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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1.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13

<하고 싶은 이야기>

경기도 안양시 안양동국민학교 4-3반
지도교사 김철성. 1981년 8월 14일(1집) 12월 15일(2집)




* 오미집 어떤 아이 - 김지은



내가 오미집 식당에 갔을 때
어떤 남자아이가
어른들이 시키는 일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쪽 눈은 감겼고
우리 또래와 같은 아이
나는 걔하고 친구가 되고 싶어요.
그 아이를 돕고 싶어요.





* 부자 - 이승엽


난 오늘 아침에
느낀 것이 많다.


오늘 아침 아빠께서 억지로
우유 값을 주실 때 알았다.


아빠께서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을 보고는
부자인 것 같았다.


난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 싸움 - 임경재



어제 아버지와 엄마가 싸우셨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잡수시고 오셔서 그랬다. 나는 아버지가 싸우셔서 혼날까봐 자는 척 했다. 그러나 큰 형이 점잖게 "아버지 그만 좀 싸우셔요. 시끄러워서 온 동네 퍼지겠읍니다" 했더니 아버지께서는 "너 좀 이리와" 하겼다. "알았읍니다" 하더니 큰형이 벌떡 일어나서 안방으로 건너갔다. "너 왜 엄마 아버지 싸우는데 참견이야" 하셨다. 큰형이 "싸우는 건 좋지 않습니다" 하니 "싸우는 건 좋지 않은 게 나도 안다. 그러나 엄마가 자꾸 시비를 거니 난들 어떻게 하겠냐" 하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럼 참으시면 되잖아요" 하자 "나는 더 이상은 못 참는다" 하셨다. 엄마께서 "당신이 술을 많이 먹으니 그렇지요" 하셨다. "당신이 참으면 안 돼" 아버지가 하시자 또 엄마는 "당신이나 참아요" 하자, 큰 형이 "정말 이러시기어요" 하자 아버지가 "그래 하자" 하니 "아버지 어머니 그만 좀 싸우세요. 그리고 잠 좀 자셔요" 하고 큰형이 말하니, "좋다 그렇다면 내가 내일 생활 계획표 짜줄테니 알아서 해라" 하고 아버지는 엉뚱한 말만 하셨다. "예" 하고 큰형이 윗방으로 넘어가 모두들 잠을 잤다. 그 다음날 아버지가 생활계획표를 짜 주신다더니 짜 주시지도 않고 회사갈 채비만 하고 계셨다. 나는 그래서 밥 먹고 병규와 제기를 찼다.







* 나머지 공부 - 황인선



나는 언젠가 산수 시험이 틀려서 나머지 공부를 한 적이 있다. 그날은 비가 막 쏟아졌다. 그래서 엄마가 동생에게 우산을 갖다주라고 했는지, 동생이 우산을 가지고 내가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가지고 왔다. 나는 동생에게 빨리 우산을 받고 나머지 공부를 계속하는데, 동생이 안 가고 구경하고 있어서 나는 내 동생에게 빨리 왜 안 가고 있느냐고 막 그랬다. 그러니까 비가 와서 안 간다 해서 그래도 막 가라 해서 그럼 복도에서 가만히 있으라 했다. 나는 동생이 내가 나머지 공부하는 것을 알까 봐 부끄러워서 열심히 문제를 풀어서 선생님에게 가서 줄을 서서 검사를 받은 다음 합격을 하였다. 동생은 복도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책가방을 챙기고 복도에 가 보니 거기서 동생이 유리창에 손가락으로 낙서하며 놀고 있었다. 동생이랑 같이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 입었다.






* 우리집 가게 - 모윤미


나는 우리 가게가 싫다. 아이들이 지나가면 얼렁 숨어버린다. 우리 가게는 왕대포 집.


그래서 싫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나는 부끄러울 게 없어! 우리 어머니께서는 돈을 벌기 위해 하시는 가게인데 무엇이 부끄러' 하며 속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는 왕대포집을 한다" "응, 그래, 제는 헌 옷만 입어" 하며 가는 아이도 많았다.


그때 나는 창피해진다. 그러면 나는 가게에 들어와서 울었다. 아무도 모르게 울었다.


우리 가게가 정말 싫다. 하필이면 대포집을 하는지 모르겠다. 세탁소도 있고 문방구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는데 하필이면 왕대포 집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 생각으로는 문방구가 제일 나을 것 같다. 그러면 술집보다도 훨씬 잘 팔릴 것인데, 잘 안 팔리고 시끄러운 술집을 하는지 모르겠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12

<바람이 많이 부는 곳>

- 경기도 부천시 대장국민학교 6-1반
지도교사 조평호. 1981년 겨울호.



* 일요일 - 유재성



일요일 아침은 상쾌하다
그러나 저녁이 지나고
밤이 되면 왠지 허탈감에 빠지는 것 같은
충동을 느낀다.

일요일 밤은
왜 쓸쓸한가
일요일 밤은
텅 빈 것 같다.



2012. 8. 9.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11

<초롱초롱>

충남 보령군 대천여자중학교 1-2반
지도교사 최교진



*** 3호에는 교통사고로 숨진 한 급우의 소식과 함께 많은 학생들의 추도문이 실려 있다.




* 난숙아 용서해줘


토요일까지만 해도 난숙인 웃으며 우리들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난숙이가 죽다니! 나는 꿈에도 난숙이가 죽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난숙이가 죽고 나니까 나는 난숙이하고 사이가 너무 멀었다는 것이 머리를 스쳐갔다. 난숙이와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 적도 드물고 난숙이와 어울려서 재미있게 놀아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토요일 날 집에 갈 때 차비가 부족하다고 100원만 빌려달라고 할 때도 돈이 없어서 50원 밖에 못 꿔 줬는데 집에는 어떻게 갔을까?


난 난숙이와 너무 서먹서먹한 사이였어!


