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6.

칸트, 판단력 비판 - 제1편 제1절 제2권 2 [299-379]



#31-#45 [299-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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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판단의 연역의 방법에 대하여
 
 
취미판단의 경우 우리의 눈앞에 어떠한 인식판단, 즉 지성에 의한 자연 일반의 개념을 기초에 두는 이론적 인식판단도, 이성에 의해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인 자유의 이념을 기초에 두는 (순수한) 실천적 인식판단도 갖지 않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사상이 무엇인가를 표상하는 판단도, 또 내가 어떤 사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실행해야만 한다는 판단을 타당성의 면에서 선험적으로 정당해야 할 필요는 없다. (299페이지)
 
 
취미판단이 실제로 그러하듯-이중적인, 그러면서도 논리적인 특유성을 갖는다. 곧 그것은 (1) 첫째로 선험적 보편 타당성을 갖는바, 그러면서도 그것은 개념들에 따른 논리적 보편성이 아니라, 단칭판단의 보편성이다. (2) 둘째로 그것은 필연성을 가지는바, 그러나 이 필연성은 어떠한 선험적인 증명근거들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 그러하니 취미판단이 누구에게나 요구하는 찬동은 어떤 선험적 증명근거의 표상을 통해 강요될수 있는것이 아닐 것이다.(300페이지)
 
 
취미판단의 첫째 특유성
 
 
취미판단은, 마치 객관적인 것처럼, 모든 사람의 동의를 요구주장하면서 그 대상을 흡족의 관점에서 규정하는것이다.
 
 
“이 꽃은 아름답다” 고 말하는것은 그 꽃자신이 모든 사람의 흡족을 요구주장한다고 단지 따라 말하는것과 똑같다. 꽃은 그 향기의 쾌적성을 가지고서는 전혀 아무런 요구 주장도 하지 않는다. 이 향기는 어떤 사람은 즐겁게 하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두통을 일으킨다.
 
 
⇒ 미란 꽃 자신의 속성으로 간주될수밖에 없는것으로, 사람들이 꽃에 관해 판단하고자 할때, 이 속성이 서로 다른사람들과 서로 다른 수많은 감관들을 따르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다른 사람과 감관들이 이 속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고 추측할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바로 취미판단이란 어떤 사상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방식을 따르는 그러한 성질의 면에서만 그 사상을 아름답다고 부른다는 데에서 성립하는것이기 때문이다. (301페이지)
 
 
취미판단은 전혀 개념들에 기초하고 있지 않으며, 도무지 칸트의 인식판단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미감적 판단일 따름이다.
 
 
“한 젊은 시인은 자기의 시가 아름답다(미적이다)는 신조를 대중의 판단에 의해서도, 자기의 친구들의 판단에 의해서도 굽히려고 하지 않는다.
 
 
⇒ 취미는 자율만을 요구 주장한다. 타인의 판단들을 자기 판단의 규정근거로 삼는 것은 타율일 터이다.(302페이지)
 
 
취미판단의 둘째 특유성
 
 
취미 판단은, 마치 한낱 주관적인 것처럼, 증명근거들에 의해서는 전혀 규정될 수 없다.
 
 
누군가가 어떤 건물이나 조망이나 시를 아름답다고 보지 않는다.
 
 
1) 첫째로 그는 백사람이 모두 한목소리로 그것을 높이 찬양해도 내심으로는 그에 찬동을 보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취미판단을 누구에겐가 강요할 수 있는 경험적 증명근거는 없다. (304페이지)
 
 
2) 둘째로 일정한 규칙들에 따르는 선험적 증명은 더더욱이나 미에 관한 판단을 규정할 수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의 시를 읽어주거나 또는 어떤 연극을 보여주는데, 그것이 결국에는 내 취미에 맞지 않는다면, 그가 바토나 레싱또는 그보다 더 옛날의 더 유명한 취미 비평가들과 그들에 의해 세워진 규칙들을 자기 시가 미적이라는 논거로 끌어낸다 해도, 또 바로 나에게 적의하지 않은 어떤 구절들이 미의 규칙들과 아자 잘 부합한다 해도, 나는 나의 귀를 막고, 어떠한 논거와 어떠한 이성논변도 듣고 싶어 하지 않으며, 나의 판단이 선험적인 증명근거들에 의해서 규정되어야 한다기 보다는 비평가들의 저 규칙들이 잘못된 것이거나, 적어도 이경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305페이지)
 
 
‘모든 튤립은 아름답다’와 같은 하나의 전칭판단을 만들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취미판단이 아니라, 객관과 취미의 관계를 어떤 종류의 사물들 일반의 술어로 만드는 하나의 논리적 판단이다. 그러나 내가 주어진 하나하나의 튤립을 아름답다고 보는, 다시말해 그 튤립에 대한 나의 흡족이 보편타당하다고 보는 판단은 다만 취미판단이다. (306페이지)
 
 
취미의 객관적 원리란 있을수 없다.
 
