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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2. 21.

maurice blanchot

 
 
File:MauriceBlanchot.jpg


 

 

모리스 블랑쇼 Maurice Blanchot, 1907-2003

 


 

 

* 그린비 모리스 블랑쇼 선집, 1-11

1.『죽음의 선고』 2.『문학의 공간』 3.『도래할 책』 4.『기다림 망각』 5.『무한한 대화』 6.『우정』 7.『저 너머로의 발걸음』 8.『카오스의 글쓰기』 9.『정치평론 1953-1993』 10. 『하느님』 11. 『카프카에서 카프카로』

 

 

* 모리스 블랑쇼, 「목가」, 민희식 옮김, 『문학사상』, 1980년 5월호.

* 모리스 블랑쇼, 「자라나는 죽음」, 민희식 옮김, 『한국문학』, 1980년 11월호.

* 바타유ㆍ블랑쇼ㆍ베케트, 『C. 신부/죽음의 선고/말론은 죽다』, 안태용 옮김, 금성출판사, 1983

* 모리스 블랑쇼, 『아미나다브』, 하동훈 옮김, 범한 출판사, 1984.

* 모리스 블랑쇼, 「내가 상상한 미셸 푸코」, 김현 옮김, 󰡔외국문학󰡕, 제25호, 열음사, 1990년 겨울호.

*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박혜영 옮김, 책세상, 1990.

* 모리스 블랑쇼, 「또마, 알 수 없는 사람」, 최윤정 옮김, 『작가세계』, 1990년 가을호.

* 모리스 블랑쇼, 『미래의 책』, 최윤정 옮김, 세계사, 1993.

* 모리스 블랑쇼, 「내 죽음의 순간」, 우종녀 옮김, 『현대비평과 이론』 14호, 1997년 가을/겨울호.

* 모리스 블랑쇼ㆍ장 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 박준상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5.

 

 

* 미셸 푸코, 심재상 옮김, 「바깥의 사유」, 김현 편,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 文學과知性社, 1989.

* 에마누엘 레비나스,『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 박규현 옮김, 동문선, 2003.

* 박준상, 「블랑쇼의 문학론」,『프랑스철학과 문학비평』, 문학과지성사, 2008.

* 울리히 하세ㆍ윌리엄 라지, 『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최영석 옮김, 앨피, 2008.

* 김성하, 「모리스 블랑쇼의 중성과 글쓰기, 역동적 파노라마」, 『처음 읽는 프랑스현대철학』, 동녘, 2013.

 

 

‘언어와 존재의 일치’ - 파르메니데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헤겔

 

 

주부/술부 - 주어/술어 - 주체/속성 - 명사/동사ㆍ형용사

 

 

현전(現前, présence)/재현ㆍ표상(再現ㆍ表象, représentation, 언어ㆍ기호의 정보전달 기능)

 



1) 헤겔 - 언어와 존재의 일치. ‘언어만이 존재를 결정할 수 있다.’
2) 블랑쇼 - 언어와 존재의 불일치. ‘바깥은 언어의 한계이다.’(218-219)


 


밤, 또 다른 밤(l'autre nuit): 헤겔적인 밤, 곧 낮(le jour)의 결여 혹은 낮에 도달하기 위한 중간적 단계로서의 밤이 아니다. 망각, 단절, 중성, 의식을 가진 자로 정의되는 ‘나’의 포기, 역동적인 중성의 무(無, le rien)는 무아(無我, le moi sans moi). 탈주체화, 타자화. 죽음의 사건.

 

 

비개인 - 비인칭(l'impersonnel) - 익명성(l'anonymat/anonymité)

 

 

중성적인 것(le neutre) - 중성화/무력화(la neutralisation): 역동적 중성 운동

 

 

실존(實存, existence, 어느 누구도 아닌 여기-지금의 ‘나’, 現存在, Dasein) - 탈존(脫存, ex-sistence, ‘나’ 바깥과 관계맺음의 사건) - 외존(外存, ex-position, 자신 바깥ㆍ외부에서 존재함, 즉 하나의 탈존 형태, 타인을 향해 존재함, 타인과의 관계 내에 존재함)

 

 

* 박준상, 『바깥에서.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과 철학』, 인간사랑, 2006.

 

 

- “독서는 알지 못한다. [...] 독서는 받아들이며 듣는 것이지, 판독하고 분석하는 힘이 아니며, 발전하여 나아가거나 폭로하여 되돌아가는 힘이 아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독서는 이해가 아니다. 그저 따라간다. 이 놀라운 무지(無知).”(『모리스 블랑쇼. 침묵에 다가가기』, 52; IC, 320)

 

 

- 페르디낭 드 소쉬르, “그 자체에 놓여 있는 사유란 아무 것도 필연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는 모호한 상태에 있는 것과 같다. 미리 정해진 관념이란 있을 수 없으며, 언어의 출현 이전에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다.”(137)

 

 

- 프리드리히 니체, “이제 우리는 사물들 안에서 부조화와 문젯거리를 읽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언어 형식 내에서만 사유하기 때문이다 - 그에 따라 ‘이성’의 ‘영원한 진리’를 믿게 되는 것이다(예를 들어 주어ㆍ술어 등). 만일 우리가 언어의 구속(sprachlichen Zwange) 내에서 사유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유하기를 그친다. 우리는 그러한 한계를 한계로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에 정확히 도달하였다.”(137-138)

 

 

- 모리스 메를로-퐁티, “단어는 대상들과 의미들을 나타내는 단순한 기호이기는커녕 사물들에 거주하고 의미들을 운반한다. 따라서 말하는 자에게 말은 이미 형성된 사유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한다.”(138)

 

 

- 스테판 말라르메, “사물을 그리지 말고 사물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그릴 것. / 거기서 시는 단어들로 구성되어서는 안 되고 지향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모든 말들은 감각(sensation) 앞에서 지워져야만 하네.”(169)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헤겔, “언어는 매순간 죽음을 가져온다. 이러한 생각은 [...] 단어(개념)를 통해서만 가능해지는 - 이루어지는 - 이해라는 것이 하나의 살해와 같다는 헤겔의 생각에 연결된다. [...] 여기서 살해는 우리가 단어, 언어를 사용해 한 존재자existant를 규정(재현, 표상)하면서 그 생생한 살아 있는 현전(現前)을 파괴하는 행위, [...] - 그 존재자를 일반적 표상으로 전환시켜 직접적ㆍ일회적으로 주어졌던 그 현전을 부재로 돌리는 - 행위이다. 언어를 바탕으로 주어졌던 현전을 부재로 돌리는 것은, 즉 언어를 통해 한 존재자를 규정(동일화)해서 파악한다는 것은 그 존재자에게서 그것이 생생하게 주어졌던 시간과 공간을 탈취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해는 살해이다.”(206-207)

 

 

- 알렉상드르 코제브, “‘이 개’(le chien)라는 단어는 발설되자마자 그 단어가 가리키고 있는 바로 이 개(눈 앞에서 짖고 있는 이 하연 개 또는 검은 개)를 그 존재의 지주인 여기 지금으로부터 떼어놓고 즉시 ‘하나의 어떤 개’, ‘일반적인 개’, ‘네발짐승’ 또는 ‘동물’로 동일화ㆍ일반화시킨다. 그러한 과정이 바로 우리가 어떤 사물에 대한 이해에 이르는 과정이다.”(207)

 

 

* 지워지는 글쓰기, 침묵의 글쓰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나아가 ‘우리’ 자신인 사건(‘내’가 공간으로 열리는 탈존, 그리고 타인으로 열리는 외존) 자체가 침묵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지 않은가?”(14)

 

 

외존, “이 말은 자신 바깥에 놓임, 자신 바깥과의 관계 내에 존재함, 즉 탈존의 한 양태를 표현한다. 즉 이 말은 탈존과 동근원적이며, 둘 모두는 어원상 인간존재의 근본 조건인 ‘나’ 바깥ex에 놓임sistere을, 즉 나 바깥과의 관계 하에 있음을 나타낸다. 또한 그것은 단순히 탈존이라는 의미에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주 타인이라는 바깥과의 관계에서의 인간 존재 양태를 가리킨다. 즉 외존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 바깥으로 나감, 타인을 위해 자신을 드러냄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15)

 

 

“그[블랑쇼]가 말하는 휴머니즘은 자기결정력, 즉 자아ㆍ주체 바깥의 인간의 영역을 가리키는 단수성(單數性, singularité)에 대한 탐색이다. 여기서 단수성은 어떤 인간의 본질을 가정하지 않는 탈존(실존), 즉 “즉각적이며 직접적인 형태로 현전하는, 따라서 즉각 사라지는 부재”로 돌아가고 있기에 시간적(순간적) 현재에 기입된 탈존의 양태이다. [...] 그 현전은 동일화하는 의식에 떠오르는 하나의 표상이 아니며, ‘나’와 타자의 만남의 기표signifiant로써 관계(사이 관계, 관계 사이)를 알리는 표시이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한 부분으로써, 함께 있음être-avec의 기표로서 마주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념의 바깥에서(따라서 그것은 본질이 배제된 현전이다), 함께 있음의 장소로서, ‘나’와 타자가 서로 접근하는 장소로서 현시(現示, présentation)된다(表象représentation과는 다른 현시). 그 현전은 인간의 이념을 전해주고 의식을 통해 지속적으로 되찾을 수 있는 표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은 의식 너머 또는 의식 이하에서 직접 주어진 감각적 현시로서,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의 열림을 알려주며 타인과의 관계와 함께-있음이 ‘나’의 실존적 조건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기표이다. / 그 현전, 본질 없는 현전, 인간의 현전(또는 타자의 현전)을 블랑쇼는 ‘그 le Il’ 또는 ‘그 누구 le On’라고 부른다(‘그’와 ‘그 누구’는 블랑쇼에게서 동의어이다. “이 누군가는 형성 없는 그, 우리가 일부분을 이루어 소속되어 있는 그 누구이다. 그러나 누가 그 누구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가?”) ‘그’ 또는 ‘그 누구’는 함께-있음과 소통의 장소를, ‘나’와 타자가 관계 가운데 놓이지만 양자 중 하나에 귀속되지 않는 ‘우리’의 장소를 만든다.”(27-28)

 

 

“그에게서 ‘작품’ 자체, 언어 자체, 또는 ‘글쓰기’는 어떤 움직임, [...] 표류의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은 문자로 씌어진 책 내부에서 발견되고 분석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의 결합을 넘어서 ‘책 바깥에서’, 쓰는 자와 읽는 자의 소통을 통해, 다시 말해 쓰는 자와 읽는 자의 작품의 공동구성co-constitution de l'œuvre을 통해 전개된다.”(29)

 

 

“왜 바깥(le dehors)에서 문학이 유래하며 문학은 궁극적으로 바깥을 향해 나아가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바깥은 글 읽는 자와 글 쓰는 자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장소인가, 왜 바깥으로 향해 있는 작품은 바깥을 위해 결국 사라져 가는가? [...] 그러한 물음들이 주어질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바깥이 문학 이전 그리고 문학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바깥은 문학 이전에, 문학 바깥에서, 문학 너머에서 문제가 된다. “문학을 문학 자체 내에서 긍정하고자 하는 사람 자는 아무 것도 긍정하지 못하게 된다. 문학이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사람은 문학을 벗어나 있는 것만을 찾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 무엇인가를 찾은 사람은 문학 이하의 것만을, 또는 더 나쁘게 문학 그 너머의 것만을 찾은 것이다.”(33-34)

 

 

