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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9. 30.

국립극단 4 - 푸코


국립극단 연극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 '월요일 오후 다섯 시'

9월 강좌 - '연극적인 너무나 연극적인- 니체, 카뮈, 사르트르, 푸코' , 제4강 푸코




http://www.ntck.or.kr/Home/Archive/Video/Video.aspx


http://www.youtube.com/watch?v=6_SJ9u2LhMY

2013. 9. 22.

국립극단 3 - 사르트르


장-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 1905-1980

 

 

- 로버트 베르나스코니, 『HOW TO READ 사르트르』,변광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8.

- 변광배, 「장 폴 사르트르, 타자를 발견하다」, 『처음 읽는 프랑스철학』, 동녘, 2012.

- 변광배, 『존재와 무. 자유를 향한 실존적 탐색』, e-시대의 절대사상, 살림, 2005.

- 로널드 애런슨, 『사르트르와 카뮈. 우정과 투쟁』, 변광배ㆍ김용석 옮김, 연암서가, 2011.

- 안니 코엔 솔랄, 『사르트르』(상ㆍ중ㆍ하), 창, 2012.

- 변광배ㆍ정명환 외, 『실존과 참여. 한국의 사르트르 수용 1948-2007』, 문학과지성사, 2012.

- 박정자, 『빈센트의 구두. 하이데거, 사르트르, 푸코, 데리다의 그림으로 철학읽기』, 기파랑, 2012.

- 조광제,『존재의 충만. 간극의 현존』(1, 2), 그린비, 2013.

- 지영래, 『집안의 천치. 사르트르의 플로베르』, 고려대학교 출판부, 2009.

 

 

 

1905년 6월 21일. 파리에서 출생. 1907년. 아버지 사망, 외가인 슈바이처(Schweitzer)가에 들어감.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한 유명한 의사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는 사르트르의 어머니의 사촌. 1915년. 파리의는 앙리 4세(Henri IV) 학교에 입학, 초등교육을 받음. 1916년. 어머니 재혼, 어머니를 따라 라 로셸(La Rochelle)로 이사. 1917년. 라 로셸의 중학교에 입학. 1919년. 파리의 루이-르-그랑(Louis-le-Grand) 고등학교에 입학. 1921년(16세). 대학입학 국가고시 제1부 합격, 1922년(17세). 대학 입학 국가고시 제2부 합격. 1924년(19세).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érieure)에 입학, 철학을 전공하며(1929년까지) 교수자격 시험(agrégation)을 준비.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와 만남. 1926년(21세). 나중에 「상상」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될 논문 완성. 1928년(23세). 고등 사범학교 졸업.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의 『일반 정신병리학』 공역. 1929년(24세). 교수 자격을 얻음. 1929년(25세) - 군에 입대, 투르(Tours)에서 기상병으로 복무(1931년까지). 1931년(26세). 르 아브르(Le Havre)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 1933년(28세). 독일 유학. 베를린의 프랑스 문화원(Institut Français)에서 1년간 장학금을 받아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과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를 연구. 1933년. 코제브(Kojeve)가 헤겔를 강의 시작(1939년까지). 프랑스에 헤겔 사상이 처음으로 도입된 계기. 1934년. 베를린에서 돌아와 르 아브르 고등학교에 복귀. 「자아의 초월」 집필.

 

 

 

1936년(31세). 라옹(Laon) 고등학교 철학 교사. 『상상력』(L'Imagination, P.U.F., 지영래 옮김, 기파랑) 출간. 1937년(32세). 파리의 파스퇴르(Pasteur) 고교로 전근(1939년까지 근무). 『자아의 초월성』(Transcendance de l'Ego) 출간. 1938년(33세).『구토』(La Nausée, 방곤 옮김, 문예출판사) 출간. 1939년(34세).『정서론 소묘』(Esquisse d'une théorie des émotions), 단편집 『벽』(Le Mur, 김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 출간. 「지향성, 후설 철학의 한 기본 개념」 집필. 군에 소집.

 

HOW TO READ 사르트르

 

 

“실재론과 관념론의 논쟁이 문제였던 것이다. 실재론은 전통적으로 물질이 정신과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관념론은 대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유일한 사물은 정신 속에 있는 비물질적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 <자, 당신은 이 나무를 보고 있다. [...] 의식과 세계는 동시에 주어졌다. 본질적으로 의식의 외부에 있는 세계는 본질적으로 이 의식과 상관적이다. [...] 후설은 이처럼 의식이 자기와는 다른 것으로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바로 ‘지향성’(Intentionalität)이라고 부른다. [...] 결국 모든 것은 외부에 있다. 심지어는 우리 자신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외부에, 세계 속에, 타인들 틈에 존재하는 것이다.>(「지향성」) [...] 후설은 이 개념[지향성]을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브렌타노(Franz Brentano, 1838-1917)에게서 빌려 왔고, 그와 마찬가지로 이 개념을 ‘모든 의식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라고 정의한다. 의식은 사물과 같은 것이 아니라 이 사물을 향한 방향성인 것이다.”(31-36) “의식은 관계를 맺는 사물을 떠나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알 수 없다. 「지향성」에서 사르트르는 인간존재에게서 ‘실존한다’는 것이 어떻게 ‘세계=내-의식으로서 갑잡스럽게 솟아오르기 위해 세계와 의식의 무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이 되는가를 기술한다. [...] 의식과 관계된 ‘무’(無) 개념은 이제[『존재와 무』에서] 하나의 수동적인 ‘비존재’가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의식 자체가 기투를 하는 미래 세계로의 탈주로 나타난다. 그 결과 사르트르는 의식과 관계 있는 ‘무’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애]벌레처럼 존재의 한복판에 자리잡는 것’이라는 비유를 사용한다. [...] 『존재와 무』에서 사르트르는 의식의 의미로 사용되는 대자존재(對自存在)와 사물의 의미로 사용되는 즉자존재(卽者存在)의 구별을 도출해낸다.”(45-46)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 여기가 바로 지옥이군요. 난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우리가 고문실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겠지요. 불, 유황, ‘초열지옥’,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 붉게 달군 쇠꼬챙이는 필요 없어요! 타인, 그것이 지옥이니까요.”(<닫힌 방>, 50-52) “사르트르의 입장에서 보면 [주인공] 가르생은영웅이 되기보다는 비겁자가 되는 것이 더 쉽다. 적어도 탁자가 되는 방식으로는 말이다.”(54) “하이데거는 인간은 ‘함께 있는 존재’(Mitsein)로 설명한다. 사르트르의 주장에 따르면, 이 표현은 ‘우리’ 모두가 한 편에 속해 있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의식들 사이에 정립되는 관계의 본질은 함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갈등이다.’”(56)

 

즉자존재(卽者存在 l'être-en-soi): 사물 chose, thing

대자존재(對者存在, l'être-pour-soi): 의식[=나(自我, moi, ego) + 타인(他人, autrui, autre, others)]

즉대자존재(卽對者存在, l'être-en soi-et-pour-soi): 신 dieu, god

 

le regard 視線 - 타인(신), 나를 바라보면서 나를 대상화하는(사물화 하는) 자!

 

* 타자(他者, l'autre, the other) = 타자성(他者性) otherness

 

 

“카페의 종업원을 생각해보자. 그는 민첩하지만, 좀 지나칠 만큼 정확하고 약삭빠르다. 그는 좀 지나치게 민첩한 걸음으로 손님 앞으로 다가온다. 그는 약간 지나치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즉 그의 목소리, 그의 눈은 손님의 주문에 지나칠 만큼 주의를 기울이는 듯하다. 마침내 그가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걸음걸이에 어딘지 모르게 로봇 같은 어색하고 뻣뻣한 태도를 흉내 내려고 애쓰면서 곡예사와도 같은 가벼운 몸짓으로 접시를 가져온다. 접시는 항상 불안정한, 균형을 잃은 상태가 되지만, 종업원은 그때마다 팔과 손을 가볍게 움직여 균형을 되찾는다. 그의 모든 행위가 우리에게는 놀이처럼 보인다. 그는 카페의 종업원이라는 연기를 하고 있다. 카페의 종업원은 작기 신분을 가지고 놀며 신분을 실현한다. / 내면의 비슷한 상황에서 카페의 종업원은, 이 잉크병이 잉크병으로 ‘있다’는 의미에서, 컵이 컵으로 ‘있다’는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카페의 종업원으로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카페 종업원의 역할을 완수하려고 해보았자 소용없다. 결국 배우가 햄릿인 것과 같이 나는 중립적인 방식으로서만 카페의 종업원일 수 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내가 내 신분의 전형적인 몸짓을 기계적으로 행함으로써이며, 내가 ‘유비물’(analogon)로서의 이런 몸짓을 통해 상상적인 카페의 종업원으로서의 나를 지향함으로써이다.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카페 종업원의 즉자 존재다. 마치 내가 온갖 방면에서 그것을 초월하지 않고 현존하는 이 역할을 유지하는 바로 그 사실처럼, 내가 내 신분을 ‘넘어서’ 자신을 구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어떤 의미에서 카페의 종업원으로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스스로를 외교관이나 신문기자로 지칭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러나 내가 카페 종업원으로 있다 해도 즉자 존재의 방식으로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있는 그대로가 아닌 방식으로 카페의 종업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존재와 무』, 62-64).

 

 

자기 기만(mauvaise foi). “카페 종업원의 예로서 사르트르가 말하고자 한 핵심은 의식은 결코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물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의식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사물을 즉자존재(혹은 즉자)로, 의식을 대자존재(대자)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비록 의식이 자체를 직접 대상으로 삼지는 않지만, 자체를 인식한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기 인식으로 인해 의식의 한복판에 일종의 균열 혹은 파열이 생긴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의식은 결코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 대신 의식은 부정의 형식으로 그 자신으로부터 항상 벗어나면서 계속 자기 자신을 이어가는 것이다. [...] 대상을 향한 의식 작용의 직접성은 의식 자체의 초월성 즉 미래를 향해 기투하는(企投, projecter) 그 자신의 가능성이라는 빛 속에서 대상을 파악하는 힘을 통해 가능해진다. 따라서 나는 이 세계를 존재 가능성으로 파악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 세계를 파악하는 것은 내가 존재하는 대로가 아니라, 아닁 존재 가능성의 입장에서 파악하기 때문이다. [...] 이는 내가 아무리 손님들에게 한 명의 종업원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는 내 자신에게 있어서는 종업원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나는 단지 내일이라도 이 직업을 당장 그만둘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은 오직 나의 다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 인간은 사무링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각할 능력이 없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64-69)

 

인간은 - 의식이 결여된 존재로서의 ‘사물’도, 의식의 존재와 미래가 일치하는 충만한 존재로서의 ‘신’도 아닌 - 단지 하나의 쓸모없는 정열(passion inutile)!

 

1940년. 6월 21일 로렌느지방의 파우두에서 독일군에 포로가 됨. 『상상적인 것. 상상의 현상학적 심리』(L'Imaginaire : Psychologie Ph nom no-logique de l'imagination) 출간. 1941년(36세). 4월 1일 민간인을 가장하여 석방됨. 프랑스로 돌아와 파스퇴르 고교 복직. 1942년(37세). 파리의 콩도르세(Condorcet) 고교로 전근(1944년까지 근무). 레지스탕스 운동.

 

1943년(38세) - 『존재와 무. 현상학적 존재론에의 한 시도』(L'Etre et le Néant, Essai d'ontologie phénom nologique, 손우성 옮김, 을유문화사), 희곡 3막극 『파리떼』(Les Mouches) 출간. 희곡 <닫힌 문> 출간. 1944년(39세). 희곡 「출구 없는 방」(Huis clos) 초연. 1945년(40세). 종전. 고교 교사직을 떠나 생-제르멩-데-프레 가의 카페를 전전하며 집필 활동에 전념. 이때부터 실존주의의 대중적 인기 폭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L'Existentialism est un humanisme, 박정태 옮김, 이학사)이라는 제목으로 강연. 비공산주의 계열의 좌익 정당을 창당하려 했으나 실패. 미국에서의 순회 강연 시작(1946년까지). 연작소설 『자유의 길』(Les Chemin de la libert ) 제1권 <철들 무렵>(L'Age de raison), 제2권 <유예>(Le Sursis) 출간.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종이 자르는 칼과 인간.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l'existence précède l'essence(29). “인간 본성이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 본성을 구상하기 위한 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구상하는 무엇이며 또한 인간은 스스로가 원하는 무엇일 뿐입니다. [...]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것과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실존주의의 제1원칙입니다. 또한 이것은 사람들이 주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 주체성이라는 말로 우리는 인간은 먼저 실존한다는 사실을, 즉 인간은 우선적으로 미래를 향해서 스스로를 던지는 존재요, 미래 속에 스스로를 기투(企投, projecter)하는 일을 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33-34) “그런데 이 말은 인간이 모든 인간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우리가 인간은 스스로를 선택한다고 말할 때, 이 말은 우선 우리 각자가 스스로를 선택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우리 각자가 이처럼 스스로를 선택함으로써 모든 인간을 선택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되기 원하는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는 그 자체가 또한 우리가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인간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위 중에 그렇지 않은 행위는 하나도 없습니다.”(35-36)

 

“도스토예프스키는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바로 이것이 실존주의의 출발점입니다. 실제로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따라서 그 결과 인간은 홀로 남겨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인간은 자기의 안에서도, 또 자기의 밖에서도 그가 매달릴 만한 그 어떤 가능성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선 그는 핑계꺼리를 찾지 못합니다. 만약 정말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간은 결코 응고된 채 주어진 그 어떤 인간 본성에 의존하여 설명을 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해서 결정론[운명론]이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로우며, 인간은 바로 그 자유입니다. 한편 신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실을 정당화시켜줄 가치나 질서를 우리의 앞에서 찾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 어떤 핑계도 배제된 채 홀로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 l'homme est condamné à être libre 고 말하면서 표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고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자신이 스스로를 창조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세계 속에 던져진 이상, 인간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실존주의자는 열정[정열]의 힘을 믿지 않습니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자신의 열정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존주의자는 또한 이땅 위에 주어진 그 어떤 징표 속에서 자신에게 방향을 알려줄 도움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자기 좋을 대로 징표를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존주의자는 인간은 그 어떤 뒷받침도,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매 순간 인간을 발명하도록 선고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퐁주 francis ponge 는 그의 매우 아름다운 글에서 ‘인간은 인간의 미래다 l'homme est l'avenir de l'homme’라고 말했습니다.”(44-45) 레지스탕스 운동과 홀어머니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제자의 이야기. “하지만 어떤 것이 가장 힘든 길일까요? 전우와 어머니 중에서 과연 누구를 형제처럼 사랑해야 할까요? 어느 일이 가장 큰 효율이 있을까요? 누가 그것을 선천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없습니다. [...] 내가 그를 보았을 때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입니다. 어느 한 방향으로 나를 진정 떼미는 것을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청년의 경우 어떤 한 감정의 가치를 도대체 어떻게 결정한다는 걸까요? 어너미를 위한 그 감정의 가치를 만들고 있었던 것,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정확하게 말해서 그것은 그가 어머니를 위해서 머물러 있다는 사실, 바로 그것입니다.”(48-49) “이와 같이 그 청년은 나를 찾아오면서 내가 그에게 주어야 할 대답을 알고 있었으며, 나 또한 그에게 주어야 할 대답이 단 하나밖에는 없었습니다. ‘자네는 자유롭네, 그러니 선택하게, 즉 발명하게’라는 대답 말입니다. 그 어떤 도덕도 여러분에게 해야 할 것을 지시해 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징표란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청년의 선택, 예수회 사제. 결국 이 모든 것을 놓고 볼 때, 그는 징표 해독에 대해서 전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홀로 남겨졌다는 것, 그것은 이처럼 우리 존재를 우리 자신 스스로가 선택한다는 것을 함축합니다.”(51-53)

 

“만약 졸라가 자신의 소설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만약 우리가 이 존재들은 유전으로 인해, 환경과 사회의 영향으로 인해, 유기적[유전적] 또는 심리적 결정론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선언할 경우, 사람들은 곧 안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바로 그거야. 우리는 원래 그런 존재인 거야. 그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선 어쩔 수가 없는 거야.’ 그러나 실존주의자가 비겁한 사람을 묘사할 때, 그는 이 비겁한 사람이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비겁한 사람은 그가 비겁한 심장, 비겁한 허파 또는 비겁한 뇌를 가져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비겁한 사람은 결코 생리학적 조직 때문에 비겁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비겁한 것은 그가 자신의 행위를 통해서 스스로를 비겁한 자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비겁한 기질이란 없습니다. 신경질을 잘 내는 기질은 있습니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소심한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비겁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한 인간을 비겁하게 만드는 것은 포기 혹은 굴복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기질은 행위가 아닙니다. 비겁한 사람은 그가 행한 비겁한 행위로부터 정의되는 것입니다. 비겁한 사람은 자신의 비겁함에 대해서 죄가 있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사람들이 원래부터 비겁하거나 영웅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 그 근본을 볼 때, 사람들은 결국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이 비겁하게 태어날 경우 여러분은 완벽한 편안함을 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비겁하게 태어난 것에 대해 어떤 책임도 없으므로, 여러분은 일생 동안 비겁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영웅으로 태어나도 마찬가지로 완벽한 편안함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실존주의자는 비겁한 사람은 스스로를 비겁하게 만든다는 것, 영웅을 스스로를 영웅으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비겁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비겁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영웅에게는 영웅을 그만 둘 가능성이 언제나 있는 법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적인 앙가주망(engagement 참여)입니다.”(59-62)

 

“각각의 인간 속에서 인간 본성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 본질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조건이라는 인간적 보편성은 존재합니다.”(66) 실존주의에 대한 반론에 대한 사르트르의 답변. 그럼 인간들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간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올바른 문제제기가 아닙니다. 선택은 사실 한 방향으로만 가능합니다. 다시 말해 불가능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선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언제라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설령 내가 선택을 하지 않더라도 이 경우 나는 여전히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71-72)

 

“차라리 우리는 도덕적 선택이란 예술작품의 제작과 비교해서 생각해보아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이는 미학적 도덕과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 예술가가 그려야 할 그림이 어떤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나요? 반드시 그렇게 그려야 할 것으로 정의된 그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예술가는 자신의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자신에게 앙가제한다는 것, 그려야 할 그림이란 정확하게 예술가 자신이 그리게 될 그림입니다. 마찬가지로 선천적인 미학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에술과 도덕 사이에 공통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두 경우 모두 우리가 창조와 발명을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선천적으로 결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를 찾아온 학생이 칸트의 도덕이나 다른 도덕 등 모든 도덕에 대해 호소해 보았지만 결국 그 어떤 종류의 지시사항도 찾아낼 수 없었던 경우를 통해 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학생은 그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법칙을 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이지, 이미 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은 자신의 도덕을 선택하면서 스스로를 만들어갑니다.”(72-75)

 

“그러나 스스로를 자기기만적인 방식으로 선택하면 왜 안 됩니까? [...] 자기 기만은 스스로의 정의에 의해서도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기만은 앙가주망이라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전적인 자유를 은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가 자기 기만을 원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당신이 그러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그 경우 당신이 자기를 기만한다고 말하겠습니다. 자신이 원한다고 자기 기만이 기만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76-77)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치를 발명한다는 말은 삶은 그 어떤 선천적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이외에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살기 이전에 삶이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며, 이때 가치는 여러분이 선택하는 바로 그 의미와 다른 것이 아닙니다.”(83)

 

“실존주의자는 결코 인간을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만들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 인간은 계속해서 자기 자신의 바깥에 있습니다. [...] 우리가 말하는 것이 휴머니즘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이것을 통해 우리가 사람들에게 인간 그 자신 외에는 다른 입법자가 없다는 사실, 인간은 자기 홀로 남겨진 상태에서 스스로에 대하여 결정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또 이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정확하게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실현하는 일은 인간 자신에게로 돌아감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 자신의 밖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자유이자 특수한 실현인 어떤 목표를 찾음으로써[발명함으로써]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85-86)

 

“실존주의는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하려고 힘을 쏟는 그런 의미에서의 무신론이 아닙니다. 실존주의는 차라리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신이 실존한다고 하더라도 이 신의 실존은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관점입니다. 인간 스스로가 인간을 되창아야 하며, 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인간을 인간 자신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실존주의는 낙관론이자 행동의 독트린입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자신들 고유의 절망과 우리의 절망을 혼동한 나머지 우리를 절망에 빠진 인간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들의 자기기만 때문입니다.”(87-88)

 

* 나의 논평. 1) “우리는 진리 위에 기초한 독트린을 원합니다.”(64) 사실, 있는 그대로? 진실성, 진정성. 사르트르는 진리와 허위의식, 진실과 오류(혹은 자기기만), 본래적인 것과 비본래적인 것 사이의 구분을 받아들인다. 2) 사르트르는 보편성과 절대성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3) 사르트르는 데카르트적 주체가 갖는 코기토의 단일성을 여전히 신뢰한다. 4) 사르트르의 자유를 향한 의지와 니체적인 힘에의 의지 사이의 관련은 어떤 것일까? 5) 사르트르에게는 서양성과 보편성이 일치되어 있다. 서양인, 아니 1945년의 프랑스인의 실존과 사유가 인간 및 그 사유 구조 자체로 설정되어 있다. 유럽적 보편성의 보편성 문제.

