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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14.

프랑스 역사 - 연표/도표

 
 
 
 
 
 
 
 
 
 
 
 
 
 
 
 
 
 
 
 
 
 
 
 
 
 
 
 
 
 
 
 
 
 
 



 
* ‘프랑스’의 역사
서력 기원전 200만 년. 초기 선사 형태의 사회 형성.
기원전 3만 년. 구석기 시대.
기원전 1만 년. 빙하기 종결.
기원전 6000년. 신석기 시대.
기원전 1800년. 금속기 시대.
기원전 700년. 켈트 족(BC 2000년경부터 BC 1세기경까지 유럽 대부분의 지역에 살던 인도유럽어를 사용하던 종족의 일파), 갈리아(지금의 프랑스-알프스 내륙 쪽)에 출현(Galia인=켈트Celt족=골Gaule족).
기원전 125 ~ 기원전 121년. 로마, 남부 골족(gaulois)을 식민화.
기원전 58 ~ 기원전 51년. 로마, 골족을 정복. 좁은 의미의 골족은 켈트족의 여러 부족 중 한 부족으로 갈리아 지방에 살던 부족.
* 로마령 갈리아(기원전 50년 ~ 기원후 486년).
177년. 리옹에서 최초의 그리스도교도 순교.
313년. 서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동로마의 리키니우스 황제가 밀라노에서 회동, 그리스도교를 공인(밀라노 칙령).
392년. 로마 테오도시우스황제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지정.
406년. 주요 야만족들의 약탈과 정착.
476년.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의해 서로마 제국 몰락(‘중세’의 시작,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몰락까지). 프랑크 족(les Francs, Franci, gens Francorum). 3세기 민족 대이동기에 라인 강 하류 동 북부 지역[갈리아]에서 부족연합 국가를 형성한 게르만족의 일파로, 그 국가가 프랑크 왕국.
중세 초기(Early Middle Ages): 476-1000 (약 5백년)
중세 성기(High Middle Ages): 1000-1300 (약 3백년)
중세 후기(Late Middle Ages): 1300-1453 (약 150년)
* 메로빙거 왕조(Les Mérovingiens, 481년 ~ 751년)
481년. 클로비스 등극(511년까지 재위). 서로마를 대체할 프랑크 족 메로빙거 왕조의 게르만 왕국.
511년. 프랑크 족의 수도로 파리가 세워짐.
732년. 아랍 세력, 푸아티에에서 참패.
* 카롤링거 왕조(Les Carolingiens, 751년 ~ 987년)
751년. 카롤링거 왕조, 권력 쟁취.
771년. 샤를마뉴(Charlemagne, 카롤루스 마그누스 Carolus Magnus, 재위 768-814), 단독 통치하다.
800년. 샤를마뉴, 교황 레오 3세에게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에 대립하는 신성(神聖) 로마 제국(Sacrum Romanum Imperium) 황제직을 수여 받음. 카롤링거 르네상스, 라틴화, 가톨릭화(Corpus Christianum). 십일조(십일조). 인구 750~900만.
* 서프랑크 왕국(843년 ~ 987년)
843년. 베르됭 조약(Traité de Verdun). 샤를마뉴 대제의 아들 루트비히 경건왕(Louis le Pieux)의 세 아들이 카롤링거 제국을 세 왕국(동 프랑크 왕국, 중 프랑크 왕국, 서프랑크 왕국)으로 분할, 이 조약은 오늘날 서유럽에 존재하는 세 근대국가(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모태가 됨. 9세기 바이킹족의 침략(700척의 대함선과 3-4만의 군사), 10세기 이래 노르만으로 동화, 흡수(노르망디).
* 카페 왕조(Les Capétiens, 987년 ~ 1328년)
987년. 위그 카페의 카페 왕조. 인구 약 500~600만. 10-11세기 유럽 사회는 여러 면에서 전사(싸우는 자)와 농민(일하는 자)이라는 두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그러나 10세기 이래 성직자(기도하는 자) 계급이 대두, 기본적으로는 1789년 대혁명까지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누림.성기중세()
1095년. 제1차 십자군이 교황 우르바누스 2세(1088-1099년 재위)에 의해 결성(대략 13세기 말까지 유지).
1150년. 파리 대학 설립(1088년, 볼로냐 대학). 도시의 성장. 고딕양식. 12세기 르네상스. 라틴어와 프랑스어. 단테, “처음으로 자신의 말로 시를 쓴 것은 랑그 도크(langue d'oc, 오크 말. 중세 프랑스 남부에서 쓴 로망스 말. 지금의 프로방스 말)이다.” 트루바두르(troubadour)가 노래한 사랑의 서정시는 이전 성모 마리아 중심의 가톨릭 질서와 상치되는 현세적 쾌락을 노래함. 그러나 ‘궁정식’ 사랑으로 발전해 간 서정시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남성중심주의의 새로운 표현에 불과.
1159년. '제1차 백년 전쟁'이 일어나다(1299년의 몽트뢰유 전투까지).
1214년. 부빈 전투. 프랑스 필립 2세(필립 오귀스트)가 잉글랜드의 존 왕,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4세, 플랑드르백작 페르난두, 불로뉴백작 르노의 연합군에게 승리. 잉글랜드-프랑스전쟁(1202-1214)의 종식(‘프랑스’의 실제적 탄생?). 이로써 잉글랜드는 대륙 내의 땅을 완전히 상실하고, 권위를 잃은 존은 이후 대헌장(Magna Carta)에 서명하게 된다. * 조르주 뒤비, 『부빈의 일요일』(1973), 동문선, 2002. 전쟁의 사법적 기능. 가령 떠돌이 용병 등과 같은 특정 무리의 계절에 따르는 모험ㆍ약탈 행위ㆍ전리품 수확행태인 ‘게르’(guerre)와 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목적을 선언하고 확증하며, 모두를 위해 논쟁의 여지없는 명백한 방식으로 어느 진영이 정의로운지를 드러내도록 압박을 가하는 것이자 궁극적으로 신의 심판 앞에 모든 것을 맡기는 ‘신명(神命)재판’으로서의 바타유(bataille). * David Bowie, “You can’t say no to the beauty and the beast.”
1299년. 몽트뢰유 전투로 ‘제1차 백년전쟁’ 종결.
1302년. 미남왕 필립 4세, 삼부회(états généraux, 성직자, 귀족, 도시의 대표자들) 소집.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역효과만을 남기고 끝나자 지방분권적 봉건제에 만족하지 않는 세속 국가, 중앙집권화를 도모. 중앙 및 지방 삼부회는 반교권주의적 성직자에 대한 조세를 추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그 충격으로 사망, 1305년 프랑스 출신의 교황 선출.
1309년. 교황청이 아비뇽에 세워지다. 이후 왕권은 교황권을 자신의 아래에 두다.
