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의 자서전 <<추억 memorias>>, 다 읽다. 그중에 내가 수업시간에도 읽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묘사가 몇 있어 옮겨본다. * 우선 다섯 살 정도 때의 이야기. "언젠가 테무코에 있는 우리 집 뒤뜰에서 내 세계의 작은 물건들과 작은 존재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담장 판자에 뚫린 구멍을 보게 되었다.그 구멍으로 내다보니 거기 우리 집 뒤에 있는 풍경과 같은 것, 방치되고 황량한 풍경이 있었다.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는데, 왜냐하면 막연하게나마 무슨 일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홀연히 어떤 손이 나타났다 - 내 나이 또래쯤 돼보이는 작은 손이. 내가 다시 가까이 갔을 때, 그 손은 사라지고, 그 대신 거기엔 아주 근사한 흰 양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양의 털은 바래서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바퀴들은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러한 사정이 그걸 더욱 진정한 것이게 했다. 나는 그렇게 근사한 양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 구멍으로 다시 내다 봤으나 그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내 보물을 가지고 나왔다. 솔 냄새와 송진으로 가득 찬 벌어진 솔방울인데, 내가 무척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걸 아까 그 자리에 갖다 놓고 나서 양을 가지고 왔다. 나는 그 손도 그 아이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양도 다시는 보지 못했다. 불이 나는 바람에 나는 그 장난감을 결국 잃어버리고 말았다. 거의 쉰살이 다 된 1945년 지금까지도, 완구점 앞을 지날 때마다 나는 남몰래 진열장을 들여다보지만, 소용 없는 노릇이다. 이제 그와 같은 양은 더 이상 만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운 좋은 사람이었다. 형제들 사이에서 느끼는 친밀감은 인생에서 아주 근사한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우리 삶을 기르는 불이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는 것,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우리의 잠과 고독을 지켜보고, 우리의 위험과 약함을 돌보는 그러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사랑을 느끼는 건 한결 더 대단하고 더욱더 아름다운 것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존재의 범위를 넓히고,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묶기 때문이다. 그 교환은 나로 하여금 처음으로 '인류는 하나'라는 귀중한 생각에 눈뜨게 했다. 한참 뒤에 나는 다시 그런 체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걱정과 박해를 배경으로 해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인간의 형제애를 나누려고 무슨 수지질(樹脂質)의 지구 비슷한, 그리고 향내 나는 걸 주려고 했다는 데 대해 당신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담장 옆에 솔방울을 남겨 놓았듯이, 나는 나의 말, 언어를 내가 잘 알지 못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문 앞에, 김옥에 있는 사람들, 쫓기는 사람들 혹은 외로운 사람들의 문 앞에 놓아왔던 것이다. 그것이 내가 나의 어린 시절에서, 외딴 집의 뒤뜰에서 배운 커다란 교훈이다. 그것은 서로 모르고, 삶의 어떤 좋은 걸 상대방에게 건네주고 싶어 했던 두 아이의 놀이에 지나지 않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작고 신비한 선물 교환은 내 속 깊이, 불멸의 것으로 남아, 내 시에 빛을 던져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고 여린 싹. 자기와 다른 사람을 가만히, 조용히 위하려는 두 어린아이의 마음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경험은 나를 포함하여 누구에게나 있었던 아마도 '아무 것도 아닌, 별 것 아닌 경험들'일테지만, 시인은 그것으로부터 자신의 삶을 이후 지배하게 된 원리, 사랑과 나눔의 원리, 연대와 행복의 원리를 뽑아올려 우리 앞에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우리 곁에 있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 시인 el poeta 전에 나는 고통스러운 사랑에 붙잡혀 인생을 살았고, 어린 잎 모양의 석영(石映) 조각을 소중히 보살폈으며 눈을 삶에 고정시켰다. 