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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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PG4: Security> - 인간 존재의 무의식에 대한 문화 인류학적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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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9월 32세가 된 게이브리얼은 전작 <PG3>의 성과를 바탕으로 또 다른 걸작 <PG4>를 발매한다. 카리스마에서 발매된 영국반의 제명은 역시 <Peter Gabriel>이지만, 그와 새로이 계약을 맺은 미국의 배급사 게펜(Geffen) 레코드는 판매량의 저하를 우려해 LP 커버에 <Security>라는 부제를 부착해 버렸고 이로써 그의 <Peter Gabriel> 시리즈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프로듀서·엔지니어 데이빗 로드(David Lord)와 게이브리얼이 공동 제작한 앨범은 9월의 싱글 'Shock The Monkey', 12월의 싱글 'I Have The Touch'와 함께 발표되었는데, 'Shock The Monkey'는 게이브리얼의 첫 미국 40위권을 기록한 곡으로 미국 29위, 영국 58위를 기록했으며, 그의 곡으로는 최초로 영국보다 미국에서 좋은 순위에 오른 곡이다.



이전 앨범 <PG3>의 기본적 두 정서는 개인적 고립감과 사회적 저항 정신이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서로 끊어질 수 없는 방식으로 맞물려 있는데, 그가 이 중 '개인적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택한 것은 '자신의 온 몸으로 그것을 살아(혹은 겪어) 낸다'는 것이었다. 이는 물론 전통적 서구 이성주의의 한 지류인 개인주의가 갖는 문제점, 즉 '개인적 소외와 고립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문명사적 문제인데(즉 모든 개인은 '자유'롭지만, 그는 지독한 '외로움'으로 고통받는다), 이를 위해 그가 <PG3>에서 채택했던 방법론은 -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 그 자유뿐 아니라 고독, 불안, 절망을 포함한 '개인주의'의 모든 측면을 받아들이되, 그들 사이의 '연대'(solidarity)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로서는 '개인주의'와 '개인들 사이의 연대'를 이어주는 논리적 연결 고리의 취약함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나는 왜 너와 연대해야 하는가?




그가 4집에서 수행하고 있는 작업의 기본적 지향은 이 논리적 '연결 고리의 정립'을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택한 탐구의 방법론은 '자신의 전통인 서구적 이성주의를 타 문명권과의 탐구와 대화를 통해 상대화시키는 것', 즉 '문화 인류학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인류학적 탐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개인들 사이의 연대를 설립하기 위한 근거'를 발견하는 것에 있으므로, 결코 소박한 '문화 상대주의적' 결론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가 찾아 헤매는 것은 오히려 그러한 문화 상대주의적 외관 아래에 놓여 있는 거부할 수 없는 인간 몸의 공통성 혹은 '보편성'이다. 그리고 그러한 탐구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표현처럼 '의심의 여지없이 한 문화의 동질성보다는 그 한계가 문제시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서양/비서양, 선신/악마, 이성/광기, 선/악, 아름다움/추함, 삶/죽음, 남성/여성 등 한 문명이 규정한 모든 가치와 기준이 상대화되고 의문시되는 전인미답의 영역이다. 우리는 이 글이 전개되어 감에 따라 그의 이러한 무모할 정도로 야심적인, 그러나 어디까지나 살아 있는 자신의 일상 속에서 생겨난 고유한 문제의식을 해결하려는 그의 시도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가에 대한 개관을 얻게 될 것이다.



한편 그는 인터뷰를 통해 당시 자신이 '월드 뮤직'뿐 아니라, 브라이언 이노가 제작한 토킹 헤즈의 4집 <Remain In Light>(80·Sire), 이노와 토킹 헤즈의 리더 데이빗 번의 조인트 앨범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81·Sire) 등을 흥미롭게 듣고 있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PG4>는 이러한 '문화 인류학적인' 인식론적·음악적 관심이 어우러져 나타난 앨범이다. <PG4>의 두 열쇠말은 'I submit to trust'(나는 믿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I have the touch'(나는 촉각이 있다)이다. 이는 각기 'The Rhythm Of The Heat'과 'I Have The Touch'에 나오는 가사이다. 앨범은 각 곡들은 물론 유기적 연관을 가지고 있다.   수록곡들을 차례로 살펴보자.