난숙이가 살아 있을 적에 조금이라도 더 친하게 지내야 되는 건데! 난숙이가 죽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나다니, 나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나쁜 아이인 것 같다. 난숙아, 나를 용서해 주기 바란다. 난숙아!


- 옥수





* 친구의 죽음


난숙이하고 나는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난숙이는 일요일이나 토요일마다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에 왔다. 아마 어제도 우리 집에 오다가 그랬는지 모른다. 어제도 자전거 뒤에 동생을 태우고 오다가 난숙이의 동생은 차가 오는 걸 보고 자전거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난숙이의 오빠 언니, 이렇게 둘이나 죽고 난숙이까지 죽었다. 난숙의 동생 5학년 어린애하고 둘뿐이 남았다. 나는 난숙이의 시체를 보았다. 난숙이의 몸에는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 옷은 찢어지고, 난숙이는 자전거를 꼭 붙들고 죽었다.


- 성일





*** 5호에는 '우리가 아침마다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가려 뽑아 편집을 했다'고 되어 있다.




* 김정란


선생님,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참 어려워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가 둘 있고, 중학교 하나, 국민학교 하나에요. 고등학교에 다니는 오빠가 연달아 둘이나 있으니 저는 아직 2기분 수업료도 내지 못했어요. 저도 어머니를 졸라서 울고불고 해서 가지고 오는 것은 싫어요.


어머니께서 주시기를 기다리는 거지요. 저도 월요일이면 2기분 수업료를 내지요. 공부 시간에 서무과로 불려 다니는 것이 얼마나 창피한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가난한 것이 죄가 될 수 있나요? 나는 가난한 것이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고요, 선생님, 우리 반 학급 신문을 이렇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 생각은 저만의 생각이어요. 무엇이냐면요. 1-3호까지는 글씨를 잘 쓰는 아이들만 만들었지만, 4호부터는 전체가 글씨 쓰는 것은 1-10까지 하고, 다음 신문을 만들 때에는 11-21번까지. 이렇게 해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것은 저만의 생각이예요. 꼭 이렇게 하라는 것은 아니예요.






* 이름 안 적힘



나는 김경숙을 효행자로 뽑겠읍니다. 그 이유는 경숙이는 집에 가서 엄마가 시키지도 않는데 짠지도 담고 밥도 한답니다.



* 김태미



선생님, 저는 언제 학교를 그만둘지 모르는 그런 아슬아슬한 처지에 있는 제 짝을 위하여 어땋게 해야 할지 답답할 뿐입니다. 정말로 불쌍하고 가엾은 내 짝을 볼 때마다 "저런 아이가 내 주변에는 수 없이 많은데 나는 이렇게 편하게 공부하고 있으니 정말로 부모님의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



"선생님, 가난한 것이 죄가 될 수 있나요? 나는 가난한 것이 죄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 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렇다. 가난이 죄가 되거나, 부끄러운 것일 수는 없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예전에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이른바 사람들이 천하다고 여기는 직업을 가지신 부모님을 부끄러워 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그래,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거야. 그게 술집을 하시는 것이건,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건, 혹은 분뇨를 수거하는 분이건.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래서, 그리고 그러기 때문이야말로. 네가 다른 사람들의 눈으로 부모님을 바라보고 그분들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너와 가족을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성실히 일을 하시는가를 생각하고, 네가 오히려 그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거다"라고. 물론 나의 말이 학생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말을 듣고 이른바 '세상사람들의 이목'이란 것이 얼마나 부당하고 폭력적인 것인지를, 그리고 무엇을 부끄러워 하고 무엇을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2012. 8. 7.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10

* <둥우리>


서울 문창국민학교 2-2반
지도교사 권성호





* 운동회 -박소영


운동회 날은 즐거웠다.
나는 달리기를 하였다.
그런데 가다가 넘어질 뻔하였다.
나는 갑자기 간이 덜컹 했다.
언니의 말이 떠올랐다.
"땅만 보고 달리면 1등을 한다."
그래서 나는 땅만 보고 뛰었는데
4등을 했다.


(1981.10.5.)






* 잠자리 - 오수정


언니의 친구가 왔읍니다. 나는 언니의 친구를 반가이 맞이하고 나서 잠자리를 잡으러 갔습니다. 풀 밭으로 갔읍니다.


잠자리가 참 많았습니다. 나는 잠자리를 잡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언니가 말했습니다.


"이 잠자리 모두 날려주어야 해."


언니의 친구도 말했습니다.


"그래, 날려 줘. 잠자리도 이 세상에서 살려고 태어났지 잡히려고 태어났겠니?"


나는 잠자리를 모두 날려주었읍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죽었읍니다. 나는 그 죽은 잠자리를 보고 내 잘못을 깨달았읍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마당에 나오니까 잠자리 몇 마리가 우리 집을 몇 바퀴 돌았읍니다. 나는 그 잠자리가 모두 내가 날려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981.9.8.)







* 시험 - 김진한



나는 시험 볼 때 어려운 게 많아서 그냥 내가 생각해서 썼다. 그런데 음악에서 2개가 어려워서 도저히 못 하겠는데 그냥 썼다. 쉬는 시간에 나는 마음이 조마하고 돌아올 때는 방아깨비도 잡았는데 시험 때문에 마음이 좀 안 좋았다.


그리고 나서는 숙제를 하고 공부를 했는데 시험 때문에 공부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래서 엄마하고 시장에 갔는데 거기서도 시험 생각밖에 안 났다. 그리고 엄마가 큰 이모네도 데려 가고 한선이 형하고 재미있게 놀았어도 시험밖에 생각이 없었다.


집에 와서도 잠을 자는데 잠이 통 안 왔다. 그래서 한 11시 정도에 잠이 들었다.



(1981.9.26.)





