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22.

축구와 축구 아닌 것



 

'해석권력'의 주체는 국민이어야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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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태, 누구의 어떤 개혁을 말해야 하는가?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올해 6월이면 정확히 사망 30주년을 맞는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는 사망하기 한 달 전인 1984년 5월 발간된 칸트의 계몽에 관한 한 기고문에서 칸트 철학의 새로운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은 일련의 질문들로 정식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로서, 현재의 문제, 동시대성의 문제에 관련된 것들이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의 우리가 그 안에서 우리로서 구성된 이 ‘지금’이란 무엇인가?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을 정의하는 것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4년 4월 16일 지구 반대편 대한민국의 앞바다에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을 포함한 476명의 인원을 태운 세월호가 침몰하였고, 그로부터 다시 한 달 이상이 지난 5월 30일 현재까지 대한민국의 구조시스템은 침몰 전에 구출되었던 174명을 제외하고 배에 남아있던 300여명이 넘는 승객들 중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하였다. 이는 침몰과 구조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선원들과 청해진해운은 물론, 구조회사, 해경과 해양수산부, 안전행정부를 포함한 관료, 정치시스템 전체의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단적으로, 이는 천재가 아닌 인재이며, 학생들을 포함한 모든 승선인 전체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죽어서는 안 되는 상황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말이 된다.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한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면서, 이제 다시 물어보자.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의 오늘, 여기 지금, 2014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인가? 오늘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지금’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도덕주의적’ 답변의 문제점 - 구조적 모순에 대한 인식의 결여
 
 
 
이 질문의 중요성은 우리가 오늘 이 질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답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오늘과 내일이 달라지리라는 명백한 사실에 놓여 있다.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하여, 가령, 이는 매우 비극적인 참사로서 우리 모두의 책임이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반성하고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고 답한다면, 우리는 사건에 대한 도덕적 답변을 제출하고 있는 것이며, 이러한 도덕적 대응은 - 아마도 이를 수행하는 당사자의 의지와도 무관하게 - 이러한 불행한 사태의 반복만을 낳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부터,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대구 지하철 참사를 거쳐, 바로 얼마 전 2월의 대학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가건물 붕괴 참사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전 국민적 차원의 도덕적 반성이 수없이 이루어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바로 오늘 세월호 침몰 사건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전교육을 받지 못한 무책임한 선원과 비도덕적 탈법을 일삼은 청해진해운, 이를 비호하고 편의를 보아준 ‘공범적 공생관계’의 공무원, 관료집단 등 명백한 책임주체가 있는데도 ‘우리 모두의 책임’에 대하여 말한다는 것은 - 설령 그것이 순수한 자기 성찰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 현실적 문제점의 인식 자체를 가로막는 결과를 낳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도덕적 반성을 전혀 할 필요가 없다거나, 비도덕적 개인 혹은 집단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비도덕적 개인과 집단은 늘 존재하며, 개인의 부도덕함은 비난받아야 하고, 집단의 비도덕적 음모는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개인 혹은 집단의 도덕성에 초점을 맞추는 인식은 정작 문제의 핵심이라 할 보다 큰 사회적 차원의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
 
 
 
 
나는 승객들의 탈출과 자신들의 탈출이 양자택일적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자신들만 탈출한 선원들에 대하여 분노를 금치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정당한 분노를 인정하지만, 세월호의 선원들만이 유난히 부도덕한 인물들로 우연히 구성되어 있었다는 가설을 지지할 수 없다. 세월호의 선원들은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평균적인 대한민국의 선한 직장인들이었으며, 아마도 대한민국의 다른 모든 여객선의 선원들과 현격히 구별될 만한 질적인 도덕적 차이를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세월호의 선원들이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아마도 대한민국 선원들의 ‘평균적인 도덕성’을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을 가진 세월호의 선원들, 청해진 해운은 오늘 이 시각에도 자신들의 과오와 범죄 행위보다는 ‘하필 자기 회사의 배가 침몰한’ 불운을 탓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는 비극적 해체의 운명을 맞이한 해경과 해수부 관료 마피아, 넓게는 대한민국의 관료집단 전체가 갖고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재수가 없어서 하필 우리 영역에서, 우리 관할에서, 우리 회사에서, 우리 배가’ 침몰했으며, 일단은 ‘상황을 주시하면서 면책을 도모하며, 이제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국민들이 세월호를 잊을 때까지 납작 엎드려 지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생들을 내버려두고 가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만 안전하게 탈출하는 이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단적으로 그것은 “그렇게 해도 됐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내가 이렇게 해왔어도 직장에서 자리를 잃지 않으며, 다른 선원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고, 다른 회사도 모두 다 이러하며, 이를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공무원, 관료 집단 전체도 다 그러하며, 대한민국의 다른 영역들도 세월호 같은 사건만 일어나지 않았을 뿐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이러한 생각은 나라는 개인과 우리 회사와 내가 만나는 관료 집단,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시스템 전체가 하나로서 그러한 ‘공생적 악순환의 시스템’을 이루고 있을 경우에만 유지 가능한 것이다. 물론 부도덕한 개인은 비난받아야 하고, 부패와 법범 행위는 엄단되어야 하며, 음모는 밝혀져야 하고, 적폐는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세월호 사건에 대한 개인적 도덕적 반성의 촉구와 그에 이어지는 해당 기업 및 관료의 사법적 처벌에 만족하고 만다면, 이러한 불행한 사건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도덕적 단죄와 사법적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세월호’를 막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
 
 
 
 
관료들은 언제 개혁에 나서는가?
 
 
 
따라서, 어떤 특정 개인, 회사 혹은 집단에 대한 도덕적 비난 혹은 사법적 처리라는 기반 위에, 앞서 언급한 ‘대한민국의 평균적 도덕성’을 가능케 했던 제반 조건 자체의 변화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한 국가의 평균적 도덕성 혹은 직업윤리, 관료윤리는 물론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으며, 따라서 하루아침에 바꿀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이의 개혁을 포기하거나 방기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선원들은, 기업인들은, 관료들은 언제 이러한 ‘관행’을 포기할 것인가? 하나의 집단은 언제 자신들의 부당한 ‘기득권’을 타파하고 올바른 길로 나설 것인가? 이에 대한 역사의 답변은 간명하다. 하나의 집단은 그들이 ‘바꾸지 않고서는 안 될 때, 바꾸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자신들의 관행과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떤 탁월한 개인의 도덕적 회심은 개별적으로 가능할지 몰라도, 수만에서 수십만, 수백만을 헤아리는 하나의 집단이 자발적으로 자신이 평생 익혀왔던 요령과 관행, 곧 기득권을 버린 경우란 역사에 전무하다. 그들이 그것을 버릴 수 없는 이유는 심지어 그들이 그것을 버릴 ‘의지’가 없기 때문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이 바로 그러한 시스템의 일부이며, 자기 정체성의 원천이 바로 그 시스템 자체이기 때문에, 그들은 설령 스스로를 혁파하고자 해도 그러한 일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의지의 결여’인 동시에 ‘능력의 결여’이다. 기업이든 관료이든, 한 집단의 개혁은 자율적 부분과 타율적 부분이 결합될 때 성공할 수 있다. 바로 이렇게 기업과 관료의 자율적 반성이라는 기초 위에 제도적 곧 타율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한민국 유일의 존재는 바로 대통령일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바로 이 점에 세월호 사태에 대한 도덕적, 사법적, 행정적, 관료적 처리 이상의 정치적 결단의 차원, 곧 푸코가 말하는 통치성의 논리가 놓여있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라는 정치적 행위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이에 대한 확고한 개혁의지, 대통령 자신의 표현을 따른다면, ‘국가개조’,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모두 좋은 말이다. 나는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 의도에 대해 그 순수성 여부를 논할 생각은 없으며, 차라리 그러한 언명의 순수성을 믿는 편이다. 그러나, 하나의 기준을 놓고 그에 따라 ‘정치적인 것’과 ‘정치적이지 않은 것’을 나누는 행위 이상의 정치적 행위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정치와 무관한’ 이른바 ‘순수한’ 영역이란 현대 정치학과 철학에서 하나의 농담에 불과하다. ‘정치 집단인 전교조를 순수한 교육현장에서 몰아내자’는 주장 이상의 정치적인 주장이 있을 수 있을까?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행위 이상의 정치적 행위가 존재하는가? 주어진 시스템 내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순수하고 정상이며, 그와 달리 생각하거나 행동하면 불순하고 비정상이라는 논리 이상의 정치적 사유가 있는가? 나와 같이 생각하면 순수하고 정상이며, 나와 달리 생각하면 불순하고 비정상이라는 논리 이상의 정치적 행위가 있을까? 국민은 정부와 달리 생각해서는 안 되며, 달리 생각하는 순간, 불순한 비정상이 되어 엄단과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말일까? 만약 세월호 사건이 일부의 주장처럼 ‘순수한’ 사고였고, 따라서 대통령은 ‘순수한’ 유족만을 만날 것이며, 세월호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세력’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면, 대한민국의 통수권자이자 정치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왜 ‘순수한’ 사고인 세월호 유족들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는가? 이는 21세기 민주국가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인 나는 정부와 달리 생각할 ‘자유’가 없으며, 사실상 오늘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가 아니었다는 말일까? 정부에서는 참으로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문제가 있고 불순하며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 정부는 - 서구 중세의 ‘교황은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교황무오설(無誤說)을 패러디하여 - ‘정부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정부무오설이라도 주장한다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인 나는 ‘자유롭지도 민주주의이지도 않은’ 정부를 여하튼 신뢰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일까? 나는 이 모든 것을 ‘해석권력’이라 지칭하고자 한다. 이른바 현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때, 자신의 해석을 ‘현실에 대한 올바른 해석’으로 간주하고 이를 강요하는 힘이 해석권력이다. 그리고 그 해석권력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 있어 국민에게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제반 문제에 대한 해석권력이 과연 국민에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해석권력을 국민의 손으로 되돌리는 것은 오직 국민 스스로가 할 수 있을 뿐이다.
 
 
 
 
국민이 ‘해석권력’의 주체임을 보여주어야
 
 
 
다시 한 번 문제는 의지의 문제인 동시에 능력의 문제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말한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순수한 의도에 입각한 것이라 해도 그 실천, 실현 능력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현재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은 언제 개혁에 나설 것인가?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될 때’이다. 수많은 저항과 난관이 예상되며, 궁극적으로는 정권의 안위조차 위태로운 개혁에 나서지 않아도 정권이 유지된다고 믿을 때, 과연 한 나라의 정부는 개혁에 나선 경우가 존재하는가? 불편하고 무섭지 않은 복종하는 말 잘 듣는 국민,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는 착한 국민을 위해 정부가 알아서 자신의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드는 개혁에 나설 것인가? 가장 중요하게는, 김용옥의 지적대로, 국민적 합의 없이 특정 정치인 개인의 의지대로 해석된 ‘정상화, 국가개조’는 문제의 책임자가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황망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엄정한 자각이다. 박근혜 정부는 ‘안 해도 되는 개혁’을 시도할 리도, 시도할 수도 없다. 성공 여부와도 무관하게, 오직 국민들이 ‘정부가 진정한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스스로의 힘을 보여줄 때에만’ 박근혜 정부는 참다운 개혁에 나서고자 할 것이다. 논점은 언제 박근혜 정부가 언제 개혁에 나서는가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나름의 개혁 작업에 돌입했다. 그러나 참다운 문제는 ‘누가 주체가 되는 어떤 개혁인가’의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개혁은 실로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버린 전도된 상황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푸코는 서두에서 언급한 오늘, 현재의 문제와 관련된 한 강의에서 정치 혹은 통치성과 관련하여 현재의 문제를 이렇게 정의했다. “어떻게 특정인, 특정집단에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이 질문의 위대성은 정치철학의 근본적 주체를 통치자로부터 피통치자에게로 영원히 바꾸어놓았다는 점이다. 푸코는 정치와 통치성의 문제를 피통치자의 관점과 관심에서 다시금 정의한 것이다. 이러한 푸코의 질문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오늘 어떻게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바로 이러한 혹은 저러한 방식으로 통치당하지 않을 것인가? 바로 이것이 푸코가 ‘주체와 권력’이라는 말년의 논문에서 대답하고자 노력했던 바이다. 푸코의 대답은 이러하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철학적 문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우리가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그렇다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타율적으로 규정된 우리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해석권력의 문제는 가장 철학적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영원한 ‘오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2014.5.27.



 
 
 
 

잠언 08

 
 
 
 
 
 
 

0. 하나의 언명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놀이임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 언명 혹은 이러한 언명들의 집합을 담론(談論, discours)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세상에 언표된 말 중에 담론이 아닌 것은 없다.



1. 메타적 층위의 문제 - 주어진 하나의 진리 놀이들 안에서는 참과 거짓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 진리놀이들 사이의 선택에는 결단만이 존재할 뿐 참과 거짓이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놀이들 사이에 그것들을 갈지르는 또 다른 메타적 층위의 보편이 존재한다고 보는 순간, 그는 다시 근대(modernity)의 진리관에 빠져든다. '신이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은 이러한 메타적 층위의 보편을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를 의미한다.



2. 구성주의(constructionism)는 재현주의(representationalism)를 파괴하려는 운동이다. 구성주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나의 선택과 관심에 상응해서' 구성되었다는 적극적 개입의 입장, 재현주의는 '있는 그대로' 곧 '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100% 수동적으로 기술한다'는 순수주의의 입장이다.



3. 사람들은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무섭다고 말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었던 것을 다른 사람들이 못하는 이유가 도덕적으로 게으르거나 노력 혹은 결단력의 부족으로 보는 사람들이며, 따라서 모든 걸 자기 기준으로만 바로본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적절한 제한만 주어진다면, 때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우리 모두가 - 어떤 의미에서는, 혹은 자신이 성공한 영역들에서는 -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4. 무엇이든 너무 집착하면 오히려 안 된다. 가령, 행복하려고 환장해서 발악을 하면  오히려 될 일도 안 된다. 푸코는 블랑쇼에 관한 자신의 글 <바깥의 사유>에서 블랑쇼의 글이 보여주는 '이끌림'(attirance)의 비결을 '게으름 혹은 무심함'(negligence)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생각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조금은 무심하고 조금은 게을러져야, 그럴 수 있는 여유와 거리를 가져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5. 한 어리석은 정치인 때문에 '실용주의'라는 말이 폄하되곤 하고, 때로는 실용주의 자체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있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실용주의를 지지한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방식이 실용적이지도 못하다는 것, 사실은 전혀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960년대 당시에도 인권을 유린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위해 주창되던 그러한 비민주적인 '조국근대화'의 방식이 이른바 '선진국'을 지향한다는 오늘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통용될 것 같은가? 같은 이야기이지만, 가령 우리나라 기업이 유럽이나 미국에 진출해서, 그곳의 현지인 직원들에게 과거의 대한민국이나 오늘의 중국과 같은 방식을 강요하고 그것이 어떤 '실용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 어리석인 사람이 있을까?



나는 실용적이고 싶다. 관건은, 실용주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실용주의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여 그러한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다. 나는 오늘날의 실용주의란 어떤 것이며, 나와 우리의 어떤 행동이 실제로 실용적인 결과를 낳는가에 관심이 있다.



6. 노력이란 실로 때로는 자기합리화의 일종이다. 노력하는 것은부족하기 짝이 없다. 노력을 하는 것에 그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노력으로 얻어려는 바가 실제로 얻어져야 한다. 사랑을 해도 상대를 사랑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나의 사랑이 전달되어야 하고, 효도를 해도 나 혼자 힘들어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실제로 기쁨을 느껴야 하고, 직장에 취직을 하려해도 노력하고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합격을 해야 한다.



7. 애니어그램들을 왜 그렇게 열심히들 하는가? - 자기 얘기니까! 연애가 재미있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둘이서 자기 얘기, 자기 사랑, 결국 자기가 관심있는 얘기만 하기때문이다. 사주든 궁합이든 타로든, 점을 열심히 보는 이유도 자기 얘기라서. 이런 관심은 적절하면 애교로 보아줄 수도 있지만, 지나치면 좀 끔찍한 부분이 있다.



8.  점과 관련하여 꼭 나오는 얘기가 점이 통계학이라는 것이다. 그시대에 통계가 있지도 않았고 이 때의 통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인간 유형을 유형별로 나눌 수 있다고 보는 것도 한계가 확실하고, 질문과 점괘의 내용 자체도 중의적이라 읽는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다(물론 이 점이 점의 묘미이고, 가치이다).



9. "미국의 스티븐스 판사는 논쟁적인 도덕적 주제가 걸려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임신중절의 여부는] 입법부가 아니라 여성 개인이 스스로 겨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법원이 주장하는 것은 - '법원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 다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가치관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어떤 개인도 단순히 그가 '선호하는 가치'가 다수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 결정을 내릴 자유를 포기하도록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 스티븐스가 생각한 근본적인 질문은 - 생명에 관한 어떤 견해가 옳으냐가 아니라 - "임신중절의 결정을 개인이 내려야 하느냐 아니면 다수가 내려야 하느냐"이다." - 마이클 샌델, <<왜 도덕인가?>>(한국경제신문, 109쪽)



10. 남을 "걱정해주면서" "상대를 위해서" 상대의 삶에 간섭하며, 때로는 위로를 때로는 관전평을 때로는 도덕적 훈계를 일삼는 행동이 실로 달콤한 간섭(intervention), 곧 권력행위임을 인정하는 사람이 드물다.


11. "내 몸의 느낌을 내가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야!"



12. 푸코의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물론 해석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는 '황당한' 언명이다(그런데 푸코는 물론 이런 점을 당연히 알고 있다).



13. 지식인과 인민은 둘이 아니다(不二).



14. 일본에는 사소설(私小說)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 사소설이란 없다. 그것은 철저한 '보편소설'의 한국적 양상이다.



15. 미시사의 방법론을 적용하여 기원 5세기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아테네에 사는 한 평범한 성인남성의 사랑이 갖는 다양한 측면들을 문화인류학적으로 재구성해보라.




16. 모든 정치적인 문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문제는 '무엇이 정치적인 것이며 무엇이 정치적인 것이 아닌가'라는 문제이다. 실로 이보다 중요한 정치적인 문제란 없다!



