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의 소쉬르 수용
- 『말과 사물』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면서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에 의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 수용은 매우 복잡하고도 다양한 층위를 보인다. 푸코에게 소쉬르는 무엇보다도 ‘구조 언어학’ 혹은 보다 일반적으로는 광의의 ‘구조주의’의 창시자로서 이해된다. 이의 당연한 귀결로서, 푸코의 소쉬르 혹은 ‘구조주의’ 수용은 주로 1960년대의 시기, 이른바 푸코의 ‘구조주의적’ 시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1970년대로 넘어가면 푸코는 방법론의 측면에서 이른바 ‘구조주의적’ 관점을 ‘포기’하고 힘에의 의지로 대변되는 니체적 계보학을 채택한다. 그러나 일견 타당해 보이는 이러한 지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첫째, 푸코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이 구조주의적 사상가임을 긍정한 적이 없으며, 특히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는 자신을 구조주의 사상가로 간주하는 관점에 대한 격렬한 거부의 태도를 보인다. 둘째, 푸코가 1970년대 초 이래 이른바 구조주의적 관점을 명시적으로 포기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가령 에피스테메로 대변되는 이전의 ‘구조주의적’ 관점을 대체하기 위해 푸코가 새로이 제시하는 ‘담론’ 개념 안에는 적어도 그 구성상 ‘일정한 구조주의적 배경’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여전히 가능하다. 아래에서는 이러한 두 가지 문제를 염두에 두고, 푸코에 의한 소쉬르 수용 및 그에 따라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을 연대기 순으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2. 『말과 사물』에 나타난 소쉬르 - 기호론과 기호학
우선 푸코는 자신의 저작에서 소쉬르라는 이름을,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거의 언급 혹은 인용하지 않는다. 가령 푸코의 대표적인 ‘구조주의적’ 저작으로 일컬어지는 1966년의 『말과 사물』에서도 소쉬르라는 이름은 겨우 4회 등장하는 것이 고작이며, 이를 이은 1969년의 『앎의 고고학』에서도 역시 단 1회 등장하는 것으로 그친다. 또 단행본의 형태로 간행되지 않은 푸코의 다양한 저술들을 모은 『말과 글』에도 소쉬르라는 이름은 12회 등장하는데, 특기할 것은 이 12회 중 10회가 1966-1972년의 시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머지 2회는 각기 1977년 및 1983년의 인터뷰에서 ‘단편적으로’ 곧 회고적 시선에 의해 간단히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 1966-1972년의 시기는 방금 위에서 잠시 지적한 것처럼 1966년의 『말과 사물』에서 시작되는 이른바 푸코의 ‘구조주의적’ 시기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는 소쉬르라는 이름을 푸코가 직접 언급한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며, 같은 『말과 글』의 색인에서 구조 및 구조주의 사항을 찾아보면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구조(structure)라는 용어의 경우에는 모두 129회가, 구조주의(structuralisme)라는 용어의 경우에는 모두 32회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거의 대부분의 언급은 양자 공히 1960년대의 이른바 ‘구조주의’의 시기에 압도적으로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래에서는 이렇게 1960년대에 집중되어 있는 소쉬르 및 구조, 구조주의에 대한 푸코의 언급 중 중요한 몇 가지를 선택하여 이들 사유를 바라보는 푸코의 기본적 관점을 정리해보자.
푸코의 출간된 모든 글을 통틀어 소쉬르가 등장하는 최초의 언급은 1966년의 『말과 사물』에서 발견된다. 이 책에서 소쉬르는 모두 3회에 걸쳐 언급되는데, 모두 거의 유사한 특정한 맥락 아래 놓여있다. 우선, 이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우선, 아래의 첫 번째 언급은 좀 길지만 향후의 논의를 위해 전문을 인용할 가치가 있다.
