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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mund Freud(1856~1939) mit Josef Breuer(1842~1925), Studien über Hysterie, 1895; 지그문트 프로이트, 『히스테리 연구』, 김미리혜 옮김, 열린책들, 1997[초판]/2003[재간].
히스테리 현상의 심리기제에 대하여: 예비적 보고서(브로이어와 프로이트)
사례연구
안나 O. 양(브로이어)
에미 폰 N.부인(프로이트)
루시 R. 양(프로이트)
카타리나(프로이트)
엘리자베트 폰 R. 양(프로이트)
이론적 고찰(브로이어)
히스테리의 심리 치료(프로이트)
* 히스테리 현상의 심리기제에 대하여: 예비적 보고서(브로이어와 프로이트)
우리는 놀랍게도 “환자가 히스테리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다시 완전하게 기억해 내고 동시에 그 기억에 얽혀 있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하면, 그리고 환자가 그 사건에 대하여 가능한 한 상세하게 진술하고 감정들을 말로 표현하게 된다면, 개개의 히스테리 증상은 곧 소멸되고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 이 치료법에서 회상에 감정이 개입되지 않으면 대체로 전혀 효과가 없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의 심리적 과정이 가능한 한 생생하게 재생되어야만 성공을 거둘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발생 당시의 상태status nascendi’ 그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것이 ‘언어로 표현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 / 우리는 이상의 관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즉 원인이 되고 있는 사건은 수년 동안 어떤 형태로든 계속해서 작용을 미친다. 더욱이 이 작용은 중간 인자의 연결고리를 매개로 하는 간접적 형태가 아니라 직접적인 원동력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마치 의식 속에 기억의 형태로 남아 있는 정신적 고통이 사건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눈물이 나게 하는 현상과 같다. “히스테리 환자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인 기억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17~19).
외상(外傷)적 사건에 대한 모욕당한 사람의 반응은, 그 반응이 적절한 경우에만,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인정된] 복수 따위의 경우에만 카타르시스Katharsis 효과를 발휘한다. 그러나 언어가 행동을 대신할 수 있다. 즉, 언어의 도움만으로 행동과 거의 마찬가지로 효과적으로 감정을 ‘소산(消散, Abreagieren[=해소(解消)])’시킬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말하는 것 자체가 적절한 반사인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통곡과 비밀의 괴로움을 벗어나기 위한 고백 따위가 그것이다. 만약, 행위로건 말로건 그러한 반응을 하지 못했다면, 하다못해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았다면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은 최초에 경험했던 감정과 똑 같이 강한 색조를 띤 채 남아 있게 된다. [...] 여기서 우리가 말해 두어야 할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이 히스테리 현상을 일으킨 체험들은 환자가 정상적 심리 상태에 있을 때는 그 환자의 기억 속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기껏해야 매우 개략적인 형태로만 존재한다.”(20~21)
충분한 소산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들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가? 적어도 다음 두 가지 조건을 생각할 수 있다. / 첫 번째는 외상의 특성상 환자가 심리적 외상에 반응하지 못한 경우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경우라든지 사회적 상황이 반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든지 환자가 그냥 잊고 싶어 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의식적 사고로부터 억압되어(Verdrängung) 억눌려지고 억제된 경우들이다. 최면 상태에서 우리가 찾게 되는 히스테리 현상의 근원은 이런 유의 고통스런 것들이다. (이러한 히스테리 현상의 예로, 성자나 수녀, 품행이 단정한 부인, 예의범절 교육이 잘된 아이들에서 보는 히스테리성 착란을 들 수 있다.) 두 번째는 기억이 해당 사건을 경험할 당시의 환자의 ‘심리 상태’에 의해 규정된다. 최면 상태에서 발견되는 히스테리 증상의 원인들 중에는 그 자체로서는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키기에 미약한데도 그 사건이 예를 들어 공포와 같은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극한 정서에 처했을 때 일어났기 때문에, 혹은 공상이나 자기 최면 따위가 막 깨려는 반 최면 상태따위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 있게 된 것들이 있다. 그런 경우에 있어 사건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은 바로 환자의 상태이다. / 물론 두 가지 조건이 한꺼번에[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 / 두 가지 조건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 어떠한 조건 하에서건 반응에 의해 해결되지 못한 정신적 외상은 연상이라는 작업으로도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첫 번째 조건에서는 환자가 그 고통스런 경험을 잊겠다고 작정하고 가능한 한 연상으로부터 멀리 내쫓아 버린다. 반면 두 번째 조건에서는 정상적 의식 상태와, 생각이 떠오르게 되는 병적인 의식 상태 간에 연상을 가능케 하는 연결이 없기 때문에 연상 작업이 이루어질 수가 없다. [...] / 결론적으로, 병을 유발하게 되는 관념들은 억압되지 않은 연상 때의 재생과 소산을 통해 정상적으로 바래어지는[희미해지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그처럼 생생하고 강한 감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지속된다고 말할 수 있다(22~23).