17. 요즘 기자들과 쓰레기를 결합하여 '기레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나 물론 기자들 개개인에게 그러한 사태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이러한 사태의 궁극적 원인은 19세기적 과학관, 진리관의 무비판적 반영, 곧 중립보도, 사실보도, 공정보도라는 관념 안에 존재한다. 간단히 말해, 문제는 이러저런한 편집권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권 자체이다. 편집권은 편집권력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한국말'이라는 말처럼 기자들이 이런저런 말을 편집하는 그 행위 자체가 중립이 불가능한 선택의 행위이다. 취재 대상과 아닌 대상을 나누는 일, 중요한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를 나누는 일 자체가 이미 도저히 중립적일 수 없는 정치적 선택의 행위이다.



모든 기자들은 사실 어린 시절 이러한 편집권력의 무시무시한 힘을 깨닫고 적어도 두 번은 전율에 떨게 된다. 한 번은 이 힘의 강력함에, 두 번째는 아무도 이 부당한 '중립적이지 않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는 사실에.



18. 인생에서 종종 찾아오는 연극무대는 그녀의 오늘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결혼식장과 상가집, 혹은 강의실, 혹은 팀발표 등에서 그녀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녀의 행동을 보라.



19. 사람들은 보통 너무나 자기중심적이어서 (가령 자신이 개인적으로 아는) 어떤 이의 글을 읽을 때 이것이 자신에 대해 말한 글이 아닌가 생각하고 또 의심하곤 한다.



20. 푸코는 지식인, 부르디외는 상식인이다.



21. 루소와 알튀세르가 이른바 정말 '미친 사람'임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들이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궁극적으로 어떤 단 한 가지 사건 혹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확신으로 말한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다른 사람들의 오해와 시기와 모함에 의해, 후자는 어머니가 자신의 이름을 '그'라고 붙였다는 그 사실에 의해.




22.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문제가 자신의 '정상성'임을 알지 못한다.



23. 안티기독교인은, 물론, 기독교신자다. 그녀의 사고는 여전히 모든 것이 기독교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24. 스스로 오랜 기간 동안 기자였던 카뮈가 <이방인>에서 그리고 있는 법정과 언론의 모습은 실로 탁월하다. 그들 모두는 재판이나 보도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행하고 있다. '용의자' 혹은 '피의자'인 뫼르소가 하는 모든 행동이 자신들이 뫼르소를 바라보는 관점에 입각해 재단되고 판정된다. 가령 평상시 이웃들의 증언이 그를 순수한 사람으로 보았다면 '저렇게 치밀한 두 얼굴의 완벽한 이중인격자', 조금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역시 이 사람은 원래 저런 인간, 파렴치한 범죄자'라는 식이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근대의 사법제도는 '범죄행위'에 대한 재판 이외의 어떤 것, 그 이상의 어떤 다른 것, 곧 한 인간의 '품행'을 심판한다고 말한 것은 참으로 탁월한 통찰이다. 가령 오늘 푸코가 살아 있어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고, 어느 기자가 푸코의 수첩에서 <<감시와 처벌>>의 논지와 비슷한 글을 발견한다면, 그녀는 아마 '이렇게 치밀하고 간교하게도 푸코는 이런 경우에 대비해 자신에게 유리한 이런 책을 미리 써놓았던 것이다!'라며 비분강개하는 어조로 글을 써내려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경우의 참다운 문제는 무엇인가? 자신이 원래 믿고 있는 해석에 준하는 증거는 자신의 생각이 '옳은' 증거로, 반하는 증거는 범죄자 혹은 용의자의 '교활함'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하는 것다. 결국 그녀는 어떤 경우에도 틀릴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해석권력'이라 부르기에 가히 부족함이 없는 행동이다.




25. 그리고, 우리 모두가 이런 해석권력을 행사하는 기자이다. 그렇지 않은가?









 
 
 
 
 
 
 

psychic tv - allegory and the self, 1988







http://www.discogs.com/Genesis-P-Orridge-Psychic-TV-Allegory-Self/release/171899


http://en.wikipedia.org/wiki/Psychic_tv#Discography




godstar [california m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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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 was surpr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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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싫은 4가지 이유



멱살 잡힌 채 쫓겨나고 막말 듣는 기자들…
자성의 목소리 높지만 전에 없는 냉소만 가득
 

    지난 5월15일 경기도 안산 세월호 사고 정부합동분향소. ‘스승의 날’을 맞아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생존한 학생의 부모들이 선생님 영전 앞에 빨간 카네이션 바구니를 놓았다. “우리 애가 선생님을 정말 좋아했어요.” 학생 유가족과 선생님 유가족이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해졌다. 취재수첩을 든 기자들도 대화를 들으려고 한 발짝 다가갔다.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유가족이 말했다. 조금 뒤로 물러나는 듯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기자들은 다시 유가족에게 모여들었다.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기자들 물러나주세요”∼ 메아리가 퍼져나갔다.
 
 

기념행사가 끝난 뒤 유가족 대기실 천막 앞에 서서 기다렸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대책위의 협조를 받아 몇몇 유가족을 인터뷰할 참이었다. 주변에 벤치도 있었지만 왠지 앉아서 기다리기가 죄스러웠다. “여기 서 있으면 안 됩니다.” 한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대기실에서 얘기하는 소리가 다 들리지 않습니까.” 그의 시선은 내 취재수첩을 향해 있었다. 몰래 취재하는 중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싶었지만 입을 닫았다. 나는 유가족이 싫어하는 기자가 어쨌든 맞으니까.
 
 
 
한국 언론이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다고들 한다. 멱살이 잡힌 채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고 카메라가 내동댕이쳐진다. “개새끼야, 그게 기사야”라는 욕설도,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비아냥도 듣고 있다. 부끄럽고 참담하다. 어쩌다가 언론이, 우리가 이 지경이 됐을까. <한겨레21>은 세월호 피해 가족과 자원봉사자, 언론학자, 시민활동가 등에게 ‘우리가 기자를 싫어하는 이유’를 두루 물었다.

 
 
 
1. 빠른 뉴스, 막말 뉴스

 
 
 
4월16일 사고 당일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최악의 오보가 나왔다. 특히 MBC 기자들은 “최악의 오보를 막을 수 있었다”고 밝혔지만 MBC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목포MBC 기자들은 사고 당일 오전 11시쯤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사고 해역에 도착했다. 해경 경비정과 헬기, 어선들은 잠긴 선체 주변을 빙빙 돌기만 할 뿐 전혀 손쓰지 못했고 잠수요원도 볼 수 없었다. 현장 기자는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구조자가 160여 명”이라는 말을 들었고, 서울MBC 전국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MBC는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학생 전원 구조”라고 보도했다. 전국MBC기자회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낸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오보’”라고 고백했다.

 
 
언론의 오보로 유가족은 천국과 지옥을 오갔고 방심한 정부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단원고 학부모들은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아들·딸에게서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선체가 전복될 때까지 경찰 간부후보생 졸업식 행사에 참석했다. 그가 진도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사고 발생 4시간이 지난 오후 1시10분쯤이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세월호 사건처럼 오보가 많았던 참사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재난 보도는 정확성이 생명이라 언론에 대한 신뢰가 그냥 무너졌다. 처음 한 번은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더라도 오보가 되면 그다음부터는 반성하고 더 신중하게 보도해야 했다. 하지만 속보 경쟁에 매달려 계속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썼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난 7년간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가 지속됐다. 그사이에 기자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취재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고 본다.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문제를 볼 수 없는데 기자들이 그렇게 돼버렸다. ‘부정적으로 보도하면 문제가 된다’라는 기득권자의 관점이 언론사 내부까지 뿌리내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2. 윗물이 썩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교통사고 사망자 비유(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전언 “세월호 사고는 300명이 한꺼번에 죽어서 많아 보이지만 연간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 수를 생각하면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나 박상후 MBC 전국부장의 발언(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성명서 “그런 ×들 (조문)해줄 필요 없어”)은 사회적 비난을 불렀다.



 
재난방송을 이끌어야 할 공영방송은 오히려 믿음을 주지 못했다. 지난 5월7일 방송된 MBC 박상후 전국부장의 리포트는 구조에 참여한 민간 잠수부의 죽음을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 탓으로 돌려 시청자의 원성을 샀다.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유가족들은 사과를 요구했다. 지난 5월8일 임창건 보도본부장과 이준안 취재주간 등 KBS 임직원이 합동분향소를 찾아왔지만 김시곤 국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유가족의 말이다. “오후 5시쯤 김시곤 국장이 사과하러 온다고 해서 기다렸다. 7시가 넘었는데도 오지 않더라. 우리가 또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8시30분까지 오지 않으면 우리가 찾아가겠다고 했다. 결국 아빠들이 아이들 영정을 눈물로 떼어내 서울행 버스를 탔다. KBS 앞에 갔는데도 보도국장은 나타나지 않고 (길환영) 사장은 면담을 거부하더라. 사과를 더는 구걸하기 싫어서 청와대로 향했다.”

 
 
김시곤 국장은 이튿날 보도국장직을 사임했다. 하지만 발언에 대한 반성이나, 유가족에 대한 사과의 뜻이 아니었다.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하면서 “혼심의 힘을 기울였으나 보도의 독립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책임을 진”다고 했다.

 
 
박상후 MBC 부장도 막말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MBC의 세월호 보도를 총괄한 그는 민간 잠수부의 사망 원인을 실종자 가족들의 ‘조급증’ 탓으로 돌린 ‘데스크리포트-분노와 슬픔을 넘어서’(5월7일)를 보도해 MBC 내·외부에서 비판을 받았다.

 
 
2012년 MBC 노조 파업 때 홍보국장을 한 이용마 MBC 해직기자는 “이 사람들(김시곤·박상후)은 자기가 말한 것에 대해 전혀 반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곤 국장이 물러나면서 길환영 사장보고 나가라고 했는데 ‘너나 나나 똑같은데 내가 왜 희생양이 되어야 하냐’는 생각에서 비롯된 거다. 반성하기보다는 재수가 없었다고 인식한다. 유가족을 비난하는 뉴스를 내보내는 것도 일반인과 완전히 동떨어진 수준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와대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이 정권에 피해가 가지 않을까 하는 관점에서 세월호 사건을 바라본다.”(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에서)


 
 
3. 권력 눈치를 본다
 
 
 

“사고 당일에 아빠 10명이 6만원씩을 걷어 낚싯배를 빌려 나갔다. 해경은 부직포만 깔고 있더라, 기름이 유출될까봐서. 세월호 50m 앞까지 가는데 제재도 하지 않았다. 돌아와서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고 기름만 걷고 있느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나는 권한이 없다’고 정부 상황실 관계자가 말했다. 정부가 구조해주지 않아 이튿날 비가 오는데 엄마들이 팽목항에서 무릎 꿇고 1시간 동안 빌었다. ‘제발 아이들 좀 살려달라’고. 그 모습을 수십 개의 카메라가 다 찍어놓고는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방송했으면 아이들을 구해내라고 국민이 같이 나서줬을 텐데…. 언론은 ‘정부가 구조에 최선을 다한다’고 써댔다.”(희생된 단원고 학생의 엄마)

 
 
황필규 변호사는 당시 진도의 구조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진도 팽목항. 이미 사고 후 사흘하고도 몇 시간 지난 시간, ‘UDT 요원 ○○명, 조명탄 ○○발…. 숫자들만 나열된 보도자료를 배포한 해경 국장을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상황실에서 끌고 나옵니다.

 
 
가족들: 가라앉은 배가 옆으로 기울었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왜 이 중요한 사실이 보도자료에 없나요? 언제 보고받았나요?

 
 
해경 국장: 네, 알고 있습니다. 말로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보고받은 적은 없습니다….

 
 
가족들: 첫날부터 바지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왜 이제야 바지선 투입을 결정했나요?

 
 
해경 국장: 처음에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 왜 이렇게 인력을 적게 투입하나요?
 
 
 
해경 국장: 오늘부터는 날씨와 무관하게 전원 투입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수십 개의 언론사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이 장면을 찍었고, 한두 언론은 생방송을 한다고 소리쳤지만, 이 장면이 제대로 보도된 언론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블로그에서)
 
 
 
 
언론은 초기에 정부의 엉터리 구조 작업을 비판하지 않았다. 선장과 승무원의 태도, 청해진해운 등 사고 원인과 책임자 처벌로 순식간에 취재 초점을 넘겼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청와대와 정부를 감싸기 위해서라고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진단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방송사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뉴스를 정권에 헌정하려는 태도를 가졌다고 보인다.”(김언경 사무처장) 정연우 세명대 교수(언론학)는 “명절 때 고속도로 상황을 중계한다고 헬기를 띄우는 언론이 세월호 사건 때 헬기도 안 띄웠다.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의 진도 사고 현장 방문 보도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불안과 분노로 격앙돼 거친 항의와 불만의 목소리를 냈지만 KBS와 MBC는 이러한 분위기를 지워버렸다. KBS 기자는 이를 ‘날조’라고 표현했다. “대통령의 발언 뒤 박수갈채는 연단 위 대통령과 땅바닥의 실종자 가족들을 벽처럼 갈라놓은 공무원과 경호원의 것이었다. 기묘한 편집술 덕에 공무원의 반응이 마치 가족의 반응인 것처럼 둔갑했다.”

 
 
 
4. 뻔뻔하다
 
 
 
 

언론을 향해 표출하는 분노와 불신은 달라진 언론 환경과도 닿아 있다.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기록하며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에서 기자가 독점적으로 누려온 지위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는 까닭이다. 현장을 전하는 신속성과 생생함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이미 기존 언론을 무릎 꿇렸다. ‘현장의 목격자 모두가 기자’인 시대에 기자가 전하는 정보 자체보다 기자가 정보를 전하는 태도가 중요한 덕목이 됐다. 그래서 취재 업무만을 앞세우는 기자들의 모습이 더욱 도드라진다.

 
 
“사고 당일 구조자가 나오는데 기자들이 몰려가 질문을 쏟아냈다. 서둘러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인데 기자한테는 그냥 취재 대상일 뿐이었다. 천불이 나서 한 대 때리고 싶었다. 또 누군가 필요할 때는 들어주지 않다가 자기들이 필요할 때는 물불 안 가리고 덤빈다. 아주 질렸다.”(자원봉사자 이석준·24·가명)

 
 
“5월8일께 진도체육관에서 피해 가족들이 식사하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언론사가 카메라로 그 모습을 몰래 찍다가 걸렸다. 가족들이 화내고 자원봉사자들이 말리고 경찰이 오고…. 최소한의 배려도 없다. 게다가 취재 과열이나 경쟁으로 언론사가 현장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보도는 나가지 않는다. 제 살 깎아먹기이지만 보도하지 않으면 자정 기능을 상실하지 않나.”(자원봉사자 박수동·27)

 
 
 
4월24일 사고 9일 만에 등교를 재개한 안산 단원고 3학년 한 여학생이 언론인의 꿈을 포기하며 쓴 글(‘대한민국의 직업병에 걸린 기자분들께’)엔 무례한 기자들을 향한 실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저의 꿈이 바뀌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신념을 뒤로한 채, 가만히 있어도 죽을 만큼 힘든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 그리고 애타게 기다리는 전 국민들을 대상으로 큰 실망과 분노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업적을 쌓아 공적을 올리기 위해서만 앞뒤 물불 가리지 않고 일에만 집중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며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에 반발하며 청소년들에게 침묵행진을 제안하는 글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던 고등학생 양지혜양도 말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무조건 마이크를 갖다대고 있는 기자들과 그 상황을 강제하는 취재 시스템에 화가 났다. 장래에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기자들을 보며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책무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죽음의 공포에 내던져진 가족들과 만나는 기자들은 인간적으로도 미성숙했다. 자원봉사자 박수동씨의 경험담이다. “진도체육관 2층에서 한 남자 기자가 게임을 하고 있더라. 게임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은 했는지 눈치를 계속 보면서 말이다.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걸 보며 ‘저 사람들은 그냥 최소한의 공감도 안 되나보다’ 생각했다. 기자들은 가족에게 주는 고급 도시락이나 햄버거, 이런 것도 아주 잘 챙겨 먹더라. 어떤 자원봉사자는 기자들이 많은 모텔에 묵었는데 방 앞에 술병, 치킨 상자 같은 게 쌓여 있어서 황당했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비극의 현장’인데 그들에겐 ‘일터’구나 싶었다.”
 
 
 
 
 
욕먹는 동안 주목받은 언론인

 
 
 
피해 가족들의 편에서 눈물 흘리는 언론인에게 열광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의자에 앉아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 그보다 나이가 많은 손석희 JTBC 사장은 진도 팽목항에서 비를 맞으며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기레기’라고 욕먹는 동안 일부 언론인들은 오히려 주목받았다. 기자가 무조건 싫다기보다 그만큼 진짜 기자를 절실히 원한다는 뜻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한 대학원생의 말이다.
 
 
 
세월호 보도에서 JTBC가 처음부터 피해 가족과 시청자의 마음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다른 언론사와 마찬가지로 세월호 탑승자와 구조자의 집계 오류를 받아썼고, 사고 첫날 <뉴스특보>에선 앵커가 구조된 학생에게 친구의 사망 소식을 아는지 물었다. 여론은 싸늘했다. 하지만 그날 손석희 앵커는 깊은 반성을 담은 사과를 거듭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행했다. 앵커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어느 정도나 되느냐”고 묻자 전문가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답했다. 이때 손석희 앵커는 10초간 침묵하며 비통한 마음을 드러냈다. 다른 언론사가 희생자 가족의 오열이나 안타까운 사연에 매달릴 때도 JTBC는 부진한 구조 작업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실종자 가족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4월25일부터 5일간 같은 옷을 입고 진도 팽목항에서 생중계한 뒤 손석희 앵커는 이렇게 말했다. “가족분들이 아직 많이 계셔서 발길이 떨어질 것 같지 않다. 현장 진행은 마무리하지만 이곳을 향한 시선을 멈추거나 돌리지 않겠다. 약속한다.” JTBC는 5월16일까지 31일째 세월호 사건을 톱뉴스로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KBS와 MBC 기자들의 자기반성도 잇따라 나왔다. 특히 KBS는 5월15일 세월호 사건 한 달 특집 방송으로 진행된 <뉴스9>에서 사과 방송을 내보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체육관을 방문했을 때 구조 작업에 대한 문제제기나 유가족들의 항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은 점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보도했으나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유가족 기자회견은 보도하지 않은 점 △사고 당일 정부가 발표한 투입 구조 인력을 받아쓴 점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길환영 사장의 ‘보도 개입’을 폭로한 것을 다루지 않은 점 등이다. 다음날인 5월16일에는 KBS 보도본부의 보직 부장 18명 전원이 보직을 사퇴하고 “길환영 사장 사퇴”를 요구했다.


