는 공연과 작품의 전반적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준다.
 
 
 
 
다음도 같은 공연의 다른 트레일러이다.
 
 
 
 
다음으로, 우선 앨범의 The Thing & The Rain을 들어보자.
 
 
 
아래에서는 화질이 좀 떨어지지만 2013년 두이스부르크 공연 실황 동영상을 30분가량 감상할 수 있다.
 
 
 
 
 
 
2014. Selected Signs III
 
 
 
 
유럽의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 중 하나인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Haus der Kunst)는 2012년 겨울 이씨엠을 기리는 전시회 ‘ECM - 문화적 고고학’(ECM – A Cultural Archaeology)을 개최했는데, 이를 위해 이씨엠은 6장으로 구성되어 7시간에 이르는 플레이 타임을 갖는 이 컴파일레이션 박스세트를 통해 이씨엠 역사의 전체적 조망을 보여준다. 박스세트의 디자인 측면에서나 음악적 측면에서나 소장할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이씨엠에서 나온 앨범들에 대한 간단한 리뷰를 마치면서, 하이너 괴벨스와 관련된 몇 가지 자료와 쟁점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우선 하이너 괴벨스의 좌파적 정치적 지향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독일어를 알 수 없는 한국의 청자들에게는 생소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이너 괴벨스의 작품에는 늘 동시대의 정치적 상황이 어떤 방식으로든 반영되어 있는데, 이는 하이너 괴벨스가 여전히 68혁명의 자장권에 속해 있었던 70년대에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음악과 사회학을 전공했다는 사실과도 분명한 연관관계를 갖는다. 1970년대의 프랑크푸르트대학은 68혁명 이후 기세가 한풀 꺽이긴 했어도 여전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강력한 정신적 영향 아래 위르겐 하버마스, 오토 아펠, 악셀 호네트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자들이 재직하던 시기이다. 하이너 괴벨스가 처음으로 조직했던 밴드의 이름은 ‘좌익 급진 취주악단’이었으며, 이는 각종 시위와 집회에서의 공연ㆍ연주를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목적은 ‘다양한 형식의 영역과 장르에서 일하는 다수의 참여와 협업을 통해’ 대중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음악을 알리는 동시에 음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실천적 실험이었으며, 이러한 ‘공동작업’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하이너 괴벨스의 작업 방식들 중 하나가 되었다.
 
 
 
아래에서는 우선 하이너 괴벨스가 실험 색소폰주자인 알프레트 23 하르트 등과 만들었고 1976-1981년 동안 활발히 활동했던 좌익 급진 취주악단의 곡을 들어보자. 1977년의 Ich bin halt die Kotze aus deiner Glotze, 그리고 1980년의 Trotz alledem이다.
 
 
 
 
 
 
하이너 괴벨스의 또 다른 음악적ㆍ정치적 자원은 한스 아이슬러에게서 찾을 수 있는 것으로, 한 사람의 작품에서 수학에서 정치, 철학, 예술, 역사에 이르는 다양한 관심을 찾을 수 있다는 접근 방식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이너 괴벨스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 프로파간다라는 기만적 형식 아래 모든 것의 위에서부터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 ‘예술작품 안으로 통합된 정치적인 것에 관련된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드러내줄 수 있는 표현 형식의 탐구’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이너 괴벨스의 작품은 주어진 특정 상황, 주제 혹은 배치에 대한 응답이다. 가령, 그의 Surrogate Cities는 프랑크푸르트 탄생 120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오케스트라 및 무용단과의 협연을 목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작곡 프로젝트였는데, 모든 좋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하이너 괴벨스는 이를 자신의 작업에 주어진 한계라기보다는 하나의 조건으로 간주하여 집단작업이라는 자신의 예술적 영역과 방법론을 확장ㆍ심화하는 연속적 실험의 한 과정으로 삼았다.
 
 
이쯤해서, 하이너 괴벨스가 좌익 급진 취주악단 이후 결성한 또 하나의 예술적ㆍ정치적 급진주의 아방가르드 록 그룹 캐시버의 음악을 들어보자. 캐시버는 우리나라에도 상당히 알려져 있고, 헨리 카우와 아트 베어스 출신의 크리스 커틀러는 물론, 좌익 급진 취주악단 시절부터 같이 해온 - 사실은 한국인 아내와 함께 이미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관계로 우리에게도 이미 친숙한! - 알프레트 23 하르트는 이미 프로그레스브 아방가르드 팬들에게는 유명 인사이므로, 1983년의 데뷔 앨범 <man or monkey?> 발표 직전 1982년 프랑크푸르트 독일재즈페스티벌에서의 라이브를 한 곡만 들어보자. 드럼에 크리스 커틀러, 색소폰에 알레트 23 하르트, 기타에 크리스토프 안더스, 그리고 건반에 하이너 괴벨스이다.
 