* 내 친구 - 문재진


우리 동네에는 내 친구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 나는 친구가 조금밖에 없어서 나가면 쓸쓸합니다. 하루는 내가 밖에 나가서 혼자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내 눈을 가렸읍니다. 나는 "누구야!" 하며 뒤를 돌아다 보았읍니다. 내 뒤에는 기형이가 웃고 있었읍니다. "기형아, 깜짝 놀랐다. 왜 그렇게 놀라게 하니?" 그러니까 기형이는 아무 소리도 안 하고 웃고만 있었습니다. 나는 기형이를 잠깐 동안 쳐다보다가 다시 아무 말도 않고 있었읍니다. 그 때 어머니께서 나를 불렀습니다. 나는 곧 대답하며 집으로 달려갔읍니다. 어머니께서는 "너는 언제까지나 밖에서 놀 테냐?" 하며 나를 꾸중하셨읍니다. 나는 곧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내가 공부하는 것을 보고 안심하셨다는 듯이 밥을 짓기 시작하셨읍니다. 그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읍니다. 나는 '누굴까'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에 어머니께서 나가셨읍니다. 어머니는 나를 불렀읍니다. 나는 곧 밖으로 나갔더니 기형이가 숙제장을 들고 문에 서 있었읍니다. 내가 들어오라고 했더니 어머니는 문을 닫았읍니다. 나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읍니다. 어머니는 "뭐가 그리 슬퍼서 우니?" 하시며 방으로 들어가셨읍니다.


가방을 들고 기형이네 집으로 갔읍니다. 기형이 집 문을 들어설 때는 가슴이 두근거렸으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만히 문을 두드렸읍니다. 문을 두드리자 기형이가 정답게 맞아 주었읍니다. 나는 기형이에게 "아까는 미안했어" 그러니까 기형이는 "괜찮아" 하며 부드럽게 대해 주었읍니다. 나는 정말로 좋은 친구를 가졌다고 생각했읍니다. 다음부터는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읍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었읍니다. "기형아, 안녕. 아주머니, 안녕히 계십시오." 나는 집으로 돌아왔읍니다.


돌아오니 너무 늦어서 어머니께서 꾸중을 하셨읍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읍니다. 아침이 되자 나는 기형이네 집으로 갔으빈다. "기형이는 벌써 학교로 갔다"고 기형이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으빈다. 나는 빨리 달렸읍니다. 기형이는 문방구에서 수첩을 사고 있었습니다. 나는 기형이를 불렀읍니다. "기형아, 빨리 사고 와!" 기형이는 대답을 하였읍니다. "알았어, 빨리 살께. 먼저 가고 있어." 나는 대답을 했읍니다. "알았어, 가고 있을 테니까 빨리 사고와." 교문을 들어서고 있는데 기형이가 달려왔읍니다.



(1981.7.15.)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9

* <함박눈>


경북 안동군 임동동부국민학교 6학년 졸업기념 문집
지도교사 권중광
1982년 12월 16일 발행





* 어머니 - 윤상호


어머니 이마에 주름살이 났네요.
어머니 손바닥에 구덕살이 졌네요.
어머니 다리엔 뼈만 남았네요.
어머니는 일을 너무 했나봐요.







* 눈 - 김옥녀


눈아 눈아
참 미안하다.
다른 아이들은 너가 와서
기뻐하는데
난 그렇지 못하니
왜 그런지 나도 몰라.
참 안됐어.
다음엔 반갑게 맞아 줄께.






* 개 - 이형수


나는 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우리 집에는 내가 5학년 때 1년 동안 '쌧밧다'라는 개가 있었다. 나는 그 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왜냐하면 명태 머리를 던지면 앞발을 들며 잘 받아 먹기 때문이다. 다른 개는 못 받아 먹을 것이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좋다.


그 때가 초겨울이었다. 난 그 개를 데리고 마늘 밭에 가서 장난치며 싸우기도 하였다. 손만 가면 무는 그 개의 이빨은 매우 날카롭다. 난 꾀를 썼다.


그 개는 나를 무척이나 겁낸다. 다른 애들 같으면 짖고 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쫓아 놓고 다리를 쥐어서 당기는 꾀를 썼으나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때부터 개를 사랑했다. 다른 개를 보아도 사랑을 준다. 이윽고 80년 10월 10일, 그 개를 사람이 잡아 먹기로 했다. 25,000원 주고 팔았다. 나는 이 때 책상에서 울었다. 아버지께서


"누가 우노" 하시며 "왜 우노 야야" 하셨다.
"개를 잡아가."


난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때 욕이라도 한번 하고 싶었다.


그 이튿날 사람들로부터 소문이 났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내가 울었다고 했다. 그 후 순칠이가 왔다. 순칠이도 옛날에 큰 개가 있었는데 그 개도 잡아 먹었다고 한다. 순칠이도 그 때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 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 혼자 있고 싶었다. 개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랑 말랑 한다.


(1980.11.23.)





* 주운 돈 - 권순칠


학교에 가다가 돈 100원을 주웠다. 돈 100원을 주웠는데 그 주인이 나타났다. 그 돈의 주인은 주필이었다. 나도 국어책에 나왔듯이 '없어졌던 영수증'처럼 해봤다. 그러나 주인은 주필이었다. 나는 "니꺼 돈 맨 연도로?" 하고 물었다. "내가 임마야, 그거까지 기억하나, 자슥아." "니 자슥아 그랬데이, 개 새끼야." "니는 개 새끼 왜 그래, 요노무 새끼, 진짜 맛좀 봐야 되나?"라고 했다.


(1980.4.10. 일기에서)








2012. 8. 5.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8


드디어 <누동학보>에 도달했다. 내가 맨 처음 글에서 예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런 글을 읽어주다가 눈물이 나서(희한한 것은 거의 십몇 년에 걸쳐서 그렇게 여러 번 읽었는데도, 그렇게 매번 눈물이 났다는 것이다. 지금도 생각을 하니 다시 좀 그렇게 된다 ...) 숨기느라 혼났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바로 이 1979년 충남 안면도에 있는 중학교 과정 야학의 학보 <누동학보>의 글 '어느날의 아버지'가 바로 그 글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이번 글 역시 찬찬히,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기를 바란다.