 

1946년(41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유태인 문제 고찰』(Réflexions sur la question juive), 희곡 『더러운 손』(Les Mains sales), 『무덤 없는 주검』(Morts sans pulture)출간. 잡지 『현대』(Les Temps Modernes) 공동 발기인으로 창간. 1947년(42세). 『출구 없는 방』, 『일은 벌어졌다』(Les Jeux sont faits), 『존경할만한 창녀』(La Putain respectueuse), 『상황 1』(Situations, 1), 『보들레르』(Baudelaire) 출간. 1948년(43세). 『문학이란 무엇인가?』(Qu'est-ce que la littérature?, 정명환 옮김, 민음사) 출간. 희곡 『더러운 손』(Les Mains sales) 출간. <톱니바퀴>. 사후에 출판될 「진실과 실존(Verité et existence) 집필. 1949년. 『자유의 길』 제3권 <비탄에 빠져>(La Mort dans l'âme), 『상황 3』 <정치논쟁> <단장> 출간. 1951년(46세). 희곡 3막 11장극 『악마와 선신』(Le Diable et le bon Dieu) 출간. 1952년(47세). 카뮈와 논쟁. 『생-주네, 희극배우 혹은 순교자』(Saint-Genet Comédien et Martyr) 출간. 메를로-퐁티, 현대 지의 공동 편집인 사임. 1953년(48세). <앙리 마르텡 사건>(L'Affaire Henri Martin) 출간. 1954년(49세). 러시아와 중국 여행.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킨』(Kean) 각색 출간. 1955년. 메를로-퐁티, <변증법의 모험>(Les Aventures de la dialectique) 출간, 사르트르를 비판. 1956년. 희곡 『네크라소프』(Nekrassov). 1957년(52세). 「1957년의 실존주의의 현 상황」(나중에 폴란드 잡지에 「방법의 문제」로 실리게 될 논문.

 

1958년(53세). <프로이트의 일생>에 대한 영화 대본 작업. 3막극 <새로운 길> 출간. 1960년(55세). 『변증법적 이성 비판』(Critique de la Raison dialectique, 박정자ㆍ윤정임ㆍ변광배ㆍ장근상 옮김, 나남) 제1권을 <방법의 문제>(Question de la methode)를 서문으로 하여 출간. <방법의 문제>는 현대지에 「실존주의와 마르크시즘」(Existentialisme et Marxisme)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바 있음. 희곡 5막극 『알토나의 유폐자들』(Les S questr s d'Altona) 출간. 쿠바 방문. 1961년(56세). 메를로-퐁티 사망. 그를 위한 조사를 발표. 1962년(57세). 「스탈린의 유령」 집필. 1963년(58세). <상황 Ⅳ> 출간.

 

1964년(59세). 노벨 문학상 거부. 『말』(Les Mots, 정명환 옮김, 민음사), <상황 Ⅴ> 출간. 1965년(60세). 일본 도쿄에서 강연 <지식인을 위한 변명>(Plaidoyer pour les intellectuels, 박정태, 이학사)을 행함. 유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자들』(Les Troyennes) 각색. 1966년(61세). 『상황 7』 출간. 1971년(66세). 『집안의 천치』(L'Idiot de la famille) 1, 2권 출간. 1972년(67세). 『상황 8』, 『상황 9』 출간. 『집안의 백치』 3권 출간. 1976년(71세). 『상황 10』 출간. 영화 <사르트르 자신에 의한 사르트르> 출시. 1980년 4월 15일. 파리에서 영면. 향년 75세. 1983년. 『윤리학을 위한 수첩』(1947-48년) 출간. 1985년. 『변증법적 이성 비판』 제2권 출간. 1989년 - 『진실과 실존』(1948년) 출간.

 

 

지식인을 위한 변명

 

“지식인을 향한 이 모든 비판에는 지식인이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 인간과 사회라는 보편 개념(오늘날 인간과 사회라는 개념은 사실상 불가능한 개념, 다시 말해서 추상적이고 그릇된 개념입니다)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기존의 진리와 이 기존 진리 위에 성립된 행위 전체에 저항할 것을 선동하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깔려 있습니다. [...] 이 모든 휴머니즘은 모두 부르주아적 휴머니즘입니다.”(12, 30)

 

 

 

2013. 9. 16.

국립극단 2 - 카뮈

내가 상상한 대로의 알베르 카뮈 albert camus tel que je l'imagine, 1913-1960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알베르 카뮈 출생. 부친 뤼시앵 카뮈는 1871년에 알제리로 이주한 알자스 지방 출신으로 포도농장의 저장창고 노동자였다. 모친 카트린 생테스는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 출신으로 9남내 중 둘째였다.


1914년 8월 2일. 제1차 세계대전. “나는 내 또래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1차 세계대전의 북소리를 들으며 자랐고, 우리의 역사는 그때 이후 끊임없이 살인, 부정, 혹은 폭력의 연속이었다.”(『여름』중 「수수께끼」) 그의 부친은 보병연대에 징집되어, 마른 전투에서 부상, 생 브리외크 병원에서 사망, 생 브리워크에 매장되었다. 그의 모친은 알제로 돌아와 벨쿠르라는 서민 지역(리용 가 93번지)에 정착했다. 카뮈는 방 두 개짜리 아파트에서 지내며, 처음에는 화약 제조공장에서 일하다가 나중에는 가정부 일을 하게 되는 “거의 말을 안하고 지내 벙어리가 되다시피 한”(『안과 겉』 중 「긍정과 부정의 사이」) 어머니나, 자못 권위적이고 희극적인 할머니 카트린 카르도나, 그리고 통 수리공인 불구의 삼촌 에티엔(『적지와 왕국』) 및 형 뤼시앵과 함께 가난하게 자란다. “나는 마르크스를 통해 자유를 배운 것이 아니다. 가난을 겪으면서 자유를 배웠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시사평론』 제 1권).


1918~1923년. 초등학교 재학시, 교사 루이 제르맹으로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는다. 그는 수업 종료 후에도 카뮈를 지도해주고 중고등학교장 선발시험에 추천, 응시하도록 한다. 후에 카뮈는 노벨상 수상 연설집(스웨덴 연설)을 그에게 헌정하게 된다. 1923~1930년. 카뮈, 알제의 뷔조 중고등학교(문리과반의 반 기숙학생). 1926년. 지드의 『사전(私錢)꾼들』, 말로의 『서양의 유혹』. 1928년. 말로의 『정복자』 정독. 1928~1930년. 알제 대학교 축구팀의 골키퍼. “내가 나의 축구팀을 그렇게도 사랑했던 이유는 결국, 열심히 뛰고 난후에 뒤따르는 나른한 피곤함과 더불어 느껴지는 저 기막힌 승리의 기쁨 때문이었고, 또한 패배한 날 저녁이면 맛보게 되는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은 그 어리석은 충동 때문이었다.”(알제대학 주보)
 
1929~1930년. “처음으로 앙드레 지드를 읽게 된 것은 내가 16세 때였다. 나의 교육의 일부를 책임 맡았던 삼촌이 때때로 나에게 책들을 주곤 했다. 푸줏간 주인인 그는 장사가 아주 잘 되었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거리는 독서와 사상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는 아침 나절에만 장사에 몰두하고, 나머지 시간은 서재에서 책을 읽거나 동네 카페에 나가 이야기와 토론으로 소일하곤 했다. 어느 날 그는 나에게 양피 커버로 너 조그만 책 한 권을 빌려주면서 ‘너의 관심을 끌 책’이라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 즈음 나는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읽어대던 중이라, 『여인들의 편지』(마르셀 프레보) 읽기를 끝낸 후에, 삼촌이 건네준 『지상의 양식』을 펼쳐 보았다. 이 책의 기도하는 듯 한 문장들은 나에게 모호하게 느껴졌다. 자연이 주는 재화들에 대한 찬송 앞에서 어리둥절했다. 나는 16세 때 알제에서 이와 같은 종류의 풍요함을 벌써 실컷 맛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나는 다른 종류의 풍요함을 희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 나는 그 책을 삼촌에게 돌려주면서 아닌 게 아니라 그 책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해변가를 거닐거나 느긋하게 공부하거나 또는 한가하게 독서하면서 그 고달프기만 한 내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이리하여 진정한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지드에게 보내는 경의」)
 
1930년. 말로의 『왕도』, 문과반에서 장 그르니에를 스승으로 삼게 된다. 폐결핵 발병. 요양에 부적당한 집을 떠나, 우선 무정부주의자이며 볼테르 숭배자인 푸줏간주인 귀스타브 아코 삼촌 집에 기거하고, 기흉으로 앓는 동안 입원했다가 후에는 독립생활을 하며,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함께 알제의 이곳저곳을 옮겨가며 생활하게 된다. 1932년. 문과 학업 계속. 학창시절 친구로 클로드 드 프레맹빌과 앙드레 벨라미슈를 사귀는데, 후자에게 카뮈는 나중에 로르카(스페인 시인, 극작가)의 번역을 맡기게 된다. 폴 마티외 교수와 장 그르니에 교수와도 친분을 나누는데, 특히 철학자이며 문필가인 후자와의 친분은 오래도록 변함없이 계속된다(카뮈는 후에 그르니에 교수에게 『안과 겉』, 『반항인』을 헌정하고, 은사의 저서 『섬』의 서문을 쓴다). “장 그르니에 교수를 만났다. 그 역시 나에게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내밀었다. 『고통』(La Douleur)이라는 제목의 앙드레 드 리쇼Andre de Rechaud의 소설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훌륭한 책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그 책은 내가 경험해서 아는 것들, 즉 어머니라든가 가난이라든가 아름다운 저녁 하늘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나에게 이야기해준 책이다. 습관대로 하룻밤새에 그 책을 다 읽어 치웠다. 다음 날 잠에서 깨었을 때, 낯설고 새로운 자유를 가슴에 안고 나는 머뭇거리며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책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망각과 심심파적만이 아니라는 교훈을 터득한 것이었다. 나의 집요한 침묵, 지독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기묘한 이 세상, 내 가족들의 그 고결성과 가난,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 등, 이 모든 것이 이야기될 수 있는 것이었다. 『고통』이라는 책으로부터 나는, 지드가 장차 나를 유인하여 끝어들이게 될 창작의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막연하게나마 우선 엿볼 수 있었다.”(「지드에게 보내는 경의」). 1932년. 잡지 『쉬드』에 4편의 글을 발표.


1933년 1월 30일. 히틀러 권력 장악, 카뮈는 앙리 바르뷔스와 로맹 롤랑에 의해 주도된 암스테르담-플레이엘 반파쇼 운동에 가입, 투쟁한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조건』, 마르셀 프루스트 작품 탐독.(『반항적 인간』 중 「소설과 반항」). 장 그르니에의 『섬』 발간. 짧은 에세이들로 구성된 이 책은 실존의 문제들을 다루면서 아이러니하고 시적인 문체로 강한 회의주의를 표명함으로써 카뮈로 하여금 그르니에를 사상적 스승으로 여겨 언제나 그 영향 입은 바를 잊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안과 겉』, 『결혼』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술은 신성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예술은 신성함에 이르는 하나의 수단이다. 혹자는 우리가 예술을 하나의 수단으로 간주함으로써 예술의 가치를 깎아내린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수단이 목적보다 더 아름답고 탐구가 진리 그 자체보다 더 아름답다.”(「합일속의 예술」, I, 143)
 
1934년 6월. 시몬 이에와 결혼, 2년 후에 이혼. 발레아르로 여행. 1934년 말.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 가입. 이슬람 계층에서의 선전 임무가 부여된다. 카뮈의 친구들은 그가 1937년까지 공산당원증을 갖고 다녔다고 말하고 있다.
 
1935년. 말로의 『모멸의 시대』. 『안과 겉』 집필 시작. “나로서는, 나의 원천이 「안과 겉』속에, 내가 오랫동안 몸담아 살아온 그 가난과 빛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세계의 추억이 지금도, 모든 예술가들을 위협하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위험, 즉 원한과 만족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카뮈는 그에게 지급된 대여 장학금으로 알제 대학에서 철학공부를 계속한다. 그러나 또한 생계 수단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했다. 이 해에 정기적으로 대학 관상대에 나가 일하면서 남부 지방의 기압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곤 했다. 또 그는 자동차 부속품을 팔거나, 선박중개인에게 고용되기도 했고(뫼르소), 시청직원으로 일하기도 했다(그랑은 시청 직원으로 『페스트』에 등장한다).
 
1936년. 플로티노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통한 헬레니즘과 기독교의 관계를 주제로 한 철학 졸업논문(D.E.S.S.) 제출. 제목은 「기독교적 형이상학과 신플라톤 철학」. 에틱테토스, 파스칼, 키에르케고르, 말로, 지드 등의 작품 탐독. 3월 7일. 독일군의 레난 지방 재점령. 5월. 프랑스에서 인민전선 득세. 6~7월. 중앙 유럽 여행, 파경. 7월 17일. 스페인 내란. 1935-193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카뮈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문화원의 책임을 맡았고 ‘노동극단’을 창단하였다. 이 극단을 위하여 세 명의 동료와 함께 「아스튀르의 반란」을 집필했으나 상연 금지되었으며, 후에 샤를로 출판사에서 출판된다. 가브리엘 오디치와 샤를로를 중심으로 ‘참다운 풍요’라는 기치 아래 지중해 문학운동이 전개된다.
 
1936년~1937년. 알제 라디오 방송극단의 배우로서 한 달에 15일씩 방방곡곡을 순회공연. 1937년 2월. 문화원에서 새로운 지중해 문화에 관해 강연. 5월 건강상의 이유로 철학교수 자격시험 응시 거부당함. 5월 『안과 겉』 출간.
 
“삶에 대한 절망 없이는 삶에 대한 사랑도 없다.”(서문, I, 212) “큰 용기란 빛을 향해서도 죽음을 향해서도 두 눈을 똑 바로 뜨고 직시하는 일이다.”(안과 겉, 277)
 
1937년 8~9월. 말로에 관한 평론 계획. 요양을 위해 앙브룅에서 체류. 이어 마르세유, 제노바, 피사를 거쳐 피렌체 여행. 명증하고 고뇌에 찬 열정의 시기로서 『결혼』이 그 결실. 미발표의 『행복한 죽음』 집필.
 
“카트린,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돼. 너는 내면에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어. 무엇보다 가장 고귀한 것으로, 행복의 감각을 가졌어. 오로지 한 남자에게서만 삶을 기대해서는 안 돼. 그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잘못 생각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너 자신에게서 삶을 기대해야 해.”(401) “중요한 것은 말이지, 다만 행복의 의지이고 언제나 뚜렷하게 깨어있는 의식을 가지는 거야.”(421) “그는 이제 죽음을 겁낸다는 것이 삶을 겁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439) “의식한다는 것, 그것은 기만하거나 비겁해지지 않은 채-자신과 일대일로 짜기 육체와 대면하여-두 눈을 똑바로 뜨고 죽음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내들 사이의 문제였다.”(442)
 
시디-벨-아벨스 중학교 교사직을 타성과 침체를 우려하여 거절. 10~12월: 소렐, 니체, 슈펭글러(『서양의 몰락』)등을 탐독. ‘노동극단’이 해체, ‘협력극단’에 흡수. 알제리를 떠나 프랑스로 건너갈 것을 계획.
 
1938년. 파스칼 피아(후에 『시지프의 신화』를 그에게 헌정)가 주도하는 <알제 레퓌블리캥> 신문의 기자로 취직, 잡보 기사로부터 사설, 의회 기사와 문학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일을 담당했으며, 특히 알제리의 정치적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치기도 했다. 말로의 『희망』, 사르트르의 『구토』. “사르트르의 주인공은, 위대함을 딛고 근원적인 절망에서 일어서려고는 하지 않고 인간의 그 혐오스러운 면만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고뇌가 지닌 참된 의미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알제 레퓌블리캥」 1938년 10월 20일자). 『칼리굴라』 집필. ‘부조리에 관한 시론’을 구상하며 『이방인』의 집필에 도움이 될 자료 수집.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상의 황혼』, 키에르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탐독. 9월 30일. 뮌헨 협정.
 
1939년 3월. 나치, 체코슬로바키아를 완전히 합병.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의 책들을 탐독. 오디지오, 로블레스 등과 함께 「리바주」라는 잡지 창간. 앙드레 말로와 상봉. 사르트르의 『벽』. “위대한 작가는 그의 세계와 그의 주장을 항상 느끼게 해준다. 사르트르의 주장은 무(無)이자, 명철성에 있다.”(「알제 레퓌블리캥」 1939년 3월 12일자). 5월: 샤를로 출판사에서 『결혼』 출간.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낄 것 없이 사랑할 권리. 이 세상에는 사랑이란 단 한 가지뿐이다. 여자의 몸을 껴안는다는 것, 그것은 또한 하늘에서 바다로 내려오는 신기한 기쁨의 빛을 자신의 몸에 껴안는다는 것이다. [...] 향락을 두려워하는 자를 나는 바보라고 부른다.”(499-500) “인생은 건축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연소시켜야 할 대상이다.”(521) “태양(soleil)과 바다(mer)”(525)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나 동시에 부조리도 증대시키기 마련이다.”(526) “저 돈담무심한 태도, 희망을 품지 않는 인간의 저 위대함, 저 영원한 현재, 이것이 바로 분별 있는 신학자들이 지옥이라 불렀던 것이다. [...] 그 대답이란 반드시 썩어 없어지게 마련인 하나의 진실, 그렇게 때문에 어떤 쓴맛과 고귀함을 동시에 지닌 진실인데 그들에게 그 진실을 정면에서 바라볼 용기가 없는 것이다.”(533) “삶이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에 반항은 더욱 의미가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다.”(538) “행복이란 한 존재와 그가 영위하는 삶 사이의 단순한 일치 바로 그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또 오래오래 지속되고자 하는 욕망과 반드시 죽어 없어지게 마련인 자신의 운명이라는 이중의 의식 이외에 인간을 삶에 이어주는 더 온당한 통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541)
 
1939년 6월. 카빌리(알제리의 산악지방) 취재 여행.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 지방 경관 한복판의 그 비참함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국제적 긴장 고조로 그리스 여행 계획을 포기. “전쟁이 나던 해, 나는 율리시스의 순항 길을 다시 한 번 더듬기 위하여 배를 타기로 되어 있었다. 그 시절에는 가난한 한 젊은이도 빛을 찾아서 바다를 건너질러 가는 화려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여름』) 9월 3일. 제2차 세계대전. “첫째 할 일은 절망하지 않는 일이다.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외치는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말자.”(『여름』, 「편도나무들」) “가장 보잘것없는 임무를 가장 고귀하게 여기며 수행해 나갈 것을 결심.”(『작가수첩』). 연대의식 때문에 전쟁에 참여하려 했으나 건강 때문에 소집 연기. “자기 나라가 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전쟁이 터지면 자기 나라에 대하여 연대감을 가져야 한다.”(『작가수첩』)
 
1940년. 「알제 레뷔블리캥」 판매 보급상의 애로 때문에 「수아르 레퓌블리캥」에 합병(전자는 10월 28일에 폐간되고 후자는 9월 15일에 창간되었으니 몇 주일간은 두 신문이 공종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후 당국의 검열 요구에 불복, 1월 10일 폐간. 카뮈는 안정된 직장을 당국의 압력 때문에 박탈당할 것을 예측하고 알제리를 떠난다. 검열 받는 신문에 더 이상 아무런 글도 쓰지 않을 결심을 하고서 파스칼 피아의 추천을 받아 「파리 수아르Paris Soir」 에 순전히 사무적인 임무를 띤 편집 담당자로 입사한다. “「파리 수아르」에서 일하면서, 파리의 약동과 파리의 핵심을, 여점원 같은 그 천한 정신을 느낀다.”(『작가수첩』) 5월. 『이방인』 탈고. 5월 10일. 독일군 침입. 카뮈는 「파리 수아르」 편집진과 함께 클레르몽으로 피난하나 12월에 신문을 떠난다. 9월. 『시지프의 신화』 전반부 집필. 10월. 임시로 리옹에 기거. 12월 3일. 오랑 출신이며 수학교사인 프랑신 포르와 리옹에서 두번째 결혼.
 