 
 
 
 
 
캐시버 위키피디어
 
 
 
 
그러나 이 모든 가사와 정치적인 이야기는 당시 유럽의 상황도 프랑크푸르트학파도 앨범의 영어와 독일어 가사도 모르는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당시 상황과 사상이야 당장 알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번역된 우리말 가사의 부재가 인식의 부재를 낳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나 자신이 강력히 주장해온 바로서, 현대음악에서 클래식, 록과 팝 음악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출반되는 음반의 모든 가사를 - 일본의 경우처럼 - 의무적으로 번역하여 싣는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 하이너 괴벨스와 한스 아이슬러의 음악을 오로지 음악으로 듣고, 클래시와 섹스 피스톨스의 음악을 오로지 ‘필’과 ‘감’으로 듣는다는 것은 - 그 나름의 분명한 장점마저도 넘어서는 - 심각한 무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는 실상 그레고리우스 성가와 베토벤, 존 케이지 혹은 비틀스와 퀸, 로리 앤더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어떤 미국인이 흥부가, 목포의 눈물, 아침이슬, 반전반핵가를, 혹은 이미자, 김광석, 서태지, 안치환의 노래 가사를 모른 채 ‘오로지 감으로, 오로지 음악적으로만’ 좋아서 듣고 또 듣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쉽게 이해가 되듯이 -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지라도 -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이 한계란 가장 중요하게는 원곡을 만들고 부르고 연주하고 듣는 사람들이 가졌던 삶과의 밀착,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전혀 보지 못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이에 대해 각자 해석해서 보면 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국내의 음반 수입ㆍ제작사에서 음반을 발매할 때 적절한 번역자를 찾아 번역을 하면 될 것을, 굳이 음반을 사는 고등학생, 주부들에게 슈베르트의 독일어 리트를 각자 해석하고 미스터 벙글의 영어 가사를 각자 해석하고 드뷔시 성악곡의 프랑스어 가사를 각자 해석하라는 것은 실상 그냥 음악만 듣거나, 혹은 현실적으로 네 마음대로 (엉터리로) 오해하며 들으라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가령 적어도 1990년대 정도부터라도 이러한 조항을 의무화하여 우리나라에 출반되는 모든 국내 라이선스 음반들에 이렇게 한글 가사가 있었다면 - 주관적인 수준 이하의 엉터리 감상문, 혹은 주례사 혹은 연애편지라고나 해야 할 사랑고백이 상당수인 음반 해설지의 폐해를 넘어 - 작가와 독자 사이의 건강한 상호작용이 일어나 듣는 청자의 오늘 음악을 대하는 태도, 따라서 청자 스스로가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을 것이고, 그 결과 오늘 대한민국의 음악적 풍경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라도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국내 라이선스 음반에는 차라리 해설은 없더라도 가사를 반드시 완역하여 싣는 의무적 법규가 생기기를 바란다. 이는 개인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오늘이라도 몇몇 국회의원의 발의를 통한 법규 혹은 조례의 제정 혹은 개정만으로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 문제이다. 이 글을 읽는 뜻있는 분들의 관심을 기대한다.
 
 
* 이상의 내용은 유로피언 그래듀에잇 스쿨의 하이너 괴벨스 소개를 참조했다.
 
 
 
 
* 독일어로 되어 있어 아쉽기는 하지만, 하이너 괴벨스를 다룬 다음의 다큐멘터리에서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아래는 이씨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음반이 출반된 대표적 공연(+동영상)들이다.
 
 
 
 
1998년. Max Black [texts by Paul Valery and others] 공연실황의 발췌
 
 
 
 
 
 
 
 
 
 
 
 
2000년. Scutigera [with Piano Circus and composer Richard Harris], Hashirigaki [texts by Gertrude Stein]. 특히 <하시리가키(はしりがき[走り書(き), 휘갈겨 쓴 것])>는 2007년 우리나라의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도 공연되었다. 기사, 음악, 공연 동영상.

 
 
 
 
 
 
 
 
 
2004년. Eraritjaritjaka [texts by Elias Canetti], 트레일러.

 
 
 
 
 
 
2007년. Songs of Wars I have seen [texts by Gertrude Stein - a commission by the London Sinfonietta and the Orchestra in the Age of Enlightenment] 연주실황

 
 
 
 
 
2008년. 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texts by Maurice Blanchot, Samuel Beckett, Franz Kafka and T. S. Elliot, with the Hilliard Ensemble] 힐러드 앙상블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스테이지 공연이다. 이 작품은 아시아 초연으로 2011년 통영음악제에서 공연되었고, 서울의 엘지아트센터에서도 공연되었다.
 
 
 

괴벨스는 내한 기간 중 ‘부재의 미학’이라는 강연도 했는데, 같은 강의의 영어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연극평론가 김형기의 공연리뷰

 
 
 
 
 
2012년. When the Mountain changed its clothing [with the Choir Carmina Slovenica], 보컬 오케스트라, 공연 동영상 발췌.

 
 
 
 
 
 
 
Europeras 1&2 [John Cage] 인터뷰, 영어자막.

 
 
 
 
 
 
2013년. Delusion of the Fury. The Harry Partch Project [The Ruhrtriennale International Festival of the Arts] 공연 발췌 +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