***




 <누동학보>


제29호 1980년 12월 26일, 펴낸이 전영숙, 엮은이 박준엽, 김은주, 한기호, 손영미. 발행처 충남 서산군 안면읍 누동학원. 16절지 31면, 필경 등사.




이 학보는 서해 바다 가운데 있는 안면도의 한 조그만 어촌에서 뜻있는 분들이 모여서 희생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한 학원의 간행물이다. "가정이 어려워서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소년소녀들에게 중학과정을 교육"하고 있다는 이 학원에서는 검정고시 준비지도 같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지만 그보다도 인간교육에 더 힘을 들이고 있다는 것은 1978년 6월에 낸 학보 19호에 실린 '설립취지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삶의 가치, 의의, 목적들을 음미하고 관조하며 미를 창조하고 감상하며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무지는 이런 일을 불가늘하게 하며 오염된 사회 풍조와 조류에 감염되기 쉽다. [...] 무지라는 것은 읽고 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성의 마비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밝은 이성을 개발하고 다듬어 이성과 도덕률이, 그리고 정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누동학원은 비록 전체 사회로 볼 때 극히 미소한 부분이지만, 여기 이 자리에 있는 한 개인 개인에게는 자신의 우주 전체이다. 운이 좋아서 더 배울 수 있음을 감사하며, 배운 사람이 어렵고 덜 배운 이웃과 함께 배운 바를 나눈다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사회인으로서의 의무요 책임이어야 할 것이다."


[...]


다음은 이 학교의 교육이 어느 정도로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짐작하게 하는 한 학생의 글 일부이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를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나는 제일 싫어한다. 국민학교 동창들을 만나면 '너  어디 고등학교 가니?' 하고 물을 때 나는 웃으면서 안 간다고 말할 수 있다. 고등학교 못가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일까?


나는 여기에 반대하고 싶다. 앞으로도 사회에 나가서 얼마만큼은 배우고 익숙해지면 야간이라도 나갈 생각이다. 하지만 주간은 싫다. 왜 그런지 나는 답답해서 못 다닐 것 같다.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로 책을 읽으며 살아갈 것이다 ......"


여기서 이 학생이 얼마나 폭 넓게 '공부'란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삶의 태도에까지 발전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 다음은 22호(1978.11)에 나온 글 몇 편을 옮긴 것이다.



* 김 - 이상미(2년)


추운 날, 눈 내리는 날이면 옹기 종기 모여 앉아 김을 뜬다. 손이 시려워도 발이 얼어도 참고 견디어 해질까지 뜬다. 더운 물로 손을 녹여도 또 발이 시려워서 어떤 때는 방에서도 하고 비닐로 만든 집에서 한다. 손이 트고 발이 트고 겨울이 지나야 김을 안 한다. 아이들은 겨울이 오지 말라고 한다. 김밥도 못 먹는다. 한 장이라도 팔려고 못 먹게 한다. 조금 큰 언니들은 김을 빼내어 숨겼다가 장사꾼에게 팔아서 용돈을 쓴다. 한 장도 못 먹는 김을 억지로 찢어, 부모에게 찢어졌다고 하고 김을 구워 김밥을 먹는다. 도시 아이들은, 바닷가 아이들은 김을 많이 먹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한 장이라도 팔려고 못 먹는다. 백장이 잇어야 파니까. 시골의 아이들과 부모들은 항상 바쁘다.




* 김 - 오광희(1년)


그날은 추운데다가 얼음까지 얼었다. 아버지는 발이 닳도록 바닷가에 가서 김발을 보고 들어오신다. 그러면 아버지 얼굴은 파랗게 물든 것처럼 추워서 어쩔 줄 몰랐다. 바닷가에 김발이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을 때 오빠가 오면서 우리 김발이 다 떠나가게 됐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것마저 떠나가게 된다는 말을 듣고 정신을 잃게 되었다. 난 하느님께 기도를 했다. 우리의 재산은 김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 어느 날의 아버지 - 임종란(1년)


나와 아버지는 떼를 타고 발일을 하러 갔다. 아버지와 나는 열심히 노를 저어 갔었다. 떼 위에서 아버지는 일을 하시고 나는 노를 저었다. 아버지는 아한테 "배고픈데 밥 먹어라" 하셨다. 싸늘한 바람결에 밥을 먹었다. 아버지는 안 잡수셨다. 아버지는 중얼중얼하시며 일을 열심히 하였다. "안 되겠다. 내가 물 속에 들어가야겠다" 하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담배를 물에 젖지 않게 하라 하셨다. 목까지 차는 물에 들어가신다고 하셨다. 남들은 모두 허리 차는 데였다. 우리는 제일 물 아래였다. 아머지는 한참 하시더니 "도저히 못 하겠다" 하시며 나오셨다. 그 날은 좀 쌀쌀하였다. 아버지는 나오시더니 막 떨으셨다. 말도 못 하셨다. 막 떠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담배를 달라고 하셨다. 옷속에 넣어두었던 담배를 얼른 꺼내 드렸다. 아버지는 계속 떨으셨다. 나는 볼 수가 없었다. 배가 고프다고 하시며 밥 좀 달라고 하셨다. 밥통은 밥이 들은 채 물 속에 굴러 다니었다. 나는 물이 들어가서 못 먹는다고 하였다. 그래도 달라고 하셨다. 나는 풀어보았더니 물은 많이 안 들어 있었다. 차고 짠 밥을 아버지는 떨으시며 잡수셨다. "아버지 잡숫지 마셔요" 하였다. "괜찮다. 너도 먹어라" 하셨다. 떼를 타고 올 때 아버지는 졸으셨다. 어떤 아저씨한테 "물 있나?" 하니 "응, 조금 있네" 하셨다. 달라고 하더니 그 물을 많이 잡수셨다. "짠 밥을 먹었더니" 하시며 ...... 집에 와서 얼른 따뜻한 밥을 지어 드렸다.