“17세기에 출현하는 바와 같은 기호(signe)의 이항배치는 스토아학파 이래, 심지어는 최초의 그리스 문법학자들 이래, 양태가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언제나 3원적이었던 구조를 대신하는데, 이 배치는 기호가 그 자체로 이분화되고 이중화되는 재현(une représentation dédoublée et redoublée sur elle-même)을 전제로 한다. [...] 재현은 지시(indication)이자 동시에 출현(apparaître)이며, 대상에 대한 이해 방식이자 자기 발현이기도 하다. 고전주의 시대부터 기호는 재현이 재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재현의 재현성이다(le signe c'est la représentativité de la représentation en tant qu'elle est représentable). [...] 아마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마지막 결과, 기호의 이항 이론(la théorie binaire du signe). 17세기부터 기호의 일반 과학 전체의 근거가 되는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재현의 일반 이론과 깊은 관계가 있다. 기호가 의미하는 것(signifiant)과 의미되는 것(signifié) 사이의 무조건적인 관계(자의적이거나 자의적이지 않은, 자발적이거나 강제적인,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관계)라 해도, 이 관계는 재현이라는 일반적 요소 안에서만 확립될 수 있다. 의미하는 요소와 의미되는 요소는 둘 다 재현됨에 따라서만, (또는 재현되었거나 재현될 수 있음에 따라서만) 그리고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실제로 재현함에 따라서만 서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고전주의적 기호의 이론이 ‘관념학’(idéologie)(다시 말해 단순한 감각에서 추상적이고 복잡한 관념에 이르는 재현의 모든 형태에 대한 일반적 분석)의 철학적 정당화 및 근거로 자처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또한 소쉬르가, 일반 기호론(sémiologie générale)의 기획을 재발견하면서, 기호에 대해 일견 ‘심리주의적인’ 것(개념과 이미지의 결합)으로 보일 수 있는 정의를 부여했던 것도 마찬가지로 필연적인 일이었다. 이는 소쉬르가 사실상 기호의 이항적 성격을 사유하기 위해 고전주의적 조건(condition)을 재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소쉬르는 17-18세기 고전주의 시기의 에피스테메인 재현(再現, représentation), 특히 이 시기의 언어 이론인 포르루아얄(Port-Royal)의 일반문법(Grammaire Générale)과의 관련 하에 조명되어 있다. 푸코는 17-18세기 일반문법의 재현 이론과 소쉬르 기호학 사이에 존재하는 일정한 ‘유사성’을 가정하는데, 이는 인용에서 ‘소쉬르가 기호의 이항적 성격을 사유하기 위해 고전주의적 조건을 재발견했다’는 표현 아래 등장한다.
소쉬르에 관련된 두 번째 및 세 번째 인용은 17-18세기 고전주의의 일반문법을 잇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곧 푸코가 말하는 ‘근대’ 이래의 문헌학(文獻學, philologie)과 관련되어 등장한다.
“라스크, 그림, 보프의 등장과 함께 언어는 역사상 처음으로 일군의 음성 요소로서 취급된다. 일반 문법에 의하면 입이나 입술의 소리가 글자(lettre)로 바뀔 때 언어가 탄생한 반면에, 이제부터는 소리가 일련의 서로 구분된 음성(sons)으로 분절되고 분할될 때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언어의 실체는 이제 온전히 음성적이다. [...] 이제 언어는 다소 막연하면서 실물과 닮은 자의적인 기호, 『포르루아얄의 논리』(Logique de Port-Royal)에서 인물의 초상이나 지도가 직접적이고 명백한 모델로 제시된 기호(signe)가 아니다. 언어는 파동적(vibratoire) 특성을 획득했는데, 이 특성은 언어를 가시적 기호로부터 분리시키고 언어를 음표(note de musique)에 근접시킨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소쉬르는 언어의 역사적 형태들을 넘어 언어(la langue) 일반의 차원을 복원하기 위해, 또한 포르루아얄에서 마지막 관념학자들까지 부단히 이어져 온 사유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은 유구한 기호의 문제를 오랜 망각에서 구해 내기 위해 19세기 문헌학 전반에서 주요한 사건이었던 말(la parole)의 계기를 우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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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시기에] 언어의 역사(l'histoire des langues)가 사유될 수 있으려면, 언어를 기원으로까지 단절 없이 연결하는 광범위한 연대기적 연속성에서 언어가 분리되어야 했고, 또한 붙들려 있는 재현의 넓은 공통 평면에서 풀려나야 했다. 이러한 이중의 단절 덕분으로 문법 체계들의 이질성이 고유한 분할선, 각 문법 체계의 내부 변화를 규정하는 법칙, 그리고 전개의 가능성을 결정하는 행로와 함께 드러났다. [...] 언어(langage)의 범주에서 일반 문법에 언제나 전제되어 있는 그 무한한 파생과 한없는 혼합의 분석이 중단되지 않았더라면, 언어는 결코 내적 역사성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 시간의 질서가 시작된 것이다. [...] 