첫 곡 'The Rhythm Of The Heat'의 배경은 인위적 문명 이전의 상태, 혹은 최소한 서구적 기계 문명의 외부에 위치하고 있다. 노래의 화자인 "나는 붉은 먼지가 날리는 창 밖을 바라보고 있으며, 붉은 바위 저 위에는 창을 든 그림자가 서 있다 ... 자기-의식은 불명확하고, 나는 먼지를 뒤집어썼으며, 그 영혼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믿을 수밖에 없다 ... 이제 '나는 라디오를 부숴 버린다, 이제 바깥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시계를 부숴 버린다, 이제 하루를 나눌 수 없다. 나는 카메라를 부숴 버린다, 이제 영혼을 훔쳐 갈 수 없다. 리듬, 열기(熱氣)의 리듬은 내 발아래, 내 주변에 있으며, 힘을 가진 것은 리듬이며, 그 리듬은 내 안에 있고, 그 리듬은 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게이브리얼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의 체험을 연상케 한다. 프로이트의 제자로서 '분석 심리학'을 창시한 융은 인간의 원초적인 집단 무의식과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들 사이의 연관을 밝히려 노력한 심리학자이다. 그는 한 때 이러한 자신의 연구를 위해 아프리카 케냐의 원시 마을에서 그 곳 전사들의 문화를 연구하기 머무른 적이 있다.



이를 게이브리얼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 노래는 마치 융의 체험과도 같아요. 융은 그 곳에 머무르면서 전사들의 '광란에 가까운' 전통 의식에 참석하게 되었어요. 물론 융은 서구인이자, 이방인으로서 두려움을 느꼈고 갈등하게 되었어요. 이 이방의 문화에 대한 소위 '객관적 관찰자'로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도 그들과 함께 자기 의식을 벗어 던지고 '그들 속에 뒤섞일' 것인가 하는 문제로 말이에요. 융은 물론 후자를 택했고 몰아적 황홀경을 체험했어요.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런 경험, 태도예요."




이 때 '몰아'(沒我)의 '아'(我)란 바로 서구의 분석적·이성적 자아(自我, ego)를 지칭할 것이다. 신뢰(trust)가 논리적 분석에서 오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의식적 자아를 '내던짐'으로써 얻어진다는 역설의 논리는 이미 서구 개인주의·합리주의 문화의 논리와는 다른 층위의 것이다. 그러나 '나를 내던질 때', 나는 '열기의 리듬', 즉 삶의 리듬, 삶의 근원적 충동을 느낄 수 있고, 따라서 나는 삶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왜인가? 그 리듬은 이미 내 발 밑, 내 안, 내 주변에 있으며, 다만 나의 '이성적 의식적 자아'가 그것과의 합일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게이브리얼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하여, 물체의 세계에 속하는 육체보다 정신의 영역에 속하는 의식·이성을 우위에 두는 플라톤·기독교·데카르트 이래의 서양적 이성 개념, 인간관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미 이 땅과 하나이다. 그리하여 "나는 믿을 수밖에 없다."   이 한 곡만을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PG3>가 어디까지나 '서양적 자아가 바라보는 세계'를 노래하고 있었음에 반해, <PG4>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인간의 근원적 자아가 바라보는 세계'를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래하는 것은 물론 서구인인 피터 게이브리얼이라는 한 개인이지만, 실상 그는 '노래하는 자'라기보다는 '노래 불리어지는 자', '노래하도록 명령받은 자'에 가깝다. 한 마디로 앨범의 노래하는 이는 '무당'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조작'하지 않으며,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부름'에 응답하고, 그것에 '순종'할 뿐이다.