“바깥은 문학의 모든 언어와 문학 작품 이전에 군림하는 완전한 바깥(pur Dehors)이다. 완전한 바깥은 이 현실의 세계로, 그리고 보다 이상적이고 본래적인 또 다른 세계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자가 추방당해 있는 공간이다. 바깥의 경험은 “삶으로부터 추방되어, 경계선 바깥으로 내몰려, 추방 가운데 방황할 수밖에 없게 된 채” 존재하는 경험이다. 블랑쇼에게 바깥의 체험을 겪는 자의 대표적인 예는 카프카이며, 카프카에게 “예술은 다만 이전의 치명적인 숙명에 대한 해석ㆍ왜곡ㆍ심화에 지나지 않는다.”(34)

 

 

“바깥의 경험은 불행의 경험, 어떤 불행이(그것이 육체적이든 사회적이든) 현상의 수준에서, 세계와의 관계에서 다시 번역되는 데에서 오는 경험이다. 즉 그것은 어떤 육체적ㆍ사회적 고통(블랑쇼의 소설화된 작품에서 표현되고 있는 것과 같이, 가령 ‘나’의 죽음으로의 접근ㆍ타인의 죽음의 체험ㆍ병의 체험ㆍ사회로부터의 배제와 추방이 가져오는 고통)이 존재(세계에서 존재함)의 불가능성의 자각에 따르는 고통으로 덧나는 체험이다. 그것은 세계와의 관계, 즉 유의미성에 의해, 의미의 친숙함에 의해 보장되는 관계의 결렬을 가져온다. 그 결렬은 어떤 고통과 함께 피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 결렬은 또 다른 결렬, 자아와 자신 사이의 결렬, 즉 자아(le moi)의 파기를 야기한다.”(35-36)

 

 

“세계의 상실과 자아의 상실의 동근원성(同根源性), 그것을 블랑쇼는 다시 카프카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에서 예술이 일반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데, 적어도 카프카에게서만은 그렇다. 왜냐하면 예술이 카프카가 그러한 것처럼 세계 ‘밖에’ 존재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예술은 내밀성도 없고 휴식도 허락하지 않는 이 바깥의 깊이를, 우리가 신과조차, 우리의 죽음과조차 더 이상 어떠한 가능성의 관계도 맺지 못할 대, 솟아나는 그것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그러한 불행’에 대한 의식이다. 예술은 스스로를 상실한 자, ‘나’라고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자, 같은 움직임에 의해 진리를 상실한 자, 추방에 처해진 자[...]의 상황을 묘사한다.” 바깥의 경험은 이해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현상, 존재에 이르지 못하며 단순한 비존재-완전한 무(無)-도 아닌 현상과 관계한다.”(36-37)

 

 

“바깥의 경험은 또한 중성적인 것(le Neutre)에 대한 경험이다. 중성적인 것은 [...] 나타난 대로의 현상과 거기서 도려내어 얻을 수 있는 인식 사이의 공백(차이, 하지만 무해한 차이가 아니라 언제나 고통을, 추방의 고통을 수반하는 차이)에 기입된다. 중성적인 것은 인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같은 것으로 환원될 수 있는 동일자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인식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것도 아니다. 중성적인 것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라면, [이는 그것이] 항상 미결정적인 것(l'indéterminé)이라는 의미에서이다. [...] 바깥의 경험은 어떤 진정한 실존의 발견하기 위해 거쳐 가야만 하는 어떤 경험이 아니다. 그것은, 당연한 말이 되겠지만, 우리가 의지로 도달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다. 바깥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나아가 우리가 거기에 함몰되는 것이다. 바깥의 경험은 말하자면 수동성의 경험이다. [...] 그[블랑쇼]가 부각시키고자 하는 것은 바깥이 항상 의지에 의해 제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바깥이 중성적인 것으로 부과된다는 것, 그것은 현상의 주어짐의 근원적 무차별성을, 현상은 원칙적으로 현상에 대한 동일화(현상을 동일자로 환원시킴, 간단히 말해 존재에 대한 결정)를 초과해 주어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깥은 존재에 대한 결정에 앞선다. 따라서 세계가 오직 존재에 대한 - 현실적(도구적) 수준에서 또는 이상적(정신적) 수준에서의 - 결정으로부터 유지될 수 있다면, 바깥은 세계의 ‘근원’이다.”(37-38)

 

 

“바깥의 경험에서 어떤 인간 공동의 영역이,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실존적 조건으로의 함께-있음이 발견된다. [...] 바깥의 경험 내에서의 함께-있음, 그것을 소통의 어떤 급진적 양태와 공동체에 대한 블랑쇼의 성찰은 부각시키고 있다. 그 성찰은 바깥이 인간들 사이의 한께-있음이 이루어지는 소통이 장소라는 것을 말한다.”(39)

 

 

밤, 또 다른 밤의 경험. “또 다른 밤의 경험에서, 즉 바깥의 경험에서 [...] 비롯되는 나의 부재는 자아가 완전히 영사막으로 변형되는(devenir-écran absolu du moi ) 데에, 다시 말해 자아가 그 자신과 연결되는 능동적 의식이 차단되는 데에, 절대적 수동성 내에 침몰당하는 데에 있다. 자아가 완전히 영사막으로 변형됨, 그것은 세계가 의미가 부재하는 모상ㆍ빈 껍데기ㆍ시뮬라크르로 변형되는 사건에 따라 나오는 경험이다. 세계가 시뮬라크르로 변환되는 사건, 즉 세계가 완전히 어둠으로 묻히는 사건, 그 사건에 대한 경험이 바로 바깥의 경험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깥의 경험은 또한 중성적인 것의 경험, 의미가 부재하는 이미지의 경험, 의미의 불가능성의 경험이다(세계 내의 사물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로 열린다는 - 탈존한다는 -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54-55)

 

 

“내가 타자에 의해 위협받고 억압당하는 [...] 불행한 관계에서 나는 그에게 변증법적이자 비변증법적인 항의contestation로 단호히 저항해야만 한다. 블랑쇼는 다시 이렇게 쓴다. “그에 따라서 당연히 타인의 살기 돋친 의지가 나를 그의 게임에로 이끌며 나를 그의 공모자로 만드는데, 바로 이 때문에 항상 두 종류의 언어가, 두 종류의 요구가 있어야만 한다. 하나는 변증법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변증법적이다. 하나, 거기서는 부정성(la négativité)이 과제가 되며, 또 다른 하나, 거기서는 중성적인 것(le neutre)이 존재와 비존재 위로 솟아오른다.””(109)

 

 

“변증법적-비변증법적 항의를 블랑쇼는 ‘거부refus’라는 말로 대신한다. 변증법적-비변증법적 항의 또는 거부는 어떤 평등과 소통의 요구를 표현한 말이 된다. 힘 있는 말인 동시에 무력한 말. [...] 그 말은 자아의 말인 동시에 또한 세계를 상실한, 자아를 박탈당한 자의 말, 다만 중얼거리기만(murmurer) 하는 어느 누군가(quelqu'un)의 말이다. 거부는 따라서 어떤 법의 비호 아래 아직 모일 수 없는 자들의 말, 그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공통의 독트린ㆍ조직ㆍ기관을 갖지 못한 자들의 말이다. 아직 말하지 못하는,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 자들의 말이다.”(113)

 

 

“블랑쇼가 말하는 나와 타자 사이의 공동체는 어떤 가시적 공동체, 어떤 조직과 기관에 기초한 뭐라고 명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의미에서 공동체 없는 공동체(communauté sans communauté), 이름 없는 공동체 또는 밝힐 수 없는 공동체(communauté inavouable)이다. 공동체 없는 공동체를 이루는 자들은 나와 어떤 이념, 어떤 기준, 어떤 목표를 공유하는 자들이 아니다. 이 공동체는 어떤 전체성 하에 나의 복수형으로 추상화될 수 있는 자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공동체 없는 공동체는 어떤 사회적ㆍ국가적ㆍ정치적ㆍ이념적 집합체-그것이 제도에 따라 정착된 것이든 아니든-와도 동일시될 수 없다. 공동체 없는 공동체는 모든 정치적 이념과 모든 현실적인 정치적 계기들(모든 정체(政體)의 구성과 그 당위성, 정치권력의 구성과 해체, 정치적 저항세력의 조직과 그 당[위]성)에 대해 전-근원적이다. 왜냐하면 공동체는 (현실) 정치와 결부된 의식 수준에서의 문제들(이념ㆍ법ㆍ도덕)에 대해 중성적이며(즉 그것은 이러한 이념ㆍ법ㆍ도덕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정치 너머의, 그 이하의 인간들 사이의 급진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타자의 현전을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115-116)

 

 

“이중의 비대칭적 관계에서 나와 타인은 서로 분리되어 있지만, ‘고독’과 관계없지 않은 그 분리로부터, 나와 타인이 서로를 부르고, ‘우리’라는 함께-있음의 양태에 기입되면서 양자는 자아의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 함께-있음 가운데, 나와 타인은 제3의 인물troisième personne이라는 공동의 지위에 속한다. 그 공동의 지위를 지정하는, 타자의 현전과 마주하는 비인칭적ㆍ익명적 탈존을 블랑쇼는 ‘그le Il’(또는 ‘그 누구le On’)라고 부른다. ‘그’는 나도, 타인도, 제3자도 아니며, 그 모두의 타자, 그 모두에게 제3의 인물, 즉 진정한 의미에서의 타자Autre를 제시한다. “타자Autre, 즉 그le Il, 그러나 제3의 인물이 어떤 [구체적인] 제3의 인물이 아니고 중성적인 것을 발효시키고 있는 한에서.” ‘그’는 탈존의 공유가 이루어지는 관계 내에서의 사건을, ‘우리’ 또는 ‘공동-내의-존재’로 열리는 사건을 의미한다.”(119)

 

 

“바깥의 경험은 결국 자아 바깥에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유한성[(예를 들어 병ㆍ고독의 경험, 사회로부터의 추방의 경험)]에 대한 공유의 경험이다. [...] 자신의 존재를 의식으로, 사유로, 언어로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는가? 상징체계로서의 언어를 바탕으로 의식과 사유를 통해 이루어진 세계가 문화[文化, 社會, 人爲?]의 세계라면, 바깥은 또한 문화의 세계 바깥이며 바깥의 경험은 문화 바깥의 경험이다. 그렇다고 바깥의 경험은 있을 수 없는 순백의 자연(그것을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고 그곳으로의 회귀를 꿈꿀 수도 없다)에 대한 경험이 아니며, 문화(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 사이의 균열ㆍ틈ㆍ단절에 들어가는,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경험이다.”(128-129)

 

 

“제3의 인물, 즉 나와 타인 모두에게 공동의 타자는 우리가 본 대로 ‘그’(또는 ‘그 누구’)이다. [...] ‘그’는 특정 인물과 일치될 수 없지만 어느 누구라도-아무나-기입될 수 있는 비인칭적 탈존, 동사적 탈존 또는 탈존의 비인칭성, 탈존의 동사성을 가리킨다. 작품이 씌어지고 읽히고 보다 명료하게 드러나는 데에 따라 글쓰는 자의 모든 서술 행위가 하나의 궁극적 관점에서 조망되는 것처럼 보일 때, ‘그’는 글쓰기 가운데, 즉 비인칭적 언어의 움직임 가운데 놓여 있다. [...] 여기서 글쓰기는 작품을 향해 나아가며, 작품은 의미를 거쳐, 그리고 의미를 넘어서 쓰는 자와 읽는 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사이에서 말함’(entre-dire)의 형태를 갖는다.”(135-136)

 

 

