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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 28.

파르헤시아, 아시아류

 


<희랍문학사> - 마틴 호제 / 김남우
       
고대의 후반에 구희극은 본질적으로 정치극이었다. 희극 작가들은 고위층 인사, 그러니까 페리클레스 정도 되는 지도자급 정치인을 공개적으로 실명을 언급해가며 그 사람됨이나 잘못, 악덕을 낱낱이 고발하는 등, 전대미문의 일을 벌였다. 고대의 문학은 이런 유의 공격을 정쟁에 비방 선전문을 도입했던 정치적 출판물로부터 배워왔다.

구희극의 이러한 특성은 분명 구희극 안에 녹아든 사회적 관습에 기인한다. 조롱극이나 가면극 등의 전통에 5세기 아테네의 공공생활이 가진 또 하나의 원리가 추가되었던 것이다: 시민들이 가진 언론의 자유, 즉 '직설(파르헤시아, parrhesia)'(Scarpat 1964년)이 그것이다. 정치적 희극이라 단정할 만한 흔적이 5세기 중반 이전에는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신랄한 정치적 풍자가 아티카 지방에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시기에 비로소 유행하였고, 이것이 희극에 가능성을 제공하였다고 추측하고 있다(155)


기원전 1세기에는 언어적 준거를 다시 규정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이때에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의 아티카 방언이 문장연습의 모범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런 아티카풍은 우선 로마에서 활동한 희랍 출신 수사학 선생들이 로마의 학생들에게 적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Gelzer 1978년). 아티카풍을 내세운 수사학 선생들은 소아시아의 수사학 학교에서 배우는 언어와 문장을 '아시아류'라고 깎아내렸다. 옥타비아누스가 패배한 안토니우스를 '아시아놈'이라고 낙인찍어 버린 것에 고무되어 희랍문학에서 아티카풍이라는 개념이 급작스럽게 유행하였다.

기원전 30년 이래로 로마에서 모여 호라동하던 희랍 출신 변론술 선생들은 이런 흐름에 이끌려 아티카풍의 수업을 마련하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이름만으로나마 전해지는 바, 시킬리아 섬의 칼레악테 Kaleakte 출신 카이킬로스 Kaikolios 는 <아티카풍과 아이사류의 차이에 관하여 Tini diapherei ho Attikos zelos tu Asianu >와 아티카풍에 관한 저작을 지었다고 한다 [...] 이 모든 저작들은 하나같이 따라해봄직한 아티카풍의 문장연습본을 중심으로 씌어져 있다

기원후 1세기를 거치며 아티카풍은 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문자로 기록되는 모든 영역에서 복고풍이 일었으며 이로써 일상언어와 갈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리는 문학사적으로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 옛것을 규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강제 때문에 작가들이 아티카풍을 참고할 수 있도록 돕는 뜻에서 사전류들이 만들어졌다.

[...]

과거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보면 아티카풍은 기껏해야 교육제도의 전반적 보수주의적 경향의 한 부분이며 경직된 사고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더 이상 문화적 내지 정치적 중심이 존재하지 않던 희랍 언어권에서 아티카풍과 그 교육기관은 남부 프랑스에서 유프라테스강 지역에 걸쳐 여기저기 살고 있는 희랍어를 아는 지배 계층의 문화적 공통분모로서 500년 동안 유지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공통 분모로 인해서 문화적, 인종적 차이는 쉽게 무시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생활 구어와, 문학어 즉 '배운 사람들의 언어'는 점점 더 확연히 달라졌다. 하지만 아티카풍의 엄격한 규준과 교육제도의 엄격한 규율이 문학어를 통한 상호교통을 보증하였으며 또한 문학어를 쓰는 사람들의 규합을 가능케 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아티카풍은 로마제국의 안정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272-274).


* 맺는말


희랍문학은 언제 끝맺는가?


529년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를 폐교시킨다. 530년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는 몬테가시노에 수도원을 설립한다. 제국의 동방에서도 서방에서처럼 단절이 존재하는가? 이제 '비잔틴 문학'은 희랍의 양식과 전통을 계속 이어가게 되었다. 희랍세계의 정신적 중심은 이제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된다. 파울루스 실렌타리우스는 논노스의 맥을 잇는 시인이라 하겠다. 563년 1월 6일 '소피아 성당'이 대대적인 수리 공사 후에 새롭게 봉헌되었을 때 그는여섯 소리걸음으로 축제의 시를 지었다. <소피아 성당 소묘>라는 시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379).