***




이 글을 읽으면 1978년에 나보다 한 살 어린(그러나 야학이므로 나와 같거나 혹은 더 많은지도 모른다)종란이가 내가 사는 서울이 아닌 충남 안면도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를 도와 김발 정리하는 것을 도와드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종란이네 집은 그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집이라는 것(김 양식장이 육지에서 가장 먼 곳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매우 키가 작으신 분(남들은 허리 차는 데 였다, 아마도 척추장애인(이른바 '꼽추'라고 부르는)이신 듯 하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우리는 종란이의 아버지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 성실한 분인지, 그리고 종란이는 얼마나 착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속깊은 아이인지 알 수 있다.


나는 한 인간, 아니 한 가족의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겨울 한 때의 한 순간을 이렇게도 완전한 문학적 필치로 써내려간 글을 본 적이 없다. 글을 읽으면 누구나 정말 자기가 종란이가 되어 아버지를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고 있게 되지 않는가? 이 글을 읽은 1984년 이래로 나는 때로 나보다 한 살 어린, 내가 모르는,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오랜 친구이자 누이 같은, 종란이가 이 때의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기를, 그리고 아버지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있기를 마음 속으로 바라보곤 했다.







* 오래된 친구 - 어떤날, i, 1986



 




 










2012. 8. 4.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7

<6학년 9반> - 서울 문창국민학교 6학년 9반 문집. 지도교사 유인성.





* 표 - 이상욱





교실 뒤에 늘어 붙은
갖가지 표들은
우리들의 몸을 대신합니다.
□칸에 갇혀 있는 ○, △, ×가
우리들의 몸을 대신합니다.


우리들의 생활과
모든 일들은
갖가지 표들이 확인시키고
우리들은 모두
□칸에 갇혀서
○표 받기를 소원합니다.


교실 뒤에 늘어붙은
갖가지 표들을
나는 미워합니다.그 표 안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는 우리가
원망스럽습니다.





* 유리창 - 전영이



오늘 내 동생이 골 놀이를 하다가 유리창을 깨었다. 그래서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한테 혼날 생각을 하니 무섭다. 그래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랬다. 그런데 어머니는 야단만 치시고 웃으셨다.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조마조마한 마음도 없어졌다. 난 이럴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이 예쁜 것같이 느껴졌다. 이제 어버이날이 다가오기 때문에 아버지께 못하는 효도를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몫까지 다 하겠다. (1980.5.6.)





* 생명 - 신미정


오늘은 독수리 5형제를 보았다. 독수리 5형제 중 제1호가 있다. 독수리 1호와 3호가 나쁜 놈을 죽이기 위해서 독수리들이 타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나는 1호와 3호가 죽이는 나쁜 놈이 가여웠다. 특히 1호가 죽이는 나쁜 놈은 더욱 더 가여웠다. 왜냐하면 독수리들이 발로 생명을 다치게 하며, 날카롭고 무서운 톱날 같은 것이 날아가면서 인간을 죽였다. 아무리 적이라도 그렇지, 같은 인간끼리 그렇게 비참하게 죽이다니, 정말 독수리들이 너무 미웠다.


앙리 뒤낭은 적을 치료하신 분이다. 독수리하곤 비교가 안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을 때리시는 것도, 아니 벌을 세우는 것도 마음이 아프시다고 하시는데, 족수리들은 정말로 인정도 없는 사람인가 보다.


지구를 위해서 싸우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인간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이고도 자기가 잘난 것같이 딱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우스웠다. 비록 만화지만, 나는 독수리 5형제를 매일 보지만 오늘처럼 뜻있게 본 적은 없다. 오늘은 조금이라도 생명에 대해서 알겠다. (1980.5.27.)






* 개구리 해부 - 김영진


나는 오늘 아침 학교에 가는 길가에서 노는 개구리를 잡아 가지고 학교에 갔다. 해부가 하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불쌍해서 학교 연못에 자유로이 놓아주었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이 자꾸만 돌을 던져서 개구리를 다시 끄집어 내었다. '거기서 돌을 맞아 죽느니 아예 해부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부는 수업을 마치고 규일이네 집에 가서 성욱이와 경상이, 그리고 병현이가 하였다. 나와 규일이는 마음 약해서 해부는 하지 않고 구경만 하였다. 그러나 구경하면서 나는 몹시 후회하였다.


팔과 다리에 핀을 꼽을 때 개구리가 몹시도 괴로와하는 걸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도에 맞아 죽더라도 조금이나마 연못에서 자유롭게 살게해 줄 걸......' 이렇게 생각했을 때에는 벌써 개구리가 숨을 거두었을 때였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개구리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다음부턴 이렇게 끔찍하게 생명을 죽이는 일은 안 하겠다'라고 말이다. (1980.5.7.)





* 책 머리에(끝 부분)


여기 너희들의 생활이 모였다. 동무들의 따뜻한 입김이 서려 있다. 웃는 얼굴, 찌푸린 얼굴, 성낸 얼굴, 심각한 얼굴, 우는 얼굴, 기도하는 얼굴 모두 있다. 따스한 정이 넘치는 사랑이 담겨 있다. 나는 확신한다. 이 힘으로 세상이 밝아질 것이라고.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6

<살아가는 이야기>

- 대구 인지국민학교, 김녹촌 엮음, 흐름사.