1941년 2월. 『시지프의 신화』 탈고. “악에 대항하는 인간의 투쟁에 관해서, 그리고 정의로운 인간으로 하여금 우선은 창조와 창조자에 대항하고 나아가서는 자기 동료와 자기 자신에게까지 대항하게 만드는 저 거역할 길 없는 논리에 관해서, 인간이 상상해낼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신화들 중 의 하나인" 『모비 딕』의 영향을 받아 『페스트』를 준비.
 
1941~1942년. 겨울에 재발한 폐결핵 각혈 때문에 샹봉 쉬르 리뇽에서 겨울이 끝날 무렵부터 가을까지 요양. 11월 8일. 북아프리카 지역의 영미 함대 상륙(아이젠하워 장군 지휘 아래 오랑, 알제에 상륙) 때문에 카뮈의 알제리행이 중단, 아내와 독일점령으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헤어져 있게 된다.
 
1942년. 멜빌, 다니엘 디포, 세르반테스, 발자크, 마담 드 라파예트, 키에르케고르, 스피노자 등의 작품탐독. 7월. 『이방인』 출간.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사형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1955, 미국판 서문, II, 436) “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거부한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있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특히 실제로 있는 것 이상으로 말하는 것, 인간의 마음에 대한 것일 때는, 자신이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건 삶을 좀 간단하게 하기 위해 우리들이 누구나 매일같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뫼르소는 겉보기와는 달리 사람을 간단하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즉시 위협당한다고 느끼게 마련이다. 예컨대 사람들은 관례대로의 공식에 따라 스스로 저지른 죄를 뉘우친다고 말하기를 요구한다. 그는, 그 점에 대해서 진정하게 뉘우치기보다는 오히려 귀찮은 일이라 여긴다고 대답한다. 이러한 뉘앙스 때문에 그는 유죄선고를 받게 된다. / 따라서 내가 보기에 뫼르소는 표류물과 같은 존재는 아니다. 그는 가난하고 가식이 없는 인간이며 한군데도 어두운 구석을 남겨놓지 않는 태양을 사랑한다. 그에게 일체의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집요하기 때문에 그만큼 뿌리가 깊숙한 정열이 그에게 활력을 공급한다. 절대에 대한, 진실에 대한 열정이 그것이다. 이것은 아직 소극적인 진실로 존재한다는 진실, 느낀다는 진실이다. 그러나 그 진실 없이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 여전히 좀 역설적인 뜻에서 한 것이지만, 나는 내 인물을 통해서 우리들의 분수에 맞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그리스도를 그려보려 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436-438)
 
조금 뒤에 마리는 나에게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477) “건전한 사람은 누구나 다소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랐던 경험이 있는 법이다.”(505) “[나의 변호사가 물었다] “도대체 피고는 어머니를 매장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살인을 한 것으로 해서 기소된 것입니까?” 방청객들이 웃었다. [...] 방청객들이 웃었다. 그러나 검사는 다시 일어서서 법복을 바로 잡고 나더니 존경할 만한 변호인의 순진성을 갖지 않고서는, 그 두 종류의 사실 사이에 근본적이며 비장하고 본질적인 관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바라고 천명했다. “그렇습니다.”하고 그는 힘차게 외쳤다. “범죄자의 마음으로 자기의 어머니를 매장하였으므로, 나는 이 사람의 유죄를 주장하는 바입니다.””(535)
 
1943년. 『시지프의 신화』 출간.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 핀다로스, <아폴론 축제 경기의 축가 3>”(II, 263)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와 자살.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 삶의 의미야말로 질문들 중에서 가장 절박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267-268) “돌연 환상과 빛을 잃은 세계 속에서 인간은 스스로 이방인이 되었음을 느낀다. 이 낯선 세계로의 유적(流謫)에는 구원이 없다. [...] 인간과 그의 삶, 배우와 무대장치 사이의 절연(絶緣), 이것이 다름 아닌 부조리의 감정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든 한 번쯤 스스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터이므로,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감정과 허무에의 갈망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쯤은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이 시론의 주제는 바로 이러한 부조리와 자살 사이의 관계를 밝히고 자살이 어느 만큼이나 부조리에 대한 해결이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보려는 데 있다.”(270-271)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 과연 부조리는 죽음을 명하는 것인가 [...] 논리적이 되기는 언제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궁극에까지 논리적이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 과연 죽음에 이를 정도의 논리란 존재하는 것일까 [...] 그것이 바로 내가 부조리의 추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274)
 
부조리와 벽. “하나의 세계란 곧 하나의 형이상학, 하나의 정신적 태도인 것이다. [...] 한 인간은 그의 솔직한 충동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연기하는 연극에 의해서도 정의될 수 있다. [...] 무대장치들이 문득 붕괴되는 일이 있다. 아침에 기상, 전차를 타고 출근, 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보내는 네 시간, 식사, 전차, 네 시간의 노동, 식사, 수면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ㆍ화ㆍ수ㆍ목ㆍ금ㆍ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자만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의식에 의하여 시작되며, 의식에 이한 것이 아니면 그 무엇도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식으로,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에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그러나 언젠가는 우리가 이 시간을 떠메고 가야 할 때가 오기 마련이다. ‘내일’, ‘나중에’, ‘네가 출세를 하게 되면’, ‘나이가 들면 너도 알게 돼’ 하며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살고 있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참으로 기가 찰 일이다. 미래란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이니 말이다. [...] 그는 내일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전 존재를 다하여 거부했어야 마땅할 내일을. 이러한 육체의 반항이 바로 부조리다. [...] 모든 사람들이 마치 죽음 같은 것은 ‘전연 몰랐다’는 듯이 살고 있는 것은 정녕 놀라고도 남을 만한 일이다.”(276-281) “그 자체로 놓고 볼 때 이 세계는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전부다. 그러나 부조리한 것은 바로 이 [세계의] 비합리와, 명확함에 이르려는 [인간의] 필사적인 열망과의 맞대면인 것이다.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는 그 명확함을 얻고자 하는 호소가 메아리치고 있다.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에 똑같이 관련되어 있다. 지금으로서는 부조리만이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듭이다.”(288-289)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은 합리적인 것이 아니다. 세계는 이러한 비합리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지닌 유일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게 이 세계는 엄청난 비합리의 덩어리에 불과하다. 단 한번만이라도 ‘분명히 알겠다’고 말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은 구원될 수 있으리라. [...] 부조리는 인간의 호소와 세계의 비합리적 침묵 사이의 대면에서 생겨난다. 바로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여기에 꼭 매달려야 한다. 한 일생의 모든 귀결이 송두리째 그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 인간의 열망, 그리고 양자의 대면에서 솟아나는 부조리, 이것이 바로 드라마의 세 등장인물이다.”(295-296)
 
철학적 자살. “부조리는 인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양자가 함께 있는 가운데 있을 뿐이라고 나는 말할 수 있다. [...] 세 가지 중 어느 한 항목이라도 파괴되면 그것은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인간의 정신 밖으로 벗어나면 부조리는 있을 수 없다.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여건은 부조리이다. 문제는 어떻게 그 부조리에서 헤어날 수 있는가, 과연 부조리는 자살로 귀결되어야만 하는가를 알아보는 데 있다. [...] 이 부조리의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갈 경우 나는 투쟁이 희망의 전적인 부재(이것을 절망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계속적인 거부(이것을 포기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의식적인 불만족(이것을 젊은 시절의 불안과 동일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을 전재로 한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부조리는 오로지 우리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만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다.”(299-301) “셰스토프와 키에르케고르. [...] 셰스토프가 볼 때, 이성은 헛된 것이지만 그러나 이성 저 너머에 무엇인가가 있다. 부조리의 정신이 볼 때, 이성은 헛된 것이고 이성 저 너머에 아무 것도 없다. [...] 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요구했던 제3의 희생, 신이 가장 기뻐하시는 ‘이지(理智)의 희생’이다. [...] 그[키에르케고르]는 세계의 비합리와 부조리의 반항적 향수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오직 그것만 가지고도 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 다만 나는 지성이 명석함을 잃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중간적인 길을 고수하고자 할 따름이다. [...] 문제는 부조리의 상태, 그 안에서 사는 일이다. [...] 나는 여기서 실존적인 태도를 감히 철학적 자살이라 부르고자 한다. [...] 이것은 한 사상이 스스로를 부정하고서 바로 자기 부정을 통해서 스스로를 초월하고자 하는 행동을 지칭하는 하나의 편리한 방법이다. 실존적인 사람들에게는 부정(否定)이 곧 신이다. 정확히 말해서 이 신은 인간 이성의 부정에 의해서만 존립한다.”(301-312) “실존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비합리의 테마는 정신이 흐려진 이성, 그리하여 스스로를 부정함으로써 해방되는 이성 바로 그것이다. 부조리는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명철한 이성이다. [...] 자명한 것을 은폐한다거나 방정식의 한쪽 항을 부인함으로써 부조리 자체를 제거해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부조리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논리는 부조리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다고 명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철학적 자살이 아니라 그냥 자살 그 자체다.”(319-321)
 
부조리한 자유. “앞에서는 인생이 과연 살만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가 문제였었다.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인생에 의미가 없으면 없을수록 그만큼 더 훌륭히 살아갈 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어떤 경험, 어떤 운명을 산다는 것은 그것을 남김없이 다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 부조리는 대립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그 대립의 항목들 중 어느 하나를 부정하는 것은 부조리를 기피하는 것이 된다. 의식적인 반항을 폐기하는 것은 곧 문제 자체를 폐기하는 것과 같다. [...] 산다는 것은 곧 부조리를 살려놓는 것이다. [...] 따라서 유일하게 일관성 있는 철학적 태도는 곧 반항이다. 반항은 인간과 그 자신의 어둠과의 끊임없는 대면이다. 반항은 어떤 불가능한 투명(透明)에의 요구다. [...] 바로 여기서 우리는 부조리의 경험이 자살과는 거리가 먼 것임을 알 수 있다. [...] 자살은 그것 나름의 방식으로 부조리를 해소해 버린다. 자살은 부조리를 바로 죽음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부조리가 지탱되자면 부조리 자체가 해소되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조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죽음의 거부라는 점에서 자살에서 벗어난다. [...] 반항은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 의식과 반항이라는 거부는 포기와는 정반대이다. [...] 중요한 것은 죽더라도 화해하지 않는 것이지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죽는 것은 아니다. 자살은 삶의 진가를 몰라서 저지르는 행위다. 부조리의 인간은 오직 남김없이 다 소진하고 자기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다 소진할 뿐이다. 부조리는 최극단의 긴장, 고독한 노력으로써 끊임없이 지탱하는 긴장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매일매일의 의식과 반항을 통해서 운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그의 유일한 진실을 증언하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325-328) “그러나 그와 같은 세계 속에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당장은 미래에 대한 무관심과 주어진 모든 것을 남김없이 다 소진하겠다는 열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 인간은 과연 구원을 호소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는가? 이 문제가 나의 관심의 전부다.”(333)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만을 통해서 나는 죽음에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337)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의 인간은 바로 신의 밖에서 살고 있다. [...] 그에게는 변명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그의 무죄라는 원리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 이 무죄는 무서운 것이다. ‘무슨짓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이반 카라마조프는 외친다.”(342)
 
돈 후안주의. 연극. “모든 것이 그[일상적 인간]를 재촉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신보다 더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실제의 자기보다 장차 자기가 변해서 될 어떤 존재에 대하여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것이다. 연극에 대한 스펙타클에 대한 관심은 바로 여기서 생겨나는 것이다. [...] 그[배우]는 인간이 그렇게 되고자 하는 존재와 실제의 존재 사이에 경계가 없다는 지극히 풍성한 진리를 매월 혹은 매일 유감없이 보여준다. 언제나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내 보이는 데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그는 어느 만큼이나 외양이 실재가 될 수 있는가를 증명해 보인다. 왜냐하면 절대적으로 흉내 내는 것, 자신의 것이 아닌 삶 속으로 가능한 한 깊숙이 들어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그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의 노력이 종국에 이르면 그의 사명이 무엇인지 밝혀진다. 즉, 마음을 다하여 아무것도 아니거나 혹은 여러 존재가 되고자 전력투구하는 것이 그것이다. [...] 소멸하고 마는 세계를 흉내 내는 광대인 배우는 오직 외관 속에서만 자신을 단련하고 완성시킨다. 오로지 몸짓으로만, 그리고 육체로만 - 혹은 육체인 동시에 영혼인 목소리로만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연극의 관습이다. 이 예술의 법칙에 따르자면 모든 것을 인간의 육신으로 만들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육체가 곧 왕이다. 마음에서 바라기만 하는 것은 ‘연극적인 것’이 아니다. 잘못 평가절하되어 있는 이 ‘연극적’이라는 말은 하나의 미학 전체를, 하나의 윤리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인간의 삶의 절반은 마음에 품은 것을 표면화하지 않은 채 암시하고 얼굴을 돌리고 침묵하면서 보내기 마련이다. 배우는 이런 세계 속으로 불청객인 틈입자처럼 들어온다. 그는 저 사슬에 묶인 영혼을 마술에서 풀어준다. 마침내 온갖 정념들이 그들의 무대 위로 쏟아져 나온다. [...] 바로 여기서 배우는 자기모순을 드러내 보인다. 즉, 동일하면서도 지극히 다양하고, 단 하나의 육체에 의하여 그토록 많은 영혼들이 요약된다는 배우의 모순이 그것이다.”(355-358)
 
정복. “나는 나의 시대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뚜렷이 의식하기에 이 시대와 일체가 될 것을 결심했다. 내가 개인을 이토록 소중히 여기는 것은 오로지 개인이란 것이 보잘것없고 비천한 존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승리로 끌날 대의들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기에 나는 패배로 끝날 대의들을 귀히 여기는 것이다. [...] 이 세계는 온갖 소용돌이들을 초월하는 보다 높은 의미를 지니고 있던가, 아니면 그 소용돌이들 외에는 그 어떤 진실도 없든가 둘 중의 하나이다. 나는 타협하여 시대 속에 살면서 영원을 믿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이를 가리켜 동의(同意)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혐오한다. 나는 전체 아니면 무(無)를 원한다. [...] 나는 오직 명확히 보고자 원할 따름이다. [...] 개인을 짓뭉개는 것은 세계요, 그를 해방시키는 것은 나다.”(366-367) “정복자들은 그 자체로 행동이 쓸모없다는 것을 안다. 유익한 행동이란 하나밖에 없다. 즉, 인간과 천지를 다시 만드는 행위가 그것이다. [...] 비록 비천한 것이라 해도 육체는 나의 유일한 확신이다. 나는 오직 육체로서 살 수 잇을 뿐이다. 피조물의 세계가 나의 조국이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나는 이 부조리하고 보람 없는 노력을 선택한 것이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나는 투쟁의 편에 선 것이다. [...] 최초의 현대적 정복자인 프로메테우스의 혁명을 위시하여 혁명이란 무릇 신들에게 항거함으로써 성취되는 것이다. 그것은 주어진 운명에 맞선 인간의 권리 주장이다. [...] 그렇다. 인간이야말로,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 되고자 한다면 바로 삶 속에서이리라. 정복자들은 이따금 승리하는 것과 극복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뜻하는 바는 항상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다.”(367-368) “사랑하는 사람, 배우 또는 모험가는 부조리를 연기한다. [...] 만약 슬기롭다는 말이, 갖지도 않은 것에 대한 공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 적용될 수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슬기로운 사람이라 하겠다. 가령 정복자(단, 정신의), 돈 후안(단, 의식의), 배우(단, 지성의)는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372-373)
 
부조리한 창조


철학과 소설. “부조리한 즐거움의 전형은 다름 아닌 창조이다. “예술, 오로지 예술. 진리로 인하여 몰락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예술을 가지고 있다.”라고 니체는 말했다(우상의 황혼)”(378)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 철학자는 창조자이다. [...] 소설가는 더 이상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를 창조한다. 위대한 소설가는 철학적 소설가다.”(384-386)
 
키릴로프.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주인공들은 인생의 의미에 대하여 자문한다. 바로 이 점에서 그들은 근대적이다. [...] 그[키릴로프]는 바로 하나의 생각, 하나의 사상을 위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 그는 신이 필요하다는 것,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만으로 자살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을 어찌하여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가?” 그는 이렇게 외친다. [...] “나는 나의 불복종, 나의 새롭고 무시무시한 자유를 확인하기 위하여 자살할 터이다.” 문제는 이미 복수가 아니라 반항이다. [...] 즉 그는 신이 되기 위해 자살하려는 것이다. / 이 추론은 고전적 명석함을 보여준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키릴로프가 신이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키릴로프는 자살해야 한다. 따라서 키릴로프는 신이 되기 위해서 자살해야 한다. [...] 여기서 말하고 있는 신성은 전적으로 지상적인 것이다. [...] 신이 된다는 것. 그것은 오직 이 지상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 어떤 불멸의 존재도 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 고통에 찬 독립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든 귀결들을 이끌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은 신에게 달려 있거니와, 우리는 신의 의지에 반대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니체에게나 키릴로프에게나, 신을 죽인다는 것은 자기가 신이 되는 것 - 이미 지상에서부터 복음서가 말하는 바 영원한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 그러나 만약 이 형이상학적 범죄만으로 인간을 완성하기에 충분하다면 무엇 때문에 거기에다가 자살을 부과한다는 말인가? 자유를 획득한 다음 무엇 때문에 자살하고 이 세상을 떠난다는 말인가? 이것은 모순이다. 키릴로프는 이를 알고 있기에 이렇게 덧붙여 말한다. “만약 그대가 이것을 느낀다면 그대는 황제다. 그리하여 자살하기는커녕 영광의 절정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것’을 느끼지 못한다. 프로메테우스의 시대와 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내부에 온갖 희망을 키우고 있다(“인간은 자살하지 않기 위해 신을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이것이 현재까지 보편사의 요약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길을 인도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설교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그러기에 키릴로프는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형제들에게 자기가 앞장서서 가야 할 험난한 왕도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하나의 교훈적 자살이다. 따라서 키릴로프는 자신을 희생시킨다. [...] 키릴로프의 피스톨 일발은 궁극적 혁명의 신호가 될 것이다. [...]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잘 되었고, 모든 것이 다 허용되어 있으며, 그 어느 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이런 것이 바로 부조리의 판단이다.”(390-395)
 
내일 없는 창조. “‘부질없이’ 작업하고 창조하는 것, 진흙으로 조각품을 만드는 것, 자신의 창조에 미래가 없음을 아는 것, 자신이 만든 작품이 하루아침에 부서져 버리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근본적으로는 아무런 중요성도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조리의 사고가 가능케 해주는 예지(叡智)이다. [...] 그것[창조]은 또한 인간이 지닌 유일한 존엄성의 기막힌 증언이기도 하다. 즉, 인간 조건에 대한 집요한 반항, 불모의 것인 줄 잘 알고 있으면서 노력을 계속하는 불굴의 인내가 그것이다. 창조는 날의 노력, 자기 억제, 진리의 한계들에 대한 정확한 판단, 절도와 힘을 요구한다. 그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고행이다. 그런 모든 것이 ‘쓸 데 없는 것을 위해서’이고 끝없이 되풀이하고 제자리걸음을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 창조한다는 것은 자신의 운명에 어떤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다. [...] 인간만이 유일한 주인인 세계가 남는다. 그를 얽매어놓고 있었던 것은 다른 어떤 세계에 대한 환상이었다. 인간의 사고가 가야 할 운명은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들이 되어 다시 도약하는 데 있다. 그것은 - 아마도 신화 속에서 - 인간 고통의 깊이 이외에는 다른 깊이가 없는 신화, 따라서 인간의 고통처럼 다할 길 없는 신화 속에서 전개된다. 그냥 재미있는 그리하여 우리를 눈멀게 하는 신들의 우화가 아니라, 어려운 예지와 내일 없는 정열이 요약되어 있는 지상적 얼굴, 몸짓, 연극 속에서 말이다.”(401-405)
 
시지프 신화
 
“신들은 시지프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형벌을 내렸었다. 그런데 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다시 굴러 떨어지곤 했다. 쓸모없고 희망 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신들이 생각한 것은 일리 있는 일이었다. [...]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준다면 무엇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 하겠는가? 오늘날의 노동자는 그 생애의 그날그날을 똑같은 일에 종사하며 산다. 그 운명도 시지프 못지않게 부조리하다. 그러나 운명은 오직 의식이 깨어있는 드문 순간에만 비극적이다. 신들 중의 프롤레타리아요 무력하고도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전모를 알고 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 거역할 길 없는 진리들도 인식됨으로써 사멸한다. [...] 존재하는 세계는 오직 한뿐이다. 행복과 부조리는 같은 땅이 낳은 두 아들이다. 이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내가 판단하노니,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라는 [오이디푸스의] 그 한 마디는 운명을 인간의 문제로, 인간들끼리 처리해야 할 문제로 만드는 것이다. / 시지프의 말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들은 침묵한다. 문득 본연의 침묵으로 되돌아간 우주 안에서 경이에 찬 작은 목소리들이 대지로부터 무수히 솟아오른다. 은밀하고 무의식적인 부름이며, 모든 얼굴의 초대인 그것들은 승리의 필연적인 이면이요 대가(代價)이다. 그림자 없는 햇빛이란 없기에 밤을 겪어 체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조리한 인간의 대답은 긍정이며 그의 노력에는 끝이 없을 것이다. [...] 이렇게 인간적인 모든 것이 완전히 인간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음을 확신하면서, 보고자 원하되 밤은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장님인 시지프는 지금도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 시지프 역시 모든 것이 다 잘 되었다고 판단한다. 이제부터는 주인이 따로 없는 이 우주가 그에게는 불모의 것으로도 하찮은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 [...] 사전을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하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속에 그려보지 않으면 안 된다.”(409-414)
 
1943년. 『오해』 초고 탈고.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제1신 발표.