죄인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중)>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 / 이대우
       


"사람들은 절대 심판자가 될 수 없음을 특히 기억해 두십시오. 심판자 자신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기도 죄인이며, 그 사람의 죄에 대해서 어떤 사람보다도 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지상에서 죄인의 심판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나 자신이 공정하다면 내 앞에 서 있는 죄인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565

아돌프

 




<아돌프(이삭줍기 2)> - 뱅자맹 콩스탕 / 김석희


       
"일단 이 일에 착수한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들, 게다가 뭔가에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이는 몇 가지 생각을 더욱 발전시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리 무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상대에게 안겨준 고통을 보면 자신도 괴롭다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경박하다거나 타락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나는 묘사해보고 싶었다.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자기가 자기한테 주는 고뇌의 모습은 마치 쉽게 가로지를 수 있는 구름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흔히 세간의 찬사에 용기를 얻지만, 이 세간이라는 것은 완전히 엉터리여서, 규칙에 따라 주의(主義)를 보충하고 관습에 따라 감동을 보충하고, 추문도 배덕으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번거로운 것으로 미워할 뿐이다. 다시 말해 추문만 없으면 악덕도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세상 인심이다.


반성없이 맺어진 관계는 고통 없이 깨질 수도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관계가 깨진 데서 오는 고민이나 배신당한 영혼의 비통한 놀라움이나 완전한 신뢰 뒤에 이어지는 의심, 어떤 한 사람을 의심한 결과가 세간 전체로까지 퍼져가고 스스로 짓밟은 존경을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을 보고서야 사랑하기 때문에, 고민하는 마음 속에는 무엇인가 신성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함께 느끼지 않고 상태한테만 느끼게 했다고 믿는 그 애정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약한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이기려면, 우선 마음 속에 있는 관대함을 모두 때려부수고 충실함을 모두 찢어발기고 고상하고 훌륭한 것을 모조리 희생해야 한다. 이 투쟁은 무관한 사람들이나 친구들한테는 갈채를 받지만, 그 승리에서 다시 일어섰을 때는 제 영혼의 일부를 죽이고 남의 동정을 손상시키고 도덕을 자기 냉혹함의 구실로 삼아 능욕해버린 뒤다. 그리고 사람은 자시늬 가장 좋은 성질을 잃어버리고, 이 슬픈 성공으로 얻은 치욕과 타락 속에서 덧없이 살아가게 된다.

이상이 <<아돌프>>에서 내가 묘사하고 싶었던 광경이다. 내가 거기에 성공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만난 독자들 대다수가 자신들도 이 주인공과 똑 같은 처지에 놓인 적이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어느 정도 진실이라는 가치가 있는 듯하다. 물론 상대에게 준 고통에 대해 그들이 보이는 회한 속에는 무언가 자기 만족 같은 것이 엿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들 대부분은 일부러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고, 허영심이 그들을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들의 양심은 평안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쨌거나 지금의 나는 <<아돌프>>에 관한 것에는 지극히 무덤덤해져 있다."




- 뱅자맹 콩스탕의 3판 서문(9~11)



"옳으신 말씀입니다. 선생님이 돌려보낸 수기를 발행하기로 했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선생께서 생각하는 것처럼 유익하리라 여겨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나 다 고초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수기를 읽는 여자들은 모두가 아돌프보다 훌륭한 여자를 만났었고, 자신도 엘레노르보다 훌륭한 여성이라고 생각할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이 수기를 출간하려는 까닭은, 이 수기가 비참한 지경에 빠져 있는 인간의 마음을 매우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 수기가 교훈적인 면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남성들에 대해서입니다. 우리 인간이 자랑하는 재능은 행복을 추구하거나 행복을 베푸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정신력, 성실함, 선량함 따위의 성격은 하늘로부터 타고나는 것이라는 점을 이 수기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조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순간적인 뉘우침 때문에 채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그 초조감이 다시금 벌려놓는 것을 막지도 못하는, 그 부질없는 연민을 나는 선량함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인생을 통하여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고뇌입니다. 아무리 교묘한 형이상학도 자기를 사랑한 여자의 마음을 짓밟는 남자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해명할 수만 있다면 어떤 실수도 용납될 수 있다고 믿는 그 자만심을 나는 증오합니다.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말하면서도 실은 자기 자신의 문제에만 골몰해 있고, 자신을 얘기하는 의도 속에는 남의 동정을 살 수 있으리라는 흑심을 숨기고 있으며, 파멸의 한복판에 태연히 서 있으면서도 뉘우치기는커녕 제 자신을 이리저리 따지려드는 그 허영심을 나는 증오합니다. 자신의 무력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려 들고, 죄악은 주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속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그 의지박약한 태도를 나는 증오합니다. 아돌프가 벌은 받은 것은 그가 지닌 성격 때문이며, 그가 정처도 없이 떠돌아다녔고 어떤 건실한 직업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 일시적인 기분에 일생을 내맡기고, 툭하면 변덕이나 부리면서 재능마저 탕진해버리고 말았다는 것은 나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자면, 선생께서 아돌프의 신상에 관해 새삼 상세한 기록을 제공해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는 그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처럼 베풀어주신 호의를 이용할지 어떨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환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자신의 성격인 것입니다.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과는 그 관계를 끊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꾼다고 하지만, 그것은 결국 벗어나고 싶던 고통을 다른 환경 속에 옮겨다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자리를 옮기면서도 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없다면, 그것은 오로지 뉘우침 위에 양심의 가책을 보태고, 고뇌에 과오를 덧붙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155~157


