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21.

07.08.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 & II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 전집 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1878), 김미기 옮김, 책세상, 2001.

 
6. [...] 너는 모든 가치 평가에서 관점주의적인 것을 터득해야만 했다 - 지평의 이동, 왜곡 그리고 표면상의 목적론과 관점주의적인 것에 속하는 모든 것 그리고 대립된 가치들과 관계하는 약간의 우둔함, 찬성과 반대와 함께 항상 지불되는 지적 희생도 터득해야만 했다. 모든 찬성과 반대 속에 포함된 필연적인 불공정[불공평]을 이해하는 것을 배우고 그 불공정은 삶에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그 삶 자체를 관점주의적인 것과 그 불공정에 의해 제약되는 것으로 터득해야 했던 것이다.
- 17쪽.
 

11. 소위 학문이란 것으로서의 언어 - 31-32쪽
 

25. 개인 도덕과 세계 도덕 - [...] 아무튼 인류가 이와 같은 의식적인 전제적 통치에 의해 파멸되어서는 안 된다면, 지금까지의 정도를 모두 넘어서는 문화의 조건들에 대한 지식이 보편적 목표를 위한 학문의 척도로서 사전에 이미 발견되어야 한다. 이것이 다음 세기의 위대한 정신들이 해야 할 엄청난 과제이다.
- 49쪽.
 

31. 비논리적인 것은 불가피하다 - 비논리적인 것이 인간세계에 필요하며 비논리적인 것에서 좋은 것이 많이 생겨난다는 인식은 사상가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는 것 중에 하나다. 비논리적인 것은 정열, 언어, 예술, 종교 등에 그리고 대체로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에 상당히 깊이 파고 들어가 있어서, 이들 아름다운 것들을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주지 않고는 비논리적인 것을 퇴치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이 순수하게 논리적인 본성으로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주 소박한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이 목표에 접근하는 단계라는 것이 있다면,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은 상실될 것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가장 이성적인 인간도 때로는 다시 본성을, 즉 만물에 대한 자신의 비논리적 기본 입장을 필요로 한다.
- 54-55쪽
 

32. 불공정함은 불가피하다 - 삶의 가치에 관한 모든 판단은 비논리적으로 발전해온 것이므로 공정하지 못하다. 판단의 순수하지 못함은, 첫째 재료가 나타나는 양식에, 즉 극히 불완전한 점에 있으며, 둘째 재료에서 총계가 구성되는 양식에 있으며, 셋째는 재료의 모든 개별 부분이 순수하지 못한 인식의 결과이며, 더욱이 이런 순수하지 못한 인식의 결과가 다시 필연적이라는 점에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겪은 경험의 총체적 평가를 위한 논리적인 정당성을 부여할 만큼 완전할 수는 없다; 모든 평가는 성급하며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우리가 재는 척도, 즉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은 결코 불변의 크기를 가진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위기와 동요에 휩쓸리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에 대한 어떤 사항의 관계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확실한 척도라고 믿어야만 한다. 아마 이상의 모든 면에서 본다면 사람은 전혀 판단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평가하지 않고, 혐오와 애착 없이 사람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 왜냐하면 모든 혐오는 애착과 마찬가지로 역시 평가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유익한 것을 얻고자 원하고 유해한 것을 회피하는 감정 없이 그 무엇을 하고자 하거나 하지 않으려는 충동 그리고 목표의 가치에 대한 인식적인 평가가 없는 충동은 인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비논리적인, 따라서 불공정한 존재이며, 이것을 인식할 수 있다. 이것이 현존재의 가장 크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부조화 중의 하나이다.
- 55-56쪽
 

* "Le sens historique, tel que Nietzsche l'entend, se sait perspective, et ne refuse pas le systeme de sa propre injustice."
"니체가 이해한 바의 역사적 감각은 자신이 관점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불공정한 체계를 거부하지 않는다."
- "Nietzsche, la Généalogie, l'Histoire", Dits et ecrits I, p.1018; 미셸 푸코, 「니체, 계보학, 역사」, 이광래 옮김, 이광래 지음, 『미셸 푸코: ‘狂氣의 역사’에서 ‘性의 역사’까지』, 민음사, 1989, 350쪽.
 
 

- 내가 생각하기에, 모든 이른바 '포스트주의'의 도덕성은 이 세계의 다양한 관점들을 가로지르는 '절대 관점, 보편 관점 혹은 신이 죽은' 이 세계에 대해 어떤 관점의 우위성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그 정신에 입각하여 자기 이론마저도 하나의 관점이고, 따라서 부당하고 불공정한 체계임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 기인한다.