* 심부름 - 2학년 3반 나설경



나는 어머니 심부름을 갔습니다. 어머니는 동생하고 같이 가라고 하셨읍니다. 나는 동생하고 같이 가기 싫었습니다. 그러나 안 데리고 갈 순 없었읍니다. 그래서 데리고 갔읍니다. 나는 동생하고 손을 잡고 걸어갔습니다. 가는데 동생이 넘어졌습니다. 동생의 옷에 흙이 묻었읍니다. 나는 동생의 흙 묻은 옷을 털어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옷을 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넘어졌읍니다. 내 옷에도 흙이 묻었습니다. 동생은 내 옷을 털어 주었습니다. 나는 아까 내가 동생의 옷을 털어 주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읍니다(287-288).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5

<나도 광부가 되겠지>

- 강원도 정선군 사북국민학교 6학년 7반 문집
지도교사 임길택, 1980년 11월 30일





* 나도 광부가 되겠지 - 최우홍


우리 아버지는 광부로서
탄을 캐신다. 나도 공부를
못하니 광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난 이제 광부가 되었으니
열심히 일해야  되지만
너는 커서 농부나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






* 아버지의 손 - 김명환


아버지의 손은 거칠거칠하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보고
아버지 우리도 시내로 나가요
하고 말씀 드리면
명환아,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자, 하고 말하지요.




* 굴이 무너지는 날 - 황성숙



굴이 무너지면
우리 마을의 슬픔
아,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해. 굴이 무너지면
옆집 아주머니들의 슬픔'
아,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해





* 광부 - 권복분

탄 바가지 하나 쓰고
뒤뚱 뒤뚱 걸어노는
광부 아저씨.
그 옆에는
신사 하나 걸어오지만
웬지 광부 아저씨에게 정이 가네.





* 우리들 생각 - 이하용


남의 아버지가 사고 나든 말든
우리 아버지만 안전하면
된다는 우리들 생각





* 아버지와 술 - 박명준


아버지는 술을
자꾸 잡수신다.
술만 췌며는
엄마와 싸우신다.
우리는 밖에서
아버지가 자야만
들어간다.






* 처음 이사오던 날 - 전재영


사북에 처음 이사 왔을 때
아이들이 나를 보고
촌놈이라고 욕을 하고
놀렸다.
나는 욕을 할 줄 몰랐었다.
동생을 어떤 아이가 때리면
나는 어머니께 뛰어가서
엄나, 누가 재찬이 막 때려
하고 말하곤 했다.





* 월부 장수 - 전정열



월부 장수가 와서
어머니에게
막 사모님이라고 하면서
머 사라고 하면
나는 그 사람 물건을
하나도 사주고 싶지 않다.




* 우리 아버지 - 라기용


우리 아버지는 일을 나가서
아버지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한테 굽실거리며
일을 한다.





* 막장 - 노영민


나는 지옥이
어떤 곳인지 알아요.
좁은 길에다
모두가 컴컴해요.
오직
온갖 소리만
나는 곳이에요.





* 아버지 월급 - 최진숙



우리 아버지 월급은
10만원이 넘지요.
그러나 항상 우리 집은
돈이 모자라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16883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4

<꽃게>

- 경남 통영군 풍화국민학교 5-1반 문집, 지도교사 이기주, 1980.1.26.




*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 - 최철만


우리 아버지는 좋으신 분이다. 그러나 술만 먹으면 실수를 하는 적이 많다. 어느 날  아버지는 술을 먹고 어머니와 싸웠다. 왜 싸웠는가 하면 어머니가, 세상천지도 모르고 술을 먹소 하니까 아버지는 성을 내며 어머니를 때렸다. 어머니는 방에 뛰어들어 왔다. 그리고 문을 꽉 닫았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려고 일어서자 어머니는 못 들어오게 방문을 잡았다. 아버지는 문이 열어지지 않으니까 방문을 계속 발로 찼다. 그러니까 방문이 덜커덩 덜커덩 소리를 내며 문이 떨어지려고 했다. 그 때 나는 자신도 모르게 방문이 떼어질려는 곳을 잡았다. 아버지는 성을 내어 요광을 던졌다. 요광이 깨지면서 내 손에 꽂혔다. 그제서애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네 사람들은 말렸으나 아버지는 더 성을 내어 동네 사람들을 밀면서 장독 뚜껑을 던질려고 하는데, 동네 사람들이 달려들어 아버지 팔을 잡았다.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 재촉에 못 이겨 장독 뚜껑을 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먼 눈을 팔 때 아버지가 빠른 속도로 장독 뚜껑을 내던졌다. 그것도 께어지면서 내 손에 꽂혔다.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니 성이 났다. 때마침 누나가 회사에서 와서 싸움하는 것을 말기었다. 그래서 싸움은 끝났다.

나는 아버지가 술만 먹으면 울음이 터질 것 같다. 어머니와도 싸우지 않았으면 한다(279-280).


2012. 8. 3.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3

* <우리들의 이야기>
-서울 문창국민학교 5-2반 문집, 담임교사 이주영 엮음.



이 문집의 특징은 이주영 선생님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의 아이들 여든여섯 명(!) 아이들의 시가 모두 한 편씩 들어있다는 점이다(274-277).



* 어떤 꼬마 - 이재원




학교에서 놀다가 보니
어떤 꼬마가 물 양동이가 무거워서
가만히 서 있었다.
키가 나의 가슴만 하였다.
양동이를 들어다 주었다.




* 연극 연습 - 최효진



어저께 연극연습을 했다. 그런데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인기 좋고 잘난 아이들은 좋은 역을 준다. 나는 계모 역을 맡았다. 연극을 하려고 그러니까 보영이와 유선이가 싸우고 있었다. 서로 콩쥐를 하려고 그런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대신 같은 것을 시킨다. 왜 똑 같은 사람인데 좋고 나쁜 것을 가려야 하나? 나는 한 마디로 말해서 학교 생활이 싫다. 잘난 아이들이 선생님께 애교부리는 것, 인기좋은 아이들하고만 노는 것이 싫다.




* 선생님 - 박철



나는 지금 선생님이 좋다. 왜냐하면, 선생님과 5학년 들어서 처음 만났을 때 노래를 불렀다. 그 때 선생님이 웃기시고 그랬다. 그 후 선생님과 우리는 친해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공부를 가르쳐주시는 방법이 좋고. 옛날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기도 하고, 웃기시기도 한다. 그리고 또 무서우실 땐 굉장히 무섭다.


