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4.

끔찍함과 죄책감

지난 수첩을 뒤적이다가 전에 정리해 올리려고 적어둔 메모를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책 제목이 적힌 부분이 찢어져 나가 어느 책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혹은 유럽에서 나온 심리학 관련 번역 서적이었던 것은 확실한데,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나는 이런 우연을 사랑한다. 아래에 옮겨 적어본다.

1.

상대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그가 자기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하는 일은 몹시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가 오랜 세월 동안의 전문적인 수련을 쌓은 의사가 아니라면, 때로 몹시 위험한 일이 되기도 한다.

2.

자기 내면에 의타적이고 고집이 세고 겁먹은 아이가 숨어있는 성인들이 많다. 아주 어린 나이에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받았을 경우 성장이 멈출 수 있는 것이다. 부모가 한 명의 여자와 남자, 즉 하나의 성적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 진정한 성장이 시작된다. 이렇게 과감하게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어른'이 되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

3.

피상적으로 보았을 때 한 사람이 분명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고통스러운 인간관계 혹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빠져 있고 더욱이 그것을 지속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 심층을 들여다 보았을 경우, 그는 분명 그것으로부터 어떤 이익을 얻는다. 이것이 심층 심리학이 탐구하는 바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그러한 관계에의 집착 혹은 지속이 자신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 주고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혹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현실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희망적 예측, 개인적인 소망 혹은 두려움이 아니라, 때로 인간은 끔찍한 진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은 하루이틀에 끝날 것도 아니요, 때로 오랜 시간 혹은 평생이 걸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성숙한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위안을 찾는다면, 오늘과 훗날의 더 큰 고통만을 받게 될 것이다.

4.

기꺼이 죽으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죽음은 우리에게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묻지 않는다. 인간 고유의 한계성, 자기 고유의 소망과 가능성들의 근본적 한계를 인정할 때, 인간은 참다운 내면적 자유를 얻게 된다.

5.

당신이 스스로를 그리고 상대를 놓아준다면, 두 사람 모두는 자유롭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자기 본연의 모습대로 있게 해준다면 말이다. 당신 곁에 그를 붙잡아 두려 하지 않는 것, 혹은 당신의 소망과 결정대로 그가 움직여주기를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는 것, 상대의 모습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 상대를 자기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 상대의 의견과 태도를 바꾸어 보려는 당신의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자유로운 존재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은 영원히 그러한 감정과 태도의 노예가 될 것이다. 상대가 아니라, 당신이 변해야 한다.

6.

상대에 대한 '지나친' 헌신은 때로 상대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부족이다. 때로 그러한 행동의 이면에는 자신이 무가치하며, 근본적으로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그가 행하는 상대에의 지나친 혹은 '완벽한' 헌신은 어린시절 그가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기를 원했던 그러한 사랑의 재현이다. 그는 상대를 위하면서 사실은 자기 어린시절의 무의식적 소망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7.

당신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의 뿌리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당신의 그 죄책감은 언제, 어느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사랑과 분노가 겹쳐지는 곳에서 죄책감이 시작된다. 만약 아이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는 성인이 되어 정당한 죄책감과 강박적인 죄책감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사랑과 분노를 동시에 품고 있는 아이, 그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당신이 행동함으로써 바뀔 수 있다. 당신의 공격성을 글로 적어보라. 그리고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방식으로 당사자에게 차분히 말로 해보라.

8.

일반적으로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큰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남자들은 어린 시절부터는 일반적으로 공격성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더 용인받기 때문일 것이다.

9.

심리치료사 밀튼 에릭손은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갖기에 너무 늦는 때는 결코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인생의 어느 때이든 언제든 자신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다시 살 수가 있다. 인간은 인생의 어느 때이건 상처받은 자신감, 잃어버린 자존감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자존감, 자신감을 구축할 수 있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라.

10.

당신이 어떤 상황, 어떤 곳에 있던 상관없다. 뇌는 인식기관임과 동시에 매일매일 새로이 구축되고 구성되는 사회적 기관, 학습기관이다. 당신의 새로운 행동은 새로운 기억 세포들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생리학적, 생물학적 사실이다. 행동해야 할 때, 그것은 바로 지금이다. 전문가에게 당신의 문제를 털어놓을 진정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한 번밖에 없는 당신의 삶은 당신의 것이다.

11.

아무 말없이 헤어지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헤어지는 데에도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있는 것이다. 상대에게 자신의 이유를 분명히 말로 표현해주지 않는 경우, 그는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고, 회복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마지막 말로 두 사람은 더욱더 큰 고통에 잠시 빠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과거를 잊고 각자의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나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12.

걱정거리, 괴로움이 몰려올 경우, 하루에 10분 혹은 30분 정도라도 자신의 걱정거리를 위한 시간을 따로 내어야 한다. 가능하면 특정한 같은 장소에서 이를 행하는 것이 좋다. 당신의 이불 속, 침대 위, 소파 위, 의자 위, 조용한 산책길, 집 위의 옥상, 떡갈나무 아래에서 당신의 고통과 원한을 괴로움을 두려움을 스스로에게 토로해보라. 억지로 그러한 것들을 억누르고 있는 것보다 스스로의 에너지를 갈아먹는 것은 없다. 걱정을 스스로에게 드러내고 그것이 현실적인 것인지, 망상적인 것인지, 실제로 일어날 것인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해보라.

13.

걱정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글로 써보라. 불완전한 당신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라.


*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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