* 히스테리의 심리 치료(프로이트)
발견. “우리가 개별적인 히스테리 증상을 일으킨 사건에 대한 기억을 뚜렷하게 상기시켜 그에 얽혀 있는 감정들을 다시 불러일으킨다면, 그리고 환자가 가능한 한 상세하게 사건을 묘사하고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면, 그 증상은 즉각적으로 그리고 영원히 사라진다.”
설명. “우리의 치료법은 처음에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소산되지 않은 관념의 작용력을 제거해 준다. 질식되어 있던 감정이 언어를 통해 표출되도록 함으로써, 그리고 그 관념을 정상의식 상태(가벼운 최면)로 끌어들여 연상에 의해 수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아니면 치료자의 암시를 통해 관념을 제거함으로써(건망증을 수반한 몽유상태라고 해도) 그것이 가능한 것이다.”(333)
따라서 브로이어의 방법에서 출발하여 나는 신경증의 일반적 병인(病因)과 기제(機制)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운이 따라준 탓에 나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몇 가지 중요한 사항을 발견하게 되었다. 우선, 신경증이 생기게 된 결정 요인은 ‘성적인’ 요소 내에서 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반적인 의미로 말한다면, 다양한 성적 요소가 다양한 신경증 증세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 나는 불안 신경증이 신체의 긴장이 계속 축적되어 생기며 또한 성적인 근원을 가진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335~337).
환자의 동의와 완벽한 주의가 필요한데, 무엇보다도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분석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심리적 사건들을 털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치료법에 적합한 환자라고 할지라도 대다수는 치료자의 분석방향에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금방 치료를 그만둔다. 이러한 환자들에게 치료자는 처음 보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의 인물로 남을 뿐이다(345~346).
맨 처음 나를 만났을 때 환자에게 현재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 최초의 계기를 기억하는지 물어본다. 그러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환자도 있고 막연히 기억하고는 있지만 그 이상 생각해내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환자도 있다. [...] “나의 심리적 작업을 통해서, 환자들 속에서 병인이 되는 관념이 의식화되는 것(즉 생각하는 것)에 대항하는 심리적 힘을 극복해야 한다.” [...] 병을 일으킨 관념들은 모두 마음을 상하게 하는 성질을 띠고 있었고 수치감, 자기 비난, 심적 고통 그리고 피해 받고 있다는 느낌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그것은 모두 사람들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 차라리 잊혀 졌으면 좋았을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자동적으로 ‘방어’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다. [...] 검열과정 [...] 내가 그 [심리적] 흔적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하면 그 때마다 ‘저항’의 형태로 나타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힘이야말로 증상이 발생할 때 ‘거부’의 형태로 나타났던 바로 그 힘이었다. 그리하여, 거부와 억압 때문에 관념이 병을 유발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제 보니 그 생각이 옳은 것 같다(349~350).