새로운 문법은 직접적으로 통시적이다. 언어(langage)와 재현 사이의 단절에 의해서만 실증성이 성립될 수 있었을 뿐인 만큼, 어떻게 통시적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인가? 언어들(langues)의 내부 구조, 즉 언어들이 기능하기 위해 허용하고 배제하는 것은 오직 말(mots)의 형식에 의해서만 다시 파악될 수 있었으나, 말의 형식이 갖는 법칙은 이전의 상태, 일어날 수 있는 변화, 결코 일어나지 않는 변형과 관련될 경우에만 표현될 수 있을 뿐이다. 확실히 언어에 의해 재현되는 것으로부터 언어가 단절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언어(langage)가 출현하게 되었고, 이와 동시에 언어는 역사 속에서만 다시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소쉬르는, 일반 문법의 방식으로, 두 관념 사이의 연결에 의해 기호를 정의하는 일종의 ‘기호론’(sémiologie)을 재구성하게 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재현에 대한 언어(langage)의 관계를 복원함으로써만 문헌학의 통시적 사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상의 논의를 적절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과 사물』에서 푸코에 의해 수행되는 16세기 이래 서구 사유에 나타난 인식론적 단절, 혹은 에피스테메의 변천에 관련된 이해가 요청된다. 푸코는 16세기 이래 『말과 사물』이 저술된 20세기 중반까지의 서구 사유에는 오직 ‘두 번의 단절을 통한 세 개의 지층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지식 고고학적 지층의 에피스테메는 유사성(ressemblance)으로 이는 16세기 이래 17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르네상스의 시기를, 두 번째 지층의 에피스테메는 재현(représentation)으로 이는 이후 18세기 중후반 경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가정되는 고전주의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지층의 에피스테메는 역사(histoire)로서 이는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말과 사물』이 저술된 1966년까지도 ‘여전히 우리가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가정되는 근대의 시기이다. 그리고 『말과 사물』은 이러한 16세기 이래 서구 지식의 고고학적 지층 형성 및 변형의 과정을 언어ㆍ노동ㆍ생명이라는 세 가지 분야에서 상세히 논구하는 책이다. 본 논문의 주제가 되는 언어의 경우, 푸코에 따르면, 르네상스의 에피스테메와 단절하고 고전주의를 연 사람은 랑슬로이며, 다시 고전주의의 에피스테메와 단절하고 새로운 근대의 시기를 연 사람은 보프이다. 그리고 랑슬로와 보프에 의해 단절된 세 시기는 각각 그 시기 지식의 일반적 가능 조건을 규정하는 ‘인식론적 배치 혹은 장’ 곧 에피스테메(épistémè)의 지배를 받는다. 이를 도표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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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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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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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17세기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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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18세기 중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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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19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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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성 ressemb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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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représ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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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histo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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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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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루아얄/클로드 랑슬로