이제까지 스스로를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유일한 필연적 진리라고 주장해왔던 모든 이론들은 사실상 그렇게 스스로를 믿고 주장할 뿐인 무수한 가능한 관점들 중 단 하나인데, 그들은 이렇게 보통 말한다.

"다른 모든 관점들은 관점이다. 진리인 나의 이론만 빼고!"

이른바 '포스트주의들'은 바로 이점에 대해 스스로를 배제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연 탁월한 도덕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렇게 '하나의 논리가 자신의 주장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적용 대상에서 빼놓지 않는 것'을 '논리의 윤리성'이라 부른다.
 

33. 삶에 대한 오류는 삶을 위해 불가피하다 - 삶의 가치와 존엄성에 대한 모든 믿음은 순수하지 못한 사고에 기초해 있다; 그것은 오로지 인류의 보편적인 삶과 고뇌에 대한 동감이 개인에게는 아주 미약하게 발달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하게 불평하지 않고 삶을 견뎌내고 있고, 이로써 삶의 가치를 믿고 있다. [...] 반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의 운명과 고뇌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삶의 가치에 절망할 것이다; 만약 그가 인류의 총체적인 의식을 자신 속에서 파악하고 감지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현존을 저주하면서 쓰러질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는 전체적으로 아무런 목표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은 전체적인 상황으로 보아 그 속에서 위로와 의지가 아니라 회의를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서 인간의 궁극적인 무목적성을 보게 될 때, 그의 눈에는 자기 자신의 활동도 낭비라는 특징으로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개개의 꽃이 자연에 의해서 낭비되고 있는 것을 보듯이 바로 우리가 인류로서(그리고 단순히 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자신이 낭비되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은 모든 감정을 넘어서는 감정이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느낄 수 있는가? 분명 시인뿐이다; 시인들은 언제나 자신을 위로하는 법을 알고 있다.
- 56-57쪽
 

50. 동정을 유발시키려고 하는 것 - 라 로슈푸코가 자신의 자화상(초판 1658)의 가장 주목할 만한 대목에서 이성을 가진 모든 사람은 동정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그런 일은 서민들에게 맡겨버리라고 충고하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서민들은 고통받는 자를 돕거나 불행에 처했을 때 힘차게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정열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성을 통해 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런데도 로슈푸코의 (그리고 플라톤의) 판단에 의하면 동정이란 영혼의 힘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동정을 입증해야 하지만, 동정을 갖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 왜냐하면 불행한 사람들은 어쨌든 동정을 보이는 것이 그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어리석기 때문이다. - 불행한 사람의 그러한 욕구를 정녕 어리석음과 지적 결함, 불행이 수반하는 일종의 정신장애로 간주하지 않고 (라 로슈푸코는 아마도 그렇게 해석하고 있는 듯하지만), 전혀 다르며 의심스러운 것으로 해석할 때, 사람들은 이런 동정을 갖지 않도록 더욱 강력하게 경계할 수 있을 것이다. 차라리 아이들을 관찰해보라. 그들은 울거나 소리침으로써 동정받고 자신들의 상태가 눈에 띌 순간을 기다린다 ; 병자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과 교제하며 살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능란하게 호소하고 흐느끼며 불행을 과시하는 것이 결국 함께 있는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것은 아닌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 그들이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아직 어떤 힘, 즉 강자를 괴롭힐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인식하는 한, 함께 있는 사람이 표현하는 동정은 약자와 고통받는 자들에게는 위안이 된다. 불행한 자는 동정 베풂이 자신에게 입증해주는 우월감으로 인해 일종의 쾌감을 얻는다 ; 자신은 아직도 세상에 고통을 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그의 자만심도 커진다. 그래서 동정에 대한 열망은 자기 만족을 향한 열망이며, 더욱이 이웃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 동정심은 지극히 자기애에 빠져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 그러나 라 로슈푸코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음” 때문은 아니다. 사교적인 대화에서는 모든 질문과 대답의 4분의 3이 상대편을 조금이라도 괴롭히기 위한 것이다 : 그런 이유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대단히 사교를 갈망한다. 사교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악의가 힘을 떨치고 있는 이같이 많은, 그러나 극히 적은 양의 약에서도 사교는 삶의 가장 강력한 자극제이다. 그것은 마치 같은 형식으로 이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호의가,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는 치료제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 그러나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고백할 정직한 사람이 있을까? 적어도 생각 속에서는 다른 사람을 모멸하고, 악의라는 작은 탄환을 그들에게 퍼붓는 것을 가장 즐기고 - 기꺼이 즐기고 있다고 고백할 정직한 사람이 있을까? 이런 치부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기에는 사람들은 대부분 너무 부정직하고 몇몇 사람들은 너무 선하다. 따라서 차라리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 할지라도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가 한 다음의 말은 옳다. “악한 일을 한다는 쾌감 때문에 악한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일반적인 없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 77-79쪽.
 