1314년 성당기사단 지도자 자크 뒤 몰레 화형. 전사, 농민, 성직자의 3분법은 다양한 ‘제3신분’에 의해 균열(1268년 파리에만 100여 개의 길드가 조직).
* 발루아 왕조(Maison capétienne de Valois, 1328년 ~ 1589년)
1328년. 필리프 6세, 발루아 왕조를 세우며 등극. 인구 1800~2100만(영국, 300~350만, 이탈리아 반도 800~1000만).
1337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이 일어나다(1453년까지).
1346년. 영국군, 크레시 전투에서 프랑스를 격퇴.
1347년. 영국 칼레를 손에 넣다.
1348년. 유럽 지역에 창궐한 흑사병으로 지역에 따라 인구가 1/3~1/2 규모로 감소.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희생자는 총 7천5백만 명에서 2억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한 초기 4년간의 희생자는 통상 인구의 45% ~ 50% 로 추산되고 있으나 이는 총괄적인 수준의 기록이다. 실제 유럽에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사망률을 보였는데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남부 등에서는 지역에 따라 인구의 80%가 희생되는 경우도 빈번하였다. 한편 북부 독일, 잉글랜드 등지에서 초기 4년 동안의 사망률은 20% 정도였다."(위키). 1349년 스트라스부르 유대인 2000명 대학살.
1356년. 영국군 푸아티에에서 프랑스를 격퇴. 1358년. 북 프랑스의 자크리 봉기. 1360년. 영국-프랑스의 브레티니 조약. 1415년. 영국군 아쟁쿠르 전투에서 프랑스에 대승. 1431년. 잔 다르크, 화형(1405년, 크리스틴 드 피장, 『부인들의 도시의 책Le Livre de la Cité des Dames』).
1438년. 부르주의 국사 조칙. 교황권에 대한 군주의 더욱 막대한 지배력을 보장받음.
1453년. 카스티용 전투, 백년전쟁 종식.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 330~1453. 콘스탄티누스 1세가 아나톨리아의 니코메데이아에서 보스포로스 해협의 비잔티온(콘스탄티노폴리스, 혹은 ‘새로운 로마’)으로 324년 천도]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오스만투르크 이슬람 군에게 함락(476년 서로마제국의 몰락부터 1453년까지를 ‘중세’라 부른다). ‘유럽’이라는 자의식의 탄생.
1470년. 최초의 인쇄기가 파리에 등장(1450년 독일 마인츠에서 최초의 인쇄).
1477년. 부르고뉴 공작 대머리 샤를, 사망.
1482년. 아라스 조약으로, 부르군트 공국 프랑스에 통합.
1494년. 이탈리아 침략전쟁 발발(1559년까지). 1515년. 마리냐노에서 프랑스군 승리. 1516년. 볼로냐 화친 조약. 프랑스 교회권에 대한 국왕의 권리가 확고해짐.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 참패. 프랑수아 1세는 포로가 됨.
1517년 아우구스티노회 신부 마르틴 루터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의 정문에 격문 <95개조 반박문>(Disputatio pro declaratione virtutis indulgentiarum). 종교개혁.
1530년. 프랑수아 1세, 콜레주 드 프랑스 창설. 라블레, 『가르강튀아』ㆍ『팡타그뤼엘』.
1534년. 격문 사건으로 개신교도 탄압. 자크 카르티에, 캐나다 탐험.
1536년. 스위스인 장 칼뱅, 『그리스도교 강요綱要』(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39년. 프랑수아 1세, 빌레르 코트레 칙령, 프랑스 어가 모든 합법적이고 공식 문서상의 언어로 규정됨. 1549년 플레야드파(七星詩派, Pléiade) 시인 조아생 뒤 벨레(Joachim du Bellay)의 『프랑스어의 옹호와 선양』(La Défense et illustration de la langue française).
1550년, 파리 인구 25만.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조약(The Peace of Augsburg, Augsburger Religionsfrieden). 유럽의 군주들이 가톨릭과 루터교 중의 하나를 선택할 자유를 획득하게 됨.
1559년. 카토 캉지브레 조약으로 이탈리아 전쟁 종결.
1562년. 프랑스 종교전쟁 발발(1598년까지 모두 8번의 종교전쟁).
1572년. 8월 18일,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주요 프로테스탄트 인사들이 파리에서 살해됨. 전국적으로 5,000~30,000명 살해된 것으로 추정.
1588년. 파리의 가톨릭 연맹들이 바리케이드를 치며 항거.
* 부르봉 왕조(Maison capétienne de Bourbon, 1589년 ~ 1792년)
1589년. 앙리 4세(Henri IV) 등극(1610년까지 재위), 부르봉 왕조.
1594년. 남서부에서 크로캉 농민 봉기가 발생하다(1595년까지).
1598년. 앙리 4세 낭트 칙령(L’Édit de Nantes)으로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 이외에도 칼뱅주의 개신교 교파인 위그노(Les Huguenots, 프랑스의 개신교도)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나, 이는 1685년 10월 퐁텐블로 칙령으로 폐지되고 위그노들은 다시 박해를 받음. ‘마녀사냥’, 15세기 말에서 17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에서 10만 가량이 처형(4/5는 여성).
1618년.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 대항하는 ‘30년 전쟁’(La Guerre de Trente Ans, 1618-1648, 기본적으로 로마 가톨릭교회를 따르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따르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 ‘최후의 종교전쟁’, ‘최초의 국제전쟁’).
1624년. 리슐리외, 주요 대신으로 국왕참사회에 들어가다(1642년까지).
1630년. 11월 10일(주르네 드 뒤프), 리슐리외의 권력이 한층 확고해짐.
1631년. 최초의 국민 신문, <<가제트>>(La Gazette)가 발행(1556년, Notizie scritte; 1605년, Relation aller Fürnemmen und gedenckwürdigen Historien). 어용(御用)신문.
1635년. 루이 13세의 재상 리슐리외 추기경(Cardinal de Richelieu)이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설립. 169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사전』(Le Dictionnaire de l'Académie française dedié au Roy) 1판 발행.
