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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30.

조르주 뒤비, <중세의 결혼 - 기사, 여성 그리고 사제>





 
 
 
 




Le chevalier, la femme et le prêtre : le mariage dans la France féodale
Paris, Hachette, 1981





 





 
조르주 뒤비
Georges Duby (1919–1996)
 
 
 
 




2013. 3. 20.

passion -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

 
 
 
 
 
Martin Scorsese, 1990
 
 
 
 
 
 
 
 
 



 
 
 
 
 
 
full album
 
 
 
 

1."The Feeling Begins" -- 4:00

2."Gethsemane" -- 00:26

3."Of These, Hope" -- 3:55

4."Lazarus Raised" -- 1:26

5."Of These, Hope - Reprise" -- 2:44

6."In Doubt" -- 1:33

7."A Different Drum" -- 4:40

8."Zaar" -- 4:53

9."Troubled" -- 2:55

10."Open" -- 3:27

11."Before Night Falls" -- 2:18

12."With This Love" -- 3:40

13."Sandstorm" -- 3:02

14."Stigmata" -- 2:28

15."Passion" -- 7:39

16."With This Love (Choir)" -- 3:20

17."Wall of Breath" -- 2:29

18."The Promise of Shadows" -- 2:13

19."Disturbed" -- 3:35

20."It Is Accomplished" -- 2:55

21."Bread and Wine" -- 2:21
 
 
 
 
 
 
 
 
 

2012. 11. 27.

프란치스꼬의 여행과 꿈


 
 

 
 

머레이 버도, <<프란치스꼬의 여행과 꿈>>, 홍윤숙 옮김, 성바오로출판사, 1981.
 
 
 
 
 
 
 
 
프란치스꼬는 새로운 그의 마음이 거둔 최초의 승리를 다시 생각해 본다.
 
 
프란치스꼬에게 있어서 나환자는 언제나 무서운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존재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아씨시가 가까운 길에서 예수의 영(靈)의 작용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취했던 것이다. 이전의 그였더라면 보기만 하여도 구역질을 했을 정도의 나환자에게 스스로 손을 내밀어 그 상처를 만졌던 것이다. 처음에 그는 무릎의 힘이 빠져버리는 듯해서 얼마쯤 떨어져 조심스럽게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나환자에게 가까이 다가설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살 썩는 냄새가 강렬하게 오감(五感)을 찌르고 마치 눈이나 귀로 균이 침입해 들어올 것처럼 느꼈다. 아무래도 그런 일은 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면서도 이제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어진 그는 기쁨의 눈물까지 흘리며 눈앞의 병자에게로 와락 달려들었다. 떨면서 그를 안고 그 목에 입을 맞추었다. 그때 비로소 걸을 수 있게 되었던 그날과 똑같은 행복감과 자신감이 마음속에서 솟구쳤다. 병자를 팔에 안은 채 침착하게 곳곳이 몸을 일으켰을 때 진정으로 자기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더욱 강하게 상대방을 껴안고 싶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처럼 생각되었다. 더욱이 지금 겨우 손에 잡은 그 자유를 잃어버리는 일이 아깝게 생각되어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놓고 병자에게 미소지었다. 그의 미소에 대답하는 듯한 상대방의 반짝이는 눈을 보자 프란치스꼬는 분명히 자기가 베푼 것 이상의 것을 받았음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프란치스꼬는 나환자의 눈이 아름다운 것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26-27).
 
