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푸코, 1926~1984
디디에 에리봉, 박정자 옮김, 그린비, 2012.
"자신의 합리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합리성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근거가 결코 과학적으로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80쪽)
번역된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 원문을 찾아보았는데, 국역본의 뉘앙스가 조금 애매한 듯하여 원문과 나의 번역을 올려본다.
우선 원문은 <<말과 글>>(Dits et ecrits) 두 권짜리 2001년 카르토판 167쪽이다.
"il faut demander compte à la recherche du choix de sa rationalité; il faut l'interroger sur un fondement dont on sait déjà qu'il n'est pas l'objectivité constituée de la science; il faut l'interroger enfin sur le statut de la vérité qu'elle confère elle-même à la science puisque c'est son choix qui fait de la vraie psychologie une psychologie vraie."
“우리는 [심리학적] 연구에 자신의 합리성 선택에 대한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과학으로부터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하나의 기초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심리학적 연구가 과학에 대해 스스로 부여하는 진리의 지위에 대해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참된 심리학으로부터 하나의 ‘참된’ 심리학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심리학의 [배제라는] 선택 자체이기 때문이다.”(167)
그런데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한 페이지 전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형식의 심리학이 갖는 역사적 아 프리오리들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과학적인가 아닌가라는 배제의 양식에 기초한 가능성이다.”(166)
그리고 이 말은 다시 그로부터 4년 후인 1961년에 발표되는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설명해준다.
“광기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ㆍ의학적 지식은 암묵적으로 그에 앞서는 비이성에 대한 윤리적 경험의 성립에 바탕을 두고 있다.”(185)
“금기가 신경증으로 변화되는 과정의 중간 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도덕적 책임 곧 윤리적 관점에서 행해지는 죄의식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192)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정신병리학까지도) ‘자연인’ 혹은 모든 질병 경험 이전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고 평가된다. 사실 이러한 정상인이라는 개념은 창안물이고, 정상인을 위치시켜야 하는 곳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인’을 사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며, 따라서 광인이 광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 광인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 상태의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 광인이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 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관한 ‘실증’ 과학, 그리고 광인을 인간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 인도주의적 진단은 일단 이러한 종합이 이룩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이 종합은 이를테면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정신병리학 전체의 구체적인 ‘아 프리오리’를 구성한다.”(244)
“순수한 심리적 의학은 광기가 죄의식의 영역으로 양도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523)
“인간이 광인일 가능성과 인간이 대상일 가능성은 18세기 말에 서로 합쳐졌고, 그러한 합류는 실증적 정신의학의 전제와 동시에 객관적 인간학의 주제를 낳았다(이 경우에 시기상의 우연한 일치는 없다).”(709)
그리고 이 모든 말은 푸코가 같은 책에서 라틴어로 적어 내려간 다음과 같은 명제 형식 아래 명료히 정식화된다.
“심리학적 인간은 정신이 사로잡힌 인간의 후손이다.”(804)
"l'homo psychologicus est un descendant de l'homo mente captus."(원서, 549)
그리고 이 말은 푸코가 1961년 플롱 판 『광기의 역사』 맨 앞부분에 제사(題辭)로 사용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일기』로부터 인용한 다음 문장과는 정반대의 의도에서 이 책을 썼음을 확인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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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신의 ‘상식’을 스스로 확신하는 것은 자신의 이웃을 감금함으로써가 아니다.”(원서 1961, 7)
결국 푸코가 라틴어로 적어 내려간 위의 한 마디 말이야말로 방대한 『광기의 역사』 전체를 요약해주는 한 마디이자, 후에 1975년 푸코가 발표하는 『감시의 처벌』의 주된 테제 곧 심리학과 광의의 정신의학, 사실은 인간과학 전체가 -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과학적’이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 일종의 ‘과대망상적인’ ‘심리학화’(psychologisation)의 기제, 곧 ‘감시와 처벌’이라는 ‘정상화’(normalisation) 기제를 통해 근대 사회를 ‘통제’하는 핵심적 원리로 기능하고 있다는 푸코의 가설을 정당화해주는 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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