 
취미 비판 자신은 우리에게 객관을 주는 표상에 관해서는 단지 주관적인 것이다. 곧 취미 비판은 주어진 표상에서의 지성과 상상력의 서로에 대한 교호적 관계를, 그러니까 이 두 능력들의 일치 또는 불일치를 규칙들 아래서 보내서, 이 능력들을 그것들의 조건들에 관하여 규정하는 기술(기예)또는 학문이다. 취미 비판은 학문이다. (307페이지)
 
 
취미의 원리는 판단력 일반의 주관적 원리이다.
 
 
논리적 판단 - 어떤 표상을 객관의 개념들 아래에 포섭하는 것에 반해,
취미 판단 - 그것을 전혀 어떤 개념 아래 포섭하지 않는다는데에 있다.
 
 
취미판단은 객관의 개념들에 의해서는 아니고, 따라서 한낱 주관적인 보편성과 필연성을 내세우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상상력이 개념 없이 도식화 한다는 바로 그점에 상상력의 자유가 성립되기 때문에 취미 판단은 교호적으로 생기를 넣어주는 자유속에 있는 상상력과 합법칙성과 함께 있는 지성을 한낱 감각하는데에 의거하며, 그러므로 대상이 자유롭게 유희하는 그 인식능력을 촉진하도록 대상을 표상의 합목적성에 따라서 판정하게 하는 감정에 의거한다. (309페이지)
 
 
 
취미판단에서 대상에 대해 본래 무엇이 선험적으로 주장되는가?
 
 
취미에서의 쾌감은 일체의 개념에 앞서서 순전한 판정과 직접적으로 결합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 하나의 취미 판단에서 판단력을 위한 보편적 규칙으로서 선험적으로, 누구에게나 타당한 것으로, 표상되는 것은 쾌감이 아니라, 마음에서 어떤 대상의 한갓된 판정과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지각되는 이 쾌감의 보편 타당성. 내가 어떤 대상을 쾌감을 가지고 지각하고 판정한다는 것은 하나의 경험판단이다. (312페이지)
 
 
감각의 전달 가능성에 대하여
 
 
감각이 지각의 실재적인 것으로서 인식에 관계된다면, 그것은 감관감각이라고 일컫어지며, 만약 누구나 우리것과 똑같은 감관을 갖는다는것을 상정한다면 감관감각의 특종적인 질은 오직 똑같은 방식으로 일관되게 전달수 있는 것으로 표상되겠지만, 이것은 감관감각에 대해서는 절대로 전제되지 못한다.
 
 
후각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에게서 이 종류의 감각은 전달될수 없고 또한 그에게 후각이 없지는 않다고 해도, 과연 그가 한송이의 꽃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가지는것과 똑같은 감각을 가지는지는 확신할수가 없다.
 
 
⇒ 그러나 우리는 감관들의 동일한 대상에 대한 감각에서의 쾌적함 또는 불쾌적함과 관련해서는 사람들이 한층 더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으며, 그와 같은 대상들에서의 쾌감이 누구에게나 승인될것이라고는 절대로 요구될 수 없다. 이러한 종류의 쾌감은, 감관을 통해 마음안으로 들어오는 것이고, 그러므로 수동적이기 때문에 향수의 쾌감이라고 부를수 있다. (315페이지)
 
 
그에 반해 어떤 행위에서 그 행위의 도덕적 성질 때문에 느끼는 흡족은 향수의 쾌감이 아니라, 자기활동의 쾌감이며, 이 자기활동이 그의 규정의 이념에 적합함의 쾌감이다. (316페이지)
 
 
그에 반해 미적인 것에서의 쾌감은 향수의 쾌감도, 법칙적 활동의 쾌감도 아니고, 이념들에 의한 이성 논변적 관조의 쾌감도 아니며, 순전한 반성의 쾌감이다.(316페이지)
 
 
일종의 共通感(공통감)으로서의 취미에 대하여
 
 
판단력의 반성보다도 오히려 순전히 그 반성의 결과만이 주목될때에는 사람들은 흔히 판단력에게 감각이라는 이름을 붙여 진리감(각), 예절감(각), 정의감(각)등에 대해 얘기한다. 共通感이라는 말로는 공통(공동체)적 감각의 이념을 뜻하지 않으면 안된다. (318페이지) 계몽이라는 명칭이 선입견 일반으로부터 해방이라 해도 걸맞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미신은 특별히 선입견이라고 불려 마땅한 것이기 때문이다. (320페이지) 취미는 건전한 지성보다 훨씬 더 정당하게 共通感이라고 불릴수 있다.
 