 
*** 
 
 
이름이 없는 삶
 
 
아씨시의 성벽 위로 도마뱀이 기어오르고 있었다. 도마뱀은 갈색의 돌 위에 갈짓자 모양의 그림을 그리면서 재빠른 몸놀림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마을 지붕들의 붉은 색과 분홍색을 배경으로 재빠르게 가고 있는 도마뱀의 녹색 몸뚱이 때문에 벽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비좁은 돌벽 틈으로 바쁘게 들락거리는 도마뱀의 모습에서 프란치스꼬는 자기 자신을 보는 듯해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도마뱀은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공간 속에서 다른 일 따윈 생각할 여유도 없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나날의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지금 프란치스꼬의 마음을 특별히 사로잡은 것은 도마뱀의 움직이었다. 그것은 하늘에다 쓴 글씨처럼 씌어진 다음 순간에는 금새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 작은 움직임 뒤에 남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나도 저 도마뱀처럼 살고 싶다'고 프란치스꼬는 생각했다. 하늘에 씌어진 글씨처럼 몹시 서운하겠지만 서명도 무엇도 남기지 않는 것이 되고 싶다. 움직임, 바로 그것이 한 편의 시(詩)와 같은, 도마뱀이 달리는 모습을 닮은 이름도 없는 삶을 살고 싶다…(91-92)
 
 
 
***
 
 
 
프란치스꼬는 자연 가운데서 어쩌면 비가 제일 좋은 선생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134).
 
 
 
***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인간은 도대체 얼만큼의 고통이나 불쾌함을 참아내고 있는 것일까(137).
 
 
***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이란 것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일 이 없는 사람들, 프란치스코는 일생 동안에 그런 사람들을 수없이 보아왔다. 소년 시절, 아직 아버지 집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형제들 가운데에서조차도 내면의 여행을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안다. 그런 사람들은 감수성이 둔하게 보이므로 이네 그것을 드려낸다. 자신의 외면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내면을 향해서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 확실히 감수성이 모자란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대응책을 써야 할까? 무엇보다 슬프게 생각되는 것은 마음속 깊이 파고 들어가 자신의 핵(核)인 정적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항상 근심이나 걱정으로 괴로움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정적 속에서 비로소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참다운 만남을 알게 된다.그러므로 충분히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자신의 모습 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한정된 시야 속에서 자기의 일생이나 장래에 대해서 고민한다. 나중엔 죽은 후의 일까지 걱정하여 다른 사람의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을 뭔가 남겨두려고 바둥댄다. 이런 사람들의 눈에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자신의 모습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생애의 나날의 짧음과 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두려워하며, 필경 모든 사람에게서 잊혀지는 날이 온다는 것을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프란치스코는 어느날 스바시오 산위에 섰다. 눈앞에 아씨시에서 스뽈레또에 이르는 골짜기의 전모가 펼쳐져 있었다. 숨이 막힐 듯한 아름다운 전경이었다. 그러나 얼핏 발 밑을 보았을 때 거기에 자그마한 노란 수선화가 피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홀연 그의 마음은 이 작은 꽃의 섬세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산의 대기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기리며 피는 꽃의 아름다움! 잠시 동안에 저버리는 생명이긴 하지만 거기에는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될만한 아름다운 삶이 있었다. 그 꽃은 살아있는 동안에 해야할 일에 대해서도, 후세에 남기고 갈 유산에 대해서도 무엇하나 고민하지 않았다. 생명의 짧음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다만 단순하게 거기서 꽃을 피우고 있을뿐이었다.
 
그렇다면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인간은 존재 그자체로서 영광의 증거가 되어야 할 의무를 꽃의 몇배나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 하나의 생명을 낳지 못하더라도 다만 그 사람이 존재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영광은 충분히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 진실-참으로 마음을 해방 시킬 수 있는 진실-을 알기 위해선 자신의 내면 깊이 내려가서 하느님과 만난다는 체험이 필요하다.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받아들여 주신다는 체험이 있음으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자기를 사랑하여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스바시오 산의 은둔처에서 프란치스코의가 체험한 신비였다. 이렇게 험한 산 위에서는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스러웠다. 거기서는 온갖 사물이 그냥 존재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보다 더 잘 일해서 존재 이유를 획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는다. 다만 내부의 생명의 리듬에 따라서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쳐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 발밑에 피어 있는 이 꽃만 하더라도 그렇다. 프란치스꼬가 자기보다 키가 크다고 해서 원망하지도 않으며, 자신은 일생동안 뿌리를 내린 이 장소에서 움직일수 없는데 프란치스꼬는 자유로이 걸어다닐 수 있다고 토라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어째서 본래의 자기가 아닌 것이 되려고 안달을 하며, 그 일에 얼마만큼 성공했는가를 척도로 하여 자신의 가치를 평가하려고 할까? 프란치스꼬는 모든 사람들이 내면을 향해 사는 사람이 되어 줄 것을 원했다. 안으로 향해 갔을때 비로소발밑에 피는 노란 수선화에도, 자신의 참모습에도 눈이 떠질것이다(155-157).