“하나의 단어는 우리가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말하거나 쓸 때마다 죽음을 가져온다 - 즉 그것이 가리키는 존재자의 사라짐을 알리고 확인한다. [...] 인간은 단어들의 도움으로 구체적이고 생생한 존재자들을 살해해 의식의 고정된 의미들로 바꾸고, 그에 따라 의식에 기반한 존재, 자유롭지만 고독한 의식적 존재가 된다. [...] 존재자들을 살해한, 존재자들에 죽음을 부과한 인간에게 이제 그 죽음을 견지하고 지탱하는 것, 즉 비현실성 가운데 살아간다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 “언어는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가져 온다.” [...] 그 과정은 여기 지금 주어졌던 생생했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의식에 기억으로 남아 있는 죽은 껍데기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따라서 언어로 인해 인간이 비현실성에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은, 언어가 단순히 허위 또는 거짓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언어가 구체적ㆍ개별적 존재자가 주어지는 시간과 추상적ㆍ일반적 사물(언어가 구성하는 사물)이 주어지는 시간 사이의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즉 시간의 시간성을 전개시키고 완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언어는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시간의 지나감을 통고한다, 언어는 지나간 시간, 사라진 시간을 기억으로, 죽은 껍데기로 보조하는 무덤이다. 또한 언어는 사진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그 자신의 최후의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이다. 언어가 없엇다면 우리에게는 기억이 없었을 것이고 시간의 시간성(시간의 지나감)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끝, 우리의 최후의 죽음(종말)을 에상할 수 없었으리라. 간단히 말해 죽음을 몰랐으리라.”(207-211)

 

 

“인간은 언어의 도움으로만 존재에, 의식의 일반적 존재에 접근할 수 있다. [...] 인간이 언어를 통해 이르게 된 존재는 또한 존재자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 안에 비현실성을 담지하고 있을 수밖에 없다. [...] 존재는 언어로 포착되는 한 유한성 내에서만 구성되며 언제나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 인간을 언어에 매어 있는 존재로 보았을 때, 존재의 유한성은 인간의 유한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 의미의 세계는 한계지워진 존재 위에, 즉 존재자들에 대한 살해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존재에 대한 결정(한정)에 따라 형성된다. 의미의 세계는, 인간이 부정의 능력을 가진 자이자 창조자라는 정체성 아래 오성을 부여받은 자로서 고유하게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부정하는 자이자 창조하는 자라는 인간의 정체성은 결코 견고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세계를 주정하고 의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자로 스스로를 규정하기 위해 먼저 무 가운데, 언어가 만들어낸 ‘비현실성’ 가운데로 들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말하면서, 언어에 붙들리게 되면서,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동일성)의 한계를, 부정하는 자이자 창조하는 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떠받치고 잇는 공허를, 즉 자신 내부의 틈ㆍ분열을, 결국 자신의 결정적 유한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말할 때, 나는 내가 지적한 것의 실재를 부정하고 있으며, 또한 그것을 말한 자의 실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212-214)

 

 

“문학은, 정확히 말해, 문학 또한 존재의 의미를 드러낸다. 문학은 의미의 세계에, 자연의 세계와 구별되는 인간적 현실에, 인간이 담론을 통해 구축한 현실에 참여한다. 그러나 그 현실, 의미의 세계로서의 현실은 또한 비현실로서의 현실이다. 그 현실이 갖는 객관성(문화의 세계에서의 객관성, 퓌시스physis의 객관성이 아닌 노모스nomos의 객관성, 즉 담론이 구축한 의미들ㆍ사상思想들의 객관타당성)은, 헤겔이 정확히 본 것처럼, 영원의 지평에서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의, 역사의 지평에서 주어진다. [...] (존재는 언제나 유한성 위에 놓여 있다). 존재(헤겔에서의 존재, 즉 존재의 의미로서의 존재, 간단히 의미ㆍ개념으로서의 존재)가 시간의 어떤 [유한한] 시점에서 결정된다면, 언제나 그 결정은 시간에 따라, 역사에 따라 수정될 수 있고, 나아가 취소될 수도 있다.”(214-215)

 

  

 

“작가와 독자의 소통과 동시에 생성하는 작품은 책 바깥에서 퍼지는 단어들의 부재의 순간적(시간적) 울림을 자신에게 고유한 공간, 즉 ‘문학의 공간espace littéraire’으로 만든다(단어들이 음악이 됨, 작품에서 이루어지는, 시간의 공간화). 그 공간, 즉 책의 바깥은 중성적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단어들이 사물들을 동일화(재현)하는 구성적 기능이 중단될 수밖에 없는 장소이기 때문이다(중성적인 것은 ‘이것’ 또는 ‘저것’으로, ‘이것이 아님’ 또는 ‘저것이 아님’으로 규정할 수 없는 존재, 따라서 비존재로서의 존재이다). 중성적인 말(바깥의 말)은 사물의 부재를 포착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중성적인 말은 연장되어 있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시간으로서 사물의 부재의 현전(작품에서 사물들이 단어의 부재에 부응하면서 부재로 돌아가는 순간에 나타나는 현전)을 드러내는 말이다. 그 사물의 부재 가운데 작품에서 ‘그’(‘그 누구’)가 현시된다. 사물의 부재는, 즉 작품에서 단어의 부재는 단순한 무로 돌아가지 않고 ‘그’를 현시하며, ‘그’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작품에서 ‘그’는 언어의 바깥에, 언어에 매개되지 않은 어떤 신비로운 현전이 아니라, 언어적 형태를 통해, 즉 목소리(시선-언어)를 통해 나타난다. [...] 하나의 문학에 대한 긍정(작품에 대한 긍정)은 또 다른 하나의 문학에 대한 궁극적 부정(책에 대한 부정)으로 귀착된다. 문학은 문학 자체를 향해, 즉 사라짐을 향해 가고 있다(“문학은 문학 자체를 향해, 즉 사라짐이라는 문학의 본질을 향해 가고 있다.”)”(282-284)

 

 

“언어가 더 이상 사물들과 세계를 통제하지 못하고 인간의 힘의 한계만을 가리키고 있는, 그러한 시간과 장소에서조차 또 다른 언어는 타인을 향해 열려 있고,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연다. 그 또 다른 언어, 즉 타인과 관계를 여는 언어, 사물들과 세계를 관리ㆍ통제하는 능동적 언어에 앞서는 언어, 능동적 언어의 한계에서조차 타인을 향해 있는 언어가 시(詩)이며, 언어의 조건으로서의 언어, 모든 언어의 밑바닥을 이루는 언어, 모든 언어의 구원으로서의 언어이다. 그 또 다른 언어는 목소리 또는 절규이다. 문학은 그 언어를 현시하고, 목소리로 하여금 말하게 하고 침묵의 절규가 들리게 한다. 거기에 모든 종류의 휴머니즘이, 즉 타자와의 소통에 대한 최후의 긍정이 있다. ‘우리’는, ‘그’ 또는 ‘그 누구’는 삶과 죽음의 접경에서, 그러나 죽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위해, 죽음의 편에서가 아니라 삶의 편에서 절규한다.”(296)

 

 

* 박준상, 「옮긴이 해설」, 모리스 블랑쇼/장 뤽 낭시,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 문학과지성사, 2005.

 

 

“블랑쇼의 사유는 20세기에 그 극점에 다다랐던 서양의 모든 잠재력과 근대성의 모든 힘이 쇠진되어 가는 장소에서 전개된다. [...] 블랑쇼에게서 [...] 근대성을 뒷받침했던 이념적 지주들(예를 들어, 인간의 주체성, 신, 예술의 자율성과 절대성, 예술가의 천재ㆍ내면성, 공동체의 이념) 자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 블랑쇼는 근대성의 환상, 한마디로 말해 인간의 힘ㆍ능력의 확신에 대한 환상이 깨져나가는 장소이다. 그는 한편으로는 건조하고 냉정하게, 다른 한편으로는 단호하고 열정적으로, 어떻게 주체의 최고 주권(이성의 사유능력의 최고주권)이 주체의 사라짐으로, 변증법적으로 구성된 개념적 절대 존재가 존재의 바깥으로,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강조한 예술가의 고유성ㆍ절대성이 예술가의 주변성(예술가의 세계로부터의, 또한 작품으로부터의 추방)으로, 어떻게 세계 변혁의 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단순히 타자의 발견으로 귀결되는가를 말한다.”(92-95)

 

 

“블랑쇼가 강조하는 것은 ‘관계’이지 관계의 한 항인 ‘타자’가 아니다. 즉 그는 레비나스가 말하는 ‘나’와 타자 사이의 일방적 비대칭성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97)




 

2012. 7. 10.

바깥의 생각 3 - 킹 크림즌, 혹은 이성과 광기







킹 크림즌의 이번 투어 <The Construction Of Light Tour 2000>은 2000년 5월 19-21일의 '내시빌 웜-업'을 시작으로 5월에서 11월에 세계 각지에서 열렸다. 유럽, 일본, 미국의 3부분으로 나누어진 투어에서 킹 크림즌은 5월 27일 덴마크 코펜하겐의 공연을 시작으로 7월 3일의 런던 공연까지 유럽에서 총 25회, 10월 2일에서 16일의 일본 투어에서 총 11회, 그리고 10월 19일에서 11월 24일까지의 미국 투어에서는 총 28회의 콘서트를 가졌다. 외국 생활을 해보신 분은 이미 잘 아시겠지만, 킹 크림즌은 (일본의 '프로그레' 매니어 층 정도를 제외하고는) 일반 음악팬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특히 미국인들은 웬만한 젊은이들도 그들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으며,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나 조금 알려진 정도이다. 이는 그들의 압도적인 음악성과 30년에 걸친 활동 시기를 고려해 볼 때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그들은 69년의 걸작 <In The Court Of The Crimson King>으로 데뷔했다). 이런 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우리 나라와 일본 등지에서는 오히려 상당히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프로그레시브 매니어의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나라에서 그들이 이름이나마 좀 알려져 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의 유일한 '히트곡'인 'Epitaph'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사실상 그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스매싱 펌프킨즈, 레이디오 헤드나 마릴린 맨슨 등 최근의 록 음악을 상당히 듣는 젊은이들도 그들의 이름 앞에서는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여하튼 나는 항상 파리의 공연만을 취재했던 점등을 고려해 이번에는 7개월 동안 그들이 가졌던 총 77회의 콘서트 중 6월 3일의 독일 슈투트가르트 공연을 선택했다.



영국의 잡지 <모조>(Mojo)나 프랑스의 <록&포크>(Rock & Folk) 등을 통해 그들의 최근 소식을 간간히 접해오던 나는 이번 공연이 이전의 더블 기타·베이스·드럼의 '더블 트리오'가 아닌 '4인조'의 모습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적지 않게 실망하기도 했지만, 여하튼 '로버트 프립이 있는 킹 크림즌의 공연'에 참석하게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당신과 나는 6월 3일 토요일 오후 2시 경 나의 중고 고물 '혼다 시빅'을 타고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했다. 차로 약 3시간 남짓하게 걸렸다. 공연장을 확인한 우리가 호텔에 짐을 풀고 (나의 아내와 여섯 살 난 나의 딸 아이, 두 명의 다른 친구도 동반한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이전과 달리 '상당히 좋은 호텔'을 골랐다) 가벼운 시내 관광과 저녁을 마친 후 호텔을 나선 것은 7시 무렵이다. 물론 아내와 아이, 친구들은 호텔에 남겨둔 채로 ...



