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2.

국립극단 3 - 사르트르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

 

 

-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HOW TO READ 사르트르』,변광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 변광배, 「장 폴 사르트르, 타자를 발견하다」, 『처음 읽는 프랑스철학』, 동녘, 2012.

- 변광배,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e-시대의 절대사상, 살림, 2005.

- 로널드 애런슨, 『사르트르와 카뮈. 우정과 투쟁』, 변광배ㆍ김용석 옮김, 연암서가, 2011.

- 안니 코엔 솔랄, 『사르트르』(상ㆍ중ㆍ하), 창, 2012.

- 변광배ㆍ정명환 외, 『실존과 참여. 한국의 사르트르 수용 1948-2007』, 문학과지성사, 2012.

- 박정자, 『빈센트의 구두.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의 그림으로 철학읽기』, 기파랑, 2012.

- 조광제,『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1, 2), 그린비, 2013.

- 지영래, 『집안의 천치. 사르트르의 플로베르』,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9.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출생. 1907년. 아버지 사망, 외가인 슈바이처(Schweitzer)가에 들어감.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한 유명한 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사르트르의 어머니의 사촌. 1915년. 파리의는 앙리 4세(Henri IV) 학교에 입학, 초등교육을 받음. 1916년. 어머니 재혼, 어머니를 따라 라 로셸(La Rochelle)로 이사. 1917년. 라 로셸의 중학교에 입학. 1919년. 파리의 루이-르-그랑(Louis-le-Grand) 고등학교에 입학. 1921년(16세). 대학입학 국가고시 제1부 합격, 1922년(17세). 대학 입학 국가고시 제2부 합격. 1924년(19세).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e)에 입학, 철학을 전공하며(1929년까지) 교수자격 시험(agrégation)을 준비.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만남. 1926년(21세). 나중에 「상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될 논문 완성. 1928년(23세). 고등 사범학교 졸업.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의 『일반 정신병리학』 공역. 1929년(24세). 교수 자격을 얻음. 1929년(25세) - 군에 입대, 투르(Tours)에서 기상병으로 복무(1931년까지). 1931년(26세). 르 아브르(Le Havre)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 1933년(28세). 독일 유학. 베를린의 프랑스 문화원(Institut Français)에서 1년간 장학금을 받아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연구. 1933년. 코제브(Kojeve)가 헤겔를 강의 시작(1939년까지). 프랑스에 헤겔 사상이 처음으로 도입된 계기. 1934년. 베를린에서 돌아와 르 아브르 고등학교에 복귀. 「자아의 초월」 집필.

 

 

 

1936년(31세). 라옹(Laon) 고등학교 철학 교사. 『상상력』(L'Imagination, P.U.F., 지영래 옮김, 기파랑) 출간. 1937년(32세). 파리의 파스퇴르(Pasteur) 고교로 전근(1939년까지 근무). 『자아의 초월성』(Transcendance de l'Ego) 출간. 1938년(33세).『구토』(La Nausée, 방곤 옮김, 문예출판사) 출간. 1939년(34세).『정서론 소묘』(Esquisse d'une théorie des émotions), 단편집 『벽』(Le Mur, 김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출간. 「지향성, 후설 철학의 한 기본 개념」 집필. 군에 소집.

 

HOW TO READ 사르트르

 

 

