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4.

대한민국 학문의 메이지 효과 [저술 초안]



대한민국을 포함한 일본, 중국, 대만, 곧 동아시아 학문이 사용하는 개념들은 기본적으로 메이지 시대의 일본학자들에 의해 번역된 것이다. 메이지 시기의 일본 학자들은 유학을 가거나 서양학문을 접하기 이전에 이미 사서삼경에 정통한 유교적 교육을 받은 인물들이다. 이들이 다양한 경로로 서양학문을 접한 후, 서양의 용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일본어의 특성상 서양의 제반 개념들이 한자표기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메이지 시기 학자들의 번역 및 그들 사이의 논쟁을 거친 제반 서구 번역어들, 곧 新漢語는 이후 결정적으로 1894-1895년 청일전쟁에서의 일본의 승리를 기점으로 동아시아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대한제국 시기 이래 다양한 침탈의 과정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수용한 대표적인 국가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학술용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노가다' 판에서 '야구'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 전반에 걸친 전면적 수용 현상을 가져왔는데, 이 책은 이러한 일본식 서구 번역어 곧 신한어의 한반도에로의 전면적 유입 과정을 대표적인 몇몇 일상 및 학술 용어의 사례를 들어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나는 이를 통해 오늘 우리의 서양 사상에 대한 주체적 수용 및 자생적 우리 학문의 가능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일본어 번역어에 (사실상 '무비판적으로') 의존한 대한민국 학문의 인식론적 층위에 대한 개념사적, 계보학적 검토 작업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렇게 메이지 시대 일본 학자들에 의해 번역된 신한어 개념이 대한제국 및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민국의 시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오늘-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가령 법률(法律)이라는 한자어 조합은 중국어가 아니라 신한어이며, 이는 오직 law라는 서구어를 번역하기 위해 기존 중국어의 法과 律을 조합한 단어로 전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예로 본서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단어는 他人, 他者, 主體, 客體, 主觀, 客觀, 絶對, 相對, 民族, 哲學, 理性, 社會, 眞理, 科學, 藝術, 眞善美, 自由, 普遍性, 合理性, 近代性 등등의 제반 개념이다.


이러한 연구를 진행하는 이유는 대한민국 현대 학문의 인식론적 근본 조건을 규정하고 있는 일본 메이지 시기의 신한어들을 우리로부터 타자화내지는 외화시킴으로써 이들 용어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인식을 가능케하는 동시에, 이러한 용어가 우리나라에 수입되면서 어떻게 오늘 우리의 인식을 규정하였는가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용어들을 새롭게 전유, 해석하여 우리의 고유한 학문적, 일상적 용어를 창출하고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오늘 우리의 '보편학'을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 메이지 효과란 무엇인가?
2. 메이지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의 상황
3. 메이지 용어의 성립 과정
4. 메이지 용어의 동아시아 전파
5. 메이지 용어의 한반도 전파
6. 메이지 용어의 사례들 - 개념사적/고고학적-계보학적 분석
7. 나가면서 - 새로운 '보편학'의 가능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