* 위의 책 쪽수는 내가 읽은 1981년 판, 위의 사진은 알라딘에 실린 2010년 판.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0157568



 

2012. 7. 28.

유럽의 운명 - 중국인과 그리스도교인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니체전집 14)>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정현
       

도덕의 계보

* 제1논문 : ‘선과 악’, ‘좋음과 나쁨’
12. 유럽인의 왜소화와 평균화는 우리의 최대 위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이 모습이 우리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좀 더 위대해지려는 그 어떤 것도 보지 못한다. 우리는 더욱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며, 좀 더 빈약한 것, 좀 더 선량한 것, 좀 더 영리하고 안락한 것, 좀 더 평범하고 무관심한 것, 좀 더 중국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되어가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 인간은 의심의 여지없이 ‘더 좋게’ 된다 ...... 여기에 바로 유럽의 운명이 있다 - 인간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우리는 또한 인간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 인간에 대한 희망, 아니 인간에 대한 의지도 잃어버렸다. 이제 인간의 모습은 우리를 지치게 만든다 - 이것이 허무주의가 아니라면, 오늘날 무엇이 허무주의란 말인가? ... 우리는 인간에게 지쳐 있다 ......

- 376~37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니체전집 7)>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미기
       

475. 유럽인과 여러 국가의 파멸 - [...] 동양적인 구름층이 유럽 위에 무겁게 덮여 있었던 중세의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가혹한 개인적인 압박 하에서도 계몽과 정신적 독립의 깃발을 고수하고 동양에 맞서 유럽을 방언한 것은 유대의 자유사상가, 학자 그리고 의사들이었다. 좀더 자연적이고 합리적이며 적어도 비신화적인 세계 해석이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과 지금 우리를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문화에 의한 계몽과 연결하는 문화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에 신세진 것이 적지 않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서방을 동양화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다고 한다면, 유대민족은 근본적으로 서구를 다시 서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양화하는 것이란 특정한 의미에서는 유럽의 과제와 역사를 그리스적인 것을 계승하는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 382







올림피아드, 이교도의 축제

 







<고대올림픽> - 양병우

       
올림픽 경기는 기원전 776년에 창설되어 기원후 393년에 종말을 고하기까지 1168년의 역사를 겪었다(147).



* 에필로그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다. 그리하여 기독교의 오랜 박해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아니 그 최후의 승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10년 뒤 로마 제국의 단독 지배를 건 결전에서 리키니우스는 고대의 신들에게 의지하고, 콘스탄티누스는 그리스도의 머리 글자를 그린 깃발 아래 싸웠다. 그 승리는 정치적인 동시에 종교적인 것이었다.


