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6.

칸트, 판단력 비판 - 덧붙임 [581-647]



I. 하나의 체계로서 철학에 대하여 (583~585)
 

 
철학이 개념들에 의한 이성인식의 체계라는 점에서 순수 이성 비판과 구별된다. 순수 이성 비판은 인식의 가능성이며 체계의 이념을 최초로 입안하고 검사하는 것이다.



체계의 구분은 형식적인 부문과 실질적인 부문으로 구분된다. 전자(논리학)은 순전히 사고의 형식만을 규칙들의 한 체계 안에 포괄하고, 후자(실재적 부문)는 사고되는 대상들을, 개념들에 의해 대상들에 대한 이성인식이 가능한 한에서, 체계적으로 고찰한다.



철학의 실재적 체계는 이론철학과 실천철학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한 부문은 자연의 철학, 또 다른 부문은 윤리의 철학일 수 밖에 없으며, 그 중 전자는 경험적 원리들도 함유할 수 있으나, 후자는 (자유는 절대 경험의 대상일 수 없으므로) 결코 선험적인 순수한 원리들 외에 다른 것은 함유할 수 없다.



오로지 자유를 법칙들 아래에서 고찰하는 것만이 실천적 명제이다.

 
 
 
주해 (585~589)



실천적 명제들은 이론적 명제들과 원리들에 관련해서 또는 귀결들에 관련해서 구별된다. 후자의 경우에는 학문의 한 특수한 부문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나온 특수한 종류의 귀결들로서, 이론적 부문에 속한다. 자연법칙들에 의한 사물들의 가능성은 자유의 법칙들에 의한 사물들의 가능성과 그 원리 면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므로 그 내용의 면에서 한낱 (의사에 따른 행위에 의한) 표상된 객관의 가능성에만 관계하는 실천적 명제들은 완벽한 이론적 인식의 적용들일 따름이며, 학문의 어떠한 특수한 부문도 이룰 수가 없다.

 
 
일반적으로 실천적 명제들은 (순수하게 선험적이든 경험적이든 간에) 우리의 의사에 의한 어떤 객관의 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언표 하는 것이면, 항상 자연의 지식에 그리고 철학의 이론적 부문에 속한다.

 
 
실행에 대한 그 밖에 모든 명제들은, 그것들이 어떠한 학문에 포함되든지 간에, 실천적 명제라고 하는 대신에 기술적 명제들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판단들 자신은 기술적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나, 그럼에도 판단력의 법칙들에 기초하고 있는 판단력은 기술적이라고 부르고, 또한 이 판단력에 맞는 자연도 기술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 기술은 어떤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명제들을 함유하고 있지 않으므로, 교설적 철학의 한 부문을 이루지는 않으며, 단지 우리 인식능력의 비판의 부문을 이룬다.




II. 철학의 기초에 놓여 있는 상위 인식능력들의 체계에 대하여 (589~593)



순수 이성 비판, 즉 개념에 의한 우리의 선험적인 (상위의) 인식능력의 구분이 문제가 되는 경우에는, 사고 능력의 체계적 표상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나타난다. 1. 보편(즉 규칙들)을 인식하는 능력인 지성, 2. 특수를 보편 아래 포섭하는 능력인 판단력, 3. 특수를 보편에 의해 규정하는 (즉 원리들로부터 도출하는) 능력, 다시 말해 이성이 그것이다.

 
 
순수 이론 이성 비판은 자연의 법칙들을 제공하고, 이성은 자유의 법칙들은 제공, 판단력은 매개작용을 위한 자기의 특유한 선험적 원리들을 내어 놓는다.

 
 
판단력은 특수하지만, 전혀 자립적이지 낳은 인식능력이다. 다른 곳에서 주어진 개념들 아래에서 포섭하는 능력이다.



근원적으로 판단력에서 생겨나 판단력에 특유한 개념은 기예로서의 자연개념, 즉 자연의 특수한 법칙들에 관한 자연의 기술이라는 개념이다.