“우리에게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 것인지, 이미 충분할 만큼 가혹한 이 세상의 비참함에 또 다른 비참함을 더해도 되는지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그 모든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로 그 잃었다가 되찾은 시간, 감수했다가 극복해낸 패배, 피의 대가를 치르고 간직한 양심 덕분에 이제 우리 프랑스인들은 우리가 깨끗한 손으로 - 이건 확신에 찬 피해자의 깨끗함입니다 - 전쟁에 휘말렸으며, 역시 깨끗한 손으로 - 그어나 이번에는 불의와 우리 자신에 맞서서 거두어들인 위대한 승리의 께끗함입니다 - 전쟁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고 믿을 권리를 갖게 되었습니다. [...] 프랑스는 권능과 지배력을 상실했고 이 상태는 오래갈 것 같습니다. 그러나 프랑스는 순수한 이유들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119-121)
 
1944년. 사르트르와 만남. 「오해」 상연.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제2신, 제3신 발표. 8월 24일. “파리의 모든 총알들이 8월 밤하늘을 수놓는다”(공개적으로 배포된 「전투」 창간호) 파스칼 피아와 함께 『전투』 지 편집, 운영.
 
1945년 5월 8일. 휴전. 파리 세기에 가(街)에 정착. 5월 16일. 알제리(1826-1962년의 135년 간 프랑스의 식민지)의 민중은 자치권 약속을 믿고 프랑스와 함께 나치에 대항하나 프랑스인들은 종전 후 이를 요구하는 알제리인들을 학살로 탄압. 1-4만이 살해당한 세티프 학살. 카뮈는 이를 조사하기 위하여 알제리를 여행한다. http://interojh.blog.me/150126402904 “가난해진 민족을 위한 위대한 정치란 모범적인 정치를 수행하는 길밖에는 없다. 이 점에 대해 꼭 한 마디 해두어야 할 것은 프랑스가 실제로 아랍 지역에 민주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아랍 지역에 있어서 새로운 사상이다. 백만의 군대 그리고 수많은 유전 못지않게 민주주의는 값질 것이다.”(1945년 12월 20일자 인터뷰). 8월 6일, 9일: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 투하. “기계 문명의 야만적 횡포가 극에 달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집단자살이냐 아니면 자연과학적 성과의 현명한 사용이냐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전투」 8월 8일자) 9월 5일. 쌍둥이 자녀 장과 카트린 출생. 「칼리굴라」상연, 대성공. 「반항인」의 출발점이 되는 「반항론」발표.


1946년. 연초에 미국 방문. 대학생들의 열렬한 환영. 하버드에서는 연극에 관해서, 뉴욕에서는 문명의 위기에 관해서 강연. 『페스트』, 탈고. 1944~1945년에 이르는 모리악과의 논쟁 때문에 카뮈는 폭력 문제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사색, 정리.
 
1947년. 마다가스카르 반란. 카뮈는 집단 탄압을 맹렬히 규탄한다. “문제가 사실로 나타났다. 사실은 명백하고 추하다. 우리가 독일 사람들이 저질렀다고 비난했던 짓을 이번에는 우리가 저지르고 있으니까 말이다.”(「전투」) 공산당, 연합정부에서 이탈. 프랑스 국민연합 출범. 6월. 『페스트』, 출간. 즉각적인 대선풍. 수많은 비평가들이 카뮈를 덕망있는 ‘무신론적 성자’로 찬양.
 
1948년 2월. 알제리 여행. 6월.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 공산당 정보국에서 추방. 장 루이 바로와 함께 쓴 「계엄령」 상연, 실패.
 
“그리스 사상은 항상 한계의 관념을 방패로 삼았다. 그것은 신성(神性)과 인간의 이성 그 어느 쪽도 극단에까지 밀고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신성과 인간의 이성 그 어느 쪽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에 의하여 어둠과 균형을 유지하면서 모든 요소를 골고루 다 존중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 유럽은 전체성(totalité)을 정복해보겠다고 덤벼든 무분별의 딸이다. ㄷ유럽은 제가 찬양하지 않는 것이면 모두 다 부정하듯이 아름다움을 부정한다. 비록 각양각색의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유럽은 오직 한 가지만을 찬양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성이 지배하는 미래의 제국이다. [...] 헤겔은 감히 ‘오직 현대 도시만이 인간 정신에 스스로를 의식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고 썼다. 이리하여 우리는 대도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고의에 의하여 이 세계로부터 자연, 바다, 산, 저녁의 명상 같은 그 항구적인 요소가 잘려나가고 말았다. [...] 도스토예프스키 이후 유럽의 위대한 문학작품 속에는 풍경을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길이 없다. 역사는 역사보다 먼저 존재하는 자연세계도, 역사를 초월하는 곳에 있는 아름다움도 설명하지 못한다. [...] 역사 정신이나 예술가는 양쪽 다 세계를 다시 만들고자 한다. 그러나 예술가는 그 본성의 명령에 의하여 자신의 한계를 알지만 역사 정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후자의 목표는 전제(專制)인 반면, 전자의 열망은 자유인 것이다. 오늘날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모든 사람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 우리들에게는 다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결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자존심이란 바로 제 한계에 대한 충실함이요, 제가 타고난 인간 조건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사랑이다. [...] 스스로를 인정하는 무지, 광신의 거부, 세계와 인간을 테두리 짓는 한계, 사랑받는 얼굴, 그리고 끝으로 아름다움, 이런 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게 되는 우리의 진영이다.”(『여름』 중 「헬레네의 추방」, VI, 55-61)
 
1949년 3월. 사형선고를 받은 그리스 공산당원들을 위한 구명 호소. 1950년 12월에 또 다른 사형수들을 위한 구명 호소. 6~8월. 남미 여행. 이 여행으로 말미암아 이미 허약해진 카뮈의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앞으로 2년 동안 『반항인』 집필을 계속하는 것 이외에 아무 일도 못하게 된다. 하는 수 없이 한가해진 이 기간을 이용, 자기의 작품 세계 전반에 대해 반성한다. 12월. 『정의의 사람들』 첫 상연, 성공.
 
1950년. 『시사평론』 제1권 간행. 파리의 아파트에 입주. 1951년 10월. 『반항인』, 출간. 곧 이어 벌어진 논쟁이 1년이상 계속됨.
 
머리말. “범죄에는 격정에 의한 충동적 범죄와 논리에 의한 이성적 범죄가 있다. [...] 어제까지만 해도 심판을 받던 범죄가 오늘은 법이 되어 지배한다. [...] 이 시론(試論)의 의도는 다시 한 번 논리에 의한 범죄라고 하는 시대의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갖가지 정당화의 양상을 면밀히 검토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다. 사람들은 아마도 50년 동안에 70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제 땅에서 몰아내어 노예로 만들거나 살해해 보리는 한 시대는 오직 그리고 우선적으로 심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리라. [...] 자유의 기치 아래 조성된 노예 수용소, 인간에 대한 사랑 혹은 초인의 지향을 내세워 정당화하는 대량 학살은 어떤 의미에서 판단력을 마비시키기 족하다. 우리 시대 특유의 기이한 전도(顚倒) 현상으로 인하여 범죄가 무죄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날에는 무죄한 쪽이 도리어 스스로의 정당성을 증명하라는 다그침을 받는다. [...] 문제는 과연 죄 없는 자가 행동에 돌입하는 경우 그 순간부터 그는 살인하지 않을 수 없는가를 알아보는 일이다. [...] 우리 눈앞에 있는 저 타인을 살해할 권리, 혹은 이 타인이 살해됨에 동의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일체의 행동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살인으로 귀결되므로 우리는 과연 살인을 허용해야 하는지, 또 허용해야 한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를 알기 전에는 행동할 수 없다. [...] 부정(否定)의 시대에는 자살의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일이 유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시대에는 살인의 문제에 대해 해결을 봐야 한다. 만약 살인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 시대와 우리 자신은 모두 그 살인의 귀결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만약 살인이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지금 모두 광기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어떤 결론을 찾아내던가 아니면 외면하든가 양자택일 이외의 길은 없다. [...] 30년 전에 사람들은 살인을 결심하기 전에 철저히 부정했다. 자살로서 자신을 부정할 정도였다. 신도 속임수를 쓰고, 신과 더불어 모든 사람이 속임수를 쓰고, 나 자신마저도 속임수를 쓰니, 따라서 나는 죽는다. 즉 자살이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데올로기는 타인들만을 부정한다. 오직 타인들만이 속임수를 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인을 한다. [...] 이 시론에서 우리는 자살과 부조리의 개념을 중심으로 시작된 하나의 성철을 살인과 반항의 문제 앞에서 계속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 부조리의 추론의 마지막 결론은 자살을 거부하는 동시에, 인간이 던지는 질문과 그에 대한 세계의 침묵 사이의 절망에 찬 대결 상태를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자살에 조리성(條理性)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살인에도 조리성을 부여할 수 없다. [...] 살인과 자살은 똑같은 것으로, 그 둘은 함께 인정하거나 함께 거부하거나 양자택일을 행해야만 하는 대상이다. / 그리하여 자살의 정당화를 허용하는 절대적 허무주의가 더 쉽게 논리적 살인으로 치닫는다. 우리 시대는 살인에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있다고 인정해버리는데, 그것은 허무주의의 특징인 삶에 대한 이 무관심 때문이다. [...]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약 자살에 그 타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살인에 타당성을 부여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사람이 반쯤만 허무주의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절대적 부정의 불가능성을 인정한 순간부터,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으뜸가는 것, 그것은 바로 타인의 생명이다. [...] 부조리 경험의 테두리 내에서 내게 주어진 최초이자 유일하게 자명한 사실은 다름 아닌 반항이다. [...] 반항의 맹목적 충동 가운데서 질서를 요구하고, 흩어져 사라지는 것 가운데서 통일(unité)을 요구한다. 추문은 끝나야 한다고. [...] 반항이 고심하는 바는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변형시킨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인데, 행동한다는 것은 장차 살인으로 변할 것이다. [...] 형싱학적이며 역사적인 지난 두 세기의 반항이 우리의 성찰 대상이다. [...] 여기서 논급되고 있는 놀라운 역사는 유럽의 오만의 역사이다.”(394-404)
 
제1장 반항하는 인간
 
“반항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아니오non라고 말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거부는 해도 포기는 하지 않는다. 즉 그는 또한 반항의 첫충동에서부터 예oui라고 말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 요컨대 이 아니오는 어떤 한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 이처럼 반항의 충동은 참을 수 없다고 판단되는 침해에 대한 절대적 거부에 근거해 있음과 동시에, 어떤 당연한 귄리에 대한 막연한 확신, 보다 정확히 말해서 ‘나는 ~할 권리가 있다’는, 반항하는 인간의 느낌에 근거해 있다. 반항은 내가 어떤 식으로든 어딘가 옳다는 감정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반항하는 노예는 아니오와 동시에 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 이전에는 타협 속에 안주하던 노예가 단번에(“일이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전체’ 아니면 ‘무(無)’라는 극한 속으로 몸을 던진다. 의식이 반항과 함께 태어나는 것이다. [...] 반항하는 인간은 전체가 되고자 한다. [...] 무릎을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 [...] 그러나 한층 더 분명한 것은 아마도 이제는 개인적인 것이 개인적 차원을 넘어 공동의 선(善)이 된다는 생각일 것이다. [...] 반항을 분석하다 보면, 그리스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 동시대 사상의 가정과는 반대로, 적어도 인간에게는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있다는 심증에 이르게 된다. 인간 내부에 간직해야 할 항구적인 것이 전혀 없다면, 무엇 때문에 반항을 한단 말인가? 노예가 명령을 거역하고 분연히 일어서는 것은 동시에 모든 인간 존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어떤 명령으로 인하여 부정된다고 판단하는 자기 내부의 그 무엇은 그 혼자에게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 심지어는 그를 모욕하고 억압하는 자까지도 포함하는 모든 인간이 준비된 공동체를 갖는 일반적 논거와도 같은 것이다(피해자들의 공동체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데 결합시키는 공동체와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 우선 반항은 이기적인 운동이 아니다. [...] 다음으로 반항은 타인이 억압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생겨날 수 있다. [...] 자기의 조건에 대한 인간 개인의 반항, 모든 인간들에게 공통된 존엄성을 수호하기 위하여 일어서는 개인의 충동.”(407-415)
 
“그러나 결국 이러한 반항과 그것에 수반되는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닌가? 사실 시대와 문명에 따라 반항하는 이유는 변하는 것 같다. 힌두교의 최하층 천민, 잉카 제국의 전사, 중앙아프리카의 원시인, 또는 초기 기독교 교단의 구성원이 모두 반항에 대하여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심지어 이들과 같은 경우에 반항의 개념이란 아예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하는 생각에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렇지만 희랍의 노예, 농노, 르네상스 시대의 용병대장, 섭정 시대의 파리 부르주아, 1900년대의 러시아 지식인, 그리고 우리 시대의 노동자 등은 비록 각기 반항의 이유는 서로 다를 수 있겠지만 반항의 정당성에 대해서만큼은 틀림없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반항이라는 문제는 오직 서구 사상 안에서만 정확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처럼 보인다. 셸러의 말대로, 불평등이 대단히 큰 사회(가령 카스트 제도 하에서의 인도)나 혹은 그 반대로 평등이 절대적인 사회(가령 몇몇 원시 사회)에서는 반항적 정신이 표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반항 정신은 이론적 평등이 사실상의 심대한 불평등을 은폐하고 있는 집단에서만 가능하다. 반항의 문제는 그러므로 우리 서구 사회의 내부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 반항이란 자기 권리에 대한 의식을 가진 가장 명석한 인간의 행위이다. [...] 반항적 인간은 신성한 것 이전 혹은 이후에 위치하는 인간이며, 인간적인 질서를 요구하는 데 골몰하는 사람이다. 그 질서 속에서 모든 해답들은 인간적인 것, 즉 합리적인 것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순간부터 모든 물음과 모든 말은 반항이다. [...] 이렇게 하여 인간 정신의 견지에서 보면, 가능한 세계는 오직 두 가지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신성한 것의 세계(그리스도교적 표현을 빌면 은총의 세계)와 반항의 세계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한쪽 세계의 사라짐은 다른 한쪽 세계의 나타남과 일치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전체냐 무(無)냐의 문제와 마주친다. 반항이라는 문제가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오늘날 사회 전체가 신성한 것에 거리를 두고자 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 반항은 우리 시대의 역사적 현실이다.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한 우리는 반항 속에서 우리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신성한 것과 전래적 가치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온 인간이 과연 행동의 규칙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반항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 부조리의 경험에서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다. 반항적 운동을 기점으로 그 고통은 집단적임을 의식하게 되고, 그 고통은 인간 모두가 겪는 모험이 된다. 낯설음의 느낌에 사로잡힌 인간이 최초로 내딛는 진일보는 그러므로 자신이 이 낯설음을 다른 모든 사람과 나누어 느낀다는 사실, 인간의 현실은 전체가 다 자아로부터의 그리고 세계로부터의 이 거리감을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에 있다. 오직 한 사람이 앓던 병이 집단적 페스트로 변한 것이다. 우리가 겪는 일상적 시련 속에서 반항은 사유 차원의 코기토cogito와 같은 역할을 한다. 즉 반항은 원초적 자명함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자명함은 개인을 그의 고독으로부터 끌어낸다. 반항은 모든 인간들 위에 최초의 가치를 정립시키는 공통 토대이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407-420)
 
제2장 형이상학적 반항
 
“형이상학적 반항이란 인간이 인간 조건과 창조 전체에 대하여 항거하는 운동이다. 그것은 인간과 창조의 목적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까닭에 형이상학적이다. [...] [긍정과 부정이라는] 그 두 경우 모두에 있어 우리는 하나의 가치 판단을 발견한다. [...] 반항적 운동은 그[반항하는 인간]에게 있어 명백함과 통일성에의 요구라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장 초보적인 반역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어떤 질서에의 열망을 표현하는 법이다. [...] 형이상학적 반항의 역사는 그러므로 무신론의 역사와 혼동될 수 없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심지어 종교적 감정의 현대사라고 볼 수 있다. 반항하는 인간은 부정하기보다는 도전한다. 적어도 원초적으로는, 반항하는 인간은 신을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만 대등한 자격으로 신에게 말할 뿐이다. 그러나 정중한 대화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기고자 하는 욕망에 불타는 논쟁인 것이다. 노예는 정의를 요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끝내는 왕의 권리를 원하기에 이른다. 이번에는 그가 지배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 조건에 대한 봉기는 하늘과 대결하는 엄청난 원정으로 번하여, 거기서 왕을 사로잡아 온 뒤, 처음에는 왕의 실권을, 다음에는 왕의 사형을 선언한다. 인간의 반역은 형이상학적 혁명으로 끝난다. 그 반역은 겉보기에서 혁명으로 나아가고, 댄디에서 혁명가로 나아간다. 신의 옥좌가 전복되면 반역자는 자신의 인간 조건 속에서 헛되이 찾아 헤매었던 그 정의, 그 질서, 그 통일을 이제는 자기 손으로 창조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필요하다면 범죄를 저질러서라도 인간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한 절망적인 노력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아직 그중 몇 가지밖에 아는 것이 없다. 그러나 이 결과들은 결코 반항 그 자체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결과는 오직 반항하는 인간이 반항의 근원을 잊고, 아니오와 예 사이의 벅찬 긴장을 견디지 못해 지쳐버린 나머지 마침내 포기하고서 모든 것을 다 부정하거나 전적으로 복종해버리는 데에 기인한다.”(423-426)
 
카인의 후예. “반항이란 결국 누군가에게 반대하는 것으로써만 상상되는 것이다. 만물의 창조인, 따라서 만물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인격신의 개념만이 인간의 항의에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반항의 역사는 그러므로 서구 세계에 있어서의 기독교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해도 그것은 하등의 역설이 아니다.”(431)
 
절대적 부정. “역사적으로 볼 때, 최초의 논리정연한 공격은 사드의 공격이다.”(442)
 
