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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 8.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초고]

 
 
 
 
 

개인의 성 정체성이라는 정치적 문제 - 미셸 푸코(1926-1984)의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





‘성의 역사’ 시리즈는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으나 푸코의 사망으로 3권까지만 출간되었다. 1976년 출간된 성의 역사 시리즈 1권 『앎의 의지』의 뒤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나머지 다섯 권의 리스트가 실려 있다. 2권 『살과 육체』, 3권 『어린이 십자군』, 4권 『여자, 어머니, 히스테리 환자』, 5권 『성도착자』, 6권 『인구와 인종』. 그리고 『앎의 의지』의 본문에서 푸코는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 위해 『진리의 권력』이라는 책을 내겠다고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발간된 것은 푸코가 사망하던 해인 1984년 발간된 2, 3권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뿐이며, 이마저도 원래의 예고와는 전혀 다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기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다루고 있다. 1권과 2, 3권의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적 격차가 있으며, 이 시기 동안 성의 역사 시리즈는 물론 어떤 책도 발간되지 않았다. 이 8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의 역사’에 관련된 몇 가지 논점들




우선 몇 가지 기초적 사실의 확인과, 그에 이어지는, 기본적 논점의 확립을 통해, 부정적으로는 대중의 오해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 긍정적으로 논의의 초점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다. 첫 번째로 연구자들 사이에는 푸코의 이 ‘침묵’이 단절인가 연속인가? 라는 문제제기가 있어왔다. 하지만 이 8년이라는 ‘침묵’의 시기 동안 푸코는 단지 저서를 내놓지 않았을 뿐, 각종 논문, 강연, 세미나 그리고 콜레주 프랑스 강의 등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더욱 더 활발히 글들을 발표했다. 두 번째로, 실제로 발간된 ‘성의 역사’ 1~3권 중 1976년에 발표된 1권과 1984년 발간된 2, 3권의 관계설정이라는 문제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는 연구자들 사이에 크게 보아 단절을 강조하는 학자들과 연속성을 강조하는 학자들로 나뉘어져 왔으나, 이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단절도 연속도 아닌 ‘포괄’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후 간단히 논의하도록 하자.



 
 
 
 
앎의 의지 - 섹슈얼리티라는 권력 장치
 
 
 
다음으로 푸코의 사유 내에서 『앎의 의지』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이 있다. 동성애자였던 푸코는 대략 1980년대 초에 이르러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이후 자신이 사망하기 전까지 다양한 형태로 자신의 사유를 정리하고자 시도한다. 1980년 이후의 인터뷰에서 푸코는 자신의 사유를 지식, 권력, 윤리라는 세 가지 영역을 고고학과 계보학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으로 조명한 것으로 요약한다. 이는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시기를 낳는다. 우선 1960년대에 걸쳐있는 ‘지식의 고고학’ 시기가 있는데, 이 시기의 대표작들은 『말과 사물』(1966)과 『지식의 고고학』(1969)이다. 1970년 초에 시작되는 ‘권력의 계보학’의 시기는 『담론의 질서』(1970), 『감시와 처벌』(1975)로 대표된다. 마지막 ‘윤리의 계보학’의 시기에는 1976~1984년에 이르는 ‘성의 역사’ 시리즈 1~3권이 포함된다.
 
 
 
푸코가 말년에 개진한 회고적 분류에 따르면, ‘성의 역사’ 시리즈는 모두 ‘윤리의 계보학’에 속하나, 실상 1976년에 발간된 『앎의 의지』는 오히려 ‘권력-지식’, 곧 권력의 계보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바라본 작품이다. 푸코는 자신의 질문이 ‘왜 우리가 억압받고 있는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이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가 문제 삼는 것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동시대의 지배적 관점, 곧 빌헬름 라이히로 대변되는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이다. 푸코에 따르면,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는 공히 ‘억압’된 진실과 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억압-해방’의 담론에 기초하고 있다. 푸코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 혹은 이의를 제기한다. 첫째, ‘섹스의 억압은 정말로 자명한 사실일까?’라는 역사적 질문. 둘째, ‘권력의 메커니즘은 실제로 억압의 범주에 속하는 것일까?’라는 역사-이론적 질문. 셋째, ‘억압의 시대와 억압에 대한 비판적 분석의 시대 사이에는 정말로 역사적 단절이 존재할까?’라는 역사-정치적 질문.
 
 
 
이 질문들이 잘 알려주듯이, 『앎의 의지』는 기본적으로 그 전 해에 발간된 『감시와 처벌』의 ‘권력 계보학’을 이어받아 그 논의를 심화시키고 난점을 보완하면서, 동일한 문제의식을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책이다. 푸코는 앞서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출한다. 첫째, 실제의 서구 근대의 역사는 오히려 성에 관한 담론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왔다(이는 성이 억압된 적이 ‘없다’는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둘째, 억압, 금지 등 권력의 부정적 기능을 통해서만 권력을 바라보는 것은 권력이 갖고 있는 생산적 기능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셋째, 억압에 대해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해방을 외치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 하나의 메커니즘, 장치로서 기능한다. 푸코에 따르면, 결국 우리는, 첫째, 성이 억압되었다는 ‘담론’과 그것이 가져오는 실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에로 논의의 방향을 전환해야 하며, 둘째, 억압-해방 담론의 기반을 이루는 기존의 실체적인 거시적 권력 개념 자체를 파기해야 하며, 셋째, 이른바 ‘억압’과 ‘억압-해방 담론’이 동일한 인식론적 층위에 속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보는 등 섹슈얼리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한다. 이제 이른바 생물학적 ‘자연적 성’(le sexe)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인위적 구성물’로서의 구체적 인식들, 실천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성과 관련된 서구 근대의 제반 인식ㆍ실천은 ‘섹슈얼리티 장치’(le dispositif de sexualité)를 통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이른바 성적 억압이라는 ‘현실’은 물론 이에 대한 각종의 저항-해방 ‘담론’을 포함하는 섹슈얼리티 장치가 분석의 주된 대상으로 드러난다. 『앎의 의지』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섹슈얼리티 장치의 아이러니는 우리 자신의 ‘해방’이 섹슈얼리티 장치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든다는 점이다.”
 
 



 
 
 
 
 
주체화 - 진리, 권력, 윤리를 감싸는 문제화



잘 알려진 대로, 『앎의 의지』 출간 이후 1977-1978년의 시기 동안 푸코는 ‘통치성’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윤리의 계보학으로 자신의 관심을 이동하게 된다. 통치성 혹은 생명관리정치의 문제의식은 이 시기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 특히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 잘 드러나 있다. 통치성의 문제의식으로 근대권력의 탄생 및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조명한 이 시기의 강의록들은 이후 시간이 가면서 점차로 푸코의 주저에 못지않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생각된다. 『감시와 처벌』과 『앎의 의지』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푸코는 부정적 효과에 집중하는 기존의 권력관을 다시금 사고하면서, 권력의 생산적 기능에 주목한다. 이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지배와 자기에 대한 지배를 연결하는 통치의 문제에 주목하게 되고, 이는 다시 1980년대 초 이후 자기에 대한 자기의 관계 설정, 곧 주체화에 집중하는 윤리의 계보학에 천착하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성의 역사 2, 3권인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인데, 2권은 고대 그리스에서 한 시민이 자신의 쾌락을 다루는 방식과 동일한 개인이 사회적 곧 폴리스적 자아로서 형성되는 방식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며, 3권은 그리스도교 이전 고대 초기 로마에서 있어서의 자기 배려, 곧 자기 형성의 논리가 보여주는 특징에 집중한다.
 
 
유의할 것은 이러한 ‘윤리의 계보학’에서 나타나는 ‘윤리’(éthique)가, 용어의 그리스어 어원 êthos[성격, 품성]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자기와 자기의 관계, 곧 자기 인식, 자기 지배, 자기 배려를 모두 함축하는 용어이다. 이는 푸코는 서양인으로서 자기 문화의 기원을 이루는 고대 문화에 집중한 것으로 특히 섹슈얼리티의 문제가 서양인의 자기 정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푸코에 따르면, 서양인들에게 섹슈얼리티는 여타의 영역과는 다른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며, 이는 다음과 같은 정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너의 성적 정체성을 말해다오, 그러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마.” 푸코는 이처럼 섹슈얼리티를 진리, 권력, 윤리가 만나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적 영역으로 바라본다. 한편 유의할 것은 이때의 지식의 고고학, 권력의 계보학, 윤리의 계보학이라는 세 개의 ‘영역-방법론’이 시기적으로 뒤의 것이 앞의 것을 부정하고 다음 단계로 이행해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동시적이며 상호보완적인’ 세 개의 영역들로 설정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하나의 영역은 이전의 영역(들)을 감싸 안고 넘어가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곧 윤리의 계보학은 ‘윤리와 계보학’에 초점이 맞추어진 ‘지식-권력-윤리의 고고학-계보학’이다. 푸코의 ‘윤리’는 진리와 관계하면서 철저히 정치적인 윤리 곧, 자기도야와 자기 생산의 논리이며,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의 자기 형성을 통해 자신의 구체적인 모습을 얻게 된다.
 
 
문제화 -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는가?




이는 푸코가 전통적인 주체, 대상, 인식이라는 세 개의 개별적 실체를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라는 상관적ㆍ동시적으로 형성되는 세 개의 연관관계로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푸코는 주체화, 대상화, 인식(론)화를 통칭하여 문제화ㆍ문제설정(problématisation)이라 부르는데, 푸코는 평생에 걸친 자신의 작업이 바로 이 ‘문제화’에 대한 탐구였다고 말한다. 말년의 푸코가 이를 지칭하여 부르는 ‘우리 자신의 역사적ㆍ비판적 존재론’에 대한 탐구란 지식, 권력, 윤리의 영역에서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를 고고학적ㆍ계보학적 방법론을 원용하여 탐구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결국 ‘성의 역사’ 시리즈는 섹슈얼리티의 영역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오늘의 우리가 되었는가’라는 역사적 과정, 문제화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오늘 우리 자신의 변형(transformation)을 가능케 해줄 제반 조건들에 대한 탐구’를 수행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2014.06.08.


 
 
 
 
 
 

2014. 5. 22.

'해석권력'의 주체는 국민이어야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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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태, 누구의 어떤 개혁을 말해야 하는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올해 6월이면 정확히 사망 30주년을 맞는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는 사망하기 한 달 전인 1984년 5월 발간된 칸트의 계몽에 관한 한 기고문에서 칸트 철학의 새로운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로 정식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서, 현재의 문제, 동시대성의 문제에 관련된 것들이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의 우리가 그 안에서 우리로서 구성된 이 ‘지금’이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을 정의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의 앞바다에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476명의 인원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였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 이상이 지난 5월 30일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구조시스템은 침몰 전에 구출되었던 174명을 제외하고 배에 남아있던 300여명이 넘는 승객들 중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였다. 이는 침몰과 구조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선원들과 청해진해운은 물론, 구조회사, 해경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를 포함한 관료, 정치시스템 전체의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단적으로, 이는 천재가 아닌 인재이며,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승선인 전체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죽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말이 된다.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이제 다시 물어보자.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의 오늘, 여기 지금, 2014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지금’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도덕주의적’ 답변의 문제점 -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의 결여
 
 
 
이 질문의 중요성은 우리가 오늘 이 질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달라지리라는 명백한 사실에 놓여 있다.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하여, 가령, 이는 매우 비극적인 참사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답한다면, 우리는 사건에 대한 도덕적 답변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적 대응은 - 아마도 이를 수행하는 당사자의 의지와도 무관하게 - 이러한 불행한 사태의 반복만을 낳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부터,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를 거쳐, 바로 얼마 전 2월의 대학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가건물 붕괴 참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전 국민적 차원의 도덕적 반성이 수없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바로 오늘 세월호 침몰 사건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무책임한 선원과 비도덕적 탈법을 일삼은 청해진해운, 이를 비호하고 편의를 보아준 ‘공범적 공생관계’의 공무원, 관료집단 등 명백한 책임주체가 있는데도 ‘우리 모두의 책임’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 설령 그것이 순수한 자기 성찰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 현실적 문제점의 인식 자체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도덕적 반성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거나, 비도덕적 개인 혹은 집단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비도덕적 개인과 집단은 늘 존재하며, 개인의 부도덕함은 비난받아야 하고, 집단의 비도덕적 음모는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개인 혹은 집단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는 인식은 정작 문제의 핵심이라 할 보다 큰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
 
 
 
 
나는 승객들의 탈출과 자신들의 탈출이 양자택일적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자신들만 탈출한 선원들에 대하여 분노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정당한 분노를 인정하지만, 세월호의 선원들만이 유난히 부도덕한 인물들로 우연히 구성되어 있었다는 가설을 지지할 수 없다. 세월호의 선원들은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선한 직장인들이었으며, 아마도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여객선의 선원들과 현격히 구별될 만한 질적인 도덕적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세월호의 선원들이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마도 대한민국 선원들의 ‘평균적인 도덕성’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을 가진 세월호의 선원들, 청해진 해운은 오늘 이 시각에도 자신들의 과오와 범죄 행위보다는 ‘하필 자기 회사의 배가 침몰한’ 불운을 탓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비극적 해체의 운명을 맞이한 해경과 해수부 관료 마피아, 넓게는 대한민국의 관료집단 전체가 갖고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재수가 없어서 하필 우리 영역에서, 우리 관할에서, 우리 회사에서, 우리 배가’ 침몰했으며, 일단은 ‘상황을 주시하면서 면책을 도모하며, 이제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국민들이 세월호를 잊을 때까지 납작 엎드려 지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내버려두고 가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만 안전하게 탈출하는 이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단적으로 그것은 “그렇게 해도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내가 이렇게 해왔어도 직장에서 자리를 잃지 않으며, 다른 선원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고, 다른 회사도 모두 다 이러하며, 이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공무원, 관료 집단 전체도 다 그러하며, 대한민국의 다른 영역들도 세월호 같은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나라는 개인과 우리 회사와 내가 만나는 관료 집단,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시스템 전체가 하나로서 그러한 ‘공생적 악순환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을 경우에만 유지 가능한 것이다. 물론 부도덕한 개인은 비난받아야 하고, 부패와 법범 행위는 엄단되어야 하며, 음모는 밝혀져야 하고, 적폐는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세월호 사건에 대한 개인적 도덕적 반성의 촉구와 그에 이어지는 해당 기업 및 관료의 사법적 처벌에 만족하고 만다면, 이러한 불행한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도덕적 단죄와 사법적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세월호’를 막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관료들은 언제 개혁에 나서는가?
 