57. 자기 분할로서의 인간의 도덕 - 진정으로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작가는 누군가가 찾아와서 그 일을 더 명확하게 표현해주고ㅡ 여기에 포함된 문제에 대해 남김없이 대답함으로써 자신을 파괴해주기를 원한다. 사랑을 하고 있는 소녀는 연인이 저지른 부정에서 자신의 사랑이 헌신적이며 충실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군인은 조국의 승리를 위해 전쟁터에서 쓰러지기를 원한다 : 왜냐하면 자신의 최고 소원도 조국의 승리를 통해 승리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 즉 수면과 가장 좋은 음식을, 사정에 따라서는 자신의 건강과 재산을 자식에게 주게 된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비이기적인 상황들일까?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라 이런 도덕적 행위들은 “불가능하면서도 현실적”이기 때문에 기적일까? 이들의 경우에는 인간은 자신의 그 무엇을, 하나의 사상, 하나의 욕망, 하나의 작품 등을 자신의 다른 것보다 한층 더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분할해서 한쪽을 다른 한쪽의 희생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이 명확하지 않은가? 어느 고집 센 사람이 “내가 이 인간에게 한 걸음이라도 길을 양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총을 맞는 편이 낫다”고 할 때, 이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일까? 어떤 것에 대한 애착(소원, 충동, 욕망)은 앞서 말한 모든 경우에 존재하고 있다 ; 애착을 가지는 것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든 “비이기적”이지 않다. 도덕에서 인간은 자신을 분할할 수 없는 것, 개체individuum로서가 아니라, 분할할 수 있는 것dividuum으로서 다룬다.
- 85쪽.
 

92. 정의의 유래 - 101-102쪽
 

114. 그리스도교에서 비그리스적인 것 - [...] 그리스도교의 모든 심리학적 발명은 감정의 이러한 병적인 과도함과 거기에 필요한 머리와 마음속의 깊은 파괴를 향해 작용했다 : 그리스도교는 파멸시키고, 파괴하고, 마비시키고, 도취시키려고 한다. 단 한 가지 척도만은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말하면, 야만적이고 동양적이며, 천박하고 비그리스적이다.
- 138쪽.
 

303. 반대하는 이유 - 한 의견이 우리들에게는 단지 그 전달된 어조만이 호의적이지 않을 뿐인데도, 사람들은 흔히 그 의견을 반대한다.
- 289쪽
 

304. 신뢰와 친밀함- 다른 사람과 의도적으로 친밀해지려고 애쓰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있는지에 대하여 확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뢰를 확신하는 사람은 친밀함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
- 289-290쪽
 

310. 기다리게 하는 것 - 사람들은 흥분하게 하고 그들 머릿속에 나쁜 생각을 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비도덕적으로 만든다.
- 291쪽
 

311. 친밀한 사람들에 대해 - 우리에게 완전한 신뢰를 보이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뢰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이는 잘못된 추리다. 선물로 권리를 획득할 수는 없다.
- 291쪽
 

314. 사려 깊은 - 아무도 기분 상하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정의로운 기질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많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 292쪽
 

379. 부모의 존속 - 부모의 성격과 성향에 관련된 해결되지 않는 불협화음은 어린아이의 본질 속에서 계속 울리게 되고 그의 내면적인 고뇌의 역사를 형성한다.
- 323쪽
 

381. 자연을 수정하는 것 - 훌륭한 아버지가 없다면, 그런 아버지를 자신에게서 만들어내야만 한다.
- 324쪽
 

390. 여성의 우정 - 여성은 남성과 아주 좋은 우정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마 약간의 생리적인 반감이 협조해야 할 것이다.
- 326쪽
 