 
문학인. “그들[혁명가들]의 공화국이 신의 권능을 지닌 왕의 시해에 근거하여 성립되었으며, 1793년 1월 21일 신[루이 16세]을 단두대로 보냄으로써 그들이 범죄의 추방과 사악한 본능의 단속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군주제는 군주제 자체와 더불어 법적 근거가 되는 신의 관념을 지탱하고 있었다. 반면에 공화국은 저 스스로를 지탱하며 성립되는 것이어서 거기서 도덕관념은 신의 계명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 단 한번만이라도 일단 살인을 인정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는 살인을 전면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 범죄와 욕망이 세계 전체의 법률이 되지 못한다면, 아니 적어도 한정된 영역이나마 지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통일의 원리가 아니라 분쟁의 씨앗이다. 그것은 이미 법률이 아니며, 따라서 인간은 분열과 우연으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므로 새로운 법률에 정확히 들어맞는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창조해야 한다. 신의 창조에서는 충족되지 못한 통일에의 욕구가 이 소우주에서는 기필코 충족된다. [...] 사드의 경우, 그 권력의 법률은 밀폐된 장소들, 일곱 겹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들을 창조해낸다. 아무도 빠져나올 수 없는 그곳에서는 욕망과 범죄의 사회가 아무런 장애도 없이 무자비한 규칙에 따라 영위된다. 무제한으로 고삐가 풀린 반항, 자유에 대한 전적인 요구는 다수의 노예화로 귀결된다.”(447-451)
 
 
댄디들의 반항. “댄디는 미학적 수단에 의하여 자기 고유의 통일을 창조해낸다. 그러나 그것은 특이성과 부정이 미학이다. ‘거울 앞에서 살다가 거울 앞에서 죽는다.’ [...] 댄디는 타인과 마주봄으로써만 스스로를 정립할 수 있다. 타자들은 거울이다. [...] 댄디는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연기한다. 혼자 있거나 거울이 없는 순간을 제외하고 그는 죽을 때까지 연기한다. 댄디에게 그가 홀로 있다는 것은 그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낭만주의는 실제로 반항이 댄디즘과 관련된 일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댄디즘의 일면은 바로 겉치레 paraître 라는 측면이다. [...] 낭만주의를 시발로 하여 예술가의 광업은 이제 다만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고 미 자체만을 위한 미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를 분명히 규정하는 데에 있게 된다. 예술가는 이리하여 모범이 되고 본보기로서 제시된다. 예술이 곧 예술의 도덕인 것이다. [...] 하지만 반항은 이제 점차 겉치레의 세계를 떠나 실제 행동의 세계로 접어든다. 반항은 이제 전적인 행동의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1830년의 프랑스 학생들과 [1825년] 러시아 12월 혁명의 혁명가들은 그리하여 이 새로운 반항의 가장 순수한 모범으로 등장할 것이다.”(464-468)
 
 
구원의 거부. “이반 카라마조프는 도덕적 가치의 이름으로 신을 공박한다. [...] 이반은 이제 더 이상 그 신비로운 신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정의라는 보다 높은 하나의 원리에 의지하고자 한다. 그에 의하여 은총의 왕국을 정의의 왕국으로 대체하려는 반항의 본질적 기도(企圖)가 시작된다. 동시에 그는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시도한다. ‘진리를 얻는 데 필요한 고통의 몫을 다 채우기 위해서 어린아이들의 고통까지 필요한 것이라면 나는 지금 당장 못 박아 말하려니와 이 진리는 그만한 대가를 치를 가치가 없다.’ [...] 진리에 대한 정의의 투쟁이 바로 여기에서 처음 시작된다. 이 투쟁은 이제 끝이 없을 것이다. 고독한, 그러므로 모럴리스트인 인 이반은 일종의 형이상학적 돈키호테가 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면 어떤 엄청난 음모가 이번에는 정의를 진리로 만들려고 획책하는 때가 올 것이다. [...] 영생이 없다면, 상도 벌도, 선도 악도 없다. ‘나는 영생이 없다면 덕이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다만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 죄인이란 없다는 것, 모든 것이 서로 맞물린 채 덧없이 흘러가고 서로가 균등하다는 것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덕이 없다면 법도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된다.’ / 이 ‘무엇이나 다 허용된다’는 것에서부터 우리 시대 허무주의의 역사가 시작된다. [...] 이반은 논리적 일관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을 행하게 된다. [...] 이반은 살인자로서의 신에 대항하여 반항하지만 그러나 그가 반항의 논리를 따져보는 바로 그 순간 거기서 살인의 법칙을 이끌어낸다. 무엇이나 다 허용된다면 그는 아버지를 죽일 수도 있고, 적어도 아버지가 살해되는 고통을 당할 수도 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자라는 우리의 인간 조건에 대한 기나긴 반성이 다만 범죄의 정당화라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 형이상학적 반항의 극단은 무엇인가? 형이상학적 혁명이다. 이 세계의 주인은 그 정당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 받았으니 타도되어야 마땅하다.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신도 영생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새로운 인간이 신이 되도록 허용된 것이다.’ 그러나 신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것, 자기 자신의 법 이외의 모든 법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니 구구한 타협적 추론을 늘어놓을 것도 없이 신이 된다는 것은 곧 범죄를 받아들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 이 새로운 종교의 예언자인 도스토예프스키는 [정신적 해방에의 기도(企圖)를 넘어서는 정치적 해방의 기도가 허무주의에 기원한다는] 그러한 사실을 예견했기 때문에 이렇게 예고했다. ‘만약 알료샤가 신도 영생도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근는 곧장 무신론자가 되고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란 단지 노동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무신론의 문제, 무신론의 현대적 구현의 문제, 그리고 지상으로부터 천국에 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천국을 지상에 끌어내리기 위해 신 없이 건설되는 바벨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470-478)


절대적 긍정.


“인간이 신을 도덕적으로 심판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의 내부에서 신을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도덕의 근거는 무엇인가? 정의의 이름으로 신을 부정하지만 신의 관념 없이 정의의 관념이 이해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니체가 정면으로 접근하는 부조리다. 도덕이란 파괴해야 할 신의 마지막 얼굴인즉 이것을 파괴한 다음에 다시 재건해야 한다는 것이다.”(479)
 
 
유일자.
 
 
니체와 허무주의. “니체에게 전통 도덕이란 부도덕의 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선(善)이다.’ ‘다름 아닌 도덕적 이유 때문에 앞으로 언젠가 사람들은 선을 행하기를 중단하게 될 것이다.”(487)
 
반항적 시 - 로트레아몽과 범속. 초현실주의와 혁명.
 
허무주의와 역사
 
“사드와 낭만주의자들, 카라마조프나 니체는 오로지 참된 참만을 원했기 때문에 죽음의 세계에 들어갔다. [...] 그들이 이르게 된 결론이 불길하거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된 것은 오로지 그들이 반항의 짐을 벗어던진 채 반항이 전제로 하는 긴장을 회피하면서 폭압과 굴종이라는 안이함을 택하면서부터였다. [...] 반항하는 인간은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타당한 이유를 요구한다. 그는 죽음에서 귀결되는 결과를 거부하는 것이다. [...] 죽음에 반대하여 투쟁한다는 것은 결국 삶의 의미를 요구하는 것이고 법칙과 통일성을 위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 악과 고통에 대한 반항은 결국 통일성에 대한 요구 바로 그것이다. [...] 창조자에 대한 증오는 창조된 세계에 대한 증오로 변할 수도 있고, 혹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 대한 배타적이고도 도발적인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반항은 살인에 이르게 되어 반항이라 불릴 권리를 잃고 만다. [...] 이처럼 오늘날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반항이나 반항의 고귀성이 아니라 허무주의이다. 우리는 반항의 기원에 있는 진리를 명심하면서 그 반항의 결과들을 추적해보아야 한다. [...] 사드로부터 우리 시대에 이르기까지 진보란 신 없는 시대의 인간이 스스로의 법칙에 따라 광포하게 지배하는 밀폐된 공간의 넓이를 차츰 확장해온 데 있다. 인간은 반항의 끝에 이르러 스스로를 감금해버렸다. [...] 신의 은총의 왕국과 맞서는 유일한 왕국, 즉 정의의 왕국을 건설해야 하며, 마침내 신의 공동체가 무너진 잔해 위에 인간의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신을 죽이고 하나의 다른 교회를 건설하는 것, 이것이 바로 모순적이면서도 줄기찬 반항의 운동이다. / 이제 세계 제국과 보편 제국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그 노력에 대하여 논해볼 때가 되었다. 이제부터 반항은 도덕적 허무주의와 더불어 힘에의 의지만을 취할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은 원칙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획득하여 신과 맞서서 그것을 지탱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반항의 기원에 대한 기억을 망각하고, 정신적 제국주의의 법칙에 따라 무한히 증식되는 살인을 통해 세계 제국을 향해 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반항하는 인간은 신을 그의 하늘로부터 추방해버렸다. 그러나 그때 형이상학적 반항이 노골적으로 혁명 운동으로 뛰어들면서 자유에 대한 비이성적 요구는 역설적이게도 이성을 무기로 취하게 된다. 반항하는 인간에게 이성이야말로 순수하게 인간적이라고 생각되는 유일한 정복의 힘이라는 것이다. 신이 죽자 인간들만이 남았다. 다시 말해서 이해하고 건설해야 할 역사만이 남은 것이다. 반항 속에서 창조의 힘을 침몰시키는 허무주의는 인간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할 뿐이다. 인간은 이제부터 자신만이 홀로 사는 고독한 땅임을 아는 터인 대지 위에서 비합리의 범죄에 더하여 인간들의 제국을 향해 행진 중인 이성의 범죄를 추가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재한다’에 이어, 온갖 기막힌 계획들, 나아가서는 반항의 사멸까지를 생각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리고 우리는 혼자다.’”(533-538)
 
제3장 역사적 반항
 
“정의가 자유의 중지를 요구하는 시대가 온다. [...] 반항이 단지 개인적 경험에서 사상을 향해 가는 운동인 반면, 혁명은 사살을 역사적 경험 속에 편입시키는 일이다. 반항운동의 역사는 비록 그것이 집단적일 때조차 언제나 사실 속에서의 해결책 없는 참여의 역사요, 체계도 논리도 ㅇ끌어들이지 않는 막연한 항의의 역사인데 반해, 혁명은 행동을 사상에 맞추어나가려는 기도이며 세계를 어떤 이론의 틀 속에 다듬어 넣으려는 기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항이 인간을 죽이게 되는데 반해, 혁명은 인간과 동시에 원리를 파괴하게 된다. [...]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으로부터 태동한 사회는 유럽을 손에 넣기 위해 싸우고자 했다. 1917년에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태동한 사회는 세계의 지배를 위하여 싸운다. [...] 20세기의 혁명 운동은 그 논리의 가장 명료한 귀결에 이르고자 손에 무기를 들고 역사적 전체성을 요구한다. [...] 즉 이성과 힘에의 의지의 동일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 혁명, 특히 유물론적이고자 하는 혁명은 다만 과격한 형이상학적 십자군에 불과하다. 그러나 전체성이 곧 통일성일까? [...] 1793년에 반항의 시대는 끝나고 단두대 위에서 혁명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545-549)
 
왕의 시역자들. “1793년 1월 21일 이전에, 그들은 왕의 자리가 영원히 빈 채로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 신을 부정한다면 필경 왕을 죽여야 한다. [...] ‘아마도 피고를 죽게 하는 명분이 될 원리를 결정하는 일, 그것은 바로 피고를 심판하는 사회가 영위되어 갈 토대의 원리를 결정하는 일이다’라고 그[생 쥐스트]가 외쳤을 때, 이 말은 왕을 죽이려는 자는 다름 아닌 철학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왕은 사회계약론의 이름 아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550-553) 새로운 복음.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등장하는 일반의지는 무엇보다도 보편적 이성의 표본이고, 보편적 이성은 정언적(定言的)이다. 새로운 신이 나타난 것이다.”
 
 
왕의 처형. “일반의지의 불가침성과 초월성. 은총과 정의 사이의 투쟁. [...] 군주제란 그 자체로 절대 범죄이다. [...] 이를 만인이 용서한다 해도 일반의지는 용서할 수 없다. [...] 루이 16세는 자기 신상에 가해지는 위해가 겁에 질린 육신이 아니라 신의 소명과 신인 그리스도-왕을 겨냥한 것임을 분명히 할 수 있도록 신의 소명과 하나가 되려고 했던 것 같아 보인다.”(558-562)
 
 
덕의 종교. “1789년 혁명은 아직 인간의 신성은 확보하지 못했지만, 그러나 인민의 의지가 자연과 이성의 의지와 일치하는 한에 있어서는 인민peuple의 신성을 확보했다. [...] 인민의 소리는 자연의 소리이다. vox populi, vox naturae. [...] 보통 선거는 반드시 보편적 도덕을 가져온다. ‘우리의 목적은 선을 향한 보편적 경향이 반드시 확립될 수 있도록 사물의 질서를 창조하는 데 있다.’ / 이성의 종교는 극히 자연스럽게 법률의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일반의지는 그 대표자들이 편찬한 법률에 의해 표현된다. ‘인민은 혁명을 만들고, 입법자는 공화국을 만든다.’ [...] 프랑스 대혁명은 절대 순수의 원리 위에 역사를 건설한다고 자처함으로써 현대와 동시에 형식적 도덕 시대의 문을 열었다.”(563-567)
 
 
테러(공포정치). “마라는 이렇게 외친다. ‘사람들은 내가 박애주의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한다. 아!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내가 다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소수의 목을 벤다는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인가?’ [...] 이성은 정복자가 되려는 것이다. [...] 바야흐로 역사의 지배가 시작된다. 인간은 인간 자신만의 역사와 하나가 됨으로써 진정한 반항에 충실하지 못한 채 이제부터 20세기 허무주의적 혁명에 몸을 바치게 된다.”(570-579)
 
신의 시역자들. “독일 이데올로기는 그것들[진리, 이성, 정의]을 영원한 가속 운동 속에 던져 넣음으로써 그것들의 존재를 그것들의 운동과 뒤섞어버렸고 또 그 존재의 완성 역시 역사적 생성 변화의 끝(과연 그런 끝이 있기나 한가?)에서 이루어진다고 못 박아 놓았다. [...] 헤겔에게서 영감을 얻은 정치적 혹은 이데올로기적 운동들은 모두가 공공연하게 덕을 폐기해버렸다는 점에 있어서 한결같이 일치한다.”(580-594)
 
개인적 테러리즘
 
 
미덕의 포기. “1830-1840년대 러시아의 비엘린스키. 세계와 세계의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순간 그에게 위대한 결심인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그는 다만 자신의 고통과 모순을 참아나가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들의 고통까지도 긍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갑자기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러자 그는 반대 방향에서부터 재출발한다.”(606-607)
 
 
악령에 홀린 세 사람. “피사레프, 바쿠닌, 네차예프. 네차예프는 1866년 경 혁명적 인텔리겐차 사이에 나타났다가 1882년 1월에 세상모르게 죽는다. [...] 그는 자신을 자발적인 혁명의 잔인한 수도승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혁명가는 사전에 이미 형(刑)이 언도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정열적인 사랑의 관계도 갖지 말아야 하고ㅛ 좋아하는 물건이나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이름마저도 벗어버려야 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모든 것은 오직 하나의 정열, 즉 혁명에 집중되어야 한다.’ [...] 그와 더불어 혁명은 처음으로 사랑과 우정으로부터 확실하게 갈라져 나간다. [...] 혁명만이 유리한 가치가 되어버리면 혁명은 모든 것을, 심지어는 밀고까지도, 친구의 희생까지도 요구하게 된다. [...] 네차예프의 독창성은 형제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정당화했다는 데 있다. [...] 네차예프는 혁명의 군사화로 그치지 않았다. 지도자들은 부하들을 지휘하기 위해서라면 폭력과 거짓말을 동원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그는 인정하는 것이다. [...] 그때까지 그 어떤 혁명도 인간이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행동 강령의 첫머리에 올려놓은 적이 없었다. [...] 피압박자들로 말하자면, 이번에는 그들을 결정적으로 구원하자는 것이므로 아직은 그들을 좀 더 억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네차예프는 행정부들이 탄압적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밀어붙일 것, 인민에게 가장 미움을 사고 있는 대표자들에게 절대로 손대지 말 것, 끝으로 비밀 조직은 대중의 고통과 불행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총력을 기울일 것 등을 원리로 내세운다.”(618-624)
 
 
양심적 살인자들. “1878년은 러시아에서 테러리즘이 탄생한 날이다. 193명의 포퓰리스트들이 재판을 받은 그 이튿날인 1월 24일, 너무나 젊은 처녀 베라 자술리치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총독 트레포프 장군을 사살한다. 유럽에서는 1892년 한 해 동안에만도 1,000여 건의 다이너마이트에 의한 테러가 있었고 아메리카에서는 약 500건의 테러가 일어났다. 1905년 사조노프에 의한 플레베의 암살과 칼리아예프에 의한 세르게이 대공의 암살은 30년에 걸친 그 피로 물든 포교의 정점을 이루는 동시에 혁명이라는 이름의 종교를 위한 순교의 시대를 마감한다. [...] 그러나 이 시기 사형수들의 최후 진술을 읽고 있노라면 그들 모두가 예외 없이 그들 눈앞에 있는 재판관들을 마다하고 다른 사람들의 심판, 곧 미래에 나타날 사람들의 심판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고의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이때 미래에 올 사람들이야말로 그들의 마지막 상소 수단이 된 것이다. 미래야말로 신 없는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초월인 것이다. [...] 그들은 역사상 최후의 반항이란 가치 창조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인다. [...] 칼리아예프와 그의 동지들은 허무주의를 극복했던 것이다.”(625-637)
 
 
시갈레프 사상.
 
국가테러리즘과 비합리적 테러
 
 
국가테러리즘과 합리적 테러
 
- 부르주아적 예언. 혁명적 예언. 예언의 실패. 목적의 왕국. 전체성과 심판.
 
 
반항과 혁명. “20세기 혁명은 그 원리들 자체에 남아있던 신의 잔영마저 죽여서 역사적 허무주의를 신성화한다. [...] 역사를, 오직 역사만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반항 자체의 가르침을 거슬러 허무주의를 택한다는 것이다. 역사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외치면서 비합리의 이름으로 역사에 뛰어드는 자들은 예속과 공포 정치를 만나게 되고 강제 수용소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역사의 절대적 합리성을 설교하면서 역사에 몸을 던진 자들 또한 예속과 공포 정치를 만나면서 강제 수용소의 세계에 이르게 된다. [...] 혁명은 허무주의에 복종함으로써 사실 그 반항적 기원으로부터 등을 돌린 셈이다. [...] 일체의 가치를 부정한다는 현대의 혁명은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가치 판단이다. [...] 혁명가는 동시에 반항하는 인간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더 이상 혁명가가 아니라 반항에 등을 돌리는 경찰이나 관리가 된다. 그러나 그가 반항하는 인간이라면 그는 결국 혁명에 맞서 일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 태도에서 저 태도로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태도가 동시에 병존하면서 서로 간에 모순이 점점 더 커갈 뿐이다. [...] 반항은 인간 내부에 있는, 사물로 취급되고 단순한 역사로 환원되는 것의 거부 바로 그것이다. 반항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어떤 본성의 긍정이다. 그 본성은 권력의 세계를 벗어난다. 역사란 물론 한계 중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가는 옳다. 그러나 인간은 반항 속에서 그 자신 역사에 하나의 한계를 부여한다. 이 한계에서 하나의 가치에 대한 약속이 태어난다. [...] 반항의 요구는 통일성이며, 역사적 혁명의 요구는 전체성이다. [...] 혁명이 창조적인 것이 되려면 역사의 광란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도덕적 혹은 형이상학적 규범을 도외시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부르주아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식적이고 기만적인 도덕에 대하여 혁명은 오직 경멸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일체의 도덕적 요구에로까지 이 경멸을 확산시켰다는 데서 혁명의 광적인 면이 드러난다. 그런데 바로 혁명의 기원 그 자체에, 혁명의 충동 저 깊숙한 곳에 어떤 규범이 잠재해 있는 것이니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 아닌, 혁명의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는 규범이다.”(734-742)
 
제4장 반항과 예술
 
 
소설과 반항.
 