 
 
따라서, 어떤 특정 개인, 회사 혹은 집단에 대한 도덕적 비난 혹은 사법적 처리라는 기반 위에,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을 가능케 했던 제반 조건 자체의 변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한 국가의 평균적 도덕성 혹은 직업윤리, 관료윤리는 물론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으며, 따라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의 개혁을 포기하거나 방기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선원들은, 기업인들은, 관료들은 언제 이러한 ‘관행’을 포기할 것인가? 하나의 집단은 언제 자신들의 부당한 ‘기득권’을 타파하고 올바른 길로 나설 것인가? 이에 대한 역사의 답변은 간명하다. 하나의 집단은 그들이 ‘바꾸지 않고서는 안 될 때, 바꾸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관행과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탁월한 개인의 도덕적 회심은 개별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수만에서 수십만, 수백만을 헤아리는 하나의 집단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평생 익혀왔던 요령과 관행, 곧 기득권을 버린 경우란 역사에 전무하다. 그들이 그것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심지어 그들이 그것을 버릴 ‘의지’가 없기 때문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바로 그러한 시스템의 일부이며, 자기 정체성의 원천이 바로 그 시스템 자체이기 때문에, 그들은 설령 스스로를 혁파하고자 해도 그러한 일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의 결여’인 동시에 ‘능력의 결여’이다. 기업이든 관료이든, 한 집단의 개혁은 자율적 부분과 타율적 부분이 결합될 때 성공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기업과 관료의 자율적 반성이라는 기초 위에 제도적 곧 타율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존재는 바로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바로 이 점에 세월호 사태에 대한 도덕적, 사법적, 행정적, 관료적 처리 이상의 정치적 결단의 차원, 곧 푸코가 말하는 통치성의 논리가 놓여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라는 정치적 행위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이에 대한 확고한 개혁의지, 대통령 자신의 표현을 따른다면, ‘국가개조’,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모두 좋은 말이다. 나는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 의도에 대해 그 순수성 여부를 논할 생각은 없으며, 차라리 그러한 언명의 순수성을 믿는 편이다. 그러나, 하나의 기준을 놓고 그에 따라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이지 않은 것’을 나누는 행위 이상의 정치적 행위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와 무관한’ 이른바 ‘순수한’ 영역이란 현대 정치학과 철학에서 하나의 농담에 불과하다. ‘정치 집단인 전교조를 순수한 교육현장에서 몰아내자’는 주장 이상의 정치적인 주장이 있을 수 있을까?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행위 이상의 정치적 행위가 존재하는가? 주어진 시스템 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순수하고 정상이며, 그와 달리 생각하거나 행동하면 불순하고 비정상이라는 논리 이상의 정치적 사유가 있는가? 나와 같이 생각하면 순수하고 정상이며, 나와 달리 생각하면 불순하고 비정상이라는 논리 이상의 정치적 행위가 있을까? 국민은 정부와 달리 생각해서는 안 되며, 달리 생각하는 순간, 불순한 비정상이 되어 엄단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말일까? 만약 세월호 사건이 일부의 주장처럼 ‘순수한’ 사고였고, 따라서 대통령은 ‘순수한’ 유족만을 만날 것이며,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대한민국의 통수권자이자 정치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왜 ‘순수한’ 사고인 세월호 유족들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는가? 이는 21세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인 나는 정부와 달리 생각할 ‘자유’가 없으며, 사실상 오늘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말일까? 정부에서는 참으로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문제가 있고 불순하며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정부는 - 서구 중세의 ‘교황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교황무오설(無誤說)을 패러디하여 - ‘정부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정부무오설이라도 주장한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인 나는 ‘자유롭지도 민주주의이지도 않은’ 정부를 여하튼 신뢰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것을 ‘해석권력’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이른바 현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때, 자신의 해석을 ‘현실에 대한 올바른 해석’으로 간주하고 이를 강요하는 힘이 해석권력이다. 그리고 그 해석권력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있어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제반 문제에 대한 해석권력이 과연 국민에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해석권력을 국민의 손으로 되돌리는 것은 오직 국민 스스로가 할 수 있을 뿐이다.
 
 
 
 
국민이 ‘해석권력’의 주체임을 보여주어야
 
 
 
다시 한 번 문제는 의지의 문제인 동시에 능력의 문제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순수한 의도에 입각한 것이라 해도 그 실천, 실현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현재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언제 개혁에 나설 것인가?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수많은 저항과 난관이 예상되며, 궁극적으로는 정권의 안위조차 위태로운 개혁에 나서지 않아도 정권이 유지된다고 믿을 때, 과연 한 나라의 정부는 개혁에 나선 경우가 존재하는가? 불편하고 무섭지 않은 복종하는 말 잘 듣는 국민,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는 착한 국민을 위해 정부가 알아서 자신의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드는 개혁에 나설 것인가? 가장 중요하게는, 김용옥의 지적대로, 국민적 합의 없이 특정 정치인 개인의 의지대로 해석된 ‘정상화, 국가개조’는 문제의 책임자가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황망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엄정한 자각이다. 박근혜 정부는 ‘안 해도 되는 개혁’을 시도할 리도, 시도할 수도 없다. 성공 여부와도 무관하게, 오직 국민들이 ‘정부가 진정한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스스로의 힘을 보여줄 때에만’ 박근혜 정부는 참다운 개혁에 나서고자 할 것이다. 논점은 언제 박근혜 정부가 언제 개혁에 나서는가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나름의 개혁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참다운 문제는 ‘누가 주체가 되는 어떤 개혁인가’의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개혁은 실로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버린 전도된 상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는 서두에서 언급한 오늘,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한 강의에서 정치 혹은 통치성과 관련하여 현재의 문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어떻게 특정인, 특정집단에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의 위대성은 정치철학의 근본적 주체를 통치자로부터 피통치자에게로 영원히 바꾸어놓았다는 점이다. 푸코는 정치와 통치성의 문제를 피통치자의 관점과 관심에서 다시금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질문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오늘 어떻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바로 이러한 혹은 저러한 방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푸코가 ‘주체와 권력’이라는 말년의 논문에서 대답하고자 노력했던 바이다. 푸코의 대답은 이러하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우리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그렇다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타율적으로 규정된 우리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해석권력의 문제는 가장 철학적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영원한 ‘오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2014.5.27.



 
 
 
 

2014. 5. 19.

알라딘 서양철학 로드맵 - 미셸 푸코 [초고]






* 알라딘 서양철학로드맵 <철학, 책> e-book 무료 다운받는 곳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common.aspx?pn=2014_philosophia_sub&AuthorId=15143


* 푸코

http://en.wikipedia.org/wiki/Michel_Foucault




I. 저자 이력 간략 정리
 
 
미셸 푸코는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태어났다. 1946년 명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철학과 심리학 학사를 취득하고, 이후 장 이폴리트의 지도로 헤겔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한다. 1950년 경 알튀세르의 영향 아래 공산당에 입당하나 2-3년 후 스탈린주의에 대한 환멸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당의 태도에 실망해 탈당한다. 1955년 이후 스웨덴 웁살라, 당시 서독 함부르크, 폴란드 바르샤바 등지의 프랑스문화원장 등으로 재직하다. 프랑스로 돌아와 1961년 소르본에서 주논문으로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를, 부논문으로 칸트의 『인간학』을 번역ㆍ주해한 텍스트를 제출하다. 1963년 『임상의학의 탄생』과 『레몽 루셀』, 1966년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1969년 『지식의 고고학』을 출간하고 이 시기를 ‘지식의 고고학’ 시기로 지칭하다.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최연소 교수로 임명, 취임강연 ‘담론의 질서’를 행하다. 1971년 질 들뢰즈 등과 ‘감옥에 관한 정보그룹’(G.I.P.)을 만들어 활동하다. 1975년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을 발표하고, 이 시기를 ‘권력의 계보학’ 시기라 지칭하다. 1976년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 연작 ‘성의 역사’ 시리즈의 1권 『앎의 의지』를 출간하다.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던 시리즈는 중도에 계획이 바뀌어 푸코가 사망하는 1984년 2, 3권에 해당하는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만이 출간된다. 이 시기를 ‘윤리의 계보학’이라 부르다. 같은 해 자신의 ‘지적 유언장’이라 할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하다. 푸코는 1984년 6월 25일 파리에서 에이즈로 사망한다. 그 외 푸코의 생애와 저작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리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올라 있는 4편의 글 ‘푸코의 활동’을 참고하면 되는데, 이는 푸코 선집 『말과 글』(1994)의 「연보」를 완역한 것이다.

http://www.greenbee.co.kr/blog/1685
 
 
 
II. 저자 사상 간략 정리
 
 
푸코 작업의 핵심은 한 마디로 모든 ‘보편’의 관념에 대립하는 것이다. 서양철학사에서 보편이란 필연적인 것, 본질적인 것, 불변의 것, 곧 ‘바꿀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의 작업은 이런 면에서 우리가 보편적이며 필연적이며 본질적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따라서 변화가능한 것, 바꿀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런 면에서 첫 번째 대표작이라 할 『광기의 역사』는 우리가 자연적인 것, 따라서 역사와 문화에 무관한 것으로 믿는 ‘광기’의 관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를 밝히려는 작업이다. 푸코는 우리가 이러한 관념의 최종근거로 삼는 모든 ‘자연적인 것’, 곧 생명, 생물, 의학, 정신, 육체, 광기 등의 관념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자연적인 것’으로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역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른바 인문과학 혹은 인간과학의 대표적 분과들이 노동, 생명, 언어의 분야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은 니체적 계보학의 입장에서 감시와 처벌 혹은 죄책감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사회화, 제도화되면서 근대사회 구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는가를 밝힌다. 『성의 역사』 연작 역시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이러저러한 성의 주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서구의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앞서 말한 필연과 보편의 관념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이처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자유와 변화의 지점을 찾을 수 있는가’를 밝히려는 궁극적 관심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 중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III. STEP 1 - 『미셸 푸코 1926-1984』, 『정신병과 심리학』,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푸코의 책은 매우 전문적인 논의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저작들을 시대 순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꼼꼼히 공부하는 것이나, 모든 이들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푸코 사유에 대한 가장 정평 있는 입문서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이다. 이 책은 푸코의 삶과 사유, 저작들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을 뿐 아니라, 니체, 하이데거로, 레비스트로스 등 푸코가 영향 받은 사유들, 사회ㆍ문화ㆍ정치적인 다양한 동시대적 상황들을 정리해 놓은 최적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국내 학자에 의한 간명한 입문적 소개로는 『처음 읽는 프랑스현대철학』(동녘)의 ‘푸코’ 부분이 무난하다. 고급한 입문서로는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산책자)와 질 들뢰즈의『푸코』(동문선ㆍ그린비)가 탁월하다.



다음으로는 어렵더라도 푸코 자신의 책을 시대 순으로 얇고 가벼운 것부터 찬찬히 정성스럽게 읽어보기를 권하는데, 우선 1962년의 『정신병과 심리학』(문학동네)을 권한다. 특히 이 책의 2부는 전 해인 1961년에 나온 푸코의 방대한 학위논문 『광기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요약ㆍ심화로 간주된다. 이후에는 물론 이러한 책들을 곁에 두고 『광기의 역사』(나남)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다음으로는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앨피)를 권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을 이어주는 책으로, 19세기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존속살해 사건의 기록을 푸코가 발굴해 자신의 연구ㆍ분석과 함께 출간한 것이다.
 