아, 형, 아무리 생각해도 빌 브루포드하고 토니 레빈이 탈퇴해 버린 건 진짜 아쉬운 일이네요. 그렇지? 사실 바로 우리가 보는 공연 직전에 그렇게 된 건 정말 천추에 한이 맺힐 통탄할 일이야.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썩어도 준치'라는 말도 있지만, 킹 크림즌이 '썩은' 것도 아닌데 일단 한 번 가서 봐야지. 더군다나 한국에 있는 독자 분들이 보면 우리가 하는 얘기도 다 '배부른 소리들'이지, 뭐. 그거야 그렇지만, 그래도 ... 하여튼, 형, 형은 요번 앨범 어떻게 들었어요? 그게 좀 논쟁적이지? 하여튼 내가 '논쟁적'이란 말을 했지만, 일단 쉽게 '야, 이번 앨범은 맛이 갔다, 아주 아니야, 킹 크림즌도 이젠 끝났어' ... 이런 말보다는 '논쟁적이다, 여전히 문제적이다 ... 좀 더 시간을 두고 들어봐야 되겠다 ...'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걸 보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보통 앨범'은 분명 아니지. 사운드가 공격적인 것도 여전하고 ... 한 마디로 쉽게 처리해 버릴 수 없는 앨범인 거는 분명해. 그러니까 형은 일단 부정적이진 않지만 또 그렇다고 확실한 찬사를 주는 것도 아니네요 ... 그런 것 같은데 ... 하여튼 일단 긍정적 유보를 하는 거잖아요. 긍정적 유보? 뭐, 말하자면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 그런데 너는 어떻게 들었냐?


저는 사실 저번 <Thrak> 때하고 비슷하지요. 전 <Thrak> 앨범 되게 좋아하거든요. 물론 데뷔 앨범이나, 진짜 '전성기' 때의 <Larks' Tongues In Aspic>, <Red>, 뭐 그것도 아니면 좀 더 후반기의 <Discipline>, <Beat>의 충격만큼은 안 되겠지만요. <Thrak>은 뭐가 좋았는데, 어떤 점이? 일단 전혀 타협적이지 않고요, 사운드가 되게 '모던'하잖아요. 기술적으로도 녹음이나 소리가 엄청 깨끗하고 연주나 편곡이 무지 깔끔하잖아요. 커버도 무척 마음에 들고요. 아 ... '네오 프로그레시브 세대'는 그 앨범을 그렇게 듣는군 ... 한국에 있는 다른 친구들도 그 앨범을 대개들 좋아하지요. 물론 <Larks' Tongues In Aspic>나 <Red>만큼은 아니라고 해도요.


그렇지, 동시대에 그런 앨범들이 사람들한테 주었던 충격이나 영향력을 오늘 <Thrak>에서 기대할 수야 없지. 그리고 꼭 그런 방식의 영향력만이 진짜 영향력인 것도 아닐테니까,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겠지 ... 하여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예를 들면 사람들이 지금 킹 크림즌이나 뭐 피터 게이브리얼, 로저 워터즈, 아니면 핑크 플로이드 같은 '거장 그룹·아티스트'한테 젊은 신인 그룹들이나 보여줄 수 있는 참신성이나 패기, 아니면 스타일 상의 혁신을 바라는 건 아니라고 보거든.


좋아, '거장'이란 단어를 쓴다면, 난 우리가 '거장'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 '뛰어난 자기만의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거장'의 음악을 기대한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사람들이 킹 크림즌이나 핑크 플로이드의 판을 사면서 그 안에서 예를 들면 레이디오헤드, 림프 비즈킷이나 포큐파인 트리 같은 방식의 감성적 충격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 말이지.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은 '거장'의 음악에서, 즉 이 '위대한 스타일리스트'의 음악에서 오늘을 직시하는 나름의 시대적 의미, 혹은 진정성이랄까 하는 것을 찾는 것 같아. 사실 사람들이 이 '위대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거장'에게 기대하는 건 그의 음악(아니, 단순히 음악만이 아니라 '삶' 자체)에 대한 비전, 즉 '통찰'에 다름 아니라고 봐. 난 바로 이런 점에서 킹 크림즌과 로저 워터즈, 브라이언 에노 등등은 나름대로 유의미한, 그리고 예스나 ELP, 핑크 플로이드, 제너시스 등등은 무의미한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 그런 사람들한테 그런 걸 기대하는 게 일단 무리겠죠. 그런 면에서 80년, 특히 90년 이후 킹 크림즌의 작업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독보적인 예외를 보여줬잖아? 로버트 프립이 정말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실험정신'만은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는 인물이란 건 아는 사람은 누구나 다 동의할 수 있을 걸.




있잖아요 ... 근데 ... 사실 전 킹 크림즌 앨범은 거의 다 들어봤어도 프립의 솔로 앨범들이나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시리즈, 또 '리그 오브 더 젠틀멘'(The League Of The Gentlemen), '선데이 올 오버 더 월드'(Sunday All Over The World), '로버트 프립 스트링 퀸텟'(Robert Fripp String Quintet) 같은 프로젝트 그룹들은 고사하고, 킹 크림즌 (서브) '프로젝트'(ProjeKct) 판들도 거의 못 들어봤어요. 이름만 들었죠, 그냥 ... 음 ... 그게 진짜 '한 콜렉션' 되지. 내가 지금 대충 생각해봐도 (불법 부틀렉 라이브는 빼고) 킹 크림즌 정규 스튜디오·라이브 앨범만 20여장, 순수 킹 크림즌 유관 서브 프로젝트 앨범들도 한 20장 가까이 되지. 프립의 개인적 솔로 프로젝트도 10여장, '기타 크래프츠'(Guitar Crafts)도 한 10장 되고, 사운드 스케이프도 10장 정도, 이것만해도 이미 100장 가까이 되고 ... 거기다 프립이 연주해준 앨범들, 프립이 세운 디시플린 글로벌 뮤직 레코드(www.disciplineglobalmobile.com) 릴리즈까지 합하면 또 한 100장 ... 이걸 다 합하면 일단 한 200장 되고 ... 거기다 비디오, LD, 프립이 쓴 책들까지 합하고 ... 또 거기다 피터 신필드, 그렉 레이크부터 데이빗 크로스, 존 웨튼, 최근까지의 온갖 이전 킹 크림즌 멤버들이 직접 참여한 솔로, 그룹들의 정규 릴리즈만 해도 거의 최소 100-200장은 정말 간단히 넘어버릴 걸 ... 우욱, 그렇게까지 많을 줄이야 ... <뮤지컬 박스>에서 '킹 크림즌과 로버트 프립' 뭐 이런 특집은 안 해요? 아니, 이런 걸 해줘야 '진정으로 독자를 생각하는 <뮤지컬 박스>!' 뭐 이런 거 아니겠어요? <뮤지컬 박스>가 킹 크림즌을 안 다룰 리는 없고 ... 하긴 하겠죠? 하지, 해야지, 왜 안 하겠어!


우리 네 사람 다 얼마나 정말 '골수 킹 크림즌 팬'인데! 그리고 그 얘길 창간호 준비 모임 때부터 하긴 했었거든 ... 근데 결론은 우리가 한두 호 내고 그만 둘 것도 아닌데, 마지막까지 내실 있는 잡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말 자신 있는 그룹들은 좀 더 뒤에 사람들이 우리 잡지의 '내공'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되는 시기가 올 때까지 미루자 ... 그래도 핑크 플로이드 같은 그룹은 잡지의 인지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창간호에 선택됐지만 ... 우리가 자신 있고 또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킹 크림즌, 예스, ELP, 소프트 머신 같은 그룹은 보다 후에 다루고 그보다는 클래시나 크라프트베르크 같은 마찬가지로 중요하지만 보다 덜 알려진 그룹들이 먼저 선택됐지. 사실 제너시스는 몰라도 피터 게이브리얼만 해도 그에 대해서도 정확한 정보나 체계적인 제대로 된 비평은 국내는 물론이고 외국에서도 전무했거든. 외국 친구들도 우리 잡지를 보면 좀 '놀라는 바'가 있을 걸 ... 또 우리 나라에서는 간과된 중요한 아티스트들의 제대로 된 정리와 평가도 중요한 부분이지. 이런 점에서는 언젠가 데이빗 보위나 록시 뮤직 혹은 브라이너 에노나 프랭크 자파의 특집도 꼭 나와야 할거야. 또 '독일 코즈믹 록', '영국 캔터베리 록', '이탈리아 프로그레시브 록' 같은 장르 특집도 선택될 수 있고, 예정된 우리 5호처럼 '역사상 가장 창조적인 데뷔 앨범 100선' 같은 것도 나올 수 있지. 하여튼 한 권을 내더라도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보기에 '제대로 된 책'을 낸다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야.


이건 우리 편집진들이 처음부터 비평가가 아니라 순수히 음악을 좋아하는, 듣는 사람 입장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또 중시하는 부분이지. 예를 들어 그 유명한 핑크 플로이드나 킹 크림즌만 해도 그 사람들 정규 앨범 릴리즈나 솔로 프로젝트들 리스트를 우리 나라에서 구하기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야. 킹 크림즌만 해도 유관 앨범이 그렇게까지 많은 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걸. 사실 지금도 인터넷이 있다해도 어느 누가 혼자 그걸 다 찾아내고 또 그 앨범들은 다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거야. 그러니 나머지 그룹들은 말할 것도 없지. 1차 자료 정리, 데이터 베이스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즉흥적 인상으로 '날리는' 비평이 균형 잡힌 적절한 인식 혹은 더 나아가 새로운 통찰에 도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야. 사실 그건 모래 위에 성을 짓는 거나 다름없거든. 내 생각에 어떤 분야든 우리 나라 비평가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 중의 하나는 제대로 된 자료 정리, 데이터 베이스의 구축이야 ...


당신과 나는 어느덧 공연장 앞에 서있다. 7시 반. 공연은 8시이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낮에 위치를 확인하고 잡지에 실을 사진을 찍어둔 공연장은 겉으로 얼핏 보아도 무척이나 좋은 공연장이다. 그리고 지금 저 안에는 로버트 프립이 있을 것이다. 당신과 나는 그를 만나러 안으로 들어간다 ... 당신과 나는 드디어 킹 크림즌의 공연을 보는 것이다.



형, 여기 뭔가 되게 '격조 높은 공연장' 같네요. 그러게, 아마 원래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것 같은데 ... 그렇죠? 야, 저기 저 사람 <Beat> 티 셔츠를 입고 있는데 ... 그러게요. 그 옆 사람은 요번 투어 티 셔츠인데요. 그 옆 사람은 <Thrak> 티셔츠를 입고 있네 ... 야, 이걸 파나보다. 우리도 하나 사 입을까, 비싸지 않나 ... 어, 여기서 킹 크림즌 서브 프로젝트 시디들하고 프로그램도 파네요(근영, 프로그램 표지를 이 부분에). 그래? 그럼 하나 사야지 ... 허허, 이것 참 잘 만들었구나. 맥주나 한 잔 사 마시면서 한번 읽어보자. 여기 계단에 앉을까요? 그럴까?


그 때 곁에 있던 아주 해사하게 잘 생긴 백인 청년 하나가 우리에게 친절한 태도로 말을 건다. 물론 독일어로 ... 뭐 라고 하는 거지? 영어를 하나? 일단 한 번 얘기해보지요, 뭐. (영어로) 저기 ... 우린 독어 못한다. 한국 사람들이거든. 우린 프랑스에 살아. 너 불어나 영어 하니? 어, 그래? 난 불어는 전혀 못하고, 영어도 잘 못 하는데 ... 하고 대답하는 영어 발음은 상당히 당황한 얼굴에 비해 무척 좋은 편이다. 하여튼 반갑다. 너희들도 물론 킹 크림즌 팬이겠지? 당연하지! ... '킹 크림즌 콘서트'에서 만났는데 설령 말이 안 통해도 무슨 대수랴! 여기서 만났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해준다 ... 우리는 킹 크림즌을 좋아하는 것이다.