너그러움을 사러 나갔고, 탐욕의 시장을 걸어 다녔다, 아주 은밀한 시샘의 냄새를 맡으며, 가면들과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적대감을 들이마시며. 나는 저습지들의 세계를 살았다 - 그 돌연한 꽃, 흰 나리가 그 떨리는 거품 속에 나를 삼키고 발을 옮길 때마다 내 영혼이 나락의 이빨 속으로 빠져드는 곳. 내 시는 이렇게 태어났다 - 어려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형벌처럼 고독에서 벗어나면서, 또는 뻔뻔스러운 정원에서 그 가장 신비한 꽃을 숨겼다, 마치 그걸 묻듯이. 이렇게 깊은 수로에 사는 검은 물처럼 격리되어 나는 손에서 손으로 도망쳤다, 각 존재의 소외에로, 나날의 증오에로. 그들이 그렇게 살았음을 나는 알았다, 낯선 바다에서 온 물고기처럼, 그들 존재의 반을 숨기고, 그리고 어둑한 광막함 속에서 나는 죽음을 만났다. 문들과 길들을 여는 죽음. 벽 위로 미끄러지는 죽음. - 파블로 네루다,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 1950. 1950년. 음 ... 잠깐만 옆길로 새면 ... 우리나라가 6.25 전쟁일 때, 지구의 반대편에서 칠레의 공산주의자 네루다는 이런 시를 썼다. 그리고 이 시집은 바로 또 다른 공산주의자 체 게바라가 자신의 <<자서전>>에서 즐겨 읽곤 했다고 말하고 있는 바로 네루다의 그 시집이다. |
* 새삼 체 게바라 <<자서전>>의 젊은 시절을 다룬 <모터 사이클 다이어리>가 생각나 같이 올린다. 원작도 영화도 주연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도 다 좋았던 영화이다. 아직 못 본 사람은 꼭 찾아보길. 너무 아름답고 즐거운 행복한 영화다! |
아래는 영화 예고편! |
자, 다시 <<자서전>>으로 돌아가서 ... 이번 이야기는 시간이 좀더 흘러 십대 중반 혹은 후반 정도의 나이였을 때의 일인듯 싶은데, 네루다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 칠레의 어느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우연히 만나게 된 프랑스 여인들의 식탁에 함께 앉아 벽 위에 울렁거리는 촛불 그림자를 바라보다 보면, 거의 몽환적인 혹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그런 에피소드이다 ...
그런데 누구나 그런 일이 있지 않은가?
"나는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그렇게 행복하게 해주엇던 밤과 산림이 이제 험악해져 버렸다.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갑지가ㅣ 어두음이 내리는 외로운 길을 홀로 지나가던 여행자가 내 앞에 나타났다. 우리를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걸음을 멈춘 나는 그가 간혹 이런 고요한 곳에 불쑥 나타나는 싸구려 판초를 두르고 야윈 말을 탄 농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내 사정을 그에게 말했다.
그는 내가 오늘밤 안에 나의 목적지인 타작하는 곳까지 갈 수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이 지역을 구석구석 잘 알고 있엇다. 어디서 타작을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는 산 속에서 밤을 지새고 싶지는 않다고, 날이 샐 때까지 묵어갈 곳이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몇 마디 되지 않는 말로 그 길에서 뻗어나가는 좁은 길을 따라 10 킬로미터 정도 가면 될 거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면 멀리 이층집에서 불빛이 보일 거요."
"호텔인가요?"
"호텔은 아닐세, 젊은이. 그렇지만 그집 사람들은 자네를 반길 걸세. 그들은 프랑스 여자들인데, 임업을 한다던가? 여기서 산 지 벌써 30년이 넘은 사람들일세.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그 사람들이 재워 줄 걸세."
나는 그 말을 탄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는 늙은 말을 타고 자기 길을 갔다. 나는 길 잃은 나그네처럼 좁은 길을 따라 계속 갔다. 금방 깎은 듯이 하얗고 둥근 손톱 같은 초생달이 계단을 타고 하늘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날 밤 9시쯤 나는 멀리 집에서 새어나오는 듯한 불빛을 보았다. 나는 번개와 장애물이 하느님이 보내주신 안식처를 향하는 나의 길을 막을까 두려워 말을 재촉해 몰았다. 집터 입구의 대문을 지나 나무토막과 톱밥더미를 피해 황야 깊숙이 자리잡은 그 집의 현관에 도달했다. 몇 분이 지나고, 이 집에 아무도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 후, 검은 드레스를 입은 , 갸날픈 몸매에 머리가 하얀 여자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문을 조금 열고 밤 늦게 나타난 여행자를 엄격한 눈으로 훑어보며 물었다.