 
IV. STEP 2 - 『헤테로토피아』,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저술 순으로 따라 읽자면 다음 책으로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을 읽어야 하지만, 이 책들은 너무나도 고도의 전문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는 책이므로, 가급적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다만 『말과 사물』의 맨 처음 수록된 「시녀들」은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동명의 작품에 대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품격 있는 비평이므로 이 단계에서 읽어도 좋다). 이처럼 1960년대를 가로지르는 지식 고고학 시기의 대표작은 『말과 사물』이지만, 오히려 1960년대 푸코의 사유를 공간과 건축의 측면에서 잘 드러내주는 『헤테로토피아』(문학과지성사)를 권한다.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말과 사물』의 연장선상에서 고안된 것이며, ‘타자가 동일자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근본 조건’이라는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들 중 하나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말과 사물』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주장은 각각의 시대마다 이전 혹은 이후의 시대와는 공유될 수 없는 독자적ㆍ독립적인 ‘에피스테메’가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지식 고고학적’ 관점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이후의 ‘권력 계보학’으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가장 좋은 책은 1971년 네덜란드 텔레비전에서 이루어진 촘스키와 푸코의 대담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시대의 창)이다. 마냥 쉬운 책은 아니지만 대담의 기록이므로 대화체로 이루어져 읽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무엇보다도 - 하나의 주장이 합리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 오히려 “(하나의 주장을 정당화해주는) 합리성의 선택 자체가 니체적인 ‘힘 관계’의 반영”이라는 푸코의 핵심적 주장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논문 「진리와 권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 - 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은 푸코 ‘권력 계보학’의 대강을 보여주는 글로 추천할 만하다. 이 모두는 향후 『감시와 처벌』을 읽기 위한 준비의 과정으로 보면 된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은 물론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인 『담론의 질서』(중원문화)이며, 이 책은 우리가 오늘 아는 ‘담론’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기념비적인 명저이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면 『감시와 처벌』(나남)에 도전해볼 차례이다. 푸코의 가장 중요한 책이자 가장 논쟁적인 책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상대적으로는 푸코의 책들 중 매우 쉬운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읽어서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니다. 특히 처음 읽는 사람으로서는 행간에 깔린 중층적 의미를 다 소화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정독해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책이다. 모든 책을 다 정독하고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해야 다음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삶이란 몇 권의 중요한 책을 읽기에도 너무 짧다. 대강의 요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체크해두고 앞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이 유용하다.
 
 
V. STEP 3 - 『말과 사물』, 『성의 역사』, 『생명관리 정치의 탄생』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면 1960년대 지식 고고학 시기의 주저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을 읽을 차례이다. 우선 이해되지 않아도 가볍게 장 별로 한 번 읽고, 추후에 찬찬히 오랜 시간을 들여 정독하는 것이 좋다.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은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인식이란 없으며 오직 각각의 시대마다 새로운 인식이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 동시대의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구조주의적 관심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푸코는 16세기 이래 서양의 에피스테메 혹은 인식론적 장에는 단 2번의 단절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두 번의 단절로 이루어지는 세 개의 시기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이나, 푸코의 궁극적 주장은 이 두 번의 단절에 이어지는 세 번째 단절, 곧 네 번째 시기가 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각 시대마다 푸코가 긍정 혹은 부정하는 개념의 계열을 찾으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가령 책의 9-10장에서 칸트에 의해 성립된 근대 ‘인간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며, 근대 이후의 시대에 ‘언어’가 하게 될 역할은 긍정적 뉘앙스를 갖는다.
 
 
다음으로 『성의 역사』를 읽는다. 성의 역사는 1, 2, 3권에 해당하는 『앎의 의지』, 『쾌락의 활용』, 『자기 배려』가 있는데, 물론 순서대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이들 3권, 곧 1976년의 1권과 1984년의 2, 3권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일정한 단절이 존재한다. 『앎의 의지』는 그 전 해에 출간된 『감시와 처벌』 곧 권력 계보학의 논지를 대상의 측면에서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감시와 처벌』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다. 『앎의 의지』가 공격하는 핵심적 대상은 당시 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이다. 이 두 이론은 공히 성이 억압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이 해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푸코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성에 관한 기존 지배 시스템을 유지하는 장치의 일종으로 기능한다고 본다. 『앎의 의지』에서 보이는 푸코의 관심은 ‘왜 우리[서구인]는 성이 억압되어 있다고 이토록 강력히 말하게 되었는가?’라는 담론 체제에 관련된 문제이다. 2, 3권은 ‘윤리의 계보학’으로 이행한 이후의 저작들로, 『쾌락의 활용』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성인 남성이 진리의 문제, 양생술, 소년-성인 간의 동성애 등 섹슈얼리티에 연관된 여러 문제 상황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섹슈얼리티와 관련하여 어떤 주체로 만들어 갔는가를 분석한다. 주의할 점은 이때의 ‘윤리’가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덕’의 의미보다는 - ‘자기함양ㆍ자기도야’라는 그리스어의 어원적 의미에 가까우며, 따라서 진리와 정치가 이미 함축된 그러한 자기 형성의 ‘윤리’라는 점이다. 『‘자기 배려』는 그리스도교 국교화 이전의 고대 로마시기를 다루는데, 푸코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이 시기의 핵심적 문제제기를 자기 통치, 자기 배려로 설정한다. 통치성의 개념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푸코의 사유에서 이 개념이 타인의 통치로부터 자기의 통치에로 나아가는 연결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윤리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윤리의 계보학’ 시기는 주체화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로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1982년 미국 버몬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세미나 『자기의 테크놀로지』(동문선)을 참조하면 좋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푸코의 전공자로서 시간이 갈수록 확신하게 되는 하나의 사실은 푸코는 물론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감시와 처벌』 같은 저술을 통해서도 역사에 남게 되겠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ㆍ역사적 공헌은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록 시리즈에서 개진하고 있는 통치성의 관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푸코는 1970년에 취임한 이래 1976-1977년의 안식년을 제외하고 1984년까지 매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해왔다.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프랑스에서 2014년 현재에도 출간 중인 강의록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는 푸코 전공자로서 정확하고도 유려한 좋은 번역을 보여주는 심세광의 주도로 난장출판사에서 전권 번역되고 있다. 국역된 몇 권의 강의록 중 특히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는 통치성의 관념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잘 드러나는 필독서이다. 특히 이 책은 지난해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다루어진 16-17세기 이래 유럽 근대의 ‘정치학자’ 및 ‘경제학자’의 탄생,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분석을 잇는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분석에 책의 대부분이 할애되고 있어 특별한 시의성을 갖는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초래된 최근 유럽의 상황을 푸코 통치성의 관점에에서 분석한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같은 책도 참조하면 좋다.
 
 


 

2014. 5. 3.

광기의 역사 - 광기와 정상의 정치사

 
 
 
 
 
* 『광기의 역사』
 
 
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Age Classique, Collection "Civilisations et Mentalités", Plon, 1961. 1961년 5월에 발표된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아래의 다양한 판본ㆍ번역본이 있다.
 
Histoire de la Folie, 10/18 Series, Union Générale d'Éditions, 1964. 이는 1964년 푸코 자신에 의해 축약된 형태로 재편집되고 제목도 ‘광기의 역사’로 단순화되어 파리에서 출간된 판본이다. 이 축약본은 원본의 1․2부 구분을 없애고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약본은 원본의 1부 3, 4장, 2부 1장, 3부 3장이 생략되어 있고, 2부 2장, 3부 5장이 축약되어 있다. 한편 푸코는 이 축약본의 4장 등에 약간의 수정과 보충을 가했다.
 
Histoire de la Folie à l'Age Classique, "Collection TEL", Gallimard, 1972. 앞의 책 ②는 다시 원본 그대로 갈리마르 출판사의 ‘콜렉시옹 TEL’의 일부로서 재출간되었나, 다만 제명이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로 바뀌었고, 1972년의 이 ‘갈리마르판’은 1964년의 ②와는 다른 「서문」(préface)과 간략한 두 편의 「부록」이 추가되었다. 두 부록은 다음이다. "La folie, l'absence d'oeuvre"(La Table Ronde, mai, 1964) et "Mon corps, ce papier, ce feu"(Paideia, septembre, 1971).
 
④ 이후 이 판은 1978년 같은 제목으로 역시 갈리마르의 “콜렉시옹 TEL”에서 출간되었으나, 위 두 「부록」이 삭제되었다.
 
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 trans. Richard Howard, introduction by José Barchilon, Random House, 1965, Tavistock, 1967 and Social Science Paperback, 1971.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원본에 약간의 보충을 가한 1964년 축약판 ②를 영역한 책이다.
 
⑥ 미셸 푸코, 박봉희 옮김, 「대 감호(大 監護)」, 김성곤 편, 󰡔탈구조주의의 理解: 데리다․푸코․사이드의 文學理論󰡕, 307-323쪽, 민음사, 1988. 이는 위 영어 축약본 ⑤의 2장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⑦ 미셸 푸꼬, 󰡔광기의 역사󰡕, 김부용 옮김, 인간사랑, 1991. 이는 역시 같은 영어 축약본 ⑤를 완역한 것이다.
 
⑧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이규현 옮김, 오생근 감수, 나남신서 900, 나남출판, 2003. 이는 정본으로 인정되는 불어본 ③을 완역한 것이다.
 
 
 
 
 
 
* 󰡔광기의 역사 30년 후: 푸코 󰡔광기의 역사󰡕 출간 30주년 기념 논문집󰡕
 
 
Jacques Derrida et al., Penser la Folie, Editions Galilée, 1992; 자크 데리다 外, 󰡔광기의 역사 30년 후: 푸코 󰡔광기의 역사󰡕 출간 30주년 기념 논문집󰡕, 박정자 옮김, 시각과 언어, 1997.
 
1991년 11월 23일 ‘광기의 역사 30년 후’(Histoire de la folie trente ans après)라는 제목으로 ‘정신의학 및 정신분석학 역사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들의 모음집.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서문」과 「개회사」를 포함하여 모두 8편이다.
 
① 엘리자베드 루디네스코, 「서문: 󰡔광기의 역사󰡕(1961-1986) 읽기」, ② 조르주 캉길렘, 「개회사」, ③ 자크 포스텔․프랑수아 빙, 「필립 피넬과 ‘수위들’」, ④ 아를레트 파르주, 「미셸 푸코와 배제의 고문서들」, ⑤ 클로드 케텔, 「푸코를 비판해야 할까?」, ⑥ 아고스티노 피렐라, 「이탈리아에서의 광기의 역사 또는 정신의학 비판」, ⑦ 르네 마르조, 「이성의 위기, 광기의 위기 또는 푸코의 ‘광기’」, ⑧ 자크 데리다, 「‘프로이트에게 공정하기’: 정신분석학 시대의 광기의 역사」
 
 
 
 
 
 
 
 
 
* 『정신병과 심리학』
Maladie mentale et la psychologie, P.U.F., 1954/1962. 푸코는 1954년 자신의 최초의 저술인 『정신병과 인격』을 출간한다. Malaldie mentale et personnalité, P.U.F., 1954. 이 책은 1950년대 초반 푸코가 이미 공산당을 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기본적인 방법론의 측면에서 현상학과 마르크스주의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푸코는 1961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광기의 역사』를 출간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2년 1954년의 『정신병과 인격』, 특히 제2부를 완전히 새롭게 써서 『정신병과 심리학』이라는 제명 아래 다시금 출판된 것이 사실상의 ‘개정판’인 ①이나, 책에는 그러한 사실이 명기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상의’ 개정판은 ‘역사적 변형을 갖지 않는’ 실존 혹은 인격의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고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서구의 ‘인간’ 및 ‘정신병’의 관념을 구성하며 스스로를 구성시킨 ‘심리학’의 역사 혹은 형성 조건을 분석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한편 1962년에 발간된 『정신병과 심리학』의 제2부는 1961년에 나온 『광기의 역사』의 ‘완벽한 요약’으로 간주된다.
 
 
Mental illness and psychology, foreword by Hubert Dreyfus, trans. Alan Sherida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6/1987. 이는 1962년의 ①을 영역한 것으로 1976년 판은 하퍼 & 로우 출판사(Harper & Row Publishers)에서 나왔고, 다시 1987년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부에서 푸코의 전문가로 알려진 휴버트 드레퓌스(Hubert Dreyfus) 교수의 「캘리포니아 판에 붙이는 서문」(Foreword to the California Edition)이 덧붙여져 페이퍼백으로 재출간된다. 드레퓌스의 이 「서문」은 1954년 판 및 1962년 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변화를 섬세히 지적하고 있다.
 
 
③ 『정신병과 심리학』, 박혜영 옮김, 문학동네, 2002. 이는 1962년 불어판 ①의 번역이며 ― ①과 마찬가지로 ― 개정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다.
 
 
 
 
 
 
 
* 『광기의 역사』, 1961년의 「서문」(DEQ I, 187-195)
 
“파스칼: ‘인간은 필연적으로 미친 존재이며 따라서 그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조차도 또 다른 방식의 미침이리라.’ 그리고 또 다른 텍스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일기』에 나오는 말: ‘우리가 자신의 양식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을 감금함으로써가 아니다.”
 
“[광기와 이성 사이에는] 공통의 언어가 없다, 혹은 더 이상 없다. 18세기 말에 이루어진 광기(folie)의 정신병(maladie mentale)으로서의 구성은 끊어진 대화를 확증하는 사건, 이미 완료된 것으로서의 분리를 보여주는 사건, 그 안에서 광기와 이성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고정된 구문도 없이, 말을 더듬는, 불완전한 이 모든 말들을 망각 속으로 밀어 넣은 사건이다.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에 불과한 정신의학의 언어는 이러한 침묵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었다. / 나는 이 언어의 역사가 아니라, 차라리 이 침묵의 고고학을 기술하고자 했다.”
 