 
반항과 스타일. “천재란 스스로의 절도(節度)를 창조해낸 반항이다.”(772)
 
 
창조와 혁명. “궁지에 몰린 사회 이후 우리가 제기하는 두 질문, 즉 ‘창조는 가능한가’라는 것과 ‘혁명은 가능한가’라는 것은 결국 한 문명의 재생에 관련된 하나의 질문에 지나지 않는다. / 20세기의 혁명과 예술은 같은 허무주의에 종속되어 있으며 같은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양자는 그들의 운동 자체 속에서 긍정하던 것을 부정하고, 둘 다 테러를 통하여 하나의 불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 만약 반항하는 인간이 허무의 광란과 전체성에의 동의를 동시에 거부해야 한다면 예술가는 형식주의적 광란과 전체주의적 현실 미학을 동시에 벗어나야 한다. [...] 그러기 위해서는 예술과 사회, 창조와 혁명은 거부와 동의, 특수와 보편, 개인과 역사가 가장 팽팽한 긴장 가운데 균형을 이루는 반항의 원천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반항은 그 자체로서는 문명의 구성 요소가 아니다. 그러나 반항은 일체의 문명에 선행한다. [...] 이제부터 필요한 문명은 개인에 있어서나 계급에 있어서나 노동자와 창조자를 분리시키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예술 창조 역시 형식과 내용, 정신과 역사를 분리시킬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 창조는 전체성과 마주한 채 통일에의 긍정을 버리지 않는다. [...]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현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미의 규칙은 또한 반항의 규칙이기도 하다.”(773-779)
 
제5장 정오의 사상
 
반항과 살인. “어쨌든 삶의 그 원천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지금 유럽과 혁명은 무섭게 경련하며 소진되어가고 있다. [...] 은총의 왕국을 정복하고 났더니 정의의 왕국마저 붕괴된다. [...] 논리적으로 볼 때 살인과 반항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라고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제로 단 한 사람이라도 살해되는 일이 생긴다면 어느 의미에서 반항하는 인간은 더 이상 공동체를 - 그의 정당성은 바로 그 공동체에서 온다 - 말할 자격이 없게 된다. [...]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 살인이 사물의 질서에 가하는 침해에는 내일이 없다. 살인은 엉뚱한 것이니 순전히 역사적 태도가 바라듯이 무엇에 이용될 수 있는 것도, 체계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번밖에 도달할 수 없는 한계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죽어야 한다. 반항하는 인간이 살인을 하게 되었을 때 그 살인행위와 스스로를 화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스스로의 죽음과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살인은 불가능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죽는다. [...] 이 극단의 경계를 넘어서면 모순과 허무주의가 시작된다.”(783-787)
 
 
허무주의적 살인. “과연 비합리적 범죄와 합리적 범죄는 둘 다 똑같이 반항 운동이 내세우는 가치를 배반한다. 우선 전자가 그렇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스스로에게 살인을 허용하는 자, 사드, 살인적 댄디, 무자비한 유일자, 카라마조프, 미쳐 날뛰는 악당에게 열광하는 자들, 군중에게 총을 난사하는 초현실주의자, 이들은 요컨대 전적인 자유를, 인간의 오만을 마음껏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 그러나 공동 운명에 대한 상호인정과 인간들 간의 교류라는 반항의 이유는 여전히 살아 있다. [...] 반항에 의해 발견된 공모와 교류는 오직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모든 애매함과 오해는 죽음을 유발한다. 분명한 언어와 단순한 낱말만이 그 죽음에서 구해줄 수 있다. [...] 반항하는 인간은 전반적인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이 한계야말로 바로 그 인간 존재의 반항할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반항의 비타협성이 갖는 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항이 정당한 한계를 요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가질수록 반항은 더욱 불굴의 것이 된다. 반항하는 인간은 물론 자기 자신을 위한 어떤 자유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 모순에 빠지지 않는 한, 그는 [자기] 존재와 타인의 자유를 파괴할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반항하는 인간은 그 누구도 욕되게 하지 않는다. [...] 인간 조건의 통일을 요구하는 반항은 삶의 힘이지 죽음의 힘이 아니다. 반항의 심오한 논리는 파괴의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창조의 논리이다. [...] 반항이 도달한 귀결은 살인의 정당성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반항은 원래 그 원리에 있어 죽음에 대한 항의이기 때문이다. [...] 만약 그 자신이 결국 살인을 하게 된다면 그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자신의 기원에 충실한 반항하는 인간은 그의 진정한 자유가 살인에 대한 자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유라는 것을 희생 속에서 증명한다. 그는 동시에 형이상학적 명예를 발견한다.”(788-792)
 
 
역사적 살인. “역사란, 그것을 변형시키는 가치가 없을 경우, 효율성의 법칙에 지배된다. 역사적 유물론, 결정론, 폭력, 효율성을 지향하지 않는 일체의 자유를 부정하는 태도, 그리고 용기와 침묵의 세계 등은 모두 순수 역사철학의 가장 정당한 귀결들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오직 영원성의 철학만이 비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다. 이 철학은 절대적 역사성에 역사의 창조를 대립시키고 역사적 상황에 대하여 그 기원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결국 불의를 인정하면서 정의의 문제를 신에게 맡겨버린다. [...] 역사로부터 전적으로 분리된 신과 일체의 초월성을 제거해버린 역사 사이에 가능한 화해란 있을 수 없다. 이 양자에 대한 지상의 대표자들은 실제로 요기와 경찰이다. [...] 만일 반항이 어떤 철학을 정립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어떤 한계의 철학, 정확하게 계산해 본 다음 어느 정도의 무지를 인정하는 철학, 위험을 부담하는 철학일 것이다. [...] 반항은 어떤 한계를 지지한다. 인간 공동체가 성립될 수 있는 그 한계 말이다. 반항의 세계는 상대성의 세계다. 반항은 헤겔과 마르크스처럼 전체란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전체란 가능적인 것이고 또 어떤 한계에 이르면 그 가능적인 것이 자기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는 것을 되풀이하여 말할 따름이다. 신과 역사 사이에서, 요기와 경찰 사이에서 반항은 하나의 어려운 길을 연다. 모순이 살아갈 수 있고 초극될 수 있는 그런 길을 말이다. [...] 목적이 절대적일 때, 즉 역사적 시각에서 목적이 틀림 없는 것이라고 여겨질 때, 사람들은 희생시키는 것까지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목적이 절대적인 것이 아닐 때, 사람들은 인간 공통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라는 도박에서 오직 자기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을 뿐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누가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역사적 사상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이 물음에 반항은 이렇게 대답한다. 수단이 정당화한다.”(793-801)
 
절도와 과도. “한계의 사상. [...] 과연 세상에는 사물과 인간의 절도라는 것이 존재하는 셈이다. 심리학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역사에 있어서도 반항은 스스로의 그 심오한 리듬을 찾기 위하여 가장 광란하는 듯 한 폭으로 흔들리는 불규칙한 진자와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불규칙한 상태가 도를 넘어버리는 경우는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축 주위를 맴돌 뿐이다. [...] 절도의 여신 네메시스.”(804-807)
 
 
정오의 사상. “이 같은 태도가 우리 시대의 세계 속에서 정치적 표현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지 알고 싶어질 때,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지만, 전통적으로 혁명적 생디칼리즘(조합주의 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을 곧 상기하게 된다. 이 생디칼리즘은 효율적인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한 세기만에 일당 16시간으로부터 주당 40시간으로까지 노동조건을 놀랄 만큼 향상시켜놓은 것이 다름 아닌 생디칼리즘이다. [...] 제왕적 혁명은 독트린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을 강제로 독트린 속으로 집어넣는데 반하여, 생디칼리즘은 직업이라는 구체적 토대에서 출발했다. [...] 만일 반항이 혁명을 원한다면, 그것은 삶을 위하여 원하는 것이지 삶에 반하여 원하는 것이 아니다. [...] 제왕적 혁명이 생디칼리즘이며 자유주의적인 정신을 누리고 승리를 거둔 바로 그날 혁명 사상은 평형추를 잃고 말았다. 타락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이 평형추, 삶에 절도를 부여하는 이 정신이야말로 태양사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장구한 전통을 형성케 하는 바로 그 정신이다. 그 안에서는 희랍인들 이래로 자연이 언제나 생성 변화와 균형 상태를 이루어왔다. 제1인터내셔널의 역사는 독일 사회주의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의 자유주의적 사상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로, 이는 곧 독일 이데올로기와 지중해적 정신 사이의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국가 대 자치군, 절대주의 사회 대 구체적 사회, 합리적 폭정 대 반성적 자유, 끝으로 대중의 식민화 대 이타적 개인주의 등은 고대 세계 이래 서양의 역사에 동력을 제공해온 절도와 과도 사이의 장구한 대립을 다시 한 번 나타내는 이율배반들이다. 금세기의 심오한 갈등은 아마도 독일의 역사 이데올로기와 그리스도교 정책 사이의 - 이 둘은 어떤 의미에서 서로 공모 관계라고 할 수 있다 - 갈등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독일적 꿈과 지중해적 전통, 영원한 청춘의 치열함과 성숙한 사나이의 힘, 지식 및 서책들에 의해 한층 심화된 향수와 삶의 흐름 속에서 개발되고 굳세어진 용기, 요컨대 역사와 자연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 이데올로기는 이 점에 있어 어떤 상속자일 뿐이다. 독일 이데올로기 속에서 우선은 역사적 신의 이름으로, 다음에는 신격화된 역사의 이름으로, 2,000년 동안 자연을 상대로 벌여온 헛된 투쟁이 완성되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분명 그리스 사상으로부터 흡수할 수 있는 것을 흡수함으로써만 가톨릭적 성격(보편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 지중해적 유산을 지워버림으로써 자연을 희생시키고 역사를 강조하게 되었으며, 로마적 양식을 버리고 고딕 양식을 선호하게 되었고, 역사 자체 내부의 어떤 한계를 파괴함으로써 점점 더 세속적 권력과 역사적 역동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 기독교의 진정한 힘이 될 수 있었을 그 중재적 관념들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에 와서 이러한 경향들이 그것도 기독교 자체에 반하여 득세하게 되었다. 당연한 귀결이었다. 과연 신이 이러한 역사적 세계에서 추방되어 버리자 독일 이데올로기가 탄생하게 된다. 이 독일 이데올로기는 이제 행동이 더 이상 완성을 향해가는 과정이 아니라 순전히 정복, 다시 말해 폭정이 되어버렸다. / 그러나 역사적 절대주의는 그 자체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이 부르짖는 저 억누를 수 없는 요구와 끊임없이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성과 강렬한 햇빛과 혈연관계처럼 맺어져 있는 지중해는 바로 그 인간본성의 요구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해준다. [...] 유럽은 결코 정오와 심야의 투쟁을 벗어난 적이 없다. 유럽은 이 투쟁에서 도망가든가 혹은 낮을 밤의 암흑으로 지워버리든가 할 때는 어김없이 타락했다. 그 균형의 파괴는 오늘날 너무나도 기막힌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 이렇게 되자 이 공동(共同)의 비참 속에서 지난날의 그 해묵은 요구가 되살아난다. 자연이 다시금 역사의 면전에서 몸을 일으킨다. 물론 그 어떤 것을 경멸하려는 것도 아니고, 어떤 문명을 비하하고 다른 문명을 찬양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늘날의 세계에 더 이상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사상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 빈사상태의 끔찍한 유럽 속에 내던져진 채, 아름다움도 우애도 빼앗긴 우리는, 가장 드높은 긍지를 가진 종족인 우리 지중해인들은, 언제나 변함없는 햇빛으로 살고 있다. 유럽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태양의 사상이, 두 얼굴을 지닌 문명이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 절도는 반항의 반대가 아니다. 반항이 곧 절도이다. 절도를 주문하고 옹호하고 역사와 그 역사의 혼돈을 향해 한계를 재창조하는 것이 반항이다.”(809-815)

 
허무주의를 넘어서


“정치는 종교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치는 재판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회가 절대를 규정할 수 있단 말인가? [...] 현대의 유물론 역시 모든 문제에 답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역사의 노예인 현대의 유물론은 역사적 살인의 영역을 증가시키면서 그와 동시에 그 살인을 정당화되지 못한 채로 방치한다. 오직 미래에만 그 살인이 정당성을 얻을지 모르는데 그 미래는 또 신앙을 요구한다. 두 경우에 다 인간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기다리는 동안 죄 없는 자들이 끊임없이 죽는다. [...] 극단적인 너그러움이야말로 반항의 너그러움이다. 그것은 지체 없이 사랑의 힘을 주고 당장의 불의를 거부한다. 그것의 명예로움은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 그리고 현재의 삶과 현재의 살아있는 형제들에게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데에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앞으로 올 미래의 인간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진정한 너그러움은 현재에게 모든 것을 주는 데 있는 것이다. / 이로써 반항은 그것이 바로 생의 운동이라는 것을, 살기를 포기하지 않고서는 반항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반항은 그러므로 사랑이요 풍요다. [...] 유럽의 비밀은 유럽이 더 이상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 한계를 견디지 못하는 초조, 자신들의 이중적 존재에 대한 거부, 인간됨의 절망 등은 마침내 그들을 비인간적인 과도함 속으로 몰아넣었다. 알맞은 크기의 삶을 거부하고 그들은 그들 자신의 우수성을 위하여 내기를 걸어야 했다.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신격화했고 그리하여 그들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즉 이 신들은 눈이 먼 것이다. [...] 사는 법과 죽는 법을 배울 것, 그리고 인간이 되기 위하여 신이 되기를 거부할 것. / 사상의 정오에서 반항하는 인간은 이처럼 인간 공동의 투쟁과 운명을 함께 나누기 위해 신성을 거부한다. [...] 이 기쁨과 더불어 투쟁을 계속하는 동안 우리는 이 시대의 영혼을, 그 어느 것 하나 배제하지 않는 유럽을 새로이 만들리라. [...] 모든 사람이 과연 1905년의 희생자들 곁에서 재생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인이 서로를 교정해준다는 것을, 햇빛 속에서는 그 어떤 한계가 그들 모두를 멈추어 서게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조건에서만 재생할 수 있다. 각자가 다른 사람에게 당신은 신이 아니라고 말해준다. 여기서 낭만주의는 끝난다.”(816-822)
 





1952년. 알제리 여행. 8월 사르트르와 결별. 11월. 레카미에 극장 운영 신청. 프랑코 장군 하의 스페인이 국가로 인정받자 유네스코에서 탈퇴. 소설 『최초의 인간』 구상. 『적지와 왕국』을 구성할 중편들, 그리고 희곡 「동쥐앙」 및 「악령」의 각색을 구상.
 

1953년 6월 7일. 동베를린 폭동. “세계의 어느 구석에서, 한 노동자가 탱크 앞에서 맨주먹으로 자기는 노예가 아니라고 외치며 대항할 때, 우리들이 무관심하다면 도대체 우리들은 무엇이란 말인가?”(「신용조합에서의 연설」) 1954년. 7명의 튀니지 사형수 구명운동을 제외하고는 모든 정치적, 문학적 활동을 중단하고 일년 내내 아무 글도 쓰지 않는다. 1939-1953년까지 쓴 글들을 모은 『여름』 출간. 1955년 3월. 디노 부차티의 「흥미있는 경우」 각색. 5월. 그리스 여행을 하며, 「계엄령」을 야외 극장에서 다시 상연할 것을 구상하고 연극에 관해 강연. 6월. 기자 활동을 재개하여 「엑스프레스」지에 기고, 특히 알제리 문제를 취급. 1956년. 알제 방문. 1월 23일. 카뮈는 휴전을 호소하나, 그의 동향인들로부터 매우 모욕적인 대접을 받는다. 2월. 「엑스프레스」 기고 중단. 체포된 수많은 알제리 민족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위한 구명 운동에 참여. 9월 20일. 자신이 각색한 포크너의 「어떤 수녀를 위한 진혼곡」 상연, 성공. 헝가리 부다페스트 봉기 탄압 반대 회합에 참여. 이집트 나세르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에 따른 불ㆍ영의 군사작전, 패퇴. 결과적으로 미소 양극체제가 중동에 확립. 『전락』 간행. 『여름』의 후속으로 『축제』 집필 구상. 1957년 3월. 『적지와 왕국』 출간. 6월. 앙제 연극 축제, 로페 데 베가의 「올메도의 기사」 각색. 「칼리귤라」 재상연. 쾨슬러, 블로크 미셀과 공동으로 저술한 『사형에 관한 성찰』에 「단두대에 대한 성찰」을 게재. 10월 17일. 노벨 문학상 수상. 프랑스인으로 아홉 번째이며 최연소. 1958년 2월. 『스웨덴 연설』 출간. 6월. 알제리 연대기 『시사평론』 제3권 출간. 이 저서를 통하여 카뮈는, 알제리의 갈등 및 문제 해결책 강구를 위한 면밀한 분석의 필요성을 제창했으나, 유명 신문들은 아무런 논평도 가하지 않고 무시. 이 해와 다음해에도 카뮈의 건강은 쇠약. 6월 9일. 그리스 여행. 11월. 루스마랭에 주택 구입. 1959년 1월 30일.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을 각색하고, 자신이 연출 상연. 문화부장관 말로가 카뮈에게 테아트르 프랑세의 운영을 맡아달라고 제의하나, 카뮈는 ‘완전히 새로 시작’을 하고자 함. 거의 1년 내내, 카뮈는 많은 일을 아주 고통스럽게 해냈다. 그러나 11월에 들어 루르마랭 집에서, 그는 자기의 집필 원동력을 다시 되찾기라도 한 듯이 힘들이지 않고 『최초의 인간』의 일부를 써내려갔다. 1960년 1년 4일. 미셀 갈리마르(갈리마르 출판사 사장의 조카)의 승용차에 동승한 카뮈, 몽트로 근교 빌블르뱅에서 교통 사로로 사망.

 
 
* 이 연보는 플레야드판 『카뮈 전집』 제1권에 로제 키요(Roger Quilliot)가 작성ㆍ수록된 것으로, 우리말 번역은 고려대학교 불문학과 김화영 교수.
 
 

국립극단 1 - 니체

*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 ‘진리’의 부정

 

 

* 세계와 언어에 관한 네 가지 명제

 

1.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각주의 역사에 불과하다” - A. N. Whitehead.

2. “감각은 인간을 속이는 것이며, 이념(idea)이 믿을 만한 것이다.” - 플라톤

3. “이념(Idee)은 인간을 속이는 것이며, 감각이 믿을 만한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4. “도(道)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 『노자, 길과 얻음』, 김용옥 옮김, 통나무, 1989, 제1장.

 

* 니체 연보

 

 

1844. 10. 15. 독일 색소니의 뤼켄에서 출생. 부계와 모계는 공히 전통적 루터교파의 집안으로,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목사, 어머니 역시 목사의 딸이었다. 여동생 엘리자베트. 니체 5세때 부친 사망. ‘어린 목사.’

1864. 본대학의 고전학 장학생으로 입학. 대학시절 아르투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철학을 발견 - 󰡔의지(意志)와 표상(表象)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 1819-1847).

1868-9.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와 그의 아내 코지마 폰 뷜로(Cosima von Bülow)를 처음 만나다.

1870. 스위스 바젤대학의 고전학 정교수가 되다.

1872.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그리스 정신과 염세주의󰡕(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e der Musik). 니체 작곡 「만프레드 명상」(Manfred Meditaion) 초연.

1873-6. 󰡔반(反)시대적 고찰󰡕(Unzeitgemässe Betrachtungen) I, II, III, IV부.

1878-1880.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로운 정신을 위한 책󰡕(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편지에서 자신을 ‘삶의-철학자’(der Lebensphilosoph)라 칭함.

1879. 건강 악화로 교수직 사퇴. 이후 1889년경까지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유럽 등지로의 여행.

1881. 󰡔서광: 도덕적 편견에 관한 사상󰡕(Morgenröte, Gendanken über die moralischen Vorurteile)

1882. 󰡔즐거운 학문󰡕(Fröhliche Wissenschaft). “신은 죽었다.”

1883-5.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를 위한 책, 동시에 누구도 위하지 않은 책󰡕(Also sprache Zarathustra). “나는 이제 아마도 유럽에서 가장 독립적인 인간일 것이다...”

1886. 󰡔선악을 넘어서: 미래의 철학에 대한 서언󰡕(Jenseits von Gut und Böse)

1887. 󰡔도덕의 계보학󰡕(Genealogie der Moral)

1888. 󰡔바그너의 경우: 한 음악가의 문제󰡕, 󰡔우상의 황혼󰡕, 󰡔반(反)-그리스도: 기독교에 대한 저주󰡕(Antichrist, 1911년 출판), 󰡔니체 대 바그너, 한 심리학자의 공문서󰡕,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디오니소스 찬가󰡕 등을 쓰다.