신들이 죽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짧은 치세(361-363년) 동안에 '신들의 부흥'을 기도한 율리아누스 황제의 노력도 헛된 것이었다. 그가 죽게 되자 "갈리리 사람아, 당신이 이겼다"고 말했다지만, 실은 "태양신이여, 당신은 나를 버리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고대의 신은 그를 도울 힘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379년 황제로 추대된 테오도시우스 1세에 의해 최후의 일격이 가해졌다. 카톨릭의 세례를 받은 그는 381년에 신들에게 희생을 바치거나 그것으로 점치는 것을 금지하였다. 신전에 참배하는 것을 금지하지는 않았으나, 그때부터 신전의 파괴와 약탈이 시작되었다. 기본은 <<로마제국쇠망사>>에 "로마의 모든 속주에서 광신자의 무리들이 제멋대로 마구 평화로운 주민들을 공격하였다. 그리하여 고대의 가장 아름다운 건조물들의 폐허가 아직도 야만인들이 파괴한 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야만인들만이 그와 같이 힘든 파괴를 할 시간과 성미를 가진다"고 개탄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최후의 날이 다가왔다. 제 293회 경기가 열린 393년에 테오도시우스는 올림피아의 제전을 금하였다. 그리고 426년에는 동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모든 신전의 파괴를 명령하고, 올림피아에도 파괴와 약탈의 손이 미쳤다. 그리하여 페이디아스의 걸작인 제우스 신상의 머리를 멀리 수도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천 년의,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올림픽 경기가 그냥 사라지고 만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라질 리가 없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다시 금령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5세기 중엽까지 명맥을 유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래 농민의 제식에서 나온 그 경기는 그때 다시 그들의 제식으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소원인 풍작을 위해 끈질기게 지속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177~179


***


1988년 지식산업사(발행인 김경희)에서 나온 정가 2500원의 이 책을 몇 년 전에던가 1500원에 구입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첫장을 넘기니 내가 살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다음과 같은 헌사가 실려 있었다 ...

"박세직 위원장 혜감 - 김경희 증"



영혼, 육체의 감옥

 





<감시와 처벌> - 미셸 푸코 / 오생근



"영혼은 육체의 감옥이다."(62)




***




 
피타고라스 혹은 플라톤, 구약 혹은 예수 이래 '서양'을 구성한 문명 도식이었던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말을 뒤집은 푸코의 결정적 한 마디.

2012. 7. 27.

죄책감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니체전집 14)> -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김정현




최근, 강의 준비를 위해 니체의 책을 다시 읽었다. 니체의 입장은 타인에 대한 동정과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니체가 그가 그런 말을 하게 된 동기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타인에 대한 동정 혹은 보다 광범위하게는 이타심이 결국 사회 자체, 다수 대중의 유지를 위한 이익의 도구이고, 바로 그런 체계 아래서 '정신적으로 뛰어난 이들'이 희생당하며, 니체의 입장에서 보면 '가치가 없는 무리들'만이 이익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책감 역시 인간 통제의 도구이고, 저 고대 유대-그리스도교의 후예들인 권력자들이 인민을 보다 효과적으로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통제의 도구, 발명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나와 남들에게 내가 실제로 고통을 주었을 경우, 그저 죄책감만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렇게 죄책감만을 느끼는 행위 자체가 더욱 더 교묘한 자기 합리화의 도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니체의 도덕에 관한 가장 커다란 공헌은 우리가 그것을 죄책감이라 부르던 혹은 양심이라 부르던 여하튼 그 어떤 것을 느끼게 된 것이 그저 내가 받은 무비판적이고 비철학적인 전통적 관습의 추종임을 밝히고, 오늘 내가 내게 주어진 도덕적 감정들, 이론들, 주장들을 새롭게 검토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혹은 그렇게 느껴야 한다고 내가 어릴 적부터 주입된, 그 도덕 혹은 이른바 '도덕적 감정'이 참으로 도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가, 곧 참으로 인간적인 것인가를 오늘 내가 남에게 기댐이 없이 스스로 묻고 또 대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가 반대하는 것은 전통에 대한 혹은 도덕 감정에 대한 무비판적인 맹종 혹은 성실성이지, 성실성 자체가 아니다.

달리 말해, 니체가 비판하는 것은 성실성이지만, 그거은 모든 성실성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주어진 무비판적인 성실성에 대한 비판이지, 자기 자신의 느낌과 생각에 충실한 정직한 성실성이 아니다.

니체의 도덕은 차라리 성실이라기보다는 자기를 속이지 않고 이 세계를 모두 받아들이는 그러한 지적 정직성, 자기 정직성이다.

니체는 그렇다면 우리에게 타인을 동정하지 말 것이며, 따라서 죄를 짓고도 곧 타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도 부끄러운 줄도 미안한 줄도 모르고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는 당당한 범죄자, 악인이 되라고 말하는 것일까?