 
미적 기예(예술)에 대하여
 
 
미적인 것의 학문은 없고, 단지 비판이 있을 뿐이며, 미적 학문(미학)은 없고 단지 미적 기예(예술)가 있을 뿐이다.
 
 
미적 것에 대한 학문 - 그러한 학문에서 어떤것이 아름답다고 간주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것은 학문적으로, 다시 말해 증명근거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것이다.
 
 
미적 학문, 미학 - 그 자체가 미적어야만 한다는 학문이란 무물(無物)이다.
 
 
 
즉 사람들은 완전 무결한 미적 기예에는, 예컨데 고대 언어들에 대한 지식, 고전 작가로 여겨지는 작가들에 대한 박학, 역사, 고대 유물에 대한 지식등과 같은 많은 학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예가 쾌의 감정을 직접적인 의도로 삼는다면, 그것은 미감적 기예라고 일컫는다. (335페이지) 이 미감적 기예는 쾌적한 기예이거나 미적 기예이다.
 
 
쾌감적 기예 - 쾌가 순전한 감각으로서의 표상들에 수반하는 것이 그것의 목적일때의 기예
 
 
미적 기예 - 인식방식으로서의 표상들에 수반 하는것이 목적일때의 기예
 
 
 
쾌적한 기예들은 한낱 향수(향략)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예이다. 쾌의 보편적 가능성은 이미 그 개념안에, 이 쾌는 순전한 감각으로부터의 향수의 쾌가 아니라, 반성의 쾌여야 함을 지니고 있다. 미적 기예로서 미감적 기예는 감관감각이 아니라 반성적 판단력을 표준으로 갖고 있는 기예이다. (336페이지)
 
 
미적 기예(예술)는, 그것이 동시에 자연인 것처럼 보이는 한에서, 하나의 기예이다.
 
 
미적 기예(예술)의 산물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기예이고 자연이 아님을 의식하지 않을수 없다. 자연은 그것이 동시에 예술인 것처럼 보였을때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리고 예술은 우리가 그것이 예술임을 의식할때도 우리에게 자연인것처럼 보일때에만 아름답다고 불릴수 있는 것이다. (337페이지)
 
 
미적 기예(예술)는 천재의 기예이다. 천재란 기예에 규칙을 주는 재능(천부의 자질)이다.
 
 
이 재능은 기예가의 선천적인 생산적 능력으로서 그 자신 자연에 속하므로, 사람들은 또한 “천재란 선천적인 마음의 소질로서, 그것을 통해 자연은 기예에게 규칙을 주는것이다.”라고 표현할수도 있겠다.(338페이지) 그러니까 그 산물이 가능하게 되는 방식의 개념을 기초에 두는, 그 어떤 규칙으로부터 이끌어 내지는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미적 기예는 단지 천재의 산물로서만 가능하다.
 
 
(1) 천재란 어떠한 특정한 규칙도 주어지지 않는것을 만들어내는 재능이다. 그것은 어떤 규칙에 따라서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한 숙련의 소질이 아니다. 따라서, 원본성(독창성)이 천재의 제일 의 속성이지 않으면 안된다.
(2) 원본적이지만 무의미한 것도 있을수 있으므로, 천재의 산물들은 동시에 범형, 다시말해 본보기
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3) 천재는 그의 산물을 어떻게 성립시키는가를 그 자신 기술하거나 학문적으로 공표 할 수는 없
고, 오히려 자연으로서 규칙을 주는 것이다. (339페이지)
(4) 자연은 천재를 통해 학문에 대해서가 아니라, 기예에 대해서 규칙을 지시규정하며, 그것도 기
예가 미적기예(예술)여야 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340페이지)
 