아, 네오블레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살림지식총서 118)> - 김헌
       
"내 손으로 직접 네오블레를 쓰다듬을 수 있다면."

- 아르킬로코스, 조각글, 118



"이제 진정 이를 알라. 네오블레는
다른 놈이 가져가라지.
에라, 익을 대로 익어
처녀의 꽃봉오리는 벌써 시들었다.
예전에 있던 우아함마저.
물릴 줄 모르는
[...] 미친 년, [...] 끝을 보여주는군.
지옥에나 떨어져라.
[...] 그럴 순 없지
내 어찌 그런 여자를 취해서
이웃의 웃음거리가 되겠는가?

- 아르킬로코스, 조각글, 196





* [...]: 파피루스가 손상되어 읽을 수가 없는 부분.
- 61~62





이 반전, 혹은 이 흔한 러브스토리 ...




***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살림지식총서 118)> - 김헌
       
헤시오도스는 시인의 힘, 뮤즈의 탄생을 뮤즈의 가르침에 따라 노래한다.

[...]

인간들과 신들의 왕 제우스와 기억을 관장하고 보증하는 기억의 신 므네모쉬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홉 딸들이 바로 뮤즈다. 태초로부터 처음 혼돈의 신 카오스가 있었고, 그로부터 나온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고, 그와 동침하여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을 낳는다.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 하늘의 덮개 코이오스, 높은 곳을 달리는 휘페리온과 크리오스, 이아페토스 그리고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여섯 아들이며, 테이아, 동물의 안주인 레아, 기억의 여인 므네모쉬네, 포이베, 테튀스 그리고 이치의 신 테미가 있다. 이 가운데 시간 크로노스는 모든 동물을 다스리는 레아를 아내로 맞아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스, 데메테르, 헤라를 낳고 마지막으로 제우스를 낳는다. 막내 제우스가 고모뻘 되는 므네모쉬네와 결합하여 아홉의 뮤즈 여신들을 낳은 것이다.


헤시오도스가 소개하고 있는 아홉 뮤즈들에게 후대의 고대 로마인들은 전통에 따라 음악과 시가, 학문의 여러 장르들을 맡겨준다. '소문과 명성'의 클레이오에게 역사를, '아름다운 기쁨' 에우테르페에게 아울로스(피리) 연주와 그 합창 서정시를, 지팡이와 웃는 가면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한 '축제'의 탈레이아에게 목가(牧歌)와 희극을, 슬픈 가면과 운명의 몽둥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한 '노래와 춤'의 멜포메네에게는 비극을 맡겨두었고, '춤과 노래의 즐거움' 테릅시코레에게 뤼라와 그 반주에 노래되는 서정 합창시를, '사랑'의 에라토에게는 서정시의 일부를, 입에 손가락 하나를 대고 명상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수많은 찬양의 노래' 폴리휨니아에게는 신의 찬가를, 나팔과 물시계를 들고 있는 모습의 '하늘의 여신' 우라니에에게는 음악적인 질서로 운동하는 하늘을 탐구하는 천문학을 부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목소리' 칼리오페에게는 장대한 서사시와 달콤한 연설의 기교를 맡긴다. 헤시오도스는 아홉 뮤즈들 가운데 나중에 최고의 전설적 가인(歌人) 오르페우스를 낳게 되는 칼리오페를 가장 뛰어난 뮤즈로 지목한다. 서사시는 물론, 음악과 시가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 문화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연설의 기술, 설득의 기교로서의 수사학이 뮤즈 칼리오페의 선물로 소개되기 때문이다.
- 34~37