396. 반하고 싶어 한다 - 관습에 따라 결합된 약혼자들은 흔히 그들의 차갑고 타산적인 유용성을 비난하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에 빠지려고 노력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이익 때문에 그리스도교로 전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경건해지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종교적 무언극이 그들에게 훨씬 쉬워지기 때문이다.
- 327쪽
 

416. 여성해방에 대하여 - [...] 도대체 학문이 무엇인가를 참으로 알고 있는, 한 명의 여성보다 더 희귀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가장 우수한 여성들마저도 마치 자신들이 그 무엇에 의해서 학문보다 더 우월한 것처럼, 가슴속에서는 은밀하게 학문에 대한 경멸에 가까이 가고 있다. 아마 이 모든 것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당분간은 그러하다.
- 335쪽
 

422. 어린 시절의 비극 - 고상하고 높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유년기에 가장 혹독한 투쟁을 견뎌내야 했다는 것은 아마 드물지 않게 있는 일일 것이다: 그들은 비천하게 생각하고 겉치레와 거짓을 따르는 아버지를 거역하고 자신들의 의향을 관철시켜야만 하거나 바이런 경처럼, 끊임없이 어린아이 같고 화내기 잘하는 어머니와 싸우며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한 것을 체험했다면 사람들은 평생 동안 한 사람에게 가장 크고 가장 위험한 적이 과연 누구였던가를 알게 된 사실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 338쪽
 

446.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 - 356-357쪽
 

475. 유럽인과 여러 국가의 파멸 - [...] 동양적인 구름층이 유럽 위에 무겁게 덮여 있었던 중세의 가장 어두운 시대에, 가장 가혹한 개인적인 압박 하에서도 계몽과 정신적 독립의 깃발을 고수하고 동양에 맞서 유럽을 방언한 것은 유대의 자유사상가, 학자 그리고 의사들이었다. 좀더 자연적이고 합리적이며 적어도 비신화적인 세계 해석이 마침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과 지금 우리를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 문화에 의한 계몽과 연결하는 문화의 고리가 단절되지 않고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노력에 신세진 것이 적지 않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서방을 동양화하기 위하여 모든 일을 다고 한다면, 유대민족은 근본적으로 서구를 다시 서양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서양화하는 것이란 특정한 의미에서는 유럽의 과제와 역사를 그리스적인 것을 계승하는 것으로 삼는다는 의미이다.
- 382쪽
 

483. 진리의 적들 - 신념은 거짓말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
- 391쪽.
 

499. 친구 - 고통의 나눔 곧 동정이 아니라, 기쁨의 나눔이 친구를 만든다.
- 395쪽.
 

550. 감사의 끈 - 노예 같은 영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감사의 끈으로 스스로 목을 매어 죽기까지 할 정도로, 베풀어진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아주 지나치게 한다.
- 407쪽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전집 8.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II』, 김미기 옮김, 책세상, 2002.
 

제1장 혼합된 의견과 잠언들
 

10. 역사의 포로가 되는 것 - 베일을 쓴 철학자들과 세계를 어둡게 만드는 사람들, 즉 섬세한 씨앗이나 씨앗을 가진 모든 형이상학자들은, 철학 전체는 지금부터 역사의 포로가 되어 있다는 명제와 더불어 그 명제가 정당한지 의심하기 시작할 때 눈과 귀와 이에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
- 26쪽
 

140. 입을 다무는 것 - 자신의 작품이 입을 열 경우, 작가는 입을 다물어야만 한다.
- 92쪽.

221. 예외적인 그리스인 - [...] 그렇지만 이제는 학문을 창시한 그 예외적인 그리스인들의 위대함을 존중하자! 그들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인간정신의 가장 영웅적인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 138-139쪽.
 

346. 오해받는다는 것 - 전적으로 오해받고 있다면, 개개의 오해를 근본적으로 풀어가기는 불가능하다. 자신을 변명하는 데 지나친 힘을 낭비하지 않도록 사람들은 이 사실을 통찰하고 있어야 한다.
- 195쪽.
 

386. 들을 귀가 없다는 것 - “항상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은 아직도 천민에 속한다 ; 항상 자신에게만 책임을 돌릴 경우, 그는 진리의 궤도에 들어 서 있는 것이다 ;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누구에게도, 즉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책임은 없다고 생각한다.” - 누가 이렇게 말했던가? - 천 8백 년 전 에픽테토스이다. - 사람들은 그 말을 듣기는 했지만 잊어버렸다. - 아니, 듣지도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 모든 것이 망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들을 귀를, 즉 에픽테토스의 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 그렇다면 그는 이것을 자신의 귀에 대고 말한 것일까? - 그렇다 : 지혜란 사람이 넘치는 시장에서도 고독한 사람이 자신에게만 속삭이는 귓속말이다.
- 207-208쪽.
 