“이성-광기의 관계는 서구 문화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차원을 구성한다. 이 관계는 제롬 보쉬 훨씬 이전에 확립되었으며, 니체와 아르토 훨씬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다. [...] 물론, 이는 한 문화의 정체성(identité)보다는 한계(limites)가 문제시되는 하나의 지역이 관건이 된다. / 우리는 한계의 역사를 쓰고자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 [...] / 이러한 서구 세계의 한계-경험(expériences-limites)의 한 가운데에서, 물론, [니체적 의미의] 비극적인 경험의 문제가 솟아오른다. [...] / 서구적 라티오(ratio)의 보편성 안에는, ‘오리엔트’라는 분할이 있다. [...] 그렇다면 가장 일반적인 동시에 가장 구체적인 형식의 광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작품의 부재(l'absence d'œuvre)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두 가지 사건이 확연한 고유성으로 이러한 변형[우리가 정신의학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의 이유를 알려준다. 두 사건은 1657년 로피탈 제네랄의 설립과 가난한 자들의 ‘대감금’(grand renfermement), 1794년 비세트르(Bicêtre)[정신병원]의 쇠사슬에 묶인 자[정신병환자]들의 해방이다. 이 고유하고도 대칭적인 두 사건 사이에 의학사가들을 당황케 한 애매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어떤 이들에 따르면, 이는 절대주의 체제의 맹목적인 억압이며, 따른 이들에 따르면, 과학과 인류애에 기인한 광기에 대한 실증적 진리의 점진적 발견이다. [...] 하나의 구조가 설정되었다. 그리고 광기에 대한 중세적 휴머니스트적 경험으로부터 광기를 정신병 안에 감금하는 우리의 경험으로의 이행을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이 구조이다. [...] 광기의 고전주의적 경험을 평가하려는 시도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낮과 어두움, 그림자와 빛, 꿈과 깨어남, 태양의 진실과 밤의 힘 사이의 명쾌한 분할이 그것이다. 이는 시간을 오직 한계의 무한한 회귀로서만 받아들이는 기초적 분할이다. [...] 이제 ‘광기’는 ‘밤’이기를 그치고, 인간을 자신의 진실을 가두어 인식 안에 풀어놓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의식 안으로 사라져가는 그림자가 되어야 했다. / 광기에 대한 이러한 재구축을 통해 심리학의 가능조건에 관한 하나의 역사가 저절로 쓰여졌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
연대
16세기 초~
17세기 중반~
18세기 말~
연도
-
1657년
1794년
사건
사회적 축출
‘대감금’
광인의 ‘해방’
기관
‘바보들의 배’
Daß Narrenschyff
로피탈 제네랄
l'Hôpital général
정신병원
Mental hospital
명칭
folia
délire
maladie mentale
인식의 틀
신적인 재능
행정관리[police, 內治]
정신의학
이미지
여행자
사회 부적응자
환자, 위험한 인물
결과
방임, 찬양
도덕적 단죄,
관리와 통제
의학화, 비정상화
 
* “광기는 야만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광기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만 존재하며, 자신을 감금하거나 추방하는 혐오의 형식, 자신을 분리시키는 감수성의 형식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결국 모든 문화는 자신에 합당한 광기를 갖습니다.”(DEQ I, 197)
 
 
 
 
 
 
*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배』(1494), 노성두 옮김, 안티쿠스, 2006.
 
 
 
 
 
 
 
* 『광기의 역사』(2003, 나남)
 
제1부
 
제1장. ‘광인들의 배’
 
“중세 말에 나병이 서양세계에서 사라진다. [...] 15세기부터는 어디에서나 나환자 격리 시설이 텅텅 비게 된다.”(41-42) “나병과 교대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성병이었다. 15세기 말에 성병은 마치 상속권에 의해서인 듯 일시에 나병의 뒤를 잇는다. [...] 이 병은 나병과는 달리 일찍부터 의학의 대상이 되었다.”(48-49) “그런데 기이한 일은 17세기에 이루어진 바와 같은 수용의 영향 아래, 성병이 의학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나가고 광기와 더불어 도덕적 배제의 공간에 통합된 것이다. 사실상 성병에서가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의학으로 편입될 매우 복잡한 현상에서 나병의 진정한 유산을 찾아보아야 한다. / 그 현상은 바로 광기이다.”(50) “[아르토에 따르면, 합리성에 의한 광기의 추방 이래] 우리[서구] 문화의 중심인 비극 의식이 사라졌다. [...] 합리적 사유를 이끌어 광기를 정신병으로 분석하게 하는 올바른 엄정성이란 수직적 차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면 합리적 사유의 다양한 형식 아래 이 비극적 경험이 더 완벽하게, 또한 교묘하게 가려져 있다는 것, 그렇지만 이 비극적 경험이 합리적 사유에 의해 완전히 축소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속박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니체 이후에 우리는 이 폭발을 목격하고 있다.”(86)
 
2장. 대감호
 
“[‘대감호’ 이래] 사람들은 빈곤을 신성화하는 종교적 경험에서 빈곤을 정죄하는 도덕적 개념으로 슬그머니 넘어간다.”(135) “모든 수용자는 이러한 윤리적 가치 평가의 대상이 됨으로써 실로 인식이나 연민의 대상이기 이전에 ‘도덕적 주체’로서 취급된다.”(139) “광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이 나타났다. 이 이해방식은 더 이상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시회적인 것이다.”(141) “17세기 이전에도 광인이 ‘감금’되는 일은 있었지만, 광인과의 연관성이 인정되는 집단 전체에 광인을 섞어 넣음으로써 광인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때는 17세기이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기에 대한 이해 방식은 상상계의 초월적 존재가 광기를 통해 드러난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고전주의 시대부터 역사상 처음으로 광기는 무위도식에 대한 윤리적 단죄를 통해 인식되고 또한 노동 공동체로 확고해진 사회의 내재적 존재로 인식된다. 이 노동 공동체는 윤리적 분할의 권한을 획득하여, 사회에 불필요한 모든 형태를 마치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인 양 배척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다른 세계’에서 광기는 현재 우리가 광기에 대해 인정하는 그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157) “행정결정에 의해 도덕이 맹위를 떨치는 속박의 장소가 이처럼 생겨난 것은 중요한 현상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도덕적 의무와 민법 사이의 놀라운 종합이 이루어지는 도덕성의 기관이 설립된다. 이제는 국가의 질서가 감성의 무질서를 용납하지 않는다. [...] 도덕률은 사회의 종합적 차원에서 시행될 수 있다. 도덕이 상업이나 경제처럼 관리된다. [...] 고전주의 시대에 수용시설은 완벽한 국가의 건설을 위한 세속이 종교적 등가물로 이해되었던 그러한 ‘내치’(內治, police) 개념이 가장 치밀하게 형상화된 상징이다.”(159-163)
 
제3장. 교정적 세계
 
“광기에 대한 형벌과 방탕에 대한 처벌 사이의 연관성은 유럽인의 의식에 남아있는 낡은 고대성의 흔적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17세기의 그것의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다는 점에서 근대 세계의 문턱에서 윤곽이 분명해진 현상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도덕이라는 상상적 지형 속에서 수용의 공간이 창안됨으로써 육신에 대한 죄와 이성에 대한 과오에 공통된 본향(本鄕) 및 속죄의 장소가 고전주의 시대에 마련된 것이다. 광기와 죄는 인접하기 시작하고, 오늘날 정신병자가 운명으로 느끼고 의사가 본래적 진실로 파악하는 죄의식과 비이성[착란]의 연결관계는 아마 이 인접부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맺어졌을 것이다. 17세기 동안 하나에서 열까지 완전히 만들어진 이 인공의 공간에서 모호한 연결고리들이 형성되었는데, 그것들은 아주 최근의 합리주의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형성된 것인데도, 100여 년 동안의 이른바 ‘실증’ 정신의학에 의해 결코 단절되지 않았다. / 징벌과 치료의 이와 같은 혼동, 처벌 행위와 치료 행위의 이러한 준(準) 동일성이 합리주의에 의해 가능해졌다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이다. [...] 이런 식으로 억압은 육체의 치유와 영혼의 정화에서 이중적 실효성을 거둔다. 수용은 징벌과 치료의 병행이라는 그 유명한 도덕적 치유책을 이런 식으로 가능하게 만든다.”(176-177)
 
“기묘한 도덕혁명. 고전주의 시대는 비이성을 오랫동안 서로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던 경험들의 공통분모로서 발견했다. 고전주의 시대는 광기를 중심으로 일종의 유죄성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일단의 단죄될 행동 모두를 하나의 범주로 묶었다. [...] 광기에 대한 우리의 과학 및 의학 지식은 은연중에 그에 앞서는 비이성에 대한 윤리적 경험의 성립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185) “사실상 예전에 성스러운 것이었던 것을 도덕의 영역에 편입시키는 활동을 토대로 하여 인간과학을 구축한 것은 아마도 지난 3세기 서양문화의 변화에 고유한 현상일 것이다.”(189) “금기가 신경증으로 변환되는 과정의 중간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도덕적 책임, 곧 윤리적 관점에서 행해지는 죄의식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192) “객관성은 비이성의 고향, 그러나 징벌 같은 것이 되었다.”(204)
 
 
제4장. 광기의 경험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정신병리학까지도) ‘자연인’ 혹은 모든 질병 경험 이전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고 평가된다. 사실 이러한 정상인이라는 개념은 창안물이고, 정상인을 위치시켜야 하는 곳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인’을 사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며, 따라서 광인이 광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 광인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 상태의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 광인이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 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관한 ‘실증’ 과학, 그리고 광인을 인간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 인도주의적 진단은 일단 이러한 종합이 이룩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이 종합은 이를테면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정신병리학 전체의 구체적인 ‘아 프리오리’를 구성한다.”(244)
 
제5장. 정신이상자들
 
“고전주의 시대에 이성은 윤리의 공간에서 탄생한다.”(259) “광기가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비이성과 관련해서일 뿐이다. 비이성의 광기의 매체이다. 오히려 비이성이 광기의 가능공간을 규정한다고 말하자.”(284) “고전주의의 실천과 구체적 의식(意識)에는 비이성으로부터 거리 전체를 순식간에 가로지르는 특이한 광기의 경험이 있는데, 그것은 윤리적 선택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동시에 동물적 광포함 쪽으로 온통 기울어져 있다”(287)
 
제2부
 
 
서론
 
 
제1장. 종(種)들의 정원에서의 광인
 
“18세기 분류학자들의 커다란 관심은 신화의 폭과 끈기를 갖는 지속적 은유에 의해 고조되는데, 그것의 질병의 무질서에서 식물의 질서로의 전이(轉移)이다. [...] 식물학자들의 영역은 병리학의 세계 전체를 조직화하게 되고, 질병들은 이성 자체의 질서 및 공간을 따라 분류된다. 식물학적인 만큼이나 병리학적인 종들의 정원을 마련할 계획은 예지력 있는 신의 지혜에 속하는 것이다.”(326-327)
 
 
제2장. 정신착란의 선험성
 
“17세기와 18세기에 말해지는 광기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질환’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함께’ 문제되는 어떤 것이다.”(360-361) “광기는 단순히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의해 주어진 가능성의 하나가 아닐뿐더러, 무조건 정념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인 것도 아니다. 광기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성에 근거를 두면서도 이 통일성으로부터 돌아서고 이 통일성을 다시 문제시하며, 정념에 의해 가능하게 된 것이면서도 정념 자체를 가능하게 한 것을 자체의 고유한 움직임에 의해 위태롭게 만든다.”(382) “고전주의적 의미에서의 광기는 정신이나 육체의 결정적 변화보다는 오히려 손상된 육체, 기묘한 행동과 말 아래 실재하는 정신착란의 담론(un discours délirant)을 가리킨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바로 정신착란(délire)이다. ‘이 낱말은 ‘리라’(lira), 곧 밭고랑에서 파생했고, 따라서 ‘델리로’(deliro)는 문자 그대로 밭고랑에서, 이성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394) “정확히 진실(vérité)과 빛(clarté)이 근본적 관계를 맺고서 고전주의적 이성을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정신착란(délire)과 현혹(éblouissement)은 광기의 본질을 이루는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 비이성과 이성의 관계는 현혹과 눈부신 빛 자체의 관계와 동일하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우리는 고전주의 시대의 문화 전체를 북돋우는 중요한 우주론의 중심에 이른 셈이다.”(404-405)
 
 
제3장. 광기의 형상들
 
“17세기와 18세기에 이미지들의 작용에서 영향을 받아 구성된 것은 개념 체계나 심지어 증후 전체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이다.”(453)
 