(Claude Lancelot, 1615–1695)
일반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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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보프
(Franz Bopp, 1791–1867)
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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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러한 일반적 이해의 틀에 따라, 앞서 살펴본 소쉬르 관련 언급들을 검토해보면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소쉬르(1857-1913)는 생몰연대나 대표작인 유고 편집본 『일반언어학강의』(1916)가 출간된 시기로 볼 때, 일견 ‘근대’에 속하는 인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푸코에 의해 고전주의와의 유사성이 강조되어 있다. 푸코에 따르면, 소쉬르의 기호학은 - 근대의 역사문헌학이 아닌 - 고전주의의 기호론과 더 많은 유사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푸코는 자신이 『말과 사물』을 작성하던 1966년 당시를 ‘여전히 근대의 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기’로 바라본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쉬르는 그 생몰시기 전체가 오직 근대에만 속하는 인물이다. 더욱이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이 한 시대의 모든 지식에 작용하는 무의식적 상수 곧 인식 가능조건임을 생각해볼 때, 이러한 관점은 더욱 강화된다. 그런데도 소쉬르는 근대가 아니라, 고전주의와 더 큰 연관성을 갖는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 답은 푸코가 『말과 사물』을 저술한 근본 의도에서 찾아야 한다. 『말과 사물』을 면밀히 검토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 비록 푸코가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 이 책에서 푸코가 말하는 ‘두 개의 단절에 의한 세 개의 지층’ 구분은 사실상 ‘앞으로 도래할 세 번째 인식론적 단절에 의한 네 번째 지층’을 준비하고 있으며, 『말과 사물』 자체가 이런 도래할/도래해야 할 ‘미래의 인식론적 단절’을 준비하기 위해 저술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소쉬르는 다름 아닌 ‘언어의 영역에서 이러한 미래의 세 번째 단절을 결정적으로 예비한 인물들 중 하나’로 푸코에 의해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3. 『말과 사물』에 나타난 구조주의
그러나 소쉬르에 대한 이상의 언급은 『말과 사물』에서 보이는 구조주의에 대한 언급과의 연관성 아래 조명될 경우에만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낸다. 앞서 밝힌 것처럼, 『말과 사물』에는 구조주의라는 용어가 단 2회만 언급되어 있지만, 그 함축은 결정적이다. 우선, 첫 번째 언급은 앞서 소쉬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전주의와의 연관성이라는 맥락에서 나타난다.
“[근대가 시작되는] 19세기에 지식의 대상은 존재의 고전주의적 충만(充滿)이 침묵하게 된 바로 거기에서 형성된다. / 역으로 새로운 철학의 공간은 고전주의적 지식의 대상들이 해체되는 자리에서 곧바로 나타나게 된다. [...] 이런 식으로 근대의 철학적 성찰의 두 가지 중요한 형태가 정립된다. 첫 번째 형태는 논리학(logique)과 존재론(ontologie)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고, 형식화(formalisation)의 경로를 따라 나아가며, 새로운 견지에서 마테시스(mathesis)의 문제에 마주친다. 두 번째 형태는 의미 작용과 시간의 관계를 검토하고, 완결되지 않고 어쩌면 결코 완결되지 않을 베일 벗기기를 기도하며, 해석(interprétation)의 주제와 방법을 다시 부각시킨다. 그때 철학에 제기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아마 이 두 가지 성찰 형식 사이의 관계와 관련될 것이다. 물론 이 관계가 과연 가능한가, 어떻게 이 관계의 근거가 마련되는가를 말하는 것은 고고학에 속하지 않지만, 고고학은 이 관계가 맺어지는 영역, 에피스테메의 어느 장소에서 근대 철학이 통일성을 찾아내려고 하는가, 지식의 어떤 지점에서 근대 철학이 가장 넓은 영역을 발견하는가를 지정할 수 있는데, 그 장소는 해석을 통해 밝혀지는 유의미한 것과 (명제 이론 및 존재론의) 형식적인 것이 합류할지 모르는 곳이다. 고전주의적 사유의 본질적인 문제는 이름(nom)과 질서(ordre) 사이의 관계에 놓여 있었다. 즉 분류학(taxinomie)이라 할 수 있는 명명법(nomenclature)을 발견하는 것, 또는 존재의 연속성에 대해 투명할 기호 체계를 정립하는 것이었다. 근대적 사유가 기본적으로 문제시하게 되는 것은 의미가 진실의 형식 및 존재의 형식과 맺는 관계이다. 즉 우리 성찰의 창공에는 존재론인 동시에 의미론일 담론(아마 접근 불가능할 담론)이 군림한다. 구조주의는 새로운 방법론이 아니라, 근대적 지식에 눈을 뜨고 불안해하는 의식이다.”