"누구세요? 여긴 어떻게 왔죠?"
조용한, 마치 귀신 같은 목소리가 다가왔다.
"숲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전 학생입니다. 에르나데스 댁의 타작 잔치에 초대받아 가는 길이었습니다. 전 지금 몹시 지쳤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네 자매분들이 매우 친절하다고 가르쳐 주더군요. 어디 한 구석에서라도 재워주신다면 아침 일찍 해가 뜨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들어와요." 그녀가 말했다.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녀는 나를 어두운 거실로 인도하고 두세 개의 파라핀 등불을 켰다. 등불은 단백석 유리에 금박과 동 무늬가 가미된 아름다운 아르 누보 양식이었다. 방에서는 습한 냄새가 났다. 길다란 붉은 색 천이 높은 창을 가리고 있었다. 안락의자들은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무엇 때문에 덮어 놓았을까?
그 방은 이전 19세기 풍으로 정확히 어떤 양식인지 잘 알 수 없었고 마치 꿈처럼 음침했다. 검은 옷을 입은 하얀 머리의 여인은 생각에 잠긴 듯 움직였다. 그러나 그녀의 발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발자국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손은 처음에는 이것, 다음에는 저것 또 사진첩과 부채를 소리없이 여기저기 만졌다.
나는 마치 호수에 빠져 그 밑바닥에서 계속 살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이 지쳐 꿈 속에서 헤매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를 반겼던 여자와 비슷한 여자 두 명이 나타났다. 늦은 밤이었고 매우 추웠다. 그들은 내 곁에 가까이 앉았다. 그 중 한 명은 새롱거리듯이 엷은 웃음을 띄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문을 열어 주었던 그 여자처럼 우울한 빛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대화는 모든 곳으로부터 동떨어진 시골 구석에서, 수천 마리의 벌레 소리와 개구리 울음소리 그리고 새 소리로 가득 찬 밤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가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서 알고 싶어했다. 나는 보들레를 언급하며 그의 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들레르!"
그들이 외쳤다. "어쩌면 세상이 생긴 후 외딴 이 곳에서 누군가가 그 이름을 발음한 건 처음일 거야. 우리 집에 그의 <<악의 꽃 les fleurs du mal>>이 있지.
*
이 근처 500킬로미터 근방에 보들레르의 훌륭한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 거야. 이 산 속에는 프랑스어를 아는 사람이 없거든."
세 자매 중 두 사람은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셋 중 가장 나이가 적은 여자도 프랑스인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칠레에서 태어났다. 그들의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친척들은 모두 오래 전에 죽었다. 그 세 여자는 비, 바람, 제재소의 먼지에 익숙해졌고, 또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곤 몇몇의 시골 농부와 시골 하인들 밖에 없다는 것에 적응했다. 그들은 이 깊은 산 속의 유일한 집인 이 집에서 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인디오 하녀가 방으로 들어와서 제일 나이 많은 여자의 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복도를 지나 식당으로 갔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식당 한 가운데에는 수많은 초가 빛나고 있는 두 개의 은 촛대가 하얀 식탁보에 덮인 원형 식탁을 밝히고 있었다. 은과 크리스탈이 번쩍이고 있었다.
나는 마치 빅토리아 여왕이 저녁 식사를 위해 나를 성으로 초대한 것처럼 어찌 할 바를 몰랐다. 헝클어진 복장에 지친 몸은 먼지로 범벅이 되어 왔는데 식탁은 왕자에게나 걸맞을 듯 했다. 나는 전혀 왕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 눈에 나는 땀에 범벅이 된, 짐을 현관앞에 부려놓은 마부같이 보였을 것이다.