야, 여기 공연장 무지 좋다. 좋지? 여긴 원래 클래식 전용 홀이야. 음향 시설 같은 게 죽여. 난 전에도 몇 번 와봤거든. 근데 넌 학생이냐? 아, 난 여기 공대에서 컴퓨터 전공해. 너희도 학생이니? 응, 우린 둘 다 학생이야. 사실 나는 <뮤지컬 박스>라는 한국 록음악 잡지에서 편집 일을 보거든. 그래서 공연 취재차 온 거야. 아니, 그래, 그럼 비평가야? 영광이다, 야! ... 영광은 뭘. 하여튼 반갑다. 넌 이름이 뭐니? 난 데얀 파찰로쉬(Dejan Pacalo )라고 해. 파찰로쉬가 성이야. 응? 파찰로쉬? 넌 독일 사람 아니니? 아니야, 난 크로아티아 사람인데, 여기서 태어났어. 아, 그래. 난 크로아티아는 축구팀의 수커(Suker) 밖에 모른다. 어! 너 수커를 아는구나! 아 그럼, 알지. 진짜 잘 하잖아! 고맙다, 야! 수커는 우리 나라의 영웅이야, 특히 지난 월드컵에서 독일을 3:0으로 이겼을 땐 난리 났었지 ...


하여튼 너희들은 킹 크림즌 공연은 처음이니? 응, 우린 처음이야. 너무 기대된다. 너는? 난 두 번째야, 전에 4인조일 때도 킹 크림즌이 슈투트가르트에 왔었거든. 벌써 몇 년 됐을 걸. 그땐 어땠어? 죽였지! 완전, 4명의 신들이 연주하는지 알았다니까! 어, 너희 맥주 다 마셨구나. 내가 한 잔 사줄게. 어, 아니야, 아니야, 우리가 낼게. 그러나 데얀을 벌써 자기 것과 우리 것, 세 잔을 사들고 온다. 이런 일은 유럽에서는 무척 드문 일이다. 록 콘서트에서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랄까. 데얀, 고마워. 아니야, 오늘은 니네가 내 손님이다(You're my guests, today)! 하하, 고맙다. 그럼 이따가 공연 끝나고는 우리가 한 잔 사지 ...


아참, 데얀, 너는 요번 판 어떻게 들었니? 아, 요번 판 ... 산 지 얼마 안 돼서 한 두세 번밖에 못 들었어. 그렇지? 상점에 깔린 지 아직 일주일도 안 된 것 같은데 ... 그래도 나쁜 판이라고는 생각 안 해. 다만 섣부르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아. 그럼, 데얀, 니가 제일 좋아하는 킹 크림즌 판은 뭐냐? 나? ... 음 ... 아무래도 <Thrak>이라고 해야 하겠지. 내 '올 타임 베스트' 중의 하나야! 집에 돌아와서 피곤할 때 목욕을 하고 맥주를 마시면서 담배를 한 대 물고 <Thrak>을 걸어놓으면 만사 오케이야! 하하, 그래? ...


그리고 말이야, 있잖아 ... 니가 음악 평론가라니까 하는 말인데, 그거 알아? <롤링 스톤>(Rolling Stone) 독어판 지난 호에 킹 크림즌 특집이 났었거든, 새로 판이 나왔다고 말이야. 나도 표지는 봤어. 그런데 앨범 리뷰에서 이번 신보를 '죽이는 판'이라고 했었단 말이야 ... 그런데 이번 달 새로 나온 잡지에서는 또 같은 판이 '잘 들어보니 별로 더라'라는 식으로 썼더라고 ... 음악 비평가들 이런 짓거리는 정말 구역질 나.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생각나는 대로 그날그날 자기 기분대로 쓰면서 다음달에는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리는 게 음악 비평가야. 으음 ... 말도 안 되는군 ... 정말 나도 그런 짓거리에는 환멸을 느낀다. 전적으로 동감이야. 물론 자기 생각을 바꾼 게 '정직한' 걸 수도 있지만 그러면 처음부터 좀 더 생각해보고 썼어야 되는 거 아냐? 거기다가 또 자기가 안 좋아하거나 이해를 못하는 장르의 음악은 음악도 아니라는 식의 모습은 정말 보기 싫어. 음악 비평가들은 정말 검증 받지 않은 문화 권력이야.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을 그냥 일반 팬한테 오히려 뺏어 가는 거 같아. 지나친 장르 집착도 그렇고. 내가 킹 크림즌이나 핑크 플로이드를 들으면서 비요크나 아니면 봅 훈트(Bob Hund) 같은 스웨덴 펑크를 듣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러거든 ... '야, 너 어디 아프니? 왜 그래?'(Hey, what's wrong with you? what's the problem?) 뭐 이런 식으로 말이야. 하여튼 너나 너희 잡지는 제발 그런 일 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인상도 무척이나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는 이 잘 생긴 청년의 입에서 이렇게까지 심한 말이 나올 줄 몰랐기 때문에 속으로는 약간 놀라기도 했지만, 언제나 '듣는 사람'에서 출발한 내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8시 5분 전. 문이 열린 공연장 안에서는 프립의 '사운드스케이프'가 흘러나오고 있다. 우리는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서 있는 맨 앞 줄 부근으로 간다. 관객 쪽 뒤쪽 2층에는 좌석이 있다. 공연장은 가득 찼다. 한 2000명? 입장료는 64 도이치 마르크(DM)이다. 1DM이 대략 600원이므로 한 38,000원 가량 되는 셈이다(환율은 항상 바뀌므로 2001년 2월 현재 기준). 무대에는 기기들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고 다만 뒤쪽에 직사각형의 흰 천이 가로로 길게 드리워져 있다. 프립은 언젠가 '우리의 음악이 그 자체로 충분히 시각적인데 굳이 다른 시각적 효과에 비중을 둘 필요성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남녀 비율은 보통의 록 공연장처럼 7-8:1 정도이다. 연령층은 대략 20-40대로, 역시 상대적으로는 '연로한' 층이 많은 편이다.


정확히 8시 3분이 되자 프립이 - 예상외로 - 만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띄고 등장했다. 이어 나머지 멤버들도 등장했다. 중앙 뒤쪽에 드러머 팻 마스텔로토가, 그 앞 중앙에 애드리언 밸류가, 객석에서 보아 그 좌측에 트레이 건이, 우측에 프립이 있다. 물론 프립은 여느 때처럼 앉아 있고 그의 곁에는 기타 신세사이저 기기가 놓여 있다. 그와 우리 사이의 거리는 불과 3-4m이다. 푸른 조명이 그들과 흰 천을 비추고 있다. 밸류가 마이크에 대고 특유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Thank you, Good Evening, Hello!)이라고 말하며 바로 음악이 시작되었다. 'Into The Frying Fan'! 쇼가 시작된 것이다!



Artist: King Crimson
When: 20H, 3 June, Saturday, 2000
Where: Beethoven-Saal, Liederhalle, Stuttgart, GERMANY

Personnels
Robert Fripp - guitars
Adrian Belew - guitars, vocals
Trey Gunn - bass touch guitar, baritone guitar
Pat Mastelotto - drumming

List Of Songs


1. Into The Frying Pan
2. The ConstruKction Of Light
3. ProzaKc Blues
4. FraKctued
5. VROOOM
6. One Time
7. Dinosaur
8. (improvisation)
9. The World's My Oyster Soup Kitchen Floor Wax Museum
10. Cage
11. Larks' Tongues In Aspic - Part IV/Coda: I Have A Dream (Encore)
12. Three Of A Perfect Pair
13. (improvisation)
14. Sex Sleep Eat Drink Dream
15. "Heroes"


관중들의 환호 속에 이어지는 다음 곡들은 역시 이번 신보의 'The ConstruKction Of Light', 'ProjaKc Blues', 'FraKctured'이다. 사운드는 물론, 당연히 훌륭하다. 공연의 전체적 분위기와 조명은 바로 이번 앨범 커버와 똑같은 어둡고 진한 청색, 거의 암울하기까지 한 진한 푸른색이다. 가사와 음악이 맞물려 공연은 그들이 의도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공연은 어둡고 무겁다. 그리고 밸류의 가벼움은 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무엇인가 짓눌려 있다. 공연은 '빛의 구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어둠의 구축'(The ConstruKction Of Darkness)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이번 공연의 흥미로운 점은 탈퇴한 빌 브루포드와 토니 레빈을 대신해 메인 드러머·베이시스트로 등극한 마스텔로토와 건의 음악적 성취도 혹은 적합도이다.


나는 이렇게 판단한다: 두 사람은 모두 훌륭한 연주자들이다. 그러나 역시 천하의 '창조적' 드러머·베이시스트인 이전의 두 사람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전 그들의 연주를 모르는 크림즌의 새로운 팬들은 그들의 연주에 감격할 것이다. 그들은 나머지 팬들은 일정한 적응의 기간, 혹은 이전 두 멤버의 부재를 느낄 것이다. 두 멤버, 특히 브루포드는 '크림즌 내에 존재하는 검열의 분위기, 특히 프립의 음악적 사전 검열이 문제'라고 말하며 떠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73년의 <Larks' Tongues In Aspic> 이래 장장 27년을 프립과 함께 했던 브루포드가 말이다. 이는 아마도 전 크림즌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이는 이전 그렉 레이크(Greg Lake) 혹은 키스 티펫(Keith Tippett)의 탈퇴보다 더욱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더구나 레빈도 떠나버렸다. 크림즌에는 유일 '대주주'인 프립과 그의 최근, 80년 재결성 이래의 '수제자'인 밸류만이 남아 있다. 마치 장문인(丈門人)과 사형(師兄)처럼 말이다. 오늘 이후의 킹 크림즌이 이전을 능가하는 새로운 예술적 실험적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을 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이제까지의 네 곡에서 들리는 마스텔로토의 드럼은 뛰어나다. 탁월하다. 나름의 자기 세계를 가지고 있다. 적어도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뛰어난 연주자이며, 더욱이 무척이나 실험적인 연주자였다. 그러나 그도 역시 브루포드의 암영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는 정박과 엇박을 오가는 브루포드의 '신의 경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건 역시 레빈의 창조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물론 그가 레빈과는 다른 방향의 감수성을 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보다 '서정적'이며, 매우 깊이 있는 놀라운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무릇 모든 예술에는 격조가 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사실 그는 레빈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그는 현재의 네 멤버 중 가장 젊으며 또한 아직 자신의 독자적 경지를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프립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잇을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그의 멤버 교체는 적어도 '결과론적으로는' 항상 성공했다. 그러나 이번은 미지수다. 그는 심지어 탈퇴한 두 멤버에 대해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다 ... 하지만 그들이 원한다면 크림즌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아쉬움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프립은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한 번 '자신만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이며 그것이 음악이며 그것이 이 세계이다. 나는 프립도 브루포드도 레빈도 지지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좋은 음악만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존재론적 영역이다.



the construKcktion of light





그러나 프립, 특히 'FraKctured'에서 들리는 프립의 기타/기타 신서사이저 소리는 가히 소름끼치는 오싹한 신의 경지이다.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무서울 정도의 장인적 테크닉과 예술적 실험성으로 무장한 채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이어지는 세 곡은 94/95년 <VROOOM>/<Thrak> 앨범의 'VROOOM', 'One Time', 'Dinosaur'이다. 이전 라이브와의 비교를 가능케 하는 곡들이다. 크림즌은 95년이래 세 개의 라이브 <B'boom>(95, 2CD), <THRaKaTTaK>(96), <Absent Lovers>(98, 2CD)를 출반했다. 특히 밸류의 보컬이 돋보인다. 오늘 새삼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정말 좋은 싱어·기타리스트이다. 그의 연주와 보컬은 나무랄 데가 없다. 정말 4인조 킹 크림즌은 완벽한 콰르텟이었던 것이다.