나 자신, 나의 연애, 나의 고뇌



 

<제인 에어> - 샬럿 브론테 / 유종호
       
이 말을 듣고 그녀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정원을 같이 산보하자는 것이었다. 밖으로 나간 우리는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속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자기가 이 년 전에 런던에 가서 지낸 멋진 겨울 얘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거기서 그녀가 불질러 놓았던 남성들의 찬미, 그녀가 한 몸에 받았던 주목 등. 나는 그녀가 어떤 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 사실까지도 짐작할 수 있었다. 오후가 지나고 밤이 되면서부터 그 짐작은 점점 확정적인 것으로 되어갔다. 가지가지 달콤했던 대화가 내 귀에 전해지고 센티멘털한 장면들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한 마디로 말해 그날 하루는 그녀가 나를 위해 그 자리에서 써주는 상류 사회를 그린 한 편의 장편소설이었다. 이 야기는 매일같이 반복되었다. 화제는 늘 마찬가지 - 자기 자신, 자기의 연애, 자기의 고뇌에 대한 것뿐이었다. 그녀가 자기 어머니의 병환이나 오빠의 죽음, 또는 집안의 장래를 생각할 때 암담하기만 한 현재 상태 따위에 대해 한미디도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온통 흘러간 나날의 열락에만 취해 있고 장래의 쾌락을 열망하는 데에만 사로잡혀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의 병실에 하루 오 분씩밖엔 더 있지를 않았다.(435)



이 글을 읽으며, 바로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적어도 잠시나마 '바로 내가 이런 인간은 아닌가' 하고 혼자 스스로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인간은 극히 드물다. 인간은 이렇게 해서 '길들여지는데' - 물론 이는 사회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인 이상 어느 정도는 필연적인 것이지만 - 때로, 그러니까 항상, 이러한 자기 검열은 과도한 양상을 띠거나 혹은 턱없이 부족하다. 스스로의 건강하고 균형잡힌 의식에 의한 조절, 적도, 중용이란 이 경우 매우 드물다, 곧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과정을 '자동적으로' 곧 '무의식적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그 결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고 생각을 하여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2012. 7. 27.

무라카미 류




<라인> - 무라카미 류 / 양억관


"그가 보고 들은 한, 이 세상에도 자기 자신에게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73)



넌, 그렇지 않은가?





-



       

<미소 수프> - 무라카미 류 / 정태원

<스트레인지 데이스> - 무라카미 류 / 양억관

<반도에서 나가라 (전2권 세트)> - 무라카미 류 / 윤덕주

<교코> - 무라카미 류 / 양억��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개정판)> - 무라카미 류 / 한성례

<악마의 패스> - 무라카미 류 / 이윤정

<코인로커 베이비스 1> - 무라카미 류 / 양억관


恨-생명










<토지 10:제4부 1권> - 박경리

       
"...... 한이야 후회하든 아니 하든 원하든 원치 않든 모르는 곳에서 생명과 더불어, 내가 모르는 곳, 사람 모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생명의 응어리다. 밀쳐도 싸워도 끌어안고 울어도, 생명과 함께 어디서 그것이 왔을꼬? 배고파서 외롭고 헐벗어서 외롭고, 억울하여 외롭고 병들어서 외롭고, 늙어서 외롭고 이별하여 외롭고, 혼자 떠나는 황천길이 외롭고, 죽어서 어디로 가며 저 무수한 밤하늘의 별같이 혼자 떠돌 영혼, 그게 다 한이지 뭐겠나. 참으로 생사가 모두 한이로다 ......"(39, 제10권, 솔)

"칼날과 섹스, 그것이야말로 진실로 일본의 수천 년 역사의 진수가 아니었던가."(14, 제10권, 솔)



우리는 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






<노름꾼 외> - 도스토예프스키 / 심성보

       
"우리는 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에, 즉 궁지에 몰리면 모두 그곳으로 간다."(124)



당신 인생의 이야기, 혹은 이미지-사고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 김상훈


       
"세계를 구원한 후 그는 무엇을 할 작정일까. / 나는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용하는 수단을 이해한다. 고로, 나는 붕괴한다."(109)


"비음운적(非音韻的)인 언어로 사고한다는 개념은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다. 내 친구 중에 부모 두 사람이 청각 장애자인 사람이 있다. 미식 수화법을 쓰며 자란 그가 영어 대신 수화를 써서 생각하는 일이 자주 있다는 얘기를 그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수화로 코드화된 사고를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내적인 목소리 대신 내적인 손 한 쌍을 써서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궁금해하곤 했다.


