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25.

캐럴과 앨리스




"그렇게 언니는 눈을 감고 앉아서 자신이 이상한 나라에 와있다는 사실을 얼마쯤 믿게 되었다. 눈을 뜨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단조로운 현실로 뒤바뀐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풀은 그저 바람 때문에 부스럭대고 있을 테고, 웅덩이는 갈대의 흔들림에 그 물결이 일렁일 테고, 덜그럭거리는 찻잔 소리는 양 목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로 바뀔 테고, 여왕의 쇠된 외침은 양치기 소년의 목소리로 바뀔 것이다. 아이의 재채기와 그리펀의 비명과 다른 모든 이상한 소리들은 (언니가 알기로) 분주한 농장의 떠들썩한 소리들로 바뀔 것이다. 멀리서 소 떼가 음메 하고 우는 소리는 가짜 거북의 무거운 흐느낌을 대신할 것이다.
앨리스의 언니는 마지막으로 이 어린 동생이 다음에 커서 어떤 여인이 될지를 상상해 보았다. 몇 년에 걸쳐 성숙한 동생 앨리스가 어린 시절의 순진하고도 사랑스러운 마음을 어떻게 지켜 나갈지, 그리고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모아 놓고 갖가지 이상한 이야기들, 오래전에 꿈속에서 보았던 이상한 나라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어 아이들의 눈을 초롱초롱 빛나게 할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앨리스의 어린 시절과 행복한 여름날을 기억하며 아이들의 순수한 슬픔을 느끼고 아이들의 순수한 즐거움 속에서 기쁨을 찾는 앨리스의 모습을 가만히 그려 보았다."(202-203쪽)

"* 티 없이 해말간 이마를 지닌 아이
티 없이 해말간 이마와
신비로움을 꿈꾸는 눈빛을 지난 아이야!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너와 나
인생의 반이 엇갈린다 해도,
너는 어김없이 사랑 넘치는 미소로
사랑의 선물을, 요정 이야기를 반기겠지.
나는 한동안 너의 태양 같은 얼굴도 보지 못했고
너의 은방울 같은 웃음소리도 듣지 못했어.
이제부터 네 젊은 인생엔
나를 생각할 자리는 없겠지만,
네가 늘 내 요정 이야기에 귀기울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해.


이야기는 여름 해가 타오르던
어느 날에 시작되었지.
소박한 종소리는
우리가 젓던 노의 리듬에 맞추어
여전히 기억 속에서 메아리치고 있는데,
시샘하는 세월이 아무리 잊으라 해도.


슬픈 소식을 담은 무서운 목소리가
슬픔에 젖은 아가씨를,
불편한 침대로 부르기 전에
이리 와서 귀기울이렴!
아이야, 우리는 잠자리에 들며 칭얼대는
나이든 아이일 뿐이란다.


창 밖에는 서리와 매서운 눈바람,
폭풍이 미친 듯이 몰아쳐도
방 안에는 넘치는 어릴 적의 요람이 있지.
마법의 이야기가 너를 사로잡아
넌 사나운 눈보라는 금세 잊게 될 거야.


한숨의 그림자가
우리의 이야기를 방해하려 해도
이제는 행복했던 여름날은 지나가고,
여름날의 영광도 사라졌으니,
슬픔의 숨결이 닿지 못하리
요정 이야기의 즐거움에."










*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루이스 캐럴은 자신이 수학과 교수로 있던 옥스포드의 학장 헨리 조지 리델의 네 살 난 딸 앨리스를 만나 그녀와 그녀의 친구, 친척들과 산으로 들로 배를 타고 길을 걸으며 산책을 한다. 그리고 스물네 살의 캐럴 아저씨는 앨리스가 네 살에서 열두 살이 되는 동안 그녀와 주말이면 이런 산책과 소풍을 다니며 그녀를 위해 그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들려준다. 이렇게 해서 이 아름답고도 놀라우며 수학적이고도 철학적인, 그리고 위대한 두 권의 책이 탄생했다. 이 책들의, 하나는 맨 뒤에, 그리고 하나는 맨 앞에 나오는 이 두 편의 글은 캐럴 아저씨가 이제 소녀가 되는 앨리스 아가씨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임에 틀림없다. 나는 한 어른의 한 인간, 한 어린아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이 이렇게 잔잔하고 아름답고 상상력으로 가득 찬 것을 본 적이 없다. 캐럴과 앨리스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나에게도 캐럴 아저씨가 혹은 앨리스 아가씨가 있었더라면!
** 이 글을 쓰고서도 몇 년이 지난 어느날 나는 우연히 다른 분과 캐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아마도 아동성애자였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런 점이 캐럴의 문학과 글에 대한 나의 느낌을 훼손시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한번은 생각할 꺼리를 가져다 주었다. 캐럴이 늘 아동들의 사진만을 찍었고 그것도 늘 당시로서는 조금은 에로틱화 된 방식으로 찍었다는 사실, 그리고 앨리스의 가족이 다른 이유에서였기는 하지만 후에 캐럴과 앨리스의 만남을 금지시켰다는 사실 등등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사실 정말 캐럴이 앨리스에 대하여, 혹은 어린 소녀들에 대하여 어떤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는 오늘의 우리,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나로서는 캐럴이 전혀 그런 감정을 품고 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좀 순진한 생각이리라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럴이 앨리스를 위하여 남긴 글들의 가치는 그와는 별개로 참으로 놀라운 캐럴 문학만의 독특한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것은 다음 위키피디아를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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