“실재론과 관념론의 논쟁이 문제였던 것이다. 실재론은 전통적으로 물질이 정신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관념론은 대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물은 정신 속에 있는 비물질적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 <자, 당신은 이 나무를 보고 있다. [...] 의식과 세계는 동시에 주어졌다. 본질적으로 의식의 외부에 있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이 의식과 상관적이다. [...] 후설은 이처럼 의식이 자기와는 다른 것으로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바로 ‘지향성’(Intentionalität)이라고 부른다. [...] 결국 모든 것은 외부에 있다. 심지어는 우리 자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외부에, 세계 속에, 타인들 틈에 존재하는 것이다.>(「지향성」) [...] 후설은 이 개념[지향성]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브렌타노(Franz Brentano, 1838-1917)에게서 빌려 왔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 개념을 ‘모든 의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라고 정의한다. 의식은 사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이 사물을 향한 방향성인 것이다.”(31-36) “의식은 관계를 맺는 사물을 떠나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알 수 없다. 「지향성」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존재에게서 ‘실존한다’는 것이 어떻게 ‘세계=내-의식으로서 갑잡스럽게 솟아오르기 위해 세계와 의식의 무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 되는가를 기술한다. [...] 의식과 관계된 ‘무’(無) 개념은 이제[『존재와 무』에서] 하나의 수동적인 ‘비존재’가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의식 자체가 기투를 하는 미래 세계로의 탈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사르트르는 의식과 관계 있는 ‘무’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애]벌레처럼 존재의 한복판에 자리잡는 것’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는 의식의 의미로 사용되는 대자존재(對自存在)와 사물의 의미로 사용되는 즉자존재(卽者存在)의 구별을 도출해낸다.”(45-46)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 여기가 바로 지옥이군요. 난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우리가 고문실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겠지요. 불, 유황, ‘초열지옥’,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 붉게 달군 쇠꼬챙이는 필요 없어요! 타인, 그것이 지옥이니까요.”(<닫힌 방>, 50-52) “사르트르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공] 가르생은영웅이 되기보다는 비겁자가 되는 것이 더 쉽다. 적어도 탁자가 되는 방식으로는 말이다.”(54) “하이데거는 인간은 ‘함께 있는 존재’(Mitsein)로 설명한다. 사르트르의 주장에 따르면, 이 표현은 ‘우리’ 모두가 한 편에 속해 있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의식들 사이에 정립되는 관계의 본질은 함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갈등이다.’”(56)

 

즉자존재(卽者存在 l'être-en-soi): 사물 chose, thing

대자존재(對者存在, l'être-pour-soi): 의식[=나(自我, moi, ego) + 타인(他人, autrui, autre, others)]

즉대자존재(卽對者存在, l'être-en soi-et-pour-soi): 신 dieu, god

 

le regard 視線 - 타인(신),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대상화하는(사물화 하는) 자!

 

* 타자(他者, l'autre, the other) = 타자성(他者性) otherness

 

 

“카페의 종업원을 생각해보자. 그는 민첩하지만, 좀 지나칠 만큼 정확하고 약삭빠르다. 그는 좀 지나치게 민첩한 걸음으로 손님 앞으로 다가온다. 그는 약간 지나치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즉 그의 목소리, 그의 눈은 손님의 주문에 지나칠 만큼 주의를 기울이는 듯하다. 마침내 그가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걸음걸이에 어딘지 모르게 로봇 같은 어색하고 뻣뻣한 태도를 흉내 내려고 애쓰면서 곡예사와도 같은 가벼운 몸짓으로 접시를 가져온다. 접시는 항상 불안정한, 균형을 잃은 상태가 되지만, 종업원은 그때마다 팔과 손을 가볍게 움직여 균형을 되찾는다. 그의 모든 행위가 우리에게는 놀이처럼 보인다. 그는 카페의 종업원이라는 연기를 하고 있다. 카페의 종업원은 작기 신분을 가지고 놀며 신분을 실현한다. / 내면의 비슷한 상황에서 카페의 종업원은, 이 잉크병이 잉크병으로 ‘있다’는 의미에서, 컵이 컵으로 ‘있다’는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카페의 종업원으로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카페 종업원의 역할을 완수하려고 해보았자 소용없다. 결국 배우가 햄릿인 것과 같이 나는 중립적인 방식으로서만 카페의 종업원일 수 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내가 내 신분의 전형적인 몸짓을 기계적으로 행함으로써이며, 내가 ‘유비물’(analogon)로서의 이런 몸짓을 통해 상상적인 카페의 종업원으로서의 나를 지향함으로써이다.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카페 종업원의 즉자 존재다. 마치 내가 온갖 방면에서 그것을 초월하지 않고 현존하는 이 역할을 유지하는 바로 그 사실처럼, 내가 내 신분을 ‘넘어서’ 자신을 구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어떤 의미에서 카페의 종업원으로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스스로를 외교관이나 신문기자로 지칭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가 카페 종업원으로 있다 해도 즉자 존재의 방식으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가 아닌 방식으로 카페의 종업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존재와 무』, 62-64).