 
 
어차피 기대할 것 없는 ‘기자 사회’


 
 
같은 날 <중앙일보>는 ‘세월호 부정확한 보도 사과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2면 전면에 싣었다. △탑승·실종자 수를 정확히 보도하지 못한 점 △초기 구조 현황에 대한 정부 발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점 △가족들에게 상처 준 보험금 보도 △구조된 아이 얼굴을 그대로 내보낸 점을 반성했다. <중앙일보>는 세월호 참사 1년 뒤인 2015년 4월16일 달라진 재난 안전 체계를 치밀하게 검증하고 고발하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 검증보고서’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기레기’라는 전 사회적 비난 앞에서야 들리기 시작한 언론인들의 자성 목소리도 전에 없는 냉소 앞에 직면해 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민의 눈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집단으로서 ‘기자 사회’가 존재한다는 믿음이 아예 없다. 어차피 조금의 기대도 하지 않는데 기자들이 스스로 성찰한다고 하는 모습이 피해 가족과 국민의 마음엔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안산=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 
 
 
 
 
 



한국 노동자 권리보장 세계 최하위 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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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별 '세계노동권리지수' 등급 현황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4/05/22/0601200100AKR20140522001000098.HTML?template=5567







2014. 5. 19.

알라딘 서양철학 로드맵 - 미셸 푸코 [초고]






* 알라딘 서양철학로드맵 <철학, 책> e-book 무료 다운받는 곳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_common.aspx?pn=2014_philosophia_sub&AuthorId=15143


* 푸코

http://en.wikipedia.org/wiki/Michel_Foucault




I. 저자 이력 간략 정리
 
 
미셸 푸코는 1926년 프랑스 푸아티에에서 태어났다. 1946년 명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철학과 심리학 학사를 취득하고, 이후 장 이폴리트의 지도로 헤겔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한다. 1950년 경 알튀세르의 영향 아래 공산당에 입당하나 2-3년 후 스탈린주의에 대한 환멸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당의 태도에 실망해 탈당한다. 1955년 이후 스웨덴 웁살라, 당시 서독 함부르크, 폴란드 바르샤바 등지의 프랑스문화원장 등으로 재직하다. 프랑스로 돌아와 1961년 소르본에서 주논문으로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를, 부논문으로 칸트의 『인간학』을 번역ㆍ주해한 텍스트를 제출하다. 1963년 『임상의학의 탄생』과 『레몽 루셀』, 1966년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1969년 『지식의 고고학』을 출간하고 이 시기를 ‘지식의 고고학’ 시기로 지칭하다.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최연소 교수로 임명, 취임강연 ‘담론의 질서’를 행하다. 1971년 질 들뢰즈 등과 ‘감옥에 관한 정보그룹’(G.I.P.)을 만들어 활동하다. 1975년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을 발표하고, 이 시기를 ‘권력의 계보학’ 시기라 지칭하다. 1976년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다룬 연작 ‘성의 역사’ 시리즈의 1권 『앎의 의지』를 출간하다. 원래 6권으로 계획되었던 시리즈는 중도에 계획이 바뀌어 푸코가 사망하는 1984년 2, 3권에 해당하는 『쾌락의 활용』과 『자기 배려』만이 출간된다. 이 시기를 ‘윤리의 계보학’이라 부르다. 같은 해 자신의 ‘지적 유언장’이라 할 논문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하다. 푸코는 1984년 6월 25일 파리에서 에이즈로 사망한다. 그 외 푸코의 생애와 저작들에 대한 가장 완벽한 정리는 그린비출판사 블로그에 올라 있는 4편의 글 ‘푸코의 활동’을 참고하면 되는데, 이는 푸코 선집 『말과 글』(1994)의 「연보」를 완역한 것이다.

http://www.greenbee.co.kr/blog/1685
 
 
 
II. 저자 사상 간략 정리
 
 
푸코 작업의 핵심은 한 마디로 모든 ‘보편’의 관념에 대립하는 것이다. 서양철학사에서 보편이란 필연적인 것, 본질적인 것, 불변의 것, 곧 ‘바꿀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푸코의 작업은 이런 면에서 우리가 보편적이며 필연적이며 본질적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고, 따라서 변화가능한 것, 바꿀 수 있는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런 면에서 첫 번째 대표작이라 할 『광기의 역사』는 우리가 자연적인 것, 따라서 역사와 문화에 무관한 것으로 믿는 ‘광기’의 관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를 밝히려는 작업이다. 푸코는 우리가 이러한 관념의 최종근거로 삼는 모든 ‘자연적인 것’, 곧 생명, 생물, 의학, 정신, 육체, 광기 등의 관념이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자연적인 것’으로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 역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른바 인문과학 혹은 인간과학의 대표적 분과들이 노동, 생명, 언어의 분야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밝힌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은 니체적 계보학의 입장에서 감시와 처벌 혹은 죄책감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사회화, 제도화되면서 근대사회 구성의 근본 원리가 되었는가를 밝힌다. 『성의 역사』 연작 역시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를 이러저러한 성의 주체로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는가를 서구의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앞서 말한 필연과 보편의 관념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이처럼 ‘오늘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자유와 변화의 지점을 찾을 수 있는가’를 밝히려는 궁극적 관심을 위해 선결되어야 할 조건들 중 하나로서 이해될 수 있다.
 
 
III. STEP 1 - 『미셸 푸코 1926-1984』, 『정신병과 심리학』,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
 
 
푸코의 책은 매우 전문적인 논의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물론 최선의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코의 저작들을 시대 순으로 오랜 시간을 들여 하나하나 꼼꼼히 공부하는 것이나, 모든 이들이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 푸코 사유에 대한 가장 정평 있는 입문서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그린비)이다. 이 책은 푸코의 삶과 사유, 저작들을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을 뿐 아니라, 니체, 하이데거로, 레비스트로스 등 푸코가 영향 받은 사유들, 사회ㆍ문화ㆍ정치적인 다양한 동시대적 상황들을 정리해 놓은 최적의 입문서라 할 수 있다. 그 외의 국내 학자에 의한 간명한 입문적 소개로는 『처음 읽는 프랑스현대철학』(동녘)의 ‘푸코’ 부분이 무난하다. 고급한 입문서로는 폴 벤느의 『푸코, 사유와 인간』(산책자)와 질 들뢰즈의『푸코』(동문선ㆍ그린비)가 탁월하다.



다음으로는 어렵더라도 푸코 자신의 책을 시대 순으로 얇고 가벼운 것부터 찬찬히 정성스럽게 읽어보기를 권하는데, 우선 1962년의 『정신병과 심리학』(문학동네)을 권한다. 특히 이 책의 2부는 전 해인 1961년에 나온 푸코의 방대한 학위논문 『광기의 역사』에 대한 탁월한 요약ㆍ심화로 간주된다. 이후에는 물론 이러한 책들을 곁에 두고 『광기의 역사』(나남)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다음으로는 『내, 어머니와 누이와 남동생 ... 을 죽인 나, 피에르 리비에르』(앨피)를 권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을 이어주는 책으로, 19세기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존속살해 사건의 기록을 푸코가 발굴해 자신의 연구ㆍ분석과 함께 출간한 것이다.
 
 
IV. STEP 2 - 『헤테로토피아』,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



저술 순으로 따라 읽자면 다음 책으로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을 읽어야 하지만, 이 책들은 너무나도 고도의 전문적인 논의를 펼치고 있는 책이므로, 가급적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다만 『말과 사물』의 맨 처음 수록된 「시녀들」은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동명의 작품에 대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품격 있는 비평이므로 이 단계에서 읽어도 좋다). 이처럼 1960년대를 가로지르는 지식 고고학 시기의 대표작은 『말과 사물』이지만, 오히려 1960년대 푸코의 사유를 공간과 건축의 측면에서 잘 드러내주는 『헤테로토피아』(문학과지성사)를 권한다.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말과 사물』의 연장선상에서 고안된 것이며, ‘타자가 동일자의 인식을 가능케 하는 근본 조건’이라는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들 중 하나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물론 『말과 사물』의 가장 중요한 핵심적 주장은 각각의 시대마다 이전 혹은 이후의 시대와는 공유될 수 없는 독자적ㆍ독립적인 ‘에피스테메’가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지식 고고학적’ 관점이 잘 정리되어 있으면서도 이후의 ‘권력 계보학’으로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가장 좋은 책은 1971년 네덜란드 텔레비전에서 이루어진 촘스키와 푸코의 대담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시대의 창)이다. 마냥 쉬운 책은 아니지만 대담의 기록이므로 대화체로 이루어져 읽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무엇보다도 - 하나의 주장이 합리적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 오히려 “(하나의 주장을 정당화해주는) 합리성의 선택 자체가 니체적인 ‘힘 관계’의 반영”이라는 푸코의 핵심적 주장을 잘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논문 「진리와 권력」, 「옴네스 에트 싱굴라팀 - 정치적 이성 비판을 향하여」은 푸코 ‘권력 계보학’의 대강을 보여주는 글로 추천할 만하다. 이 모두는 향후 『감시와 처벌』을 읽기 위한 준비의 과정으로 보면 된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가장 좋은 입문은 물론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연인 『담론의 질서』(중원문화)이며, 이 책은 우리가 오늘 아는 ‘담론’ 개념을 처음으로 정의한 기념비적인 명저이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가 이루어졌다면 『감시와 처벌』(나남)에 도전해볼 차례이다. 푸코의 가장 중요한 책이자 가장 논쟁적인 책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다. 상대적으로는 푸코의 책들 중 매우 쉬운 편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읽어서 쉽게 이해가 되는 책은 아니다. 특히 처음 읽는 사람으로서는 행간에 깔린 중층적 의미를 다 소화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분히 정독해 볼 가치가 있는 중요한 책이다. 모든 책을 다 정독하고 모든 부분을 다 이해해야 다음 부분으로 넘어갈 수 있다면, 한 사람의 삶이란 몇 권의 중요한 책을 읽기에도 너무 짧다. 대강의 요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체크해두고 앞으로 읽어나가는 방식이 유용하다.
 
 
V. STEP 3 - 『말과 사물』, 『성의 역사』, 『생명관리 정치의 탄생』



이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면 1960년대 지식 고고학 시기의 주저 『말과 사물. 인간과학의 고고학』을 읽을 차례이다. 우선 이해되지 않아도 가볍게 장 별로 한 번 읽고, 추후에 찬찬히 오랜 시간을 들여 정독하는 것이 좋다. 『말과 사물』의 핵심적 주장은 역사를 관통하는 보편적 인식이란 없으며 오직 각각의 시대마다 새로운 인식이 새롭게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 동시대의 헤겔과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구조주의적 관심에 입각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푸코는 16세기 이래 서양의 에피스테메 혹은 인식론적 장에는 단 2번의 단절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두 번의 단절로 이루어지는 세 개의 시기는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이나, 푸코의 궁극적 주장은 이 두 번의 단절에 이어지는 세 번째 단절, 곧 네 번째 시기가 와야 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나가면서 각 시대마다 푸코가 긍정 혹은 부정하는 개념의 계열을 찾으며 읽으면 도움이 된다. 가령 책의 9-10장에서 칸트에 의해 성립된 근대 ‘인간학’은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며, 근대 이후의 시대에 ‘언어’가 하게 될 역할은 긍정적 뉘앙스를 갖는다.
 
 
다음으로 『성의 역사』를 읽는다. 성의 역사는 1, 2, 3권에 해당하는 『앎의 의지』, 『쾌락의 활용』, 『자기 배려』가 있는데, 물론 순서대로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편 이들 3권, 곧 1976년의 1권과 1984년의 2, 3권 사이에는 8년이라는 시간과 더불어 일정한 단절이 존재한다. 『앎의 의지』는 그 전 해에 출간된 『감시와 처벌』 곧 권력 계보학의 논지를 대상의 측면에서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감시와 처벌』을 읽지 않았다면 이해할 수 없다. 『앎의 의지』가 공격하는 핵심적 대상은 당시 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던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이다. 이 두 이론은 공히 성이 억압되어 있으며 따라서 성이 해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푸코는 이러한 담론 자체가 성에 관한 기존 지배 시스템을 유지하는 장치의 일종으로 기능한다고 본다. 『앎의 의지』에서 보이는 푸코의 관심은 ‘왜 우리[서구인]는 성이 억압되어 있다고 이토록 강력히 말하게 되었는가?’라는 담론 체제에 관련된 문제이다. 2, 3권은 ‘윤리의 계보학’으로 이행한 이후의 저작들로, 『쾌락의 활용』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성인 남성이 진리의 문제, 양생술, 소년-성인 간의 동성애 등 섹슈얼리티에 연관된 여러 문제 상황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를 섹슈얼리티와 관련하여 어떤 주체로 만들어 갔는가를 분석한다. 주의할 점은 이때의 ‘윤리’가 -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덕’의 의미보다는 - ‘자기함양ㆍ자기도야’라는 그리스어의 어원적 의미에 가까우며, 따라서 진리와 정치가 이미 함축된 그러한 자기 형성의 ‘윤리’라는 점이다. 『‘자기 배려』는 그리스도교 국교화 이전의 고대 로마시기를 다루는데, 푸코는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이 시기의 핵심적 문제제기를 자기 통치, 자기 배려로 설정한다. 통치성의 개념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푸코의 사유에서 이 개념이 타인의 통치로부터 자기의 통치에로 나아가는 연결점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윤리적 주체로서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가?’라는 문제에 초점을 맞춘 ‘윤리의 계보학’ 시기는 주체화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는 시기로도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1982년 미국 버몬트대학교에서 이루어진 세미나 『자기의 테크놀로지』(동문선)을 참조하면 좋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푸코의 전공자로서 시간이 갈수록 확신하게 되는 하나의 사실은 푸코는 물론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감시와 처벌』 같은 저술을 통해서도 역사에 남게 되겠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학문적ㆍ역사적 공헌은 푸코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강의록 시리즈에서 개진하고 있는 통치성의 관념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푸코는 1970년에 취임한 이래 1976-1977년의 안식년을 제외하고 1984년까지 매년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의를 해왔다.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프랑스에서 2014년 현재에도 출간 중인 강의록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는 푸코 전공자로서 정확하고도 유려한 좋은 번역을 보여주는 심세광의 주도로 난장출판사에서 전권 번역되고 있다. 국역된 몇 권의 강의록 중 특히 『생명관리정치의 탄생』는 통치성의 관념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 분석을 통해 잘 드러나는 필독서이다. 특히 이 책은 지난해의 『안전, 영토, 인구』에서 다루어진 16-17세기 이래 유럽 근대의 ‘정치학자’ 및 ‘경제학자’의 탄생,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분석을 잇는 20세기 독일과 미국의 신자유주의 분석에 책의 대부분이 할애되고 있어 특별한 시의성을 갖는다. 이와 관련하여 신자유주의에 의해 초래된 최근 유럽의 상황을 푸코 통치성의 관점에에서 분석한 마우리치오 라자라토의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같은 책도 참조하면 좋다.
 
