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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10.

나는 왜 글쓰기 수업을 듣게 되었는가?

  

 
"저는 글을 잘 못 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에 서툽니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글쓰기를 배운 적도 없고, 글을 꾸준히 써오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 들어와서야 과제로 제출할 글을 쓰거나 머릿속을 비우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한국에서의 제 글쓰기 경험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미국에서는 4년 내내 꾸준히 글을 써왔기 때문에 영어로 글을 쓰는 것에는 익숙합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편하고 부담이 덜합니다. 물론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표현에 한계를 느끼고, 그럴 때는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게 더 편하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하다 보면 결국엔 저로서는 한국어로 쓸 때 오히려 더 큰 한계를 느끼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이기 때문에, 영어로 글을 쓰면 마치 언어적 막이 한 겹 생긴 것처럼 글 속의 제가 감춰지는 기분이 듭니다. 한마디로 영어로 쓴 글에는 제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영어로 쓴 글이라도 제가 쓴 글이니 제 생각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한국어로 쓴 글과는 다른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차이가 느껴집니다.

 
한국어로 글을 쓸 때는 있는 그대로의 제가 드러납니다. 날 것 그대로의 제가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기분입니다. 한국어 글쓰기 경험이 부족해 글을 통해 적절히 저 자신을 감추면서도 능숙하게 제 생각을 드러내는 방법을 익히지 못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글을 쓸 때 구사하는 언어 자체가 어설퍼서,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표현되지 않고 도리어 제가 감추고자 했던 것이 드러나곤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이 두렵습니다. 저를 표현하고 싶지만 동시에 저를 감추고 싶은데 그게 뜻대로 안 되니 글을 쓰지 않게 되고, 또 쓰더라도 남에게는 보여주지 않게 됩니다.
 
제가 이 수업을 들으면서 글로 저를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건지, 아니면 저를 감추는 방법을 배우고 싶은 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수업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감추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저의 일면을 드러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니까요. 그것이 나머지 다른 부분들을 감추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어쨌든 감추고 싶은 제 모습이 어느 정도 드러나더라도 글을 쓰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내보일 용기를 낸 것이니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조금씩 함께 배워나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미리









* 언어, 감춤과 드러냄의 놀이


이 글을 쓴 미리 님은 나의 글쓰기 수업을 듣는 수강생분들 중 하나이다. 이 글은 새로운 참여자가 첫 시간에 써오게 되어있는 <나는 왜 이 글쓰기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는가>라는 주제의 제출물이다. 나는 미리 님의 글을 읽고 사실은 깜짝 놀랐다. 좋은 글을 쓰는 능력과 관련하여 아마도 가장 중요한 시기인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은 한국에서 보냈지만, 이후 고등학교 4년은 미국에서, 그리고 현재에는 한국에서 다시 대학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연히도 미리 님이 나의 수업 몇 개를 듣고 있어서 비록 가끔이지만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미리 님이 건강한 생각과 자신만의 고민을 가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좋은 글을 제출할 줄은 몰랐다. 물론 어딘지 어설프고도 나약한 구석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섬세함과 나약함이 나의 마음을 큰 소리로 울렸다.


사실 나는 학부에서는 프랑스문학을 공부하고, 이후에는 프랑스철학, 그것도 푸코를 공부한 사람이라 - 원래도 좋아하기는 하지만 - 온갖 종류의 글쓰기와 말하기의 드러내기/감추기의 놀이에 대한 글들, 비평들을 읽었다. 하지만 어떤 글에서도 말과 글의 이 (블랑쇼 혹은 바르트적 의미에서) 중립적, 익명적 놀이, 언어라는 것 자체가 갖는 그 드러냄과 감춤의 놀이를 이렇게 분명하게, 명확하고도 의식적인 형태의 언어로 드러낸 글을 읽은 적이 없다.



내가 이 글에서 가장 감탄하는 부분은 화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언어활동이 타인들 혹은 자신에게 불러일으키는 기능, 곧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기능임을 말하는 부분이다. 미리 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은 아마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명확히 알고 있는 상태로, 언어의 본성 혹은 기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니체가 '한 인간이 그토록 많은 글을 쓰는 것은 때로 단 한 마디를 쓰지 않기 위해서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글이나 말에 대해서는 물론, 한 사람의 모든 행동에 대해서도 유효한 말일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하는 모든 말, 우리가 쓰는 모든 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우리가 하지 않는 모든 말, 우리가 쓰지 않는 모든 글, 우리가 하지 않는 모든 행동의 뒷면, 혹은 앞면이다. 



우리 글쓰기 모임은 모든 참여자가 다른 참여자의 글들 중 자신이 가장 좋다고 판단한 글을 한 편씩 뽑는데, 나는 모임의 선생님으로서 이 날 (5주 동안 같이 글을 써온 다른 분들의 글을 제치고) 그날 처음으로 나온 이 미리 님의 글을 제일 좋은 글로 뽑았다. 처음에는 조금 망서렸지만, 누구보다도 나의 마음에 정직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가히 글쓴이의 다음 글이 궁금해지는 그런 글이다.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저 조용한 시선으로 이 참을 수 없는 기다림을 견뎌 낼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