1637년, 데카르트,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9년. 노르망디의 농민봉기 ‘맨발(pied nu)의 난.’
1643년. 로크루아에서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승리. 루이 14세(Louis XIV) 등극(1715년까지 재위). 재상 추기경 마자랭(Cardinal Mazarin, 1661년까지). 절대주의(absolutisme). 문필의 시대. 코르네유, 라신, 몰리에르, 라 로슈푸코, 라 브뤼에르, 라 퐁텐 등.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Traités de Westphalie)으로 ‘30년 전쟁’ 종결. 프롱드의 난(1652년까지). 유럽의 군주들이 가톨릭, 루터교, 칼뱅교를 자유롭게 선택하게 됨. 근현대 유럽의 대체적 국경선이 확정됨. 로마제국의 꿈과 그리스도교 보편주의의 종말. ‘국가이성’(raison d’Etat). ‘유럽의 균형 또는 천칭’(trutina sive bilanx Europae), 경쟁하는 근대 ‘국가’(status)들 사이의 균형. 1659년. 피레네 조약으로 스페인과 종지부를 찍다.
1661년. 중상주의자 콜베르(Jean-Baptiste Colbert) 재무대신 임명(1683년까지). 1667년. 왕위계승전쟁(~1668년까지). 1672년. 네덜란드 전쟁 발발(1678년까지). 1685년. 퐁텐블로 칙령으로 낭트 칙령 폐지.
1687년. 뉴튼,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7세기 과학혁명.
1689년.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전쟁 발발(1697년까지). 1700년. 프랑스 인구 2150만. 1701년.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1713년까지). 1702년. 칼뱅 교 농민들에 의해서 세벤에서 카미자르 전쟁 발발(1704년까지).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 종결.
1715년. 루이 14세 사망. 루이 15세 등극, 파리 고등법원의 결정으로 루이 14세의 정적 오를레앙 공작의 섭정(1723년까지).
1740년.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1748년까지).
1752년. 디드로와 달랑베르, 『백과전서』(百科全書, Encyclopédie) 1권 간행. 1772년 본문책 17권, 도판 11권 완간. 총 7만 1818개의 항목과 2885개의 도판. 기고자는 디드로, 달랑베르 외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케네, 튀르고, 돌바크, 마르몽텔, 루이 드 조쿠르 등 143인이다. 문맹률 남성 50%, 여성 75%.
1756년. 영국과 7년 전쟁(1763년까지). 프랑스는 엄청난 손실과 고통을 겪음.
1760년대 이후 케네, 미라보, 튀르고 등 중농주의(자연지배주의, physiocratie)가 장악.
1762년. 장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Du contrat social)
● 프랑스대혁명
1774년, 루이 16세(Louis XVI) 등극.
1775년. 곡물 품귀 현상으로 밀가루 전쟁 발발.
1778년. 미국 독립전쟁(1783년까지). 프랑스는 미국의 편에 섬. 자유의 여신상.
1783년. 베르사유 조약으로 약간의 식민지를 얻다.
1788년. 삼부회의(三部會議, États généraux, 귀족, 가톨릭 고위 성직자, 평민의 대표자들)가 1789년 5월의 모임을 위해 소집. 프랑스 인구 2860만. 부르주아지는 1700년 70만에서 230만으로 증가. 남성의 1/2, 여성의 3/4이 여전히 문맹.
1789년. 6월 20일 테니스 코트 서약, 국민의회는 새로운 헌법의 기초가 마련될 때까지 해산하지 않기로 선서. 7월 14일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하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됨. 가을 농민 혁명, 8월 4일 봉건제도 폐지(앙시앙 레짐, ancien régime). 8월 26일, 인권선언. “왕은 더 이상 신의 은총에 의거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의지에 입각해 통치하게 되었다. 주권은 이제 왕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주(州) 제도가 폐지되고 83개의 도(道)로 나뉨(2015년, 95개).
1791년. 성직자 기본법. 가톨릭, 서명파/비서명파로 나뉨.
1792년. 오스트리아와 전쟁. 루이 16세 폐위. 9월 21일 성인남자 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된 제헌의회가 제1공화정 선포. 9월 학살, 파리의 감옥에서 죄수들이 야간에 깡패들의 습격을 받고 살해됨.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 처형. “선량했던 그[루이 16세]는 프랑스 사회를 개혁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성격이 우유부단하고 나약하여 의지와 추진력이 부족하였고 국왕으로서의 적성이 결여되어, 이후 닥쳐온 비운의 최대 원인이 되었다. 당시 귀족층의 사치스러운 생활 또한 심각하였다. 튀르고를 등용하여 구제도의 모순 해결, 재정위기를 타개하도록 하였으나, 궁정 및 특권 신분의 저항으로 실패하였다. 이어 네케르를 기용하였으나, 아메리카 독립혁명에 개입하여 국비를 낭비함으로써 재정은 더욱 곤란해졌다. 이후 칼론, 브리엔을 기용하였으나, 재정은 악화될 뿐 개혁은 특권신분의 반항으로 실현할 수가 없었다. 1788년 삼부회 소집을 결정, 재차 네케르를 기용하였다. 1789년 6월 삼부회가 국민의회(국민공회, Convention nationale)로 성장하여 입헌왕정에의 움직임이 높아지자 군대에 의해 의회를 탄압코자 책동하였다가 이것이 도리어 바스티유 공격을 초래하였고, 시민의 봉기에 굴복하였다. 이후 소위 ‘1789년 체제’에 입각한 입헌 왕정에의 움직임에 대하여 자신의 무정견과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중심으로 하는 궁정의 압력으로 신체제에 저항하면서도 일보일보 양보하는 한편 미라보, 라파예트, 바르나브 등과 손을 잡고 권력의 회복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791년 6월 20일 일가와 함께 국외로 도망하려고 하였으나 실패, 입헌 왕정을 기조로 한 1791년의 헌법의 승인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국민공회는 왕을 퇴위시키고 공화국을 선포했으며, 루이 16세는 국민공회(國民公會)의 투표결과 반역자로 규정되어 1793년 1월 단두대(斷頭臺)의 이슬로 사라졌다.”(위키)