나는 평생 그날처럼 그렇게 잘 먹어본 적이 없다. 집주인들은 요리 예술의 장인들이었고, 사랑하는 조국 프랑스의 요리법을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 나는 요리 하나하나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어느 것이나 맛있고 향기가 좋았다. 지하실에서 프랑스 식의 특별한 방법으로 숙성시킨 값진 포도주를 꺼내왔다.
피곤을 내 눈을 감기게 만들었지만, 나는 이상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들 자매의 가장 큰 자랑은 섬세한 요리솜씨였다. 그들에게 그 식탁은 성스러운 유산을, 긴 시간의 망망한 대양에 이해 멀어져버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의 문화를 보전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자기네들끼리 슬며시 웃다가 아주 이상한 카드뭉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우린 이상한 늙은이들이라네." 가장 나이 많은 여자가 말했다.
지난 30 여 년 동안 이 깊은 산 속까지 들어왔던 스물일곱 명이 이 집이 들러 갔다. 몇몇은 사업 때문에 왔고, 몇몇은 호기심으로, 그리고 그외는 나처럼 우연히 길을 잃고 들르게 되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이 세 사람은 이 집을 방문한 사람들의 개인 신상기록을 간직하고 있었다. 신상 기록에는 방문한 날짜와 그 때 준비한 요리가 적혀있었다.
"우린 그 친구들이 다시 올 것에 대비해서 단 한 가지라도 같은 요리를 내놓지 않기 위해 우리가 차렸던 매번의 식단을 보관하고 있다네."
나는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파 봉지처럼 처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자 나는 촛불을 켜고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마구간에서 일하는 소년이 내 말에 안장을 준비했을 때는 이미 날이 많이 밝아 있었다. 마음씨 좋은 여자분들께 컴컴한 새벽에 작별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선 이 모든 것이 너무 이상하지 않느냐고, 마술에 홀린 꿈 속 같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이 마력을 깨지 않기 위해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갓 사춘기로 들어설 무렵인 45년 전의 일이다. <<악의 꽃>>을 품고 처녀림 깊은 곳에 유배되엇던 그 세 연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이 아껴 보관했던 옛 포도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숲 속의 잊혀져 버린 그 제재소와 하얀 집은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가장 단순한 운명은 죽음과 망각일 것이다. 어쩌면 숲이 그들과 잊을 수 없는 그날 저녁에 나를 반겨준 그 집을 삼켜버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꿈 속의 호수 바닥처럼 내 기억에 선명하게 살아 있다. 나는 망망하고 거친 외로움 속에 아무런 실용적 목적도 없이 옛 세계의 우아함을 지켰던 그 세 우울한 여자들에게 찬미를 보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접근할 수 없는 외로운 산 속 깊은 곳에서 조상들이 손으로 직접 일군 우미한 문화의 마지막 흔적을 지켰다."
어떤가? 기이하도록 아름다운 이야기 아닌가? 아마 누구나 기이할만큼 현실적이거나 혹은 드문 일이어서 그일이 벌어지고 있던 바로 그 순간조차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를 자문하게 되는 그러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 이야기는 프랑스의 낭시에서 있었던 일인데, 그 일을 생각하면 그것을 생각하는 지금조차도 그것이 정말 있었던 일인가 싶을 정도로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버린다. 너무도 편안하고 너무도 비현실적인 현실이었다. 다음에 언제 기회가 되면 적어보도록 하자 ...
*
네루다 <<회상>>에서 내가 옮겨보려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는 바로 그 다음날 밤에 일어난 일이다 ...
"일찍 집을 나선 나는 채 12시가 되기도 전에 산뜻한 몸과 마음으로 에르난데스 가의 농장에 도착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외진 길을 따라온 여행과 기분좋은 잠으로 인해 나의 어린 얼굴에서는 밝은 빛이 나고 있었다.