정신적인 힘, 즉 자아 쪽의 혐오는 원래는 병을 일으키는 관념을 연상으로부터 몰아내고 그것이 기억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거부한다. 히스테리 환자가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실상은 ‘알고 싶지 않다’, 즉 그 소망이 크건 작건 ‘의식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치료자의 과업은 심리적 작업을 통해서 이러한 연상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는데 있다. 우선 치료자는 거의 ‘강요’(우기는) 방식을 사용한다. [...] 그러나 곧 보게 되겠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당연히 알고 계십니다’, ‘그래도 말씀해 보시지요’. ‘곧 생각이 날 겁니다’ 같은 단순한 보증은 별 효과가 없다. [...] 압박술 [...] 환자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 광경이나 관념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거나 말로 표현하기에 불쾌하다고 숨겨서는 안 된다. 기억에 얽힌 감정 때문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든 그 관념에 대해 비판하지 말 것이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가 구하는 바를 착오 없이 발견할 수 있다. [...] 이 절차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어김없이 그 목적을 달성하곤 했다. [...] 내가 찾던 것이 내 손의 압박 아래 항상 나타나더라는 사실에서 내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병인이 되는 관념이 겉으로는 잊혀진 것 같지만 사실은 항상 ‘바로 가까이’에 대기하고 있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연상 작용으로 그 관념에 다다를 수 있다. 이때 어떤 장애를 제거시켜주는 것이 관건이 된다. 이 장애는 주체의 의지인 것 같다. 그리고 정도는 다를지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을 의도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과정에 대해 완전히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350~353).
작업을 하다가 자꾸 중지될 때면 그들[환자들]은 계속, 이번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노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들이 한 말을 믿지 말고 항상 그들이 무엇인가를 억누르고 있다고 가정해야 하며, 또한 그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그들이 이야기 하지 않은 것은 그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매우 불쾌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은 이러한 점을 명심하고 되풀이해서 압박을 가하면서 우리 자신이 옳음을 믿어야 한다. 적어도 무엇인가를 들을 때까지 말이다. [...] / 저항은 흔히 핑계 뒤에 숨어 있다. [...] 물론 압박법을 써도 무엇 하나 드러나지 않는 상황들도 있다. 예를 들면 이미 우리가 완전히 알아낸 증상의 병인을 더 찾아본다든지 실제로 통증 등 신체적인 증상의 심리적 계보를 탐구하려 한다든지 할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도 역시 환자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번에는 환자가 옳을 것이다(362~365).
치료자는 자신의 힘을 최대한 사용해서 일을 한다. (무지로 인해 공포가 생겼다면) 계몽가로서, 교사로서, 세상을 더욱 자유롭고 더욱 우월하게 보는 사람으로서, 참회 후에 동정심과 경의로 사면을 주는 고해 신부로서. 치료자의 성격이 갖는 한계가 허락한다면, 또 치료자가 그 특정 사례에 느낀 동정의 양에 따라 인간적인 조력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처럼 심리적으로 개입하기 위해서는 그 사례의 성질이나 그 사례에서 작용하고 있는 방어 동기를 대강이라도 간파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 이제 다음과 같은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환자는 오직 그 병인이 된 인상을 재현하고 그에 얽힌 감정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히스테리 증상에서 벗어나며, 따라서 치료 상의 과제는 오로지 환자가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367~368).
숨겨진 무의식적 동기의 존재. [...] (무의식 안에 있는 경우가 많은) 숨겨진 동기를 일단 발견하여 그것을 신중하게 고찰해보면 히스테리성 사고 결합에도 의외로 수수께끼 같은 것이나 법칙에 반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즉 정상인의 사고 결합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380~381).
[환자에게 말해준 우리의] 추측이 올바르면 분석 과정이 단축되고, 혹 그 추측이 틀리더라도 역시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즉 환자에게 추측이 맞는지 여부를 말하고자 할 때 강하게 부인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환자가 분명히 어떤 것을 더 잘 알고 있음을 추측하게 해주는 것이다(382).