1793-1794년. ‘공포 정치’(la Terreur). 로베스피에르, 마라, 당통 등 급진 자코뱅파(les Jacobins, Les Montagnards). 정치적 중앙집권화. 자코뱅은 당시 국민 공회의 왼쪽 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좌익’(la Gauche)의 어원이 되었다. 온건 지롱드. 각기 자유ㆍ평등ㆍ박애를 상징하는 파랑ㆍ하양ㆍ빨강의 ‘3색기’(La Tricolore)를 국기로 채택. 자코뱅에 장악한 급진 공안위원회에 의해 파리에서만 3,000명,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처형. 5십만 명 투옥, 13-15만 명 해외망명. 혁명력(曆), 미터법. 로베스피에르의 최고 존재ㆍ이성 숭배교(Culte de la Raison et de l'Être suprême).
1794년. 고등사범학교(ENS, École Normale Supérieure) 창설. 7월 27일(혁명력 2년 테르미도르 9일) 부르주아 반란, 로베스피에르 실각(28일 단두대에서 처형).
1795년. 5인 총재(總裁)정부(Directoire exécutif), 새로운 입헌 체제 성립(1799년까지). 라 마르세예즈를 국가로 채택.
1799년. 11월 2일(혁명력 8년 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의 쿠데타. 총재 정부를 해체하고 집정(執政)정부(=통령[統領]정부, Consulat, 1804년까지). 교회 토지 매각을 포함한 혁명적 토지개혁.
1801년. 교황과 나폴레옹이 가톨릭교회를 재정립하기로 하는 내용의 ‘정교 협약’(Concorda)에 조인. 프랑스 인구 2734만.
1802년.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훈장 창설.
1803년. 프랑스 은행 창설.
* 프랑스 제1제정(Le Premier Empire, 1804년 ~ 1814년)
1804년. 나폴레옹의 황제 즉위, 제1 제정. 나폴레옹 법전(민법전), 1810년 나폴레옹 형법전. 자크루이 다비드.
1808년. 바칼로레아(Baccalauréat) 시작. 스페인 반도 전쟁 발발.
1812년. 나폴레옹, 모스크바 원정 패배. 50만의 군사를 잃음. 1814년 말, 나폴레옹 폐위, 엘바 섬으로 귀양. 1815년, 자유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귀환한 나폴레옹, 6월 18일 벨기에 워털루 패전으로 '백일천하'가 끝남.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귀양. 그러나 소유권과 시민권의 기틀을 마련한 나폴레옹 법전, 1789년 이래 새로이 설립된 새로운 사법제도, 세금체계, 프랑스은행 등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 부르봉 왕정복고(1814년 ~ 1830년)
1815년. 루이 16세의 남동생 루이 18세 등극, 부르봉 왕조 복귀.
1824년. 역시 이들의 동생인 샤를10세가 등극, 랭스 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함으로써 자신의 시대착오적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고, 1825년 신성모독법 등 가톨릭에 기반한 보수 반동적 왕정체제로의 회귀를 추진하여 반발을 삼. 대략 1820년대를 기점으로 낭만주의자들의 주축이 우파에서 정치적 좌파로 옮겨 감(들라크루아, 위고, 스탕달, 네르발).
* 7월 왕정(Monarchie de Juillet, 1830년 ~ 1848년)
1830년. 7월 혁명(Révolution de Juillet), ‘영광의 3일’(7월 27~29일). 샤를 10세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의 결과 (부르봉 왕가의 후손이자 오를레앙의 대공이던) 루이 필립(Louis-Philippe Ier, Louis-Philippe d'Orléans)‘시민왕’(‘폭동왕’)으로 등극, 오를레앙 왕조(Maison d'Orléans) 성립. 온건 자유주의자, 중도적 군주제. 프랑스 국민의 왕국(Royaume des Français)을 국명으로 선포. 외젠 들라크루아의 <7월 28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프랑스 낭만주의의 좌파화 완성. 프랑스의 알제리 침략, 서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타이티 식민지화.
1831년 리옹에서는 무정부주의의 흑기가, 1830-1840년대에는 국제노동운동의 상징인 적기가 휘날리기 시작했다.
1832년 6월 봉기. 파리에서 7월 왕정을 전복시키기 위한 공화파의 봉기.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1862)의 주된 시대적 배경.
1833년, 모든 코뮌에 초등학교를, 모든 도에 사범학교를 의무적으로 설립하는 교육부장관 프랑수아 기조(François Guizot, 1787-1874) 법령. “전형적인 부르주아 지배 체제에서 귀족제의 폐지와 세습제의 폐지 등을 실행함에 따라 선거권자는 전대의 복고 부르봉 왕가에 비해 두 배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전 국민의 0.6% 밖에 되지 않았다. 노동자는 사실상 전혀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프랑스의 산업혁명은 이들을 억압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이후 보통선거와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져 [1848년] 2월 혁명의 계기가 되어 몰락했다.”(위키)
* 프랑스 제2공화정(1848년 ~ 1852년)
1848년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이 물러나고 임시 정부를 구성. 6월 항쟁, 급진파들에 대한 탄압.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 “프랑스가 감기에 걸리면 유럽은 재채기를 한다.” 유럽에 연쇄적인 폭동과 혁명을 불러일으킴. 이제 정적은 앙시앙 레짐의 귀족이 아니라, ‘절대 부르주아지’가 되었다. 신분투쟁이 계급투쟁으로 변화. 7월, 제2공화정이 선포. 최초의 남성 보통 선거제 도입으로 유권자는 25만에서 대부분이 농민인 900만으로 증가.
1851년 12월. 나폴레옹 1세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4년 단임). 루이 보나파르트는 유효표 700만 표 중 570만 표를 얻음. ‘농민황제’, ‘꼬마 나폴레옹’(위고).
* 프랑스 제2제정(1852년 ~ 1870년)
1852년. 대통령이었던 루이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제2제정을 수립, 국민투표로 추인 후, 스스로를 ‘나폴레옹 3세’ 황제로 추대. 1853년 나폴레옹 3세 오스만 남작(Baron Haussmann) 남작을 센(Seine) 지사로 임명(1870년까지). 파리 정비 사업.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도시외곽으로의 재배치. [1854년, 교황청 성모 마리아의 무염시태(無染始胎, Conception Immaculée de Marie) 설, 1864년 금서목록(syllabus of errors), 1870년 교황무오설(無誤說) 채택 등 시대착오적 행동으로 오히려 권위를 잃음].