에르난데스 가의 농장에서는 밀, 귀리, 보리 따위를 아직도 말을 이용해서 타작하고 있었다. 암말들이 기수들의 재촉하는 소리에 따라 원을 그리며 곡물더미를 밟는 것만큼 즐거운 풍경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태양은 밝고 천연의 다이아몬드 같은 공기는 온 산은 반짝이게 했다. 타작은 황금빛 축제다. 노란 짚이 황금빛 산을 이루고 여기저기에 즐거운 소리와 몸짓이 가득하다. 곡물을 담으려고 남자들이 바쁘게 가마를 들고 뛰고 여자들은 먹을 것을 준비하고, 말들은 고삐가 풀려 제멋대로 날뛰고 개들은 짖어 댄다. 어린아이들은 이삭에 달린 알곡을 뜯어내듯 말발굽에 밟히기 직전에 날쌔게 낚아채야 했다.
에르난데스 가는 아주 특이한 가족이었다. 남자들은 수염도 갂지 않고 제대로 입지도 않았다. 그들은 내의만 입은 채 허리띠에다 권총을 차고 있었는데 기름이나 곡물 먼저, 진흙 따위가 묻어 있었고 비 때문에 언제나 뼛속까지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들이나 아들들이나 조카들이나 사촌들이나 모두 똑 같았다. 그들은 몇 시간이고 기계 밑에 들어가 있거나 지붕 위 또는 타작 기계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들은 딴 이야기라고는 할 것이 없었다. 싸움을 벌일 때를 제외하면 모든 것에 대해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들이 싸움을 벌일 때는 회오리치는 태풍의 격노처럼 그들 앞에 놓인 모든 것을 뒤엎어 놓았다. 마당에 쇠고기 바베큐를 차리면 제일 먼저 손을 뻗는 것도 그들이었다. 그들은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들, 개척지 사람들이었다. 혈기왕성한 그들 옆에서 나는 창백하고 왜소해 보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들은 나를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는 달리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우리는 바베큐와 기타 연주를 끝내고 태양과 타작일이 가져다 준 곤한 몸을 간이 침대에 뉘여 밤을 보내야 했다. 결혼한 부부들과 짝이 있는 없는 여자들은 새로 자른 나무로 만든 간이 건물 안에서 잤다. 우리 남자들은 타작하는 마당에서 자야 했다. 타작하는 마당은 신선한 짚이 산을 이루었다. 마을 전체가 노란 보드라움 속에서 잠들 수 있었다.
나로서는 이렇게 집의 안락을 박탈당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잠자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랐다. 구두를 벗어 조심스럽게 밀짚단 밑에 넣어 베개를 만들었다. 옷을 벗어 판초를 감고 짚더미에 몸을 파묻었다. 그러느라 나는 벌써 하나같이 코를 골며 곯아떨어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눈을 뜨고 누워 있었다. 얼굴과 팔은 짚으로 덮여 있고 맑고 찬 밤공기는 살을 파고드는 듯했다. 달은 없었지만 별들은 금방 비로 씻어낸 것 같았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잠길로 들어선 모든 사람들 위 높은 하늘에서 나만을 위해 반짝였다. 그러다가 나는 잠들었다. 얼마후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낯선 사람의 몸이 짚 속에서 내 몸 가까이 오고 있었다. 나는 두려웠다. 나를 향해 다가오는 보이지 않는 몸체에 짚이 꺾이고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다림 속에 온 몸이 굳어졌다. 일어서서 고함을 쳐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꼼짝도 않고 있었다. 내 머리 곁에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손이, 크고 거친 그러나 한 여성의 손이 내게 뻗쳐 왔다. 그 손은 내 눈썹을, 눈을,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게걸스러운 입이 내 입을 덮치고 여자의 몸이 내 발끝까지 내 몸을 눌러왔다.