이러한 내용적 측면을 떠나 게이브리얼 밴드와 게스트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이전 <PG3>와도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 곡의 서두를 장식하는 패스트와 게이브리얼의 무그·신서사이저·프로펫 및 CMI 사운드는 이미 서구적 화음의 정통적 문법을 이탈하고 있으며, 특히 81년 조직된 재결성 킹 크림즌의 베이시스트가 된 토니 레빈의 베이스 사운드는 이전의 <PG3>와도 비교할 수 없는 '거장적' 곡 해석 능력을 보여준다. 이는 마로타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실로 마로타의 드럼과 레빈의 베이스는 앨범 전반을 통해, 정확히 말하면, 곡의 '해석'이 아닌, '창조' 능력이라고나 해야 할 놀라운 연주를 들려준다(특히 레빈의 경우에는 보다 '모던한' 지향점을 가졌던 81년의 킹 크림즌 앨범 <Discipline>(81)과도 음색 및 연주 주법 상에서 적절한 차별성을 보여주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노래의 백미는 영혼을 쏟아내는 듯한 게이브리얼의 보컬과 아프리카 가나의 북(鼓) 연주 집단인 '에코메 댄스 컴퍼니'(Ekome Dance Company)가 연주하는 중반 이후의 드럼 섹션이다. 특히 드럼 섹션 직전에 등장하는 게이브리얼의 보컬은 그의 모든 앨범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가창력이 발휘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PETER GABRIEL - The Rhythm Of The Heat









본 작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토니 레빈의 스틱과 데이빗 로즈의 기타가 리드하는 다음 곡 'San Jacinto'의 그의 개인적 체험에서 나온 노래인데, 게이브리얼은 미국 체류 중 우연히 한 아파치 인디언을 그의 집까지 태워 주게 된다. 그는 인디언과 밤을 새워 이야기하게 되는데, 게이브리얼은 이 인디언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 인디언은 자기 소유물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어요. 자기 고양이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인디언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는데, 이는 곡의 한 모티브가 되었다.  



인디언은 '성인식'의 한 부분으로 방울뱀 자루를 맨 무당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무당은 방울뱀이 소년의 팔을 물도록 한 후 그가 영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소년을 남겨둔 채 산을 내려갔다. 그 인디언 무당은 후에 - 인디언의 표현을 따르면 - '날조된 살인 미수죄'(trumped up murder charge)로 기소되었다.   게이브리얼의 말을 들어보자: "결국 그가 살아서 내려오면 그는 용감해요. 돌아오지 못하면, 그는 죽은 거죠. 아주 간단하지요. 이게 인디언이 겪은 얘기예요. 그리고 또한 미국이 그의 문화에 대해 저지른 일이기도 하고요."



산 하신토(San Jacinto)는 스페인어로 캘리포니아 팜 스프링 근처의 산맥 이름이다. 이 산 하신토 지역에는 집집마다 수영장이 갖추어진 고급 휴양지와 가난한 '인디언 보호구역'이 인접해 있다: "전 이 곡에서 수영장이 딸린 인위적 백인 세계와 산악 지방의 문화 충돌을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바로 한 모퉁이만 돌면 인디언 캐년과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어요. 그리고 그들에게 산 하신토는 신성한 산이지요."   노래의 후렴은 바로 이러한 소년의 영적 체험을 그리고 있다: "줄,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힘을 가진 이 줄을 잡는다. 산 하신토, 줄을 잡는다. 산 하신토, 독이 온 몸을 덮치고 어둠이 시야를 앗아간다, 줄을 잡는다. 그리고 눈물이 나의 부어오른 뺨을 흘러내린다, 의식이 흐려져 간다, 점점 힘이 빠진다. 줄을 잡는다, 줄을 잡는다. 산 하신토, 황금 독수리가 태양으로부터 내려앉는다, 태양으로부터."



그리하여 영적 체험을 거쳐 '인간의 대지'이자, '어머니 대자연으로서의 대지'인 땅으로 내려온 화자는 현대 에콜로지 운동의 선언문이라 할 다음과 같은 에필로그를 덧붙인다: "우리는 걸을 것이다, 이 대지 위를. 우리는 숨쉴 것이다, 이 하늘을. 우리는 마실 것이다, 저 시냇물을.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줄을 잡아라." 이 줄은 물론 삶의 줄, 생명의 줄이다.





