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25.
2014. 1. 24.
ceci n'est pas une pipe 6
84.
Diego Rodríguez de Silva y Velázquez
las meninas, 1656
http://en.wikipedia.org/wiki/Meninas
87.
http://www.mattesonart.com/1949-1960-mature-period.aspx
* manet - madame récamier + balcon
http://naoshimaisland.blogspot.kr/search?q=manet
manet, le balcon
perspective ii: manet's balcony; red chalk drawing (earliest version circa 1948-1949)
perspective. le balcon de manet, 1950
jean-jacques louis david
http://en.wikipedia.org/wiki/Jacques-Louis_David
courbet, l'enterrement d'ornans 오르낭의 매장 1850
http://en.wikipedia.org/wiki/Courbet
91.
1966 wlaberg, magritte
1970 rene passeron, magritte
http://www.amazon.com/Magritte-Septieme-Collection-Dirigee-Saucet/dp/B004WH0C5U/ref=sr_1_4?ie=UTF8&qid=1390541164&sr=8-4&keywords=passeron+magritte
93.
l'usage de la parole 1932
ceci n'est pas une pipe 5
VI. 그림은 확언이 아니다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 사이의 분리, 유사와 확언의 등가성. 이 두 원칙이 고전 회화의 긴장을 구성했었다. 후자는 언어 요소가 세심하게 배제된 회화에 담론(말이 있는 곳에서만 확언(確言, affirmation)이 있다)을 재도입했다. 거기에서 고전 회화가 언어 외부에서 자신을 구성하면서도 말을 한다는-그것도 아주 많이-사태가 비롯되었으며, 거기에서 고전 회화가 자신 아래에 이미지와 기호의 관계를 되살릴 수 있었던 일종의 공통의 자리(lie commun)를 갖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마그리트는 언어 기호와 조형 요소들을 연결시키는데, 그러나 어떠한 선행 동위소(isotopie)도 설정하지 않는다. 그는 유사가 태연하게 근거하고 있는 확언적 담론의 바탕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는 지표 없는 용적과 구도 없는 공간의 불안정 속에서 비확언적 순수 상사체들과 말의 언표들을 놀이하게 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말하자면, 바로 그 작동절차의 기본형식을 제공한다.
1. 이미지, 텍스트, 유사, 확언 그리고 그들의 공통의 자리가 동시에 가시적으로 현존하는 칼리그람을 실천하는 것.
2. 그 다음, 칼리그람이 곧바로 해체되어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텅 빔만을 흔적으로 남기는 방식으로, 대번에 열어 나가는 것.
3. 담론이 자신의 무게 때문에 떨어지고, 가시적인 문자의 형태를 얻도록 하는 것. 문자들은, 그것들이 그려지는 만큼, 그림 그 자체와 불확실하고 무한하고 얽히고 설킨 관계 속에 놓이는데, 그러나 어떠한 표면도 그들에게 공통의 자리로 쓰일 수 없다.
4. 다른 한편, 상사체들이 자신들로부터 출발해 증식되고 자신들의 입김에서 태어나, 그것들이 자신들 외의 그 어떤 것에도 귀속되지 않게 되는 에테르 속으로 끝없이 피어올라가도록 둘 것.
5. 조작이 끝난 후, 침전물의 색깔이 변했는지, 흰색이 검은색으로 변했는지, 유사의 재현 속에 은밀히 감추어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순환하는 상사체들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되었는지 잘 검증할 것.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캠벨, 캠벨, 캠벨, 캠벨.”(77-79)
79.