조금씩 조금씩 나의 두려움은 강렬한 환희로 바뀌어 갔다. 내 손은 그녀의 땋은 머리를, 부드러운 눈썹을 그리고 양귀비처럼 보드라운 눈꺼풀과 두 눈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섰다. 나는 풍만하고 탄탄한 젖가슴을, 넓고 둥근 엉덩이를, 그리고 나를 휘함고 있는 다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산 이끼와 같은 촉촉한 음모에 손가락을 파묻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잠에서 깨게 해서는 안 될 일고여덟 명의 다른 남자들의 몸이 파묻혀 있는 짚더미에서 소리를 내지 않고 사랑을 나누는 일은 얼마나 어려웠던가.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었다. 다만 끊임없는 조심성이 필요했다. 잠시 후 그 낯선 사람은 돌연 내 곁에서 잠들어 버렸다. 격렬한 상태로 치달았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모르고 겁을 먹었다. 나는 조금만 있으면 날이 밝아올 것이고 잠에서 깬 일꾼들은 발가벗은 여자가 타작마당에 내곁에 누워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그만 잠들어 버렸다. 나는 깨어나자마자 손을 옆으로 뻗었다. 그러나 내가 찾은 것은 움푹 파인 따뜻한 빈 자리뿐이었다. 잠시 후 새 한 마리가 노래하기 시작하더니 온 숲이 새소리로 가득 찼다. 기계의 정적이 길게 울리자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각자 맡은 일을 하며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또 하루의 타작 작업이 시작되고 있었다.
정오가 되자 우리는 모두 긴 나무로 만든 간이 식탁에 둘러 앉았다. 나는 음식을 먹으며 곁눈질로 지난 밤 나를 찾아온 여자를 찾으려 했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너무 늙었고 또 어떤 여자는 너무 야위었고 그리고 대부분의 여자는 정어리처럼 비쩍 마른 어린 소녀들이었다. 나는 충만한 젖가슴과 길게 땋아내린 머리채를 가진 풍만한 여자를 찾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가 자기 남편에게 줄 로스트를 들고 나타났다. 그 남자는 에르난데스 가 사람이었다. 그 여자일 수도 있었다. 나는 식탁의 끝에 앉아 그녀를 지켜 보았다. 나는 머리를 땋은 이 아름다운 여자가 내게 눈짓을 주고 살짝 웃는 것을 틀림없이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입가에 맺힌 웃음이 내 온 몸 속에서 넓고 깊어지며 활짝 열리는 것을 느꼈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그것도 모르는, 그것도 밤에, 그것도 다른 사람들이 깰 수도 있는, 그것도 어린 청년을 성숙한 부인이 남몰래 안는 이 이야기는 어쩌면 통속극의 한 장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진실된 장면은 모두 통속극이다. 마치 당신의 인생에서 일어났던 모든 중요한 일들이 당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당신이 들었던 모든 진실된 장면은 당신의 머리속에서 완성된다 ...
마지막으로 보들레르. <<악의 꽃>> 판본은 우리나라 번역도 많이 있으나 문학과지성사에서 최근 나온 다음 판본을 올려보도록 하자. 사진이 크지 않으나 그것으로 충분하다.
*
charles baudelaire, les fleurs du mal, 1857.
우선, 어제 만난 프랑스 여인들 마지막 부분에 다음날 일어난 그것만큼 신비롭고 더 숨막히는 다른 여성의 이야기를 덧붙였으니 다들 꼭 읽어보시기를.
*
다음은 네루다 자서전에서 글쓰기, 시와 관련된 몇 개의 단상을 정리해본다. 이때는 이미 네루다가 상당히 유명한 시인이 되고 나이도 제법 들었던 때의 일인 듯 싶다. 우선 당신이 작가라면 그에 대한 부러움과 나의 지금 글이 아직 그러하지 못함에 대한 절망으로 고개를 떨구게 만들, 작은 에피소드 하나.
"하루는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왔는데, 나는 어디로 가는 지 알지도 못한 채 그 차에 탔다. 나의 주머니에는 나의 시집 <<가슴 속의 스페인>>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차 안에서 그들은 내가 베가 시장의 짐꾼 조합 강당에서 진행되는 강의에 초청되었다고 설명했다.
허름한 강당에 들어섰을 때 호세 아순시온 실바의 시 <밤>에 묘사되고 있는 한기가 내 몸을 전율케 했는데 그것은 겨울이 깊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의 분위기가 내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약 오십여 명의 남자들이 나무상자나 임시방편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허리에 자루를 앞치마처럼 두르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헤어진 런닝 셔츠로 몸을 가렸을 뿐이었고, 또 상당수의 사람들은 칠레의 그 추운 7월을 허리 위로는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 견디고 있었다.
