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3.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1

이오덕,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1984



내 젊은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들 중 하나(지금은 같은 제목으로 보리출판사에서 새 표지로 나왔으나, 나는 이철수의 이 판화 표지가 너무 좋고, 아름다웠다. 어린아이를 업고 엎드려 아마도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는 어머니, 이것이 참다운 배움이 아닐까? ).




보리, 2004





이오덕 선생님이 편집하고 쓰신 이 책에는 대부분 초등학교 학생들의 글이 실려 있고, 이를 통해 올바른 우리말 쓰기, 더 나아가 우리는 왜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 가장 아름다운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어린아이들의 글 자체이다(이오덕 선생님도 이해하실 것이다!).


나는 예전 글쓰기 혹은 철학에 관련된 나의 수업 시간에 이 글들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렇게 여러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너무 즐거워 배를 잡고 마구 웃기도 하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나곤 해서 감추느라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아이들의 잔인성에 놀라고, 아이들의 순수함에 눈물짓는다. 아이들의 글은 절대로 나를, 당신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아이들의 글은 나의 삶을,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나는 이런 꿈을 꾸어본다.


내가 만약 노벨 문학상 수상작 선정위원회 위원이라면 나는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 '전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을 선정하고 싶고, 그 대상이 되는 책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문집, 1980년 강원도 정선 탄광촌 사북국민학교 임길택 선생님이 학생들의 글을 모으고 일일이 필사와 등사를 거쳐 만든 <나도 광부가 되겠지>(이 분은 이미 오래 전에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KBS스페셜'의 제 1회가 바로 이 분의 이 문집이야기이다), 혹은 안면도 중학교 과정야학인 누동학원의 <누동학보>를 들고 싶다.



임길택 선생님(1952.3.1∼1997.12.11)




임길택 선생님을 기리는 홈피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우리 모두가 '어린' 백성들이다). 나는 문학이나 소설 혹은 철학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해준다. 이 책의 글쓰기와 문학을 철학으로만 바꾸어 읽으면, 이 책의 내용은 그대로 훌륭한 좋은 철학하기, 철학적 글쓰기의 모범이 된다. 아래의 글들을 읽으면 저절로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책 제목이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이다, 삶을 가꾸는.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만이 아니라, 힘들고 불행한 아이들에게도 글쓰기가 필요하다, 삶을 가꾸는.


말이 필요 없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이 글을 읽으며 함께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기를 바라본다(괄호 안은 내가 가진 책의 쪽수).



***



* 딱지 따먹기 - 4학년 남(55)



딱지 따 먹기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 아이들의 글을 아이들의 삶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글은 아이들의 생활어로 씌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이들 글쓰기의 근본이요 철칙이라 할 만하다. / 이 원칙에 따라 아이들 글쓰기 말의 성격을 다음 세 가지로 밝혀 본다.


첫째, 쉽고 친근한 말이어야 한다. 아이들의 몸에 배인 구수한 삶의 말일수록 좋다. 결코 유식한 말, 근사한 말을 꾸며 쓰지 않도록 한다.


둘째, 아이들 자신의 말이어야 한다. 어른들이 쓰는 관념어, 특히 선생님들이 많이 쓰는 교훈적인 관용어를 흉내내어 쓰기 쉬운데, 이 점을 깊이 경계해야 한다.


세째, 사투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이 자기의 삶을 자기의 말로 쓰는 이상, 특히 저학년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글쓰기에 표준말만 써야 한다면 저학년에서 살아 있는 글쓰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고학년에서도 일반적이고 모방적인 글만 쓸 것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사투리로 자라난다. 사투리는 민족의 감정을 형성하는 근원이다. 언어의 통일을 강조하는 나머지 글쓰기 교육의 크나큰 사명을 잊어버리고 글쓰기 지도를 표준어 지도처럼 오해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투리로 표현하는 사실과 표준말로 표현하는 사실은 다르다. '할매'를 '할머니'로 고쳤을 때는 단순히 말을 고친 것이 아니라 사실을 고친 것이 된다.


그러니 글쓰기 교육을 함에 있어서는 사투리는 사투리로 존중하고 표준말은 표준말로 존중하여, 글을 쓸 때는 사투리로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사투리로 쓰고, 그 밖에는 표준말로 쓰도록 할 것이다. 사투리를 잘 쓰는 것은 표준말을 잘 쓰는 길이기도 하니, 덮어놓고 사투리를 배척하는 태도는 아이들의 자연스런 언어 생활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표준말의 학습조차 저해하게 되는 것이다(120-121).






* 죽어가는 개구리들 - 6년 남(130-131)


지난 22일 토요일 오후, 나는 논에 가다가 동네 아이들이 개구리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개구리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개구리를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니까 차가 다니고 있는 도로에 던져 개구리가 차바퀴에 깔려 죽게 하였다. 또 어떤 아이들은 개구리를 벽에 세게 던져 죽게 하기도 하였다.