 


 

2014. 5. 15.

la part maudite


 
 
 
 
 
 






 
 
 
 
 
* 「소모의 개념」(1933) - 『저주의 몫』
 
 
“인간의 행위가 생산(production)과 보존(consommation)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철저히 환원될 수는 없지만, 소비는 명확히 둘로 구분된다. 첫째, 소비는 일정한 사회의 개인들이 생명을 보존하고 생산활동을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으로 표현될 수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생산활동에 필요한 기본적 조건으로서의 소비이다. 둘째, 또 하나의 소비는 원시사회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활동들로서 궁극적인 생산 목적 또는 생식 목적과 상관없는 사치, 장례, 전쟁, 종교 예식, 기념물, 도박, 공연, 예술 등에 바쳐지는 소비이다. 두 번째 부분의 소비들은 생산의 중간 수단으로 이용되는 소비와는 다르기 때문에 순수한 비생산적 소비의 형태를 지칭하는 용어가 필요한데, 나는 그런 소비를 ‘소모’(dépense)라고 부르겠다.”(32)
 
 
“고전경제학에서는 원시적 교환이 물물교환의 형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사실 고전경제학에서는 교환과 같은 획득의 수단이 획득의 욕구가 아니라 그와는 반대되는 파괴와 파멸의 욕구를 그 근원에 가지고 있었음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 고대의 교환 형태는 물물 교환의 인위적 관념과는 전혀 의미가 다르며, 그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형태는 모스에 의해 미국 북서부 인디언들의 포틀래치(potlatch)를 통해 확인되었다.”(36)
 
 
*** 『저주의 몫』
 
 
“나는 내가 쓰고 있는 (오늘 출판하게 된) 책에서는 정치 경제적 사실들을 기존의 전문적인 경제학자들과는 다르게 고찰하였고, 나의 관점은 곡물의 판매에 대해 갖는 관심만큼, 인간의 희생, 교회의 건축, 보석의 선물 등에 대해서도 같은 관심을 갖는다. [...] 요컨대 나는 부의 ‘소모’(소비)를 생산과 관련해서 주요한 대상으로 삼는 ‘일반경제’(économie générale)의 원칙을 명백히 하려고 노력해야만 했다. [...] 이 최초의 에세이는 개별적인 원리들을 벗어나서 지상의 에너지와 충동을 고찰하는 각각의 원리 - 지구과학에서 출발해서 사회학, 역사학, 생물학을 거쳐 정치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학의 원리 - 가 제기하는 문제들의 열쇠가 되는 문제, 여태까지 제기되지 않았던 초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심리학, 일반적으로 말하면 철학조차도 경제학의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와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예술, 문학, 시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도 내가 연구하는 운동과 관련이 있다. 다름아닌 과잉 에너지의 운동, 삶의 비등(沸騰, effervescence)이 그것이다. [...] 내가 고찰하는 비등, 지구를 부추기는 비등은 또한 나의 비등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연구 대상은 연구 주체와, 더 정확히 말해서 ‘비등점의 주체’와 구분될 수 없다.”(51-53)
 
 
“생물체와 인간에게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하는 것은 필요가 아니라, 그에 반하는, ‘사치’이다.”(54)
 
 
“총체적으로 산업이 발전하는 가운데 사회 갈등과 세계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러한 모든 것의 원인과 결과는 오직 총체적으로 발전하는 산업 경제의 일반적 전제를 연구할 때만, 한마디로 인간의 총체적 업적을 연구대상으로 삼을 때만 파악이 가능하다.”(60) “우리는 이제 우리를 위협하는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불편한 산업의 성장을 합리적으로 방출시키는 방법을 통해서든지, 에너지의 축적이 결코 불가능한 비생산적 또는 낭비의 방법을 통해서든지 생산에서 벗어나야 한다. [...] 내가 지체 없이 밝히고 싶은 것은, 성장의 발산이 경제 원칙들의 전복-그것들이 근거하고 있는 모럴의 전복-을 강요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 사상과 모럴의 전복은 제한된 경제 관점들로부터 일반적 경제의 관점들로 넘어갈 때만이 가능하다.”(66)
 
 
“원칙적으로 하나의 유기체는 자신의 삶을 유지해주는 활동(기능적인 활동, 동물에게 필요불가결한 근육활동, 먹이찾기 등)에 필요한 양보다도 더 많은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며 그 초과 에너지 덕분에 성장이나 번식도 가능하다. 식물이란 동물에게 초과분이 없었다면 성장도 번식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에너지의 소비를 요구하는 생체화학작용은 과잉의 수익자이자 창조자인데, 이는 생명체의 대원칙이다.”(67)
 
 
2. 성장의 한계. 우선 삶의 가장 일반적인 조건들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중요한 한 가지는 ‘태양 에너지는 풍요와 발전의 원칙’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부의 원천과 본질을 아무런 대가없이 에너지-부-를 베푸는 태양 광선에서 얻는다. 태양은 결코 받는 법이 없이 준다. 천체물리학이 태양의 사치를 측정해내기 전부터 인간들은 그것을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인간들은 곡물이 익는 것도 태양 덕분인 줄 알았고 그래서 그들은 받지 않고 주는 사람을 태양의 광체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지점에서 도덕적 판단의 두 가지 근원을 지적할 필요가 있겠다. 옛날에는 가치를 영예로운 비생산에서 찾았던 반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가치를 생산에 결부한다. 즉 오늘날의 사람들은 에너지의 소모보다는 획득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오늘날의 명예란 유용성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으며 그 결과에 의해 정당화될 뿐이다. 그러나 고대의 감정이 현실적 판단에 의해 - 그리고 그리스도교 정신에 의해 - 흐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고대의 감정은 특히 부르주아 세계에 대항하는 낭만주의의 반발에서 되찾을 수 있으며 그것이 힘을 잃는 것은 오직 고전적인 경제 개념 속에서이다. / 태양 광선은 지표면에 에너지의 과잉을 초래해한다. 그러나 일단 생물체는 태양 에너지를 받아들여서 그 에너지를 할 수 있는 한 남은 공간에 축적한다. 그런 다음 생물체는 그 에너지를 발산하거나 낭비한다. 그러나 에너지의 발산에 앞서 생물체는 성장을 위해 그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한다. 성장을 지속할 수 없을 때만 낭비에 자리를 내준다. 진정한 잉여는 그러므로 개인이나 집단의 성장이 일단 제한을 받을 때 시작된다. / 개인이나 집단은 일차적으로 다른 개인 또는 집단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실제적인 유일한 한계는 다름아닌 지구(정확히 말해서 생물체의 접근이 가능한 공간으로서의 생물권)이다. 개인이나 집단은 다른 개인이나 그룹에 의해 제한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살아있는 자연의 총량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총체적 성장을 제한하는 것은 바로 지구라는 방대한 공간이다.”(69-70)
 
 
“우리는 우리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순간 행위의 유용성utilité을 고찰해야 한다. 유용성은 유지, 성장 또는 이익을 내포한다. 물론 성장에 과잉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제기된 문제는 그 점을 배제한다. 가능한 성장이 멈췄다고 해보자. 그러면 이제 넘치는 에너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넘치는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과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다르다. 완벽하고 순수한 상실, 사혈(死血)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애초부터 성장에 사용될 수 없는 초과 에너지는 파멸될 수박에 없다. 이 피할 수 없는 파멸은 어떤 명목으로도 유용한 것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제는 불유쾌한 파멸보다 바람직한 파멸, 유쾌한 파멸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71)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일반적으로 성장은 없고 단지 모든 형태의 에너지의 사치스러운 낭비만이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생명의 역사는 사실 주로 광적 분출의 결과이다. 그리고 지배적인 사건은 사치의 발전이고 점점 더 비용이 많이 드는 생명 형태들의 생산이다.”(74)
 
 
“성(sexualité)은 애초부터 욕심 사나운 자기만의 성장과는 다르다. 성행위는 종의 차원에서 보면 성장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개체의 차원에서 보면 사치이다. [...] 동물에게 생식행위는 어느 순간 가능성의 극단에 이른 에너지의 원천을 갑작스럽게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기회가 된다. 그 낭비는 종의 성장에 필요한 정도를 훨씬 넘어서며 순간적으로 보면 개인의 실행 능력을 훨씬 상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경우 그 소비는 파괴의 모든 가능한 형태들을 수반하며 재산의 탕진 - 육체의 탕진 - 을 부르고 최종적으로 죽음이라는 비합리적 사치 또는 과잉과 결합한다.”(76)
 
 
* 스페인 작가였던 프란체스코 회 수도사 베르나르디노 데 사하군(Bernardino de Sahagún, 1500-1590)에게 어떤 늙은 아즈텍인이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87).
 
 
“내밀한 세계는 마치 정상과 비정상, 이성과 광기, 명철한 의식과 도취의 관계가 대립하는 것처럼 현실 세계와 대립한다. 정상은 대상에서만 얻을 수 있고, 이성은 대상의 확인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고, 명철성은 대상들에 대한 뚜렷한 인식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 반면 주체의 세계는 어둠이다. 한 없이 의심스럽고 유동적인 이 어둠은 이성이 잠드는 사이를 기다려 괴물들을 잉태한다. 나는 원칙적으로 이렇게 가정한다. 즉 광기가 아니면 현실적 질서에 전혀 종속되지 않는, 오직 현재에만 열중하는 자유로운 주체는 없다고. 주체는 미래가 염려되는 순간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떠나 현실적 질서의 사물들에 종속된다. 주체는 노동에 구속되는 순간 소진되기 때문이다. 내가 ‘미래의 어떤 것’을 전혀 걱정하지 않고 ‘지금 있는 것’만을 걱정한다면 무슨 이유로 비축에 힘쓰겠는가?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일순간에 무질서하게 탕진할 수 있다. 내일만 걱정하지 않는다면 그 무익한 소모는 나를 즐겁게 한다. 제한 없는 소모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내밀한 부분을 드러내 보여준다. 그래서 소모는 고립된 존재들을 소통하게 해주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 사물이 내밀한 질서로 회귀하는 것을 보장해주는 것은 소모이다. 소모의 세계라고 폭력에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폭력을 제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희생제의에서 문제는, 여전히 파괴를 끌어들이되 제물 이외의 나머지를 치명적인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희생 제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은 위험에 빠져있다. 그러나 일정한 제의의 형태는 통상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 희생 제의는 공동의 작업 체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내밀성을 되찾게 해주는 광적 행위이다. 폭력은 희생 제의의 원칙이다. 그러나 작업은 폭력을 시간과 장소에 따라 제한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희생 제의의 폭력은 여전히 공공의 사물들을 보존하거나 통합하려는 우려에 대해 종속적이다. 개인들은 광란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짓지 못하게 하는 그 광란은 그들을 다시 속세적 시간의 작업으로 안내하는 기능을 한다. 물론 그것은 부의 무한한 발전을 목적으로 한 행위라거나 과잉의 힘을 흡수하는 이익 추구행위라고 할 수 없다. 작업은 유지만을 염두에 둔다. 작업은 축제(풍성한 작업은 축제를 부르며 축제는 다시 풍성한 작업의 기원이 된다)의 한계를 사전에 결정짓는다. 그러나 파멸을 모면하는 것은 공동체일 뿐이다. 제물은 여전히 폭력에 내맡겨진다.”(100-101)
 
 
“8. 저주받은 그리고 신성한 제물. 제물은 부의 일부로서 잉여의 부분이다. 그리고 제물은 아무런 이익 없이 소모되기 위하여, 즉 영원히 파괴되기 위하여 유용성을 벗어나는 것이다. 제물로 뽑힌 순간 제물은 폭력적인 소모에 약속된 저주의 몫이다. 그러나 저주는 제물을 사물의 질서에서 끌어내 그 빛이 살아있는 존재들의 내밀성, 고뇌, 심연을 비추게 한다. / 제물을 둘러싸고 우려가 확산되는데, 그 우려는 가히 놀라운 것이다. 사물이기 때문에 제물을 사물의 질서로부터 끌어내려면 파괴를 통해 제물의 유용성, 사물성을 벗겨낼 수 있어야 한다. 제물이 바쳐지는 순간 봉헌과 죽음은 분리되며, 제물은 제의 집행자의 소모적 제의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 현실적 [사물의] 질서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제물뿐이다. 제물만이 축제의 극단적 충동에 온통 자신을 맡기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제의 집행자는 신적 특성을 띠더라도 주저하면서 그럴 뿐이다. 그의 내부에 무겁게 남은 미래가 그를 짓누르는 것이다. [...] 제의에서는 고뇌와 광란이 뒤섞인다. 광란이 고뇌보다 더 강한데, 조건이 있다. 제의의 결과가 바깥의 죄에, 즉 밖으로 돌려져야 한다. 그리고 제의 집행자는 자신의 재산이 될 수도 있었을 제물을 거부해야 한다. / 그러나 엄격하지 않다고 해서 의식의 의미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존중받는 것은 가치 경계를 넘어서는 과잉, 소모이며 그것만이 신에 합당한 대접을 받았다. 인간은 이러한 소모를 대가로 타락에서 벗어났고, 또한 현실적 질서의 냉혹한 타산과 인색함이 인간 내부에 끌어들인 사물의 무게를 걷어낼 수 있었다.”(101-103)


이슬람 사회, 티벳 사회.
 
 
“경제의 일반법칙. 한 사회는 총체적으로 보면 항상 생존에 필요한 이상으로 생산하므로, 사회는 잉여를 갖고 있다. 어떤 사회가 잉여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형태가 결정된다. 잉여는 사회적 동요의 원인이고, 구조의 변화, 모든 역사적 변화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잉여에 대한 여러 가지 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공통적인 것은 성장이다. 그리고 성장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사실은 어떤 성장이든지 일정한 성장 뒤에는 한계에 부딪힌다는 사실이다.”(149)
 
 
산업사회. 부르주아의 세계. 소련의 산업화. 마셜 플랜.
 
 
10. 부의 궁극적 사용에 대한 의식과 자아의식. [...] 자아의식은 본질적으로 충실한 내밀성의 확보이다. 그러나 내밀성의 확보는 속임수이다. 의생제의는 신성한 물건을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신성한 물건은 내밀성을 외재화한다. 말하자면 신성한 물건은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나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밀성의 차원에서 보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 /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있는 그대로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에너지의 과잉 성장에 맡겨져 있다. 대개 인간들은 생존의 목적이나 존재 이유에 만족하지 못하고 성장을 추구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성장에 매몰된 나머지 존재는 때로 자율성을 잃고 만다. 존재는 이따금 자원의 증가 때문에 미래에 있을 어떤 것에 종속되기도 한다. 사실 성장은 자원이 소비되는 순간과 관련시켜볼 때만 확인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확인하기 어렵다. 의식은 그런 순간과 대립적이기까지 하다. 의식은 순전한 소비와는 달리 무가 아닌 어떤 것, 무엇인가를 획득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 순간과 대립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자아의식이란 성장(어떤 것의 획득)이 소비로 끝나는 순간의 결정적인 의미에 대한 의식이며, 다른 아무것도 더 이상 의식하지 않는 의식이다. / 명철성이 우위의 자리를 차지해서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완성되면 사회적 실존이 제자리를 찾기에 이를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제자리(제자리를 찾는 일은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마지막 일이 될 것이다)란 어떤 의미에서 동물로부터 인간으로의 변화와 비교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모든 일은 최종 목적이 이미 주어진 상태가 된다. 최종적으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고, 주어진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트루먼이 그랬듯이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 채 은밀하고도 궁극적인 최종 목적에 맞는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 하지만 그것은 분명 허망한 것이다. 가슴을 활짝 열고 대화를 나누면 우리의 정신은 낡은 목적론 대신 침묵만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232-234)
 
 
 

2014. 5. 12.

lucia 심규선




연극이 끝나기 전에
 
 





꽃처럼 한 철만 사랑해 줄 건가요?
 
 
 
 
 
 
 
 
오늘
 
 
  
 
 


martin l. gore - counterfeit 2


 
 
 
 
 
 
 
 
 
 
 
in my time of dying
 
 

 
 
 
 
live

 

 
 
 
 
 
 
 
 
 
das lied vom einsamen mäd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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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ver let me down again (remastered video)
 

 
 
 
 
 
 Never let me down again - One night in Paris
 
 
 
 
 
 
 

 
 
 
 
 
 

2014. 5. 5.

잠언 07





Patterns in a Chromatic Field/Untitled Composition For Cello And Piano
for cello and piano (1981)






1. 당신은 무엇을 '모르기로' 결정했는가?



2. 주체화 - 우리는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알렉산더의 물음에 '햇빛을 가리니 비켜달라'고 요구한 디오게네스를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디오게네스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디오게네스이다. 디오게네스가 '가난한 이들의 세금을 면제해 달라거나, 학교를 세워달라'고 했다면 이 또한 커다란 칭송을 받았겠지만, 이 경우 우리는 오늘 우리가 아는 그 디오게네스를 모를 것이다. 이처럼 '나'란 바로 지금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의 축적에 의해 이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 안셀무스와 홉스 데카르트의 이른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절대적 진리'는 우연히도 그들이 읽은 <성서>와 꼭 일치한다. 나의 생각은 우연히도 대한민국의 헌법, 상식과 일치한다. 그러나 이것이 우연일까? 이는 '내가 그 안에서 태어나 내가 그것을 '당연한 것', '진리'로 밖에는 인식할 수 없게 나를 조건화시킨 것'과 나의 인식이 사실은 '쌍둥이'임을 말해준다.


이처럼, 한 인간이 말하는 '인간 본연의, 불변의 진리'란 바로 이렇게 그것을 인식하는 주체와 동시적 상관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쌍둥이에 다름 아닌 이 인식은 그녀에게 '당연하고도 영원한 불변의 진리'로서 인식된다.


니체의 말대로, 인간은 '이미 자신이 세계에 집어넣은 것'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4. 가장 강력한 컴플렉스 중의 하나는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면 혹은 그런 인간이 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불안에서 기인하는 컴플렉스, 곧 '폐인 컴플렉스'이다.



5. 망쳐버리면 더 이상 망쳐버릴까봐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6. 당신이 그렇게 불안해 하는 이유는 당신의 어머니(아버지)가 늘 그렇게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7. 패닉이 선생이다 - 패닉이 오는 것을 차라리 기뻐해야 한다. "기분이 더러워질 때" 학습된 감정의 자동적 메커니즘에 대책없이 빠지지 말고 내 마음과 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 도망가지 말고 - 가령 친구를 부르거나 하지 말고, 차라리 혼자 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 냉정하고도 냉철한 눈으로 자기 마음 속에 몸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해 보아야 한다.



8.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 어떤 면에서는, 인생 자체가 이런 일의 연속이 아닐까? 바로 여기에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와 업보의 굴레를 끊고 해탈한다'는 말의 의미가 있다. 인생이란 내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의 죄과를 갚으며 사는 것이다. 내 성격의 결함은 내 부모 성격의 결함이 빚은 것이다, 내 부모 성격의 결함은 그 부모 성격의 결함이 ... 이런 식으로 무한 소급된다. 해탈이란, 내가 받은 업보와 악연을 나의 대(代)에서 끊겠다는 서원이자, 그러한 능력이다.



9. 가령 푸코의 철학을 공부하고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각자가 판단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요? 각자의 판단 밖에 없다면 상대주의에 빠지는 게 아닐까요?" 내게는 그들이 이렇게 묻는 것처럼 보인다. "제가 지금 하는 것처럼, 각자 스스로 판단해서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요? 뭔가 누가 제 밖에서 타율적으로 정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이런 질문과도 같다. "시가 너무 많고 다양하면 안 되는 것 아닐까요? 시의 본질은 이런 건데, 이런 시의 정의와는 다른 저런 시를 쓰면  안 되는 게 아닐까요?"



궁극적으로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의 근본적 문제는 그녀가 '논점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그들이 '각자 스스로 판단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은 자신이 '그 각자'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그녀가 '스스로 철학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철학하는 것을 그저 밖에서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는 철학함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 곧 이 경우 논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10.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경우에도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가가 상대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어 상대를 위해 유쾌한 작은 선행을 행한 경우가 있다. 그런데, 호의를 받은 사람이 호의를 베푼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사람들은 '상대'의 호의보다 '내'가 상대의 호의를 받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사람들, 상대의 선행보다 나의 미안함을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다. 달리 말해, 이들은 결국 '자기 생각'밖에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11. 인간에 대한 예의, 상대에 대한 존중, 인격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 중 하나는 그녀가 '함부로 묻는 인간'인가 아닌가를 살펴보는 일이다.



12. 나라면 니체의 사유를 이렇게 정리해보겠다. "네가 스스로 생각해라! 그리하여, 천박함에서 벗어나라!"