 

 

자기 기만(mauvaise foi). “카페 종업원의 예로서 사르트르가 말하고자 한 핵심은 의식은 결코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물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사물을 즉자존재(혹은 즉자)로, 의식을 대자존재(대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비록 의식이 자체를 직접 대상으로 삼지는 않지만, 자체를 인식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기 인식으로 인해 의식의 한복판에 일종의 균열 혹은 파열이 생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의식은 결코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대신 의식은 부정의 형식으로 그 자신으로부터 항상 벗어나면서 계속 자기 자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 대상을 향한 의식 작용의 직접성은 의식 자체의 초월성 즉 미래를 향해 기투하는(企投, projecter) 그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빛 속에서 대상을 파악하는 힘을 통해 가능해진다. 따라서 나는 이 세계를 존재 가능성으로 파악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닁 존재 가능성의 입장에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 이는 내가 아무리 손님들에게 한 명의 종업원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는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종업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내일이라도 이 직업을 당장 그만둘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오직 나의 다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인간은 사무링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할 능력이 없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64-69)

 

인간은 - 의식이 결여된 존재로서의 ‘사물’도, 의식의 존재와 미래가 일치하는 충만한 존재로서의 ‘신’도 아닌 - 단지 하나의 쓸모없는 정열(passion inutile)!

 

1940년. 6월 21일 로렌느지방의 파우두에서 독일군에 포로가 됨. 『상상적인 것. 상상의 현상학적 심리』(L'Imaginaire : Psychologie Ph nom no-logique de l'imagination) 출간. 1941년(36세). 4월 1일 민간인을 가장하여 석방됨. 프랑스로 돌아와 파스퇴르 고교 복직. 1942년(37세). 파리의 콩도르세(Condorcet) 고교로 전근(1944년까지 근무). 레지스탕스 운동.

 

1943년(38세) - 『존재와 무. 현상학적 존재론에의 한 시도』(L'Etre et le Néant, Essai d'ontologie phénom nologique, 손우성 옮김, 을유문화사), 희곡 3막극 『파리떼』(Les Mouches) 출간. 희곡 <닫힌 문> 출간. 1944년(39세). 희곡 「출구 없는 방」(Huis clos) 초연. 1945년(40세). 종전. 고교 교사직을 떠나 생-제르멩-데-프레 가의 카페를 전전하며 집필 활동에 전념. 이때부터 실존주의의 대중적 인기 폭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 est un humanisme, 박정태 옮김, 이학사)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비공산주의 계열의 좌익 정당을 창당하려 했으나 실패. 미국에서의 순회 강연 시작(1946년까지). 연작소설 『자유의 길』(Les Chemin de la libert ) 제1권 <철들 무렵>(L'Age de raison), 제2권 <유예>(Le Sursis) 출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종이 자르는 칼과 인간.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l'existence précède l'essence(29). “인간 본성이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을 구상하기 위한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또한 인간은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일 뿐입니다. [...]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것과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제1원칙입니다. 또한 이것은 사람들이 주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 주체성이라는 말로 우리는 인간은 먼저 실존한다는 사실을, 즉 인간은 우선적으로 미래를 향해서 스스로를 던지는 존재요, 미래 속에 스스로를 기투(企投, projecter)하는 일을 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33-34) “그런데 이 말은 인간이 모든 인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우리가 인간은 스스로를 선택한다고 말할 때, 이 말은 우선 우리 각자가 스스로를 선택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우리 각자가 이처럼 스스로를 선택함으로써 모든 인간을 선택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되기 원하는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또한 우리가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위 중에 그렇지 않은 행위는 하나도 없습니다.”(35-36)