 
 






    다음 곡 'I Have The Touch'는 여러 면에서 주목할 만한 곡이다. 게이브리얼은 3집 이후 '유모어'와 '미소'를 잃어버렸다. 이는 물론 그가 자신의 감정에 있는 그대로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곡은 78년 2집의 'A Wonderful Day In A One-Way World' 혹은 'Animal Magic' 이후 그의 앨범에서 무려 4년만에 처음 듣는 '밝은 곡'이다.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이 곡에서 그는 자신이 새로이 발견한 삶과 연대의, 그리고 더 나아가 행복의 '근거'에 대해 말하고 있다(가사 참조). 그것은 '촉각', 살과 살의, 몸과 몸의 '접촉'이다. 질문하고 의심하기 전의 '악수', 몸의 부딪힘이다. 이는 마치 기(氣)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모든 물(物)들이 만나게 되면 그 사이에서 감(感)과 정(情)이 생겨난다는 동양의 논리와도 유사하며, 서양 자체의 논리로 찾아보자면 기존의 전통적 육체·정신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적인 '살의 현상학'(la ph nom nologie de la chair)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게이브리얼의 논리는 - 다음 곡 'The Family And The Fishing Net'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 이들 두 논리가 결여하고 있는 비교 문화론적 시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와 맥락에 있어 궤를 달리한다.  



한편 이 곡에서 들려오는 마로타·게이브리얼·패스트의 신서사이저 드럼·프로펫 및 로즈의 기타 사운드는 앞의 두 곡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모던한 도시 공간적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한편 'I Have The Touch'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그의 애정은 85년 피터 월시와 그가 리믹스한 'I Have The Touch - 85 Remix' 버전, 96년 로비 로버츠슨과 그가 리믹스하여 영화 <Phenomenon>에 사용된 또 다른 버전 등 그가 모두 다섯 개의 다른 버전을 취입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접촉 I Have The Touch]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러시 아워, 왜냐고?
난 러시를 좋아하니까
사람들이 밀고 당기는 게 난 너무 좋거든
어딜 가는지는 몰라도 그 많은 움직임들
나도 몸을 움직여 - 난 촉각이 있거든
난 점화를 기다려, 난 불꽃을 찾아
어떤 기회든 만나면 난 어둠 속에 불을 켜


넌 거기 내 앞에 서있지,
그 털과 그 머리카락들
내가 감히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난 촉각이 있거든


(후렴)
접촉을 바래
난 접촉을 바래
난 너와의 접촉을 바래
악수를 하자구, 악수를 하자구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걸 나에게 줘
악수를 하자구, 악수를 하자구
악수를 하자구, 악수를 하자구


어떤 만남에서든,
난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고 말하지
인사할 때마다 난 기회를 안 놓쳐
그래서 질문하고 의심하기 전에
내 손이 먼저 움직여 - 난 촉각이 있거든


(후렴)
턱을 당기고 머리를 빗고
코를 긁고 무릎을 안아 봐도
술, 음식, 담배를 해봐도 긴장이 안 풀려
손가락을 튕기고 팔짱을 끼어 보고
깊은 숨을 쉬어 보고 다리를 꼬아 보고
어깨를 으쓱해 보고 허리를 펴 봐도
도저히 어떻게 만족이 안 돼

(후렴)





    다음 곡 'The Family And The Fishing Net'은 가사로 보아 아마도 아프리카의 토속 신앙인 부두(voodoo)적 예식을 묘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희생의 서약, 목이 잘려진 닭들, 둥글게 춤추며, 축복 받은 그들, 옷을 벗어 던진, 남편과 아내"들의 "신경질적인 손이 칼을 단단히 움켜쥔다, 어둠 속에서, 덩어리가 잘려질 때까지, 차례로 돌려지는, 작은 조각들, 몸과 살, 가족과 고기잡이 그물, 그물 속의 또 다른 이들, 몸과 살"로 이어지는 가사처럼 게이브리얼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이 문화 인류학적 여정에서 서구의 선악 개념을 간단히 넘어서 버린다.   








     싱글 'Shock The Monkey'는 잔인한 동물 실험의 대상이 된 원숭이에 대한 곡이라는 일반의 추측과 달리 '사랑' 혹은 '질투'에 관한 곡이라고 게이브리얼은 말하고 있다. 여하튼 그는 질투라는 한편으론 집착이자 파괴를 의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지극한 적극적 사랑의 표현이 연인들 사이에서 불러일으키는 거의 모순되는 역설적 효과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러한 양가적 효과는 '충격! 저 원숭이가 고통받는 것을 봐, 원숭이가'라는 거의 새디스틱한 가사와 이어지는 '원숭이에게 충격을 주어 그를 되살려라'(shock the monkey to life)라는 후렴구의 대비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다. 더구나 이 '도저히 상업적으로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이 앨범에서 커트된 이 싱글은 당시로서는 그의 최대 히트곡이 되었다. 한편 이 곡은 1999년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에 의해서도 메틀 풍으로 (제목이 바뀌어) 리메이크되는 등 그 '기괴한 분위기'의 진가를 십분 발휘했다.  