395. 너무 비싸게 사지 말 것 - 너무 비싸게 산 물건은 역시 대체로 좋지 않게 사용된다. 왜냐하면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이, 씁쓸한 기억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 이렇게 사람들은 이중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 210쪽
 

제2장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19. 비도덕주의자들 - 도덕주의자들은 오늘날 비도덕주의자로 비난받는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도덕을 해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부하려는 사람은 먼저 죽여야만 한다 :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단지 더 잘 알고, 더 잘 판단하고,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세상 모두를 해부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그 모든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 그들은 도덕주의자를 도덕의 설교자와 혼동하고 있다. 과거의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을 충분히 해부해보지도 않고 설교하는 일이 너무나 흔했다 : 이 때문에 이러한 혼동뿐만 아니라 현재의 도덕주의자들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 237-238쪽.
   
  
22. 균형의 원리 - 239-241쪽
 

23. 자유의지 이론의 추종자들을 처벌해도 되는가 - 241-244쪽
 

28. 형량의 결정에 있어서 임의성 - [...] 모든 것은 범죄자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사회가 받는 손상과 위험이 기준이 된다: 그리고 한 인간의 과거의 유익성은 그가 저지른 단 한 번의 유해성에 불리하게 계산되고, 과거의 유해성은 또 현재 발견된 유해성에 불리하게 계산되고, 과거의 유해성은 또 현재 발견된 유해성에 가산되어 그에 따라 형량은 최고로 산정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과거가 함께 처벌되거나 또는 함께 보상(처벌의 경감으로 보상된 첫 번째 경우)되는 것이라면,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이러저러한 원인들을 다 처벌하고 보상해야 할 것이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부모와 교육자와 사회 등의 원인이다. 많은 경우에 재판관도 어떤 방법으로든 죄에 관계되어 있을 것이다. 과거를 처벌할 경우, 범죄자에게만 국한하는 것은 임의적이다. 모든 죄가 가진 절대적인 용서 가능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면, 각 개별적인 경우에만 국한해야 할 것이며 더 이상 소급해서 올라가서는 안 될 것이다: 즉 죄를 분리시켜 그것을 과거와 관련지어서는 안 될 것이다. -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논리를 거역하는 죄인이 될 것이다. [...]
- 247-248쪽
 

38. 양심의 가책 -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은 개가 돌을 무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 257쪽.
 

40. 도덕감각에서 망각의 의미 - 원시사회에서는 공동의 이익을 위한 의도에서 우선적으로 권장되었던 행위가, 나중에 다른 세대에 의해서는 다른 동기들에서 행해졌다 : 다른 동기들이란 그러한 행위를 요구하고 권장했던 사람들에 대한 공포나 외경심에서 혹은 유년 시절부터 그러한 행동이 주위에서 행해지는 것을 보며 생긴 습관에서 혹은 그러한 행위는 어디서나 기쁨과 동의를 보내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렇게 하고 싶은 호의에서, 혹은 그 행위가 칭찬받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허영심ㅂ에서 나온다. 그런데 근본 동기, 즉 유용성이라는 동기가 망각된 그러한 행위들이 도덕적 행위라고 불린다 : 그것이 도덕적 행위라 불리는 이유는, 그 행위가 다른 동기에서 행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유용성을 의식하고 행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모든 칭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행위와 이익을 위한 행위가 확실히 구분되는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이익에 대한 이러한 증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 모든 도덕의 근원이며 도덕적 행위에 대한 모든 찬사의 근원인 사회는 분명 이외의 다른 모든 동기가 도덕적으로 훨씬 더 높게 평가되도록 너무나 오랫동안 그리고 너무나 격렬하게 개인의 사리사욕과 싸워야 했다. 그리하여 도덕은 마치 이익에서 발생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도덕은 근원적으로는 사회의 이익이며, 모든 개인적인 이익에 맞서 자신을 관철시켜나가고 더 높은 품위를 얻기 위해 애써왔다.
- 257-258쪽.
 

