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0. 17.

잠언 16



 
 

0. 혼자 있는 것이 외롭고 무섭고 싫은가? 그럼 천천히 벗어나라. 나도 혼자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10년이 걸렸고, 혼자 있는 것을 즐기게 되기까지 또 다른 10년이 걸렸다.


1. 푸코 1 - 당신이 할 수 없다고 믿는 것들 중 어떤 것들은 오직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된 것들이다.


2. 푸코 2 - 자신의 진심을 말하지 않으면(혹은 적어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어떤 참다운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3. 늘 지나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순진한 얼굴로 타인에게 과도한, 실은 무례한 관심을 보이는 이런 사람들은 설령 악의가 없다 해도 상당히 난감한 사람들이다. 이들과의 만남은 사회적 센스(혹은 컨센서스)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낮아 최소한의 인격적인 배려는 고사하고 종종은 봉변을 당할 우려마저도 있다. 나는 물론 이런 사람들과의 자리를 가급적 피한다.


4. 감시와 처벌은 악한 권력만 강자만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무조건 행하게 되는 삶의 조건과도 같은 것이다. 감시와 처벌은 악한 의도만이 아니라 선한 의도로도 혹은 (가령 피아노 배우기와 같은) 이른바 '선악과 무관한' 여하한 목적 의식적 행위에서도 수행된다. 실상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일거수 일투족 나아가 눈짓 손짓 생각 하나가 모두 감시와 처벌의 주체화 대상화 효과를 발생시킨다. 이제 권력에는 중립도 바깥도 없으며 따라서 권력이 본질적으로 악한 것조차 아니다. 권력을 수행하는 주체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 곧 '나'다. 권력은 권력관계 곧 복합적인 전략적 상황이 발생시키는 전반적 효과이며, 궁극적으로 매번의 수행 작용에 의해 자신의 규칙을 새로이 구성하는 하나의 놀이이다.


5. 폭력의 가장 끔찍한 유형은 스타일의 강요이다. 가령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나도 직설적으로 말할 테니 너도 직설적으로 말하라'며 직설적으로 말하는 경우. 이러한 경우가 진짜 끔찍한 폭력으로 전화되는 이유는 그 말의 발화자가 자기 말의 폭력성을 꿈에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6. 폭력의 또 다른 형식은 이른바 도덕의 강요이다. 성실, 효도, 정직으로부터 신뢰와 이해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에 도덕적 가치의 종류는 많고도 많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이 무한 개의 도덕적 가치들 중에서 자신의 도덕적 가치들을 고르고 자신이 판단한 경중에 따라 이들 사이에 위계의 순서를 설정한다. 그리고 어느 두 사람이 이렇게 고른 도덕적 가치들과 그들 사이의 위계가 같을 확률은 실상 전무하다. 그런데 각자는 자신이 고른 도덕적 가치와 위계에 입각하여 타인들의 도덕적 가치와 위계를 심판하고 힐난한다. 가령 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사람은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사람이 조금은 불성실한 존재로 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가족을 최우선으로 삼는 사람은 직장에의 성실을 우선으로 삼는 사람을 무엇인가 소외된 가정적이지 못한 사람처럼 보게 될 것이다. 이제 정직한 사람은 자신이 선택한 도덕적 덕목들 밎 그들 사이의 위계가 실은 자신의 자의적인 선택임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선택의 대부분은 그 자신이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조차 아니라는 점에서 실로 자의적이다. 결국 이제까지 정당한 도덕적 권리 혹은 심판으로 생각되었던 판단과 행동의 대부분은 자신의 자의적인 취향 곧 자기 스타일의 강요에 불과하다. 이 모든 심판의 밑바닥에는 나의 생각과 다르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의 보편주의, 나의 느낌과 다른 것들이 싫다는 자기중심적 이기주의, 악의적 권력의지가 놓여 있다.


7. 그러나 폭력이 갖는 최악의 형식은 - 니체의 정확한 지적처럼 - 정의와 나의 복수가 일치할 때이다.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에 대한 처벌은 단순히 피해자의 복수가 아니라 정의의 실현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을 획득한다. 이때 가해자는 온전히 피해자(혹은 피해자를 대리하는 자)의 처분에 맡겨진다. 아무리 부당한 피해자의 보복도 가해자의 죄에 의해 덮히게 되고 따라서 가해자가 '받아 마땅한 것'이 된다. 피해자의 권리는 하나의 권력이다. 우리가 권력을 쥐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어떤 인간이었는지 알게 된다. 가해자란 정의상 나에게 부당한 해를 입힌 사람 곧 불공정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나는 나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공정해야 하는가? 타인의 불공정함은 나의 불공정함을 정당화하는가?