제4장. 의사와 환자
 
“광인에게서 육체의 치료행위와 영혼의 치료행위가 분리된 것은 오로지 징계(懲戒)의 실천에 의해서였을 뿐이다. 순수한 심리적 의학은 광기가 죄의식의 영역으로 양도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523) 소바주, “영혼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523) 이미 의사는 더 이상 일깨우는 사람이 아니라 모랄리스트로서 행동하게 된 것이다. [...] 그러나 오래지 않아 피넬이 등장하는데, 그가 보기에 치유를 위해 의미가 있는 것은 더 이상 진실에 대한 자각이 아니라 단지 복종과 맹목적 굴복뿐이다. “많은 경우에 조광증(躁狂症)의 치유를 위한 기본 원칙은 우선 에너지의 억제를 강구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 온정을 베푸는 것이다.”(527) [이제] “광기는 전적으로 병리학의 영역에 놓이게 된다. 이는 [...] 고전주의 시대의 비이성의 경험이 광기에 대한 엄밀하게 도덕적인 인식으로 축소되는 현상인데, 이 도덕적 인식은 나중에 19세기가 과학적이고 실증적이며 실험적인 것이라고 내세우게 되는 모든 이해방식으로 은밀하게 중핵으로 구실하게 된다. [...] 피넬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된다. ‘확고부동한 규범을 따르는 것은 심기증(心氣症), 우울증, 또는 조광증을 예방하는데 매우 중요하다.’”(539)
 
 
“고전주의 시대를 대상으로 하여 육체적 치료법과 심리적 치료행위를 구별하려고 애쓰는 것은 무익하다. 그 때에는 심리학이 실재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 심리학이 탄생하는 것은 정확히 그때인데, 심리학은 광기의 진실로서가 아니라, 비이성이었던 광기의 진실에서 광기가 이제 분리되었고 그때부터 광기가 자연의 무한한 표면에서 표류하는 ‘무시해도 좋은’ 현상일 뿐이게 된다는 징후로서 탄생한다. [...] 정신분석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결코 심리학이 아니라, 정확히 근대 세계에서 심리학이 본질적으로 은폐할 수밖에 없었던 비이성의 경험이다.”(540-541)
 
제3부
 
서론
 
“서양 문화에서 [광기와 비이성의] 이러한 분리가 철학적이고 비극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은 오직 니체의 마지막 텍스트 또는 아르토에게서이다.”(547) “횔덜린에 뒤이어 네르발, 니체, 반 고흐, 레몽 루쎌, 아르토는 비극적일 정도로, 다시 말해 광기를 부인함으로써 비이성의 경험을 잃어버릴 정도로 위험한 응시(凝視)를 무릅썼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실존, 그들의 삶인 그 말들 각각은 아마 근대 세계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을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한결같이 되풀이한다. 비이성이라는 차이를 보존하는 것은 왜 가능하지 않을까? 왜 비이성은 감정적인 것의 망상 속에서 현혹되고 광기의 물러남 속에 유폐되어 언제나 자체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비이성은 그 지점에서 언어를 박탈당할 수 있었을까? 비이성은 한 번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들을 넋이 나간 듯 망연자실케 하고 ‘비이성’을 검증하려고 시도한 모든 사람들에게 ‘광기’의 판결을 내리는 그러한 권력은 무엇일까?”(558)
 
 
제1장. 대공포
 
“‘의료인’(homo medicus)이 범죄인 것과 광기인 것 사이에서 죄악과 질병 사이의 분할을 행하기 위한 ‘심판자’(arbitre)로서 수용의 공간으로 호출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수용의 벽을 뚫고 새나가는 막연한 위험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호자’(gardien)로서 불려나갔다는 것은, 서양 문화에서 광기가 틀림없이 차지하게 될 자리와 관련하여 중요하고도 어쩌면 결정적일 사항이다.”(566) 미라보,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비세트르가 로피탈 제네랄이자 동시에 감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로피탈 제네랄의 설립이 결과적으로 질병을 낳고 감옥이 결국 범죄를 야기한다는 점은 모르고 있었다.”(566)
 
“15~16세기에 미치광이를 통해 급변의 양상이 드러난 커다란 우주적 갈등은 고전주의의 마지막 극단에서 감정의 직접적 변증법이 될 정도로 바뀌었다. 사디즘은 에로스만큼 오랜 관행에 마침내 부여된 이름이 아니라, 정확히 18세기 말에 서양적 상상력의 커다란 환희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 대대적 문화 현상이다. 즉, 사디즘은 마음의 망상, 욕구의 광기, 욕구의 한없는 추정(推定) 속에서 계속되는 사랑과 죽음의 엉뚱한 대화가 된 비이성이다. 사디즘은 비이성이 100여 년 전부터 감금되고 침묵으로 귀착되었다가 이제 세계의 형상이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담론과 욕망으로 다시 나타나는 시기에 출현한다.”(571)
 
“이러한 감각의 불순(不順)은 환각이 길러지고 헛된 정념과 영혼의 가장 음침한 움직임이 인위적으로 야기되는 연극에서 계속되는데, 특히 여자들은 “열광과 흥분을 자아내는” 그러한 연극을 좋아하고, 여자들의 영혼은 “그토록 심하게 뒤흔들리어, 사실은 일시적이지만 통상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낳는 충격이 신경에 가해지며, 여자들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박탈되는 현상이나 여자들이 근대의 비극을 관람하면서 쏟는 눈물은 연극의 공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하찮은 사건일 뿐이다.” 소설은 착란된 감성에 더 인위적이고 더 해로운 환경을 형성하며, 근대 작가들이 소설에서 나타내려고 애쓰는 그럴듯함 자체, 그리고 그들이 진실을 모방하는 데 이용하는 기법 전체는 그들이 독자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싶어하는 격렬하고 위험한 감정에 더 많은 위력을 보탤 뿐이다. [...] 소설은 전형적으로 감성 전체의 왜곡된 환경을 형성하고, 영혼을 감성적인 것에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전체로부터 분리시켜,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격렬하고 자연의 부드러운 법칙에 의해 덜 규제되는 감정의 상상세계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토록 많은 작가가 다수의 독자로 하여금 알 껍질을 깨고 나오게 만들고, 지속적인 독서는 온갖 신경증 환자를 낳게 되는 바, 여자들의 건강에 해로운 모든 원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100년 전부터 시작된 소설의 한없는 증가였을 것이다. ... 10살 무렵에 달리기 대신 책을 읽는 소녀라면 20살 무렵에는 틀림없이 좋은 유모가 아니라 심한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가제트 살뤼테르, 1768)”(582-584)
 
“18세기에는 광기와 광기의 위협적 증가에 대한 의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범주의 개념들이 여전히 매우 산만한 방식으로 서서히 형성된다. 17세기가 광기를 위치시켰던 비이성의 풍경에서 광기는 어렴풋이 도덕적 의미와 기원을 감추고 있었고, 17세기의 불가사의에 의해 광기는 과오에 연관되었으며, 광기에 곧장 깃들인 것이라고들 인식한 동물성은 역설적이게도 광기를 더 결백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후반기에는 인간을 아득한 옛날의 타락이나 한없이 현존하는 동물성 쪽으로 근접시키는 것에서 더 이상 광기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게 되고, 반대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자연의 직접성을 통해 인간에게 제공되는 모든 것에 대해 유지하는 그 간격 안에 광기를 위치시킨다. 광기는 감성적인 것, 시간, 타자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변질되는 그러한 ‘환경’(milieu) 속에서, 인간의 삶과 변전(變轉)에서 직접적인 것과의 단절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제 광기는 자연이나 타락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영역에 속하는데, 이 영역에서는 역사가 예감되기 시작하고, 의사들이 말하는 ‘정신이상’(l'aliénation des médecins)과 철학자들이 말하는 ‘소외’(l'aliénation des philosophes)라는 두 형상, 이를테면 인간의 진실이 어떻게든 변질되는 조건이지만 일찍이 19세기에 헤겔 이후로 유사성의 흔적을 모두 잃어버린 두 형상이 본래의 막연한 연관성 속에서 형성된다”(584).
 
 
“[티소에서 모렐까지, 19세기 중후반] 광기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증가하는 광기의 모든 잠재력은 인간 자신의 주제(소외는 매개의 움직임에 있다)와 ‘살아있는 존재를 둘러싸는 모든 것은 살아있는 존재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비샤에 의해 분명히 표명된 생물학의 주제가 아직 뒤섞여 있는 지점에 머물러 있다.”(591) “한 마디로, 18세기에 광기 자체의 변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광기에 대한 공포는 19세기에 유일하게 광기의 구조를 확실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모순 앞에서의 강박관념이 될 정도로 차츰차츰 변하고, 부르주아 질서의 지속조건이 된 광기는 역설적으로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구성한다.”(595) “이제 [19세기] 사람들이 미친 사람에 관해 말하게 될 때, 이때의 미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의’ 직접적 진실의 땅을 떠나 자기 자신을 상실한 사람이다.”(596)
 
제2장. 새로운 분할
 
 
“우리는 광인의 수, 적어도 광인으로 인정되고 분류된 피수용자의 수가 18세기를 따라 아주 서서히 증가하다가 1785-1788년도에 최대한도를 지나고는 대혁명의 발발과 더불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600)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광기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띠었는가가 아니라, 광기가 18세기의 인식에 자리잡게 된 동향이다. 즉, 우리의 눈에 광기가 과거의 모습을 거의 상실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보이게 만든 일련의 단절, 불연속, 폭발이다. [...]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개인의 영향력이 아니라 역사 구조, 하나의 문화에서 광기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구조이다.”(617)
 
 
“어떤 의학적 진보도 어떤 인도주의적 접근도 광인이 점차로 고립되기에 이르고 미치광이라는 단조로운 범주가 초보적 영역들로 나누어지는 현상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이 현상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수용의 근저에서이고, 광기에 대한 이 새로운 의식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수용이다. / 박애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정치적인 의식.”(621) “죄수들 사이에 광인이 있다는 것은 수용의 수치스러운 한계가 아니라 수용이 진실이고 수용의 폐습이 아니라 수용의 본질이다.”(623) “광기는 기이하게도 범죄의 쌍둥이로서, 아직 문제시되지 않은 근접에 의해 저어도 범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개별화된다.”(626) “수용이 결국 빈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로피탈 제네랄이 질병을 만들어 낸다.”(648) “빈곤, 질병, 구제에 관한 경제적이고 사회적 성찰.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은 가난과 빈곤의 모든 형상으로부터 분리된다. / 요컨대 예전에 광기를 에워싸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즉, 빈곤의 순환, 비이성의 순환이 둘 다 해체된다. 빈곤은 경제의 내재적 문제에 편입되고, 비이성은 상상력의 심층적 형상 속에 들어박힌다. 빈곤과 비이성의 운명이 더 이상 교차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18세기 말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오랜 배제의 땅에 여전히 범죄로서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병자의 구제가 제기하는 모든 새로운 문제와 대면하고 있는 광기 자체이다.”(650)
 
제3장. 자유의 선용(善用)
 
 
“수용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1789년”(655) “1780년에서 1793년까지 취해진 조치들은 문제의 성격을 결정한다. [...] 피넬과 튜크의 개혁을 전후로 한 몇 년에서 광기에 대한 실증적 식별의 도래 또는 정신병자에 대한 인간적 대우의 도래 같은 것일 어떤 것을 찾으려 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유의해야 한다. 이 시기의 사건들과 그것들을 지탱하는 구조에 변모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 몇 해 동안 사법조치보다 약간 아래에서, 제도의 밑바닥 가까이에서, 그리고 마침내 광인과 비(非)광인이 대립하고 분할될 뿐만 아니라 서로 연루되고 서로를 알아보는 그러한 일상적 논쟁 속에서 ‘실증 정신의학’을 잉태했으므로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형상들이 형성되었는데, 그러한 형상들로부터 광기에 대한 마침내 객관적이고 의학적인 식별의 신화가 탄생했고, 이러한 식별에 의해 그 형상들이 진실의 발견과 해방으로 신성시되면서 사후에 정당화되었다.”(662)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과 가난이 개인이나 가족의 권역에만 속하게 됨으로써 ‘사적인 것’으로 변한 시대에, 광기는 사실상 ‘공적 지위’를 획득하고 사회를 광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감금공간의 규정에 얽매인다.”(663) “[이제] 수용은 피수용자에게는 도덕적 통제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경제적 이득이다. [...] 보호시설이 무엇이고자 했는가 뿐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의식의 한 형태 전체가 노동, 이윤, 미덕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일종의 기괴한 진실. 보호시설은 이성과 동시에 비이성이 표현된 신화 속에서 광기의 역사가 동요하는 지점이다.”(668)
 