andy warhol
http://en.wikipedia.org/wiki/Andy_Warhol
1962
Campbell's Soup I (1968)
ceci n'est pas une pipe 4
“겉으로 보기엔 마그리트보다 칸딘스키나 클레에게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의 그림은 그 누구의 그림보다 정확한 유사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의 작품은 유사를 확인하기 위해서인 듯 고의적으로 유사를 배가시키는 데에까지 이를 정도이다. [...] [마그리트의 그림은] 어떤 그림보다 더 철저하게, 가혹하게 글씨 요소와 조형 요소를 분리시키는 데 전념하고 잇는 회화이다. 그것들이, 그림설명과 그것이 설명하는 이미지가 그러한 것처럼, 화폭 내부에서 포개지는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언표가 형상의 명백한 정체성을 그리고 그 형상에 부여될 준비가 갖추어진 이름을 부인하는 조건 아래에서 그러하다. 달걀과 꼭 닮은 것이 아카시아라 불리우며, 구두와 닮은 것이 달이라고, 중산모는 눈(雪)이라고, 초는 천장이라고 불리운다. 그러나 마그리트의 회화는 클레나 칸딘스키의 작업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차라리 그것들과 정면으로 마주서서 그리고 그것들의 공통된 체계로부터 출발하여, 대립적이면서도 보족적인 형상을 이룩한다.”(43-45)
IV. 말들의 은밀한 작업
“그림글씨(graphisme)와 조형적인 것(la plastique)의 [상호] 외재성은, 마그리트에게서는 그렇게도 분명한 것인데, 그림과 제목 사이의 무(無, non) 관계 혹은 어쨌든 아주 복잡하고 아주 우연적인 관계로 상징된다. [...] ‘제목들은, 사유의 자동성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 그림들을 불가피하게 친숙한 지점에 위치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선택된다.’”(47)
“이 두 극단 사이에서 마그리트의 작품은 말과 이미지의 놀이를 펼친다.”(50)
“클레는 자기의 조형 기호를 배치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짰다. 마그리트는 재현의 낡은 공간이 지배하도록 그대로 내버려 두지만 표면상으로만 그렇다. 그 공간이란 게 형상들과 말들을 갖고 있는 미끈한 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무덤의 평석 같은 것이다. 형상을 그리는 홈과 문자를 표시하는 홈은 오직 텅 빔(le vide)에 의해서만, 단단한 대리석 밑에 숨겨져 있는 그 비-공간(non-lieu, 免訴)에 의해서만 소통한다.”(56)
“그리고 말이 대상의 단단함을 취하고 있을 때면 [...], 말과 대상은 함께 하나의 형상을 구성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정반대로 상이한 두 방향을 향하고 있다.”(57)
perspective: mme. récamier 1958
57. l'usage de la parole 말의 활용 1932
V. 확언의 일곱 봉인
“내가 보기에, 마그리트는 유사(類似, ressemblance)에서 상사(相似, similitude)를 분리해내고, 후자[상사]를 전자[유사]와 반대로 작용하게 하는 것 같다. ‘유사’에는 주인이 있다. 근원이 되는 요소가 그것으로서, 그로부터 출발하여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하게 되는데, 그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약화됨으로써, 그 근원 요소를 중심으로 질서가 세워지고 위계화된다. 유사하다는 것은 지시하고 분류하는 제1의 참조물을 전제로 한다. 반면 비슷하다는 것은 시작도 끝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갈 수 있으며, 어떤 서열에도 복종하지 않으며, 조금씩 조금씩 달라지면서 퍼져 나가는 계열선을 따라 전개된다. 유사는 재현에 쓰이며, 재현은 유사를 지배한다. 상사는 되풀이에 쓰이며, 되풀이는 상사의 길을 따라 달린다. 유사는 모델에 따라 정돈되면서, 또한 그 모델을 다시 이끌고 가 안정시켜야 하는 책임을 떠맡는다. 상사는 비슷한 것으로부터 비슷한 것으로의 한없고 가역적인 관계로서의 모의(模擬, simulacre)를 순환시킨다.”(61)
유사(類似, ressemblance)
|
상사(相似, similitude)
|
동일자(同一者) identité
|
차이 différence, 타자(他者) autre
|
모델-사본
modèle-copie
|
환영(幻影), 시뮬라크르
simulacre, phantasma
|
재현[표상(表象)] représentation
|
되풂, 되풀이[반복] répétition
|
“이제 상사는 자신(자기, soi)에게로 돌아간다-자신으로부터 출발해 펼쳐졌다가, 다시 자신 위로 접히는 것이다. [...] 거기에서 마그리트에게 보여지는, 화폭 밖으로 절대 넘쳐나지 않는 순수해진 상사의 한없이 놀이들이 생겨난다. 그 놀이들은 변신의 기초를 이룬다.”(70-71)
“화폭과 그것이 모방해야 하는 것 사이의 내적 거리, 빗나감, 차이.”(72)
“완전한 차이의 놀이”(74)
61.
représenation 재현 1962
pink floyd, ummagumma, 1969
http://en.wikipedia.org/wiki/Ummagumma
63.
décalcomanie 데칼코마니 1966
71.
자연의 은총 les graces naturelles 1948
눈물의 맛 la saveur des larmes 1948
71.
부인 la dame, 병 la bouteille 1943
[1959]
72.
과대망상증 folie des grandeurs 1961
인간조건 la condition humaine 1935
1933
73.