오늘 공연에서 그들은 건과 마스텔로토가 가입한 <VROOOM> 이후의 곡들만을 연주하고 있다. 바람직한 전략이다. 이어지는 여덟 번째 곡은 내가 모르는 곡이다. 아마 임프로바이제이션인 듯 싶다. 약 15-20분 간 이어진 이 곡은 정말 놀라운 곡이다. 프로그램된 신서사이저 드럼으로 시작되는 이 곡은 초반 프립의 기타와 마스텔로토의 드럼 듀엣만으로 연주된다. 드러밍은 깜짝 놀랄 만큼 좋다. 무척이나 실험적인 이 곡의 하이라이트는 중반 이후 '발동이 걸린'(그들의 비디오를 보신 분은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그가 입을 꼭 다물고 앉은 채로 자신의 기타 피킹에 따라 좌우 앞뒤로 몸을 뒤튼다) 프립의 솔로 기타 연주이다. 한편 이전과 마찬가지로 연주되는 대부분의 곡에서 프립은 리드 기타를, 밸류가 리듬 기타를 맡고 있다. 곡이 끝나고 시계를 보니 9시.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곡은 신보의 'The World's My Oyster Soup Kitchen Floor Wax Museum', <VROOOM>의 'Cage'이다. 'Cage'에서 밸류는 어쿠스틱 기타로, 건은 스틱 베이스를 6현 베이스로 바꾼다. 팜플렛에는 건이 '워 기타의 마크 워'(Mark Warr of Warr Guitars) 베이스 텃치 기타(bass touch guitar), 바리톤 기타(baritone guitar)만을 사용하며, 프립은 페르난데즈 앤 48th 스트릿 기타(Fernandes and 48th Street Guitar)를 사용한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건과 밸류가 다시 원래의 악기로 바꿔들면서 ... 드디어 신보의 'Larks' Tongues In Aspic-Part IV/Coda: I Have A Dream'가 연주된다. 10분에 걸친 광폭한 연주가 지난 후 밸류의 '대단히 감사합니다'(Thank you very much)라는 멘트와 함께 공연은 끝났다. 9시 25분. 공연시작 한 시간 25분만이다.


그러나 물론 관중들은 한 사람도 가지 않고 열렬한 환호로 앵콜을 외친다. 잠시 후 어쿠스틱 기타를 든 밸류가 혼자 등장하여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한다. 다름 아닌 'Three Of A Perfect Pair'! 4인조 시절인 84년 동명 타이틀 앨범 수록곡이다. 연주는 공연의 곡들과 달리 무척 경쾌하고 좋았다. 이번에는 밸류가 퇴장하고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등장하여 연주를 시작한다. 녹음된 나레이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중간에 등장하는 이 곡은 아마도 프로젝트(ProKject) 혹은 임프로바이제이션인 듯하다. 매우 아방-가르드적 분위기의 이 곡은 마치 <Three Of A perfect Pair>의 'Dig Me' 같은 분위기이다. 역시 탁월한 연주이다. 약 10분 가량의 이 곡 중반부에 건의 솔로 연주가 있었다. 밸류가 다시 등장하여 함께 연주한 다음 곡은 <Thrak>의 'Sex Sleep Eat Drink Dream'. 오늘 공연을 통틀어 가장 스튜디오 원곡에 비해 바리에이션이 많이 가해 진 곡이었다. 9시 45분.

다시 그들이 퇴장했다가 다시 등장해 연주한 오늘의 15번째, 마지막 곡은 놀랍게도 다름 아닌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77년 걸작 <"Heroes"> 앨범의 동명 타이틀곡이었다! 보위와 브라이언 에노가 공동 작곡한 이 원 곡의 세션 기타리스트는 프립이었다. 연주는 황홀했다. 이런 곡을 킹 크림즌의 라이브로 직접 듣는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밸류의 보컬도 뛰어났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공연이 끝난 것은 9시 52분. 한 시간 52분만이다. 밸류는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장난스럽게 관객들에게 자신의 기타 피크 7-8개를 던져 주었다. 9시 55분. 스피커에서는 다시 프립의 '사운드스케이프'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뱀발 - 탈퇴한 두 멤버인 브루포드와 레빈은 현재 각기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유럽 등지를 순회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들 그룹의 멤버들인데, 우선 토니 레빈 밴드(The Tony Levin Band)는 스틱·베이스에 물론 토니 레빈, 드럼에 제리 마로타(Jerry Marotta), 키보드에 래리 페스트(Larry Fast), 기타에 제시 그레스(Jesse Gress)로 기타를 제외하고는 이전 피터 게이브리얼 밴드와 같은 진용이다(www.tonylevin.com). 빌 브루포즈 어쓰 웍(Bill Bruford's Earth Work)은 기타리스트 래리 코리엘(Larry Coryel) 등 재즈 뮤지션 등과 협연 중이다. 이외에도 크림즌의 투어 후 마스텔로토의 밴드 마스티카(Mastica)도 투어를 진행 중이다(www.mastica.com). 트레이 건 밴드(The Trey Gunn Band)도 에릭 존슨, 제리 마로타 등과 협연한다(www.treygunn.com). 그 외 '킹 크림즌 패밀리'에 대한 가장 완벽한 - 가히 혀를 내두를 만한(!) - 정보는 다음을 클릭하면 된다: www.elephant-talk.com. 이에 따르면 2001년 2월 현재 킹 크림즌의 새로운 신보나 투어는 예정되어 있지 않다.
 

2. 에필로그: 똑 같은 것을 보는 여러 다른 방식들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펫 샵 보이즈 그리고 킹 크림즌,
혹은 기계에 대한 분노, 애완 동물 가게 소년들 그리고 진홍빛 왕.


1. 같은 것


여러 다른 입장들, 그리고 음악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 그것은 그들이 생각되지 않은 것을 생각하려 한다는 것,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려 한다는 것,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을 생각하려 한다는 것이다 ...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삶의 영역인 음악을 통해 안에서 밖으로, 자기에서 자기와 다른 자기에로 '변화'(transformation)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적어도 오늘의 서양 젊은이들이 자신들을 위한 자신만의 '참다운' 음악을 가려내는 방식이다.


2. 다른 것


1) 현실 정치적 급진성: 기계에 대한 분노-애완 동물 가게 소년들-진홍빛 왕.
2) 예술적 형식(파괴) 미학적 급진성: 진홍빛 왕-애완 동물 가게 소년들-기계에 대한 분노.
3) 미시적 성 정치학 담론적 급진성: 애완 동물 가게 소년들-기계에 대한 분노-진홍빛 왕.


이 순서는 맞는 것일까? 문제 영역의 설정은 제대로 된 것일까?
여하튼, 이들 중 오늘 우리 사회에서 누가 가장 반동이며 누가 가장 진보인 것일까?
그들일까, 저들일까, 이들일까, 아니면 나일까, 그것도 아니면 당신일까?


-



2001년.

바깥의 생각 1 -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혹은 기계에 대한 분노











기차가 움직인다. 2000년 2월 3일 수요일 아침 8시 20분. 나는 혼자다. 당신은 지금 프라하에 있다. 이미 지난주에 친구를 만나러 떠난 당신은 어제 전화로 오늘 저녁의 레이지 어겐스트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RATM)의 공연을 보지 못 하게 된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다음 주의 펫 샵 보이즈 공연은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두 공연은 모두 파리의 르 제니트(Le Z nith)에서 열린다. 나는 다시 당신을 만나기 이전과 같은 '고독한 여행'에 익숙해지려 노력한다. 바깥의 풍경은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지평선, 포도밭들이 펼쳐진다. 바깥의 기차 복도에는 프랑스의 젊은 남녀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나도 그 사람들을 따라 안에서 바깥으로 나선다. 벌써 두 시간째 앉아 있었더니 다리가 아파 왔던 것이다. 창가에 기대서 담배를 꺼내든 나는 기계에 대한 분노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들은 이른바 '좌파 그룹·참여 음악'의 전통에 서있다. 나는 점퍼 주머니에서 이전에 한 인터넷 음악 사이트를 위해 써두었던 그들의 3집 앨범 리뷰를 꺼내어 펼쳐든다.


▶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3집: 실험적 기타 사운드에 실려 오는 '억압에 대한 분노' - Rage Against The Machine, <The Battle Of Los Angeles>, Epic/Sony, 1999


1. Testify 2. Guerrilla Radio 3. Calm Like A Bomb 4. Mic Check 5. Sleep Now In The Fire 6. Born Of A Broken Man 7. Born As Ghosts 8. Maria 9. Voice Of The Voiceless 10. New Millennium Homes 11. Ashes In The Fall 12. War Within A Breath


90년대 초 새로운 개념의 '진보적' 하드 코어 랩·록 음악을 세계에 알린 미국의 4인조 그룹 '기계에 대한 분노'의 3집 <The Battle Of Los Angeles>가 발매되었다(www.ratm.com). 앨범은 1집 <Rage Against The Machine>(Epic·92), 2집 <Evil Empire>(Epic·96) 이래 3년만의 신보이다. 그들은 이 앨범을 통해 오늘의 록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오늘의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앨범을 들어보건대 그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면하고자 선택한 방식은 (그룹 이름이 말해주듯) - 현재 음악 신의 지배적 담론으로서의 테크노 혹은 인더스트리얼이 아닌 - 인간의 '원초적 소리, 진실로서의 록'이다. 그들이 지지하는 멕시코 치아파스의 차파티스타 농민 혁명군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 대부분 아는 것이라고는 가족과 농사일이 전부인 이 '오늘의 혁명 전사들'에게 테크노 혹은 인더스트리얼이 '자신의 노래'이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실로 그들의 음악적 두 원천이라 할 '록'과 '랩'이라는 양식은 그 기원과 수용자의 측면의 양자 공히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온 장르이다. 이를 위해 2집부터 함께 일해온 프로듀서 브렌던 오브라이언(Brendan O'Brien - 그는 최근 콘(Korn)의 신보 <Issues>도 제작했다. 실로 프로듀서 오브라이언의 전성기이다!)은 신서사이저는 물론 어떠한 전자적 음향 효과도 배제하고, 오직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로만 원초적 저항의 사운드를 일구어 내었다.


이러한 '실험'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물론 그룹의 가사와 보컬을 전담하는 잭 들 라 로차(Zack De La Rocha)와 음악 감독 격인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의 뛰어난 작·편곡 및 연주 능력일 것이다(그의 기타 사운드는 만약 앨범의 크레딧에 적혀 있지만 않았다면 실로 '기타 신서사이저를 사용하지 않았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실험성과 완성도를 함께 보여준다). 하지만 드럼-베이스의 리듬 라인을 맡고 있는 브래드 윌크(Brad Wilk)와 Y.팀.K.(Y.tim.K.), 즉 팀 코머포드(Tim Commerford)의 기량 또한 너무도 안정되고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어, 마치 전성기 70년대의 에어로스미스(Aerosmith)나 80년대의 U2의 리듬 파트를 연상케 할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험이 갖는 진정한 의미는 '그들이 제도권 상업 음악의 파상 공격으로부터 록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전사'라는 식의 편협한 도덕적 시각 안에 놓여 있지 않다(왜냐하면 당연히 이른바 주류 음악 신으로부터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중요한 음악적 정치적 효과가 발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도덕주의적 강박 관념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적합한 '음악적 표현 양식'의 획득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며, 더구나 이 때 그들의 음악이 메시지 전달을 위한 단순한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혁명적 감성을 파생시키는 새로운 '음악적 메시지'의 창출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로 그들은 싱글들인 'Guerrilla Radio', 'Sleep Now In The Fire'는 물론 앨범 전반을 통해 메시지와 사운드의 양면에서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은 이제 3장의 앨범을 통해 보다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농민 혁명군들'뿐 아니라 오늘의 현대 대중 사회 곳곳에 잠복해 있는 '도시 게릴라들'에게도 호소력 있는 록의 한 전형을 창조해 냈다.