 
천재에 대한 위 설명의 해명과 확인
 
 
천재란 모방정신에 전적으로 대립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누구나 의견이 일치하는 바이다. 무롯 배운다는 것은 모방한다는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므로, 제 아무리 큰 능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학습력(수용력)인 한 그것을 천재라고 할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뉴턴이 그의 자연철학의 원리들에 대한 불후의 저작에서 논술한것을, 그러한 것을 찾아내는 데에 제 아무리 위대한 두뇌가 필요했다 할지라도 모두 능히 배울수 있다. (341페이지)
 
 
기예적 기예- 근면과 학습의 순전한 기예 / 미적 기예(예술)-천재의 기예
 
 
천재와 취미의 관계에 대하여
 
 
미적 대상들을 그러한 것으로 판정하기 위해서는 취미가 필요하나, 미적기예(예술) 그자신을 위해서는 다시 말해 그러한 대상들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천재가 필요하다. 천재를 예술에 대한 재능으로 간주하고- 이것은 천재라는 말의 특유의 의미가 지니고 있는 것이지만-천재를 필요로 하는 예술미 사이의 정확하게 규정하는 것이 필요. 자연미는 하나의 아름다운 산물이며, 예술미는 사물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표상이다.(344페이지) 자연은 더 이상 예술처럼 보이는 것으로서의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예술인한에서 판정되는것이다. 그리고 목적론적 판단이 미감적 판단의 토대 및 조건이 되는바, 미감적 판단은 이를 고려하지 않을수 없다. (345페이지)
 
천재를 이루는 마음의 능력들에 대하여
 
 
미감적 이념은 어떤 주어진 개념에 수반되는 상상력의 표상이다. 이표상은 하나의 개념에 형언할수 없는 많은것을 덧붙여 생각하게 되며 이러한 형언할 수 없는 것의 감정이 인식능력들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며, 한갓된 문자인 언어에 정신을 결합시켜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통합되어 천재를 형성하는 마음의 능력들은 상상력과 지성(352페이지)
 
 
1) 첫째로 천재는 예술에 대한 재능이지 학문에 대한 재능이 아니다.
 
 
2) 둘째로 예술의 재능인 천재는 목적으로서의 산물에 대한 규정된 개념, 그러니까 지성을 전제
 
 
3) 셋째로 천재는 규정된 개념을 현시하면서 전제된 목적을 실행하는데서 드러난다기보다는 그러한 의도를 수행하기 위한 풍부한 재료를 함유하고 있는 미감적 이념들을 개진 표현하는데서 드러난다.
 
 
4) 넷째로 상상력이 지성의 법칙성과 자유롭게 합치할때 저절로 이루어지는, 무의도적인, 주관적 합목 적성은 이 두능력의 균형과 조율을 전제한다. (354페이지)
 
 
미적 기예의 산물들에서 취미와 천재의 결합에 대하여
 
 
미적 기예(예술)의 사안들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 즉 천재가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한가? - 재기 넘치는(정신이 풍부한) 기예
 
 
- 취미가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한가? - 미적 기예
 
 
미적 기예 - 불가피한 조건으로서 사람들이 기예를 미적 기예(예술)로 판정함에 있어서
중시해야만 하는 가장 뛰어난 것
 
 
재기 넘치는 기예가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그것이 무법칙적인 자유 가운데 있다면 무의미한 것 밖에는 만들어내지 못할것이니, 판단력은 상상력을 지성에 순응시키는 능력이기 때문(356페이지)
 
 
그러므로 예술을 위해서는 상상력, 지성, 정신, 그리고 취미가 요구(357페이지)
 
미적 기예들의 구분에 대하여
 
 
사람들은 일반적인 미를 - 자연미가 됐든 예술미가 됐든 - 미감적 이념들의 표현이라고 부를수 있다.(357페이지)
 
 
세 종류의 예술, 언어예술, 조형예술 그리고 감각들의 유희의 예술
 
 
(1) 언어예술은 웅변술과 시예술이다. 웅변술은 지성의 과업을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로 추진되는 예술, 시예술은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를 지성의 과업으로 수행하는 예술
 
 
ex) 웅변가는 하나의 과업을 내걸고 마치 그것이 한낱 이념들과의 유희인 것처럼 수행하며 청중들을 즐겁게 한다.
 