1850년대 이래 전보, 이후 전화가 사용됨. 1852년 세계 최초의 백화점 오 봉 마르쉐(au bon marché) 파리에 개점.
1855년. 최초의 파리 만국박람회(Exposition universelle) 개최(이후 파리에서 1867, 1879, 1889, 1900년에 개최. 최초의 만국박람회는 1851년 런던).
1857년.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재판.
1860년대. 제1차 인터내셔널에 프랑스는 최대의 대표단을 파견. 프랑스 전역 코뮌의 1/4, 특히 남서부는 아직 프랑스어를 쓰지 않음. 여성 대학입학 자격 부여.
1862년.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1864년. 노동자 파업 합법화.
1867년. 교육부장관 빅토르 뒤뤼(Victor Duruy, 1811-1894) 여자 초등학교 설립(1866년 초등학교 졸업장 제도 창설. 1868년 대학공개교육 강좌, 고등교육 기관 장학금 제도 확립, 1869년 여성 중등학교 창설 계획이 가톨릭의 반대로 무산).
1868년. 1830년 5만부에 불과하던 파리지역 신문의 발행부수가 70만부에 달함.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
1870년. 프로이센ㆍ프랑스(普佛) 전쟁 발발.
* 프랑스 제3공화정(1870년 ~ 1940년)
1871년. 프랑스 보불전쟁에 패배하여 알자스와 로렌을 독일에게 빼앗김. 50억 프랑의 전쟁배상금. 패전 직후 파리 코뮌(La Commune de Paris, 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또는 프랑스 제4차 혁명. 일주일 동안 25,000~30,000 즉결 심판 사형, 40,000명 투옥. 제3공화정 선포. 1914년까지 해외 식민지를 10배로 늘림(776만 제곱킬로미터, 식민지인구 5천만). * 1871년 제3공화정의 수립에서 1914년 1차 대전의 발발 전까지를 벨 에포크(좋았던 시절, belle époque)라 부른다.
1872년. 국민징병제 실시. 사병 중 1/10만이 문맹.
1879년. 라 마르세예즈, 국가로 지정. 1880년 바스티유의 날(7월 14일) 국경일 선포. 1881-1886년. 초등 6년 의무교육제(기조/뒤뤼). 교사들이 신부들을 대체하는 공화주의의 상징이 됨. 남성의 1/4, 여성의 1/3이 문맹.
1881년. 쥘 페리(Jules Ferry, 1832-1893. 1870년, <교육의 불평등에 관한 담화>)가 주도한 집회ㆍ출판의 자유.
1884년. 결사의 자유.
1883년. 프랑스 인도차이나 지역 침략, 식민지화.
1884년. 노동조합 합법화. 1885년. 졸라, 루공 마카르 총서 13권 『제르미날』(Germinal).
1889년. 혁명 100주년 및 파리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에펠탑을 세움.
1894년. 드레퓌스 사건. 1898년, 에밀 졸라가 <나는 탄핵한다!>(J’accuse!)를 발표.
1896년.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이 제1회 근대올림픽을 아테네에서 개최. 노동총연맹(CGT, Confédération Générale du Travail) 1회 모임, 사회당 계열.
1898년. 드레퓌스 사건의 와중에서 극우 민족주의 가톨릭 악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 창립. 샤를르 모라스(Charles Maurras)의 모라시슴(maurassisme).
1900년. 여성과 아동 10시간 노동법. 파리 만국박람회에 맞추어 파리 지하철(런던, 1863년) 개통. 드레퓌스 공격에 앞장 선 성모승천수도회 운영 교육 기관 해체.
1903년. 투르 드 프랑스(tour de france) 시작.
1904년. 정ㆍ교(政ㆍ敎) 분리원칙에 의해 종교기관의 교육 금지. 초등학교의 1/3, 중등학교의 1/4가 폐교. 장 조레스가 좌익 신문 <위마니테>(L’Humanité) 창간.
1905년. 탄광 8시간 교대제. 영국ㆍ프랑스 화친 조약에 조인하다.
1906년. 주 1회 휴무제.
1911년. 프랑스 인구 3960만.
1914년. 여성 대학생 비율, 전체의 10%. 8시간 노동제가 정착(19세기 말까지만 해도 1일 12시간 노동이 평균). 1898년 37만 5천 대이던 자전거의 수가 350만 대로 증가. 영화의 대중화. 6월 31일 명망 있는 사회주의 정치가 장 조레스 암살.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 발발(1918년까지, 프랑스는 130만의 병사, 20만 명의 민간인 사망, 300만의 부상자). 9월 4~14일, 마른 전투.
1916년. 베르됭 전투.
1917년. 러시아 혁명. 마르셀 뒤샹의 <샘>.
1918-1919년. 스페인 인플루엔자 독감으로 16만 6천 명 사망.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알자스와 로렌 수복. 90개 도, 3,900만 인구, 외국인 250만(성인의 10%). 전국기업가연맹 창립.
1920년. 12월 프랑스공산당(PCF, Parti communiste français), 국제 공산주의 조직인 국제노동자(인터내셔널) 프랑스지부(Section française de l'Internationale ouvrière, SFIO)로 창립. 공산당과 다른 길을 걸은 SFIO 소수파는 유대인 정치가 레옹 블룸(Léon Blum)의 지도하에 현 집권당인 ‘사회당’의 기반이 됨
1924년. 독일 재건을 위한 도스 플랜. 1920년대 이래 라디오 대중화. 앙드레 브르통ㆍ트리스탕 차라, <초현실주의 선언>. 자동기술법(automatisme). 폴 엘뤼아르, 루이 아라공, 로베스 데스노스, 필립 수포, 파블로 피카소, 앙드레 마송, 만 레이, 루이스 브뉘엘,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장 아르프, 르네 마그리트. 대략 노동자 중에서도 1/10만이 가톨릭 신앙을 유지.
1929년. 10월 24일 대공황(大恐慌, Great Depression). 마지노 선 수립(전통적 진지전 위주). 1930년대 이래 축음기 대중화. 프랑스 은행과 금융을 지배하는 프랑스 은행의 200대 예금주 ‘200가족’에 대한 증오.
1933년. 독일 히틀러의 민족사회당 정권 장악.
1934년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 귀화자 알렉상드르 스타비스키(Stavisky) 사건. 악시옹 프랑세즈 회원 6만.
1936년. 선거에서 좌파연합은 358석을 얻어 222석에 그친 레옹 블룸의 사회당을 제치고 원내 1당으로 부상.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및 좌익 그룹을 통합한 레옹 블룸의 인민 전선(Le Front populaire) 정권(1936년-1938년). 6월 7일의 ‘마티뇽 협약’으로 10%의 임금인상, 주당 40시간 노동제, 노사분쟁 중재ㆍ조정기구의 설치, 2주간의 유급휴가 등을 보장. 스페인내전(1936-1939년).