<헵타포드 b>를 습득하면서 나는 그에 못지 않게 이질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다. 나의 사고는 그림을 통해 코드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는 이따금 꿈을 꾸는 듯한 상태에 빠져, 나의 사고가 내적인 목소리로 표현되는 대신, 유리창에 서리가 끼듯이 생겨나는 어의(語義)문자(semagram)로 대체된 광경을 심안으로 보곤 했다."(189~190)


"수학이 모순된 체계이며 그것이 내포하는 놀라운 아름다움 모두가 실은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증거와 직면한다는 것은 내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395)




***





우연한 기회에 어떤 분이 소개해주셔서 읽게 된 소설, 일명 'sf 소설'인데, 결코 그런 장르에 한정시킬 수 없는 실로 과학철학적, 형이상학적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 테드 창은 'sf 소설계의 보르헤스'이다. 최근 읽은 책 중에 가장 흥미롭게 읽은 책이고, 아직 안 읽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 뱀발. 난 남자지만 이 책을 읽으며 중국계 2세 미국인인 테드 창이 실린 앞 날개의 사진이 점점 더 멋지게 심지어 섹시하게(!) 보여지는 것을 느꼈다. 한 사람이 '지적으로 섹시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단식광대 - 감시와 처벌




<변신> - 프란츠 카프카 / 홍성광

       
"채찍을 들고 자기 자신을 감시합니다. 조금이라도 하기 싫어하면 채찍으로 마구 후려치는 겁니다."(255)


"어느 누구도 밤낮으로 단식 광대를 줄곧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관찰하는 바로는 정말 단식이 중단 없이 완벽하게 행해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단식 광대 자신만이 이를 알 수 있었고, 그러므로 그만이 이와 동시에 자신의 단식에 완전히 만족하는 구경꾼이었다."(275)


"단식은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었다. 그도 이런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275)





<단식광대>, 빨간 피터의 고백

부바르와 페퀴셰 - 진보






<부바르와 페퀴셰. 1> - 귀스타브 플로베르 / 진인혜




"부바르는 과학적인 분야에서의 진보는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학에 있어서는 명확하지 않았다."(272)







감정교육, 현대





<감정교육. 2> - 귀스타브 플로베르 / 김윤진



"현대는 역겹다."(222)






구원, 그리스의 빛






<영혼의 자서전. 1>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안정효

       
"내가 벅찬 재앙이 닥치자마자 형언하기 힘든 비인간적 기쁨에 사로잡힌다는 사실을 나는 이때 처음 깨달았다. 숙모 칼리오페의 집이 홀랑 타버렸을 때 처음으로 불을 구경하던 나는 누가 목덜미를 잡아 집어던질 때까지 불 길 앞에서 깡충깡충 뛰며 춤을 추었다. 그리고 우리 선생이던 크라사키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웃지 않기 위해 애를 먹었다."(107)


"나는 언제가 나이 많은 이슬람 교도의 입을 통해 들었던 근엄한 격언이 머리에 떠올랐다. <만일 여자가 같이 자자고 부르는데 가지 않으면 너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신은 이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너는 지옥의 밑바닥에 유다와 자리를 같이 하리라.> 나는 이 말에 겁이 났다. 식은 땀을 흘리면서 나는 다친 짐승처럼 비틀거리며 집으로 걸음을 서둘렀다."(190)



"동양의 불안정하고 혼란한 함성은 그리스의 빛을 거치는 동안 점점 투명해지며 인간화하면서 로고스로, 이성으로 변형된다. 동양의 노예 근성을 자유로, 야만적 도취를 명석한 합리성으로 바꿔 놓는 여과기이다. 무형의 형태를, 측정이 불가능한 사물에 척도를 부여하며, 맹복적으로 맞서 싸우는 힘들에 균형을 잡아주는 사명은 세파에 시달린 그리스라는 바다와 땅의 힘에서 나온다.