물론 니체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다면 니체의 말대로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는 니체와 생각이 다르다. 그의 관점주의와 도덕 비판은 십분 공감하지만, 내게는 우리가 느끼는 이 죄책감을 바라보는 니체의 태도란 주의깊게 검토된 후 받아들여져야만 할 어떤 것으로 보인다.

니체가 뭐라고 얘기했던간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왕을 죽이고 모두가 자신의 왕이 된 오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아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그 죄책감은 누구를 위해 어떻게 생긴 것이고, 어떻게 기능하는 것일까?

혹시 나는 그렇다면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남에게 부당한 상처와 고통을 주고도 그냥 나 몰라라 해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타인에게 알게 모르게 혹은 어떠한 이유로든 결국 커다란 혹은 작은 고통과 상처를 주었다면, 나는 - 기존과 같이 그저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을 학대하는 그러한 방식으로가 아닌 - 새로운 건강한 방식으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으며,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라는 말은 여하한 이유로든 내가 타인에게 고통을 주었으며 그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라는 말이다.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기 역시 그저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니체의 물음대로, 나는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오늘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야 할까?

우선 나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내가 고통을 준 상대는 내가 오늘 그에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랄까? 나의 어떤 행동이 그를 덜 아프게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에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 최종적 결정은 물로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만 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 해답은 나 혼자서가 아니라, 그와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 말을 귀기울여 듣고,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무익한 자학적인 죄책감을 느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죄책감을 바라보는 일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니체의 말은 - 물론, 니체를 공부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글자 그대로, 죄책감도 없이 뻔뻔하게 살고 남을 착취하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 또 다른 한편으로 의타적이고 유아기적인 자학적 죄책감이 아닌 네가 스스로 듣고 말하고 판단하는 성숙한 해결책을 찾으라는 명령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는 말은 죄책감 없이 남에게 고통을 주라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와는 달리 내가 한 일이 - 본의던 아니던, 알고 했던 모르고 했던 - 결코 잘한 일이 아님을, 아니 명백히 잘못된 일임을 분명히 깨닫고 알고,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에 대한 진심어린 사죄를 행하고 그에 대해 겸허히 용서를 구하며, 이제 그런 일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나타나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 잘못된 행동의 인정, 그에 따른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당신 행동의 진실성 여부는 - 당신 자신이 아니라 - 당신에게 고통받은 자가 느끼고 알 것이며, 그러한 진심이 당신이 고통을 준 사람에게 마음으로 전달되기 전까지 당신은 당신의 진심을 몸과 마음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러나 니체 이후의 진정한 문제는 이 '진실' 혹은 '진심'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다만 오직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특정한 해석 곧 관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이른바 '진심'이라는 개념은 다만 시시각각 변하는 나와 당신과 이 '생성'의 변화하는 세계를 '존재'의 이름 아래 묶어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변화하는 나의 마음과 너와 세계를 다양한 관점을 통해- 늘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성을 성실히 유지하면서, 그리고 우리가 결코 '전체'를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면서 - '전체적으로' 곧 '균형잡힌 방식으로' 바라보는 일이다(그리고 <<중용>>의 '신독'이 바로 이러한 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죄책감을 왜 느끼고 있는가? 도대체 나는 왜 어떻게 해서 오늘 나를 짓누르는 이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는가? 그리하여, 결정적으로, 나는 이 죄책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내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실, 내가 타인에게 준 고통으로 인하여 오늘의 내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밀양>>에서처럼, 나에게 고통받은 이에 대한 사죄도 없이, 내가 나를 구원해야 하니 내가 나 스스로를 먼저 용서해야만 하는가?

나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나 자신을 물론 용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내가 내가 일으킨 고통에 대한 분명한 인정과 적절한 사과의 행위 이후에 구해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다. 나를 구원하고 용서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이 세상에 나 자신이되, 그렇다고 나의 잘못에 대한 용서와 구원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내가 스스로 나에게 내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며, 그가 결정해야 할 것을 내가 대신 결정해서도 안 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의 말을 듣는 것이며,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그리고 오직 그때에만 나를 나의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용서를 구하거나 혹은 구원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될 것이다.