    다음 곡 'Lay Your Hands On Me'는 단연 마로타의 드럼이 돋보이는 곡이다. 특히 중반 이후 신서사이저를 제외한 모든 악기가 연주를 멈추고 드럼만이 두 차례의 강력한 스트로크를 들려주는 부분은 곡의 전체적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가히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거의 사이버적인 초현대·초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무서운 고독과 공포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몸과 몸의 접촉'이, 이 곡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얼어붙은 바다 위에 번쩍이는 불빛, 차가운 감정의 말없는 무게를 본다. 나는 언제나 말없이 숨어있는 저 카메라, 저 스파이의 눈에 의해 감시당한다 ... 하지만 아직도 온기가 내 몸을 돌아 흐르고, 나는 당신이 나를 이해한다는 것을 느낀다 ... 여기에는 어떤 기적도 사고도 일어나지 않으며 다만 상식만이 있을 뿐이다 ... 당신의 손을 내게 얹어요, 당신의 손을 내게 얹어요, 당신의 손을 내게, 내 위에"로 이어지는 가사처럼 라이브에서 게이브리얼은 이 곡이 연주될 때 무대 앞쪽 끝에 눈을 감고 뒤돌아 서서 관중을 향해 쓰러진다. 그는 관중들이 자신을 받아줄 것을 믿고 그들 위에로 쓰러지는 것이다. 관중들을 자신의 손을 그에게 얹는다, 그는 관중들에 의해 관중들 사이 저쪽까지 떠내려갔다가 관중들의 손에 의해 무대로 복귀한다.





   



Lay Your Hands On Me/Shock the Monkey
- on italian t.v. 1983








     한편 이상의 세 곡에는 이전 반 데어 그라프 제너레이터(Van Der Graff Generator)의 리더 피터 해밀(Peter Hammill)이 백 보컬리스트로 참여하여 곡의 완성도를 한층 높여 주고 있다.    



앨범의 유일한 '현대적 발라드'인 'Wallflower'는 당시 폴란드 자유 노조의 지도자였던 레흐 바웬사(Lech Walesa)에게 바쳐진 곡이다. 당시 바웬사는 공산 정부의 탄압을 받아 심지어 정신병원에까지 강제 입원되었는데, 이 곡은 국제 사면 위원회의 활동가이기도 한 게이브리얼의 '헌정곡'이다. 제명인 'Wallflower'는 원래 겨자과의 관상용 식물 중 하나인 '계란풀'을 의미하지만, 이는 그 식물의 볼품 없는 외모에서 파생된 '무도회 등에서 상대가 없는 여자, 인기 없는 처녀'를 뜻한다. 후렴을 살펴보자:  



"포기하지 말아요, 당신은 당신의 삶을 내던졌잖아요. 당신의 감옥을 만든 이들이 총알과 몽둥이와 돌로 무장한 채 잠들어 있을 때, 당신은 언제나 밤을 홀로 맞지요. 그들은 당신이 자신의 살과 뼈로 지어낸 자유를 향한 길을 보지 못 해요 ... 그러니 포기하지 말아요, 포기하지 말아요, 그들은 당신을 상자 속에 넣어 버렸고 당신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아요. 당신의 영혼을 잘 보살피세요, 다치지 않게요 ... 하지만 당신이 사라져 버린다 해도, 당신은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난 당신에 말할 거예요, 난 내가 할 수 있는 하겠다고 말이에요."  



후에 영화 <Birdy>에도 사용된 이 곡의 멜로디와 편곡은 참으로 아름답다. 이 곡은 게이브리얼이 만들어낸 최초의 서정적 저항 가요이다.    