내가 학교를 다닌 지 5년 째 됐지만, 요번 선생님이 제일 훌륭하시고 좋다. 그래서 그런지 4학년 때 성적보다 더 올라갔다. 그리고 내 생각에 발표력도 더 많아진 것 같다. 나는 6학년 때도 이주영 선생님하고 같은 반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주영 선생님 흉을 보려는 게 아니다. 이주영은 이주일의 선배가 된다. 영은 1의 선배다.



* 실습 - 백형순



나는 실습이 좋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이모는 무슨 남자가
실습이냐고 하십니다.
남자라고 못할 게 어디 있어요?
남자라서 못할 게 있을까 없을까 ......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2

* <구름과 물>

- 강원도 화천군 간동면 오음국민학교 운수 분교장 4-5-6년 복식반 문집, 담임 문종현, 1980년 여름



"교사의 글  - 교사의 가필이나 수정이 조금도 관여하지 않은 아이들만의 진실된 목소리이기에 주저하지 않고 싣는다. 단지 일부 요용된 맞춤법은 바로잡아 주었음을 밝히고 싶다." 글씨조차 아이들 각자가 필경했고, 그림도 아이들의 것이다.




* 비 - 6년 김종미(271-272)

비가 오면
학교 가기가 싫어진다.
잃어 버릴까봐 우리 엄마는
우산을 안 준다.
여는 애들은
우산을 쓰고 가는데
나만 비료 포대를 쓰고 가면 부끄러웠다.


1980.6.17.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1

이오덕,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한길사, 1984



내 젊은 시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들 중 하나(지금은 같은 제목으로 보리출판사에서 새 표지로 나왔으나, 나는 이철수의 이 판화 표지가 너무 좋고, 아름다웠다. 어린아이를 업고 엎드려 아마도 호롱불 밑에서 책을 읽는 어머니, 이것이 참다운 배움이 아닐까? ).




보리, 2004





이오덕 선생님이 편집하고 쓰신 이 책에는 대부분 초등학교 학생들의 글이 실려 있고, 이를 통해 올바른 우리말 쓰기, 더 나아가 우리는 왜 써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미덕, 가장 아름다운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부분은 바로 어린아이들의 글 자체이다(이오덕 선생님도 이해하실 것이다!).


나는 예전 글쓰기 혹은 철학에 관련된 나의 수업 시간에 이 글들을 읽어주곤 했는데, 그렇게 여러 번을 읽어도 읽을 때마다 너무 즐거워 배를 잡고 마구 웃기도 하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나곤 해서 감추느라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아이들의 잔인성에 놀라고, 아이들의 순수함에 눈물짓는다. 아이들의 글은 절대로 나를, 당신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아이들의 글은 나의 삶을,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나는 이런 꿈을 꾸어본다.


내가 만약 노벨 문학상 수상작 선정위원회 위원이라면 나는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 '전세계의 모든 어린이들'을 선정하고 싶고, 그 대상이 되는 책으로 이 책에 등장하는 문집, 1980년 강원도 정선 탄광촌 사북국민학교 임길택 선생님이 학생들의 글을 모으고 일일이 필사와 등사를 거쳐 만든 <나도 광부가 되겠지>(이 분은 이미 오래 전에 젊은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KBS스페셜'의 제 1회가 바로 이 분의 이 문집이야기이다), 혹은 안면도 중학교 과정야학인 누동학원의 <누동학보>를 들고 싶다.



임길택 선생님(1952.3.1∼1997.12.11)




임길택 선생님을 기리는 홈피



그리고 이 책은 단순히 어린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우리 모두가 '어린' 백성들이다). 나는 문학이나 소설 혹은 철학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해준다. 이 책의 글쓰기와 문학을 철학으로만 바꾸어 읽으면, 이 책의 내용은 그대로 훌륭한 좋은 철학하기, 철학적 글쓰기의 모범이 된다. 아래의 글들을 읽으면 저절로 이해가 되리라 믿는다.


책 제목이 글짓기가 아니라, 글쓰기이다, 삶을 가꾸는. 즐겁고 행복한 아이들만이 아니라, 힘들고 불행한 아이들에게도 글쓰기가 필요하다, 삶을 가꾸는.


말이 필요 없다. 여러분도 나와 같이 이 글을 읽으며 함께 웃고 울고 기뻐하고 슬퍼하기를 바라본다(괄호 안은 내가 가진 책의 쪽수).



***



* 딱지 따먹기 - 4학년 남(55)



딱지 따 먹기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한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 아이들의 글을 아이들의 삶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글은 아이들의 생활어로 씌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이들 글쓰기의 근본이요 철칙이라 할 만하다. / 이 원칙에 따라 아이들 글쓰기 말의 성격을 다음 세 가지로 밝혀 본다.


첫째, 쉽고 친근한 말이어야 한다. 아이들의 몸에 배인 구수한 삶의 말일수록 좋다. 결코 유식한 말, 근사한 말을 꾸며 쓰지 않도록 한다.


둘째, 아이들 자신의 말이어야 한다. 어른들이 쓰는 관념어, 특히 선생님들이 많이 쓰는 교훈적인 관용어를 흉내내어 쓰기 쉬운데, 이 점을 깊이 경계해야 한다.


세째, 사투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아이들이 자기의 삶을 자기의 말로 쓰는 이상, 특히 저학년에서는 사투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글쓰기에 표준말만 써야 한다면 저학년에서 살아 있는 글쓰기는 거의 불가능하며, 고학년에서도 일반적이고 모방적인 글만 쓸 것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사투리로 자라난다. 사투리는 민족의 감정을 형성하는 근원이다. 언어의 통일을 강조하는 나머지 글쓰기 교육의 크나큰 사명을 잊어버리고 글쓰기 지도를 표준어 지도처럼 오해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투리로 표현하는 사실과 표준말로 표현하는 사실은 다르다. '할매'를 '할머니'로 고쳤을 때는 단순히 말을 고친 것이 아니라 사실을 고친 것이 된다.