 

“도스토예프스키는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바로 이것이 실존주의의 출발점입니다. 실제로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따라서 그 결과 인간은 홀로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인간은 자기의 안에서도, 또 자기의 밖에서도 그가 매달릴 만한 그 어떤 가능성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는 핑계꺼리를 찾지 못합니다. 만약 정말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간은 결코 응고된 채 주어진 그 어떤 인간 본성에 의존하여 설명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결정론[운명론]이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우며, 인간은 바로 그 자유입니다. 한편 신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실을 정당화시켜줄 가치나 질서를 우리의 앞에서 찾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어떤 핑계도 배제된 채 홀로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l'homme est condamné à être libre 고 말하면서 표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고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자신이 스스로를 창조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세계 속에 던져진 이상, 인간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자는 열정[정열]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자신의 열정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존주의자는 또한 이땅 위에 주어진 그 어떤 징표 속에서 자신에게 방향을 알려줄 도움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기 좋을 대로 징표를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그 어떤 뒷받침도,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매 순간 인간을 발명하도록 선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퐁주 francis ponge 는 그의 매우 아름다운 글에서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 l'homme est l'avenir de l'homme’라고 말했습니다.”(44-45) 레지스탕스 운동과 홀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제자의 이야기. “하지만 어떤 것이 가장 힘든 길일까요? 전우와 어머니 중에서 과연 누구를 형제처럼 사랑해야 할까요? 어느 일이 가장 큰 효율이 있을까요? 누가 그것을 선천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 내가 그를 보았을 때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입니다. 어느 한 방향으로 나를 진정 떼미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청년의 경우 어떤 한 감정의 가치를 도대체 어떻게 결정한다는 걸까요? 어너미를 위한 그 감정의 가치를 만들고 있었던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그가 어머니를 위해서 머물러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입니다.”(48-49) “이와 같이 그 청년은 나를 찾아오면서 내가 그에게 주어야 할 대답을 알고 있었으며, 나 또한 그에게 주어야 할 대답이 단 하나밖에는 없었습니다. ‘자네는 자유롭네, 그러니 선택하게, 즉 발명하게’라는 대답 말입니다. 그 어떤 도덕도 여러분에게 해야 할 것을 지시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징표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청년의 선택, 예수회 사제. 결국 이 모든 것을 놓고 볼 때, 그는 징표 해독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홀로 남겨졌다는 것, 그것은 이처럼 우리 존재를 우리 자신 스스로가 선택한다는 것을 함축합니다.”(51-53)

 

“만약 졸라가 자신의 소설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만약 우리가 이 존재들은 유전으로 인해, 환경과 사회의 영향으로 인해, 유기적[유전적] 또는 심리적 결정론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선언할 경우, 사람들은 곧 안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바로 그거야. 우리는 원래 그런 존재인 거야. 그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는 거야.’ 그러나 실존주의자가 비겁한 사람을 묘사할 때, 그는 이 비겁한 사람이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비겁한 사람은 그가 비겁한 심장, 비겁한 허파 또는 비겁한 뇌를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겁한 사람은 결코 생리학적 조직 때문에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겁한 것은 그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비겁한 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비겁한 기질이란 없습니다.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은 있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소심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비겁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을 비겁하게 만드는 것은 포기 혹은 굴복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질은 행위가 아닙니다. 비겁한 사람은 그가 행한 비겁한 행위로부터 정의되는 것입니다. 비겁한 사람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죄가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원래부터 비겁하거나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 그 근본을 볼 때, 사람들은 결국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이 비겁하게 태어날 경우 여러분은 완벽한 편안함을 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비겁하게 태어난 것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으므로, 여러분은 일생 동안 비겁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영웅으로 태어나도 마찬가지로 완벽한 편안함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실존주의자는 비겁한 사람은 스스로를 비겁하게 만든다는 것, 영웅을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비겁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영웅에게는 영웅을 그만 둘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적인 앙가주망(engagement 참여)입니다.”(59-62)