 
(2) 조형예술들 내지 이념들을 감관직관에서 표현하는 예술들은 감관적 진상의 예술이거나 감관적 가상의 예술이다. 감관적 진상의 예술 - 조소 , 감관적 가상의 예술 - 회화
 
 
두 감관, 즉 시각과 촉각 - 촉각은 미와 관련한 것은 아니지만 촉각은 시각에 의해서 인지
조형예술의 제 1의 종류인 조소에는
 
 
조각예술 - 자연속에 실존할 수 있는 사물들의 개념들을 입체적으로 현시하는 예술
 
 
건축예술 - 기예에 의해서만 가능한 사물들 (360페이지)
 
 
조형예술의 제 2 종류인 회화예술은 감각적 가상을 기예적으로 이념들과 결합시켜서 현시
 
 
자연미적 묘사의 예술 - 회화 - 입체적 연장의 가상만을 줌
 
 
자연산물들의 미적 예술 - 원예술 - 입체적 연장을 진상대로
 
 
입체적 사물들의 미적 편성도 회화와 마찬가지로 눈에 대해서만 주어질 뿐이고, 촉각의 감관은 그러한 형식에 대하여 아무런 직관적인 표상도 만들어주지 못한다. (361페이지)
 
 
(3) 감각들의 미적 유희의 예술은 그 감각이 속하는 감관의 정조(긴장)의 여러 가지 정도의 균형, 다시 말해 그 감관의 율조이외에는 아무런 것과도 관계할 수 없다. 그리고 낱말의 이러한 넒은 의미에서 이 예술은 청각의 감각들과 시각의 감각들의 기예적 유희, 음악과 색채예술로 구분될수 있다.
 
 
동일한 산물에서 미적 기예들의 결합에 대하여
 
 
웅변술연극에서 그 주제와 대상의 회화적 현시와 결합될 수 있고 시는 노래에서 음악과,
노래는 가극에서 동시에 회화적(무대적)현시와 결합될 수 있으며 음악에서의 감각들의 유희는 무용에서 형태들의 유희와 결합될 수 있다. 숭고한것의 현시도, 그것이 예술에 속하는 한, 운문의 비극, 교훈시, 성악극에서 미와 통합
 
 
본질적인 것은 감각의 질료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한낱 향수(향락)만이 목표가 되거니와, 향수는 이념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정신을 우둔하게 만들고 대상을 차츰 역겹게 만든다.
 
 
⇒ 도덕적 이념들만이 자립적인 흡족을 동반하는바, 만약 예술들이 가까이든 멀리든 이러한 도덕적 이념들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예술의 종국의 운명인 것이다. (365페이지)
 
 
미적 기예(예술)들 상호간의 미감적 가치의 비교
 
 
모든 예술가운데서 시예술이 최상의 지위를 주장
 
 
시예술은 상상력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어떤 주어진 개념의 경계안에서 이 개념에 부합하는 무한히 다양한 가능한 형식들중에서, 이 개념의 현시를 어떠한 언어적 표현도 그에 온전히 충전되지 못하는 충만한 사상내용과 연결시키고, 그러므로 미감적으로 이념들로 고양되는 형식들을 제시함으로써 마음을 확장시켜준다. (365페이지)
 
 
마음을 자극하고 움직이는 것이 문제라면 시예술 다음에는 언어적 예술 가운데서 시예술에 가장 가깝고 소리예술(음악)을 놓고 싶다. 두 예술은 다른길을 걷는다.(370페이지)
 
 
음악 - 감각들로부터 무규정적 이념들로의 길을 걷는다 - 과도적인 인상의 예술
 
 
조형예술 - 규정된 이념들로부터 감각들로의 길을 걷는다 - 지속적인 인상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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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미적기예는(예술)은 천재의 기예이다.(338p~339p)



천재란 기예에 규칙을 주는 재능(천부의 자질)이다. 이 재능은 기예가의 선천적인 생산능력으로서 자연에 속하는 것이다. 또한 다르게 표현하면 천재란 선천적인 마음의 소질로서 그것을 통해 자연은 기예에게 규칙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미적 기예는 필연적으로 천재의 기예들로 간주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기예는 규칙들을 전제한다. 즉 어떤 것을 기예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규칙들을 통해서 가능한 것으로 표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적 기예[예술]의 개념은 그것의 산물의 미에 관한 판단이 어떤 개념을 규정 근거로 갖는(그 산물이 가능하게 되는 방식의 개념에 기초를 두는) (선행적) 규칙으로 부터 이끌어내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적 기예가 그 산물을 성립시키기 위한 규칙을 스스로 만들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하는 규칙 없이는 어떤 산물을 기예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주관안의 자연이 기예에게 규칙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적 기예는 단지 천재의 산물로서만 가능하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1. 천재란 어떤 특정한 규칙도 주어지지 않는 것을 만들어 내는 재능이다. 따라서 그것은 원본성(독창성)이 그 특징이며 그렇기에 숙련의 대상이 아니다. 2. 원본이지만 무의미한 것도 있기 때문에 그것은 범형(본보기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판정의 표준이나 규칙으로 쓰일 수 있어야 한다. 3. 천재는 그의 산물을 어떻게 성립시키는 가를 기술하거나 공표할 수 없고 오히려 자연으로서 규칙을 주는 것이다. 즉 자신 역시 그러한 이념이 어떻게 떠오르는지 알지 못하며 전달할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4. 자연은 천재를 통해서 학문에 대해서가 아니라 미적 기예에 한해 규칙을 지시 규정한다.
 