 

 
III. 인간 마음의 모든 능력들의 체계에 대하여 (593~596)



인간 마음의 모든 능력들은 세 가지 능력으로 - 1. 인식능력, 2. 불쾌의 감정, 3. 욕구능력 - 환원할 수 있다.

 
 
한 대상의 인식과 그 대상의 실존에서의 쾌불쾌의 감정 사이의 연결, 또는 대상을 만들어내는 욕구능력의 규정은 경험적으로 충분히 안될 수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연관은 어떤 선험적 원리에 기초하고 있지 않은 것이므로, 그런 한에서 마음의 능력들은 단지 집합을 이룰 뿐 체계를 이루지 못한다.



무릇 개념들에 따르는 인식능력은 그 선험적 원리들을 순수한 지성 (즉 자연에 대한 지성의 개념) 안에 갖고, 욕구능력은 순수한 이성 (즉 자유에 대한 이성의 개념) 안에 갖는바, 마음의 속성들 일반 가운데에는 아직 중간적 능력 내지는 감수성이 곧 쾌불쾌의 감정이 남아 있다.

 
 
개념들에 의한 인식능력의 구분에서 지성과 이성이 그 표상들을 객관에 관계시켜 객관에 대한 개념들을 얻는 것이라면, 판단력은 오로지 주관과만 관계하며, 그 자신 만으로서는 대상들에 대한 어떠한 개념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인 한에서 말이다. 마음 능력 일반의 일반적 구분에서 인식능력 및 욕구능력이 표상들의 객관적 관계를 함유한다면, 그에 반해 쾌불쾌의 감정은 단지 주관을 규정하는 감수성만을 함유한다. 판단력이 어디서나 그 자신만으로 무엇인가를 규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쾌의 감정 이외의 다른 것일 수가 없을 것이며, 또 거꾸로 쾌의 감정이 어디선가 선험적 원리를 가져야 한다면, 그것은 오로지 판단력에서 마주쳐질 수 있을 것이다.

 
 
 

IV. 판단력에 대한 하나의 체계로서 경험에 대하여 (596~598)

 
 
우리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경험의 모든 대상들의 총괄인 전체 자연이 초월적 법칙들에 따르는, 곧 지성 자신이 선험적으로 (곧 현상들이 하나의 의식 안에서 결합되어 경험을 이룬다고 하는, 그 현상들에 대해) 주는 법칙들에 따르는 하나의 체계를 이룸을 본다. 지성의 초월적 법칙들에 따르는 경험 일반은 하나의 체계로 간주 될 수 있다.

 
 
경험적 법칙들에 따르는 자연 또한 인간의 인식능력이 파악할 수 있는 체계이다.

 
 
판단력은 한낱 특수를 (그 개념이 주어져 있는) 보편 아래 포섭하는 능력일 뿐만 아니라, 또한 거꾸로, 특수에 대한 보편을 찾아내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성은 자연에 대한 그의 초월적 법칙수립에 가능한 경험적 법칙들의 다양성을 사상한다.

 

 
 
V. 반성적 판단력에 대하여 (599~605)

 
 
판단력은, 주어진 표상에 관해, 그 표상에 의해 가능한 개념을 위해, 모종의 원리에 따라 반성하는 순전한 능력(반성적 판단력)이거나, 또는 기초에 놓여 있는 개념을 주어지는 경험적 표상에 의해 규정하는 능력(규정적 판단력)으로 볼 수 있다. 반성한다(성찰한다)는 것은, 저어진 표상들을 다른 표상들과 또는 자기의 인식능력과, 그에 의해 가능한 개념과 관련해서, 비교하고 대조하는 것, 즉 반성적 판단력은 사람들이 판정능력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반성한다는 우리에게 있어서는규정한다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 ‘규정한다에서는 그 기초에 놓여진 객관의 개념이 판단력에게 규칙을 지정하며, 그러므로 그 원리를 대신한다.

 
 
반성적 판단력은 주어진 현상들을 일정한 자연사물들의 경험적 개념들 아래로 보내기 위해, 이 주어진 현상들을 도식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기술적으로 처리한다.