 

“각각의 인간 속에서 인간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 본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조건이라는 인간적 보편성은 존재합니다.”(66) 실존주의에 대한 반론에 대한 사르트르의 답변. 그럼 인간들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올바른 문제제기가 아닙니다. 선택은 사실 한 방향으로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설령 내가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이 경우 나는 여전히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71-72)

 

“차라리 우리는 도덕적 선택이란 예술작품의 제작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는 미학적 도덕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 예술가가 그려야 할 그림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반드시 그렇게 그려야 할 것으로 정의된 그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예술가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자신에게 앙가제한다는 것, 그려야 할 그림이란 정확하게 예술가 자신이 그리게 될 그림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천적인 미학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에술과 도덕 사이에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 경우 모두 우리가 창조와 발명을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를 찾아온 학생이 칸트의 도덕이나 다른 도덕 등 모든 도덕에 대해 호소해 보았지만 결국 그 어떤 종류의 지시사항도 찾아낼 수 없었던 경우를 통해 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학생은 그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법칙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이지, 이미 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도덕을 선택하면서 스스로를 만들어갑니다.”(72-75)

 

“그러나 스스로를 자기기만적인 방식으로 선택하면 왜 안 됩니까? [...] 자기 기만은 스스로의 정의에 의해서도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기만은 앙가주망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전적인 자유를 은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자기 기만을 원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당신이 그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그 경우 당신이 자기를 기만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자신이 원한다고 자기 기만이 기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76-77)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치를 발명한다는 말은 삶은 그 어떤 선천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살기 이전에 삶이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며, 이때 가치는 여러분이 선택하는 바로 그 의미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83)

 

“실존주의자는 결코 인간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인간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바깥에 있습니다. [...] 우리가 말하는 것이 휴머니즘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것을 통해 우리가 사람들에게 인간 그 자신 외에는 다른 입법자가 없다는 사실, 인간은 자기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스스로에 대하여 결정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정확하게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실현하는 일은 인간 자신에게로 돌아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 자신의 밖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자유이자 특수한 실현인 어떤 목표를 찾음으로써[발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85-86)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하려고 힘을 쏟는 그런 의미에서의 무신론이 아닙니다. 실존주의는 차라리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신의 실존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점입니다.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되창아야 하며, 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주의는 낙관론이자 행동의 독트린입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들 고유의 절망과 우리의 절망을 혼동한 나머지 우리를 절망에 빠진 인간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들의 자기기만 때문입니다.”(87-88)

 

* 나의 논평. 1) “우리는 진리 위에 기초한 독트린을 원합니다.”(64) 사실, 있는 그대로? 진실성, 진정성. 사르트르는 진리와 허위의식, 진실과 오류(혹은 자기기만), 본래적인 것과 비본래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받아들인다. 2) 사르트르는 보편성과 절대성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3) 사르트르는 데카르트적 주체가 갖는 코기토의 단일성을 여전히 신뢰한다. 4) 사르트르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니체적인 힘에의 의지 사이의 관련은 어떤 것일까? 5) 사르트르에게는 서양성과 보편성이 일치되어 있다. 서양인, 아니 1945년의 프랑스인의 실존과 사유가 인간 및 그 사유 구조 자체로 설정되어 있다. 유럽적 보편성의 보편성 문제.