달리 말하면, 고전주의가 종말을 고하고 근대가 시작되던 19세기에 서구의 지식은 새로운 배치를 얻게 되는데, 이 배치는 형식화와 해석이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따라서 근대 지식의 관건은 이 양자가 맺는 관계 설정에 대한 것이 된다. 근대의 지식은 의미가 진실의 형식 및 존재의 형식과 맺는 고전주의적 관계를 의문시하며 성립되었는데, 그 결과 ‘우리의’ 곧 ‘근대의’ 지식은 의미론과 존재론이 만나는 지점에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구성된 근대 지식들 중 하나가 구조주의라는 것이다. 구조주의에 대한 두 번째 언급은 다음처럼 이어진다.
“근대적 사유에서 해석의 방법은 형식화의 기법과 대립한다. 즉 전자는 언어 아래에서, 그리고 언어 없이 언어로 말해지는 것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언어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자 하고, 후자는 모든 잠재적 언어를 통제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의 법칙에 의해 모든 잠재적 언어를 위로부터 지배하고자 한다. 해석하기와 형식화하기는 우리 시대의 두 가지 중요한 분석 방식이 되었다. [...] 사실 해석과 형식화는 두 가지 상관적인 기법인데, 이 기법들에 공통된 토대는 근대의 문턱에서 구성된 언어의 존재에 의해 형성된다. 언어의 결정적 격상은 대상화로 인한 언어의 격하를 보상하는 것으로서, 언어가 모든 말에 내포된 순수한 인식 행위에서, 그리고 우리의 각 담론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에서 멀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언어를 인식의 형식에 대해 투명하게 만들거나, 언어를 무의식의 내용에 깊히 박히게 하거나 해야 했다. 사유의 형식주의와 무의식의 발견 쪽으로, 러셀과 프로이트 쪽으로 나아가는 19세기의 두 갈래 흐름은 이 사실로 명확히 설명된다. 또한 이 두 방향을 서로 근접시키고 교차시키려 하는 경향, 예를 들어 모든 내용에 앞서 우리의 무의식에 부과되는 순수한 형식을 밝히려는 시도, 더 나아가 경험의 토대, 존재의 의미, 우리의 모든 인식에 바탕으로 구실하는 경험의 지평을 우리의 담론으로 이르게 하려는 노력 또한 이 사실로 설명된다. 여기에서 구조주의와 현상학의 고유한 경향과 함께, 구조주의와 현상학의 공통의 장소를 규정하는 일반적인 공간이 발견된다.”
앞서 말한 근대적 지식의 근본적 배치는 해석과 형식화라는 대립적이면서도 상관적인 두 기법, 분석 방식에 의해 구성된다. 고전주의의 ‘질서’(ordre)는 일반성 자체(‘일반’문법의 ‘일반’) 곧 무한(infini)을 전제로 하는 ‘담론’(discours)의 재현작용으로 이해되는데, 이를 파괴하고 성립된 근대 지식은 - 더 이상 담론의 재현작용이 아닌 - 스스로를 인식의 한정된 대상이자 주체로 구성하는 경험적-초월적 이중체(doublet empirico-transcendental), 곧 역사를 갖는 ‘유한한’ 인간의 지식이다. 이것이 근대의 여명 곧 18세기 말에 성립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인간학, 곧 유한성의 분석론(analytique de la finitude)다. 푸코에 따르면, 이후 근대적 지식은 19세기 이후 러셀과 프로이트, 곧 사유의 형식주의와 무의식의 발견 쪽으로 나아간다. 이 대립적인 동시에 상관적인 두 방향을 결합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20세기의 대표적인 두 사유’인 구조주의와 현상학이다.