1937년 여성지 <마리 클레르> 창간. 사회당ㆍ공산당 계열의 노조가 연합, 조합원 400만.
1938년. 달라디에 수상,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인정하는 ‘뮌헨 협정’ 서명. 사르트르, 『구토』.
1939년. 고용주들의 요구로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주당 48시간으로 재조정. 나치-소비에트 밀약. 9월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1945년까지). 공산당 불법화.
* 프랑스국(1940년 ~ 1944년), 비시 프랑스
1940년. 5월, 독일의 프랑스 침공. 탱크를 앞세운 기동전, 전격전. 6월, 1차 대전의 전쟁영웅 페탱원수가 니치와 협력한 ‘자유지역’에 프랑스 국가, 비시(Vichy) 프랑스가 성립(1944년 나치가 패망하며 실각). ‘노동ㆍ가족ㆍ조국’(Travail, Famille, Patrie)의 ‘민족혁명’. “순수한 마음을 가져라, 남자다운 사람이 되라, 훌륭한 프랑스인이 되어라.” 나치의 괴뢰정부, 친가톨릭, 반유대, 반동성애, 반집시. 인플레이션 2배. 이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의 활동. 6월 18일 샤를 드 골의 BBC 연설, ‘자유 프랑스’(France Libre) 운동.
1941년. 히틀러 러시아 침공. 공산주의자들의 레지스탕스 합류. ‘75,000당원이 총살된 당’(75,000 fusillés)
* 임시정부(1944년 ~ 1946년)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1944년 8월 25일, 파리 해방, 임시정부 수립. 여성참정권 부여.
* 프랑스 제4공화정(1946년 ~ 1958년)
1946년. 제4공화정 수립.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베트남군에 의해 거의 궤멸, 제네바 휴전 협정을 맺으면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1954년) 종식. 알제리 민족 해방 전선(FLN, 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이 이끄는 알제리 독립전쟁 발발.
1957년. 로마 조약으로 유럽 공동 시장이 건설되다.
* 프랑스 제5공화국(1958년 ~ 현재)
1959년. 알제리 전쟁의 교착 상태로 헌정 위기가 초래, 제5공화정 수립. 2차 대전의 전쟁영웅 샤를 드 골(Charles de Gaulle)이 공화국의 18대 대통령으로 취임(1969년 사임). 7년 연임제.
1962년. 에비앙 협정으로 알제리 독립 승인(알제리의 정식 독립은 1964년).
1968년. ‘5월 혁명’,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
1969년. 우파 프랑스국민연합 조르주 퐁피두(Georges Pompidou) 19대 대통령.
1974년. 우파 독립공화당/공화당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Valéry Giscard d'Estaing) 20대 대통령
1981년. 좌파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 21대 대통령으로 당선(1988년 재선).
1982년. 사형제 폐지.
1994년. 영국-프랑스 해저 터널 공식 개통.
1995년. 우파 공화국연합/대중운동연합의 자크 시락(Jacques Chirac) 22대 대통령. 2002년 5년 연임제로 개정, 재선.
2007년. 우파 대중운동연합(UMP, 현 공화당)의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 23대 대통령으로 당선.
2011년. 마린 르펜(Marine Le Pen) 프랑스 민족전선(Front National, FN) 대표
2012년. 좌파 프랑스 사회당(Parti Socialiste, PS)의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24대 대통령으로 당선.
2014년. 민족전선 유럽의회 선거에서 24.9%로 프랑스 내 제1당.
2015년. 샤를리 엡도 테러. 그리스 사태. 시리아 난민 사태. 인구 6700만(독일 8010만). 파리 IS 테러. 12월 지방선거 1차 투표에서 민족전선 30.6%로 제1당, 공화당 27%, 사회당 22.7%.
* 콜린 존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1994)』, 시공사, 2001.
* 프랑스 대통령 목록(위키)
http://ko.wikipedia.org/wiki/%ED%94%84%EB%9E%91%EC%8A%A4%EC%9D%98_%EB%8C%80%ED%86%B5%EB%A0%B9_%EB%AA%A9%EB%A1%9D
* 볼프강 슈말레, <<유럽의 재발견. 신화와 정체성으로 보는 유럽의 역사>>(2000), 박용희 옮김, 을유문화사, 2006.
* 프레데리크 들루슈 편, <<개정판 새 유럽의 역사. 유럽 공동의 역사 교과서>>(1992), 윤승준 올김, 까치, 2000.
* 유럽정치연구회 편, <<유럽정치>>, 백산서당, 2004.
* 김계동, <<현대 유럽정치론. 정치의 통합과 통합의 정치>>,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 정종화 편, <<유럽연합 국가들의 교육제도>>, 고려대학교 EU연구센터 유럽 연구시리즈 V, 법문사, 1997.
* 데이비드 하비, <<모더니티의 수도>>(2003), 김병화 옮김, 생각의 나무, 2005.
Liste des volumes de la collection Trente journées qui ont fait la France 1973
1. 25 décembre... : le baptême de Clovis ou les incertitudes de l'histoire. de Georges Tessier.
2. ... Octobre 732: La bataille de Poitiers. de Jean Henri Roy et Jean Deviosse
3. 25 décembre 800 : Le Couronnement impérial de Charlemagne. de Robert Folz.
4. 3 juillet 987 : L'avènement d'Hugues Capet. de Laurent Theis.
5. 27 juillet 1214 : Le Dimanche de Bouvines. de Georges Duby.
6. 16 mars 1244 : Le Bûcher de Montségur. de Zoé Oldenbourg.
7. 7 septembre 1303: L'attentat d'Anagni. du Duc Antoine de Lévis-Mirepoix
8. 31 juillet 1358 : Le Meurtre d'Étienne Marcel. de Jacques d'Avout.
9. 8 mai 1429 : La Libération d'Orléans. de Régine Pernoud.
10. 5 janvier 1477 : La Mort de Charles le Téméraire. de Pierre Frederix.
11. 24 février 1525 : Le Désastre de Pavie. de Jean Giono.