13. 가령, 공부를 못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공부를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게을러서 혹은 결단력이 부족해서 공부를 못하는 줄 안다. 뚱뚱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뚱뚱한 모든 사람들이 게을러서 자기 관리를 못해서 그렇게 사는 사람들인 줄 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한도의 바깥을 상상하기 어렵다.



14. 서양의 책을 읽다가 그리스도교에 입각한 이야기가 나오면 '짜증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타자화해서 내 바깥에 놓고 '어리석은 이들'이라는 식으로 치부하는 자세로는 배우지 못한다(물론 사람은 배우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며, 바로 그런 한도 내에서 안 배워도 된다). 나는 공부와 독서의 그리고 경청의 전략으로서, 어떤 면에서는 바로 내가 오늘의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그리스도교는 당시의 그들이 벗어날 수 없었던 동시대의 당연을 구성하는 틀이었으며, 무엇보다도 보편을 사유하는 당대의 틀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라는 틀을 통해 자신들의 보편, 당연, 자연을 사유했던 것이다. 나 역시 인간인 한 그러한 틀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러한 한에 있어, 내가 오늘의 그리스도인이다.



15. 바울에 반대하여 - 유럽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데 1500년이 걸렸다. 적어도 데카르트부터 세어봐도, 유럽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거의 400년이 걸렸다. 예수와 그의 사망이 아무리 위대하고 중요하고 큰 일이라 해도 그것으로 인간 삶의 '모든 것'을 뒤덮으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죽은 자들, 특히 억울하게 젊어서 죄없이 죽은 자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예수가 된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화 해서는 안 된다. 궁극적으로, 예수의 죽음은 이 세상 모든 인간의 죽음이 그렇듯 그저 하나의 죽음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의 삶을 그리스도라는 이름 아래 절대화하는 것은 다른 모든 인간의 삶을, 보다 정확히는 삶에 대한 다른 모든 방식의 해석을 '그른 것', '어리석은 것', '헛된 것', 더 나아가 '악한 것'으로 설정하는  일에 대름 아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란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간에 대한 이해의 유일한 지평으로 설정하는 권력과 지배의 보편화 양상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한계가 없는 보편, 자신의 바깥을 인정하지 않는 인식이란, 그대로 폭력이다.



16. '센스가 없다'는 것은 죄가 아니나, 때로는 사람들에게 그 이상의 고통을 준다.



17. 자기 인식의 바깥, 한도, 제한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은 - 자신의 의도와도 무관하게 - 무서운 인간, 함부로 말하는 자, 천박하고도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이 된다. 이처럼 도덕적으로 악한 인간이란 실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능력이 없는 자, 곧 인식하지 못하는 자이다.



18. 권력이란 무엇인가? - 하나의 상황 혹은 사태에 대하여 두 가지 이상의 해석과 해결방안이 존재할 때, 여하한 정당화의 논리를 동원하여 자신의 관점, 가치관에 입각한 가치 판단과 결정, 선택의 옳음을 강변하고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현실적 (수행) 능력.



19. 모든 (자기) 검열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일 수는 없다. 모든 (자기) 검열이 아니라, 비합리적 (자기) 검열을 제거해야 한다.



20. 부르디외의 말대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본질주의자들이다. 독일인은, 한국인은, 일본인은, 중국인은, 미국인은, 혹은, 너는, 나는, 당신은, 그는, 그녀는 ... 그들은 늘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본질주의자들은 이른바 한 '개인' 혹은 '집단'이 - 원래부터, 그냥 그렇게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내외부적 상황이 낳은 복합적 구성물(social construct)임을 알지 못한다.



21. 최근 몇 권의 책을 읽으며 - 2014년 대한민국의 문학비평이 아직 이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김현의 문학비평을 읽던 1980년대 후반에 비해 전반적으로 오히려 퇴보했다는 것은, 사실, 충격적인 일이다.



22. "우리는 성장해서도 항상 슬픔의 감정에 사로잡히게 된다. 다른 부모를 만나더라면 충분히 칭찬받고도 남을 일을 했는데도 자신의 부모는 매정하게 그것을 폄하하곤 했다면 말이다." - 강신주, <감정수업>(36쪽)



23. 데리다의 두 가지 근본적 문제 - 오늘 마르크스주의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사유(<마르크스의 유령들>), 결국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유(<다른 곶>).



24. 막스 베버가 말하는 중립적 혹은 긍적적 측면의 합리화 과정와 프로이트가 말하는 부정적 의미로서의 합리화 과정은 니체에 의해 이미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이해되어 있다. 단, 이때 우리는 층위(논리계형)를 구분해볼 수 있다. 정리하면, 주어진 보편성 곧 합리성(게임)의 한도 내에서는, 옳고 그름이 분명히 구분된다. 그러나 이 합리성(보편성)과 저 합리성(보편성)이 충돌하는 경우 이를 해결해줄 보다 상위의 보편적 합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합리성이 합리성 자체이며, 자신의 보편성이 보편성 자체라고 진심으로 믿고 또 그렇게 말하는 이의 경우, 이는 무지의 양상을 띠는(반드시 권력욕 혹은 악의 때문에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으므로) 권력 행위가 된다.



25. 21세기 문화의 영웅, 존 존(john zorn)과 그의 의로운 사람들(義人, tzadik)








 
 
 



2014.02.-2014.05.






김용옥 -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

 


[세월호 참사 특별 기고/동영상]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 - 더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정의로운 발언을 서슴지 말라!
 
 

2014. 5. 3.

동성애 + 군 인권


기사 관련 사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83972&PAGE_CD=N0004&CMPT_CD=E0019M

임종국 - 친일문학론





http://cafe.daum.net/WorldcupLove/Knj/1662134?q=D_PxQwbuIk2a8XK146gSJVxw00&

http://www.aladin.co.kr/search/wsearchresult.aspx?SearchTarget=All&SearchWord=%C0%D3%C1%BE%B1%B9&x=0&y=0



광기의 역사 - 광기와 정상의 정치사

 
 
 
 
 
* 『광기의 역사』
 
 
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Age Classique, Collection "Civilisations et Mentalités", Plon, 1961. 1961년 5월에 발표된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아래의 다양한 판본ㆍ번역본이 있다.
 
Histoire de la Folie, 10/18 Series, Union Générale d'Éditions, 1964. 이는 1964년 푸코 자신에 의해 축약된 형태로 재편집되고 제목도 ‘광기의 역사’로 단순화되어 파리에서 출간된 판본이다. 이 축약본은 원본의 1․2부 구분을 없애고 ‘서론’과 ‘결론’을 제외한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축약본은 원본의 1부 3, 4장, 2부 1장, 3부 3장이 생략되어 있고, 2부 2장, 3부 5장이 축약되어 있다. 한편 푸코는 이 축약본의 4장 등에 약간의 수정과 보충을 가했다.
 
Histoire de la Folie à l'Age Classique, "Collection TEL", Gallimard, 1972. 앞의 책 ②는 다시 원본 그대로 갈리마르 출판사의 ‘콜렉시옹 TEL’의 일부로서 재출간되었나, 다만 제명이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로 바뀌었고, 1972년의 이 ‘갈리마르판’은 1964년의 ②와는 다른 「서문」(préface)과 간략한 두 편의 「부록」이 추가되었다. 두 부록은 다음이다. "La folie, l'absence d'oeuvre"(La Table Ronde, mai, 1964) et "Mon corps, ce papier, ce feu"(Paideia, septembre, 1971).
 
④ 이후 이 판은 1978년 같은 제목으로 역시 갈리마르의 “콜렉시옹 TEL”에서 출간되었으나, 위 두 「부록」이 삭제되었다.
 
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 trans. Richard Howard, introduction by José Barchilon, Random House, 1965, Tavistock, 1967 and Social Science Paperback, 1971. 이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원본에 약간의 보충을 가한 1964년 축약판 ②를 영역한 책이다.
 
⑥ 미셸 푸코, 박봉희 옮김, 「대 감호(大 監護)」, 김성곤 편, 󰡔탈구조주의의 理解: 데리다․푸코․사이드의 文學理論󰡕, 307-323쪽, 민음사, 1988. 이는 위 영어 축약본 ⑤의 2장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⑦ 미셸 푸꼬, 󰡔광기의 역사󰡕, 김부용 옮김, 인간사랑, 1991. 이는 역시 같은 영어 축약본 ⑤를 완역한 것이다.
 
⑧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이규현 옮김, 오생근 감수, 나남신서 900, 나남출판, 2003. 이는 정본으로 인정되는 불어본 ③을 완역한 것이다.
 
 
 
 
 
 
* 󰡔광기의 역사 30년 후: 푸코 󰡔광기의 역사󰡕 출간 30주년 기념 논문집󰡕
 
 
Jacques Derrida et al., Penser la Folie, Editions Galilée, 1992; 자크 데리다 外, 󰡔광기의 역사 30년 후: 푸코 󰡔광기의 역사󰡕 출간 30주년 기념 논문집󰡕, 박정자 옮김, 시각과 언어, 1997.
 
1991년 11월 23일 ‘광기의 역사 30년 후’(Histoire de la folie trente ans après)라는 제목으로 ‘정신의학 및 정신분석학 역사학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들의 모음집.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은 「서문」과 「개회사」를 포함하여 모두 8편이다.
 
① 엘리자베드 루디네스코, 「서문: 󰡔광기의 역사󰡕(1961-1986) 읽기」, ② 조르주 캉길렘, 「개회사」, ③ 자크 포스텔․프랑수아 빙, 「필립 피넬과 ‘수위들’」, ④ 아를레트 파르주, 「미셸 푸코와 배제의 고문서들」, ⑤ 클로드 케텔, 「푸코를 비판해야 할까?」, ⑥ 아고스티노 피렐라, 「이탈리아에서의 광기의 역사 또는 정신의학 비판」, ⑦ 르네 마르조, 「이성의 위기, 광기의 위기 또는 푸코의 ‘광기’」, ⑧ 자크 데리다, 「‘프로이트에게 공정하기’: 정신분석학 시대의 광기의 역사」
 
 
 
 
 
 
 
 
 
* 『정신병과 심리학』
Maladie mentale et la psychologie, P.U.F., 1954/1962. 푸코는 1954년 자신의 최초의 저술인 『정신병과 인격』을 출간한다. Malaldie mentale et personnalité, P.U.F., 1954. 이 책은 1950년대 초반 푸코가 이미 공산당을 탈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기본적인 방법론의 측면에서 현상학과 마르크스주의에 기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푸코는 1961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인 『광기의 역사』를 출간한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2년 1954년의 『정신병과 인격』, 특히 제2부를 완전히 새롭게 써서 『정신병과 심리학』이라는 제명 아래 다시금 출판된 것이 사실상의 ‘개정판’인 ①이나, 책에는 그러한 사실이 명기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상의’ 개정판은 ‘역사적 변형을 갖지 않는’ 실존 혹은 인격의 개념을 완전히 포기하고 18세기 말 19세기 초 이래 서구의 ‘인간’ 및 ‘정신병’의 관념을 구성하며 스스로를 구성시킨 ‘심리학’의 역사 혹은 형성 조건을 분석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한편 1962년에 발간된 『정신병과 심리학』의 제2부는 1961년에 나온 『광기의 역사』의 ‘완벽한 요약’으로 간주된다.
 
 
Mental illness and psychology, foreword by Hubert Dreyfus, trans. Alan Sheridan,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6/1987. 이는 1962년의 ①을 영역한 것으로 1976년 판은 하퍼 & 로우 출판사(Harper & Row Publishers)에서 나왔고, 다시 1987년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부에서 푸코의 전문가로 알려진 휴버트 드레퓌스(Hubert Dreyfus) 교수의 「캘리포니아 판에 붙이는 서문」(Foreword to the California Edition)이 덧붙여져 페이퍼백으로 재출간된다. 드레퓌스의 이 「서문」은 1954년 판 및 1962년 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변화를 섬세히 지적하고 있다.
 
 
③ 『정신병과 심리학』, 박혜영 옮김, 문학동네, 2002. 이는 1962년 불어판 ①의 번역이며 ― ①과 마찬가지로 ― 개정 여부에 대한 언급이 없다.
 
 
 
 
 
 
 
* 『광기의 역사』, 1961년의 「서문」(DEQ I, 187-195)
 
“파스칼: ‘인간은 필연적으로 미친 존재이며 따라서 그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조차도 또 다른 방식의 미침이리라.’ 그리고 또 다른 텍스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일기』에 나오는 말: ‘우리가 자신의 양식을 확신하는 것은 우리의 이웃을 감금함으로써가 아니다.”
 
“[광기와 이성 사이에는] 공통의 언어가 없다, 혹은 더 이상 없다. 18세기 말에 이루어진 광기(folie)의 정신병(maladie mentale)으로서의 구성은 끊어진 대화를 확증하는 사건, 이미 완료된 것으로서의 분리를 보여주는 사건, 그 안에서 광기와 이성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고정된 구문도 없이, 말을 더듬는, 불완전한 이 모든 말들을 망각 속으로 밀어 넣은 사건이다. 광기에 대한 이성의 독백에 불과한 정신의학의 언어는 이러한 침묵 위에서만 성립될 수 있었다. / 나는 이 언어의 역사가 아니라, 차라리 이 침묵의 고고학을 기술하고자 했다.”
 
“이성-광기의 관계는 서구 문화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차원을 구성한다. 이 관계는 제롬 보쉬 훨씬 이전에 확립되었으며, 니체와 아르토 훨씬 이후에도 이어질 것이다. [...] 물론, 이는 한 문화의 정체성(identité)보다는 한계(limites)가 문제시되는 하나의 지역이 관건이 된다. / 우리는 한계의 역사를 쓰고자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 [...] / 이러한 서구 세계의 한계-경험(expériences-limites)의 한 가운데에서, 물론, [니체적 의미의] 비극적인 경험의 문제가 솟아오른다. [...] / 서구적 라티오(ratio)의 보편성 안에는, ‘오리엔트’라는 분할이 있다. [...] 그렇다면 가장 일반적인 동시에 가장 구체적인 형식의 광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작품의 부재(l'absence d'œuvre)이다.”
 
 
“광기의 역사에서 두 가지 사건이 확연한 고유성으로 이러한 변형[우리가 정신의학을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의 이유를 알려준다. 두 사건은 1657년 로피탈 제네랄의 설립과 가난한 자들의 ‘대감금’(grand renfermement), 1794년 비세트르(Bicêtre)[정신병원]의 쇠사슬에 묶인 자[정신병환자]들의 해방이다. 이 고유하고도 대칭적인 두 사건 사이에 의학사가들을 당황케 한 애매한 어떤 일이 일어났다. 어떤 이들에 따르면, 이는 절대주의 체제의 맹목적인 억압이며, 따른 이들에 따르면, 과학과 인류애에 기인한 광기에 대한 실증적 진리의 점진적 발견이다. [...] 하나의 구조가 설정되었다. 그리고 광기에 대한 중세적 휴머니스트적 경험으로부터 광기를 정신병 안에 감금하는 우리의 경험으로의 이행을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이 구조이다. [...] 광기의 고전주의적 경험을 평가하려는 시도의 한 가운데에서 우리는 변함없는 하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된다. 낮과 어두움, 그림자와 빛, 꿈과 깨어남, 태양의 진실과 밤의 힘 사이의 명쾌한 분할이 그것이다. 이는 시간을 오직 한계의 무한한 회귀로서만 받아들이는 기초적 분할이다. [...] 이제 ‘광기’는 ‘밤’이기를 그치고, 인간을 자신의 진실을 가두어 인식 안에 풀어놓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의식 안으로 사라져가는 그림자가 되어야 했다. / 광기에 대한 이러한 재구축을 통해 심리학의 가능조건에 관한 하나의 역사가 저절로 쓰여졌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근대
연대
16세기 초~
17세기 중반~
18세기 말~
연도
-
1657년
1794년
사건
사회적 축출
‘대감금’
광인의 ‘해방’
기관
‘바보들의 배’
Daß Narrenschyff
로피탈 제네랄
l'Hôpital général
정신병원
Mental hospital
명칭
folia
délire
maladie mentale
인식의 틀
신적인 재능
행정관리[police, 內治]
정신의학
이미지
여행자
사회 부적응자
환자, 위험한 인물
결과
방임, 찬양
도덕적 단죄,
관리와 통제
의학화, 비정상화
 
* “광기는 야만 상태에서 발견되지 않습니다. 광기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만 존재하며, 자신을 감금하거나 추방하는 혐오의 형식, 자신을 분리시키는 감수성의 형식 바깥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 결국 모든 문화는 자신에 합당한 광기를 갖습니다.”(DEQ I, 197)
 
 
 
 
 
 
*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배』(1494), 노성두 옮김, 안티쿠스, 2006.
 