    이 '어두운'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곡 'Kiss Of Life'는 'I Have The Touch'와 함께 '몸과 살, 살과 뼈'라는 새로운 세계를 찾아낸 게이브리얼이 부르는 '환희의 찬가', 즉 '생명의 키스'이다. 마로타·게이브리얼·패스트가 엮어 내는 절묘한 각종 타악기 소리의 앙상블이 흥겨운 이 곡의 내용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상징들로 채택된 것이 '여성'(big woman)과 '물'의 이미지인 것이 흥미롭다. 이는 이후 게이브리얼의 음악과 사상에 지속적 영향을 미칠 요소들이다.  








   한편 이상 앨범에 수록된 8곡들의 작곡 저작권크레딧을 살펴보면, 보다 먼저 작곡되었고 보다 '민속' 음악적이며 '어두운' 분위기의 'The Rhythm Of The Heat', 'San Jacinto', 'The Family And The Fishing Net', 'Lay Your Hands'의 4곡은 '피터 게이브리얼 음악사'로, 보다 나중에 작곡되었고 보다 '현대적'이며 '밝은 분위기'의 'I Have The Touch', 'Shock The Monkey', 'Wallflower', 'Kiss Of Life'의 4곡은 '클리오파인 음악사'로 적혀있어 이 두 시기 사이에 게이브리얼의 인생과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어 중대한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Rhythm Of The Heat'처럼 '라디오를 부수는' 반서구·반문명적 자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I Have The Touch'처럼 '도시의 러시 아워를 좋아하는' 현대적·문명적 자아이기도 하다. 게이브리얼은 '다양한 문화들의 탐색'을 통해 찾아낸 '새로운 삶과 연대의 근거'를 토대로 '행복과 기쁨의 근거',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박탈하는 착취자들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삶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이후 5집 <So>에서 찬란하게 꽃피게 될 문제의식이다.   




우리가 정리해 보았던 그의 문제 의식은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우선 '자신의 삶의 근거'이며, 더 나아가 '너와 내가 연대해야 할 근거'를 찾는 것이다. 그가 찾아낸 근거는 '텃치'(touch), 즉 '촉각'이며 '감각'이며, 그 대상이 되는 '몸'이고 '살'이자, 그것들의 '접촉'에서 생기는 '애정'이며 '관심'의 느낌이다. 이는 물론 '이성/육체', '정신/물체'를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던 서양의 전통적 인식론·존재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문화권을 벗어나 세계 각지의 다양한 문화 전통들을 탐색하면서 새로운 '보편적 인간성'의 제반 가능성들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PG4>는 음악적 측면에서 '리듬과 텍스츄어'(Rhythm and Texture)라는 게이브리얼 자신의 표현처럼 모든 곡들이 위에 적은 기본적 비교 문화론의 인식에 맞추어 유기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수록곡들 하나하나는 리듬이라는 음악적 날줄과 문화 인류학적 탐색이라는 인식의 씨줄이 잘 짜여진 '피륙'(texture)이다.   실로 <PG4>는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야심적 작품이자, 음악적·인식론적 측면 모두에서 일정한 성취를 얻어내었던 무서운 걸작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앨범의 소리는 <PG3>와는 또 다른 방식의 전율할 만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엔지니어를 겸한 공동 프로듀서 데이빗 로드의 공로도 그렇지만, 이미 단순한 기교적 수준을 뛰어넘어 하나의 독자적 이미지-공간을 창출해 내고 있는 '피터 게이브리얼 밴드'의 네 멤버, 마로타, 레빈, 패스트, 로즈의 공로도 잊을 수 없다. 가사·음악·연주와 그것이 갖는 텍스트·텍스츄어 등 앨범의 제반 요소들은 완전히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앨범만의 독특한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실로 그는 앨범의 내용에 걸맞는 새로운 음악적 색채와 형식의 창조에 성공했다. 그것은 서구 문명권으로서는 전대미문의 '살의 음악', '몸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앨범에서 우리가 읽어 내야 할 점은 '자기 삶의 근거', 더 나아가 '그러한 개인들 사이의 연대를 위한 근거'를 발견하려는 한 서양 아티스트의 두려움 없는 노력, 그리고 그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그의 의지와 실력이다. 우리는 이 앨범을 음악과 인식의 양 측면 모두에서 한 치의 과장도 없는 진정한 '인류의 모험'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pg 4 - full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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