 
“그들[트농(Jacques-René Tenon, 1724-1816)과 카바니스(Pierre Jean George Cabanis, 1757-1808)]은 그러한 절반의 자유, 짐승 우리 속의 자유가 치료의 가치를 내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에게나 18세기의 모든 의사에게나 상상력은 육체와 영혼에 관여하고 오류의 탄생 장소이기 때문에 정신의 모든 질환에 대해 언제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속박되어 있을수록 상상력이 더욱 분방해지고, 육체를 얽매는 규칙이 엄격할수록 몽상과 상상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그리고 자유는 상상력을 끊임없이 현실과 대면시키고 아무리 기이한 공상일지라도 친숙한 행위 속에 감추므로 쇠사슬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상력을 억제한다. 상상력은 하염없는 자유 속에서 평온을 회복한다. 그래서 트농은 생-뤼크의 간수들이 선견지명을 갖고 있다고 극구 찬양하는데, 거기서는 ‘광인이 일반적으로 낮 동안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다. 이러한 자유는 이성의 제동을 받지 않는 사람의 이미 미친 듯하거나 빗나간 상상력이 완화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치료제이다.’ 따라서 이 틀어박힌 자유와 다르지 않은 수용은 그 자체가 치유의 동인(動因)이고, 수용이 치료일 수 있는 것은 실제의 치료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상력, 자유, 침묵, 한계의 작용 때문이고 동시에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조직하고 오류를 진리로, 광기를 이성으로 이끄는 움직임 때문이다. [...] / 매우 중요한 단계가 돌파된다. 즉, 수용은 공식적으로 의료활동의 위엄을 띠게 되었고, 수용의 공간은 광기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깨어 있었고 막연하게 보존되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광기가 일종의 토착적 메커니즘에 의해 저절로 제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치유의 장소가 되었다. / 중요한 것은 수용시설의 정신병원으로의 이러한 변모가 의학의 점진적 도입,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일종의 내습(來襲)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전주의 시대가 배제와 체벌의 기능만을 부여한 그 공간의 내부적 재편성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비이성의 다른 모든 형태가 점차로 수용시설에서 풀려났는데도, 수용을 광기에 대해 이중으로 특별한 장소, 곧 광기의 진실이 드러나는 장소인 동시에 광기의 소멸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만든 것은 수용이 갖는 사회적 의미의 점진적 변화, 억압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빈민구제에 대한 정치적 비판, 광기에 의한 수용 영역 전체의 전유(專有)이다. 이에 따라 수용의 공간은 광기의 행선지가 되고, 이제부터 수용과 광기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가장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기능, 이를테면 미치광이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와 질병의 치유, 이 두 기능의 조화 같은 것이 마침내 느닷없이 생겨난다. 즉 수용의 작용에 의해서만 단번에 광기의 진실이 표명되고 광기의 본질이 풀려날 뿐인 것은 수용의 비어 있는 공간에서이므로, 공공(公共)의 위험은 사라지게 되고 질병의 징후는 소멸되게 된다. / 이처럼 새로운 가치와 알려지지 않았던 움직임이 수용의 공간에 깃들 때, 오직 그때에만 의학은 보호시설을 점유하고 광기의 모든 경험을 아우를 수 있게 된다. 수용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힌 것은 의학적 사유가 아닐뿐더러, 의사들이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군림하는 것은 정복의 권리에 따른 것도 아니고, 그들의 박애주의나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관심의 생생한 활기 덕분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100여 년 전부터 점차로 광기와 비이성을 몰아낸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모든 행위와 상상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의례의 재조정으로 말미암아 수용 자체가 치료의 가치를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675-677)
 
 
“이러한 변화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해야 한다면, 아마 비이성의 경험에 고유한 특성은 비이성의 경험에서 광기가 스스로에 대해 주체였다는 것이지만, 18세기 말에 형성되는 경험에서는 광기가 대상의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소외되었다고(aliénée) 말할 수 있을 것이다.”(685)
 
“인간의 내면에 더 깊이 놓여 있는 것에 관한 심리학과 인식은 바로 공공(公共) 의식ㅇ 인간에 관한 보편적 심급으로, 이성과 도덕의 즉각 타당한 형태로 지정된다는 사실에서 탄생했다. 심리의 내재성이 추문화한 의식의 외재성으로부터 구성된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형사 재판에 관한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제도의 형태를 갖춘다. [...] 범죄성은 과거에 실행된 행위, 행해진 위배(違背)에서 획득되던 절대적 의미와 동질성을 상실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고부동하게 될 두 가지 척도, 즉 과오와 형벌을 똑 같게 만드는 척도, 이를테면 공고의식의 규범, 추문의 요구, 그리고 징벌과 폭로를 동일시하는 사법적 태도의 규칙에서 끌어온 척도, 그리고 과오의 원인에 대한 과오의 상관관계를 규정하는 척도, 이를테면 인식이나 개별적이고 은밀한 지정(指定)의 범주에 속하는 척도에 따라 나누어진다. 개인에 관한 지식으로서의 심리학을 공공의식에 입각한 판단 형태와의 근본적 관계에 따라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한다는 것을 필요할 경우 충분히 입증해줄 수 있는 분리현상. 개인 심리학은 공공의식 속에서 추문이 재편성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었다.”(693-694)
 
 
“인간의 진실이 얽매어 있었던 모든 도덕적 신화에서 인간이 해방된다면, 이 탈소외적(désaliénée) 진실의 진실은 바로 정신이상(aliénation) 자체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700)
 
 
“고전주의 시대에 나타난 광기의 경험 조건들이 결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근대적] 통일성 속에서이다. 이제 마침내 그것들의 명백한 대립 작용을 감안하여 구체적 범주의 도표를 다음과 같이 작성할 수 있다.
 
해방의 형태
보호의 구조
1. 광기를 비이성의 다른 모든 형태와 뒤섞는 수용의 철폐
1. 더 이상 배제의 땅이 아니라 광기가 자체의 진실과 합류하는 특별한 장소로서 광기에 지정되는 수용시설
2. 의료 시설 이외의 다른 목적이 없는 보호시설의 설립
2. 광기의 발현장소임과 동시에 치유공간이게 되어 있는 난공불락의 공간에 의한 광기의 감금
3. 광기가 스스로 표현되고 이해되며 광기 자체의 이름으로 말할 권리의 획득
3. 광기의 주위와 위쪽에서 전적으로 시선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광기에 대해서는 순수한 대상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종의 절대적 주체의 형성
4. 광기가 정념, 폭력, 범죄의 일상적인 진실로서 심리적 주체 속에 자리잡는 내면화
4. 가치의 비일관적 세계와 가책하는 양심의 작용 속으로 광기가 편입되는 현상
5. 광기가 심리적 진실의 역할 속에서 면책조건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의 인정
5. 도덕적 판단의 이분법적 요구에 따른 광기 형태의 분할
 
 
이러한 해방과 예속의 이중적 움직임은 근대적 광기의 경험을 밑받침하는 내밀한 토대를 이룬다.”(706) “실증주의적 정신병의 경험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한 가지 동일한 의식 행위 속에서 광기를 인식하고 동시에 제압할 가능성이다. [...]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실증적 인식이라는 중대한 주제에서 광기는 언제나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즉, 대상화되는 동시에 대상화하며, 전면에 드러나는 동시에 뒤로 물러나 있으며, 내용이자 동시에 조건이다. [...] 인간이 광인일 가능성과 인간이 대상일 가능성은 18세기 말에 합쳐졌고, 그러한 합류는 실증적 정신의 요청과 인간에 대한 객관적 학문의 주제를 동시에 낳았다(이 경우에 시기 상의 우연한 일치는 없다).”(708-709)
 
제4장. 정신병원의 탄생
 
“피넬. 그러니까 사슬이 풀리고 광인이 해방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광인이 이성을 회복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즉, 이성이 그 자체로서 저절로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광기 아래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완벽하게 정상적인 모습으로 변질도 머뭇거림도 없이 단번에 우뚝 솟아오르는 것은 바로 완전한 사회적 범주들이다. 마치 광인이 사슬로 매어 있던 야수성에서 풀려나고는 ‘사회적 유형’ 속에서만 인간성을 되찾을 뿐인 듯하다. [...] 이러한 사회적 가치체계 안에서만 그는 건강을 회복할 뿐이다. 사회적 가치 체계는 그가 건강을 회복한 징후이자 동시에 구체적 현존인 셈이다. [...] 그러나 [피넬에게] 중요한 것은 광인이 국외자로, 짐승으로, 인간 및 인간관계와 절대적으로 무관한 형상으로 취급되지 않게 되자마자, 일찍이 확정되어 있는 사회적 유형에 의해 이성의 의미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피넬이 보기에 광인의 치유는 광인을 도덕적으로 인정되고 승인된 사회적 유형에 안정적으로 꿰어 맞추는 데 있다. /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슬이 풀렸다는 사실, 이를테면 18세기에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특히 생-뤼크에서 실행되었던 그런 조치가 아니라, 그러한 해방을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주체와 오래 전부터 문학에 의해 묘사된 형상으로 가득 찬 이성 쪽으로 열어놓음으로써, 또한 야만상태로 넘어간 인간의 우리가 아니라, 미덕의 투명성 속에서만 관계가 확립될 뿐인 일종의 꿈의 공화국일 이상적 형태의 보호시설을 상상계 속에 구성함으로써 그러한 해방에 의미를 부여한 신화이다.”(733-734) “개념적인 것이 본질로, 도덕의 재구성인 것이 진실의 해방으로, 아마 광기를 거짓된 현실 속에 은밀하게 끼워 넣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 광기의 자연적 치유로 통하게 될 때,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신화라고 하는 것이다.”(736)
 
“보호시설이 광인의 죄의식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호시설은 그 이상의 것을 행한다. 즉, 광인의 죄의식을 조직한다. [...] 다시 말해, 이러한 죄의식 때문에 광인은 자신과 타자에게 어느 때이건 제공되는 징벌의 대상이 되고, 이 대상의 지위에 대한 인정과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자각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체의식으로, 따라서 이성으로 복귀하게 되어 있다. 시선에서만큼이나 노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신병자가 타자에 대해 대상화됨으로써 자유를 되찾는 이 움직임이다.”(742) “거기에서 광인은 미지(未知)의 손님이라는 미확정된 역할을 맡도록 끊임없이 요구받고, 그에 대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 쪽으로 내던져지며, 이런 식으로 시선을 통해 조용히 그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인물의 모습과 가면에 따라 자기 자신의 표면으로 끌려나와, 합리적 이성의 눈앞에서 완전한 국외자로, 다시 말해서 야릇함이 인식되지 않는 국외자로 대상화되기를 권유받는다. [...] 저주의 세계에서 심판의 세계로의 변화. 광기의 심리학.”(745) “과거에는 비이성에 대한 이성의 승리가 물리력(物理力)에 의해서만, 일종의 실제적 싸움 속에서만 확보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싸움ㅇ 언제나 이미 끝나 있을뿐더러, 광인과 비광인이 맞서는 구체적 상황에 비이성의 패배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 19세기 정신병원에 속박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비이성이 해방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광기가 오래 전부터 제압된 상태라는 것을 말해준다. / 보호시설에 군림하는 이 새로운 이성에 대해 광기는, 절대적 모순의 형태가 아니라, 이제 오히려 미성년, 즉 자율권이 없고 이성의 세계에 기대서만 존속할 뿐인 모습을 띤다. 광기는 유년기이다. [...] 여기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은거처’에서 정신병자와 감시인의 공동체가 갖는 ‘대가족’의 모습이다. 겉보기에 이 ‘가족’은 환자를 정상적이고 동시에 자연스러운 환경 안에 위치시키는 듯하지만, 사실은 환자를 더욱 더 소외시킨다. 즉, 광인에게 지정되는 법적 미성년의 지위는 법적 주체로서의 광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예부터의 구조가 공존의 형태로 변하면서부터는 심리적 주체로서의 광인을 이성인의 권한과 위세에 전적으로 내맡겨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에 따라 이성인은 광인에게 구체적인 성인(成人)의 모습, 다시 말해 지배와 합목적성의 모습을 띤다. [...] 이성은 광인에 대해 아버지의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된다.”(747-750)
 
“보호시설, 종교 없는 종교적 영역, 순수한 도덕과 윤리적 획일화의 영역. [...] 이제 보호시설은 사회도덕의 커다란 연속성을 형상화하게 되어 있다. 보호시설에는 가족과 노동의 가치, 즉 사회적으로 인정된 모든 미덕이 군림한다. [...] 보호시설에서는 사회의 기본적 미덕에 대립하는 모든 것이 비난받을 것이다. [...] 보호시설의 목적은 도덕적 균질의 확산이자, 도덕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엄격한 도덕의 부과이다. [...] 피넬에 의해 [정신병원에서] 실행되는 활동은 비교적 복잡하다. 즉, 부르주아 도덕에 사실상의 보편성을 보장하고 부르주아 도덕이 정신이상의 모든 형태에 법처럼 부과해줄 사회적 격리를 실행하면서도 도덕적 통합을 수행하는 것, 말하자면 광기의 세계와 이성의 세계 사이에 윤리적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다.”(753-756)
 
 
* 피넬의 보호시설이 보여주는 4 가지 특유한 구조
 
1) 침묵. “이제 대화는 단절되고 침묵은 절대적이다. 광기와 이성 사이에는 더 이상 공통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부재만이 정신착란의 언어에 부합하는데, 이는 정신착란이 이성과의 단편적 대화가 아닐뿐더러 사실상 전혀 언어가 아니고 마침내 조용해진 의식 속에서 오직 과오만을 가리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공통의 언어는 인정된 죄의식의 언어이게 됨에 따라 다시 가능해지게 된다. [...] 언어의 부재는 보호소 생활의 근본적 구조로서 고백의 활성화와 상관관계가 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서 신중하게 교환을 다시 꾀하게 될 때, 더 정확히 말해서 이제부터 독백 속에서 부스러지는 그러한 언어의 청취를 새롭게 시작하게 될 때 들려오는 진술은 언제나 과오의 표명이게 마련이라는 점에 놀랄 필요가 있을까? 그 뿌리 깊은 침묵 속에서 과오는 말의 원천 자체를 획득했다.”(759)
 