 
 
 
 
 
 
* 『광기의 역사』(2003, 나남)
 
제1부
 
제1장. ‘광인들의 배’
 
“중세 말에 나병이 서양세계에서 사라진다. [...] 15세기부터는 어디에서나 나환자 격리 시설이 텅텅 비게 된다.”(41-42) “나병과 교대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성병이었다. 15세기 말에 성병은 마치 상속권에 의해서인 듯 일시에 나병의 뒤를 잇는다. [...] 이 병은 나병과는 달리 일찍부터 의학의 대상이 되었다.”(48-49) “그런데 기이한 일은 17세기에 이루어진 바와 같은 수용의 영향 아래, 성병이 의학의 맥락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나가고 광기와 더불어 도덕적 배제의 공간에 통합된 것이다. 사실상 성병에서가 아니라,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의학으로 편입될 매우 복잡한 현상에서 나병의 진정한 유산을 찾아보아야 한다. / 그 현상은 바로 광기이다.”(50) “[아르토에 따르면, 합리성에 의한 광기의 추방 이래] 우리[서구] 문화의 중심인 비극 의식이 사라졌다. [...] 합리적 사유를 이끌어 광기를 정신병으로 분석하게 하는 올바른 엄정성이란 수직적 차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러면 합리적 사유의 다양한 형식 아래 이 비극적 경험이 더 완벽하게, 또한 교묘하게 가려져 있다는 것, 그렇지만 이 비극적 경험이 합리적 사유에 의해 완전히 축소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속박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폭발이 일어난다. 니체 이후에 우리는 이 폭발을 목격하고 있다.”(86)
 
2장. 대감호
 
“[‘대감호’ 이래] 사람들은 빈곤을 신성화하는 종교적 경험에서 빈곤을 정죄하는 도덕적 개념으로 슬그머니 넘어간다.”(135) “모든 수용자는 이러한 윤리적 가치 평가의 대상이 됨으로써 실로 인식이나 연민의 대상이기 이전에 ‘도덕적 주체’로서 취급된다.”(139) “광기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식이 나타났다. 이 이해방식은 더 이상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시회적인 것이다.”(141) “17세기 이전에도 광인이 ‘감금’되는 일은 있었지만, 광인과의 연관성이 인정되는 집단 전체에 광인을 섞어 넣음으로써 광인을 ‘수용’하기 시작하는 때는 17세기이다.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기에 대한 이해 방식은 상상계의 초월적 존재가 광기를 통해 드러난다는 생각과 관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고전주의 시대부터 역사상 처음으로 광기는 무위도식에 대한 윤리적 단죄를 통해 인식되고 또한 노동 공동체로 확고해진 사회의 내재적 존재로 인식된다. 이 노동 공동체는 윤리적 분할의 권한을 획득하여, 사회에 불필요한 모든 형태를 마치 다른 세계에 속하는 것인 양 배척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다른 세계’에서 광기는 현재 우리가 광기에 대해 인정하는 그 지위를 갖게 될 것이다.”(157) “행정결정에 의해 도덕이 맹위를 떨치는 속박의 장소가 이처럼 생겨난 것은 중요한 현상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도덕적 의무와 민법 사이의 놀라운 종합이 이루어지는 도덕성의 기관이 설립된다. 이제는 국가의 질서가 감성의 무질서를 용납하지 않는다. [...] 도덕률은 사회의 종합적 차원에서 시행될 수 있다. 도덕이 상업이나 경제처럼 관리된다. [...] 고전주의 시대에 수용시설은 완벽한 국가의 건설을 위한 세속이 종교적 등가물로 이해되었던 그러한 ‘내치’(內治, police) 개념이 가장 치밀하게 형상화된 상징이다.”(159-163)
 
제3장. 교정적 세계
 
“광기에 대한 형벌과 방탕에 대한 처벌 사이의 연관성은 유럽인의 의식에 남아있는 낡은 고대성의 흔적이 아니라 이와 반대로 17세기의 그것의 거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다는 점에서 근대 세계의 문턱에서 윤곽이 분명해진 현상이다. 고전주의 시대의 도덕이라는 상상적 지형 속에서 수용의 공간이 창안됨으로써 육신에 대한 죄와 이성에 대한 과오에 공통된 본향(本鄕) 및 속죄의 장소가 고전주의 시대에 마련된 것이다. 광기와 죄는 인접하기 시작하고, 오늘날 정신병자가 운명으로 느끼고 의사가 본래적 진실로 파악하는 죄의식과 비이성[착란]의 연결관계는 아마 이 인접부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맺어졌을 것이다. 17세기 동안 하나에서 열까지 완전히 만들어진 이 인공의 공간에서 모호한 연결고리들이 형성되었는데, 그것들은 아주 최근의 합리주의 시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형성된 것인데도, 100여 년 동안의 이른바 ‘실증’ 정신의학에 의해 결코 단절되지 않았다. / 징벌과 치료의 이와 같은 혼동, 처벌 행위와 치료 행위의 이러한 준(準) 동일성이 합리주의에 의해 가능해졌다는 것은 정말로 기이한 일이다. [...] 이런 식으로 억압은 육체의 치유와 영혼의 정화에서 이중적 실효성을 거둔다. 수용은 징벌과 치료의 병행이라는 그 유명한 도덕적 치유책을 이런 식으로 가능하게 만든다.”(176-177)
 
“기묘한 도덕혁명. 고전주의 시대는 비이성을 오랫동안 서로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던 경험들의 공통분모로서 발견했다. 고전주의 시대는 광기를 중심으로 일종의 유죄성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하면서 일단의 단죄될 행동 모두를 하나의 범주로 묶었다. [...] 광기에 대한 우리의 과학 및 의학 지식은 은연중에 그에 앞서는 비이성에 대한 윤리적 경험의 성립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185) “사실상 예전에 성스러운 것이었던 것을 도덕의 영역에 편입시키는 활동을 토대로 하여 인간과학을 구축한 것은 아마도 지난 3세기 서양문화의 변화에 고유한 현상일 것이다.”(189) “금기가 신경증으로 변환되는 과정의 중간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도덕적 책임, 곧 윤리적 관점에서 행해지는 죄의식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192) “객관성은 비이성의 고향, 그러나 징벌 같은 것이 되었다.”(204)
 
 
제4장. 광기의 경험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정신병리학까지도) ‘자연인’ 혹은 모든 질병 경험 이전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고 평가된다. 사실 이러한 정상인이라는 개념은 창안물이고, 정상인을 위치시켜야 하는 곳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인’을 사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며, 따라서 광인이 광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 광인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 상태의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 광인이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 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관한 ‘실증’ 과학, 그리고 광인을 인간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 인도주의적 진단은 일단 이러한 종합이 이룩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이 종합은 이를테면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정신병리학 전체의 구체적인 ‘아 프리오리’를 구성한다.”(244)
 
제5장. 정신이상자들
 
“고전주의 시대에 이성은 윤리의 공간에서 탄생한다.”(259) “광기가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비이성과 관련해서일 뿐이다. 비이성의 광기의 매체이다. 오히려 비이성이 광기의 가능공간을 규정한다고 말하자.”(284) “고전주의의 실천과 구체적 의식(意識)에는 비이성으로부터 거리 전체를 순식간에 가로지르는 특이한 광기의 경험이 있는데, 그것은 윤리적 선택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동시에 동물적 광포함 쪽으로 온통 기울어져 있다”(287)
 
제2부
 
 
서론
 
 
제1장. 종(種)들의 정원에서의 광인
 
“18세기 분류학자들의 커다란 관심은 신화의 폭과 끈기를 갖는 지속적 은유에 의해 고조되는데, 그것의 질병의 무질서에서 식물의 질서로의 전이(轉移)이다. [...] 식물학자들의 영역은 병리학의 세계 전체를 조직화하게 되고, 질병들은 이성 자체의 질서 및 공간을 따라 분류된다. 식물학적인 만큼이나 병리학적인 종들의 정원을 마련할 계획은 예지력 있는 신의 지혜에 속하는 것이다.”(326-327)
 
 
제2장. 정신착란의 선험성
 
“17세기와 18세기에 말해지는 광기는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질환’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함께’ 문제되는 어떤 것이다.”(360-361) “광기는 단순히 영혼과 육체의 결합에 의해 주어진 가능성의 하나가 아닐뿐더러, 무조건 정념의 결과들 가운데 하나인 것도 아니다. 광기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성에 근거를 두면서도 이 통일성으로부터 돌아서고 이 통일성을 다시 문제시하며, 정념에 의해 가능하게 된 것이면서도 정념 자체를 가능하게 한 것을 자체의 고유한 움직임에 의해 위태롭게 만든다.”(382) “고전주의적 의미에서의 광기는 정신이나 육체의 결정적 변화보다는 오히려 손상된 육체, 기묘한 행동과 말 아래 실재하는 정신착란의 담론(un discours délirant)을 가리킨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바로 정신착란(délire)이다. ‘이 낱말은 ‘리라’(lira), 곧 밭고랑에서 파생했고, 따라서 ‘델리로’(deliro)는 문자 그대로 밭고랑에서, 이성의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394) “정확히 진실(vérité)과 빛(clarté)이 근본적 관계를 맺고서 고전주의적 이성을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정신착란(délire)과 현혹(éblouissement)은 광기의 본질을 이루는 관계 안에 있는 것이다. [...] 비이성과 이성의 관계는 현혹과 눈부신 빛 자체의 관계와 동일하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다. 우리는 고전주의 시대의 문화 전체를 북돋우는 중요한 우주론의 중심에 이른 셈이다.”(404-405)
 
 
제3장. 광기의 형상들
 
“17세기와 18세기에 이미지들의 작용에서 영향을 받아 구성된 것은 개념 체계나 심지어 증후 전체가 아니라 인식의 구조이다.”(453)
 
제4장. 의사와 환자
 
“광인에게서 육체의 치료행위와 영혼의 치료행위가 분리된 것은 오로지 징계(懲戒)의 실천에 의해서였을 뿐이다. 순수한 심리적 의학은 광기가 죄의식의 영역으로 양도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523) 소바주, “영혼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523) 이미 의사는 더 이상 일깨우는 사람이 아니라 모랄리스트로서 행동하게 된 것이다. [...] 그러나 오래지 않아 피넬이 등장하는데, 그가 보기에 치유를 위해 의미가 있는 것은 더 이상 진실에 대한 자각이 아니라 단지 복종과 맹목적 굴복뿐이다. “많은 경우에 조광증(躁狂症)의 치유를 위한 기본 원칙은 우선 에너지의 억제를 강구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 온정을 베푸는 것이다.”(527) [이제] “광기는 전적으로 병리학의 영역에 놓이게 된다. 이는 [...] 고전주의 시대의 비이성의 경험이 광기에 대한 엄밀하게 도덕적인 인식으로 축소되는 현상인데, 이 도덕적 인식은 나중에 19세기가 과학적이고 실증적이며 실험적인 것이라고 내세우게 되는 모든 이해방식으로 은밀하게 중핵으로 구실하게 된다. [...] 피넬은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된다. ‘확고부동한 규범을 따르는 것은 심기증(心氣症), 우울증, 또는 조광증을 예방하는데 매우 중요하다.’”(539)
 
 
“고전주의 시대를 대상으로 하여 육체적 치료법과 심리적 치료행위를 구별하려고 애쓰는 것은 무익하다. 그 때에는 심리학이 실재하지 않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 심리학이 탄생하는 것은 정확히 그때인데, 심리학은 광기의 진실로서가 아니라, 비이성이었던 광기의 진실에서 광기가 이제 분리되었고 그때부터 광기가 자연의 무한한 표면에서 표류하는 ‘무시해도 좋은’ 현상일 뿐이게 된다는 징후로서 탄생한다. [...] 정신분석에서 문제시되는 것은 결코 심리학이 아니라, 정확히 근대 세계에서 심리학이 본질적으로 은폐할 수밖에 없었던 비이성의 경험이다.”(540-541)
 
제3부
 
서론
 
“서양 문화에서 [광기와 비이성의] 이러한 분리가 철학적이고 비극적인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은 오직 니체의 마지막 텍스트 또는 아르토에게서이다.”(547) “횔덜린에 뒤이어 네르발, 니체, 반 고흐, 레몽 루쎌, 아르토는 비극적일 정도로, 다시 말해 광기를 부인함으로써 비이성의 경험을 잃어버릴 정도로 위험한 응시(凝視)를 무릅썼다. 그리고 그들 각자의 실존, 그들의 삶인 그 말들 각각은 아마 근대 세계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을 다음과 같은 물음을 한결같이 되풀이한다. 비이성이라는 차이를 보존하는 것은 왜 가능하지 않을까? 왜 비이성은 감정적인 것의 망상 속에서 현혹되고 광기의 물러남 속에 유폐되어 언제나 자체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떻게 비이성은 그 지점에서 언어를 박탈당할 수 있었을까? 비이성은 한 번 정면으로 바라본 사람들을 넋이 나간 듯 망연자실케 하고 ‘비이성’을 검증하려고 시도한 모든 사람들에게 ‘광기’의 판결을 내리는 그러한 권력은 무엇일까?”(558)
 
 
제1장. 대공포
 
“‘의료인’(homo medicus)이 범죄인 것과 광기인 것 사이에서 죄악과 질병 사이의 분할을 행하기 위한 ‘심판자’(arbitre)로서 수용의 공간으로 호출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수용의 벽을 뚫고 새나가는 막연한 위험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호자’(gardien)로서 불려나갔다는 것은, 서양 문화에서 광기가 틀림없이 차지하게 될 자리와 관련하여 중요하고도 어쩌면 결정적일 사항이다.”(566) 미라보, “모든 사람들처럼 나도 비세트르가 로피탈 제네랄이자 동시에 감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로피탈 제네랄의 설립이 결과적으로 질병을 낳고 감옥이 결국 범죄를 야기한다는 점은 모르고 있었다.”(566)
 
“15~16세기에 미치광이를 통해 급변의 양상이 드러난 커다란 우주적 갈등은 고전주의의 마지막 극단에서 감정의 직접적 변증법이 될 정도로 바뀌었다. 사디즘은 에로스만큼 오랜 관행에 마침내 부여된 이름이 아니라, 정확히 18세기 말에 서양적 상상력의 커다란 환희들 가운데 하나로 나타난 대대적 문화 현상이다. 즉, 사디즘은 마음의 망상, 욕구의 광기, 욕구의 한없는 추정(推定) 속에서 계속되는 사랑과 죽음의 엉뚱한 대화가 된 비이성이다. 사디즘은 비이성이 100여 년 전부터 감금되고 침묵으로 귀착되었다가 이제 세계의 형상이나 이미지로서가 아니라 담론과 욕망으로 다시 나타나는 시기에 출현한다.”(571)
 
“이러한 감각의 불순(不順)은 환각이 길러지고 헛된 정념과 영혼의 가장 음침한 움직임이 인위적으로 야기되는 연극에서 계속되는데, 특히 여자들은 “열광과 흥분을 자아내는” 그러한 연극을 좋아하고, 여자들의 영혼은 “그토록 심하게 뒤흔들리어, 사실은 일시적이지만 통상적으로 심각한 결과를 낳는 충격이 신경에 가해지며, 여자들의 감각이 순간적으로 박탈되는 현상이나 여자들이 근대의 비극을 관람하면서 쏟는 눈물은 연극의 공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하찮은 사건일 뿐이다.” 소설은 착란된 감성에 더 인위적이고 더 해로운 환경을 형성하며, 근대 작가들이 소설에서 나타내려고 애쓰는 그럴듯함 자체, 그리고 그들이 진실을 모방하는 데 이용하는 기법 전체는 그들이 독자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싶어하는 격렬하고 위험한 감정에 더 많은 위력을 보탤 뿐이다. [...] 소설은 전형적으로 감성 전체의 왜곡된 환경을 형성하고, 영혼을 감성적인 것에 있는 가장 직접적이고 자연스러운 것 전체로부터 분리시켜,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그만큼 더 격렬하고 자연의 부드러운 법칙에 의해 덜 규제되는 감정의 상상세계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토록 많은 작가가 다수의 독자로 하여금 알 껍질을 깨고 나오게 만들고, 지속적인 독서는 온갖 신경증 환자를 낳게 되는 바, 여자들의 건강에 해로운 모든 원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100년 전부터 시작된 소설의 한없는 증가였을 것이다. ... 10살 무렵에 달리기 대신 책을 읽는 소녀라면 20살 무렵에는 틀림없이 좋은 유모가 아니라 심한 히스테리를 부리는 여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가제트 살뤼테르, 1768)”(582-584)
 
“18세기에는 광기와 광기의 위협적 증가에 대한 의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범주의 개념들이 여전히 매우 산만한 방식으로 서서히 형성된다. 17세기가 광기를 위치시켰던 비이성의 풍경에서 광기는 어렴풋이 도덕적 의미와 기원을 감추고 있었고, 17세기의 불가사의에 의해 광기는 과오에 연관되었으며, 광기에 곧장 깃들인 것이라고들 인식한 동물성은 역설적이게도 광기를 더 결백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후반기에는 인간을 아득한 옛날의 타락이나 한없이 현존하는 동물성 쪽으로 근접시키는 것에서 더 이상 광기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게 되고, 반대로 인간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대해, 그리고 자연의 직접성을 통해 인간에게 제공되는 모든 것에 대해 유지하는 그 간격 안에 광기를 위치시킨다. 광기는 감성적인 것, 시간, 타자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변질되는 그러한 ‘환경’(milieu) 속에서, 인간의 삶과 변전(變轉)에서 직접적인 것과의 단절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제 광기는 자연이나 타락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영역에 속하는데, 이 영역에서는 역사가 예감되기 시작하고, 의사들이 말하는 ‘정신이상’(l'aliénation des médecins)과 철학자들이 말하는 ‘소외’(l'aliénation des philosophes)라는 두 형상, 이를테면 인간의 진실이 어떻게든 변질되는 조건이지만 일찍이 19세기에 헤겔 이후로 유사성의 흔적을 모두 잃어버린 두 형상이 본래의 막연한 연관성 속에서 형성된다”(584).
 