1889. 1. 45세.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착란에 의한 졸도에 뒤이은 정신의 총체적 붕괴. 이후 사망 시까지 11년 동안 독일 바이마르에 은거.

1900. 8. 25. 사망. “나는 언제나 나의 온 육신과 삶을 다해 책을 썼다.”

1906. 생전 계획에 따른 미완성 저작 󰡔힘에의 의지. 모든 가치의 전도에 대한 추구󰡕(Der Wille zur Macht. Versuch euner Umwertung aller Werte) 출간. 엘리자베트 니체의 문제.

 

* “모든 인간 공동체에는 건강한 자들에 대한 병든 자들의 투쟁이 존재한다.” 절대적인 것은 병적이다 - 이견(異見), 일탈, 건전한 불신(앙), 경멸, 파괴, 조롱이 바로 건강의 징표다. 도덕의 어머니는 누구인가? - 그것은 공포다.

 

 

* 아포리즘(箴言, aporism). 자유로운 정신(ein freier Geist): ‘진리’를 믿지 않는 자. 삶에 대하여 디오니소스의 정신(=긍정)으로 말하는 자. 낙타-사자-어린이. “인간은 원숭이와 초인(Übermensch)의 사이에 놓인 끈이다.”(󰡔짜라투스트라󰡕). 귀족적 급진주의 - 인간과 마찬가지로 도덕에도 우월, 등급이 있다. ‘고급문화’, 기독교는 잔인성의 정화(淨化), 심화(深化)에 기반한다 - 우리가 재발견하고 재고해야 할 것은 잔인성이다.

 

* “나는 유럽 최초의 완전한 허무주의자이다. 나는 그것을 끝까지 살아 냈다.”

천상에서 대지로! 하늘에서 땅으로!

 

ⓐ kosmos. 절제, 질서, 척도, 형식, 조화, 철학, 도덕(das Apollinische).

ⓑ kaos. 도취, 관능, 창조, 예술의 근원적 힘(das Dionysische).

ⓒ 합리성, 혹은 추상적 계몽(das Sokratsche=Platonische).

 

* 플라톤주의(=소크라테스주의): 우주, 세계, 인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평가할 수 있는 영원불변하는 본질적인 객관적, 보편적, 절대적 진리가 있다. 1+1=2 ?

 

 

*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만물(萬物)은 유전(流轉)한다. 세상 모든 것은 흐른다”(panta rhei).

 

 

* 존재(存在, Being)와 생성(生成, Becoming). ‘있음/~임’과 ‘됨’.

 

 

예술ㆍ삶

 

진리ㆍ이론

디오니소스적인 것

아폴론적 것

소크라테스적인 것

도취

이론화

삶 자체ㆍ전체

개체화 원리

(Principii Individuationis)

형식화ㆍ도식화

의지의 직접적 표현으로서의 음악

조형적 형상화ㆍ가상ㆍ환영

으로서의 조각ㆍ미술

(아름다움의 베일)

이론ㆍ철학ㆍ학문

비극적 신화

음악

(음악과 신화의)

형상화

합리화ㆍ탈신화화ㆍ세속화

호메로스ㆍ르네상스

종교개혁ㆍ루터

-

소크라테스(플라톤)ㆍ

그리스도교/예수(바울)

니체

-

민주주의ㆍ자유주의ㆍ공리주의

자본주의ㆍ사회주의ㆍ공산주의

바그너의 총체예술

(Gesamtkunstwerk)ㆍ 악극(Musikdrama)

-

오페라

* 비극의 탄생에 나타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의 비교

 

 

* 퇴폐(데카당스, decadence) - 이제까지 원인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은 단지 어떤 다른 것의 한 가지 결과에 불과하다; 데카당스는 필연이다. 종교, 철학, 도덕은 데카당스이며, 그 반대의 운동이 예술이다. “진리는 추하다.” 도덕의 계보학. 원한(ressentiment) = 물귀신 작전? 주인의 도덕(자신의 혈통에 대한 열광적 긍지)과 노예의 도덕(주인에 대한 공포와 예종, 예속의 도덕. 기독교). 기독교 = 대지와 삶의 부정. 도덕에 있어서의 노예 반란: 인간의 내면화 - 모든 적의, 잔인, 박해, 공격, 변혁과 파괴의 쾌락을 그 본능의 소유자인 자기 자신에게로 돌리는 것, 바로 이것이 ‘양심의 가책’의 기원이다. ‘양심의 가책’의 발명 - 그것은 하나의 병이다. 종교의 본질은 노이로제다. “(기독교의) 이타주의, 만인이 서로서로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면 각각 개인들이 언제나 보호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열등한) 약자들의 대중적 이기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일까?”

 

* “누군가가 자기 이웃의 비이기성을 찬양하는 이유는 그가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도덕이란 대부분 개인에게 유해한 덕목들에 대한 찬미이다.” 동정(同情)과 삶을 바꿀 수 있을까? 도덕이란 자연에 반(反)하는 것이다. “허무주의자들은 도덕의 자살을 요구한다.” “도덕적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이 존재한다.” “내게는 세네카나 키케로처럼 철학을 교훈적으로 예찬하는 것보다 구역질 나는 짓은 없다. 철학은 도덕성(Tugend)과는 무관하다.”(󰡔힘에의 의지󰡕, 420번.); 도덕의 계보학: 쇠퇴의 본능과 융성의 본능; “자연의 회복, 즉 도덕에 구속받지 않는 것.”

 

* “신은 죽었다” = 진리는 없다 =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다”(도스토예프스키) = 허무주의(nihilism): 모든 것의 의미없음. 진리, 도덕, 종교와의 결별. 영원회귀; 영원한 무의미의 반복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기존에 존재하던 지고의 여러 가치(의미)가 그 가치를 박탈당하는 것, 목표(목적)의 결여, ‘왜?’(Warum?)에 대한 대답의 결여.”

 

* 따라서, 사실 혹은 진리가 아닌 오직 관점들, 해석들만이 존재한다. 소극적 허무주의와 적극적 허무주의. 원근법주의(遠近法主義, Perspektivismus): “관점이 가치다.” “자기 자신을 사물의 의미나 가치에 대한 척도로 간주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의 과장된 유치함이다.”

 

 

* 진리(die Wahrheit), 참된 존재자, 항상적인 (=영구불변한) 것, 확정된 것은 항상 어떤 일면만의 원근법이다. 이는 실재가 아닌, 인간 인식의 편의, 편리를 위한 고안물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오류이며, 허구이고, 인류의 생존을 위한 하나의 발명품이다 - 따라서 현재 인정되고 있는 세계는 단지 세계 해석의 여러 가능성들 중 하나이다. “진리(=도덕)란 그것이 없다면 어떤 특정한 종류의 생물이 살아갈 수 없었던 일종의 오류이다. 궁극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생(das Leben)을 위한 가치이다.” - 진리에 대한 인식은 도덕을 낳는다. “생(=생명(체), 삶) 그 자체가 힘에의 의지이다.” “그것은 착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이란 기만이다.” 이 때의 생이란 생물학적 의미도 실천적 의미도 아닌, 형이상학적 의미이다(M. 하이데거). 그러므로, 내가 이해하는 이 ‘가상’의 세계야말로 유일한 사물의 실재성이다(그러므로 “정직한 사람은 항상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이해함으로써 끝난다”). 그렇다면 가상의 세계가 ... 그러나, ‘참된’ 세계를 없앰으로써 우리는 ‘가상의’ 세계도 없앴다. 그림자가 가장 짧은 순간, 가장 긴 오류의 끝, 인간성의 절정, 정오(正午)의 사상. 초인이란 최초의 인간이다. 가치의 창조자. 자기 찬미, 자기 창조, 자기 긍정의 도덕. “고귀한 영혼은 자기 자신을 숭배한다.” 신에 대한 인식의 역사는 인간의 자기 인식(자각)의 역사이다.

 

* 허무주의는 종착점이 아닌 통과점이며, 인간 또한 하나의 통과점이며, 몰락이다. 인간이 지향하는 것은 초인이다. 그는 “지식의 엄밀함과 창조의 위대한 양식 안에서 존재를 새롭게 근거짓는 인간이다.” 초인=어린아이=궁극적 긍정=최초의 인간=짜라투스트라=니체. “나를 다 사는 것.” 나의 모든 현실과 나의 모든 가능성을 다 사는 것, 그것은 나의 육체를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야 한다. 세계에 의미나 목적은 없다. 따라서 우리가 그것을 창조(=고안)해내야 한다. “진정한 철학자란 입법자이며, 명령자이다.” (본질(本質)주의(Essentialism)에 반하는) 실존(實存)주의(Existentialism). 영원회귀: “충족을 모르고 피곤을 모르는 생성 - 영원히 자기 자신을 창조하고 영원히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이 나의 디오니소스적 세계.”

 

1. 니힐리즘(虛無주의, nihilism). 2. 영원 회귀(永遠 回歸, ewige Widerkehr des Gleicher). 3. 초인(超人, Übermensch). 4.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5.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

 

* “이것이 여러분에 대한 하나의 요구이다 - 그것이 여러분의 귀에는 극히 거슬리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 즉, 여러분은 도덕적 가치평가 자체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여러분은 여기서 굴복을 바라고 비판을 원하지 않는 도덕적 감정의 충동에 대해 ‘왜 굴종인가?’를 묻고 그것에 대한 정지를 요구해야 한다. 여러분은 이 ‘왜?’에의 요구, 도덕에 대한 비판에의 요구가 바로 도덕성의 현대적 형식이며, 동시에 여러분과 여러분의 시대의 명예가 되는 가장 숭고한 종류의 도덕성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여러분의 정직성과 솔직함, 여러분의 속지 않겠다는 의지는 ‘왜 그래서는 안되는가?’, 그리고 ‘도대체 누구의 심판을 두려워해서인가?’에 대한 답변을 스스로에게 입증하지 않으면 안된다.”(󰡔힘에의 의지󰡕, 6. 도덕 비판에의 결론적 고찰, 399번, 249쪽, 청하)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 전집 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1878), 김미기 옮김, 책세상, 2001.

 

6. [...] 너는 모든 가치 평가에서 관점주의적인 것을 터득해야만 했다 - 지평의 이동, 왜곡 그리고 표면상의 목적론과 관점주의적인 것에 속하는 모든 것 그리고 대립된 가치들과 관계하는 약간의 우둔함, 찬성과 반대와 함께 항상 지불되는 지적 희생도 터득해야만 했다. 모든 찬성과 반대 속에 포함된 필연적인 불공정[불공평]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그 불공정은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삶 자체를 관점주의적인 것과 그 불공정에 의해 제약되는 것으로 터득해야 했던 것이다.

- 17쪽.

 

25. 개인 도덕과 세계 도덕 - [...] 아무튼 인류가 이와 같은 의식적인 전제적 통치에 의해 파멸되어서는 안 된다면, 지금까지의 정도를 모두 넘어서는 문화의 조건들에 대한 지식이 보편적 목표를 위한 학문의 척도로서 사전에 이미 발견되어야 한다. 이것이 다음 세기의 위대한 정신들이 해야 할 엄청난 과제이다. 49쪽.

 

31. 비논리적인 것은 불가피하다 - 비논리적인 것이 인간세계에 필요하며 비논리적인 것에서 좋은 것이 많이 생겨난다는 인식은 사상가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는 것 중에 하나다. 비논리적인 것은 정열, 언어, 예술, 종교 등에 그리고 대체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에 상당히 깊이 파고 들어가 있어서, 이들 아름다운 것들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주지 않고는 비논리적인 것을 퇴치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순수하게 논리적인 본성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주 소박한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이 목표에 접근하는 단계라는 것이 있다면,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은 상실될 것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가장 이성적인 인간도 때로는 다시 본성을, 즉 만물에 대한 자신의 비논리적 기본 입장을 필요로 한다. - 54-55쪽

 

32. 불공정함은 불가피하다 - 삶의 가치에 관한 모든 판단은 비논리적으로 발전해온 것이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판단의 순수하지 못함은, 첫째 재료가 나타나는 양식에, 즉 극히 불완전한 점에 있으며, 둘째 재료에서 총계가 구성되는 양식에 있으며, 셋째는 재료의 모든 개별 부분이 순수하지 못한 인식의 결과이며, 더욱이 이런 순수하지 못한 인식의 결과가 다시 필연적이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겪은 경험의 총체적 평가를 위한 논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만큼 완전할 수는 없다; 모든 평가는 성급하며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재는 척도, 즉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은 결코 불변의 크기를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위기와 동요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 대한 어떤 사항의 관계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확실한 척도라고 믿어야만 한다. 아마 이상의 모든 면에서 본다면 사람은 전혀 판단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가하지 않고, 혐오와 애착 없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왜냐하면 모든 혐오는 애착과 마찬가지로 역시 평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유익한 것을 얻고자 원하고 유해한 것을 회피하는 감정 없이 그 무엇을 하고자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충동 그리고 목표의 가치에 대한 인식적인 평가가 없는 충동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비논리적인, 따라서 불공정한 존재이며,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현존재의 가장 크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부조화 중의 하나이다. - 55-56쪽

 

* "Le sens historique, tel que Nietzsche l'entend, se sait perspective, et ne refuse pas le systeme de sa propre injustice." "니체가 이해한 바의 역사적 감각은 자신이 관점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불공정한 체계를 거부하지 않는다." - "Nietzsche, la Généalogie, l'Histoire", Dits et ecrits I, p.1018; 미셸 푸코, 「니체, 계보학, 역사」, 이광래 옮김, 이광래 지음, 『미셸 푸코: ‘狂氣의 역사’에서 ‘性의 역사’까지』, 민음사, 1989, 350쪽.

 

- 모든 이른바 '포스트주의'의 도덕성은 이 세계의 다양한 관점들을 가로지르는 '절대 관점, 보편 관점 혹은 신이 죽은' 이 세계에 대해 어떤 관점의 우위성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그 정신에 입각하여 자기 이론마저도 하나의 관점이고, 따라서 부당하고 불공정한 체계임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제까지 스스로를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유일한 필연적 진리라고 주장해왔던 모든 이론들은 사실상 그렇게 스스로를 믿고 주장할 뿐인 무수한 가능한 관점들 중 단 하나인데, 그들은 이렇게 보통 말한다. "다른 모든 관점들은 관점이다. 진리인 나의 이론만 빼고!"

 

 

이른바 '포스트주의들'은 바로 이점에 대해 스스로를 배제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연 탁월한 도덕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렇게 '하나의 논리가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적용 대상에서 빼놓지 않는 것'을 '논리의 윤리성'이라 부른다.

 

33. 삶에 대한 오류는 삶을 위해 불가피하다 - 삶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모든 믿음은 순수하지 못한 사고에 기초해 있다; 그것은 오로지 인류의 보편적인 삶과 고뇌에 대한 동감이 개인에게는 아주 미약하게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하게 불평하지 않고 삶을 견뎌내고 있고, 이로써 삶의 가치를 믿고 있다. [...] 반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운명과 고뇌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의 가치에 절망할 것이다; 만약 그가 인류의 총체적인 의식을 자신 속에서 파악하고 감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현존을 저주하면서 쓰러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전체적으로 아무런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은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아 그 속에서 위로와 의지가 아니라 회의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무목적성을 보게 될 때, 그의 눈에는 자기 자신의 활동도 낭비라는 특징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개개의 꽃이 자연에 의해서 낭비되고 있는 것을 보듯이 바로 우리가 인류로서(그리고 단순히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낭비되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모든 감정을 넘어서는 감정이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느낄 수 있는가? 분명 시인뿐이다; 시인들은 언제나 자신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다. - 56-57쪽

 

50. 동정을 유발시키려고 하는 것 - 라 로슈푸코가 자신의 자화상(초판 1658)의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에서 이성을 가진 모든 사람은 동정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그런 일은 서민들에게 맡겨버리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서민들은 고통받는 자를 돕거나 불행에 처했을 때 힘차게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정열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성을 통해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런데도 로슈푸코의 (그리고 플라톤의) 판단에 의하면 동정이란 영혼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동정을 입증해야 하지만, 동정을 갖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 왜냐하면 불행한 사람들은 어쨌든 동정을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 불행한 사람의 그러한 욕구를 정녕 어리석음과 지적 결함, 불행이 수반하는 일종의 정신장애로 간주하지 않고 (라 로슈푸코는 아마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듯하지만), 전혀 다르며 의심스러운 것으로 해석할 때, 사람들은 이런 동정을 갖지 않도록 더욱 강력하게 경계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아이들을 관찰해보라. 그들은 울거나 소리침으로써 동정받고 자신들의 상태가 눈에 띌 순간을 기다린다 ; 병자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 교제하며 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능란하게 호소하고 흐느끼며 불행을 과시하는 것이 결국 함께 있는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것은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 그들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힘, 즉 강자를 괴롭힐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한, 함께 있는 사람이 표현하는 동정은 약자와 고통받는 자들에게는 위안이 된다. 불행한 자는 동정 베풂이 자신에게 입증해주는 우월감으로 인해 일종의 쾌감을 얻는다 ; 자신은 아직도 세상에 고통을 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그의 자만심도 커진다. 그래서 동정에 대한 열망은 자기 만족을 향한 열망이며, 더욱이 이웃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 동정심은 지극히 자기애에 빠져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그러나 라 로슈푸코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음” 때문은 아니다. 사교적인 대화에서는 모든 질문과 대답의 4분의 3이 상대편을 조금이라도 괴롭히기 위한 것이다 :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대단히 사교를 갈망한다. 사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악의가 힘을 떨치고 있는 이같이 많은, 그러나 극히 적은 양의 약에서도 사교는 삶의 가장 강력한 자극제이다. 그것은 마치 같은 형식으로 이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호의가,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는 치료제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 그러나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고백할 정직한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생각 속에서는 다른 사람을 모멸하고, 악의라는 작은 탄환을 그들에게 퍼붓는 것을 가장 즐기고 - 기꺼이 즐기고 있다고 고백할 정직한 사람이 있을까? 이런 치부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기에는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부정직하고 몇몇 사람들은 너무 선하다. 따라서 차라리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 할지라도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가 한 다음의 말은 옳다. “악한 일을 한다는 쾌감 때문에 악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일반적인 없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 77-79쪽.

 

114. 그리스도교에서 비그리스적인 것 - [...] 그리스도교의 모든 심리학적 발명은 감정의 이러한 병적인 과도함과 거기에 필요한 머리와 마음속의 깊은 파괴를 향해 작용했다 : 그리스도교는 파멸시키고, 파괴하고, 마비시키고, 도취시키려고 한다. 단 한 가지 척도만은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말하면, 야만적이고 동양적이며, 천박하고 비그리스적이다. - 138쪽.

 

304. 신뢰와 친밀함- 다른 사람과 의도적으로 친밀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있는지에 대하여 확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뢰를 확신하는 사람은 친밀함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 289-290쪽

 

310. 기다리게 하는 것 - 사람들은 흥분하게 하고 그들 머릿속에 나쁜 생각을 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도덕적으로 만든다(291)

 

311. 친밀한 사람들에 대해 - 우리에게 완전한 신뢰를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뢰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는 잘못된 추리다. 선물로 권리를 획득할 수는 없다. - 291쪽

 

314. 사려 깊은 - 아무도 기분 상하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정의로운 기질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많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 292쪽

 

379. 부모의 존속 - 부모의 성격과 성향에 관련된 해결되지 않는 불협화음은 어린아이의 본질 속에서 계속 울리게 되고 그의 내면적인 고뇌의 역사를 형성한다. - 323쪽

 

381. 자연을 수정하는 것 - 훌륭한 아버지가 없다면, 그런 아버지를 자신에게서 만들어내야만 한다. - 324쪽

 

390. 여성의 우정 - 여성은 남성과 아주 좋은 우정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마 약간의 생리적인 반감이 협조해야 할 것이다. - 326쪽

 

396. 반하고 싶어 한다 - 관습에 따라 결합된 약혼자들은 흔히 그들의 차갑고 타산적인 유용성을 비난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에 빠지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이익 때문에 그리스도교로 전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경건해지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종교적 무언극이 그들에게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 327쪽

 

475. 유럽인과 여러 국가의 파멸 - [...] 동양적인 구름층이 유럽 위에 무겁게 덮여 있었던 중세의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가혹한 개인적인 압박 하에서도 계몽과 정신적 독립의 깃발을 고수하고 동양에 맞서 유럽을 방언한 것은 유대의 자유사상가, 학자 그리고 의사들이었다. 좀더 자연적이고 합리적이며 적어도 비신화적인 세계 해석이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과 지금 우리를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문화에 의한 계몽과 연결하는 문화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에 신세진 것이 적지 않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서방을 동양화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다고 한다면, 유대민족은 근본적으로 서구를 다시 서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양화하는 것이란 특정한 의미에서는 유럽의 과제와 역사를 그리스적인 것을 계승하는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 382쪽

 

483. 진리의 적들 -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 391쪽.