12. 24 août 1572 : Le 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 de Philippe Erlanger.
13. 14 mai 1610 : L'Assassinat d'Henri IV. de Roland Mousnier.
14. 10 novembre 1630 : La Journée des Dupes. de Georges Mongrédien.
15. 17 juillet 1720 : La banqueroute de Law. par Edgar Faure.
16. 12 mai 1776 : La disgrâce de Turgot. de Edgar Faure.
17. 14 juillet 1789 : La Prise de la Bastille. par Jacques Godechot.
18. 10 août 1792 : La chute de la royauté. de Marcel Reinhard.
19. 27 juillet 1794: La conjuration du 9 thermidor. de Gérard Walter.
20. 9 novembre 1799 : le Dix-huit Brumaire. de Albert Ollivier.
21. 2 décembre 1804 : le sacre de Napoléon. de José Cabanis.
22. 18 juin 1815 : Waterloo. par Robert Margerit.
23. 27, 28 et 29 juillet 1830 : La Révolution de Juillet de Jean-Louis Bory.
24. 24 février 1848 : La première résurrection de la République. de Henri Guillemin.
25. 2 décembre 1851: Le coup d'état du deux décembre (volume à paraître) volume dont l'auteur devait être François Mitterrand
26. 26 mars 1871 : la proclamation de la Commune. de Henri Lefebvre.
27. 9 septembre 1914 : La victoire de la Marne. de Henry Contamine.
28. 11 novembre 1918 : L'Armistice de Rethondes. de Pierre Renouvin.
29. 10 juillet 1940 : La Fin de la IIIe République de Emmanuel Berl.
30. 25 août 1944 : De la chute à la libération de Paris. d'Emmanuel d'Astier de la Vigerie.
Liste des volumes de la collection Les journées qui ont fait la France 2005
1. 27 septembre -52 : Alésia, par Jean-Louis Brunaux.
2. 25 décembre 800 : Le couronnement impérial de Charlemagne, par Robert Folz.
3. 27 juillet 1214 : Le Dimanche de Bouvines, par Georges Duby.
4. 7 septembre 1303 : Le Pape et le roi. Anagni, par Guillaume de Thieulloy.
5. 8 mai 1429 : La Libération d'Orléans, par Régine Pernoud.
6. 24 août 1572 : Le massacre de la Saint-Barthélemy, par Arlette Jouanna.
7. 1er août 1589 : Un régicide au nom de Dieu. L'assassinat d'Henri III, par Nicolas Le Roux.
8. 14 mai 1610 : L'assassinat d'Henri IV, par Roland Mousnier.
9. 1er septembre 1715 : La mort de Louis XIV. Apogée et crépuscule de la royauté, par Joël Cornette
10. 21 juin 1791 : Varennes. La mort de la royauté, par Mona Ozouf.
11. 9 novembre 1799 : Le Dix-huit Brumaire : L'épilogue de la Révolution française, par Patrice Gueniffey.
12. 2 décembre 1804 : Le Sacre de Napoléon, par José Cabanis.
13. 21 février 1916 : Verdun, par Paul Jankowski
14. 11 novembre 1918 : L'Armistice de Rethondes, par Pierre Renouvin.
15. 16 juin 1940 : Le Naufrage, par Éric Roussel.
16. 13 mai 1958 : L'agonie de la IVe République, par Michel Winock.
https://fr.wikipedia.org/wiki/Trente_journ%C3%A9es_qui_ont_fait_la_France
Trente Journées qui ont fait la France est une collection de livres d'histoire de France lancée par l'éditeur Gallimard dans les années 1960, avec pour objectif de mettre en avant, dans chaque ouvrage, un temps fort de la construction de l'identité nationale. Pour ce faire, il est fait appel, non seulement à des historiens universitaires, mais aussi à des gens de lettres ayant une appétence pour leurs sujets. Jean Giono rédige ainsi le volume sur la bataille de Pavie. Quelques volumes font autorité sur leurs questions et marquent durablement les esprits et l'historiographie, comme Le dimanche de Bouvines de Georges Duby. Il faut reconnaitre que la collection fait la part belle aux époques médiévale et moderne.
En 2005, le même éditeur commence la publication d'une collection similaire, Les journées qui ont fait la France, dans laquelle sont repris une partie des titres de la première collection, mais qui offre aussi des nouveautés en introduisant de nouvelles dates ou en substituant de nouveaux auteurs aux anciens.