4. 『말과 사물』 시기의 소쉬르와 구조주의
푸코의 이러한 인식은『말과 사물』이 발간된 1966년 전후의 각종 대담, 논문 등에서 보다 분명한 형태로 나타난다. 동시기의 소쉬르 및 구조주의에 대한 푸코의 언급은 근본적으로 소쉬르와 그로부터 기원하는 구조주의가 17-18세기 고전주의적 ‘기호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말과 사물』의 주장을 확장ㆍ심화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담론이 침묵하는 곳에서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자, 이제 소쉬르, 프로이트, 후설 이래로 인간 인식의 가장 핵심부에서 의미(sens)와 기호(signe)의 문제가 다시금 등장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제 우리는 기호와 의미, 그리고 기호의 담론이라는 거대한 문제의 이 같은 회귀가 고전주의와 근대성을 구성했던 우리 문화 내에서 발생한 일종의 중첩은 아닌가, 혹은, 이제까지 우리 문화에서 인간의 질서와 기호의 질서는 늘 양립 불가능한 것이었으므로, 이러한 회귀가 인간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해주는 하나의 표지가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탄생한 기호로 인해 죽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 중 최초의 인물이었던, 니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는 달리 말해, 무엇보다도 우선 니체가, 그리고 이후의 소쉬르(구조주의), 프로이트(정신분석), 후설(현상학)가 자신의 모태인 근대 지식 내부의 균열을 보여주는 선구적 인물들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들은 근대가 파괴되고 도래해야 할 이후의 시기를 고지해주는 자들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푸코의 논거는 16세기 이래 서구의 사유에서 인간과 언어는 한 번도 양립 가능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고전주의 시대에는 기호와 담론이 부각되면서 인간이 인식의 대상으로 정립될 수 없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인간은 무한한 재현 작용이라는 언어ㆍ기호 메커니즘의 결과로서만 존재한다. 그리고 근대에 오면, 언어와 담론의 재현 기능이 부차적인 위치로 밀려나면서, 스스로를 인식의 대상이자 주체로 구성하는 인간이 탄생한다. 그런데 이제 니체, 소쉬르, 프로이트, 후설 이래로 서구 사유의 에피스테메 내부에 근대적 인간이 종말을 고할 것임을 알려주는 표지 혹은 균열이 생겨났다. 소쉬르적 의미의 구조 혹은 체계란 무엇보다도 - 마치 고전주의의 재현 작용처럼 - 작동하는 것, 기능하는 것, 곧 일종의 메커니즘이다.
5. 나가면서 - 소쉬르, 근대적 주체의 파괴자
이제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푸코가 앞서 『말과 사물』과 관련하여 작성하였던 도표를 다음처럼 확장해볼 수 있을 것이다.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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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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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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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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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17세기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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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중반
~18세기 중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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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19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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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이후?
1966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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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성 ressembl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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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 représen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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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histo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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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lang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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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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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루아얄/클로드 랑슬로
(Claude Lancelot, 1615–1695)
일반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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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보프
(Franz Bopp, 1791–1867)
문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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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프로이트?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푸코?
언어학, 문학, 신화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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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통해, 이른바 ‘근대의’ 사유에서, 소쉬르로부터 유래하는 ‘구조주의’가 갖는 결정적인 철학적 의미가 드러난다. 소쉬르로부터 유래하는 구조주의는 멀리는 광의의 ‘근대’를 연 것으로 평가되는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 곧 주체로부터, 가까이는 협의의 ‘근대’를 결정적으로 성립시킨 칸트의 인간학에 이르는 이른바 근대적 사유를 지탱해왔던 인간 개념 자체를 파괴한다. 구조주의는 근대 주체의 근본성과 기원성의 부정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이다. “주체는 하나의 발생ㆍ형성ㆍ역사를 갖는 것이며, 기원적인 것이 아니다”(le sujet a une genèse, le sujet a une formation, le sujet a une histoire; le sujet n'est pas originaire). 1960년대 중반 푸코가 동시대 프랑스 지식인들과 함께 받아들였던 소쉬르와 그로부터 유래하는 구조주의는 그가 자신의 철학적 주적(主敵)으로 설정했던 근대 인간학적 주체를 파괴하는 강력한 무기이자, 도래해야 할 미래의 에피스테메의 가능조건을 드러내주는 분석 도구에 다름 아니다.
참고문헌
I. 푸코
- MC: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MC], Gallimard, 1966.
- DEQ: Dits et Ecrits, Quarto, Gallimard, 2001.
-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1966), DEQ I.
- 'Entretien avec Michel Foucault'(1976/1977), DEQ II.
II. 그 외
-「체계에의 정열 - 푸코의 레비스트로스 수용」, 한국기호학회,『기호학연구』(제24집), 200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