 
 
판단력 자신이 선험적으로 자연의 기술을 자기의 반성의 원리로 삼지만, 판단력은 그럼에도 이것을 설명할 수도 좀 더 자세히 규정할 수도 없고, 그것을 위해 (사물들 그 자체에 대한 인식에서 나오는) 보편적 자연개념들의 객관적 규정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단지 자기 자신의 주관적 법칙에 따라서, 자기의 필요욕구에 따라서, 그러나 그럼에도 동시에 자연법칙들 일반과 일치해서 반성할 수 있을 뿐이다.

 
 
반성적 판단력의 원리에 의해 자연은 경험적 법칙들에 따르는 체계로 생각되지만, 이 반성적 판단력의 원리는 한낱 판단력의 논리적 사용을 위한 원리일 뿐으로, 물론 그 기원으로 보면 하나의 초월적 원리이지만, 단지 선험적으로 다양한 자연이 경험적 법칙들 아래서 하나의 논리적 체계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으로 보기 위한 원리일 뿐인 것이다.

 
 
판단력의 특유한 원리는 다음과 같다: 자연은, 판단력을 위해 자기의 보편적 법칙들을 논리적 체계의 형식에 맞춰서, 경험적 법칙들로 특수화[종별화]한다.

 
 
이제 여기서 자연의 합목적성 개념이 생겨나며, 그것도 이성이 아니라 반성적 판단력의 특유한 개념으로서 생겨난다. 목적은 전혀 객관 안이 아니라, 오로지 주관 안에, 그것도 주관의 한낱 반성하는 능력 안에 세워지는 것이다.

 
 
VI. 각기 특수한 체계들인 자연형식들의 합목적성에 대하여 (605~607)



자연이 그 경험적 법칙들에서, 경험적 인식의 하나의 체계로서의 가능한 경험에 요구되는 그만큼 자기 자신을 특수화한다는 것, [이것이 자연의 형식인데] 자연의 이러한 형식은 논리적 합목적성, 곧 자연이 경험의 전체에서 경험적 개념들의 가능한 연관에 관련하여 판단력의 주관적 조건들에 합치하는 합목적성을 함유하고 있다.



칸트는 자연현상들의 절대적 합목적성이라는 말로 어떤 것의 가능성의 기초에 우리의 판단력 중에 있는 그것에 대한 이념이 놓여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성질을 갖는 그러한 것의 외적 형태 또는 내적 구조를 뜻한다.

 
 
 
VII. 자연의 기술이라는 이념의 근거로서의 판단력의 기술에 대하여 (607~610)

 
 
판단력은, 기계적인 자연필연성 외에는 자연에서 또한 합목적성도 생각하는 것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고, 심지어 필연적이게끔 한다.

 
 
자연의 기술은, 합일하는 방식의 기초에 놓여 있는 개념 없이 다양한 것을 결합하는 인과성에서 성립하는 자연의 기계 조직과 대립되는 것이다.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은 경험의 구성적 개념이 아니고, 객관의 경험적 개념에 속하는 현상의 규정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범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주어진 객관에 관해서 한낱 반성하는 것인 한에서, 우리는 우리의 판단력에서 합목적성을 지각한다. 그러므로 판단력은 본래 기술적이다.

 
 
모든 경험적 개념에는 자기 활동적인 인식능력의 세 가지 행위, 1. 직관의 잡다의 포착, 2. 이 잡다를 한 대상 개념에서 의식하는 총괄, 3. 이 개념에 대응하는 대상의 직관에서의 현시가 필요하다.  첫째 행위를 위해서는 상상력이 요구되고 둘째 행위를 위해서는 지성이, 셋째 행위를 위해서는 판단력이 요구된다.

 
 
합목적성을 위해서는 객관에 대한 어떤 규정된 개념이 전혀 요구 되지도 않고, 또한 합목적성을 통해 어떤 규정된 개념이 산출되지도 않으며, 그 판단 자신은 인식판단이 아니다그러한 판단은 미감적 반성-판단이라 일컫는다.