그러니 글쓰기 교육을 함에 있어서는 사투리는 사투리로 존중하고 표준말은 표준말로 존중하여, 글을 쓸 때는 사투리로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사투리로 쓰고, 그 밖에는 표준말로 쓰도록 할 것이다. 사투리를 잘 쓰는 것은 표준말을 잘 쓰는 길이기도 하니, 덮어놓고 사투리를 배척하는 태도는 아이들의 자연스런 언어 생활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표준말의 학습조차 저해하게 되는 것이다(120-121).






* 죽어가는 개구리들 - 6년 남(130-131)


지난 22일 토요일 오후, 나는 논에 가다가 동네 아이들이 개구리를 가지고 노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도 동네 아이들 틈에 끼어 개구리를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아이들은 개구리를 가지고 놀다가 싫증이 나니까 차가 다니고 있는 도로에 던져 개구리가 차바퀴에 깔려 죽게 하였다. 또 어떤 아이들은 개구리를 벽에 세게 던져 죽게 하기도 하였다.


나도 개구리를 죽이려 하다가 개구리가 불쌍하고 아이들이 너무 잔인해서 개구리를 다시 논에 돌려 보내 주었다.


전에 학교에서도 개구리를 잔인하게 죽이는 것을 봤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뉘우치고 반성하지 않고 계속 개구리를 죽였다.


개구리가 죽은 모습은 아주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간이 나오고, 피가 나오고 살이 찢어지는 등,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이다. 나는 "아이들이 개구리를 잡지 않고 또 개구리를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죽어버리면 좋겠다 - 통영군 풍화국교 5년 조실규(201-202)


우리 어머니는 나를 보고
죽어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죽어 버리고 싶다.
우리 아버지는 죽도록
약도 사 먹이지 말고
놔 두라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는
약도 사 미 봐야
병도 낫지 안하는 것
약도 사 미지 말고
그냥 죽도록
놓아두라고 한다.

(1982.9.8.)


* 같은 조실규 군이 쓴 다른 글과 그에 대한 이오덕 선생님의 말(202-203)


"나의 소원은 내 병이 낫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 약 지어 먹이려고 배추나 시금치, 무우 같은 것을 가지고 날마다 저자를 간다. 나는 그럴 때마다 눈물이 난다."


글이란 행복한 아이만이 쓰는 것이 아니다. 불행한 아이일수록 글을 쓸 권리가 있다.





* 여기서 중고등학교 문에부 학생들의 일반적인 글의 경향을 짐작하게 되고, 소위 문예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 문제점이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자기의 삶을 이야기한 글은 가치가 없다. 문학적인 글을 쓰려면 일상의 삶을 떠나 고상하고 문학적 취미를 가져야 하고 명상과 사색을 즐겨야 한다.


둘째, 그러니 글을 쓰려면 문학작품을 많이 읽고 그 속에서 표현하는 기교를 배워야 한다.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문예교육적인 견해와 방법은 크게 잘못되어 있다. 어떠한 글도 삶을 떠날 때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떠난 이야기는 아무리 깊은 명상과 사색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거기에는 대개 허위가 들어 있다. 어른들의 글도 그러한데 더구나 아이들은 글은 말할 것도 없다


[...]


삶을 떠난 빈말을 가지고 가지고 글을 만들게 하는 노력은 다 헛된 짓이다. 헛될 뿐 아니라 그 런 노력은 하면 할수록 병든 글을 낳을 뿐이다. 변든 글을 쓰는 아이는 병든 마음이 된다(212).





* 농촌 어린이의 작문에서 이런 귀절을 본 적이 있다.


"밭에 일을 나가신 어머니께서 부르셨읍니다.
어머니, 왜 그러셔요?
하고 내가 여쭈어 보았읍니다."


이렇게 쓴 어린이 - 국민학교 4학년 짜리 그 농촌 소년은, 사실은 작문에 쓴 사실을 제대로 적었다면,

"밭에 일을 나가던 어머니가 불렀다.
엄마, 왜 그래?
하고 내가 물어 보았다."


이런 정도로 말을 했을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국어 교육이 지닌 지나친 경어 교육으로 하여 아동이 그 속에 들어서지 못하고 거짓스런 글을 쓰게 된 좋은 예이다.


중학교만 가면 국어 같은 건 시시하게 생각하고 영어나 소중한 것으로 아는 학생들도 우리 국어의 아름다운 말을 모르고 장차 더러운 말을 함부로 쓸 우려가 있는 것이다(이원수, <말에 대하여>, 1967년 8월)




* 고향 - 부산 감전 국민학교 6-13반 류건정, 문집 <해뜨는 교실>(백영현 선생님 지도)



내 고향은 강원도, 나는 강원도에 살고 싶지만, 엄마 병 때문에 고향에 못 간다. 우리 고향 집은 뒷산에는 할아버지 산소, 옆에는 할머니 산소가 나란히 주무시고 있다. 우리 집 옆에는 큰 과수원, 오른쪽에는 큰 고무마 밭과 감자 밭이 있고 우리 집 앞에는 시원한 시냇물이 참 좋아요(241).



* 개구리 - (5년 배수호)


날마다 일어나면 개구리가 개골 운다. 나는 거적을 빗기면 개구리가 한 마리가 나온다. 나는 논으로 돌아다니면서 화살을 쏘았는데 눈에 맞았다. 나는 개구리를 잡아서 불에다가 넣었다. 개구리가 팔딱 뛴다. 나는 개구리가 다리가 익으면 먹는다. 작년에는 개구리를 잡아서 끄네끼를 묶었다. 그래서 나는 눈지러 보니 깨꼴 소리가 났다. 개구리를 잦아서 돌멩이에다가 꼭 찍었다. 개구리가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또 돌멩이로 찍었다. 이번에는 죽었다. 개구리는 겨울에는 잠만 자고 봄이 되면 다시 나온다. 개구리를 잡아다 땅에다 묻엇더니 아침을 먹고 냇가에 가서 땅을 파 보니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