 
#47 천재에 대한 위 설명의 해명과 확인(340p~343p)
 
 
천재란 모방정신에 대립해 있어야 한다. 무릇 배운다는 것은 모방한다는 것이므로 학습력(수용력)은 천재의 소질이라 할 수 없다. 설령 스스로 생각하고 지어내며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것을 포착하고 기예와 학문을 위해 많은 것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일지는 몰라도 천재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것 역시 배우고 모방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뉴턴 처럼 자연 철학의 원리들을 찾아내는데 뛰어난 두뇌가 필요했다하더라도 이것 역시 모두 능히 배울 수 있는 것이기에 천재라 할 수 없다.(340p~341p) 하지만 시예술은 지시규정의 상세함과 범례함의 탁월함이 있다하더라도 시 짓기 자체를 잘 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는 뉴턴의 경우 자신이 발견한 원리들의 단계를 모두 제시하고 전달할 수 있지만 호메로스나 빌란트도의 경우 자신의 사상과 이념들을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문적인 것에서는 최고의 발견자라 할지라도 모방 정도와 노력 여하에 따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나 천재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종적으로 구별된다. 그렇다고 해서 학문적 발견자들을 천재보다 낮게 평가할 이유는 없다. 학문하는 자들은 그들이 쌓은 지식을 전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천재들 보다 더 큰 장점을 갖는다. 왜냐하면 미적 기예의 경우엔 전달할 수 없으며 또 다른 천재가 나타날 때까지 그 숙련성은 사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342p)
 
 
천부의 자질이 예술적 기예에게 규칙을 주게 되는데 이 규칙은 지시규정으로 쓰일 수 없는 것이다. 그 규칙은 산물로부터 기술되는 것이 아니라 추상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은 이 산물을 모방의 범형이 아니라 계승의 범형으로 삼아 자신의 재능을 시험해볼 수밖에 없다.
기계적 기예는 근면과 학습에 관한 것이라면 미적 기예는 천재의 기예로서 다른 것이다. 하지만 미적 기예도 기계적 기예와 같이 모범적인 것이 그 본질적 조건을 형성한다. 왜냐하면 어떤 예술이라도 목적이 있으며 그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규칙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능의 원본성은 천재의 본질적 요소이다. 따라서 혹자들은 모든 강제적 규칙과 결별할 때 예술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술의 가공과 형식을 위해서는 훈련을 통해 도야된 재능이 필요하다.(343p)
 
 
#48 천재와 취미의 관계에 대하여(344p~347p)
 
 
미적 대상을 판정하기 위해서는 취미가 필요하나 미적 기예를 만들기 위해서는 천재가 필요하다. 그런데 자연미의 판정을 위해선 취미가 필요하고 예술미는 천재를 필요로 한다. 자연미는 하나의 아름다운 사물이며 예술미는 사물에 대한 하나의 아름다운 표상이다. 하나의 자연미를 알기 위해서는 질료적 합목적성(목적, 그 대상이 어떠한 사물이어야 하는가)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없고 순전한 형식이 그것만으로 적의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미의 경우 언제나 목적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개념(질료적 합목적성)이 그 기초에 먼저 놓여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한 사물 안에서 잡다한 것이 그 사물의 내적 규정과, 즉 목적과 합치함이 그 사물의 완전성이므로 예술미의 판정에서는 동시에 그 사물의 완전성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자연미를 판정함에 있어서는 그러한 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연은 예술인 한에서 판정되는 것이다.(344~345) 취미는 판정능력일 뿐 생산적 능력이 아니다. 따라서 취미에 맞는 것이 예술작품은 아니다. 그것은 기계적 기예에 속하거나 학문적 영역에 속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예술 작품이 될 수는 없다.(346p~347p)
 
 
 