RATM은 이 앨범으로 그들이 '음악적 성취를 갖춘 정치적/저항적 록의 계보'를 잇는 중요한 그룹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들은 밥 멀레이, MC5, 클래시의 살아있는 현현(顯現)이며, 퍼블릭 에너미, 사이프러스 힐과 절실히 '뜻을 나누는' 동지(同志)이다 - 그들의 앨범 크레딧의 마지막에는 '[국제 사면 위원회]새 창으로 열기'·'[위민 얼라이브]새 창으로 열기'를 포함한 13개 인권 단체의 로고와 웹 사이트 주소가 한 페이지 가득 실려 있다.


기차가 선다. 열차는 파리 동역에 선다. 12시 20분이다. 나는 역구내에서 샌드위치로 적당히 점심을 때우고 시내로 나가 CD점들을 방황한 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방을 잡는다. 호텔을 나서 저녁을 먹으며 시계를 보니 6시 반이다. 조금 늦었다. 공연은 7시 반이다. 낮에 시내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서둘러야 한다. 공연장인 '르 제니트'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M tro=메트로)을 타야한다. 호텔이 있는 레퓌블리크(R publique) 역에서 5번선 보비니-파블로 피카소(Bobigny-Pablo Picasso) 방향의 지하철을 타고 포르트 드 팡텡(Porte de Pantin) 역에서 내린다. 한 30분 조금 못 간다. 가는 도중에는 스탈린그라드(Stalingrad) 역도 있다. 우리 나라 같은 '반공 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이름이다. 적어도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1920년대 이후 1989년 소련의 몰락 이전까지 사회주의, 공산주의 사상이 주류를 점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포르트 드 팡텡 역에 내린 나는 당신에게 이 곳이 우리 나라 서울의 '예술의 전당'처럼 갖가지 클래식, 연극, 팝 전용 공연장들이 모여있는 '문화 콤플렉스 단지'임을 말해 준다. 단지는 잘 조성되어 있고 아늑하다. 우리 나라 예술의 전당이 갖는 피곤한 부담감과 위화감을 주지 않는 이 곳은 프랑스 정부가 세운 문화 콤플렉스이다. 프랑스라는 '문화 제국주의 국가'의 참된 힘은 이런 면에서 드러난다 ... 그 중 가운데 오른쪽 공원길을 따라 한 5분 정도 걸어가면 르 제니트가 보인다. TV 프로그램의 자선공연, 쇼 프로그램 등등이 이곳에서 생중계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그냥 보기에도 굉장히 좋은 공연장이었던 것 같다.

르 제니트 앞에는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무슨 유인물들을 나눠주는 것이 보인다. 나도 다가가 한 장씩 받아본다. 유인물은 여러 가지인데, 특히 미국 필라델피아의 기자이자 흑인 인권단체 '검은 표범'(Black Panthers)의 회원으로 백인 경찰관을 살해한 '혐의로' 92년 사형 선고를 받은 무미아 아부-자말(Mumia Abu-Jamal)의 사면을 요청하는 전단이 많다. 또 전단들 중에는 'RATM, 퍼플릭 에너미 및 스팅에게 보내는 지지 서한'도 있는데, 말미에는 '사형제도 철폐! 죽음의 문화를 타도하자! 무미아를 석방하라! 레너드 펠티어(Leonard Peltier)를 석방하라! 미국의 모든 양심수들에게 정의를!'이라고 적혀있다. 레너드 펠티어는 RATM의 'Freedom' 비디오에 등장하는 인물인데, 그는 미국 인디언들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미국 인디언 운동'(American Indian Movement, AIM) 단체 출신의 인권 운동가로 FBI에 의해 '유도된' 총기 살인 사건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75년이래 현재까지 26년째 복역 중이다(www.freepeltier.org ). 이들에 관한 자료는 RATM의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www.ratm.com/action/index.html)


7시 20분이다. 티켓에 적힌 공연 시작 시간은 7시 반이다. 너무 늦었다. 물론 보통 공연은 조금 늦게 시작되고 오프닝 밴드도 있지만 엄청나게 늘어선 사람들의 줄을 보니 심지어 조금 늦을 것 같다. RATM 정도 되면 오프닝 밴드도 상당히 괜찮은 밴드가 나올 것 같다 ... 순서를 기다려 드디어 공연장 안으로 들어선 것은 8시가 거의 다 되어서이다. 이미 '어떤 그룹'이 공연을 하고 있다. 장내는 꽉 차있다. 한 3000-4000석? 모두들 기대와 흥분으로 공연을 기다리는 모습이 겉에서도 느껴진다. 남녀 비율은 8:2 정도, 95% 이상이 백인, 그것도 연령층이 고등학생 정도에서 많아야 20대다. 물론 30대도 약간은 있을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사진이 대형 스피커에 붙어있다. 공연장 중앙에는 아마 세로 10m, 가로 4m 가량은 되어 보이는 거대한 검은 색 천의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중앙 가운데에는 붉은 별이 그려져 있다. 보다 작은 같은 그림이 이미 설치되어 있는 그들의 드럼 세트에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 여기까지 살펴보던 나는 이 오프닝 밴드의 음악이 실로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나는 멤버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무대에는 모두 5명의 멤버들이 이리저리 펄쩍 뛰며 랩·힙합·덥 계열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데, 리더로 보이는 베이스 주자 및 DJ, 기타 주자가 각 한 명이고, 래퍼 한 명, 그리고 키보드와 랩을 겸하는 멤버가 한 명 있다. 그들이 내는 이 라이브 현장의 소리, 특히 베이스와 프로그램된 퍼커션 소리, 즉 리듬 파트의 사운드는 실로 깜짝 놀랄 만큼 뛰어나다. 관중들의 반응도 물론 아주 뜨겁다. 저게 누구지? ... 그리고 잠시 음악에 귀를 기울이던 나는 익숙한 리듬 파트 연주에서 드디어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그들은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결성된 파키스탄·인도 계열의 좌파 힙합·록 그룹이다. 가사 및 활동은 실로 RATM 못지 않게 '정치적'이다. 이들의 영국에서의 위상은 재일 교포들로 구성되어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계의 정치적 좌파적 그룹을 생각해 보면 될 것이다(모르긴 해도 아마 일본에 실제로 이런 그룹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그룹들을 찾아내 지지해 주자!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에도 억압받는 소수 동남 아시아 계열의 - 어떤 장르이든 - 음악 그룹이 있을 것이다. 이들도 역시 찾아내어 똑같이 지지해 주자!) 역시 좋은 그룹 공연을 오면 좋은 오프닝 밴드 음악을 듣는구나. 그러나 그들의 공연은 8시 15분 경에 끝이 났다. 좀 더 일찍 오지 못한 것이 다시 한 번 아쉬웠다.


공연장에는 담배와 하시시 연기가 자욱하고, 모든 청년들은 기계에 대한 분노 때문에 기대와 흥분으로 몸을 떨고 있다. 그리고 바로 나도 그러하다. 사실 공연장의 시설은 기가 막힐 정도로, 한 숨이 나올 정도로 좋다. 록 공연장이 이렇게 최첨단 최신식 설비와 설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 제국주의 국가 프랑스의 진면목이다. 잠시 후 갑자기 공연장 정면 위쪽에 매달린 소형 영사막에 광고가 방영된다. 내용은 코카콜라! 모두들 일어나 '우우-'하는 야유를 보낸다. 광고가 지나가자 장내에는 한 장의 라이브 앨범이 그리 크지 않은 소리로 플레이된다. 물론 그들이 직접 선택했을 이 라이브는 <From Here To Eternity>였다. 이는 해산 14년 만인 99년 발매된 영국의 좌파 펑크 그룹 클래시(The Clash)의 라이브 앨범이다. 흘러나오는 곡은 'Train In Vain', 'London Calling', 'I Fought The Law' 그리고 'Career Opportunity' 등이다. 장내의 분위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9시가 되자 다시 장내에 불이 꺼지고 무대를 향해 붉고 흰빛이 쏟아진다. 관중들은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크루인 듯이 보이는 두 사람이 가로 3m, 세로 2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성조기의 위쪽 양끝을 나란히 잡고 나타난다. 관중들은 물론 열렬한 야유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은 이 성조기를 스피커 앞에 건다. 거꾸로! 이제 성조기는 왼쪽 위의 별이 아래로 가도록 거꾸로 매달려 있다. 관중들은 가히 광적인 박수와 함성으로 미친 듯이 환호한다. 그리고 그들이 나타났다. 잭 들 라 로차가 마이크를 잡고 '안녕하세요. 로스 앤젤리스 전투를 지지하는 기계에 대한 분노입니다'(Good Evening, Rage against the Machine for the Battle of Los Angeles)라고 외치며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첫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자, 나는 정말 놀랐다. 그 곡은 최근 3집의 첫 곡 'Testify'였다.


그러나 내가 놀란 이유는 그 곡 때문이 아니라, 불이 꺼지고 그들이 곡을 시작하자 그때까지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던 장내의 모든 젊은이들이 일어나 헤드 뱅잉과 환호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깜깜한 어둠 속에, 그리고 붉고 흰빛 속에, 그리고 RATM의 음악 속에 3000-4000명의 젊은이들이 동시에 일어나 모두 똑 같이 하나가 되어 그들의 몸을 던지는 광경을! 나는 그 순간 이 공연이 나를 더 이상 평론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참여자가 되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기쁨과 흥분으로 다리가 덜덜 떨렸다. 이것은 축제, 분노와 투쟁의, 삶과 죽음의 축제다! 이 축제는 정말 천국이자 지옥이다! 이것은 나를 살게 한다! 나는 내 머리, 내 귀로 이 라이브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온 몸으로 이 라이브를 '체험'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바꾼다. 이들의 라이브는 실로 '학교', 그것도 아주 정치적인 학교다. 그리고 나는 이 학교가 아주 마음에 든다. 나는 오늘 저녁 이 학교의 학생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들은 이어 'Guerrilla Radio', 'Born Of A Broken Man' 등 주로 3집의 노래와 1-2집의 대표곡들을 연주했다. 공연 중 잭 들 라 로차가 뛰어다니며 좌우로 돌다가 톰 모렐로와 부딪히면서 둘이 함께 넘어져 관중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관객들은 거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일어서 있고, 남자들은 거의 모두 웃통을 벗어 던졌다. 맥주와 하시시와 음악이 자욱하게 흐른다. 심지어 내 앞쪽에는 한쪽 다리가 부러져 깁스를 하고 온 청년 하나가 의자에 앉아 목발을 치켜들어 흔들며 헤드 뱅잉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영어 못 하기로 소문난 프랑스 청년들이 웬 만한 노래의 후렴 부분은 다 따라서 부르고 있다. 그들의 스테이지 매너는 훌륭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사운드는 가히 '흠잡을 데가 없다', 완벽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엮어내는, 특히 잭 들 라 로차와 톰 모렐로가 만들어내는 정치적 저항의 정서는 가히 빠져들 만한 것이다. 그들은 말미에 14번째 곡으로 'Freedom'을, 그리고 마지막 15번째 곡으로 'Killing In The Name'을 연주했다. 그리고 그들은 사라졌다. 관중들은 열렬히 환호했지만 앵콜곡은 없었다. 10시 15분, 공연 시작 1시간 15분만이었다.