2) 거울 속에서의 자기확인. “광기는 스스로를 보게 도고 스스로에 의해 보여지게 된다. 이를테면 바라봄의 순수한 대상임과 동시에 바라봄의 절대적 주체이게 된다.”(759)
 
3) 영원한 심판. “광인보호시설은 사법적 소우주이다. [...] 피넬의 보호시설에서 실행되는 사법은 억압의 방식을 다른 사법기관에서 빌려오지 않고 자체적으로 창안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18세기에 퍼져나간 치료방법을 징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피넬의 ‘자선’ 및 ‘해방’ 활동에서 의료행위가 사법행위로, 치료술이 억압으로 바뀌는 이러한 전환은 예사로운 역설이 아니다. [...] 처벌의 이 거의 산술적인 명백성, 필요한 만큼 반복되는 징벌, 억압을 통한 과오의 확인, 이 모든 것은 사법 심급의 내면화로, 더 나아가 환자의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후회의 출현으로 이르게 마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심판자는 징벌이 환자의 의식 속에서 한 없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징벌을 중단시킨다. [...] 순환 과정이 이중으로 완결된다. 즉, 과오는 처벌되고, 과오의 장본인은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다. [...] 피넬을 그 영광스러운 설립자로 간주할 수 있는 실증주의 시대의 보호시설은 관찰, 진단, 치료의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라, 광인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으며 유죄를 선고받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소송이 심층심리 속에서 뉘우침으로 해석됨으로써만 광인이 풀려날 수 있을 뿐인 사법적 공간이다. 광기는 설령 보호시설 밖에서 결백을 선고받는다 해도 어김없이 보호시설에서 처벌받게 된다. 광기는 오랫동안 적어도 오늘날까지는 도덕의 세계에 유폐되어 있다.”(763-767)
 
+ 4) 의료인의 신격화. “보호시설에서 호모 메디쿠스(homo medicus)가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학자로서가 아니라 현자(賢者)로서이다. 의사직이 요구된다 해도, 이는 과학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과 도덕의 보증으로서이다.”(768) “의사는 의료실천이 매우 오랫동안 질서, 권위, 징벌의 낡은 의례에 주석을 붙이기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사는 처음부터 아버지 겸 재판관, 가족 겸 법임에 따라서만 보호소 세계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771) “피넬에서 프로이트까지 19세기 정신의학의 인식과 실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객관성의 깊은 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그 객관성이 처음부터 마술적 질서의 사물화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데, 그러한 사물화는 환자 자신의 암묵적 동조에 힘입어서만, 그리고 처음에는 투명하고 분명했으나 실증주의에 의해 과학적 객관성의 신화가 강요됨에 따라 점차로 잊힌 도덕의 실천에 입각해서만, 즉 기원과 의미는 잊혔으나 언제나 활용되고 언제나 현존하는 실천에 입각해서만 실현될 수 있었다. 정신의학의 실천이라 불리는 것은 시기적으로 18세기 말과 겹치고 보호소 생활의 의례에 보존되어 있다가 실증주의의 신화에 의해 재발견된 어떤 도덕적 전술이다. [...] 피넬과 튜크가 수용을 통해 정비한 모든 구조를 프로이트는 의사 쪽으로 넘어가게 했다. 그는 환자들의 ‘해방자들’이 환자를 소외시켰던 그러한 보호소 생활로부터 환자들을 그야말로 구출했지만, 그러한 생활에 스며들어 있던 근본적인 것으로부터 환자를 구해내지는 못했고, 환자에 대한 권력을 통합하고 최대로 확대하여 의사의 수중으로 몽땅 넘겼으며, 의사 안에서 정신이상이 주체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기막힌 접속 회로를 통해 정신이상이 정신이상의 극복수단이게 되는 정신분석 상황을 만들어냈다. / 의사는 개인의 자주성을 박탈하는 형상으로서 여전히 정신분석의 열쇠이다.”(774-776)
 
제5장. 인간학의 악순환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는 침묵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 광기는 그 자체로 말이 없는 것이다. 즉, 고전주의 시대에는 광기를 위한 자율적 언어 또는 광기가 자기에 관해 진실한 언어를 말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광기의 문학이 없다.”(785)
 
 
“인간에 관한 19세기의 성찰 전체를 지배한 막연한 진실 하나. 인간에게 있어서 객관화의 본질적 계기는 광기로의 이행과 동일할 뿐인 것이다. 광기는 인간의 진실이 대상 쪽으로 옮겨가고 과학적 인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움직임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중요한 형태이다. 인간은 ‘광기’의 가능성이 있음에 따라서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연’이 될 뿐이다. 광기는 객관성으로의 자연발생적 이행으로서, 인간의 대상화를 성립시키는 구성적 계기이다. [...] ‘인간’에서 ‘참된 인간’으로 이르는 길이 ‘미친 인간’을 통과하는 셈이다. 19세기의 사유에 의해서는 결코 정확한 지리(地理)가 저절로 드러나지 않지만, 카바니스에서 리보와 자네까지 줄기차게 답습되는 길. 분열현상의 분석에 의거한 인격 심리학, 건망증에 의거한 기억 심리학, 실어증에 의거한 언어 심리학, 정신박약에 의거한 지능 심리학 등 19세기에 탄생한 ‘실증’ 심리학의 역설은 그것이 부정성(否定性)의 계기로부터만 가능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진실은 인간이 사라지는 순간에만 말해질 뿐이고, 이미 다른 것이게 된 상태로만 드러날 뿐이다.”(797-798)
 
“이러한 이타성(異他性, altérité) 속에서 광인은 자기 동일성의 진실을, 그것도 ‘정신이상’(aliénation)의 수다스런 움직임 속에서 끝없이 드러낸다. 광인은 더 이상 고전주의적 비이성의 분할된 공간에 갇힌 ‘미치광이’(l'insensé)가 아니라, 질병의 근대적 형태에 들어맞는 ‘정신병자’(l'aliéné)이다.”(801)
 
 
“피넬의 도덕적 가책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게 된 보호시설은 어떤 것에도 소용이 없었고, 현대 세계를 광기의 대단한 재상승(再上昇)으로부터 보호하지도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보호시설은 쓸모가 있었고 정말로 소용이 되었다. 그것은 광인을 비인간적 쇠사슬로부터 해방시켰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그의 진실을 광인에 연관되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진실한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게 접근하지만, 이 진실한 존재는 정신이상(aliénation)의 형식 속에서만 인간에게 주어질 뿐이다. / 아마 우리는 순진하게도 150년의 역사를 가로질러 광인이라는 심리적 유형을 묘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광인의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심리학의 출현 자체를 가능케 한 것의 역사를 물론 발견의 연대기나 사상사의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 경험구조의 연쇄에 따라 서술했다는 점을 그야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19세기부터 서양세계에 특유한 문화적 현상, 즉 근대인에 의해 규정되었지만 거꾸로 근대인을 규정하게 되는 두루뭉실한 전제, 이를테면 ‘인간은 진리에 대한 어떤 관계로 특징지어지지 않지만 진리를 자기 자신에게만 속할 뿐이면서 드러나고 동시에 감추어지는 것으로서 보유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 머리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써보자면, ‘심리학적 인간정신이 사로잡힌 인간의 후손이다(l'homo psychologicus est un descendant de l'homo mente captus).”(803-804)
 
 
*
 
 
“고야의 경우처럼 사드의 경우에도 비이성은 어둠 속에서 계속 잠깨어 있지만, 이 깨어있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힘과 관계를 맺는다. 비이성의 과거 모습이었던 비존재는 이제 파괴의 힘이 된다. 사드와 고야를 통해 서양세계는 폭력 속에서 이성을 초월하고 변증법의 장래성을 넘어 비극 경험을 되찾을 가능성을 결실로 거두었다.”(811) “사드와 교야 이후로 비이성은 모든 작품에서 근대 세계에 대해 결정적인 것, 다시 말해서 모든 작품이 내포하는 살인적이고 강압적인 것에 속한다. / 타소의 광기, 스위프트의 우울증, 루소의 망상은 그들 작품 자체가 그들에게 소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작품에 특유한 것이다. [...] 니체의 광기나 반 고흐의 광기 또는 아르토의 광기는 아마 더 깊지도 덜 깊지도 않게일 터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토대를 두고서 그들의 작품에 속한다. [...] 횔덜린과 네르발 이래로 광기에 ‘빠져든’ 작가, 화가, 음악가의 수는 크게 증가했지만, 이 점에 대해 잘못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광기와 작품 사이에 더 지속적인 타협도, 교환이나 언어들 사이의 소통도 없었다. 광기와 작품의 대립은 예전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광기와 작품의 분쟁은 이제 용서가 없으며, 광기와 작품의 작용은 삶과 죽음에 관련된다. [...] 광기는 작품의 절대적 단절이고, 시간 속에서 작품의 진실에 근거가 되는 소멸의 계기를 형성하며, 작품의 외부 가장자리, 작품의 붕괴선(崩壞線), 공백을 배경으로 한 작품의 윤곽을 나타낸다.”(812-814)
 
 
“니체가 마침내 미쳐버린 1888년의 정확한 날짜, 그의 글이 철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정신의학의 영역에 속하기 시작하는 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스트린드베르그에게 보낸 우편엽서를 포함하여 모든 글을 니체의 것이고, 그의 모든 글은 『비극의 탄생』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속성을 체계, 전체적 주제, 심지어 삶의 차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즉, 니체의 광기, 다시 말해서 사유의 붕괴는 그의 사유가 근대 쪽으로 열리는 통로이다. 니체의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니체의 사유를 우리에게 현존하게 만드는 것이고, 니체의 사유를 니체에게서 박탈한 것은 니체의 사유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광기가 작품과 근대세계에 공통된 유일한 언어(비장한 저주의 위험, 정신분석의 전도되고 대칭적인 위험)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으로 집어삼켜지고 세계의 무의미를 드러나게 하며, 병적인 것의 특성 아래에서만 미화되는 듯한 작품이 사실은 광기에 의거하여 세계의 시간을 끌어들이고 제압하며 조종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의 시간을 중단시키는 광기에 의해 작품은 공백, 침묵의 시간, 대답 없는 물음을 접근 가능하게끔 열어놓고, 세계가 정말로 의문의 대상이지 않을 수 없게끔 끝없는 분열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어쩔 수 없이 신성모독적인 것은 뒤집히고, 정신장애로 붕괴된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세계는 죄의식을 맛본다. 이제부터 광기의 저주 때문에 (서양 세계에서 역사상 최초로) 작품에 대해 유죄이게 되고, 광기에 의해 논고(論告)당하며, 광기의 언어를 따르도록 강요당할 뿐만 아니라, 고백 또는 개선(改善)의 책무, 이 비이성‘에 대해’ 동기를 설명하고, 이 비이성‘을 정당하게’ 평가할 책무에 얽매인다. 작품이 잠겨드는 광기는 우리의 작업공간이고, 우리의 작업을 끝내기 위해 가야할 무한한 길, 우리가 사도이자 동시에 주석가로서 떠맡아야 할 소명이다. 그래서 니체의 오만에, 반 고흐의 겸허에 광기의 목소리가 언제 최초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는가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광기는 작품의 마지막 순간으로서만 있을 뿐이고, 작품은 광기의 극한으로 광기를 한없이 밀어내며, ‘작품이 있는 곳에 광기는 없지만’, 광기는 작품의 진실에 내포된 시간의 막을 여는 까닭에, 작품과 시기를 같이한다. 작품과 광기가 함께 태어나고 완성되는 순간은 세계가 작품에 의해 소환되고 작품 앞에서 세계 자체의 모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시간의 시초이다. / 광기의 책략의 새로운 승리. 즉, 심리학에 의해 광기를 헤아려보고 광기를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는 심리학의 노력과 논쟁 속에서 니체, 반 고흐, 아르토의 과도함 같은 작품의 극단성과 씨름하므로, 이 세계가 결백을 입증받아야 하는 덧은 바로 광기 앞에서이다. 그리고 이 세계 안의 어떤 것도, 특히 이 세계가 광기에 관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광기의 작품들에 의해 이 세계가 정화된다는 것을 이 세계에 확신시키지 못한다.”(814-815)
 
 
 
 
 
 
 
 
 
 
* 광기와 정상의 정치적 역사
 
 
“자신의 합리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합리성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근거가 결코 과학적으로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박정자 옮김, 그린비, 2012), 80쪽.
 
 
번역된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 원문을 찾아보았는데, 국역본의 뉘앙스가 조금 애매한 듯하여 원문과 나의 번역을 올려본다.
 
 
우선 원문은 <<말과 글>>(Dits et ecrits) 두 권짜리 2001년 카르토판 167쪽이다.
 
"il faut demander compte à la recherche du choix de sa rationalité; il faut l'interroger sur un fondement dont on sait déjà qu'il n'est pas l'objectivité constituée de la science; il faut l'interroger enfin sur le statut de la vérité qu'elle confère elle-même à la science puisque c'est son choix qui fait de la vraie psychologie une psychologie vraie."
 