#49 천재를 이루는 마음의 능력들에 대하여(347p~356p)
 
 
어떤 산물들은 취미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정신이 결여된 경우가 있다. 여기서 정신이란 미감적 의미에서는 마음에서 생기를 일으키는 원리를 말한다. 이러한 원리를 위해 사용하는 재료는 마음을 합목적적으로 약동하게 하는(스스로 유지해가면 그러한 힘들을 스스로 증강해가는 유희를 하게끔 하는 것)것이다. (347p~348)
 
 
이 원리가 바로 미감적 이념을 현시하는 능력이다. 미감적 이념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직관적 상상의 개념이다. 상상력은 현실적인 자연이 준 재료로부터 이를테면 또 다른 자연을 창조해내는데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지성을 통해 포착한 경험적 자연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펼치며 이 법칙(인식의 법칙과 동일한 자연적 법칙)에서 자유를 느낀다. 이 과정을 바탕으로 자연으로 부터 주어진 재료로부터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 만들어 질 수 있다. 개념의 근저에 상상력의 표상이 놓이면 이 표상은 개념을 현시하게 되나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하나의 특정한 개념으로 총괄되지 않고 개념자신을 무제한적으로 확장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상상력은 곧 창조적이 된다. 그러므로 천재를 형성하는 마음의 능력은 상상력과 지성이다. (352p) 다만 상상력이 인식을 위해 사용될 때 상상력은 지성의 강제에 놓이고 제한을 받지만 미감적 영역에서 상상력은 자유로워 풍부하고 미발전된 자료를 지성에게 제공한다. 즉 천재는 주어진 개념에 대한 이념을 찾아내 그것을 상상력의 유희를 통한 표현으로 규칙들의 강제 없이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353p)
 
 
*천재에 대한 설명 요약(354p)
 
 
1. 천재는 예술에 대한 재능이지 학문에 대한 재능이 아니다. 학문은 선행하는 규칙을 따르지만 예술은 그렇지 않다.
 
 
2. 천재는 목적으로서 산물에 규정된 개념, 지성을 전제하지만 이 개념을 현시하기 위해 상상력과 지성의 관계도 전제한다.
 
 
3. 천재는 규정된 개념을 현시하면서 전제된 목적을 실행하면서 드러나기 보다는 그러한 의도를 수행하기 위한 미감적 이념들을 개진하고 표현하는데서 드러난다. 그러니까 천재에게 상상력은 규칙들의 일체의 지도로부터 자유로우며 그럼에도 주어진 개념을 현시하기 위한 합목적적인 것으로 표상된다.
 
 
4. 상상력이 지성의 법칙성과 자유롭게 합치할 때 이루어지는 무의도적인 주관적 합목적성은 두 능력의 조율을 전제한다. 하지만 이 능력은 습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 본성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설명에 따라 천재와 천재의 관계를 파악하며 모방이 아닌 계승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방을 할 경우 그 원형이 사라져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른 천재는 하나의 실례를 통해 자신의 독창적 감정이 일깨워져 예술을 행하게 된다. 한편 천재의 실례는 다른 우수한 두뇌들에 의해 사람들이 이끌어낼 수 있는 한에서 규칙과 그에 따르는 방법적 지도를 만들어 낸다. 그러한 한에서 예술이란 자연이 하나의 천재를 통해서 규칙을 준 모방이다. (355p)
 
 
#50 미적 기예[예술]의 산물들에서 취미와 천재의 결합에 대하여(356p)
 
 
미적기예의 사안들에 있어서 천재(상상력)가 드러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취미(판단력)가 드러나는 것이 중요한가. 전자는 후자와 관련해서만 미적기예라고 불릴 수 있으므로 후자는 가장 불가피하고 중시해야 하는 것이다. 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이념들이 풍부하고 원본적인 것보다 오히려 저러한 상상력이 자유로운 가운데서 지성의 합법칙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판단력은 상상력을 지성에 순응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상상력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무의미한 것 밖에는 만들지 못한다. 그러므로 예술을 위해서는 상상력, 지성, 정신, 그리고 취미가 요구된다.(앞의 세 능력은 넷째 능력에 의해 비로소 통합을 얻는다)
 
 
#51 미적기예들의 구분에 대하여(357p~364p)
 