 

499. 친구 - 고통의 나눔 곧 동정이 아니라, 기쁨의 나눔이 친구를 만든다. - 395쪽.

 

 

 

 

* 질 들뢰즈 지음,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생성과 창조의 철학사』, 박정태 옮김, 이학사, 2007.

 

* 「플라톤과 그리스인들」(1992) - 질 들뢰즈

 

플라톤의 ‘철학’(φιλοσοφία, philosophia) - 이데아론: ‘근거 없는’ ‘부당한’ 주장과 ‘근거 있는’ ‘정당한’ 주장을 구분해주는 ‘선별의 독트린’. “만약 각각의 시민이 무엇인가를 주장한다면, 그는 필연적으로 경쟁자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주장들이 근거가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어야만 한다. [...] 플라톤에게 있어서 질서를 재확립할 필요성, 주장들이 근거가 있는지를 판단해줄 심급들을 창조할 필요성이 이로부터 비롯된다,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들이란 바로 이 심급들을 말한다.”

 

페르시아ㆍ동방

그리스ㆍ아테네

신화의 초월성ㆍ황제의 초월성

신화의 초월성ㆍ철학적 초월성

황제-신하의 위계적 사회

동등한 친구들, 곧 경쟁자들의 사회

초월성(超越性)

transcendance

내재성(內在性) immanence

= 플라톤적 초월성

 

스토아학파의 철학자들로부터 스피노자와 니체를 아우르는 순수 내재성의 철학들만이 플라톤주의를 벗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 「플라톤주의를 뒤집다(환영들)」(1966)

 

* 세계를 읽는 두 방식

 

 

- “오직 유사한 것만이 차이를 낳는다.”: 유사성ㆍ동일성으로부터 시작해서 차이를 사유. 사본들의 세계. 재현ㆍ표상(représentation)의 세계. 세계 자체를 재현으로 제시.

 

- “오직 차이만이 서로 유사하다.”: 유사성, 동일성을 일종의 생산물처럼, 즉 바탕을 이루는 같지 않음으로부터 비롯된 생산물처럼 생각하도록 인도. 세계 자체를 환영으로 제시. 다름 disparité. 유사성은 내적 차이의 생산물, 효과로 간주된다(41-42).

 

 

플라톤주의를 뒤집다 - 니체. 본질의 세계와 외양의 세계의 소멸? 플라톤주의를 구성하고 있는 동기를 밝히는 것! 이데아 이론을 구성하는 동기는 ‘선별하고 분류하고자 하는 의지의 측면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데아 이론은 차이를 드러내는 것 faire la différence = 나눔 division 의 방법

 

‘사물’ 자체

그 이미지들

본래적인 것

그 사본(寫本)

모델 idea

그 환영(幻影) simulacre

 

* 신플라톤주의의 삼자론(三者論, triade): 분유불가자(l'imparticipable, 근거, 아버지), 분유되는 자(le participé, 주장의 대상, 딸), 분유하는 자(le participant, 주장하는 자, 구혼자)

 

* 플라톤의 세 텍스트 - 『파이드로스』ㆍ『정치가』ㆍ『소피스테스』. 환영(幻影, )의 존재, 혹은 비존재(non-être), 소피스트 자신, 사티로스, 켄타우로스, 프로테우스 - 환영이란 단순하게 거짓된 사본이 아니라 오히려 사본과 모델의 개념 자체를 의문시한 것. 혹시 플라톤 자신이 플라톤주의를 뒤집는데 있어서 최초로 그 방향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31)

 

도상적 사본들(copies-icônes) vs. 환상적 환영들(simulacres-phantasmes)

 

플라톤의 이론은 환영에 대한 사본의 승리를 보장하기 위한 것. 동일성(모델)/유사성(사본). 모델 - 자기와의 동일성, 사본 - 모델과의 유사성.

 

* 환영(幻影, phantasma, simulacre)의 악마적 성격 세 가지 -

 

 

1. 환영은 [모델의 내적이고 관념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같지 않음 disparité 위에 건설된 것이며, 일종의 다름, 상이성을 내화한 것이다. 환영은 사본처럼 외적 유사성이 아닌 내화된 상이성 안에 존재한다.

 

 

2. 환영은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며, 이런 면에서 이미 자신 속에 필연적으로 차등적인 différentiel 관점을 포함하며 그것을 내화한다.

 

 

3. 환영에게는 결코 앎이나 올바른 견해가 불가능하다(34-36).

 

* 현대 예술. 어떤 문학적 기법들은 동일한 것으로 가정된 어떤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관점들이라는 것은 결국 하나의 가능한 수렴(收斂, convergence)의 규칙에 종속되기 마련인데 반해서, 이러한 기법들은 마치 완전히 구분된 어떤 경치가 그것을 바라보는 각각의 시각에 따로따로 대응하는 것과도 같이 그들 자체가 서로 다르며 발산(發散)하는(divergent) 그런 이야기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법들에 따르면 발산 중인 계열들[이야기들]로 이루어진 합치가 존재하며, 이 합치는 곧 그 자체가 위대한 작품 Grande Oeuvre과 구분이 되지 않는 그 어떤 혼돈 chaos 을 필연적으로 구성한다. 그런데 이렇게 구성된 비정형적 혼돈은 아무래도 좋은 그런 무조건적 혼돈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때의 혼돈이 발산하는 모든 계열을 혼돈 자신 속에 ‘접혀진 compliquées’ 상태로 취하면서 모든 계열을 접고 compliquer 있다면, 이와 동시에 각각의 현실적인 계열은 이 혼돈을 펼치고 expliquer 있으며, 또 잠재적인 모든 계열은 이 혼돈을 잠재적인 자신의 계열 속에 감싸고 impliquer 있기 때문이다(36-37).

 

이제 플라톤주의를 뒤집는다는 것은 도상 또는 사본에 맞서서 환영의 권리, 환상의 권리를 긍정하는 것을 말한다. [...] 환영은 격하된 사본이 아니다. 그것은 본래적인 것과 그의 사본을, 모델과 그의 재생산을 부정하는 적극적인 역능이다. [...] 환영은 그 자신이 새로운 근거와는 완전히 거리를 둔 채, 모든 근거를 먹어치운다. 환영은 보편적인 와해를, 하지만 적극적이며 즐거운 사건으로서의 보편적 와해를, [...] 그런 탈근거(effondement)로서의 보편적인 와해를 보장한다(47-48).

 

동일자의 영원회귀. 플라톤적으로 제압된 영원회귀? 혼돈의 우주 카오스모스 chaosmos (51).

 

 

* 「권력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1967)

 

피에르 클로소프스키는 [자신의 글 「동일자의 영원회귀에 대한 실제 경험 속에서 나타나는 망각과 기왕증」에서] 신의 죽음 또는 죽은 신이 자아(Moi)로부터 자아가 동일성과 관련하여 지니는 유일한 보증을, 말하자면 통일을 이루는 자아의 실체적 기반을 빼앗아버린다고 말하였다. 즉 신이 죽었기 때문에 자아는 이제 소멸되거나 증발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자아는 이제 그의 계열이 그 계열의 수만큼의 우발적 사건들이 되어 가로질러짐에 틀림없는 그런 모든 다른 자아에, 다른 역할에, 다른 인격에 개방되게 된다. “나는 샹비주이고 바딩게이고 프라도이다. 나는 역사에 나타난 모든 이름인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장 발은 [자신의 글 「니체의 사유에 있어서의 질서와 무질서」에서] 니체가 그의 질병 이전에 보여준 이 같은 기막힌 소모, 이같은 동성(動性), 이 같은 다양성, 이 같 은 변신 역능을 대상으로 일람표를 만들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니체 자신을 대상으로 니체 자신이 직접 실시한 니체의 모든 심리 분석은 일종의 가면(假面)의 심리학, 가면의 유형학에 해당하며, 따라서 여기에서는 각각의 가면 뒤에 언제나 또다른 가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222-223).

 

니체에게는 ‘그 어떤 것 자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해석만이, 의미의 복수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니체에 따르면 마치 서로 끼워 맞춰진 가면들이 그런 것처럼,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포함된 언어들이 그런 거서처럼 해석은 다른 해석 속에 숨겨져 있다. [...] 해석은 이제 기준으로서의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소유하기를 멈춘다. 그 대신 고상한 것과 천한 것, 높은 것과 낮은 것이 해석과 가치평가의 내재적인 원리를 이루게 된다. 말하자면 논리학이 위상학(位相學, topologie)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사유하고 느끼는 행위, 심지어는 존재하는 행위와 관련하여 낮거나 천한 방식을 전제하는 해석이 존재하는 반면, 이와는 반대로 고상함, 관대함, 창조성 ... 을 증언하는 다른 해석이 존재한다. 따라서 해석은 무엇보다도 먼저 해석하는 자의 ‘유형’을 판단하게 되며, 또 이런 이유로 해서 해석은 ‘누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기 위하여 ‘무엇을?’이라는 질문은 포기하게 된다. / 이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보면 진리를 ‘물리치도록’ 해주며, 참된 것 또는 거짓된 것의 배후에서 그보다 훨씬 깊은 심금(審級, instance)을 발견하도록 해주는 니체적 가치 개념이다. [...] 만약 이처럼 모든 것이 가면이라면, 그리고 모든 것이 해석이며 가치평가라면, 더 이상 해석할 것도, 평가할 것도, 가면을 씌울 그 어떤 것도 없는 최후의 심급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최후의 심급에는 그 자체가 돌변의 역능(力能), 가면들의 모양을 결정하는 역능, 해석하고 가치를 평가하는 역능인 힘에의 의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다(222-224).

 

 

신은 자아의 유일한 보증이다. 따라서 신이 죽으면 자아는 반드시 증발하여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부터, 즉 신이 죽고 그에 따라 자아의 동일성이 파괴되면서부터 비로소 서로 작용하며 서로 침투하는 변동 또는 강도(强度, intensité)의 원리로서의 힘의 의지가 유래하며, 자기의 모든 변화를 거쳐서 되돌아오고 다시 지나가는 변동 또는 강도의 원리로서의 영원회귀가 유래하게 된다. 결국 간단히 말하자면 영원회귀의 세계는 강도로 이루어진 세계, 차이의 세계로서, 그것은 일자나 동일자를 가정하는 세계가 아니라 반대로 동일한 자의 폐허 위에서, 유일신의 무덤 위에서 건설되는 세계이다(235).

 

영원회귀의 진정한 이유는 동등하지 않은 것,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것’이 되돌아오는 이유는 그 어떤 것도 동등하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영원회귀는 오로지 생성(生成)을 통해서만, 오로지 다수성(多數性)을 통해서만 이야기된다. 그것은 존재, 합치, 동일성이 배제된 세계의 법칙인 것이다. 일자(一者)나 동일자(同一者)를 가정하는 것과는 반대로, 영원회귀는 그 모습 그대로의 다수와 유일한 합치를 이루며, 차이를 낳는 것과 유일한 동일성을 구성한다.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되돌아오기만이 생성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재로서의 영원회귀가 하는 기능은 결코 동일시하는identifier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성, 다수, 차이를] 증명하는authentifier 것이다(239).

 

우리는 힘에의 의지의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본 바 있다. “통용되고 있는 가치들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과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하는 것’ 사이의 차이는 본설상의 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이 본성상의 차이가 영원회귀의 차이이며, 영원회귀의 본질을 구성하는 바로 그 차이이다. [...]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반시대적이며 그들의 창조가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인 가치들, 그리고 겉으로 보아 한 사회에 의해 인정되고 동화된 것처럼 보이는 그때마저도 실제로는 다른 힘들을 이야기하면서 바로 그 사회 자체 속에서 또 다른 본성의 아나키적 역능들을 추구하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오로지 이러한 가치들만이 역사를 넘어선 supra-historique 가치들이며, 오로지 이러한 새로운 가치들만이 기막힌 혼돈을 증명하고 또 그 어떤 질서로도 환원이 불가능한 창조적인 무질서를 증명한다. 니체가 그것은 영원회귀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원회귀 그 자체라고 말한 것, 그것이 바로 이 혼돈이었다. 이처럼 위대한 창조들은 역사-상부적 바탕으로부터, ‘반시대적인’ 혼돈으로부터 시작하며, 또 그렇게 시작된 위대한 창조들은 우리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영역의 그 한계에 이를 때까지 나아간다(242-243).

 

우리는 니체는 아마도 깊이 있는 연극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마지막 가정을 해볼 수 있다. 그는 단순히 연극의 철학(디오니소스)만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철학 자체 속에 연극을 도입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철학을 변형시키는 표현의 새로운 수단들이 연극과 더불어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니체의 경구가 그것이 마치 연극연출가의 원칙이나 평가인 것처럼 이해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 전체를 구상하는 것은 철학 속에서뿐만이 아니라 연극무대를 위해서이기도 하다(245).

 

 

* 아리아드네의 비밀(1963)

 

영원회귀는 반드시 변환을 동반한다. 생성의 존재 또는 영원회귀는 이중 긍정의 산물이며, 이때 이 이중긍정은 스스로 긍정하는 것을 되돌아오게 하고 오로지 적극적인 만 생성되도록한다(255).

 

 

* 유목적 사유(1972/1973)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니체를 읽고 있으며 니체를 발견하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건네야 한다(257). 그러나 오늘의 니체적 젊은이들이란 누구일까?(259)

 

각각의 강도는 어떤 것이 작용함에 따라서 필연적으로 다른 강도와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러한 체험된 상태 또는 강도 또는 흐름이 앞에서 언급한 코드들 아래에 있는 것이자, 그 코드들을 벗어나는 것이요, 또 코드들을 자기식대로 해석하고 바꾸며 화폐로 주조하듯 일률적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바로 그것이다. 니체는 강도에 관한 그의 글을 통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도를 결코 재현과 바꾸지 마십시오. 강도는 사물들의 재현과 같은 기의를 의미하지 않으며 어휘들의 재현과 같은 기표를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탈코드화의 동인이면서 동시에 그 대상과도 같은 이 강도는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 니체에게 있어 가장 신비스러운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강도는 고유명사와 더불어 보아야 하는데, 이때의 고유명사들을 사물들의 (또는 사람들의) 재현도 아니요 어휘들의 재현도 아니다. [...] 그것들은 차라리 땅의 신체일 수도 있고, 책의 신체일 수도 있으며, 그것들은 차라리 고통받는 신체일 수도 있는 그런 신체 위에서의 강도들을 가리킨다. 나는 역사에 나타나는 모든 이름이다 ... 라는 구절은 이런 의미에서 교유명사들에 의해 지칭되는 강도들이 그 어떤 충만하게 꽉 찬 신체 위에서 살아짐과 동시에 이 강도들에서 저 강도들로 서로서로 침투하는, 강도들의 계속적인 자리이동이 있게 되는 것이다. 강도는 이처럼 하나의 신체 위에 강도 자신이 동적으로 옮겨 앉게 되는 관계를 통해서만, 한 고유명사가 지니는 동적인 외성(外性)과의 관계를 통ㅅ해서만 살아질 수가 있는 것이다. 니체에게 있어서 고유명사가 언제나 하나의 가면, 즉 작용자의 가면인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271-272)

 

만약 니체가 철학에 속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그것은 니체가 반-철학이라는 또 다른 유형의 담론을 최초로 지각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그는 행정적인 합리 기계에 의해 또는 순수 이성의 관료들인 철학자들에 의해 진술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전쟁기계에 의해 진술이 생산되게 되는 담론,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유목적인 담론을 지각한 것이다. 니체그 자신과 더불어 새로운 정치(자기 고유의 계급에 맞서 대항하는 모의라고 클로소프스키가 부른 것)가 시작된다고 전하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우리의 체제 속에서 유목민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그 어떤 수단도 결코 약화되지 않기 때문에, 유목민들이 그만큼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다. 니체 또한 하숙집에서 하숙집으로 전전하면서 [덧없는] 그림자로 깍아내려진 이런 유목민의 한 사람으로 살았다. 하지만 유목민이 꼭 공간적으로 이동하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장소 위에서의 여행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도 속에서의 여행 또한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역사적으로 보면, 유목민들은 이주민의 방식으로 공간적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와 반대로 이동하지 않는 사람들, 즉 코드를 벗어나되 같은 장소에 머물기 위해 유목에 스스로 뛰어든 사람들을 말한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에 있어서의 혁명의 문제란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 또는 국가장치의 전제군주적이고 관료적인 조직 속에 결코 다시 빠지지 않는 엄격한 투쟁의 단위를 발견하는 일이다. 즉 국가장치를 다시는 만들지 않을 전쟁 기계를 발견하는 일, 외부와의 관계 속에서 내적인 전제군주적 단위를 다시는 만들지 않을 유목의 단위를 발견하는 일이다. 사유를 이처럼 전쟁기계로 만들고 유목적인 역능으로 만든 것, 아마도 이것이 니체에게서 보이는 가장 심오한 것일 것이며, 아마도 이것이 경구 속에 나타난 모습 그대로의 철학과의 결별이 함축하는 진수일 것이다(276-277).

 

 

 

* 서양철학사는 거개가 실체(實體)에 대한 탐구의 역사다.

 

 

* 실체란 무엇인가?: substance(sub + stantia = essence 本質)와 stantia(appearance 現象) - 무엇이 이 우주, 세계, 자연, 인간에 관한 영원불변한 眞理인가? 그 영원불변하는 眞理(the Truth) 혹은 本質(the Essence)을 서양철학에서는 實體(substance)라 부른다. 實體는 어떤 무엇이 그 무엇이 되게 해주는 그것. 다른 모든 것이 있어도 이것이 그것에 없으면 그것이 그것이 아니게 되는 그 무엇. 어떤 것을 그 어떤 것이 되도록 하는 것; scientia, logos, sophia, episteme, Wissenschaft, knowledge, the Truth...

 

 

* 한마디로, 실체란 -주의(-主義, -ism) 앞에 붙는 것이다.

 

 

* 본질(本質 - Essence, 實體 - Substance, 原質 - Archē, Arkē, Urstoff, 存在(있음) - Being, Existence, Existenz, 實在 - Reality ... ): What really exists (beyond, behind, or under our appearance). 진짜로 있는 것. 理性적 推論의 대상.

 

* 현상(現象: appearance, 비본질적, 부차적, 가변적): 실제로는 없는데 무지, 속임수, 착각 등으로 인해 진짜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感覺, 感情의 대상.

 

 

* 實體의 숫자와 성질 혹은 속성에 따르는 구분들(-ism들)

 

☞ 虛無주의(nihilism), 懷疑주의(skepticism), 不可知論(agnosticism) ...

 

- 실체의 갯수에 따라: 一元論(monoism), 二元論(dualism), 多元論(pluralism)...

- 실체의 주요 구성 성분에 따라: 唯物論(materialism)과 唯心論(spiritualism=精神主義), 唯氣論과 唯理論 ...

- 실체가 구성되는 방식에 따라: 實在論(raelism), 觀念論(idealism) ...

- 우리가 실체를 파악하는 방식에 따라: 經驗論(empiricism), 理性論(=合理論, rationalism), 科學주의(scientism), 實證주의(positivism), 檢證 이론(verification theory), 反證 이론(falsification theory) ...

 

* 形而上學(metaphysics), 存在論(ontology)+認識論(epistemology), 論理學(logic), 倫理學(ethics), 美學(=藝術哲學, aesthetics).

 

 

* 辨證法的 唯物論의 ‘철학의 근본문제’: 이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은 어떻게 파악가능한가? 실체의 본성과 그것의 파악 방식에 따른 구분:

 

形而上學的(=종교적, 신학적) - 機械論(=실증주의) - 辨證法

 

觀念論 - 不可知論 - 唯物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