전환 히스테리. 이 증상(구토의 욕망을 예로 들자)의 강도는 병인이 된 기억 중의 어느 한 가지에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점 더 커지는데, 이 회상에 대해 말하기 바로 직전에 절정에 이르게 되고, 말을 끝냄과 동시에 급격히 줄어들거나 아니면 잠시 후에 완전히 소멸되어 버린다. 환자가 저항함으로써 오랫동안 말을 안 하고 주저한다면 감각의 긴장, 즉 구역질이 나오려는 긴장감을 견디기가 힘들어 도저히 이야기할 것을 강요할 수 없게 되면 정말로 구역질이 시작된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구토’가 심리적 행위(이 예에서는 언어로 표현하는 행위)를 대치하며 이것은 히스테리의 전환 이론이 주장하는 것 그대로라는 인상을 얻는다(384).
나 스스로는 종종 카타르시스에 의한 정신 요법을 외과적 수술에 비유하여 ‘심리 치료적 수술’이라고 명명하였고, 고름이 찬 화농 부위의 절개나 부식된 환부를 긁어내는 것 등과 유사점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점은 병적인 요소를 제거한다는 데 있기보다는 오히려 회복의 방향으로 진행 과정을 이끌 만한 상태를 만드는 데 더욱 큰 의의가 있다.
내가 카타르시스 요법을 가지고 환자에게 어떤 도움이나 개선을 약속하면 나는 다음과 같은 이의에 부딪치는 일이 종종 있다. “아니, 지금 선생님은 제 병이 아마도 제 삶의 사건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이런 것들은 결코 바꿀 수 없는 것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해서 나를 도와주실 수 있다는 겁니까?” 그러면 나는 보통 다음과 같이 답할 수 있다. / “저보다는 운명이 당신의 병을 낫게 해주는 것이 쉽겠지요. 그렇지만 당신의 히스테리로 인한 비참함을 보통의 일상적인 불행 정도로 바꾸는 데 우리가 성공한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정신생활이 건강을 되찾는다면 그러한 불행에 대해 더 잘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을 겁니다.”(393~395)
* “히스테리 환자가 상징화를 통해 감정이 강하게 얽혀 있는 관념에 대한 신체적인 표현을 만들어낼 때, 여기에 개인적 요소나 자의적인 요소가 좌우하는 부분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는 점이다. 그녀가 언어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처 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을 에인다’거나 ‘얼굴을 한 방 맞은 것 같은’ 감각을 정말로 느낄 때에는, 히스테리 환자가 기지에 넘치는 언어를 정확히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 표현에 기반이 되는 감각을 새롭게 소생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에 이러한 언어로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그 모욕을 실제로 심장부의 감각으로 느끼지 못했다면, 혹은 그러한 감각과 동일시될 수 없다면, 어째서 모욕 받은 사람을 두고 ‘그것이 그의 가슴을 찔렀다’라고 말하겠는가? 굴욕을 감수하는 태도를 묘사하는 ‘무엇을 눌러 삼킨다’라는 표현도, 아무 말도 못하고 모욕에 대해 억눌린 감정을 풀지 못했을 때 목구멍에 생기는 신경 감각에서 실제로 꾹 눌러 참는 현상이 생겨난다는 것은 정말로 있을 법한 일이 아닌가? 이러한 감각과 신경의 지배는 전부 ‘감정의 표현’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은 다윈의 이론대로, 기원적으로는 하나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행위로 이루어진다. 현재는 이것이 너무 많이 약화되어 이러한 언어적인 표현이 우리에게는 단지 비유적인 전달로만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 예전에는 그것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히스테리의 강렬한 신경 지배를 묘사할 때 언어의 근원적 의미로 복귀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히스테리가 상징화에 의해 그 같은 감각을 만들어 낸다는 표현은 어쩌면 맞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마 히스테리가 그러한 용법을 모델로 삼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히스테리와 언어용법이 똑 같은 근원에서 자신들의 소재를 끌어낸 것이리라.”(지그문트 프로이트, 「사례연구: 엘리자베트 폰 R. 양(프로이트)」, 『히스테리 연구(1895)』, 김미리혜 옮김, 열린책들, 1997[초판]/2003[재간], 244~2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