나도 개구리를 죽이려 하다가 개구리가 불쌍하고 아이들이 너무 잔인해서 개구리를 다시 논에 돌려 보내 주었다.


전에 학교에서도 개구리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봤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뉘우치고 반성하지 않고 계속 개구리를 죽였다.


개구리가 죽은 모습은 아주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간이 나오고, 피가 나오고 살이 찢어지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지 않고 또 개구리를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죽어버리면 좋겠다 - 통영군 풍화국교 5년 조실규(201-202)


우리 어머니는 나를 보고
죽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죽어 버리고 싶다.
우리 아버지는 죽도록
약도 사 먹이지 말고
놔 두라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약도 사 미 봐야
병도 낫지 안하는 것
약도 사 미지 말고
그냥 죽도록
놓아두라고 한다.

(1982.9.8.)


* 같은 조실규 군이 쓴 다른 글과 그에 대한 이오덕 선생님의 말(202-203)


"나의 소원은 내 병이 낫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 약 지어 먹이려고 배추나 시금치, 무우 같은 것을 가지고 날마다 저자를 간다. 나는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난다."


글이란 행복한 아이만이 쓰는 것이 아니다. 불행한 아이일수록 글을 쓸 권리가 있다.





* 여기서 중고등학교 문에부 학생들의 일반적인 글의 경향을 짐작하게 되고, 소위 문예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 문제점이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자기의 삶을 이야기한 글은 가치가 없다. 문학적인 글을 쓰려면 일상의 삶을 떠나 고상하고 문학적 취미를 가져야 하고 명상과 사색을 즐겨야 한다.


둘째, 그러니 글을 쓰려면 문학작품을 많이 읽고 그 속에서 표현하는 기교를 배워야 한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문예교육적인 견해와 방법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 어떠한 글도 삶을 떠날 때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떠난 이야기는 아무리 깊은 명상과 사색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거기에는 대개 허위가 들어 있다. 어른들의 글도 그러한데 더구나 아이들은 글은 말할 것도 없다


[...]


삶을 떠난 빈말을 가지고 가지고 글을 만들게 하는 노력은 다 헛된 짓이다. 헛될 뿐 아니라 그 런 노력은 하면 할수록 병든 글을 낳을 뿐이다. 변든 글을 쓰는 아이는 병든 마음이 된다(212).





* 농촌 어린이의 작문에서 이런 귀절을 본 적이 있다.


"밭에 일을 나가신 어머니께서 부르셨읍니다.
어머니, 왜 그러셔요?
하고 내가 여쭈어 보았읍니다."


이렇게 쓴 어린이 - 국민학교 4학년 짜리 그 농촌 소년은, 사실은 작문에 쓴 사실을 제대로 적었다면,

"밭에 일을 나가던 어머니가 불렀다.
엄마, 왜 그래?
하고 내가 물어 보았다."


이런 정도로 말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국어 교육이 지닌 지나친 경어 교육으로 하여 아동이 그 속에 들어서지 못하고 거짓스런 글을 쓰게 된 좋은 예이다.


중학교만 가면 국어 같은 건 시시하게 생각하고 영어나 소중한 것으로 아는 학생들도 우리 국어의 아름다운 말을 모르고 장차 더러운 말을 함부로 쓸 우려가 있는 것이다(이원수, <말에 대하여>, 1967년 8월)




* 고향 - 부산 감전 국민학교 6-13반 류건정, 문집 <해뜨는 교실>(백영현 선생님 지도)



내 고향은 강원도, 나는 강원도에 살고 싶지만, 엄마 병 때문에 고향에 못 간다. 우리 고향 집은 뒷산에는 할아버지 산소, 옆에는 할머니 산소가 나란히 주무시고 있다. 우리 집 옆에는 큰 과수원, 오른쪽에는 큰 고무마 밭과 감자 밭이 있고 우리 집 앞에는 시원한 시냇물이 참 좋아요(241).



* 개구리 - (5년 배수호)


날마다 일어나면 개구리가 개골 운다. 나는 거적을 빗기면 개구리가 한 마리가 나온다. 나는 논으로 돌아다니면서 화살을 쏘았는데 눈에 맞았다. 나는 개구리를 잡아서 불에다가 넣었다. 개구리가 팔딱 뛴다. 나는 개구리가 다리가 익으면 먹는다. 작년에는 개구리를 잡아서 끄네끼를 묶었다. 그래서 나는 눈지러 보니 깨꼴 소리가 났다. 개구리를 잦아서 돌멩이에다가 꼭 찍었다. 개구리가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또 돌멩이로 찍었다. 이번에는 죽었다. 개구리는 겨울에는 잠만 자고 봄이 되면 다시 나온다. 개구리를 잡아다 땅에다 묻엇더니 아침을 먹고 냇가에 가서 땅을 파 보니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