 
“[티소에서 모렐까지, 19세기 중후반] 광기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증가하는 광기의 모든 잠재력은 인간 자신의 주제(소외는 매개의 움직임에 있다)와 ‘살아있는 존재를 둘러싸는 모든 것은 살아있는 존재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비샤에 의해 분명히 표명된 생물학의 주제가 아직 뒤섞여 있는 지점에 머물러 있다.”(591) “한 마디로, 18세기에 광기 자체의 변전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었던 광기에 대한 공포는 19세기에 유일하게 광기의 구조를 확실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모순 앞에서의 강박관념이 될 정도로 차츰차츰 변하고, 부르주아 질서의 지속조건이 된 광기는 역설적으로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가장 직접적인 위협을 구성한다.”(595) “이제 [19세기] 사람들이 미친 사람에 관해 말하게 될 때, 이때의 미친 사람이란 ‘자기 자신의’ 직접적 진실의 땅을 떠나 자기 자신을 상실한 사람이다.”(596)
 
제2장. 새로운 분할
 
 
“우리는 광인의 수, 적어도 광인으로 인정되고 분류된 피수용자의 수가 18세기를 따라 아주 서서히 증가하다가 1785-1788년도에 최대한도를 지나고는 대혁명의 발발과 더불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600)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광기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띠었는가가 아니라, 광기가 18세기의 인식에 자리잡게 된 동향이다. 즉, 우리의 눈에 광기가 과거의 모습을 거의 상실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보이게 만든 일련의 단절, 불연속, 폭발이다. [...]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개인의 영향력이 아니라 역사 구조, 하나의 문화에서 광기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구조이다.”(617)
 
 
“어떤 의학적 진보도 어떤 인도주의적 접근도 광인이 점차로 고립되기에 이르고 미치광이라는 단조로운 범주가 초보적 영역들로 나누어지는 현상의 원인인 것은 아니다. 이 현상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수용의 근저에서이고, 광기에 대한 이 새로운 의식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수용이다. / 박애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정치적인 의식.”(621) “죄수들 사이에 광인이 있다는 것은 수용의 수치스러운 한계가 아니라 수용이 진실이고 수용의 폐습이 아니라 수용의 본질이다.”(623) “광기는 기이하게도 범죄의 쌍둥이로서, 아직 문제시되지 않은 근접에 의해 저어도 범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서 개별화된다.”(626) “수용이 결국 빈곤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로피탈 제네랄이 질병을 만들어 낸다.”(648) “빈곤, 질병, 구제에 관한 경제적이고 사회적 성찰.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은 가난과 빈곤의 모든 형상으로부터 분리된다. / 요컨대 예전에 광기를 에워싸고 있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즉, 빈곤의 순환, 비이성의 순환이 둘 다 해체된다. 빈곤은 경제의 내재적 문제에 편입되고, 비이성은 상상력의 심층적 형상 속에 들어박힌다. 빈곤과 비이성의 운명이 더 이상 교차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18세기 말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오랜 배제의 땅에 여전히 범죄로서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병자의 구제가 제기하는 모든 새로운 문제와 대면하고 있는 광기 자체이다.”(650)
 
제3장. 자유의 선용(善用)
 
 
“수용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1789년”(655) “1780년에서 1793년까지 취해진 조치들은 문제의 성격을 결정한다. [...] 피넬과 튜크의 개혁을 전후로 한 몇 년에서 광기에 대한 실증적 식별의 도래 또는 정신병자에 대한 인간적 대우의 도래 같은 것일 어떤 것을 찾으려 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유의해야 한다. 이 시기의 사건들과 그것들을 지탱하는 구조에 변모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 몇 해 동안 사법조치보다 약간 아래에서, 제도의 밑바닥 가까이에서, 그리고 마침내 광인과 비(非)광인이 대립하고 분할될 뿐만 아니라 서로 연루되고 서로를 알아보는 그러한 일상적 논쟁 속에서 ‘실증 정신의학’을 잉태했으므로 결정적인 것으로 보이는 형상들이 형성되었는데, 그러한 형상들로부터 광기에 대한 마침내 객관적이고 의학적인 식별의 신화가 탄생했고, 이러한 식별에 의해 그 형상들이 진실의 발견과 해방으로 신성시되면서 사후에 정당화되었다.”(662)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질병과 가난이 개인이나 가족의 권역에만 속하게 됨으로써 ‘사적인 것’으로 변한 시대에, 광기는 사실상 ‘공적 지위’를 획득하고 사회를 광기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감금공간의 규정에 얽매인다.”(663) “[이제] 수용은 피수용자에게는 도덕적 통제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경제적 이득이다. [...] 보호시설이 무엇이고자 했는가 뿐만이 아니라, 부르주아 의식의 한 형태 전체가 노동, 이윤, 미덕 사이의 관계를 확립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일종의 기괴한 진실. 보호시설은 이성과 동시에 비이성이 표현된 신화 속에서 광기의 역사가 동요하는 지점이다.”(668)
 
 
“그들[트농(Jacques-René Tenon, 1724-1816)과 카바니스(Pierre Jean George Cabanis, 1757-1808)]은 그러한 절반의 자유, 짐승 우리 속의 자유가 치료의 가치를 내포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들에게나 18세기의 모든 의사에게나 상상력은 육체와 영혼에 관여하고 오류의 탄생 장소이기 때문에 정신의 모든 질환에 대해 언제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속박되어 있을수록 상상력이 더욱 분방해지고, 육체를 얽매는 규칙이 엄격할수록 몽상과 상상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다. 그리고 자유는 상상력을 끊임없이 현실과 대면시키고 아무리 기이한 공상일지라도 친숙한 행위 속에 감추므로 쇠사슬보다 더 효과적으로 상상력을 억제한다. 상상력은 하염없는 자유 속에서 평온을 회복한다. 그래서 트농은 생-뤼크의 간수들이 선견지명을 갖고 있다고 극구 찬양하는데, 거기서는 ‘광인이 일반적으로 낮 동안 자유로운 상태에 놓인다. 이러한 자유는 이성의 제동을 받지 않는 사람의 이미 미친 듯하거나 빗나간 상상력이 완화되리라는 것을 예고하는 치료제이다.’ 따라서 이 틀어박힌 자유와 다르지 않은 수용은 그 자체가 치유의 동인(動因)이고, 수용이 치료일 수 있는 것은 실제의 치료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상력, 자유, 침묵, 한계의 작용 때문이고 동시에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조직하고 오류를 진리로, 광기를 이성으로 이끄는 움직임 때문이다. [...] / 매우 중요한 단계가 돌파된다. 즉, 수용은 공식적으로 의료활동의 위엄을 띠게 되었고, 수용의 공간은 광기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깨어 있었고 막연하게 보존되었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광기가 일종의 토착적 메커니즘에 의해 저절로 제거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점에서 치유의 장소가 되었다. / 중요한 것은 수용시설의 정신병원으로의 이러한 변모가 의학의 점진적 도입, 외부로부터 도래하는 일종의 내습(來襲)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전주의 시대가 배제와 체벌의 기능만을 부여한 그 공간의 내부적 재편성에 의해 실현되었다는 점이다. 비이성의 다른 모든 형태가 점차로 수용시설에서 풀려났는데도, 수용을 광기에 대해 이중으로 특별한 장소, 곧 광기의 진실이 드러나는 장소인 동시에 광기의 소멸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만든 것은 수용이 갖는 사회적 의미의 점진적 변화, 억압에 대한 정치적 비판과 빈민구제에 대한 정치적 비판, 광기에 의한 수용 영역 전체의 전유(專有)이다. 이에 따라 수용의 공간은 광기의 행선지가 되고, 이제부터 수용과 광기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된다. 그리고 가장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기능, 이를테면 미치광이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와 질병의 치유, 이 두 기능의 조화 같은 것이 마침내 느닷없이 생겨난다. 즉 수용의 작용에 의해서만 단번에 광기의 진실이 표명되고 광기의 본질이 풀려날 뿐인 것은 수용의 비어 있는 공간에서이므로, 공공(公共)의 위험은 사라지게 되고 질병의 징후는 소멸되게 된다. / 이처럼 새로운 가치와 알려지지 않았던 움직임이 수용의 공간에 깃들 때, 오직 그때에만 의학은 보호시설을 점유하고 광기의 모든 경험을 아우를 수 있게 된다. 수용의 문을 강제로 열어젖힌 것은 의학적 사유가 아닐뿐더러, 의사들이 오늘날 정신병원에서 군림하는 것은 정복의 권리에 따른 것도 아니고, 그들의 박애주의나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관심의 생생한 활기 덕분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100여 년 전부터 점차로 광기와 비이성을 몰아낸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모든 행위와 상상적이거나 도덕적인 모든 의례의 재조정으로 말미암아 수용 자체가 치료의 가치를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675-677)
 
 
“이러한 변화 전체를 한 마디로 요약해야 한다면, 아마 비이성의 경험에 고유한 특성은 비이성의 경험에서 광기가 스스로에 대해 주체였다는 것이지만, 18세기 말에 형성되는 경험에서는 광기가 대상의 지위를 부여받음으로써 스스로에 대해 소외되었다고(aliénée) 말할 수 있을 것이다.”(685)
 
“인간의 내면에 더 깊이 놓여 있는 것에 관한 심리학과 인식은 바로 공공(公共) 의식ㅇ 인간에 관한 보편적 심급으로, 이성과 도덕의 즉각 타당한 형태로 지정된다는 사실에서 탄생했다. 심리의 내재성이 추문화한 의식의 외재성으로부터 구성된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형사 재판에 관한 대대적인 개혁을 통해 제도의 형태를 갖춘다. [...] 범죄성은 과거에 실행된 행위, 행해진 위배(違背)에서 획득되던 절대적 의미와 동질성을 상실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확고부동하게 될 두 가지 척도, 즉 과오와 형벌을 똑 같게 만드는 척도, 이를테면 공고의식의 규범, 추문의 요구, 그리고 징벌과 폭로를 동일시하는 사법적 태도의 규칙에서 끌어온 척도, 그리고 과오의 원인에 대한 과오의 상관관계를 규정하는 척도, 이를테면 인식이나 개별적이고 은밀한 지정(指定)의 범주에 속하는 척도에 따라 나누어진다. 개인에 관한 지식으로서의 심리학을 공공의식에 입각한 판단 형태와의 근본적 관계에 따라 역사적으로 고찰해야 한다는 것을 필요할 경우 충분히 입증해줄 수 있는 분리현상. 개인 심리학은 공공의식 속에서 추문이 재편성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었다.”(693-694)
 
 
“인간의 진실이 얽매어 있었던 모든 도덕적 신화에서 인간이 해방된다면, 이 탈소외적(désaliénée) 진실의 진실은 바로 정신이상(aliénation) 자체라는 것을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700)
 
 
“고전주의 시대에 나타난 광기의 경험 조건들이 결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근대적] 통일성 속에서이다. 이제 마침내 그것들의 명백한 대립 작용을 감안하여 구체적 범주의 도표를 다음과 같이 작성할 수 있다.
 
해방의 형태
보호의 구조
1. 광기를 비이성의 다른 모든 형태와 뒤섞는 수용의 철폐
1. 더 이상 배제의 땅이 아니라 광기가 자체의 진실과 합류하는 특별한 장소로서 광기에 지정되는 수용시설
2. 의료 시설 이외의 다른 목적이 없는 보호시설의 설립
2. 광기의 발현장소임과 동시에 치유공간이게 되어 있는 난공불락의 공간에 의한 광기의 감금
3. 광기가 스스로 표현되고 이해되며 광기 자체의 이름으로 말할 권리의 획득
3. 광기의 주위와 위쪽에서 전적으로 시선으로만 존재할 뿐이고, 광기에 대해서는 순수한 대상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종의 절대적 주체의 형성
4. 광기가 정념, 폭력, 범죄의 일상적인 진실로서 심리적 주체 속에 자리잡는 내면화
4. 가치의 비일관적 세계와 가책하는 양심의 작용 속으로 광기가 편입되는 현상
5. 광기가 심리적 진실의 역할 속에서 면책조건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의 인정
5. 도덕적 판단의 이분법적 요구에 따른 광기 형태의 분할
 
 
이러한 해방과 예속의 이중적 움직임은 근대적 광기의 경험을 밑받침하는 내밀한 토대를 이룬다.”(706) “실증주의적 정신병의 경험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한 가지 동일한 의식 행위 속에서 광기를 인식하고 동시에 제압할 가능성이다. [...] 그러므로 인간 존재의 실증적 인식이라는 중대한 주제에서 광기는 언제나 삐딱하게 기울어져 있다. 즉, 대상화되는 동시에 대상화하며, 전면에 드러나는 동시에 뒤로 물러나 있으며, 내용이자 동시에 조건이다. [...] 인간이 광인일 가능성과 인간이 대상일 가능성은 18세기 말에 합쳐졌고, 그러한 합류는 실증적 정신의 요청과 인간에 대한 객관적 학문의 주제를 동시에 낳았다(이 경우에 시기 상의 우연한 일치는 없다).”(708-709)
 
제4장. 정신병원의 탄생
 
“피넬. 그러니까 사슬이 풀리고 광인이 해방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광인이 이성을 회복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렇지 않다. 즉, 이성이 그 자체로서 저절로 다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광기 아래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완벽하게 정상적인 모습으로 변질도 머뭇거림도 없이 단번에 우뚝 솟아오르는 것은 바로 완전한 사회적 범주들이다. 마치 광인이 사슬로 매어 있던 야수성에서 풀려나고는 ‘사회적 유형’ 속에서만 인간성을 되찾을 뿐인 듯하다. [...] 이러한 사회적 가치체계 안에서만 그는 건강을 회복할 뿐이다. 사회적 가치 체계는 그가 건강을 회복한 징후이자 동시에 구체적 현존인 셈이다. [...] 그러나 [피넬에게] 중요한 것은 광인이 국외자로, 짐승으로, 인간 및 인간관계와 절대적으로 무관한 형상으로 취급되지 않게 되자마자, 일찍이 확정되어 있는 사회적 유형에 의해 이성의 의미가 정해진다는 점이다. 피넬이 보기에 광인의 치유는 광인을 도덕적으로 인정되고 승인된 사회적 유형에 안정적으로 꿰어 맞추는 데 있다. /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사슬이 풀렸다는 사실, 이를테면 18세기에 이미 여러차례에 걸쳐, 특히 생-뤼크에서 실행되었던 그런 조치가 아니라, 그러한 해방을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주체와 오래 전부터 문학에 의해 묘사된 형상으로 가득 찬 이성 쪽으로 열어놓음으로써, 또한 야만상태로 넘어간 인간의 우리가 아니라, 미덕의 투명성 속에서만 관계가 확립될 뿐인 일종의 꿈의 공화국일 이상적 형태의 보호시설을 상상계 속에 구성함으로써 그러한 해방에 의미를 부여한 신화이다.”(733-734) “개념적인 것이 본질로, 도덕의 재구성인 것이 진실의 해방으로, 아마 광기를 거짓된 현실 속에 은밀하게 끼워 넣는 작업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 광기의 자연적 치유로 통하게 될 때,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신화라고 하는 것이다.”(736)
 
“보호시설이 광인의 죄의식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호시설은 그 이상의 것을 행한다. 즉, 광인의 죄의식을 조직한다. [...] 다시 말해, 이러한 죄의식 때문에 광인은 자신과 타자에게 어느 때이건 제공되는 징벌의 대상이 되고, 이 대상의 지위에 대한 인정과 자신의 죄의식에 대한 자각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주체의식으로, 따라서 이성으로 복귀하게 되어 있다. 시선에서만큼이나 노동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정신병자가 타자에 대해 대상화됨으로써 자유를 되찾는 이 움직임이다.”(742) “거기에서 광인은 미지(未知)의 손님이라는 미확정된 역할을 맡도록 끊임없이 요구받고, 그에 대해 알려질 수 있는 모든 것 쪽으로 내던져지며, 이런 식으로 시선을 통해 조용히 그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인물의 모습과 가면에 따라 자기 자신의 표면으로 끌려나와, 합리적 이성의 눈앞에서 완전한 국외자로, 다시 말해서 야릇함이 인식되지 않는 국외자로 대상화되기를 권유받는다. [...] 저주의 세계에서 심판의 세계로의 변화. 광기의 심리학.”(745) “과거에는 비이성에 대한 이성의 승리가 물리력(物理力)에 의해서만, 일종의 실제적 싸움 속에서만 확보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싸움ㅇ 언제나 이미 끝나 있을뿐더러, 광인과 비광인이 맞서는 구체적 상황에 비이성의 패배가 미리 결정되어 있다, 19세기 정신병원에 속박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비이성이 해방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광기가 오래 전부터 제압된 상태라는 것을 말해준다. / 보호시설에 군림하는 이 새로운 이성에 대해 광기는, 절대적 모순의 형태가 아니라, 이제 오히려 미성년, 즉 자율권이 없고 이성의 세계에 기대서만 존속할 뿐인 모습을 띤다. 광기는 유년기이다. [...] 여기에서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은 ‘은거처’에서 정신병자와 감시인의 공동체가 갖는 ‘대가족’의 모습이다. 겉보기에 이 ‘가족’은 환자를 정상적이고 동시에 자연스러운 환경 안에 위치시키는 듯하지만, 사실은 환자를 더욱 더 소외시킨다. 즉, 광인에게 지정되는 법적 미성년의 지위는 법적 주체로서의 광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예부터의 구조가 공존의 형태로 변하면서부터는 심리적 주체로서의 광인을 이성인의 권한과 위세에 전적으로 내맡겨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에 따라 이성인은 광인에게 구체적인 성인(成人)의 모습, 다시 말해 지배와 합목적성의 모습을 띤다. [...] 이성은 광인에 대해 아버지의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하게 된다.”(747-750)
 
“보호시설, 종교 없는 종교적 영역, 순수한 도덕과 윤리적 획일화의 영역. [...] 이제 보호시설은 사회도덕의 커다란 연속성을 형상화하게 되어 있다. 보호시설에는 가족과 노동의 가치, 즉 사회적으로 인정된 모든 미덕이 군림한다. [...] 보호시설에서는 사회의 기본적 미덕에 대립하는 모든 것이 비난받을 것이다. [...] 보호시설의 목적은 도덕적 균질의 확산이자, 도덕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는 모든 사람에 대한 엄격한 도덕의 부과이다. [...] 피넬에 의해 [정신병원에서] 실행되는 활동은 비교적 복잡하다. 즉, 부르주아 도덕에 사실상의 보편성을 보장하고 부르주아 도덕이 정신이상의 모든 형태에 법처럼 부과해줄 사회적 격리를 실행하면서도 도덕적 통합을 수행하는 것, 말하자면 광기의 세계와 이성의 세계 사이에 윤리적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다.”(753-756)
 
 
* 피넬의 보호시설이 보여주는 4 가지 특유한 구조
 
1) 침묵. “이제 대화는 단절되고 침묵은 절대적이다. 광기와 이성 사이에는 더 이상 공통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언어의 부재만이 정신착란의 언어에 부합하는데, 이는 정신착란이 이성과의 단편적 대화가 아닐뿐더러 사실상 전혀 언어가 아니고 마침내 조용해진 의식 속에서 오직 과오만을 가리킬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공통의 언어는 인정된 죄의식의 언어이게 됨에 따라 다시 가능해지게 된다. [...] 언어의 부재는 보호소 생활의 근본적 구조로서 고백의 활성화와 상관관계가 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에서 신중하게 교환을 다시 꾀하게 될 때, 더 정확히 말해서 이제부터 독백 속에서 부스러지는 그러한 언어의 청취를 새롭게 시작하게 될 때 들려오는 진술은 언제나 과오의 표명이게 마련이라는 점에 놀랄 필요가 있을까? 그 뿌리 깊은 침묵 속에서 과오는 말의 원천 자체를 획득했다.”(759)
 