공연장을 빠져 나온 나는 집으로 갈까 하다가 길 건너편의 호프집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가기로 마음먹는다. 호프집 안은 공연장에서 나온 듯한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티셔츠를 입거나 포스터를 손에 든 사람들도 있다. 나는 맥주 한 잔을 시키고 담배를 물고는 생각에 빠진다 ... 일단 앵콜곡이 없었던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 한참을 이리저리 생각해보던 나는 그게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항상 앵콜곡이 있는 다른 공연들 사이에서 오히려 쌈빡하고 깔끔하게 공연을 끝냈다'는 쪽으로 느낌을 정리했다. 공연에 대한 느낌은 항상 한 묶음으로 묶여 함께 나에게 '드는 것'이지 내가 조작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쌈빡하고 즐거운 투쟁의 체험, 연대의 체험, 축제의 체험을 즐거운 마음으로 다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 어, 그리고 또 뭘 생각해봐야 될까 ... 하여튼 혼자 마시는 술은 사람을 빨리 취하게 한다. 겨우 500cc 정도를 마셨을 뿐인데도 무척 피곤하다. 아마도 여행의 피로 등이 겹쳐서 그럴 것이다.


이 곳 프랑스 사람들은 (집에서 혼자 매일 마시는 진짜 알콜 중독자들은 빼고) 술을 절대 많이 마시지 않는다. 한 1-2시간 동안 250cc 짜리 두 잔정도 마시는 게 '끽'이다. 한 자리에서 3잔 이상 마시는 사람은 여기 온 지난 3년 동안 한 명도 못 봤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흔히 - 아니 거의 매일, 매 저녁마다 볼 수 있는 - 길거리에 쓰러져 주정을 하거나 자는 사람도 아직 한 명도 못 봤다(물론 슈퍼마켓이나 역 근처에 상주하는 '거지 아저씨들'은 예외다). 물론 취객들이 싸우는 것도 1년에 한번 정도 구경할까 말까 한 희귀한 구경거리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에는 프랑스 인들의 국민성이 갖는 그들만의 특유한 양식 혹은 이면이 있으므로, 또 이걸 보고 '역시 선진국 사람들은 달라' 등등의 무지한 성급한 판단은 내리지 않는 게 좋다 ... 하여튼 나는 외롭고 피곤했다. 벌써 11시 반이다. 나는 돈을 치르고 문 쪽으로 걸어 나간다.



그런데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게 아닌가! 돌아다보니 내 나이 또래의 웬 백인 청년이다. 첫인상에도 선한 눈동자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저기, 너 혹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공연 갔다 오는 거 아니니? (프랑스어에도 경어가 있지만 실제로 생활해보면 여기 젊은이들은 비슷한 연배로 보이면 초면에도 바로 '너'(tu)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 나라에서는 '시비 거는 것'으로 비춰지겠지만, 여기서는 자식이 부모에게, 심지어는 교회에서 하느님도 'Tu'라고 부르므로 다만 친근한 말투 정도의 어감이 된다) 어, 그래, 맞는데 ... 아, 난 아까부터 여기서 널 보고 있었는데 ... 너도 공연 갔다 온 것 같아서 그냥 너한테 말 걸어보려고 생각했거든. 그래? 바쁘지 않으면 나하고 맥주 한 잔 더 마실래? 어 ... 그러지, 뭐. 너도 혼자 공연 봤니? 응 ... 난 스트라스부르 사는데 이 공연 보러 파리에 왔어. 뭐? 스트라스부르에서? 야, 너 음악 정말 좋아하는구나! 나도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의 광팬이야. 그럴지 알았지, 나도 혼자 공연보고 심심해서 사람구경이나 하고 있었는데 네가 혼자 앉아 있는 게 눈에 뜨이 길래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네가 동양인인데 불어를 못할 수도 있고 또 뭔가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있었지. 야, 그럼 말을 하지! 나도 누구하고 얘기하고 싶어서 죽을 뻔했는데!


그렇다. 이게 (록) 공연 구경 다니는 재미다. 우리는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혹은 받아들이고 찾는 음악이란 때로 말보다 그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넌 프랑스 사람이냐? 응, 난 프랑스 사람이야, 넌? 난 한국 사람이야. 난 스트라스부르에서 공부하는데 ... 사실 친구들하고 록 음악 잡지를 하거든. 난 잡지에 실을 공연 취재 때문에 여기 온 거야. 내가 '유럽 특파원'이거든. 편집인도 겸하고. 그래? 와, 영광이다, 야! 한국이면, 남한이겠지? 당연하지. 북한 사람이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 공연에 오겠니? 넌 한국에 대해서 좀 아는구나. 수도가 서울이던가? 오 예, 맞아. 난 직업 군인이야. 그리고 태권도를 좀 배웠었거든, 그리고 올림픽 할 때도 봤지. 몇 년이었더라 ...응, 88년이었지. 그런데 태권도도 배웠어? 고맙다, 야. 여기서는 유도나 카라테를 더 많이 하는 것 같던데. 유도는 그렇지.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지. 지난 올림픽에서도 무제한급인가 결승에서 일본 선수하고 붙어서 프랑스가 금메달 땄었지? 맞아. 그런데 카라테보다는 태권도가 더 유명해. 어, 그래? 그건 몰랐는데. 이건 내 생각인데, 동양 무술들, 그러니까 태권도 같은 운동에는 우리 서양 사람들한테 부족한 '자기 통제'(ma tre de soi)의 철학이 있는 것 같아서 난 무척 좋아해. 그가 표현한 자기 통제란 아마도 한문으로 '수신'(修身)의 개념의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극단적 개인주의(모든 사람은 자유롭지만 동시에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외롭다)와 히틀러 같은 파시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대중과 역사 속에서 '내'가 사라진다. 그리고 그 대중적 조작의 결과로 나와 다른 '너', 혹은 '내 안의 너'를 사회에서 체계적으로 제거한다)를 경험한 서구인들로서는 무척 매력적인 개념일 수 있을 것이다. 하여튼 말이야, 넌 오늘 공연 어떻게 봤냐? 어휴, 죽였지, 뭐. 정말 좋았지? 정말 좋았어, 환상이었어 ... 특히 마지막의 'Killing In The Name' 부를 때는 통쾌해서 가슴에서 피가 끓더라! 그 노래는 가사가 '과격해서' 판에 그 노래만 가사가 없지? 맞아, 너도 아는구나. 검열에 걸렸나? ... 미국에도 검열이 있나? 잘 모르겠는데 ... 하긴 가사가 그 쪽에서 보면 좀 지나치게 '진솔하긴' 하겠지 ... 하여튼 콘서트는 '죽이게 좋았어, 좆나게 좋았어'(killing good, fucking good)! 거의 내 일생의 최고의 콘서트들 중 하나였어. 하하! 그랬지? 나도 그랬어 ... 야, 근데 너 이름이 뭐냐? 나, 장-이브 드쌩(Jean-Yves Dessaent)이야. 그냥 이브라고 부르면 돼. 난 경이라고 해 ... 겅? 아니, 경. 귕? 야, 발음하기 되기 어렵구나 ... 하하, 너희들한테는 그렇지.


그래서 나는 처음 만나는 외국 친구들한테는 내가 만든 프랑스 이름을 가르쳐 준다. 그럼 그냥, 가브리엘(Gabriel)이라고 불러. 그게 훨씬 낫네! 그래, 그래. 근데 나중에 친해지면 '경'이라고 불러야 된다. 근데 가브리엘은 니 이름의 번역이야? 아니, 아니, 여기 애들이 하도 내 이름을 - 나중에 기억하는 건 고사하고 - 발음을 못해서 아예 하나 만들었지. 내가 피터 게이브리얼(Peter Gabriel)을 엄청 좋아하거든, 그래서 불어 식으로 읽어서 가브리엘이 된 거야. 하하, 그래? 그거 재미있는 생각이네. 근데, 그래도 원래 네 이름이 난 더 좋다. 너 편한 대로 해. 그런데 이브, 넌 무슨 음악 좋아하냐? 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데 ... 음 ... 난 사실 우리 아버지가 핑크 플로이드나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의 엄청난 팬이었거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그런 음악을 들어서 그런지 아직도 그런 음악들이 제일 좋지. 요즘에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이 상당히 좋은 것 같아 ... 그렇지? 프로디지, 나인 인치 네일즈도 좋았지만, 데뷔 초기 시절보다는 못한 느낌이야 ... 벌써 12시 반이다. 이브는 헤어지면서 나에게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어주며 그 밑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적어주었다: "Rage, ils ont la rage everybody transformer. I love you Gabriel"(분노, 그들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분노를 가지고 있다. 사랑한다, 가브리엘).
그리고 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전철을 나와 호텔을 향해 밤거리를 걸으며 오늘 그들이 마지막으로 연주했던 'Killing In The Name'의 가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살인

폭력을 야기하는 사람들 중 몇몇이, 바로 우리를 먼저 공격해오는 그 사람들이야.
폭력을 야기하는 사람들 중 몇몇이, 바로 우리를 먼저 공격해오는 그 사람들이야.

...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살인!

그래, 너 지금 그 사람들이 너한테 시킨 대로 하고 있지.
그래, 너 지금 그 사람들이 너한테 시킨 대로 하고 있지.

죽어서 영웅이 될 수 있는 사람들, 훈장을 달 수 있는 사람들은 오직 선택받은 백인들 뿐이야.
넌 훈장으로 죽은 사람들을 정당화하지, 하지만 그들은 오직 선택받은 백인들일 뿐이야.

...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살인!

그래, 너 지금 그 사람들이 너한테 시킨 대로 하고 있지.
그래, 너 지금 그 사람들이 너한테 시킨 대로 하고 있지.
그래, 너 지금 그 사람들이 너한테 시킨 대로 하고 있지. 야, 넌 지금 조종당하고 있는 거야!
그래, 너 지금 그 사람들이 너한테 시킨 대로 하고 있지. 야, 넌 지금 조종당하고 있는 거야!

일어나! 자! 일어나!

좆까! 난 니가 시키는 대로 안 해!
좆까! 난 니가 시키는 대로 안 해!
좆까! 난 니가 시키는 대로 안 해!
좆까! 난 니가 시키는 대로 안 해!

좆같은 씨팔 놈!








뱀발 - 이 글을 쓰는 오늘은 2001년 2월 15일이다. 이미 공연에 다녀온 지 1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미 우리 나라에서 RATM의 공연이 열렸던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간략한 공연 리뷰만을 실었다. 그리고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창단 멤버로서 9년을 동고동락했던 잭 들 라 로차는 음악적·정치적 견해 차이로 이미 지난 2000년 10월 그룹을 탈퇴했다. 그리고 그룹은 동년 12월 로차가 선곡하고 함께 했던 '커버 앨범' <Renegade>(Epic·Sony)를 발매했다. 같은 디자인의 4가지 다른 색깔 쟈켓으로 발매된 이 앨범에는 MC5, 사이프러스 힐,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물론 밥 딜런, 롤링 스톤즈, 스투지스에서 아프리카 밤바타, EPMD, 심지어는 데보(Devo)의 곡 등이 선곡되어 있으며 히든 트랙으로 두 곡의 라이브가 수록되어 있다. 이 역시 훌륭한 앨범이다. 그리고 1월에는 그들의 99년 라이브를 담은 VHS·DVD <The Battle of Mexico City>를 발매한다.



분노, 기계에 대한 분노. 그들은 아름다웠다. 한 사람의 팬이자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동료'로서, 탈퇴한 잭 들 라 로차와 남아있는 RATM 멤버들 모두의 앞길에 더욱 뛰어난 음악적·정치적 성취가 있기를 바란다.





* 2001년 음악평론가 동료들과 만든 프로그레시브 록음악 잡지 <뮤지컬 박스> 실은 공연 취재기. 원문은 아래.


http://koreanrock.com/wiki.pl?RATM2000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