죄책감 혹은 자기 학대는 당신이 타인에게 준 고통을 경감시키는 적절한 방법도, 건강한 방법도 아니다.

당신은 빛을 향해서도 어둠을 향해서도 두 눈을 똑 바로 뜨고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구원, 깨달음




<영혼의 자서전. 2>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안정효



       
"니체가 나에게 준 상처들은 깊고 신성해서, 베르그송의 신비주의적 위안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았다. 잠깐 아물기는 했지만 상처는 곧 다시 터져 피가 났으니, 젊었을 적에 내가 바라던 바는 치료가 아니라 상처였기 때문이다."(458)


"나중에, 훨씬 뒤에, 나는 절벽의 언저리에서 꿋꿋하게 서서 교만람의 기미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심연을 내려다보았다."(459)


"그들은 꽃 피는 나무 밑에서 얼마 동안 가만히 앉아 침묵을 지켰고, 붓다는 천천히 자비롭게 사랑하는 제자의 머를 쓰다듬었다. <구원이란 모든 구세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 그는 잠깐 잠잠했지만, 나무에서 떨어진 꽃송이를 손가락에 끼고 비틀며 말했다. <인류를 구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자가 구세주이니라.>"(484)


"엣날에 40년 동안이나 고행의 수도를 하고도 아직 신에 다다르지 못했던 위대한 성자가 살았다. 무엇인가 도중에서 그를 가로막았다. 40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는 깨달았다. 그것은 마실 물을 담으면 식혀 주기 때문에 그가 굉장히 좋아하던 작은 항아리였다. 그는 항아리를 깨뜨리고 당장 신과 하나가 되었다. / 내 경우 작은 항아리란 자그마하고 뿌리치기 어려운 젊은 여자의 육체임을 알았다."(499~500)


"<구원을 받게 되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낡은 설명은 힘이 빠져서 인간의 지적 체계를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을 위한 새로운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대마다 나름대로의 <외침>이 따로 마련되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외침을 듣고 그것에 따라 노력하는 인간은 행복하다. 오직 그만이 구원을 받는다."(577~578)



"언젠가 러시아의 경종학자(耕種學者)가 이스트라티와 나를 아스트라한 부근의 사막으로 안내했다. 그는 팔을 벌리고 가없는 모래밭을 의기양양하게 포옹했다. <나에게는 일꾼이 수천 명이나 됩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뿌리가 길어서 빗물과 흙을 놓아주지 않는 그런 종류의 풀을 심어요. 몇 년만 지나면 사막을 몽땅 과수원이 될 것입니다.> 그의 눈이 빛났다. <봐요! 마을과, 과수원과, 물이 어디에서나 다 보이지 않아요?> <어디 말이에요?> 이스트라가 놀라서 물었다. <어디 말이에요? 난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경종학자는 미소를 지었다. <몇 년 지나면 보일 겁니다.> 선서를 하듯 지팡이를 모래밭에 박으며 그가 말했다.


이제 나는 그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같이 항해한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갖게 될 황폐한 땅을 둘러보니 내 눈에는 사람과, 과수원과, 물이 풍족한 광경이 선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미래의 성당에서 울리는 종과, 운동장에서 뛰놀며 웃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고 ... 내 앞에는 아몬드나무 꽃이 피었으니, 손을 뻗으면 만발한 가지를 하나 꺽을 수도 있으리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믿음으로써 우리들은 그것을 창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란 우리들이 충분히 갈구하지 않았으며, 비존재의 음산한 문턱을 지나 전진하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들의 피를 쏟아 붓지 못한 무엇이다."(60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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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모든 깨달음들은 다 '남의' 깨달음들이다.

나의 절망과 고독과 일상과 시시함에서 우러나오는, 나의 깨달음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