 

 

2012. 7. 28.

유럽의 운명 - 중국인과 그리스도교인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니체전집 14)>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정현
       

도덕의 계보

* 제1논문 : ‘선과 악’, ‘좋음과 나쁨’
12. 유럽인의 왜소화와 평균화는 우리의 최대 위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모습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좀 더 위대해지려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더욱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좀 더 빈약한 것, 좀 더 선량한 것, 좀 더 영리하고 안락한 것, 좀 더 평범하고 무관심한 것, 좀 더 중국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 인간은 의심의 여지없이 ‘더 좋게’ 된다 ...... 여기에 바로 유럽의 운명이 있다 - 인간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우리는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 인간에 대한 희망, 아니 인간에 대한 의지도 잃어버렸다. 이제 인간의 모습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 이것이 허무주의가 아니라면, 오늘날 무엇이 허무주의란 말인가? ... 우리는 인간에게 지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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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니체전집 7)>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미기
       

475. 유럽인과 여러 국가의 파멸 - [...] 동양적인 구름층이 유럽 위에 무겁게 덮여 있었던 중세의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가혹한 개인적인 압박 하에서도 계몽과 정신적 독립의 깃발을 고수하고 동양에 맞서 유럽을 방언한 것은 유대의 자유사상가, 학자 그리고 의사들이었다. 좀더 자연적이고 합리적이며 적어도 비신화적인 세계 해석이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과 지금 우리를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문화에 의한 계몽과 연결하는 문화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에 신세진 것이 적지 않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서방을 동양화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다고 한다면, 유대민족은 근본적으로 서구를 다시 서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양화하는 것이란 특정한 의미에서는 유럽의 과제와 역사를 그리스적인 것을 계승하는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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