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8.

모비 딕, 바람이 불어가는 쪽 해안




 
 
herman melville(1819-1891)
 




 
 
 
 




제23장. 바람이 불어가는 쪽 해안


몇 장 앞에서 벌킹턴이라는 선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뉴버드퍼드의 여인숙에서 우연히 만난, 바다에서 갓 상륙한 키다리 선원 말이다.


몸이 덜덜 떨릴 만큼 추운 그 겨울 밤, '피쿼드' 호가 차갑고 심술궂은 파도 속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뱃머리를 찔러 넣었을 때, '피커드' 호의 타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내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닌 벌킹턴이었다. 나는 경외감과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겨울에 4년 동안의 위험한 항해에서 갓 돌아온 사람이 쉬지도 않고 사나운 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바다로 또다시 나갈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육지에 있으면 발이 타는 모양이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법이고, 깊은 추억은 묘비명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니, 이 짧막한 장(章)은 벌킹턴의 묘석 없는 무덤이다. 벌킹턴은 폭푸에 시달리며 바람이 불어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해변을 따라 떠밀려 가는 배와도 같다는 말만 해두겠다. 항구는 기꺼이 도움을 줄 것이다. 항구는 자비롭다. 항구에는 안전과 안락, 난로와 저녁식사, 따뜻한 담요, 침구들, 우리 인간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모두 갖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 강풍 속에서 항구나 육지는 그 배에 가장 절박한 위험이 된다. 배는 모든 환대를 피해서 도망쳐야 한다. 배가 육지에 닿으면, 용골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배 전체가 몸서릴 칠 것이다. 배는 돛을 모두 펴고 전력을 다해 해안에서 멀어지려 한다. 그러면서 배를 고행으로 데려가려는 바로 그 바람과 맞서 싸우고, 또다시 거친 파도가 배를 때리는 망망대해로 나가려고 애쓴다. 피난처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위험 속으로 뛰어든다. 배의 유일한 친구가 바로 배의 가장 고약한 원수인 것이다!


벌킹턴이야, 이제 알겠는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그 진실을 그대는 어렴풋이나마 보는 것 같다. 무릇 깊고 진지한 생각은 망망한 바다의 독립성을 지키려는 영혼의 대담한 노력일 뿐이며, 또한 하늘과 땅에서 가장 사나운 바람은 서로 공모하여 인간의 영혼을 배반과 굴종의 해안으로 내던지려 한다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하지만 가장 숭고한 진리, 신처럼 가없고 무한한 진리는 육지가 없는 망망대해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바람이 불어가는 쪽이 안전하다 할지라도, 수치스럽게 그쪽으로 내던져지기보다는 사남게 으르렁대는 그 무한한 바다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 그렇다면 어느 누가 벌레처럼 육지를 향해 기어가고 싶어 하겠는가! 무시무시한 것의 공포! 이 모든 고통이 그렇게 헛된 것인가? 기운을 내라, 기운을 내, 벌킹턴이여! 완강하게 버텨라, 반신반인의 영웅이여! 그대가 죽어갈 바다의 물보라, 그곳에서 그대는 신이 되어 솟아오르리라!


- 151-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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