그리스를 여행하면 참된 기쁨을, 위대한 풍요함을 얻는다. 그리스의 흙은 피와, 땀과, 눈물로 너무나 속속들이 젖었고, 그리스의 산들은 너무나 많은 인간의 투쟁을 보았기에, 여기 이 산과 해안에서 백인종의 그리고 모든 인류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음을 생각해보면 나는 전율한다. 짐승에서 인간으로의 기적적인 변신이 이루어진 곳은 틀림없이 우아함과 흥겨움이 넘치는 이런 바닷가에서였으리라. 톱처럼 수많은 젖이 달린 아스타르테가 소아시아에서 닻을 내렸거, 야만적이고 조잡한 목상(木像)을 받은 그리스인들이 거기서 야수성을 씻어 내고 인간의 젖가슴만 남기고는 존귀한 인간의 육체를 부여한 곳은 그리스의 바닷가였으리라.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인들은 원시적인 본능과, 난장판을 즐겼으리라. 야수 같은 고함을, 아르타르테는 받았다. 그들은 본능을 사랑으로, 물어뜯는 입을 키스로, 술잔치를 종교적인 예식으로, 고함을 사랑의 속삭임으로 변모시켰다. 아스타르테를 그들은 아프로디테로 변형시켰다.


영적인, 그리고 또한 지리적인 그리스의 위치는 신비한 사명감과 책임감을 지닌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 격류가 땅과 바다에서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리스는 항상 지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끊임없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곳이다. 이러한 숙명적인 위치는 그리스의 운명과 전 세계의 운명에 기초적인 영향력을 미쳤다."(221~222)


"광기로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재난을 맞으리라."(280)



구원, 깨달음




<영혼의 자서전. 2>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안정효



       
"니체가 나에게 준 상처들은 깊고 신성해서, 베르그송의 신비주의적 위안으로는 치료가 되지 않았다. 잠깐 아물기는 했지만 상처는 곧 다시 터져 피가 났으니, 젊었을 적에 내가 바라던 바는 치료가 아니라 상처였기 때문이다."(458)


"나중에, 훨씬 뒤에, 나는 절벽의 언저리에서 꿋꿋하게 서서 교만람의 기미도 없고 두려움도 없이 심연을 내려다보았다."(459)


"그들은 꽃 피는 나무 밑에서 얼마 동안 가만히 앉아 침묵을 지켰고, 붓다는 천천히 자비롭게 사랑하는 제자의 머를 쓰다듬었다. <구원이란 모든 구세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 그는 잠깐 잠잠했지만, 나무에서 떨어진 꽃송이를 손가락에 끼고 비틀며 말했다. <인류를 구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자가 구세주이니라.>"(484)


"엣날에 40년 동안이나 고행의 수도를 하고도 아직 신에 다다르지 못했던 위대한 성자가 살았다. 무엇인가 도중에서 그를 가로막았다. 40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는 깨달았다. 그것은 마실 물을 담으면 식혀 주기 때문에 그가 굉장히 좋아하던 작은 항아리였다. 그는 항아리를 깨뜨리고 당장 신과 하나가 되었다. / 내 경우 작은 항아리란 자그마하고 뿌리치기 어려운 젊은 여자의 육체임을 알았다."(499~500)


"<구원을 받게 되는>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낡은 설명은 힘이 빠져서 인간의 지적 체계를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을 위한 새로운 정당성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대마다 나름대로의 <외침>이 따로 마련되기 때문에)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의 외침을 듣고 그것에 따라 노력하는 인간은 행복하다. 오직 그만이 구원을 받는다."(577~578)



"언젠가 러시아의 경종학자(耕種學者)가 이스트라티와 나를 아스트라한 부근의 사막으로 안내했다. 그는 팔을 벌리고 가없는 모래밭을 의기양양하게 포옹했다. <나에게는 일꾼이 수천 명이나 됩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뿌리가 길어서 빗물과 흙을 놓아주지 않는 그런 종류의 풀을 심어요. 몇 년만 지나면 사막을 몽땅 과수원이 될 것입니다.> 그의 눈이 빛났다. <봐요! 마을과, 과수원과, 물이 어디에서나 다 보이지 않아요?> <어디 말이에요?> 이스트라가 놀라서 물었다. <어디 말이에요? 난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요.> 경종학자는 미소를 지었다. <몇 년 지나면 보일 겁니다.> 선서를 하듯 지팡이를 모래밭에 박으며 그가 말했다.


이제 나는 그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같이 항해한 사람들이 서로 나누어 갖게 될 황폐한 땅을 둘러보니 내 눈에는 사람과, 과수원과, 물이 풍족한 광경이 선하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미래의 성당에서 울리는 종과, 운동장에서 뛰놀며 웃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었고 ... 내 앞에는 아몬드나무 꽃이 피었으니, 손을 뻗으면 만발한 가지를 하나 꺽을 수도 있으리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을 믿음으로써 우리들은 그것을 창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란 우리들이 충분히 갈구하지 않았으며, 비존재의 음산한 문턱을 지나 전진하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들의 피를 쏟아 붓지 못한 무엇이다."(603~604)



***




그런데, 이 모든 깨달음들은 다 '남의' 깨달음들이다.