52. 양심의 내용 - 우리 양심의 내용은 유년 시절에 우리들이 존경하거나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이유 없이 규칙적으로 요구했던 모든 것들이다. 따라서 양심에서 (“나는 이것을 해야만 한다, 이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의 감정이 야기된 것이며, 이 감정은 그러나 나는 해야만 하는가? 라고 묻지 않는다. - 인간은 ‘때문에’와 ‘왜’와 함께 행하게 되는 모든 경우에 양심이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이 된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직 양심을 거역하는 것은 아니다. - 양심의 원천은 권위에 대한 믿음이다 : 따라서 양심은 인간들의 가슴 속에 있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인간 속에 있는 몇몇 인간들의 목소리인 것이다.
- 265쪽.
 

55. 정신의 자유에 대한 언어의 위험 - 모든 단어는 하나의 편견이다.
- 266쪽.
 

68. 용서할 수 있을까? -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떻게 용서할 있겠는가? 우리는 용서할 것이 전혀 없다. -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두 알 수 있을까? 이 문제가 적어도 의문스러운 것으로 남는다면, 사람들이 서로 용서해야 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은혜를 베푼다는 것은 가장 이성적인 사람에게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궁극적으로 : 만약 악한 행동을 한 사람이 정말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그 죄를 묻고 벌을 줄 권리가 있다면, 우리는 그러한 경우에만 그 사람을 용서할 권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없다.
- 273-274쪽.
 

87. 훌륭하게 글을 쓰는 것을 배우는 것 - [...] 이 때문에 오늘날에는 훌륭하게 유럽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훌륭하게 그리고 점점 더 훌륭하게 글 쓰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설령 그가, 잘 쓰지 못하는 것이 국민적 특권처럼 취급되는 독일에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더 훌륭하게 글을 쓰는 것은 동시에 더 훌륭하게 사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것은 항상 전할 가치가 더 큰 것을 창안해내고 그것을 실제로 전할 수 있다는 것 ; 이웃 나라의 언어로 번역할 수 있고 우리의 언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쉬우며 또한 재산은 모두 공유 재산이 되고 자유인에게 모든 것이 개방되도록 작용하는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 지구의 모든 문화를 인도하고 감독한다는 저 위대한 임무가 훌륭한 유럽인의 손에 쥐어질, 아직도 여전히 먼 미래의 일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 그 반대의 것, 즉 훌륭하게 쓰고 잘 읽는 법 - 이 두 가지 덕은 함께 성장하고 함께 감퇴한다 - 에 관심을 두지 말라고 가르치는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여전히 더 민족주의적으로 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제시하는 셈이다: 즉 그는 이 세기의 질병을 증가시키는 사람이며 훌륭한 유럽인의 적이자 자유정신의 적이다.
- 286-287쪽.
 

182. 문화의 기상과 변화의 전조 - 어떤 사람이 우리와 같은 사람에 속하는지 속하지 않는지 - 자유정신에 속하는지 속하지 않는지를 의미한다 - 알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그의 느낌을 살펴보면 된다. 그 사람이 그리스도교에 비판적이 아닌 어떤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 그는 우리에게 나쁜 공기와 악천후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 336쪽.
 

215. 유행과 현대 - [...] ‘현대적’과 ‘유럽적’이라는 두 개념이 거의 동일시되고 있는 이곳에서는, 유럽이라는 개념 하에 지리학적 유럽, 즉 아시아의 작은 반도가 포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들이 고려되고 있다 : 특히 아메리카도 그것이 우리 문화의 식민지인 한에서는 여기에 속한다. 반면에 결코 유럽 전체는 문화 개념으로서의 ‘유럽’에 포함되지 않는다 ; 오히려 거기에 포함되는 것은 그리스 정신, 로마 정신, 유대 정신 그리고 그리스도교 정신에 그들의 공통적인 과거를 가진 모든 민족과 일부 민족들이다.
- 360쪽.
 

237. 가장 무시무시한 복수 - 만약 상대방에게 철저하게 복수하려고 한다면, 진리와 정의를 손에 가득 쥐고 그에게 패를 내놓을 수 있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복수는 정의를 실행하는 것과 같게 된다. 이것은 가장 무시무시한 복수이다. 왜냐하면 그 위에는 더 호소할 수 있는 어떠한 상급심도 없기 때문이다.
- 371-372쪽
 

284. 참된 평화에 이르는 수단 - 395-396쪽
 

324. 사상가가 되기 위해서는 - 적어도 하루의 3분의 1을 정열, 인간, 책이 없이 지내지 않는다면, 그가 어떻게 사상가가 될 수 있을까?
- 4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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