 
“우리는 [심리학적] 연구에 자신의 합리성 선택에 대한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과학으로부터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하나의 기초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심리학적 연구가 과학에 대해 스스로 부여하는 진리의 지위에 대해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참된 심리학으로부터 하나의 ‘참된’ 심리학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심리학의 [배제라는] 선택 자체이기 때문이다.”(167)
 
 
그런데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한 페이지 전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형식의 심리학이 갖는 역사적 아 프리오리들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과학적인가 아닌가라는 배제의 양식에 기초한 가능성이다.”(166)
 
 
그리고 이 말은 다시 그로부터 4년 후인 1961년에 발표되는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설명해준다.
 
 
“광기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ㆍ의학적 지식은 암묵적으로 그에 앞서는 비이성에 대한 윤리적 경험의 성립에 바탕을 두고 있다.”(185)
 
 
“금기가 신경증으로 변화되는 과정의 중간 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도덕적 책임 곧 윤리적 관점에서 행해지는 죄의식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192)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정신병리학까지도) ‘자연인’ 혹은 모든 질병 경험 이전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고 평가된다. 사실 이러한 정상인이라는 개념은 창안물이고, 정상인을 위치시켜야 하는 곳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인’을 사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며, 따라서 광인이 광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 광인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 상태의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 광인이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 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관한 ‘실증’ 과학, 그리고 광인을 인간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 인도주의적 진단은 일단 이러한 종합이 이룩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이 종합은 이를테면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정신병리학 전체의 구체적인 ‘아 프리오리’를 구성한다.”(244)
 
“순수한 심리적 의학은 광기가 죄의식의 영역으로 양도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523)
 
 
“인간이 광인일 가능성과 인간이 대상일 가능성은 18세기 말에 서로 합쳐졌고, 그러한 합류는 실증적 정신의학의 전제와 동시에 객관적 인간학의 주제를 낳았다(이 경우에 시기상의 우연한 일치는 없다).”(709)
 
그리고 이 모든 말은 푸코가 같은 책에서 라틴어로 적어 내려간 다음과 같은 명제 형식 아래 명료히 정식화된다.
 
심리학적 인간정신이 사로잡힌 인간의 후손이다.”(804)
 
"l'homo psychologicus est un descendant de l'homo mente captus."(원서, 549)
 
 
그리고 이 말은 푸코가 1961년 플롱 판 『광기의 역사』 맨 앞부분에 제사(題辭)로 사용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일기』로부터 인용한 다음 문장과는 정반대의 의도에서 이 책을 썼음을 확인시켜준다.
 
 
 
 
 
“사람들이 자신의 ‘양식’을 스스로 확신하는 것은 자신의 이웃을 감금함으로써가 아니다.”(원서 1961, 7)
 
결국 푸코가 라틴어로 적어 내려간 위의 한 마디 말이야말로 방대한 『광기의 역사』 전체를 요약해주는 한 마디이자, 후에 1975년 푸코가 발표하는 『감시의 처벌』의 주된 테제 곧 심리학과 광의의 정신의학이 -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과학적’이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 일종의 ‘과대망상적인’ ‘심리학화’(psychologisation)의 기제, 달리 말해 ‘감시와 처벌’이라는 이른바 ‘정상화’(normalisation) 기제를 통해 근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통제’의 원리가 되었다는 푸코의 가설을 정당화해주는 근원이다.
 
 
 
 
 
* “영혼은 육체의 감옥이다.”(『감시와 처벌』, 62). 피타고라스 혹은 플라톤, 구약 혹은 예수 이래 '서양'을 구성한 문명 도식이었던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말을 뒤집은 푸코의 결정적 한 마디.
 

2014. 2. 7.

représentation

 
 
 
 
 
<말과 사물>, 3장 재현하기, 4절 이중화된 재현(109-115/77-81)
 
 
“그렇지만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와 관련하여 [...] 의미되는 것에 대한 의미하는 것의 관계가 놓이게 되는 공간에서는 이제 의미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의 마주침이 어떤 매개 형상[닮음]에 의해서도 보장되지 않는다. 의미되는 것에 대한 의미하는 것의 관계는 인식의 내부에서 한 사물의 관념과 또 다른 사물의 관념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이다. <포르루아얄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호는 두 가지 관념, 재현하는 사물의 관념과 재현되는 사물의 관념을 내포한다. 기호의 본질은 후자에 의해 전자를 유발하는 데 있다." 기호에 관한 이원적인 이론. 이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더 복잡한 조직과 분명하게 대립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기호의 이론은 완전히 별개인 개의 요소, 즉 표시되는 것, 표시하는 것, 후자[표시하는 것]에서 전자[표시되는 것]의 표지(marque)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을 전제로 했다. 여기에서 이 마지막 요소는 닮음(ressemblance)이었다. 기호에 의해 지시되는 것과 기호가 ‘거의 동일한 사물’인 범위 내에서 기호는 어떤 것을 표시했다. 바로 이 삼중의 단일한 체계가 ‘닮음에 의한 사유’와 동시에 사라지고 엄밀한 이항 구조로 대체된다.
 
 
 
그러나 기호가 이와 같은 수수한 이원성이기 위해서는 하나의 조건이 충족되어야한다. 의미하는 요소는 또 다른 관념이나 이미지 또는 지각과 결합하거나 이것을 대신하는 관념이나 이미지 또는 지각이라는 것만으로는 기호가 될 수 없다. 의미하는 요소(l'élément signifiant)는 자신이 의미하는 것에 자신을 연결하는 관계를 추가적으로 드러낸다는 조건에서만 기호가 된다. 의미하는 요소는 무언가를 재현해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의미하는 요소 안에 이 재현이 들어 있어야 한다(Il faut qu'il représente, mais que cette représentation, à son tour, se trouve représentée en lui). 이것은 기호의 이항조직에 필수적이고, <포르루아얄의 논리>가 기호란 무엇인가를 말하기에 앞서 표명하는 조건이다. "어떤 하나의 대상이 또 다른 대상을 재현하는 것으로만 간주될 때, 이 하나의 대상에 대한 관념은 기호의 관념이고, 이 최초의 대상은 기호라 불린다[우리가 하나의 대상을 오직 그것이 다른 어떤 대상을 재현하는 한에서 바라보게 될 때, 우리가 그것에 대해 갖는 관념은 기호에 대한 관념이며, 이 첫 번째 대상은 기호라 불린다]."(Quand on ne regarde un certain objet que comme en représentant un autre, l'idée qu'on en a est une idée de signe, et ce premier objet s'appelle signe) 또 다른 관념을 대체하는 관념에 재현하는 힘의 관념이 겹치는 만큼, 의미하는 관념은 양분된다(l'idée signifiante se dédouble). 세 가지 항목, 즉 의미되는 관념과 의미하는 관념 그리고 후자에 내포된 재현하는 역할의 관념이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는 3항 체계로의 은밀한 회귀가 아니다. 오히려 2항 현상의 불가피한 괴리 현상인데, 이 형상은 스스로에 대해 뒤로 물러나, 의미하는 요소의 내부에 온전히 놓인다. 사실 의미하는 것의 모든 내용, 모든 기능, 모든 한정은 의미하는 것이 재현하는 것일 뿐이지만, 즉 의미하는 것은 스스로 재현하는 것에 대해 전적으로 정연하고 투명하지만, 이 내용은 그 자체로 주어지는 재현[작용] 속에서만 지정되고, 의미되는 것은 기호에 의한 재현[작용]의 내부에 어떠한 나머지도 불투명성도 없이 자리 잡는다. <포르루아얄의 논리>가 제시하는 기호의 기본적인 표본이 말도 소리도 상징도 아니며, 선이나 도형으로 된 공간상의 재현, 곧 지도 혹은 도안(圖案, 表)와도 같은 그림(dessin)이라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이는 사실 도표(tableau)가 스스로 재현하는 것만을 내용으로 하고, 또 이 내용은 재현 작용에 의해 재현된 것으로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17세기에 출현하는 바와 같은 기호의 이항배치는 스토아학파 이래, 심지어는 최초의 그리스 문법학자들 이래, 양태가 서로 다르긴 하지만 언제나 3원적[표시되는 것, 표시하는 것, 후자에서 전자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닮음)]이었던 구조를 대신하는데, 이 배치는 기호그 자신에 대해 이분화되고 이중화된 하나의 재현이라는 것(le signe est une représentation dédoublée et redoublée sur elle-même))을 전제로 한다. 하나의 관념이 또 다른 관념의 기호일 수 있는 것은 두 관념 사이에 재현[작용]의 관계가 확립될 수 있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재현의 관념 내부에서 이 재현이 언제나 표시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는 본질적으로 재현이 스스로에 대해 언제나 수직을 이루기 때문이다. 재현은 지시인 동시에 출현, 곧 하나의 대상에 대한 관계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발현이다(elle est à la fois indication et apparaître; rapport à un objet et manifestation de soi)이다. 고전주의 시대 이래, 기호는 재현이 재현 가능한 한도 내에서 재현작용이 갖는 재현성이다(le signe, c'est la représentativité de la représentation en tant qu'elle est représentable).”
 
 
 
 
 
 
 
 
Michel Foucault interviewé à propos de son livre
« Les Mots et les Choses. Une archéologie des sciences humaines » (1966)
par Pierre Dumayet.
 
 
 
 

2014. 1. 24.

ceci n'est pas une pipe 4


 
겉으로 보기엔 마그리트보다 칸딘스키나 클레에게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의 그림은 그 누구의 그림보다 정확한 유사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의 작품은 유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인 듯 고의적으로 유사를 배가시키는 데에까지 이를 정도이다. [...] [마그리트의 그림은] 어떤 그림보다 더 철저하게, 가혹하게 글씨 요소와 조형 요소를 분리시키는 데 전념하고 잇는 회화이다. 그것들이, 그림설명과 그것이 설명하는 이미지가 그러한 것처럼, 화폭 내부에서 포개지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언표가 형상의 명백한 정체성을 그리고 그 형상에 부여될 준비가 갖추어진 이름을 부인하는 조건 아래에서 그러하다. 달걀과 꼭 닮은 것이 아카시아라 불리우며, 구두와 닮은 것이 이라고, 중산모는 ()이라고, 초는 천장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마그리트의 회화는 클레나 칸딘스키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차라리 그것들과 정면으로 마주서서 그리고 그것들의 공통된 체계로부터 출발하여, 대립적이면서도 보족적인 형상을 이룩한다.”(43-45)




 
IV. 말들의 은밀한 작업
 
그림글씨(graphisme)와 조형적인 것(la plastique)[상호] 외재성은, 마그리트에게서는 그렇게도 분명한 것인데, 그림과 제목 사이의 무(, non) 관계 혹은 어쨌든 아주 복잡하고 아주 우연적인 관계로 상징된다. [...] ‘제목들은, 사유의 자동성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 그림들을 불가피하게 친숙한 지점에 위치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선택된다.’”(47)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말과 이미지의 놀이를 펼친다.”(50)



 
클레는 자기의 조형 기호를 배치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짰다. 마그리트는 재현의 낡은 공간이 지배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지만 표면상으로만 그렇다. 그 공간이란 게 형상들과 말들을 갖고 있는 미끈한 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무덤의 평석 같은 것이다. 형상을 그리는 홈과 문자를 표시하는 홈은 오직 텅 빔(le vide)에 의해서만, 단단한 대리석 밑에 숨겨져 있는 그 비-공간(non-lieu, 免訴)에 의해서만 소통한다.”(56)
 



 
그리고 말이 대상의 단단함을 취하고 있을 때면 [...], 말과 대상은 함께 하나의 형상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정반대로 상이한 두 방향을 향하고 있다.”(57)

perspective: mme. récamier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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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l'usage de la parole 말의 활용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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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확언의 일곱 봉인
    
 
 
내가 보기에, 마그리트는 유사(類似, ressemblance)에서 상사(相似, similitude)를 분리해내고, 후자[상사]를 전자[유사]와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 같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 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하다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며,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면서 퍼져 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되풀이에 쓰이며, 되풀이는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모델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모델을 다시 이끌고 가 안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모의(模擬, simulacre)를 순환시킨다.”(61)
 
 
유사(類似, ressemblance)
상사(相似, similitude)
동일자(同一者) identité
차이 différence, 타자(他者) autre
모델-사본
modèle-copie
환영(幻影), 시뮬라크르
simulacre, phantasma
재현[표상(表象)] représentation
되풂, 되풀이[반복] répétition
 
 
이제 상사는 자신(자기, soi)에게로 돌아간다-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펼쳐졌다가, 다시 자신 위로 접히는 것이다. [...] 거기에서 마그리트에게 보여지는, 화폭 밖으로 절대 넘쳐나지 않는 순수해진 상사의 한없이 놀이들이 생겨난다. 그 놀이들은 변신의 기초를 이룬다.”(70-71)



 
화폭과 그것이 모방해야 하는 것 사이의 내적 거리, 빗나감, 차이.”(72)
 
 
완전한 차이의 놀이”(74)
 



61.

représenation 재현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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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nk floyd, ummagumma,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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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n.wikipedia.org/wiki/Ummagumma



63.

décalcomanie 데칼코마니 1966





71.

자연의 은총  les graces naturelles 1948





눈물의 맛 la saveur des larmes 1948




71.

부인 la dame, 병 la bouteille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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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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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과대망상증 folie des grandeurs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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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조건 la condition humaine 1935





1933

Paysages 106


73.

폭포 la cascade 1961




떨어지는 저녁 le soir qui tombe 1964





la lunettes d'approche 망원경 1963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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