 
미는 원칙적으로 “미감적 이념들의 표현”이다. 우리가 아름다운 자연의 대상을 미감적 태도에서 관찰하면 우리는 대상에 대한 개념 없이도 주어진 직관을 통한 이념의 표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이 이념이 객관에 대한 하나의 개념에 의해 유발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은 우리가 일상적인 대화에서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사용하는 표현방식과 예술적 표현 유비관계에 기초하여 분류를 시도할 수 있다. 표현 방식인 말, 몸짓, 소리에 따라 언어예술, 조형예술, 감각들의 유희 예술로 나눌 수 있다. (357p)
 
 
1.언어예술은 웅변술과 시 예술이다. 웅변술은 지성의 과업을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로 추진되는 예술이 며, 시 예술은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를 지성의 과업으로 수행하는 예술이다.(358p~359p)
 
 
2. 조형예술들 혹은 이념들을 감각 직관에서 표현하는 예술들은 감관적 진상의 예술이거나 감관적 가상의 예술이다. 전자는 조소이고 후자는 회화이다. 조소는 조각예술과 건축예술이 속한다. 조각예술은 자연 속에 실존할 수 있는 그대로의 사물들의 개념을 현시하는 예술이고 건축예술은 단지 기예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자연이 아니라 자의적인 목적을 규정 근거로 가지는 사물들을 현시하는 예술이다.
 
 
회화예술은 감관적 가상을 기예적으로 이념들과 결합시켜 현시하는 것이다. 이는 자연의 미적 묘사 의 예술과 자연 산물들의 미적 편성의 예술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본래적인 회화이고 후자는 원예 술이 해당한다.(359p~362p)
 
 
3. 감각들의 미적 유희 예술은 음악(청각들의 유희)과 색채예술(시각들의 유희)로 나눌 수 있다.(362p)
 
 
#52 동일 산물에서 미적기예[예술]들의 결합에 대하여(364p)
 
 
예술들은 결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웅변술은 연극에서 그 주제와 대상의 회화적 현시와 결합할 수 있고 시는 노래와 음악과 결합할 수 있다. 이러한 결합들에서 예술은 더욱 기예적이 된다. 하지만 모두 아름답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에서의 본질은 관찰과 판정의 합목적적인 형식이며 감작의 질료는 본질이 아니다. 본질에 맞는 예술의 경우 쾌는 동시에 교화이며 정신을 이념에 맞게 하는 것이다. 만일 감각의 질료에 매몰될 경우 향락만이 목표가 되어 정신을 우둔하게 만들게 된다. 따라서 예술은 가까이든 멀리든 도덕적 이념과 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53 미적 기예[예술]들 상호간의 미감적 가치의 비교(365p~371p)
 
 
모든 예술가운데 그 근원을 거의 전적으로 천재에게 힘입고 지시규정이나 실례들에 의한 지도를 가장 적게 받으려 하는 시예술이 최상의 지위를 가진다. 시예술은 상상력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주어진 개념의 경계 안에서 이 개념에 부합하는 무한히 다양한 형식들을 충만한 사상과 연결시킨다. 그러므로 미감적으로 이념들로 고양되는 형식들을 제시함으로써 마음을 확장시킨다. 하지만 웅변술의 경우 웅변가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것만큼의 것을 시예술에서 빌려 쓰는 것이므로 옳지 못하다. 설사 그 목적이 정당하다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 근거와 동기가 정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365~367)
 
 
시예술 다음으로는 소리예술[음악]이다. 음악은 개념 없이 오로지 감각들로만 말하고 마음을 보다 다양하게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한편 음악은 예술의 가치를 교화로 전제한다면 그 부분에 있어서는 조형예술보다 뒤떨어진다. 왜냐하면 조형예술은 상상력으로 하여금 지성에 적합한 유희를 하도록 하지만 음악은 감각들과의 유희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밖에도 음악 세련성의 결여를 보이는데 소리의 성질상 자신을 강요하는 점에서 나타난다.(368p)
 
 
#54 주해(371p~379p)
 
 
적의한 것과 쾌락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쾌락은 신체적 평안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적의(지성적 흡족)는 이성에 의거하며 쾌락과 고통은 단지 감정에 의거한다. 감각들의 자유로운 유희는 쾌락은 주는데 그것은 유희가 건강의 감정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쾌락은 비록 미감적 이념들을 일깨우는 개념들에 의해 유발되는 것이라 할지라도 동물적, 다시 말해 신체적 감각이라는 것을 충분히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용인한다고 해서 도덕적 이념들에 대한 존경의 정신적 감정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 그러한 감정은 쾌락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쾌락의 필요욕구를 극복하게 하는 일종의 자기 존중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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