나는 이 특별한 관중들 앞에 놓인 책상 뒤로 가서 앉았다.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가진 석탄같이 검은 자신들의 눈동자를 모두 나에게 꽂았다.
[...]
이런 관중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내가 그들에게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내 삶의 어떤 것에 이들은 관심을 가질까? 나는 도무지 생각을 가다듬을 수 없었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주머니에서 책을 꺼내 들고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얼마 전에 스페인에 있었습니다. 긴 전쟁이 끊기지 않고 총성이 멈출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 제가 스페인에 대해 쓴 것을 한번 들어보시죠."
내 시집 <<가슴 속의 스페인>>은 내가 보기에도 이해하기 쉬운 책이 아니라는 걸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 책은 상황을 선명하게 묘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국 압도적이고 고통스러운 사건들의 급류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몇 편의 시를 읽고, 몇 마디 말을 덧붙여 설명을 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나가며 침묵의 깊은 우물 속으로 내 목소리가 떨어지고 있는 것을 들었다. 시구 한 줄 한 줄을 넋을 잃은 듯이 따르는 그들의 눈동자와 검은 눈썹을 보며 나는 내 시가 표적을 제대로 맞추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시의 소리에 그리고 내 시와 저 버림받은 영혼들을 잇는 자석 같은 힘에 사로잡힌 듯 계속 읽어나갔다.
시낭송은 한 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내가 강당을 떠나려 하자 한 사람이 일어섰다. 그는 허리에 자루를 두른 사람들 중 하나였다.
"우리 모두를 대표해서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그가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껏 우리를 이렇게 감동시킨 것은 이제껏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는 말을 맺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젖은 눈동자들과 거친 박수 사이를 걸어 거리로 나왔다.
이러한 불과 얼음의 시련을 겪은 시인이 어떻게 그 뒤 이전과 같을 수 있겠는가?"
네루다, 그는 나와 꼭 같은 꿈을 품고 있었고, 그는 그것을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 혹은 그 말이 지나치다면, 자신이 자신만큼이나 그들을 위하여 자신의 글을 썼던 이들로부터 돌려받았다.
누가 네루다가 행복한 시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이어서 <<자서전>> 곳곳에서 내가 이곳에 옮겨놓기 위해 표시해 놓았던 시, 문학, 글쓰기 혹은 이미지에 관련된 단상들 몇 개를 적어본다.
"그는 많은 것을 보고 산 사람으로, 여전히 자기가 만들어낸 자기 이미지의 잔영 속에 사는 사람이었다."
"젊은 작가는 외로움의 몸서리 없이는, 설령 그것이 단지 상상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글을 쓸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성숙한 작가가 인간적 동료의식이나 사회의 맛이 깃들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는 것과 같다."
"나는 가끔씩 폴 엘뤼아르와 시간을 허비하는 시적 환희를 즐기곤 했다. 만일 시인들이 여론조사에 진실하게 대답한다면,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그 비밀은 누설되고야 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름대로 시간을 허비하는 방식을, 시간만큼이나 오래된 방식들을 갖고 있다. 폴과 함께 있으면 나는 낮밤이 바뀌는 것도 다 잊어 버렸고, 우리가 중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든 그렇지 않든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 이론으로 자기 본성을 점점 죽여나간 코스모폴리탄이었다."
"내가 어떤 돌들을 작은 오리와 비교했다고 해서 한 우루과이의 비평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작은 오리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작은 동물들은 시의 재료가 되지 못한다고 못박고 있었다. 문학적 교양은 이런 정도의 경박함에 이르렀다. 그들은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 숭고한 주제들만을 다루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틀렸다. 우리는 교양의 심판자들이 가장 하찮게 보는 것으로 시를 만들 것이다."
그걸 이해했어? 이 마지막 말이 사소하고 반복되는 별 것 아닌 이야기처럼 보이는 만큼 이 이야기가 정말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 이야기라는 걸?
2008년 12월
배부른 글이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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