 

1946년(41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유태인 문제 고찰』(Réflexions sur la question juive), 희곡 『더러운 손』(Les Mains sales), 『무덤 없는 주검』(Morts sans pulture)출간.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 공동 발기인으로 창간. 1947년(42세). 『출구 없는 방』, 『일은 벌어졌다』(Les Jeux sont faits), 『존경할만한 창녀』(La Putain respectueuse), 『상황 1』(Situations, 1), 『보들레르』(Baudelaire) 출간. 1948년(43세).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érature?, 정명환 옮김, 민음사) 출간. 희곡 『더러운 손』(Les Mains sales) 출간. <톱니바퀴>. 사후에 출판될 「진실과 실존(Verité et existence) 집필. 1949년. 『자유의 길』 제3권 <비탄에 빠져>(La Mort dans l'âme), 『상황 3』 <정치논쟁> <단장> 출간. 1951년(46세). 희곡 3막 11장극 『악마와 선신』(Le Diable et le bon Dieu) 출간. 1952년(47세). 카뮈와 논쟁. 『생-주네, 희극배우 혹은 순교자』(Saint-Genet Comédien et Martyr) 출간. 메를로-퐁티, 현대 지의 공동 편집인 사임. 1953년(48세). <앙리 마르텡 사건>(L'Affaire Henri Martin) 출간. 1954년(49세). 러시아와 중국 여행.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킨』(Kean) 각색 출간. 1955년. 메를로-퐁티, <변증법의 모험>(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출간, 사르트르를 비판. 1956년. 희곡 『네크라소프』(Nekrassov). 1957년(52세). 「1957년의 실존주의의 현 상황」(나중에 폴란드 잡지에 「방법의 문제」로 실리게 될 논문.

 

1958년(53세). <프로이트의 일생>에 대한 영화 대본 작업. 3막극 <새로운 길> 출간. 1960년(55세). 『변증법적 이성 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 박정자ㆍ윤정임ㆍ변광배ㆍ장근상 옮김, 나남) 제1권을 <방법의 문제>(Question de la methode)를 서문으로 하여 출간. <방법의 문제>는 현대지에 「실존주의와 마르크시즘」(Existentialisme et Marxisme)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바 있음. 희곡 5막극 『알토나의 유폐자들』(Les S questr s d'Altona) 출간. 쿠바 방문. 1961년(56세). 메를로-퐁티 사망. 그를 위한 조사를 발표. 1962년(57세). 「스탈린의 유령」 집필. 1963년(58세). <상황 Ⅳ> 출간.

 

1964년(59세). 노벨 문학상 거부. 『말』(Les Mots, 정명환 옮김, 민음사), <상황 Ⅴ> 출간. 1965년(60세). 일본 도쿄에서 강연 <지식인을 위한 변명>(Plaidoyer pour les intellectuels, 박정태, 이학사)을 행함. 유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자들』(Les Troyennes) 각색. 1966년(61세). 『상황 7』 출간. 1971년(66세). 『집안의 천치』(L'Idiot de la famille) 1, 2권 출간. 1972년(67세). 『상황 8』, 『상황 9』 출간. 『집안의 백치』 3권 출간. 1976년(71세). 『상황 10』 출간. 영화 <사르트르 자신에 의한 사르트르> 출시. 1980년 4월 15일. 파리에서 영면. 향년 75세. 1983년. 『윤리학을 위한 수첩』(1947-48년) 출간. 1985년. 『변증법적 이성 비판』 제2권 출간. 1989년 - 『진실과 실존』(1948년) 출간.

 

 

지식인을 위한 변명

 

“지식인을 향한 이 모든 비판에는 지식인이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 인간과 사회라는 보편 개념(오늘날 인간과 사회라는 개념은 사실상 불가능한 개념, 다시 말해서 추상적이고 그릇된 개념입니다)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기존의 진리와 이 기존 진리 위에 성립된 행위 전체에 저항할 것을 선동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깔려 있습니다. [...] 이 모든 휴머니즘은 모두 부르주아적 휴머니즘입니다.”(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