 
 
그에 반해, 이미 경험적 개념들과 자연의 기계성에 따라 그러한 법칙들이 주어져 있다면, 그리고 판단력이 그러한 법칙들이 주어져 있다면, 그리고 판단력이 그러한 지성개념을 이성 및 하나의 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이성의 원리와 비교할 겨우 이러한 형식이 그 대상에서 마주쳐지면, 합목적성은 객관적인 것으로 판정되고, 사물은 자연목적이라고 일컬어진다.

 

 
 
VIII. 판정능력의 미()학에 대하여 (610~616)



감성적/미감적 표상방식이라는 표현은, 그것에서 표상의 대상현상으로서의관계가 그 대상의 인식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때감성적/미감적이라는 표현은 그러한 표상에는 감성의 형식이 필연적으로 부수하며, 그래서 이 감성의 형식은 불가피하게 객관에 그러나 오직 현상으로서 옮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월적 감성학이 인식능력에 속하는 학문이다.

 
 
모든 규정적 판단은 논리적이다. 그러나 주어진 개별적 대상에 관한 반성적인 판단은 미감적일 수 있다.

 
 
미감적 판단은 일반적으로, 그 술어가 결코 객관적인 개념에서 인식 될 수 없는 판단이다. 미감적 판단은 그 규정근거가 쾌·불쾌의 감정과 직접 결합되어 있는 감각 중에 놓여 있는 판단이다.

 
 
미감적 감관판단은 진료[실질]적 합목적성을 함유하고, 반면 미감적 반성판단은 형식적 합목적성을 함유한다. 그러나 전자는 인식능력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고, 직접 감관을 통해 쾌의 감정과 관계하므로, 후자만이 판단력의 특유한 원리들 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의 모든 판단들은 상위 인식능력의 순서에 따라 이론적 판단, 미감각적 판단, 실천적 판단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이때 미감적 판단이란 상위 인식능력인 판단력의 원리와 관계 맺고 있는 반성판단들만을 의미 한다. 이에 반해 미감적 감관판단들은 단지 표상들의 내감과의내감이 감정인 한에서 관계만을 직접 다룰 뿐이다.

 
 
주해 (616~623)

 
 
완전성이란, 여럿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는 한에서, 하나의 존재론적 개념으로 쾌 또는 불쾌의 감정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 어떤 사물의 잡다를 그 사물의 개념에 관계시킴에 있어서 의 사물의 이러한 완전성은 단지 형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칸트가 말하는 완전성이란, 하나의 목적으로서의 어떤 것의 개념이 기초에 놓여 있다, 잡다의 하나로의 부합이라는 저 존재론적 개념은 이 목적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잡다의 그 자체로는 우연적인 결합의 합법칙성이다.

 

 
 
IX. 목적론적 판정에 대하여 (623~629)

 
 
칸트는 자연의 형식적 기술을 직관에서의 자연의 합목적성이라고 이해하고, 자연의 실재적 기술은 개념들에 따르는 자연의 합목적성이라고 이해한다.

 
 
판단력은 직관의 합목적적 형식들을 선험적으로 스스로 제시하고 구성할 수 있는데, 그것은 곧 판단력이 포착을 위해 그러한 형식들을 공하는 것으로, 그 형식들이 어던 개념을 현시하는 데 알맞게끔 고안한다.  판단력이 그 목적들에 부합시키기 위해 잡다의 조건들을 문제 삼기 전에, 일반적으로 어디로부터인가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사물들에서의 합목적성은 그 자연의 사물들을 (자연목적들로서)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근거로 간주되는바, 그러한 자연사물들에서의 합목적성에 관한 판단은 목적론적 판단이라고 일컫는다.