나의 절망과 고독과 일상과 시시함에서 우러나오는, 나의 깨달음을 찾아야 한다.



제인 에어 1, 샬롯 브론테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1>, 유종호 옮김, 민음사, 2004.





        "사람이란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법이다."(48쪽)

 


"정치적 반란을 제외하고서도 얼마나 많은 반란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동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200쪽)     





하지만, 샬럿 브론테나 제인 에어나 모두 너무 가엽다. 내가 여자 자매가 없어서 그런지, 나도 누이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리고 실제의 샬럿 브론테,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 혹은 가공의 제인 에어, 모두 내게는 너무도 가엽게만 느껴진다.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여성을 동정의 대상으로만 대상화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겠고, 그리고 아마도 나 역시 그러한 감정 혹은 감상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글을 읽을 때 마음이 아프고 그들이 가엽다. 물론 그들도 힘차게 자신의 주어진 삶과 때로는 투쟁하며 때로는 고통받으며 살아간 그냥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옳건 그르건 '그렇게 느끼는' 사실이 있다. 이러한 말은 물론 그들에 대해서보다 나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왜 남성들은, 아니 인간들은, 이토록 여성들에게 잔인한 것일까?






당신이 저지른 과실의 결과








<제인 에어> - 샬럿 브론테 / 유종호


       
"그래, 그럼 제인, 상상력의 도움을 빌려요. 가령 말이오, 당신이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고 훈련된 소녀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오늘날까지 제멋대로 자라난 장난꾸러기 소년이라고 가정해 보란 말이오. 머나먼 외국 땅에 있다고 생각하고 거기서 거다란 과실을 저질렀다고 생각해요. 어떤 성질의 것인지, 어떤 동기에서인지 그건 아무래도 좋다고 하고, 다만 과실의 결과가 일평생 당신의 생애를 따라다니고, 그 오점은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는다고 합시다. 알겠소? 난 말하자면, 이 세상의 범죄라는 걸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니까. 범법자에게 법률의 제재를 받게 하는, 피를 흘리게 한다든가, 또는 어떠한 범죄 행위를 말하는 건 아니오. 내가 말하는 건 과실이란 말이오. 당신이 저지른 과실의 결과가 머지않아 당신에겐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 당신은 구원을 얻으려고 방법을 강구한단 말이오. 정상적인 일은 아니지만 법률에 저촉되지도 않고 문책을 받을 성질의 것도 아니야. 그러나 역시 당신은 불행하단 말이오. 왜냐하면 당신의 바로 문 앞에서 희망이 당신을 저버렸기 때문이오. 당신의 청춘은 일식 때문에 대낮인데도 어두워지고, 해가 질 때까지 그 암흑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생각되지. 쓰디쓰고 치사한 연상이 당신의 유일한 양식이 된거야."(402)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박민규
       
"그게 인간이야. 모든 인간에게 완벽한 미모를 준다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아. 그때는 또 방바닥에 거울을 깔아놓고 내 항문의 주름은 왜 정확한 쌍방 대칭 데칼코마니가 아닐까, 머리를 쥐어뜯는게 인간이라구. 신이여, 당신은 왜 나에게 좌우비대칭 소음순을 주신건가요 ... 당신은 왜 나에게 짝부랄을 달아준건가요 따지고 드는게 인간이기 때문이지. 부끄러워하고, 부러워 하고 부끄러워 하고 부러워하고...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생각 해 본적 없어?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174)
"뭐야 바보잖아 싶겠지만 그게 인간이야. 현실적으로 살고 있다 다들 생각하지만, 실은 관념 속에서 평생을 살 뿐이지. 현실은 절대 그렇지가 않아, 라는 말은 나는 그 외의 것을 상상할 수 없어- 라는 말과 같은 것이야. 현실은 늘 당대의 상상력이었어. 지구를 중심으로 해가 돈다 거품을 물던 인간도, 아내의 사타구니에 무쇠 팬티를 채우고 십자군 원정을 떠나던 인간도, 결국 아들을 낳지 못했다며 스스로 나무에 목을 맨 인간도 ... 모두가 당대의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를 벗어나지 못했던 거야. 옛날 사람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다들 낄낄거리지만 그리고 돌아서서 대학을 못갈 바엔 죽는 게 나아! 다들 괴로워하는 거지. 돈이 최고야 무쇠 같은 신앙으로 무장하고, 예쁘면 그만이지 더 이상 뭐가 있어- 당대의 상상력에 매물되기 마련인 거야. 맞아.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아. 지금의 인간은 그 외의 것을 상상하지 못하니까 ... 하지만 그 <현실>은 언젠가 결국 아무도 입지 않는 시시한 청바지와 같은 것으로 변하게 될 거야.