2) 거울 속에서의 자기확인. “광기는 스스로를 보게 도고 스스로에 의해 보여지게 된다. 이를테면 바라봄의 순수한 대상임과 동시에 바라봄의 절대적 주체이게 된다.”(759)
 
3) 영원한 심판. “광인보호시설은 사법적 소우주이다. [...] 피넬의 보호시설에서 실행되는 사법은 억압의 방식을 다른 사법기관에서 빌려오지 않고 자체적으로 창안한다. 더 정확히 말해서 18세기에 퍼져나간 치료방법을 징벌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피넬의 ‘자선’ 및 ‘해방’ 활동에서 의료행위가 사법행위로, 치료술이 억압으로 바뀌는 이러한 전환은 예사로운 역설이 아니다. [...] 처벌의 이 거의 산술적인 명백성, 필요한 만큼 반복되는 징벌, 억압을 통한 과오의 확인, 이 모든 것은 사법 심급의 내면화로, 더 나아가 환자의 정신에서 이루어지는 후회의 출현으로 이르게 마련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심판자는 징벌이 환자의 의식 속에서 한 없이 지속되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징벌을 중단시킨다. [...] 순환 과정이 이중으로 완결된다. 즉, 과오는 처벌되고, 과오의 장본인은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다. [...] 피넬을 그 영광스러운 설립자로 간주할 수 있는 실증주의 시대의 보호시설은 관찰, 진단, 치료의 자유로운 영역이 아니라, 광인이 기소되고 재판을 받으며 유죄를 선고받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소송이 심층심리 속에서 뉘우침으로 해석됨으로써만 광인이 풀려날 수 있을 뿐인 사법적 공간이다. 광기는 설령 보호시설 밖에서 결백을 선고받는다 해도 어김없이 보호시설에서 처벌받게 된다. 광기는 오랫동안 적어도 오늘날까지는 도덕의 세계에 유폐되어 있다.”(763-767)
 
+ 4) 의료인의 신격화. “보호시설에서 호모 메디쿠스(homo medicus)가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학자로서가 아니라 현자(賢者)로서이다. 의사직이 요구된다 해도, 이는 과학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과 도덕의 보증으로서이다.”(768) “의사는 의료실천이 매우 오랫동안 질서, 권위, 징벌의 낡은 의례에 주석을 붙이기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의사는 처음부터 아버지 겸 재판관, 가족 겸 법임에 따라서만 보호소 세계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771) “피넬에서 프로이트까지 19세기 정신의학의 인식과 실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객관성의 깊은 구조를 분석하고자 한다면, 그 객관성이 처음부터 마술적 질서의 사물화라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인데, 그러한 사물화는 환자 자신의 암묵적 동조에 힘입어서만, 그리고 처음에는 투명하고 분명했으나 실증주의에 의해 과학적 객관성의 신화가 강요됨에 따라 점차로 잊힌 도덕의 실천에 입각해서만, 즉 기원과 의미는 잊혔으나 언제나 활용되고 언제나 현존하는 실천에 입각해서만 실현될 수 있었다. 정신의학의 실천이라 불리는 것은 시기적으로 18세기 말과 겹치고 보호소 생활의 의례에 보존되어 있다가 실증주의의 신화에 의해 재발견된 어떤 도덕적 전술이다. [...] 피넬과 튜크가 수용을 통해 정비한 모든 구조를 프로이트는 의사 쪽으로 넘어가게 했다. 그는 환자들의 ‘해방자들’이 환자를 소외시켰던 그러한 보호소 생활로부터 환자들을 그야말로 구출했지만, 그러한 생활에 스며들어 있던 근본적인 것으로부터 환자를 구해내지는 못했고, 환자에 대한 권력을 통합하고 최대로 확대하여 의사의 수중으로 몽땅 넘겼으며, 의사 안에서 정신이상이 주체로 탈바꿈하기 때문에 기막힌 접속 회로를 통해 정신이상이 정신이상의 극복수단이게 되는 정신분석 상황을 만들어냈다. / 의사는 개인의 자주성을 박탈하는 형상으로서 여전히 정신분석의 열쇠이다.”(774-776)
 
제5장. 인간학의 악순환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는 침묵의 영역에 속해 있었다. [...] 광기는 그 자체로 말이 없는 것이다. 즉, 고전주의 시대에는 광기를 위한 자율적 언어 또는 광기가 자기에 관해 진실한 언어를 말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광기의 문학이 없다.”(785)
 
 
“인간에 관한 19세기의 성찰 전체를 지배한 막연한 진실 하나. 인간에게 있어서 객관화의 본질적 계기는 광기로의 이행과 동일할 뿐인 것이다. 광기는 인간의 진실이 대상 쪽으로 옮겨가고 과학적 인식에 접근할 수 있게 되는 움직임의 가장 순수하고 가장 중요한 형태이다. 인간은 ‘광기’의 가능성이 있음에 따라서만 자기 자신에 대하여 ‘자연’이 될 뿐이다. 광기는 객관성으로의 자연발생적 이행으로서, 인간의 대상화를 성립시키는 구성적 계기이다. [...] ‘인간’에서 ‘참된 인간’으로 이르는 길이 ‘미친 인간’을 통과하는 셈이다. 19세기의 사유에 의해서는 결코 정확한 지리(地理)가 저절로 드러나지 않지만, 카바니스에서 리보와 자네까지 줄기차게 답습되는 길. 분열현상의 분석에 의거한 인격 심리학, 건망증에 의거한 기억 심리학, 실어증에 의거한 언어 심리학, 정신박약에 의거한 지능 심리학 등 19세기에 탄생한 ‘실증’ 심리학의 역설은 그것이 부정성(否定性)의 계기로부터만 가능했다는 점이다. 인간의 진실은 인간이 사라지는 순간에만 말해질 뿐이고, 이미 다른 것이게 된 상태로만 드러날 뿐이다.”(797-798)
 
“이러한 이타성(異他性, altérité) 속에서 광인은 자기 동일성의 진실을, 그것도 ‘정신이상’(aliénation)의 수다스런 움직임 속에서 끝없이 드러낸다. 광인은 더 이상 고전주의적 비이성의 분할된 공간에 갇힌 ‘미치광이’(l'insensé)가 아니라, 질병의 근대적 형태에 들어맞는 ‘정신병자’(l'aliéné)이다.”(801)
 
 
“피넬의 도덕적 가책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게 된 보호시설은 어떤 것에도 소용이 없었고, 현대 세계를 광기의 대단한 재상승(再上昇)으로부터 보호하지도 못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보호시설은 쓸모가 있었고 정말로 소용이 되었다. 그것은 광인을 비인간적 쇠사슬로부터 해방시켰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인간과 그의 진실을 광인에 연관되도록 만들었다. 그때부터 인간은 진실한 존재로서 자기 자신에게 접근하지만, 이 진실한 존재는 정신이상(aliénation)의 형식 속에서만 인간에게 주어질 뿐이다. / 아마 우리는 순진하게도 150년의 역사를 가로질러 광인이라는 심리적 유형을 묘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광인의 역사를 기술함으로써, 심리학의 출현 자체를 가능케 한 것의 역사를 물론 발견의 연대기나 사상사의 차원이 아니라 근본적 경험구조의 연쇄에 따라 서술했다는 점을 그야말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19세기부터 서양세계에 특유한 문화적 현상, 즉 근대인에 의해 규정되었지만 거꾸로 근대인을 규정하게 되는 두루뭉실한 전제, 이를테면 ‘인간은 진리에 대한 어떤 관계로 특징지어지지 않지만 진리를 자기 자신에게만 속할 뿐이면서 드러나고 동시에 감추어지는 것으로서 보유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 머리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써보자면, ‘심리학적 인간정신이 사로잡힌 인간의 후손이다(l'homo psychologicus est un descendant de l'homo mente captus).”(80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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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의 경우처럼 사드의 경우에도 비이성은 어둠 속에서 계속 잠깨어 있지만, 이 깨어있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힘과 관계를 맺는다. 비이성의 과거 모습이었던 비존재는 이제 파괴의 힘이 된다. 사드와 고야를 통해 서양세계는 폭력 속에서 이성을 초월하고 변증법의 장래성을 넘어 비극 경험을 되찾을 가능성을 결실로 거두었다.”(811) “사드와 교야 이후로 비이성은 모든 작품에서 근대 세계에 대해 결정적인 것, 다시 말해서 모든 작품이 내포하는 살인적이고 강압적인 것에 속한다. / 타소의 광기, 스위프트의 우울증, 루소의 망상은 그들 작품 자체가 그들에게 소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작품에 특유한 것이다. [...] 니체의 광기나 반 고흐의 광기 또는 아르토의 광기는 아마 더 깊지도 덜 깊지도 않게일 터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토대를 두고서 그들의 작품에 속한다. [...] 횔덜린과 네르발 이래로 광기에 ‘빠져든’ 작가, 화가, 음악가의 수는 크게 증가했지만, 이 점에 대해 잘못 생각하지 않도록 하자. 광기와 작품 사이에 더 지속적인 타협도, 교환이나 언어들 사이의 소통도 없었다. 광기와 작품의 대립은 예전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광기와 작품의 분쟁은 이제 용서가 없으며, 광기와 작품의 작용은 삶과 죽음에 관련된다. [...] 광기는 작품의 절대적 단절이고, 시간 속에서 작품의 진실에 근거가 되는 소멸의 계기를 형성하며, 작품의 외부 가장자리, 작품의 붕괴선(崩壞線), 공백을 배경으로 한 작품의 윤곽을 나타낸다.”(812-814)
 
 
“니체가 마침내 미쳐버린 1888년의 정확한 날짜, 그의 글이 철학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정신의학의 영역에 속하기 시작하는 날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론 스트린드베르그에게 보낸 우편엽서를 포함하여 모든 글을 니체의 것이고, 그의 모든 글은 『비극의 탄생』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속성을 체계, 전체적 주제, 심지어 삶의 차원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즉, 니체의 광기, 다시 말해서 사유의 붕괴는 그의 사유가 근대 쪽으로 열리는 통로이다. 니체의 사유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은 니체의 사유를 우리에게 현존하게 만드는 것이고, 니체의 사유를 니체에게서 박탈한 것은 니체의 사유를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광기가 작품과 근대세계에 공통된 유일한 언어(비장한 저주의 위험, 정신분석의 전도되고 대칭적인 위험)라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으로 집어삼켜지고 세계의 무의미를 드러나게 하며, 병적인 것의 특성 아래에서만 미화되는 듯한 작품이 사실은 광기에 의거하여 세계의 시간을 끌어들이고 제압하며 조종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세계의 시간을 중단시키는 광기에 의해 작품은 공백, 침묵의 시간, 대답 없는 물음을 접근 가능하게끔 열어놓고, 세계가 정말로 의문의 대상이지 않을 수 없게끔 끝없는 분열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어쩔 수 없이 신성모독적인 것은 뒤집히고, 정신장애로 붕괴된 그러한 시간 속에서 세계는 죄의식을 맛본다. 이제부터 광기의 저주 때문에 (서양 세계에서 역사상 최초로) 작품에 대해 유죄이게 되고, 광기에 의해 논고(論告)당하며, 광기의 언어를 따르도록 강요당할 뿐만 아니라, 고백 또는 개선(改善)의 책무, 이 비이성‘에 대해’ 동기를 설명하고, 이 비이성‘을 정당하게’ 평가할 책무에 얽매인다. 작품이 잠겨드는 광기는 우리의 작업공간이고, 우리의 작업을 끝내기 위해 가야할 무한한 길, 우리가 사도이자 동시에 주석가로서 떠맡아야 할 소명이다. 그래서 니체의 오만에, 반 고흐의 겸허에 광기의 목소리가 언제 최초로 슬그머니 끼어들었는가를 아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광기는 작품의 마지막 순간으로서만 있을 뿐이고, 작품은 광기의 극한으로 광기를 한없이 밀어내며, ‘작품이 있는 곳에 광기는 없지만’, 광기는 작품의 진실에 내포된 시간의 막을 여는 까닭에, 작품과 시기를 같이한다. 작품과 광기가 함께 태어나고 완성되는 순간은 세계가 작품에 의해 소환되고 작품 앞에서 세계 자체의 모습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시간의 시초이다. / 광기의 책략의 새로운 승리. 즉, 심리학에 의해 광기를 헤아려보고 광기를 입증한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는 심리학의 노력과 논쟁 속에서 니체, 반 고흐, 아르토의 과도함 같은 작품의 극단성과 씨름하므로, 이 세계가 결백을 입증받아야 하는 덧은 바로 광기 앞에서이다. 그리고 이 세계 안의 어떤 것도, 특히 이 세계가 광기에 관해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러한 광기의 작품들에 의해 이 세계가 정화된다는 것을 이 세계에 확신시키지 못한다.”(814-815)
 
 
 
 
 
 
 
 
 
 
* 광기와 정상의 정치적 역사
 
 
“자신의 합리성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오히려 합리성의 근거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근거가 결코 과학적으로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박정자 옮김, 그린비, 2012), 80쪽.
 
 
번역된 책을 읽다가 이 구절이 마음에 들어 원문을 찾아보았는데, 국역본의 뉘앙스가 조금 애매한 듯하여 원문과 나의 번역을 올려본다.
 
 
우선 원문은 <<말과 글>>(Dits et ecrits) 두 권짜리 2001년 카르토판 167쪽이다.
 
"il faut demander compte à la recherche du choix de sa rationalité; il faut l'interroger sur un fondement dont on sait déjà qu'il n'est pas l'objectivité constituée de la science; il faut l'interroger enfin sur le statut de la vérité qu'elle confère elle-même à la science puisque c'est son choix qui fait de la vraie psychologie une psychologie vraie."
 
 
“우리는 [심리학적] 연구에 자신의 합리성 선택에 대한 해명을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과학으로부터 구성된 객관성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는 하나의 기초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심리학적 연구가 과학에 대해 스스로 부여하는 진리의 지위에 대해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참된 심리학으로부터 하나의 ‘참된’ 심리학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심리학의 [배제라는] 선택 자체이기 때문이다.”(167)
 
 
그런데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한 페이지 전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해야 한다.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형식의 심리학이 갖는 역사적 아 프리오리들 중 하나는 바로 이러한 과학적인가 아닌가라는 배제의 양식에 기초한 가능성이다.”(166)
 
 
그리고 이 말은 다시 그로부터 4년 후인 1961년에 발표되는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말들을 설명해준다.
 
 
“광기에 대한 우리의 과학적ㆍ의학적 지식은 암묵적으로 그에 앞서는 비이성에 대한 윤리적 경험의 성립에 바탕을 두고 있다.”(185)
 
 
“금기가 신경증으로 변화되는 과정의 중간 단계가 있는데, 이 단계에서는 도덕적 책임 곧 윤리적 관점에서 행해지는 죄의식의 내면화가 이루어진다.”(192)
 
 
“19세기의 정신병리학은 (그리고 어쩌면 우리 시대의 정신병리학까지도) ‘자연인’ 혹은 모든 질병 경험 이전의 정상인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되고 평가된다. 사실 이러한 정상인이라는 개념은 창안물이고, 정상인을 위치시켜야 하는 곳은 자연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인’을 사법적 주체와 동일시하는 체계이며, 따라서 광인이 광인으로 인정되는 것은 - 광인이 질병으로 인해 정상 상태의 가장자리 쪽으로 옮겨졌기 때문이 아니라 - 광인이 우리 문화에 의해 수용의 사회적 명령과 권리 주체의 능력을 판별하는 법률적 인식 사이의 접점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에 관한 ‘실증’ 과학, 그리고 광인을 인간의 반열에 올려놓은 그 인도주의적 진단은 일단 이러한 종합이 이룩되고 나서야 가능했다. 이 종합은 이를테면 과학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의 정신병리학 전체의 구체적인 ‘아 프리오리’를 구성한다.”(244)
 
“순수한 심리적 의학은 광기가 죄의식의 영역으로 양도된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523)
 
 
“인간이 광인일 가능성과 인간이 대상일 가능성은 18세기 말에 서로 합쳐졌고, 그러한 합류는 실증적 정신의학의 전제와 동시에 객관적 인간학의 주제를 낳았다(이 경우에 시기상의 우연한 일치는 없다).”(709)
 
그리고 이 모든 말은 푸코가 같은 책에서 라틴어로 적어 내려간 다음과 같은 명제 형식 아래 명료히 정식화된다.
 
심리학적 인간정신이 사로잡힌 인간의 후손이다.”(804)
 
"l'homo psychologicus est un descendant de l'homo mente captus."(원서, 549)
 
 
그리고 이 말은 푸코가 1961년 플롱 판 『광기의 역사』 맨 앞부분에 제사(題辭)로 사용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일기』로부터 인용한 다음 문장과는 정반대의 의도에서 이 책을 썼음을 확인시켜준다.
 
 
 
 
 
“사람들이 자신의 ‘양식’을 스스로 확신하는 것은 자신의 이웃을 감금함으로써가 아니다.”(원서 1961, 7)
 
결국 푸코가 라틴어로 적어 내려간 위의 한 마디 말이야말로 방대한 『광기의 역사』 전체를 요약해주는 한 마디이자, 후에 1975년 푸코가 발표하는 『감시의 처벌』의 주된 테제 곧 심리학과 광의의 정신의학이 -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비과학적’이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 일종의 ‘과대망상적인’ ‘심리학화’(psychologisation)의 기제, 달리 말해 ‘감시와 처벌’이라는 이른바 ‘정상화’(normalisation) 기제를 통해 근대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적 ‘통제’의 원리가 되었다는 푸코의 가설을 정당화해주는 근원이다.
 
 
 
 
 
* “영혼은 육체의 감옥이다.”(『감시와 처벌』, 62). 피타고라스 혹은 플라톤, 구약 혹은 예수 이래 '서양'을 구성한 문명 도식이었던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는 말을 뒤집은 푸코의 결정적 한 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