 
 
자연의 목적론적 판정을 보편적인, 기계적인 법칙들에 따르는 판정에서 떼어내는, 자연에서의 목적인 개념은 한낱 판단력에만 속하는 개념이다. 절대로 경험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모든 합목적성은
 
 
1. 자연적인것



- 반성적 (비록 미감적인 것은 아니지만, 논리적으로 반성적인) 판단력에 속하고



- 이성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단지 원리들에 따라서 행해져야 한다는 경험을 위해서만 그러함

 
 
2. 의도적인 것

 
 
- 자연목적들로서 사물들이라는 저 개념 위에 부가되는 하나의 가설적 설명방식



- 규정적 판단력에 속함



- 초월적인 것으로 마구 올라가는 (초험적으로 사용되는) 이성이 필요함

으로 볼 수 있다.

 

 
 
X. 기술적 판단력의 원리에 대한 탐색에 대하여 (629~634)

 
 
일어나는 것에 대한 설명근거는 경험적 원리일 수도 있고, 선험적 원리일 수도 있으며, 또는 양자에서 합성된 것일 수 있다.

 
 
우리가 취미라고 부르는 것이 인간들 사이에서 처음에 어떻게 대두했는가, 왜 인간들이 몰두하게 되었으며, 미에 관한 판단 등을 설명하는 일을 심리학에서 찾으면 안 된다.

 
 
자연의 합목적성에 관한 모든 판단들은, 미감적인 것이든 목적론적인 것이든, 판단력에게 특유하게 그리고 독점적으로 속하는 선험적 원리 아래에 서 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반성적 판단이기 때문이다. 반성적 판단들은 오직, 자신의 원리에 따라서 자신을 오로지 경험적인 것에만 제한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모든 사람에 대한 필연적 타당성의 요구주장을 스스로 무효화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해서, 수고로운 탐구를 필요로 한다.

 

 
 
XI. 판단력 비판의 순수 이성비판의 체계로의 백과적 입문 (635~641)

 
 
판단력의 개념들에 의한 순수 인식능력의 체계로의 입문은 전적으로 그 초월적인 판단력에 특유한 원리, 즉 자연은 초월적 지성법칙들의 특수화에서 다시 말해 자연의 경험적 법칙들의 다양함에서 이러한 법칙들을 구분하는 체계의 이념에 따라 경험적 체계호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절차를 밟아나간다.
 
 

마음의 능력     상위 인식능력    선험적 원리         산물

인식능력  --------- 지성 --------- 합법칙성 --------- 자연

불쾌의 감정 --- 판단력-------- 합목적성 --------- 기예

욕구능력 ---------- 이성 --------- 동시에 법칙적인윤리

                                         합목적성 (책무성)

 
 
>  자연은 그 합법칙성의 근거를 인식능력인 지성의 선험적 원리들에 두고

 
 
>  기예는 그 선험적 합목적성에서 쾌불쾌의 감과 관련해서 판단력이 따르며

 
 
>  윤리는 욕구능력에 관한 이성의 규정근거로서의 보편적 법칙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합목적성이라는

 
 
형식의 이념 아래에 서 있다.

 
 
이런 식으로 선험적 원리들로부터 생겨나는 판단들이 이론적, 미감적, 실천적 판단이다.

 

 
 
XII. 판단력 비판의 구분 (642~647)

 
 
주관적으로 판정된 합목적성은 그러므로 어떤 개념 위에 기초하고 있지도 않고, 또한 그것이 한낱 주관적으로 판정되고 있는 한, 개념 위에 기초할 수도 없는 것으로, 이러한 합목적성은 쾌불쾌의 감정과의 관계이고, 이런 합목적성에 관한 판단은 미감적이다. 그리고 미감적 판단력은 하나의 특수한 능력으로 필연적으로 반성적 판단력 이외의 다른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현상에서 형식의 합목적성은 미이고, 미의 판정능력이 취미이다.

 
 
미감적 판단력 비판은 1. 취미(미적인 것의 판정능력) 비판을, 2. 정신감정(대상들에게서 숭고를 표상하는 능력) 비판을 함유한다.

 
 
기예라는 것은 자연에서의 기술이지, 인간의 표상들의 인과성의 기술이 아니며, 기예에 관해 여기서는 합목적성이 판단력의 규제적 개념으로 탐구되는 것이지, 예술미의 원리나 예술의 완전성의 원리가 탐색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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