[...]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 개나 소나 수첩에 적어다니는 고린도 전서를 봐.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 그 짧은 문장에는 인간이 감내해야 할 모든 <손해>가 들어 있어. 애당초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나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226~228).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418).


저자의 죽음








<새로운 인생(세계문학전집 134)> - 오르한 파묵



       
"나린 박사는 책의 저자가 살해된 것에 대해 전혀 유감스럽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181)

"순수한 것에, 변하지 않는 것에, 진실한 것에 이르고 싶은 거지? 그렇지만 그런 근원이나 시작은 없어. 우리 모두가 모방하고 있는 어떤 진실, 어떤 열쇠, 어떤 말, 어떤 기원을 찾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야."(303)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내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누군가가, 어쩌면 천사가 항상 냐게 도움을 준다."(33)


"책들이 내게 대화를 하고 싶게 자극을 불러 일으켰지만, 나는 이를 주로 머릿속에서 책들끼리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때로, 계속해서 여러 권을 읽으면 그 책들끼리 속삭이는 게 들렸고, 이렇게 해서 내 머릿 속이, 모든 구석에서 각각의 다른 악기가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 연주장으로 바뀌어 버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내 머릿속의 이 음악 때문에 내가 인생을 견디며 산다고 인식했다.


예를 들면, 어느 밤 아내와 딸이 잠든 후에 시작되는 그 매력적이지만 고통스러운 고요 속에서, 자난을, 나를 그녀와 만나게 해주었던 책을, 그러니까 인생을, 천사를, 사고를, 시간을, 텔레비전의 만화경 같은 색깔들을 감탄하며 바라보면서 생각할 때, 이 음악이 사랑에 대해 내게 속삭인 것들로 시선집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나이에, 내 인생은 사랑으로 인해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보시는 바와 같이 독자 여러분, 책을 탓하지 않을 정도로 저는 멀쩡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신문이며 책이며 잡지며 라디오며 텔레비전에서 칼럼니스트며 여론 분석가며 소설가 들이 말한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323~324)


"보시는 바와 같이 나는 전혀 새로운 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래도 무엇인가를 얘기하지 않았나! 이제는 그것이 새롭다거나 새롭지 않다거나 하는 데 신경 쓰지 않는다. 잘난 체하기를 좋아하는 일련의 바보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한두 단어라도 말하는 것이 침묵보다는 낫다. 비정함으로 천천히 전진하는 기차처럼, 인생이 우리의 영혼과 몸을 소멸시키며 지나갈 때 침묵하면, 입을 닫고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325)

"독자의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빼앗을 수 있을 것인가?"(396)


"강력하게 주장하지는 않지만 나는 나 자신을 좌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 내가 알고 있는 좌익주의란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좌익주의는 모든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397)

- 옮긴이 해제에 인용된 오르한 파묵의 말



그림, 마음의 풍경






<내 이름은 빨강 2>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책과 그림을 볼수록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되지. 훌륭한 화가는 자신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종국에 가서는 우리 마음 속의 풍경까지 바꿔놓는다는 것을 말이야. 어떤 화가의 예술작품이 이렇게 한번 우리 영혼 속에 자리잡으면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아름다움의 잣대가 되고 말지."(279)


그림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억, 곧 마음의 풍경이다. 그리고, 글 또한 그러하다.

나 자신이 되는 것 - 불가능






<검은 책 2> - 오르한 파묵 / 이난아




"기차의 객차처럼 무정하게 서로를 쫓는 이 의미들을 생각하니 그 안에서 영원히 길을 잃을 것만 같아 두려워졌다."(47)


"처음에 그 책은 당시의 '이상주의자' 장교들이 썼던 '200년 동안 우리는 왜 서양을 따라 잡지 못하는가? 어떻게 하면 발전할 수 있는가?' 하는 식의 책처럼 보였다."(104)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서서히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127)

"네가 너의 연인이며, 너의 연인이 너다. 아직 모르겠나?"(192)


"난 당신을 죽이겠소. 당신을 죽이겠소. 당신 때문에 한 번도 나 자신이 되지 못했소."
"사람은 절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소."(218)