8. 배은망덕 혹은 적반하장 -  내가 네게 나의 비밀스런 진실을 말했으니 너도 나에게 너의 비밀스런 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는 생각.


9. 죄책감과 열등감이 인간 행동의 결코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강력한 동기가 될 때가 있는 것처럼, 지적 허영심도 때로는 처음으로 한 인간을 학문으로 이끌어주는 강력한 동기가 될 때가 있다.


10. 인간은 자신의 수준에서 모든 것을 바라본다, 세상과 타인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11.

"166. 어려운 일은 우리 믿음의 무근거성을 통찰하는 것이다."(53)

"256. 언어놀이는 시간과 더불어 변한다."(70)

"559. 당신은 말하자면 언어놀이란 미리 볼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 말뜻은 언어놀이가 근거가 뒷받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언어놀이는 이성적 혹은 비이성적이지 않다. / 그것은 거기에 있다-우리의 삶처럼."(134)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확실성에 관하여(1949-1950)>(1969), 책세상, 2006.


12. 이른바 '정상적'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13. 학문적으로는 엄격한 사람이, 인간적으로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학문과 인격을 혼동하면 학문과 삶이 분리된 '선남선녀'로 삶을 마칠 뿐이다.


14. 푸코의 파르헤시아 - 상대에게 자신의 '진실'을 말하고, 결과를 감수하는 것.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것이 실제 '진실'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것일 뿐이라는 점을 아는 것.


15. 조언

1. 삶은 살되 고통은 피하고 싶다고? 온몸을 던져 삶을 살고, 삶의 비극과 고통마저도 받아들여라!

2. 사랑은 하되 상처는 받기 싫다고? 진심으로 사랑을 하고, 사랑의 상처마저도 받아들여라!


16. '어른'이 되는 법 - 사정도 모르는 남 얘기, 지나치게 일반화된 책 속 얘기는 듣지 말 것. 네게 맞지도 않는다! 잘 듣되, 어디까지나 네가 생각하고 네가 판단해라, 그리고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만큼이나 그 책임도 네가 져야만 한다.


17. 폭력의 근거와 기원 - 관심과 공감 그리고 배려가 없다면 실로 이 세상은 지옥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반드시 '사랑'이라 불러야 한다고 보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근본 문제이다. 이러한 '사랑'은 때로 네게 무엇이 참으로 좋은지를 네 의견, 네 기분, 네 생각과도 상관없이 내가 정해준다. 왜냐하면 나의 판단은 나로서는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나의 확실한 체험과 삶에서 나온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리'는 늘 자기가 수행하는 폭력을 정당화하고 또 가능케 만드는 인식론적 장치이다.


18. 급하고 쫓기면 쉬어라. 쉬어야 보인다. 그러나 언제까지 어느 정도 쉬어야 하는가? 보일 때까지. 이것이 '쉬는 것도 능력'이라는 말의 참뜻이다.


19. 나의 글쓰기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이런 글을 써온 적이 있다. "나의 부모님은 이러저러한 현실적인 문제로 수많은 갈등을 겪었고 그런 와중에서 두 분이 여하한 방식으로든 관계를 유지하는 자신들만의 길을 찾아낸 것 같다. 그러나 두 분은 자신들의 문제가 너무나도 엄청나고 엄중하여 자신들의 삶 그리고 그들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나름의 방식을 찾아낸 듯 싶다. 그러나 그들이 찾아낸 이 방식은 자신들 각자와 자신들이 맺고 있는 관계를 유지해주는 것에는 성공하였는지 몰라도 정작 가족의 또 다른 구성원인 나와 오빠의 삶을 잘 츠스리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또 실은 폭력적인 것에 다름 아니었다." 나는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 구성원 전체를 살리려는 이러한 인식과 관심의 결여야말로 모든 생각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20. "인식 자체가 인식 대상을 변화시킨다!" - 헤겔


21. 회고적 주체화의 한 형식 - "너한테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22. 기억의 법칙 -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더 선명해지며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







2015.10.12~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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