폭포 la cascade 1961
떨어지는 저녁 le soir qui tombe 1964
la lunettes d'approche 망원경 1963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 1936
ceci n'est pas une pipe 3
III. 클레, 칸딘스키, 마그리트
“내 생각에는 두 개의 원칙이 15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회화를 지배해왔다. 첫 번째 원칙은 조형적 재현(유사[닮음] ressemblance)를 함축한다)과 언어적 지시(유사를 배제한다) 사이의 분리를 단언한다. [...] 본질적인 것은 언어 기호와 시각적 재현이 대번에[단번에, 동시에]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제나 하나의 [특정] 질서가 형태에서 담론으로 혹은 담론에서 형태로 가면서 그것들[양자]를 위계화한다. 바로 이 원칙의 절대성을 클레가 부숴버린 것인데, 형상들의 중첩과 기호들의 구문을 불확실하고 가역적이며 부유하는 공간(즉, 책면이자 동시에 화폭이고, 평면이고 동시에 부피이며, 바둑판처럼 그어진 공책의 선이자 동시에 토지 지적부이고, 역사이자 동시에 지도인 공간) 안에서 강조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 문제되고 있는 것은 똑 같은 체계 조직 속에 유사에 의한 재현과 기호에 의한 지시의 교차이다. 그것은 화폭의 공간과는 아주 다른 공간에서 그들이 서로 만난다는 것을 가정한다.”(39-42)
44
l'incendie 화재 1943
le séducteur 1950 유혹자
philosophie dans le boudoir 1947
49
l'art de la conversation 대화의 기술 1950
rêve 꿈
crevé 파열된
trêve 휴전
50
le soir qui tombe 떨어지는 저녁 1934
52
personnage marchant vers l'horizon 지평선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 1928-1929
[총-구름-의자-수평선-말]
54. l'alphabet des révélations 묵시의 알파벳 1929
57. 1936 l'usage de la parole 말의 활용
canon 경전 대포 멋진
corps de femme 여성의 육체
arbre 나무
fusil (엽)총
nuage 구름
horizon 지평선
cheval 말
chaussée 신발
Le masque vide, 빈 가면 1929
ciel 하늘
corp humain (ou forêt) 인간의 육체 (또는 숲)
façade de maison 집의 정면
rideau 장막
* clef des songes 꿈의 열쇠 1930
l'acacia 아카시아
la lune 달
la neige 눈
le plafond 천장
l'orage 돌풍
le désert 사막
Paul Klee (1879–1940) - 글과 그림의 분리를 파괴
http://en.wikipedia.org/wiki/Klee
In den Häusern von St. Germain, 생제르맹의 집들 1914
Villa R 1919
the wild man 1922
Senecio, 노인 1922
1923 Station 역
Zeichen in Gelb 노란 기호 1937
Tod und Feuer 죽음과 불, 1940
“오랫동안 회화를 지배해 온 두 번째 원칙은 ‘유사하다는 사실’과 ‘재현적 관계가 있다는 확언’ 사이의 등가성(等價性)을 제시한다. [...] 본질적인 것은 유사와 확언을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원칙으로부터의 단절을 우리는 칸딘스키의 공으로 돌릴 수 있다. 우선, 칸딘스키는 교회라는 대상, 다리라는 대상, 혹은 활을 든 기병-사람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사물들’이라고 말했던 그 선들과 그 색채들을 더욱 더 고집스럽게 확인함으로써 유사와 재현의 관계를 동시에 지워버린다. 다음, 그의 확언은 어떤 유사에도 기대지 않으며, 누가 ‘이게 무엇이오’라고 물어보면 ‘즉흥improvisation’이라든지 ‘구성composition’이라든지 그것을 만든 몸짓과 관련하여서만, 혹은 ‘붉은 형태’, ‘삼각형들’, ‘오렌지색 보랏빛’처럼 거기 있는 것과 관련해서만, 혹은 ‘결정적 장미’,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노란 중간’, ‘장미빛 보상’ 등의 내적 긴장이나 관계에 의해서만 대답할 수 있는, 그런 날 것 그대로의 확언이다.”(42-43).
59.
Wassily Wassilyevich Kandinsky (1866–1944) - 그림과 제목의 등가성(等價性)을 파괴
http://en.wikipedia.org/wiki/Wassily_Kandinsky
composition 구성 viii 1923
improvisation: green center 즉흥: 초록색 중심 1935
white balancing 하얀 균형 1944
* trompe-l'oeil
http://en.wikipedia.org/wiki/Trompe-l%27oeil
피드 구독하기:
글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